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와 질투

 

신은 인간을 만들면서 사랑을 주었는데

인간은 그런 숭고한 신의 선물을 시기와 질투로

그 사랑을 옳게 향유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시기와 질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원론적으로 들어가서

우리 인간은 애당초 신이 주신 사랑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것을 굳이 성선설, 성악설에 대비해 설명하기보다는
뽀얀 아기가 태어날 때를 보면

그 자체가 사랑의 표상이고 기쁨이고 행복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영악한 인간들이

신의 바램을 거역하고 그도 부족하여
신에게 도전하는 죄를 짓기에 이르자

결국 신은 참다못해 인간들에게 종족 간 언어를 바꿔버렸고
배신과 질투, 시기를 주어 인간을 심판하게 되었지요.
이러다보니

인간은 사랑과 또 다른 배신, 시기, 질투를 가지고

힘들게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종교적인 해석을 빌어 말씀드립니다만

제가 드리는 말씀은 그런 해석과는 관계가 없음을 밝혀두면서...)

 

하지만 혹자는 거짓말에도 하얀 거짓말이 있듯

시기와 질투도 그 자체의 의미보다는
때로는 선의적인 차원에서 행해지면

인생사에서 때로는 유익한 방편이 된다고 얘기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한 예를 옮겨보면,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유일한 단일민족 국가입니다.
그러다보니 민족적 이질감으로 인한 문화의 이질감을

학습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나와 네가 다르지 않았고,

같은 음식에 같은 문화를 공유하면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니 남이 하는 건 내가 했어야 하고,

남보다 내가 잘 해야 하는 욕심이

우리 민족 정서에 깔려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자녀교육에도 ‘내 자식만큼은 반드시 출세시키겠다.’
‘내 자식은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부모들의 건전한 시기, 질투심이 교육열로 나타났고,
그 건전한 욕심이 전(戰)후 100불도 안됐던 우리나라를

이만큼 초고속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도 
시기심과 질투심이 한 몫 했기 때문입니다”라고 얘기합니다.

 

저 역시도 틀린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발전은 선의의 경쟁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그 경쟁의 내면에

그러한 선의적인 시기와 질투가 내재되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선의적인 차원에서 얘기하는 것이지
실사는 시기와 질투는 그러게 행해지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이지요.

 

세계적으로 보아도

우리나라 국민들의 시기, 질투심은

어느 민족보다도 강한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까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시기와 질투심은

배려와 용서, 사랑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배려와 존중이 앞서는 문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를 시급히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지요.

남의 말을 귀기우려 듣고, 행동으로 옮기기 전

한 번 더 생각하는 마음도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탈무드’에는 ‘귀의 위치를 입의 위치보다 높게 하라.’는 지침이 있듯
남의 얘기를 잘 듣는 자만이 배려와 사랑을 베풀 수 있다고 합니다.

배려와 사랑은 메아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탈무드
[135장] 질투와 시기는 육친 사이가 남남끼리보다 한층 더 심하다
 
炎凉之態 富貴更甚於貧賤 妬忌之心 骨肉尤狠於外人
염량지태 부귀갱심어빈천 투기지심 골육우한어외인
此處 若不當以冷腸 御以平氣 鮮不日坐煩惱障中矣
차처 약부당이냉장 어이평기 선불일좌번뇌장중의
 
권세에 따라 마음이 변하는 것은
부귀한 사람이 빈천한 사람보다 그 도가 더욱 심하고,
질투와 시기하는 마음은 남남 사이보다 육친 간에 더욱 끈질기니라.
이런 가운데 만약 냉철한 마음으로써 대하고

평정한 마음으로써 제어하지 않는다면
늘 마음을 번뇌케 하는 가운데 눌려 지내지 않는 일이 없으리라.

 

명심보감 성심편에도 질투에 관한 예기가 나옵니다. 

 

施仁布德이면 乃世代之榮昌이요
시인포덕이면 내세대지영창이요

懷妬報寃이면 與子孫之爲患이라.
회투보원이면 여자손지위환이라.

 

사랑을 베풀고 은덕을 펴면
곧 세대의 영화와 번창이 될 것이요

질투를 품거나 원한을 갚으면
자손에게 근심거리를 주는 것이다.

 

朝夕으로 변하는 것이 人心입니다.
특히 부자나 지위가 높아

권세가 있는 사람일수록 교만하고 방자하여
제 마음을 내키는  대로

그때 그때의 상황에 대처하기 때문에 변덕은 더욱 심하답니다.
또 투기하는 마음은 남에게 보다는 혈육간에 더욱 심하여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인심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냉정한 마음으로써 상황에 대처하고

평정한 심정으로 억제하지 않는다면
변덕과 투기하는 마음은 나날이 내 마음을 괴롭게 하여

그칠 날이 없게 될 것이다.

 

질투는 사람의 감정 중 가장 오래 간다고 합니다.
질투는 휴일이 없다.

질투는 가장 사악하고 비열한 감정이다. 
이 감정은 악마의 속성이다.
질투는 영혼의 심술” 이라고 했습니다.
질투는 우리 인생을 망치는 강력한 에너지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아들 둘을 낳습니다. 
첫아이는 가인이고 둘째 아니는 아벨이라고 합니다.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는

인류역사 가운데 첫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건의 발생이유는
동생 아벨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고

자기가 드리는 예배는 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시기 질투 미움은 이렇게 살인으로까지 갈수 있는

무서운 죄악임을 성경은 말합니다.
 

삶.이란 시기와 질투의 장입니다.
남을 시기하고 나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질투합니다.
자기를 이겨내는 수양이 없으면 .
시기와 질투에서, 헤어나지 못해 불행을 자초합니다.
현명한 사람 자기수양을 쌓은 사람은

시기를 통하여 자기를 연마하고.
질투를 통해서 자기 성찰을 반조하여

성숙해 가는 사람이다.

시기와 질투에 갇히면,

보고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충동하여,

범어사가 무너지라고 광란하는

동영상의 청년은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
자기에게 소중한 것은  남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강요하여 사랑 받으려 하지 말라.
세상에 존재 하는 모든(천지만물) 것은 자유를 원한다.
나와의 관계가, 조금 소홀하더라도  인내하며 기다려 주라.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의 관계를 오해 하여.
연인간. 부부간 .친구간. 동료간.

시기와 질투를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이 세상에 시기와 질투를 오해하여 죽음을 당한 사람이,

태산보다 높게 쌓인 무덤이다.
혹여 우리들도, 자기의 일상에서 오해하여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고 있는지.
연인간에. 부부간에. 친구간 동료간에.  돌아보기 바란다.

 

idiots Faust 옮김

 

Be Careful of the Cold S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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