서경 - 하서 - 오자지가(五子之歌)
서경 - 하서 - 오자지가(五子之歌)
▣ 오자지가(五子之歌)
『五子는 太康之弟也요 歌는 與帝舜作歌之歌로 同義하니 今文無, 古文有하니라』
『 오자(五子)는 태강(太康)의 아우이고, 가(歌)는 제순(帝舜)이 노래를 지었다는 가(歌)와 뜻이 같으니, 금문(今文)에는 없고 고문(古文)에는 있다.』
▣ 제1장(第一章)
『 태강(太康)이 지위만 차지하여 일예(逸豫)『[편안함과 즐거움]』로 덕(德)을 멸(滅)하자 여민(黎民)들이 모두 배반하였는데,
마침내 놂에 즐기기를 무도(無度)『[한없이 함]』히 하여 낙수(洛水)의 밖으로 사냥가서 십순(十旬)『[100일]』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 태강(太康)은 계(啓)의 아들이다. 시(尸)는 제사(祭祀)의 시동(尸童)과 같으니, 지위에 있기만 하고 일을 하지 않음을 이르니,
옛사람의 이른바 ‘시록(尸祿)•시관(尸官)’과 같은 것이다. 예(豫)는 즐김이다.
하(夏)나라 속담에 “우리 왕(王)이 유람하지 않으면 우리들이 어떻게 쉬며, 우리 왕(王)이 즐기지 않으면 우리들이 어떻게 도움을 받겠는가.
한 번 유람하고 한 번 즐기는 것이 제후(諸侯)들의 법도가 된다.” 하였으니,
하(夏)나라의 선왕(先王)들이 유람하고 즐기지 않은 것은 아니나 모두 절도가 있었으니, 모두 백성을 위한 것이었고,
태강(太康)처럼 일예(逸豫)로써 그 덕(德)을 멸(滅)한 것이 아니다.
백성들이 모두 배반하는 마음을 품었으나 태강(太康)은 오히려 뉘우칠 줄을 알지 못하고 마침내 놀고 사냥하기를 한없이 함에 편안하여,
그 먼 것을 말하면 낙수(洛水)의 남쪽까지 이르고, 그 오램을 말하면 십순(十旬)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으니,
이는 태강(太康)이 스스로 자기 나라를 버린 것이다.』
▣ 제2장(第二章)
『 유궁(有窮)의 임금인 예(혬)가 백성들이 참아내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수(河水)에서 막았다.』
『 궁(窮)은 나라 이름이고, 예(혬)는 궁(窮)나라 군주(君主)의 이름이다.
혹자는 이르기를 “예(혬)는 활쏘기를 잘하는 자의 이름이다.
가규(賈逵)의 《설문(說文)》에 ‘예(혬)는 제곡(帝줱)의 활쏘는 관원(官員)이었으므로 그 뒤에 활쏘기를 잘하는 자를 모두 예(혬)라 했다.’ 하였으니,
유궁(有窮)의 군주(君主) 또한 활쏘기를 잘하였기 때문에 예(혬)라고 지목했다.”라고 한다.
예(혬)는 백성들이 명령을 견뎌내지 못함으로 인하여, 태강(太康)을 하북(河北)에서 막아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마침내 폐위(廢位)하였다.』
▣ 제3장(第三章)
『 그의 아우 다섯 사람이 어머니를 모시고 따라가서 낙수(洛水)의 물가에서 기다렸는데,
다섯 사람이 모두 원망하고 대우(大禹)의 경계(警戒)를 기술하여 노래를 지었다.』
『 어(御)는 모심이다. 원(怨)은 맹자(孟子)의 이른바 “소변(小弁)의 원망은 친한 사람을 친애했다.”는 것과 같다.
소변(小弁)의 시(詩)는 부자간(父子間)의 원망이요, 오자(五子)의 노래는 형제간(兄弟間)의 원망이니,
친척의 과실이 큰데도 원망하지 않으면 이는 더욱 소원해지는 것이다.
다섯 사람은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이 위태롭고 멸망하여 구원할 수 없음과
모자(母子)와 형제(兄弟)가 이산(離散)하여 보존할 수 없음을 알고는 근심하고 답답하며 강개하고 감려(感쪵)하여 정이 스스로 그만 둘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나타내어 시가(詩歌)를 지어서 나라를 멸망시키고 집안을 망치는 이유가
모두 황조(皇祖)의 교훈을 황기(荒棄)『[폐지]』함에서 근원했다고 규명하였으니,
비록 다섯 장(章) 사이에 황조(皇祖)의 경계를 다 기술한 것은 아니나, 그 선후(先後)와 종시(終始)가 서로 발명이 된다.
사신(史臣)이 노래를 지은 뜻을 다섯 장의 머리에 서술하였으니, 후세에 시(詩)를 서술하는 자가 편마다 모두 소서(小序)를 두어
시(詩)를 지은 뜻을 말하니, 그 근원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 제4장(第四章)
『 그 첫번째는 다음과 같다. “황조(皇祖)께서 교훈을 남기시니, ‘백성은 가까이 할지언정 얕잡아보아서는『[버려서는]』 안 된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견고하여야 나라가 튼튼하다.’ 하셨다.』
『 이는 우왕(禹王)의 교훈이다. 황(皇)은 큼이다.
군주(君主)와 백성은 형세(形勢)로 말하면 존비(尊卑)의 구분이 하늘과 땅처럼 비견할 수 없으나,
정(情)으로 말하면 서로 필요로 하여 편안함이 신체(身體)가 서로 자뢰하여 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형세가 소원하면 이반(離叛)하고 정(情)이 친하면 합하니,
친하기 때문에 가까이 한다고 말하고 소원하기 때문에 얕잡아 본다고 이른 것이니, 친할 수는 있으나 소원해서는 안됨을 말한 것이다.
또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견고한 뒤에야 나라가 편안하니,
근본이 이미 견고하지 않으면 비록 강함이 진(秦)나라와 같고 부유함이 수(隋)나라와 같더라도 끝내 또한 멸망할 뿐이다.
기일(其一)과 기이(其二)는 혹 장유(長幼)의 순서이거나 혹 노래를 지은 순서일 것이니, 알 수가 없다.』
▣ 제5장(第五章)
『 내가 천하(天下)를 보건대 미련한 지아비와 부인들도 한 사람이 능히 우리를 이긴다 하니, 한 사람이 세 가지 잘못을 하였으니,
원망이 어찌 밝은 데에 있겠는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 도모하여야 한다.
내 조민(兆民)들을 대하되 무섭기가 썩은 새끼줄로 여섯 말을 어거하는 것과 같으니, 백성의 윗사람이 된 자가 어찌하여 공경하지 않는가.”』
『 여(予)는 오자(五子)가 자칭(自稱)한 것이다. 군주(君主)가 인심을 잃으면 독부(獨夫)가 되니,
독부(獨夫)가 되면 미련한 지아비와 부인들이 한 사람이 능히 우리를 이기는 것이다.
삼실(三失)은 잘못한 것이 많음을 말한 것이다. 민심이 원망하고 배반함을 어찌 그 드러나기를 기다린 뒤에 알겠는가.
마땅히 사기(事幾)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에 도모하여야 한다. 후(朽)는 썩음이다. 썩은 새끼줄은 끊어지기 쉽고, 여섯 말은 놀라기 쉽다.
썩은 새끼줄은 진실로 말을 어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위구(危懼)하여 두려워할 만함이 심함을 비유한 것이니,
백성의 윗사람이 된 자가 어찌하여 공경하지 않는가.
앞에는 이미 우왕(禹王)의 교훈(敎訓)을 인용하였고, 여기서는 자기를 믿을 수 없음과 백성은 두려워할 만하다는 것으로써
거듭 그 뜻을 맺은 것이다.』
▣ 제6장(第六章)
『 그 두번째는 다음과 같다.
“교훈(敎訓)에 있으니, 안으로 색황(色荒)을 하거나 밖으로 금황(禽荒)을 하거나 술을 달게 여기고
음악을 좋아하거나 집을 높이 짓고 담장을 조각하거나 하여 이 중에 한 가지가 있으면 혹 망하지 않는 이가 없다.”』
『 이 또한 우왕(禹王)의 교훈이다.
색황(色荒)은 총애(寵愛)하는 여자에게 혹함이요, 금황(禽荒)은 유전(遊 )을 탐함이니, 황(荒)은 미란(迷亂)함을 이른다.
감(甘)과 기(嗜)는 모두 만족(滿足)함이 없는 것이다.
준(峻)은 높고 큼이요, 우(宇)는 동우(棟宇)요, 조(彫)는 그리고 꾸미는 것이다.
여섯 가지 중에 한 가지가 있으면 모두 멸망(滅亡)을 이룰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우왕(禹王)의 교훈이 이처럼 밝고 분명한데 태강(太康)은 홀로 생각하지 않는가.
이 장(章)은 처음과 끝의 의의(意義)가 이미 분명하므로 다시 거듭 맺지 않았다.』
▣ 제7장(第七章)
『 그 세번째는 다음과 같다.
“저 도당(陶唐)으로부터 이 기방(冀方)『[기주(冀州) 지방]』을 소유하셨는데,
이제 그 도(道)를 잃어 기강(紀綱)을 문란하게 해서 끝내 멸망함에 이르렀다.”』
『 요(堯)가 처음에 당후(唐侯)가 되었다가 뒤에 천자(天子)가 되어 도(陶)에 도읍하였으므로 도당(陶唐)이라 칭한다.
요(堯)는 순(舜)에게 전수하고 순(舜)은 우(禹)에게 전수하였는데 모두 기주(冀州)에 도읍하였으니,
기방(冀方)이라 말한 것은 중앙을 들어 밖을 포괄한 것이다.
큰 것을 강(綱)이라 하고, 작은 것을 기(紀)라 한다. 지(底)는 이름이다.
요(堯)•순(舜)•우(禹)가 서로 한 도(道)를 전수하여 천하(天下)를 소유하였는데,
이제 태강(太康)이 그 도(道)를 잃어 기강(紀綱)을 문란하게 해서 멸망함에 이른 것이다.』
『 ○ 또 살펴보건대, 좌씨(左氏)에 인용된 것은 ‘유피도당(惟彼陶唐)’의 아래에
‘솔피천상(帥彼天常)〔저 하늘의 떳떳함을 따른다〕’이라는 한 말이 있고, ‘궐도(厥道)’는 ‘기행(其行)’으로 되어 있고,
‘내지멸망(乃底滅亡)’은 ‘내멸이망(乃滅而亡)’으로 되어 있다.』
▣ 제8장(第八章)
『 그 네번째는 다음과 같다.
“밝고 밝은 우리 선조(先祖)는 만방(萬邦)의 군주(君主)이시니, 전(典)이 있고 칙(則)이 있어 자손들에게 남겨주셨다.
통하는 석(石)과 화평(和平)하는 균(鈞)이 왕부(王府)에 있는데, 그 전통을 폐하고 실추시켜 종족(宗族)을 전복시키고 후사(後祀)를 끊는구나.”』
『 명명(明明)은 밝고 또 밝음이다. 아조(我祖)는 우왕(禹王)이다.
전(典)은 주(周)나라의 육전(六典)과 같고, 칙(則)은 주(周)나라의 팔칙(八則)과 같으니,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전장(全長)과 법도(法度)이다.
이(貽)는 남겨줌이다. 관(關)은 통함이요, 화(和)는 평함이다.
120근을 석(石)이라 하고, 30근을 균(鈞)이라 하니, 균(鈞)과 석(石)은 오권(五權) 중에 가장 중한 것이다.
관통(關通)은 피차(彼此)가 통하고 같아서 절열(折閱)의 뜻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며,
화평(和平)은 인정이 두 사람 모두 평(平)하여 어그러지고 다투는 뜻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우왕(禹王)은 밝고 밝은 덕(德)으로 천하(天下)에 군림(君臨)하시니, 전칙(典則)과 법도(法度)를 후세에 물려준 것이 이와 같으며,
균석(鈞石)을 설치하여 천하(天下)의 경중(輕重)을 통일하고 백성들에게 신(信)을 세운 것도 또한 왕부(王府)에 있으니,
그 자손과 후세를 위한 염려가 상세하고 또 원대하다고 이를 만한데,
어찌하여 태강(太康)은 그 전통을 황폐하고 실추시켜 종족(宗族)을 전복시키고 후사(後祀)를 끊는가.』
『○ 또 살펴보건대, 법도(法度)의 제도는 저울에서 시작되었으니, 저울이 물건과 균등하여 저울대가 생기고,
저울대가 돌아 규(規)를 낳고, 규(規)의 둥근 것이 구(矩)를 낳고, 구(矩)의 네모진 것이 승(繩)을 낳고,
승(繩)의 곧은 것이 준(準)을 낳으니, 이 권(權)•형(衡)은 또 법도(法度)가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균(鈞)•석(石)으로써 말한 것이다.』
▣ 제9장(第九章)
『 그 다섯번째는 다음과 같다.
“아! 어디로 돌아갈까. 내 마음의 서글픔이여! 만성(萬姓)이 나를 원수로 여기니 내 장차 누구를 의지하겠는가.
슬프다. 내 심정이여! 얼굴『[낯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운 마음이 있노라. 그 덕(德)을 삼가지 않았으니, 후회한들 따를 수 있겠는가.”』
『 갈(曷)은 어찌이다. ‘오호갈귀(嗚呼曷歸)’는 돌아갈 만한 곳이 없음을 탄식한 것이요,
‘여장주의(予將疇依)’는 방황하여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니, 군주(君主)가 이 지경에 이르면 또한 가련하다.
구여(仇予)의 여(予)는 태강(太康)을 가리킨다.
태강(太康)을 가리키면서 나라고 말한 것은 차마 지척(指斥)하여 말할 수가 없어서이니, 충후(忠厚)함이 지극하다.
울도(鬱陶)는 슬픈 생각이다. 안후(顔厚)는 부끄러움이 얼굴빛에 나타나는 것이며, 육니( )는 부끄러움이 마음에 나오는 것이다.
가추(可追)는 따를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