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집요(聖學輯要) - 제4편. 위 정(爲政)
제4편. 위 정(爲政)
신이 살피건대, 국가〔國〕란 것은 가정〔家〕을 미룬 것인데, 가정을 바르게 하여야만 국가를 바르게 할 수 있으므로,
위정(爲政)을 정가(正家) 다음에 두었습니다.
제1장. 위정 총론(爲政總論)
신이 살피건대, 정치를 하는 데는 근본이 있고, 규모가 있으며, 절목(節目)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제 이것을 합하여 한 장(章)을 만들어 첫머리에다 두었습니다.
◆ 정치하는 근본에 대한 말씀
오직 천지는 만물의 부모요, 사람은 만물 가운데서 신령스러운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총명한 이가 원후(元后:임금)가 되고, 원후는 백성의 부모가 된다. (주서(周書) 태서(泰誓))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단(亶)은 성실하여 망녕됨이 없음을 말한 것이니, 총명이 천성에서 나온 듯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크도다, 건원(乾元:하늘)이여, 만물은 건원이 바탕이 되어 시작한다.
지극하도다, 곤원(坤元:땅)이여, 만물은 곤원이 바탕이 되어 생성된다. 그러므로 천지는 만물의 부모이다.
만물이 생겨날 때 오직 사람은 그 뛰어남을 얻어 나왔기 때문에 신령스러워 사단(四端)이 갖추어지고,
만선(萬善)이 구비되어 지각(知覺)이 유독 다른 물건과는 다른데,
그 중에도 특히 성인은 가장 준수하고 가장 신령스러운 사람으로서 천성이 총명하여, 힘쓰지 않아도 그 앎이 남보다 앞서고,
그 깨달음이 남조다 앞서서 다른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난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하의 큰 임금이 되어, 천하의 피(疲)·융()·잔(殘)· 질(疾)은 그 삶을 얻고,
환(鰥)·과(寡)·고(孤)·독(獨)은 보호되어서 만백성이 하나도 그 적소(適所)를 얻지 못한 이가 없는 것이니 임금은 또 백성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대저 천지가 만물을 낳음에 유독 사람에게 후하게 하고, 천지가 사람을 낳음에 유독 성인에게 후하게 하는데,
성인에게 후하게 하는 까닭은 역시 성인이 백성들의 군장(君長)이 되어, 천지가 백성들의 부모되는 마음과 같이 해달라고 하기 위한 것이다.
하늘이 백성을 위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임금의 책임을 맡은 이가 백성들의 부모된 그 의의(意義)를 몰라서야 되겠는가." 하였습니다.
○ 대학(大學)에 이르기를, "시경(詩經)에 '도를 즐기는 군자만이 백성들의 부모로다.' 하였는데,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백성들의 싫어하는 바를 싫어하는 바를 가지고 백성들의 부모라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천지는 만물의 부모요, 임금은 백성들의 부모라는 이 말은 매우 적절합니다.
장자(張子: 장횡거(張橫渠)) 서명(西銘)에는 천지를 부모로 삼고, 대군(大君)을 종자(宗子)로 삼았는데,
그 설이 더욱 소상하게 구비되었기 때문에 삼가 다음에 기록합니다.
서명(西銘)에 이르기를, "건(乾)은 부(父)요, 곤(坤)은 모(母)인데, 내 이 조그마한 몸이 혼연(混然)히 그 가운데 처하였다.
(주자가 말하기를, "조그마한 몸으로 천지에 혼합해서 사이가 없어 그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천지의 색(塞:충만한 기운)은 내 몸이 되었고, 천지의 수((帥): 으뜸되는 것을 말함)는 그 성(性)이 되었다.
(주자는 말하기를, "건(乾)은 양(陽)이요, 곤(坤)은 음(陰)이니, 이것은 천지의 기운이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인데,
인물(人物)은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몸이 되었다.
그리고 또 건의 건(乾)과 곤의 순(順)은 이것이 천지의 뜻인데, 기(氣)의 원수(元帥)로서 인물은 이것을 얻어 성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하여 깊이 관찰해 보면 건(乾)을 부로 하고 곤(坤)을 모로 하여
내가 혼연히 그 가운데 처해 있는 실상을 알 수가 있다." 하였습니다.)
백성은 나의 동포요, 만물은 나와 더불어 있으며, 대군(大君)은 내 부모의 종자(宗子)요, 대산(大臣)은 종자의 가상(家相)이다.
나이 많은 이를 높이는 것은 자기의 어른을 높이는 것이요, 고독하고 유약한 이를 자애하는 것은 자기의 어린이를 자애하는 것이다.
성인은 천지의 덕에 합한 이요, 현인은 무리 가운데서 뛰어난 사람이며,
천하의 피·융·잔·질이나 환·과·고·독은 다 내 형제로서, 유리되어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다.
어느 때나 천명을 잘 보존하는 것은 아들이 부모에게 조심하는 것이요, 천명을 즐거워하고 근심하지 않는 것은 효도에 순일한 자이다.
그리고 인(仁)을 어기는 자는 덕을 거스리는 자라 하고, 인을 해치는 자는 적(賊)이라고 한다.
악(惡)을 행하는 자는 부재(不才)한 자식이요, 사람의 도리를 행하는 이는 어진 아들이다.
천지 조화를 아는 이는 부모의 사업을 잘 기술〔術〕하는 이요, 신묘한 이치를 궁득(窮得)한 이는 부모의 뜻을 잘 계승하는 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화(化)하는 것은 곧 기(氣)인데 그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事)라 하고, 신(神)한 것은
곧 이(理)인데 그 형체를 엿볼 수 없는 까닭에 지(志)라고 했다." 하였습니다.)
사람이 잘 안 보이는 곳〔屋漏〕에서 부끄럽지 않은 것은 부모에게 누덕이 안되는 것이요,
심성(心性)을 존양(存養)하는 것은 효도에 게으르지 않은 것이다.
맛 좋은 술을 미워하는 것은 우(禹)의 고양(顧養)이요, 영재(英才)를 기르는 것은 영봉인(穎封人:영고숙(穎考叔)을 말함)의 석류(錫類)174)이다.
괴로움을 무릅쓰고 부모를 즐겁게 하는 것은 순(舜)의 공덕이요, 도망하지 아니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신생(申生)175)의 공손함이다.
부모에게서 받은 몸을 그대로 보존하여 돌아간 것은 증삼(曾參)이요, 용감하게 죽어서 부모의 영을 순종한 것은 백기(伯奇)176)이다.
부귀와 복택은 내 삶을 두터이 해 주려고 하는 것이요, 빈천과 우척(憂戚)은 나의 사람됨을 옥같이 되게 해 주려는 것이다.
생존하면 내가 순하게 섬기는 것이요, 죽으면 내가 가서 편안히 하는〔寧:시경(詩經) 귀령부모(歸寧父母)란 뜻〕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정완(訂頑), 즉 서명(西銘)임 일편의 뜻이 극히 완비되어 있으니 이것은 곧 인(仁)의 체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서명은 학자들의 인(仁)을 위한 공부요, 오로지 임금이 하는 일만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이 장(章)에 기재한 것은 임금이 하늘을 아버지로 섬기고, 땅을 어머니로 섬기며, 백성을 형제로 삼고,
만물을 동류로 삼아서, 인심(仁心)을 충만하게 하여야만 그 직책을 극진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편은 임금에게 더욱 절실한 것입니다.
대개 천지는 만물을 낳아도 작위(作爲)함이 없으며, 백성과 만물은 천명을 받았으나 자립할 수 없으니,
위로는 천공(天工: 하늘이 백성을 다스리는 활동)을 대신하고 아래로는 만물을 다스려서, 천지로 하여금 그 자리를 얻게 하고,
만물로 하여금 그 적소를 얻게 하는 것이 임금에게 있지 않겠습니까.
우(禹)가 말하기를, "임금이 임금의 도리를 어렵게〔艱〕여기며,
신하가 신하의 도리를 어렵게 여겨야만 정사(政事)가 겨우〔乃〕 다스려져서 백성이 덕에 민첩하다." 하였습니다.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하동)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간(艱)은 어렵다는 뜻이요, 내(乃)는 어렵게 여기는 말이며, 민(敏)은 빠르다는 말이다.
우는 말하기를, '임금은 그 임금된 도리를 감히 쉽게 여기지 않고, 신하는 그 신하된 직분을 감히 쉽게 여기지 아니하며,
밤낮으로 조심하고 두려워하되 당연히 각각 할 것을 극진히 힘써 해야만, 그 정사가 능히 잘 다스려져서 사특(邪慝)한 것이 없고,
백성들이 또 자연히 보고 느껴서 선에 속히 교화되지 않을 수가 없다.'하였다." 하였습니다.
순(舜)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진실로 이와 같이 하면 아름다운〔嘉〕말이 숨겨져 묻히지 않을 것이며,
초야에 묻혀 있는 어진 이가 없어서 만방(萬邦)이 다 편안할 것이니, 뭇 사람에게 상고하여 자기의 소견을 버리고 타인을 좇으며,
무고(無告)한 이를 학대하지 않고, 곤궁한 이를 저버리지 아니한 것은 오직 요(堯)가 능히 하였다." 하였습니다.
채씨는 말하기를, "가(嘉)는 선이요, 유(攸)는 바〔所〕라는 뜻이다.
위의 말은 순이 우의 말을 그러하다고 하였고,
이어서 진실로 이와같이 하면 널리 중론을 청취하고 뭇 어진이들을 다 맞이하여 천하의 백성들이 다 그 혜택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사사로움을 잊고 이(理)에 순하며, 백성을 사랑하고 선비를 좋아하게 되지 않으면 여기에 미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오직 요만이 능히 하였다고 한 것은 대개 순이 겸사를 하여 자기는 감히 꼭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한 것이니,
순이 임금의 도리를 어렵게 여기는 것을 여기에서도 역시 볼 수 있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자기를 버리고 남을 좇는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소견이라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니 아무리 버린다 해도
아마 자기를 지키는 것은 견고하고 남을 좇는 것은 경시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인정은 보통 하지 못하는 것을 하라고 책하면 그래도 힘써 좇을 수 있지마는,
만일 잘하고 있는 이에게 또 그렇게 하라고 책하면 반드시 자만심이 생겨서 도리어 책하는 이를 잘 알지 못한다고 원망하게 됩니다.
대개 능히 어렵게 여기는 도리는 아름다운 말이 숨어서 묻히지 않게 하고, 자기를 버리고 남의 중론을 좇는 데 있으니,
순이 성인이 되어 나라를 잘 다스린 것은 실로 이 때문입니다.
우가 순의 잘한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로되 오히려 하는 일이 여유(餘裕)있다고 아니하고 거듭 경계하니,
순도 역시 자기가 잘하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감히 당하지 못한다 하였으니,
이것은 우(虞)나라 조정의 군신이 서로 그 도를 극진히 한 것이요, 성인으로서 더욱더 성인이 된 것입니다.
정공(定公)이 묻기를, "한 마디로 나라가 흥할 수 있다고 하니, 그런 말이 있습니까." 하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말을 그렇게 기필〔幾〕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임금노릇 하기도 어렵고 신하노릇 하기도 쉽지 않다' 하니,
만일 임금노릇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면 한 마디로 나라를 잘되게 한다는 말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기(幾)는 기필한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또 묻기를, "한 마디로 나라를 망하게 한다고 하니 그런 말도 있습니까." 하니,
공자는 대답하기를, "말을 그렇게 기필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는 임금노릇 하는 데에 즐거움이 없고, 다만 내가 말을 하면 내 말을 어기지 못하는 것이 즐거움이다 하니,
만일에 좋은 말을 어기는 이가 없다면 좋지 않겠습니까마는, 그렇지 않고 좋지 않은 말을 어기는 이가 없다면
한 마디로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말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사씨(謝氏)는 말하기를, "임금된 도리의 어려움을 알면 반드시 공경하고 조심할 것이며,
오직 내 말을 어기지 말라 하면 아첨하는 간신들이 모일 것이니, 나라가 갑자기 흥하고 망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흥하고 망하는 근원은 여기서 나누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기미를 아는 군자가 아니면 어찌 이런 것을 알겠는가." 하였습니다.
중훼(仲 : 탕(湯)임금의 신하 이름)가 고(誥)를 지어 아뢰기를,
"덕이 날로 새로우면 만방의 민심이 돌아오고, 자만(自滿)하는 뜻이 있으면 구족(九族)이 떠날 것이니,
임금은 힘써 대덕(大德)을 밝히어 백성에게 중도(中道)를 세우소서.
의(義)로써 일을 제단(制斷)하고, 예(禮)로써 마음을 절제해야, 후손에 끼치는 덕이 넉넉할 것입니다.
듣건대, ‘스스로 스승을 얻는 이는 임금이 되고, 남이 자기만 못하다고 하는 이는 망한다.’ 하였는데,
묻기를 좋아하면 넉넉하고, 스스로 제 마음대로 하면 작아질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중훼지고(仲之誥)). ○이 글은 중훼(仲)가 성탕(成湯)에게 고한 말임.)
채씨는 말하기를, “중(中)이라는 것은 천하 사람의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임금이 이 중을 세우지 아니하면 백성들이 스스로 중을 세울 수 없다.
예(禮)와 의(義)라는 것은 중을 세우는 것인데, 의(義)는 마음의 재제(裁制)요, 예(禮)는 이(理)의 절문(節文)이다.
의로써 일을 결단하면 일이 마땅해지고, 예로써 마음을 절제하면 마음이 바르게 되어 안팎의 덕이 합하여 중도(中道)가 서게 된다.
이와 같이 하면 당세의 백성에게만 중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후세의 자손에게도 끼치어져서 작연(綽然)히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도는 반드시 배워야만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또 고인의 말을 들어서 스승을 높이고 묻기를 좋아하면,
덕이 높아지고 업(業)이 넓어지며, 스스로 어질다 하여 제 마음대로 하면 이와 반대가 된다고 한 것이다.
스스로 스승을 얻는다는 것은 진실로 자기가 부족하고 남이 여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
허심탄회하게 듣고 순종하여 거슬림이 없는 것을 말한다.
맹자는 말하기를, ‘탕(湯)은 이윤(伊尹)한테서 배운 뒤에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아니하고 왕자가 되었던 것이다.’ 하였으니,
이것은 탕이 스스로 얻은 것이다.
그런데 후세에는 예와 같지 않았는데,
특히 세도(世道)가 퇴락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도(師道)도 밝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중훼(仲)의 의논은 그 지극히 중요한 것을 요약하여, ‘스스로 스승을 얻어야 한다.’는 말 한 마디에 귀결시켰으니,
이것은 실로 제왕의 대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기자(箕子)가 말하기를, “임금〔皇〕은 극(極)을 세워야〔建〕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홍범(洪範))
채씨는 말하기를, “황(皇)은 임금이요, 건(建)은 세움이요, 극(極)은 북극의 극과 같으니, 지극하다는 뜻이어서 표준이 된다는 말인데,
중립(中立)하여 사방에서 취하여 바르게 하는 것이다.
임금은 마땅히 지극한 인륜을 다해야 할 것이니, 부자(父子)간에는 극진히 친(親)하여 천하의 부자(父子)가 이에서 그 준칙을 취하고,
부부간에는 극진히 분별하여 천하의 부부(夫婦)가 이에서 그 준칙을 취하게 할 것이다.
이리하여 한 가지 사물(事物)을 접촉하고, 한 가지 언동(言動)을 발할 때도 그 의리의 당연한 것을 극진히 하여
조금이라도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차이가 없다면 극이 서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정치〔政〕를 하는데 덕으로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北極星)이 제 자리에 있고, 뭇 별들이 그것을 향(共)하여 도는 것과 같다.”하였습니다.
(공(共)이란 글자는 역시 공拱자와 같음.○「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정(政)이라고 하는 것은 바른 것이니, 사람의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이요,
덕이라는 것은 얻는다는 말인데, 도를 행하여 마음에 얻는 것이 있는 것이요,
북신(北辰)은 북극성을 말하는 것인데 하늘의 지도리〔樞〕요,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요,
공(共)이라는 것은 향한다는 뜻이니, 뭇 별들이 사면으로 둘러싸서 모두 북극성을 향한다는 말이다.
정치를 하는데 덕으로 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교화되어 천하 사람들이 귀복(歸服)하는 그 모습이 마치 이와 같다.”하였습니다.
○ 어떤 이가 묻기를, "위정이덕(爲政以德)이란 말이 덕으로서 정치를 한다는 말입니까.”하니,
주자는> 말하기를, "덕을 가지고 가서 정치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以)라는 글자에 구애될 필요가 없고, 다만 정치를 하는데 덕이 있다는 말과 비슷하다.”하였습니다.
○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정치를 하는데 덕으로써 하면, 움직이지 않아도 화하고 말하지 않아도 믿으며,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어도 이루어져서, <위정자>의>지키는 것이 지극히 간략해도 능히 번거로운 것을 막아내고,
처하는 것이 지극히 고요하여도 움직이는 것을 제어하며, 힘쓰는 것이 지극히 적어도 대중을 잘 복종시킨다.”하였습니다.
○ 계강자(季康子)177)가 정치에 대하여 공자에게 물으니 공자는 대답하기를,
"정치라는 것은 바르게 하는 것이데, 그대가 바르게 거느리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아니하겠는가.”하였으며,
또 계강자가 도둑을 근심하여 공자에게 물으니,
공자는 대답하기를, "진실로 그대에게 욕심이 없다면, (탐욕이라는 말입니다.) 비록 그들에게 상을 주어 도둑질을 하라 하더라도
그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순자(荀子) (순황荀況이 지었습니다.)에 말하기를, "몸을 닦는다는 말은 들었으나 나라를 닦는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였다.
임금은 소반〔槃〕과 같은 것인데, 소반이 둥글면 물〔水〕이 둥글 것이며, 임금은 또 사발과 같은 것인데, 사발이 모나면 물이 모날 것이다.
임금은 또 근원인데, 근원이 맑으면 흐르는 것이 맑고, 근원이 흐리면 흐르는 것이 탁하다." 하였습니다.
○ 동씨(董氏)는 말하기를, "임금이 된 이는 마음을 바르게 하여 조정을 바루고, 조정을 바르게 하여 백관을 바루며,
백관을 바르게 하여 만민을 바루고, 만민을 바르게 하여 사방을 바룰 것이니,
사방이 바르면 원근(遠近)이 다 한결같이 바르지 아니한 것이 없어서 사기(邪氣)가 그 틈에 침범하지(범한다는 것입니다.)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음양이 화(和)하고 풍우가 때에 알맞으며 만물이 화(和)하고 만민이 고르게 불어난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천하의 일은 변화가 무궁하여 그 단서(端緖)가 한이 없으되 하나도 임금의 마음에 근본하지 아니한 것이 없는데
이것은 자연적인 이치인 것이다.
그러므로 임금의 마음이 바르면 천하의 일은 하나도 바르지 아니한 것이 없고, 임금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천하의 일이 하나도 바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임금의 조그마한 한 몸으로 깊은 궁중에 거한다고 그 마음의 사(邪)와 정(正)을 엿볼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표적이 밖에 드러나는 것이 항상 열 눈〔十目〕으로 보는 것 같으며 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 같아서 숨길 수 없다.
이 때문에 순(舜)은 오직 정일(精一)하라고 경계하였고, 공자는 과도한 욕망을 억제하고 예절을 좇으라고 훈계하였으니,
다 내 이 마음을 바르게 하여 천하의 모든 일에 근본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이 마음이 이미 바르게 되면 보고 듣는 것이 총명하여 주선하는 것이 예(禮)와 맞아서, 몸이 바르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소행에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이 없어서 중(中)을 잡을 것이며,
비록 천하가 광대하다 하여도 한 사람이라도 나의 인(仁)에 귀화(歸化)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邪)와 정(正)의 표적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내 집사람에게 가장 먼저 드러나고,
다음에는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며, 그 다음에는 조정에까지 달하여 천하에 미치게 되는데,
만약 궁중 안이 단정촵장엄하고 엄숙촵정제하여 왕후가 관저(關雎)의 덕이 있고,
후궁들에는 색(色)을 즐기는 일이 없이 질서가 정연하여, 사은(私恩)을 믿어서 전상(典常)을 문란하게 하거나,
뇌물을 바쳐 청탁을 하는 이가 한 사람도 없으면 집안이 바른 것이다.
임금이 퇴조(退朝)한 뒤에, 조용히 쉴 때에 좌우에 모시고 앉은 귀척(貴戚)촵근신(近臣)과,
노복(奴僕)촵환자(宦者)들이 각각 그 직분을 착실히 하여, 한 사람이라도 내외를 통하여 간사함을 부리거나,
위복(威福)을 훔쳐서 권세를 부리거나, 총애(寵愛)를 빙자하여 조정의 정사를 문란하게 하지 않으면, 이것은 좌우가 바른 것이다.
안으로 금성(禁省:궁내)으로부터 밖으로 조정에 이르기까지 이 양자 사이에 통연히 조금이라도 사사(私邪)로운 것이 없어야만
호령을 발하는데 듣는 이가 모두 의심하지 아니할 것이며, 어진 이를 발탁하고 간사한 자를 물리치는데 뭇 사람들이 다 열복(悅服)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강(紀綱)이 진작되어 침요(侵撓)되는 환란이 없고, 정사가 닦아져서 아부하는 폐단이 없을 것이니,
이것은 조정촵백관과 육군(六軍)촵만민이 다 감히 바르지 아니할 수 없는 소이(所以)로서, 치도(治道)는 여기에서 종결되는 것이다.
만약 마음이 조금이라도 바르지 아니하면 위에 말한 이 여러가지가 진실로 그 바른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니,
이 여러가지 중에 하나라도 바르지 못한 것이 있는데 내가 마음이 바르다고 한다면,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임금이 덕을 닦는 것은 정치의 근본이니,
먼저 임금의 직분이 백성들의 부모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안 뒤에 중(中)을 세우고 극(極)을 세워서 표준을 삼게 되면,
그 효과가 마치 뭇 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순과 우촵공자촵중훼(仲)의 설은 중을 세우고 극을 세우는 요령입니다. 그러므로 모두 여기에 실었습니다.
아, 부모가 자식을 자애하는 이는 많지마는, 임금이 백성에게 인(仁)으로 행하는 이는 적은데,
그것이 천지가 부여한 직책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심한 것입니다.
◆ 다음은 위정(爲政)에 대한 말씀
○ 공자는 말하기를, "천승(千乘)의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매사에 조심하여 신용있게〔敬事而信〕하며,
재용(財用)을 절약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백성을 부리되 때를 택해서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도(道)는 다스린다는 뜻이요, 경사이신(敬事而信)이라는 것은 그 일을 조심하여 백성들에게 신용있게 한다는 것이며,
시(時)는 농한기(農閑期)를 말한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이 말은 지극히 얕은 말이나 그 당시에는 제후가 정말 여기에 능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성인의 말은 지극히 비근하지만 상하의 모든 이치가 다 통한다.
이 세 가지 말을 만약 그 극진한 데까지 미루어보면 요(堯)촵순(舜)의 정치도 역시 이 말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보통 사람의 말 같으면 쉬우면 단지 천근(淺近)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 양씨(楊氏)는 말하기를, "위에 있는 사람이 불경(不敬)하면 아래에 있는 사람이 태만하고,
위에 있는 사람이 신용이 없으면 아래에 있는 사람이 의심을 한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 태만하고 의심을 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일을 조심히 해나가고 신용있게 한다는 것은
위정자가 몸소 솔선수범한다는 것이다.
사치스럽게 쓰면 재물이 손상되고, 재물이 손상하게 되면 반드시 백성을 해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백성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재용(財用)을 절약해야 한다.
그리고 백성을 농한기에 부역(賦役)시키지 아니하면 농사짓는 이들이 농사에 전력하지 못할 것이니,
비록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백성들은 그 은택을 입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특히 위정자의 그 마음 가짐을 논하였을 뿐이며, 정사하는 데는 언급하지 아니한 것이니,
진실로 이 마음이 없으면 비록 정사를 하더라도 정치가 제대로 행해지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대개 여기에 말한 이 여러가지는 또 다 공경을 주(主)로 삼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가 위(衛)나라에 가실 때 염유(有)가 수레를 몰〔僕〕고 갔는데, 공자는 말하기를, "백성이 많구나〔庶〕."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복(僕)은 수레를 모는 것이요, 서(庶)는 무리가 많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염유가 말하기를, "이미 백성이 많을 때는 무엇을 더 힘써야 합니까." 하니, 공자는, "백성을 부유하게 해 주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이 많은데 부유하지 아니함은 백성들의 삶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까닭이니,
정전법(井田法)178)을 제정하고 부세를 적게 하여 백성들을 부유하게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이미 부유하면 또 무엇을 더 힘써야 합니까." 하니, 공자는, "가르칠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이 부유하더라도 가르치지 아니하면 금수(禽獸)에 가까와지므로,
반드시 학교를 세우고 예의를 밝혀서 백성을 가르칠 것이다.”하였습니다.
○ 호씨(胡氏)는 말하기를,“하늘이 백성을 낳으면서 사목(司牧:임금)을 세워서 삼사(三事:서(庶)와 부(富)와 교(敎)를 말함)로써 책임을 맡겼다.
그러나 3대 이후로는 능히 이 직분을 행한 이가 백에 하나 둘도 없었다.
한(漢)나라의 문제(文帝)촵명제(明帝), 당(唐)나라의 태종(太宗)은 또한 백성을 많게 하고 부유하게 했다고 하겠으나
서경(西京:여기서는 서경에 도읍을 두었던 문제를 말함)의 가르침은 들은 바가 없었다.
명제는 사부(師傅)를 존중하고 옹(雍:태학을 말함)에 가서 삼로(三老)에게 배례하였고,
그 종척(宗戚)의 자제(子弟)들도 모두 학업을 받았으며, 당 태종은 명유(明儒)들을 크게 불러서 생원(生員)의 수를 많게 하여
그 가르침이 또한 지극하나 그 가르치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
3대의 가르침은 천자와 공경(公卿)이 몸소 위에서 실행하여 그 언행과 정사가 다 사법(師法)이 될 만하였다.
그런데 저 두 임금이야 어찌 그렇게 하였겠는가.”하였습니다.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서 물으니, 공자는 말하기를,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고, 병력을 충족시키면 백성들이 신임할 것이다.”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창고가 가득 차고 무력이 완비하여야만 교화가 행해져서
백성들이 나를 신임하여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자공이 말하기를, “부득이 하여 버리게 된다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하니
공자는 “병력을 버릴 것이다.”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먹을 것이 족하고 신임이 흡족하면 병력은 없어도 지키는 것이 견고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자공이 말하기를, “부득이하여 버린다면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하니
공자는, “먹을 것을 버릴 것이다. 옛날부터 죽음이란 다 있는 것이지만 백성들의 신임을 잃는다면 서지를 못할 것이다.”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죽는 것은 사람이 반드시 면하지 못하는 것이지마는, 신임이 없으면 비록 산다 하더라도 자립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죽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차라리 죽을지언정 백성들에게 신임을 잃지 아니하여야만
백성도 역시 죽게 되더라도 내게 신임을 잃지 않게 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공문(孔門)의 제자가 묻기를 철저히 하였다.
이 같은 장(章)은 자공이 아니면 능히 묻지 못했을 것이요, 또 성인이 아니면 이렇게 대답할 수도 없다.”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인정으로 말하면 병력과 식량이 족해야만 백성들이 나를 신임할 것이요,
덕으로써 말한다면 신임은 본래 사람마다 고유(固有)한 것이니, 병력과 식량이 이에 앞설 수 없다.
이러므로 위정자는 마땅히 몸소 신임으로써 그 백성을 통솔하여 죽음으로써 지킬 것이요,
위급하다 해서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하였습니다. (지킨다는 것은 신임을 지키는 것이요, 버린다는 것은 신임을 버리는 것입니다.)
◆ 다음은 위정(爲政)의 절목(節目)에 대해 정치의 근본을 미루어 말함
○ 공자는 말하기를, “대개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아홉 가지 상도〔經〕가 있는데,
이것은 몸을 닦는 것〔修身〕, 현자를 존경하는 것〔尊賢〕, 친족을 친애하는 것〔親親〕, 대신을 공경하는 것〔敬大臣〕,
군신을 체찰하는 것〔體臣〕, 서민을 사랑하는 것〔子庶民〕, 백공을 오게 하는 것〔來百工〕,
원방 사람들에게 관유하는 것〔柔遠人〕, 제후들을 포용하는 것〔懷諸候〕등이다.”하였습니다.(「중용」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경(經)은 떳떳한 도라는 뜻이요, 체(體)는 그 처지에 처하여 그 마음을 살피는 것이요,
자(子)는 부모가 그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백성을 사랑한다는 뜻이요,
유원인(柔遠人)은 손님과 나그네를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손님과 나그네란 사신같은 이나 또는 상인으로서 먼 곳에서 온 사람같은 이를 말합니다.)
이 대목은 9경(經)의 조목을 열거한 것이다.”하였습니다.
○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천하 국가의 근본이 몸에 있기 때문에 수신이 9경의 근본이 된다.
그러나 반드시 스승과 친하고 벗을 취한 뒤라야 수신의 도가 나아가므로 어진 이를 존경하는 것이 이에 다음하였고,
도가 행해짐은 또 가정보다 먼저 되는 것이 없으므로 친족을 친애하는 것이 그 다음이요,
가정으로 말미암아 조정에 미치는 까닭에 대신을 공경하고 군신을 체찰하는 것이 그 다음이며,
조정으로 말미암아 방국(邦國)에 미치는 까닭에 서민을 자애하고 백공을 오게하는 것이 그 다음이고,
방국으로 말미암아 천하에 미치는 까닭에 원방의 사람에게 관유하고 제후를 포용하는 것이 그 다음이 되니,
이것은 9경의 차례이다.
군신을 보기를 내 사체(四體)와 같이 하고, 백성을 보기를 나의 자식과 같이 하는 것은 곧 신하와 백성을 보는 차별인 것이다.”하였습니다.
몸을 닦으면 도가 서게 되고, 어진 이를 존경하면 의혹이 없게 되며,
친족을 친애하면 제부(諸父)와 형제들이 원망하지 않게 되고, 대신을 공경하면 현혹되지 않게 되며,
군신을 체찰하면 그들이 예(禮)를 무겁게 보답하게 되고, 서민을 자식처럼 사랑하면 백성들이 서로 권면(勸勉)하게 되며,
백공을 오게 하면 재용(財用)이 풍족하게 되고, 원방의 사람들에게 관유(寬柔)하게 하면 사방이 모두 귀순해 오게 되며,
제후를 포용하면 천하가 모두 두려워 복종하게 된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9경의 효과를 말한 것이다.
도가 서게 된다는 것은 도가 몸에 이루어져서 백성들의 표준이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니
이른바, ‘임금이 그 극(極)을 세운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의혹이 없게 된다는 것은 이치에 의심이 없게 된다는 말이요, 현혹되지 않게 된다는 것은 일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신을 공경하면 전적으로 신임하기 때문에 소인들이 이간하지 못하므로 일을 당해도 현혹되지 아니한다.
백공을 오게 하면 서로 공을 통하고 일을 바꾸어서 농사와 상사가 서로 조력하기 때문에 재용이 풍족하게 되고,
원방 사람들에게 관유하게 하면 천하의 나그네가 다 기뻐하여 그 나라에 다니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방이 모두 귀순해 오게 되며,
제후를 포용하면 그 덕이 널리 베풀어져서 그 위엄이 널리 뻗치기 때문에 천하가 모두 두려워 복종하게 된다고 한 것이다.”하였습니다.
마음을 전일하게〔薺明〕하고, 정숙하게〔盛服〕하여 예(禮)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몸을 닦는 것이요,
참소를 버리고 여색을 멀리 하며, 재화를 천하게 여기고 덕을 귀중히 여기는 것은 어진 이를 권장(勸奬)하는 것이요,
그 지위를 높여주고 녹(祿)을 무겁게 해주며, 좋아하고 미워함을 함께 하는 것은 친족끼리 서로 친애하는 것을 권장하는 일이며,
관속(官屬)을 많이 두어서 족히 부리게 하는 것〔官盛任使〕은 대신을 권장하는 것이요,
마음껏 신임하고 봉록(俸祿)을 무겁게 해주는 것〔忠信重祿〕은 관리를 권장하는 것이며,
농한기에 부리고 세금을 가벼이 하는 것은 백성들을 권장하는 것이요,
날로 살피고 달로 시험하여 일의 성과에 맞게〔稱事〕 급여〔旣〕하는 것은 백공을 권장하는 것이며,
가는 이를 환송하고 오는 이를 환영하며, 착한 이를 가상히 여기고 부족한 이를 긍휼(矜恤)하는 것은 원방 사람들에게 관유히 하는 것이요,
끊어진 세계(世系)를 이어 주고 폐한 나라를 일으켜 주며, 난(亂)을 다스려주고 위급한 것을 구원해 주며,
조빙(朝聘)을 정기적으로 하고, 보내주는 것을 두터이 하고, 가져오는 것을 가벼이 하는 것은 제후를 포용하는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9경의 일을 말한 것이다.
관성임사(官盛任使)라는 것은 관속을 많이 두고 성하게 하여 족히 부리게 하는 것을 말한 것인데,
대개 대신이 자신이 사소한 일을 친히 할 수 없기 때문에 이와같이 우대하는 것이다.
충신중록(忠信重祿)이라는 것은 대우하기를 성의껏 하고 봉록을 후하게 해주는 것을 말한 것인데,
대개 이것은 몸소 체찰하여 웃사람에게 힘입는 것이 이같은 것을 아는 것이다.
기(旣)자는 희()자로 읽으니 희름()은 초식(稍食) (관리의 봉급. 초(稍)자는 점점 나온다는 뜻입니다.)의 뜻이다.
칭사(稱事)는 주례(周禮)의 고인직(人職)에, ‘그 활을 만드는 성과를 살펴서 그 급여를 올리고 내린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가는 이를 환송하고 오는 이를 환영한다는 것은 갈 때는 절(節)을 주어서 보내고, 오는 이는 대우를 잘하여 맞이한다는 것이다.
조(朝)는 제후가 와서 천자를 보는 것을 이름이요, 빙(聘)은 제후가 대부를 시켜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을 말한 것이니,
예기(禮記)의 왕제(王制)편에, ‘해마다 한번씩 소빙(小聘)을 하고 3년만에 한 번씩 대빙(大聘)을 하며, 5년마다 한 번씩 조(朝)를 한다.’ 하였다.
보내주는 데는 두터이 하고 오는 것은 가벼이 한다는 것은 선물을 증여하는 것은 두터이 하고,
공물을 받는 것은 가볍게 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대개 천하의 국사를 다스리는 데는 아홉 가지 상도가 있는데, 이것을 행하게 하는 것은 하나〔一〕다.
주자는 말하기를, “하나라는 것은 성(誠)이니 아홉 가운데 한 가지라도 성실치 아니하면 이 아홉 가지가 다 헛일이 된다.
이것이 9경의 실(實)이다.”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어진 이를 존중하고 유능한 이에게 일을 시켜 재주가 뛰어난 인물이 벼슬 자리에 있으면 천하의 선비들이다
기뻐하여 그 나라의 조정에 서기를 원할 것이다.
시장에서는 점포세(店稅)만 징수하고 물품세는 징수하지 않거나, (전(廛)은 시장의 점포이니, 그 점포세만 받고 그 물품세는 받지 않는 것입니다.)
또는 시장의 불법만을 다스리고 점포세도 받지 않으면 (시관(市官)이 법으로 다스리고 점포세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천하의 상인들이 다 기뻐하여, 그 나라의 시장에 상품을 두기를 원할 것이다.
관문(關門)에서는 이상한 일이 없는가 하는 것만 살피고 관세(關稅)를 징수하지 않으면 천하의 나그네들이 다 그 나라의 도로에 다니기를 원할 것이다.
농경자(農耕者)에게는 공전(公田)은 협조하여 짓게 하고, 사전(私田)은 세를 받지 아니하면
천하의 농민들이 다 기뻐하여 그 나라의 들에서 농사짓기를 원할 것이다.
거주지에 인구세(人口稅)와 가옥세가 없으면(주례周禮에, “집 주위에 나무를 심지 않는 자는 가옥세를 물고,
백성 중에 직업이 없는 이는 인구세를 문다.”하였습니다. 전국시대에는 누구에게나 이것을 다 받았습니다.)
천하의 백성들이 다 기뻐하여 그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진실로 이 다섯 가지를 실시하면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그 나라의 임금을 부모같이 우러러보게 될 것이다.
그 자제들이 떼를 지어 그들의 부모를 공격하는 일은 세상에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이와 같이 된다면 천하에 대적이 없을 것이니 천하에 적이 없는 이는 천리(天吏)이다.
그렇게 되고서도 왕노릇 하지 못한 이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 없다.”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어진 이를 신임하지 아니하면 나라가 공허(空虛)하고,
(비록 백관유사(百官有司)가 있다 하더라도 그 직책을 제대로 못하면 사람이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금金나라 사람이 하수河水를 건너가서 말하기를, “남송(南宋)은 사람이 없다고 하겠구나.
만약에 1, 2천 명으로 하수를 지켰다면 우리가 어찌 건넜겠는가.”하였으니,
이것이 공허한 그 한 가지 예입니다.) 예의가 없으면 상하가 문란하며, 정사가 없으면 재용이 부족하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정치하는 요령은 대개는 이 장에 다 실려 있는데, 다음 글에서 의미를 더 부연하여 설명하였으니,
건중(建中)과 건극(建極)은 정치하는 근본이요, 백성이 많고 부유한 뒤에 가르치는 것은 정치하는 규모(規模)이며,
9경의 일은 정치하는 절목입니다.
그러나 다만 9경은 본말(本末)을 통하여 말한 것이니,
소위 수신(修身)이란 것은 바로 건중과 건극을 말한 것이요,
소위 하나〔一〕라는 것은 또 건중과 건극의 근본이니, 전하께서는 이것을 유념하시옵소서.
< 주 >
174) 「시경」의 "효자 불궤 영석이류(孝子不永錫爾類)"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효자의 집에는 대대로 효자가 나오도록 하늘이 마련해 준다는 뜻이다.
175)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태자.
헌공이 여희(驪姬)를 총애하여 여희의 아들 해제(奚齊)를 세우기 위해 신생(申生)을 곡옥(曲沃)으로 내 보냈는데
여희가 다시 참소하자 헌공은 아예 신생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에 공자(公子) 중이(重耳)가 도망갈 것을 권유했으나 신생은 불가하다 하고 스스로 자살하였다.
176) 중국 왕국(王國)의 아들. 전처(前妻)의 아들이 백기(伯寄)요,
후처(後妻)의 아들은 백봉(伯封)이었는데 후처가 자기 아들을 태자(太子)로 세우기 위하여 백기를 왕에게 참소하였다.
왕은 그것을 그대로 믿고 백기를 추방하였다.
177)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 대부(大夫). 이름은 비(肥), 강(康)은 시호이다.
계환자(季桓子)의 아들로서 노나라 때 권신인 삼가(三家)의 하나이다.
178) 주(周)나라 때에 농지 1리(一里)를 정자(井字)모양으로 9등분하여 중앙의 한 구역을 공전(公田),
주위의 8구역은 사전(私田)이라 하여 8농가에 맡겨 사유(私有)로 하고 공전은 8농가가 공동으로 경작하게 하여
그 수확된 것을 나라에 바치게 하던 제도. 맹자(孟子)가 이 정전법을 대단히 중시하였다.
제2장. 용 현(用賢)
신이 살피건대, 공자는 말하기를, “정치하는 데는 인재를 얻어야 되는 것인데, 어진 이를 기용하지 않고 정치를 잘 하는 이는 없다.”하였습니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잘 만나야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임금의 직책은 오직 어진 이를 알아 잘 맡기는 것을 선무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장을 먼저 놓고 장 가운데 의논을 특히 상세하게 하였습니다.
◆ 관인(觀人)의 술(術)에 대한 말씀
공자는 말하기를,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능히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오직이란 말은 독(獨)이라는 뜻이다.
대개 사람은 사심이 없어야만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므로,
정자(程子)의 소위 ‘그 공정한 것을 얻는다.’는 것이 이것이다.”하였습니다.
○ 유씨(游氏)는 말하기를, “착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것은 천하 사람들의 같은 정상(情狀)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늘 그 바른 것을 앓는 것은 마음이 사정에 얽매여 스스로를 극복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오직 어진 사람은 사심이 없기 때문에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공정하게 능히 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
경원 보씨(慶源輔氏)는 말하기를, “말은 마음의 소리다.
말의 득실(得失)로 인하여 그 사람의 사(邪)와 정(正)을 알 수 있으니,
오직 격물(格物)하고 궁리하는 군자라야 이것을 능히 한다.”하였습니다.
(이 두 절은 몸을 닦아 마음이 공정하고 이치에 밝은 뒤에라야 사람을 잘 알 수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 하는〔以〕것을 볼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以)는 한다는 말이다. 착한 것을 하는 이는 군자가 되고, 악한 것을 하는 이는 소인이 된다.”하였습니다.
그 하는 연유(緣由)를 살펴볼〔觀〕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관(觀)은 본다〔視〕는 것보다 상세하는 보는 것이요, 유(由)는 소종래(所從來)란 뜻이다.
일은 비록 착하나 뜻의 소종래가 착하지 못하면 역시 군자가 되지 못한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소행이 비록 착할지라도 만약 명예를 좋아하고 벼슬을 좋아하는 생각이 마음에 있다면 그 하는 일의 소종래가 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편안하게〔安〕 여기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찰(察)자는 관(觀)자보다 더욱 상세하게 본다는 뜻이요, 안(安)은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 하는 일의 소종래가 비록 착하다 하더라도 마음에 즐거워하는 것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역시 거짓일 것이니
어찌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였습니다.
(소위(所爲)는 보기 쉽지마는 소유(所由)와 소락(所樂)같은 것은 이치를 궁구하고 말을 아는 이가 아니면 변식(辨識)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어찌〔焉〕 숨기며〔〕 사람이 어찌 숨기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언(焉)이란 것은 「어찌」라는 뜻이요, 수()는 숨긴다는 뜻이다.
거듭 되풀이하여 말한 것은 그 깊이 숨기지 못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하였습니다.
○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내 자신이 말을 알고 궁리하면 능히 이 소위(所爲)와 소유(所由)와 소안(所安)으로써 사람을 살피기를
성인(聖人)과 같이 할 수 있다.”하였습니다.
남이 자기를 속일〔詐〕 것이라고 미리 예측하지〔逆〕말고, 남이 자기를 불신(不信)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미리 억측〔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속이고 불신하는 일에 대하여 먼저 깨닫는 자라야만 현명한 사람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역(逆)이란 것은 아직까지 이르지 아니하였는데 맞이하는 것이요,
억(億)은 아직까지 보이지 아니하는데 그러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사(詐)는 남이 자기를 속이는 것을 말하고,
불신(不信)은 남이 자기를 의심하는 것을 말하며, 억(抑)은 반어사(反語辭)이다.
비록 자기를 속이리라든가 불신하리라는데 대하여 미리 예측하고, 억측하지 않을지라도
남의 실정과 허위에 대하여 자연히 선각(先覺)을 하여야만 현명한 이가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 양씨(楊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성(誠)을 한결같이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誠)한 이로는 밝지 못한 이가 없는 까닭에 비록 남이 자기를 속일 것이라고 여겨 미리 예측하지 아니하고
남이 자기를 불신한 것이라고 여겨 미리 억측하지 아니하더라도 항상 먼저 깨닫는다.
만약 남이 속일 것이라고 예측하지도 않고 남이 불신할 것이라고 억측하지도 않다가〔不逆不億〕 마침내 소인에게 속게 되면
이는 또한 보잘것 없는 사람이다.”하였습니다.
○ 신안 진씨(新安陳氏)는 말하기를, “미리 예측하고 미리 억측한다는 것은 사견이 분요(紛擾)한 것이요,
먼저 깨닫는다는 것은 진견(眞見)이 철저히 밝은 것이다.
진실로 먼저 소인의 간사한 것을 예측할 것은 아니지마는,
역시 일을 당하여 소인의 간사한 데 떨어지지 아니해야 성명(誠明)한 군자가 된다.”하였습니다.
뭇 사람들이 미워해도 반드시 살펴야 하며, 뭇 사람들이 좋아해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맹자는 말하기를, “좌우에서 다 어질다고 해도 옳지 못하며 모든 대부들이 다 어질다고 해도 옳지 못하다.
나라 사람들이 다 어질다고 하여야만 이것을 살펴서 그 어진 것을 본 뒤에 기용할 것이며,
좌우에서 다 옳지 못하다 해도 듣지 말고, 모든 대부들이 다 옳지 못하다 해도 듣지 말 것이며,
나라 사람들이 다 옳지 못하다고 하여야만 이것을 살펴서 그 옳지 못한 것을 본 뒤에 버릴 것이다.”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풍속대로 하여서 대중에게 기쁨이 되는 이도 있고,
풍속 밖에 특별한 짓을 해서 세속에 미움을 받는 이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스스로 자신이 깊이 살펴서
그 어질고 어질지 못한 실상을 발견한 연후에 기용하든지 제거하든지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어진 이에 대하여 아는 것이 깊고 그에게 맡기는 책임이 무거워 재주 없는 자가 요행히 진용(進用)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하였습니다.
◆ 다음은 군자(君子)의 행실에 대한 말씀
○ 맹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하지 아니하는 일이 있어야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하지 아니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선택할 줄을 안다는 것인데,
오직 하지 아니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하지 않는 일이 없는 자가 어찌 능히 하는 바가 있겠는가.”하였습니다.
○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불인(不仁)을 하지 않는 자라야 인(仁)을 할 수 있고, 불의(不義)를 하지 않는 자라야 인(仁)을 할 수 있다.”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대개 선비가 빠른 시일에 도에 깊이 들어가기는 어려우나,
다만 그 마음에 있는 것이 발라서 선악을 분별하고 염치를 알 것이니, 이런 이들이 많으면 또한 점점 좋아질 것이다.”하였습니다.
「역경」에 이르기를, “군자는 같으면서도 다르다.”하였습니다. (규괘(卦)179) 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성현이 세상에 처함에 인간의 도리에 떳떳한 것은
대체로 세속과 같지 않은 것이 없으나 세속의 같이 해 나가는 같은 가운데는 때로 다른 점도 있다.
능히 같이 하지 못하는 자는 윤상〔倫〕을 문란하게 하고 이치를 어기는 자이며, 홀로 다르게 하지 못하는 이는 세속을 따라 그른 것을 익히는 자이다.
요컨대 같으면서도 능히 달리 하는 데에 있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군자는 이륜(彛倫)180)의 행위에 있어서는 세속과 대동하지마는, 그 가운데 다른 것이 있습니다.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같지마는 부모를 도리로서 깨닫게 하여, 명령에 복종하는 것만으로 효도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속인과 다르고,
임금을 존경하는 것은 같지마는 임금을 도리에 맞도록 인도하다가 합하지 않으면 떠나가는 것이 속인과 다르며,
처를 사랑하는 것은 같지마는 서로 손님같이 존경하여 정욕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속인과 다르고,
형에게 순종하는 것은 같지마는 화락한 마음으로 서로 힘써서 학행을 연마하는 것이 속인과 다르며,
친구끼리 사귀어 노는 것은 같지마는 오래도록 존경하고 서로 보살펴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속인과 다릅니다.
제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고, 제 임금을 존경하지 않으며, 부부끼리 눈흘기고, 형제끼리 불화하며, 친구끼리 서로 해치는 것은,
본래 상도를 어지럽히고 풍속을 퇴패하게 하는 사람이니 말할 것도 못됩니다마는, 세속에 행실이 있다는 사람도 군자의 도를 모르기 때문에,
다만 구체(口體)만을 기르다가 부모를 죄과에 빠뜨리면서도, 도리어 군자가 어버이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것을 의심하여 불효라고 생각하고,
임금에게 뜻을 얻지 못하면 이에 마음이 초조〔熱中〕하여 나아가기에 그칠 줄을 모르면서 도리어 군자가 세상에 나가기를 어렵게 여기고,
물러서기를 쉽게 하는 것을 의심하여 불경이라고 생각하며, 정욕(情欲)으로 예를 무너뜨려 애정에 치우치면서
도리어 군자가 낮에는 내실에 있지 않는 것을 의심하여 비정(非情)이라고 생각하고, 형제끼리 서로 모여 오락하고 주식(酒食)으로 즐기면서
도리어 군자가 서로 격려하고 경계하여 학문에 힘쓰는 것을 의심하여 우애를 상하게 한다고 생각하며,
친구끼리 함부로 하여 어깨를 치며 옷소매를 잡고 서로 희롱하면서, 도리어 군자가 위의(威儀)를 지키는 것을 의심하여
우정이 친밀치 못하다고 생각하니, 정말 속견(俗見)의 고질이 오래 되었습니다.
만일 윗 자리에 있는 이로서 먼저 도리를 알아서 밝게 보는 이가 아니라면,
세속과 다른 것을 그르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가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군자가 속인과 다른 까닭은 풍속이 옛 도(道)를 회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덕화가 행하여 풍속이 아픔다워지고 도(道)가 밝아져서 크게 행해지면 속인들이 다 군자일 것이니,
비록 홀로 다르게 하려고 하더라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훌륭한 신하는 도로써 임금을 섬기다가 옳지 못하면 그만둔다.”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옳지 못하면 그만둔다는 것은 마음이 합하지 않으면 그만두고 가는 것을 말한다.
도로써 임금을 섬기는 이는 임금의 욕심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요,
옳지 못하면 그만둔다는 것은 반드시 자기의 뜻을 행한다는 것이다.”하였습니다. (이상은 주자의 본주(本註)입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임금을 섬기되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며, 물러나와서는 임금의 허물을 바루어〔補〕주기를 생각한다.
그래서 그 임금의 아름다운 것은 받들어 따르고 그 악한 것은 바루어서 구원을 하기 때문에 위와 아래가 서로 친하게 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진씨(眞氏)는 말하기를“나아간다는 말은 들어가서 그 임금을 보는 것을 말한 것이요,
물러간다는 것은 나와서 자기 집〔私室〕에 가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어려운 것을 임금에게 하라고 책임지우는 것을 공(恭)이라고 하고, 선을 베풀고 간사한 것을 막는 것을 경(敬)이라고 하며,
우리 임금이 무능하다고 하는 것을 적(賊)이라고 한다.
나는 요촵순의 도가 아니면 감히 임금 앞에 의견을 늘어 놓지 아니하는데, 제(齊)나라 사람들은 나만큼 임금을 공경하는 이가 없다.”하였습니다.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신하가 어려운 일로써 임금에게 책임지워서 그 임금으로 하여금 요촵순 같은 임금이 되게 하는 것은
임금을 높이는 것이 큰 까닭이며, 착한 도를 베풀고 사심을 막아서 임금이 혹시나 허물 있는 지경에 빠질까하고 염려하는 것은
임금을 공경하는 것이 지극한 까닭이며, 그 임금이 도를 행할 능력이 없다고 하면서 서로 고하지 아니하는 것은
그 임금을 해롭게 하는 바가 심한 것이다.”하였습니다.
○ 이상 2조는 도로써 임금을 섬기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 또, “벼슬을 하는 자로서 그 직분대로 할 수 없으면 가고, 간관(諫官)들은 그 간하는 말을 듣지 않을 때는 간다.”하였습니다.
○ 송(宋)나라 신종(神宗)이 사마광(司馬光)을 쓰려고 하여 불러서 허주령(許州令)을 맞기고는, 허주로 가는 길에 임금을 와서 보라 하고
조서(詔書)를 내릴 적에 임금이 정호(程顥)181)에게, “내가 사마광을 부르는데 경의 생각에는 사마광이 올 것으로 보는가.”하니,
정호가 대답하기를 “폐하가 그의 말을 능히 받아들이면 그가 반드시 올 것이요,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반드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하였습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말이야 받아들이든지 안 받아들이든지 사마광 같은 이가 항상 좌우에 있게 되면
임금에게 스스로 허물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하였는데, 광이 과연 소명을 사양하였습니다.
(신종이 사마광의 어진 것을 알면서 그의 말은 받아들이지 않고 다만 소명으로 부르려고만 하였으니, 어진 이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이상의 2조는 옳지 못하면 그만둔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임금을 섬기되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여기고,
물러가는 것은 쉽게 여기면 관위(官位)에 질서가 있고, (어진 사람이 쓰이고,
어질지 못한 사람이 어진 사람에게 취역(就役)당하면 관위가 질서가 있습니다.)
나아가기를 쉽게 여기고 물러가기를 어렵게 여기면 관위가 문란하다.
(문란하다는 것은 어진 이와 어질지 못한 이가 전도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가 세 번 읍하다가 나아가고 한 번 사양하다가 물러나는 것은 난을 멀리 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여씨(呂氏)는 말하기를“세 번 읍(揖)하는 것은 세 번 사양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만약 주인의 공경함이 지극하지 아니한데 구태여 나아가거나, 주인의 마음이 태만한데 사양하지 않으면 빈주(賓主)의 관계가 문란하다.
벼슬을 할 만하면 하고, 그만둘만하면 그만두며, 만날 만하면 만나고, 사양할 만하면 사양하여 진퇴의 의리가 한결같아야 한다.”하였습니다.)
○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임금이 나를 믿어야 스승으로 삼을 수 있으니,
내게 배운 뒤에 나를 신하로 삼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나아가지 아니하며, 나를 믿어야 국정을 잡을 수 있으니,
계손씨와 맹손씨의 중간 대우를 한다 하더라도 역시 나아가지 아니하며, 번육(肉:제(祭)지낸 고기)이 이르지 아니하자 곧 가버리고,
영공(靈公)이 진치는 것을 묻자 곧 가버렸다.
군자의 도는 임금을 바르게 할 따름인데, 몸을 굽히는 자로서 남을 바르게 하는 이는 없다.”하였습니다.
(이상의 조목은 진퇴하는 도리를 통틀어 논한 것입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선비는 궁해도 의(義)를 잃지 아니하고, 영달하더라도 도를 떠나지 아니하나니,
궁해도 의를 잃지 아니하기 때문에 선비는 스스로를 잃지 아니하고〔得己〕,
영달해도 도를 떠나지 아니하기 때문에 백성이 실망하지 아니한다.”하였습니다. (맹자)
주자는 말하기를, “득기(得己)라는 것은 스스로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요, (그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백성들이 실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본래 그 도를 일으키고 선치(善治)를 하기를 바랐는데, 지금 과연 소망과 같다는 뜻이다.”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옛 사람은 뜻을 얻으면 은택을 백성들에게 가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몸을 닦아 세상에 그 이름을 나타내며, 궁하면 홀로 그 몸을 착하게 하고, 영달하면 천하를 다같이 착하게 한다.”하였습니다.
「역경」에 이르기를,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그 일을 높이 숭상한다.”하였습니다. (고괘(蠱卦)182) 상구효사(上九爻辭))
정자는 말하기를, “선비가 스스로 높이 숭상하는 것은 한 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길이 있다.
도덕을 품었으나 때를 만나지 못해 고결하게 스스로를 지키는 이도 있고,
(이윤(伊尹)183)과 태공(太公)184)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때 같은 것입니다.)
또 지족(止足)의 도를 알아서 물러가 스스로 몸을 보존하는 이도 있으며, (장량(張良)185)과 소광(疏廣)186)같은 유입니다.)
또 자기 재능을 요량하고 자기 분수를 헤아려서 남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구하지 아니하는 것을 편안히 여기는 이도 있고,
(서치(徐穉)187)와 신도반(申屠蟠)188)의 유입니다.) 또 청렴하게 스스로 절개를 지켜서 천하의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아니하고
홀로 그 몸만을 깨끗이 하는 이도 있으니, (접여(接輿)189)와 하궤(荷)190)의 무리입니다.)
이들은 처사가 비록 득실(得失)과 대소(大小)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다 스스로 자기의 일을 높이 숭상하는 사람들이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선비가 벼슬을 아니하는 것은 본래 그 단서가 한 가지가 아닌데, 대개는 정자(程子)가 논한 네 가지에 불과합니다.
이른바 득(得)이란 것은 위의 세 가지이고, 실(失)이란 것은 아래의 한 가지이며, 대(大)란 위의 한 가지이고, 소(小)란 것은 아래의 세 가지입니다.
대개 임금이 경(敬)을 극진히 하고 예(禮)를 다하지 않으면 도덕의 선비는 구할 수 없으며,
간()하는 것을 실행하거나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신하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니, 임금은 마땅히 정성껏 위임하여 시종 의심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칠 줄을 알고 분수를 헤아릴 줄 아는 선비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만일 위란의 기미를 알고 먼저 물러가면 임금은 마땅히 느끼고 깨달아 개과하여 화근을 끊어 없애며,
정성을 다하여 수용해야 할 것이요, 만일 화의 기미를 보지 않고 다만 편안하기를 구하여 물러가면 임금은 마땅히 그 뜻을 빼앗지 말고
그 절조를 가상히 여겨 염치를 장려하는 자료로 삼을 것이며, 혼자 제 몸만 결백하게 하는 사람은 비록 중(中)에 지나치고 정(正)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이욕(利欲)을 벗어난 사람이니, 성명(性命)의 정(情)을 잃어버리고 부귀를 탐내는 사람에게 비하면 청탁(淸濁)의 구별이 환하니
임금은 역시 마땅히 포장(奬)의 뜻을 보여 은일〔隱逸〕의 이름을 이루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후세의 임금들은 어진 이를 좋아할 줄을 알면서도 그 좋아하는 도리를 알지 못하여 작록(爵祿)으로 붙잡아 놓기만 하고
그 말을 채용하지 아니하여 그로 하여금 진퇴를 곤란하게 하는 임금도 있으며,
(시에 이른바, “나를 굳이 붙들지만 내 힘을 쓰지 않네”라는 유와 같습니다.)
또 다만 그 이름만 좋아하고 그 실상을 구하지 아니하여 강제로 힘에 겨운 것을 맡겨서 그로 하여금 일을 저질러서 자기를 잃어버리게 하는 임금도 있으니,
(진(晋)이 은호(殷浩)를191) 쓴 것과 같은 유입니다.) 다 참으로 어진 이를 좋아하는 임금이 아닙니다.
반드시 사람을 아는데는 그 총명을 극진히 하여야 하고, 사람을 기용(起用)하는 데는 반드시 그 재능에 적합하게 하여야 하며,
신임하는 데는 반드시 그 정성을 극진히 하여야만 참으로 어진 이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다음은 소인(小人)의 간사함을 분별하는 데 대한 말씀
○ 공자는 말하기를, “비부(鄙夫)가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는가.”하였습니다. (여평성(與平聲) ○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비부는 용악(庸惡)하고 비열하다는 말이다.”하였습니다.
그 벼슬을 얻지 못하였을 때에 얻기를 근심하고, 이미 얻었으면 잃을까 근심한다.
하씨(何氏)는 말하기를, “얻기를 근심한다는 것은 얻지 못할까 근심한다는 것이다.”하였습니다.
○ 신안 진씨(新安陳氏)는 말하기를, “얻는다는 것은 부귀 권리를 얻는다는 말이다.”하였습니다.
정말 잃을까 근심하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작게 말하면 헌데나 빨고 등창을 빠는 것이나,
크게 말하면 아비와 임금을 죽이는 것이 다 잃을까 근심하는 데서 나온다.”하였습니다.
○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허창(許昌:지명(地名))의 근재지(裁之)192)란 사람이 ‘선비의 품위(品位)에는 대개 세 가지가 있는데,
도덕에 뜻을 둔 이는 공명(功名)으로써 그 마음을 더럽힐 수 없고, 공명에 뜻을 둔 이는 부귀로써 그 마음을 더럽힐 수 없다.
부귀에만 뜻이 있을 뿐이라면 무엇이든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한 말이 있는데,
부귀에만 뜻이 있다는 것은 곧 공자의 이른바 비부이다.”하였습니다.
말을 교묘〔巧〕하게 하거나 외모(外貌)를 잘 꾸미는 사람 중에 인인(仁人)이 드물다.
주자는 말하기를, “교(巧)는 번질하게 잘한다는 것이요, 영(令)은 좋게 꾸미는 것이다.
말을 번질하게 하거나 외모를 좋게 꾸며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고 힘쓰게 되면, 사람의 욕심이 방자하여 본심의 덕이 없어진다.
성인은 말을 절박하게 하지 아니하므로, ‘드물다’ 한 것은 ‘절대로 없다’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깊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용모와 말씨는 바로 배우는 이가 힘써 길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을 교묘하게 하거나 외모를 잘 꾸며서〔巧言令色〕 사람의 보고 듣는 것을 즐겁게 하려하면 마음이 밖으로 달려서 인(仁)한 이가 드물다.
만일에 이 용모와 말씨에 나아가 잘 수양해서, 말을 할 때는 조급하지 아니하고, 행동할 때는 반드시 온공하게 하여,
다만 내심을 곧게 하고 외면을 방정하게 하는 실정에 꼭 맞도록 하게 되면 이것은 몸을 위하는 공부요,
인(仁)을 구하는 데 긴요한 것이니, 무엇이 병될 것이 있겠는가마는, 소인은 남의 결점만 드러내어 말하는 것으로써 곧은 체하고,
겉으로는 엄한 체하나 안으로는 요리조리 붙으니, 비록 말을 교묘하게 하거나 외모를 번질하게 하는 자와는 다르나
그 교정(矯情)으로 거짓을 꾸미는 것만은 실상 교언영색하는 것보다 더한 사람이니, 성인이 이것을 미워한 것이다.”하였습니다.
자색(紫色)이 주색(朱色)을 빼았는 것을 미워하며, 정성(鄭聲)193)이 아악(雅樂)194)을 문란하게 하는 것을 미워하며,
말을 교묘하게 하는 입〔利口〕이 나라를 전복〔覆〕시키는 것을 미워한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주색(朱色)은 정색(正色)이요, 자색은 간색(間色)이며, 아(雅)는 바른 것이요,
이구(利口)는 말이 빠르고 넉넉한 것이요, 복(覆)은 경패(傾敗)시키는 것이다.”하였습니다.
○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천하의 일은 대개는 바르게 하여 이기는 사람이 적고, 바르지 못하게 하여 이기는 사람이 많다.
성인이 이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말 잘하는 사람은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하며, 어진 이를 불초하다고 하고,
불초한 이를 어질다고 하는데, 임금이 진실로 그 말을 믿으면 국가의 전복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하였습니다.
향원(鄕原)은 덕의 적(賊)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원(原)자는 원(愿)자와 그 뜻이 같으니, 근원(謹愿:삼가해 보이고 후하게 보이는것)한 사람을 말한다.
공자는 ‘그 덕은 비슷한 것 같으나 덕이 아니므로 덕의 적(賊)이다.’하였다.”하였습니다.
○ 만장(萬章)이, “한 고을 사람들이 모두 원인(原人:근엄하고 후덕한 사람)이라고 일컫는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원인이 아닐 수 없는데,
공자가 덕의 적(賊)이라고 하신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하니,
맹자는 말하기를, “그를 비난하려 들더라도 이렇다고 드러낼 비난거리가 없고, 그를 공격하려 들더라도 이렇다 할 공격거리의 과실이 없다.
유속(流俗)과 동조하고 더러운 세상과 합류하여, 들어앉아 있을 때는 충직하고 선의가 있는 듯하며, 나아가 행동할 때는 청렴하고 결백한 듯해서,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한다. 그러면 스스로도 옳다고 여기지만 그러한 사람과는 요촵순의 도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덕의 적이라고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탐오(貪汚)하고 아첨하는 것은 소인의 변함없는 상태입니다.
만일 어리석고 어두운 임금이 아니면 이것을 분변하기 어렵지 않지마는, 오직 사이비(似而非)한 자에 대해서는 비록 밝은 왕이라도
분변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군자는 낯빛을 바르게 하여 곧은 말을 하는데, 소인은 외형에 엄한 체하고 교활하여 곧게 하는 것이 마치 군자와 같고,
또 군자는 행실이 완전하여 결점이 없는데, 소인은 근원(謹愿)하여 나무랄래야 나무랄 것 없는 것이 마치 군자와 같으니,
성현이 이로써 깊이 경계한 것입니다.
대개 향원은 엄연(然)히 세상에 좋게 보여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며, 한 패를 지어 고식(姑息)하고 비오(卑汚)한 경지에서 편안히 여겨서,
도를 행하는 선비를 저지하고 학문하는 길을 두절시키니, 그 해되는 것이 이단(異端)이 세상을 현혹시키는 것보다 더욱 심합니다.
후세의 선비가 만일 향원으로 지목되면 누가 부끄러워 하고 또 노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의 선비들의 소행을 상고하면, 앞뒤를 살펴보아 근신지록(謹身持祿:임금께서 바른 말을 하면 죄를 얻어
벼슬 자리를 보존하지 못할까 하고 근신하는 것)하다가 한 번 복고(復古)의 설을 듣든가,
아니면 한 번 지도(志道)의 선비를 보든가 하면 문득 실천하기 어려운 우활(迂闊)한 말이라고 비웃고,
다만 구습(舊習)을 지키고 미봉하는 것으로 일을 삼으니, 이것은 모두 향원을 본 받는 사람들입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상도(常道)를 돌이킬 뿐이다. 상도가 바르면 서민이 흥기한다.”하였으니,
상도를 돌이키는 책무를 깊이 전하께 희망하나이다.
◆ 다음은 군자와 소인에 대한 통론
○ 공자는 말하기를, “언론만 독실(篤實)하다해서 좋다고 한다면 그가 군자다운 사람인지,
겉으로만 공손한체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다만 그가 언론만 독실하다고 해서 이를 좋아한다면 그가 과연 군자인지, 겉으로만 공손한체 하는 사람인지 모를 일이다.
말과 외모로써 사람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을 잘하나, 말 잘하는 사람은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으나, 용기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어질지는 아니하다.
주자는 말하기를, “덕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화순하여 그 영화가 밖으로 발하거니와 말을 능통한 이는 더러는 말만을 잘할 뿐이다.
어진 이는 마음이 사사롭지 않아서 옳은 것을 보면 반드시 행하지만 용기가 있는 사람은 가끔은 혈기만 강할 따름이다.”하였습니다.
군자는 작은 것은 알 수 없어도 큰 것은 받을 수 있고, 소인은 큰 것은 받을 수 없어도 작은 것은 알 수 있다.
주자는 말하기를, “안다는 것은 내가 안다는 것이요, 받는 것은 저쪽에서 받는다는 것이다.
대개 군자는 작은 일에는 볼 만한 것이 없어도 그 재능과 덕망이 족히 중요한 것을 맡을 수 있고,
소인은 비록 도량이 얕고 좁지마는 한 가지의 장점은 취할 것이 반드시 없지는 않다.”하였습니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喩〕, 소인은 이(利)에 밝다.
주자는 말하기를, “유(喩)는 깨닫는다는 말과 같다. 의(義)는 천리의 마땅한 것을 말하고, 이(利)는 인정의 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군자의 의는 소인의 이(利)와 같으니, 오직 깊이 깨닫기 때문에 군자는 의를 독실하게 좋아하고,
소인은 이를 독실하게 좋아한다.”하였습니다.
○ 양씨(楊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생(生)을 버리고 의를 취한다.
이(利)로써 말하면 사람의 하고 싶은 것에 생(生)보다 더 심한 것이 없고, 미워하는 것에 죽음보다 더 심한 것이 없는데,
누가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는가. 군자는 밝은 것이 오직 의뿐이기 때문에 이(利)가 이로움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소인은 군자와 반대이다.”하였습니다.
○ 상산 육씨(象山陸氏)195)는 말하기를, “이 장은 의와 이로써 군자와 소인을 판별한 것인데,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여기에서 그 뜻을 분변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깨닫는 것은 그 습성에 말미암은 것이요, 그 습성은 그 뜻하는 바에 말미암은 것이니,
뜻하는 바가 의에 있으면 익히는 것도 반드시 의에 있게 되어 곧 의를 깨닫고,
이(利)에 있으면 익히는 것이 반드시 이에 있게 되어 곧 이를 깨닫는다.”하였습니다.
○남헌 장씨(南軒張氏)는 말하기를, “배우는 사람은 의와 이를 분변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으니, 의라는 것은 무엇을 위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이다.
대개 위하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다 인욕(人欲)의 사사로운 것이요, 천리(天理)의 공(公)은 아니니,
이것이 의와 이의 분간되는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의義가 위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이라는 말은 앞 성인들의 발명하지 못한 것을 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하였습니다.)
대개 성인의 학문은 위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인데, 이것은 천명의 마지못하는 소이요, 성품이 편벽되지 아니한 소이며, 교(敎)의 무궁한 소이다.
스스로 탁연히 먼저 의와 이가 천양의 판〔壤之判〕이 있는 것을 살펴서 생각을 가다듬고 힘써 행해서 밤낮을 놓치지 아니함이 아니라면
어찌 참으로 얻을 수가 있겠는가.
그 하는 일이 비록 착하다 하더라도 납교(納交)와 요예(要譽) 또는 비난하는 원성을 듣기 싫다는 생각이 혹시라도 마음에 싹튼다면
이것은 역시 이일 따름이다.”하였습니다.
군자는 화(和)하면서 동(同)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동하면서 화하지 아니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화(和)라는 것은 어그러진〔乖戾〕마음이 없는 것이요, 동(同)은 아부하여 편당을 든다는 뜻이다.”하였습니다.
○ 윤씨(尹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의를 숭상하는 까닭에 동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이(利)를 숭상하는데 어찌 화할 수가 있겠는가.”하였습니다.
○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 “제경공(齊景公)이 사냥을 갔다가 돌아오니, 안자(晏子)196)는 그를 모시고 있었는데,
자유(子猶)(양구거(梁丘據)의 자(字) 입니다.) 가 달려 오자, 공이 말하기를, ‘오직 자유가 나와 화(和)한다.’하였다.
안자가 대답하기를, ‘자유는 동하는 것이지 어찌 화하는 것이겠습니까.’하니, 공이 말하기를, ‘화와 동이 다른가.’하였다.
대답하기를, ‘다릅니다. 화는 국을 끊이는 것과 같습니다.
물촵불촵식초촵간장〔醯〕촵소금촵매실〔梅〕을 어육(魚肉)에 넣어 함께 삶을 적에 섶〔薪〕으로써 불을 때고
재부(宰夫:요리인)가 국을 조화시켜 그 지나친 것을 없게(없게 한다는 것은 그 맛이 안 좋은 것을 좋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는데,
군자는 이것을 먹고 그 마음을 화평하게 합니다. 임금과 신하가 역시 그러해야 하니,
임금이 옳다고 하는 것에 옳지 못한 것이 있으면 신하가 그 옳지 못한 것을 말하여 옳은 것을 이루게 하고,
임금이 옳지 않다고 하는 것에 옳은 것이 있으면 신하가 그 옳은 것을 말하여 그른 것은 버리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경」에 이르기를, ‘국을 조화하여 끓여서 맛을 고르게 하였도다.’하였습니다.
지금 자유는 그렇지 못하여, 임금이 옳다고 하는 것은 자유도 역시 옳다고 하고, 임금이 그르다고 하는 것은 자유도 역시 그르다고 하니,
이는 물에 물을 탄 것과 같아 누가 먹을 것이며, 거문고와 비파가 소리가 한 가지라면 누가 듣겠습니까.
동(同)의 옳지 못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하였다.”하였습니다.
군자는 보편적〔周〕이고 편당적〔比〕이 아니며, 소인은 편당적이고 보편적이 아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주(周)는 보편적인 것이요, 비(比)는 편당적인 것이니,
다 사람과 친후(親厚)하다는 뜻인데, 다만 주(周)는 공(公)이요, 비(比)는 사(私)이다.”하였습니다.
○ 주자가 승상(丞相) 유정(留正)에게 편지로써 말하기를, “붕당(朋黨)의 화는 진신(縉紳)에만 그치는 것인데,
옛날에 붕당(朋黨)을 미워하여 버리게 하고자 한 이가 이따금 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까지 이른 일이 많습니다.
대개는 그 어질고 어질지 못한 것과 충성스럽고 간사한 것을 살피지 않고,
오직 당만 없애려고 힘쓰면 저 소인들이 반드시 교묘한 꾀로 자취를 덮으려 하고,
군자는 그 공심(公心)과 바른 길만 믿고 말과 일을 공정하게만 해 나가다가 이따금 도리어 소인에게 밀려서 편당이라고 지목을 받게 되니,
한(漢) (당고(黨錮)의 화입니다.) 당(唐) (청류淸流의 화입니다.)
송(宋)의 소성(紹聖)197) (원우당(元祐黨)의 화입니다.) 의 일들이 지금 멀지가 않습니다.
승상이 붕당으로써 염려를 하니, 나는 혹시나 승상이 깊이 천하의 현(賢) 부(否)와 충(忠) 사(邪)를 살피는데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합니다.
대개 문을 닫고 스스로 지켜서 고립하여 붕당에 안드는 것은 일개인(一個人)의 행실이요,
어질고 유능한 이를 맞아들이고 간험(姦險)한 자를 물리쳐서 천하 사람들을 합하여 천하의 일을 구제하는 것은 재상의 직책입니다.
어찌 반드시 당이 없는 것만을 옳다고 하고, 당이 있는 것만을 그르다고 하겠습니까.
대개 승상의 오늘의 처지를 보면 당이 없다고 하면 없다고 할 수 있지마는, 소인의 도(道)는 날로 늘어가고 군자의 도는 날로 사라져,
천하의 걱정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면 승상이 어찌 그 책임을 피하겠습니까.
주희(株熹)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근심스러워 견디지 못할 지경이오니, 원컨대 승상은 먼저 현촵부와 충촵사를 분변하는 것으로 자기의 책임을 삼아서,
과연 어질고 충성스러운 사람이면 곧 드러내어 등용하되, 오직 그 당이 맞지 않아 같이 천하의 일을 도모하지 못할까 두려워 할 것이고,
과연 간사한 사람이면 곧 드러내어 물리치되, 오직 그들을 다 제거하지 못하여 나의 어진 이를 등용하는 공효를 해칠까 두려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군자들이 당을 짓는 것을 미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당을 짓는 것도 꺼리지 말 것이요, 내가 당을 짓는 것을 꺼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앞으로 임금을 인도하여 당을 하게 하는 것도 꺼리지 말아야 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천하의 일이 거의 희망일 있을 것입니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신하의 악(惡)은 사당(私黨)보다 더 심한 것이 없고 임금이 몹시 미워하는 것도 붕당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소인이 군자를 모함하는 데는 반드시 이것으로써 효시(嚆矢)로 삼습니다.
다만 임금이 이것을 살피지 못함을 근심할 뿐입니다.
진실로 이것을 살핀다면 공(公) · 사(私)와 충(忠) · 영( :아첨하는 것)을 분변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살핀다는 것은 다만 그 마음을 살피는 것인데, 그 마음이 임금을 바르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데 있는가,
몸을 영달하게 하고 권세를 굳게 하는 데 있는가에 있습니다.
임금을 바르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선비는 도를 같이 함으로써 벗으로 삼는 자이라 일심으로 임금을 사랑하고 일심으로 나라에 충성하여,
당이 성할수록 임금도 더욱 성(聖)하고, 나라도 더욱 편안할 것이니, 임금은 오히려 그러한 당이 적을까 염려할지언정
어찌 그 휘정(彙征:같은 유가 모여 드는 것)을 근심하겠습니까.
몸을 영달하게 하고 권세를 굳게 하는 선비는 이(利)를 같이 함으로써 벗을 삼는 자이니,
이들은 사(私)를 도모하고 공을 멸시하며, 임금을 뒤로 하고 부모를 유기(遺棄)하나니,
그 당은 비록 적더라도 또한 족히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망하게 할 것입니다.
임금은 마땅히 불이 처음 붙을 때에 끄듯이 해야 할지언정, 어찌 그것이 번성하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그러나 소인의 마음은 다만 이만 구할 뿐이요, 임금과 부모는 돌보지 않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체결된 붕당은 이익이 다 되면
교제가 소원하여지기도 하고, 형세가 궁박하여지면 서로 도모하기도 하니, 그 붕당이란 것은 잠간 합해진〔假合〕 것뿐이요,
군자의 도의에 입각한 붕당과 같이 시종여일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구양수(歐陽脩)198)는 말하기를, ‘소인은 벗이 없고 오직 군자만이 벗이 있다.’하였으니, 이 말이 옳습니다.
아아, 상(商)나라 신하는 억만(億萬)이었으나, 그 마음도 억만이었으니 당이 없었다고 할 수 있으나 주(紂)는 망하였고,
주(周)나라 신하는 3천이로되 그 마음은 일심이었으니 일대의 큰 당이 되었지만 무왕(武王)은 임금이 되었으니,
다만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데 있을 뿐입니다.
비록 그러나 임금이 먼저 이(理)를 밝히지 아니하고 억측으로 살핀다면, 그것은 공을 사라고 하고 영()을 충(忠)이라 하지 않는 이가 적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학문은 이(理)를 밝히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과실은 각각 그 유(類)에 따라서 다르니, 과실만 보아도 그 사람의 어진 것을 알게 된다.
주자는 말하기를, “당(黨)은 유(類)이다.”하였습니다.
○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사람의 과실은 각각 그 유에 따라 다른 것이니, 군자는 항상 과실이 두터운 데에 있고,
소인은 항상 과실이 엷은 데에 있다.
군자는 지나치게 사랑하고 소인은 지나치게 잔인하다.”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지나치게 청렴하고, 소인은 지나치게 탐(貪)하며, 군자는 지나치게 깨끗하며,
소인은 모든 것에 지나치게 통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이런 유이다. 그러나 또한 이에만 그치지 않는다.
다만 이런 것에 나아가 보면 사람의 어질고 어질지 않은 것을 볼 수 있고 인의 기상을 또한 알 수 있는 까닭에
이로써 그 사람의 어진 것을 알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 말은 또 사람이 비록 과실이 있다 하더라도, 그 과실의 유에 따라서 그 사람이 후한 사람인가 박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요,
반드시 허물이 있는 것을 기다려야만 그 사람의 어질고 어질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하였습니다.
○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임금은 마땅히 신하가 과실이 있으면 그 마음을 살펴 보아야 한다.
만일 임금을 사랑해서 극진히 간(諫)한다면 그 간하는 말에는 광알(狂)한 과실이 없지 아니하지마는,
요컨대, 그 용심(用心)은 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 어진 것은 취하고 그 과실은 용서해 주는 것이 옳을 것이며,
임금을 사랑하여서 임금의 명령을 어기게 되면 교불(矯拂)한 과실이 없지 아니하지마는, 요컨대,
그 용심은 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 어진 것은 취하고 그 과실은 용서해 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간사한 신하들은 덮어서 가리기를 잘하니 반드시 과실을 지적할 것은 없으나 그 마음은 어떠한가.
대개 이것은 다 사람을 관찰하는 일단(一端)인데, 이런 유로써 추찰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임금을 잘 섬기는 사람이 있으니,
임금을 섬기게 되면 임금에게 잘보여 임금을 즐겁게 하는 자이다.”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아첨해서 잘 보이려고 하고 임금의 뜻을 맞추어서
즐겁게 하는 것은 비부(鄙夫)의 일이요, 첩부(妾婦)의 도이다.”하였습니다.
사직(社稷)을 편하게 하는 신하가 있으니 사직을 편하게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대신이 사직을 편하게 하는 것을 꾀하는 것은 마치 소인이 그 임금을 즐겁게 하기를 힘쓰는 것과 같아서,
여기에 항상 마음을 써서 잊지 않는다.”하였습니다.
천민(天民)이 있으니 영달하면 천하에 행할 수 있은 뒤에라야 나가서 행하는 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이란 위(位)가 없는 것을 일컫는 것인데, 그가 천리(天理)를 온전히 다하여 하늘의 백성이기 때문에 천민이라고 한다.
반드시 그 도를 천하에 행할 수 있어야만 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세상에 파묻혀 남에게 알려지지 못해도 후회하지 아니하며,
그 도를 조금 쓰기 위해 사람에게 따르기를 좋아하지 아니한다.”하였습니다.
○ 장씨 (張氏)는 말하기를, “반드시 공이 이 백성들에게 덮힐 만하여야만 나아가는 것인데,
이윤(伊尹)과 여상(呂尙:강태공(姜太公)을 말함.) 같은 이가 그러하다.”하였습니다.
대인(大人)이 있으니 자기 몸을 바르게 하여서 물(物)이 저절로 바르게 되도록 하는 이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대인은 덕이 성하여 위 아래가 화(化)해지는 것인데, 소위 현룡(見龍)이 밭에 있으니, 천하가 문명(文明)해 진다는 것이다.
사람의 인품이 같지 아니하여 대략 4개 등분이 있는데, 용열(容悅)하는 영신(臣)은 말할 것도 없고,
사직을 편하게 하는 이는 충(忠)이나 그는 아직 일국의 선비요, 천민은 일국의 선비가 아니지마는 오히려 자기의 포부를 펴보자는 뜻이 있는 이다.
뜻도 없고 기필하는 것도 없으며 오직 그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물(物)이 화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는 것은
오직 성인이라야 이를 능히 한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주자는 말하기를, “사람 알기가 어렵다는 것은 요촵순도 병통으로 여겼으며,
공자도 ‘그 사람의 말을 듣고도 행실까지 보아야 한다.’는 경계가 있다.
그러나 일찌기 생각하건대, 이것은 특히 소인을 두고 한 말이다.
만일 사람들이 다 군자라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대개 천지간에는 자연의 이치가 있는데, 모든 양(陽)은 다 강(剛)하며 강하면 반드시 밝고, 밝으면 알기가 쉬우며,
모든 음(陰)은 반드시 유(柔)하며 유하면 반드시 어둡고, 어두우면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성인이 역(易)을 지을 때에, 양을 군자로 삼고, 음을 소인으로 삼았으니,
그 유(幽)와 명(明)의 소이연에 통하고, 만물의 정에 따라 분류한 것은, 비록 백세(百世)가 되더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일찌기 역설(易說)을 미루어 천하 사람들을 살펴 보니, 대체로 광명정대하고 널리 통달하여, 청천백일(靑天白日)과 같고,
높은 산이나 큰 냇물 같으며, 뇌정(雷霆)의 위험 같고, 우로(雨露)의 윤택 같으며, 용호(龍虎)의 용맹 같고,
인봉(麟鳳)의 상서(祥瑞)같이 드러나서, 추호도 의심스러운 것이 없는 이는 반드시 군자요,
아부하고 혼탁하여 서로 머뭇거리고 엎드려 숨어서 얼키는 것이 뱀이나 지렁이 같고, 좀스럽기로는 이〔蝨〕같으며,
귀역(鬼)과 같고, 여우가 호리는 것 같으며, 방자하기로는 도적 같으며, 잔 재주에 능란하고 교활하여 아무 것에도 비할 수 없는 자는 소인이다.
군자와 소인의 지극한 것이 이미 마음 속으로 정해졌으니, 말씨나 행동의 세세한 것이라도 밖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는데,
하물며 사업이나 문장에서야 찬연히 드러나지 않겠는가. 소인을 알아내기가 어렵다고 하나, 이렇게 본다면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하였습니다.
신은 아뢰옵건대, 주자의 이 말이 군자와 소인의 정상(情狀)을 다 갖추었으니, 전하께서는 이것으로 사람을 관찰한다면 쉽게 알 것입니다.
군자와 소인은 음양이나 주야(晝夜)와 같아서 매양 서로 반대되나, 요령있게 말하면 임금을 사랑하는 사람은 군자요,
작록을 사랑하는 사람은 소인입니다.
대개 소인은 그 임금의 명철하거나 암매(闇昧)한 것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다만 작록에만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만약 몸에 이롭다면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비록 군부(君父)를 속이고, 국맥(國脈)을 손상하게 한다 할지라도 돌아보지 아니합니다.
이러므로 작록의 권리가 임금에게 있으면 임금에게 아첨하고, 권신과 행신(幸臣)에게 있으면 권신과 행신에게 붙으며,
외척에게 있으면 외척과 결탁하고, 심하면 적국과도 몰래 내통하여 그 임금을 마치 개가 주인에게 짖고 물어뜯듯이 하는 것까지도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작록이니 어느 겨를에 임금을 사랑하겠습니까.
군자는 그렇지 아니하여 사직(社稷)만 마음에 두고 생민만 생각에 두니, 진실로 임금을 바르게 할 수만 있다면 다른 것에는 애착이 없습니다.
의(義)가 벼슬을 지키는 데 있게 되면 군명(君命)이라도 복종하지 않을 때가 있고,
의가 말을 다하는 데 있게 되면 임금의 위엄도 피하지 않으며, 의리를 밝히고 페혹을 막아 임금을 인도하되,
도에 합당하도록 해서 임금으로 하여금 과오가 없는 처지에 서도록 하며, 만일 벼슬에 앉아 자기 직책을 다할 수 없고,
또 간관이 되어 자기 언책(言責)을 할 수 없으면서 녹만 먹고 나라에 유익한 것이 없다면,
몸을 받들어 물러가는 것도 또한 어쩔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러나와 초야에 있으면서도 잠간 사이라도 잊지 않고 임금이 감오(感悟)하기를 바라나니 진퇴(進退)로써 마음을 달리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임금이라, 어느 겨를에 작록을 탐내겠습니까.
말속(末俗)이 도도(滔滔)하고 도학이 밝지 아니하여, 신하는 이미 임금을 바르게 할 뜻이 없고, 임금 역시 사람들이 순종하는 것만 좋아하여,
작록을 탐하는 자를 <오히려> 임금을 아끼는 자라고 여기고,
임금을 아끼는 자를 <오히려> 임금을 원망하는 자라고 여기니, 아아 탄식할 만한 일입니다.
◆ 다음은 용사(用捨)의 합당함에 대한 말씀
○ 애공(哀公)이 묻기를,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복종하겠는가.”하니,
공자는 대답하기를, “곧은 이를 들어 쓰고 모든 굽은 이들〔諸〕을 버리면〔錯〕 백성들이 복종하고,
굽은 이를 들어 쓰고 곧은 이들을 버리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아니합니다.”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조(錯)는 버려둔다는 뜻이요, 제(諸)는 무리〔衆〕라는 뜻이다.”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기용하고 버리는 것을 옳게 하면 인심이 복종할 것이다.”하였습니다.
○ 사씨(謝氏)는 말하기를, “곧은 것을 좋아하고 굽은 것을 미워하는 것은 천하의 지정(至情)이니, 이 지정에 순하면 백성들이 복종하고,
만약 이에 거슬리면 가버리는 것은 필연의 이치이다.
그러나 혹시 곧은 것과 굽은 것을 관찰할 만한 도가 없다면 곧은 것을 굽다 하고, 굽은 것을 곧다 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이러므로 군자는 거경(居敬)을 크게 여기고 궁리(窮理)를 귀하게 여긴다.”하였습니다.
어진 이를 보고도 들어 쓰지 못하며, 들어 쓰되 일찌기 하지 못하는 것은 태만〔命〕한 것이요,
선하지 않은 이를 보고도 물리치지 못하여, 물리치되 멀리 하지 못하는 것은 과실이다. (대학)
주자는 말하기를, “정씨(鄭氏:정현(鄭玄))는 ‘명(命)은 마땅히 만(慢)이라 하여야 한다.’하였다.
이러한 사람은 사랑하고 미워할 줄은 알지마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도에 극진하지 못한 이니, 대개 군자이면서 어질지 못한 사람이다.”하였습니다.
○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제환공(齊桓公)이 곽(郭)나라에 가서 부로(父老)에게 묻기를,
‘곽이 무슨 이유로 망하였는가.’하니, 부로들이 말하기를, ‘착한 이를 착하게 여기고 악한 이를 미워했기 때문입니다.’하였다.
그러니까 공이, ‘자네들 말과 같으면 곧 어진 임금인데 어찌 망하는 데까지 이르렀는가.’하니,
말하기를, ‘곽나라 임금은 착한 이를 착하게 여겼으나 능히 쓰지를 못하였고,
악한 이를 미워했으나 능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망했습니다.’하였다.
대개 착한 이를 착하게 여기되 능히 쓰지 못하면 그 착한 사람을 아는 것만으로 귀한 것이 될 수 없고,
악한 이를 미워하되 능히 버리지 못하면 그 악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만으로 귀한 것이 될 수 없다.
선악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른는 사람은 그래도 오히려 바라볼 여지가 있지마는,
이미 알고도 그 아는 것을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군자는 높이 행하여 멀리 가버리고, 소인은 자행(恣行)하는데 기탄이 없다.
그러면 곽나라를 망하게 한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곽임금이 스스로 망친 것이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임금이 비록 군자를 좋아하고 소인을 미워할 줄을 알면서도,
들어 쓰고 내칠 때에 그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실제로 결행하지 못한다면 치란(治亂)에 있어서 유익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곧은 이를 들어 쓰고, 굽은 이를 버리는데 알맞게 하는 것을 귀히 여깁니다.
비록 그러나 저 곧은 이를 들어 쓰고, 모든 의로운 이를 쓰는데 아직 극진히 알맞게 하지 못하는 이는,
실로 아직 좋아하고 미워하는 데 대한 올바른 견해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참으로 선을 좋아하기를 색(色)을 좋아하듯이 하고,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듯이 한다면,
어찌 그런 사람을 먼저 들어 쓰지 못하고, 그런 사람을 멀리 물리치지 못하겠습니까.
겉으로는 악을 미워한다고 하면서 실은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진 이와 어질지 못한 이가 전도(顚倒)되어 혼란이 일어나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자가 논한 절의(節義)를 위하여 죽는다는 설은 말이 자못 격절(激切)하므로 임금이 알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삼가 다음에 기록합니다.
주자의 봉사(封事)에 말하기를,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가 공언하기를, ‘폐하께서 일찍 이르기를, 오늘날 천하에는 다행히 사변이 없다.
그러므로 정의를 위하여 죽는다는 선비가 있다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고 하였다.’하였습니다.
이 말이 한 번 전파되자 크게 식자들 간에 근심이 되었습니다.
신은 그것이 반드시 폐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대개 절의를 위하여 죽는 선비는 평상시의 무사할 때에는 참으로 아무 소용이 없는 듯하나,
옛날 임금이 반드시 급급하게 이런 사람을 구한 까닭은 대개 이런 사람은 환난에 임하여 능히 사생을 떠날 수 있기 때문에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반드시 작록을 가벼히 여길 것이고, 환난에 임하여서는 능히 충절을 다할 수 있기 때문에,
또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반드시 바른 길이 아니면 따르지 않을 것이니, 평화롭고 사건이 없을 때 이런 사람을 얻어 쓰게 되면,
임금의 마음이 위에서 바르게 되고 풍속이 아래에서 아름다와져서, 간악한 싹을 꺾고 재화의 근원을 가만히 없앨 수 있으며,
자연히 절의를 위하여 죽는 일에 이르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후일에 변고가 있을 것을 알고 미리 이런 사람을 육성하여 두었다가 거기에 대비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평상시에 스스로 편안하다고 믿고 바로 이와 같은 인재는 필요가 없다고 하여,
다만 일종의 도리도 없고 학식도 없어서 작록이나 중히 여기고 명의(名義)를 가벼히 여기는 사람을 채용하여,
풍습을 바루고 격려하는데 힘쓰지 않는다고 여겨 그런 사람을 존총(尊寵)하여 이로서 기강(紀綱)이 날로 무너지고 풍속이 날로 각박하여져서,
비상한 재화가 모르는 사이에 잠복하여 있다가 일조에 불의의 변이 발생하면 평상시에 소용이 있던 사람은 제각기 팔을 들어 항복하고,
한 사람도 환난을 같이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한 뒤에야 전일에 버림을 받고 유락(流落)되었던 사람이 비로소 다시 불행히도 그 충절(忠節)을 나타내게 됩니다.
천보(天寶)199)의 난으로 이런 것을 관찰해 보면,
그 장상(將相)촵귀척촵가까운 행신(幸臣)은 이미 다 적정(賊庭)에 나아가 이마를 조아리고 항복하였는데,
군사를 일으켜 적을 토벌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죽고 친족을 죽여도 후회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
예를 들면 장순(張巡)200)·허원(許遠)·안고경(安卿)과 같은 유인데, 그들은 멀리 하읍(下色)에 있어서 임금도 그 면목을 모르던 사람들입니다.
명황(明黃)으로 하여금 일찌기 장순과 같은 사람을 얻어서 등용하게 하였던들 어찌 우환이 싹트기 전에 이것을 방지할 수가 없었겠으며,
장순과 같은 사람이 일찌기 명황에게 등용이되었던들 또 어찌 참으로 절의를 위하여 죽는 일이 있게 되었겠습니까.
‘상(商)나라의 귀감(龜鑑)이 멀지 않다. 하후(夏后)의 세(世)에 있다.’하니,
이 때문에 식자들 가운데서 공언한 어떤 이의 말을 깊이 우려하는 것입니다.
비록 신은 폐하께서 성학(星學)이 고명하고 식견이 심원하시어 결단코 이런 말이 있지 않았으리라고 알지마는,
매양 소인이 감이 성훈(聖訓)을 칭탁하여 자기의 간악한 것을 덮으려고 하는데,
그 해독이 깊이 천하의 충신 의사의 기개를 저상(沮喪)할 것을 생각하면 또한 마음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으니,
감히 식자들의 우려가 지나친 걱정이라고는 못하겠습니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주자의 설은 명백하고 통쾌하여 단번에 사론(邪論)을 씻어버릴 수 있다고 봅니다.
옛날 송(宋)나라 효종(孝宗)이 절의를 위하여 죽는 선비를 얻기 어렵다고 탄식하니,
장남헌(張南軒)이 말하기를, “적의를 위하여 죽는 선비는 마땅히 임금 앞에서 용감히 간(諫)하는 사람 중에서 구하여야 합니다.”하였습니다.
이 말은 간략하고도 적절하니 임금께서는 알아두지 않아서는 아니됩니다.
◆ 다음은 구현(求賢)의 도(道)에 대한 말씀
○ 「역경」에 이르기를, “비룡(飛龍)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보는 것이 이(利)롭다.”하였습니다. (건괘(乾卦)구오효사(九五爻辭))
정자는 말하기를, “성인이 이미 천위(天位)를 얻었으면
아래로 큰 덕(德)이 있는 사람을 만나 보고서 같이 천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이롭다.”하였습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하니,
물은 젖은 데로 흐르고 불은 마른 데로 번져가며,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하였습니다.
또 「역경」에 이르기를, "기(杞)로써 오이[瓜]를 쌌으니,
장(章:아름다운 문채)을 머금으면 떨어지는 것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리라." 하였습니다. (구괘(卦) 구오효사(九五爻辭))
정자는 말하기를, "기(杞)는 높은 나무로서 잎이 큰 것이다.
높은 데서 물건을 쌀 만한 것은 기(杞)이고, 아름다운 열매로서 아래에 있는 것은 오이이다.
높이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아래에 어진 이를 구하여 지극히 높은 것으로써 지극히 낮은 것을 구하는 것은,
기(杞)의 잎으로써 오리를 싸는 것과 같다.
이금이 비록 몸을 굽혀서 어진 이를 구할지라도, 만일 그 덕이 바르지 아니하면 어진 이가 즐거워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아름다운 것을 함축해서 안으로 지성(至誠)을 쌓으면 하늘로부터 내려 올 것이다.
하늘로부터 내려온다는 것은 반드시 얻을 것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옛날부터 임금이 지성으로 자기를 굽혀 중정(中正)한 도로써 천하의 어진 이를 구하면 만나지 못할 리가 없다.
고종(高宗:은(殷)나라 임금)은 자다가 꿈에서 <부열(傅說)을> 얻고,
문왕(文王:주(周)나라 임금)은 낚시터에서 강태공(姜太公)을 만난 것이 이 도(道)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천지가 서로 만나지 아니하면 만물이 나지 못하고, 군신이 서로 만나지 아니하면 정치가 흥하지 못하며,
성현이 서로 만나지 아니하면 또 덕이 형통하지 못하고, 사물이 서로 만나지 아니하면 공용(功用)이 이루어지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중궁(仲弓)이 어진 이를 기용하는 방법을 묻기를, "어떻게 <제가 혼자서천하의> 어진 이를 다 알아 기용하겠습니까." 하니,
공자는 말하기를, "그대가 아는 이만 다 기용한다면 모르는 이는 다른 사람이 기용하여 줄 것이다." 하였습니다. (논어)
정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각각 그 친한 이만 친히 한다고 그 친히 하는 이만 친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중궁이 '어떻게 어진 이를 다 알아 기용하겠습니까.'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그대가 아는 어진 이만 다 기용한다면 모르는 어진 이는 다른 사람이 기용하여 줄 것이다.'고 하였으니,
곧 중궁과 성인의 마음 쓰는 것이 크고 작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뜻으로 미룬다면 마음 하나로 나라를 일으킬 수도 있고 나라를 망칠 수도 있으니, 이것은 다만 공(公)과 사(私)에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 명도(明道)가 신종(神宗)을 만나서 인재를 의논할 때, 신종이 말하기를, "나는 아직 인재를 보지 못하였다." 하니,
명도가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어찌 천하의 선비를 경시하십니까." 하자,
신종은 용연(聳然)히 놀라면서 말하기를, "나는 앞으로는 감히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
나는 앞으로는 감히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천지가 한 세상 사람들을 낳았으니 이들은 족히 그 세상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탄스러운 것은 그 세상 인재를 다 기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세상을 크게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요(堯)는 순(舜)을 얻지 못하는 것을 자기의 근심거리로 삼았고,
순은 우(禹)와 고요(皐陶)를 얻지 못하는 것을 자기의 근심거리로 삼았다.
남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는 것은 혜(惠)라 하고, 남에게 선을 가르쳐 주는 것은 충(忠)이라 하며, 천하를 위하여 인재를 얻는 것을 인(仁)이라 한다.
이러므로 천하를 남에게 주는 것은 쉬워도 천하를 위하여 인재를 얻는 것은 어렵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요·순이 백성을 근심한 것은 일일이 근심한 것이 아니라 먼저 할 일을 급하게 하였을 뿐이다.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는 것은 조그마한 은혜일 뿐이고, 사람들에게 선을 가르쳐 주는 것은 비록 백성을 사랑하는 실심(實心)은 있으나,
그 미치는 데가 또 한정이 있어서 오래 가기가 어렵다.
오직 요가 순을 얻은 것과 순이 우와 고요를 얻은 것 같이 하여야만, 소위 천하를 위해 사람을 얻는 것이라 할 수 있고,
그 은혜가 광대하고 그 교화가 무궁할 것이니, 이것이 인(仁)인 것이다."하였습니다.
옛날의 어진 임금들은 선을 좋아하고, 권세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옛날의 어진 선비들은 어찌 유독 그렇지 않았겠는가.
자기의 도를 즐기고 남의 권세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왕공이라도 경의(敬意)를 표하고 예를 다하지 아니하면 그들을 자주 만날 수 없었다.
만나는 것마저 자주 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그들을 얻어서 신하로 삼는데 있어서랴.
주자는 말하기를, "임금은 마땅히 몸을 굽혀서 어진 이를 대접해야 할 것이며, 선비는 도를 굽혀서 이(利)를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인데,
이 두 가지는 형세가 서로 상반되는 것 같으나, 실을 서로 상성(相成)되는 것이므로 역시 각각 그 도를 다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옛날 임금으로서 천하에 뜻이 있던 이는 천하의 어진 이를 기용하는 것을 급한 일로 삼았다.
어진 이 구하는 것을 급한 일로 삼은 까닭은,
어진 이로 하여금 문장을 쓰게 하여 임금의 공덕을 자랑해서 일시에 보고 듣는 것을 아름답게 하려고 한 것만은 아니다.
대개 그 임금의 견문이 미치지 못한 것과 사려의 이르지 못한 것을 넓히고,
또 처신(處身)하고 접물(接物)하는 사이에 혹시나 미진한 것이 있을까 염려해서, 어진 이들이 바루어 주기를 원해서이다.
이르므로 그 구하는 것을 넓게 하지 않을 수 없고, 예(禮) 베푸는 것을 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대접하는 것을 정성스럽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하여 반드시 천하의 어진 이 중에 본래 아는 이나 모르는 이 할 것 없이
모두 내 앞에 오게 하여 내 허물을 돌봐주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 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내 덕업(德業)은 은미(隱微)한 것도 부끄럽지 않고, 점점 광대(光大)한 것에 극진해질것이다.
그러나 그 어진 이들은, 밝은 것이 이미 사리의 미묘한 곳까지 환해지고, 지키는 것이
이미 성현의 궤도를 따르므로 그 스스로 처하는 것이 반드시 고결하여 유속과 같이 하거나 오탁한 데에 합류하여 명예를 구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자기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두터워서 말을 떠벌리거나 꾸며서 자기를 소개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의 믿음이 독실해서 몸을 굽히거나 말을 재치 있게 잘 하여 구차하게 잘 보이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므로 왕공 대인이 비록 어진 이를 좋아하고 착한 것을 즐기는 정성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사람의 성명을 듣고
그 사람의 얼굴을 알고 그 사람의 심지(心志)를 다 알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처음부터 이런 뜻이 없고 취하는 것이 단지 문자나 언어에 있어서이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크게 다스릴 수 있는 임금은 반드시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있다.
의론을 할 일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나아간다.
그 덕을 높이고 도를 즐기는 것을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서로 큰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크게 다스릴 수 있는 임금이란 것은 비상하게 창의력이 있는 임금이란 말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옛날 사람은 반드시 임금이 경의를 표하고 예를 극진히 하여야만 물러났던 이유는,
스스로 자기를 존대(尊大)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임금과 같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선을 좋아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데도 넉넉[優]하다.
진실로 선을 좋아하면 사해안의 사람들이 다 천리길을 대수롭게[輕] 여기지 아니하고 모여 들어서 선을 말해 주려고 할 것이요,
진실로 선을 좋하하지 아니하면 사람들이 장차 말하기를, "저 임금은 똑똑한 체[] 하는 것을 자기는 벌서 알고 있다." 하여
똑똑한 체하는 소리나 기색은 사람들을 천 리 밖에서 막는 것이다.
선비들이 천 리 밖에서 머물러 있게 되면 참소하고 아첨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될 것이다.
만약에 참소하고 아첨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게 된다면 나라가 다스려지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넉넉하다[優]는 것은 여유가 있다는 것이니 비록 천하를 다스린다 해도 오히려 여력이 있다는 말이다.
경(輕)은 쉽다는 것인데, 천 리를 어렵게 여기지 아니한다는 말이다.
이이()는 스스로 그 지혜를 만족하게 여겨서 선한 말을 즐기지 않는 모양이다.
군자와 소인은 서로 소장(消長)하는 것인데, 곧고 믿음직하고 들은 것이 많은 선비가 멀어지면 참소하고 아첨하는 사람이 곁에 모이는 것은
이치와 형세가 그런 것이다.
이 글은 정사하는 것이 자기 한 사람의 장처(長處)를 쓰는 데 있지 아니하고,
천하의 선을 오게 하는 것이 귀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임용(任用)의 도에 대한 말씀
○「역경」에 이르기를, "성인은 어진 이를 길러서 만민에게 미치게 한다." 하였습니다. (이괘(卦) 단사(彖辭))
정자는 말하기를, "성인은 어진 이를 길러서 높은 벼슬을 주고, 그로 하여금 천록(天祿)을 먹게 하며,
혜택을 천하에 베풀게 하니 어진 이를 길러 만민에게 미치게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가 어진 이를 기르는 것을 논한 차자(箚子)에서 말하기를,
"신이 가만히 살피건대, 당대를 의논하는 이들은 모두 어진 이를 얻으면
천하가 다스려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되 어진 이를 오게 하는 도는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비록 중론이 분연(紛然)하여 그 요령을 가려내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지마는, 기실은 극진하지 못하고
조정에서도 역시 행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실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대에 어진 이를 기른 것은 반드시 학문에 근본하였기 때문에 덕화가 행해지고 치도(治道)가 나왔습니다.
우리 조정에서는 당(唐)나라의 옛 법을 이어 받아서 관각(館閣)의 청선(淸選)도
다만 거기에서 문자만 내놓는 구실만 하여서 명실(名實)이 바르지 아니하니, 어진 이를 부르고 인재를 길러서,
시국을 돕고 교화를 도우려고 하지마는, 앞으로 무엇을 좇아서 이것을 이루게 되겠습니까.
옛날의 명철한 임금은 허심하여 다스림을 구하듯이 어찌 일찍 천하의 인재를 다 구해서 자기의 덕을 이루지 아니하였겠습니까.
신은 지금 원하건대, 조정은 연영원(延英院)을 설치하여 사방의 어진 이를 대접하고,
공론으로 추천된 이나 숨어있는 어진 이를 반드시 불러서 우대하고,
자품을 보아 봉급을 주되 갑자기 관직은 주지 않고 다만 응조(應詔)라고 명명(命名)해서,
무릇 정사가 있으면 그들에게 맡겨서 상세히 계획을 정하게 하고,
전례(典禮)가 있으면 그들로 하여금 토론하게 하고 계획해서 진술해 올리게 하면 치란을 강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들로 하여금 여럿이 모여 절마(切磨)하여 날마다 그 재질을 다하게 하고 정부와 근신으로 하여금
서로 서로 접촉하게 하며 때로는 불러서 대해보고 치도(治道)로써 묻는다면, 그 재식과 기능을 알 수 있을 것이니,
이렇게 하여 여러 해를 살펴보면 인품은 더욱 분간될 것입니다.
그런 뒤에 어진 이는 위(位)에 나아가게 하고, 재능이 있는 이는 직책을 맡기게 하되, 군현(郡縣)의 원도 맡기고,
선비의 사표(師表)도 삼을 것이니, 덕업이 더욱 특이한 사람은 점점 나아가게 하여
수신(帥臣: 큰 신하를 말함)과 직사(職司)의 임을 맡기게 한다면, 보필도 될 수 있고,
공경도 될 수 있어서, 어디라도 다 맞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동류(同類)를 끌고 같이 나아가게 되어, 초야에 남아 떨어져 있는 어진 이가 없을 것이니,
폐하의 어진 이를 높이고 선비를 대우하는 마음이 이 천하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이를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수족이 구비되어야 사람이며,
어진 신하가 보필해야 임금이 성스럽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열명(說命)편. 하동)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수족이 구비되어야 사람이 이루어지고, 어진 신하가 보필해야 임금이 성스러워진다." 하였습니다.
옛 선정(先正)인 보형(保衡: 벼슬 이름. 이윤(伊尹)의 벼슬)은 우리 선왕을 흥기시켰는데[作]그가 말하기를,
" 내 능히 임금으로 하여금 요·순이 되게 하지 못하면 마음의 부끄러움이 거리에서 종아리 맞는 것과 같으며,
한 사람이라도 얻지 못하면 이것은 나의 허물이라 하여, 우리 열조(烈祖)를 도와서 황천에 다다르게 하였으니,
네가 거의 나를 밝게 도와서[保] 아형(阿衡)으로 하여금 상(商)나라의 아름다움을 혼자 하게 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채씨는 말하기를, "선정(先正)은 선세의 장관을 한 신하요, 보(保)는 편하게 한다는 뜻이니, 보형(保衡)은 아형(阿衡)이란 말과 같은 것이다.
작(作)은 흥기시키는 것이요, 거리에서 종아리를 맞는다는 것은 매우 부끄럽다는 것이요, 얻지 못한다는 것은 그 있을 곳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글은 고종(高宗)이 이윤의 말을 들어서 이윤과 같이 해달라고 부열에게 바라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임금은 어진 이가 아니면 다스리지 못하고, 어진 이가 임금이 아니면 먹지 못하는 것이니,
너는 능히 너의 임금이 선왕을 잇게 하여 길이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라." 하니,
열(說)이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되, "감히 천자의 아름다운 명을 그대로 선양(宣揚)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채씨는 말하기를, "이 말은 군신이 서로 잘 만나기 어려운 것이 이와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니,
고종은 성탕(成湯)으로써 자기(自期)를 하고, 부열은 이윤(伊尹)으로써 자임(自任)하여, 군신이 서로 근면·장려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아뢰기를, "임금은 정승의 기용을 의논하는 것을 그 직분으로 삼고, 재상은 임금을 바르게 하는 것을 그 직분으로 삼아서,
양자가 각각 그 직분을 다하여야만 체통이 바르게 되고, 조정의 권위가 높아져서,
천하의 정사는 반드시 한 군데서만 나오게 되고 여러 군데서 나오는 폐단이 없게 될 것입니다.
만일 재상을 의논하는 이가 자신에게 적합한 이만 구하고, 그 자신을 바르게 해 주는 이를 구하지 않거나,
그가 아끼는 이만 취하고 그가 두려울 만한 이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는 임금이 그 직분을 잃은 것이요,
마땅히 임금을 바르게 해야 할 이가 옳은 말을 드리고 그른 것을 버리게 하는 것을 일로 삼지 않고,
임금의 기분이나 맞추어 주는 것으로써 능란한 체하거나, 세상을 경영하고 일을 맡아보는 것을 마음으로 삼지 아니하고,
자신을 잘 보여 사랑을 굳게 하는 것을 계책으로 삼는다면 이는 재상이 그 직분을 잃은 것입니다.
양자가 모두 그 직분을 잃어서 체통이 바로 서지 아니하고 강기(綱紀)가 서지 아니한다면 좌우의 근신들은 다 위세(威勢)를 절롱(竊弄)하여,
정체(正體)가 날로 소란하게 될 것이고, 국세(國勢)가 날로 줄어들 것이며,
비록 비상한 화가 모르는 가운데 잠복해 있더라도 위는 위대로 안일하게 여기고, 아래는 아래대로 좋아 날뛰며,
이것을 염려할 줄을 모를 것입니다.
어찌 그 소이연(所以然)을 살펴서 이미 반복하여 쓰였던 사람을 도태시키거나, 앞으로 쓸 사람을 살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임금을 능히 바르게 해주고 두려울 만한 이를 발탁해 쓴다면 반드시 스스로 자기 자신을 무겁게 하는 선비를 얻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그 사람에게 책임지우는 것이 무겁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요, 그 사람에게 책임지우는 것이 이미 무거우면,
그 사람은 옳은 말은 드리고 그른 것은 버릴 것이며, 뜻을 다해서 세상을 경영하고 일을 맡아서 성심껏 실행할 것입니다.
또 천하의 곧아서 믿음직하고 못할 말을 능히 할 수 있는 선비를 발탁하여 대간(臺諫)과 급사(給舍)로 삼고,
그 의논을 참작하되, 마음가짐이나 보고 듣는 것은 항상 어진 사대부(士大夫)에만 두고 뭇 소인들에게 두지 않도록 하며,
선악을 상벌하는 권리는 항상 조정에 있고 사문(私門)에서 나오지 않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고서도 임금의 위엄이 서지 않고 국세가 강하지 않거나,
강유(綱維:삼강(三綱)과 사유(四維))가 서지 않고 형정(刑政)이 맑지 않거나,
민력이 넉넉하지 않아서 군정(軍政)이 닦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신은 믿을 수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주자의 봉사(封事) 가운데 있는 말이기 때문에 신이라고 일컬었습니다.
맹자는 제(齊)나라 선왕(宣王)을 만나서 아뢰기를,
"거실(巨室)을 지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공사(工師)를 시켜서 큰 나무를 구해 오게 할 것이고,
건축사가 큰 나무를 얻었다면 왕께서는 기뻐하고 그 나무가 제 구실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장인(匠人)이 그 나무를 깎아서 작게 만들면 왕께서는 성을 내고 그 나무가 제 구실을 해내지 못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려서 배우는 것은 장성해서 행하려고 하는 것인데,
왕께서 '네가 배운 것은 아직[姑]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고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거실(巨室)은 큰 집이요, 공사(工師)는 목수의 어른이다.
장인(匠人)은 뭇 목수요, 고(姑)는 아직이란 뜻이다.
이 글은 어진 이가 배운 것이 큰데 왕이 이를 적게 하려고 한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지금 여기에 박옥(璞玉)이 있다면 그것이 1만 일(鎰)이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옥인(玉人)을 시켜서 다듬게 할 것이다.
국가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네가 배운 것은 아직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 한다면,
옥 다루는 사람에게 옥 다듬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박(璞)은 돌 속에 들어 있는 옥이요, 일(鎰)은 스무[二十]냥이다. 옥의 갑이 1만 일이란 말입니다.
옥인(玉人)은 옥을 다듬는 공인(工人)이다.
옥을 감히 스스로 다듬지 못하고 잘 다듬는 이에게 부탁하는 것은 옥을 아껴서 그런 것인데,
국가를 다스리는 데서는 사욕을 따르고 어진 이에게 맡기지 아니하니, 이것은 국가를 아끼는 것이 옥을 아끼는 것보다 못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옛날의 어진 이는 임금이 항상 그 어진 것을 배운대로 시행하지 않을까 걱정하였고,
세상의 용렬한 임금은 또 항상 어진 이가 그 임금의 좋아하는 대로 좆지 못할까 걱정한다.
이러므로 군신이 서로 만나는 것은 옛날부터 어려운 일인데, 공자와 맹자가 종신토록 임금을 만나지 못한 것은 대개 이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지혜는 쓰되 그 거짓된 것은 버리며, 그 사람의 용맹은 쓰되 그 성내는 것은 버리며,
그 사람의 어진 것은 쓰되 탐(貪)내는 것은 버릴 것이다. (예기)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임금은 사람을 쓰되 마땅히 장점은 취하고 그 단점은 버릴 것이다.
대개 중인(中人)의 재능은 장점이 있으면 반드시 단점도 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이 말은 여러 관리를 다 온전한 인재로 얻을 수 없으니, 마땅히 그 장점만을 취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개 어진 재상(宰相)을 삼가 택하여 책임을 맡기면 이루어질 것이니, 백관과 유사(有司)는 반드시 한 사람에게만 구비될 필요가 없습니다.
재상을 잘 발탁하지 못하면 정권이 비인(非人)에게 맡겨져 조정이 혼란하게 될 것이며,
유사를 반드시 완비된 인재만으로 구하려면 사람을 채용하는 길이 좁아서 여러 직책에 공석이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오늘날 사대부 중에서는 어진 이를 못 보겠다."하니,
정자가 말하기를, "사대부가 어질지 못하다고 하지말고, 조정에서 사람 쓰는 것이 어진 이를 쓰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천하의 선비는, 뜻이 조정에 있으나 재주가 부족한 이도 있고, 재주는 쓸 만하나 성의가 부족한 이도 있는데,
오늘날은 재주와 성의가 갖추어져야 사업을 이룰 수 있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예경 친신(禮敬親信)의 도에 대한 말씀
○ 정공(定公)이 묻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니,
공자는 대답하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리는 데 예로써 하며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도 충(忠)으로써 해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주자는 말하기를, "두 가지는 다 이세(理勢)의 당연한 것이니, 각자가 스스로 극진히 하려고 할 따름이다." 하였습니다.
○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임금은 신하를 부리되 그가 불충(不忠)하리라고 걱정하지 말고,
그에게 예로써 다하지 못할까 걱정할 것이며, 신하는 임금을 섬기되 임금이 무례(無禮)하리라고 걱정하지 말고,
나의 충성이 부족할까 걱정해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남의 위에 있는 이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면 알고 의심이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하고,
남의 아래에 있는 이는 자기의 한 일을 칭찬하여 기록할 만할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임금은 신하에대해 의심하지 않을 것이요, 신하는 임금에 대해 의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윤(伊尹)이 말하기를, '오직 내가 탕(湯)과 함께 일덕(一德)이 있었다.'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예기)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임금은 신하를 대접하되 겉과 속이 한결같은 까닭에 바라보면 알고,
신하는 임금을 섬기되 한결같이 충성을 다하기 때문에,
그 직분과 공업을 다 칭찬하여 기록할 만하면 위와 아래가 의심도 없고, 의혹도 없다." 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날카로운[利] 것은 금(金)을 끊으며, 마음을 같이 하는 말은 그 냄새가 난초 향기같다. 역계사(易繫辭)
주자는 말하기를, "이 말은 물질이 두 사람의 마음을 틈이 나게 하지 못하고 그 말에 맛[味]이 있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성재 양씨(誠齋 楊氏)는 말하기를, "금석(金石)은 지극히 굳은 물건이나 마음보다는 굳지 못하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돌도 깨뜨릴 수 있고, 금도 꺾을 수 있다.
(보통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해도 금석을 뚫는데, 군신이 마음을 같이 하면 무슨 일을 이룰 수 없겠습니까.)
훈(薰:좋은 냄새나는 풀)과 유(: 악한 냄새가 나는 풀)가 같은 그릇에 있으면 어린애라도 능히 그 냄새를 분별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 냄새가 같지 않기 때문이요, 남산의 난초를 가지고 북산의 난초와 섞으면,
열 사람의 황제(黃帝)도 그 냄새를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은 그 냄새가 같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유유[] 한 사슴의 울음 소리여, 들에서 풀을 뜯어 먹는구나.
내게 아름다운 손님이 왔으니 비파를 퉁기고 피리를 부노라.
피리와 생황[簧] 불어 폐백 담은 바구니筐)를 받들고(承) 손님께 드리오니[將] ,
손님은 나를 즐겨 큰 도[周行] 를 보여주니." 하였습니다. (소아(小雅) 녹명(鹿鳴)편)
주자는 말하기를, 유유()는 화평한 소리를 형언한 것이요, 승(承)은 받드는 것이요, 광(筐)은 폐백을 담는 그릇이요, 장(將)은 행한다는 것이니,
바구니에 폐백을 담아 예를 행한다는 뜻으로 술을 마실 때와 식사를 할 때 손님에게 많이 드시도록 권하는 것이다.
(빈객은 본국 신하이겠으나 제후의 사신일 때도 있습니다.)
대개 군신의 분수는 엄(嚴)한 것을 주로 하고, 조정의 예는 공경하는 것을 주로 한다.
그러나 한결같이 엄하고 공경만 하면 정이 혹시 통하지 못해서 그 충고하는 것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황이 회식하는 연회의 예를 만들어 상하의 정을 통하게 하였는데, 풍악의 노래는 녹명편(鹿鳴篇) 사슴의 우는 것으로써 흥을 일으킨 것이다.
그 예의의 두터움이 이와 같으니, 아마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으로써 대도(大道)를 보여 주기를 바란 것이다.
「예기」에 이르기를, '사사로운 은혜는 덕이 될 수 없으므로, 군자는 사사로운 은혜에 머물지 아니한다.' 하였으니,
대개 임금이 군신과 빈객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대도로써 자기에게 보여 주는 것이요,
사사로운 은혜로 자기에게 베풀어 주는 것을 덕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아, 이것이 함께 화락하면서도 음란하지 않는 까닭[所以]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대신이 친근하지 못하면 백성이 편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충(忠)과 경(敬)이 부족하고, 부귀가 과한 것이다.
이리하여 대신이 다스리지 못하고 가까운 신하가 편당을 만들 것이기 때문에, 대신은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는 백성의 길[道]이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예기(禮記))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대신이 임금을 친근하게 믿지 아니하면 백성이 그 영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편안하지 못하다.
대개 이것은 임금에 대한 신하의 충성이 부족하거나, 임금의 공경이 신하에게 부족하고, 다만 부귀가 너무 지나쳐서 그런 것이다.
이 때문에 가까운 신하들이 편당을 서로 짓고 대신의 권리를 빼앗아 그 일을 다스리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공경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백성의 바라는 의표(儀表)가 되기 때문이요, 가까운 신하가 삼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임금의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이들에게 달려 있어서, 바로 백성들에게 길이 되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 대신을 신임하되 그 사이에 아무 틈이 없으면, 일을 당해도 현혹되지 않는다는 어떤 이의 말이 있는데,
대신이 어질면 모르겠으나 만약에 불행히도 조고(趙高)·주이(朱)201)·우세기(虞世基)202)·이임보(李林甫)203) 같은 무리가 있다면,
추양(鄒陽)204)이 이른바, '편벽 되게 듣는 데서 간사한 것이 생기고,
한 사람에게 맡기는 데서 난이 일어난다.'는 말과, 범수(范)205)가 이른바, '어진 이를 질투하고 재사(才士)를 미워하여 아래를 막고 위를 가려서,
사사로운 짓을 하더라도 임금은 깨닫지 못한다.'는 말이 또 어찌 염려되지 않겠습니까." 하니,
주자는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몸을 닦으면 보는 것이 밝고 듣는 것도 밝아져 어질고, 어질지 못한 것을 속지 않으며,
<또> 어진 이를 존경하면 대신의 자리에 반드시 그리 나쁜 이는 섞이지 않을 것이다.
불행히도 혹시 실수가 있다면 속히 좋은 사람을 구해서 대체할 뿐이다.
어찌 그가 간악한 짓을 해서 나라를 패망하게 할 줄 알면서, 대신의 지위에 그대로 두어서 문서를 처리하는 직책을 맡게 하겠으며,
또 소신(小臣)들이 살피는 것만 믿고 이런 일을 방비할 수 있겠는가.
대개 어진 이를 구하기는 힘들어도 얻으면 편안한 것이니, 맡긴다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이 나면 맡기지 말 것이다.
이것이 옛 성군(聖君) 현상(賢相)들이 서로 성의를 합해서 양자가 그 도를 서로 다하여 광명정대한 업을 이룬 소이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위에서 꺼리고 두려워하여 방비하는 것이 더욱 치밀하여, 그 현혹이 더욱 심할 것이요,
아래에서 속이고 가리는 것이 더욱 교묘하여 해가 더욱 심할 것이다.
불행히 간악한 신하의 모책이 이루어지면 그 화는 실로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며,
다행히 임금의 위엄이 간신을 극복한다 하더라도 소위 '편벽되게 듣고 한 사람에게 맡기는 데서 오는 폐단'이 아래를 막고 위를 가린다면,
간악한 자가 대신 가운데에 있지 않으면 좌우의 근신 가운데에 있을 것이니,
그 나라의 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 위태로운 일이로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소인(小人)을 멀리하는 데 대한 말씀
○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 하였습니다. (곤괘(坤卦) 초륙효사(初六爻辭))
정자는 말하기를, "음(陰)이 엉기어 비로소 서리가 되는데, 서리가 내리면 음이 차츰 성하여 굳은 얼음에 이를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말은 소인이 처음에는 비록 미약하다 할지라도 자라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자라면 성하여지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선을 쌓는 집은 반드시 여경(餘慶)이 있을 것이요, 불선을 쌓는 집은 반드시 여앙(餘殃)이 있을 것이니,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거나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것은 하루 아침 하루 저녁의 까닭은 아니다.
이것은 종전부터 점점 커져 내려온 것인데, 다만 분변하기를 일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정성(鄭聲)을 내쫓고[放] 영인(人)을 멀리 할 것이니,
정성은 음탕하고 영인은 위태롭기[殆]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주자는 말하기를, "방(放)은 금절(禁絶)한다는 것이요, 영인(人)은 비굴하고 아첨하여 말만 잘하는 사람이며, 태(殆)는 위태롭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장씨(張氏)는 말하기를, "정성과 영인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지킬 바를 잃게 하는 까닭에, 내쫓고 멀리 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영인이란 아첨하고 순종할 따름인데 가까이 하면 반드시 위태롭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영인은 의(義)가 있는 곳을 모르고 이욕(利慾)만 따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교묘한 말로 아첨하면 반드시 패역(悖逆)하려는 마음이 없다가도,
그 지위를 잃을 까 끈심하는 데 이르러서는 무슨 짓이라도 못할 짓이 없어서, 마침내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망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자도 모두 처음에는 아첨하고 순종하는 자들이다." 하였습니다.
○ 장씨(張氏)는 말하기를, "소인으로서 국가에 화를 주는 것으로는 유악(柔惡)한 이가 더욱 두렵다.
강악(剛惡)한 이는 흉악하고 강폭하므로, 재주가 평범한 임금이라도 오히려 두려워하여 멀리 하기 때문에 그 해되는 것이 그래도 얕지마는,
오직 유악한 자는 아첨하고 간사하여 사람들로부터 희애(喜愛)를 받으면서 가깝게 하니 총명한 임금도 오히려 의혹되어 나라가 망하여도 깨닫지 못한다.
공자가 영인(人)을 들어서 말한 것도 소인 중에서도 심한 자를 든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일찍이 금중(禁中)의 나무를 구경하다가 말하기를, "아름다운 나무로구나." 하니,
우위 대장군(右衛大將軍)인 우문사급(宇文士及)206)도 곁에서 그 나무를 찬탄하기를 마지않은지라,
태종이 정색하여 말하기를, "위징(魏徵)이 일찌기 나를 권하여 영인을 멀리하라고 하였는데,
영인이 누군지 알지 못하였더니, 이제 참으로 알았구나." 하니,
사급(士及)이 사과하여 말하기를, "남아(南衙)의 군신들은 폐하를 면접하여서도 <폐하의> 말을 반박하고 조정에서도 폐하의 말을 다투니
폐하께서 꼼짝을 못하셨습니다.
지금 신이 다행히 좌우에 있어서 조금 폐하의 마음을 순열(順悅)케 안해드린다면 폐하가 비록 천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의 뜻이 풀렸다고 합니다.
사신(史臣)이 이 말에 대해 평하기를, "태종은 사급의 아첨하는 것을 알고도능히 물리치지 못하였으나,
재주가 평범한 임금은 아첨하는데 의혹되지 않는 것마저 어려울 것이다." 하였으며,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사급의 말이 임금에게는 짐독(毒)207)과 같은 것이다.
대개 성스럽고 밝은 세상에는 충성스럽고 바른 말하는 이가 조정에 가득 차서 임금의 언동이 조금 어긋나면 즉시 경계하는 말을 하니,
천자의 귀한 몸으로는 무료할 것 같지마는 매양 몸을 지극히 편안하고 영화스러운 곳에 두게 되며,
반대로 혼란스러운 세상에는 아첨하는 말이 귀에 차서 사치를 다하고 욕심대로 하되, 아랫사람으로 감히 간하는 이가 없으니,
천자의 귀한 몸으로는 뜻에 맞을 것 같지마는, 매양 몸을 지극히 위태롭고 어려운 가운데 둔다.
그러면 임금으로서는 어느 것을 택해야 하겠는가.
사급 같은 이는 망한 수(隋)나라의 남은 요물이라 그렇게 심하게 책망할 것까지는 없지마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태종이 그 아첨하는 것을 알고도 버리지 못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잠계(箴戒)가 많은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이는 특히 안으로는 욕망이 많으면서 밖으로는 인의(仁義)를 베푸는 체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임금이 마음을 바루고 몸을 닦아서 학문을 좋아하고 선한 것을 즐긴다면, 잠계가 귀를 기쁘게 하는 것은
추환(芻)(풀을 먹는 마소나 곡물을 먹는 개·돼지 따위) 이 입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찌 무료히 생각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만약 안으로는 수기(修己)의 실(實)이 없고, 거짓으로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이는 잠계가 오면 억지로 좇는 체하지마는,
심중에는 실로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오래도록 변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당(唐) 현종(玄宗)이 한휴(韓休)208)를써서 몸이 수척해진 까닭에 마침내 천보(天寶)의 난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목왕(穆王)이 백경(伯)209)에게 명하기를,
"간사한 사람을 가까이 하여 이목(耳目)의 관직으로 삼거나, 선왕의 법이 아닌 것으로써 임금을 인도하지말라."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경명(命))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이 글은 대개 목왕이 스스로 그 덕이 견고하지 못한 것을 알아서
좌우의 사람들이 곁에서 이단(異端)으로써 자기의 마음을 방탕하게 할까 두려워서 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마음을 꾸준히 계속 하지 못하고는, 조보(造父)로 하여금 말을 몰게 하여 천하를 두루 유랑(流浪)하였다.
그는 미리 경계할 바를 알아서 근심과 생각이 깊고 길었으되, 오히려 자신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사람의 마음이란 가지면 있고 놓으면 잃어버리는 그 무상함이 두렵도다." 하였습니다.
자장(子張)이 명철(明哲)한 것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는 말하기를, "차츰 차츰 스며들어오는[浸潤] 참소[]와, 자신에게 직접 자극[膚受]을 주는 탄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처리하지 않는다면
명철하다고 말할 수 있고, 차츰차츰 스며들어오는 참소와 자신에게 직접 자극을 주는 탄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처리하지 않는다면
보는 것이 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논어(論語))
주자는 말하기를, "침윤(浸潤)이란 물이 차츰차츰 스며들어오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갑자기 서두르지 않는 것을 말한 것이요,
참()은 남의 행실을 헐뜯는 것이요, 부수(膚受)란 살과 살갗에 닿는 것으로 이해(利害)가 내몸에 직접 절실한 것을 말한 것이다.
소()는 자기의 원통함을 하소연하는 것이다.
남을 헐뜯는 이의 그 참소하는 말이 갑자기 서두르지 않고 차츰차츰 스며들어오면, 듣는 이가 그 들어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믿기를 깊이 하며, 원통한 것을 하소연하는 자가 급박하게 몸에 절실하도록 하면, 듣는 이가 미처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그 하소연에 동정심이 발한다.
이 양자는 살피기가 어려운데 이것을 잘 살피면, 그 마음이 밝고, 가까운데 가리워지지 아니했음을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난이 처음 생겨나는 것은 참언(僭言)을 비로소 받아들인[涵] 때문이요, 난이 또 생겨나는 것은 군자가 참언을 믿기 때문이다.
군자가 참언에 진노하면 난이 빨리[] 그칠[沮] 것이고, 군자가 어진 이의 말에 기뻐하면 난이 빨리 그칠 것이다." 하였습니다. (소아(小雅) 교언(巧言)편)
주자는 말하기를, "참시(僭始)란 것은 불신(不信)의 발단이요, 함(涵)이란 것은 용납한다는 것이며,
군자는 왕을 가르키는 것이요, 천()은 빠른 것이요, 저(沮)는 그치는 것이요, 지(祉)는 <어진 이의 말에> 기뻐한다는 말이다.
난이 일어나는 까닭은 참언하는 자의 믿을 수 없는 말이 처음들어갔는데, 왕이 용납하고 그 진위(眞僞)를 살피지 않기 때문이요,
난이 또 일어나는 것은 그 참언을 믿고 그것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군자가 참언하는 자의 말을 듣고 만일 노하여 그를 책하면 난은 빨리 그칠 것이요,
어진 이의 말을 듣고 만일 기뻐하여 그 말을 용납하면 난이 빨리 그칠 것이다.
그런데 용납하는데 결단이 없어서 참언과 신언(信言)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참언하는 자는 더욱 승(勝)하여 가고, 군자는 더욱 병들게된다." 하였습니다.
○ 소씨(蘇氏)는 말하기를, "소인이 그 임금에게 참소할 적에는 반드시 차츰차츰 그 말이 스며들어가게 하는데,
처음에는 진언(進言)을 하여 시험을 해본다. 임금이 용납하여 거절하지 아니한다면 그말을 꺼리지 않은 줄을 알고 다시 참언을 하는데,
이렇게 하여 임금이 믿게 되면 난이 일어난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임금이 진실로 어진 이를 쓰려고 하면 반드시 소인을 멀리 해야 합니다.
그런 뒤라야 군신의 사이가 시종 간격이 없어서 치도(治道)를 이룰 수 있습니다.
만일 약을 엄격히 미워하지 아니하여, 소인으로 하여금 참설(讒舌)을 놀리게 한다면 군자가 어찌 편안히 조정에 서겠습니까.
대개 참언하는 자는 남의 거동을 잘 살피고 둔갑을 잘하여 겉으로는 돕고 속으로는 누르기도 하여,
처음에는 칭찬을 하다가도 나중에는 훼방을 하여, 무죄한 사람을 모함하여 교묘하게 명목을 세우며,
독실하게 행하는 이를 가리켜 위선(僞善)이라고하며, 도를 지키는 자를 가리켜 위학(僞學)이라고 하고,
은거하여 뜻을 숭상하는 사람을 가리켜 세상을 업신여긴다고 하며,
나아가기를 어렵게 여기고 물러나가기를 쉽게 하는 사람을 가리켜 임금에게 잘보이기 위해 하는 짓이라고 하며,
조정에서 바른 말 하는 사람을 가리켜 곧은 것을 판다[賣]고 하며, 국사에 진심하는 사람을 가리켜 전천(專擅)한다고 하며,
어진 이를 천거하여 협력하는 사람을 가리켜 붕당(朋黨)이라고 하며,
묵은 폐단을 개혁하는 사람을 가리켜 정치를 어지럽게 한다고 하니, 선량한 사람을 모함하는 수단은 이루 다 열거할수 없습니다.
임금으로서 만일 깊이 미워하여 이것을 통절(痛絶)하지 않고, 바로 함께 수용하여 같이 그리는 계책을 쓴다면,
점점 그 꾀에 빠져 마침내 뭇 간신이 모여들고 군자는 멀리 물러가게 됩니다. 아! 두렵지 않습니까.
이윤(伊尹)이 유신(有莘)의 들에서 밭을 갈고 살면서 요·순의 도를 즐거워하여, 의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
천하를 녹으로 준다 하더라도 돌아다보지 않았고, 말 천 사(千駟:수레 하나에 말 4마리가 달린 것을 1사(駟)라 함)를 매어 놓고 기다린다하여도
보지 않았으며, 의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 한 오라기의 풀도 남에게 주지 않고 한 오라기의 풀도 남에게서 취하지 않았습니다.
탕왕(湯王)이 사람을 시켜 폐백을 보내 그를 초빙하니, 태연하게 말하기를 태연하다고 함은 스스로 얻을 욕심이 없는 모양입니다.
"내가 어떻게 탕왕의 초빙하는 폐백을 받겠는가.
내가 어찌 밭 가운데 살면서 요·순의 도를 즐거워하는 것과 같겠는가." 하였습니다.
탕왕이 세 번째 사람을 시켜 초빙하러 가니, 그제서야 번연(幡然)히 태도를 바꾸고서, 말하기를,
"내가 밭 가운데 살면서 이렇게 요·순의 도를 즐거워하는 것이 어찌 이 임금을 요순의 임금으로 만들게 하는 것과 같겠으며,
이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들게 하는 것과 같겠는가. 내가 어째 몸소 직접 보는 것 같겠는가.
하늘이 이 백성을 낳을 적에 선지자(先知者)로 하여금 후지자를 일깨워 주게 하고, 선각자(先覺者)로 하여금 후각자를 일깨워 주게 하였다.
나는 천민의 선각자다. 나는 앞으로 이 도로써 이 백성을 일깨워 주련다.
내가 그들을 일깨워 주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는 천하 백성들 중 필부필부(匹夫匹婦)까지라도 요·순의 덕택을 입지 않으면 마치 자기가 그들을 웅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이 생각하였는데,
그는 천하의 중책을 자임(自任)하는 것이 이와 같아서 탕왕을 도와 천하의 왕노릇을 하였습니다.
탕왕이 붕(崩)하자 태정(太丁)은 서지 못하고 (탕의 태자인데 임금이 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외병(外丙)은 2년을 <왕위에 있었고>, 중임(仲任)은 4년을 <왕위에 있었으며>, (외병과 중임은 다 태정의 아우입니다.)
그 뒤가 태갑(太甲)인데, (태정의 아들인데 왕이 되었습니다.)
탕왕의 전형(典刑)을 전복하므로 이윤이 그를 동궁(桐宮)210)으로 추방하니,
그는 3년만에 자기의 허물을 회개하여 스스로 원망하고 스스로를 다스려서[艾], 인(仁)에 처하고 의(義)에 옮기어 이윤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박(:서울의 이름)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윤은 이미 정권을 임금에게 돌리고,
벼슬을 그만두면서 떠나가기에 앞서 태갑의 덕이 순일하지 못하여 비인(非人)을 임용할까 염려하여
함유일덕(咸有一德) (서경(書經)의 편명입니다.) 을 지어 훈계하였습니다.
○ 낭야(琅) 땅의 제갈량(諸葛亮)211)은 양양(襄陽)의 융중(隆中)에 우거하여
매양 스스로 관중(管仲)과 악의(樂毅:중국전국시대의 명장)에게 비교하니, 당시 사람들이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소열(昭烈:중국 삼국시대의 유비)이 형주(荊州)에 있을 때에 양양의 사마휘(司馬徽)212)에게 선비를 물으니,
사마휘가 말하기를, "유생(儒生)·속사(俗士)가 어찌 시무(時務)를 알겠습니까.
시무를 아는 것은 준걸(俊傑)이어야 하는데 이 부근에 복룡(伏龍)과 봉추(鳳雛)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소열이 묻기를, "누구인가." 하니, 그는 말하기를, "제갈공명(諸葛孔明)과 방사원(龐士元)213)입니다." 하였습니다.
서서(徐庶)214)가 소열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와룡(臥龍)인데 장군은 어찌 그를 보기를 원합니까." 하니,
소열이 말하기를,"그대가 같이 데리고 오오." 하였습니다.
서서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나아가서 보아야지 굽혀오게 할 수 없습니다.
장군이 마땅히 찾아가셔서 보아야 합니다." 하였습니다.
소열은 이에 양(亮)에게 나아가기를 무려 세 번이나 하여 비로소만나 보고서,
적을 토벌하고 나라를 부흥시키는 계책을 물었는데, 좋다고여겼으므로 양(亮)과 정의가 날로 좋아졌습니다.
소열을 도와서 익주(益州)를 취하였고, 소열이 황제의 위에 오르자 양을 승상(丞相)으로 삼았습니다.
소열이 임붕(臨崩)할 때, 양에게 이르기를, "그대의 재능이 조비(曺丕)215)보다 10배나 되니,
반드시 국가를 편안하게 하여 마침내 대사를 정할 것이다.
사자(嗣子)를 도울 만하거든 돕고, 만일 그가 임금 노릇을 못하겠거든 그대가 스스로 취하여 임금을 하라." 하였습니다.
양이 눈물을흘리면서 말하기를, "신은 감히 고굉(股肱: 가장 믿어주는 신하)의 힘을 다하고 충정(忠貞)의 절개를 본받아 죽음으로써
그 뜻을 이어 받들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양이 후제(後帝)에게 표(表)를 올려 밀하기를, "신은 본래 서민(庶民)으로 몸소 남양(南陽)에서 밭을 갈고 살며
구차히 성명(性命)을 난세에보존하면서 영달을 제후에게 구하지 않았는데,
선제(先帝)께서 신을 비천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스스로 몸을 굽혀,
신을 세 번이나 초려(草廬:초가집)로 방문하여 신에게 당세의 일을 물으시므로,
드디어 감격하여 선제께 적을 무찌르기를 허락하였습니다.
선제께서 신의 근신하는 것을 아시고 임붕할 때에 대사를 부탁하시므로,
명을 받은 이래로 밤낮 걱정이 되옵고 부탁하신 일에 대해 효과가 없어 현명한 선제를 손상할까 두렵습니다.
이제 마땅히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북으로 중원(中原)을 평정하여 한실(漢室)을 부흥시키고, 옛 도읍에 돌아와야 할 것인데,
이것은 신이 선제께 보답하고 폐하께 충성하는 직분입니다.
신은 죽도록까지 몸과 마음을 다하겠사오나, 성패(成敗)와 이둔(利鈍)은 신이 미리 알 수 없습니다." 하고는,
군사를 내어 위(魏)나라를 치다가 군중에서 죽었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어진 이는 국가의 기용(器用)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면서 어진 이를 구하지 않는 것은 노[楫]를 버리고 하천을 건너려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이윤과 제갈량에 대한 출처의 사적을 위에서 열거하였는데, 이것으로도 그 나머지는 알 수 있습니다.
이윤이 유신(有莘)의 들에 있을 때에 몸소 밭갈고 도를 즐거워하여 당세에 뜻이 없는 것 같았고,
성탕이 재차 초빙하러 올 적에도 뜻이 그래도 오히려 굳어서 가지 않을 생각이 있었는데,
그 정성이 매우 간절하므로 그제서야 번연(飜然)히 부르는 데 응하였습니다.
그래서 뜻을 같이 하고 덕이 합하여 황천에까지 감동하였으며, 재상을 역임한 지 수대에 걸쳐 임금을 추방하기까지 하였으나 혐의를 받지 않았고,
진실한 덕업이 이미 끝나고 벼슬을 그만두게 되면서도 오히려 간절한 훈계를 진술하며, 늙도록 더욱 독실하였습니다.
제갈량은 융중(隆中) 땅에 있을 때는 무릎을 안고〔抱膝〕 길게 휘파람을 불면서 우주에 눈을 높이 두고 몸을 마치려고 하였으므로,
소열이 두 번째 찾아가도 오히려 은둔(隱遁)할 생각이 견고하였으나, 마음 가운데 그를 좋아하여 세 번 가기를 게을리하지 아니하니,
그제서야 마음을 돌리고 몸을 맡기자 모책이 서로 부합하였으니, 재능을 다하고 정성을 극진히 함으로써 회복하기를 기약하였습니다.
유주(幼主:후제인 유선(劉禪))를 도우면서부터는 정책이 자기에게서 나왔는데 이간하는 말이 없었고, 강대한 위나라도 겁을 내었으며,
거의 예악(禮樂)에 가까왔습니다. 이 두 사람은 비록 도에는 정추(精粗)가 있고 덕에는 대소가 있다 하더라도, 임금을 얻어 충성을 다한 것은
한 가지이니 후세의 미칠 바가 아닙니다. 이 어찌 두사람의 현명한 것만으로 그렇게 되겠습니까.
실은 임금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건대, 탕왕이 이윤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원성(元聖)을 구하여 같이 힘을 다했다." 하였으니,
지극히 감복한 것이며, 소열이 양(亮)을 칭찬하여 말하기를,"나에게 공명(孔明)이 있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이 있는 것과 같다." 하였으니,
그 매우 즐거워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신이 서로 이렇게 마음이 맞으니 두 사람이 어찌 독실하게 서로 돕지 않았겠습니까.
후세의 임금은 어진 이를 좋아하는 것이 성탕이나 소열 같은 이가 없기 때문에,
성현의 학자와 호걸의 재사(才士)가 흔히 자기 집에서 늙어버리게 되고, 시국을 엿보고 세력을 알아서 구차하게 아부하여,
용납되기를 바라는 이가 도도(滔滔)하게 뜻을 얻게 되었으니, 어찌 세상을 다스리겠습니까.
하지만 임금은 반드시 먼저 궁리(窮理)와 지언(知言)을 하여 권도(權度)가 틀리지 않아야만 어진 이를 알아볼 수 있고 ,
아는 것이 심히 밝아서 폐부(肺腑)까지 통찰하여야만 서로 믿을 수 있으며,
믿음이 심히 돈독하여 부절(符節:신부(信符)와 같음)같이 합하여야만 서로 기뻐할 수 있고,
기뻐하고 심히 가깝게 되어 은혜가 부자(父子)같이 되어야만 위임할 수 있으며,
그에게 위임하기를 심히 성실성 있게 하여 두 가지 마음을 먹지 않아야만 도를 행하고 다스림을 지극히 할 수 있어서,
오직 하고 싶은 대로 한 시대를 훈도(薰陶:임금이 백성을 교화함)하고 그 여운을 만세에 끼칠 수 있습니다.
군신이 서로 만나는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5제216)·3왕도 모두 이 도에 말미암았으니 후왕은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후세에 비록 소강(小康)한 임금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쓰지 않고 혼자서는 다스리는 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임금이 선왕의 성덕에 미치지 못하고, 신하가 고인의 현 명한 것만 같지 못하기 때문에, 공렬(功烈)이 비열해지는 것을 면하지 못합니다.
이와 반대로 이미 수기(修己)의 공부가 없고 또 사람을 아는 통찰력이 어두워,
허명(虛名)을 취하기도 하고 순종을 기뻐하기도 해서, 혹시 좋은 이가 있어도 좋아하기를 끝까지 하지 못하고,
맡기면서도 의심을 하며,의논이 때에 어긋나도 오히려 작록으로 붙들고, 받드는 것이 임금을 그릇되게 하여도 오히려 충량(忠良)하다고 하며,
국사가 날로 그릇되어도 상하에서 모두 근심은 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징계하는 사람을 의심하고 꺼리어
자기가 오로지 하고 남에게 맡기지 아니하며, 총명이 넓지 못하고 세세한 일까지도 다 간섭하여 벼슬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여
서무(庶務)만 떨어뜨리면 난망(亂亡)으로 돌아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임금이 마땅히 깊이 경계하여야 할 것이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잘 살피시옵소서.
< 주 >
179) 「주역」 64괘중 38번째 괘 이름이다.
180) 떳떳한 윤리라는 뜻으로 인륜(人倫)을 가리킨다.
181) 1032∼1085년 사이 생존했던 북송(北宋)의 큰 학자. 자는 백순(伯淳),
시호는 순공(純公). 명도(明道) 선생이라 불리웠으며, 아우 이()와 같이 주렴계(周濂溪)의 문인이다.
이 두 형제를 이정(二程)이라 부르기도 하고 존칭으로 정자(程子)라고 하기도 한다.
182) 「주역」 64괘 중 18번째 괘 이름.
183) 은(殷)나라의 명재상. 탕(湯)의 세번의 초빙을 받고 탕의 재상이 되어 걸(傑)을 치고 탕으로 하여금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하였다.
184) 주(周) 나라의 명신(名臣).
185) 한(漢) 고조(高祖)의 충신. 자는 자방(子房). 시호는 문성(文成).
한 고조를 도와 천하를 통일함. 소하(蕭河)촵한신(韓信)과 함께 한(漢)의 3걸이라 칭한다.
만년에는 벼슬에서 물러나 신선술(神仙術)을 익히며 고고하게 살다가 여생을 마쳤다.
186) 전한(前漢)의 학자. 자는 중옹(仲翁). 춘추학(春秋學)에 밝았다고 한다.
선제(宣帝)때에 박사(博士)가 되고 뒤에 태자(太子)의 태부(太傅)가 되었는데
재직한지 5년만에 벼슬이 높아지고 이름이 멀리 나면 후회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 하고는
벼슬을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가서 나라에서 내려준 재산을 가지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잔치하고 즐겁게 보내며 여생을 마쳤다.
187) 중국 후당(後唐)시대 남창(南昌)사람. 자는 유자(孺子).
집이 가난 하였으나 고고하게 숨어 살면서 평생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았다.
태수(太守) 진번(陳蕃)이 평소에는 손님을 접대하지 않았는데 서치(徐穉)가 찾아오면
특별히 자리를 하나 마련하여 정중하게 예우하였고 서치가 가면 그 자리를 도로 매달아 두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남주(南州) 고사(高士)로 일컬어졌다.
188) 중국 동한(東漢) 시대 진류(陳留) 사람. 자는 구룡(九龍)이다.
집이 가난하여 칠공(漆工)노릇을 하였지만 채옹(蔡邕)등이 그 그릇을 매우 높이 평가하였다.
뒤에 나라에서 벼슬을 주어 누차 불렀으나 모두 응하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며 깊이 숨어 살았다.
189) 중국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은자(隱者). 성은 육(陸), 이름은 통(通). 접여는 그의 자(字)이다.
소왕(昭王) 때에 정치의 질서가 없고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일부러 머리를 풀어헤치고 거짓 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벼슬을 하지 않았다.
190) 하(荷)는 짊어졌다는 뜻이고 궤()는 초기(草器)로서
공자(孔子) 당시에 궤를 짊어지고 공자의 집 문앞을 지나가며 비평하였던 은사(隱士)를 가리킨다.
이 은자는 공자를 향하여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둘 일이지 굳이 자기의 뜻을 펼려고 억지로 애쓰는 것은 비루한 일이라고 비평하였다.
191) 중국 진(晉)나라 장평(長平) 사람. 자는 심원(深源).
지식이 높고 인품이 깨끗하여 약관(弱冠) 시절부터 명성을 떨쳤다.
오주(五洲)의 도독(都督)을 지내고 중원(中原)을 평정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삼았으나
요양(姚襄)을 징벌하다 패배한 뒤 환온(桓溫)의 모함에 걸려 파직당하고 서인(庶人)이 되었다.
192) 중국 송(宋)나라 영천(潁川), 즉 허창(許昌) 사람. 일찌기 호안국(胡安國)선생을 사사하였고 유학(儒學)에 정통하였다.
193) 춘추시대(春秋時代) 정(鄭) 나라의 음란한 음악이다.
194) 옛날에 종묘(宗廟) 궁중에서 쓰던 고전음악이다.
195) 중국 남송(南宋)의 유학자. 금계(金谿) 사람. 자는 자정(子靜) 호는 상산(象山)이다.
그의 학문은 덕성(德性)을 위주로 하고 저술(著述)을 일삼지 않았으며 심즉리(心卽理)의 유심론을 주창하였다.
주자(朱子)와는 서로 대립되는 학문체계로서 당시 일대 논전을 벌렸던 아호(鵝湖)에서의 모임은 유명하다.
196)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어진 신하로 이유(夷維) 사람이다. 이름은 영(). 시호는 평(平).
자는 중(仲)으로 안평중(晏平仲)이라 불리기도 한다.
제나라의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등 삼대에 걸쳐 섬겼는데 근검과 절약을 바탕으로 생활하고 또 직간(直諫)을 자주하였다.
호구(狐) 한 벌 을 가지고 30년을 입은 그의 고사는 유명하다.
197) 중국 송(宋)나라 철종(哲宗, 1094∼1098)의 연호(年號)이다.
198) 중국 송(宋)나라 문인촵정치가. 여릉(廬陵) 사람으로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또는 육일거사(六一居士)이다.
참지정사(參知政事)촵태자소사(太子小師) 등을 역임하다가 왕안석(王安石)의 개혁에 반대하여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저서에 『신당서』(新唐書), 『모시본의』(毛詩本義), 『육일시화』(六一詩話) 등이 있다.
199) 중국 당(唐)나라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의 연호(年號)이다.
200) 중국 당(唐)나라 남양(南陽) 사람으로 현종(玄宗)때 안록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일으켜
수양태수( 陽太守) 허원(許遠) 등과 합세해서 싸워 적을 토벌하는데 크게 공을 세웠다.
201) 중국 양(梁)나라 사람으로 자는 언화(彦和)이다.
무제(武帝)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산기상시(散騎常侍)를 거쳐 시중(侍中)에 올랐다.
조의(朝儀)·국전(國典)·조고(詔誥)·칙서(勅書) 등을 모두 한 손에 장악한 채
재물을 탐하고 뇌물을 좋아하여 임금을 기만하는 일이 잦았으므로 당시 조신(朝臣)들이 모두 심히 미워하였다.
202) 중국 수(隋)나라 사람. 자는 무세(茂世). 양제(煬帝) 때에 내사시랑(內史侍郞)이 되었다.
국가의 기밀을 전담하면서 임금에게 사건을 사실대로 보고 하지 않았으며,
또 매관(賣官) 매직(賣職)을 자행하였으므로 조야(朝野)의 질시와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203) 중국 당(唐)나라 사람으로 호는 월당(月堂)이다.
성품이 교활하고 권모 술수에 능하였는데 현종(玄宗) 때에 벼슬이 병부상서(兵部尙書)·겸중서령(兼中書令)에 이르렀다.
환관(宦官)·비빈(妃嬪)들과 결탁하여 임금의 동정(動靜)을 낱낱이 알아냈으므로 언제나 임금의 비위를 잘 맞추었다.
19년 동안 조정에 있으면서 정권을 제멋대로 휘둘러 끝내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일으키게 하는 장본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204) 중국 한(漢)나라 임치(臨淄) 사람. 지략과 기개가 있었다.
처음에 오왕(吳王)을 섬기가 이지(異志)가 있는 것을 보고 간하여도 듣지 않으므로 뒤에 양(梁)으로 가서 효왕(孝王)을 섬겼다.
205)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위(魏)의 변설가(辯說家). 자는 숙(叔).
진(秦)의 소왕(昭王)때 대신(大臣)이 되어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을 써서 제후(諸侯)들을 침략하였다.
206) 중국 당나라 사람. 우문(宇文)은 성, 사급(士及)은 이름으로 자는 인인(仁人)이다.
수양제(隋煬帝)의 사위가 되었으며 당나라에 벼슬하며 전중감(殿重監) 등을 역임했다.
207) 짐() 새의 깃과 털을 술에 담가서 만든 죽이는 독. 심히 지독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208) 중국 당(唐) 현종(玄宗)의 명신(名臣). 장안(長安) 사람으로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황문시랑(黃門侍郞)·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등을 역임하였는데 사람됨이 강직하여
현종이 조금만 과실이 있어도 즉각 간언과 상소를 올렸으므로 좌우(左右)에서 한후가 재상이 된 뒤로
폐하의 몸이 전보다 수척해졌으니 쫓아내라고 진의하였다. 뒤에 공부상서(部尙書)로 있다가 파면 당하였다.
209) 중국 주(周) 목왕(穆王) 때의 어진 신하. 태복정(太僕正) 벼슬을 역임하였다.
210) 중국 동(桐) 땅에 있는 궁(宮)으로서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을 추방하여 잠시 거처하게 했던 곳이다.
동(桐)은 탕(湯) 임금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서 태감이 정사를 어지럽히자 이윤이 이리로 보내어
선왕(先王)의 바른 정신을 상기하여 허물을 고치도록 하였다.
211)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 사람(181∼234년). 자(字)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忠武). 유비(劉備)를 보필하여 오(吳)와 연합하여 조조(曹操)를 적벽(赤壁)에서 격파하고 파촉(巴蜀)을 얻어
촉한국(蜀漢國)을 세우고 유비(劉備)가 죽은 뒤,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후주(後主)를 보필함에
오장원(五丈原)에서 사마일과 대전 중 병으로 진중에서 54세를 일기로 죽었다.
212) 중국 후한 말(後漢末) 영천(穎川)사람. 자는 덕조(德操).
인품이 청아하고 인재를 알아보는 지혜가 있었다. 수경(水鏡) 선생이라 일컬어 졌다.
213) 중국 삼국(三國)시대 촉(蜀)나라 사람. 이름은 통(統).
사원(士元)은 그의 자. 제갈량(諸葛亮)과 함께 유비(劉備)를 도와 촉나라 건국에 크게 기여 했다.
호는 봉추(鳳雛). 시호는 정(靖)이다.
214) 중국 촉한(蜀漢) 영천(穎川) 사람. 자는 원직(元直).
제갈량과는 친한 친구 사이로 소열(昭烈)에게 그를 천거하였다.
조조(曹操)가 그 어머니를 포로로 하자 서서는 소열을 떠나조조에게로 갔는데 어머니는 그걸 알고 목매어 자살하였다.
그후 서서는 벼슬이 어사중승(御史中丞)에 이르렀으나 조조를 위해서는 한 가지 계략도 제공하지 않았다.
215) 중국 삼국시대 위(魏)의 문제(文帝). 조조(曹操)의 장자로 비(丕)는 그의 이름.
자는 자환(子桓). 시호는 문(文). 조조가 죽은 후 그를 계승하여 승상(丞相)의 직에 있다가 이에 위왕(魏王)이 되었다.
후한(後漢) 건안 말 (建安 末)에 헌제(獻帝)를 폐하여 산양공(山陽公)이라 칭하고 한을 찬탈하여 낙양(洛陽)에 도읍하였다.
216) 옛날 중국에 있었던 전설상(傳說上)의 다섯 황제(黃帝). 전욱(頊), 제곡(帝), 제요(帝堯), 제순(帝舜).
제3장. 취 선(取善)
신이 살피건대, 군신(君臣)이 이미 서로 맺어지면 반드시 그 사람의 착한 점을 취하여,
모든 계책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들어서 시행하여야만 정치를 온전히 잘 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취선장(取善章)을 다음에 두었습니다.
이윤(伊尹)이 말하기를, "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못하며, 백성은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못하는 것이니,
<임금이> 스스로 높다 하여 사람을 낮게 얕보지 마시옵소서.
필부(匹夫)와 필부(匹婦)가 스스로 지극하게 다하지 않으면 임금은 그 공효를 이루지 못합니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함유일덕(咸有一德)하동. 이윤 이 태갑에게 경계하여 한말.)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임금과 백성이 서로 기다리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을 말한 것은,
태갑(太甲)으로 하여금 감히 <이 점을>소홀히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무(無)는 '말라[毋]'는 뜻과 같다.
이윤이 또 말하기를, '임금과 백성의 부리고 섬기는 것은 비록 귀천(貴賤)이 다르나,
사람에게 착한 것을 취하는 데는 귀천의 구별이 없다.'하니 대개 하늘이 하나의 이치로써 사람에게 품부(품賦)하여
<이것이> 흩어져서 만 가지 선한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임금은 천하의 만 가지 선한 것을 합한 후에 이치가 순일(純一)한 것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며,
만일 스스로 높다하여 사람을 낮게 얕보면 필부가 스스로 임금에게 지극하게 다하지 않으므로 하나의 선한 것도 갖추지 못하여
임금이 또 그 공효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덕(德)에 떳떳한 법이 없어서 선에 주재하는 것이 법이 되며, 선에 떳떳한 주재가 없어서 능히 순일한 것에 합하는 것이다.
채씨는 말하기를, "떳떳하지 않다는 것은 어는 하나에 집착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사(師는) 법(法)이요, 협(協)은 합한다는 말이며, 덕(德)은 선을 총칭한 것이요,
선은 덕을 실천하는 것이며, 일(一)은 근본(本原)을 모아서 합한 것을 말한 것이다.
덕은 여러 선한 것을 겸한 것인데, 선에 주재하지 아니하면 한 근본에서 만 가지 다른 이치를 얻지 못할 것이며,
선은 순일(純一)한 것에 근원한 것인데 이 순일한 것이 합하지 아니하면,
만 가지 다른 것이 한 근본의 미묘한 것에 통달하지 못하므로,
범박(汎博)하여 여러가지 선(善)에 구하며 요약하여 지일(至一)한 이치에 회통하는 것이니
이것이 성학(聖學)에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조리(條理)의 차례이며,
공자가 이른바 일관(一貫)이라는 것과 거의 같다." 하였습니다.
기자(箕子)217)가 무왕(武王)에게 아뢰기를, "무릇 그 백성들 중에서 계책을 가진 이나 시행하거나 준수하는 이가 있다면,
임금께서는 그들을 생각하시며, 극(極)에 합하지 않더라도 허물에 걸리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옵소서.
그리고 부드러운 얼굴 빛으로 내가 좋아하는 바는 덕(德)이라고 하거든,
임금께서는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흥범(洪範))
채씨는 말하기를, "계책을 가졌다는 것은 모책(謀策)이 있는 자이고, 시행한다는 것은 시설(施設)이 있는 자이며,
준수한다는 것은 자기가 지켜야 할 도를 지키는 자인데, 이 셋은 임금이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극(極)에 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에 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허물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악(惡)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것은> 중간치의 사람들이다. 받아들이라는 것은 거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밖에 드러나게 편안하고 화한 빛이 있거나 마음으로 덕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으면 복을 내려 줄 것이니,
복이라는 것은 작록(爵祿)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말이 착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등용하지 않고, 사람이 악하다고 해서 그 말까지도 버리지는 않는다." 하였습니다. (논어)
남헌 장씨(南軒張氏)가 말하기를, "말이 착하다고 해서 등용하면 실천성이 없는 이가 천거되는 일이 있어서 이것은 본래 불가하다.
그러나 비록 소인의 말이라도 <이것이> 착한 말이라면 또한 착한 말이 되는 데는 해롭지 않으니,
사람이 악하다고 해서 그 말까지 버린다면 착한 말이 버려진다." 하였습니다.
순(舜)은 정말 큰 지자(知者)이다. 순은 묻기를 좋아하였고 이언(邇言)까지도 살피기를 좋아하였다.
<남의> 나쁜 점은 숨겨 주고 좋은 점은 선양해 주었으며, 극단(極端)을 피하여 그 중(中)을 백성에게 베풀었으니,
이것이 바로 순의 순된 소이이다. (「중용」○ 역시 공자의 말)
주자는 말하기를. "순(舜)이 큰 지자가 된 까닭은 그 스스로 시행하지 않고 남에게서 취하여 시행하였기 때문이다.
이언(邇言)이란 것은 천박한 말인데 <순은 천박한 말까지도> 오히려 반드시 살피었으니 그는 선(善)을 남겨 놓지 않았다.
선하지 못하면 숨기어 선양(宣揚)하지 않았고, 그것이 선하면 전파하여 숨기지 않았다.
그 넓고 밝은 것이 또 이와 같으니, 누가 착한 것을 말하기를 즐거워하지 않겠는가.
양쪽 극단이란 것은 뭇 의논이 일치하지 않는 극단을 말한다. 대개 모든 사물은 다 양쪽 극단이 있는데 크고 작거나 두텁고 얇은 따위이다.
선 가운데서도 또 그 양쪽 극단을 피하여 중(中)을 헤아려 취하여야만, 이것을 운용하면 택하는 것이 정밀하고 행하는 것이 지극하게 된다.
그러나 나에게 있는 권도(權度)가 정밀하고 적절하여 어긋나지 않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렇게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위대한 순은 선한 것을 남과 같이 하기를 좋아하여서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랐으며, 남에게서 취하여 선을 행하기를 즐거워하였다.
농사짓고 질그릇 굽고 고기잡이하는 데서부터 황제가 되기까지 남에게서 취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선을 남과 같이 한다는 것은 천하의 선을 공적(公的)으로 하고 사적(私的)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은 미천할 때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지었고, 하빈(河濱)에서 질그릇을 구웠으며, 뇌택(雷擇)에서는 고기잡이를 하였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또, "남에게서 선을 취하여 하는 것은 곧 남이 선을 하기를 돕는〔與〕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남이 선을 하는 것을 돕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 '여(與)는 허(許)한다. 돕는다.' 는 말과 같다.
남의 선을 취하여 내가 행하면 곧 남에게 더욱 선을 권면(勸勉)하는 것이니, 이것은 내가 그 사람이 선을 행하는 데 돕는 것이다.
능히 천하의 사람이 선을 행하도록 권면한다면 군자의 선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는가.
이것은 선을 즐겨 하는 성의가 당초부터 피차의 사이가 없으므로,
남에게 있는 것을 받아들여 넉넉하게 하고, 내게 있는 것도 남에게 미치게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선민(先民)이 말하기를 추요()에게도 물어보라 하였다." 하였습니다. (대아(大雅)의 판편(板篇))
주자는 말하기를, "선민은 옛 현인(賢人)이요, 추요()는 나무꾼이다." 하였습니다.
○ 풍성 주씨(豊城朱氏)는 말하기를, "천박한 말에도 지극한 이치가 있으니, 그 사람이 천하다고 해서 소홀히 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에 말하기를, "지혜로써 임하니 <이것은> 대군(大君)으로서 의당(宜當)한 길이며,
길(吉)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임괘(臨卦) 六五의 효사(爻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5가 높은 자리에 거하여 아래 2의 강중의 신〔剛中之臣〕에 상응해 있으니,
5는임금의 지위이고 2는 신하의 자리이니, 5·2는 서로 응하는 효(爻)이다.
이것은 임금이 어진 신하에게 국정을 위임하여 힘 안 들이고도 나라가 다스려지는 상태인데, 곧 지혜로써 아래 백성에 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개 한 사람의 몸으로 광대한 천하에 임하는 데 있어서, 만약에 구구(區區)한 일까지 전담한다면 어찌 능히 모든 일에 두루 도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임금이> 스스로 전담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오직 천하의 선(善)을 취하고, 천하의 총명한 이에게 위임한다면, 모든 일이 두루 도달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크게 지혜로운 것이요, 대군의 의당한 일이며 그 길(吉)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천하는 지극히 광대하고 일의 기틀은 지극히 번다하기 때문에 임금이 묘연(然)한 몸으로서 고요하게 거처하고,
간략하게 살면서 상응하는 데 여유있게 하는 것은 다만 천하의 지혜를 모아서 천하의 일을 결단하는 데 있을 뿐입니다.
사람은 제 각기 지혜가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이라도 한 가지의 지혜는 있는 것이니,
만약에 뭇 지혜를 다 취하여 하나의 지혜로 합하고 난뒤 골고루 살피고 정밀하게 밝히어 중(中)을 얻는다면,
천하가 비록 광대하다 하더라도 손바닥 위에서 <물건을> 운용하는 것과 같고, 일의 기틀이 비록 번다하다 하더라도
이것을 결단하는 것은 동이[]를 세우는 것처럼 쉽습니다.
대개 천하의 눈〔目을 <나의> 눈으로 삼는다면 보이지 않는 것이 없고, 천하의 귀〔耳〕를 <나의> 귀로 삼는다면 들리지 않는 것이 없으며,
천하의 마음〔心〕을 나의 마음으로 삼는다면 생각하지 못할 지혜가 없을 것이니,
이것이 성스러운 황제나 밝은 왕이 천하를 고무(鼓舞)하면서도 심력(心力)을 수고롭게 하지 않아도 되는 소이입니다.
<임금으로서> 이에 배치되면 스스로 착한 체하는 데 엄폐(掩蔽)되고, 스스로 전천(專擅)하는 데 고질이 되며,
자기의 총명을 스스로 자랑하여 일세(一世)를 업신여기고, 천하의 사람들을 다 자기만 못한 것으로 여깁니다.
장막 사이나 담장(蕭墻) 안에서도 오히려 견문이 미치지 못한 것이 있는데 하물며 광대한 천하에 서겠습니까.
아, 스스로 성스러운 지혜를 가졌다고 하지 않고 백성들에게서 착한 것을 힘써 취하는 것은 비천한 것 같지마는 실은 순(舜)이 실행한 것입니다.
순의 총명이 어찌 남만 못하여서 바드시 '남에세 취하여 선을 했다.' 하겠습니까.
참으로 도리는 무궁하고 성인의 마음은 광대·공명하여, 하나의 착한 말을 들으면 패연히 그것으로 말미암아 남과 자기의 간격을 두지 아니하기 때문에,
천하의 선을 모아서 스스로 시행(施行)하였으니, 이것이 순이 지극히 성스럽게 된 소이입니다.
임금으로서 어찌 스스로 성스러운 임금인 체하고, 스스로 전천(專擅)하면서 순보다 고명한 것을 바라서, 도리어 어둡고 막힌 길을 걸어가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묻기를, "임금이 비록 여러 사람의 계책을 모으더라도 어진 선비들이 명에 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므로,
신이 대답하기를, "다만 임금이 선을 좋아하는 성의가 없는 것만 근심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만일 선을 성심껏 좋아한다면 선비들이 천리도 가깝게 여기고 모여들 것입니다.
어진 이는 그 도를 행하려고 할 것이고, 지혜로운 이는 그 계책을 다하려 고할 것이며, 곧은 이는 그 충성을 바치려고 할 것이고,
용맹스러운 이는 그 힘을 다하려고 할 것이니, 어찌 선비가 명에 응하지 않을까 근심하겠습니까.
만약에 말로만 선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그 실상이 없으면, 여러 계책이 이미 모여도 권도(權度)의 정당성을 잃어서,
난초의 향기를 가리켜 고약한 냄새라 하고, 숯을 가리켜 희다고 할 것이며, 모야()를 가리켜 둔하다고 하고,
납으로 만든 칼을 가리켜 날카롭다 하며, 또 혹 비(非)를 시(是)라 하고 정(正)을 사(邪)라 하더라도 막연하게 취하거나 버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발언(發言)은 궁정에 가득 찼는데 하나도 시행하지 못하고, 마치 묘연히 깊은 우물 속에 빠진 것과 같다면,
선비는 실망하고 돌아가버릴 것입니다. 그 뒤에 비록 선한 말〔善言〕을 구하거나 어진 선비를 초빙한다 하더라도
누가 감히 그 명에 응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모두 임금이 스스로 취하는 것입니다.
득실(得失)이 이와 같으니 전하께서는 굽어살피옵소서.
< 주 >
217) 중국 은(殷)의 주왕(紂王)의 숙부(叔父), 은(殷)이 멸망한 수 기자조선(箕子朝鮮)의 시조(始祖)가 되었다고 하나 이설(異說)이 있다.
기자(箕子)는 미자(微子)·비간(比干)과 함께 은(殷)의 삼인(三仁)으로 꼽혔다.
제4장. 식시무(識時務)
신이 살피건대, 지혜로운 이는 알지 못하는 것이 없지마는, 마땅히 힘써야 할 것을 급히 하여야 하니,
여러 계책이 비록 모였다 하더라도 반드시 면저 시무(時務)에 절실한 것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식시무장(識時務章)을 취선장(取善章) 다음에 두었습니다.
◆ 시무의 마땅히 알아야 할 것에 대한 말씀
학문을 논할 때는 곧 이치를 밝혀야 하고, 정치를 논할 때는 반드시 체계를 알아야 한다. (정씨유서(程氏遺書) ○ 명도 선생의 말 )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학문을 논하되 이치에 밝지 못하면 한갓 기록하여 외우는 사장(詞章)의 말단적인 것을 일삼을 뿐이요,
학문을 안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며, 정치를 논하되 그 체계를 알지 못하면 한갓 제도와 절문(節文)의 말단적인 것을 강(講)할 뿐이요,
정치를 안다고 하지는 못한다."하였습니다.
생각이 선하거든 동(動)하되, 동하는 것을 때에 마땅하게 하라. (상서(商書) 열명(說命))
채씨는 말하기를, "선은 이치에 합당하다는 뜻이요, 시(時)는 때에 마땅하다는 뜻이다.
생각이 진실로 이치에 합당하여야 하지마는, 동하는 것이 그 때가 아니면 오히려 유익함이 없기 때문에,
성인은 이 세상에 수작(酬酢)하는 것이 또한 그 때에 마땅하게 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 역경(易經)에 말하기를. "천지는 순조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해와 달은 그 궤도에 지나치지 아니하고, 사시(四時)는 그 절기에 어긋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성인도 순조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형벌이, 공평하고 맑아서 백성들이 복종한다." 하였습니다.
○ 설씨(薛氏)는 말하기를, "큰일에 처하면 인식이 앞서고 결단(決斷)은 그 다음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창업(創業)의 도에 대한 말씀
○ 「역경」에 말하기를, "구름과 천둥은 둔(屯)인데 군자는 이를 보아서 나라를 경륜(經綸)한다." 하였습니다. (둔괘(屯卦)128) 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구름은 비가 될 것이지마는, 이루지 못한 것이니,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인 때문에 둔괘이다.
군자는 <이> 둔괘의 상(象)을 잘 관찰해 보고서 천하의 일을 경륜하여 세상을 둔란(屯難)에서 구제한다.
경륜(經綸)은 영위(營爲)하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둔란한 세상은 군자가 영위하여야 할 때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황제(黃帝)와 요(堯)·순(舜)이 나와서 그 변화를 통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싫증 나지 않게 하며,
신묘하게 교화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마땅하게 하였다.
역(易)은 궁(窮)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 간다.
이 때문에 하늘이 도와 주므로 길하여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역(易)의 계사(繫辭))
정자는 말하기를, "변(變)을 알고 화(化)를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금의 풍기(風氣)가 같지 않으므로 그 기용(器用)도 또한 다르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 변화를 통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싫증 나지 않도록 각각 그 시대를 따라서 알맞게 하였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군자가 창업수통(創業垂統)219)하는 것은 계승해 나가도록만 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앞에서 왕업의 터전을 세우고 뒤로는 후세에 왕통을 전하여,
그 바른 것을 잃지 않고 후세로 하여금 계속하여 시행할 수 있도록 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의 불의(不義)를 행하고 한 사람의 죄없는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는다 하더라도 이런 일은 하지 않는다.
주자는 말하기를, "한 가지의 불의를 행하고 한 사람의 죄없는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더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이 바른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수성(守成)의 도에 대한 말씀
○부열(傅說)이 아뢰기를, "선왕의 이룬 법〔憲〕을 보아서 길이 허물〔愆〕이 없이 하옵소서." 하였습니다.
(상서(商書)의 열명(說命) ○ 부열이 고종(高宗)을 경계한 말 )
채씨는 말하기를, "헌(憲)은 법이요, 건(愆)은 허물이다.
반드시 선왕의 법을 살펴보아야 한다함은, 선왕이 이룬 법을 자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경」에 말하기를, 허물을 짓지도 않고 잊지도 않으며, 전장(典章)을 따르리라." 하였습니다. (대아(大雅)의 가락(假樂)편 )
주자는 말하기를, "건(愆)은 허물이요, 솔(率)은 따르는 것이며, 장(章)은 선왕의 전법(典法)이다.
행하는 것이 허물을 짓는 일도 없고 잊지도 않는 것은 선왕의 옛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 한(漢)나라 찬후(侯)인 소하(蕭何)220)가 죽고 조참(曹參)221)이 하(何)를 대신하여 정승이 되었을 때,
그는 한결같이 하의 약속을 따라서 정사를 해 나갔습니다.
군국(郡國)의 관리 중에서 문사(文辭)에는 서툴러도 중후한 장자(長者)면 곧 불러서 정승으로 삼고,
관리 중에 언문(言文)에 매우 깊고 명성(名聲)에만 힘쓰는 이는 문득 축출하였으며,
또 사람에게 조그마한 허물이 있는 것을 보면 오로지 덮어서 가려 주었기 때문에,
부중(府中)에는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문제(文帝)는 국상(國相)이 <시책을> 꾀하지 않는 데도,
나라가 저절로 다스려지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니,
조참이 아뢰기를, "고제(高帝)께서 소하와 더불어 천하를 평정하여 법령이 이미 밝아졌으니,
폐하께서는 가만히 계시고 저희들은 직분을 지켜 <소하의> 법령을 잃지 않고 지킨다면 또한 가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문제가 이르기를, "착하도다." 하였습니다. 조참이 정승이 된 지 3년 만에 백성들이 노래하기를, "소하가 만든 법이 참으로 바르도다.
조참이 뒤를 이어 그의 법을 지키니, 정사는 절로 되고 백성들이 편하구나." 하였습니다.
◆ 다음은 경장(更張)의 도에 대한 말씀
역경(易經)에 말하기를, 항(恒)은 형통(亨通)하여,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로우니라." 하였습니다. (항괘(恒卦)222) 단사(彖辭))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항(恒)은 오래 간다는 뜻인데, 항도(恒道)는 형통할 수 있어서 어느 일우(一隅)만을 지켜 변(變)을 알지 못함이 아니다.
그러므로 가는 것이 있음이 이로운 것이다. 오직 그 가는 것이 있기 때문에 오래 갈 수 있다. 만약 일정하다면 언제나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수시로 변역(變易)하는 것이 곧 상도(常道)이니,
천지가 오래 가는 도와 천하가 오래 가는 이치는, 도를 하는 이가 아니면 누가 능히 이것을 알겠는가."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개혁(改革)하자는 말이 세 번 이루어지면 믿음이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혁괘(革卦)223) 9·3 효사)
정자는 말하기를, "혁언(革言)은 마땅히 개혁하여야 한다는 의논이고, 취(就)는 성취한다는 것이며 합한다는 것이다.
마땅히 개혁하여야 한다는 말을 살펴보아 이 말이 세 차례나 다 합하면 믿을 만하다.
마땅히 개혁하여야 할 일을 만약 두려워하여 개혁하지 않는다면 때를 잃어서 해가 된다.
오직 마땅히 지극히 신중하게 하되 스스로 강하다고 자신이 맡지 말고,
공론을 살피고 상고하여 개혁하자는 의논이 세 차례 이루어지는데 이르러서 이것을 개혁하면 과실이 없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거친 것을 포용하며, 큰 강물을 걸어서 능히 건너며, 먼데 것을 버리지 아니하며,
붕당(朋黨)을 없애면 증도(中道)에 합당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태괘(泰卦)224) 9·2 효사)
정자는 (程子)는 말하기를, "거친 것을 포용하고, 큰 강물을 걸어서 능히 건너며, 먼데 것을 버리지 아니하며,
붕당을 없애는 이 네 가지는 태평세대에 처하는 도이다.
사람의 마음이 안일하고 방자하면 정치가 이완(弛緩)되고 법도가 해이(解弛)해져서 모든 일이 절도가 없게 된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반드시 거칠거나 지저분한 것이라도 포용하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시정(施政)이 너그러워지고 찬찬하고 세밀해져서, 폐해가 되는 것이 개혁되어 일이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이 편안해진다.
만약 널리 포용하는 도량은 없으면서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만 있다면 심원(心遠)한 생각은 없고,
사납게 소요(騷擾)할 근심만 있어서 묵은 폐단을 벌릴 수 없고 새로운 환란(患亂)만 생긴다.
그러므로 사람을 포용할 도량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강물을 걸어서 건넌다.' 는 것이란,태평하고 편안한 세상에는 사람의 마음이 오래도록 안일한데 젖어서 굳게 지키는 것만을 편하게 여겨,
묵은 습관을 버리는 데 나태(懶怠)하고 변경하는 것을 꺼리니, 강물을 뛰어서 건널 용기가 있지 않으면 능히 이 때를 당하여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강물을 걸어서 건넌다.'는 것은 강(剛)하고 용감하여 족히 깊은 곳을 건너고, 위험한 곳을 넘어갈 수 있음을 말한다.
옛날부터 태평스러운 치세(治世)가 점점 쇠퇴해지는 것은 대개 안일에 젖어서 묵은 습관을 버리지 못하여 그런 것인데,
강단(剛斷)이 있는 임금과 영민(英敏)한 신하가 없으면, 능히 분발(奮發)하여 그 묵은 폐단을 개혁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강물을 걸어서 <능히> 건너야 한다고 한 것이다.
위에 말한 '포용한다.' 는 것은 포함하고 관용(寬容)한다는 뜻이요, 여기에 말한 강물을 걸어서 능히 건너야 한다는 것은 분발하여 개혁한다는 뜻이다.
서로 상반되는 것 같은 것은 포용하는 아량을 가지고 강하고 과단성 있게 시행하는 것이, 곧 성현의 하시는 것임을 알지 못함이다.
'먼 데 것을 버리지 아니한다.' 는 것은 태평 세대에 인심이 안일에 젖으면 구차하게 안일해질 뿐인데,
어찌 능히 먼 데 일에까지 미칠 깊은 생각이나 걱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
태평스런 때를 다스리는 이는 마땅히 모든 일이 비록 먼 데 것이라도 버려서는 안된다.
일의 은미(隱微)한 것이나 어질고 재주 있는 이가 낮은 곳에 있는 것이 다 먼 데의 것으로서 시대가 태평스러우면 잊어버리기가 쉽다.
'붕당(朋黨)을 없앤다.'는 것은 때가 이미 태평스러우면 사람들이 안일에 젖어서, 그 마음이 방자하여 절도를 잃기 때문에,
이것을 제약하여 바르게 하려 한다면 붕당을 만드는 사사로움을 근절해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붕당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옛날부터 법을 세우고 일을 제재하는 것은 인정에 얽매여서 마침내 시행되지 못한 것이 많은데,
만약 사치를 금하자고 하면 가까운 친척에게 해가 된다고 <걱정하고>, 전산(田産)을 제한하자고 하면 귀족에게 해가 된다고 걱정하니,
이러한 유(類)를 대공(大公)으로 단행하여 실행하지 않는다면 붕당에 이끌리게 된다.
태평 세대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붕당을 능히 없애지 않는다면 다스려지기가 어렵다.
태평 세대를 다스리는 도가 이 네가지에 있다면 능히 중도에 합당할 수 있다. 상(尙)은 합당하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또 그는 말하기를, "다스리는 도에는 근본을 좇아 말한 것도 있고, 일을 좇아 말한 것도 있다.
근본을 좇아 말한다면 오직 임금의 마음이 그른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인데,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면 조정이 바르게 되고,
조정이 바르게 되면 백관(百官)이 바르게 된다.
그리고 일을 좇아 말한다면 <세상을> 구제하지 않겠다면 그만이지마는, 만약에 구제해야 하겠다고 한다면 변혁을 해야 할 것인데,
큰 변혁이 있으면 큰 이익이 있고 작은 변혁이 있으면 작은 이익이 있다." 하였습니다.
○ 동씨(董氏)는 말하기를, "금슬(琴瑟)의 소리가 고르지 못하면 반드시 줄을 풀어서 다 바꾸어 갈아야만 고루어진다.
정치를 하는 데도 잘 다스려지지 아니하면 반드시 변혁하여 다시 바꾸어야 다스릴 수 있다.
옛 사람의 말에, '못에 다달아 고기를 부러워하는 것은 물러가서 그물을 만드는 것만 같지 못하고,
정치에 당면하여 다스려지기를 소원하는 것은 물러가서 다시 개혁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였으니 개혁하면 잘 다스려 질 수 있고,
잘 다스려지면 재해가 날로 없어져서 날로 복록이 온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옛날 선위(禪位)의 아름다운 것으로는 요와 순보다 나은 것이 없다.
순이 요를 계승하여 왕위를 전해 받은 지 28년간에 예악(禮樂)·형정(刑政)에 있어서 새로이 고쳐진 것이 많았다.
그 큰 것으로는 16정승을 기용한 것인데 이것은 다 요가 기용하지 못한 것이며, 또 4흉인을 제거한 것인데 이것은 모두 요가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순은 혐의하지 않았고, 요는 그것을 죄로 삼지 않았으며, 천하의 백성들은 그것을 그르다고 하지 않았으니,
묵은 습관을 따르고 개혁하며, 덜고 더함은 오직 의리로써 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시무(時務)는 어느 때나 한결같지 않고 각각 마땅한 것이 있사오니, 그 대요를 요약하면, 창업(創業)한다는 것과,
부조(父祖)의 업을 지키는 것과 개혁한다는 것 세 가지뿐입니다.
창업의 도는 요(堯)·순(舜)과 탕(湯)·무(武)의 덕으로 개혁할 세태를 당하여야 하되
천리(天理)와 인사(人事)에 순응하지 않으면 아니 되기 때문에 이것은 더 논의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소위 부조의 업을 지킨다는 것은 성스러운 임금과 어진 대상에 의하여 법을 창제해서,
정치 기구를 다 베풀고 예악을 융성하게 하면, 후세의 임금과 후세의 어진 이는 다만 그 이룬 어진 법구에 따라
가만히 팔짱을 끼고 이것을 준수하는 것 뿐인 것을 말한 것이오며, 소위 개혁한다는 것은,
<나라가> 극성하면 가운데에 미약해지고, 법이 오래 되면 폐가 생기고, 마음이 안일에 젖으면 고루한 것에 인습되고,
백 가지 제도가 해이해지면 나날이 어긋나서 나라를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반드시 현명한 임금과 현철한 신하가 있어서 개연히 일어나 근본을 붙들어,
혼탁한 것을 다시 일으키고 묵은 인습을 깨끗이 씻어서 숙폐(宿弊)를 개혁하며, 선왕의 뜻을 잘 이어서 일대의 규모를 새롭게 한 뒤,
그 공업(功業)이 선열에 빛나고 후손〔後裔〕에 끼쳐지는 것입니다.
'부조(父祖)의 업을 지킨다'는 것은, 비록 중주(中主)와 구신(具臣)이라 할지라도 또한 잃지 않고 지킬 수 있으므로 부조의 업을 지킴은 쉬운 것입니다.
개혁 한다는 것은 높은 견해나 영재(英才)가 있지 않으면 할 수 없으므로 어려운 것입니다.
마땅히 부조의 업을 지키기만을 하여야 할 때인데 개혁에 힘을 쓴다면,
이것은 병도 없는데 약을 먹는 것과 같아서 도리어 병을 얻게 되는 것이요,
마땅히 개혁을 하여야 할 때인데 준수(遵守)에 힘을 쓴다면,
이것은 병에 걸렸는데 약을 물리치는 것과 같아서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는 격입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부조(父祖)의 업을 지킨다는 것은 크게 무도한 세상이 아니라면
다 능히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이지마는, 만일 개혁을 하려면 반드시 그 사람을 기다려야 할 것이니,
비록 개혁을 하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하기에,
신은 답하기를. "그렇지 않다. 임금이 이 세상에 뜻이 없다면 그만이겠으나,
만일 성심으로 나라가 다스려지기를 원하셔서, 누추한 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밝게 들추어 낸다면 어찌 그 사람이 없겠는가." 하였습니다.
옛날부터 어찌 임금께서는 도를 배우고 어진 이를 좋아하며, 창생을 구조할 뜻이 있으시면서도 어진 이를 구하여도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정치를 할 수 없었던 일이 있었겠습니까.
다만 그 배우는 것이 도가 아니요, 좋아하는 것이 어진 이가 아니므로 뜻은 비록 부지런하나 도는 더욱 이탈되고, 어진이는 더욱 멀어질 뿐입니다.
비유하건대, 자손이 선인(先人)의 옛 집을 지키고 있는 것과 같으니, 해가 묵어서 재목이 썩어 무너지려고 하는데,
대목〔工師〕을 만나지 못하면 개수(改修)할 수 없기 때문에, 집 주인은 천 리길이라도 멀다 하지 않고 가서 급히 대목을 구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대목을 얻지 못한다고 핑계하면서 앉아서 그 무너지는 것만 지켜보고 있겠습니까.
폐정(弊政)을 개혁하는 것도 어찌 이것과 다르겠습니까.
아, 인정(人情)은 옛 풍속에 안일하고, 세습은 전대의 법규에 젖어서 마치 기둥을 아교폴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타려고 하며〔膠柱瑟〕,
나무를 지키고 앉아서 토끼를 기다리는 〔守株待兎〕것과 같이, 변통할 줄도 모르고,
구차하게 눈앞에 아무 일이 없는 것만을 다행으로 여기다가, 뜻밖에 엄청난 화근을 빚어내는 일이 많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경계하옵소서.
< 주 >
218) 「주역」 64괘 가운데 세 번째 괘.
219) 나라를 처음으로 세워 왕통을 전하는 것이다.
220) 중국 한(漢)나라 고조(高祖) 때의 공신(功臣). 패현(沛縣) 사람. 장량(張良),
한신(韓信)과 더불어 한의 삼걸(三傑)의 한 사람으로 고조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221) 한 고조(漢高祖)의 공신. 고조와 동향(同鄕)인 패현(沛縣) 사람.
소하(蕭何)와 더불어 고조를 보좌하여 천하를 평정하였고,
소하가 죽은 뒤에 그 유지(遺志)에 따라 한(漢)의 재상이 되어 소하의 법을 잘 실행하여 한 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하였다.
222)「주역」 64괘 가운데 32번째 괘.
223)「주역」 64괘 가운데 49번째 괘.
224)「주역」64괘 가운데 열 한 번 째 괘.
제5장. 법선왕(法先王)
신이 살피건대, 비록 시무(時務)에 있어서 그 마땅한 것을 능히 밝게 깨닫는다 하더라도 선왕(先王)의 정치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비유하건대,
마치 그림쇠[規矩]를 따르지 않고 손으로 방원(方圓)을 그리는 것과 같아서, 마침내 능히 세도(世道)를 만회(挽回)하여 잘 다스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법선왕 장(法先王章)을 이 다음에 두었습니다.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이루(離婁)의 밝은 시력과 공수자(公輸子)의 교묘한 기술로도, 그림쇠[規矩] 를 쓰지 않으면 방원을 그리지 못하고,
사광(師曠)의 밝은 청각으로도 6률(六律)225)을 쓰지 않으면 5음(五音)226)을 바르게 탈 수 없으며,
요·순의 도(道)로도 인정(仁政)을 행하지 않으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 수 없다." 하였습니다.(「맹자」하동)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이것은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법도(法度)가 없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인데,
인정(仁政)이라는 것은 천하를 다스리는 법도이다." 하였습니다.
이제 어진 마음과 어질다는 소문이 있으면서도 백성들이 그 은택을 입지못하여,
후세에 모범이 될 수 없는 것은 선왕의 도를 실천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어진 마음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어질다는 소문이란 남을 사랑한다는 소문이 사람들에게 들리는 것이며,
선왕의 도란 인정(仁政)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범씨는 말하기를, "제(齊)나라 선왕(先王)은 한 마리의 소가 사지(死地)로 끌려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여,
양(羊)을 가지고 대체하라고 한 것은 어진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양(梁)나라 무제(武帝)는 종일토록 단 한 끼의 소사(蔬食)만을 하고 종묘(宗廟)애는 밀가루〔〕를 제물(祭物)로 하며,
사형을 시킬 때는 반드시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천하가 그의 인자(仁慈)한 것을 알았으니,
이것은 어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나라 선왕 때는 제나라가 다스려지지 아니하였고,
무제의 말엽에는 강남(江南)이 크게 어지러웠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는 어진 마음과 어질다는 소문은 있었지마는 선왕의 도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한갓 착하기만 한 것으로는 정치를 하기에 부족하고, 한갓 법도만으로는 능히 저절로 행하지 못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한갓 도(徒)자는 공연하다는 뜻과 같다.
그 마음에는 착한 것을 가지고 있으나 정치에 이것을 베풀지 않는 것을 한갓 착하기만 한 것〔徒善〕이라 하고,
그 정치에 법도를 베풀기는 하나 어진 마음이 없으면 이것을 한갓 법도〔徒法〕라고 한다.
정자는 일찌기 말하기를, '정치를 하는 데는 요컨대 반드시 기강(紀綱)과 문장(文章)이 있고,
권형(權衡)을 삼가고 도량을 살피며, 법을 읽고 물가(物價)를 고르게 하는 것까지 하나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하고,
또 말하기를, '반드시 관저(關雎)와 인지(麟趾)의 뜻이 있어야만 주관(周官)의 법도를 행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 말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하였습니다.
높게 하려면 반드시 언덕을 이용하고, 낮게 하려면 반드시 개울과 못을 이용 한다하니,
정치를 하면서 선왕의 도를 따르지 않는다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언덕은 본래 높고, 개울과 못은 본래 낮으니, 높게 하려고 하든지 낮게 하려고 하는 사람은,
이것으로 인하여 해 나가면 힘은 적게 들고 성공은 많아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림쇠〔規矩〕는 방원(方圓)의 극치이요, 성인은 인륜의 극치이다.
임금 노릇을 하려면 임금의 도를 다하여야 하고, 신하 노릇을 하려면 신하의 도를 다하여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다 요·순을 모범으로 삼아야 할 뿐이다.
순이 요를 섬기던 방법으로써 임금을 섬기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기 임금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요,
요가 백성을 다스리던 방법으로써 백성을 다스리지 않으면 그 사람은 백성을 해치는 사람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요·순을 모범으로 삼아서 군신의 도를 다하는 것은,
마치 그림쇠를 사용하여 방원(方圓)의 극치를 다하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부열(傅說)이 말하기를, "사람을 견문이 많은 이를 구하는 것은 오직 일을 세우기 위한 것인데,
옛 가르침을 배워야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일을 하는데 옛 <가르침을> 본받지 아니하고도, 오래 갈 수 있다는 말은 열(說)이 듣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열명(說命))
채씨는 말하기를, "옛 가르침은 옛 성스러운 임금의 교훈이니, 몸을 닦고 천하를 다스리는 도를 기재한 이전(二典)·삼모(三謨) 같은 것이다.
옛 가르침을 본받지 아니하고도 길이 세상이 다스려지고 오래 편안할 수 있다는 말을 열(說)이 듣지 못했다는 것은,
절대로 이런 이치가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선왕(先王)의 세대는 도로써 천하를 다스렸고, 후세에는 오직 법만으로써 천하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그는 또 말하기를, "3대(代)와 같은 다스림을 후세에서도 결코 회복할 수 있으나,
3대와 같이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결국 도에 구차하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신은 살피건대, 뒷 세상의 임금이 3대와 같이 성대하게 다스리는 것을 사모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마는,
다만 고금이 다르다고 해서 감히 그대로 시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명도(明道)선생의 차자(箚子)에는 3대를 회복할 수 있다고 극론하였사온데,
그 말이 모두 사실을 취하여, 의거하여 시행할 만하기 때문에, 삼가 다음에 기록하였습니다.
정자는 신종(神宗)에게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신은 삼가 아룁니다.
성인의 법을 세우는 것은 모두 인정에 근거하고 물리(物理)에 극진하기 때문에,
비록 이제(二帝)·삼왕(三王)이라도 때를 따라 개혁하고 일을 따라 더하고 줄이는 제도가 없지 않았으나,
정치하는 근본과 백성을 다스리는 도(道)의 요령이야 앞 성인이나 뒷 성인들이 어찌 같지 않은 것이 있겠습니까.
대개 고금(今古)과 치란(治亂)을 논할 것 없이 만약 생민을 다스리는데 궁한 것이 있다면, 성스러운 임금의 법으로써 개혁할 수 있습니다.
고금과 치란을 (논할 것 없이 만약 생민을 다스리는 데 궁한 것이 있다면,
오직 성스러운 임금의 법으로써 그 폐(弊)를 고칠 수있음을 말합니다.)후세에서도 능히 이 도를 다한다면 크게 다스려지고,
혹시 편벽되게 한다면 소강(小康)상태가 될 것이니, 이것은 역대를 내려오면서 밝게 실증(實證)된 것입니다.
만일 한갓 옛 것에 얽매이기만 하여 지금에 능히 이것을 시행하지 못하고,
다만 형식적인 이름에만 따르고자 하며 그 실질적인 시행을 그만둔다면, 이것은 비루한 선비의 소견일 것이니 어찌 치도(治道)를 논할 수 있겠읍니까.
그러나 혹시, 오늘날의 인정이 모두 옛과는 다르니 선왕이 하던 업을 지금 회복할 수는 없다고 하여,
당장 눈앞에 보이는 편리한 것만 힘쓰고 고원(高遠)한 것에는 힘쓰지 않는다면, 이것은 아마 크게 유위(有爲)한 이론이 아닐 것이오며,
지금 당면하고 있는 지극한 폐단을 구제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령·의복·음식이나 궁실(宮室)·기용(器用)· 같은 것이 저렇게 하는 것이 오늘날에 있어서 편리한다고 하여,
기존 법도가 있는 것들을 어찌 갑자기 개혁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천리(天理)는 바꿀 수 없는 것이며 사람이 이에 의존해 사는 것으로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성인이 반드시 해야 한다고 했던 것은 본래 대개 시행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행하는 데는 선후가 있고 이것을 시행하는 데는 완급이 있으니,
만약 그 헤아려 이루거나 움직여 운용하거나 주선(周旋)하여 각각 합당하게 하는 것은 조정에서 이것을 강구하여 실시하는데 달렸을 뿐입니다.
엣날에는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스승과 벗을 기다려 그덕업(德業)을 성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순(舜)·우(禹)나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성인도 또한 모두 따라서 배운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부(師傅)의 직(職)에 닦아지지 못하고, 우신(友臣)의 의(義)가 밝게 드러나지 못하니 그래서 덕을 높이고 선을 즐기는 풍조가
천하에 성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하늘이 낳은 백성을 임금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되, 항산(恒産)을 제정하여 생(生)을 후(厚)하게 하면 경계(經界)가 바르지 아니할 수 없고,
토지를 나누기를 고르게 아니할 수 없으니, 이것은 위정(爲政)하는 근본입니다.
당(唐)나라는 그래도 식구에 따라 전지(田地)를 나누어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지금은 법이 없어서 부자(富者)들이 주(州)와 현(縣)을 빼앗아 차지해도 막지 못하며, 가난한 자는 흩어지고 굶어죽어도 구출하지 않으며,
요행히 사는 백성들은 많으나 의식(衣食)이 부족한 이는, 대개 무수하게 많습니다.
날로 인구가 불어나는데, 이들을 위한 대책이 없다면 의식은 날로 줄어 전전하다 죽는 자는 날로 많아질 것이오니, 이것은 치란(治亂)의 기틀입니다.
어찌 그 도모하는 대책을 강구하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또한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정(政)·교(敎)가 향리(鄕里)에서 시작되었고,
법이 동네〔比閭〕에서 일어나 족(族)·당(黨)·주(州)·향(鄕)·찬()·수(遂) 같은 지역들이 서로 연속 통치(統治)되어,
백성들이 서로 편안하고 친목해져서 형법을 범하는 이가 드물고 염치가 쉽게 행해졌으니,
이것은 또한 인정의 자연적인 것으로서 이렇게 하면 성과가 있는 것은 또한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학교의 교육은 선왕이 인륜(人倫)을 밝혀 천하의 교화를 이루기 위한 것인데,
지금은 사학(師學)이 폐하여 도덕이 순일하지 못하고 향사(鄕射)가 없어져 예의가 일어나지 못하며,
뛰어난 선비가 학교에서 길러지지 아니하여 인재가 많이 폐하였으니, 이 환한 사실도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백성들이 9년 먹을 양식이 있어야 했는데, 3년 먹을 양식이 없다면 나라가 나라 꼴이 되지 못하는 것이니,
신이 천하를 관찰해 보건대, 경작하는 사람은 적고 먹는 사람은 많으며, 지력(地力)은 다하지 못하고 인공(人功)은 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록 부자(富者)나 세력 있는 종실(宗室)이라 하는 집들도 축적해 둔 것이 드문데, 하물며 빈한한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혹시 한 주(州)나 한 현(縣)이 어떤 해에 흉년이 든다면 도둑이 횡행하고 주린 자가 길에 가득차는데,
만약 불행히도 천 리가 재해를 입거나 여러 해 동안 흉년이 든다면, 조정이 무슨 대책으로 이에 대처할지 그 근심을 말로써는 다할 수 없습니다.
어찌 옛날에는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 하여 이것을 다행으로 여겨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점점 옛 제도를 따라서 밭을 백성에게 고루 나누어 주고,
농사에 힘써서 공가(公家)에서나 사가(私家)에서 서로 곡식을 저장하여 흉년에 대비해야 할 것이니, 이것도 또한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성인이 하늘을 받들고 사물을 다스리는 도는 육부(六府)227)에 있으며,
육부에서 맡은 것은 오관(五官)228)에서 다스려지고, 산(山을 맡고 못〔澤〕을 맡은 관청에서 각각 금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만 가지 물건이 풍부하고 재용이 부족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오관이 닦아지지 아니하고,
육부가 다스려지지 아니하여 쓰는 것이 절도가 없고 취하는 것이 때가 없으니, 모든 물건이 제대로 길러지지 아니합니다.
나무를 도끼로 마구 남벌하여 산을 벌겨숭이로 만들어도 금하지 아니하고,
시내와 못에서는 고기를 너무 심하게 잡아서 씨를 마르게 하니, 장차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극한 폐단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직 우관(虞官)의 직책을 닦아서 이런 것을 장차 잘 기르게 하면 변통이 있을 것이며, 오래도록 그 형세를 유지하게 될 것이니,
이것도 또한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관혼상제(冠婚喪祭)와 거복기용(車服器用)의 등차가 분별되어 있어서 감히 품계를 넘지 못하였기 때문에,
재용이 넉넉하고 백성들은 늘 마음이 착하였는데, 지금은 예제(禮制)가 닦아지지 아니하고 사치를 숭상하여,
경대부들이 능히 예(禮)에 맞는 것이 없고, 장사치들이 혹시 삼공(三公)의 품계를 넘어 예제가 인정(人情)을 단속하지 못하고,
명수(名數)가 귀천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귀천에 정해진 푼수가 없으면 간사한 것이나 속이는 것이나 약탈하는 것을
사람마다 실컷 욕심대로 하고야 말 것이니, 어찌 멈추는 일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쟁란(爭亂)의 도이니 이에 선왕의 법을 본받아 잘 강구하여 덜 것은 덜고 더할 것은 더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도 또한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여기에 든 것은 다만 그 실마리일 뿐으로 신은 그 큰 실마리를 노하였습니다.
생각건대, 3대의 법은 반드시 시행할 만한 효험이 있으니,
그 강조(綱條)와 도수(度數)와 시위(施爲)와 주조(注措)의 도 같은 것에 있어서는 잘 살펴 행하면,
이것은 반드시 떳떳한 교훈에 상고해 보아 합당하고, 인정에 베풀어 보아 마땅할 것이니,
이것은 분명히 정해진 이치이며, 어찌 한갓 멀고 성기어 아무 소용이 없는 설이겠습니까.
밝은 성상께서는 헤아려 택(擇)하시옵소서."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3대의 도를 오늘날에도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은 정자의 이론으로도 상세합니다.
다만 유속(流俗)에 가리워 능히 문무(文武)의 정치를 시행하지 못하고,
한갓 빈말에 붙여 상하 수천 년간이 긴 밤으로 쓸쓸할 뿐이니 기가 막힐 일입니다.
대개 어진 정사〔仁政〕를 꼭 시행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성현의 말이요, 옛날의 도(道)를 회복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속된 무리의 말입니다.
당대의 임금인 세상의 주인이 성현의 말은 믿지 않고 이 속의(俚俗) 말만 깊이 믿사온데, 왜 그런가 하오면 스스로 도를 향하려는 뜻이 없고,
또 어진 이를 좋아하는 정성이 없어서 그런 것으로서, 마땅히 안일을 즐겨하고 진작(振作)하기를 꺼려할 것입니다.
다행히 임금이 옛날의 도를 행하려고 유신(儒臣)을 친근히 하여 조금 하시는 바가 있으면,
속된 무리들의 비방이 국이 끓듯 하고 매미소리같이 시끄러워 반드시 저지하여 무너져야만 그만둡니다.
임금이 도를 독실하게 믿지 않고 어진이를 깊이 알고자 아니하신다면 어찌 본심을 지켜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개 속된 무리의 고질은 갑자기 고치기 어렵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옛날의 도를 시행한다면,
백성들의 마음이 불안하여 처음에는 도리어 사리를 거슬리는 것으로 보는 것이 사세의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구애되어 마침내 일할 수 없다면 떨어지기만 하는 세도(世道)를 어느 때에 만회할 수 있겠습니까.
비유하건대, 냉질(冷疾)병에 걸린 사람과 같은데, 가슴에 열(熱)이 날 때 냉질을 다스리는 약을 조금 쓰면 번비(煩)가 더욱 심하고,
만일 열이 날 때 항상 냉약을 마시면 뱃속에 냉기가 쌓여 치료할 수가 없어서 마침내는 죽고야 말뿐입니다.
아, 소위 후세의 선비라는 자들이 읽는 것은 전(典) 모(謨)와 훈(訓) 고(誥)요,
사모하는 것은 공·맹(孔孟)과 정·주(程朱) 이기 때문에 누가 감히 성인을 비난하는 말을 그 입으로 말하겟습니까마는,
그러나 처신하거나 정치하는 데 이르러서서는 절대로 그렇지 아니하여 조금이라도 성인의 가르침을 국가에 시행하려고 하면
번번히 저들은 깜짝 놀래어 좌로 견제하고 우로 억눌러서 예측할 수 없는 화(禍)가 머지 않아 일어날 것이라고 하며
만일 안상수고(安常守故)의 이론을 듣는다면, 이 말에 찬동하고 화창하기가 포백(布帛)이나 숙속(菽粟)에 비하는 듯하니,
과연 이와 같다면, 성현이 헛말을 만들어 후세를 속이고 맛있는 음식이라고 오훼(烏喙:독약)를 칭찬하고,
물과 불을 밟을 수도 있다고 한 것이 되며, 향리의 거칠고 더러운 말이 곧 공평하고 적실하여 만세에 전해도 폐단이 없는 것이니,
육경(六經)을 어찌 읽을 필요가 있겠으며 오교(五敎)229)를 어찌 베풀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 인신(人臣)이 옛날의 도를 비난하고 훼방하는 것은 소인의 진정(眞情)인데, 한탄되는 것은 임금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소인〔鄙夫〕이란 좋아하는 것이 작록(爵祿)이요, 탐내는 것이 권세이며, 구하는 것이 뇌물이요,
즐거워하는 것이 음란하고 사치로운 것이며, 편하게 여기는 것이 안이로서, 때를 노려서 길을 얻고, 지기(志氣)가 가득 차서,
구차하게 눈앞의 요행이나 바라며 화패(禍敗)는 아랑곳하지 않을 뿐이니, 장래 종사(宗社)에 대한 근심이야 어찌 염두에나 있겠습니까.
진실로 임금이 삼대의 다스림을 회복하는 데 뜻을 두고, 어진 신하를 구해서 정사를 맡긴다면,
그들은 작록을 보존할 수 없을 것이고, 기강을 통할한다면 그들은 권세를 굳게 할 수 없을 것이며,
조정이 청명하다면 뇌물을 받을 수 없을 것이고, 예의로써 풍속을 이룬다면 음란하고 사치로움을 홀로 할수 없을 것이며,
공적(功績)을 살펴서 승진시키고 내쫓고 한다면 오래도록 안일(安逸)할 수 없을 것이니,
이렇게 되면, 임금이 옛날의 도를 시행하는 것이 바로 소인에게는 짐독(毒)이 되는 것인데,
어찌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다하여 저지 시키지 아니하겠습니까.
간혹 어진 사대부가 있더라도 식견이 천박하고 짧아서 다만 편안한 것만 좋아하는 자가 있는데
또한 그들을 따라 도우면 더욱 임금에게 신용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선비로서 재주를 품고 도를 가지고 경세제민(經世濟民)할 수 있는 이는 모두 보배를 두고 값을 기다리며 가볍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임금께 달(達)하지 못합니다.
조정에서 능히 옛날의 도를 말하는 이도 다만 경망하고 소탈(疎脫)한 무리들 뿐이니,
어찌 치도(治道)의 본체를 밝히거나 뭇 사람들의 지껄임을 제지시켜, 임금의 환심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옛날의 도를 끝내 회복하지 못하는 소이입니다.
임금은 깊이 생각하고 패연히 결단하여 반드시 학문이 밝고 실천력이 있으며 재성(才誠)을 겸비한 선비를 얻어서,
이의 보필을 받아 해마다 공효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속된 의논이 그 사이에 개입되지 않게 하여야만 의심하고 비난하던 자도 차츰 믿게 될 것이고,
비방하고 조소하던 자도 차츰 복종하게 될 것이며, 시기하고 질투하던 자도 차츰 항복하게 되어서,
옛날의 도를 거의 실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잘 살펴 생각하옵소서.
< 주 >
225) 12율 가운데에 양(陽)의 소리에 속하는 여섯 가지 음이다.
곧 황종(黃鍾)·태주(太簇)·고선(姑洗)·유빈(賓)·이칙(夷則)·무역(無射)
226)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다섯 음율.
227) 수(水)·화(火)·금(金)·목(木)·토(土)·곡(穀)을 말함.
이 여섯 가지는 재용(財用)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부(府)라고 한 것이다.「六府三事 允治萬歲 永賴時乃功」《書大禹謨》
228) 옛날 다섯 개의 관직. 곧 사도(司徒)·사마(司馬)·사공(司空)·사사(司士)·사구(司寇)이다
229) 오륜의 가르침
제6장. 근천계(謹天戒)
신이 살피건대, 임금이 하늘을 섬기는 것은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항상 이에 대하여 게속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아니되며,
인사(人事)가 이미 닦아지면 천계(天戒)를 더욱 공경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근천계 장(謹天戒章)을 다음에 놓았습니다.
◆ 복선화음(福善禍淫)의 이(理)에 대한 말씀
이윤(伊尹)이 말하기를, "아, 하늘은 친(親)한 이가 없고 능히 공경하는 사람만을 친하며,
백성은 일정하게 그리워하는 이가 업고, 인(仁)을 둔 이를 그리워하며,
귀신은 일정하게 흠향하는 이가 없고 능히 정성스러운 이를 흠향하나니,
임금의 자리란 어려운 것이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의 태갑(太甲))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경(敬)과 인(仁)과 성(誠)은 각각 그 주재되는 것으로 인하여 말한 것인데,
하늘을 경(敬)으로서 말하는 것은 하늘에는 이치가 있는 곳이라 동정(動靜)·어묵(語默)에 한 오라기라도 거만할 수 없기 때문이며,
백성을 인(仁)으로 말하는 것은 백성이야 임금이 아니면 누구도 추대할 사람이 없는지라 환과고독(鰥寡孤獨)도 다 임금이 근심할 바이기 때문이며
귀신을 성(誠)으로 말하는 것은 정성스럽지 아니하면 물(物)이 없는지라, 여기에서 정성이 선 뒤라야 신(神)이 저기에서 이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를 마땅히 다 해야 하는 것이 이와 같은데, 임금이 천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어찌 하는 일을 가볍게 할 수 있겠는가.
이는 나누어 말하면 셋이요, 합하여 말하면 하나의 덕(德)일 뿐이다." 하였습니다.
덕(德)이 순일하면 움직이는 곳마다 길(吉)하지 않은 곳이 없고,
덕이 두셋으로 뒤섞이면 움직이는 곳마다 흉하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오직 길하고 흉한 것이 어긋나지 아니하여 사람에게 있는 것은,
오직 하늘이 재앙과 상서(祥瑞)를 내리는 것은 덕에 있기 때문이다. (상서(商書) 함유일덕(咸有一德) ○ 역시 이윤(伊尹)의 말.)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두 셋이란 것은 뒤섞인 것이요, 참〔僭〕은 어긋난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우(禹)는 말하기를, "도〔迪〕를 따르면〔惠〕 길하고(吉), 역(逆)을 따르면 흉할 것이니,
이는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우서(虞書)의 대우모(大禹謨))
채씨는 말하기를, "혜(惠)는 순한다는 뜻이요, 적(迪)은 도(道)라는 뜻이며, 역(逆)은 도에 배반된다는 뜻이다.
도를 따르고 역(逆)을 따른다는 것은 선을 따르고 악을 따른다는 말과 같다.
위의 글은 천도가 가히 두려운지라 길흉이 선악에 응하는 것이 마치 그림자와 메아리가 형상과 소리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오직 문왕(文王)은 조심하고 공손해서 상제(上帝)를 밝게〔昭〕섬겨 많은 복을 오게 하니〔懷〕,
그 덕이 사곡되지〔回〕않아서 방국(方國)에 주인이 되었다." 하였습니다. (대아(大雅) 대명(大明)의 편(篇))
주자는 말하기를, "조심하고 공손한 것은 공경하고 조심하는 모습이니 이른바 경(敬)이다.
문왕의 덕은 여기서 성해졌다.
소(昭)는 밝음이요, 희(懷)는 오게 함이며, 회(回)는 사곡한 것이요, 방국(方國)은 사방에서 와서 붙는 나라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착하게 하여 복을 받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성탕(成湯)이 고(誥)를 지어 이르기를, " 하왕(夏王)이 덕을 멸하고 위엄을 부리어 만방(萬方)의 백성에게 모질게 하거늘,
하늘의 도는 선한 이에게 복을 주고, 음(淫)한 이에게는 화를 주는지라,
재앙을 하(夏)나라에 내려서 그죄를 밝힌 것이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의 탕고(湯誥)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걸(桀)은 이미 음학(淫虐)하였기 때문에, 하늘이 재앙을 내려 그 죄를 밝혔다.
살피건대, 당시에 필시 재변(災變) 있었으니,
주어(周語)에 이른바, '이천(伊川)과 낙수(洛水)가 다 마르니 하(夏)나라가 망하였다.' 하는 종류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악한 짓을 하여 화를 받은 것을 말합니다.)
◆ 다음은 재앙을 만나 수신(修身)하는 도에 대한 말씀
○윤후(胤候)가 말하기를, "선왕(先王)은 능히 천계(天戒)를 삼갔도다〔謹〕.
신하가 능히 떳떳한 법도〔常憲〕를 세우고 백관(百官)들이 그 직무를 닦아서 보필하니 그 임금은 밝고 밝으니라." 하였습니다. (하서(夏書)윤정(胤征))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삼간다는 것은 두려워하고 자기를 반성하여 어떤 재변을 없애게 하는 것이요,
떳떳한 법도라는 것은 법을 받들고 직무를 닦아서 이바지하는 것이다.
임금이 위에서 천계(天戒)를 능히 삼간다면 신하는 능히 아래에서 떳떳한 법도를 세워서 백관들이 각각 그 직무를 다하여 임금을 보좌하므로,
임금은 안으로 덕(德)을 잃지 않고 밖으로 정사를 그르침이 없어서 밝고 밝은 임금이 된다." 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하늘이 노하는 것을 공경하여 네 멋대로 행패를 하지 말 것이며,
하늘의 변하는〔〕것을 공경하여 네 멋대로 욕심을 부리지 말라. 높은 하늘은 지극히 밝아서 네가 가는〔王〕곳을 다 보며,
높은 하늘은 지극히 밝아서〔旦〕 네가 이리저리 노는〔遊衍〕곳을 지켜본다." 하였습니다. (대아(大雅) 판(板)의 편)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유()는 변한다〔變〕는 말이요, 왕(王)은 간다는 뜻과 통하니 나가서 가는 것이 있음을 말한다.
단(旦)도 역시 밝다는 것이요, 연(衍)은 이리저리 거니는 것을 뜻한다.
하늘이 총명하여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가히 공경하지 아니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동씨(董氏)는 말하기를, "사람이 하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곧 천지와 함께 유통하고 왕래하며 상응(相應)한다.
그러므로, 천인(天人)이 서로 상여(相與)할 때가 매우 두렵다.
국가가 도를 잃으려고 하면 하늘이 이에 먼저 재해를 내려 경고하고, 스스로 반성할 줄 모르면 또 괴이한 일을 일으켜서 경고하여 두렵게 하며,
그래도 그 변괴를 알지 못하면 손상하고 패망〔傷敗〕함이 이르른다.
이로써 천심이 어질고 임금을 사랑하여 그 난을 지식시키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크게 무도한 세상이 아니라면 하늘은 이릉 다 부지(扶持)하여 안전케 하려 하는 것이니,
일은 오직 하늘을 공경하는 데 힘쓰고 힘쓸 뿐이다." 하였습니다.
○ 광형(匡衡)은 말하기를, "하늘과 사람 사이에 좋은 기운과 나쁜 기운이 서로 통하며,
선과 악이 서로 추급되어 일이 아래에서 일어나면 상(象)이 위에서 움직이다.
음양(陰陽)의 이(理)가 각각 거기에 감응하여 음이 변하면 정(靜)이 동(動)하고,
(지진(地震)같은 것입니다.) 양이 가리워지면 밝은 것이 어두어지며, 일식(日食)과 같은 것입니다.
수재와 한재가 그 종류에 따라 일어난다." 하였습니다.
순(舜)은 말하기를," 강수(降水)(강()이라고도 씁니다.) 가 나를 경계하도다." 하였습니다. (우서(虞書) 순전(舜典))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살피건대, 맹자의 말에, '물이 역행하는 것을 강수(降水)라 한다.' 하였는데,
물이 역행 범람하는 재앙은 비록 요(堯)때에 일어났으나 순이 위를 이었어도 그 해(害)는 오히려 지식되지 아니하므로,
순이 스스로 이르기를, '이것은 하늘이 나에게 경계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성스러운 황제가 밝은 왕이 하늘을 두려워하고, 자기를 반성하는 유가 이와 같다.
그 뒤에 성탕(成湯)이 한재가 극심하여 또 여섯 가지 일을 가지고 스스로 자책하여 말하기를, '정사가 법도에 맞지 못하였던가,
백성들을 모질게 부렸던가, 궁실이 높았던가. 여색(女色)을 성히 하였던가.
뇌물이 행하였던가. 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던가.' 하였는데,
대체로 성탕같은 성스러운 임금이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마는 그래도 오히려 몸을 반성하여 스스로를 질책함이 이와 같이 지극하였으니,
탕(湯)의 마음은 곧 순의 마음이었다.
그런데,한(漢)나라 무제(武帝)때에 이르러 공손홍(公孫弘)은 이에 말하기를,
'요(堯)는 홍수를 만나서 우(禹)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지, 순이 수재를 당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으며,
탕이 한재를 극심하게 당하였다는 것도 걸(桀)의 여독(餘毒)이다.' 하였다.
대개 순은 수재를 가지고 스스로를 경계하였는데 공손홍은 이것을 요에게 돌렸고,
탕은 한재를 가지고 스스로를 책하였는데 공손홍은 이것을 걸에게 돌렸다.
이렇게 간사하고 아첨하는 마음은 그 임금을 그릇되게 하여 천계(天戒)를 업신여기는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주공(周公)은 말하기를, "은왕(殷王)인 중종(中宗)은 엄하고 공손하며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천명을 스스로 법받았다."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무일(無逸))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능히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정성을 다하여 천명으로써 몸을 경계하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 사기(史記)에230) 이르기를, "태무(太戊)가 즉위하고 이척(伊陟)이 정승이 되니, 아침에 뽕나무가 나서 하루 저녁에 크기가 한 아름이 되었다.
태무가 놀래어 이척에게 물으니, 이척이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요사한 것은 덕을 이기지 못한다 합니다.
임금께서 정사를 하는데 무슨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으니,부디 덕을 닦으시옵소서.' 하므로 태무가 이를 따르니,
상서롭지 못한 뽕나무가 말라 죽고 은(殷)나라의 도가 다시 일어났으며, 태무를 중종(中宗)이라고 호칭하였다." 하였습니다.
한(漢)나라가 선제(宣帝)의 조서(詔書)에 이르기를, "내가 육예(六藝)231)에 밝지 못하여 대도(大道)에 답답하며,
음양(陰陽)과 풍우(風雨)가 때로 순조롭지 못하니, 관리와 백성중에 몸을 닦아서 바르게 하고,
문학에 통하여 선왕의 술(術)에 밝은 이를 널리 천거하라." 하였습니다. (전한서(前漢書))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임금이 경(經)에 밝지 못하고 도를 알지 못하면, 마음을 바루고 몸을 닦지 못한다.
그리고 한 가지 마음이라도 불순한 것이 있거나, 한 가지 움직임이라도 중도(中道)를 잃는 것이 있으면 모두 족히 음양의 화(和)를 범하는 것이다.
후세의 임금들 중에는 이것을 아는 이가 거의 없는데, 선제(宣帝)는 홀로 이것을 아니, 가히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왕의 술에 밝은 이가 천거되었다는 소문은 끝내 듣지 못했다.
대개 몸을 바루고 도에 밝은 선비는 진실로 세상에 드문 것이나, 임금이 과연 성의를 가지고 이들을 구하기만 한다면,
어찌 한둘의 그럴듯한 사람이 나와 임금을 위해 쓰이지 않겠는가.
당시를 두루 상고해 볼 때 오직 왕길(王吉)만이 다소나마 만세의 계책을 세워, 임금을 삼대의 융성할 때와 같이 밝혀 보려고 하였으나,
선제가 그만 오활(汚闊)하게 보고 말았는데, 이 때 자사(子思)나 맹자(孟子)가 나왔다 하더라도 인의(仁義)에만 바르게 할 뿐이요,
공리(功利)에는 급급(汲汲)하지 않았을 것이니, 임금과는 서로 어긋나며 상통되지 않은 것이 더욱 심했을 것이다.
그러니 몸을 바루고 도에 밝은 선비는 이 취지를 잘 규찰하여 보고서, 어찌 가볍게 함부로 임금을 위해 나왔겠는가." 하였습니다.
◆ 다음은 환난을 예방하는 뜻에 대한 말씀
○ 성왕(成王) 말하기를, "옛날 크게 꾀할 때는 다스림이 어지럽지 않을 때에 단속하고,
나라가 위태롭지 않을 때 보전하였다."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주관(周官))
공자는 말하기를, "위태롭게 여기는 것은 그 위(位)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요, 망할 것으로 여기는 것은 그 보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어지러울 것으로 여기는 것은 그 다스림이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편안하되 위태로울 것을 잊지 아니하며,
보존하되 망하는 것을 잊지 아니하고, 다스리되 어지러운 것을 잊지 아니하기 때문에,
몸이 편안해지고 나라가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성인이 경계하는 것은 반드시 성할 때인데, 사람은 대개 그 성할 때에 경계할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안일하고 부유한 데 젖으면 교만하고 사치해지며, 한가하고 방자한 데 즐기면 기강이 무너지며,
화란(禍亂)을 잊어버리면 죄악이 싹트는 데 이렇게 점점 음탕하게 되어 난(亂)에 이르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경(詩經) 에 이르기를, "하늘이 장맛비를 내리기 전에, 뽕나무 뿌리〔桑土〕(음은 두(杜)입니다.)를 캐어 가지고,
창문을 단단히 얽어매여 대비하면, 이제 너희들 백성들이 누가 감히 나를 업신여기겠는가."
「天之未陰雨 徹彼桑土 綢繆戶 今女下民 或敢侮予」하였습니다. (빈풍(風) 치효()편)
주자는 말하기를, "태()는 미친다는〔及〕 뜻이요, 철(徹)은 취한다는 뜻이며, 상두(桑土)는 뽕나무 뿌리이며,
주무(綢繆)는 얽어맨다는 뜻이며 유()는 새집의 기(氣)를 통하게 하는 곳이며, 호(戶)는 그 출입하는 곳이다.
새가 되어 말하기를, '내가 하늘이 아직 장맛비를 내리기 전에 날아가서 뽕나무 뿌리를 가져다가 집의 틈을 얽어매고 견고히 하여
장마의 근심을 덜게 한다면, 백성들이 누가 감히 나를 업신여기겠는가.' 한 것은
깊이 왕실을 사랑하여 그 환난을 예방한다는 뜻을 비유한 것이므로, 공자는, '이 시를 지은 이는 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능히 그 나라를 다스린다면, 아무도 감히 그를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사람은 천지의 마음입니다.
임금이 능히 선정을 행하여 화(和)한 기운이 위에 감응되면, 아름다운 상서〔祥〕가 이르고,
비도(非道)를 많이 행하여 괴이한 기운이 위에 감응되면, 재앙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어째서 하늘의 마음이겠습니까.
모두 사람이 부른 것입니다. 다만 그 사이에 떳떳한〔常〕것도 있고 변하는〔變〕 것도 있는데, 선에는 상서가 이르고,
악에는 재앙이 이르는 것은 이(理)의 떳떳한 것이요, 선에도 상서를 보지 못하거나 악에도 재앙을 보지 않는 것은 이수(理數)의 변괴(變怪)입니다.
성스러운 임금이 재앙으로 인하여 자기 몸을 닦고 반성하면 재앙이 변하여 상서가 되고,
용렬하고 어두운 임금이 재앙이 오지 않는다 하여 묶은 관습에 젖어 있으면 도리어 재앙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것은 필연적인 사세입니다.
대개 하늘에는 진실로 응하지 꾸밈으로는 하지 아니하는 것인데,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한 덕(德)을 닦으면 위태로운 것을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어지러운 것을 다스릴 수 있으며,
멸망하는 것을 보존할 수 있으니, 어찌 재앙을 가히 편안하게 할 수 없겠습니까.
그러나 오직 밖으로는 두려워하는 용태를 보이면서도 안으로는 몸을 닦고 반성하는 진실한 덕이 없기 때문에,
하늘의 노여움을 돌이킬 수 없고, 나라의 형세를 구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임금은 국가가 한가한 때를 당하여도 마땅히 미리 덕정(德政)을 닦고 깊이 환난을 막아서 길이 다스려서 영구히 편안한 계책을 삼아야 할 것인데,
하물며 재변이 있어서 경계하는 것이겠습니까.
보통 사람의 마음은 걱정이 눈앞에 나타나면 능히 근신하고, 환난이 생각 밖에 있으면, 모두 경계할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재변(災變)이 처음 일어날 때를 당하면 비록 평범한 임금이라도 경동(驚動)할 줄 알지마는
재변이 자주 일어나서 조석으로 <요얼(妖)>의 응하는 것을 보지 못하면 이것을 업신여겨서 두려워하지 아니하여,
요얼의 응하는 것이 혹 늦기도 하고 속하기도 하나, 속하면 화가 적고 늦으면 화가 큰 것인 줄 모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환란이 이미 일어나 멸망의 증상이 나타난 뒤에는 비록 마음을 혁신하고 덕을 닦으려 하여도 벌써 늦어서 소용이 없습니다.
천고 이래로 실패한 자취가 서로 일치하니 가히 슬퍼할 만한 일입니다.
아, 성탕(成湯)은 자책하여서 큰 비가 천리나 내리었고, 태무(太戊)는 선을 좇아서 상서롭지 못한 뽕나무가 말라 죽었으니,
이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한 덕을 닦은 효험(效驗)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이것을 본받으시옵소서.
< 주 >
225) 12율 가운데에 양(陽)의 소리에 속하는 여섯 가지 음이다. 곧 황종(黃鍾)·태주(太簇)·고선(姑洗)·유빈(賓)·이칙(夷則)·무역(無射)
226)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다섯 음율.
227) 수(水)·화(火)·금(金)·목(木)·토(土)·곡(穀)을 말함.
이 여섯 가지는 재용(財用)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부(府)라고 한 것이다.「六府三事 允治萬歲 永賴時乃功」《書大禹謨》
228) 옛날 다섯 개의 관직. 곧 사도(司徒)·사마(司馬)·사공(司空)·사사(司士)·사구(司寇)이다
229) 오륜의 가르침
230) 한(漢)나라의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책.
위로는 황제(皇帝)로부터 아래로는 한(漢) 무제(武帝)에 이르기까지 12본기(本紀)·10표(表)·8서(書)·
30세가(世家)·70열전(列傳)으로 나누어 쓴 기전체(紀傳體)의 역사서(書).
231) 』역(易) ·시(詩)·서(書)·춘추(春秋)·예(禮)·악(樂)②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제7장. 입기강(立紀綱)
신이 살피건대, 위의 6장에서는 위정(爲政)의 근본과 위정을 갖추는데 대하여 논의하였습니다.
이 장 이하에서는 이에 위정하는 이에 대하여 논하겠는데, 위정하는 일은 기강(紀綱)을 세우는 것을 첫째로 삼습니다.
◆ 기강을 세워야 한다는데 대한 보편적인 말씀
선의(善醫)는 사람이 수척(瘦瘠)하거나 비대한 것을 보지 않고 그 맥을 짚어 보고 병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피며,
천하를 잘 경영하는 이는 천하의 안위(安危)를 보지 않고 그 기강의 치란(治亂)을 살핀다. (창려문집(昌黎文集))
한씨(韓氏)는 말하기를, "천하가 사람이라면 안위는 비대한 것과 수척한 것이요, 기강은 맥이다.
맥이 병들지 않으면 비록 수척하다 하더라도 해롭지 않고, 맥이 병들면 비록 비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죽는다.
이 말에 통하는 사람은 천하를 다스리는 소이를 알 것이다.
그러므로 사지(四支)가 비록 무고하더라도 믿을 수 없고 오직 맥에 달려 있을 뿐이요.
사해(四海) 가 비록 무사하더라도 자랑할 수 없고, 오직 기강에 달려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소위 강(綱)이라는 것은 그물에 벼리〔綱〕가 있는 것 같고 소위 기(紀)라는 것은 실꾸리에 끝〔紀〕이 있는 것과 같다.
그물에 벼리가 없으면 스스로 펼 수가 없고, 실꾸리에 끝이 없으면 스스로 풀수가 없다.
그러므로 한 집에는 한 집의 기강이 있고 한 나라에는 한 나라의 기강이 있는데, 만일 향(鄕)이 현(縣)에 통솔되고,
현이 주(州)에 통솔되고, 주가 노(路)에 통솔되고, 노가 대성(臺省)에 통솔되고, 대성이 재상에 통솔되고,
재상은 모든 중직(衆職)을 겸통하여 천자와 더불어 가부(可否)를 의논하여 정령(政令)을 내는 것은 곧 천하의 기강이다."하였습니다.
◆ 다음은 사심(私心)없는 것이 기강을 세우는 근본이라는 말씀
○ 공자는 말하기를, "하늘은 사사로이 덮는 것이 없고, 땅은 사사로이 실는 것이 없으며, 해와 달은 사사로이 비추는 것이 없으니,
이 세 가지를 받들어 천하에서 일을 하면, 이것을 세 가지의 무사(無私)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예기(禮記))
주자는 말하기를, "기강은 스스로 설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인주(人主)의 심술이 공평정대하고 편당반측(偏黨反側)하는
사사로음이 없어야만 기강이 서게 되고, 또 임금의 마음은 스스로 바르게 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어진 신하를 친하고 소인을 멀리하여 의리의 귀추를 강명(講明)하고 사사(私邪)로은 길을 막아 없애야만 가히 바르게 될 수 있다." 하였습니다.
○ 또, 봉사(封事)232)를 올려 말하기를, "한 개인으로 말하면, 한 집안의 사사로운 것을 가지고 있어 그 고을에 통할 수 없고,
한 고을 사람으로 말하면 한 향리의 사사로운 것을 가지고 있어 그 나라에 통할 수 없으며,
한 제후로 말하면 한 나라의 사사로운 것을 가지고 있어 천하에 통할 수 없거니와 천자에 이르러서는
하늘과 땅 끝까지 천자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어서 밖으로 통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으니,
또 무슨 사사로움이 있어서 되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을 본다면, 그 일념(一念)의 사사(私邪)를 능히 이기지 못하여 사심(私心)을 두는 데 이르고,
그 집안 사람을 능히 바루지 못하기 때문에 사인(私人)을 두는데 이르니,
사심으로써 사인을 쓰면 능히 사비(私費)가 들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안으로는 들어올 경비가 줄고,
밖으로는 남는 재산을 헌납할 곳이 있어서 사재(私財)를 두게 되므로, 만사의 폐단이 이로부터 나오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 마음으로 근심하여 절실히 나라가 다스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어찌 나라의 법도를 떨치고 풍속을 아름답게 하려고 하지 아니하시겠습니까.
단지 일념의 사사(私邪)를 능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조정에 충(忠)과 사(邪)가 섞이고, 형벌과 포상이 분별되지 아니하며,
사부(士夫)간에는 뜻이 비루해지고, 염치가 폐괴(廢壞)되어도 돌아보고는 오히려 사리의 당연한 것이라 하여
진기(振起) 시키기 힘써서 이것을 교정하고 개혁하려고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개 안으로 밝아야만 밖으로 정연해지며, 자신에 잘못이 없어야만 남을 비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궁성(宮省)은 임금이 계신 곳인데 불공(不公)한 도와 부정한 사람이 그 속에서 소굴(巢窟)을 만들고 가득 차 있으므로
폐하께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불공과 부정 아닌 일이 없게 되며, 불길로 찌고 녹혀서 폐하의 선을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며,
악을 미워하는 뜻을 깊지 못하게 하니, 그 해는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강이 흔들려 패하니 중외(中外)의 사람들은 이것을 듣고 마음 속으로 그르게 여겨 모두 조정을 경모(輕侮)하니,
폐하께서는 이 기강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반성하여 내 몸에 구하지 않고 갑자기 진작될 수 있겠습니까.
위에서 기강이 진작(振作)되지 아니하면 아래에서는 이 때문에 풍속이 퇴폐해지며,
겉으로만 아름답게 보이려는 태도에 능숙하여 계교(計較)해 나가므로, 오직 구하여 얻는데 염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치고 형이 아우를 힘쓰게 하는 데에도 한결같이 이 술(術)을 쓰고, 충의(忠義) 명절(名節)의 귀한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한 사람의 굳세거나 정직하며, 도를 지켜 이(理)에 순하는 선비가 그 간에 나오면 무리들이 그를 기롱하고 배척하여, 과격하다는 죄를 더하니,
이런데 다시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 다음은 공정한 상벌(賞罰)이 기강을 세우는 방법이라는 말씀
○ 고요(皐陶)가 말하기를, "하늘이 덕 있는 이에게 명하면 다섯 가지의 복장으로 다섯 등급을 나타나게〔章〕 하며,
하늘이 죄 있는 이를 치면 다섯 가지 형벌로써 다섯 가지에 적용하니, 정사에 힘쓰고 힘쓰소서." 하였습니다.(우서(虞書)의 고요모(皐陶謨)
○ 고요(皐陶)가 순임금에게 고한 말입니다.)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장(章)은 나타나게 한다는 뜻이요,
오복(五服)은 다섯 가지 등급의 복장이니, 9장(章)으로 부터 1장에 이르기까지가 이것이다.
위의 글은 하늘이 덕 있는 사람에게 명하면 다섯 등급의 형벌로써 징계함을 말한다.
대개 상작(賞爵)과 형벌(刑罰)은 임금이 하는 정사로서 임금은 이를 주관하고 신하는 이를 적용하는데
마땅히 힘써야 하며 태만히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만물은 다하나의 천리(天理)이니 여기에 사심이 어찌 있어서 되겠는가.
하늘이 죄있는 이를 치면 다섯 가지 형벌로써 다섯 가지를 나타나게 한다.' 말한것은
다만 천리의 자연스러움이 마땅히 이와 같은 것이며 여기에 어찌 마음의 희로(喜怒)를 그 사이에 참여시킬 수 있겠는가.
순(舜)이 16명의 정승을 기용하였는데, 요(堯)가 어찌 이것을 알지 못하였겠는가.
다만 그들의 선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기용하지 못하였며, 순이 4명의 흉인을 죽였는데, 요가 어찌 이것을 살피지 못하였겠는가.
다만 그들의 악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어찌 죽일 수가 있었겠는가.
기용하고 주육하는데는 오직 하나의 의리가 있으니 의(義)에 따라서 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 할 것이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하지 아니하고,
말이 순하지 아니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형벌이 맞지 아니하며 형벌이 맞지 아니하면 백성들이 수족을 둘 곳이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양씨(楊氏)는 말하기를, "이름이 그 실상에 합당하지 아니하면 말이 순하지 아니하고,
말이 순하지 아니하면 실상을 고람하여 일을 이룰 수 없다." 하였습니다.
○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일이 그 차례를 얻는 것을 예(禮)라 하고, 물이 그 화(和)를 얻는 것을 악(樂)이라 한다.
일이 이어지지 아니하면 차례가 없어져서 조화가 안되는 까닭에 예악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정치를 베풀어 나가는 것이 모두 그 도를 잃는 까닭에 형벌이 맞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이름과 실상은 서로 기다리는 것이니 한 일이 구차하면 그 나머지는 다 구차하다." 하였습니다.
정치가 행하여지지 않는 것과 교화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것은
작녹(爵祿)이 족히 권하지 못하고 형벌이 족히 부끄럽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예기」○ 역시 공자(孔子)말.)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정치가 행해지지 아니하고 교화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것은
웃사람이 작록과 형벌을 마땅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작록이 그 사람에게 맞지 아니하면 착한 이는 권할 수 없고,
형벌이 그 죄에 맞지 아니하면 소인이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이것을 말하여 형벌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작록을 가볍게 한다고 한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봉사(封事)를 올려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사해(四海)가 지극히 넓고 백성이 지극히 많아서
사람들은 각각 뜻이 있어서 자기의 사사로움을 행하려고 하는데,
정치를 잘하는 사람은 이것을 잘 총섭(總攝)하여 정제하여 백성들에게 각각 그 이(理)를 따르도록 하면서
내 뜻의 하고 싶은 바를 다 하도록 하는 것은 먼저 위에서는 기강을 유지하고 다음 아래에서는 풍속을 몰아가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기강이라 하는가 하면, 어질고 어질지 못한 이를 분별하여 상하의 구분을 정하고, 공과 죄를 잘 밝혀서 상벌의 시행을 공정히 하는 것이며,
무엇을 풍속이라 하는가 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다 착한 것을 알아서 이것을 사모하여 반드시 행하게 하고,
또 사람으로 하여금 착하지 못한 것을 알아서 이것을 부끄러워하여 반드시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강이 떨쳐지는 소이는 재상은 꼭 장악하여 실정(失政)을 하지 않으며, 대간(臺諫)은 잘 살펴서 사사로운 바가 없고,
임금은 또 공정(公正)한 마음으로 위에서 몸을 공손히 하되 백성들을 밝게 비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진 이는 반드시 위에 있고 어질지 못한 이는 반드시 밑에 있으며, 공 있는 이는 반드시 상을 받고 죄 있는 이는 반드시 형을 받아서,
만사의 계통이 결함(缺陷)이 없는 것입니다.
기강이 이미 떨쳐지면 천하의 사람들은 각각 스스로 분발하고 또 서로 권면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대체로 출척(黜陟)233)과 상벌이 일일이 백성들 각자의 몸에 가해지지 않더라도 예의와 염치의 풍속이 크게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도(正道)가 위에서 행해지지 아니하면, 이로써 재상과 대간될 사람을 적임자를 얻지 못하고,
출척과 상벌이 사의(私意)에서 많이 나와서, 천하의 풍속이 마침내는 흐려져서 명절(名節)과 행검(行)의 귀한 것을 알지 못하고,
오직 아첨하고 아양을 부려서 서로 교제를 잘하려고 경쟁하는 데 힘을 쓰며,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말을 단정하게 하거나 얼굴빛을 바르게 한 이가 있다면,
그 무리들은 기롱하고 배척하여 반드시 이 세상에서 용납되지 못할 지경에까지 몰아넣고야 만 그만두니
이렇게 되면 나라의 형세는 마치, 기울어져 가는 집이 겉모양은 아름답고 고와서 외부의 변화는 깨닫지 못하나
내부의 재목은 이미 다 좀먹고 썩어서 다시 지탱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임금께서 진실로 스스로 뜻을 결단하시어 그 마음을 깨끗이 씻고, 크게 경각심을 발휘하여,
크고 작은 신하로 하여금 각각 그 직(職)을 수행토록 해서 출척(出陟)을 분명히 하고 상벌을 신실히 하지 않는다면
어찌 무너진 기강을 진작시키고 무너진 풍속을 바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관자(管子)는 말하기를, 예(禮)·의(義)· 염(廉) ·치(恥)를 4유(四維) 라고 하는데 사유가 베풀어지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한다. 하였으며,
가의(賈誼)는 일찌기 한(漢)나라 문제(文帝)를 위하여, 이 말을 외워 말하기를, 관자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모르지만
관자를 다스리는 체계(體系)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였으니,
이 두 사람의 말은 명백하고 절실하며, <조금도> 빈말이 아니라고 생각되니,
성명께서 유의하시면 천하가 심히 다행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주자의 전후 봉사(封事) 당시의 폐단을 진술한 것인데 오늘날의 병통에 가장 적중한 까닭에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기강(紀綱)이란 것은 국가의 원기(元氣)입니다.
기강이 서지 않으면 만사가 퇴폐되고, 원기가 튼튼하지 않으면 백해(百駭: 몸 전체를 말함.) 가 해이해집니다.
오늘날 논의하는 사람들이 입을 열면 곧 기강을 마땅히 세워야 한다고 말하지마는, 아직 그 요령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대개 정치를 하는데 기강을 잘 세운다는 것은 마치 학자가 의(義)를 모아서 호연(浩然)의 기를 낳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 한 가지의 영(令)이 바른 것을 얻고, 한 가지의 일이 마땅한 것에 적합하다고 하여 갑자기 그 효과를 보겠습니까.
대체로 위에서는 반드시 다스려야겠다는 뜻이 없고 아래에서는 녹을 타 먹겠다는 마음만 품고 있어서,
착한 이를 보고도 능히 등용하지 못하고, 악한 이를 보고도 능히 물리치지 못하며, 공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상주지 아니하며,
죄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형을 주지 아니하여 도학이 폐절(廢絶)되고 교화가 무너지며 풍속이 쓰러져서,
다만 권세와 이익에만 쏠리면서, 쓸데없이 혀끝으로만 간절히 기강을 세울 것을 든다면,
이 어찌 고질(痼疾)에 걸린 사람이 입으로만 양약(良藥)을 말하면서 실지로는 목구멍에 넘기지 못하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반드시 임금이 뜻을 먼저 정하여 학문을 바르게 하고 몸을 성실히 하며,
호령을 발하고 일을 거행함이 한결같이 공정(公正)한 도에서 나오지 아니하는 것이 없어서,
뭇 신하들로 하여금 다 임금의 마음을 우러러 보고 맑은 하늘과 같이 느끼게 하여 흥기하는 것이 있게 하여야만 합니다.
그런 뒤에 어진 이를 높이고 능한 이를 부리며, 망령된 이를 쫓아내고 간사한 이를 제거하며,
실적을 고람하여 상벌을 분명히 하며, 일을 시행(施行) 하고 조처하는 것이 천리에 순하고,
인심에 합당하지 않는 것이 없어서 크게 일세를 복종시킨다면 기강이 진작되고 영(令)이 행해져서
천하의 일이 모두 여의(如意)치 않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二帝)와 삼왕(三王) 인심을 열복(悅服) 시키고 세도를 유지하여, 수백 년을 전하여도 견고하여 허물어지지 않았던 소이입니다.
오늘날 법도가 행해지지 아니하고 정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다 기강이 서지 아니한 연유(緣由)이니,
폐하께서는 기강을 진작(振作)시키기를 엎드려 바라옵니다.
< 주 >
232) 밀봉하여 천자에게 상주(上奏)하던 의견서(意見書).
233) 유능한 이를 기용하고, 무능한 자를 내어쫓음.
제8장. 안 민(安民)
신이 살피건대, 이미 기강이 서서 백료(百僚)가 다 자기 직분을 받들은 뒤에 정치기구가 곧 베풀어지고 혜택이 생민에게 입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강장(紀綱章)다음에 안민장(安民章)을 놓았습니다.
◆ 다음은 군민상수(君民相須)의 도에 대한 말씀
부열(傅說)이 말하기를, "밝은 임금이 천도(天道)를 받들고 순응하여,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베풀어서, 후왕(后王)과 군공(君公)을 세우고,
대부와사장(師長)으로써 받들게 한 것은, 안일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열명(說命))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후왕(后王)은 천자요, 군공(君公)은 제후(諸侯)이며, 치란(治亂)을 난(亂)이라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순(舜)이 우(禹)에게 명하기를, "사랑할 만한 이는 임금이 아니며, 두려워할 만한 이는 백성이 아닌가.
백성은 임금이 아니면 누구를 떠받들며, 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더불어 나라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니,
공경하여 너의 위(位)를 삼가서 원할 만한 것[願]을 삼가 닦아라.
사해(四海)가 곧 궁해지면 하늘이 내린 녹(祿)이 길이 마치리라." 하였습니다. (우서(虞書)의 대우모(大禹謨))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가원(可願)이라 하는 것은 맹자에 이른바 '가욕(可欲)'이라 하는 것과 같다.
대체로 원할 만한 것은 다 착한 것이니, 임금이 마땅히 그 거하는 바의 위를 조심하여 착한 것을 공경히 닦아야 한다.
만약에 한 오라기만큼이라도 착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생겨서 정사를 해롭게 하면 백성들은 그 몸 둘 곳을 얻지 못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온 백성들이 곤궁한데 빠지면 임금의 천록(天祿)도 끊어져서 다시는 계속하지 못하는 것이니, 어찌 깊이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는가.
위의 이 글은 안위(安危)와 존망(存亡)에 대한 경계로서 지극히 경고한 것이다.
그 임금의 공덕이 성하여 반드시 이러한 존망의 지경에 이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감히 <마음>을 안일하게 놓지 않고, 호리(毫釐)의 사이라도 조심하게 하고자 하니 이것이 성인의 마음인 소이이다." 하였습니다.
오자의 가〔五子之歌〕에 이르기를, "황조(皇祖:우왕(禹王)을 가리킴.)께서 이런 훈계를 하셨다.
백성들은 가깝게 할지언정 천대하지는 못한다.
백성은 오직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어야만 나라가 편안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서(夏書))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이것은 우(禹)의 훈계이다.
임금과 백성간의 관계를 그 형세로 말하면, 존비(尊卑)의 분수가 천지와 같고, 정(情)으로 말하면,
서로 기다려 편안한 것은 신체가 서로 도와서 생존해 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형세로 멀리하면 멀어지고, 정(情)으로 친하면 합하는데, 친하기 때문에 가깝다고 하고, 멀리하기 때문에 천대한다고 한다.
<이것은 이금이 백성과> 친해야 하고 멀리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한 것이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으로서 근본이 굳어야만 나라가 편안해지고, 근본이 굳지 못하다면
비록 진(秦)나라 만큼 강하고 수(隋)나라 만큼 부(富)하더라도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애민(愛民)의 도에 대한 말씀
○목왕(穆王)이 말하기를, "여름에 더운 비를 백성이 원망하고 겨울에 큰 〔祁〕 추위를 백성이 원망한다.
그들은 참으로 어려우니 그 어려움을 생각하여 <모든 것이> 용이(容易)하도록 꾀하면 백성들이 편안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서(周書)의 군아(君牙)
○ 목왕(穆王)이 군아(君牙)를 대사도(大司徒)로 임명하면서 한 말입니다.)
채씨는 말하기를, "기(祁)는 크다는 뜻이다.
더운 비와 큰 추위를 백성이 원망하는 것은 스스로 그 삶이 어려움을 가슴아파 한 것이다.
'그 어려웁다'는 것은 그 백성이 살기가 진실로 어려움을 탄식한 것이다.
그 어려운 것을 생각하여 용이하게 도모한다면 백성들이 곧 편안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강고(康誥)234)에 말하기를,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것과 같이 하라." 하였으니, (강고의 말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마음으로 정성껏 구하기만 하면 비록 적중되지는 않더라도 멀지는 않을 것이다.
대개 자식을 기르는 법을 익힌 뒤에 시집갔다는 사람은 없다." 하였습니다. (대학(大學))
삼산 진씨(三山陳氏)는 말하기를, "갓난아이는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스스로 말을 할 수 없는 것인데,
오직 자모가 그 아기의 하고 싶은 것을 알게 된다.
비록 그 하고 싶은 것에 꼭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거기에서 멀지 않는 것은 사랑이 진실하여 피차간에 틈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으로 구하는 것은 배움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였습니다.
○ 장자(張子)가 말하기를, "대체로 임금과 정승은 천하의 부모와 같이 함으로써 왕도(王道)를 할 수 있다.
부모의 마음으로 백성들에게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면 이것을 왕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소위 부모의 '마음'이란 것은 한갓 말로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해(四海) 안의 백성을 자기의 자식과 같이 보는 것을 말한 것이니,
만약 사해의 안을 다자식처럼 본다면 정치하는 방법이 반드시 진(秦)·한(漢)처럼 적은 은혜를 베풀지는 않을 것이며,
오패(五伯)같이 이름을 빌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늙어서 아내 없는 것을 환(鰥)이라 하고 늙어서 남편 없는 것을 과(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 없는 것을 독(獨)이라 하고 어려서 아비 없는 것을 고(孤)라고 한다.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은 세상에 가장 곤궁한 자들이어서 호소할 데도 없는 사람들이다.
문왕(文王)은 정령(政令)을 발하여 인정(仁政)을 베풀 때에는 반드시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을 먼저 돌보았던 것이니,
시(詩)에 이르기를, '부자(富子)들이야 괜찮지만, 외로운 사람들이 불쌍하구나.' 〔矣富人 哀此獨〕하였다." 하였습니다. (맹자(孟子) )
주자는 말하기를, "선왕이 백성을 기른 정책은 백성들의 처자를 잘 인도하여 이들로 하여금 늙은 이를 봉양하게 하고,
어린 이를 애휼(愛恤)하게 한다.
백성들 중에 불행히 환과고독(鰥寡孤獨)의 부류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이들은 더욱 애휼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들을 먼저 돌보게 된다.
시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정월(正月)편이요, 가()는 가(可)하다는 뜻이며, 경()은 괴롭고 근심스런 모습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지극히 인(仁)하면 천지가 한 몸덩어리가 되고, 천지 사이의 만가지 형태와 물이 사지(四肢)가 되고 백체(百體)가 된다.
대개 사지와 백체가 되는 것을 보고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의서(醫書)에 '수족이 풍완(風頑)한 것을 사체 불인(四體不仁)이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아픈 것이 그 마음에 관련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대저 수족이 나에게 있는데, 그 아픈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불인(不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상의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은혜를 베푸는 것이 없는 자는, 스스로 자기를 버리는 것이 역시 이와 같을 따름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외민(畏民)의 도에 대한 말씀
소공(召公)이 성왕(成王)에게 고하기를, "임금께서는 빨리 덕을 공경하여 크게 백성들을 화하게〔誠〕 하는 것을 지금의 아름다음으로 삼으시옵소서.
임금께서는 감히 뒤로 미루지 말고 백성들의 험난한 것을〔〕돌보아 두렵게 여기옵소서."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소고(召誥))
채씨는 말하기를, "함(誠)은 화한다는〔和〕뜻이요, 암()은 험난하다는 뜻이다.
왕이 크게 백성을 화하게 하는 것을 지금의 아름다움으로 삼아야 한다.
백성은 비록 지극히 미미하나 지극히 두려워해야 하므로 임금은 당연히 덕을 공경하여 뒤로 미루지 말고,
백성들의 험난한 것을 돌보아 두렵게 여겨야 한다." 하였습니다.
오자의 가〔五子之歌〕에 말하기를, "어리석은 남자나 어리석은 여자라도 다 나보다 나으리라.
나는 만백성을 대하되 마치 썩은 새끼로 여섯 마리의 말을 모는 것같이 두려워하는데,
남의 위에 있는 사람이 어찌 공경하지 아니하겠는가." 하였습니다. (하서(夏書))
채씨는 말하기를, "임금이 인심을 잃으면 독부(獨夫:국민에게 악정을 행하여 버림받은 군주. 죽 필부를 말함.)가 된다.
독부가 되면 어리석은 남자나 어리석은 여자라도 다 나를 이길 것이다.
썩은 새끼는 끊어지기 쉬워서 말을 몰 수가 없는데, 이것은 매우 두렵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맥구읍인(麥丘邑人)이 제환공(齊桓公)에게 축원하기를, "임금께서는 신하들과 백성에게 죄를 얻지 마시옵소서." 하니,
공이 화를 버럭 내면서 하는 말이, "나는 듣건대, 아들이 아버지에게 죄를 얻고, 신하가 임금에게 죄를 얻었다는 말은 들었지만는,
임금이 신하에게 죄를 얻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노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맥구의 읍인이 절하고 일어나면서 하는 말이,
"아들이 아버지에게 죄를 얻으면 고모나 자매나 숙부를 통해서 양해를 시키면 아버지가 능히 죄를 사(赦)해 줄 것이고,
신하가 임금에게 죄를 얻으면 좌우의 근신들을 통하여 사죄하면 임금이 능히 사하여 줄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 걸(桀)이 탕(湯)에게 죄를 얻고 주(紂)가 무왕(武王)에게 죄를 얻은 것은 임금이 신하에게 죄를 얻은 것이니,
사죄하여 줄 사람이 없어서 지금까지 죄를 얻고 있습니다." 하니,
공이 말하기를, "좋은 말이로다." 하고는 맥구(麥丘)땅으로 그를 봉(封)하였습니다.
◆ 다음은 혈구(矩)235)의 도에 대한 말씀
○ 충서(忠恕)가 도에서 거리가〔違〕멀지 않으니, 나에게 베풀어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 (중용(中傭))
주자는 말하기를, "나의 마음을 다하는 것은 충(忠)이요, 나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은 서(恕)이다.
그리고 위(違)는 가는 거리라는 뜻이니 여기에서부터 저기까지 서로 거리가 멀지 않다는 말이다.
나의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 일찌기 같지 아니한 것이 없는 까닭에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면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장자(張子)가 말한바,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면 인(仁)을 다하는 것이다.' 한 말이 바로 이것이다." 하였습니다.
위에서 늙은이를 늙은이로 섬기면 백성들이 효성에 흥기(興起)하고, 위에서 어른을 어른으로 받들면 백성들이 공경에 흥기하며,
위에서 외로운 이들을 가련하게 여기면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기 때문에 군자는 혈구의 도〔矩之道〕가 있나니라." 하였습니다.
주자가 말하기를, "늙은이를 늙은이로 섬긴다는 것은 소위 내 늙은 이를 늙은 이로 섬긴다는 말이요,
흥(興)은 감발(感發)하여 흥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혈()은 헤아린다는 뜻이요, 구(矩)는 모난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구(矩)는 모난 물건을 만드는 것으로 속칭 곡척(曲尺)이라 합니다.
위에 말한 이 세 가지는,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도 본받는데 빠른 영향이 있다.
여기에서 인심의 같은 것을 볼 수 있으니, 한 사람도 그 얻지 못하는 이가 있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인심이 같은 것을 미루어 (같은 것이란 마음이요, 마음이란 곧 구(矩)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여,
피차간에 각각 그 분원(分願)을 얻게 하면 상하와 사방이 균형되고 방정하여, 천하가 화평해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웃사람에게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 것이요, 아랫사람에게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웃사람을 섬기지 말 것이며,
앞 사람에게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뒷사람에게 먼저 하지 말 것이요, 뒷 사람에게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앞사람에게 따르지 말 것이며,
오른쪽 사람에게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왼쪽 사람에게 건네지 말 것이요, 왼쪽 사람에게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오른쪽 사람에게 건네지 말 것이니,
이런 것을 혈구의 도〔矩之道〕라고 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 말은 윗 글의 혈구(矩) 두 글자의 뜻을 거듭 해석한 것이다.
만일 웃사람이 내게 무례하게 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반드시 이런 마음으로 아랫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역시 무례하게 부리지 말 것이요,
아랫사람이 내게 불충(不忠)하게 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또한 반드시 이런 마음으로 웃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불충하게 섬기지 말 것이니,
일의 전후좌우에서 사람마다 다 이와 같이 해 나간다면
자기 몸이 처한 곳의 상하 사방은 그 장단(長短)이나 광협(廣狹)이 피차 한결같아서 공정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백성들이 다 함께 이런 마음을 지니고 흥기하는 이 또 어찌 한 사람이라도 얻지 못하는 이가 있겠는가.
잡은 바(혈구의 도)는 간략하나 미치는 바는 넓으니, 이는 천하를 화평하게 하는 요도(要道)이다." 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백성들의 즐거움을 즐긴다면 백성들 역시 그 임금의 즐거움을 즐기고,
백성들의 근심을 근심한다면 백성들 역시 그 <임금의> 근심을 근심한다.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의 즐거움을 가지고 즐기며, 천하사람들의 근심을 가지고 근심하여야 할 것이니,
그리고도 왕노릇을 하지 못한 이는 없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걸(桀)·주(紂)가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은 것이고, 그 백성을 잃은 것은 그 민심(民心)을 잃은 것이다.
천하를 얻는 데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백성을 얻는 것이 곧 천하를 얻는 것이다.
그 백성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는데 그 민심을 얻는 것이 곧 백성을 얻는 것이다.
그 민심을 얻는데는 방법이 있는데, 그 하고자 하는 것을 거두어 주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을 베풀지 않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맹자」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들의 하고자 하는 것을 다 이루어 주되 마치 거둬들이 듯 해 주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은 그들에게 베풀지 말라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 조조(錯)가 말하기를, "삼왕(三王) 때는 신하와 임금이 다 어질어 함께 꾀하고 서로 보필하였으며,
천하를 편안하게 하기 위한 계책은 하나도 백성들의 마음에 바탕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백성들의 마음은 오래 살기를 윈하지 않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왕은 이들의 생명에 손상이 없게 하였고,
백성들은 생활이 넉넉하기를 윈하지 않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삼왕은 이들을 후하게 하여 곤궁하지 않게 하였으며,
백성들은 마음이 편안하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삼왕은 이들을 부호(扶護)하여 위태롭지 않게 하였고,
백성들은 안일하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삼왕은 이들에게 힘을 여유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법령을 만들어서는 인정에 합당하여야만 행하고, 대중을 동원하고 백성을 부리는 데는 백성들의 사업에 근본을 두고 하였기 때문에
천하의 사람들이 그 정사를 즐거워하고, 그 덕에 돌아가서 바라기를 마치 부모와 같이 하고, 따르기를 마치 흐르는 물과 같이 하였다 ." 하였습니다.
편안하게 해주려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부린다면 비록 피로하더라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살려 주려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죽인다면 비록 죽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편안하게 해주려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부린다는 것은 본래의 목적이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려는 데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씨앗을 뿌리고 집을 다스리게 하는 부류요, 살려 주려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죽인다는 것은
본래의 목적이 백성을 살려 주려는 데 있는 것을 말한 것인데, 이것은 해(害)됨을 없애고 악을 버리게 하는 부류이다.
대개 부득이 그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면 비록 백성들의 욕망에는 거슬린다 하더라도 백성들은 원망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이와 반대가 된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박세렴(薄稅斂)의 도에 대한 말씀
○ 주공(周公)이 말하기를, "아, 군자는 안일하지 않는 것을 처소〔所〕로 한다.
먼저 농사짓기의 어려움을 알고, 이에 안일한 자리에 있으면 소인이 의지하는 것을 알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서(周書)의 무일(無逸). 하동)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소(所)는 처소(處所)와 같다.
군자는 편안히 그냥 놀지 않는 것을 자기의 처소로 하여 동정(動靜)과 식식(食息)에 이에 있지 않을 때가 없는 것인데,
만약 하다가 말다가 하면 소위 처소가 아니다.
먼저 농사짓기의 어려움을 알고 후에 안일한 자리에 있다는 것은 왕이 부지런히 애쓰는 마음을 가지고 왕위의 안일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의지〔依〕한다는 것은 농사짓는 일을 가리켜 한 말인데, 소민(小民)의 의지하여 사는 것임을 말한다.
사민(四民:사(士)·농(農)·공(工)·상(商) )의 일 중는 농사짓는 일보다 더 수고로운 것은 없고,
생민의 공(功) 중에는 농사짓는 일보다 더 큰 것은 없다.
주공이 무일(無逸)의 훈계를 발하면서 맨 먼저 이것을 언급하였으니, 이것은 이유가 있다." 하였습니다.
문왕(王文)은 감히 놀이와 사냥을 즐기지 아니하고 여러 고을에서 정상적인 공(供)만을 받아들였다.
채씨는 말하기를, "놀이와 사냥하는 데는 나라의 떳떳한 법이 있다.
문왕은 놀이나 사양에서 법도 없이 하지 아니하여 위에서 낭비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아래에서 백성에게 지나치게 거둬들이지 아니하여 능히 정상적인 공(供)만으로도 만족하여
공물(貢物)을 정수(正數) 외에는 횡포하게 거두는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애공(哀公)이 유약(有若)에게 묻기를, "흉년이 들어 비용이 부족하니, 이것을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논어」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비용은 나라의 비용이니, 공애(公哀)의 뜻은 대개 부세(賦稅)를 더함으로써 비용을 족하게 하려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유약(有若)이 대답하기를, "어찌 철법(徹法)을 쓰지 않습니까."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철(徹)은 통(通)한다는 뜻이요, 고룬다〔均〕는 뜻이다.
주(周)나라 제도에는 한 농부가 밭 백 묘를 받아서, 도랑〔溝〕을 같이하고 밭〔井田〕을 같이하는 사람과 더불어
힘을 합해 농사를 지어서 묘(畝)를 계산하여 고르게 거두었으니, 대개 백성은 그 9를 얻고 관청에서는 1을 취하므로 이것을 철법(徹法)이라고 한다.
노(魯)나라에서는 선공(宣公) 때부터 묘(畝)에 세를 받았으며, 또 그 밖의 묘마다 10분의 1을 취하였으니 결국은 10분의 2를 취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유약이 오직 철법을 시행하여 애공(哀公)이 절용함으로써 백성을 후대하기를 요청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애공이 말하기를 2도 내가 오히려 부족하거늘 어찌 그 철법을 쓰리요." 하였습니다.
주자는, "2는 10분의 2를 말한다.
공은 유약이 자기의 취지를 깨닫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렇게 부세를 더 받을 뜻을 보였다." 하였습니다.
유약이 대답하기를, "백성이 족하다면 임금이 누구와 더불어 부족하다 하겠으며,
백성이 부족하다면 임금이 누구와 더불어 족하다 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이 넉넉하면 임금이 홀로 가난하게 되지 않을 것이며, 백성이 가난하면 임금이 홀로 넉넉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유약은 깊이 군민(君民)이 일체(一體)가 될 것을 말하며, 공의 많이 거두어들이려는 뜻을 저지 시켰으니,
남의 위가 된 사람은 마땅히 깊이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 경원 보씨(慶源輔氏)는 말하기를, "애공이 부세를 더하려고 한 것은 오직 말단적인 이익만 도모하는 것이요,
유약이 철법을 쓰려고 한 것은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의론이다.
사사로운 뜻에서 눈앞만 보면, 근본으로 돌아가는 의론은 멀어지고, 말단적인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하루 아침의 순간적인 효과가 있다.
공평한 이치로써 장구한 데서 보면 하루 아침의 순간적인 효과는 뒷날의 우환이 되게 하며, 근본으로 돌아가는 의론은 실로 오래가는 이익이 된다.
대개 말류(末流)의 폐는 더욱 말단적인 것을 구하여 마침내는 패망하고마니 이것은 고금을 통해 동일하다." 하였습니다.
○ 정씨(鄭氏)는 말하기를, "백성들의 재물은 곧 임금의 재물이고, 백성들의 힘은 곧 임금의 힘이다.
수레와 말은 다 백성이 생산하는 것이요, 곡식은 다 백성이 바치는 것이며, 힘의 사역(事役)은 다 백성이 하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능히 그 부세를 줄여서 관대하게 하면 그들은 생(生)의 안정을 얻어서 힘을 내어 공상(公上)에 매우 이바지하게 될 것이니
이렇게 되면 무엇이 부족하다고 근심하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가정들은 서로 이산(離散)되고 밭과 들은 황무지가 될 것이니, 임금은 어디서 취하여 비용을 족하게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대영지(戴盈之)가 말하기를 "10분의 1의 세법을 실시하고, 관문(關文)과 거리에서 징세(徵稅)를 폐지하는 것은,
지금은 능히 시행할 수 없으니 조금 경감하는 정도로 했다가 내년까지 기다린 후에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습니다. (「맹자」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영지(盈之)는 송(宋)나라 대부이요, 10분의 1은 정전법(井田法)이며, 관문과 시장의 세는 장사세를 말함이요,
그만둔다〔已〕는 것은 폐지한다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지금 매일 그 이웃 닭을 훔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그것은 군자가 할 짓이 아니다.' 하니
말하기를, '그러면 그 수효를 줄여서 한 달에 닭 한 마리씩을 훔치다〔攘〕가 내년까지 기다린 후에 그만두도록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가정해 보자.
만약에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당장에 빨리 그만둘 것이지, 왜 내년까지 기다리겠는가."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양(攘)은 물건이 저쪽에서 저절로 이쪽에 온 것을 훔치는 것을 말하고, 손(損)은 감한다는 뜻이다.
의리에 불가한 것을 알고도 능히 빨리 고치지 못하는 것은 달마다 닭 한 마리씩을 훔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였습니다.
○ 남헌 장씨(南軒張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불의를 멀리하기를 마치 악한 냄새를 싫어하는 것같이 하며,
감히 가까이 하지 아니하기를 마치 끓는 물에 손을 넣는 것같이 하며, 감히 잠간이라도 편히 여기지 아니하기를 마치 도탄에 앉아 있는 것같이 한다.
그리고 의(義)에 옮기기를 마치 기갈을 만난 이가 음식을 대하는 것같이 한다.
대개 보기를 밝게 하고 결단하는 용기가 이와 같지 아니하면 스스로 뽑아버리고 스스로 새롭게 할 수 없다고 여긴다.
선비가 몸가짐에 있어서 개과천선(改過遷善)할 즈음에 대영지(戴盈之)의 말대로 하면 종신토록 허물 속에 빠져 골몰할 것이요,
신하가 나라 일을 꾀하여 폐단을 개혁하고 옛을 돌이키는 일에 있어서 대영지의 말대로 하면 마침내 묵은 습속에 젖어서 구차한 지경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수신(修身)에서부터 치국(治國)에 이르기까지 지(知)·인(仁)· 용(勇)의 3덕이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된다.
지(知)는 이것을 아는 것이요, 인(仁)은 이것을 행하는 것이요, 용(勇)은 이것을 결단하는 것이니, 가히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 다음은 요역(役)을 가볍게 하는 도에 대한 말씀
○ 왕제(王制)에, "백성을 부리는 일은 1년에 3일을 지나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예기(禮記))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민력(民力)을 부린다는 것은 성곽(城郭)·도로 (道路)·구거(溝渠:도랑)와 궁묘(宮廟)를 짓는 일 같은 유인데,
주례(周禮)에 본시, 풍년에는 3일, 보통 해에는 2일, 흉년에는 1일뿐이나 군역(軍役)에는 이 제도에 구애되지 않았다." 하였습니다.
흉년에는 부역도 없고 부세도 없다. (주례(周禮))
정씨(鄭氏)는 말하기를, "부역을 없앤 것은 그 노고를 가엾이 여기는 것이요, 부세를 없앤 것은 그 곤궁한 것을 가엾이 여기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역정(力政)은 백성을 부역시키는 것입니다.
재물이 다하면 원망하고, 힘이 다하면 한탄한다.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이것은 백성의 상정(常情)이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임금은 부세를 경감하여 그 재물을 탕진(蕩盡)하지 아니하였고, 부역을 감하여 그 힘을 괴롭히지 아니하였다." 하였습니다.
장공(莊公) 9년 겨울에 수수(洙水)를 팠다. (춘추경(春秋經))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것은 백성을 보존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민력(民力)을 부리기를 가볍게 여겨 경망하게 큰 역사를 일으켜서 나라의 기틀이 한 번 흔들리면 비록 긴 강이나 큰 냇물이 막고 있어서
그 봉역(封域)이 동정호(洞庭湖)236)와 팽려(彭) 그리고 하수(河水)와 한수(漢水)같이 험고(險固)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의지할 수 없는데,
하물며, 수수(洙水:강 이름) 이겠는가.
수수를 팠다는것을 기록한 데서, 국가를 지키는 말무(末務)로 백성들을 괴롭혀서,
근본을 알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으니, 뒷 사람들의 경계로 삼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형벌을 신중히 하는 도에 대한 말씀
○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못 위에 바람이 있는 것은 중부(中孚)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옥사(獄事)를 의논하고 죽음을 늦춰 준다." 하였습니다. (중부괘상사(中孚卦象辭)237)
정자(程子)는 말하기를,"못위에 바람이 있는 것은 수체(水體)가 허(虛)한 까닭에 바람이 잘 들어오고,
인심이 허한 까닭에 사물을 보면 마음을 감동하게 한다.
바람이 못에 움직이는 것은 마치 사물이 마음 가운데에 감동하는 것과 같은 까닭에, 중부(中孚)의 상(象)이 된다.
군자가 옥사(獄事)를 의논하는데는 그 충(忠)을 다할 뿐이고, 죽음을 판결하는데는 측은(惻隱)한 마음을 극진히 할 뿐이다.
천하의 일은 그 충을 다하지 아니할 곳이 없으나 옥사를 의논하고 죽음을 늦춰 주는 것은 그 가장 큰 것이다." 하였습니다.
순제(舜帝)가 말하기를,"고요(皐陶)여, 지금 신하들이 아무도 나의 정사에 범하는[干] 이가 없는 것은
그대가 사사(士師:형을 다스리는 벼슬)가 되어 다섯 가지 형벌을 밝히고, 다섯 가지 가르침을 도와 나를 다스리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형벌을 쓰되 형벌이 없어지도록 하여 백성들을 중도(中道)의 바른 길에 맞게 한 것은
그대의 공이니, 더욱 힘쓸 지어다." 하였습니다. (우서(虞書)의 대우모(大禹謨)하동)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간(干)은 범한다는 말이요, 정(正)은 정사(政事)이며, 필(弼)은 도운다는 말이다.
성인의 정치는, 덕으로써 백성을 교화하는 근본으로 삼고, 형벌은 특히 그 미치지 못하는 것을 도울 뿐이다.
기(期)라는 것은 먼저 일에 있어서 꼭 그렇도록 기약 하는 것을 말한다.
백성들이 다 중도(中道)의 바른 길에 합하면 형벌은 과연 쓸 곳이 없게 되는 것이다. 무(懋)는 힘쓴다는 뜻이니,
순임금이 고요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여 이를 권면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고요(皐陶)가 말하기를, "임금님의 덕에 허물이 없어서 아래로 신하를 간략하게 대하시고,
백성을 너그럽게 부리시며, 형벌은 자손[嗣]에게까지 미치지 않고, 상은 후세[世]에까지 뻗치게 하셨으며, 모르고 지은 죄는 커도 용서하시고,
알고 일부러[故] 저지른 죄는 작아도 벌하셨으며, 의심스러운 죄는 그 형을 가벼히 하시고, 의심스러운 공은 그 상을 무겁게 하셨으며,
죄없는 이를 잘못 죽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법도[經]가 아닌 것에 허물하셔서 삶을 좋아하는 덕[好生之德]이 백성들의 마음 속에 담뿍 젖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유사(有司)의 법도에 범하지 아니 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채씨는 말하기를, "사(嗣)라는 것은 친근한 것이요, 세(世)라는 것은 소원한 것이다.
죄는 부자에게도 서로 미치지 않고 상(賞)은 먼 후세에까지 뻗치게 하였으니, 그 착한 것을 좋아함은 길고, 그 악한 것을 미워함은 짧기가 이와 같다.
과(過)라는 것은 알지 못하고 저지른 범행이요, 고(故)라는 것은 알고 고의로 저지른 범행이다.
모르고 저지른 죄는 비록 큰 것이라도 반드시 용서해 주고, 고의로 저지른 범행은 비록 작은 것이라도반드시 형벌을 주며,
죄의 적용이 의심스러워 무겁게 할 수도 있고 가볍게 할 수도 있을 경우라면 가벼운 것을 따라서 죄를 주고,
공(功)의 해당이 의심스러워 가볍게 할 수도 있고 무겁게 할 수도 있을 경우라면 무거운 것을 따라서 상을 주었다는 것이다.
경(經)은 떳떳한 법도이다.법도에 죽일 수도 있고 안 죽일 수도 있다면,
죽여서 생명을 해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이지 말고 스스로 형벌이 잘못이 되었다고 인책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인 인애충후(仁愛忠厚)의 지극한 것인데, 다 이른바 꼭?좋아하는 덕[好生之德]이다.
대개 성인의 법은 한정이 있으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무궁한 까닭에 형(形)을 쓰고 상(賞)을 행하는데
혹시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항상 법을 굴(屈)하고 은혜를 펴서 법을 집행하는 뜻이 그 삶을 좋아하는 덕에 이김이 없도록 하니,
여기서 그 본심이 막히는 일이 없고 도리어 그 본심이 상법(常法)의 밖에서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그 본심이 점점 넘쳐 흘러 민심 속에 스며들면 천하사람들이 애모(愛慕)하고, 감열(感悅)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선에 흥기하여 유사(有司)의 법도를 법하지 아니한다. 고요(皐陶)는 순이 자기의 공을 아름답게 여긴 까닭에
이것을 말하여 공을 순에게로 돌린 것이다." 하였습니다.
계강자(季康子)가 공자에게 정치에 관해서 묻기를, "무도한 자들을 죽여서 올바른 길로 가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공자는 대답하기를,"당신은 정치를 하면서 어찌 죽인다는 말을 하오.
당신이 선을 원한다면 백성들이 곧 선해집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風]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草]과 같아서 풀은 위로 바람이 지나가면 반드시 눕[偃] 부습니다." 하였습니다. (「논어」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들은 위정자를 보고 본을 받는 것인데 어찌 죽이는 것을 <함부로>하겠는가. 위에서 착하려로 하면 백성들은 착해진다.
상(上)이란 글자는 어떤 데는상 (尙) 자로 되어 있으니 더한 다는 뜻이요, 언(偃)은 눕는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윤씨(尹氏)는 말하기를, "죽인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어찌 남의 위에 있는 사람의 할 말이겠는가.
몸소 궁행하면서 가르치면 복종하고, 말로써만 가르치면 송사(訟事)를 하는 것인데 하물며 죽이는 것으로써 가르침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하였습니다.
맹씨(孟氏)가 양부(陽膚)에게 사사(士師)를 시키거늘<양부가> 증자(曾子)에게 그 일을 물어보니,
증자가 말하기를,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정도(正道)를 잃어 백성들이 흩어진 지가 오래 되었다.
<그들이 죄를 범하게 된> 실정을 알게 되거든 슬퍼하고 불쌍하게 여기고 기뻐하지는 말라."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이 흩어지는 것은 정의(情義)가 멀어져서 서로 단결되지 않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사씨(謝氏)는 말하기를, "백성들의 마음이 단결되지 않고 흩어지는 것은 부리는데 도가 없고, 미리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으로서,
그들이 범법을 하는 경우는 부득이 해서 빠진 것이 아니라면 몰라서 거기에 빠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죄를 범하게 된 실정을 알게 된다면 슬퍼하고 불쌍하게 여길 것이지 기뻐할 수는 없다."하였습니다.
○ 면재 황씨(勉齋黃氏)는 말하기를, "죄의 정상을 알게 되었다고 기뻐하면 너무 각박한 뜻이 법 밖으로 넘치게 되고,
죄의 정상을 알게 되어 불쌍하게 여기면 차마 못하는 마음이 항상 법 안에 작용하게 된다.
어진 사람의 말은 대개 이와 같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 신이 살피건대, 부세를 적게 하는 것, 부역을 가볍게 하는 것, 형벌을 삼가는 것의 세 가지는 백성을 편하게 하는 큰 요령입니다.
반드시 의(義)와 이(利)를 분별하고, 절용(節用)하여 재물을 생산하며 백성의 일정한 재산[恒産]을 만들고
군정(軍政)을 잘 닦아 밝혀야만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도를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래 글에는 이것을 순서로 삼았습니다.
◆ 다음은 의리(義理)를 분별하는데 대한 말씀
○ 의(義)가 이(利)를 이기면 치세(治世)가 되고, 이(利)가 의(義)를 이기면 난세가 된다.
임금이 의를 중히 여기면 의가 이(利)를 이기고, 임금이 이(利)를 중히 여기면 이가 의를 이긴다.
그러므로 천자는 많고·적은 것을 말하지 않고, 제후는 이·해를 말하지 않으며, 대부는 득·실을 말하지 않고, 사(士)는 재화(財貨)를 통하지 아니한다.
이것은 다 이(利)를 부끄럽게 여겨 백성들과 더불어 사업을 다투지 아니하는 것이니, 나누어서 베푸는 것을 즐거워하고,
쌓아서 저장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순자(荀子))
한(漢)의 문학(文學)(문학은 당시 군국(君國)에서 추천한 벼슬입니다.) 이 말하기를, "말단적인 이(利)를 억제하고,
인의(仁義)를 열어서 이(利)를 취하는 것을 보이지 말게 하여야만 교화가 일어날 수 있고, 풍속이 착한 데로 옮겨질 수 있다.
전(傳)에'제후가 이(利)를 좋아하면 대부가 더러워지고, 대부가 더러워지면 서민이 도둑질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것은 이를 탐하는 구멍을 열어 놓는 것은 백성들에게 죄의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다.
또 이는 하늘로부터 온 것도 아니요, 땅으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요, 한결같이 백성들에게서 취한 것이다.
오얏과 매실의 열매가 많이 열리면 다음해에는 이것 때문에 나무가 쇠해지고 신곡이 익으면 구곡(舊穀)은 이것 때문에 이지러지는 것이니,
천지로부터 두 개가 한꺼번에 이득을 볼 수는 없는 것인데, 하물며 인사에 있어서는 여기에서는 이(利)를 보면 반드시 저기에서 손해를 본다.
지금은 개와 말의 사육이나 벌레와 짐승의 <곡식을>먹는 것이나 쓸데 없는 관리나 급하지 않는 일을 벌리는 것이나,
공없이 의식(衣食)을 취하는 현관(縣官)등이 많기 때문에 위로는 <재용(財用)>이 부족하고 아래로는 <생활>이 궁핍하다." 하였습니다.
재화(財貨)를 거두어 모으면 백성이 흩어지고, 재화를 나누어 주면 백성이 모이나니,
인자(仁者)는 재화로써 몸을 일으키고[發], 불인자(不仁者)는 몸으로써 재화를 일으킨다. (「대학」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발(發)한다는 것은 일으킨다는 뜻과 같다.
인자(仁者)는 재화를 나누어 줌으로써 백성을 얻고, 불인한 자는 몸을 망치는 것으로써 재화를 거두어 모은다." 하였습니다.
웃사람이 인(仁)을 좋아하는데 아랫사람들이 의(義)를 좋아하지 않는 일은 없다.
아랫사람들이 의를 좋아하고서 웃사람이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 적은 아직 없었으며,
부고(府庫) 속의 재화가 그의 재화가 되지 않은 적은 아직 없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웃사람이 인(仁)을 좋아하여 아랫사람들을 사랑하면 아랫사람들은 의(義)를 좋아하여 웃사람에게 충성하니,
이렇게 되면 일이 반드시 이루어지고, 부고의 재화는 패악불순하게 나갈 걱정이 없다." 하였습니다.
○ 육지(陸贄)가 덕종(德宗)에게 간(諫)하기를, "성인이 교(敎)를 세우는 데는 재화를 천하게 여기고 예양(禮讓)을 높이며
이(利)를 멀리하고 청렴(淸廉)을 숭상하기 때문에 천자는 재화가 있고 없음을 묻지 아니하고, 제후는 재화의 많고 적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는 뇌물은 인심을 자극하여 화(禍)의 실마리를 열고 풍교(風敎)를 상하게 하여, 나라와 집을 어지럽게 할까 두려워함입니다.
그러므로 재화를 많이 모으는데 힘써서 탕고(帑庫)에 두텁게 싸아두는 것은
필부(匹夫)의 부(富)요, 재화를 나누어서 몸을 일으켜 백성들의 마음을 거두는 것은 천자의 부(富)인지라,
여기에 어찌 지존한 지위를 떨어뜨려서, 유사(有司)의 직을 대신하며, 천자의 자리를 욕되게 하여 필부의 거두어 모으는 것을 본받겠습니까.
대개 국가의 일에 대하여 공공(公共)을 위해 마음을 쓰면 사람들이 반드시 즐거워하여 이에 따르고,
사사로이 자기 몸을 위해 마음을 쓰면 사람들이 반드시 어겨서 이에 배반할 것이기 때문에 남의 위에 있는 사람은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씻어서 삼무사(三無私)238)를 본받아 한결 같이 대중을 받들어야 합니다.
이러고서도 사람들이 혹시 따르지 않는다면 그때 형(刑)을 쓸 것입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에게는 이(利)를 베풀고 그 자신에게는 사(私)를 금하는 것이니 천자가 믿고서 천하를 다스리는 기구입니다.
이것을 버리고 힘쓰지 아니하며 백성들의 이(利)를 막고 내사리(私利)를 행한다면 백성들의 탐냄을 없애고자 하나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보건대, 임금의 두 창고[二庫]는 진폐(珍幣)의 관리가 탁지(度支:호조(戶曹)지금의 재무부(財務部))에 영속(領屬)되지 않았으니,
이것은 사리를 행하는 것이고, 경비를 지출해 주지 않으니, 백성들에게 이를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인심이 이산하고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폐하(陛下)께서는 평소의 한결같은 욕심을 돌아보고 경계하여서
기용(器用)의 취급을 너무 풍유하게 쓰지 말 것이며, 의식의 편안함을 반드시 아랫사람에게 나누어주되,
두 창고에 있는 재화를 다 공있는 이에게 내어 주도록 하고, 탄연히 회포를 열어 민중과 더불어 소욕(所欲)을 같이하며,
이렇게 한 뒤에는 납공(納貢)을 반드시 유사(有司)에게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면 난세는 반드시 치세가 될 것이요, 적(賊)은 반드시 평정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조금 저축한 것을 나누어 크게 저축하게 되고, 조그마한 보물을 드려서 큰 보물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 주자의 봉사(封事)에 말하기를, "내탕(內帑 : 임금의 금고)의 세입이 얼마인지를 알지 못하는데,
이것을 사사로운 재화로 여겨 사인(私人)에게 맡겼으므로 재상(宰相)이 일정한 방식으로 공(貢)의 출납(出納)을 고루 하지 못하고
판조(版曹:국가 재을 맡은곳, 호조(戶曹)의 별칭)가 장부에 얼마나 있는지를 헤아리지 못하며,
날마다 소모하여 사생활에 쓰이는 비용이 그 얼마인지를 알지 못할 정도이고,
오직 판조의 경비를 날로 심히 궁핍하게 하고 그 독촉을 날로 준급(峻急)하게 하여
조종(祖宗)의 좋은 법을 폐지하는 데까지 이르러 다투어 혹독하게 하니. 이것이 민력이 매우 곤궁하게 되는 소이(所以)입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천자의 부(富)는 사해(四海)에 간수하고, 제후의 부는 백성에게 간수하니,
창고(倉庫)와 부고(府庫)를 두는 것은 공공의 물품을 보관하기 위한 것으로 사사롭게 축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임금이 사사로이 축적을 하면 이것은 이(利)를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원(利源:이(利)가 쫓아 나오는 원천)이 한번 열린다면 모든 신하들이 제각기 다투어 가면서 그 쪽으로 기울어질 것이오니,
무슨 일이든지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전하께서 진정코 선정을 해 보실 마음이 있으시다면,
반드시 먼저 내탕고(內庫)239)와 내수사(內需司)240)를 호조(戶曹)에 부속시켜 국가 공공(公共)의 비용으로 삼고,
사재(私財)로 삼지 말아서 신민으로 하여금 분명히 전하께서 한 오라기의 이(利)도 취하는 마음이 없으심을 우러러보게 하여야만,
더러운 버릇을 씻고 사유(四維)를 붙들어 지극히 좋은 정사를 이룰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 다음은 절용 생재(節用生財)에 대한 말씀
○ 재물을 생산하는 데에는 큰 방도가 있는데, 생산하는 사람은 많고 무위도식 하는 자가 적으며,
만드는 사람는 민활하게 하고 소비하는 사람은 서서히 하면 재물은 항상 풍족할 것이다. (대학(大學))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나라에 노는 백성이 없으면 생산하는 이가 많을 것이요, 조정에 요행으로 얻은 벼슬이 없으면 도식하는 자가 적을 것이며,
백성들의 농사철을 빼앗지 아니하면 만드는 일이 민활할 것이요, 수입(收入)을 헤아려서 지출(支出)한다면 소비가 서서히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나라를 넉넉하게 하는 방법은 농사에 힘쓰고 비용을 절약하는데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나라에 9년의 저축이 없으면 부족(不足)하다. 하고, 6년의 저축이 없으면 급하다. 하고, 3년의 저축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다 한다.
3년을 경작하면 반드시 1년 먹을 식량의 여분이 있고 9년을 경작하면 반드시 3년 먹을 식량의 여분이 있는 것이니,
비록 한재(旱災)나 수재(水災)가 있다 하더라도 백성들이 굶주린 기색이 없는 것인데,
그래야만 천자의 음식상에 날로 좋은 찬을 드리게 되며, 음악을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예기)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인력이 갖추어지면 천변(天變)에 응할 수 있으니, 왕은 백성들과 더불어 근심을 같이 한다.
그러므로 비록 한재나 수재가 있다 하더라도, 백성들이 굶주린 기색이 없어야만
천자의 음식상에 좋은 찬을 드려서 음악으로 이것을 권한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에 말하기를, "하늘과 땅이 절도가 있어서 4철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제도로써 절도있게 하여 재물을 상하지 않도록 하며 백성들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절괘(節卦)241)단사(彖辭))
정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절(節)의 도를 미루어 말한 것이다.
천지가 절도가 있는 까닭에 4철을 이루는 것이니, 절이 없으면 차례를 잃는다.
성인이 제도를 세워 절도 있게 하는 까닭에 능히 재물을 상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
사람은 인욕(人欲)이 무궁하므로 진실로 제도로써 절제하지 않으면 사치하고 방자해서, 재물을 상하여 백성을 해치는 데 이른다." 하였습니다.
○ 또 손괘(損卦)의 전(傳)에 말하기를, "손(損)이란 지나치는 것을 덜어서 중(中)에 나아가는 것이요, 말단적인 것을 덜어서 본질에 나아가는 것이다.
천하의 해(害)는 말단적인 것이 이겨서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없다.
큰 집과 조각한 담장[峻宇雕牆]은 궁실(宮室)에서 나왔고, 술의 못과 고기 수풀[酒池肉林]은 음식(飮食)에서 나왔고,
음란하고 잔인(殘忍)한 것은 형벌에서 나왔고, 군사를 동원하여 함부로 전쟁을 하는 것은 본래 정벌(征伐)에서 나왔으니,
대개 사람의 욕심이 지나친 것은 다 본래 몸을 받들고 기르는 것에서 나왔다. 그리하여 그 말류(末流)가 점점 해가 되는 것이다.
선왕(先王)이 그 근본을 제정한 것은 천리(天理)요, 뒷 사람이 말류에 흐르는 것은 인욕(人欲)인데,
손(損)의 뜻은 이 인욕을 버리고 천리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국가의 재용이 다 백성에게서 나왔는데, 만약 이것을 절제하지 아니하여 용도에 부족하다면,
부세를 백성들에게 모질게 거둘 것이니, 비록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백성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사랑하려는 이는 반드시 먼저 절용(節用)을 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은 바꾸지 못할 원리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제민 항산(制民恒産)에 대한 말씀
○ 맹자는 말하기를, "항산(恒産)이 없더라도 항심(恒心)을 갖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그렇게 할 수 있고,
일반 백성들은 일정한 재산이 없으면 그 때문에 항심을 못 가지는 것이다.
만일 항심이 없다면 방탕한 짓이나 사악(邪惡)한 짓 등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죄를 지은 뒤에 뒤따라 처벌한다면, 이것은 백성들에게 그물을 쳐서[罔] 잡는 것이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임금의 자리에 앉아 백성들에게 그물을 쳐서 잡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맹자」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항(恒)은 항상이란 뜻이요. 산(産)은 생업(生業)이란 뜻이다.
항산은 항상 살아나갈 수 있는 생업을 말하고, 항심은 사람이 항상 지니고 있는 선심이다.
선비는 일찌기 학문을 하여 의리를 알기 때문에 비록 항산이 없다 하더라도 항심이 있지마는, 백성들은 그렇게 될 수 없다.
망(罔)은 나망(羅網)인데 보지 못하게 속여서 잡는 것을 말한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어진 임금은 백성의 산업을 제정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위로는 넉넉히 부모를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넉넉히 처자를 먹여 살릴 수 있어서 풍년이 들면 종신토록 배불리 먹을 수 있고, 흉년이 들더라도 죽음을 면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하여야만 백성들을 지도하여 선한 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를 따라 가기가 수월한[輕] 것이다. (축 허육반(畜許六反))
주자는 말하기를, "경(輕)은 쉽다는 뜻이다. 이말은 백성들이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음을 이른 것이다." 하였습니다.
오늘날 백성들의 산업을 제정하는 데는 위로 부모를 섬기기에 부족하고, 아래로 처자를 먹여 살리기에 부족하여,
풍년이 들더라도 종신토록 고생해야 되고, 흉년이 든다면 굶어서 죽을 도리밖에 없다.
이러고서야 백성들이 죽음에서 구제되기에도 힘이 족[贍]하지 못할까 걱정인데, 어느 여가에 예(禮)를 닦고 의(義)를 행하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섬(贍)은 족하다는 뜻이다. 이 말은 소위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농사철을 어기지 않게 하면 곡식은 이루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넉넉하게 될 것이고,
가는 그물[細網]을 못에 넣지 않게 하면 물고기는 이루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넉넉하게 될 것이며,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한하여 산림(山林)을 벌채하게 하면, 재목은 다 쓸 수 없을 만큼 넉넉하게 될 것이니,
곡식과 물고기가 이루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넉넉하고, 재목이 다 쓸 수 없을 만큼 넉넉하다면,
백성들에게 산 사람을 부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데 유감이 없도록 한 것이다.
산 사람을 부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데 유감이 없도록 하는 것은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시작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농사철이란 봄에는 밭갈고 여름에는 김매고 가을에는 거두는 시기를 말한다.
대개 국가에서 부역[役]을 일으킬 적에는 백성들에게 농사철을 빼앗아 동원하지 말고, 겨울에 동원하여 부역을 시킬 것이다.
촉(數)은 빽빽하다는 뜻이요, 고()는 그물이며, 오()는 웅덩이인데 물이 괴어 있는 곳이다.
옛날에 그물은 반드시 네 치[寸]의 눈을 사용하고, 고기는 한 자[尺]가 차지 아니하면 시장에 팔지 못하고 사람들은 먹지 않았다.
그리고 산림과 시내나 못은 백성들과 더불어 공유(共有)하되 이것을 지키고 금하는 것이 있으며,
여()는 막고 지키는 것이니, 백성들이 적절한 시기가 아닌데 취하는 것을 금하는 것입니다.
초목의 잎이 다 떨어진 뒤라야 도끼를 들여 놓는다 하니, 이것은 모두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초기에 아직 법제가 미비하여
천지 자연의 이로운 것을 따라서 절약하고 아껴 기르던 일이다.
그러나 음식과 궁실은 산 사람을 부양하는 것이요, 제사와 관곽(棺槨)은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일로서 이것은 다 백성들에게 급한 일이요.
없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런데 모두 이렇게 하도록 해준다면 사람들은 여한이 없을 것이다.
왕도(王道)라는 것은 민심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왕도의 시작이라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5묘(畝)의 택지에다 뽕나무를 심으면 50세의 노인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을 것이고,
닭·돼지·개 등의 가축을 기르는데 그 번식 시기[時]를 잃지 않으면 70세의 노인이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이고,
1백 묘의 전답을 가진 경작자의 농번기를 빼앗지 않는다면 여러 명의 식구를 가진 자가 굶주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상서(庠序)교육을 신중하게 실시하고 이에 효제(孝悌)의 도의를 되풀이[申] 하여 가르친다면
반백(頒白)된 노인이 짐을 지거나 이고서 길을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70세의 노인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일반 백성이 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게 되고서도 왕노릇을 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시(時)는 새끼를 밸 때를 말하는 것이니, 예를 들면 맹춘(孟春:음력 정월)의 고기를 암컷은 쓰지 아니하는 유와 같은 것을 말한다.
상서(庠序)는 모두 학교를 말한 것이요. 신(申)은 거듭한다는 뜻이요, 반(頒)은 반(班)자와 같으며 노인의 머리가 반은 검고 반은 흰 것을 말한다.
이 말은 법제와 품절(品節)의 상세한 것을 다하고 재성(財成) 보상(輔相)의 도를 극진히 잘 이루어 백성을 돌보아 인도해 나가는 것을 말한 것이니,
이것은 왕도의 완성이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하늘 과 땅이 사귀는 것은 태괘(泰卦)이다.
임금은 이를 본떠서 하늘과 땅의 도(道)를 바탕으로 잘 이루고,
하늘과 땅의 알맞은[宜] 도움으로써 백성들을 돌보아 잘 인도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태괘(泰卦) 상사(象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지가 사귀어서 음양이 화(和)하면 만물이 무성하게 이루어지는데,
이것을 태괘(泰卦)라 한다.
임금은 마땅히 천지 통태(通泰)의 상(象)을 체득하여 천지의 도를 잘 이루고 천지의 마땅한 도리를 도움으로써 생민을 돌보아 잘 인도해 나가야 한다.
재성(財成)은 그 시행되는 길을 잘 만들어 이루는 것을 말한 것이요, 보상은 백성들에게 천시(天時)를 쓰고 지리(地利)를 따르게 하여
교화 육성의 공을 도와서 그 풍성하고 아름다운 이(利)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수명 군정(修明軍政)에 대한 말씀
○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지(地) 가운데에 수(水)가 있는 것은 사괘(師卦)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백성들을 포용(包容)함으로써 무리를 기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사괘(師卦)242) 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땅 가운데에 물이 있는 상(象)을 보고서 백성을 보존하고, 그 무리를 기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물은 땅에서 나오고 군사는 백성 가운데서 나오기 때문에 백성들을 잘 기르면 무리를 얻을 수 있다." 하였습니다.
사(師)는 곧은 것[貞]이니 장인(丈人)이면 길(吉)하고 허물이 없을 것이다. (사괘 단사)
정자는 말하기를, "사(師)의 도는 바른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군대를 발동하여 천하에 해독을 끼치고 부정을 저지르면 백성들이 따르지 아니한다.
이것은 강제로 몰아다가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사(師)는 곧은 것을 가지고 주재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그 무리의 동원이 비록 바르다 하더라도 통솔자가 반드시 장인(丈人)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을 것이다.
장인이란 것은 존엄한 이를 말하는 것이니, 군사를 통솔하는 이가 그 무리들에게 존대를 받고 두려워하여 굴복함을 받지 못하면
어찌 인심이 쏠리게 될 수 있겠는가.
소위 장인이란 것은 반드시 본래 그 처한 곳이 숭귀(崇貴)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재모(才謀)와 덕을 무리들이 두려워하고 굴복하는 바이면 된다." 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그대의 거마(車馬)와 궁시(弓矢)와 군사[戎]를 잘 정돈하여 전쟁이 일어나는데 대비하여
먼 데 있는 오랑캐에게 사용하라." 하였습니다. (대아(大雅)의 억편(抑篇))
주자는, "계(戒)는 대비한다는 뜻이요, 융(戎)은 군사이며, 작(作)은 일 어남이요, 척()은 멀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옛날에는 병사와 농사를 나누지 아니하였습니다.
평일에는 민생을 후하게 하여 은택을 입히며, 때로는 무예(武藝)를 익혀서 사냥을 하고, 무사시에는 비려(比閭)와 족당(族黨)이 되어,
사도(司徒)에게 교육을 받으며, 임금을 높이고 친족을 사랑하는 행실을 독실히 하고,
유사시에는 군사가 되어 사마(司馬)에게 복종하여 웃사람을 친하고 어른을 위해 죽는 뜻을 분발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왕자의 병(兵)은 정벌은 하여도 전쟁은 없어서 감히 대적할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세에는 양민(養民)하는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단지 점병(點兵)하는 법만 엄격하여 거리의 사람을 몰아서 적군과 싸우게 하며,
나라의 재용을 다하여 군량을 공급하였으니, 이것은 당송(唐宋)때 병정(兵政)의 폐단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선왕들은 백성들 중에서 선발하여 병정을 만들었고, 병정을 농경에 종사하게 하였다가
식량이 넉넉하여지면 군대로 나아가게 하였고는 또 번갈아 휴식하게 하였으니, 나라에는 군량의 낭비가 없었고,
군사 또 혼자서만 고생하는 한탄이 없어서 그 법이 심히 아름다왔습니다.
그런데 차츰 민생이 곤핍하여짐에 따라 근본이 튼튼하지 못하고, 각 진영의 장수들은 침박(侵剝)을 일삼아 백성들이 계속적으로 흩어지고,
변방경비의 결원 보충은 그 족린(族)으로 충당하니, 도망치는 이가 날로 많아서 그 해독이 날로 커지고,
장정을 끌어다가 인원수를 채워 놓으면 곧 도망해 버리고 돌아오지 아니하여, 병적을 완비하기에 힘을 쓴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빈 명부만 안고 있었으니, 이렇게 나가면 그 형세는 결국 백성들이 그 혈유(孑遺)까지도 없어지게 되여야만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그 폐단의 근원을 궁구하며 실로 이것은 백성들이 항산(恒産)이 없고, 장수를, 적임자를 얻지 못한 데서 오는 소치입니다.
이러므로 백성들을 포용하고 무리를 길러 나가는 것이 군정(軍政)의 근본이 되고, 장인(丈人)이 솔사(帥師)하는 것이 군정의 강령이 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신이 살피건대, 임금은 나라에 의존하고, 나라는 백성에게 의존하는 것이므로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식(食)을 하늘로 삼는 것이라,
백성이 하늘을 잃으면 국가가 의존할 데를 잃어버립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眞理)입니다.
왕자(王者)의 정치는 오직 백성에게 부모 노릇하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 민력(民力)을 늦추어 주고 민산(民産)을 후하게 해주어서
백성들이 하늘로 여기는 식(食)이 풍유하여 그 본연의 착한 마음을 보존하게 할 뿐입니다.
임금으로서 이런 정치를 능히 행하지 못하는 것은 욕심(慾心)에 얽매여 스스로 절도를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자기에게 이롭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남에게 해롭게 되니, 어찌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도 그 해로움이 백성에게 미치지 아니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간혹 임금 중에는 비록 욕심의 누(累)는 없다 하더라도, 태만한 것에 인습이 되어 백성을 구하지 못하는 이가 있으니,
이것은 욕심이 많은 것과는 간격이 있지마는, 백성들의 심한 고통을 풀어 주지 못하고 나라의 근본을 손상하여,
다 같이 난망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아, 부모는 자식을 충심으로 사랑하여 그 즐거워하는 것을 이루어 주고 , 그 싫어하는 것을 제거해 주어 그 극진한 것을 다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임금이 진실로 백성에게 부모 노릇을 하고자 한다면, 한 백성이 그 자리를 잃어버려도 다 나의 적자(赤子)가 우물로 빠져 들어 가는 것같이 여겨,
미친 듯이 달려가서 기를 쓰고 이것을 구제하려 할 것입니다.
누가 적자가 우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앉아서 보기만 하고 태연히 웃고 담화하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옛날 성스러운 임금은 그 직책이 백성들에게 부모 노릇하는 곳에 있는 줄을 깊이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애쓰고 안타깝게 여겨 밥 먹을 겨를도 없고 마음은 언제나 이 백성들에게 있었을 뿐입니다.
그 백성의 힘을 아끼기를 마치 살을 베어 내기 어려운 듯이 하고, 그 백성의 생산에힘쓰기를 마치 배고플 때 먹이를 구하듯이 하며,
그 폐습(弊習)을 혁신하기를 마치 급한 병에 약을 복용하듯 하여, 반드시 그 백성들을 지극히 만족하고 즐거운 경지에 도달하게 하야만
비로소 마음으로 만족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백성은 은혜가 골수에 스며들고 사랑이 폐부(肺腑)에 맺히어, 임금을 위하여 죽는 것을 단 엿을 먹는 것보다 더 쉽게 하였으니,
어찌 국세(國勢)가 , 장구히 다스려져 안정되지 않았겠습니까?
임금이 다만 부모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백성들도 임금을 사랑하는 생각이 없고,
굶주림이 몸에 절박하면 예의가 다 상실되어 그들이 임금 보기를 시랑이나 호랑이·원수와 같이 여깁니다.
임금이 된 이도 또 그들을 업신여기면서 '누구도 감히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재화의 배태(胚胎)가 컴컴한 가운데 잠복되어도 경계할 줄 모르다가, 하루 아침에 뜻밖의 변이 일어나고
소홀히 여기던 데에 환(患)이 생겨서 필부필부(匹夫匹婦)가 다 강적이 된 뒤에는, 비록 후회한다 하더라도 이미 미칠 수 없습니다.
대개 백성의 힘이 쉬지 못하거나 백성의 생산이 증식되지 않으면, 비록 군사가 진(秦)나라와 같이 강하고,
재물이 수(隋)나라와 같이 부유할지라도 뿌리를 제거한 나무와 다름이 없습니다.
비록 지엽(枝葉)이 무성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말라버리는 것을 서서 기다릴 수 있는 일인데,
하물며 수나라와 진나라만큼 부강하지 못한 데 있어서이겠습니까.
이러므로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요, 백성을 편안히 하는 것은 자기를 편안히 하는 것입니다.
대개 백성을 편안히 한다는 것은 그들을 위하여 이(利)를 일으키고 해(害)를 없애어 그 삶을 즐겁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만일 고루한 것을 그대로 따르고 그릇된 것을 그대로 지켜, 안일하게 세월이나 보내어 일폐(一弊)도 혁신하지 못하고
일정(一政)도 거행하지 못하고서, 다만 타이르는 태도로써 조석으로 호령하면서, "나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 한다." 고만 하면,
이것은 성심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백성들은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지극히 신명(神明)한데 어찌 혀끝으로 속일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백성들이 편안하지 못한 것은 전하께서도 아시는 바이오니, 알고 구제하지 않으시면 백성들의 원망이 더욱 심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 주 >
232) 밀봉하여 천자에게 상주(上奏)하던 의견서(意見書).
233) 유능한 이를 기용하고, 무능한 자를 내어 쫓음.
234)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
235) 사람을 생각하고 살피어서 바른 길로 향하도록 하게 하는 도덕상의 규칙.
236) 호남성(湖南省) 북부에 위치한 중국 제일의 대호수, 상수(湘水)완수(浣水)등의 물을 받아 양자강으로 흘러 들어감.
237) 「주역 」64괘 가운데 61 번째 괘.
239) 임금의 사사 재산을 넣어두던 곳간.
240) 궁궐에서 쓰는 쌀·베·곡물·노비 등에 관한 사무를 맡아 보던 관청.
241) 「주역」 64괘 주60 번째 괘.
242) 「주역」 64괘 중 7번째 괘.
제9장. 명 교(明敎)
신이 살피건대, 「예기」에 이르기를, "광토(曠土)가 없고 유민(遊民)이 없어서 절제 있게 먹고 때에 따라 일을 하여
백성들이 모두 편안하게 살 수 있어서 일을 즐거워하고 공업(功業)을 힘쓰며,
임금을 높이고 웃사람을 친하게 여겨야만 학문을 일으킨다." 하였으니,
먼저 부유하게 하고 그 다음에 교화하는 것은 이치와 사세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민장(安民章)뒤에, 명교(明敎)로써 끝을 맺습니다.
◆ 흥교(興敎)의 근본에 대한 말씀
공자는 말하기를, "법령[政]으로 인도[道] 하고 형벌로 다스리면[齊] 백성들이 형벌을 면(免)하여도 수치심이 없다." 하였습니다. (「논어」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도(道)는 인도한다는 뜻과 같으니 앞에서 이끄는 것을 말한 것이요,
정(政)은 법제(法制) 금령(禁令)을 말한 것이며, 제(齊)는 한결같게 다스려 나간다는 뜻이니,
인도하되 따르지 않는 자는 형으로 한결같이 다스려 나간다는 것이다.
면하여도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은 구차하게 형벌을 모면하여도 부끄러워 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개 감히 악을 저저르지는 못할지라도 악을 하려는 마음은 없어지지 않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덕으로 인도하고 예(禮)로 다스리면 수치를 알고, 또 착한 데로 나아갈[格]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예는 제도품절(制度品節)이요, 격(格)은 이른다는 뜻이다.
임금이 몸소 행하여 거느리면 백성들이 진실로 보고 느끼는 것이 있어서 흥기한다.
그러나 여기에 보고 느끼는 것이 천심(淺深)과 후박(厚薄)의 한결같지 않음이 있으므로
또 예(禮)로써 한결같이 다스리면, 백성들이 불선(不善)을 수치로 여기고 선에 나아가는 것이다.
일설에는 격(格)은 바르게 하는 것이니, 서경(書經)에, '그 그른 마음을 바르게 한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정(政)이라는 것은 다스리는 기구[具]이요, 형(刑)이라는 것은 다스리는 데 보조 역학을 하는 법이요,
덕과 예는 다스리는 데 근본이 되는 것인데, 덕은 또 예(禮)의 근본이다. 이것은 서로 시종(始終)이 되므로 그 중에 하나라도 편벽되게 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政)과 형(刑)은 다만 백성들에게 죄를 멀리하는 것이요, 덕과 예는 그 효력이 백성들로 하여금 날마다 부지중에 선에 나아가게 하는 까닭에,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 말단적인 정형(政刑)만 믿지 마고, 당연히 깊이 그 근본을 더듬어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사람을 가르치는 이가 선심을 기르면 악이 자연히 없어지고,
백성을 다스리는 이가 공경과 겸양으로 인도하면 다툼이 자연히 없어질 것이다."하였습니다.
○ 가의(賈誼)가 상소하여 아뢰기를,"대개 사람의 지혜는 능히 지난 일은 볼 수 있지마는 앞으로 다가올 일은 능히 보지 못합니다.
예(예)는 행동이 앞으로 그러하기 전에 미리 금하고, 법은 행동이 이미 그렇게 되고 난 뒤에 금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은 무엇 때문에 사용한다는 것은 알기가 쉽고, 예가 무엇 때문에 생겼다는 것은 알기 어렵습니다.
대저 경하[慶]와 상(賞)으로써 선을 권하고 형벌로써 악을 징계하는 것은, 선왕이 이런 정(政)을 지키기를 금석(金石)같이 굳게 하였고,
이런 영(令)을 행하기를 사시(四時)처럼 신실히 하였으며, 이런 공정함에 근거하여 무사하기를 천지와 같이 하였으니,
돌이켜보건대, 어찌 이것을 사용하지 아니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예(禮)여.' '예여'하고 말했던 것은 악이 싹트기 전에 근절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교(敎)를 미요함에 일으켜서 백성으로 하여금 부지중에 선에 나아가고, 죄를 멀리하게 한 것입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송사를 듣고 판정하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과 같으나 반드시 송사를 없게 할 것이다.' 하였으니,
임금이 된 이는 먼저, 취하고 버릴 것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취하고 버리는 극진한 것이 안에서 정해지면 편하고 위태로운 싹이 밖에서 응하는 것입니다.
편안한 것은 하루하침에 갑자기 편안한 것이 아니요, 위태로운 것도 하루아침에 갑자기 위태로운 것은 아닙니다.
다 점점 쌓여서 그렇게 된 것이니 살피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임금이 쌓는 것은 그 취사(取舍)에 있는 것이니, 예의로써 다스리는 사람은 예의를 쌓고 형벌로써 다스리는 사람은 형벌을 쌓으니,
형벌이 쌓이면 백성들이 원망하고, 예의가 쌓이면 백성들이 화친합니다.
그러므로 대개 임금들이 백성을 착하게 하고 싶은 것은 같지마는, 백성들에게 착하게 하는 방법은 달라서,
혹 덕교(德敎)로써 인도하기도 하고 혹 법령으로써 몰기도 하니, 덕교로써 인도하면 덕교가 흡족해서 백성들의 기상이즐겁고,
법령으로써 다스리는 이는 법령이 지극하여 백성들의 기풍이 애절해지니 애락(哀樂)이 감동하는 데 화복이 응합니다.
진시왕(秦始王)이 종묘를 높이고 자손을 편안하게 하려던 것은 탕(湯)·무왕(武王)과 같았으나,
탕과 무왕은 그 덕을 광대히 하여 6·7백년을 행하여도 잃지 않았고, 진시왕은 천하를 통치한 10여 년만에 크게 패하였으니,
이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탕과 무왕은 천하를 정하는 데 취사(取舍)를 잘 살폈고,
진시왕은 천하를 정하는 데 취사를 살피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대개 천하는 큰 그릇이라, 지금 사람이 그릇을 두되 편안한 데 두면 편안해지고, 위태로운 데 두면 위태로우나니,
탕과 무왕은 천하를 인(仁)·의(義)·예(禮)·악(樂)에 두었기 때문에 덕택이 만맥사이(蠻貊四夷)에까지 흡족하게 입혀져서,
그 자손 수십 대로 쌓여나갔으니, 이것은 천하가 다들은 바입니다.
진시왕은 천하를 법령과 형벌에 두었기 때문에 덕택은 없고 원독(怨毒)만 세상에 차서 화가 거의 몸에 미치고 자손까지 끓어졌으니,
이것은 천하가 다 본 바입니다. 이것이 그 밝은 공효요, 큰 증험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말에, '남의 말을 듣는 법은, 반드시 그 일을 가지고서 보면, 말하는 자가 감히 망령되게 하지 못한다.'하였습니다.
지금 혹시 말하기 를 '예의가 법령만 같지 못하고 교화가 형벌만 같지 못하다.'하면,
임금된 이는 어찌 은(殷)나라·주(周)나라·진(秦)나라의 일을 끌어서 보지 아니하십니까." 하였습니다.
◆ 다음은 입교(立敎)의 절목(節目)에 대한 말씀
○ 순(舜)이 말하기를, "설(契)아, 백성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지 않으며, 오품(五品)이 손순치[遜]아니한다.
그대에게 사도(司徒)243)의 직을 맡기니, 삼가 오교(五敎)를 펴되[敷] 너그러이[寬] 하라." 하였습니다. (우서(虞書)순전(舜典))
채씨(蔡氏)는 말하기를,"오품(五品)은 부자·군신·부부·장유·붕우 다섯가지 인륜의 명위 등급(名位等級)이요,
손(遜)은 순(順)한다는 말이 며, 사도(司徒)는 가르침을 맡은 벼슬이고, 부(敷)는 편다는 말이며,
오교 (五敎)는 다섯 가지 당연한 이치로써 교령(敎令)을 삼는 것이요, 관(寬)은 여유 있게 기다린다는 뜻이다.
이것은 백성들에게 점점 배어들게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도가 있 기 때문에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편히 거처하지마는
교(敎)가 없 다면 새나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
성인은 이 점을 근심하여 설( )에게 사도(司徒)의 직을 주어 인륜을 가르치게 하였다.
즉 부자간에는 친함이 있어야 하고, 군신간에는 의리가 있어야 하며, 부부간에는 분별이 있어야 하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하며, 벗들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사도(司徒)가 육례(六禮)를 닦아서 백성들의 성품을 절제하고, 칠교(七敎) 를 밝혀서 백성들의 덕을 일으키고,
팔정(八政)을 정제하여 음탕한 것을 막 고 도덕을 순일하게 하여 풍속을 같이하고, 노인을 봉양하여 효도(孝道)를 이루고,
고독한 이를 가련히 여겨 부족한 것을 채워 주고, 어진 이를 숭상하 여 덕을 높이고 불초(不肖)한 이를 미워하여 악을 물리친다. (예기(禮記))
「예기」에 이르기를, "육례(六禮)는 관례(冠禮)·혼례(婚禮)·상례(喪禮)·제례(祭禮)·향례(鄕禮)·상견례(相見禮)이요,
향례(鄕禮)와 상견례는 지금 향음주(鄕飮酒)와 선비의 상견례만 있어, 참고해 볼 수 있습니다.
칠교(七敎)는 부자·형제·부부·군신·장유·붕우·빈객이요, 팔정(八定)은 음식·의복·사위(事爲:백공기예(百工伎藝))·
이별(異別)(지방에 따라 사용하는 용기를 구별합니다.
·도(度:자[尺])·양(量: 말과 되)·수(數)·제(制:포백의 규격)도량은 장단대소(長短大小)가 다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요,
수와 제는 다과 광협(多寡廣狹)이 다르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학교를 일으켜 사습(士習)을 바르게 하는 데 대한 말씀
○ 옥은 다듬지 아니하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면 도를 알지 못하는데,
군자가 만일 백성을 교화하여 풍속을 이루려하면 반드 시 그 배움으로 말미암아야 한다. (「예기」 하동)
진씨(陳氏)는 말하기를,"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는 데는 반드시 당우(唐虞)때의,
'아, 변하여 이에 화평하였노라.'하느 것과 같아야 이에 지극하게 된다.
여기의 배움은 곧 대학의 도인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의 일이다." 하였습니다.
옛날의 교육 기관으로 가(家)에는 숙(塾)이 있고, 당(黨)에는 상(庠)이 있 었으며, 술(術) 주(州)를 말합니다.
에는 서(序)가 있고, 국(國)에는 학(學)이 있다.
진씨(陳氏)는 마하기를,"옛날에는 25가(家)가 한 여(閭)가 되니, 여는 한 거리에 같이 있는 것이다.
거리의 입구에는 문이 있고 문 곁에는 숙(塾) 이 있다. 백성으로서 가(家)에 있는 이는 조석으로 숙에서 교육을 받는다.
5백가가 한 당(黨)이 되는데 당의 교육기관을 상(庠)이라 한다. 상에서는 여숙(閭塾)에서 뽑혀 올라온 사람을 가르친다.
그리고 천자가 거하는 도읍과 제후의 국중(國中)의 학교를 국학(國學)이라고 하니,
여기서는 임금의 맏아들과 중자(衆子)·경대부와 선비의 아들 그리고 준재로서 뽑혀 올라온 선비들을 가르친다." 하였습니다.
악정(樂正)이 사술(四術)을 숭상하고, 사교(四敎)를 세워서 선왕의 시(詩)·서(書)·예(禮)·악(樂)의 순서로
선비를 양성[造] 하되 봄가을에는 예악을 가르치고 겨울과 여름에는 시서를 가르쳤다.
오씨(吳氏)는 말하기를, "악정(樂正)은 교육을 맡은 벼슬이다.
술(術)은 길이라는 것이니 시·서·예·악의 네가지 가르침이 바로 덕에 들어가는 길인 것을 말한 것이다. 조(造)는 이룬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진씨(陳氏)는 말하기를,"옛 사람의 교육은 비록 4철에 따라 각각 그익히는 것이 있으나,
그 실제는 풀을 자르듯이 저것을 버리고 이것만을 익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아마 서로 그렇게 한다는 말이니, 봄가을에 시서를 가르치치 않고 여름과 겨울에 예악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하였습니다.
○ 동씨(董氏)의 대책(對策)에 이르기를,"춘추(春秋)에,하나로 통합하는 것을 크게 여긴 것은
이것이 천하의 상경(常經)이요, 고금의 통의(通誼) 입니다.
(춘추 공양전(公羊傳)에 은공(公)원년 봄 왕정월(王正月)이라 함에 있어서 무엇 때문에 「왕정월」이라 하였겠는가.
이것은 하나로 통하는 것을 크게 여겼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동중서(董仲舒)는 대개 이것을 빌어서 천하의 도술은 마땅히 하나로 통일이 되어야 함을 밝혔습니다.)
지금은, 스승들의 도가 다르고 사람들의 이론이 달라서, 백가(百家)가 모두 방향을 달리하고 뜻이 같지 아니하기 때문에
뒤에서 하나로 통합할 수가 없어서 법제가 자주 변하여, 아래에서는 그 지킬 바를 알지 못하오니,
어리석은 신은 생각컨대, "육예(六藝)의 과목과 공자의 술(術)에 있지 않은 것은 다 그 도를 끊어버리고 다시 나오지 못하게 하여,
간사하고 편벽된 말이 사라져야만 기강이 하나로 될 수 있고, 법도가 밝아질 수 있으며, 백성들이 따를 곳을 알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중고(中古)이래로 도술이 분열되어, 노(老)·장(莊)·양(楊)·묵(墨)·신(申)·한(韓)·소(蘇)·장(張:신불해·한비자 소진과 장의)의
설이 백성들을 혼란케 하였고, 한당(漢唐)에 내려오면서 불교가 겹쳐 천하가 혼잡하여 따를 곳을 알지 못해 호걸(豪傑)다운 선비도 많이 침닉되었습니다.
이 때를 당하여 인재가 배출하여 이따금 실용(實用)에 적합하였습니다.
송(宋)나라 이후부터는 정(程)·주(朱)의 공이 우주를 떠받치는 도술이 통일되었고,
이외에 다른 갈래가 없어져 마땅히 인재를 이룩하기에 용이할 듯하였는데,
오직 사람들이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세도(世道)는 날로 떨어지고 인심은 더럽혀져서, 의리는 돌보지 않고 오직 이(利)만을 구하니,
인물이 묘연( 然)하여 도리어 이단(異端)이 횡행하던 때만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욕(利欲)의 해가 이단의 해보다 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깊이 개탄할 만한 일이오니 전하께서는 마땅히 급하게 서둘러서 복고(復古)를 하시고 잘 교회(敎誨)하여 성취하옵소서.
대사도(大司徒)는 향(鄕)의 삼물(三物)로써 만민(萬民)을 가르쳐서 이에 어진이를 들어[興] 대접하였다. (「주례」 하동)
주씨(朱氏)는 말하기를,"물(物)은 일이란 뜻이요, 흥(興)은 천거한다는 말이다.
삼사(三事)가 이루어졌다고 고(告)하면 향대부(鄕大夫)가 그 현능(賢能)한 이를 천거하여 예로써 빈접(賓接)한다." 하였습니다.
삼사(三事)중에 첫째 것은 육덕(六德)인데, 지(知)·인(仁)·성(聖)·의(義)·충(忠)·화(和)이다.
주씨는 말하기를,"지(知)는 시비를 분별한다는 것이요, 인(仁)은 사욕이 없다는 것이며,
성(聖)은 통달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는 것이요, 의(義)는 단제(斷制)가 있다는 것이며,
충(忠)은 자기의 마음을 다하는 것이고, 화(和)는 어그러지고 요란스럽지 않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삼사 중에 둘째 것은 육행(六行)인데, 효(孝)·우(友)·목(睦)·인()·임(任)·휼(恤)이다.
주씨는 말하기를,"효(孝)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요, 우(友)는 형제에게 우애하는 것이며,
목(睦)은 구족(九族)에게 친목하는 것이요, 인()은 외친(外親)에게 화목하는 것이며,
임(任)은 벗에게 신임이 있는 것이요, 휼(恤)은 가난한 이를 진휼(賑恤)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삼사 중에 세째 것은 육예(六藝)인데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이다."
주씨는 말하기를,"예(禮)는 오례(五禮)이요, 악(樂)은 육악(六樂)244)이며, 사(射)는 오사(五射)245)요,
어(御)는 오어(五御)246)이며, 서(書)는 육서(六書)요, 수(數)는 구수(九數)이다." 하였습니다.
○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예(禮)로써 마음[中]을 제지하고, 악(樂)으로써 화(和)를 인도하며,
사(射)로써 덕행을 보고, 어(御)로써 말달리기를 바르게 하고, 서(書)로써 마음의 계획을 보고,
수(數)로써 물(物)의 변화를 다하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지극한 이치가 있어서 일용(日用)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하 다스리는 것을 잘 말하는 이는 법도가 세워지지 않은 것을 근심하지 아니하고,
인재가 이룩되지 못한 것을 근심이여, 수신(修身)을 잘 하는 이는 기질(氣質)이 아름답지 못한 것을 근심하지 아니하고,
사학(師學)이 밝지 못한 것을 근심하는데, 인재가 이룩되지 못하면 비록 좋은 법과 아름다운 뜻이 있다 하더라도 누구와 이것을 행하며,
사학이 밝지 못하면 비록 도를 받아들이는 바탕이 있다 하더라도 누구와 이것을 이룩하겠는가." 하였습니다.
○ 또 그는 말하기를,"옛날 사람은 어려서 배울 때부터 이목(耳目)으로 보고 들으며 노는 곳과 보는 것이 모두 착하고
커서도 좋지 못한 사물을 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인재가 성취되기가 쉬웠다.
그런데 오늘날은 사람들이 어릴때부터 보는 것이 모두 착하지 못하여, 겨우 말을 할 수 있을때가 되면
곧 더럽고 나쁜 것을 익혀 본성을 날마다 잃어가니, 여기에 다시 또 무슨 천리(天理)가 있겠는가.
모름지기 인리(人理)는 다하였으나 그래도 본성이 조금 남아있어서 다 녹이지 못한다.
그러므로 또 이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는 동안에 다소의 교묘한 거짓을 일으키고 기정(機穽:기교(技巧))을 싹트게 하는데,
이런 것이 가득히 차서 기운을 동하게 하니, 성현이 나지 않고 화기(和氣)가 싹트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평상시에 혹시 약간 화한 때가 있고, 풍년이 드는 해가 있더라도 이것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옛날에는 한때 또는 한 집에서 성인이 함께 났는데도, 후세에 와서는 수천 년이나 적막하게 되는가." 하였습니다.
「역경」에 이르기를, 위는 천(天)이요, 아래는 택(澤)인 것은 이괘(履卦)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위와 아래를 분별하여 백성들의 뜻을 안정시킨다."하였습니다. (이괘(履卦)의 247)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상하의 분별이 분명하여야만 백성들의 뜻이 정하여지고 백성들의 뜻이 정하여져야만 다스림을 말할 수 있는데,
만약 백성들의 뜻이 정하여지지 아니하면 천하를 얻어 다스릴 수 없다.
옛날에는 공경대부 이하가 모두 그 지위가 각각 그 덕에 맞아서 종신토록 그 자리에 있으면서 자기의 분수를 얻었다.
지위가 덕에 미흡(未洽)하면 임금이 들어서 승진 시켰다.
선비가 그 학문을 닦고 학문이 지극하면 임금이 그를 구하였으며, 자신이 그것을 예기했던 것은 아니다.
농(農)·공(工)·상고(商賈)가 그 일을 부지런히 하고 향유하는 것이 한정이 있기 때문에 다 뜻이 정해져 있고,
따라서 천하의 마음이 통일될 수 있었다. 그런데 후세에는 서인(庶人)이나 선비로부터 공경대부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존영(尊榮)스러운 지위에 뜻을 두고, 농·공·상고는 날마다 부유하고 사치스러운 일에 뜻을 두어,
백성들의 마음이 서로 이(利)에만 쏠려서 천하가 분연(紛然)하니, 어찌 하나로 통일될 수 있겠는가.
어지럽지 않기를 원하나 어려운 것은 상하가 뜻을 정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履)의 상을 본받아 상하가 분별하여 각각 그 분수에 맞도록 하여, 백성들의 뜻을 안정케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귀천에 등급이 있고, 의복에 분별이 있으며, 조정에 지위(地位)가 있다면 백성들은 사양하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 하늘에 놀고, 물고기는 펄쩍 물속에 뛰노네.
즐거울사 우리 군자 어찌 사람을 고무시키지 않으리요."[鳶飛戾天魚躍于淵 豈弟君子 遐不作人]하였습니다. (대아(大雅)의 한록(旱麓)편)
상채 사씨(上蔡謝氏)는 말하기를,"'솔개는 날아 하늘에 놀고 물고기 펄쩍 물속에 노네' 하는 말은 상하가 각각 그 자기의 자리를 얻은 것이니,
시인(詩人)이 이 같은 기상은 주(周)나라가 사람을 고무시키는 것이 이와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이 시는 문왕(文王)의 덕을 읊어 노래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아름답다 많은 선비, 이 왕국(王國)에 태어났네. 왕국은 어진 선비 잘도 낳으니, 이들은 주(周)나라의 기둥이로다.
어진 선비 많고많아 문왕(文王)은 편하시리. (대아(大雅)문왕(文王)편)
주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문왕의 나라가 이렇게 많은 선비를 낳았기 때문에 이들은 나라의 기둥이 될 수 있고,
따라서 문왕은 이에 힘을 입어 편안하게 되리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가 신종(神宗)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이제 천하가 쇠퇴하여 인정은 날로 투박하고 풍속은 말세적이어서,
말만 숭상하고 다시 염치가 없으니, 이것은 대개 조정에서 덕을 높이고 도를 즐거워하는 풍속이 일어나지 못한 것이며,
돈독하고 충후한 교화가 아직 펴지지 못한 까닭이니, 오직 폐하께서는 성인의 수훈(垂訓)을 상고하여 선왕의 다스림을 본받고,
일심 성의하여 하늘의 강건(剛健)함을 본받아 힘써 행하면 천하가 다행해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가르치되 스스로 자기 몸을 닦느데 근본을 둘 것을 말한 것입니다.
○ 그는 또 말하기를,"한(漢)나라가 어진 이를 용하였다 하는 것은,
남이 천거(薦擧)한 것이므로 공손홍(公孫弘) 같은 이도 오히려 억지로 일으켜 나아갔는데,
후세에 어진이란 자기자신이 기용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만약 이 중에 그래도 '내 마음에 꼭 임금을 대면해서 천하의 일을 직언하고 싶다.'하여 나아가는 이가 있으면
이런 이는 또한 숭상할 만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만약에 뜻이 부귀에 있을 때는, 그 뜻을 얻으면 곧 교만하고 방종하며,
그 뜻을 잃으면 곧 언행에 구속됨이 없거나 비수(悲愁)에 빠질 뿐이다." 하였습니다.
○ 또 그는 조정에 진언(進言)하기를,"천하를 다스리는데 있어서는 풍속을 바르게 하고,
어진 인제를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니, 임금은 마땅히 먼저 근시(近時)와 모든 집사(執事)들에게 예(禮)로서 명령하고,
마음을 다하여 사람을 물색하되 덕업(德業)이 충실히 갖춰진 이가 있으면 이를 사표(師表)로 삼아야 하며,
그 다음으로는 뜻을 독실히 하고 학문을 좋아하며 재질이 어질고 행실이 닦인 이가 있으면,
사람을 보내어서 이를 초빙하여 서울에 모아 아침저녁으로 서로 강명(講明)하여 학문을 바르게 해야하니,
그 도(道)는 반드시 인륜에 본원을 두고 물리를 밝혀야 하며,
그 교(敎)는 소학(小學)의 쇄소 응대(灑掃應對)에서부터 시작하여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닦는 데까지 이르게 하며,
예악(禮樂)을 잘 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잘 인도하고 격려하며, 점점 좋아지게 하여 성취해 나가는 길은 다 절도와 차례가 있으니,
그 요령은 선을 택하여 몸을 닦아서 천하를 덕화(德化)하는 데 이르고, 향인(鄕人) 한 사람 한 사람에서부터 성인의 도에 이르고,
그 학행이 모두 이에 합한 자는 성덕(成德)이 됩니다.
먼저 재질과 식견이 밝고 통달하여 선에 나아갈 자를 택하여, 이들로 하여금 날마다 그 학업을 받게 하고,
그 중에 학문이 밝고 덕행이 높은 이를 택하여 태학(太學)의 스승으로 삼으며, 그 다음에는 천하의 교학을 나누어 가르칠 것입니다.
선비를 선발하여 학교에 입학시키되, 현(縣)에서는 주(州)로 천거하고 주에서는 태학(太學)으로 천거하면,
태학에서는 이들을 모아 가르쳐서 해마다 그 중에 어진 이와 재능이 있는 이를 조정에 의논해 천거합니다.
대개 선비를 선발하는 법으로는 성행(性行)이 바르고 깨끗하며 효제(孝悌)를 행하여 염치와 예의와 겸손이 있으며,
학업에 밝게 통하며, 치도(治道)에 밝게 통달한 이로써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선악을 분별하여 풍속을 바루는 말씀
○ 「역경」에 이르기를, "산(山)위에 나무[木]가 있는 것은 점괘(漸卦)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어진 덕에 의거하여 풍속을 착하게 한다." 하였습니다. (점괘(漸卦)248) 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산 위에 나무가 있어서 높은 것은 점점 커 올라가기 때문이다.
군자는 이 점점이 커 올라가는 점(漸)의 상(象)을 본받아 어질고 착한 덕에 의거하여 풍속을 화미(化美)해 나간다.
풍속을 옮기고 바꾸는 것은 하루 아침이나 하루 저녁에 이를 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착한 풍속은 반드시 점점 그렇게 되어 나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성왕(成王)이 군신(君陳)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오직 백성들이 날 때의 본성은 두터우나 사물로 말미암아 바뀌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위에서 명령하는 것을 어기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만을 따르고자 한다.
그대가 능히 법을 공경하되 몸에 덕을 나타낸다면,
곧 변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되어 진실로 큰 도에 오르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군진(君陳))
채씨는 말하기를, "이 백성들이 태어날 때의 본성은 본래 두터웠으나,
이것이 박절하게 되는 까닭은 습속에 유인되고 사물로 말미암아 바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두터운 것이 바뀌어져서 엷게 되었다면 엷은 것은 어찌 도로 두텁게 할 수 없겠는가.
엷은 것을 돌이켜 두텁게 하려면 성음(聲音)과 소모(笑貌)만 가지고 능히 할 수 없다.
백성은 웃사람의 명령은 진실로 좇지 아니하고, 그들의 좋아하는 것만 좇는데
이것은 「대학」에 말한, '그 명령하는 것이 백성들의 좋아하는 바에 배반되면 좇지 않는 다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경전(敬典)이란 것은 군신·부자·형제·부부·붕우의 상도(常道)를 공경하는 것이요,
재덕(在德)이란 것은 5륜의 상도를 얻어서 몸에 나타내는 것이다.
대개 법을 공경할 줄만 알고 덕을 몸에 나타낼 줄 모르며는 법과 내가 오히려 둘이 된다.
오직 법을 공경하고도 몸에 덕이 있으면 공경하는 법은 실상으로 몸에 둔 것이 된다.
실덕(實德)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북채로서 북을 치는 것보다 빠르기 때문에,
풍속이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진실로 큰 도에 오르게 된다." 하였습니다.
대사도(大司徒)가 향(鄕)의 팔형(八刑)을 가지고 만민을 바르게 하는데,
첫째는 불효의 형이요, 둘째는 불목(不睦)의 형이며, 세째는 불인(不)의 형이요,
네째는 부제(不弟)의 형이며, 다섯째는 불임(不任)의 형이요, 여섯째는 불휼(不恤)의 형이며,
일곱째는 조언(造言)의 형이요, 여덟째는 난민(亂民)의 형이다. (주례(周禮))
주자는 말하기를, "삼물(三物:육덕(六德)과 육행(六行)과 육예(六藝)를 말함)의 가르침을 좇지 않으면,
8형(刑)을 만들어 이것을 바르게 한다." 하였습니다.
도는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가 있고, 정사는 풍속을 따라서 개혁하는 것이다.
그 착한 것을 착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을 권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주서(周書)의 필명(畢命) 하동)
채씨는 말하기를,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다.'는 말은, 높아질 때도 있고 낮아질 때도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를 하는 이는 풍속을 따라서 변혁을 한다." 하였습니다.
선[淑]한 이를 표창하고 악[惡]한 자를 구별하여 선한 이가 사는 마을에 정표(旌表)를 하며,
선한 것을 드러내고 악한 것을 병[]되게 하여 물리쳐서 명성(名聲)이 들리게 하라.
교훈과 법을 따르지 않으면 그 사는 마을에는 경계(界)를 달리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있게 하라.
채씨는 말하기를, "숙(淑)은 선이요, 특(慝)은 악이며, 단()은 병이다.
선한 이가 사는 마을을 정표한다는 것은 정문(旌門)을 세우는 유와 같은 것이다.
그 선한 일을 하는 이를 드러내고 선하지 않은 일을 하는 이를 병처럼 물리쳐서,
선한 것을 한 이의 명성을 들리게 하여 당시에 드러나게 하고, 후세에 전하게 하는 것이 소위 선한 이를 정표하는 것이요,
그 교훈과 법을 따르지 않는 자이면 그 사는 마을의 경계를 달리하게 하여, 선한 이와 함께 섞여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예기(禮記)에 말한,'변하여 착하게 되지 않으면 교(郊)에 옮기고, 변하여 착하게 되지 않으면 수(遂)에 옮긴다.' 하는 것이 곧 그 법이다.
악한 일을 함으로써 화(禍)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게 하며, 선한 일을 함으로써 복이 오는 것을 그리워하게 하는 것으로
소위 악한 이를 구별하여 두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역경」에 이르기를, "나의 하는 것을 살펴볼 것이니 군자라면 탈이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관괘(觀卦)249)의 효사)
정자(程子)는 말하기를,"관괘의 9·5효사(爻辭)는 임금의 자리에 거하여 세상의 치란(治亂)과 풍속의 미악(美惡)이
모두 나에게 매어 달려 있는 것을 보는 효사인데, 만약에 천하의 풍속이 모두 군자의 풍속이라면,
이것은 내가 행한 정치와 교화가 착한 것이므로 곧 탈이 없을 것이요,
만약에 천하의 풍속의 군자의 도에 합당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내가 행한 정치가 착하지 않는 것이므로 허물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제사를 바르게 하여 신간(神姦)을 없애는 말씀
○천자(天子)는 천지에 제사지내고 제후는 사직(社稷)에 제사지내며 대부는 오사(五祀) 250)에 제사지낸다.
천자는 천하의 명산과 대천에 제사지내고, 제후는 자기 땅에 있는 산천에 제사지낸다. (예기(禮記))
주자는 말하기를, "천자는 천지에 제사지내고, 제후는 자기 국내의 산천에 제사지내니,
이것은 오직 그것이 내게 속해 있기 때문에 제사지내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내게 속하지 아니하면 기운이 서로 감응하지 아니하는 것인데, 어찌 그것에게 제사를 지내겠는가."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그 귀신이 아닌데 제사지내는 것은 아첨(諂)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그 귀신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히 제사를 지낼 귀신이 아니라는 말이요, 첨(諂)은 아첨을 구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즐거울사 군자는 복(福)을 구하는 데 간사롭지 [回] 않네." 하였습니다. (대아(大雅)의 한록(旱麓)편)
주자는 말하기를,"회(回)는 간사하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정씨(鄭氏)는 말하기를, "이 시의 말은 문왕(文王)이 복을 구하는 데도 덕을 닦아서 기다리고,
간사한 행동을 하여서 구하지 않는 것을 찬미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봉사(封事)에서 말하기를,"신은 듣건대, 하늘에 밝은 도가 있으므로, 선한 것은 선한 대로 악한 것은 악한 대로 드러낸다.
선을 하는 사람에게는 백 가지 길상(吉祥)을 내려주고, 선하지 못한 짓을 하는 자에게는 백 가지 재앙을 내려준다." 하였으니,
이는 사람의 화복은 다 그 자신이 스스로 취하는 까닭입니다.
선한 일을 하지 아니하고 아첨하게 빌어서 복을 얻는 자는 있지 아니하며, 악한 짓을 하지 아니하고 바른 것을 지키면서 화를 얻은 이는 없습니다.
하물며 제왕(帝王)은 실상 천명을 받아서 교(郊)·묘(廟)·사직(社稷)·신·인의 주인이 되었는데,
진실로 덕을 잘 닦고 정사를 행하여 만백성을 편안하게 구제하려 한다면 어찌 빌어서 재해를 제거하겠으며,
어찌 빌어서 복록(福祿)이 오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만약에 이에 배반되면 하늘에 죄를 얻어 사람들이 원망하고 신이 노여워할 것이니,
비록 악한 귀신을 물리치고 진인(眞人)을 오게 하려고 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물며 선왕이 제정한 예(禮)는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양친의 은혜에 보답하는 제사는 다 떳떳한 법도가 있고,
그 제물[牲器]과 시일(時日)도 모두 떳떳한 법도가 있습니다.
드러나기로는 예악(禮樂)이 밝게 존재하고 이면에는 귀신이 깊숙이 있으니, 여기에는 일리(一理)가 관통해서 애당초 간격이 없습니다.
진실로 예(禮)로써 아니한 곳에는 신이 흠향하지 아니합니다.
이러므로 귀신이 아닌데 제사를 지내는 것은 곧 음사(淫祀)가 되는데, 음사가 복이 없다는 것은 경(經)에 명문(明文)이 있습니다.
굳이 이것을 만들어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은 이치의 자연한 것이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 때로 황홀한 사이에 간혹 신의 영향(影響)이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주(主)되는 마음이 없어서 그런 것인데,
여기서 망령되게 우려(憂慮)와 의심을 품고, 마침내는 무당과 요인(妖人)이 그 틈을 타서 간사하고 기만적인 짓을 마음대로 하니,
이렇게 하여 속이고 유혹하는 술(術)이 행해지면 그 화(禍)가 또 이르지 아니하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고금에 있어서 이것으로 말미암아 난망(亂亡)을 이룬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므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진실로 학문을 졍밀하게 이루어 성명(性命)의 이치를 밝히고, 마음으로 환하게 의혹되는 것이 없게 해서 마땅히 있게 해야 할 것은 있게 하고,
없게 해야 할 것은 없게 하지 아니하면, 무엇에 웅거하여 예를 잡고 법을 쥐어서 요망스러운 뿌리를 끊겠습니까.
선왕때의 정사에서는 옳지 못한 도로써 정치를 어지럽게 하거나 귀신에 가탁하여 대중을 의혹하는 자는 다 반드시 주륙(誅戮)하고 듣지 아니하였으니,
그 심려(深慮)가 이와 같았습니다.
전(傳)에 말하기를, '천지의 성(性)에 밝은 이에게는 신괴(神怪)로써 유혹할 수 없고,
만물의 정(情)에 밝은 이에게는 그른 비류(非類)를 가지고 속일 수 없다.'하였으니,
그 망령된 것은 대개 살피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성왕께서는 이 점을 유의하시면 천하가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하늘이 이 백성을 낳을 때에 그들에게 사목(司牧)을 세웠는데, 사목은 실로 임금과 스승을 겸하였습니다.
목자(牧者)로서 그들을 기르고, 임금으로서 그들을 다스리며, 스승으로서 그들을 가르쳐야만 이 백섣들이 그 삶을 편히 즐길 수 있고
그 악을 개혁할 수 있으며, 그 선을 흥기시킬 수 있습니다.
삼대(三代)이전에는 세 가지가 각각 그 도를 극진히 하였으므로, 정사가 이루어지고 덕화(德化)가 행해졌으며,
융성하게 다스려지고 풍속이 아름다와졌습니다.
그러나 후세에 내려오면서부터는 도학(道學)이 행해지지 아니하여 임금은 스스로 궁행(躬行)의 실상이 없고, 사방을 바르게 밝히지 못하여,
다만 법령으로 일세를 지탱하였을 뿐입니다.
때로는 간혹 인자한 임금이 있어서 이 백성들을 지극히 넉넉하게 한 일도 있었지마는, 교(敎)에 있어서는 들어볼 만한 것이 없었느니,
어찌 윤리(倫理)가 질서를 잃고, 풍속이 퇴폐한 것을 괴이하게 여기겠습니까.
옛 도는 행해지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일반 사람은 귀로 듣는데 편안하고 눈으로 보는데 익숙하여,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도리어 옛 도를 보고 몹시 놀랄 만한 것이라고 하니, 지사(志士)는 분개하고 한탄하여 마지않습니다.
대개 옛 도라는 것은 산을 겨드랑에 끼고 바다를 건너 뛰는 것이나, 허공을 업신여겨 달리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부자간에는 인(仁)을 다하고 군신간에는 의(義)를 다하고, 부부간에는 별(別)을 다하고, 장유(長幼)간에는 그 예(禮)를 다하고,
붕우간에는 그 신(信)을 다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천성을 근거하여 발해서 의덕(懿德)이 되는것이요, 본래 실행하기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앞에서는 기품(氣稟)의 구애를 받고, 뒤에서는 물욕으로 빠지게 하고, 그 위에 또 항산(恒産)이 없기 때문에 점점 갈 바를 잃고,
죽음을 구제하려 하여도 힘이 부족하여 그 양심을 잃으며, 한갓 형벌의 무서운 것만 알고, 명의(名義)와 절개를 지키는 데 근심하지 아니하여,
간사[邪]를 더하고 거짓을 조장시켜 교묘하게 법망(法網)을 피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웃사람은 교화의 도가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다만 형법의 주밀하지 못한 것만 근심하여 과조(科條)를 첨가하여 속이는 것을 막으려고 하니,
법이 더욱 주밀할수록 간악한 것은 더욱 자심하여 풍속이 날로 무너지고 세도(世道)가 날로 야비해져서 구할 수가 없게 됩니다.
때로 간혹 개연히 세상의 악습을 교정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교(敎)를 베푸는 데는 근본이 있고,
백성을 덕화하는 데는차례가 있는 것을 모르고, 한갓 그 이름만 생각하여 그 실상을 얻지 못하여,
근본을 뒤로 하고 끝을 먼저 하니 가르침은 있어도 효과가 없습니다.
이리하여 여기에 방자하기를 즐기고 검속하기를 꺼리는 사람은 틈을 타서 이것을 힘써 공격하여,
옛 도는 진실로 회복할 수 없다고 하니, 이것은 한 잔의 물을 가지고 한 채의 수레에 붙은 불을 끄려고 하다가
물이 불을 끄지 못한다 하는 것과 다름이 있겠습니까. 반드시 임금께서 먼저 궁행하기를 힘쓰고, 어진이를 얻어 같이 다스리며,
조정의 명령은 인심을 열복(悅服)시키되, 전도(顚倒)되어 의탁할 곳이 없는 백성으로 하여금 다 흥기할 생각을 품게 한 뒤에 ,
그들의 폐단이 되는 것은 버리고 괴로움이 되는 것은 풀어주며, 그들에게 동네[田里]를 제정하여 그 삶을 이룩하여 주고,
학교를 설립하여 그들의 길을 교도하여 주며, 예(禮)를 제정하여 그 절도를 단속하고, 향사(鄕射)와 향음주(鄕飮酒)251)의 의례를 만들어서,
그들의 화락을 인도하고, 선을 들어 권장하여 나아갈 방향을 알게 하고, 악을 물리쳐서 징계함으로써 그 배반됨을 알게 하면,
앞으로 학교의 교육은 성할 것이요, 향당(鄕黨)은 공경과 겸양의 풍을 일으키게 할 것이니.
때가 크게 다스려져서 형벌을 사용하지 않고 예악이 성할 것입니다. 옛 도를 어찌 참으로 오늘날에 실시할 수 없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묻기를,"이것은 그렇지마는 만약에 반드시 임금이 몸소 실천하여
먼저 백성을 증가(增加)시키고 부유하게 한 뒤라야 교(敎)를 베풀 수 있다면,
임금이 몸소 실천하는 날이 없고 백성을 증가시키고 부유하게 하는 기일이 없을 적에는
마침내 교를 베풀 수가 없지 않겠는가." 하기에, 신은 대답하기를, "임금이 만일에 몸소 실천하지 아니하고 백성을 기르는 데 힘쓰지 아니하면,
이것은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니 구제할 방책이 없다.
어찌 옛 교(敎)를 베풀 수 있겠는가.
만일 또 임금이 덕을 이루고 이 백성들이 증가되고 부유하게 한 뒤라야 비로소 교를 베푼다고 하면
이 역시 하나에만 집착된 이론이다.
오직 임금이 곧 몸소 실천할 뜻을 세우고, 곧 인정(仁政)을 베풀며 점차로 교육을 시행해 나가면
기르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병행하여 서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백성을 교화하는 도는 그 요령이 이와 같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힘쓰시옵소서.
< 주 >
243) 주대(周代)에 교육을 맡아 보던 벼슬이름. 지금의 문교부 장관과 같다.
244) 중국의황제(黃帝) 이하 6대(代) 고전 음악. 즉 황제의 음악인 운문(雲門), 요(堯) 임금의 음악인 함지(咸池),
순(舜) 임금의 음악인 대소(大韶), 우(禹)임금의 음악인 대하(大夏), 탕(湯) 임금의 음악인 대호(大濩),
무왕(武王)의 음악인 대무(大武)등을 가리킨다.
245) 중국 고대의 활쏘던 다섯 가지 방법. 즉 백시(白矢)·참연(參連)·염주(剡注)·양척(襄尺)·정의(井儀) 등을 말한다.
246) 중국 고대의 수레를 몰던 다섯 가지 방법. 즉 명화란(鳴和鸞)·축수곡(逐水曲)·과군표(過君表)·무교구(舞交衢)·축금좌(逐禽左)등을 가리킨다.
247) 「주역」 64괘 중 10번째 괘.
248) 「주역」 64괘 중 53번째 괘.
249) 「주역」 64괘 중 20번째 괘
250) 「나라」를 위하여 드리는 다섯 가지 제사. 즉 사명(司命)·중류(中)·국문(國門)·국행(國行)·공려(公 )
제10장. 위정 공효(爲政功效)
신이 살피건대, 임금이 가르치고 기르는 도를 극진히 하였으면 반드시 풍동(풍동)의 교화가 있어서, 그 영향을 만세에까지 끼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그 공효(功效)를 나타내었습니다.
◆ 인(仁)이 천하를 덮는 공효(功效)에 대한 말씀
대도(大道)가 행할 때에는 천하를 공유(公有)로 생각하여 어진 이와 능한이를 선발하여 신의(信義)를 강구하고 화목을 닦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의 어버이만 어버이로 여기지 아니하고, 자기의 아들만 아들로 여기지 아니하며,
늙은이는 종신할 곳이 있고 젊은이는 쓰일 곳이 있으며, 어린이는 자랄 곳이 있으며,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독신,
그리고 병든 불구자도 모두 부양될 곳이 있다.
이러므로 모략이 일어나지 아니하며, 도둑이 일어나지 아니하여 사립문을 열어 놓고 닫지 아니하니, 이것을 대동(同大)이라고 한다. (예기(禮記))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모폐(謀閉)라는 것은 간사한 꾀가 폐색(閉塞)되어 일어나지 않는 것이요,
대동(大同)이란 것은 공평한 도가 행하는 대동의 세상이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패자(覇者)의 백성들은 환우(驩虞)한 듯하고, 왕자의 백성들은 호호()한 듯하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환우(驩虞)는 즐거워 날뛰며 좋아하는 모양을 말하는 것이요,
호호()는 마음이 넓어 스스로 만족하는 모양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환우는 사사로이 작은 은혜를 베풀어 사람들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니,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밭을 갈아 밥을 먹고 우물을 파서 물 마시며 편안하게 지내니,
임금의 힘이 나에게 미치는 것을 알겠는가.' 하였는데,
이것은 하늘이 자연한 것과 같은 것이니, 이것이 바로 왕자(王者)의 정치이다." 하였습니다.
왕자(王者)의 백성들은 죽여도 원망하지 않고, 이롭게 해 주어도 공[庸] 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날로 선한 데로 옮겨가면서도 그렇게 만드는 사람을 모른다.
주자는, "이것이 이른바 호호하듯 한 모습이다. 용(庸)은 공(功)이다." 하였습니다.
○풍씨(豊氏)는, "백성들의 미워하는 바를 따라서 제거해 주는 것이지,
본래 마음이 이것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닌데 어찌 원망이 있겠으며, 또 백성들의 이로운 바를 따라서 이롭게 해 주는 것이지,
본래 마음이 이것을 이롭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데 어찌 공으로 여기겠는가.
다만 그 성품의 자연스런 것을 도와서 스스로 얻을 수 있게 해 준 까닭에 백성들은 날로 선한 데로 옮겨가면서도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는 모른다." 하였습니다.
군자가 지나가는 곳은 모두 교화[化]되고 그가 마음을 둔 곳은 신묘[神]하다.
위로는 천덕(天德)과 합하고, 아래로는 지덕(地德)과 합하여 그 운행을 같이 하나니, 어찌 조그마한 혜택이라고 말하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여기에서 군자는 성인에 대한 통칭이다.
지나가는 곳은 다 교화가 된다는 말은 성인이 지나가는 곳에는 사람들이 다 교화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이니,
이것은 마치 순(舜)이 역산(歷山)에서 밭을 갈고 있을 때에는, 밭 가진 사람들이 모두 밭두덕[畔]을 사양하고,
하빈(河濱)에서 질그릇을 만들 때 에는 그릇이 추하거나 비뚤어짐이 없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가 보존하고 있는 곳이 신묘하다는 말은, 군자 [聖人]가 마음을 두고 있는 곳은 신묘하여 측량할 수 없다는 말이니,
이것은 마치 공자가, '세우면 곧 서고, 인도하면 곧 따르고, 품으면 곧 모여들고, 움직이면 곧 화응(和應)한다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하는 데도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덕업(德業)의 성한 것으로서 천지의 화육(化育)과 더불어 같이 운행하여 일세의 사람들을 모두 들어서 교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니,
어찌 패자(覇者)가 조그마한 혜택을 베푸는 것과 비할 것인가.
이것은 왕도(王道)가 위대하다는 소이(所以)인데,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마음을 다해야 할 점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명성이 중국(中國)에 넘치고 야만의 지역에까지 뻗쳐 가 배수레가 이르는 곳이나 인력의 통하는 곳,
하늘이 덮여 있는 곳이나 땅이 실려 있는 곳, 해와 달이 비치는 곳이나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곳의 무릇 혈기(血氣)를지닌 자는 높이고
친애하지 않는 이가 없기 때문에 하늘을 짝한다고 일컫는다. (중용)
주자는 말하기를, "하늘을 짝한다는 것은 그 덕이 광대하게 미치는 것이 하늘과 같다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덕이 천심에 부합하는 공효에 대한 말씀
○「시경」에 이르기를, "아름다운 군자여, 어진 덕이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하여 하늘에서 복받았네.
하늘은 거듭[申] 돌보며, 도우고 명(命)하네."하였습니다. (대아(大雅)의 가락(假樂)편)
주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임금을 가리킨 것이요, 민(民)은 뭇 백성이요, 인(人)은 벼슬에 나아가 있는 이며,
신[申]은 거듭이란 뜻이다. 이 시(時)는 임금의 덕이 관민(官民)을 편의(便宜)하게 하여 하늘에서 복록을 받게 되었고,
하늘이 임금에게 돌보아 주기를 싫어하지 아니하고, 거듭 보우 (保祐)하고 명령하였다는 것을 읊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이르기를, "문왕(文王)이 위에 있으니 하늘에 밝도다. 옛 주(周)나라지만 내린 명은 새롭도다." 하였습니다. (대아(大雅) 문왕(文王)편 )
주자는 말하기를, "이 시는 문왕이 이미 돌아가고 그 신령이 위에 있어서 하늘에 밝으니,
이로써 주(周)나라는 비록 후직(后稷:주나라의 선조(先祖) 기(棄)의 별명)으로부터 시작하여 천여 년이 되었지만,
그 천명을 받은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읊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동양 허씨(東陽許氏)는 말하기를, "문왕이 명덕(明德)을 밝혀 백성들에게 미치게하여
정교(政敎)가 날로 새로우니 이로써 처음으로 천명을 받았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등문공(文公)에게 말하기를,"시에 이르기를,'주(周)나라는 비록 옛 나라지만 그 내린 명은 오직 새롭다.' 함은 문왕을 말한 것이다.
자네도 힘써 행하면 역시 자네의 나라를 새롭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 다음은 은덕이 후세에 흘러 내려가는 공효에 대한 말씀
○「시경」에 이르기를, "인도(人道)보다 더 강한 것이 없으므로 사방이 이에 따르도다.
덕(德)보다 더 드러난 것이 없으므로 여러 후왕[百宮]이 본받도다.
아! 전왕(前王)을 잊을 수 없구나." 하였습니다. (주송(周頌) 열문(烈文)편)
주자는 말하기를, "인도보다 강한 것이 없고 덕보다 크게 드러난 것이 없다.
사람이 선왕의 덕을 잊을 수 없는 까닭은 이 도(道)를 썼기 때문이다.
전왕은 문왕·무왕(武王)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군자는 그 어지심을 어질게 여기고, 그 친하심을 친하게 여기며, 소인은 그 즐겁게 하심을 즐거이 여기고,
그 이롭게 하심을 이롭게 여기니, 이 때문에 전왕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못내 잊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大學) )
주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후세의 현자(賢子)와 왕자(王者)를 말하는 것이요, 소인은 후세의 서민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글은 전왕이 신민(新民)하는데, 지선(至善)에 머물러서 천하 후세로 하여금 한 사물이라도 그 처소를 얻지 않는 것이 없게 하였기 때문에,
이미 전왕이 세상을 떠났어도 사람들이 그를 사모하고 오래도록 잊지 못해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그 어지심을 어질게 여긴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는 그 덕업의 성한 것을 숭앙하는 것이요,
그 친하심을 친애한다는 것은 자손들이 보존하여 그 길러 준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며,
그 즐거움을 즐거이 여긴다는 것은 배부르게 먹고 그 즐거움을 편안히 누리는 것이요,
그 이로움을 이롭게 여긴다는 것은 밭을 갈아 밥을 먹고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며 그 이로움을 누리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선왕의 성덕(盛德)과 지선(至善)의 여택(餘澤)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위정(爲政)의 보람은 인덕(仁德)을 천하에 입히고 은택을 후세에 흐르게 하는 것이니,
성인의 능사(能事)가 여기서 더할 수 없으니, 참으로 고원(高遠)하여 거의 미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궁행(躬行)하는 데 근본을 두고 순서에 따라 점진해 나간다면, 마치 길 걷는 사람이 물러서지 않으면 반드시 집에 이르고,
밥 먹는 사람이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배부르게 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따라서 본래 바람이나 그림자를 잡는 것처럼 그 효과를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마는,
다만 임금이 참으로 이것을 고원하다고만 여겨 실행하지 아니한 것을 근심할 뿐입니다.
성왕의 정치가 책에 진술되어 있으니 마치 그림쇠[規矩]가 손에 있어서 모난 물건과 둥근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아서,
처음에는 비록 저오(齟齬)가 있더라도 나중에는 점차로 익숙하여질 것이니, 어찌 왕정(王政)을 시행할 수 없음을 근심하겠습니까.
대개 임금으로서의 병통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다욕(多慾)에 끌려 왕정을 행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유속(流俗)에 빠져 왕정을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욕에 끌린 사람은 시비(是非)의 공정한 것이 항상 사사로운 이익에 가리워지고,
유속에 빠진 사람은 성현의 말보다 항상 비루[鄙俚]한 말에 굴하게 됩니다.
후세에 있어서 다스려지는 날이 항상 적은 것은 오직 이 때문입니다.
대개 인의(仁義)를 몸소 실천한다는 것은 천덕(天德)이요, 생민을 교화하고 양육한다는 것은 왕도(王道)입니다.
후세의 임금들은 항상 말하기를, "나 같은 소자가 어찌 감히 옛 도를 바라겠는가." 합니다.
천덕과 왕도에 대한 말은 옛 성현의 일이요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인식하여, 신하가 이에 대해 진언(進言)하면 문득 손가락질하고 웃으면서,
"뜻만 높아서 실상이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는, 특히 내 마음의 정대무사(正大無私)한 것이 바로 천덕인 것과, 처사를 의당하게 하여
인심에 순하는 것이 바로 왕도인 줄을 모릅니다.
때에는 고금이 없고 도는 고원한 것이 아니며, 바로 일용적인 상사(常事)에 있는 것이니, 다만 이것을 아직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근심할 뿐입니다.
욕심이 많은 임금은 자포자기하는 것을 즐기고 있으니, 이것은 본래 말할 것이 못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선을 하는 임금도 흔히 유속(流俗)에 빠지게 되니, 더욱 애석한 일입니다.
세속의 사람들은 반드시 말하기를, "옛 도는 결코 회복할 수 없다. 이제 만일 묵은 것을 개혁하여 새롭게 하려면
인심이 불안하여 장차 위란이 이르게 되리라." 하니, 임금이 그 말을 깊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선비들의 말이 서로 동떨어져서,
마침내 부합되는 이치가 없습니다. 어찌 깊이 생각하되, 지금 기강이 떨치고 있느냐, 퇴폐하고 있느냐, 선비들의 버릇이 정당하냐 구차하냐,
재상은 나라를 다스리고 있느냐, 일없이 녹만 먹느냐, 백관들은 자기 직책을 감당하고 있느냐, 게을리 하고 있느냐,
백성들은 잘 휴양하고 있느냐, 곤췌(困)하고 있느냐를 살펴서 만일 기강이 떨치고 있으며, 선비들의 버릇이 정당하고,
재상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며 백관이 직책을 감당하고 있고, 백성들이 잘 휴양하고 있다면, 이것은 거의 왕도정치에 가깝습니다.
일변(一變)하면 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데, 어째서 옛 도를 회복할 수 없겠습니까.
만일 기강이 퇴폐하여 선비들의 버릇이 구차하고, 재상이 일없이 녹만 먹고,
백관이 사무에 게으르고 백성들이 고생스러우면 이것은 앞으로 망할 증상입니다.
마땅히 급급히 서둘러서 개혁하여야 할 것인데, 우선 당장 탈이 없다고 안심하고 도리어 일하려는 것을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이것은 아마 지혜가 천박하고 모자라서 앞으로의 큰 근심을 염려하지 못하면서 다만 목전의 무사한 것만 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아마도 어진 이는 초야(草野)에 있고 어질지 못한 이가 조정에 있어서 같은 말로써 위를 속이는 것이요, 실로 국인(國人)의 뜻은 아니며,
또 아마도 당로자(當路者)가 재주와 지혜가 부족하여 능히 스스로 할 수도 없고, 또 어진 이를 천거할 줄도 모르며,
다만 구차하게 죄책만 모면하려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생각하여 그 소이연(所以然)을 얻으면 세속적인 뭇 사람의 비방하는 것은 한 번 휘둘러 안정할 수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무도(無道)한 나라에서는 선인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하로서 선(善)을 하다가 살육을 당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임금이 도를 행하다가 화를 입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대개 임금이 위에서 명령을 세워서 난(亂)을 치(治)로 돌이키는 데는 다만 마음 하나에 있을 뿐이니,
마음 하나가 도를 향하여 쉬지 않고 힘써 나가면, 곧 정치에 베풀어져서 세도(世道)가 일변할 것입니다.
어찌 기강을 세우고 선비의 버릇을 교정(矯正)하고, 재상에게 정사를 맡기며, 백공(百工)에게 일을 빛나게 하고,
서민들을 안락하게 하여, 선왕의 도를 따르는데 도리어 화패(禍敗)를 당할 이(理)가 있겠습니까.
아, 생각하지 않는 탓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정치를 함에는 반드시 성스러운 임금을 좇아야 할 것인데,
임금이 몸소 행하는 것이 오히려 덕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찌하느냐." 하기에,
신은 답변하기를, "수신(修身)을 치국(治國)보다 먼저 한다는 것은, 다만 그 순서의 당연한 것을 말했을 뿐이다.
만일 반드시 수신이 지극한 데 이르기를 기다린 뒤에 비로소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진실한 덕이 미치기 전에는 국가를 어디에 두겠는가." 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후왕이 춘추(春秋)의 의(義)를 알면,
비록 덕은 우(禹)와 탕(湯)이 아닐지라도 오히려 삼대(三代)의 정치를 본 받을 수 있다." 하였습니다.
정자가 어찌 거짓말로써 사람을 속였겠습니까.
다만 임금이 취사선택할 줄 알고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성실히 하며,
반드시 다스려지도록 하겠다는 뜻을 떨쳐서 어진 이를 구하여 신임한다면,
덕은 비록 이루어지지 아니하더라도 치도(治道)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로부터 이후로 날로 넓어지면 수신(修身)과 치국(治國)이 함께 그 극진한 곳까지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상천(上天)의 명을 두렵게 여기시고, 부모의 책하심을 생각하시며,
백년 사직(社稷)의 중대성을 생각하시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는 고통을 민망히 여기시며,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확충하시고 사람을 사랑하는 정치를 시행하시어, 널리 백성들을 구제하여 예악(禮樂)을 빛나게 일으키시며,
세도(世道)를 한 번 새롭게 하여 삼황오제(三皇五帝)에 비함으로써 조종(祖宗)의 선열을 빛내시고 어진 자식과 어진 손자에게 모범을 보이시면
만세에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 주 >
251) 주대(周代)지방에서 3년 동안의 학업을 닦는 사람들 가운데,
우수한 이를 임금에게 천거할 때 그를 송별하기 위하여 향대부가 베풀던 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