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것으로부터의 자유-지두 크리슈나무르티 .J.krishnamurti

 

오늘은 평소 법정스님이 좋아했던 책중에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책을 소개한다.


글쓴이의 위치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라는 이름이 붙은 책이 수십권이지만
실제로 그는 글을 써서 출판한 적이 없다고한다.
다만 진리의 세계를 여행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가 다른 이들과 나눈 대화를 누군가 녹음했다가
받아 적어 책으로 냈을 뿐이다.

남인도 첸나이에서 태어난 크리슈나무르티는 바닷가에서 놀던 열 네살의 어느 날
신지학회를 이끄는 영국인 애니 베산트와 리드비터에게 발견되어 새로운 메시아로 지목당한다.
이후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인류를 구원할"세계의 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으며
동시에 신지학회 안에 설립된 "별의 교단"의 교조가 되었다.
그러나 이십대에 스스로 시작한 명상의 결과로 발견한 진리는
특정한 종교나 종파에 소속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18년을 기다려 마침내 메시아로 추앙받으며 미륵불의 화신으로서 세계의 스승으로 즉위하는 날
크리슈나무르티는 그 자리에서 구세주를 원하는 무수한 이들의 바람을 저버린 채
"별의 교단"을 해체하고 자신 앞으로 모금된 엄청난 재산마저 포기했다.

자신에게 붙여진 구세주,부처의 화신,세계의 구루 같은 찬사와,
자기앞에 엎드려 절하는 수많은 정신적 금치산자들의 나약한 예배를 뿌리친 것이다.
"오늘 아침 우리는 별의 교단 해체를 놓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뻐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무척 슬퍼할 것입니다"로 시작하는
그의 "별의 교단"해체 선언문은 숱한 종교와 교파로 나뉘어 서로 자신의 것만 진리라고 내세우는
현대의 종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참으로 진실한 선언이었다.
"진리로 통하는 길은 따로 없습니다.종교나 종파를 통해서는 결코 진리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진리에는 끝도 한계도 접근하는 길도 없습니다.
따라서 진리를 향한 여행은 조직화될수 없습니다.
조직화 하면 진리는 죽어 버립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진리를 안겨 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별의 교단을 해체하려 합니다.
특정인의 뒤를 따름과 동시에 여러분은 진리 찾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조직을 해체하려는 것입니다."

이후 크리슈나무르티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진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단 한가지밖에 요구하지 않는다.
즉 관념과 지식의 세계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홀로 진리에 다가서라는 것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영적 교사라 불리는 이 사람의 통찰력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지금 이 모습 그대로였다.
즉 때때로 기쁨과 애정의 순간을 가지면서도 엄청나게 탐욕스럽고 갈망하고
공격적이고 질투하고 불안해하고 절망한다.
인간은 증오와 공포와 너그러움의 기묘한 혼합이다.
폭력인 동시에 평화다.
달구지에서 비행기에 이르는 외적 발전은 있었으나 심리적으로 개인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각각의 인간은 과거로 채워진 창고이다.
개인은 모든 인류인 인간이며 인간의 모든 역사는 개인 안에 쓰여 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인간들 각자가 모든 전쟁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전쟁은 인간이 지닌 삶의 공격성, 서로를 갈라놓고 있는 편견과 관념으로 인해 발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는 이 현존하는 혼돈과 전 세계에 걸친 비참한 불행에 대해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음을
깨달을 때에만 행동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일상생홯 속에서 이 세계에 기여햇으며 전쟁 분열 추악함
그리고 탐욕으로 얼룩진 이 기괴한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것이든 다른사람의 것이든 모든 권위에서 자유롭다 함은
어제의 모든 것이 죽는다는 뜻이며 그때 당신의 마음은 항상 신선하고 젊고 천진하고
활력과 정열이 넘치게 된다.
우리가 배우고 관찰하는 것은 오직 그런 상태에서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는 어떤 것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인간의 마음은 아주 복잡한 까닭에 인간은 단순성이라는 속성을 잃어버렸다.
또한 자신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겸손이 필요하다.
만일 "난 나 자신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데서 출발한다면
그사람은 이미 자신에 관해 배우기를 멈춘 것이다.
혹은"나는 단지 기억 관념 체험과 전통들이 모여 있는 하나의 꾸러미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에 관해서는 배울 게 많지 않다"라고 해도 역시 자신에 관해 배우기를 멈춘 것이다.
무언가를 성취하는 순간 인간은 그 천진성과 겸손이라는 속성을 잃어버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관념과 과거의 기억으로보터 벗어나
언제 어느 순간에서나 완전한 깨어 있음으로 전체성을 지니고 존재하는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그러한 깨어 있음을 방 안에서 뱀과 더불어 사는 것이 비유한다.
뱀과 같이 방 안에 살 때 우리는 그것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고
그것이 내는 작은 소리에도 매우 민감해진다.
그런 주의력의 상태가 바로 존재의 "전체적인 에너지"이다.
생각의 기능 가운데 하나는 항상 무언가에 점령당해 있기를 바라며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
비어 있는 것을 두려워하고 이 두려움을 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먼저 죽어야 한다고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한다.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내적으로 자신이 소중히 품어온 것들과
쓰라려하는 것들에 대해서 죽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죽는다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을 뜻하며
일상적인 소망,쾌락,괴로운 감정들을 비우는 것이다.
죽음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요 변화이며 그 안에서 생각은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생각은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을 때 거기엔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있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곧 구속이다.
그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때만 즉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만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

크리수나무르티는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왜 말을 하십니까.?"하는 질문을 받자
"장미꽃이 왜 피겠습니까? 장미에게 물어보십시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위대한 지성인은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서 영국과 인도 미국 호주 스위스 등
전 세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단체와 사람들에게
'인간 내면의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일평생을 바쳤다.
그의 일관된 메세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메시아나 구루라고 여기는 매스컴에 오랜시간 시달려야 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1986년 2월 오랜지밭 한가운데 있는
캘리포니아 오하이 밸리의 지신의 거쳐에서 90세를 일기로 평화롭게 생을 마감한다.
<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는 그의 강연을 녹음하여 펴낸 대표적인 책이다.
<한방산담>에 실린 '거꾸로 보기'를 통해 법정 스님은 이야기 한다.
"내 눈이 열리면 그 눈으로 보는 세상도 함께 열리는 법이다.
인도의 명상가이며 철학자인 크리슈나무르티는 그의 저서 <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보는 법을 안다면 그때는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보는 일은 어떤 철학도 선생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무도 당신에게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
당신이 그냥 보면 된다"
그 어떤 고정관념에도 사로 잡히지 말고 허심탄회 빈 마음으로 보라 는 것
남의 눈을 빌릴 것 없이 자기 눈으로 볼 때 우리는 대상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진리란 살아 움직이는 것이어서 쉴 곳이 없다.
어떤 절이나 교회에도 없으며 어느 종교나 교사,철학자,그 누구도 당신을 진리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신은 이 살아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은 분노,잔인성,폭력,절망 그리고 고민과 슬픔 속에 살고 있다.
진리란 이 모두를 이해하는 데 있으며 당신의 삶에 있는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만 비로소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

오랜 세월 우리는 선생들에 의해,권위자들에 의해,책과 성인들에 의해
마치 숟가락으로 떠먹여지듯 양육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들에 대해 말해 주세요.저 언덕들과 산 너머 그리고 지구의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그러고는 그들의 설명을 듣고 만족해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말에 의지해서 살며,우리의 삶이 경박하고 공허하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얻어들은 얘기만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늘 들은바에 따라 살았고,우리의 의도나 성향에 이끌려 왔으며 여러 조건과 환경에 맞추어
억지로 모든 것을 받아들여 왔다.
우리는 많은 영향을 받아 생긴 하나의 결과 이며
우리 안에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이 없고,우리 자신을 위해 발견한 것이 하나도 없다.
독창적이고도 원래 모습 그대로인 명징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변하기를 바란다,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일견 매우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 안에 질서를 가져다줄 권위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권위가 내적 질서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밖에서 부과된 질서는 언제나 무질서를 낳는다.
당신은 이러한 진실을 깨닫고 책의 권위,교사,아내나 남편,부모,친구 또는 사회
등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언제나 판에 박은 듯한 틀 안에 있어 왔으며
그 방식은 늘 이데올로기나 권위가 된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변화할 수 있나"라는 질문이 새로운 권위를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당신은 권위와 영원히 결별하게 된다.

어떤 사람을 따르지 않을 때 당신은 매우 외롭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외로워 하라.왜 외로움을 두려워 하는가?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대면하기 때문이며 자신이 공허하고 무디고
바보스럽고 추하고 죄스럽고 불안하다는 사실
즉 왜소하고 겉을 꾸미고 들은 풍월로 사는 존재임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사실을 직시하라.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마라.
도망치는 순간 두려움은 시작된다.

 

자유란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모든 의존,예속,순응,수락을 내던진다.
그런 자유에는 완전히 혼자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고독 하려면 과거에 대한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당신이 고독할 때 즉 어떤 가족에도 속해 있지 않고 어떤 나라에도, 어떤 문화에도,
특별한 대륙에도 속해 있지 않고 완전히 고독할 때 국외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렇게 자유로운 사람은 천진스러우며 슬픔에서 해방된다.

이제 자신의 관해 아는 것을 모두 잊으라.
자신에 관해 지금까지 가졌던 생각을 잊으라.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출발하려고 한다.
어젯밤에는 비가 몹시 내렸고 지금은 개기 시작한다.
새롭고 신선한 날이다.
이 새로운 날이 마치 단 하루밖에 없는 것처럼 만나자.
어제의 기억은 모두 뒤에 남겨 놓고 함께 여행을 떠나자.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 자신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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