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참 맛 (人生至味,인생지미)


여러분께서는 인생의 지극한 맛(人生至味)을 보셨는지요?
지금까지 앞 만 보고 달려온 우리들이 아닙니까.
그 일직 심(一直 心)이 있었기에 오늘의 풍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허겁지겁 달려온 인생이 돌아보면 인생의 지극한 맛을 모르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어쩌면 참으로 억울한 인생이 아닐련지요!
지금이라도 우리들 인생의 맛과 멋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오늘은 중용에 나오는 인생에 참 맛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져합니다.

 

《중용(中庸)》4장 <지미장(至味章>에 이 인생의 참 맛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子曰 道之不行也를 我知之矣라 知者는 過之하고 愚者는 不及也니
자왈 도지불행야를 아지지의라 지자는 과지하고 우자는 불급야니

 

道之不明也를 我知之矣라 賢者는 過之하고 不肖者는 不及也니라.
도지불명야를 아지지의라 현자는 과지하고 불초자는 불급야니라.

 

人莫不飮食也는 鮮能知味也니라.
인막불음식야는 선능지미야니라.

 

(공자 말씀하시기를 “도가 행하지 못할 것을 내가 아노라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함이라
도가 밝지 못할 것을 내가 아노라
어진 자는 지나치고 어질지 못한 자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사람이 마시고 먹고 하지 않음이 없건마는 능히 맛을 아는 이가 적으니라.)
 

중용지도는 천리(天理)요 진리(眞理)이다.
주역에도 중정과 중부, 중절, 중용, 중화의 도를 강조하고 있다.
천지도 중용의 도가 아니면 만물을 낼 수 없듯이
중용의 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치와 실천하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중용지도로써 행해야 하는 사람은 흠결 하나 없듯이
정치도 중용지도로 행해 나가야 국가가 발전하고 사회가 발전하고 백성들이 잘 살게 된다.
그러나 대도(大道)인 중용지도를 행하고 밝힌다는 것은 쉽지 않음을 공자가 강조하고 있다.


道者는 天理之當然이니 中而己矣라 知愚賢不肖之過不及은
도자는 천리지당연이니 중이기의라 지우현불초지과불급은

 

則生품之異而失其中也라 知者는 知之過ㄹ새 旣以道로
즉생품지이이실기중야라 지자는 지지과할새 기이도로

 

爲不足行이오 愚者는 不及知하고 又不知所以行하니
위부족행이오 우자는 불급지하고 우부지소이행하니 

 

此는 道之所以常不行也라 賢者는 行之過ㄹ새 旣以道로
차는 도지소이상불행야라 현자는 행지과할새 기이도로

 

爲不足知하고 不肖者는 不及行하고 又不求所以知하니
위부족지하고 불초자는 불급행하고 우불구소이지하니

 

此는 道之所以常不明也라.
차는 도지소이상불명야라.

 

(도라 하는 것은 천리의 당연함이니 중일뿐이니라.
알고 어리석고 어질고 어질지 못함의 과불급은 타고난 품부의 다름인즉 그 중을 잃음이라.
아는 자는 아는 것이 지나쳐 이미 도로써 족히 행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는 아는데 미치지 못하고 또한 행동하는 바를 아지 못하니,
이것은 도가 항상 행해지지 못하는 바이니라.
어진 자는 행실이 지나쳐 이미 도로써 알 것이 없다하고
어질지 못한 자는 행동이 미치지 못하고 또한 아는 바를 구하지 아니하니
이것은 도가 항상 밝지 못하는 바이니라.)

 

道不可離어늘 人自不察하니 是以로 有過不及之弊하니라.
도불가리어늘 이자불찰하니 시이로 유과불급지폐하니라.

 

(도는 가히 떠나지 못하거늘 사람이 스스로 살피지 못하니
이로써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폐단이 있느니라.)

 

이 공자님의 말씀은
도(道)는 넘치는 것도 아니고 부족한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물질적 관점에서 근시안적 모습만을 보기 때문에 과하거나 불급하는 것이죠.
인생의 맛을 제대로 아는 것은 고수(高手)의 영역이며 도적(道的)인 성향과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맛을 알기 위해서는 오감(五感)이 제대로 살아 있어야 하며 자각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중용이 행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국 남송(南宋) 때의 유학자 주희(朱熹 : 1130~1200)는

이 ‘지미’에서 네 유형의 사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앎이 지나쳐 도를 더 이상 행할 것이 없다고 여기고,
어리석은 사람은 앎에 미치지 못하므로 행해야 할 근원을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도가 항상 행해지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은 행함이 지나쳐 이에 더 이상 도를 알 것이 없다고 여기고,
못난 사람은 행함에 미치지 못하므로 또한 알아야 하는 근원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도가 항상 밝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이다.”

 

그리고《중용》4장(章) 말미에「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그 음식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뜻이죠.)

바로 ‘지미(知味)’의 철학인 것입니다.
맛을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삶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며 오래 사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이제 100세 시대입니다.
그런데 생리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다고 해도 인생의 맛(味)를 모르고
그저 나이만 많이 먹는다면 장수(長壽)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 인생의 참맛을 알며 사는 지미(知味)의 인생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아마 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송(宋)나라 소강절(邵康節)이라는 사람은
어느 날 늦은 저녁 밤하늘의 달을 보고,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인생의 가장 맛있는 순간이라고 읊으면서
그 일상의 맛을 ‘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라고 정의했습니다.
어쩌면 평범한 일상에서 나만이 느끼는 맛이 지고지미(至高之味)라고 할 수 있지 않을 런지요!

 

그 ‘지고지미(至高之味)’의 맛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 음식지미(飮食之味)입니다.
살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음식의 고유한 맛을 느끼며 먹는 맛입니다.

 

둘째, 직업지미(職業之味)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을 통하여 인생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는 맛입니다.

 

셋째, 풍류지미(風流之味)입니다.
남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바람처럼 물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느끼는 맛입니다.

 

넷째, 관계지미(關係之味)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호 관계가 아니라 만남 속에서 기쁨을 얻기 위해 만나는 맛입니다.

 

다섯째, 봉사지미(奉仕之味)입니다.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남에게 봉사함으로써 얻는 맛입니다.

 

여섯째, 학습지미(學習之味)입니다.
하루하루 배움과 깨우침 속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 나가면서 느끼는 맛입니다.

 

일곱째, 건강지미(健康之味)입니다.
육신만 아니라 건강한 내 몸과 균형과 조화를 갖추며 느끼는 맛입니다.

 

여덟째, 인간지미(人間之味)입니다.
‘나’라는 존재를 규명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기쁨을 만끽하는 맛입니다.

 

난 오늘도 인생 최고의 맛을 찾고져 노력하는 하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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