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인연 이야기

현재의 생각이 내일을 만들어 간다.
오늘은 어제의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현재의 생각은 내일의 삶을 만들어 간다.
삶은 이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니,
순수하지 못한 마음으로 말과 행동을 하게되면 고통이 그를 따른다. 
<법구경>에서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는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삶에는 많은 방향이 있으며,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는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 선택의 자유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인간의 삶은 날실과 씨실로 짜 나가는 한 장의 천이다.
지금 이 자리, 그대가 더하는 실은 무슨 빛깔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말로 자신을 찍는다.
사람은 태어날 때 부터 입 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만다.'
<법구경>
 
아무리 아름답고 빛이 고을지라도 향기 없는 꽃이 있듯이,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은 그 열매가 없다.'
<법구경>
 
변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
무상(無想)이라는 말은 단순히 덧없고 허무하다는 뜻이 아니다.
무상이라는 말의 본뜻은 변한다는 것이다.
변하기 때문에 거기에 가능성이 있다.
변하기 때문에 창조적이고 의지적인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얼마든지 고쳐 나갈 수 있다.
 
진심으로 들을 때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남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들을 때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요즘처럼 저 마다 자기 말과 주장만을 내세우는 세태 속에서는 단절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이 깨지는 이유도 사람들이 남의 말을 진심으로 듣지 않는데 있다.
 
삶은 동시적 의존관계로 엮어져 진행된다.
모든 존재는 인과 연의 법칙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떤 존재도 우연히 혹은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그 존재를 성립케 하는 원인과 조건이 있다.
나는 너의 원인과 조건이 되고,
너는 나의 원인과 조건이 되어 줌으로써
우리는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을 진리의 세계에서는 상호의존적 존재라고 한다.
내가 사라지면 너의 존재도 소멸된다.
너의 존재가 사라지면 나의 존재 역시 소멸되어 버린다.
 
우리가 산 속으로 들어가 수도하는 것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우리가 사람들을 떠나는 것은
그들과 관계를 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전생의 일을 알고 싶거든 현재 내가 받는 것을 보라
내생의 일을 알고 싶거든 현재 내가 짓고 있는 것을 보라
자신이 뿌린 것은 자신이 거둔다는 인과관계의 질서와 도리를 바탕으로
복잡한 삶속에서 점점 메말라 가는 사람들의 마음밭을 일궈 주는 이야기
 
법정 스님의 < 인연 이야기 >중에서 한은섭 옮김

 

 

이 글을 읽는 그대에게

 

지금 이 글 속에 나도 있고
이 글을 읽는 그대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글 속에서 그대는 꽃이 되고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됩니다.

 

이 글을 읽는 그대는 나무가 되고
나는 그대를 휘감는 바람이 됩니다.


글 속에서 그대는 그리움이 되고
나는 그대를 그리워하는 기다림이 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를 느끼고
그대의 가슴 속에 담아둘 수 있다면
난 그대의 시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 이 순간만이라도
그대와 나는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대를 사랑해서 인연이라 말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리움 하나 만들어 갈 뿐입니다.

 

글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하고
그리워하고 보고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늘이 허락한 인연이 아니라면
만남 또한 없을 겁니다.

 

만약에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인연이라 한다면
내 영혼을 불사른다 해도 아깝지 않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가난한 사랑이라 해도 좋은 그런 사랑이라면
우린 글 속에서 행복해 할 테니까요.

 

글 속에서 그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지라도
마음하나 만은 언제든 그대에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글 속에서 그대를 그리워하며
그대 사랑을 가슴속으로 느껴도 될는지요.?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는 미련이지만
글 속에서 그대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글 속에서는 그대와 나 함께 하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인연이라 말하며
이 글을 읽는 동안이라도
나의 그대가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언제나 그리워 할 그런 님이 되어 주시기를.

 

idiots HanEunSeob


♧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 ♧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
천년이 흘러도 사랑을 다해 사랑하며 살다가
내가 눈 감을 때까지
가슴에 담아 가고 싶은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지금의 당신입니다.
 
세월에 당신 이름이 낡아지고 빛이 바랜다 하여도
사랑하는 내 맘은 언제나 늘 푸르게 피어나
은은한 향내 풍기며 꽃처럼 피어날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당신 이마에 주름지고
머리는 백발이 된다 하여도
먼 훗날 굽이 굽이 세월이 흘러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몸 하나로
내게 온다 하여도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사랑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 마음을 그 사람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주름지고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사랑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천년이 지나
세상에 나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이 꼭
내 눈 앞에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가슴에 묻어둔

당신 영혼과 이름 석 자

그리고
당신만의 향기로

언제나 옆에서 변함없이
당신 하나만 바라보며
다시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지금 내 마음속에 있는
한 사람을 사랑하며

내가 죽고

다시 천년의 세월이 흘러
내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부르고 싶은 단하나의 이름은
지금 가슴 속에 있는 당신 이름입니다.

 

Faust 바보 한은섭

 
 

♣ 행복한 아름다운 인연으로 남기를 ♣

 

퇴계와 율곡의 만남,
부처님과 가섭의 만남,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만남,
괴테와 실러의 만남,
예수와 베드로의 만남.
이러한 만남에는 영혼의 교류가 일어나고
정신적인 충족감이 생기며,
종교의 혁명이 일어나고, 학문과 예술의 꽃이 핀다.

 

이것이 지극히 행복한 만남이다.

 

이러한 인연이 인간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생의 차원을 더 높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넓은 광장에서
될 수 있으면 깊은 만남, 창조적인 만남,
행복한 만남이 많아지도록 노력 해야겠다.

 

"너와 나의 만남은

전생에 깊은 인연이 있었기에

나의 운명에 큰 이로움을 주었고,

다시 또 이 세상에 태어난다 해도
나는 꼭 너와의 만남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심정이 되어야 한다.

 

너는 전생에서 나의 아내였던가,
애인이었던가, 아들이었던가,
제자였던가, 친구였던가,

이처럼 깊은 만남,
우리는 이러한 만남을 가져야 한다.

 

만남

그리고 인연이란 말은

참으로 운치 있는 말이다.

너와 나와의 성실한 만남 속에서
인생의 행복함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성실한 내가 되고,
너 역시 성실한 네가 되어
성실한 너와 내가 성실한 자리에서
성실한 만남을 가질 때
우리의 만남은 정말 깊고 행복하고
창조적인 만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인연을 맺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간절한 소망인 것이다.

 

믿음이란 선물을 마음에 품으면
염려와 근심이 지워지고

 

소망이란 선물을 마음에 품으면
좌절과 절망이 지워지며

 

사랑이란 선물을 마음에 품으면
미움과 원망이 지워집니다
.

 

오늘도 행복한 인연, 아름다운 인연,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고

유지해나가는데

소홀함이 없는 시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011.8.15. Faust 올림.

 


♧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 ♧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
천년이 흘러도 사랑을 다해 사랑하며 살다가
내가 눈 감을 때까지
가슴에 담아 가고 싶은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지금의 당신입니다.
 
세월에 당신 이름이 낡아지고 빛이 바랜다 하여도
사랑하는 내 맘은 언제나 늘 푸르게 피어나
은은한 향내 풍기며 꽃처럼 피어날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당신 이마에 주름지고
머리는 백발이 된다 하여도
먼 훗날 굽이 굽이 세월이 흘러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몸 하나로
내게 온다 하여도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사랑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 마음을 그 사람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주름지고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사랑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천년이 지나
세상에 나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이 꼭
내 눈 앞에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가슴에 묻어둔

당신 영혼과 이름 석 자

그리고
당신만의 향기로

언제나 옆에서 변함없이
당신 하나만 바라보며
다시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지금 내 마음속에 있는
한 사람을 사랑하며

내가 죽고

다시 천년의 세월이 흘러
내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부르고 싶은 단하나의 이름은
지금 가슴 속에 있는 당신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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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因果應報)♠ 

원인(原因)과 결과(結果)는 서로 물고 물린다는 뜻으로,
과거(過去) 또는 전생(前生)의 선악(善惡)의 인연(因緣)에 따라서
뒷날 길흉(吉凶) 화복(禍福)의 갚음을 받게 됨을 이르는 말로서,
좋은 일에는 좋은 결과(結果)가,
나쁜 일에는 나쁜 결과(結果)가 따른다는 말!
 
인간 살이가 각박해지고 있다.
競爭이란 이름으로
自己本位主義, 利己主義, 物慾主義, 風調가 팽배해지고
倫理 道德은 무너져가며 인간성이 매마르고 있다.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生存을 위한 競爭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더불어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에
윤리와 도덕성을 바탕에 깐 善意의 경쟁이어야
인간의 價値를 갖게 되는 것이다.

오직 자신만을 내세워 나쁜 수단 방법의 부당 경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면 惡한 業을 짓는 것이다.

베푸는 것도 선의의 경쟁이고
베풀면 언젠가 꼭 보상을 받게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이웃 간에 物과 心을 나누며 사는 게 인간의 숙명이다.
베푼 만큼 돌려 받는다는 말이 있지만 베푸는 성의에 따라
더 많은 보상을 받는다는 말도 있다.

善한 베품은 선으로 돌려 받고.
惡은 악으로 돌려 받는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成語가 생각난다.  
이 말은 佛敎에서 나왔다는 설과
佛敎 敎理를 번역하면서
이미 있던 말을 인용해 썼다는 설이 있다.
오랜 세월 사람이 살아오면서
수많은 축적된 경험에서 얻은 결론으로서
윤리 도덕관을 한마디로 압축한 統計學的 의미를 지닌
지극히 敎訓的 用語임에는 틀림없다.

 중요한 것은 果報(인과응보)가 본인 代에 끝나지 않고
못다 값은 果報는 후손에게까지 넘어간다는데 있다.
善, 惡의 보상과 業報는
流動的이어서 善行의 報償이
계속 중에도
惡行을 저지르면 惡運이 닥치고
악운을 씻고자 善을 행하면 좋은 일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선을 베푼다는 것은 눈앞의 손해일 수는 있겠으나
幸福을 얻기 위한 투자이다.

三代에 걸쳐 부자 없고 가난도 없다고 하였다.
여유 있을 때 惡行을 저지르면
財物은 알게 모르게 나가고
자기 당대나 아들 대 또는 손자 대에는 貧孫이 되며
가난해도 선을 행한 자는 財物을 얻게 된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은 眞理 아닌가?

 이런 이치는 孝에도 적용된다.
죽은 조상. 산 조상을 정성껏 섬기는 것은
선이요 사람의 도리인데.
이를 잘 행하면 복을 받는 것이 또한 因果應報이다.

재산이 많다는 것만이 복은 아니다.
살아가는데 적당히 필요한 정도의 재산이면 되고
여러 家事가 잘 풀려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環境이 곧 福인 것이다.
오래된 조상이 손수 일구었거나
조상을 위해 子孫들이 공동으로 출자하여
祭祀를 올릴 수 있는
위 토 등의 門中재산을 축내거나 탕진하는 것은
조상의 노여움을 사는 不孝요 같은 자손에 대한 배신행위다.

이러고도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반드시 그 業報(죄 값)를 받게된다.
조상을 섭섭하게 하면 두고두고 앞으로 업보를 받아 곤궁한 일만 남게 된다.
祖上을 잘 섬기면 보고 배운 자식으로 부터 尊敬을 받게된다.
家庭敎育도 行動으로 보여야 효과적이라는 것은 經驗에서 나온 말이다.

책상을 나란히 하여 공부해 보이면 자식은 자리를 뜨지 못할 것이고
정신을 딴 데 쏟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공부하라는 열 마디 다그침이 왜 필요한가? 
힘든 일에 善으로 率先垂範하면 좋은 결과가 있게된다.

참된 삶이란 당장의 利益을 떠나
멀리보고 善으로 처신하고 행동하면
복을 누릴 수 있고
주위의 존경과 사랑을 받게되는데.

모든 사람들은 조상에게 무엇을 바라기 전에
먼저 무엇을 하여 기쁘게 해 드릴까 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幸福을 얻는 길이라고 믿는다. 
모든 것은 행한 대로 받고, 뿌린 대로 거두며
善은 善!  惡은 惡으로!.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거저 되는 것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10.10.어느날 idiots 한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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