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경(三經)】
▶공자(BC 552∼479) : 이름 두(丘). 자 중니(仲尼). 노 나라 사람. <춘추(春秋)>
論語(논어)
공자와 제자들 간의 문답을 기본으로 하고, 공자가 수시로 한 발언과 행적,
그리고 제자들의 발언등 인생의 높은 교훈이 되는 말들이 간결하고 함축성 있게 기록되어 있다.
공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모두 함께 모아 編纂(편찬)한 것이며 孔子(공자) 일생의 言行錄(언행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언행록은 그후 각처에서 연구되어 많은 增補(증보)가 이루어졌는데
魯(노)나라에서는 모두 20편인 魯論語(노논어)가 만들어졌고,
齊(제)나라에서는 여기에 2편을 더해서 22편의 齊論語(제논어)가 생겨났다.
또 漢代(한대)에 들어서는 孔子(공자)의 집 벽속에서 論語(논어)가 나왔는데
이것은 21편으로 이루어졌고 이를 古論語(고논어)라고 한다.
이런 논어들은 그후 많은 학자들의 손을 거처 연구 되어 오다가 後漢(후한)의 鄭玄(정현)에 이르러
魯論語(노논어)를 중심으로 통일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이 우리가 오늘에 접하는 論語(논어)이다.
논어가 우리 나라에 전해 온 기록를 찾아보면 百濟(백제)14대 近仇首王(근구수왕):AD375)때
經學博士(경학박사) 王仁(왕인)이 논어를 일본에 전해주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우리 나라에서는 그 보다 더 먼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2, 論語(논어)의 構成(구성)
中庸(중용)의 약 4배에 달하는 방대한 글이며 全文(전문)15,917자나 된다
각 편 마다 첫 머리에 나오는 글자를 따서 그 편의 編名(편명)으로 삼있다.
3,論語(논어)의 內容(내용)이는 論語全編(논어전편)에 仁자가 무려 105번이나 반복해서 나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공자는 仁을 근본 바탕으로 해서 윤리관을 확립하였던 것이다.
논어 20편을 통해서 교육, 정치, 사회 등 여러 가지 문제가 거론디고 있지만 그 구심점은 모두 仁에다 두고 있다.
제자들의 이름이나 지식정도 제자들의 성격과 특성 등을 잘 알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論語20편의 내용은 모두가 하나하나 떨어진 단편적이고 분리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하나 하나가 다시없이 귀중한 金科玉條(금과옥조)이며 燦然(찬연)히 빛나는 공자의 인간상과 유학의 꽃을 피우고 있다.
유학을 인식하는데나 공자를 아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귀중한 經典(경전)이라고 할수 있다
그래서 젊은 세대를 향해서 이 소중한 경전인 논어를 읽어 보라고 충심으로 권하는 바이다.
1,孟子(맹자)편찬 배경과 四書(사서)가 되기 까지의 과정
자신의 著作(저작)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드물므로 맹자의 자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首尾一貫(수미일관)한 논조와 설득력 있는 논리의 전개,박력 있는 문장은
孟子(맹자)라는 한 聖人(성인)의 경륜과 인품을 전해주기에 손색이 없다.
孔子(공자)를 숭배하고 공자의 손자인 子思(자사)의 문인이다.
맹자는 王道政治(왕도정치)의 이상을 실천에 옮겨서 어지러운 시대를 건져보려는 간절한 뜻에서
魏(위), 齊(제)나라 등 列國(열국)을 순방하면서 遊說(유세)를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孟子七編(맹자칠편)을 저술하였다는 기록이 사마천의 史記(사기) 및 맹자 서설에 나와있다.
韓愈(한유) 柳宗元(유종원)등 거유들에 의해서 그 중요성이 다시 거론되었고
宋(송)대에 들어가 경전으로 선정되면서 국자감에서 맹자를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2,孟子(맹자)의 構成(구성)
7편의 편명은 논어와 같이 冊篇(책편)의 첫머리에 나오는 人名(인명)을 따서 篇名(편명)으로 한 것이
대분이며 어떤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3,孟子(맹자)의 內容(내용)
義는 이 착한 마음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겨 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는 孟子의 獨創的(독창적)인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醇化(순화)시키는데 매우 공이 컷으며
하나의 학설로써 완벽하게 定立(정립)하여 많은 학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는 저 유명한 四端論(사단론)에서 찾아 볼수잇다.
大學(대학), 論語(논어), 孟子(맹자)와 더불어 四書(사서)의 하나인 이 經典(경전)은 중국 송나라 때 생겨났다.
諸子百家(제자백가)의 난립된 사상을 물리치고 儒學者(유학자)를 등용하여 유학을 숭상하고
그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시도된 데서 비롯되엇다
경전발전에 국력을 기울이게 되었으며 宋朝(송조)에 이르러 程伊川(정이천).선생의 노력과 朱子(주자)註釋(주석)이 함께 첨가됨으로서
中庸(중용)이 현재와 같이 귀중한 경전 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둘째 中庸論(중용론)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 인간과 역사와의 관계를 논하였으며 그 핵심은 천명론이며 또 誠(성)이다.
어떤 일이든지 알맞게 하고 절대로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私心(사심)없는 공정한 마음을 말한다.
大學(대학)
四書五經(사서오경) 중의 하나인 이책은 중국에서 유교가 國敎(국교)로 채택된 한대 이래 五經(오경)이 기본 경전으로 전해지다가
宋代{송대}에 이르러 程伊川{정이천}선생이 당시 번성하였던 佛敎(불교)와 道敎(도교)에 맞서는 새로운 性理學(성리학)의 체계를 세우면서
禮記(예기)에서 中庸(중용)과 大學(대학)의 두편을 분리 독립시켜서 四書中心{사서중심}의 체계를 확립한데서 비롯되었다.
朱子(주자)는 여기에 章句(장구)를 짓고 자세한 해설을 붙이는 한편 錯簡(착간)을 바로 잡았다.
各論(각론)격인 전문은 경문의 해설서로서 증자의 글을 그의 문하생들이 엮은 것이라고 한다.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形而下學(형이하학)에 해당한다고 볼수있다.
아득히 B.C 10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현제 학자들의 고증에 의해서 연대를 훨씬 아래로 끌어내린다 해도 B.C 10세기 후반으로부터
B.C 6세기 초에 걸처 쓰여진 시라고 여겨지니 가장오래 된 것은 약 3000년 전인 옛날의 작품이다.
史記(사기)에 의하면 공자께서 그들 가운데 잘된 것만 300편을 골라서 詩經(시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학설에 대해서는 異論(이론)이 있으나 論語(논어)의 爲政編(위정편) 등에 詩三百(시삼백)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당시에 魯(노)나라에 통용되던 詩經(시경)이 300편 정도 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정치를 하거나 학문을 하거나 또는 무슨일을 해도 인간이 살아가는데는 풍류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게 마련이다.
王道政治(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德治主義(덕치주의)를 베푸는데 있어서도
최선의 수단이란 바로 인간 본인의 정서에 호소하는 길일 것이다.
인간 본인의 정서를 순화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음악일 것이다.
민심의 흐름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것도 음악이요. 사람을 가장 잘 교화하고 감동시키는 것도 음악일 것이다.
그래서 음악의 歌詞(가사)가 되는 詩歌(시가)는 위정자나 사회를 정화해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들이었다.
정학하게는 305편으로서 현제의 시경이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보통 詩三百이라고 한다. 이 300편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3부분으로 나누어져있다.
詩經(시경)의 主流(주류)를 이루는 것은 역시 國風(국풍)이다.
처음에 어떤 사물을 敍述(서술)하였다가 뒤에 主題(주제)를 이끌어 내는 방법으로 곧 먼저 다른 사물을 말하다가
핵심이 되는 말을 끌어 내는 표현법을 말하고, 比(비)라하는 것은 比喩(비유)하는 문장구성 표현법은 말하며,
賦(부)라는 것은 事實(사실)을 직접 서술하는 문장구성 즉 사실의 묘사를 뜻한다.
고대에도 제도상으로 史官(사관)이 있어서 나라안에 일어나는 모든 정치적 상황,
사회변동 문물제도 등을 낱낱이 문자로 기록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옛 書(서)라 일컬었으며 때로는 王朝(왕조)를 앞에 붙여서 虞書(우서) 夏書(하서) 등으로 일컫기도 하였다.
詩(시)와 더불어 제자들의 교육에 핵심적인 교과과정으로 삼았던 것 같다.
宋代에 와서 다시 書經(서경)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經(경)은 經典(경전)이라는 뜻이고 聖人(성인)의 글 이라는 의미다.
결국 書를 신의 의지로 돌려 신성화 시키고 있다.
王者(왕자)의 곁에는 좌우 두 史官(사관)이 있었는데 좌사관은 왕의 하신 말씀을 기록하였으니
이것을 일컬어 尙書(상서)라하며 우사관은 왕의 行事(행사)를 기록하렸는데 이것을 春秋(춘추)라고 한다.
이것을 높여 尙書(상서) 라고 한다.
古文(고문)이란 공자님께서 후세 秦始皇(진시황)時代(시대)에 焚書(분서)의 변이있을 것을 미리 예상하였음인지
벽을 뚫고 그 속에 冊(책)을 넣었다고 하는데 漢武帝(한무제)말에
공자의 舊宅(구택)을 헐고 벽속에 古文字(고문자)로 된 經典(경전)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古文尙書(고문상서)이다.
今文(금문)이란 秦始皇(진시황) 분서 사건이후에 산재해 있던 글을
한 대의 伏生(복생)이 한데 모아 전한 것을 今文尙書(금문상서)라고 한다.
孔子(공자)님의 벽속에서 나온 古文尙書(고문상서)는 今文尙書(금문상서)에 앖는 25편이 더 담겨있다.
그러나 58편 중 상, 중, 하, 3편으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실제로는 50 편으로 되어 있다.
원래 공자님께서 100 편을 選(선)하였으나 현제는 58 편밖에 전해지지 않고 있다.
사회 전반적인 사항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로 활용된다.
六體(육체) 및 十例(례) 그리고 小序(소서), 大序(대서)로 편찬하여 설명하고 있다.
물론 점을 치는 原典(원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치세상의 지혜가 담겨있는 귀중한 인생의 指針書(지침서)이며
나아가서는 宇宙論的(우주론적) 理學(이학)이기도 한다.
夏(하)나라때는 連山易(연산역), 殷(은)나라 때의 歸藏易(귀장역)이란 역이 있었으나
지금은 전하여 지지않고 周(주)나라때 易(역)인 周易만 전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물물교환을 交易(교역)이라하고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하는 것을 變易(변역)이라고 한다.
天地自然(천지자연)의 현상이나 인간의 운명은 일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항상 바뀌는데 이 바뀌는 원리를 설명한 것이 다름아닌 易(역)이다.
아기가 자라면 어른이 되고 勢道家門(세도가문)도 10년이 지나면 기울어진다는 것은 人事的(인사적) 變易(변역)이라고 할 수 있다.
相對的(상대적)인 뜻에서 바꾸어 볼수 있는 交易(교역)의 原理(원리), 형과 아우의 위치를 바꿀수 없는 不易(불역)의 원리가 있다.
이 모든 원리를 서술한 책이 周易이라고 할 수 있다.
해는 陽(양) 달은 陰(음)을 뜻하는 바 陰陽說(음양설)로 풀이된다.
내일 내가 맞이할 현실은 어떤것일까? 더욱 미래에 내 앞에 전개될 현실은 과연 어떤 것일까?
易經(역경)은 이 문제를 뚜렷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인심으로서는 착한마음과 착하지 못한 마음, 어떤 사물로 친다면 吉(길)과 凶(흉),
공부하는 방법으로 친다면 窮理(궁리)와 盡誠(진성)등으로 해석되는 것이니
온 천지 모두가 이 상대성원리에 적응된다고 할수있다.
陰陽原理(음양원리) 및 五行(오행)의 相生相剋關係(상생상극관계)을 알았을 때라고 할수 있으나
그 때는 문자가 없었던 시대였으므로 지금 처럼 발달된 역서가 있지 않고 기록으로 남은 것이 없다.
易(역)의 발달과정을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산에서 구름이 나오듯 連綿(연면)하여 끊임이 없다는 뜻이 담겨있다.
만물은 흙에서부터 생겨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이는 주로 의학에 應用(응용)되였다고한다.
우주에 周流(주류)하여 변화하며 고정되지 않고 만물에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때에는 이미 문자가 잇었으므로 後生(후생)을 위하여 卦辭(괘사)를 써서 일차적인 해석을 했다.
또다시 爻辭(효사)를 써서 6단계로 2차적인 해석을 부쳤다.
길이 후세에 남아 비추는 儒學(유학)의 眞髓(진수)라고 할수 잇다.
주역은 공자가 집대성하였다고 말하며 이 十翼(십익)속에서 우리는 공자의 성인된 바를 찾아 볼수 있으며
또한 공자의 우주관 사물관 주역관을 알수 있다.
이 말의 근원은 곧 孔子(공자)께서 十翼(십익)을 만들어 미래의 학문을 열어 창생을 구제하도록 하신 공적 때문이다.
또한 공자님도 韋編三絶(위편삼절)인데? 라고 하며 주역의 難解(난해)함을 비유하고 있으나
이말은 결코 그런 뜻이 아니라 孔子(공자)께서 十翼(십익)을 연구하여 後學(후학)들에게 쉽게 알려주려고 고심한 결과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많이 연구하였다는 뜻일 것이다.
2) 周易下卷(주역하권)- 咸卦(함괘)에서 未濟卦(미제괘)까지 34괘.
일찍이 孔子(공자)님께서 刪詩書(산시서)하고 定禮樂(예악)하며 贊周易(찬주역)하고
修春秋(수춘추)하며 ......라 하였는데 贊周易(찬주역)이 곧 十翼(십익)을 뜻하는 말이다.
다른 서책은 정리정돈 하였으나 周易만은 도와서 설명을 첨가시켰다는 뜻이니 곧 열 개의 날개를 달아서 더욱 빛나게 하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연구를 해도 잘 모르는 부분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참으로 그 노고와 후학을 위한 聖人(성인)의 厚意(후의)에 무한한 감사를 드릴뿐이다.
그와 같이 孔子(공자)의 십익은 다음과 같다.
첮째: 周易은 宇宙大自然(우주대자연)의 理致(이치)를 담고 있다.
그리고 지구는 다른 위성과의 균형있는 천체운동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억겁의 세월 동안 계속 하고 있다.
주역은 이와 같은 원리와 法則(법칙)을 기록한 것으로 지구의 변화 달의 변화 나가서 천체의 변화로서
우리 人間(인간)변화의 이치를 알아 보자는 것이다.
시골의 장이 5일만에 서는 것도 이 자연원리를 잊지 않도록 하기위서 만들어진 제도이다.
이와 같이 易理(역리)는 하늘과 땅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이치라고 할수 있다.
둘째: 周易(주역)은 經典(경전) 중에서 가장 으뜸인 경전이다.
모든 경전의 내용을 집대성한 東洋理學(동양이학)가장 심오한 학문이라고 한다.
至善(지선)의 경지 无思无爲(무사무위)한 경지에 드어간 경지를 말한다.
주역을 공부하는 것은 중정지도를 알기위한 것이니
우리나라 서원의 본당을 中正堂으로 명명한 곳이 많은 것도 中正(중정)을 지닌 높은 뜻 때문이다.
따라서 小成卦(소성괘)가 八卦(팔괘)이니 현제 컴퓨터의 원리로 보면 8비트로부터 16비트. 32비트로 발전하여
大成卦(대성괘)인 64비트로 확대해 나가게 되는데 주역은 곧 64비트 컴퓨터라고 할수 잇다.
또 遺傳工學(유전공학)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인 DNA는 이중 나선구조로 되어있고 그 종류는 주역의 64괘인 64종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인슈타인(미국)은 상대성원리로 노벨평화상을 탄 위대한 물리학자인 그가 중국에서 7년간이나 周易(주역)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周易(주역)의 이치 속에 인생의 모든 이치가 들어 있는 것이다.
주역을 연구할 때 太極(태극)에서 兩儀(양의)에서 八卦(팔괘) 곧 道學(도학)의 방향으로 연구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周易 속에는 五行(오행)이란 말은 한군데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道學(도학) 속에 오행이 들어 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물욕에 흘러서 永久不變(영구불변)한 진리로 남을 수 없을 것이다.
옛날 連山易(연산역)이나 歸藏易(귀장역)이 術數(술수)로 흘렀기 때문에 現存(현존)하지 못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과 같은 것이다.
아마도 窮理工夫(궁리공부)가 先行(선행)되여야 한다고 생각된다.
窮理(궁리)의 바탕 위에 盡性(진성)이 이루어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陰陽(음양)이 상호 맞물고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半日(반일)은 讀書(독서)하고 半日은 危坐(위좌)하였다니 이말은 반나절은 독서공부와 窮理工夫를 하였다는 말이고
나머지 반나절은 盡性工夫를 하였다는 뜻이다.
本貫(본관)은 全州(전주)이며 雅號(아호)를 齋(척재)이고 임금님이 내리신 諡號(시호)는 文簡公(문간공)이다.
이 분은 蔡沈(채침)이 지은 書經序文(서경서문)을 9만 번이나 읽었다고 이름을 書九(서구)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미래를 豫知(예지)할만한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니 과연 아무리 짧은 문장이라고 하나 9만 번을 읽었다고 하는 것은
後世(후세)에 길이길이 남을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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