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학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
교수신문은 지난달 23일부터 30일까지 교수 935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50.9%(476명)가 ‘과이불개’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다고 11일 밝혔다.
‘과이불개’는 ‘논어’의 ‘위령공편’에 등장한다.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
또한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일기 에도 등장하는 말이다. 
즉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라고 했다.
2위는 14.7%(137표)욕개미창(欲蓋彌彰)·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 이었고.  
3위는 13.8%(129표)누란지위(累卵之危)·여러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 이었고
4위는 13.3%(124푶)문과수비(文過遂非)·과오를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한다.  
5위는 7.4%(69푶)군맹무상(群盲撫象)·눈먼 사람들이 코끼리를 더듬으며 말하다 등이 뒤를 이었다.
교수들이 추천한 지난해 사자성어는 ‘고양이와 쥐가 한패가 됐다’라는 뜻의 ‘묘서동처’(猫鼠同處)였다.

역대 교수들이 뽑은 사장성어
2001년 오리무중(五里舞中) 오 리나 되는 짙은 안개속에 있다.
2002년 이합집산(離合集散) 헤어졌다 만나고 모였다가 흩어진다.
2003년 우왕좌왕(右往左往) 이리저리 왔다갔다 방향을 종잡지 못하다.
2004년 당동벌이(黨同伐異) 같은 의견끼리 어울리고 다른 의견은 배척한다.
2005년 상화하택(上火下澤) 위에는 불 아래는 연못.
2006년 밀운불우(密雲不雨) 구름은 잔뜩 끼었는데 비는 오지 않는다.
2007년 자기기인(自欺欺人)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
2008년 호질기의(護疾忌醫) 병을 숨겨 의사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2009년 방기곡경(旁岐曲經) 서려 있는 계곡과 구불구불한 길.
2010년 장두노미(藏頭露尾) 머리는 감추었는데 꼬리는 들어나 있다.
2011년 엄이도종(掩耳盜鐘)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
2012년 거세개탁(擧世皆濁) 온 세상이 다 혼탁하다.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 차례나 순서를 바꾸어 행하다.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
2016년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이다.
2017년 파사현정(破邪顯正) 사악한 것을 부수고 생각을 바르게 한다.
2018년 임중도원(任重道遠) 책임은 무겁고 길은 멀다.
2019년 공명지조(共命之鳥) 한 몸에 두개의 머리를 가진 새.
2020년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2021년 묘서동처(猫鼠同處) 고양이와 쥐가 한집에 산다.
2022년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

건강뉴스지 코메디 닷컴에 올라온 글에 의하면
미국 국립 국립노화연구소(NA National Institute on Aging)는 
규칙적인 뇌 운동과 건강한 생활 방식은 뇌의 인지 기능을 높인다고 발표했다.
2019년 7월 미국 의학협회 저널'에 실린 한 연구는 인지기능 장애나
치매에 걸리지 않은 60세 이상의 약 196만 400명의 사람을 8년동안 추적했다.
생활 습관 즉 흡연 여부 규칙적인 신체활동 건강한 식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연구팀은
건강한 생활 방식이 치매의 유전적 요인과 상관없이 치매 위험 감소와 관련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기억력 높이는 뇌 운동 10가지

1.기억을 되살려 본다.
  해야 할 일,사야하는 식료품,또는 생각나는 목록을 만들고 그것을 외우자.
  한시간 정도 후에 기억을 되살려 기억나는 항목의 수를 확인 한다.
  그리고 다시 기억 할만한 목록을 만들고 도전 한다.
  과거의 연구는 목록을 작성하고 정리하는 것이 노인들이 단어 목록을 더 효과적으로
  기억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제안 했다.

2.음악 활동을 한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합창단에 들어가 활동을 한다.
  새롭고 복잡한 기술을 배우는 것은 노화된 두뇌에 좋고
  노인학지에 실린 연구는 악기연주,합창,피아노레슨 등 
  음악 활동이 뇌를 건강하게 한다고 한다.

3.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보자.
  필기 도구나 컴퓨터 없이 수학을 해 보자.
  2021년 '실험의학과 생물학발전에서 발표한 연구는 수학문제를 푸는것이
  참가자들의 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문제를 풀면서 걸으면 더 좋다.

4.요리 수업을 들어라.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법을 배우고 도전 해 보자.
  요리 할 때는 후각,촉각,시각,미각 등 많은 감각을 쓴다.
  '클리브랜드 클리닉'에 따르면 요리는 식사 계획,문제 해결,
  식료품 목록 작성,멀티태스킹 등 다양한 인지 시술을 사용 할 것이다.

5.외국어를 배우라.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듣기와 청력은 뇌를 자극 한다.
  또한 2020년 10월에 '사이코노믹 브루틴앤 리뷰'에 발표된 메타 분석은
  이중 언어를 쓰면 치매에 걸릴 위험이 낮다는 것을 보여 준다.

6.단어 그림을 만들라.
  머릿속에서 단어의 철자를 기억한 다음 같은 두 글자로 시작하는 단어를 샣각 해 보자.
  끝망 이기 같은 활동이다.

7.기억의 지도를 그려본다.
  새로운 곳을 방문하고 집에 돌아 온 후,그 지역의 지도를 그려 보자.
  영국 런던 택시 운전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런던 도심 지도를 성공적으로 암기하는 운전자들이 인지 기능에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8.미각을 개발하라.
  식사 할 때 허브와 향신료를 포함한 음식의 개별 성분을 식별 하도록 노력 해 보자.

9.건강한 취미 활동을 시작하라.
  미세한 운동 기술을 포함하고 손과 눈의 조화를 날카롭게 유지하도록 도와 줄 수 있는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라.
  미국 하버드 건강 출판사에 따르면 라켓 스포츠,태극기,뜨게질,그림그리기
  또는 비디오 게임 등이 좋다.

10.새로운 스포츠를 배워라.
  2019년 12월에 '프론티어스 인 사이콜로지'에 발표된 연구는 균형,힘,그리고 유산소 능력,
  즉 에너지를 위해 산소를 사용하는 신체의 능력을 키우면 
  뇌를 노화에서 보호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고,
  '하버드 헬스 퍼블리싱'은 수영을 추천 했다.

茶山 丁若鏞 八十 韻(다산 정약용 팔십 운)
 
一日散步梅下隱其榛蕪手持刀臿斫其纏糾砌石爲壇因緣浸染於
其上下爲砌九級以爲菜圃遂至東池拓其匡廓新其臺塢列植名花佳卉因
其巖石爲假山一區迤邐彎曲水泉穿瀉起功在首春送春而竣
文擧兄弟實躬厥勞余亦助焉雖窮約匪分觀者歎咨僉曰洵美爲詩志喜凡八十韻 (1809.1.?)

어느 날 매화나무 아래를 산책하다가 
잡초와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것이 보기에 안 됐어서 
손에 칼과 삽을 들고 얽혀 있는 것들을 모두 잘라버리고 돌을 쌓아 단(壇)을 만들었다. 
그 단을 따라 차츰차츰 위 아래로 섬돌을 쌓아올려 아홉 계단을 만든 다음 
거기에다 채마밭을 만들고 이어 동쪽 못가로 가 그 주변을 넓히고 
대오(臺塢)도 새로 만들어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을 죽 심었다. 
그리고 거기 있는 바위를 이용하여 가산(假山)을 하나 만들었는데, 
구불구불 굽이지게 하여 샘솟는 물이 그 구멍을 통해 흐르게 하였다. 
초봄에 일을 시작하여 봄을 다 보내고야 준공을 보았는데 
그 일은 사실 문거(文擧) 형제가 맡아서 수고를 해주었고 나도 더러 도왔다. 
그 일이 비록 곤궁한 자의 분에 맞는 일은 아니었으나 보는 사람이면 감탄을 하고 
또 모두가 아주 좋다고 하여 시로써 그 기쁨을 나타내기로 하고 
이렇게 팔십 운(韻)을 읊었던 것이다.


다산 속의 집을 빌려 사는데 / 賃屋茶山裏
어느새 많은 세월이 흘렀다네 / 欻然歲華走
떠돌이라 원대한 계획도 없고 / 萍梗無遠圖
게을러서 하는 짓도 늘 구차했지 / 呰窳計常苟
지금 두 번째 봄을 맞고 보니 / 及玆再見春
살기도 꽤 오래 살은 게지 / 棲息亦云久
봄바람 땅 힘을 부풀게 하여 / 條風散地脈
썩은 등걸에서도 새움이 돋는데 / 苞蘖出焦朽
한 가지 안된 것은 위치가 난잡해서 / 所嗟位置亂
석류나무가 화톳불자리에 서 있고 / 危榴雜薪槱
지대가 외지고 규모가 좁아 / 地偏寡模楷
시설하기가 영 지리하기에 / 施設竟鹵莽
예쁘장한 매화나무 한 그루도 / 娉婷一樹梅
바로 뒷간 뒤에가 있다네 / 乃在溷圊後
가슴속에는 자그마한 은둔처 생각이 / 胸中小丘壑
반평 을 두고 서려 있었기에 / 半生鬱蟠糾
다짜고짜 그 뜻 한 번 펴보려고 / 勃然思一展
분수를 따질 겨를도 없이 / 拙分末遑守
채소밭부터 먼저 만들렸더니 / 疆理先蔬圃
당장 도움이 되기에 설득력은 있으나 / 利近良易誘
산언덕이 너무 경사가 심하여 / 山阿劇波陀
거름흙이라곤 남아난 것이 없기에 / 糞壤流不有
돌을 죽 세워 난간을 만들고 / 樹石列欄楯
흙을 깎아 비탈을 평평하게 하려는데 / 削土平培塿
옛날 치산치수의 책을 읽었기에 / 舊讀玄扈書
돌계단 쌓는 법은 알고 있으나 / 梯磴法有受
이때가 바로 농사철이라서 / 于時値東作
마을 장정들 모두 들에 가 있었네 / 村丁悉在畝
일이란 시기 있는 것이기에 / 事期有緩急
좋고 나쁘고 가릴 겨를도 없이 / 未敢律臧否
삼태기와 삽을 손수 챙겨들고 / 畚鍤手自操
돌 다듬고 가래질은 벗들을 시켰더니 / 鐝勸諸友
은이가 수염이 나고 힘이 세고 / 殷也鬍有力
두 팔에 강한 근육이 얽혀 있어 / 强筋絡雙肘
돌 뽑기를 가을털 뽑듯 하고 / 拔石似秋毫
우수처럼 산을 옮길 정도였는데 / 移山學愚叟
날랜 말 결국 넘어지듯이 / 快馬終一蹶
함부로 하다가 손을 다쳤다네 / 豪擧惜傷手
무르익은 싸움에 장수를 잃은 격이어서 / 酣戰折良將
허전하기 짝을 잃은 것 같았지 / 悵然如喪偶
어린 애들까지 다 불러들여 / 招呼逮童穉
그들 힘으로 모든 잡초 제거하고 / 聊用除蓬莠
세월 걸려서야 공사 마치고는 / 荏苒得竣事
조촐한 자축연을 가졌었다네 / 草草行勞酒
자질구레한 각종 씨앗을 뿌리고 / 播種具瑣細
밭두둑을 따로따로 나눠놨는데 / 畦畛各牉剖
씨앗이 붉으레한 무와 / 紫粒武候菁
잎이 녹색인 부추에다가 / 綠髮周顒韭
늦파는 용뿔같이 싹이 트고 / 晩蔥龍角茁
올숭채는 소 양처럼 두툼하여 / 早菘牛肚厚
쑥갓은 꽃이 국화 모양이고 / 茼蒿花似蘜
가지는 열매가 쥐참외 같아 / 落蘇蓏如萯
해바라기는 폐를 활기차게 하고 / 魯葵工潤肺
겨자는 구토를 멈추게 하지 / 蜀芥能止嘔
상치는 먹으면 잠을 부르지만 / 萵苣雖多眠
먹는 채소로 빼놓을 수는 없어 / 食譜斯有取
특히 토란을 많이 심은 것은 / 蹲鴟特連畦
옥삼이 입맛에 맞아서라네 / 玉糝頗可口
빈터에도 잡초만 제거해버리면 / 壖地剔榛荒
저절로 나 자라는 나물도 많아 / 旅生多野蔌
곁채에다는 명아주 비름 기르고 / 廊廡畜藜莧
울에다는 구기자나무 세우며 / 藩屛列杞枸
고사리 캐다가 국 끓여 먹고 / 捋薇充羹滑
쑥은 뒀다가 뜸 뜨는 데 쓰지 / 留艾備焫炙
띠 엮어 노루 못 뜯어먹게 막고 / 綰茨防鹿齕
말이 밟을세라 울 쳐놓았으니 / 揷籬虞馬蹂
채소밭 일은 대강 끝난 셈이기에 / 圃務旣粗辦
정원 못에 때를 닦아내기로 했다네 / 園沼思滌垢
그전부터 정자 동편의 못이 / 由來亭東池
좁고 작기 방아확만 하여 / 狹小如碓臼
산 밑까지 닿게 활짝 넓히고 / 拓展抵山根
바닥 찍어내고 차양도 넓히고서 / 斫豁蒙蔀
좋은 단풍나무 느릅나무 세워두고 / 尊賢立楓枌
몹쓸 떡갈나무 싸리나무 제거하고 / 鉏奸去柞杻
덜거덩덜거덩 큰 바위 굴려다가 / 砰訇轉巨石
산에 대어 섬돌처럼 쌓아놓으니 / 甃砌因會阜
산은 첩첩이 바위를 드러내고 / 山骨露嶙峋
맑은 샘물이 솟아올랐다네 / 泉脈集淸瀏
구멍을 키우고서 홈통을 대놓으니 / 疏竇灌連筒
물이 금방 장군에 넘쳐 흘러 / 坎液欻盈缶
곤이도 길러 뛰놀게 하겠고 / 跳躍涵鮞鯤
올챙이도 까서 기르게 하겠네 / 産育容蝌蚪
담 터진 곳은 대나무 심어 메우고 / 缺垣補脩竹
양 언덕은 수양버들이 가리고 있다네 / 夾岸扞垂柳
이웃에 중이 감탄하고 가더니만 / 隣僧嘆嗟去
아이에게 연뿌리를 보내왔는데 / 遺兒分碧藕
푸른 줄기 행채처럼 엉겨 있고 / 翠帶交荇妾
동그란 잎 마름이 쌓여 있는 듯 / 靑錢疊菱母
당귀는 묵은 잎 속에 새움 돋고 / 蘄芽雜老嫩
작약은 여기저기서 동 오르고 / 藥筍紛左右
부양은 줄 서 우산을 받쳐들고 / 膚癢森擎繖
국화는 찬란한 실끈을 토하지 / 綉毬粲吐綬
모란 묵은 뿌리는 쪼개내고 / 牧丹老根撦
감탕나무 늘어진 가지는 휘어 매고 / 冬靑遠條揉
애써 유초 구해 심었더니 / 苦覓乳蕉栽
바위 굴문 앞에는 봉미가 있고 / 鳳尾當巖牖
붉은 복사꽃 연분홍 살구꽃은 / 緋桃與紅杏
꽃잎이 교묘하게 새름새름 매달리며 / 花葉巧蟠紐
담뿌리에 자색 포도덩굴은 / 牆根紫葡萄
성난 용이 꿈틀거리고 있다네 / 怒龍鬱蚴蟉
노 그는 성품이 기교를 좋아하여 / 魯也性好奇
솜씨 부리는 일로 자부를 한다네 / 匠心乃自負
바닷가에 가 괴석을 주워다가 / 怪石拾海濱
산봉우리를 구루마냥 만들었는데 / 峯巒象岣嶁
어떤 것은 비비 꼬여 소라고동 같고 / 或譎如螺螄
어떤 것은 맑고 빛나기 옥돌 같으며 / 或瑩如瓊玖
어떤 것은 장난하는 사자같이 보이고 / 或儇如戲狻
혹은 쭈그리고 앉은 개같이도 보이며 / 或愁如蹲狗
혹은 추장같이 우뚝한 것도 있고 / 或特如酋豪
혹은 암수가 쌍으로 있는 것 같은 것도 있으며 / 或雙如牝牡
기를 세워놓은 듯 솟아있는 것도 있고 / 或挺如旌纛
혹은 포개놓은 단지 같은 것도 있으며 / 或累如瓿甊
혹은 초라하기 중 같아 보이는 것도 있고 / 或窮僂如僧
혹은 여인처럼 예쁘장한 것도 있으며 / 或嬋嫣如婦
어떤 것은 팔들고 겨드랑이 벌리고 있고 / 或奮臂張掖
어떤 것은 머리 맞대고 목을 포개고 있으며 / 或交頸騈首
혹은 아롱자롱 충치 앓는 이도 같고 / 或齾齾如齲
혹은 언뜻 보기에 통발도 같고 / 或睒睒如罶
어떤 것은 이끼 돋는 누룩과도 같고 / 或潑苔如麴
어떤 것은 물 새는 조리와도 같고 / 或滲水如籔
혹은 술 취한 듯 붉으레한 것도 있고 / 或蒨紅如酲
혹은 늙은이같이 누르케케한 것도 있어 / 或梨垢如耈
제각기 모양새가 다르면서 / 各各殊姿性
잇달아 검푸른 빛을 띠고 있다네 / 延緣帶蒼黝
봄 산에 가랑비가 지나가면 / 春山度微雨
채소 싹이 맑은 기운 머금는데 / 菜甲含淸
누가 알리 유랑의 부엌에서 / 誰知廋郞廚
날마다 삼구반찬 장만하는 것을 / 日日供三九
이웃에서 술과 단술 보내와서 / 隣比送酒醴
남새밭 주인영감 수를 빌었다네 / 請爲圃翁壽
그리고 소평같이 외도 심으면서 / 遂種邵平瓜
나란히 밭갈던 옛날 저익도 생각하지 / 緬懷沮溺耦
안회도 끝까지 단사에 표음이었고 / 顔回竟簞瓢
순임금 역시 마른 밥과 풀을 먹지 않았던가 / 虞舜亦草糗
궁하고 배고픈 것 당연한 내 본분인데 / 窮餒固吾分
이 맑은 복이야 하늘이 주신 게지 / 淸福乃天授
더군다나 저기 시렁 위에는 / 況玆鄴侯架
사부의 서적이 가득 쌓여 있고 / 縹緗積四部
고단하게 살기에 저술도 많이 하여 / 窮居富述作
값어치 없어도 나는 천금처럼 아끼지 / 千金惜敝帚
시경 풀이하면서 노로 되돌아왔던 일 생각하고 / 箋詩思反魯
주역 주 내면서 유리에서 연역했던 일 추억한다네 / 疏彖憶演羑
오직 한 사람이 알았으면 됐지 / 惟求一人知
세상이 다 욕해도 걱정할 것 없어 / 寧愁擧世詬
쇠북끈이 아무리 좀먹어 떨어져도 / 追蠡雖剝落
큰 쇠북은 두드릴 것에 대비하고 있다네 / 洪鐘猶待扣
그 소리는 너무나 먼 곳이라도 / 聲流到天荒
울려퍼지기 포뢰가 우는 것 같다네 / 殷若蒲牢吼
산경도 있고 수지도 있으며 / 山經間水志
해학과 궤담이 이유에 가득하다네 / 詼詭函二酉
책상에는 꽃다운 향기 널려 있고 / 几案羅芬芳
의복은 해지고 추한 것이 편하지 / 衣袴甘老醜
잘 먹고 잘 입고 사는 자들 / 須知齧肥者
남 시키는 대로 하느라 피곤하고 / 趨承困指嗾
자잘한 이끗 쫓아 이곳저곳 돌다가 / 營營逐錐刀
의젓잖은 양 차면 해해거리는데 / 欣欣塞筲斗
그게 어디 제 벌어 제 먹는 백성들 / 豈若食力氓
하늘과 땅에 부끄러움 없음만 같으랴 / 俯仰無愧忸
이괘의 구이를 늘 보더라도 / 常觀履九二
영육을 초월해야 탈이 없느니 / 幽貞諒无咎

내 안에 잠든 부처를 깨우라.
와타나베 쇼코 <불타 석가모니> 책 이야기


인도에서는 인생을 네 시기로 나눈다.
첫째는 학생기(學生期)로 스승에 집에 살면서
베타와 그 밖의 경전을 배운다.
이 시기가 끝나면 두 번째는 가주기(家住期)인데
집에 돌아와 결혼하고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해 나간다.
이렇게 살다가 사내아이가 태어나 성장하면
아버지는 가산을 아들에게 넘겨주고 숲 속에 들어가
검소한 종교생활을 한다.
이것이 세 번째 임주기(林住期)다.
그리고 네 번째 유행기(遊行期)가 되면
모든 집착을 떨처 버리고 홀가분하게
집이나 소유물 없이 머리와 손톱과 수염을 깎고
바리때와 지팡이와 물병만을 가지고 걸식으로 생활을 한다.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이처럼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걸식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그리고 걸식을 하는 수행자는 세상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는다.

 

부처 생존 당시 인도 코살라국의 수도 슈라바스티에
니이다이라는 천민이 있었다.
인도 사회가 그에게 부여한 임무는 똥을 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자만 지나가도 불결하다고 여겼으며,
손발이 귀족에 몸에 닿기만 해도 잘리게 되는 불가촉천민이었다.
니이다이는 샤카무니라는 이름의 성자가 계급제도를 부정하면서
"사람은 원래 신분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행위가 신분을 결정짓는다"라고 가르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기를 간절히 원했다.
어느 날 니이다이는 똥이 가득한 통을 메고 밭으로 가다가
마침 부처가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부처를 만나려고 모여 있었다.
니이다이도 가까이 가서 부처를 만나고 싶었지만
자신에 몰골이 너무 초라해 길 모퉁이에 숨어 버렸다.
그런데 부처가 사람들을 헤치고 그에게로 다가왔다.
니이다이는 너무도 당황해 서둘러 피하려다가
그만 똥통이 벽에 부딪쳐 깨어 저버렸다.
똥이 사방에 튀어 자신이 똥물을 뒤집어쓴 것은 물론이고
부처에게 까지 그 똥물이 튀었다.
니이다이는 똥이 쏟아진 바닥에 주저 않아 울며 용서를 빌었다.
잘못하면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부처는 자비로운 눈으로 니이다이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어 이른다.
"니이다이여, 내 손을 잡고 일어나 나와 함께 강으로 가서 씻자."
부처는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니이다이는 어쩔 줄 몰라하며 말했다.
"저같이 천한 자가 어찌 부처님과 함께 가겠습니까?"
부처가 말했다.
"염려하지 마라. 나의 진리는 맑고 깨끗한 물과 같아서
모든 것을 받아들여 더러움을 씻어 낸다.
나의 진리 안에서는
부유하고 가난하고 귀하고 천한 것들이 모두 하나다."
니이다이는 훗날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

부처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불교 전체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불교는 단순히 부처를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라,
부처가 발견한 진리를 부처의 안내에 따라 발견해 나가는
자발적인 추구의 길이다.
부처를 이해하는 것은
곧 나의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다.
부처의 전기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불타 석가모니>의 저자 와타나베 쇼코는
불교의 근본을 '게으름 없는 정진'이라는 한마디에 요약하고 있다.
부처의 마지막 유계도 이것이었다.
"비구니들이여, 너희들에게 할 말은 이렇다.
모든 현상은 변천한다.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미국 인구 가운데 9백만 명이, 그리고 프랑스 인구 중 6백만 명이
스스로를 불교도라 여긴다는 설문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지만
인류의 스승이며 지난 2천5백 년간 인류의 스승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한 불타 석가모니가
어떤 생을 살았으며 또 그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이는 드물다.
불교의 문제점인 기복신앙과 잘못된 믿음들은
부처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부처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는 신앙의 대상으로 가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생로병사에 대한 의문을 품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구도의 길을 떠난 인간의 원형으로 접근해야 한다.

 

어린 태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도 병에 걸리고 병을 피할 수 없는데도
남이 병에 걸린 것을 보면 싫어하면서
자신의 일을 돌이켜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도 언젠가는 병에 걸릴 것이고
병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남이 앓는 것을 보고 싫어하지 않는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지금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뽐내는 사람은 반드시 자멸하고 만다.
또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도 노인이 되고 늙음을 피할 수 없는데도
남이 늙는 것을 보면 싫어하면서 자신을 돌이켜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것이고
늙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남이 늙는 것을 보더라도 싫어하지 않는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젊고 앞길이 창창하다고 뽐내는 사람은 반드시 자멸하고 만다.'

 

인도의 문화는 과거 3천 년 동안 바라문 문화가 그 중심을 이루었다.
이 바라문 세력은 기원전 1천 년경 인도 서북부에 들어와
처음에는 인더스 강 유역에 펼쳐지다가 수백 년 동안
동쪽으로 나아가면서 갠지스 강 유역에 이르렀다.
이 민족을 아리아 인종이라고 하는데
피부가 희고 금발이며 코가 높은 것이 특색이다.
민족학이나 비교언어학적 입장에서 보면
이란인, 그리스인, 로마인, 게르만인들과 역사적으로 관련이 깊다.
아리아인은 <베타>라는 오래된 경전을 지니고 있었다.
이 <베타>에 의지해 세습적인 바라문이
'희생' 등의 종교의식을 집행함으로써
사람들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베타>는 절대 신성하며,
바라문은 나면서부터 최고라고 결정되어 있었다.
아리아인의 생활은 주로 목축이었다.
따라서 우유나 유제품에 의존했으므로
바라문과 함께 소를 신성한 것으로 믿었다.
이들이 들고 온 <베타> 경전들에서는 분명하지 않으나
훗날 인도 대륙 안에서 탄생한 <우파니샤드>에는
인도 사상 전체의 특징을 이루게 된 윤회사상이 등장한다.
이것이 바라문의 세계 밖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학자들 간의 의견이 일치한다.
사람은 죽은 후에 그 생전의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신들이 사는 천상에 태어나거나
또는 감옥과 같은 지하의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또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설
그리고 이 상태가 한없이 되풀이된다는 이야기
선한 과보로 천상에 태어났더라도
언젠가는 또 인간계나 그 이하로도 떨어지므로
이처럼 죽었다 다시 태어나고 태어났다가 다시 죽는
윤회는 결국 괴로움일 수밖에 없다.
한번 죽어 버리고 모든 것이 다 끝난다면 간단한데
몇 번이고 생사를 되풀이해야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지겹고 끔찍한 일이다.
이런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것이 기원전 6세기경 인도 사상계의 중심 과제였다.
사상계라고는 하지만 종교나 철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분이나 교양에 관계없이
적어도 자신의 생활을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윤회사상은 바라문교 쪽에서 보면 매우 못마땅했다.
왜냐하면 바라문은 태어나면서부터 신성한 존재라고 뽐냈는데.
윤회사상에 의하면 사람은 자신의 행위 결과에 따라
신도 되고 지옥에도 떨어지며 또는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다양한 신분을 갖는다고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바라문일지라도 이다음 생애는 노예로 태어날 수도 있고
이와 반대일 수도 있다면 이미 바라문 지상주의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데 불교와 자이나교를 비롯해 기원전 6세기 이후의 종교는
대부분 윤회사상을 전제로 한다.
바로 이 무렵 인도 북쪽 끄트머리, 지금의 네팔에 속하는
룸비니라는 작은 마을에서
장차 위대한 종교의 창시자가 될 한 아이가 탄생했다.
이 아이와 관련된 모든 사건들은 이 윤회사상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마침내 그 윤회의 사슬을 끊고
더없이 높은 해탈에 이르는 것을 정점으로 한다.
<불타 석가모니>는 이 아이가 장차 생사윤회에서 벗어난 부처가 되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펴고 최후에 육신을 벗기까지의 과정을
총 38장으로 낱낱이 그려 보인다.
각 장마다 부처의 삶에 일어난 중요한 일들을 다루고 있다.
<자카타>에 등장한 그의 전생이야기들로부터 시작해
이 생에서의 탄생, 성장, 결혼, 출가, 고행, 그리고 깨달음,
가르침, 열반에 이르기까지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마다
부처의 전체적인 삶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사건들이
상세한 해설과 함께 영화처럼 펼쳐진다.
가장 생생한 장면 중 하나는 궁극에 깨달음을 얻기 전
환영의 악마인 마라의 도전을 받는 대목이다.
6년 동안 고행하는 싯다르타의 신변을 엿보며
방해할 틈만 노리던 마라는 끝내 그 목적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라는 다음과 같이 부드러운 말씨로 싯다르타를 유혹한다.
"목숨이 있어야만 수행도 할 수 있소.
당신 같은 수행 방법으로는 천에 하나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소.
마음을 억제하거나 번뇌를 끊어버리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일이오.
그런 짓은 그만두시오.
훨씬 즐거운 방법이 얼마든지 있지 않소.
바라문이 하는 것처럼 불을 섬기고 제물을 바치면
얼마든지 공덕이 쌓일 것이요."
마라의 유혹에 싯다르타는 이렇게 대답한다.
"마라여, 내가 구하는 것은 단순한 이익이 아니다.
목숨은 언젠가 죽음으로 끝날 터이니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강물이 아무리 많아도 쉴 새 없이 바람이 불면
마침내 말라 버리듯이,
고행을 계속하면 육체나 피는 마르지만
내 마음만은 항상 고요히 가라앉는다.
나는 의욕과 노력과 정신을 통일한 의지를 갖추고 있다.
게다가 지혜도 있다.
헛되이 살아서 무엇할 것인가.
나는 너의 군대를 잘 알고 있다.
제1군은 애욕이다.
제2군은 의욕 상실이고,
제3군은 굶주림과 목마름이며,
제4군은 갈망이다.
제5군은 비겁이고,
제6군은 공포이며,
제7군은 의혹이고,
제8군은 분노다.
그리고 제9군은 슬픔이다.
그 위에 명예욕까지 갖추고 있다.
나는 너의 군대와 싸우겠노라."
싯다르타의 말을 들은 마라는 맥없이 물러갔다.
연기(緣起)=<모든 현상이 일어나고 소멸하는 법칙>란 말은
여러 가지로 널리 쓰이는데
그 기본적인 것이 십 이 인연이다.
십 이 인연은 우리들 인간의 상태
요즘 말로 하면 '실존'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어 간다.
이는 일반적인 진리인 동시에
또한 우리들 개개인의 운명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인생문제 자신의 근본 문제에 생각이 미칠 때면
언제나 우리는 이 벽에 부딪친다.
보리수 아래서 좌선해 최고의 진리를 탐구한 싯다르타에게도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최후의 열쇠였다.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은 무엇에 의해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태어난다'는 사실을 원인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점점 거슬러 올라가면 마침내
무명(無明=진리를 깨닫지 못한 마음상태)을 발견하게 된다.
그 무명이 근원적인 원인이다.
그는 이와 같이 살펴 나갔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렇게 생각해 나간다.
늙음과 죽음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태어나지 않으면 늙음과 죽음은 없다.
그럼 태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존이 없으면 된다.
이와 같이 생존에서 시작해 집착, 갈망, 접촉,
여섯 감각, 모양과 물체, 인식, 현상, 무명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결국은 무명이 없어지면 현상도 없고
현상이 없으면 인식도 없다는 식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늙음과 죽음도 없다.
이렇기 때문에 무명을 없애 버리는 것이
인생의 문제를 마지막으로 해결하는 길이다.


첫째 인간의 실존을 괴로움이라고 이해할 것.
이 괴로움은 괴로움과 즐거움으로 대립하는
그런 괴로움이 아니고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비록 행복의 절정에 있을 때라도
거기에 반드시 맺혀 있는 괴로움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은 인간적 실존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둘째 괴로움의 원인을 밝힐 것.
우리들이 생존하는 바탕에는 욕망과 욕구가 가로놓여 있다.
갈망이라고 할 수도 있고, 맹목적 의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이고 개체적이기도 한 동시에
집단적 또는 생물적 본능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셋째 괴로움의 원인인 갈망을 없앨 것.
이것이 실제적인 해결이다.
넷째 갈망을 없애기 위해서는 올바른 방법이 필요하다.
이것을 도(道)라고 부르는데
불교의 실천 덕목이 여기에 해당한다.


책의 마지막 35장부터 38장은
한 위대한 성인의 최후를 위한 장이며,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 니르바나(열반)에 들어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부처는 앞으로 교단을 어떻게 이끌어 가면 좋으냐는
제자 아난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아난다여, 현제도 내가 입적한 뒤에도
자신을 등불 삼고 의지처로 삼아 남에게 의지하지 마라.
진리를 등불 삼고 의지처로 삼아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만이 수행에 열정을 가진 수행승으로서
내 뜻에 가장 맞는 사람이다."
부처의 전기 중에서 가장 탁월한 작품이자
뛰어난 불교 입문서이고 인생의 지침서로 일컬어지는
와타나베 쇼코의 <불타 석가모니>
아널드 토인비는
'불교와 서양의 만남은 20세기의 가장 큰 사건'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현대인이 가져야 할 종교는
진리를 근본으로 한 것이어야 한다고도 했다.

 

옮긴 이 법정스님은 서문에 이렇게 썼다.

그 사람을 모르고 그의 사상이나 가르침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불타 석가모니의 경우처럼 그의 삶이 곧 그의 사상을 나타낸다면 더욱 그렇다.
그가 한평생을 어떻게 살았으며
그 새대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키쳤는가가 곧 그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열쇠다.
그리고 그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는
불교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출발이 될 것이다.
2,500여 년 전에 살았던 한 인간의 생애를
이제 와서 펼쳐 보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전의 전기를 보면 대부분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데 치우쳐 있었다.
많은 불타 전기 중에서 역자가 선뜻 이 책을 골라 번역한 것은
저자가 확신을 갖고 다른 불타 전기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투철한 안목을 열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이 책을 구해다 읽으면서
그전에 건성으로 지나쳤던 불교의 몇몇 현상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속으로 깨친 바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내 눈이 더욱 열리고 팔에 힘이 오르면
직접 불타 전기를 한번 써 보고 싶다는 자극을 강하게 받았다.

 


힌디어, 산스크리트어, 팔리어에 능통한 일본의 대표적인 불교학자
와다나베 쇼코는 평생에 걸친 그의 불교 공부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불타 석가모니>를 탄생시켰다.
이 책은 방대한 자료들을 뒤져 가면서 불타의 일생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을 종교적이면서 실증적이고 객관환된 시선으로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부처의 전기 이면서 단순한 한 위인의 생애에 한정되지 않고
마치 한 권의 흥미진진한 문명 발달론을 읽는 것처럼
부처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상과 당시 사상의 흐름,
문화적인 경향에 대해서도 다룬다.
이 책의 원 제목은 <신석존전.新釋尊傳>이며
다이호린카쿠에서 1966년 초판본이 출간되었고
2005년 지쿠마쇼보에서 문고판이 간행되었다.
법정 스님의 번역본은 1975년 샘터에서 <부처님의 일생>으로
문고판이 처음 나왔으며, 그 후 판형을 바꾸어 <불타 석가모니>로
동쪽나라를 거쳐 2010년 문학의 숲에서 새롭게 펴냈다.
부처의 또 다른 전기로는 카렌 암스트롱의 <붓다>
(국내 번역본은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디팩 초프라가 쓴 '사람의 아들 붓다' 등이 있다.

 

 

오늘도 법정스님이 평소 즐겨 읽었다는 책 50권 중 한 권을 소개해 보았다.

 

HanEunSeob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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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라 했다.! 기억해 내지 않아도
누군가가 눈앞을 어른대는 것이 그래서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것이 그리움이라 했다.

눈물이라 했다.! 누군가를 그려 보는 순간
얼굴을 타고 목으로 흘러 내리던 짠내 나는 것 눈물이라 했다.

몹쓸 병이라 했다.! 사랑이란 놈은
방금 배웅하고 돌아 와서도 그를 보고프게 만드는
참을성 없는 놈이라 했다 그래서 사랑이란 놈은
그 한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게 만드는
몹쓸 놈이라 했다.

행복이라 했다.! 누군가를 그리워 하고
그 이름을 불러 보고
또 눈물 짓고 설레는 것이 그래서 순간순간 누군가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행복이라 했다.


유가귀감(儒家龜鑑)

 

원문(득음)孔子曰(공자왈) : 해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天何言哉(천하언재) : "하늘이 어찌 말하겠느냐" 하였으며,
董仲舒曰(동중서왈) : 동중서는
道之大原 出於天(도지대원 출어천) : "도의 큰 근원이 하늘에서 난 것이라" 하였으며,
蔡沈曰,(채침왈,) : 채침은 
天者 嚴其心之所自出(천자 엄기심지소자출) : "하늘이란 것은 엄숙히 그 마음에서부터 난 것이라" 하였으니
此 卽周茂叔(차 즉주무숙) : 이는 주무숙(주렴계)의 
所謂無極而太極也(소위무극이태극야) : "무극이 태극"이라고 한 것이다.
書傳序 曰(서전서 왈) : 서전 서문에 
精一執中(정일집중) : "하나를 정미롭게 하고 중용을 잡은 것은
堯舜禹(요순우) : 요임금과 순임금과 우임금의
相傳之心法也(상전지심법야) : 서로 전한 심법이고,
建中建極(건중건극) : 중용을 세우고 태극을 세운 것은
商湯周武(상탕주무) : 은나라 탕임금과 주나라 무왕이
相傳之心法也(상전지심법야) : 서로 전한 심법이고,은나라 탕임금과 주나라 무왕이 서로 전한 심법이라" 하였다.
曰德曰仁曰敬曰誠(왈덕왈인왈경왈성) : 덕(德)이라고 하고, 인(仁)이라고 하고, 경(敬)이라고 하고,성(誠)이라고 하는 
言雖殊而理則一(언수수이이즉일) : 말은 이치는 모두  
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무비소이명차심지묘야) : 마음의 묘한 것을 밝힌 것이다.
心之德 其盛矣乎(우심지덕 기성의호) : 슬프도다 마음의 덕이 그와 같이 성한 것이로다.
中庸 性道敎(중용 성도교) : 중용에서 말한 성(性), 도(道), 교(敎)의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三句 亦名異而實同(삼구 역명이이실동) : 세 마디가 서로 이름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아서
體用備焉(체용비언) : 체용을 갖추었으니
此 乃孔孟 傳授心法(차 내공맹 전수심법) : 이것은 공자와 맹자의 전수한 심법이다.

道由性而出(도유성이출) : 도는 성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言道而不言性(언도이불언성) : 도를 말하고 성을 말하지 않으면
人不知道之本原(인부지도지본원) : 사람이 도의 본원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道由敎而明(도유교이명) : 도는 교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言道而不言敎(언도이불언교) : 도를 말하고 교를 말하지 않으면 
則人不知道之功用(즉인부지도지공용) : 사람이 도의 공용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故 道之一字(고 도지일자) : 그러므로 도라는 한 글 자가
包性包敎(포성포교) : 성품과 교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
推其本原(추기본원) : 그 본원을 추궁해 보면
必歸之天命(필귀지천명) : 반드시 천명으로 돌아갈 것이니
大學之三綱八目(대학지삼강팔목) : 대학의 삼강령 팔조목 또한
亦不外乎是也(역불외호시야) : 이에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周易 先言道而後言性(주역 선언도이후언성) : 주역에서 먼저 도를 말하고 뒤에 성품을 말했으니
此 道字 是統體一太極(차 도자 시통체일태극) : 이것은 도가 한 태극을 거느려 체를 삼은 것이고,
子思 先言性而後言道(자사 선언성이후언도) : 자사는 먼저 성품을 말하고 뒤에 도를 말했으니
此 道字 各具一太極(차 도자 각구일태극) : 이것은 도가 각자 한 태극을 갖춘 것이다.
世之言道者高則入於荒唐(세지언도자고즉입어황당) : 세상에서 도를 높이 말하는 사람들은 황당한 말로 돌려보내고
卑則滯於形氣(비즉체어형기) : 낮게 본 자는 형상과 기운에 걸릴 뿐이니
今言道字 非他(금언도자 비타) : 이제 말한 "도"라는 글자는 다른 것이 아니라
循性之謂也(순성지위야) : 성품을 쫓음을 말하는 것이다.

戒懼(계구) : 경계하여 두려워함은
是保守天理(시보수천리) : 천리를 보존하여 지키는 것이니
幾未動之敬也(기미동지경야) : 조화의 미묘한 힘이 아직 움직이지 않은 공경이고,
愼獨(신독) : 홀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가 함은
是檢防人欲(시검방인욕) : 사람의 마음을 점검하여 고찰한 것이니
幾已動之敬也(기이동지경야) : 이것은 조화의 미묘한 힘이 이미 움직인 뒤의 공경이다.
故 君子之心(고 군자지심) : 그러므로 군자의 마음은
常存敬畏(상존경외) : 항상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생각을 갖는다.
謹獨一念 己發時工夫(근독일념 기발시공부) : 홀로 삼가하는 마음은 기틀이 이미 발한 때의 공부이고,
戒懼一念 未發前工夫(계구일념 미발전공부) : 경계하고 두려워 하는 마음은 기틀이 아직 발하지 않은 때의 공부이다.

然 裳知未發(연 재지미발) : 그러나 겨우 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便是已發(변시이발) : 문득 이미 발한 것이 되는 것이니
卽不中(즉부중) : 맞지 않는 것이다.
中則天地萬物爲一體(중즉천지만물위일체) : 중용의 중은 곧 천지 만물과 한 몸이 된다.
幽則有鬼神(유즉유귀신) : 깊고 어두우면 그곳에 귀신이 있고,
明則有日月(명즉유일월) : 밝으면 일월이 있으니
此亦謹讀一句(차역근독일구) : 이것 또한 홀로 삼가 한다는 글귀이다.
涵養 靜工夫(함양 정공부) : 마음을 진리로 향하여 기르는 것은 고요한 공부이니
一箇主宰嚴肅也(일개주재엄숙야) : 한 주재의 엄숙함을 주로 하는 것이고,
省察 動工夫(성찰 동공부) : 자기 마음을 반성하여 살핌은 움직이는 때의 공부이니
情念裳發 覺治也(정념재발 각치야) : 감정에서 생기는 생각이 발하면 곧 깨달아 다스리는 것을 주로 하는 것이다.
故 曰精以察之(고 왈정이찰지) : 그러므로 정미롭게 살피고
一以守之(일이수지) : 하나로써 지키라 하였으니
所謂顧 諟天之明命(소위고 시천지명명) : 이것은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보는 것이다.

心一放(심일방) : 한 번 마음을 놓으면
卽悠悠蕩蕩즉유유탕탕 : 마음대로 흩어져 돌아갈 곳이 없으니
無所歸着무소귀착 : 돌아갈 곳이 없으니
心必操 意必誠심필조 의필성 : 마음은 반드시 잡고 뜻을 반드시 참되게 하며
言必謹 動必愼언필근 동필신 : 말을 반드시 삼가 하고 행동할 때에 반드시 삼가 할 것이니
內外交修之道내외교수지도 : 이것은 마음과 몸을 함께 닦는 길이다.
一念之善 慶雲景星일념지선 경운경성 : 한 선한 생각은 경사스러운 구름과 빛나는 큰 별과 같은 것이고, 
一念之惡 烈風暴雨일념지악 열풍폭우 : 한 악한 생각은 매운 바람과 사나운 비 같은 것이니,
堯舜桀紂 在此一句요순걸주 재차일구 : 요순과 걸주도 이 한 구절에 있는 것이다.
然 心之虛靈知覺연 심지허령지각 : 그러나 마음이 비고 신령한 지각은 
一而已矣일이이의 : 하나일 뿐이다.
渾厚包涵徒容혼후포함도용 : 널리 온갖 것에 섞이어 후하게 포용하고 함양하며 조용함은
是廣大之氣象시광대지기상 : 크고 넓은 기상이고,
促迫偏窄輕躁촉박편착경조 : 촉박하고 치우쳐 좁고 까불고 경조함은
非有德之氣象비유덕지기상 : 덕 있는 기상이 아니다.
省欲則心靜 心靜則事自簡(성욕즉심정 심정즉사자간) : 욕심을 제거하면 마음이 고요하고
少言沈默 最妙 知道則言自簡(소언침묵 최묘 지도즉언자간) : 마음이 고요하면 만사의 일이 스스로 간단하여 질 것이다.

謹言(근언) : 말을 삼가하는 것이
乃爲學第一工夫내위학제일공부 : 배우는데 제일 중요한 공부가 되는 것이니
言不謹(언불근) : 말을 삼가하지 않고
而能存心者鮮矣(이능존심자선의) : 마음을 보존하기 극히 어려운 것이다.
多言(다언) : 말이 많음은
最使人心流蕩(최사인심유탕) :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가장 방탕하게 하며
而氣亦損(이기역손) : 기운도 또한 덜게 되고
夢寐精神(몽매정신) : 꿈속에 정신도
亦不安(역불안) : 또한 편안치 못하다.
裳舒放(재서방) : 마음을 펴서 놓거든
卽當收斂(즉당수감) : 곧 마땅히 거둬들일 것이고,
裳言語(재언어) : 말을 하려는 때는
便思簡默(변사간묵) : 간단하고 침묵함을 생각하라.
必使一念(필사일념) : 반드시 생각으로 하여금
不妄起(불망기) : 망령을 일으키지 말고
一言 不妄發(일언 불망발) : 한 마디도 망령되게 하지 않아야
庶乎寡過(서호과과) : 허물이 적을 것이다.

聞人過失 如聞父母之名(문인과실 여문부모지명) : 남의 허물을 듣거든 부모의 이름을 듣는 듯하여
耳可聞 而口不可言(이가문 이구불가언) : 귀로는 들을지언정 입밖에 내지 말라.

是非終日有(시비종일유) : 시비가 종일 있더라도
不聽自然無(불청자연무) : 듣지 않으면 자연히 없어질 것이니 와서  
來說是非者(내설시비자) : 와서 시비를 말하는 자가
便是是非人(변시시비인) : 나를 시비하는 사람이다.
待左右 當嚴而惠(대좌우 당엄이혜) : 좌우의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 마땅히 엄숙히 하여 은혜롭게 할 것이며,
左右之言 不可輕信(좌우지언 불가경신) : 좌우 사람의 말을 가볍게 믿지 말고 
必審其實(필심기실) : 반드시 그 진실함을 살펴야 한다.
親愛之言(친애지언) : 친애하는 사람의 말을
亦不可偏聽(역불가편청) : 치우쳐 듣지 말고,
若聽一面說(약청일면설) : 만일 한편쪽 사람의 말만 들으면
便見相離別(변견상이별) : 서로 의가 상해서 갈리게 될 것이다.
 
輕言輕動之人(경언경동지인) : 말과 행동이 가벼운 사람은
不可深計(불가심계) : 깊게 꾀하지 못할 것이니 
易喜易怒者 亦然(이희이노자 역연) : 기뻐하고 성내기를 쉽게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欲人無聞 莫若勿言(욕인무문 막약물언) : 남에게 들리지 않게 하려면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欲人無知 莫若勿爲(욕인무지 막약물위) : 남이 알지 않게 하려면 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
大丈夫心事(대장부심사) : 대장부의 마음을
當如靑天白日(당여청천백일) : 청천백일과 같이하여
使人得而見之(사인득이견지) : 사람으로 하여금 얻어 보게 할지니라.
奢侈華麗 人之大惡(사치화려 인지대악) : 사치하고 화려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큰 죄악이고,  
淳朴質直 人之大德(순박질직 인지대덕) : 순박하고 곧은 것은 사람의 큰 덕이다.

古賢(고현) : 옛날 현인은
時然後 言(시연후 언) : 때가 된 후에 말하여
人不厭其言(인불염기언) : 사람들이 그의 말을 싫어하지 않았으며, 
樂然後 笑(낙연후 소) : 즐거운 일이 있은 후에 웃었기 때문에
人不厭其笑(인불염기소) : 사람들이 그 웃음을 싫어하지 않았고,
義然後 取(의연후 취) : 옳은 의리가 있은 후에 취한지라
人不厭其取(인불염기취) : 그의 취함을 싫어하지 않았다.

君子行有不得(군자행유부득) : 군자는 행하던 일을 얻지 못하면
皆反諸己(개반저기) : 다 자기 탓으로 하고  
而無責人之心 心常灑落(이무책인지심 심상쇄락) : 남을 책망하지 않으므로 마음이 깨끗하다.
常人(상인) : 보통 사람은
裳不得於天 卽怨天(재부득어천 즉원천) : 행함을 얻지 못하면 그것이 하늘의 뜻임에도 남을 원망한다.
裳不合於人 卽尤人(재불합어인 즉우인) : 그리고 항상
心常不寧 忿懥勞擾(심상불녕 분치노요) :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분하게 여겨 괴로워한다.
人爲外物所動者(인위외물소동자) : 외물에 의하여 동요되는 사람도
只是淺(지시천) : 깊지 못하고 
人有才而露(인유재이로) : 재주가 있어서 나타내는 사람도
亦是淺(역시천) : 또한 깊지 못한 것이다.
深則不露(심즉불로) : 마음이 깊으면 나타내지 않는다.
識量大則毁譽欣慼(식량대즉훼예흔척) : 식견이나 도량이 크면 훼방하거나 칭찬하거나
不足以動其心(부족이동기심) : 기쁘거나 슬픈 것이 그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못한다.
聖人之心(성인지심) : 성인의 마음은
應物卽休(응물즉휴) : 사물에 응하여 쉬기에
元不少動(원불소동) : 원래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心誠色溫(심성색온) : 마음을 진실히 하고 얼굴빛을 온순히 하며
氣和辭婉(기화사완) : 기운을 평화스럽게 갖고 말을 아름답고 순하게 하면
必能動人(필능동인) : 반드시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惟正 可以服人(유정 가이복인) : 오직 바르게 하여야 사람을 감복하게 하는 것이니
故 寧可正而不足(고 영가정이부족) : 바르게 하여 흡족하게는 못할지언정
不可邪而有餘(부가사이유여) : 악하게 하고 남음이 있게 하지는 말라.
正其義 不謀其利(정기의 불모기리) : 의리를 바르게 하고 이익을 꾀하지 말며
明其道 不計其功(명기도 불계기공) : 그 도리를 밝히게 하고 그 공을 헤아리지 말라.
一行有失 百行難補(일행유실 백행난보) : 한 가지 행실에 허물이 있으면 백가지 행실이 보충하기 어려운 것이니
故 防末 在本(고 방말 재본) : 끝을 막는 것은 근본에 있는 것이다.
人多於快意之事 忘却道(인다어쾌의지사 망각도) : 많은 사람이 순순히 뜻을 따라주는 일에 도리를 잊기 쉽다.
爲政 通下情爲急(위정 통하정위급) : 정사를 함에 아랫사람 마음을 통하기를 급히 하고
處事 尤宜心平氣和(처사 우의심평기화) : 마음을 편안히 하여 일을 처리하고 기운을 부드럽게 하라.
事最不可輕忽(사최부가경홀) : 일은 경솔하게 하지 말며
雖至微至易者 皆當以愼重處之(수지미지이자 개당이신중처지) : 비록 지극히 작고 쉬운 일이라도 신중히 처리하라.

見人善 尋己善(견인선 심기선) : 사람의 착한 일을 보거든 자기의 선행을 찾고,
見人惡 尋其惡(견인악 심기악) : 사람의 악한 일을 보거든 자기의 악한 일을 찾아보며
從也改也 俱爲我師(종야개야 구위아사) : 따르고 고침에 다 나의 스승을 삼을지니라.

結朋 須勝己(결붕 수승기) : 친구를 사귈 때는 나보다 나은 자를 구하라.
似我 不如無(사아 불여무) : 나와 같은 자는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毁吾者 師(훼오자 사) : 나의 잘못을 말하는 사람은 스승이요, 
譽吾者 賊(예오자 적) : 나를 칭찬하는 사람은 도적이다.
非莫非於飾非(비막비어식비) : 그른 것은 그름을 꾸미는 그름 같음이 없고
過莫過於文過(과막과어문과) : 허물은 허물을 허물이 아닌 것으로 꾸미는 것 같은 허물이 없다.
以德報寃 以善報惡(이덕보원 이선보악) : 덕으로서 원수를 갚고 선으로 악을 갚아라.
人若唾面 不拭自乾(인오타면 불식자건) : 사람이 내 얼굴에 침을 뱉을 지라도 노여워하지 말고,
覺人詐 而不形於言 有餘味(각인사 이불형어언 유여미) : 사람에게 속은 것을 알았을 때도 말로 나타내지 않으면 나머지 맛이 있다.
卽人言 可以見所養之淺深즉(인언 가이견소양지천심) : 사람과 이야기를 하여 보면 교양의 정도를 알 것이며   
知足者 貧賤 亦樂(지족자 빈천 역락) :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귀해도 근심을 하며
不知足者 富貴 亦憂(부지족자 부귀 역우) : 자기의 분수에 만족하여 편안함을 알면 영화스러울 것이다.
知安則榮 知足則富지(안즉영 지족즉부) : 만족할 줄 알면 그것이 곧 부자이다.
人無百歲人 枉作千年計(인무백세인 왕작천년계) : 사람은 백살을 살지 못하는데 천년 살 계획을 하고 있다.
大厦千間 夜臥八尺(대하천간 야와팔척) : 아무리 천간 집이라도 잠잘 자리는 팔 척이면 되고
良田萬頃 日食二升(양전만경 일식이승) : 좋은 밭이 만 이랑이라도 하루에 먹는 것은 두되 뿐이다.

人皆愛珠玉(인개애주옥) : 사람들은 구슬과 옥을 사랑하더라도
我愛賢師友(아애현사우) : 나는 어진 스승과 벗을 사랑한다.
黃金萬兩 未爲貴(황금만량 미위귀) : 황금은 만량이라도 귀한 것이 되지 못하지만
得人一語 勝千金(득인일어 승천금) : 사람에게 진실한 말을 얻는 것은 천금보다 중요하다.
有名不用鐫頑石(유명불용전완석) : 이름을 남겨 두려고 비석에 새기려 하지 마라.
路上行人 口是碑(노상행인 구시비) : 이름을 남길 만한 일을 했으면 오고가는 사람의 입이 다 비석이 되는 것이다. 
平生不作皺眉事(평생부작추미사) : 평생에 남에게 눈썹을 찡그리게 할 일을 하지 않으면
世上應無切齒人(세상응무절치인) : 세상에서 원한을 갖고 덤빌 사람은 없다.      
貧居 鬧市 無相識(빈거 요시 무상식) : 가난하게 살면 번화한 시장 가운데 살지라도 서로 알고 왕래하는 사람이 없고,
富住 深山 有遠親(부주 심산 유원친) : 부자로 살면 깊은 산 속에 살지라도 먼데서 사람이 와서 친하는 자가 있다.
凡事留人情 後來好相見(범사유인정 후래호상견) : 모든 일에 인정을 베풀면 그 뒤에 서로 좋게 보게 된다.
若要人重我 無過我重人(약요인중아 무과아중인) : 만일 사람이 나를 중히 여기려거든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중히 여겨라.
有客來相訪 如何是治生(유객래상방 여하시치생) : 손님이 와서 어떻게 생활해 가느냐고 물으면      
恒存方寸地 留輿子孫耕(항존방촌지 유여자손경) : 항상 마음속에 덕을 심어 자손에게 주어 경작하고 산다고 하라.
爲子死孝 爲臣死忠(위자사효 위신사충) : 자손이 되어서는 효도를 다해야 하고, 신하는 충성으로 다해야 하니,
人無忠孝之心 其餘 不足觀也(인무충효지심 기여 부족관야) : 사람이 충효가 없으면 더 이상 볼 것이 없다.

心統性情(심통성정) : 마음은 성품과 정을 거느리는 것이니
君子存心 恒若鑑空衡平(군자존심 항약감공형평) : 군자가 마음 갖기를 항상 거울과 저울과 같이하면
與天地合其德(여천지합기덕) : 천지와 함께 그 덕을 더하게 된다.
於戱 三月忘味(오희 삼월망미) : 석 달을 고기 맛을 잃고
終日如愚 此聖賢忘內之樂也(종일여우 차성현망내지락야) : 날이 새도록 어리석은 사람 같이 행동한 것은 성현들이 안을 잊어버린 낙이고
不貴黃屋 不賤陋巷(불귀황옥 불천누항) : 황옥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더러운 골목 거리를 천하게 여기지 않으니
此聖賢忘外之樂也(차성현망외지락야) : 이는 성현들의 밖을 잊어버린 낙이니,
然則聖賢之樂(연즉성현지락) : 그러므로 성현의 낙은 
不在內外 當在何處(부재내외 당재하처) : 안과 밖에 있지 않으니 어떤 곳에 있을까.
古之詩人(고지시인) : 옛날의 시인은
觀鳶魚 而知道之費隱(관연어 이지도지비은) : 공중에 나르는 솔개와 물에 노는 고기를 보고 도가 나타나고 숨음을 알고,
聖人 觀川流(성인 관천류) : 성인은 냇물의 흐름을 보고
而知道之不息(이지도지불식) : 도의 쉬지 않음을 알았으니,
今之學者其可不盡心乎(금지학자기가불진심호) : 지금의 학자들은 어찌 전심전력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文王之詩(문왕지시) : 문왕의 시에
無聲無臭之天(무성무취지천) :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하늘이라 한 말을
子思子亦引之(자사자역인지) : 자사가 인용하여 
以結中庸之義 旴(이결중용지의 우) : 중용의 뜻을 맺었으니 슬픈 일이다.
卽吾渾然未發之中也(즉오혼연미발지중야) : 이것이 내가 혼연히 말하지 않은 중용이다.
此周茂叔所謂太極本無極也(차주무숙소위태극본무극야) : 이것이 주무숙이, 태극이 무극을 근본하였다고 한 것이다.

 

 

 

1. 유가귀감(儒家龜鑑)
  
원음(득음)孔子曰 天何言哉(공자왈 천하언재)리요 하시며 
董仲舒曰 道之大原(동중서왈 도지대원)이 出於天(출어천)이라하며 
蔡沈曰 天者(채침왈 천자)는 嚴其心之所自出(엄기심지소자출)이라 하나니
此(차)는 卽周茂叔(즉주무숙)의 所謂無極而太極也(소위무극이태극야)로다. 
書傳序(태전서)에 曰精一執中(왈정일집중)은 堯舜禹(요순우)의 相傳之心法也(상전지심법야)오 
建中建極(건중건국)은 商湯周武(상탕주무)의 相傳之心法也(상전지심법야)라 
曰德曰仁曰敬曰誠(왈덕왈인왈경왈성)은 言雖殊而理則一(언수수이이즉일)이라 
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무비소이명차심지묘야)라 하니라
亏心之德(우심지덕)이 其盛矣乎(기성의호)인저 
中庸(중용)의 性道敎(성도교)(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 率性之謂道솔성지위도 修道之謂敎수도지위교)
三句(삼구)도 亦名異而實同(역명이이실동)하야
體用備焉(체용비언)이니 此(차)는 乃孔孟(내공맹)의 傳授心法(전수심법)이로다.

 

해설
공자 말씀하시기를 [하늘이 어찌 말하겠느냐] 하였으며, 
동중서는 [도의 큰 근원이 하늘에서 난 것이라] 하였으며, 
채침은 [하늘이란 것은 엄숙히 그 마음에서부터 난 것이라] 하였 으니 
이는 주무숙의 무극이 태극이라고 한 것이다. 
서전 서문에 [하나를 정미롭게 하고 
중용을 잡은 것은 요임금과 순임 금과 우임금의 서로 전한 심법이고, 
중용을 세우고 태극을 세운 것은 은나라 탕임금과 주나라 무왕이 서로 전한 심법이라] 하였다. 
덕이라고 하고, 인이라고 하고, 경이라고 하고, 
성이라고 하는 말은 이치는 모두 마음의 묘한 것을 밝힌 것이다. 
슬프도다 마음의 덕이 그와 같이 성한 것이로다. 
중용에서 말한 성, 도, 교의 세 마디가 서로 이름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아서 
체용을 갖추었으니 이것은 공자와 맹자의 전수한 심법이다.


道由性而出(도유성출)이니 言道而不言性(언도이불언성)이면 人不知道之本原(인부지도지본원)이오.
道由敎而明(도유교이명)이니 言道而不言敎(언도이불언교)면 則人不知道之功用(즉인부지도지공용)이라.
故(고)로 道之一字(도지일자)가 包性包敎(포성포교)라. 
推其本原(추기본원)컨댄 必歸之天命(필귀지천명)이니 
大學之三綱八目(대학지삼강팔목)이 亦不外乎是也(역불외호시야)로다.

도는 성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도를 말하고 
성을 말하 지 않으면 사람이 도의 본원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도는 교 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도를 말하고 교를 말하지 않으면 
사람 이 도의 공용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라는 한 글 자가 성품과 교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 
그 본원을 추궁해 보면 반드시 천명으로 돌아갈 것이니 
대학의 삼강령 팔조목 이 또한 이에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周易(주역)에 先言道而後言性(선언도이후언성)하니 
此(차)는 道字(도자)-是統體一太極(시통체일태극)이오. 
子思(자사)-先言性而後言道(선언성이후언도)하니 
此(차)는 道字(도자)-各具一太極(각구일태극)이로다. 
世之言道者高則入於荒唐(세지언도자고즉입어황당)하고 
卑則滯於形氣(비즉체어형기)나 今言道字(금언도자)는 非他(비타)라. 
循性之謂也(순성지위야)니라.太極(태극)이오. 
子思(자사)-先言性而後言道(선언성이후언도)하니 
此(차)는 道字(도자)-各具一太極(각구일태극)이로다. 
世之言道者高則入於荒唐(세지언도자고즉입어황당)하고 
卑則滯於形氣(비즉체어형기)나 今言道字(금언도자)는 非他(비타)라. 
循性之謂也(순성지위야)니라.
具一太極(구일태극)이로다. 
世之言道者高則入於荒唐(세지언도자고즉입어황당)하고 
卑則滯於形氣(비즉체어형기)나 今言道字(금언도자)는 非他(비타)라. 
循性之謂也(순성지위야)니라

주역에서 먼저 도를 말하고 뒤에 성품을 말했으니 
이것은 도가 한 태극을 거느려 체를 삼은 것이고, 
자사는 먼저 성품 을 말하고 뒤에 도를 말했으니 
이것은 도가 각자 한 태극을 갖춘 것이다. 
세상에서 도를 높이 말하는 사람들은 황당한 말로 돌려보내고 
낮게 본자는 형상과 기운에 걸릴 뿐이니 
이제 말한 {도}자는 다른 것이 아니라 성품을 쫓음을 말하는 것이다.


戒懼(계구)는 是保守天理(시보수천리)니 幾未動之敬也(기미동지경야)오 
愼獨(신독)은 是檢防人欲(시검방인욕)이니 幾已動之敬也(기이동지경야)라. 
故(고)로 君子之心(군자지심)은 常存敬畏(상존경외)니라. 
謹獨一念(근독일념)은 己發時工夫(기발시공부)요, 
戒懼一念(계구일념)은 未發前工夫(미발전공부)로다. 
然(연)이나 裳知未發(재지미발)이면 便是已發(변시이발)이라.
卽不中(즉부중)이니 中則天地萬物爲一體(중즉천지만물위일체)니라. 
幽則有鬼神(유즉유귀신)하고 明則有日月(명즉유일월)하니 此亦謹讀一句(차역근독일구)니라. 
涵養(함양)은 靜工夫(정공부)니 一箇主宰嚴肅也(일개주재엄숙야)오. 
省察(성찰)은 動工夫(동공부)니 情念裳發(정념개발)을 覺治也(각치야)라. 
故(고)로 曰精以察之(왈정이찰지)하고 一以守之(일이수지)라하니 
所謂顧 諟天之明命(소위고 시천지명명)이니라.

경계하여 두려워함은 천리를 보존하여 지키는 것이니 
조화의 미묘한 힘이 아직 움직이지 않은 공경이고, 
홀로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삼가 함은 사람의 마음을 점검하여 고찰한 것이니 
이것은 조화의 미묘한 힘이 이미 움직인 뒤의 공경이다. 
그러므로 군자 의 마음은 항상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생각을 갖는다. 
홀로 삼가 하는 마음은 기틀이 이미 발한 때의 공부이고, 
경계하고 두려워 하는 마음은 기틀이 아직 발하지 않은 때의 공부이다. 
그러나 겨우 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문득 이미 발한 것이 되는 것이니 맞지 않는 것이다. 
중용의 중은 곧 천지 만물과 한 몸이 된다. 
깊고 어두우면 그곳에 귀신이 있고, 밝으면 일월이 있으니 이것 또한 홀로 삼가 한다는 글귀이다. 
마음을 진리로 향하여 기르는 것은 고요한 공부이니 한 주재의 엄숙함을 주로 하는 것이고, 
자기 마음을 반성하여 살핌은 움직이는 때의 공부이니 
감정에서 생기는 생각이 발하면 곧 깨달아 다스리는 것을 주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미롭게 살피고 하나로써 지키라 하였으니 이것은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보는 것이다.


心一放(심일방)하면 卽悠悠蕩蕩(즉유유탕탕)하야 
無所歸着(무소귀착)이니 心必操(심필조)하고 
意必誠(의필성)하며 言必謹(언필근)하고 動必愼(동필신)이니 
內外交修之道(내외교수지도)니라.
一念之善(일념지선)은 慶雲景星(경운경성)이오 
一念之惡(일념지악)은 烈風暴雨(열풍폭우)니 
堯舜桀紂(요순걸주)가 在此一句(재차일구)로다. 
然(연)이나 心之虛靈知覺(심지허령지각)은 一而已矣(일이이의)니라. 
渾厚包涵徒容(혼후포함도용)은 是廣大之氣象(시광대지기상)이오.
促迫偏窄輕躁(촉박편착경조)는 非有德之氣象(비유덕지기상)이로다. 
省欲則心靜(성욕즉심정)이오 心靜則事自簡(심정즉사자간)이니라. 
少言沈默(소언침묵)이 最妙(최묘)니 知道則言自簡(지도즉언자간)이니라.

한 번 마음을 놓으면 마음대로 흩어져 돌아갈 곳이 없으니 
마음은 반드시 잡고 뜻을 반드시 참되게 하며 말을 
반드시 삼가 하고 행동할 때에 반드시 삼가 할 것이니 이것은 마음과 몸을 함께 닦는 길이다. 
한 선한 생각은 경사스러운 구름 과 빛나는 큰 별과 같은 것이고, 
한 악한 생각은 매운 바람과 사나운 비 같은 것이니, 요순과 걸주도 이 한 구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비고 신령한 지각은 하나일 뿐이다. 
널리 온갖 것에 섞이어 후하게 포용하고 함양하며 
조용함은 크고 넓은 기상이고 촉박하고 치우쳐 좁고 까불고 경조함은 덕있는 기상이 아니다. 
욕심을 제거하면 마음이 고요하고 마음이 고요하면 만사의 일이 스스로 간단하여 질 것이다.


謹言(근언)은 乃爲學第一工夫(내위학제일공부)니 言不謹(언불근)하고 而能存心者鮮矣(이능존심자선의)니라. 
多言(다언)은 最使人心流蕩(최사인심유탕)하야 而氣亦損(이기역손)이니 夢寐精神(몽매정신)도 亦不安(역불안)이니라. 
纔舒放(재서방)이어든 卽當收斂(즉당수감) 하고 纔言語(재언어)어든 便思簡默(변사간묵)이니라. 
必使一念(필사일념)으로 不妄起(불망기)니 一言(일언)도 不妄發(불망발)하야 庶乎寡過(서호과과)이니라.

말을 삼가하는 것은 배우는데 제일 중요한 공부가 되는 것이니 
말을 삼가하지 않고 마음을 보존하기 극히 어려운 것이다. 
말이 많음은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가장 방탕하게 하며 
기운도 또한 덜게 되고 꿈속에 정신도 또한 편안치 못하다. 
마음을 펴서 놓거든 곧 마땅히 거둬들일 것이고, 말을 하려는 때는 간단하고 침묵함을 생각하라. 
반드시 생각으로 하여금 망령을 일으키지 말고 한 마디도 망령되게 하지 않아야 허물 이 적을 것이다.


聞人過失(문인과실)이어든 如聞父母之名(여문부모지명)하야 
耳可聞(이가문)이어정 而口不可言(이구불가언)이니라.

남의 허물을 듣거든 부모의 이름을 듣는 듯하여 귀로는 들을 지언정 입밖에 내지 말라.


是非終日有(시비종일유)라도 不聽自然無(불청자연무)니 
來說是非者(내설시비자)는 便是是非人(변시시비인)이라. 
待左右(대좌우)에 當嚴而惠(당엄이혜)니 
左右之言(좌우지언)은 不可輕信(불가경신)이오 必審其實(심필기실)이니라 
親愛之言(친애지언)을 亦不可偏聽(역불가편청)이니 
若聽一面說(약청일면설)하면 便見相離別(변견상이별)이니라.

시비가 종일 있더라도 듣지 않으면 자연히 없어질 것이니 와서 시비를 말하는 자가 나를 시비하는 사람이다. 
좌우의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 마땅히 엄숙히하여 은혜롭게 할 것이며, 
좌우 사람의 말을 가볍게 믿지 말고 반드시 그 진실함을 살펴야 한다. 
친애하는 사람의 말을 치우쳐 듣지 말고, 만일 한편쪽 사람의 말만 들으면 서로 의가 상해서 갈리게 될 것이다.


輕言輕動之人(경언경동지인)은 不可深計(불가심계)오 
易喜易怒者(이희이노자)도 亦然(역연)이니라.
欲人無聞(욕인무문)이면 莫若勿言(막약물언)이요 
欲人無知(욕인무지)인댄 莫若勿爲(막약물위)니라.
大丈夫心事(대장부심사)는 當如靑天白日(당여청천백일)하야 
使人得而見之(사인득이견지)니라
奢侈華麗(사치화려)는 人之大惡(인지대악)이요 
淳朴質直(순박질직)은 人之大德(인지대덕)이니라.

말과 행동이 가벼운 사람은 깊게 꾀하지 못할 것이니 
기뻐하고 성내기를 쉽게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남에게 들리지 않게 하려면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남이 알지 않게 하려면 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장부의 마음을 청천 백 일과 같이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얻어 보게 할지니라. 
사치하고 화려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큰 죄악이고, 순박하고 곧은 것은 사람의 큰 덕이다.


古賢(고현)은 時然後(시연후)에 言(언)이라 
人不厭其言(인불염기언)하고 樂然後(낙연후)에 笑(소)라. 
人不厭其笑(인불염기소)하며 義然後(의연후)에 取(취)라 人不厭其取(인불염기취)니라.

옛날 현인은 때가 된 후에 말하여 사람들이 그의 말을 싫어하지 않았으며, 
즐거운 일이 있은 후에 웃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웃음을 싫어하지 않았고, 
옳은 의리가 있은 후에 취 한 지라 그의 취함을 싫어하지 않았다.


君子行有不得이면 皆反諸己하야 而無責人之心이라
心常灑落(심상쇄락)이로되 常人(상인)은 纔不得於天(재부득어천)이면 
卽怨天(즉원천)하고 纔不合於人(재불합어인)이면 卽尤人(즉우인)이라. 
心常不寧(심상불녕)하야 忿懥勞擾(분치노요)니라. 
人爲外物所動者(인위외물소동자)는 只是淺(지시천)이요. 
人有才而露(인유재이로)도 亦是淺(역시천)이니 深則不露(심즉불로)니라. 
識量大則毁譽欣慼(식량대즉훼예흔척) 이 不足以動其心(부족이동기심)이니 
聖人之心(성인지심)은 應物卽休(응물즉휴)라 元不少動(원불소동)이니라.

군자 행하던 일을 얻지 못하면 다 자기 탓으로 하고 남을 책망하지 않으므로 마음이 깨끗하다. 
보통 사람은 행함을 얻 지 못하면 그것이 하늘의 뜻임에도 남을 원망한다. 
그리고 항 상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분하게 여겨 괴로워한다. 
외물에 의하 여 동요되는 사람과 재주가 있어서 나타내는 사람도 깊지 못 한 것이다. 
마음이 깊으면 나타내지 않는다. 
식견이나 도량이 크면 훼방하거나 칭찬하거나 기쁘거나 슬픈 것이 그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못한다. 
성인의 마음은 사물에 응하여 쉬기에 원래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心誠色溫(심성색온)하고 氣和辭婉(기화사완)하면 必能動人(필능동인)이니라
惟正(유정)이라야 可以服人(가이복인)이니 
故(고)로 寧可正而不足(영가정이부족)이언정 不可邪而有餘(부가사이유정)니라 
正其義(정기의)하고 不謀其利(불모기리)하며 明其道(명기도)하고 不計其功(불계기공)이니라 
一行有失(일행유실)이면 百行難補(백행난보)라. 
故(고)로 防末(방말)은 在本(재본)이니라 
人多於快意之事(인다어쾌의지사)에 忘却道(망각도)니라 
爲政(위정)에 通下情爲急(통하정위급)하고 處事(처사)에 尤宜心平氣和(우의심평기화)니라 
事最不可輕忽(사최부가경홀)이니 雖至微至易者(수지미지이자)라도 皆當以愼重處之(개당이신중처지)니라

마음을 진실히 하고 얼굴빛을 온순히 하며 
기분을 평화스 럽게 갖고 말을 아름답고 순하게 하면 반드시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오직 바르게 하여야 사람을 감복하게 하는 것이니 
바르게 하여 흡족하게는 못할지언정 악하게 하고 남음이 있게 하지 말라. 
의리를 바르게 하고 이익을 꾀하지 말며 그 도리를 밝히게 하고 그 공을 헤아리지 말라, 
한 가지 행실에 허물이 있으면 백가지 행실이 보충하기 어려운 것이니 끝을 막 는 것은 근본에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제 뜻을 쾌히 하는 일에 도리를 잊기 쉽다. 
정사를 함에 하정을 통하기를 급히 하고 마음을 편안히 하여 일을 처리하고 기운을 부드럽게 하라. 
일은 경홀 하게 하지 말며 비록 지극히 작고 쉬운 일이라도 신중히 처리하라.


見人善(견인선)이어든 尋己善(견기선)하고 
見人惡(견인악)이어든 尋其惡(심기악)이니 
從也改也(종야개야)에 俱爲我師(구위아사)니라

사람의 착한 일을 보거든 자기의 선행을 찾고, 
사람의 악한 일을 보거든 자기의 악한 일을 찾아보며 
쫓고 고침에 다 나의 스승을 삼을지니라.


結朋(결붕)에 須勝己(수승기)니 似我(사아)면 不如無(불여무)라 
毁吾者(훼오자)는 師(사)요 譽吾者(예오자)는 賊(적)이니라. 
非莫非於飾非(비막비어식비)오 過莫過於文過(과막과어문과)니라.
以德報寃(이덕보워)하고 以善報惡(이선보악)하라. 
人若唾面(인오타면)이어든 不拭自乾(불식자건)이니라. 
覺人詐(각인사)라도 而不形於言(이불형어언)이면 有餘味(유여미)니라.
卽人言(즉인언)하면 可以見所養之淺深(가이견소양지천심)이니라. 
知足者(지족자)는 貧賤(천천)도 亦樂(역락)이오 
不知足者(부지족자)는 富貴(부귀)도 亦憂(역우)니 
知安則榮(지안즉명)하고 知足則富(지족즉부)니라. 
人無百歲人(인무백세인)이로되 枉作千年計(왕작천년계)로다
大厦千間(대하천간)이라도 夜臥八尺(야와팔척)이오 
良田萬頃(영전만경)이라도 日食二升(일식이승)이니라.

친구를 사귈 때는 나보다 승한 자를 구하라. 
나와 같은 자는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나의 잘못을 말하는 사람은 스승 이요, 나를 칭찬하는 사람은 도적이다. 
그른 것은 그름을 꾸미는 그름 같음이 없고 허물은 허물을 문채 나게 하는 허물 같음이 없다. 
덕으로서 원수를 갚고 선으로 악을 갚으라. 
사람이 내 얼굴에 침을 뱉을 지라도 닦지 말고 스스로 마르게 하라. 
사람에게 속은 것을 알았을 때도 말로 나타내지 않으면 나머지 맛이 있다. 
사람과 이야기를 하여 보면 교양의 정도를 알 것이며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귀한 사람이라도 근심을 하며 
자기의 분수에 편안한 안분을 알면 영화스러울 것이다. 
족한 줄을 알면 그것이 곧 부자이다. 
사람은 백살을 살지 못하는데 천년 살 계획을 하고 있다. 
아무리 천간 집이라도 잠잘 자리는 팔척이면 되고 
좋은 밭이 만 이랑이라도 하루에 먹는 것은 두되 뿐이다.


人皆愛珠玉(인개애주옥)하되 我愛賢師友(아애현사우)니라 
黃金萬兩(황금만량)이 未爲貴(미위귀)오 
得人一語(득인일어)가 勝千金(승천금)이로다. 
有名不用鐫頑石(유명불용전완석)하라
路上行人(노상행인)이 口是碑(구시비)니라 
平生不作皺眉事(평생부작추미사)하라 
世上應無切齒人(세상응무절치인)이로다. 
貧居(빈거)하면 鬧市(요시)라도 無相識(무상식)이오 
富住(부주)하면 深山(심산)이라도 有遠親(유원친)이니라 
凡事留人情(범사유인정)하면 後來好相見(후래호상견)이니 
若要人重我(약요인중아)인댄 無過我重人(무과아중인)이니라.
有客來相訪(유객래상방)하야 如何是治生(여하시치생)하면 
恒存方寸地(항존방촌지)하야 留輿子孫耕(유여자손경)이라하야 
爲子死孝(위자사효)하고 爲臣死忠(위신사충)이니 
人無忠孝之心(인무충효지심)이면 其餘(기여)를 不足觀也(부족관야)니라

사람들은 구슬과 옥을 사랑하더라도 나는 어진 스승과 벗을 사랑한다. 
황금은 만량이라도 귀한 것이 되지못하되 
사람 에게 진실한 말을 얻는 것은 천금보다 중요하다. 
이름을 남겨 두려고 비석에 새기려 하지 마라. 
이름을 남길 만한 일을 했 으면 오고가는 사람의 입이 다 비석이 되는 것이다. 
평생에 남에게 눈썹을 찡그리게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원한을 갖고 덤빌 사람은 없다. 
가난하게 살면 번화한 시장 가운 데 살지라도 서로 알고 왕래하는 사람이 없고, 
부자로 살면 깊은 산 속에 살지라도 먼데서 사람이 와서 친하는 자가 있다. 
모든 일에 인정을 베풀면 그 뒤에 서로 좋게 보게 된다. 
만일 사람이 나를 중히 여기려거든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중히 여겨라. 
손님이 와서 어떻게 생활해 가느냐고 물으면 
항 상 마음속에 덕을 심어 자손에게 주어 경작하고 산다고 하라. 
자손이 되어서는 효도로써 죽고, 
신하로써는 충성으로 죽어야 하니, 
사람이 충효가 없으면 더 이상 볼 것이 없다.


心統性情(심통성정)이니 君子存心(군자존심)을 
恒若鑑空衡平(항약감공형평)하면 與天地合其德(여천지합기덕)이니라 
於戱(오희)라 三月忘味(삼월망미)하고 
終日如愚(종일여우)는 此聖賢忘內之樂也(차성현망내지락야)오 
不貴黃屋(불귀황옥)하고 不賤陋巷(불천누항)은 此聖賢忘外之樂也(차성현망외지락야)라 
然則聖賢之樂(연즉성현지락)은 不在內外(부재내외)니 當在何處(당재하처)오
古之詩人(고지시인)은 觀鳶魚(관연어)하고 而知道之費隱(이지도지비은)하고 
聖人(성인)은 觀川流(관천류)하야 而知道之不息(이지도지불식)이시니 
今之學者其可不盡心乎(금지학자기가불진심호)아
文王之詩(문왕지시)에 無聲無臭之天(무성무취지천)을 子思子亦引之(자사자역인지)하사 
以結中庸之義(이결중용지의)하시니 旴(우)라 卽吾渾然未發之中也(즉오혼연미발지중야)라 
此周茂叔所謂太極本無極也(차주무숙소위태극본무극야)니라.

마음은 성품과 정을 거느리는 것이니 
군자가 마음을 갖기를 항상 거울과 저울과 같이하면 천지와 함께 그 덕을 더하게 된다. 
석 달을 고기 맛을 잃고 날이 새도록 어리석은 사람 같이 행동한 것은 
성현들이 안을 잊어버린 낙이고 황옥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더러운 골목 거리를 천하게 여기지 않으니 이는 성현들의 밖을 잊어버린 낙이니, 
그러므로 성현의 낙은 안과 밖에 있지 않으니 어떤 곳에 있을까. 
옛날의 시인은 공 중에 나르는 솔개와 물에 노는 고기를 보고 도가 나타나고 숨음을 알고, 
성인은 냇물의 흐름을 보고 도의 쉬지 않음을 알았으니, 
지금의 학자들은 어찌 전심전력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왕의 시에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하늘이라 한 말을 자사가 인용하여 중용의 뜻을 맺었으니 슬픈 일이다. 
이 것이 내가 혼연히 말하지 않은 중용이다. 
이것이 주무숙이, 태극이 무극을 근본한 것이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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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가귀감(禪家龜鑑)

조선 중기의 고승 휴정(休靜)이 지은 책.

                                                                                                             
序 서


원문(득음): 古之學佛者(고지학불자) : 해설:예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이들은

非佛之言 不言(비불지언 불언) :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아니하고,
非佛之行 不行也(비불지행 불행야) : 부처님의 행실이 아니면 행하지 아니하였다. 
故 所寶者(고 소보자) : 그러므로 보배로 여기는 것은

惟貝葉靈文而已(유패엽영문이이) : 오직 불경의 거룩한 글뿐이었다. 
今之學佛者(금지학불자) : 그러나 오늘날 불교를 배우는 이들은

傳而誦則士大夫之句(전이송즉사대부지구) : 전해 가면서 외우는 것이 사대부의 글이요, 
乞而持則士大夫之詩(걸이지즉사대부지시) : 부탁하여 지니는 것이 사대부의 시뿐이었다. 
至於紅綠 色其紙(지어홍록 색기지) : 그것을 울긋불긋한 종이에 쓰고 
美錦 粧其軸(미금 장기축) : 고운 비단으로 꾸며서, 
多多不足(다다부족) : 아무리 많아도 족한 줄을 알지 못하고

以爲至寶 旴(이위지보 우) : 가장 큰 보배로 생각하니
何古今學佛者(하고금학불자) : 아! 예전과 오늘에 부처님 법을 배우는 이들의

之不同寶也(지부동보야) : 보배로 삼는 것이 어찌 이다지도 같지 않는가?

 

余雖不肖(여수불초) : 내가 비록 불초하나

有志於古之學(유지어고지학) : 옛 글에 뜻을 두어   
以貝葉靈文 爲寶也(이패엽영문 위보야) : 불경의 거룩한 글로써 보배를 삼으나 
然 其文 尙繁(연 기문 상번) : 그러나 그 글이 오히려 번잡하고

藏海汪洋(장해왕양) : 장경의 바다가 넓어서
後之同志者후지동지자 : 뒷날의 도반들이

頗不免摘葉之勞故파불면적엽지노고 : 가지를 헤쳐 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로움을 면치 못할까 하여 
文中 撮其要且切者문중 촬기요차절자 : 글 가운데 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것 

數百語 書于一紙수백어 서우일지 : 수백 마디를 간추려서 한 장에 쓰니
 可謂文簡而義周也 가위문간이의주야 : 참으로 글은 간략하나 뜻은 빈틈없다고 할 만하다. 
如以此語 以爲嚴師여이차어 이위엄사 : 만일 이 글로써 스승을 삼아 연구하고 
而硏窮得妙則句句이연궁득묘즉구구 : 깊이 생각하여 묘한 이치를 얻으면 

活釋迦存焉  활석가존언 : 한 글자 글자마다 석가 여래께서 살아서 나타나실 것이니
勉乎哉(면호재) : 부디 힘쓸지어다.

雖然 離文字一句(수연 이문자일구) : 그렇더라도 글자를 떠난 한 마디와
格外奇寶(격외기보) : 격에 벗어난 기묘한 보배를

非不用也(비불용야) : 쓰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지만 

且將以待別機也(차장이대별기야) : 장차 특별한 기틀을 기다리고자 한다.

 

嘉靖(가정) 甲子(갑자)(1564年) 夏(하)  淸虛堂(청허당) 白華道人(백화도인) 序(서)

 

 

 

선가귀감(家龜鑑)
  
序(서)
古之學佛者(고지학불자)는 非佛之言(비불지언)이면 不言(불신)하고 
非佛之行(비불지행)이면 不行也(불행야)라 
故(고)로 所寶者(소보자)가 惟貝葉靈文而已(유패엽영문이이)러니 
今之學佛者(금지학불자)는 傳而誦則士大夫之句(전이송즉사대부지구)요 
乞而持則士大夫之詩(걸이지즉사대부지시)라 
至於紅綠(지어홍록)으로 色其紙(색기지)하고 美錦(미금)으로 粧其軸(장기축) 하야
余雖不肖(여수불초)나 有志於古之學(유지어고지학)하야 以貝葉靈文(이패엽영문)으로 
爲寶也(위보야)나 然(연)이나 其文(기문)이 尙繁(상번)하고 藏海汪洋(장해왕양)하야 
後之同志者(후지동지자)가 頗不免摘葉之勞故(파불면적엽지노고)로
文中(문중)에 撮其要且切者數百語(촬기요차절자수백어)하야 
書于一紙(서우일지)하니 可謂文簡而義周也(가위문간이의주야)라 
如以此語(여이차어)로 以爲嚴師(이위엄사)하야 
而硏窮得妙則句句(이연궁득묘즉구구)에 活釋迦存焉(활석가존언)이시니 
勉乎哉(면호재)인저 雖然(수연)이나 
離文字一句(이문자일구)와 格外奇寶(격외기보)는 
非不用也(비불용야)나 且將以待別機也(차장이대별기야)하노라.

예전에 불교를 배우는 이들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아니하고, 
부처님의 행실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보배로 여기는 것은 오직 불경의 거룩한 글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를 배우는 이들은 전해 가면서 외는 것이 사대부의 글이요, 
빌어 지니는 것이 사대부의 시뿐이었다. 
그 것은 울긋불긋한 종이에 쓰고 고운 비단으로 꾸며서, 
아무리 많아도 족한 줄을 알지 못하고 가장 큰 보배로 생각하니 
아! 예와 오늘에 불교를 배우는 이들의 보배 삼는 것이 어찌 이 다지도 같지 않을까.
내가 비록 불초하나 옛 글에 뜻을 두어 불경의 거룩한 글 로써 보배를 삼으나 
그러나 그 글이 오히려 번다 하고 장경 의 바다가 넓어서 
뒷날의 도반들이 가지를 헤쳐 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로움을 면치 못할까 하여 
글 가운데 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것 수백 마디를 간추려서 한장에 쓰니 
참으로 글은 간략하나 뜻은 주밀 하다고 할만하다. 
만일 이 말로써 스승을 삼아 연찬하고 궁구하여 묘리를 얻으면 
자자 구구에 산 석가 여래가 나타나실 것이니 부디 힘쓸 지어다. 
그렇더라도 글자를 떠난 한 글귀와 격에 벗어난 
기묘한 보배를 쓰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지만 
또한 장차 특별한 기틀을 기다리고자 한다.


嘉靖(가정) 甲子(갑자)(1564) 夏(하)
淸虛堂(청허당) 白華道人(백화도인) 序(서)

1.
有一物於此(유일물어차)하니 從本以來(종본이래)로 昭昭靈靈(소소영령)하야 
不曾生不曾滅(부증생부증멸)이며 名不得狀不得(명부득상부득)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2.
佛祖出世(불조출세)가 無風起浪(무풍기량)이로다.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은 마치 바람도 없는데 물 결을 일으킨 것이다.

3.
然(연)이나 法有多義(법유다의)하고 人有多機(인유다기)하니 不妨施設(불방시설)이로다.

그러나 법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도 온갖 기틀 이 있으므로 여러 가지 방편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4.
强立種種名字(강립종종명자)하야 惑心惑佛惑衆生(혹심혹불혹중생)이라 하니 
不可守名而生解(불가수명이생해)하고 當體便是(당체편시)니 動念卽乖(동념즉괴)니라.

굳이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다, 부처다, 중생이라 하였으나 
이름에 얽매어 분별을 낼 것이 아니다. 다 그대로 옳다. 
그러나 한 생각이라도 움직이면 곧 어그러진다.

5.
世尊(세존)이 三處傳心者(삼처전심자)는 爲禪旨(위선지)요 
一代所說者(일대소설자)는 爲敎門(위교문)이라 
故(고)로 曰(왈) 禪是佛心(선시불심)이요 敎是佛語(교시불어)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6.
是故(시고)로 若人(약인)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실지어구즉염화미소)가 皆是敎迹(개시교적)이요
得之於心則世間序言細語(득지어심즉세간추언세어)가 皆是敎外別傳禪旨(개시교외별전선지)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방긋 웃는 것이 모두 교의 자취만 될 것이고,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밖에 따로 전한 선지가 될 것이다.

7.
吾有一言(오유일언)하니 絶慮忘緣(절려망연)하고 
兀然無事坐(올연무사좌)하니 春來草自靑(춘래초자청)이로다.

내가 한 마디 말을 할까 한다. 생각 끊고 반연을 쉬고 
일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봄이 오매 풀이 저절로 푸르구나.

8.
敎門(교문)은 惟傳一心法(유전일심법)하고 禪門(선문)은 惟傳見性法(유전견성법)하니라.

교문에는 오직 한 마음 법만을 전하고 선문에는 오직 견성 하는 법만을 전하였다.

9.
然(연)이나 諸佛說經(제불설경)은 先分別諸法(선분별제법)하고 
後說畢竟空(후설필경공)하되 祖師示句(조사시구)는 
迹絶於意地(적절어의지)하고 理顯於心源(이현어심원)이니라.

그러나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에는 먼저 모든 법을 가려 보이시고, 
나중에 공한 이치를 말씀하셨다. 
조사들의 가 르침은 자취가 생각에서 끊어지고 이치가 마음의 근원에 드러났다.

10.
諸佛(제불)은 說弓(설궁)하고 祖師(조사)는 說絃(설현)하시니 
佛說無碍之法(불설무애지법)은 方歸一味(방귀일미)라 
拂此一味之迹(불차일미지적)하야사 方現祖師所示一心(방현조사소시일심)이니
故(고)로 云庭前柏樹子話(운정전백수자화)는 龍藏所未有底(용장소미유저)라 하니라.

부처님은 활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같이 말씀하셨 다. 
부처님께서 걸림 없는 법을 설하신 것은 바로 한 맛에 들 아 감이다. 
이 한 맛의 자취마저 떨쳐 버려야 바야흐로 조사 가 보인 한 마음이 드러내게 된다. 
그러므로 {뜰 앞에 잣나무 이니라}고 한 화두는 용궁의 장경에도 없다고 말한 것이다.

11.
故(고)로 學者(학자)는 先以如實言敎(선이여실언교)로 
委辨不變隨緣二義(위변불변수연이의)가 是自心之性相(시자심지성상)이며 
頓悟漸修兩門(돈오점수양문)이 是自行之始終然後(시자행지시종연후)에 放下敎義(방하교의)하고 
但將自心現前一念(단장자심현전일념)하야 參詳禪旨則必有所得(참상선지즉필유소득)하리니 
所謂出身活路(소위출신활로)니라.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으로써 
변하 지 않는 것과 인연 따르는 두 가지 뜻이 곧 네 마음의 본 바 탕과 형상이고, 
단박 깨치고 오래 닦는 두 가지 문이 공부의 시작과 끝임을 자세히 가려 알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교의 뜻을 내버리고 오로지 그 마음이 두렷이 드러난 한 생각으로 써 참선한다면 
반드시 얻은 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뛰쳐나온 살길이다.

12.
大抵學者(대저학자)는 須參活句(수참활구)요 莫參死句(막참사구)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활구를 참구할 것이요, 사구를 참구하지 말아야 한다.

13.
凡本參公案上(범본참공안상)에 切心做工夫(절심주공부)하되 
如鷄抱卵(여계포란)하며 如猫捕鼠(여묘포서)하며 如飢思食(여기사식)하며 
如渴思水(여갈사수)하며 如兒憶母(여아억모)하면 必有透徹之期(필유투철지기)하라.

무릇 공안을 참구하되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기를 마치 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이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하고, 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사람 이 물을 생각하듯 하며, 어린애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꿰뚫어 사무칠 때가 있을 것이다.

14.
參禪(참선)엔 須具三要(수구삼요)니 
一(일)은 有大信根(유대신근)이요 二(이)는 有大憤志(유대분지)요 三(삼)은 有大疑情(유대의정)이라 
苟闕其一(구궐기일)하면 如折足之鼎(여절족지정)하야 終成廢器(종성폐기)하니라.

참선에는 반드시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큰 신심이고, 둘째는 큰 분심이며, 셋째는 큰 의심이다.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이 소용없는 물건이 되고 말 것이다.

15.
日用應緣處(일용응연처)에 只擧狗子無佛性話(지거구자무불성화)하되 
擧來擧去(거래거거)하며 疑來疑去(의래의거)에 
覺得沒理路 沒義路 沒滋味(각득몰리로 몰의로 몰자미)하야 
心頭熱悶時(심두열민시)가 便是當人放身命處(편시당인방신명처)며 
亦是成佛作祖底基本也(역시성불작조저기본야)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도 
오직 {어찌하여 개한 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라고 한 화두를 끊임없이 들어, 
이 치의 길 끊어지고 뜻 길이 사라져 아무 맛도 없어지고 
마음 이 답답할 때가 바로 그 사람의 몸과 목숨을 내던질 곳이며, 
또한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대목이다.

16.
話頭(화두)를 不得擧起處(부득거기처)에 承當(승당)하며 不得思量卜度(부득사량복탁)하며
又不得將迷待悟(우부득장미대오)하며 就不可思量處(취불가사량처)하야 思量(사량)하면 
心無所之(심무소지)함이 如老鼠入牛角(여노서입우각)하야 便見倒斷也(편견도단야)하리라
又尋常(우심상)에 計較安排底(계교안배저)도 是識情(시식정)이며 
隨生死遷流底(수생사천류저)도 是識情(시식정)이며 
怕怖慞惶底(파포장항저)도 是識情(시식정)이어늘 
今人(금인)이 不知是病(부지시병)하고 只管在裡許(지관재리허)하야 頭出頭沒(두출두몰)하나니라.

화두를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아맞히려 하지도 말고, 생 각으로 헤아리지도 말라. 
또한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고 더 생각할 수 없는 데까지 나아가 생각하면 
마음이 더 갈 곳이 없어 마치 늙은 쥐가 쇠뿔 속으로 들어가다가 잡히듯 할 것 이다. 
또 평소이런가 저런가 따지고 맞춰 보는 것이 식정이 며, 생사를 따라 굴러다니는 것이 식정이며, 
무서워하고 갈팡 질팡하는 것도 또한 식정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 병통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서 빠졌다 솟았다 할뿐이다.

17.
此事(차사)는 如蚊子(여문자)가 上鐵牛(상철우)하야 更不問如何若何(갱불문여하약하)하고
下嘴不得處(하취부득처)에 棄命一(기명일) 하면 和身透入(화신투입)이니라.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과 같아서, 
함부로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떼어놓고 한 번 뚫어 보면 몸뚱이 째 들어갈 것이다.

18.
工夫(공부)는 如調絃之法(여조현지법)하야 緊緩(긴완)에 得其中(득기중)이니 
勤則近執着(근즉근집착)하고 忘則落無明(망즉낭무명)하리니 
惺惺歷歷(성성역력)하고 密密綿綿(밀밀면면)이니라.

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르듯 팽팽하고 늦음이 알맞아야 한 다. 
너무 애쓰면 집착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 
성성하고 역력하게 하면서도 차근차근 끊임없이 해야 한다.

19.
工夫(공부)가 到行不知行(도행부지행)하며 坐不知坐(좌부지좌)하면 當此之時(당차지시)하야
八萬四千魔軍(팔만사천마군)이 在六根門頭伺候(재육근문두사후)라가 隨心生起(수심생기)하나니 
心若不起(심약불기)하면 爭如之何(쟁여지하)리요.

공부가 걸어가면서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모르 게 되면, 
이 때 팔만 사천의 마군이가 육근 문 앞에 지키고 있다가 마음을 따라 온갖 생각이 들고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 있으랴.

20.
起心(기심)은 是天魔(시천마)요 不起心(불기심)은 是陰魔(시음마)요 
或起或不起(혹기불혹기)는 是煩惱魔(시번뇌마)니 
然(연)이나 我正法中(아정법중)엔 本無如是事(본무여시사)니라.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요 일어나지 않는 마음은 음마요, 
혹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도 않기도 하는 것은 번뇌마이다. 
그러나 우리 바른 법 가운데에는 본래 그런 일이 없다.

21.
工夫(공부)가 若打成一片則縱今生(약타성일편즉종금생)에 
透不得(투부득)이라도 眼光落地之時(안광낙지지시)에 不爲惡業所牽(불위악업소견)이니라.

공부가 한 고비를 넘긴다면 비록 금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눈감을 때에 악업에 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22.
大抵參禪者(대저참선자)는 還知四恩(환지사은)이 深厚麽(심후마)아 
還知四大醜身(환지사대추신)이 念念衰朽麽(념념쇠후마)아 
還知人命(환지인명)이 在呼吸麽(재호흡마)아 生來値遇佛祖麽(생래치우불조마)아
及聞無上法(급문무상법)하고 生希有心麽(생희유심마)아 不離僧堂(불리승당)하여 守節麽(수절마)아
不與隣單(불여인단)으로 雜話麽(잡화마)아 切忌鼓扇是非麽(절기고선시비마)아 
話頭(화두)가 十二時中(십이시중)에 明明不昧麽(명명불매마)아 對人接話時(대인접화시)에 無間斷麽(무간단마)아
見聞覺知時(견문각지시)에 打成一片麽(타성일편만)아 返觀自己(반관자기)하야 捉敗佛祖麽(착패불조마)아
今生(금생)에 決定續佛慧命麽(결정속불혜명마)아 
起坐便宜時(기좌편의시)에 還思地獄苦麽(환사지옥고마)아 
此一報身(차일보신)이 定脫輪廻麽(정탈윤회마)아 
當八風境(당팔풍경)하야 心不動麽(심부동마)아 
此是參禪人(차시참선인)의 日用中點檢底道理(일용중점검저도리)니 
古人云(고인운) 此身不向今生度(차신불향금생도)하면 更待何生度此身(갱대하생도차신)이리요 하니라.

대저 참선하는 이는 이렇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네 가지 요소로 구성 된 더러운 몸이 순간 순간 썩어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가? 
사람의 목숨이 숨 한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가? 
일찍 이 부처님이나 조사 같은 이를 만나고서도 그대로 그대로 지 나쳐 버리지 않았는가? 
높고 거룩한 법을 듣고서도 기쁘고 다행한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공부하는 곳 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 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곁에 있 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며 지내지 않는가? 
분주하 게 시비나 일삼고 있지 않는가? 화두가 어느 때나 또렷또렷 하게 매하지 않는가?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는가? 
보고 듣고 알아차릴 때에도 한결같은가? 
제 공부를 돌아볼 때 부처와 조사를 붙잡을 만한가? 
금생에 꼭 부처님의 지혜를 이룰 수 있을까? 
앉고 눕고 편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이것이 참선하는 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검해야 할 도리이다. 
옛 어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내 몸을 이생에 못 건지면 어느 생을 기다려서 제도하 리요}

23.
學語之輩(학어지배)는 說時似悟(설시사오)나 對境還迷(대경환미)하나니 
所謂言行(소위언행)이 相違者也(상위자야)라.

말을 배우는 무리들은 말할 때에는 깨친 듯하다가도 실지 경계에 당하게 되면 그만 아득하게 된다. 
이른바 말과 행동이 서로 틀리는 것이다.

24.
若欲敵生死(약욕적생사)인댄 須得這一念子(수득자일념자)를 爆地一破(폭지일파)하야사 方了得生死(방료득생사)하리라.

만약 생사를 막아내려면 이 한 생각을 탁 깨뜨려야 비로소 생사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25.
然(연)이나 一念子(일념자)를 爆地一破然後(폭지일파연후)에도 須訪明師(수방명사)하야 決擇正眼(결택정안)이니라.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라도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 가 눈알이 바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26.
古德(고덕)이 云(운) 只貴子眼正(지귀자안정)이요 不貴汝行履處(불귀여행리처)라 하니라.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다만 자네의 눈 바른 것을 귀하게 여길 뿐이지 자네의 행실을 보려고 하지 않네}라고 하였다.

27.
願諸道者(원제도자)는 深信自心(심신자심)하야 不自屈不自高(부자굴부자고)니라.

바라건대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을 깊이 믿어, 스 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아야 한다.

28.
迷心修道(미심수도)하면 但助無明(단조무명)이니라.

마음을 모르고 도를 닦는다는 것은 오직 무명만을 도와줄 뿐이다.

29.
修行之要(수행지요)는 但盡凡情(단진범정)이요 別無聖解(별무성해)니라.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을 떨어지게 할뿐이지 따 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다.

30.
不用捨衆生心(불용사중생심)이요 但莫染汚自性(단막염오자성)하라 求正法(구정법)이 是邪(시사)니라.

중생의 마음을 버릴 것 없이, 다만 자성을 더럽히지 말라. 바른 법을 찾는 것이 곧바르지 못한 사도니라.

31.
斷煩惱(단번뇌)가 名二乘(명이승)이요 煩惱不生(번뇌불성)이 名大涅槃(명대열반)이니라.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이요,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큰 열반이다.

32.
須虛懷自照(수허회자조)하야 信一念緣起無生(신일념연기무생)이어다.

모름지기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비춰 보아, 한 생각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이 사실은 일어남이 없음을 믿어야 한다.

33.
諦觀殺盜淫妄(체관살도음망)이 從一心上起(종일심상기)하면 當處便寂(당처벽적)이니 何須更斷(하수갱단)이리요.

죽이고 도둑질하고 음난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다 한 마음 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 일어나는 곳이 곧 비어 없는데 무엇을 다시 끊으리요.

34.
知幻卽離(지환즉리)라 不作方便(부작방편)이며 離幻卽覺(이환즉각)이라 亦無漸次(역무점차)니라.

환상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상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다.

35.
衆生(중생)이 於無生中(어무생중)에 妄見生死涅槃(망견생사열반)이 如見空花起滅(여견공화기멸)이니라

중생이 나는것 없는 가운데서 망녕되게 생사와 열반을 보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 꽃이 기멸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36.
菩薩(보살)이 度衆生入滅度(도중생입멸도)나 又實無衆生(우실무중생)이 得滅度(득멸도)니라.

보살이 중생을 건져 열반을 들게 했다 할지라도 실은 열반을 얻은 중생이 없는 것이다.

37.
理雖頓悟(이수돈오)나 事非頓除(사비돈제)라.

이치를 단박에 깨칠 수 있으나, 버릇은 한꺼번에 가시어지 지 않는다.

38.
帶婬修禪(대음수선)은 如蒸沙作飯(여증사작반)이요 
帶殺修禪(대살수선)은 如塞耳叫聲(여색이규성)이요 
帶偸修禪(대투수선)은 如漏巵求滿(여루치구만)이요 
帶妄修禪(대망수선)은 如刻糞爲香(여각분위향)이니 
縱有多智(종유다지)라도 皆成魔道(개성마도)니라.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으며,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가득 차 기를 바라는 것 같고, 
거짓말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 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은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 라도 다 악마의 길을 이룰 뿐이다.

39.
無德之人(무덕지인)은 不依佛戒(불의불계)하며 不護三業(불호삼업)하며 
放逸懶怠(방일나태)하야 輕慢他人하며 較量是非로 而爲根本하니라.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에 의지하지 않고, 삼업을 지키지 않는다. 
함부로 놀아 게을리 지내며, 남을 깔보아 따 지고 시비하는 것을 일삼고 있다.

40.
若不持戒(약불지계)면 尙不得疥癩野干之身(상부득개나야간지신)이온대
況淸淨菩提果(항청정보리과)를 可冀乎(가기호)아.

만약 계행이 없으면 비루먹은 여우의 몸도 받지 못한다는 데, 
하물며 청정한 지혜의 열매를 바랄 수 있겠는가?

41. 
欲脫生死(욕탈생사)인댄 先斷貪欲(선단탐욕)과 及除愛渴(급제애갈)이어다.

생사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을 끊고 애욕의 불꽃을 꺼 버려야 한다.

42.
無碍淸淨慧(무애청정혜)가 皆因禪定生(개인선정생)이니라.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는 다 선정에서 나온다.

43.
心(심)이 在定則能知世間生滅諸相(재정즉능지세간생멸제상)하니라.

마음이 정에 들면 세간의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모든 일을 다 밝게 알 수 있다.

44.
見境心不起(견경심불기)가 名不生(명불생)이요 
不生(불생)이 名無念(명무념)이요 無念(무념)이 名解脫(명해탈)이니라.

어떤 경계를 당하여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나지 않 음이라 하고, 
나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하며 무념의 상태를 해탈이라 한다.

45.
修道證滅(수도증멸)이 是亦非眞也(시역비진야)요 
心法本寂(심법본적)이 乃眞滅也(내진멸야)라
故(고)로 曰(왈) 諸法從本來(제법종본래)로 常自寂滅相(상자적멸상)이라 하니라.

도를 닦아 열반을 얻는다면 이것은 또한 진리가 아니다. 
심 법이 본래 고요한 것임을 알아야 그것이 참 열반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본래부터 늘 그대로 열반이다}라고 하 신 것이다.

46.
貧人(빈인)이 求乞(구걸)이어든 隨分施與(수분시여)하라
同體大悲(동체대비)가 是眞布施(시진보시)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수대로 나누어 주라. 
한 몸 처럼 가엾이 여기면 이것이 참 보시니라.

47.
有人(유인)이 來害(내해)어든 當自攝心(당자섭심)하야 勿生瞋恨(물생진한)하라 
一念瞋心起(일념진심기)하면 百萬障門開(백만장문개)니라.

누가 와서 나를 해롭게 하더라도 마음을 거두어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한 생각 성내는 데에 백만 가지 장애 의 문이 열린다.

48.
若無忍行(약무인행)하면 萬行不成(만행불성)이니라.

만약 참는 일이 없다면 보살의 육도만행도 이루어질 수 없다.

49.
守本眞心(수본진심)이 第一精進(제일정진)이니라.

본바탕 천진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첫째가는 정진이다.

50.
持呪者(지주자)는 現業(현업)은 易制(이제)라 
自行可違(자행가위)어니와 宿業(숙업)은 難除(난제)라 必借神力(필차신력)이니라.

진언을 외우는 것은 금생에 지은 업은 비교적 다스리기 쉬 워서 
자기 힘으로도 고칠 수가 있지만 전생에 지은 업은 지워 버리기가 어려우므로 반드시 신비한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이다.

51.
禮拜者(예배자)는 敬也(경야)요 伏也(복야)니 恭敬眞性(공경진성)하고 屈伏無明(굴복무명)이니라.

예배란 공경이요 굴복이다.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52.
念佛者(염불자)는 在口曰誦(재구왈송)이요 在心曰念(재심왈념)이니 
徒誦失念(도송실념)하면 於道無益(어도무익)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면 염불이다.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 무 도움도 없다.

53.
聽經(청경)은 有經耳之緣(유경이지연)과 隨喜之福(수희지복)하며 
幻軀(환구)는 有盡(유진)이나 實行(실망)은 不亡(불망)이니라.

경을 들으면 귀를 거치는 인연도 있게 되고, 기쁨이 따른 복도 짓게 된다. 
물거품 같은 이 몸은 다할 날이 있으나 참다 운 행은 헛되지 않는다.

54.
看經(간경)은 若不向自己上做工夫(약불향자기상주공부)하면 
雖看盡萬藏(수간진만장)이라도 猶無益也(유무익야)니라.

경을 보되 자기 마음속을 돌이켜봄이 없다면 
비록 팔만대 장경을 다 보았다 하더라도 아무런 보탬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55.
學未至於道(학미지어도)하고 衒耀見聞(현요견문)하야 
徒以口舌辯利(도이구설변리)로 相勝者(상승자)인댄 如厠屋塗丹鑊(여칙옥도단확) 이니라.

배워 도를 이루기 전에 남에게 자랑하려고 
한갓 말재주만 부려 서로 이기려고 한다면 마치 변소에 단청하는 것과 같다.

56.
出家人(출가인)이 習外典(습외전)하면 
如以刀割泥(여이도할니)하야 泥無所用(니무소용)이요 而刀自傷焉(이도자상언)이니라.

출가한 사람이 외전을 공부하는 것은 
마치 칼로 흙을 베는 것과 같아서 흙은 아무 소용도 없는데 칼만 망가지게 된다.

57.
出家爲僧(출가위승)이 豈細事乎(기세사호)아 
非求安逸也(비구안일야)며 非求溫飽也(비구온포야)며 非求名利也(비구이명야)라 
爲生死也(위생사야)며 爲斷煩惱也(위단번뇌야)며 
爲續佛慧命也(위속불혜명야)며 爲出三界度衆生也(위출삼계도중생야)니라.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몸의 편안함 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 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 을 면하려는 것이며,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 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 이다.

58.
佛云(불운), 無常之火(무상지화)가 燒諸世間(소제세간)이라 하고 
又云(우운), 衆生苦火(중생고화)가 四面俱焚(사면구분)이라 하며 
又云(우운) 諸煩惱賊(제번뇌적)이 常伺殺人(상사살인)이라 하니라 
道人(도인)은 宜自警悟(의자경오)하야 如救頭燃(여구두연)하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덧없는 불꽃이 온 세상을 태운 다} 하셨고, 
또 {중생들의 고뇌의 불이 사방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 하셨으며, 
또 {모든 번뇌의 적이 항상 너희들을 죽이려 고 엿보고 있다} 하셨다. 
그러므로 수도인은 마땅히 스스로 깨우쳐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해야 한다.

59.
貪世浮名(탐세부명)은 枉功勞形(왕공노형)이요 
營求世利(영구세리)는 業火加薪(업화가신)이니라

세상의 뜬 이름을 탐하는 것은 쓸데없이 몸만 괴롭게 하는 것이요, 
세상의 잇속을 따라 허덕이는 것은 업의 불에 섶을 더 보태는 것이다.

60.
名利衲子(명리납자)는 不如草衣野人(불여초의야인)이니라.

이름과 재물을 따르는 납자는 초의를 걸친 야인만도 못하다.

61.
佛云(불운)하사대 
云何賊人(운하적인)이 假我衣服(가아의복)하고 稗販如來(패판여래)하야 造種種業(조종종업)고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도둑들이 나의 옷을 빌 려 입고, 부처를 팔아 온갖 나쁜 업을 짓고 있느냐}고 하셨다.

62.
於戱(오희)라 佛子(불자)여 
一衣一食(일의일식)이 莫非農夫之血(막비농부지혈)이요 
織女之苦(직녀지고)어늘 道眼(도안)이 未明(미명)하면 如何消得(여하소득)이리요.

아! 불자여. 
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들의 피요, 
직녀들의 땀이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삭여 낼 것인가.

63.
故(고)로 曰(왈) 
要識披毛戴角底麽(요식피모대각저마)아 卽今虛受信施者是(즉금허수신시자시)니라
有人(유인)은 未飢而食(미기이식)하고 未寒而衣(미한이의)하니 是誠何心哉(시성하심재아
都不思目前之樂(도불사목전지락)이 便是身後之苦也(변시신후지고야)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이 무엇 인 줄 아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주는 것을 공부하지 않 으면서 거저 받아먹는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또 먹고, 춥지 않아도 더 입으 니 이 무슨 심사일까? 
도대체 눈앞의 쾌락의 바로 후생이 괴 로움인 줄을 생각지 않는구나.

64.
故(고)로 曰(왈) 
寧以熱鐵(영이열철)로 纏身(전신)이언정 
不受信心人衣(불수신심인의)하며 寧以洋銅灌口(영이양동관구)언정 
不受信心人食(불수신심인식)하며 寧以鐵鑊投身(영이철확투신)이언정 
不受信心人房舍等(불수신심인방사등)이라 하니라.

그러므로 이르기를 
{차라리 뜨거운 철판을 몸에 두를지언 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옷을 입지 말며, 
차라리 쇳물을 마실 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음식을 억지 말고, 
차라리 끊는 가마솥에 뛰어들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집에 거처하지 말라}한 것이다.

65.
故(고)로 曰(왈) 
道人(도인)은 進食(진식)을 如進毒(여진독)하고 
受施(수시)를 如受箭(여수전)이니 幣厚言甘(폐후언감)은 道人所畏(도인소외)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에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하라}고 한 것이다.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 를 닦는 사람으로서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66.
故(고)로 曰(왈) 
修道之人(수도지인)은 如一塊磨刀之石(여일괴마도지석)하야 
張三也來磨(장삼야래마)하고 李四也來磨(이사야래마)하야 
磨來磨去(마래마거)에 別人刀(별인도)는 快(쾌)하되
而自家石(이자가석)은 漸消(점소)라 
然(연)이나 有人(유인)은 更嫌他人(갱혐타인)이 
不來我石上磨(불래아석상마)하나니 實爲可惜(실위가석)이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도를 닦는 사람은 한 개의 숫돌과 같아서 장 서방이 와서 갈고, 
이 서방이 와서 갈아 가면 남의 칼 은 잘 들겠지만 
나의 돌은 점점 닳아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도리어 남이 와서 돌에 칼을 갈지 않는 것을 걱정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67.
故(고)로 古語(고어)에 
亦有之(역유지)하니 曰(왈) 三途苦(삼도고)가 未是苦(미시고)라
袈裟下失人身(가사하실인신)이 始是苦也(시시고야)라 하니라.

그러므로 옛말에 또한 이르기를 
{삼악도의 고통이 고통이 아니라, 가사를 입었다가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 참말 고통이다}라고 하였다.

68.
咄哉(돌재)라 此身(차신)이여 
九孔常流(구공상류)하고 百千癰疽(백천옹저)에 一片薄皮(일편박피)로다
又云(우운) 革囊盛糞(혁낭성분)하야 膿血之聚(농형지취)가 臭穢可鄙(취예가비)라
無貪惜之(무탐석지)는 何況百年將養(하황백년장양)이나 一息背恩(일식배은)이니라.

우습다, 이 몸이여.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고, 
백천 가지 부스럼 덩어리를 한 조각 엷은 가죽으로 싸 놓았구나. 
또 가죽 주머니에는 똥이 가득 담기고, 피고름 뭉치라. 
냄새나고 더러워 조금도 탐나거나 아까울 것이 없다. 
더구나 백년을 잘 기른다 해도 숨 한 번에 은혜를 저버리고 마는 것이랴.

69.
有罪卽懺悔(유죄즉참회)하고 發業卽慚愧(발업즉참괴)하면 有丈夫氣象(유장부기상)이요
又改過自新(우개과자신)하면 罪隨心滅(죄수심멸)이니라.

허물이 있거든 곧 참회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곧 부끄러워 할 줄 알면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다.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질 것이다.

70.
道人(도인)은 宜應端心(의응단심)하야 以質直爲本(이질직위본)하야
一瓢一衲(일표일납)으로 旅泊無累(여박무루)니라.

도인은 마땅히 마음을 단정히 하여 검박하고 곧은 마음으로써 근본을 삼아야 한다. 
한 개의 표주박과 한 벌의 누더기 옷이면 어디를 가나 걸릴 것이 없다.

71.
凡夫(범부)는 取境(취경)하고 道人(도인)은 取心(취심)이니 
心境(심경)을 兩忘(양망)하야사 乃是眞法(내시진법)이니라.

범부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따르고, 수도인은 마음만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마음과 바깥 현실 두 가지를 다 잊는다면 이것이 바로 참다운 법이다.

72.
聲聞(성문)은 宴坐林中(연좌임중)이나 被魔王捉(피마왕착)하고
菩薩(보살)은 遊戱世間(유희세간)이나 外魔不覓(외마불역)이니라.

성문은 숲 속에 편히 앉아서도 마왕에 붙잡히고, 
보살은 세간에 노닐어도 외도와 마군이 보지 못한다.

73.
凡人(범인)이 臨命終時(임명종시)에 但觀五蘊皆空(단관오온개공)하야 四大無我(사대무아)요
眞心無相(진심무상)하여 不去不來(불거불래)니 生時(생시)에도 性亦不生(성역불생)하고
死時(사시)에 性亦不去(성역불거)라 湛然圓寂(담연원적)하고 心境(심경)이 一如(일여)라
但能如是直下頓了(단능여시직하돈료)하면 不爲三世所拘繫(불위삼세소구계)니 
便是出世自由人也(변시출세자유인야)라
若見諸佛(약견제불)이 無心隨去(무심수거)하며 若見地獄(약견지옥)이라도
無心怖畏(무심포외)니 但自無心(단자무신)하면 同於法界(동어법계)니 此卽是要節也(차즉시요절야)라
然則平常(연즉평상)은 是因(시인)이요 臨終(임종)은 是果(시과)니 道人(도인)은 須着眼看(수착안간)하라.

누구든지 임종할 때에는 다만 오온이 다 빈 것이어서 네가지 원소가 나라고 할 것이 없고, 
참마음은 모양이 없어 가는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다. 
날 때에도 성품은 또한 난바가 없고, 죽을 때에도 성품은 또한 가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맑고 고요하여 마음과 경계가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이 단박 깨친다면 삼세 인과에 이끌리거나 얽매이지 않게 될 것이니 
이것이 곧 세상을 뛰어난 자유인이다. 
만약 부처님을 만나더라도 따라 갈 마음이 없고, 지옥에 가더라도 두려운 마음이 없어야 한다. 
다만 스스로 무심하게 되면 법계와 같이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요긴한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좋은 씨를 심고 임종하 ㄹ때에 좋은 열매를 거둘 것이다. 
도를 닦는 사람은 모름지기 이곳에 주의하여야 한다.

74.
凡人(범인)이 臨終命時(임종명시)에 若一毫毛(약일호모)라도 
凡聖情量(섬성정량)이 不盡(부진)하고 思慮(사려)를 未忘(미망)하면 
向驢胎馬腹裡(향려태마복리)하야 托質(탁질)하며
泥犁鑊湯中(나리확탕중)에 煮煠(자잡)하며 乃至依前再爲螻蟻蚊虻(내지의전재위루의문맹)이니라.

사람이 임종할 때에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성이이다 범부다 하는 생각이 끊어지지 않게 되면 
나귀나 말의 뱃속에 끌려들거나 지옥의 끊는 가마 속에 처박히게 되며, 
혹은 개미나 모기 같은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75.
禪學者(선학자)가 本地風光(본지풍광)을 若未發明則孤峭玄關(약미발명즉고초현관)을 擬從何透(의종하투)리요
往往斷滅空(왕왕단멸공)으로 以爲禪(이위선)하며 無記空(무기공)으로 以爲道(이위도) 하며
一切俱無(일체구무)로 以爲高見(이위고견)하나니 
此(차)는 冥然頑空(명연완공)이니 受病幽矣(수병유의)니라 
今天下之言禪者(금천하지언선자)가 多坐在此病(다좌재차병)이니라.

참선하는 사람이 본래 면목을 만약 밝히지 못한다면 높고 아득한 진리의 문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 
왕왕 어떤 이는 아주 끊어 없어진 빈 것으로써 참선을 삼기도 하고,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이 빈 것으로써 도를 삼기도 하며 일체 모두 없는 것으로써 
높은 소견을 삼기도 하나니 이것은 컴컴하게 비기만 한 것이라 병든 바가 깊다. 
지금 천하에 참선을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이런 병에 걸려 있다.

76.
宗師(종사)도 亦有多病(역유다병)하니 
病在耳目者(병재이목자)는 以瞠眉努目(이당미노목)과 側耳點頭(측이점두)로 爲禪(위선)하며 
病在口舌者(병재구설자)는 以顚言倒語(이전언도어)와 胡喝亂喝(호할난할)로 爲禪(위선)하며 
病在手足者(병재수족자)는 以進前後退(이진전후퇴)와 指東畵西(지동화서)로 爲禪(위선)하며 
病在心腹者(병재심복자)는 以窮玄究妙(이궁현구묘))와 超情離見(초정이견)으로 爲禪(위선)하니니 
據實而論(거실이론)컨대 無非是病(무비시병)이니라

종사도 또한 병이 많다. 
병이 귀와 눈에 있는 자는 눈을 부릅뜨고, 귀를 기울이며,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선을 삼고, 
병이 입과 혀에 있는 자는 횡설수설되지 않는 말과 함부로 {할}하는 것으로써 선을 삼는다. 
병이 손발에 잇는 자는 나아갔다 물러갔다 이쪽저쪽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선을 삼으며, 
병이 마음 가운데 있는 자는 진리를 찾아내고 오묘한 것으로써 선을 삼는다. 
사실대로 말하면 어느 것이고 병 아닌 것이 없다.

77.
本分宗師(본분종사)의 全提此句(전제차구)는 如木人唱拍(여목인창박)하며 紅爐點雪(홍로점설)이요
亦如石火電光(역여석화전광)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학자실불가의의야)니라
故(고)로 古人(고인)이 知師恩曰(지사은왈) 
不重先師道德(부중선사도덕)이 只重先師不爲我說破(지중선사불위아설파)라 하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임은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여, 배우는 자가 참으로 생각하고 의논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하기를 
{스님의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는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78.
大抵學者(대저학자)는 先須祥辨宗途(선수상변종도)니 
昔(석)에 馬祖一喝也(마조일할야)에 百丈(백장)은 耳聾(이롱)하고 黃壁(황벽)은 吐舌(토설)하고 
這一喝(자일할)은 便是拈花消息(변시염화소식)이며 亦是達摩初來底面目(역시달마초래저면목)이라 
吁(우)라 此臨濟宗之淵源(차임제종지연원)이니라.

대저 배우는 사람은 먼저 종파의 갈래부터 자세히 가리어 알아야 한다. 
옛날에 마조스님이 한 번 {할} 하는데, 백장스님은 귀가 먹고, 황벽스님은 혀가 빠졌다. 
이 한 {할}이야말로 곧 부처님께서 꽃을 드신 소식이며, 또한 달마대사의 처음 오신 면목이다. 
아! 이것이 임제종의 근원이 된 것이다.

79.
大凡祖師宗途(대범주사종)가 有五(유오)하니 
曰臨濟宗 曰曺洞宗 曰雲門宗 曰僞仰宗 曰法眼宗(왈임제종 왈조동종 왈운문종 왈위앙종 왈법안종)이니라.
臨濟宗(임제종)은 本師釋迦佛(본사석가불)로 至三十三世六祖慧能大師下直傳(지삼십삼세육조혜능대사하직전)하니
曰南嶽懷讓 曰馬祖道一 曰百丈懷海 曰黃檗希運 (왈남악회양 왈마조도일 왈백장회해 왈황벽희운)
曰臨濟義玄 曰興化存奬 曰南院道顒 曰風穴延沼 (왈임제의현 왈흥화존장 왈남원도옹 왈풍혈연소)
曰首山省念 曰汾陽善昭 曰慈明楚圓 曰楊岐方會 (왈수산성념 왈분양선소 왈자명초원 왈양기방회)
曰白雲守端 曰五祖法演 曰圓悟克勤 曰俓山宗杲禪師等(왈백운수단 왈오조법연 왈원오극근 왈경산종고선사등)이니라.


무릇 조사의 종파에 다섯 갈래가 있다. 
즉 임제종, 조동종, 운문종, 위앙종, 법앙종 등이다.
임제종은 본사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33대 되는 육조 혜능대사의 밑에서 곧게 전하여 내려가기를 
남악회양, 마조도일, 백장회해, 황벽희운, 
임제의현, 황화존장, 남원도옹, 풍혈연소, 
수산성념, 분양선소, 자명초원, 양기방회, 
백운수단, 오조법연 원오극근, 경산종고 선사 등이다.

80.
曹洞宗(조동종)은 六祖下傍傳(육조하방전)이니 
曰靑原行思 曰石頭希遷(왈청원행사 왈석두희천) 曰藥山惟儼 曰雲巖曇晟(왈약산유엄 왈운암담성)
曰洞山良价 曰曹山耽章 曰雲居道膺禪師等(왈동산양개 왈조산탐장 왈운거도응선사)이니라.

조동종은 육조의 아래에서 곁 갈래의 
청원행사, 석두희천, 약산유엄, 운암당성, 
동산양개, 조산탐장, 운거도웅 선사 등이다.

81.
雲門宗(운문종)은 馬祖傍傳(마조방전)이니 
曰天皇道悟 曰龍潭崇信 曰德山宣鑑 曰雪峰義存(왈천황도오 왈용담숭신 왈덕산선감 왈설봉의존)
曰雲門文偃 曰雪竇重顯 曰天衣義懷禪師等(왈운문문언 왈설두중현 왈천의의회선사등)이니라.

운문종은 마조의 곁 갈래로 
천황도오, 용담숭산, 덕산선감, 설봉의존, 
운문문언, 설두중현, 천의의회 선사 등이다.


82.
僞仰宗(위앙종)은 百丈傍傳(백장방전)이니 
曰僞山靈祐 曰仰山慧寂 曰香嚴智閑 曰南塔光湧(왈위산영우 왈앙산혜적 왈향엄지한 왈남탑광용)
曰芭蕉慧淸 曰霍山景通 曰無着文喜禪師等(왈파초혜청 왈곽산경통 왈무착문휘선사)이니라.

위앙종은 백장의 곁 갈래로 
위산영우, 앙산혜적, 향엄지한, 남탑광용, 
파초혜청, 곽산경통, 무착문희 선사 등이다.

83.
法眼宗(법안종)은 雪峰傍傳(설봉방전)이니 
曰玄沙師備 曰地藏桂琛 曰法眼文益 曰天台德韶(왈현사사비 왈지장계침 왈법안문익 왈천태덕소)
曰永明延壽 曰龍濟紹修 曰南臺守安禪師等(왈영명연수 왈용제소수 왈남대수안선사등)이니라.

법안종은 설봉의 곁 갈래로 
현사사비, 지장계침, 법안문익, 천태덕소, 
영명연수, 용제소수, 남대수안 선사 등이다.

84.
臨濟家風(임제가풍)은 赤手單刀(적수단도)로 
殺佛殺祖(살불살조)하며 辨古今於玄要(변고금어현요)하고 驗龍蛇於主賓(험용사어주빈)이라
操金剛寶劍(조금강보검)하여 掃除竹木精靈(소제죽목정령)하며 
奮獅子全威(분사자전위)하여 震裂狐狸心膽(진열호리심담)이로다
要識臨濟宗麽(요식임제종마)아 靑天轟霹靂(청천굉벽력)이요 平地起波濤(평지기파도)로다.

임제 가풍은 맨손에 한 자루의 칼을 들고 부처도 조사도 죽이고, 
예와 이제를 삼현 삼요로써 판단하며, 용과 뱀을 주인과 손으로 징험한다. 
금강이 보검으로 도깨비를 쓸어 내고 사자의 위험을 떨쳐 여우와 삵쾡이의 넋을 찢다. 
임제의 종지를 알겠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치고 평지에 물결 인다.

85.
曹洞家風(조동가풍)은 權開五位(권개오위)하여 善接三根(선접삼근)하며 橫抽寶劍(횡추보검)하며
斬諸見稠林(참제견조림)하며 妙協弘通(묘협홍통)하여 截萬機穿鑿(절만기천착)이로다
威音那畔(위음나반)에 滿目煙光(만목연광)이요 空劫已前(공겁이전)에 一壺風月(일호풍월)이로다
要識曹洞宗麽(요식조동종마)아 佛祖未生空劫外(불조미생공겁외)에 正偏不落有無機(정편불락유무기)로다

조동 가풍은 권도로 오위를 열어 세 가지 근기를 잘 다루며, 
보검을 빼어 들고 모든 사건이 자라는 빽빽한 숲을 베어내며 
널리 통하는 길을 묘하게 맞추어서 천만가지 모든 생각을 끊고 천착하여 가도다. 
위음왕불 나시기 전 눈에 가득찬 풍광이요,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 신선 세계 경치로다. 
조동종을 알겠는가? 부처님과 조사도 안 나시고 아무 것도 없는 그대로, 
바른 것, 치우친 것, 있는 것이나 없는 것에 떨어지지 않는다.

86.
雲門家風(운문가풍)은 劍峰有路(검봉유로)하고 鐵壁無門(철벽무문)이라
掀翻露布葛藤(흔번노포갈등)하고 剪却常情見解(전각상정견해)니라
迅電(신전)은 不及思量(불급사량)하고 烈焰(열염)에 寧容湊泊(영용주박)이리요
要識雲門宗麽(요식운문종마)아 拄杖子勃跳上天(주장자발도상천)하고 
盞子裡(잔자리)에 諸佛(제불)이 說法(설법)이로다.

운문 가풍은 칼날에 길이 있고, 철벽에는 문이 없다. 
온 천하의 갈등을 흔들어 엎고 못된 소견을 잘라 내버리다. 
빠른 번개와 같이 미처 생각할 수 없고 활활 타는 불꽃 속에 어찌 뛰어들어 갈 수 있을까. 
운문종을 알겠는가? 주장자가 날아 하늘 높이 오르고 잔 속에서 모든 부처님이 설법을 한다.

87.
潙仰家風(위앙가풍)은 師資唱和(사자창화)하고 父子一家(부자일가)로다
脇下書字(협하서자)하니 頭角(두각)이 崢嶸(쟁영)이요
室中驗人(실중험인)에 獅子腰折(사자요절)이로다
離四句絶百非(이사구절백비)를 一槌粉碎(일추분쇄)하니
有兩口無一舌(유양구무일설)이여 九曲珠通(구곡주통)이로다
要識潙仰宗麽(요식위앙종마)아 
斷碑(단비)는 橫古路(횡고로)하고 鐵牛(철우)는 眠少室(면소실)이로다.

위앙 가풍은 스승과 제자가 부르면 화답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집에 살고 있네. 
옆구리에 글자 쓰고 머리 위에 뿔이 높이 솟았구나. 
방안에서 사람들을 시험하니 사자 허리 부러지다 
네 가지 말 다 여의고, 백가지 아닌 것도 모두 끊어 버려 한 망치로 부수었네. 
입은 둘이 있으나 혀는 하나도 없는 것이 구곡주를 꿰뚫었다. 
위앙종을 알겠는가? 
부러진 비석 옛 길에 쓰려져 있고 무쇠 소 작은 집에 자네.

88.
法眼家風(법안가풍)은 言中有響(언중유향)하고 句裡藏鋒(구리장봉)이라
髑髏(촉루) 常干世界(상간세계)하고 鼻孔(비공)은 磨髑家風(마축가풍)이라
風柯月渚 顯露眞心(풍가월저 현로진심)하고 翠竹黃花가 宣明妙法(취죽황화 선명묘법)이로다
要識法眼宗麽(요식법안종마)아 
風送斷雲歸嶺去(풍송단운귀령거)하고 月和流水過橋來(월화유수과교래)로다.

법안 가풍은 말 끝에 메아리가 울려오고 글 속에 칼날이 숨었구나, 
해골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콧구멍은 어느 때나 그 가풍을 불어 내네. 
바람 부는 나뭇가지와 달 비치는 물가에는 참마음이 드러나고 푸른 대와 누른 국화 묘한 법을 환히 밝혀 주네. 
법안종을 알겠는가? 맑은 바람 구름을 산마루로 보내 주고 밝은 달 물에 떠서 다리지나 흘러오네.

89.
臨濟喝德山棒(임제할덕산방)이 皆徹證無生(개철증무생)하여 透頂透底(투정투저)라
大機大用(대기대용)이 自在無方(자재무방)하여 全身出沒(전신출몰)하며 全身擔荷(전신담하)하여
退守文殊普賢大人境界(퇴수문수보현대인경계)니 
然(연)이나 據實而論(거실이론)컨대 此二師(차이도)도 亦不免偸心鬼子(열불면투심귀자)니라.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망이가 다 나는 것 없는 도리를 철저하게 증득하여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꿰뚫었다. 
큰 기틀과 큰 작용이 자유자재하여 어디나 전신으로 출몰하며 전신으로 짐을 져, 
물러나 문수와 보현의 대인 경계를 지킨다 하더라도 
실상대로 말한다면 이 두분도 또한 도깨비가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90.
大丈夫(대장부)는 見佛見祖(견불견조)를 如寃家(여원가)하나니 
若着佛求(약착불구)하면 被佛縛(피불박)이요
若着祖求(약착조구)하면 被祖縛(피조박)이라 
有求皆苦(유구개고)니 不如無事(불여무사)니라.

대장부는 부처님이나 조사 보기를 마치 원수와 같이하여야 한다. 
만약 부처에게 배달려 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부처에게 얽매인 것이요, 
만약 조사에게 배달려 구하는 것이 있다면 또한 조사에게 얽매이는 것이 된다. 
무엇이든 구하는 것이 있다면 다 고통이 되므로 아무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91.
神光(신광)이 不昧(불매)하여 萬古徽猷(만고휘유)로다
入此門來(입차문래)에 莫存知解(막존지해)어다.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환하여라. 이 문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禪家龜鑑(선가귀감)


청허당(淸虛堂) 휴정(休靜) 서산대사


'선가귀감'은 청허당(淸虛堂) 휴정(休靜)스님께서
선의 진수와 불교를 배우고 수행하는 이에게 본보기가 되게 하고자 지은 책으로서
대장경과 조사스님의 어록 가운데 요긴한 부분을 가려 뽑아
주해(註解)를 달고 송(誦)과 평(評)을 붙인 것이다.
내용에는 저자 서산 스님의 서문과 그 제자인 사명스님의 발문이 함께 있다.
초판은 1579년 원문인 한문 본으로 판각되었다.
그 뒤 여러 곳에서 한문본과 한글(언해)본으로 간행되었고
중국과 일본에도 널리 알려진 명저로 꼽히고 있다.


1.

예전에 불교를 배우는 사람들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않았고,
부처님께서 행하셨던 계행(戒行)이 아니면 행동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보배로 여기는 것은 오직 대장경의 거룩한 부처님 말씀뿐이었다.
그러나 오늘 날 불교를 배우는 사람들은 서로 전해가면서 외우는 것은 세속 사대부의 글이요,
청하여 지니는 것이 벼슬아치들의 시뿐이다.
그것을 울긋불긋한 종이에 쓰고, 고운 비단으로 꾸며서,
아무리 많아도 만족할 줄 모르고 가장 큰 보배로만 여기니,
아! 예와 지금의 불교 공부하는 이들이 보배로 삼는 것이 어찌 이와 같이 다를까.
미흡한 산승이 옛 글에 뜻을 두어 대장경의 거룩한 글로써
보배를 삼기는 하지만 그 글이 너무 길고 많으며
대장경의 바다가 너무 넓고 아득함으로 뒷날 뜻을 같이 하는
여러 벗들이 가지를 헤쳐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로움을 면하지 못한 것 같아서,
글 가운데서 가장 요긴하고 간절한 것 수백 마디를 추려서 한 장에 쓰고 보니,
글도 간단하고 뜻도 두루 갖추어졌다고 할 만하다.
만일 이 글로써 스승을 삼아 끝까지 연구하여 오묘한 이치를 깨닫게 된다면
마디마디에 살아 있는 석가여래께서 나타나실 것이니, 부디 부지런히 노력하라.
그리고 문자를 떠난 한 마디 활구(活口)와 상식적인 형식의 틀을 벗어난
선지(禪旨)의 기묘한 보배를 쓰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장차 특별한 기회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2. 마음

여기에 한 물건(마음)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 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생겨나지도 않았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이름을 지어 붙일 수도 없고, 모양으로 그려 보일 수도 없다.
한 물건(一物)이란 대체 무엇일까? 먼저 깨달은 옛 사람을 이렇게 읊었다.
"옛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전부터 동그라미 일원상(一圓相)이 뚜렷이 밝았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몰랐는데 어찌 가섭이 전했겠느냐"
이 한 물건(마음)은 생겨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무엇이라고 이름을 지어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
육조 혜능스님께서 대중에게 물었다. "나에게 한 물건(一物)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
너희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하였는데
신회스님께서 곧 대답하기를 "그것은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며, 신회의 불성(佛性)입니다."하였다.
이것이 육조스님의 서자(庶子)가 된 까닭이다.
회양스님께서 숭산에서 와서 인사를 드리니 육조스님이 묻기를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니
회양 스님은 대답을 못하고 쩔쩔매다가 8년이 지나 깨달음을 얻고 나서
일러 말하기를 "설사 한 물건(一物)이 라고 말해도 맞지 않습니다."하였다.
이것이 육조스님의 적자가 된 연유이다.
삼교(三敎)의 성인이 모두 이 말에서 나왔네.
누가 말해 볼 사람이 있는가. 잘못 말했다가는 눈썹이 빠지리라.


3. 본래 완전한 마음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은 마치 바람이 없는 바다에 물결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부처님은 석가 세존이고, 조사는 가섭존자이다.
이 분들께서 세상에 나오신 것은 대자비심으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마음을 살펴보면 사람마다 본래 마음의 성품이 저절로 원만히 이루어졌는데
어찌 다른 사람이 연지를 찍어 주고 분을 발라 주기를 바라겠는가.
<허공장경>에서 "진리의 세계를 보는데 있어서는 문자도 악마와 같은 방해물이고,
온갖 사물의 이름과 형상도 악마와 같은 방해물이고,
부처님의 말씀까지도 방해물이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뜻이다.
누구나 근본 마음의 바탕은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라는 견지에서 본다면
부처님이나 조사의 말씀도 아무 소용이 없다.


4. 근기에 따른 여러가지 방편

그러나 모든 사물과 이치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도 여러 가지 기질이 있으므로 여러 가지 방편을 통해 깨달음의 길로 이끈다.
법이란 한 물건, 즉 마음이고, 사람이란 중생을 가리킨다.
마음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여(眞如)의 마음과 인연을 따라 변화·작용하는 마음, 두 가지가 있다.
사람에게는 단박에 깨치는 상근기와 오래 닦아서 깨달음을 얻는 하근기의 두 가지 기질이 있다.
그러므로 문자나 말로 가르치는 여러 가지 방편이 없을 수 없다.
굳이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다, 부처다, 중생이다 했으나,
그 이름에 얽매여서 알음알이의 분별을 내지 마라.
모두가 그대로 옳은 것이다. 한 생각이라도 일으키면 곧 어긋난다.


5.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三處傳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세 곳이란 세존께서 다자탑에서 설법하실 때 앉아 계시던
자리의 절반을 나누어 가섭에게 함께 앉게 하심이 첫째요,
세존께서 영산회상에서 연꽃을 들어 보이실 때
가섭존자께서 마음으로 알아차리고 미소를 지어 응답했음이 둘째요,
세존께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돌아가실 때 임종의 시기를 놓쳐서
늦게 도착한 가섭에게 관속의 두 발을 밖으로 내 보이심이 셋째이니,
이것이 가섭존자가 세존으로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의 세계를
따로 마음으로 전해 받은 선의 등불이다.
부처님께서 일생 동안 말씀하신 것이란
45년 동안 중생을 위해 설법하신 다섯 가지 가르침(五敎)인데,
첫째는 인천교(人天敎), 둘째는 소승교(小乘敎), 셋째는 대승교(大乘敎),
넷째는 돈교(頓敎), 다섯째는 원교(圓敎)이다.
이른바 아난다존자께서 교학의 바다를 흐르게 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선문(禪門)과 교문(敎門)의 근원은 석가 세존이시고,
선문과 교문의 갈래는 가섭존자와 아난다존자이다.
말이 없는 무언(無言)으로써 말없는 진리의 세계에 이르는 수행법이 선문(禪門)이고,
대장경의 말로써 말없는 진리의 세계에 이르는 공부 방법이 교문(敎門)이다.
또한 마음으로 진리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 선법(禪法)이요,
말로써 진리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 교법(敎法)이다.
진리의 법은 한 맛이나, 견해나 수행 방법을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


6. 참마음을 얻으면 모든 것이 법문

진리를 이름이 없으므로 말로써 설명할 수도 없고,
진리는 모양이 없으므로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이다.
무엇이라고 말해 보려고 한다면 벌써 근본 마음(心王)의 바탕을 잃은 것이 된다.
본 바탕 마음을 잃게 되면 부처님이 꽃을 드신 것이나,
가섭존자가 미소를 짓는 일이 모두 쓸데없는 죽은 이야깃거리가 되고 만다.
마음을 얻은 사람은 장사꾼의 잡담이라도
모두 법사(法師)가 진리를 설하는 법문과 같을 뿐 아니라,
새의 소리와 짐승의 울음까지도 진리를 설하는 법문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적선사는 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바로 깨달음을 얻어 춤추고 기뻐하였으며
보수스님은 거리에서 주먹질하며 싸우는 사람을 보고 본래가 천진한 마음의 본바탕을 깨달은 것이다.
이것은 선(禪)과 교(敎)의 깊고 옅은 세계를 밝힌 것이다.
생각을 끊고 얽힌 인연을 잊었다는 말은 참 마음을 얻었다는 것을 가리킴이니,
이른바 마음을 다 닦아서 일이 없는 한가한 도인(閑道人)이다. "즐겁다.
어디에나 걸림이 없고, 본래부터 일이 없어서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고단하면 잠을 잔다.
맑은 물과 푸른 산을 마음대로 노닐 뿐만 아니라,
고기 잡는 어촌과 술을 파는 주막에도 마음에 걸림 없이 자유 자재하다.
세월이 가나오나 내가 알 바 아니건만, 봄이 오니 예전과 같이 풀잎이 푸르구나."
이것이 진리를 밖에서 구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서 찾으면서 한 생각이 일어날 때,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봐야 할 사람을 위한 것이다.


7. 스님의 가르침은 단번에 깨치는 법

부처님은 영원한 스승이시므로 모든 중생을 위해 자세하게 설명하여 가르치셨고,
조사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즉시에 해탈하도록 단번에 깨치는 가르침을 위주로 하였다.
부처님은 활(弓)처럼 말씀하셨고, 조사들은 활줄(絃)처럼 곧게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걸림이 없는 법이란
모든 사물이 실제 모습이 서로 다르지 않고 절대 평등한 한 맛(一味)에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이 한 맛의 자취마저 떨쳐버려야 비로소 조사가 내보인 참 마음의 세계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의 화두 는 용궁의 대장경 속에서도 없는 것이다"고 했다.
활(弓)처럼 말씀하셨다는 말을 둥글궁들 자세히 설명해서 '굽다(曲)'는 뜻이요,
활줄(絃)처럼 말씀하셨다는 말을 직접 단도 직입적으로 바로 설명했다는 데서 '돋다(直)'는 뜻이다.
용궁의 장경이란 뜻은 용궁에 모셔 둔 대장경이다.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께 묻기를 "달마 대사께서 서쪽에서 중국으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조주스님이 눈 앞에 보이는 잣나무를 가리키며 "뜰앞의 잣나무니라"하였다.
이것이 보통 사람의 소견이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오직 마음으로만 체득될 수 있는 격의 밖(格外)의 선지(禪旨)이다.


8. 경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닦으라

그러므로 공부하는 수행자는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으로써
변하지 않는 성품과 인연을 따라서 작용하는 마음,
두 가지 뜻(二義)이 곧 내 마음의 본 바탕과 형상임을 알아야 한다.
단번에 깨치고(頓悟) 차츰차츰 오래 닦는(漸修) 두 가지 수행 방법이 있는데
그 앞과 뒤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교학의 뜻을 버리고 오로지 그 마음이 뚜렷이 드러난 한 생각으로써
참선한다면 반드시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수행자가 가야 할 바른 길이다.
높은 근기와 지혜를 가진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은 함부로 건너뛰어서는 안된다.
교학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에 따르는 것, 단번에 깨치는 수행법(頓門)과
차츰차츰 오래 닦아서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에 그 앞과 뒤가 있다는 뜻이다.
선법(禪法)이란 한 생각 가운데 변하지 않는 마음의 본체(體)와
환경과 인연에 따르는 마음의 작용(用)이 원래 한 마음 속에 동시에 있다.
그러므로 진리의 세계에서 볼 때는 모든 것이 차별이 없이 다 똑같고,
현상 세계에서 볼 때는 모두가 다르다.
그래서 깨달은 종사는 진리를 설하되 말을 여의고,
바로 한 생각을 가르쳐 성품을 보고 깨닫게 하는 것이다.
교학을 버리고 선을 택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9. 활구(活句)를 참구하라.

참선 수행자는 살아 있는 화두인 활구를 생각하고 연구해야지 죽은 말인 사구(사구)를 참구하지 말라.
살아 있는 활구(活句)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님이나 조사스님과 함께 스승이 될 것이고,
죽은 사구(死句)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한다면 자신도 구제하지 못할 것이다.
활구를 들면 저절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다.


10. 참선하는 마음 자세

공안(公案)을 참구할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기를, 마치 닭이 알을 품는 것과 같이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 전신을 한 곳에 집중해야 하고,
굶은 사람이 밥을 생각하듯이 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을 생각하듯이 하고,
어린애가 엄마를 생각하듯이 하면 반드시 칠흑 같은 어두운 세계를 벗어나
깨달음의 관문을 꿰뚫을 때가 있을 것이다.
조사스님들의 공안(公案)은 1,700가지나 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이 부처의 성품을 갖추고 있다 했는데
조주스님께서 "개에게는 부처의 성품이 없다.(狗子無佛性)"고 한 것이든지,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묻는 말에도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栢樹子)"하고 대답한 것이라든지,
 "어떤 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까?" 하고 묻는 질문에
동산스님이 "마 세 근이다.(麻三斤)라고 대답한 것이라든지,
또 "어떤 것이 불교의 요지입니까?" 하고 묻는 질문에
운문스님이 "마른 똥막대기니라"하고 말한 것들이다.
닭이 알을 품을 때는 따뜻한 기운이 항상 지속되고 있으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에는 마음과 눈이 움직이지 않게 되고,
굶을 때에 밥을 생각하는 것과 목이 마를 때 물을 생각하는 것이나
어린애가 엄마를 생각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간절한 진심(眞心)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억지로 지어서 내는 마음이 아니므로 간절한 것이다.
참선하는 데에는 이렇듯이 간절한 마음이 없이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11. 참선의 세 가지 요소

참선할 때는 반드시 세 가지 중요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셋째는 큰 의심(大疑情)이다.
만약 셋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세 발 달린 솥의 다리가 부러진 것과 같아서 못쓰게 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하셨고,
영가스님은 "도를 닦는 수행자는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하셨고,
몽산스님은 "참선하는 사람이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다."하셨으며,
또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닫는다"고 하셨다.


12. 개에게 불성이 없다한 이유?

일상 생활을 하는 도중에 무슨 일을 하든지
오직 한 생각, '조주스님은 어째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라고
한 화두를 끊임없이 추구하여,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경지가 되어
이치의 길(理路)이 끊어지고, 뜻의 길(義路)이 사라져서 결국은 아무 맛도 없어지고,
마음이 답답할 때가 바로 자신의 몸과 목숨을 내던질 곳이다.
이것이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다.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께 "개에게도 깨달을 수 잇는 능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없다(無)"고 대답했다.
이 한 마디는 선종에서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며,
온갖 못된 생각과 지식을 꺾어 없애는 연장이며,
또한 모든 부처님의 본래 모습이고, 조사스님들의 골수다.
이 관문을 뚫고 나간 후에야 깨달을 수 있다.
먼저 깨달은 옛 사람은 이렇게 읊었다.
"조주스님의 무서운 칼 서릿발처럼 번쩍이네.
무어라 잘못 물으면 몸뚱이를 두 토막 내리."
화두는 의심을 일으켜서 그 뜻을 논리적으로 알아 맞히려 해서도 안되고 생각으로 헤아려서도 안된다.
또한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고, 더 생각할 수 없는 데까지 나아가 생각하면
마음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마치 늙은 쥐가 물소의 길다란 뿔 속으로 들어가다가 잡히듯이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인가 저것인가 따지고 맞추어 보는 것이 그릇된 생각과 분별심을 일으키는 것이며,
나고 죽음을 따라 굴러다니는 것이 그릇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며,
두려워서 갈팡질팡하는 것도 또한 그릇된 생각을 일으키는 식정(識情)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 병을 알지 못하고 이 속에서 빠졌다 나왔다 하고 있을 뿐이다.


13. 공부하는 방법은 중도(中道)

공부를 하는 방법은 거문고의 줄을 고르듯이 해야 한다.
거문고의 줄이 팽팽함과 느슨함이 알맞게 골라서 조율이 되어야 한다.
너무 긴장하여 애쓰면 집착하기 쉽고,
너무 느슨하여 마음을 놓아버리면 어리석은 무명(無明)에 떨어지게 된다.
정신이 또록또록하고 역력하게 하면서도 차근차근 끊임없이 해야 한다.
거문고를 타는 사람이 말하기를
"거문고의 줄이 알맞게 조율이 되어야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고 하였다.
공부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조급하게 서둘면 혈기를 올리게 될 것이고,
방일해서 잊어버리면 흐리멍텅 바보가 되고 만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중도에 따라 공부를 하면 오묘한 진리를 얻을 수 있다.


14. 도가 높아질수록 마가 치성한다.

마군(魔軍)이란 나고 죽는 생사를 좋아하는 귀신의 이름이고,
8만 4천 마군이란 중생의 8만 4천의 번뇌이다.
악마란 본래 종자(種子)가 없는 것인데 수행자가 바른 생각을 잃는 데서 그 움이 트게 된다.
중생들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이 공존하나,
수행하는 도인은 그 환경에 거슬리므로 악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방해하는 마가 드세다"고 한 것이다.
어떤 스님이 선정에 들었는데 상복을 입을 사람이
"네가 우리 어머니를 왜 죽였느냐?"고 대들어서
옥신각신 시비 끝에 도끼로 그 사람을 찍었는데 자기 다리가 찍혀서 피가 났으며,
또 어떤 스님이 선정에 들었는데
멧돼지가 쫓아와 대들기에 멧대지 코를 붙잡고 소리를 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의 코를 붙잡고 있었다는 일화가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악마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온갖 시비와 분별에 움직이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이면
악마가 아무리 많은 재주를 부려도 마치 칼로 물을 베거나,
광명(光明)을 입으로 부는 격이 될 것이다.
옛말에 "벽이 갈라져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악마가 들어온다"고 했다.
밖으로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天魔)이고,
일어나지 않는 마음은 음마(陰魔)이고,
일어나기도 하고 혹은 일어나지 않기도 하는 것은 번뇌마(煩惱魔)이다.
그러나 우리 불교의 바른 정법 가운데에서는 본래 그런 일이 없다.
무심(無心)한 것이 불도이고, 분별하는 것이 악마의 짓이다.
악마의 일이란 허망한 꿈속의 일인데 더 길게 말할 것이 무엇이랴.
마음을 밝히는 공부를 한 단계라도 이루었다면
비록 금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죽어서 눈을 감을 때에 악업에 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기적인 행위는 어리석은 무명(無明)이고, 선정(禪定)은 밝은 지혜이다.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서로 맞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15. 참선하는 이가 점검해야 할 16가지 도리

참선하는 수행자는 항상 이렇게 돌이켜 보아야 한다.
네 가지 은혜(四恩)가 깊고 높은 것을 알고 있는가.
네 가지 요소(四大)로 구성된 육신이 점점 썩어가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들이마시고 내뱉는 한 번의 숨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가.
일찍이 부처님이나 조사와 같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서도 그냥 지나쳐버리지 않았는가.
높고 거룩한 진리의 가르침을 듣고 기쁘고 다행한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버린 경우가 있었는가.
공부하는 장소를 떠나지 않고 수도인 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곁에 있는 사람과 잡담이나 하고 지내지 않는가.
부질없이 시비를 일으키고 있지나 않은가.
화두가 어떤 상황에서도 분명하여 어둡지나 않는가.
이야기할 때도 화두가 끊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되는가.
보고 듣고 알아차린 때에도 한 조각을 이루고 있는가.
제 공부를 돌아볼 때 부처님이나 조사스님을 붙잡을 만한가.
금생에 꼭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의 은혜를 이을 수 있을까.
앉고 눕고 편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 육신으로 윤회의 고통을 벗어날 자신이 있는가.
인간의 마음을 흔들어 움직이게 하는 온갖 현상이 나에게 닥쳐와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이것이 참선하는 수행인의 일상 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검해야 할 도리이다.
먼저 깨달음을 얻은 옛사람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몸을 금생에 못 건지면 다시 어느 세상에 태어나 건질 것인가"
네 가지 은혜란 부모와 나라와 스승과 시주(施主)의 은혜이고,
네 가지로 된 더러운 몸이란 아버지의 정액 한 방울과
어머니의 피 한 방울은 물(水)의 젖은 기운이요,
뼈와 살은 땅(地)의 단단한 기운이요,
정기(精氣)와 피의 한 덩어리가 썩지도 않고 녹아버리지도 않는 것은
불(火)의 더운 기운이요, 콧구멍이 먼저 뚫려 숨이 통하는 것은
바람(風)의 움직이는 기운이다.
아난다존자가 말하기를
"정욕(情欲)이 거칠고 흐려서 더럽고 비린 것이 한데 어울리어 뭉쳐진다"고 한데서
더러운 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한 생각 할 때마다 육신이 썩어간다는 것은
세월이 잠시라도 쉬지 않아서 얼굴은 저절로 주름살이 잡히고
머리털은 어느 사이에 희어 간다는 뜻이다.
옛말에 "지금은 이미 옛 모습이 아니네.
옛날이 어찌 지금과 같았겠는가"라고 한 바와 같이
과연 덧없이 무상(無常)한 이 몸이 아닌가.
세월이란 무상한 귀신은 모든 생명체를 죽이는 것으로서
즐거운 유희로 삼으므로 생각할수록 두려울 뿐이다.
내쉬는 날숨은 불의 기운을 몸밖으로 내뱉는 것이요,
들이마시는 들숨은 바람 기운을 들이마시는 것이다.
사람의 목숨은 오로지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에 달린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움직이게 하는 여덟 가지 현상(八風)은
마음에 맞는 것과 마음에 거슬리는 것, 두 가지 환경이 있다.
지옥의 고통이란 인간의 60겁이 지옥의 하루가 되는데,
쇳물이 끓고 숯불이 튀고 뾰족한 칼산에서 끌려 다니는 고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가
마치 바다한 가운데 떨어진 바늘을 찾기보다도 어렵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모르는 여러 사람을 불쌍히 여겨 경계의 말로 일깨우는 것이다.


16. 깨달음을 얻은 뒤에 해야 할 일

수행을 하지 않고 말로만 불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말할 때에는 깨우침을 얻은 듯 하다가도
실제의 경계나 상황에 직면하면 그만 미혹하여 앞이 캄캄하여진다.
이른바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르다'
만약 생사를 끊으려면 한 생각(念子)을 '탁' 깨뜨려서
마음속의 어두운 칠통을 깨뜨려야 비로소 나고 죽는 생사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진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한 생각(一念子)을 깨친 뒤에는
반드시 깨우침이 높은 스승을 찾아가 올바른 깨우침을 얻었는가를 점검하여 바른 안목을 결택해야 한다.
먼저 깨달음을 얻은 옛 사람이 말하기를
"자신의 눈이 바른 것만 귀하게 여기 뿐이지, 자신의 행실은 보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바라건대 공부하는 수행자는 자기 본래 마음을 확실히 믿고,
스스로 열등하게 생각하여 굽히지도(自屈) 말고, 교만하여 스스로 높이지도(自高) 말아야 한다.
이 마음은 평등하여 본래 보통 사람과 성인이 따로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혹한 보통 사람이 있고, 깨달은 성인이 있다.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문득 참 나(眞我)가 부처와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깨닫는 것을
'단번에 깨달음(頓)'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못났다고 굽히지 말 것이니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신 "본래 한 물건도 없다.
(本來無一物)"고 한 말이 그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뒤에 지난날부터 익혀온 버릇을 점차로 끊어가면
마침내 보통 사람이 변하여 성인이 되는 것은 '오래 닦음(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잘났다고 높이지도 말 것이며
신수스님께서 말씀하신 "부지런히 털고 닦으라(時時勤拂拭)"고 한 말이 이것이다.
스스로 못났다고 굽히는 것은 교학을 배우는 사람의 병이고,
스스로 잘났다고 높이는 것은 참선하는 사람의 병이다.
교학을 배우는 이들은 참선의 비밀한 수행법을 통해
깨달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믿지 않고,
방편(方便)으로 가르친 데에 깊이 빠져서 진리를
마음으로 관찰하고 행동하지(觀行) 않고 남의 보배만 셈하게 되므로
스스로 못났고 자신 없어하는 퇴굴심(退屈心)만 갖는다.
참선하는 선학자는 교학의 수행방법인 점점 닦아 감(漸修)과 아울러
못된 버릇을 끊어서 마침내 깨달음의 좋은 길(正路)에 이르는 방법을 믿지 않고,
지난날 익힌 못된 버릇이나 행동을 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며,
공부해서 얻은 결과가 초보적인 경지밖에 안되는데도
진리의 세계에 대해 자만한 생각이 많기 때문에 무턱대고 교만하게 지껄인다.
그러므로 옳게 배워 마음을 닦은 사람은
스스로 못났다고 굽히지도 않고 스스로 잘났다고 높이지도 안는다.
마음을 모르고 도를 닦는 것은 어리석은 무명(無明)만 더욱 깊어질 뿐이다.
확실하게 깨닫지 못했다면 어찌 참되게 닦을 수 있겠는가.
깨달음(悟)과 닦음(修)은 마치 기름과 불이 서로 의지하여
빛을 내는 것과 같고, 눈과 발이 서로 돕는 것과 같다.


17. 번뇌를 여윈 경지가 깨달음의 경지

수행하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번뇌 망상을 없내는 것이다.
특별히 성인의 알음알이가 있을 수 없다.
모름지기 생각을 비우고 스스로 마음을 비추어 보아서
한 생각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一念緣起)이 사실은 진리의 세계에서 보면
마음이란 실체가 없어 공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일어남이 없음을 믿어야 한다.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모두 한 마음(一心)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음의 본바탕은 더 보탤 것도 덜어낼 것도 없이
그 일어나는 곳이 비어 있어서 다시 무엇을 끊을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실체가 없는 환상(幻)인 것인 줄을 알면
번뇌로부터 곧 벗어난 것이므로 더 방편을 쓸 것이 없다.
환상을 여의면 곧 깨달은 것이므로 더 이상 닦아 갈 것도 없다.
마음은 요술쟁이요, 몸은 환상의 성(城)이고, 세계는 환상의 옷이고,
이름과 형상(名相)은 환상의 밥이다.
그뿐 아니라, 마음을 내고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나,
거짓을 말하고 참을 말하는 어느 것 하나 환상이 아닌 것이 없다.
환상은 실체가 없는 허공의 꽃과 같으므로
환상이 없어지면 그 자리가 곧 한 생각도 일어남이 없는 부동지(不動地)이다.
꿈속에서 병이 나서 의사를 찾던 사람이 잠을 깨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이 모든 것이 환상인 줄을 아는 사람도 또한 그렇다.
보살이 중생을 건져 해탈을 얻어 열반에 들게 했다 할지라도,
사실은 해탈을 얻은 중생이 없는 것이다.
보살은 오로지 중생에 대한 생각뿐이다.
생각의 바탕이 빈 것(空)임을 알아내는 것이 곧 중생을 건지는 것이다.
생각이 이미 비어 마음이 고요하면 사실 구제할 중생이 따로 없다.
이상은 믿음과 깨달음을 말한 것이다.
이치(理)는 단번에 깨달을 수 있다 하더라도, 버릇은 단번에 없앨 수 없다.


18. 마음의 계율(心戒)

음란하면서 참선을 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자신의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고,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밑 빠진 그릇에 물이 가득 차기를 바라는 것과 같고,
거짓말을 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은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라도 모두 악마의 길을 이룰 뿐이다.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을 의지하지 않고,
몸(身), 입(口), 생각(意) 등 삼업(三業)을 지키지 안는다.
게으르고, 나태하고, 남을 깔보고, 시비를 걸어 따지는 일을 일삼는다.
굳게 다짐한 마음의 계율(心戒)을 한번 깨뜨리면 온갖 허물이 함께 생겨난다.
만약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다음 생에 비루먹은 여우의 몸도 받지 못한다는데,
하물며 청정한 깨달음의 열매를 바랄 수 있겠는가.
계율을 존중하기를 부처님을 모시듯이 한다면 부처님이 항상 곁에 함께 하시는 것과 같다.
모름지기 풀 한 포기의 생명을 아꼈던 초계(草繫)의 일화와
거위의 생명을 구하려고 대신 자신의 피를 흘렸던 아주의 일화를 본보기로 삼아야 하겠다.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을 끊고, 애욕을 없애야 한다.
애정은 윤회의 근본이 되고, 정욕은 몸을 받는 인연이 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음탕한 마음을 끊지 못하면 번뇌의 티끌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셨고,
"애정이 한 번 얽히게 되면 사람을 끌어다가 죄악의 문에 처넣는다"고 하였다.
애욕에 목마름은 애정이 너무 간절한 상태를 말한다.
자유롭고 걸림이 없는 맑은 지혜는 모두 선정에서 나온다.
어떤 경계나 상황을 당하여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생겨나지 않음(不生)이라 하고,
생겨나지 않는 것을 생각이 없음(無念)이라 하고, 생각이 없는 상태를 해탈이라고 한다.
계율, 선정, 지혜는 하나를 들면 셋이 함께 갖추어져 있는 것이어서 홀로 성립될 수 없다.

 

19. 육바라밀

가난한 사람이 와서 구걸하거든 자신의 능력껏 나누어 주라.
동체자비(同體慈悲)한 마음으로 내 몸처럼 사랑하면 이것이 참된 보시이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닌 한 몸뚱이다.
태어날 때도 빈손으로 왔다가 죽을 때도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다.
어떤 사람이 와서 해롭게 하더라도 마음을 거두고 단속하여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아라.
한 생각 속의 성내는 마음(瞋心)이 온갖 장애의 문을 연다.
참는 일(忍行)이 없으면 보살의 모든 선한 행위(六度萬行)가 이루어질 수 없다.
본바탕의 천진(天眞)한 마음(本眞心)을 잘 지키는 것이 첫째가는 정진 바라밀이다.


20. 진언, 예배, 염불, 간경

진언

신비한 진언(眞言)을 외우는 것은,
현세에 지은 행위의 업은 비교적 다스리기가 쉬워 자신의 힘으로 고칠 수가 있지만,
전생에 지은 업보는 지워버리기 어려우므로 신비한 힘을 빌리기 위한 것이다.

예배

예배란 공경이며 굴복이다.
참된 성품(眞性)을 공경하고, 어리석음(無明)을 굴복시키는 일이다.
몸(身)과 말(口)과 생각(意), 즉 삼업이 함께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나타나심이다.

염불

염불(念佛)에는 입으로 하는 송불(誦佛)과 마음으로 하는 염불(念佛)이 있다.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데 아무 이익이 없다.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 법문은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세계를 생각하여 잊지 않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똑똑히 불러 헛갈리지 않아야 한다.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서로 합치되는 것이 염불(念佛)이다.

간경

경전을 보는데 자기 마음속을 향하여 공부를 하지 않으면
비록 만 권의 대장경을 모두 보았다 할지라도 아무 이익이 없다.


21. 출가 수행자의 마음 자세

공부하여 아직 도를 이루기도 전에
남에게 자랑하려고 말재주만 부려서 상대방을 이기려고 한다면
변소를 예쁘게 단청하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이 말은 진리를 싫어하고 사도(邪道)가 판을 치는 말세에
어리석게 공부하는 이를 특별히 일깨우는 말이다.
공부란 본래 자기 성품을 닦는 것인데,
수행자가 남에게 보이기 위해 겉으로만 공부한다면 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출가하여 수행승이 되는 일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도 아니며,
따뜻한 밥을 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는 생사를 면하려는 것이며,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중생 세계인 삼계를 뛰어넘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이다.
가히 하늘을 찌를 대장부라 할 만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월의 무상한 불꽃이 온 세상을 태운다."고 하셨고,
"중생들이 받는 고통의 불길이 사방에서 함께 타오른다."고 하셨고,
"온갖 번뇌의 도둑이 항상 사람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마땅히 스스로를 깨우치기를 자신의 머리털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해야 한다.
사람의 몸은 태어나서(生)·늙고(老)·병들고(病)·죽는(死) 변화의 과정이 있고,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세계는 생겨나서(成)·지속되면서 머물며(住)·
변해가면서 허물어져(壞) 결국 사라져서 본래부터 실체가 없던 공(空)의 상태로 되돌아가 버린다.
인간의 마음도 생각이 일어났다(生), 잠시 머물고(住), 변해가고(異), 사라져버리는(滅)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무상한 고통의 불이 우리의 사방에서 함께 불타고 있음이다.
진리를 찾는 구도자들이여, 부디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덧없는 세상의 명예를 탐하는 것은 부질없이 몸만 괴롭히게 하는 것이고,
세상의 이익만을 구하는 것, 또한 활활 타오르는 업의 불길 속에 섶을 더 보태는 것과 같다.
이름과 재물만을 탐하는 출가 수행자는 시골에 사는 촌사람만 못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도둑들이 내 옷을 꾸며 입고,
부처를 팔아 온갖 나쁜 짓을 일삼고 있는가"하고 통탄하셨다.


22. 수행자가 옷과 음식을 대하는 태도

아, 불자여, 그대의 한 그룻의 밥과 한 벌의 옷이 곧 농부의 피요, 직녀들의 땀이다.
도의 눈(道眼)이 밝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사용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 줄 아는가?
그것은 오늘날 신도들이 주는 것을 공부도 하지 않고
거저먹는 그런 무리들의 미래상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더 입으니 무슨 마음일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눈앞의 쾌락이 훗날 괴로움이 됨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수행자는 음식을 먹을 때 독약을 먹는 것같이 두려워하고,
신도에게 보시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두려워하라"고 한 것이다.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을 수행자는 두려워해야 한다.


23. 참회

죄를 지었으면 당장에 참회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부끄러워할 줄 아는 자세가 대장부의 기상이다.
그리고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되면 그 죄업도 마음을 따라 없어질 것이다.
참회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다시는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일이다.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드러내는 일이다.
마음이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므로 죄업도 붙어 있을 곳이 없다.
수행자는 마땅히 마음을 단정히 하여 검소하고 진실한 것으로서 근본을 삼아야 한다.
표주박 한 개와 누더기 한 벌이면 어디를 가나 걸릴 것이 없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똑바른 줄(絃)과 같아야 한다"고 하셨으면,
또 "바른 마음이 곧 도량이다" 라고 하셨다.
이 몸에 탐착함이 없으면 어디를 가나 거리낌이 없다.
보통 사람들은 눈 앞 현실의 경계에만 집착하고, 수행자는 마음만 붙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마음과 현실의 경계, 두 가지를 모두 내버리는 것이 참된 법이다.
부모를 죽인 사람은 부처님 앞에 나아가 참회할 수 있지만,
깨달음을 통해 얻은 반야지혜를 비방한 사람은 참회할 길이 없다.


24. 임종할 때 관찰해야 할 문제

목숨이 다해 임종할 때에는 이렇게 생각하고 관찰해야 한다.
즉, 나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적 요소와 정신 작용인 오온의 본래 모습이
실체가 없는 공한 것임을 관찰해서 우리의 육신은 흙·물·불·바람 등의
인연화합으로 잠시 이루어져 있으므로 '나'라는 실체가 없다(無我).
참 마음(眞心)도 모양이 없어, 어느 곳에서 온 것도 아니요, 가지도 않는다.
태어날 때에도 성품은 생긴 것이 아니요, 죽을 때에도 성품은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밝고 고요하여 마음과 밖의 경계가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다.
오직 이와 같이 관찰하여 단번에 깨달으면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와 인과의 법칙에 얽매이거나 이끌리지 않게 될 것이니,
이런 사람이 세상에서 뛰어난 자유인이다.
만약 부처님을 만났다 하더라도 따라갈 마음이 없고,
지옥을 보더라도 무서운 생각이 없어야 한다.
다만 무심(無心)하게 되며 온갖 세계의 모든 것들과 하나가 되어
같게 될 것이니 이 점이 중요한 대목이다.
그러므로 평상시에는 씨를 뿌리는 원인이 되고,
임종할 때에는 그 열매를 거두는 결과가 되니 수행자는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죽음이 무섭고 싫은, 늙음에 이르러서야 부처님을 찾아 나가네.


25. 임제종과 선종 오종

공부하는 사람은 먼저 불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종파의 가풍(家風)부터 자세히 알아야 한다.
옛날에 마조스님께서 한번 고함을 친 할(喝)에 백장스님은 귀가 멀고, 황벽스님은 혓바닥이 빠졌다.
이 멋진 할이야말로 곧 부처님께서 연꽃을 들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당신의 소식을 전한 것이요,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중국에 오신 뜻이다.
이것이 임제종의 근원이 된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조사들의 종파에 다섯 갈래가 있는데,
그것은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위앙종( 仰宗), 법안종(法眼宗) 등이다.


26. 살불살조(殺佛殺祖)의 대장부

깨달음을 얻을 만한 대장부는 부처님이나 조사 보기를 원수같이 해야 한다.
만약 부처님께 매달려 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는 부처님에게 얽매여 있는 것이다.
깨닫지 못하고 무언가를 구하고 있다면 모두 고통이므로 일없는 것만 같지 못한 것이다.
부처와 조사까지도 원수같이 보라는 것은
이 책의 첫머리의 '바람도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다'는 말을 맺음이고,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고통이라고 한 것은 '딴 것이 없다.
모두가 그대로 옳다'는 말을 맺은 것이고,
일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것은 '한 생각을 일으키면 곧 어긋난다'는 말을 맺은 것이다.
신비로운 빛(神光)은 어둡지 않아 만고에 환하게 비춘다.
이문 안에 들어오면 얄팍한 지식과 분별로 알음알이(知解)를 내지 마라.
신비로운 빛(神光)이 어둡지 않다는 뜻은
이 책의 첫머리의 '한 물건이 밝고 신령하다'고 한 말의 맺음이고,
만고에 환하다 함은 '본래부터 나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말의 맺음이고,
알음알이(知解)를 두지 말라는 뜻은 '이름에 얽매여서 알음알이(知解)를 내지 말라'는 것을 맺는 말이다.
이와 같이 들어 보여 종지를 밝혔다면 서쪽에서 온 달마대사가 한바탕 웃었겠네.
그러나 마침내 어떻게 할 것인가 아, 애닯기만 하다.
달은 밝고 강산은 고요한데 터지는 웃음소리 천지가 놀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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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家龜鑑(도가귀감)

 

휴정(休靜, 1520년 3월 26일~1604년 1월 23일)은 조선 중기의 고승, 승장(僧將)이다.
속성은 최(崔), 본관은 완산, 이름은 여신(汝信), 아명은 운학(雲鶴),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서산(西山), 별호는 백화도인(白華道人)
또는 서산대사(西山大師)·풍악산인(楓岳山人)·두류산인(頭流山人)·
묘향산인(妙香山人)·조계퇴은(曹溪退隱)·병로(病老)이다.
휴정은 법명이며, 제63대 조사이다. 우리는 서산대사로 잘 알고있다.
임진왜란 당시 제자인 사명당 유정과 함께 승병(僧兵)을 일으켜서 크게 전공을 세웠다.
『선가귀감(禪家龜鑑)』·『유가귀감(儒家龜鑑)』·『도가귀감(道家龜鑑)』을
"삼가귀감"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그중 도가귀감을 알아본다. 

 

人若呼我牛呼我馬(인약호아우호아마) :사람들이 만약 나를 소라고 부르고 말이라고 부를지라도
我俱應之(아구응지) : 나도 그렇다고 수긍할지니
我其實(아기실) : 그것은 나에게 
人與之名(인여지명) : 그런 사실이 있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니
我若不受(아약불수) : 내가 만일 이를 피하여 받지 않으면
再受其殃(재수기앙) : 그로 인해 다른 재앙을 받을 것이로다.
謙懷下心(겸회하심) : 겸손하고 자신의 마음을 낮추는 것은
處衆之德也(처중지덕야) : 여러 사람과 함께 사는데 덕이 되리니
江河能爲百谷王者(강하능위백곡왕자) : 강과 바다가 수많은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 가운데 왕이 되는 것은 
以其善下之故也(이기선하지고야) : 그것이 다른 물보다 아래에 처하여 있기 때문이니라.

大功無功(대공무공) : 큰 공덕을 짓는 이는 공덕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至親無禮(지친무례) : 아주 친한 사람끼리는 형식적인 예절을 따지지 않으며,
眞喜無笑(진희무소) : 참으로 기쁘거나 슬프면 
眞哭無聲(진곡무성) : 웃음과 울음소리가 없으니
空谷善應(공곡선응) : 마음을 통하면 서로 잘 어울리고 
虛室生白(허실생백) : 말 없이도 밝게 알게 되나니
人能虛己而遊世(인능허기이유세) : 어떤 사람이 자신을 비우고 몸을 낮추어 세상을 살아간다면 
孰能害之(숙능해지) : 누가 능히 그를 해칠 것인가?
虛名浮利(허명부리) : 헛된 이름과 덧없는 재물은
縱得之(종득지)未必福(미필복) :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복이라 할 수 없고
縱失之(종실지)未必禍(미필화) : 비록 잃더라도 반드시 재앙이라 볼 수 없으니
古之得道者(고지득도자) : 옛날에 도를 얻은 자는
窮亦樂通亦樂(궁역낙통역낙) : 궁핍할 때도 즐겁게 살고 번창할 때도 즐겁게 살았으니
此所樂非窮通(차소락비궁통) : 이렇게 즐거워하는 바는 궁하고 통함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窮通乃外物也(궁통내외물야) : 사람들이 궁하면 슬퍼하고 통하면 기뻐하는 까닭은 
저들의 마음이 밖에 있는 물질에 집착하기 때문이니라.

世籠爵祿者(세롱작록자) : 세상 사람들이 부귀권세에 얽매어 있는 것은
因其所好而籠之(인기소호이롱지) : 그 좋아하는 바를 인하여 얽매어 있는 것이지만
我若無所好(아약무소호) : 만일 내가 좋아하는 바가 없다면
則超出乎萬物之外(즉초출호만물지외) : 곧 이 세상 만물에 초월해서 있게 되나니
誰得而籠之(수득이롱지) : 누가 나를 얽어 맬 수 있으리요.
天無不覆(천무부복) : 하늘은 덮지 못하는 것이 없고
地無不載(지무부재) : 땅은 짊어지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君子法之(군자법지) : 참 사람의 법은 이와 같아야 할지라.
人心生一念(인심생일념) : 사람이 마음에 한 생각 내는 것을 
天地悉皆知(천지실개지) : 천지가 다 아는 바이니
人間私語(인간사어) : 인간은 사사로이 말하나
天聞若雷(천문약뇌) : 하늘은 듣기를 우레와 같이 듣고
暗室欺心(암실기심) : 어두운 방에서 마음을 속이지만
神目如電(신목여전) : 신령의 눈에는 번갯불 같으니라.
君子(군자) : 군자는  
博取衆善(박취중선) : 널리 많은 착한 행실을 취해 
以輔其身(이보기신) 그 몸을 보전할지니
書不必孔子之言(서불필공자지언) : 글은 공자의 글만 취하고
藥不必扁鵲之方(약불필편작지방) : 약은 편작의 약만 취할 것이 아니라
合義者從(합의자종) : 의로움에 맞고 병에 잘 듣는다면
愈病者良(유병자양) : 다 글이 되고 약이 되리라.

道人(도인) : 도를 닦는 사람은
被葛懷玉(피갈회옥) : 비록 남루한 옷를 입고 있지만
故(고)德有所長(덕유소장) :마음에 큰 뜻을 품은 까닭에 덕은 자라게 하고
形有所忘(형유소망)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것이다.
甚愛必大費(심애필대비) :무엇이든 깊이 사랑하면 반드시 비싼 대가가 따르고,
多藏必厚亡(다장필후망) :많이 숨기고 감추면 반드시 두터움을 잃는 것이니,
故(고) : 그러므로
禍莫大於不知足(화막대어부지족) : 재앙은 족한 줄을 모르고 지내는 데서 더 커지는 법이니라.
信者不美(신자불미) : 말을 듣는 자가 그 말을 진심으로 여기지 않으면
美言不信(미언불신)  :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운 말이라도 믿어 주지 않고,    
又輕諾必寡信(우경낙필과신) : 너무 쉽게 허락하면 반드시 믿는 자가 적고,
多易必多難(다이필다난) : 쉬운 것이 많으면 반드시 어려운 것도 많다.

人有畏影避迹者(인유외영피적자) : 사람이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여
足愈數而迹愈多(족유삭이적유다) : 발걸음을 재촉하여 더욱 빨리 달아나지만
走愈疾而影愈急(주유질이영유급) : 달릴수록 그림자도 더욱 급하게 움직일 뿐이다.
不知處陰以休影(부지처음이휴영) : 그림자 없는 그늘에 고요히 앉아서 그림자를 쉬고 달아나기를 멈추면
處靜以息迹(처정이식적) : 곧 일체 두려움도 쉬는 것이니라.

道不可見(도불가견) : 도는 가히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요.
道不可聞(도불가문) : 도는 가히 귀로써 듣지 못하는 것이니,
知者不言(지자불언) :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言者不知(언자부지) :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는 것이라.
又言者在意(우언자재의) : 또 말하는 자는 뜻에 있는 것이니
得意忘言者(득의망언자) : 뜻을 얻고 말을 잊어버리는 자라야 
可以言(가이언) :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것이니
故고로 그러므로
視之無形(시지무형) : 보아도 형상이 없고
聽之無聲(청지무성) : 들어도 소리가 없는 것이니라.

有物渾成(유물혼성) : 한 물건이 있어 흔연히 이루어서
先生天地(선생천지) : 천지보다 먼저 났으니
至大至高(지대지고) : 지극히 크고 지극히 묘하며,
至虛至靈(지허지령) : 지극히 비고 지극히 신령하며,
浩浩蕩蕩(호호탕탕) : 넓고 넓어서 탕탕하고
歷歷明明(역역명명) : 역력히 밝고 밝아서
方隅不可定其居(방우불가정기거) : 방우로 가히 그 머묾을 정하지 못하고
劫數不能窮其壽(겁수불능궁기수) : 겁수로 능히 그 수명을 다하지 못하여
吾不知其名(오부지기명) : 내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名曰心(명왈심) : 억지로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라 하노라.

 

亦曰谷(虛明)역왈곡(허명)神(靈明)신(영명) : 또 "허령하고 영묘한 곡신이라" 하노니
遂爲三才(天地人三才)之本(수위삼재(천지인삼재)지본) : 곧 천지인 삼재의 근본이 되는 까닭에 
萬物之母(만물지모) : 만물의 어미로다.
有名無名(유명무명) : 이름이 있는 것과 이름이 없는 것,
有念無念(유념무념) : 생각이 있는 것과 생각이 없는 것이
同出於斯(동출어사) 다 한결같이 
故曰玄之又玄(고왈현지우현) : 이로부터 나왔으니 깊고 깊어서
衆妙之門(중묘지문) 모든 묘한 것들의 문이라고 부르느니라.

萬竅之風(만규지풍) : 온 세상에 부는 바람도
出一虛 入一虛(출일허 입일허) : 나올 때는 하나의 빈곳으로부터 나오고 

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빈 곳으로 들어가니
百家之論(백가지론) : 수많은 선생들이 떠들며 말하는 것도
是一心 非一心(시일심 비일심) : 모두 이 한 마음을 이야기 한 것이요, 한 마음 아닌 것은 없다.
此心 天地之逆旅(차심 천지지역려) : 마음이란 천지를 여행하는 나그네요 
天地 萬物之逆旅(천지 만물지역려) : 천지는 만물이 쉬어가는 여관이다.
此心 出無本入無竅(차심 출무본입무규) : 이 마음은 나올 때도 근본이 없고 들 때도 구멍도 없으니
有實而無乎處(유실이무호처) : 실상은 있으되 처하는 곳이 없어 
常在動用中(상재동용중) : 항상 움직이며 쓰이는 중에 있도다.
通於一 而萬事畢(통어일 이만사필이) : 하나를 통하면 만사를 끝내는 것이요
虛於心而鬼神服(허어심이귀신복) : 마음을 비우면 귀신이 감복할지니
喪己於物(상기어물) : 외부의 물질에 사로잡혀 제 몸을 상하고
失性於俗(실성어속) : 참 성품을 잃고 속된 곳에 빠지는 것을 일러
謂之倒置之民(위지도치지민) : 거꾸로 놓인 백성이라 한다.
建之以無極(건지이무극) : 무극으로써 세우고 
主之而太一(주지이태일) : 큰 하나를 주인으로 삼아
動若水靜若鏡(동약수정약경) : 움직임은 순하게 흐르는 물과 같이하고 고요하기를 밝은 거울같이 하며
應若響(응약향) : 울릴 때는 메아리같이 할 지니라.

人法天(인법천) : 사람은 하늘의 이치를 본받고
天法道(천법도) : 하늘은 도의 이치를 본받고
道法自然(도법자연) : 도는 자연의 이치를 본 받으므로
故고로 
眞人抱一專氣(진인포일전기) : 참다운 사람은 한 마음을 품고 기운을 한결같이 하나니라.
養生(양생) : 사람을 기르는 것은
如牧羊(여목양) : 양을 놓아기르는 것 같아서
鞭其後(편기후) : 그 뒤를 채찍질 하나니라.

體曰道(체왈도) : 본체를 가로되 도라 하고
用曰德(용왈덕) : 쓰임을 가로되 덕이라 하니,
用無體不生(용무체불생) : 쓰임은 본체가 없다면 나타나지 못하고
體無用不妙(체무용불묘) : 본체는 쓰임이 없다면 묘한 조화를 일으킬 수 없는 것이다.
故고로 : 그러므로
備擧道德(비거도덕) : 도와 덕을 함께 일러 말하는 까닭이 여기 있나니
請捨諸緣(청사제연) : 모든 연에 대해 묻는 것을 버리고
以觀其妙(이관기묘)  : 그 묘함을 관찰할지어다.

聖人不爭(성인부쟁) : 성인은 다투지 아니하므로 
故(고)天下莫與爭(천하막여쟁) : 천하와 더불어 다툴 일이 없고,
聖人不自大(성인부자대) : 성인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지 아니하므로
故(고)能成其大(능성기대) : 능히 큰 일을 이루느니라.
天道無親(천도무친) : 하늘의 도는 사사로이 친함이 없으나
常與善人(상여선인) : 항상 착한 사람과 더불어 같이하고
天道不言(천도불언) : 하늘의 도는 말이 없으나
亦常善應(역상선응) : 항상 잘 응하느니라.
天道若張弓(천도약장궁) : 하늘의 도는 활줄을 잡아당김과 같아서
損有餘而補不足(손유여이보부족) : 한없이 남는 것을 덜어서 만물의 부족함을 채우지만
人道却不然(인도각불연) :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아니하여
損不足而奉有餘(손부족이봉유여) : 부족한 자에게는 덜어내고 남음이 있는 자를 더 받드느니라.
五色令人盲(오색영인맹) : 세상의 화려한 색은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멀게 하고,
五聲令人聾(오성영인롱) : 세상의 소리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귀를 멀게 하는 도다.
然 美色爲甚(연 미색위심) : 하지만 아름다움과 음욕이 가장 심하니
一爲花箭(일위화전) : 하나는 꽃을 장식한 화살이 되고
一爲伐性斧(일위벌성부) : 하나는 성품을 베어 없애는 도끼가 되는지라.
故(고) 聖人(성인) : 그런 까닭에 성인은
爲腹不爲目(위복불위목) :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느니라.
天之穿之(천지천지) : 사람들이 하늘에 낸 구멍을
日夜不止(일야부지) :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衆人(중인) : 뭇 사람들은
顧塞其竇(고색기두) : 돌아보아 그 구멍을 막느니라.

聖人(無名)성인(무명) : 이름할 수 없는 성인과
神人(無功)신인(무공) : 공을 나타내지 않는 신인과
至人(無己)지인(무기) : 나라는 것을 내세우지 않는 지인은
抱道德之眞實(포도덕지진실) : 도덕의 진실함을 알아서
虛心無我(허심무아) : 마음을 비우고 나 라는 내가 없어서
常遊於無物之域(상유어무물지역) : 항상 물형이 없는 지경에서 노니느니라.
以仁義 天下國家(이인의 천하국가) : 어짐과 의로움으로 세상을 다스리려는 것은
爲浮華(위부화) : 허망한 화려함이니
堯舜之道(요순지도) : 요순의 도는 
可以爲衆父(가이위중부) : 가히 만물의 아버지는 될 수 있으나,
不可以爲衆父父(불가이위중부부) : 가히 만물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되지 못하느니라.
人世大夢也(인세대몽야) : 인간 세상은 큰 꿈이고
大夢之中(대몽지중) : 큰 꿈 가운데는 
必有大覺之王(필유대각지왕) : 반드시 크게 깨친 왕이 있는지라.
故(고)大覺然後(대각연후) : 그런고로 크게 깨친 뒤에 
知此其大夢也(지차기대몽야) : 세상이 그 큰 꿈임을 알게 되는 것이나
然則莊周與胡蝶(연즉장주여호접) : 꿈을 꾸는 사람도 꿈속에서 나비로 변신했던 사람도 
俱爲夢也(구위몽야) : 다 함께 꿈이니라.

 

도가귀감(道家龜鑑)
  
有物渾成(유물혼성)하야 先生天地(선생천지)하니 至大至高(지대지고)하고 至虛至靈(지허지영)하며 
浩浩蕩蕩(호호탕탕)하고 歷歷明明(역역명명)하야 方隅不可定其居(방우불가정기거)요
劫數不能窮其壽(겁수불능궁기수)라 吾不知其名(오부지기명)일새 名曰心(명왈심)이라 하노라.
亦曰谷(虛明)神(靈明)역왈곡(허명)신(영명)이니 
遂爲三才(天地人三才)之本(수위삼재(천지인삼재)지본)이라 
萬物之母(만물지모)로다 
有名無名(유명무명)과 有念(유념)과 無念(무념)이 同出於斯(동출어사)일새 
故曰玄之又玄(고왈현지우현)하야 衆妙之門(중묘지문)이니라.

한 물건이 있어 흔연히 이루어서 천지보다 먼저 났으니 지극히 크고 지극히 묘하며, 
지극히 비고 지극히 신령하며, 넓고 넓어서 탕탕하고 역력히 밝고 밝아서 방우로 가히 그 머묾을 정하지 못하고 
겁수로 능히 그 수명을 다하지 못하여 내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억지로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라 하노라. 
또 {허령하고 영묘한 곡신이라} 하노니 곧 천지인 삼재의 근본이 되는 까닭에 만물의 어미로다. 
이름이 있는 것과 이름이 없는것, 생각이 있는 것과 생각이 없는 것이 다 한결같이 
이로부터 나왔으니 {깊고 깊어서 모든 묘한 것들의 문}이라고 부르나니라.

體曰道(체왈도)요 用曰德(용왈덕)이니 用無體不生(용무체불생)이요. 體無用不妙(체무용불묘)라
故(고)로 備擧道德(비거도덕)인대 請捨諸緣(청사제연)하고 以觀其妙(이관기묘)니라.

체를 가로되 도라 하고 용을 가로되 덕이라 하니, 
용은 체가 없으면 나지 못하고 체는 용이 없으면 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와 덕을 함께 일러 말하는 까닭이 여기 있나니라. 
모든 반연을 버리고 그 묘한 것을 관찰할지어다.

聖人(無名) 神人(無功)성인(무명) 신인(무공) 
至人(無己)(지인(무기)은 抱道德之眞實(포도덕지진실)하야
虛心無我(허심무아)하야 常遊於無物之域(상유어무물지역)하나니 
以仁義(이인의) 天下國家(천하국가)로 爲浮華(위부화)니 
堯舜之道(요순지도)는 可以爲衆父(가이위중부)로대 不可以爲衆父父(불가이위중부부)니라 
人世(인세)는 大夢也(대몽야)라 大夢之中(대몽지중)에 必有大覺之王(필유대각지왕)이라 
故(고)로 大覺然後(대각연후)에 知此其大夢也(지차기대몽야)니
然則莊周與胡蝶(연즉장주여호접)이 俱爲夢也(구위몽야)로다.

이름할 수 없는 성인과 공을 나타내지 않는 신인과 
나라는 것을 내세우지 않는 지인은 도덕의 진실함을 알아서 마음을 비우고 
나라는 내가 없어서 항상 물형이 없는 지경에서 노니 나니 
인의와 천하와 국가로써 허망한 부화를 삼는 것이니라. 
요순의 도는 가히 만물의 아버지는 될 수 있으나, 
가히 만물 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되지 못하나니라. 
인간의 세상은 큰 꿈 이다. 큰 꿈 가운데는 반드시 크게 깨친 대각의 왕이 있는지 라. 
그런고로 크게 깨친 뒤에 세상이 그 큰 꿈임을 알게 되는 것이나 장주와 호접이 함께 꿈이니라.

人法天(인법천)하고 天法道(천연도)하며 道法自然(도법자연)일새 
故(고)로 眞人(진인)은 抱一專氣(포일전기)니라. 
養生(양생)은 如牧羊(여목양)하야 鞭其後(편기후)니라.

사람이 하늘을 법받고 하늘이 도를 법받고 도는 자연을 법 받을새, 
고로 참사람은 하나를 안고 기운을 오로지 하나니라. 
사람을 기르는 양생은 염소를 먹이는 것 같아 그 뒤를 채찍질 하나니라.

聖人(성인)은 不爭(부쟁)일새 故(고)로 天下莫與爭(천하막여쟁)이오. 
聖人(성인)은 不自大(부자대)일새 故(고)로 能成其大(능성기대)니라. 
天道(천도는)는 無親(무친)하야 常與善人)상여선인)이요. 
天道(천도)는 不言(불언)하야 亦常善應(역상선응)이니라. 
天道는 若張弓(약장궁)하야 損有餘而補不足(손유여이보부족)하되 
人道(인도)는 却不然(각불연)하야 損不足而奉有餘(손부족이봉유여)니라. 
五色(오색)은 令人盲(영인맹)하고 五聲(오성)은 令人聾(영인롱)이로다.
然(연)이나 美色爲甚(미색위심)하니 一爲花箭(일위화전)이요.
一爲伐性斧(일위벌성부)라. 故(고)로 聖人(성인)은 爲腹不爲目(위복불위복)이니라. 
天之穿之(천지천지)에 日夜不止(일야부지)나 衆人(중인)은 顧塞其竇(고색기두)니라.


성인은 다투지 아니할 새 천하가 더불어 다투지 않고, 

성인 은 스스로 큰 척하지 아니하므로 능히 그 큰 것을 이루 나니 라. 
천도는 사사로이 친함이 없으나 항상 착한 사람과 더불어 길이하고 천도는 말이 없으나 또한 항상 잘 응하나니라. 
천도 는 활줄을 잡아당겨 벌림과 같아서 천도의 한없이 남음이 있 는 것을 덜어서 
만물의 부족함을 도우나 인도는 그렇지 아니 하여 부족함을 덜고 남음이 있는 자를 더 받드나니라. 
오색은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멀게 하고, 오성은 사람으로 하여금 귀 를 멀게 하는 도다. 
그러나 아름다운 미색이 가장 심하니 하 나는 꽃을 장식한 화살이 되고 하나는 성품을 베어 없애는 도끼가 되는지라. 
그런 까닭에 성인은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 지 않느니라. 
하늘을 뚫어서 낮과 밤에 그치지 아니하나 뭇 사람들은 돌아보아 그 구멍을 막나니라.

道人(도인)은 被葛懷玉(피갈회옥)일새 故(고)로 德有所長(덕유소장)이오 
形有所忘(형유소망)이로다. 甚愛(심애)는 必大費(필대비)오 多藏(다장)은 必厚亡(필후망)이라. 
故(고)로 禍莫大於不知足(화막대어부지족)이니라. 信者不美면 美言不信(신자불미 미언불신)이오.
又輕諾(우경낙)이면 必寡信(필과신)이오. 多易(다이)면 必多難(필다난)이니라.

도인은 갈포를 입으나 옥을 품는 까닭에 덕이 기러나고 몸을 잊어버리는 것이니라. 
무엇이든 사랑하기를 심하게 하면 반드시 크게 허비하는 바가 있고, 
감추기를 많이 하면 반드시 일이 없어지나니라, 
재앙은 족한 줄을 모르고 지내는 데서 더 커지는 법이니라. 
믿는 자가 아름답게 여기지 않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말이라도 믿어 주지 않고, 
허락하기를 가볍게 하면 반드시 믿는 자가 적고, 쉬운 것이 많으면 반드시 어려운 것도 많다.

大功(대공)은 無功(무공)하고 至親(지친)은 無禮(무례)하며 
眞喜(진희)는 無笑(무소)하고 眞哭(진곡)은 無聲(무성)이로다. 
空谷(공곡)은 善應(선응)하고 虛室(허실)은 生白(생백)하나니
人能虛己而遊世(인능허기이유세)면 孰能害之(숙능해지)리요. 
虛名浮利(허명부리)는 縱得之(종득지)나 未必福(미필복)이요. 
縱失之(종실지)나 未必禍(미필화)니라. 
古之得道者(고지득도자)는 窮亦樂通亦樂(궁역낙통역락)하나니 
此所樂(차소락)은 非窮通(비궁통)이니 窮通(궁통)은 乃外物也(내외물야)니라.

큰 공덕을 짓는 이는 공덕을 지은 상이 없고 지극히 친한 데는 형식적인 예절이 없으며, 
참으로 기쁜 데는 웃음이 없고 참으로 슬프면 울음소리도 없으니 
빈 골짜기를 잘 울리고 빈 집에는 밝은 빛이 나타나니 
사람이 능히 제 몸을 낮추어서 비게하고 세상에 놀면 누가 능히 해칠 것인가? 
빈 이름과 뜬 이익은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복되지 않고 비록 잃더라도 재 앙이 없는 바라. 
옛날에 도를 얻은 자는 궁할 때도 즐겁게 살 고 통할 때도 즐겁게 살았으니 
이렇게 즐거워하는 바는 궁하 고 통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마음밖에 있는 까닭이니 라.

世籠爵祿者(세롱작록자)는 因其所好而籠之(인기소호이롱지)로대 
我若無所好(아약무소호)면 則超出乎萬物之外(즉초출호만물지외)니 誰得而籠之(수득이롱지)리요.

세상 사람으로서 작록에 얽혀 매어 있는 자는 그 좋아하는 바를 인하여 얽혀 매어 있는 것이로되 
만일 내가 좋아하는 바가 없으면 곧 만물밖에 뛰어나서 있게 되나니 누가 얽어맬 수 있으리요.


人若呼我牛呼我馬(인약호아우호아마)라도 
我俱應之(아구응지)니 我其實(아기실)일새 人與之名(인여지명)이라.
我若不受(아약불수)면 再受其殃(재수기앙)이니라. 
謙懷下心(겸회하심)은 處衆之德也(처중지덕야)니라 
江河能爲百谷王者(강하능위백곡왕자)는 以其善下之故處衆之德也(이기선하지고야)니라 

사람이 나를 불러 소라고 하건 말이라 부르건 내가 함께 다 옳다고 응할지니 
내게 그런 사실이 있어 그렇게 부른 것 이니 이를 피하면 다른 재앙이 있을 지로다. 
겸손하고 마음을 낮추는 것은 여러 사람과 같이 사는데 덕이 되리라. 
강과 하 수가 일백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 가운데 왕이 되는 것은 
그 것은 다른 물보다 그 아래에 처하여 있기 때문이니라.

天無不覆(천무부복)하고 地無不載(지무부재)하나니 君子法之(군자법지)어다 
人心生一念(인심생일념)을 天地悉皆知(천지실개지)라 
人間私語(인간사어)는 天聞若雷(천문약뇌)오 暗室欺心(암실기심)은 神目如電(신목여전)이니라
君子(군자)는 博取衆善(박취중선)하야 以輔其身(이보기신)이니 
書不必孔子之言(서불필공자지언)이오 藥不必扁鵲之方(약불필편작지방)이라
合義者從(합의자종)이오 愈病者良(유병자야)이니라.

하늘은 덥지 않음이 없고 땅은 싣지 않음이 없으니 군자는 이 를 법 받으라. 
사람이 마음에 한 생각 내는 것은 천지가 다 아는 바다. 
인간이 사사로이 말하는 것은 하늘이 듣기를 우뢰 같이 듣 고 
어둔 방에서 마음을 속이는 것은 신령한 눈에는 번갯불 같으 니라. 
군자는 널리 많은 착한 행실을 취해 그 몸을 도울지니 
글 이라면 공자만 취하고 약이라면 편작만 취할 것이 아니니라. 
의 리에 맞고 병에 들으면 다 글이요 약이 되리라.

萬竅之風(만규지풍)은 出一虛入一虛(출일허입일허)이니 
百家之論(백가지론)도 是一心非一心(시일심비일심)이니라
此心(차심)은 天地之逆旅(천지지역려)요 天地(천지)는 萬物之逆旅(만물지역려)로다
此心(차심)은 出無本入無竅(출무본입무규)하며 
有實而無乎處(유실이무호처)하야 常在動用中(상재동용중)이로다
通於一(통어일)하면 而萬事畢(이만사필)이요 
虛於心(허어심)하면 而鬼神服(이귀신복)이니라
喪己於物(상기어물)하고 失性於俗(실성어속)을 謂之倒置之民(위지도치지민)이니라
建之以無極(건지이무극)하고 主之而太一(주지이태일)하며 
動若水(동약수)하고 靜若鏡(정약경)하며 應若響(응약향)이니라.

일만 구멍에서 부는 바람도 나올 때는 한 빈곳으로 나오고 들어가는 것도 한 곳이니 
제자백가의 선생들이 떠들어 지은 것도 모두 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요 그곳으로 돌아가느니라. 
천지 만물은 여관집이다. 마음은 나올 때도 근본이 없고 들 때도 구멍도 없으니 
실상은 있으되 처하는 곳이 없어 항상 움직이며 쓰이는 곳에 있도다. 
하나를 통하면 만사를 끝내는 것이요 마음을 비우면 귀신이 감복할지니 
제 몸을 외물에 상하고 성품을 풍속에 잃음을 일러 거꾸로 놓인 백성이라 한다. 
무극으로써 세우고 태일로서 주를 삼으며 동하매 순하게 흐르는 물과 같이하고 
고요하기를 밝은 거울같이 하며 울릴 때는 메아리같이 할 것이니라.

人有畏影避迹者(인유외영피적자)는 足愈數而迹愈多(족유삭이적유다)하고 
走愈疾而影愈急(주유질이영유급)이어늘 
不知處陰以休影(부지처음이휴영)하고 處靜以息迹(처정이식적)이로다.

사람이 있어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여 더욱 빨리 달리나 더욱 자취가 급하게 움직일 뿐이다. 
그림자 없는 그늘에 고요히 앉아서 그림자를 쉬고 달아나기를 멈추면 곧 일체 두려움도 쉬는 것이니라.

道不可見(도불가견)이오 道不可聞(도불가문)이니 知者(지자)는 不言(불언)이오 
言者(언자)는 不知(부지)니라 又言者(우언자)는 在意(재으)니 得意忘言者(듣의망언자)라사 
可以言(가이언)이니 故(고)로 視之無形(시지무형)이오 聽之無聲(청지무성)이니라.

도는 가히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요. 
도는 가히 귀로써 듣지 못하는 것이니,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는 것이라. 
또 말하는 자는 뜻에 있는 것이니 뜻을 얻고 말을 잊어버리는 자라야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것이니 
그럼으로써 보아도 형상이 없고 들어도 소리가 없는 것이니라.

 

 

소서(素書)
  
黃石公素書 序(황석공소서 서)
張商英註(장상영주)

序(서)
황석공 소서 6편을 상고해 보면 전한열전(前漢列傳)에서 온 것이다. 
황석공이 이교(橋)에서 자방(子房-張良)에게 전수한 책자가 바로 이것이다.
소서는 세상 사람들이 대개 삼략(三略)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 전해진 것이다. 
진(晋)의 전란 때 도적이 자방의 무덤을 파 해쳐 옥침 중에서 이 책을 얻은 것이다. 
무려 1,316언(言)으로 되어 있으며 상(上)에는 비계가 있다. 
즉 비계란 {불량한 자, 불신명한 자, 성현이 아닌 자에게는 이 책을 전할 수 없고, 
만약 받을 만한 위인이 못되는 자에게 이 책을 전하게 되면 반드시 재앙이 미치게 될 것이다. 
또한 적절한 인재를 얻고 전하지 않으면 또한 그 재앙을 받으리 라}하였다.
오호라! 그 신중함이 이와 같다. 
황석공은 장량을 얻어서 이 책을 전했고 장량은 그 전할 자를 얻지 못하여 그대로 매장한 것이다. 
그 후 500여 년만에 도적이 이것을 발굴해 낸 것이다. 
이 때부터 소서는 인간 세상에 전하여 졌다. 
그러나 전하는 것은 황석공의 말 뿐이다. 
공의 뜻을 어찌 다 말하리오. 
하지만 내 이르나니 천인지도(天人之道)는 아직도 서로 활용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옛날에 성현들은 모두 그 정성(마음)을 다했다. 
요임금은 하늘의 뜻에 따랐고, 순임금은 칠정(七政)으로 다스렸다. 
우임금은 구주로써 천도를 논했다고 전한다. 
문왕은 팔괘를 소중히 했고, 주공은 천지 사시를 맡는 관리를 두고 또 삼공을 세워 음양을 고르게 다스렸다. 
또 공자는 무언하고자 했고, 노자는 유무로써 이를 논했다. 
음부경에 말하기를 {온 우주는 손안에 있으며 만화가 그 몸에서 생(生)한다}고 했다. 
도가 이에 이르면 귀신의 변화 따위는 모두 나의 술을 피할 수 없다. 
하물며 형명(刑名)이나 그 도수이겠는가?
황석공은 진의 은군자(隱君子)이다.
그 서(書)는 지극히 간략하나 그 뜻은 실로 깊다. 
요 순 우 문왕 부열의 전설이 있고, 주공 공자 노자라도 여기에서 벗어 나지 못하였다. 
그런즉 황석공은 진(秦)이 쇠망하고 한이 장차 흥성 하려는 것을 잘 안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장량에게 전수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이 글을 장량이 다 알았다 할 수 있으리오. 
대개 장량이, 장량이 된 이유는 한 두 마디를 쓴 것에 불과하다. 
그 말에 {음계가 밖으로 새면 패망한다}라는 말을 써서 

임금(유방)에게 권하여 한신을 왕으로 봉한 것이다.
또 {작은 원한을 용서 못하면 큰 원한이 반드시 발생한다} 는 말도 써서 
유방에게 상신하여 옹치(雍齒)를 후(侯)로 봉한 것이다. 
그리고 또 {책략을 불인(不仁)하게 결정하는 자는 위태로워진다}는 말을 써서 육국을 봉해준 것이다. 
{변통을 베풀고 권도를 이룸은 맺힌 것을 푼다}는 말을 써서 사호(四皓) 를 조치하여 혜제(惠帝)를 세웠다. 
그리고 또 {길함은 족함을 아는 것보다 더 길한 것이 없다}는 말을 써서 

유후(留侯)를 택하여 그 봉함을 스스로 한 것이다.
또 {자신이 좋아서 즐기는 것을 끊고 그 욕심을 금하는 것은 누된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는 
말을 써서 세상사를 버리고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선인이 되어 놀았다, 
아아! 유박기재(遺粕棄滓)라.

찌꺼기를 조금 써서 진과 항우를 패망케 하고 패공(沛公)을 도와 제왕이 되게 했다. 
하물며 순연하게 쓰고 깊이 나아간 사람들이랴! 한 이래 장구 문사의 학식으로 도를 아는 자는 드물다.
제갈량 왕맹 방교 베도 등은 한 때의 현상(賢相)으로 불리기는 하나

선생의 대도에 비하면 아직 방불할 정도에도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을 부도하고, 불신명하며, 현인이나 성현이 못되는 자에게는 전하지 아니함도 이러한 까닭이다. 
유무를 떠난 것을 도라 한다.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이 신인이고 
유로써 무를 만드는 것도 성인이고 무를 가지고 유 를 만드는 것을 현인이라 한다. 
이 네 가지가 아니면 이 책자 를 입으로 외울 수는 있으나 몸으로 행하지는 못할 것이다.


 

제1장. 원시(原始)

 

夫道德仁義禮五者(부도덕인의예오자), 一體也(일체야)
(무릇 도, 덕, 인, 의, 예, 다섯 가지는, 한 몸이라.)

 

道者(도자), 人之所蹈(인지소도),
使萬物(사만물), 不知其所由(부지기소유).
("도" 는, 사람이 가야할 바이니,만물이, 그 말미암은 바를 알지 못함이요.)

 

德者(덕자), 人之所得(인지소득),
使萬物(사만물), 各得其所欲(각득기소욕).
("덕" 은, 사람이 얻은 바이니,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하고자 하는 바를 얻게 함이오.)

 

仁者(인자), 人之所親(인지소친),
有慈惠惻隱之心(유자혜측은지심) 以遂其生成(이수기생성).
("인" 은, 사람의 친한 바니,자혜, 측은의 마음이 있어서, 그 생하고 성함을 이루어 줌이오.)

 

義者(의자), 人之所宜(인지소의),
賞善罰惡(상선벌악), 以立功立事(이입공입사).
("의" 는, 사람의 마땅한 바니,잘한 것을 상주고, 악을 벌주어, 공을 세우고 일을 세움이오.)

 

禮者(예자), 人之所履(인지소이),
夙興夜寐(숙흥야매), 以成人倫之序(이성인윤지서).
("예" 는, 사람의 행할 바니, 일찍 일어나고, 밤에 자서, 인륜의 차례를 이룸이니,)

 

夫欲爲人之本(부욕위인지본), 不可無一焉(불가무일언).
(무릇, 사람이 되고자 하는 근본이므로, 가히, 한 마디도 없어서는 안 될 바니라.)

 

賢人君子(현인군자),
明於盛衰之道(명어성쇠지도), 通乎成敗之數(통호성패지수),
(성인, 군자는, 성쇠의 도에 밝고, 성패의 수에 통하며,)

 

審乎治亂之勢(심호치란지세), 達乎去就之理(달호거취지리).
(치란의 형세에 살피고, 거취의 이치에 달하나니라.)

 

故(고),
潛居抱道(잠거포도), 以待其時(이대기시),
(고로, 잠겨 살며, 도를 안고서, 때를 기다리나니,)

 

若時至而行則能極人臣之位(약시지이행즉능극인신지위),
(만일, 때가 이르러 행한 즉, 능히 인신의 위를 다하고,)

 

得機而動則能成絶代之功(득기이동즉능성절대지공),
(기틀을 얻어서, 동한 즉, 능히 절대의 공을 이루나니,)

 

如其不遇(여기불우), 沒身而已(몰신이이).
(만일, 그 시기를 못 만나면, 몸을 뒤로 물러날 따름이니라.)

 

是以(시이), 其道足高而名重於後代(기도족고이명중어후대).
(그럼으로써, 그 "도" 가 족히 높아져, 이름이 후대에 중하나니라.)

 

右第一章(우제일장), 言道不可以無始(언도불가이무시).
(이상의 제1장은, "도" 는, 가히 비롯이 있을 수 없음을, 말함이니라.)

 


 

제2장. 정도(正道)

 

德足以懷遠(덕족이회원), 信足以一異(신족이일이), 義足以得衆(의족이득중),
("덕" 이, 족히 먼 데를 품어 주며, "신" 이, 족히 다른 것을 한가지로 하며, "의" 가, 족히 대중의 뜻을 얻으며,)

 

才足以鑑古(재족이감고), 明足以照下(명족이조하), 此(차), 人之俊也(인지준야).
("재능" 은, 족히 옛 것을 거울 삼으며, 밝은 것이, 족히 아래를 비춰 보면, 이는 사람 가운데 준걸이오.)

 

行足以爲儀表(행족이위의표), 智足以決嫌疑(지족이결혐의),
(행실이, 족히 거동에 표본이 되며, 지혜가, 족히 혐의를 결단하며,)

 

信可以使守約(신가이사수약), 廉可以使分財(염가이사분재),
(믿음은, 가히 언약을 지키며, 청렴은, 가히 재물을 나눌 만 하면,)

 

此(차)는, 人之豪也(인지호야).
(이는, 사람 가운데 호걸이오.)

 

守職而不廢(수직이불폐), 處義而不回(처의이불회),
("직" 을 지켜서 폐하지 않으며, "의" 에 처해서 회피치 않으며,)

 

見嫌而不苟免(견혐이불구면), 見利而不苟得(견리이불구득),
(혐의를 보이고, 구차히 면하려 아니하며, 이익을 보고 구차히 얻으려고 안하면,)

 

此(차)는, 人之傑也(인지걸야).
(이는, 사람의 걸이니라.)

 

右第二章(우제이장),


言道不可以非正(언도불가이비정).
(이상의 제2장은, "도" 가, 가히 바르지 아니함이 없음을 말함이니라.)


 

제3장. 구인지지(求人之志)

 

絶嗜禁欲(절기금욕) 所以除累(소이제루)
(즐김을 끊고, 하고자 함을 금함은, 얽힘을 제거하는 것이요.)

 

抑非損惡(억비손악) 所以禳過(소이양과)
(참고 억제하며, 악을 더는 것은, 허물을 비는 것이요.)

 

貶酒闕色(폄주궐색) 所以無汚(소이무오)
(술을 적게 먹고, 색을 멀리함은, 더러움을 없게 하는 것이요.)

 

避嫌遠疑(피혐원의) 所以不誤(소이불오)
(혐의를 피하고, 의심을 멀리함은, 그르치지 않는 것이요)

 

博學切問(박학절문) 所以廣知(소이광지)
(배움을 넓히고, 물음을 간절히 함은, 아는 것을 넓히는 것이요.)

 

高行微言(고행미언) 所以修身(소이수신)
(행실을 높이하고, 말을 공손히 함은, 몸을 닦는 것이요.)

 

恭儉謙約(공검겸약) 所以自守(소이자수)
(공손, 검박, 겸손, 절약은, 자신을 지키는 것이요.)

 

深計遠慮(심계원려) 所以不窮(소이불궁)
(깊이 계산하고, 멀리 생각함은, 궁색하지 않은 것이요.)

 

親仁友直(친인우직) 所以扶顚(소이부전)
(어짐을 가까이하고, 곧음을 벗함은, 엎어짐을 붙드는 것이요.)

 

近恕篤行(근서독행) 所以接人(소이접인)
(용서를 잘하고, 행실을 돈독히 함은, 사람을 접하는 것이요.)

 

任材使能(임재사능) 所以濟務(소이제무)
(재목에 맡기고, 능함을 부림은, 일을 잘하는 것이요.)

 

担惡斥讒(단악척참) 所以止亂(소이지란)
(악을 꺼리고, 참소를 멀리함은, 난을 그치게 하는 것이요.)

 

推古驗今(추고험금) 所以不惑(소이불혹)
(옛일을 미루어, 오늘을 증험함은, 혹하지 않는 것이요.)

 

先揆後度(선규후도) 所以應卒(소이응졸)
(먼저 처리하고, 뒤에 헤아림은, 창졸지간에 응하는 것이요.)

 

設變致權(설변치권)
所以解結(소이해결)
(변통을 베풀고, 권도를 이룸은, 맺은 것을 푸는 방법이요.)

 

括囊順會(괄랑순회) 所以無咎(소이무구)
(주머니를 묶어 두고, 모임에 따름은, 허물이 없는 것이요.)

 

獗獗梗梗(궐궐경경) 所以立功(소이입공)
(굳세고, 강함은, 공을 세우는 것이요.)

 

孜孜淑淑(자자숙숙) 所以保終(소이보종)
(부지런하고, 맑은 것은, 끝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니라.)

 

右第三章(우제삼장)


言志不可以妄求(언지불가이망구)
(이상의 제3장은,
뜻을 망령되이 구하지 말아야 함을 말함이니라.)

 

 

제4장. 본덕종도(本德宗道)

 

夫志心篤行之術(부지심독행지술)
(무릇, 마음과 뜻을, 돈독하게 행하는 방법은,)

 

長莫長於博謀(장막장어박모)
(크고, 널리 꾀한 만큼, 넉넉함이 없고,)

 

安莫安於忍辱하고(안막안어인욕)
(편안한 것은, 욕됨을 참는 만큼, 편안함이 없고,)

 

先莫先於修德(선막선어수덕)
(먼저할 것은, 덕을 닦는 만큼, 먼저할 것이 없고,)

 

樂莫樂於好善(낙막락어호선)
(즐거움은, 선을 좋아함 보다, 더한 즐거움이 없고,)

 

神莫神於至誠(신막신어지성)
(신령스러운 것은, 지성스러움 보다, 신령스러움이 없고,)

 

明莫明於體物(명막명어체물)
(밝음은, 사물의 이치를 체득함보다, 밝은 것이 없고,)

 

吉莫吉於知足(길막길어지족)
(길한 것은, 족한 것을 앎보다, 길한 것이 없고,)

 

苦莫苦於多願(고막고어다원)
(괴로운 것은, 원하는 것이 많은 만큼, 괴로운 것이 없고,)

 

悲莫悲於精散(비막비어정산)
(슬픈 것은, 정신이 흩어짐만큼, 슬픈 것이 없고,)

 

病莫病於無常(병막병어무상)
(병듦은, 상없는 만큼, 병듦이 없고,)

 

短莫短於苟得(단막단어구득)
(짧은 것은, 구차히 얻음만큼, 짧은 것이 없고,)

 

幽莫幽於貪鄙(유막유어탐비)
(어두운 것은, 욕심 내고, 인색함보다, 어두운 것이 없고,)

 

孤莫孤於自恃(고막고어자시)
(외로움은, 자신만을 믿는 것 만큼, 외로움이 없고,)

 

危莫危於任疑(위막위어임의)
(위태로움은, 의심으로 맡김보다, 위태로움이 없고,)

 

敗莫敗於多私(패막패어다사)
(패됨은, 사사로움이 많음보다, 패됨이 없나니라.)

 

右第四章(우제사장)


言本宗(언본종) 不可以離道德(불가이이도덕)
(이상의 제4장은, 근본 머리는, 도덕을 떠나서는, 불가함을 말함이니라.)

 

 

제5장. 준의(遵義)

 

以明示下者(이명시하자), 闇(암),
(밝음으로써, 아랫사람에게 보여주는 자는, 어둡고,)

 

有過不知者(유과부지자), 蔽(폐),
(허물이 있어도, 알지 못하는 자는, 가린 것이고,)

 

迷而不返者(미이불반자), 惑(혹),
(희미해서, 돌아오지 못하는 자는, 미혹한 것이고,)

 

以言取怨者(이언취원자), 禍(화),
(말로써, 원망을 취한 자는, 재앙을 받고,)

 

令與心乖者(영여심괴자), 廢(폐),
(명령이, 마음으로부터 어긋난 자는, 폐하고,)

 

後令謬前者(후령유전자), 毁(훼),
(뒤의 명령이, 앞의 명령과 틀린 자는, 어그러지고,)

 

怒而無威者(노이무위자), 犯(범),
(성을 내되, 위엄이 없는 자는, 범하고,)

 

好直辱人者(호직욕인자), 殃(앙),
(곧기를 좋아하고, 사람을 욕되게 하는 자는, 재앙을 받고,)

 

戮辱所任者(육욕소임자), 危(위),
(맡은 바를, 욕한 자는, 위태롭고,)

 

慢其所敬者(만기소경자), 凶(흉),
(그 공경할 바에, 거만한 자는, 흉하고,)

 

貌合心離者(모합심리자), 孤(고),
(모양으로 합하되, 마음이 떠난 자는, 외롭고,)

 

親讒遠忠者(친참원충자), 亡(망),
(아부하는 자를 친하고, 충성한 자를 멀리한 자는, 망하고,)

 

近色遠賢者(근색원현자), 渾(혼),
(색을 가까이 하고, 어진 이를 멀리한 자는, 어둡고,)

 

女謁公行者(여알공행자), 亂(난),
(여자 보임을, 공공연히 행하는 자는, 어지럽고,)

 

私人以官者(사인이관자), 浮(부),
(사사롭게 벼슬을 얻은 자는, 뜨고,)

 

凌下取勝者(능하취승자), 侵(침)
(아래 사람을, 능멸하여 이김을 취한 자는, 보복당하고,)

 

名不勝實者(명부승실자), 耗(모),
(이름보다, 실력이 못하는 자는, 덜리고,)

 

略己而責人者(약기이책인자), 不治(불치),
(자기는 대강하고, 남을 책망하는 자는, 다스려지지 않고,)

 

自厚而薄人者(자후이박인자), 棄(기),
(자기에게는 후하고, 남에게 박한 자는, 버림받고,)

 

以過棄功者(이과기공자), 損(손),
(허물로써, 공을 버린 자는, 덜고,)

 

衆下外異者(중하외이자), 淪(윤),
(아랫사람들의 마음이, 밖으로 빗나가고 마음이 다르면, 빠지고,)

 

旣用不任者(기용불임자), 疎(소),
(이미 채용해서, 맡기지 않는 자는, 성글고,)

 

行賞人色者(행상인색자), 沮(저),
(포상을 행하되, 아까워 하는 자는, 막히고,)

 

多許少與者(다허소여자), 怨(원),
(받기를 많이 하고, 주기를 적게 하는 자는, 원망듣고,)

 

旣迎而拒者(기영이거자), 乖(괴),
(이미 맞이해 막는 자는, 어그러지고,)

 

薄施後望者(박시후망자), 不報(불보),
(베풂을 박하게 하고, 바라기를 두터이 하는 자는, 복되지 않고,)

 

貴而忘賤者(귀이망천자), 不久(불구),
(귀하여서, 천함을 잊은 자는, 오래가지 못하고,)

 

念舊怨而棄新功者(염구원이기신공자), 凶(흉),
(옛적 원망을 생각해서, 새로운 공을 내버리는 자는, 흉하고,)

 

用人不得正者(용인부득정자), 殆(태),
(사람을 씀에, 바름을 얻지 못한 자는, 위태롭고,)

 

强用人者(강용인자), 不畜(불축),
(강제로 사람을 쓰는 자는, 성장하지 못하고)

 

爲人擇官者(위인택관자), 亂(난),
(개인을 위해, 벼슬을 내린 자는, 어지럽고,)

 

失其所强者(실기소강자), 弱(약),
(그 강한 바를 잃어버린 자는, 약하고,)

 

決策而不仁者(결책이불인자), 險(험),
(꾀를 결단함이, 어질지 못한 자는, 험난하고,)

 

陰計外泄者(음계외설자), 敗(패),
(비밀이, 밖으로 새는 자는, 패하고,)

 

厚斂薄施者(후렴박시자), 凋(조),
(거둠은 후하게, 베풂은 얇게 하는 자는, 마르고,)

 

戰士貧(전사빈), 游士富者(유사부자), 衰(쇠),
(싸우는 군사는 가난하며, 노는 선비 부한 것은, 쇠하고,)

 

貨賂公行者(화뢰공행자), 昧(매),
(재물과 뇌물을, 공변스럽게 행하는 자는, 어둡고,)

 

聞善忽略(문선홀약), 記過不忘者(기과불망자), 暴(폭),
(선한 말을 들음에 홀략하며, 남의 허물을 잊지 않는 자는, 사나웁고,)

 

所任不可信(소임불가신), 所信不可任者(소신불가임자), 濁(탁),
(맡긴 바를 믿지 아니하며, 믿은 바를 맡기지 아니하면, 혼탁하고,)

 

牧人以德者(목인이덕자), 集(집),
(사람을, 덕으로써 기른자는, 모이고,)

 

繩人以刑者(승인이형자), 散(산),
(사람을, 형벌로서 묶는 자는, 흩어지고,)

 

小功不賞則(소공불상즉) 大功不立(대공불립),
(작은 공을 상주지 아니한 즉, 큰 공이 서지 아니하고,)

 

小怨不赦則(소원불사즉) 大怨必生(대원필생),
(작은 원망을 놓지 아니한즉, 큰 원망이 반드시 나고,)

 

賞不服人(상불복인), 罰不甘心者(벌불감심자)는, 叛(반),
(상 줌이 사람을 복종치 못하며, 벌줌이 마음을 달래지 못하는 자는, 배반당하고)

 

賞及無功(상급무공), 罰及無罪者(벌급무죄자)는, 酷(혹),
(상이 공 없음에 미치며, 벌이 죄 없음에 미친 자는, 혹독하고,)

 

聽讒而美(청참이미), 聞諫而仇者(문간이구자), 亡(망),
(아부를 듣고서 아름답게 여기며, 간함을 듣고서 원수로 아는 자는 망하고,)

 

能有其有者(능유기유자), 安(안),
(능히 그 있음을 둔 자는 편안하고,)

 

貪人之有者(탐인지유자), 殘(잔).
(사람의 있음을 탐한 자는, 쇠잔하니라.)

 

右第五章(우제오장),

 

言遵而行之者(언준이행지자), 義也(의야).
(이상 제5장은, 좇아서 행해야 할 것이, 의를 말함이라.)

 

 

제6장. 安禮(안례)

 

怨在不赦小過(원재불사소과)
患在不預定謀(환재불예정모)
(원망함은, 적은 허물을 놓지 않는데 있으며, 우환은, 미리 꾀를 정하지 않는데 있고,)

 

福在積善(복재적선)
禍在積惡(화재적악)
(복은, 선을 쌓는데 있으며, 재앙은, 악을 쌓는데 있고,)

 

飢在賤農(기재천농)
寒在惰織(한재타직)
(배고픔은, 농사를 천히 하는데 있고, 추움은, 옷을 짜는 것을 게을리 한데 있고,)

 

安在得人(안재득인)
危在失事(위재실사)
(편안함은, 사람 얻는데 있고, 위태로움은, 일을 잃는데 있고,)

 

富在迎來(부재영래)
貧在棄時(빈재기시)
(부는, 오는 것을 맞는데 있으며, 가난은, 때를 버리는데 있고,)

 

上無常躁(상무상조)
下無疑心(하무의심)
(윗 사람이, 항상 조급함이 없으면, 아랫사람이, 의심이 없고,)

 

輕上生罪(경상생죄)
侮下無親(모하무친)
(윗사람을, 가벼이 여기면 죄가 나며, 아랫사람을, 업신 여기면 친함이 없다.)

 

近臣(근신) 不重(부중)
遠臣(원신) 輕之(경지)
(가까운 신하를, 중히 안 쓰면, 먼 신하가, 가벼이 가고,)

 

自疑(자의) 不信人(불신인)
自信(자신) 不疑人(불의인)
(스스로 의심하면, 남이 믿지 않고, 자기가 믿으면, 남이 의심치 않고,)

 

枉士(왕사) 無正友(무정우)
曲上(곡상) 無直下(무직하)
(굽은 선비는, 바른 벗이 없으며, 굽은 위는, 곧은 아래가 없고,)

 

危國(위국) 無賢人(무현인)
亂政(난정) 無善人(무선인)
(위태로운 나라에, 어진 사람이 없으며, 어지러운 정사에, 선한 사람이 없고,)

 

愛人深者(애인심자) 求賢急(구현급)
樂得賢者(낙득현자) 養人厚(양인후)
(사람 사랑함을 깊이 하는 자는, 어진 이 구함을 급히 하며, 어진 이 얻기를 즐겨 하는 자는, 사람 기르기를 두텁게 하고,)

 

國將覇者(국장패자) 士皆歸(사개귀)
邦將亡者(방장망자) 賢先避(현선피)
(나라를 장차 패권할 자는, 선비가 모두 돌아오고,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은, 어진 이가 먼저 피하고,)

 

地薄者(지박자) 大物不産(대물불산)
水淺者(수천자) 大魚不遊(대어불유)
(땅이 박하면, 큰 물건이 생산되지 못하며, 물이 얕으면, 큰 고기가 놀지 않으며,)

 

樹禿者(수독자) 大禽不棲(대금불서)
林疏者(임소자) 大獸不居(대수불거)
(나무 가지가 부족하면, 큰 새가 깃들지 않으며, 숲이 성글면, 큰 짐승이 살지 아니하고,)

 

山抄者(산초자) 崩(붕) 澤滿者(택만자) 溢(일)
(산이 뾰쪽하면, 무너지며, 못이 가득한 자는, 넘고,)

 

棄玉取石者(기옥취석자) 盲(맹)
羊質虎皮者(양질호피자) 辱(욕)
(옥을 버리고 돌을 취하는 자는, 어두운 사람이며,
염소 바탕에 호랑이 껍데기를 쓴 자는, 욕을 보고,)

 

衣不擧領者(의불거령자) 倒(도)
走不視地者(주불시지자) 顚(전)
(옷의 깃을 들지 않는 자는, 거꾸러지며, 달리면서 땅을 보지 않는 자는, 엎어지고,)

 

柱弱者(주약자) 屋壞(옥괴) 輔弱者(보약자) 國傾(국경)
(기둥이 약하면, 집이 무너지고, 보필이 약한 것은, 나라가 기울어지고,)

 

足寒傷心(족한상심) 人怨傷國(인원상국)
(발이 차면, 마음(심장)을 상하며, 사람이 원망하면, 나라가 상하고,)

 

山將崩者(산장붕자) 下先携(하선휴)
國將衰者(국장쇠자) 人先弊(인선폐)
(산이 장차 무너지려면, 아래가 먼저 떨어지며, 나라가 장차 쇠하려면, 사람이 먼저 피폐하고,)

 

根枯枝朽(근고지후) 人困國殘(인고국잔)
(뿌리가 마르면, 가지가 썩으며, 사람이 곤하면, 나라가 쇠잔하고,)

 

與覆車同軌者(여복차동궤자) 傾(경)
與亡國同事者(여망국동사자) 滅(멸)
(엎어진 수레로 더불어, 수레바퀴를 얽어 맨 자는 기울어지며, 망한 나라로 더불어, 일을 같이 하는 자는 멸하고,)

 

見已生者(견이생자) 愼將生(신장생)
惡其跡者(오기적자) 須避之(수피지)
(이미 산 것을 본 자는, 장차 살 것을 조심하며, 그 자취를 미워한 자는, 모름지기 피하고,)

 

畏危者(외위자) 安(안) 畏亡者(외망자) 存(존)
(위태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편안하며, 망을 두려워하는 자는, 존하나니,)

 

夫人之所行(부인지소행) 有道則吉(유도즉길) 無道則凶(무도즉흉)
(무릇 사람의 행한 바가, 도가 있은 즉 길하고, 도가 없은 즉, 흉함이라.)

 

吉者百福所歸(길자백복소귀)
(길한 자는, 일백 복이 돌아갈 것이고,)

 

凶者(흉자) 百禍所攻(백화소공) 非其神聖(비기신성) 自然所鍾(자연소종)
(흉자는, 일백 화가 치는 바니, 그 신과 성이 아니오, 스스로 심은 바니라.)

 

務善策者(무선책자) 無惡事(무악사) 無遠慮者(무원려자) 有近憂(유근우)
(착한 꾀를 힘쓴 자는, 악사가 없고, 멀리 생각이 없는 자는, 가까운 근심이 있나니라.)

 

同志相得(동지상득)
(뜻을 같이하면, 서로 얻으며)

 

同仁相憂(동인상우)
(어진 것이 같으면, 서로 근심하며,)

 

壘幢玟玖(동악상당)
(악이 한가지면, 서로 당(무리)하며,)

 

同愛相求(동애상구)
(사랑이 한가지면, 서로 구하며,)

 

同美相妬(동미상투)
(아름다움을 한가지면, 서로 시기하며,)

 

同智相謀(동지상모)
(지혜가 한가지면, 서로 꾀하며,)

 

同貴相害(동귀상해)
(귀함이 한가지면, 서로 해하며,)

 

同利相忌(동리상기)
(이로움이 한가지면, 서로 꺼리며,)

 

同聲相應(동성상응) 同氣相感(동기상감)
(소리가 한가지면, 서로 응하며, 기운이 한가지면, 서로 느끼며,)

 

同類相依(동류상의)
(종류가 같으면, 서로 의지하며,)

 

同義相親(동의상친)
(의가 한가지면, 서로 친하며,)

 

同亂相濟(동난상제)
(어려움이 한가지면, 서로 건져 주며,)

 

同道相成(동도상성)
(도가 한가지면, 서로 이루며,)

 

同藝相規(동예상규)
(재주가 같으면, 서로 경계하며,)

 

同巧相勝(동교상승)
(기교가 한가지면, 서로 이기나니,)

 

此乃數之所得(차내수지소득) 不可與理違(불가여리위)
(이것이  수의 얻는 바이니, 이치를 어기지 못할 것이니라.)

 

釋己而敎人者(석기이교인자) 逆(역) 正己而化人者(정기이화인자) 順(순)
(자신은 어기면서, 남을 가르치는 자는 거슬리고, 자기 몸을 바르고서, 남을 교화한 자는 따르나니,)

 

逆者(역자) 難從(난종) 順者(순자) 易行(역행)
(역은 따르기 어렵고, 순은 행하기 쉬운지라.)

 

難從則亂(난종즉난) 易行則理(이행즉리)
(따르기 어려운 즉, 어지럽고, 행하기 쉬운 즉, 다스려지니,)

 

如此(여차) 理身理家理國(이신이가이국) 可也(가야)
(이와 같으면, 몸을 다스리고, 집을 다스리고, 나라의 다스림도 가하니라.)

 

右第六章(우제육장) 言安而履之之謂禮(언안이이지지위예)
(이상 제6장은, 편안히 해서 밟아 가는 것을 일러서, 예라고 이름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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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은 올 한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임중도원'(任重道遠)을 꼽았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문재인정부가 개혁과제를 중단 없이 추진해 달라는 당부를 담았다.

 

교수신문은 지난 5일부터 14일까지
전국의 대학교수 8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8.8%(341명)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임중도원'을 선택했다고 24일 밝혔다.
임중도원은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태백편(泰伯篇)에 실린 고사성어다.

 

임중도원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전호근 경희대 교수(철학과)는
"문재인정부가 추진 중인 한반도 평화 구상과 각종 국내정책이
뜻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이 남아 있다"며
"굳센 의지로 잘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골랐다고 밝혔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도 주로 문재인정부의 개혁을 지지하는 뜻에서
"임중도원"(任重道遠)을 선택했다.
한 교수는 "정부의 개혁이 추진되고 있으나
국내외 반대세력이 많고 언론들은 실제의 성과조차 과소평가하며
부작용이나 미진한 점은 과대포장하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짊이 무겁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임종도원의 경구는
구태의연한 행태를 답습하는 여당과 정부 관료들에게 던지는 바이니 숙지하고 분발하기 바란다"며
현 정부의 무능과 안일한 행태에 불만을 나타낸지적도 있었다.
나머지 사자성어 후보에도 문재인정부의 개혁에 대한 소회가 반영됐다.

 
2위는 '밀운불우'(密雲不雨)였다.
23.9%(210명)의 선택을 받았다.
'구름은 가득 끼어 있는데 비는 내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건은 조성됐지만 일이 성사되지 않아 답답함과 불만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을 빗댄 말이다.
2006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적 있다.
밀운불우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다시 추천한 고성빈 제주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남북정상회담과 적대관계 종결, 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 합의, 소득주도성장 등
대단히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지만 막상 구체적인 열매가 열리지 않고
희망적 전망에만 머물러 있는 아쉬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3위는 '공재불사'(功在不舍) 15.3%(134명)가 선택되었다.
김선택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가 추천했다.
'성공은 그만두지 않음에 있다'는 뜻으로 '순자'(荀子)에 나오는구절이다.
투철한 개혁의지를 강조했다.
김 교수는 "계속 개혁에 매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행여 정부가 계속 밀어붙이다 보면 효과가 날 것이란 집단 최면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런 마음 모두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4위는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다'는 뜻의 '운무청천'(雲霧靑天)이,
5위는 '왼쪽을 바라보고 오른쪽을 돌아다 보다'는 뜻의 '좌고우면'(左顧右眄)이 차지했다.
각각 11.2%(98명)와 10.8%(95명)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골랐다.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해를 사자성어로 풀어보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50명의 예비심사단이 추천위원들이 추천한 사자성어 20개 가운데 5개를 골라 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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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사람 



내가 가진것을 다 써 버리지 않고,
여분의 것을 끝까지 남겨둘 줄 아는 사람

 말을 남겨두고 그리움을 남겨두고
 사랑도 남겨두고 정도 남겨두고
 물질도 남겨두고 건강도 남겨두면서
 다음을 기약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말을 다 해버리면
 다음에는 공허가 찾아 오고
 마음을 모두 주어 버리면

뒤를 따라 허탈감이 밀려옵니다.

 사랑을 다해버리고 나면
 다음에는 아픔이 많아 울게되고
 가진 것을 다 써버리면 불안해지고
 그리움이 너무 깊으면 몸져 눕게되고

 젊음과 건강을 유혹속에 다 써 버리면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불타는 사랑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날마다 더욱 사랑해 가는 모습이
 더 아름답습니다.

 마음의 정도 다음 사람을 위하여
 남겨두는 것이 좋고
 기쁨도 슬픔도 다 내보이지 말고
 다음에 얼마라도 감추어 두면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

 사랑중에 가장 값진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오래 참고 인내하는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으로 만나는 사랑이
 참으로 반가운 사람이고
 오래 가는 사랑이 귀중한 사랑인 것입니다


- 좋은 생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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