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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집요(聖學輯要) - 서(序)

HanEunSeob 2016. 8. 24. 12:52

 

성학집요(聖學輯要)


《성학집요(聖學輯要)》는 율곡 선생이 40세 때 홍문관 부제학으로 있던 당시 완성하여, 선조 임금에게 올린 책이다.
그 내용은 유학의 기본 입문서인 대학(大學)의 가르침을 여러 성현의 말을 인용하여 고증하고
성리학적 입장에서 해설한 것으로, 유학의 가르침을 통해 자기완성을 이루고
나아가 가정, 사회, 국가를 편안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간결하게 엮었다.
이 내용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율곡전서》를 인용하였습니다


서(序)

신은 살피옵건대, 도(道)는 오묘해서 형상이 없기 때문에 글(文)로써 도를 표현한 것이옵니다.
사서(四書)와 육경(六經)1)에 이미 밝고 또 구비되었으니, 글로써 도를 구하면 이치가 다 나나탈 것이옵니다.
다만 전서(全書)가 호번(浩繁)하여서 요령을 얻기가 어려우니,

선현(先賢)이 「대학」을 표장(表章)하여 규모를 세웠사옵니다.
성현의 천만 가지 교훈이 모두 여기에 벗어나지 않사오니, 이것이 요령을 얻게 하는 방법이옵니다.

서산 진씨(西山眞氏)2)가 이 책을 미루어 넓혀서 연의(衍義)를 만들어,
널리 경전(經傳)을 인용하고 겸하여 사적(史籍)을 인용하여,
학문을 하는 근본과 다스리는 차례가 찬연(粲然)히 조리가 있아온데 임금의 몸에 중점을 두었으니,
참으로 제왕의 도에 들어가는 지침이옵니다.
다만 권수가 너무 많고 문장이 한만(汗漫)하여 일을 기록한 글 같고
실학(實學)3)의 체계가 아니니, 참으로 아름답기는 하나 다 착하지는 못하옵니다.
배움은 마땅히 넓게 하고 첩경으로 요약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다만 배우는 이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마음을 굳게 세우지 아니하고서,
먼저 넓히는데 일삼으면 심려(心慮)가 전일하지 못하고, 버리고 취하는 것이 정밀하지 못해서
혹시 지리(支離)하여 진실을 잃을 염려가 있으니, 반드시 먼저 요긴한 길을 찾고
확실하게 문정(門庭)을 열어 놓은 뒤에야 널리 배우기를 한이 없이 할 수 있고, 유(類)를 따라 향상될 것이옵니다.

항차 임금의 한 몸은 만 가지 일이 모이기 때문에 일을 처리하실 때는 많고 글을 읽을 때는 적사오니,
만약에 그 강령을 들며 그 종지(宗旨)를 정하지 않고 오직 넓히는 데로만 힘을 쓰면,
혹 기억하고 외는 습관에 거리끼게 되고, 혹은 사장(詞章)의 화려한 것에 빠져서,
궁리(窮理)4) · 정심(正心) · 수기(修己) · 치인(治人)의 도에는 참으로 얻는 것이 없을 것이옵니다.

신은 못난 선비로서 좋은 때를 만나 전하를 뵈옵건대 총명하고 지혜로움이 뛰어났으니,
진실로 학문의 공으로써 함양성취(涵養成就)하여 그 기량(器量)을 채우신다면
동방에서 요(堯) · 순(舜)의 다스림을 볼 수 있을 것이오니, 천 년에 한 번밖에 없는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되옵니다.

돌아보건대, 신은 경솔하고 천박하여 재기(才器)가 이미 얕으며,
거칠고 잡되어 학술이 또 보잘 것 없기 때문에 규곽(葵藿)5)의 정성은 비록 간절하오나 충성을 다할 길이 없사옵니다.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대학」은 본래 덕에 들어가는 입문인데,
진씨(眞氏)의 연의(衍義)는 오히려 간결하지 못하니, 진실로 「대학」의 뜻을 모방하여 차례를 따라 나누어서,
성현(聖賢)의 말씀을 정선(精選)하여 거기를 메우고 절목(節目)을 자세하게 하여,
말은 간략하되 이치가 다하게 되면 곧 요령의 방도가 여기에 있사옵니다.
이것을 우리 임금에게 올리면 근폭(芹曝)6)의 드림이 비록 옆사람의 웃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형촉(螢燭)의 빛은 아마 임금을 밝히는데 도움이 있을 것이옵니다.

이에 다른 일을 폐기하고 오로지 요령을 간추리는 것을 일삼아
사서(四書) · 육경(六經)과 선유(先儒)의 설과 역대의 역사에까지 깊이 탐색하고 널리 찾아서,
그 정수만을 채집하여 모으고, 차례를 나누어서 번거로운 것을 줄여 요약하며,
깊이 연구하고 거듭 바로잡아 두 해를 걸려 편성하였사온데 모두 다섯 편이옵니다.

1편의 통설은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을 합하여 말한 것으로서,
곧 「대학」의 이른바 덕을 밝히는 것과,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과, 지극히 착한 데 그치는[止於至善] 것이요,

2편의 수기(修己)는 곧 「대학」의 이른 바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인데, 모두 열세 조목이옵니다.
1장은 총론(摠論)이요, 2장은 입지(立志)요, 3장은 수렴(收斂)이라 한 것은 방향을 정해서
흩어진 마음을 구하여 「대학」의 기본을 세운 것이오며, 4장의 궁리(窮理)는 곧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7)이며,
5장은 성실(誠實)이요, 6장은 기질을 교정하는 것[矯氣質]8)이요, 7장은 양기(養氣)9)요,
8장의 정심(正心)이라는 것은 「대학」의 성의 정심(誠意正心)이요.
9장의 검신(檢身)이라는 곳은 곧 「대학」의 수신(修身)이요, 10장은 덕량(德量)을 넓히는 것이요.
11장은 보덕(補德)이요, 12장의 돈독(敦篤)이라는 것은 거듭 성의(誠意) · 정심(正心) · 수신(修身)의 남은 뜻을 논한 것이요,
13장은 그 공효를 논한 것으로서 수기(修己)가 지선(至善)에 그친 것이옵니다.

3편은 정가(正家)요, 4편의 위정(爲政)이라는 것은
「대학」의 이른바 신민(新民)인데, 정가라는 것은 제가(齊家)를 말함이요,
위정이라는 것은 치국 평천하(治國平天下)를 이른 것이옵니다.

정가(正家)의 조목이 여덟이니, 1장은 총론이요, 2장은 효경(孝敬)이요,3장은 형내(刑內)요,
4장은 교자(敎子)요, 5장의 친친(親親)이라는 것은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처자(妻子)에게 모범이 되며,
형제 간에 우애하는 도리이오며, 6장은 근엄(謹嚴)이요, 7장의 절검(節儉)이라는 것은 미진(未盡)한 뜻을 미루어 연역(演繹)함이요,
8장은 공효(功效)를 말하였으니, 곧 제가(齊家)가 지선(至善)에 그친 것이옵니다.

위정(爲政)의 조목이 열[十]이니, 1장은 총론이요, 2장은 용현(用賢)이요,
3장의 취선(取善)이라는 것은 곧 「대학」의 이른바 어진 사람이라야 능히 사랑하고 미워한다는 뜻이요,
4장은 시무(時務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요, 5장은 선왕(先王)을 본받음이요,
6장의 천계(天戒)를 삼가라는 것은 곧 「대학」에서 인용한, “마땅히 은(殷)나라에 볼지어다.
준명(峻命:천명을 말함)이 쉽지 않다.”는 뜻이요, 7장의 기강(紀綱)을 세운다는 것은
곧 「대학」의 이른바, “나라를 가진 자는 삼가야 할 것이니 편벽하면 천하의 살육이 된다.”는 뜻이요,
8장은 안민(安民)이요, 9장의 명교(明敎)라는 것은 곧 「대학」의 이른바,
“군자 혈구(矩)10)의 도가 있으니 백성이 효제(孝悌)에 흥기하며 배반하지 않는다.”는 뜻이요,
10장은 공효(功效)로써 매듭을 지어, 치국 평천하(治國平天下)가 지극히 착함[至善]에 그친 것이옵니다.

5편의 성현 도통(道統)이라는 것은 바로 「대학」의 실적(失跡)입니다.
모두 합하여 성학집요(聖學輯要)라 이름하니,
마지막으로 도를 전하는 책임을 성상에게 바른 것이라 해도 너무 지나친 말은 아니옵니다.
전하께서는 5백의 기(期)를 당하시고 군사(君師)의 지위에 거하시어,
착한 것을 좋아하는 지혜와 욕심이 적은 인(仁)과 일을 결단하는 용맹이 있으시니,
진실로 시종 학문을 힘쓰시어 끊이지 않고 계속한다면 무거운 책임을 감내하여 원대한 사업을 이루는 것을 어찌 못하겠사옵니까.

다만 어리석은 신(臣)이 견문이 넓지 못하고, 지식과 생각하는 것이 투철하지 못하와,
차례를 갖추는 데 순서를 잃은 것이 많사오나, 인용한 성현의 말씀은 모두 천지에 세워도 어긋나지 않고,
귀신에게 질정하여도 의심되는 것이 없으며, 뒷성인이 보더라도 의혹할 것이 없는 것이오니,
어리석은 신이 조리(條理)를 잘못 구분하였다고 해서 성인의 교훈을 경솔히 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옵니다.

혹 어리석은 신이 한 가지 터득한 설(說)을 그 사이에 섞은 것이 있사오나,
모두 삼가 성현의 교훈을 상고하여 거기 의거해서 글을 이룬 것이오며,
감히 방자하게 맹목적인 말을 발하여 종지(宗旨)를 잃지 않았사옵니다.
신의 정력을 여기에 다하였사오니, 만일 열람하시고 항상 상 위[案]에 두신다면,
전하께서는 천덕(天德)과 왕도(王道)의 학문에 아마 다소 도움이 없지 아니 할 것이옵니다.

이 책은 비록 임금의 학문을 주로 하였사오나 실상은 상하에 통하오니,
배우는 이로서 널리 보고 범람하여 귀결(歸結)이 없는 자는 마땅히 여기에 공(功)을 거두어 반약(反約)의 방법을 얻고,
배우지 못하고 고루하고, 견문이 좁은 자는 마땅히 여기에 힘을 들이어 향학(向學)의 방향을 정하여야 할 것이오니,
배움에는 빠르고 늦음이 있으나 모두 유익할 것이옵니다.

이 책은 사서와 육경의 계단이며 사다리[階梯]이오니, 만약 부지런한 것을 싫어하고 간편한 것을 편안히 여겨서,
학문의 공(功)이 여기에서 그친다고 하면, 이것은 그 문정(門庭)만 구하고 그 당실(堂室)은 찾지 못한 것이오니,
신이 책을 엮은 본의가 아니옵니다.

만력(萬曆) 3년 을해(乙亥)11) 가을 7월 16일에
통정대부홍문관 부제학 지제교 겸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관(通政大夫弘文館副提學知製敎兼經筵參贊春秋館修撰官)
신(臣) 이이(李珥)는 엎드려 절하옵고 삼가 서(序)를 쓰옵니다.

 
< 주 >

1) 중국의 여섯가지 경서(經書).

곧 주역(周易) 시경(詩經) 서경(書經) 춘추(春秋) 예기(禮記) 악기(樂記).
또는 악기 대신에 주례(周禮)를 넣기도 한다. 육예(六藝) 또는 육적(六籍)이라 부르기도 한다.

2) 송(宋)나라 포성(浦城) 사람.

이름은 덕수(德秀) 자는 경원(景元) 또는 경희(景希) 서산(西山)은 그의 호임.
저서로 대학연의(大學衍義) 사서집편(四書集編) 등이 있다.

3) 실리(實理)·실용(實用)·실적(實迹)·실심(實心)·실사(實事)를 추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4) 이치를 탐구하는 일.

대개 경외(敬畏)의 마음으로 이치를 탐구하는 일을 뜻한다.

5)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여 기울어진다는 뜻으로

아랫사람이 군왕(君王)이나 장상(長上)의 덕을 경앙하는 것을 뜻한다.

6)임금에게 미미한 충성을 바친다는 뜻.
옛날에 미천한 농부가 미나리가 맛있고 등에 쪼이는 봄볕에 좋다고 여겨 임금에게 바치기를 원했다는 고사가 있다.

7) 「대학(大學)의 8조목에 속하는 것으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지식을 극진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희(朱熹)는 격물「格物」의 「格」을 「至」, 즉 이르다는 뜻이라 하고 「物」을 사물이라는 뜻이라고 하여
사물의 개별적·경험적 탐구와 인식의 방법으로 풀이하였다.
치지(致知)에 관해서도 지(知)를 이루느냐 지(知)에 이르느냐는 논의가 있으나
주희(朱熹)는 지(知)를 이룬다는 입장에서 해석하였다.
이에 반하여 왕양명(王陽明)은 「格物」의 「格」을 正이라 풀이하여 사물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왕양명은 격물치지를 「치양지」(致良知)설과 지행합일(知行合一)설의 입장에서 해석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왕양명의 해석은 선험적·직관적인 방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본래 「대학」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주희적인 것과 왕양명적인 것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주희, 왕양명 양자는 그 한 편에 치우쳤다고 할 수 있다.

8) 편벽된 기질(氣質)을 변화시켜 교정한다는 뜻.

이 이론은 송(宋)대의 장횡거(張橫渠)에서 비롯되었다.

9) 기(氣)를 기른다는 뜻으로

맹자(孟子)에서 말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른다는 것을 말한다.

10) 「대학」의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해당되는 조목에서 제기된 것으로

혈구(矩)의 도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른바 천하를 화평하게 함이 그 나라를 다스림에 있다는 것은 위에서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에게 효도가 일어나며 위에서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에게 공경함이 일어나며,
위에서 외로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백성이 배반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혈구의 도를 지녀야 한다. 즉 위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 것이며,
아래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위를 섬기지 말 것이며, 앞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뒤에 먼저 하지 말 것이며,
뒤에서 실어하는 바로써 앞에 따라가지 말 것이며, 오른편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왼편에 건내지 말 것이며,
왼편에서 싫어하는 바로 써 바른편에 건네지 말 것이다. 이것을 혈구지도(矩之道)라 하는 것이다」

11) 명나라 신종의 연호로 1575년, 선조 8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