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와 사랑

 

자비...!
무조건 수용하는 것만이 자비가 아니다.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상대가 악업을 짓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므로 상대를 해치는 결과를 불러와
자신에게 악(괴로움)한 과보가 돌아온다.

 

부모의 무조건적 자식 사랑이 자식의 미래를 해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진정한 자비는 섭수와 절복에 자재해야 한다.
상대의 악행이 계속될 때 더이상의 악업을 짓지 못하도록 하는 절복도 자비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고
싫어하는 것은 배척하기에 자신의 욕심을 자비(사랑)이라 착각하게 된다.

 

이 증애심으로 인해 마음은 갈등 번민하게 되고 업을 짓고 육도윤회하게 된다.
증애심은 불법을 깨쳐 정견을 갖추기 전에는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다.

 

답은 없다.

인과를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깨쳐 나가는 수밖에...

한국불교의 90% 이상이 정법에서 벗어나 불자들을 현혹시키고 스스로 높은 체하고 있다.

인생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길이다.
모든 것이 자신의 욕심일 뿐,죽음의 길엔 부모도 자식도 재물 명예...
어떤 것도 함께 할 수 없다.
전도된 모든 관념을 떠나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

 

중생이 공하니 부처가 공하고.
중생이 중생이 아니요,부처가 부처가 아니로다.
중생이 곧 부처일세.

 

불교에서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자비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다.
물론 사랑은 순수 우리말이고 자비는 한자를 빌려온 우리 말이다.
그런데 그 뜻이 비슷하긴 하지만, 조금은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만이 갖는 말의 느낌일 것이다.

 

긍극적으로 나를 희생하고 상대를(인간, 자연,동물 등)포용하고 아껴주고
나를 돌보듯 그러한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에는 다름이 없겠지만
사랑과 자비는 조금은 다른 뉘앙스가 있는 것이다.

 

왜 불교에서는 이 자비라는 말을
구태여 사랑이라는 순수 우리 말로 바꾸지 않고 쓰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는 좀 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오늘은 이 두 글자를 비교하면서 그 숨은 뜻을 살펴보자.

 

자비는 두 글자가 한데 묶여있다.
자(慈)의 글자를 풀어보면 玆(자)心(마음)이 함께 붙어 있다.
현(玄)은 깊고, 오묘하고, 그윽하다는 뜻으로
그 그윽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거기에 마음이 붙어있으니
그 오묘하고 깊고 그윽한 자의 뜻을 한 마디로 뚝 잡아
사랑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충분치가 않다.

 

다음에 비(悲)非(비)心(마음)이 붙어있는 형태이다.
非란 아닐 비의 뜻으로 어긋날 비, 그르다 할 비, 나무랄 비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어긋난 행동을 하고,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 마땅히 나무람을 받아야 하는
그러한 행동까지 받아들이는 마치 말썽꾸러기 자식을 포용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悲의 뜻인 것이다.

 

이 두 자가 이루어 만든 자비는 원효대사께서 잘 말씀하셨다.
원효대사는 어릴 때 어머님을 여의셨다.
원효스님이 태어나실 즈음, 스님을 낳기 위해
친정집에 가던 중 태기가 있어 산에서 분만하셨단다.

때는 엄동설한이라 몹시 추웠고 덮을 것은 없고, 하여
어머님이 옷을 벗어 갓 태어난 자식을 위해 덮어주고
자신은 그로 인하여 병을 얻어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한다.
자식을 불쌍히 여겨 자신을 희생하는 그러한 사랑이
자비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랑...!
사랑이라는 근본 바탕은 불쌍한 마음, 측은한 마음이라야 한다.
어느 누구를 사랑하든 이러한 悲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그윽하고 깊으면 그건 참다운 사랑이고 자비인 것이다.

한편 사랑에 대한 표현을 성경에서 찾아보자.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것임으로.

고린도 전서에 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녀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자비와 비교할 때
상대방을 불쌍히 여겨 그 슬픈 마음의 근본이 되어 사랑하라는 것은 없다.
전체적으로 그저 참고 견뎌라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통 사랑이라고 하면 남녀간의 애욕이라든지,
어떤 정열적인 냄새가 다분히 풍기고 그 속에는 질투와 시기,
열정이 함께 내포하는 것 같다.
몰른 어머니의 사랑이란 자비와 같은 뜻이겠지만.........

 

절에서 관세음보살이나, 미륵존여래불,
부처님의 모습은 대개 눈을 반쯤 내려감고 약간 미소 짓는 모습으로
우리를 내려다 보는 모습이 마치 자비스러운 마음,
우리 인간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내려다 보는 것 같다.

 

반면 예수상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 고통스러운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아프게 한다.
기독교인 표현대로 나의 죄를 대신 짊어져 주시는
나를 위한 예수님의 사랑이고 그러한 희생을 갖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아픔을 받아들여 참회해야 하는 것이다.

 

즉 부처님 상은 부처님이 슬픈 마음을 갖고 우리를 내려다 보는 모습이고,
예수의 십자상은 인간인 내가 슬픈 마음을 내어 그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고통을 받아들여야 하는 모습인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희생하여 예수의 고통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부활절 주간이 되면 필리핀에서는 예수 십자상의 재현으로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사람을 발로 차고 때리고 하는
희생을 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인간의 희생 즉, 슬픈 마음을 인간이 내어 고통받는 예수에게로 승화시키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이 마치 어머니 같은 마음이 되어 예수(신)를 받아들이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하여 인간에게 슬픈 마음을 자아내게 하여 사랑의 근본인 슬픔을,
인간의 좋은 심성인 자비를 일깨워 주는 것이지 모른다.

 

이 경우엔 인간이 자비심을 내어 어머니 같은 커다란 마음이 되고
그 마음에, 그 자비에 폭 싸이는 것이 신인지 모른다.

그리하여 기독교에서는 예수 즉 신을 사랑하는 힘이 무섭게 큰 것이다.
그 무섭게 큰 사랑의 힘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기독교를 위해

헌신하는 교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예수가 인간인 '나'를 위해 죽었다는 아이디어(?)가 없었다면,
인간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심성인 자비가 일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고,
기독교가 지금처럼 크게 성장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예수가 나를 위해 처형당할 때 받았던 그 고통만큼
나도 나를 희생해서 살아야 한다는 명제가 기독교에게는 있고,
그러한 예수를 받아들이는 자비의 마음을 일깨워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기독교인의 모습을 가끔 접하게 되고

주위를 감동하게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사람에게는 이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꼭 있어야 하고,
이 불쌍한 마음이 근본이 되면 절대로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해칠 수가 없을 것이다.

자비심의 실천이 깨달음의 완성이라고 한다.
자비심을 어떻게 실천할지 한번쯤 주위를 둘러보고,
불쌍한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살펴주거나,
부부가 서로 도우며 자식을 위하고 공경한다면
그건 바로 자비의 실천이고 참다운 불자의 모습일 것이다.

 

나도 내 속에 깊이 묻힌 가장 아름다운 심성인
슬픈 마음을 일깨워서 실천할 수 있도록 자비심을 찾는 공부부터 해야겠다.

 

인, 자비, 사랑

유교에서 최고로 보는 선은 인(仁)입니다.
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살신성인이란 말 그대로 자기를 죽여야 합니다.

 

불교에서 최고의 선은 자비에 있습니다.
자비로운 마음은 성불에서 옵니다.
그리고 성불하기 위해서는 무아(無我)에 이르러야 합니다.
이 역시 자기를 남김없이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최고의 선이요, 모든 덕의 완성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이웃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칠 때 완성됩니다

이렇게 자기 생명까지 바칠 때,
무아가 될 때 인간은 진정 인간다워집니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유교의 인, 불교의 자비, 그리스도교의 사랑은
다 같이 이웃과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사랑할 때
인이 있고, 자비가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또한 바로 거기서 우리는 참인간이 됩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의 메시지에서-

 

 

 

idiots Fa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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