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 丁若鏞 八十 韻(다산 정약용 팔십 운)
茶山 丁若鏞 八十 韻(다산 정약용 팔십 운)
一日散步梅下隱其榛蕪手持刀臿斫其纏糾砌石爲壇因緣浸染於
其上下爲砌九級以爲菜圃遂至東池拓其匡廓新其臺塢列植名花佳卉因
其巖石爲假山一區迤邐彎曲水泉穿瀉起功在首春送春而竣
文擧兄弟實躬厥勞余亦助焉雖窮約匪分觀者歎咨僉曰洵美爲詩志喜凡八十韻 (1809.1.?)
어느 날 매화나무 아래를 산책하다가
잡초와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것이 보기에 안 됐어서
손에 칼과 삽을 들고 얽혀 있는 것들을 모두 잘라버리고 돌을 쌓아 단(壇)을 만들었다.
그 단을 따라 차츰차츰 위 아래로 섬돌을 쌓아올려 아홉 계단을 만든 다음
거기에다 채마밭을 만들고 이어 동쪽 못가로 가 그 주변을 넓히고
대오(臺塢)도 새로 만들어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을 죽 심었다.
그리고 거기 있는 바위를 이용하여 가산(假山)을 하나 만들었는데,
구불구불 굽이지게 하여 샘솟는 물이 그 구멍을 통해 흐르게 하였다.
초봄에 일을 시작하여 봄을 다 보내고야 준공을 보았는데
그 일은 사실 문거(文擧) 형제가 맡아서 수고를 해주었고 나도 더러 도왔다.
그 일이 비록 곤궁한 자의 분에 맞는 일은 아니었으나 보는 사람이면 감탄을 하고
또 모두가 아주 좋다고 하여 시로써 그 기쁨을 나타내기로 하고
이렇게 팔십 운(韻)을 읊었던 것이다.
다산 속의 집을 빌려 사는데 / 賃屋茶山裏
어느새 많은 세월이 흘렀다네 / 欻然歲華走
떠돌이라 원대한 계획도 없고 / 萍梗無遠圖
게을러서 하는 짓도 늘 구차했지 / 呰窳計常苟
지금 두 번째 봄을 맞고 보니 / 及玆再見春
살기도 꽤 오래 살은 게지 / 棲息亦云久
봄바람 땅 힘을 부풀게 하여 / 條風散地脈
썩은 등걸에서도 새움이 돋는데 / 苞蘖出焦朽
한 가지 안된 것은 위치가 난잡해서 / 所嗟位置亂
석류나무가 화톳불자리에 서 있고 / 危榴雜薪槱
지대가 외지고 규모가 좁아 / 地偏寡模楷
시설하기가 영 지리하기에 / 施設竟鹵莽
예쁘장한 매화나무 한 그루도 / 娉婷一樹梅
바로 뒷간 뒤에가 있다네 / 乃在溷圊後
가슴속에는 자그마한 은둔처 생각이 / 胸中小丘壑
반평 을 두고 서려 있었기에 / 半生鬱蟠糾
다짜고짜 그 뜻 한 번 펴보려고 / 勃然思一展
분수를 따질 겨를도 없이 / 拙分末遑守
채소밭부터 먼저 만들렸더니 / 疆理先蔬圃
당장 도움이 되기에 설득력은 있으나 / 利近良易誘
산언덕이 너무 경사가 심하여 / 山阿劇波陀
거름흙이라곤 남아난 것이 없기에 / 糞壤流不有
돌을 죽 세워 난간을 만들고 / 樹石列欄楯
흙을 깎아 비탈을 평평하게 하려는데 / 削土平培塿
옛날 치산치수의 책을 읽었기에 / 舊讀玄扈書
돌계단 쌓는 법은 알고 있으나 / 梯磴法有受
이때가 바로 농사철이라서 / 于時値東作
마을 장정들 모두 들에 가 있었네 / 村丁悉在畝
일이란 시기 있는 것이기에 / 事期有緩急
좋고 나쁘고 가릴 겨를도 없이 / 未敢律臧否
삼태기와 삽을 손수 챙겨들고 / 畚鍤手自操
돌 다듬고 가래질은 벗들을 시켰더니 / 鐝勸諸友
은이가 수염이 나고 힘이 세고 / 殷也鬍有力
두 팔에 강한 근육이 얽혀 있어 / 强筋絡雙肘
돌 뽑기를 가을털 뽑듯 하고 / 拔石似秋毫
우수처럼 산을 옮길 정도였는데 / 移山學愚叟
날랜 말 결국 넘어지듯이 / 快馬終一蹶
함부로 하다가 손을 다쳤다네 / 豪擧惜傷手
무르익은 싸움에 장수를 잃은 격이어서 / 酣戰折良將
허전하기 짝을 잃은 것 같았지 / 悵然如喪偶
어린 애들까지 다 불러들여 / 招呼逮童穉
그들 힘으로 모든 잡초 제거하고 / 聊用除蓬莠
세월 걸려서야 공사 마치고는 / 荏苒得竣事
조촐한 자축연을 가졌었다네 / 草草行勞酒
자질구레한 각종 씨앗을 뿌리고 / 播種具瑣細
밭두둑을 따로따로 나눠놨는데 / 畦畛各牉剖
씨앗이 붉으레한 무와 / 紫粒武候菁
잎이 녹색인 부추에다가 / 綠髮周顒韭
늦파는 용뿔같이 싹이 트고 / 晩蔥龍角茁
올숭채는 소 양처럼 두툼하여 / 早菘牛肚厚
쑥갓은 꽃이 국화 모양이고 / 茼蒿花似蘜
가지는 열매가 쥐참외 같아 / 落蘇蓏如萯
해바라기는 폐를 활기차게 하고 / 魯葵工潤肺
겨자는 구토를 멈추게 하지 / 蜀芥能止嘔
상치는 먹으면 잠을 부르지만 / 萵苣雖多眠
먹는 채소로 빼놓을 수는 없어 / 食譜斯有取
특히 토란을 많이 심은 것은 / 蹲鴟特連畦
옥삼이 입맛에 맞아서라네 / 玉糝頗可口
빈터에도 잡초만 제거해버리면 / 壖地剔榛荒
저절로 나 자라는 나물도 많아 / 旅生多野蔌
곁채에다는 명아주 비름 기르고 / 廊廡畜藜莧
울에다는 구기자나무 세우며 / 藩屛列杞枸
고사리 캐다가 국 끓여 먹고 / 捋薇充羹滑
쑥은 뒀다가 뜸 뜨는 데 쓰지 / 留艾備焫炙
띠 엮어 노루 못 뜯어먹게 막고 / 綰茨防鹿齕
말이 밟을세라 울 쳐놓았으니 / 揷籬虞馬蹂
채소밭 일은 대강 끝난 셈이기에 / 圃務旣粗辦
정원 못에 때를 닦아내기로 했다네 / 園沼思滌垢
그전부터 정자 동편의 못이 / 由來亭東池
좁고 작기 방아확만 하여 / 狹小如碓臼
산 밑까지 닿게 활짝 넓히고 / 拓展抵山根
바닥 찍어내고 차양도 넓히고서 / 斫豁蒙蔀
좋은 단풍나무 느릅나무 세워두고 / 尊賢立楓枌
몹쓸 떡갈나무 싸리나무 제거하고 / 鉏奸去柞杻
덜거덩덜거덩 큰 바위 굴려다가 / 砰訇轉巨石
산에 대어 섬돌처럼 쌓아놓으니 / 甃砌因會阜
산은 첩첩이 바위를 드러내고 / 山骨露嶙峋
맑은 샘물이 솟아올랐다네 / 泉脈集淸瀏
구멍을 키우고서 홈통을 대놓으니 / 疏竇灌連筒
물이 금방 장군에 넘쳐 흘러 / 坎液欻盈缶
곤이도 길러 뛰놀게 하겠고 / 跳躍涵鮞鯤
올챙이도 까서 기르게 하겠네 / 産育容蝌蚪
담 터진 곳은 대나무 심어 메우고 / 缺垣補脩竹
양 언덕은 수양버들이 가리고 있다네 / 夾岸扞垂柳
이웃에 중이 감탄하고 가더니만 / 隣僧嘆嗟去
아이에게 연뿌리를 보내왔는데 / 遺兒分碧藕
푸른 줄기 행채처럼 엉겨 있고 / 翠帶交荇妾
동그란 잎 마름이 쌓여 있는 듯 / 靑錢疊菱母
당귀는 묵은 잎 속에 새움 돋고 / 蘄芽雜老嫩
작약은 여기저기서 동 오르고 / 藥筍紛左右
부양은 줄 서 우산을 받쳐들고 / 膚癢森擎繖
국화는 찬란한 실끈을 토하지 / 綉毬粲吐綬
모란 묵은 뿌리는 쪼개내고 / 牧丹老根撦
감탕나무 늘어진 가지는 휘어 매고 / 冬靑遠條揉
애써 유초 구해 심었더니 / 苦覓乳蕉栽
바위 굴문 앞에는 봉미가 있고 / 鳳尾當巖牖
붉은 복사꽃 연분홍 살구꽃은 / 緋桃與紅杏
꽃잎이 교묘하게 새름새름 매달리며 / 花葉巧蟠紐
담뿌리에 자색 포도덩굴은 / 牆根紫葡萄
성난 용이 꿈틀거리고 있다네 / 怒龍鬱蚴蟉
노 그는 성품이 기교를 좋아하여 / 魯也性好奇
솜씨 부리는 일로 자부를 한다네 / 匠心乃自負
바닷가에 가 괴석을 주워다가 / 怪石拾海濱
산봉우리를 구루마냥 만들었는데 / 峯巒象岣嶁
어떤 것은 비비 꼬여 소라고동 같고 / 或譎如螺螄
어떤 것은 맑고 빛나기 옥돌 같으며 / 或瑩如瓊玖
어떤 것은 장난하는 사자같이 보이고 / 或儇如戲狻
혹은 쭈그리고 앉은 개같이도 보이며 / 或愁如蹲狗
혹은 추장같이 우뚝한 것도 있고 / 或特如酋豪
혹은 암수가 쌍으로 있는 것 같은 것도 있으며 / 或雙如牝牡
기를 세워놓은 듯 솟아있는 것도 있고 / 或挺如旌纛
혹은 포개놓은 단지 같은 것도 있으며 / 或累如瓿甊
혹은 초라하기 중 같아 보이는 것도 있고 / 或窮僂如僧
혹은 여인처럼 예쁘장한 것도 있으며 / 或嬋嫣如婦
어떤 것은 팔들고 겨드랑이 벌리고 있고 / 或奮臂張掖
어떤 것은 머리 맞대고 목을 포개고 있으며 / 或交頸騈首
혹은 아롱자롱 충치 앓는 이도 같고 / 或齾齾如齲
혹은 언뜻 보기에 통발도 같고 / 或睒睒如罶
어떤 것은 이끼 돋는 누룩과도 같고 / 或潑苔如麴
어떤 것은 물 새는 조리와도 같고 / 或滲水如籔
혹은 술 취한 듯 붉으레한 것도 있고 / 或蒨紅如酲
혹은 늙은이같이 누르케케한 것도 있어 / 或梨垢如耈
제각기 모양새가 다르면서 / 各各殊姿性
잇달아 검푸른 빛을 띠고 있다네 / 延緣帶蒼黝
봄 산에 가랑비가 지나가면 / 春山度微雨
채소 싹이 맑은 기운 머금는데 / 菜甲含淸
누가 알리 유랑의 부엌에서 / 誰知廋郞廚
날마다 삼구반찬 장만하는 것을 / 日日供三九
이웃에서 술과 단술 보내와서 / 隣比送酒醴
남새밭 주인영감 수를 빌었다네 / 請爲圃翁壽
그리고 소평같이 외도 심으면서 / 遂種邵平瓜
나란히 밭갈던 옛날 저익도 생각하지 / 緬懷沮溺耦
안회도 끝까지 단사에 표음이었고 / 顔回竟簞瓢
순임금 역시 마른 밥과 풀을 먹지 않았던가 / 虞舜亦草糗
궁하고 배고픈 것 당연한 내 본분인데 / 窮餒固吾分
이 맑은 복이야 하늘이 주신 게지 / 淸福乃天授
더군다나 저기 시렁 위에는 / 況玆鄴侯架
사부의 서적이 가득 쌓여 있고 / 縹緗積四部
고단하게 살기에 저술도 많이 하여 / 窮居富述作
값어치 없어도 나는 천금처럼 아끼지 / 千金惜敝帚
시경 풀이하면서 노로 되돌아왔던 일 생각하고 / 箋詩思反魯
주역 주 내면서 유리에서 연역했던 일 추억한다네 / 疏彖憶演羑
오직 한 사람이 알았으면 됐지 / 惟求一人知
세상이 다 욕해도 걱정할 것 없어 / 寧愁擧世詬
쇠북끈이 아무리 좀먹어 떨어져도 / 追蠡雖剝落
큰 쇠북은 두드릴 것에 대비하고 있다네 / 洪鐘猶待扣
그 소리는 너무나 먼 곳이라도 / 聲流到天荒
울려퍼지기 포뢰가 우는 것 같다네 / 殷若蒲牢吼
산경도 있고 수지도 있으며 / 山經間水志
해학과 궤담이 이유에 가득하다네 / 詼詭函二酉
책상에는 꽃다운 향기 널려 있고 / 几案羅芬芳
의복은 해지고 추한 것이 편하지 / 衣袴甘老醜
잘 먹고 잘 입고 사는 자들 / 須知齧肥者
남 시키는 대로 하느라 피곤하고 / 趨承困指嗾
자잘한 이끗 쫓아 이곳저곳 돌다가 / 營營逐錐刀
의젓잖은 양 차면 해해거리는데 / 欣欣塞筲斗
그게 어디 제 벌어 제 먹는 백성들 / 豈若食力氓
하늘과 땅에 부끄러움 없음만 같으랴 / 俯仰無愧忸
이괘의 구이를 늘 보더라도 / 常觀履九二
영육을 초월해야 탈이 없느니 / 幽貞諒无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