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철학사상
서양철학은 한마디로 플라톤의 재해석이라 할 수 있다.
플라톤이 서양철학을 대표할만큼 절대적이다.
마찬가지로 동양을 대표할 철학도 있다.
바로 공자다.
공자는 도인도 아니고 유림들이 숭배하는 우상도 아니다.
공자는 오늘날 관점에서 봐도 놀라울 정도로 위대한 선각자요,정치사상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고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1.공자는 (편향된)도덕주의자가 아니다.
공자하면 자동적으로 도덕군자라고 떠올리는 데,문제는 도덕이 뭐냐는 것이다.
공자의 도덕은 쉽게 정의내릴 수 없다.
상식적이고 저급하고 편협한 도덕이 결코 아니고 차원이 아주 다르다.
개인과 집단을 훨씬 넘어선 세계적 보편적 大도덕이다.
공자사상의 핵인 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인은 인류애고 박애주의니까 이를 담은 무한정 이타적도덕주의를
공자의 도덕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또,공자는 도덕을 정치와 분리하지 않았다.
도덕없는 정치는 무의미하며 정치없는 도덕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도덕과 정치를 떼어놓지만 공자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정치를 모르면서 정치를 배제하고,도덕을 함부로 말해선 안된다.
그런 도덕은 이미 도덕이 아닌 것이다.
2.공자는 법치주의를 단호히 반대했다.
법이상의 것을 추구했다.
사랑과 평등이 실현된 사회.
공자는 인치仁治,즉 덕치주의자다.
예나 지금이나 법치가 판을 치는 세상인데,공자는 법이 만능도 아니고
세상을 바로 잡을 수없다는 것을 알았다.
악법도 많을뿐더러 법으로 사람을 강제하고 지배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오로지 덕으로써 감화해서 자발적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한다고 했다.
문명화가 될수록 법은 더 강화되었지만 인심은 싸나워지고 인정이 메말라가는 것을 볼때,
법대로'가 얼마나 위험하고 맹점이 많은 것인지 깊히 돌아보지 않을 수없는 것이다.
공자는 법없이도 살수있는 세상을 꿈구었다.
바로 가족이 그 전범이다.수신~평천하는 가족주의의 대확장이다.
가족의 도,운영방식,메카니즘을 토대로 세상을 다스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이상적 사회의 밑그림은 이 가족에서 나왔고,실현된 사례도 많다.
부모가 자식이 못났다고 차별하지 않듯이,
국가도 약자와 빈민을 배려해서 선진국처럼 평등하게 잘 살수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3.공자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경계했다.
공자가 목숨건 것은 딱 한가지다.
仁의 실현을 살신성인하는 것이다.
당연히 仁과 배치는 것과도 목숨걸고 싸워야한다.
자본주의를 사익추구,이기주의로 볼때,공자는 이에 맞서지 않을 수없다.
공자는 이익이 아니라 인의,도덕이라고 숱하게 강조했고,
안빈낙도를 이상시했는 데,어찌 자본의 농락에 놀아날 수있겠는가.
가난을 걱정하지 말고 균분,즉 평등하지 못한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기주의는 약육강식의 잔혹한 사회를 낳는다.
공자는 그래서 (일부만)잘먹고 잘살자가 아니라,
모두가 고르게 바르게 잘 살자고 했던 것이다.
이는 공화,공생주의이고,나아가선 사회주의의 원조라 할 수있겠다.
공자는 여러모로 대 선각자이다.
4.공자는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민주주의가 뭐냐에 따라 논쟁이 가능하지만,민주를 민중을 사랑하는 위민,
애민주의로 압축할때,공자가 민주주의자임은 틀림없다.
仁사상은 부자 강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약자와 기층민중을 위한것이다.
지금이 민주사회라지만 약자,빈민의 처지가 어떠한가를 살펴본다면
공자가 더 민주주의자가 아닐 수없다.
시대를 2500년이나 앞서간 공자가 그리운 이유다.
예수는 "세상 이웃을 네몸같이 사랑하라"는 불가능한 말을 남겨 유명해졌지만,
공자는 "민중을 <네가족처럼만 사랑하라>"고 더 현실적인 말을 남겼는 데,
왜 공자의 사상은 현대에 꽃피우지 못하는 걸까.
5.공자는 중용의 도를 갈파하지 않았다.
아니,정도로서의 중용만을 말했다.
공자의 중용은 일반적 의미의 중간이나 중도,중립이 아니다.
仁에 부합하고 義에 합당한 것이 중용이다.
해서 중용은 공자사상 전부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무엇이 인이고 의인가를 알아야 중용도 파악되는 것.
인간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가치선택을 하며 산다.
중도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중간이 아닌 옳은 선택을 해야하고
그럴려면 철학을 알고 공자도 이제는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공자는 仁이고 인은 사랑이고 평등이다.
이를 아는 이상 이의 사회적 구현을 위해 작은 노력이나마 마다할 수있겠는가!
공자는 진보주의자로서 가히 사회혁명가의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현실은 보수주의자로 낙인찍어 별 쓸모도 없는 존재로 전락시켰다.
성선설 [性善說]
사람은 선한 본성을 타고난다는 맹자(孟子)의 인성론(人性論).
〈시경 詩經〉·〈주역 周易〉 등의 경전에도 성선에 관한 사상이 보이며,
이를 체계화한 것이 맹자의 성선설이다.
〈중용 中庸〉에서는 "천명을 성이라 이른다"(天命之謂性)고 하여
성은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
사람이 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것으로 규정했는데, 맹자는 이것을 선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그 근거로 사람이 누구나 남의 불행을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고
이로부터 4단(四端)과 4덕(四德)을 이끌어낸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의 실마리이고,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義)의 실마리이며,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禮)의 실마리이고,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智)의 실마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선한 성을 타고나지만
모두 선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인의예지의 4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차별이 있어서가 아니라
선의 실마리를 힘껏 배양하고 확충하지 않은 결과라고 보고
이것을 군자(지배자)와 소인(피지배자)을 구분하는 근거로 삼았다.
즉 군자는 그것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반면
소인은 보존하지 못하고 상실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또 이러한 인의예지의 본성이 현실사회에서는 군신·부자 관계,
지배와 피지배 관계 등 사회 윤리의 측면에서 구현된다고 보았다.
즉 효친(孝親)·충군(忠君) 등의 윤리 행위가
모두 사람의 4단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 이는 군자가 통치하여 그의 선한 성을 소인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인정(仁政)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맹자의 성선설은 유학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남송(南宋)의 주희(朱熹)에 의해 계승되었다.
주희는 인성을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누고
본연지성을 순선(純善)한 것으로,
기질지성을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맹자가 말한 성선은 본연지성에 해당한다.
주희의 성론도 기질지성의 혼탁한 정도에 따라
성인·군자와 일반사람들로 구분된다고 하여
당시의 신분제사회를 뒷받침해주는 이념의 역할을 했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고려말에 유입된 주자학(朱子學)이
조선 중기 이후 지배사상의 위치를 확고히 했기 때문에
주자학 내에서의 성 이해가 활발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주희의 본연·기질지성론이
당시의 신분제사회를 정당화하는 이념적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신분제사회질서가 동요되면서
그와 같은 논리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사상적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맹자가 말한 성은 선을 좋아하는 기호에 불과하다고 하여
성으로 인간을 규정했던 성리학적 사유를 부정한
정약용(丁若鏞)의 성기호설(性嗜好說)과 같은 것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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