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Q (지능지수) Intelligence Quotient

IQ는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 이해하고 분석하고 추리해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을 말한다.
IQ가 높으면 사물에 대한 이해력 및 추리력 등 사고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인내심,
자기 동기화 등 모든 조건이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그룹보다 월등하게 성공적인 대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IQ의 80%는 이미 유전적인 원인으로 결정되고 나머지 20%도 4~6세 전에 결정되기 때문에
이 시기를 놓치면 나머지 20%도 개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2. EQ (감성지수) Emotional Quotient

감정과 느낌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다.
IQ가 똑똑한 아이를 상징하는 것과 달리 EQ는 긍정적인 자아개념,
남들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이끄는 능력을 의미한다.
대개 EQ가 높은 사람은 정감이 있고 믿을 수 있으며 많은 사람과 쉽게 잘 사귀는 편이다.

EQ는 0~5세 정도에 거의 형성된다.
따라서 어릴적 주변환경이 어떠냐에 따라 아이의 EQ가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다.
부모가 항상 사랑으로 따뜻하게 보살핀 아이는 커서도 자긍심이 높고 희망적인 아이가 되지만
사랑없이 불안정하게 자란 아이는 자라서도 정서가 불안정해지기 쉽다.
따라서 아이에게 꾸준한 관심과 다양한 자극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아이가 울음이나 미소로 의사표시를 할 때 부모가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대함으로써
아이는 세상에 대한 신뢰감과 애착을 가지며 EQ가 높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3. MQ (도덕지수) Moral Quotient

도덕지수는 얼마나 착하고 양심적인가를 측정하는 지수이다.
도덕지수의 향상은 어린아기때 시작되어 초등학교 시절에 거의 완성된다.
MQ의 개발은 실생활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훈련을 통해서 쌓아야 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규칙의 암기나 학교수업을 통한 추상적인 토론,
집 안에서의 순응교육은 MQ훈련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생활에서 부모나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델로 스스로 판단하면서,
올바른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과정에서 훈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가 말로는 도덕을 강조하지만 아이 앞에서 질서를 어기거나
도덕적으로 어긋난 행동을 한다면 아이의 도덕의식은 상처를 입게 되고,
두 개의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4. SQ (사회성 지수) Social Quotient

사회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지 사회적응력을 나타내는 수치이다.
SQ는 알고 느끼는 것을 사회속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이용하느냐 하는 능력을 말한다.
SQ는 선천적인 것보다는 후천적인 요소가 많고 또래 친구와 어울리는 3~4세부터 바탕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성이 높은 아이는 적응력이 높으며 SQ가 높은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알맞게 실생활에 투자하고 개발할 수 있다.
한마디로 사회가 요구하는 대인관계와 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적응력, 실천력 등을 갖춘 사회적인 인간으로 활동한다.

 

 

5. CQ (창조성 지수) Creative Quotient

한마디로 말하자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은 IQ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며, 사물을 이해하고 분석해서 종합하는 능력면에서는 IQ와 같지만
종합할 때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다른 면을 보고 새로운 방향으로 종합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CQ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함께 실수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생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한다.
창의력이 억압받지 않도록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6. AQ (유추 지수) Analogy Quotient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 사실들에서 어떤 유사성을 찾아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유추이다.
유추의 능력이 가장 활발하게 성장하는 시기는 2~5세이다.
이시기의 아이는 자기 주장을 강하게 표현하고 모든 것을 실험해 보고 싶어한다.
이때 가만히 아이 행동을 지켜보고 혼자서 해결하도록 유도하며 칭찬을 자주해 준다.
또 아이에게 무언가를 설명 해줄 때는 아이와 친숙한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아이 능력에 따라 가르치고 경험하게 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고
아이에게 자기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AQ를 키우면 논리력, 사회성, 창의력등이 발달된다

 

 

7. PQ (열정 지수) Personality Quotient 

 

열정지수. 강렬한 의지의 근간이 되는 것이 PQ지수다.
또는 `Personality Quotient'의 약자로, 풀이하자면 `인간성 지수'라고도 한다..

 


8. GQ (글로벌 지수)

 

세계인으로서의 양식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는 것.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녀들은 한국인인 동시에 세계인이라는 분명한 자의식이 있어야 한다.

 

 

9. DQ (디지털 지수)

 

디지털에 대한 이해력 지수.
단순히 컴퓨터 기술만을 잘하는 게 아니라 정보기술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력이 필요하다.

 

 

 

 


=========아래부터는 비공식적인 지수입니다.============

 

 

 

10. NQ

공존지수, 관계지수, 네트워크지수 (Network Quotient)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얼마나 잘 운영할 수 있는가 하는 능력을 재는 지수다.
공존지수가 높을수록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쉽고,
소통으로 얻은 것을 자원으로 삼아 더 성공하기 쉽다는 개념이다.
물론 내가 속한 집단은 잘 되고 다른 집단은 소외시킨다는 ‘패거리’ 개념이 아니라
서로 잘 살도록 도와야 한다는 이타적 개념에 가깝다.

사회성 지수인 SQ와도 유사한 개념이다.

 

11. HQ

 

유머지수 (Humor  quotient)

유머능력을 재는 지수이다.

웃음은 능력이 아니라 습관이라는 말이 있다.
유머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익히는 습관은 유머 리더로 성공하는 지름길이다.
여기에는 웃는 습관, 인생을 즐기는 습관이 포함된다.
또한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습관, 즐겁게 일을 받아들이는 습관,
동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습관, 일을 재미있게 하려는 습관 등이 유머 리더로 가는 길이다.

 

12. HQ

 

건강지수 (Health Quotient)

자신의 건강을 통제하는 지수 .
단순히 육체적 건강 수치이기 보다 건강에 대한 관심과 자기 통제능력,
신체 이상징후 판단 능력 등이 포함된다.


13. FQ

경제지수(Financial Quotient)

경제 감각이 어느정도인지 판단하는 지수. MQ(Money Quotient) 라고도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부를 축척하는 중요한 지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14. AQ

반부패 지수 (Anti-corruption Quotient), 
유추지수와 약자가 동일하다(Analogy Quotient) 유추지수가 더 널리쓰임.

도덕성지수(MQ)와도 유사한 개념이다.
어떠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잘못을 인정할 줄아는지,
얼마나 잘못을 덮지 않고 인정하는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변명하지 않는지 판단하는 지표이다.

 

 

三池淵 管絃樂團 首尔 國立劇場 公演 2018.2.11.

 

 

三池淵 管絃樂團 江陵 公演 20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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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씨의 유래(淸州韓氏의 由來)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유래(由來)는  후조선 (後朝鮮)인  기자조선(箕子朝鮮)에서 기원(起源)한다.

마한(馬韓) 원왕(元王)의 아들 3인이 있어 우평(友平),우량(友諒),우성(友誠)이니,

나라가 쇠(衰)하자 우평은 고구려(高句麗)에 입사(入仕)하여 북원선우씨(北元鮮于氏)가 되고,

우량은 신라 (新羅)에 입사하여 상당한씨(上黨韓氏) 즉 청주한씨가 되었고,

우성은 백제(百濟)에 입사하여 덕양기씨 (德陽奇氏)가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한씨는 모두 기자(箕子)의 휴예(後裔)가 되는 것이다.

기자는 은(殷)나라의 종실(宗室)로서 주왕(紂王)의 숙부(叔父)가 된다.

주왕((紂王)이  잔인하고 포악하여 국정(國政)이 쇠퇴함으로 주나라 무왕(周. 武王)이 이를 토멸하고

기자(箕子)에게 치국(治國)하는 대도(大道)를 청문하기로 홍범(洪範)을 자문하여 주고.

의리상 신복(臣僕)이 될수는 없다하여 고조선(古朝鮮)에 망명(亡命)하였는데

때마침 단군조선(檀君朝鮮)이 종말을 고하게 되자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후조선(後朝鮮)을 건국하고

예의(禮儀)로 교화(敎化)하여 예의군자국(禮義君子國)이 되었다고 한다.

 

청주한씨 시조 한 란(韓 蘭)은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난곡리에서 탄생하여

향학(鄕學)을 일으키고 청주 방정리에 무농정(務農亭)을 세우고 농업을 권장하여

마침내 부농을 이루었는데 이때에 왕건(王建)이 고려을 창업하는 공(功)을 세워

개국공신(開國功臣)이 되었으니 벼슬은 삼중대광 태위(三重大匡 太尉)이다

천지는 신묘(神妙)한  위광(威光)으로 강산의 기이(奇異)함을 만들고

영웅(英雄)의 자품을 타고나서 나라의 훈업을 이루었으니 한 란(韓 蘭) 그의 시호는 위양(威襄)이라 하였다.

속리산맥을 타고 내려와 황간(黃澗) 땅에 이르러 우뚝 솟은 지장영봉(芝庄靈峰)은

사위(四圍)를 거느리고 멀리 백리에 뻗쳐 영기(靈氣)가 모였으니

이곳에서 당대의 위인(偉人) 한 란(韓 蘭)이 탄생하셨다.

옛부터 전하는 말에 의하면 태조가 견훤(甄萱)을 정벌하려 청주 고을에 당도하자

태위공께서 군례(軍禮)을 갖추고 이를 맞이하여 창고에 비축한 곡식을 풀어

10만 군사를 배불리 먹이고 참전하여 전공을 세워 고려 왕조의 터전을 다졌으니 참으로 위대한 분이다.

이세(二世) 영(穎)의 벼슬이 용호군 교위(龍虎軍 校尉) 이고

삼세(三世) 상휴(尙休)는 별장 동정(別將同正)이다.

그리하여 여음(餘蔭)이 후세까지 끼쳐 공경대부(公卿大父)가 이어 왔으니

묘(墓)는 충북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에 안장하였고 묘비,신도비 (神道碑)와 청주시 방서동의 무농정(務農亭)과

방정(方井) 제단비(劑壇碑)는 후손들의 정성의 표상이다.

특히 충북 영동군 황간면 난곡리 입구(入口)에는 태위공의 탄생지 유허비(遺墟碑)가 세워졌으며

공(公)의 묘하(墓下)에는 세일재 (歲一齋)가 세워져 있다.
 

한씨는 한국의 최고(最古) 역사를 지닌 이른바 삼한갑족(三韓甲族)이다.

본관은 오늘날 한씨 거의가 청주(淸州) 단본을 내세우고 있는데,

문헌에는 청주 외에 평산(平山)·한양(漢陽)·안변(安邊)·양주(楊州)·곡산(谷山)·홍산(鴻山)·

대흥(大興)·부안(扶安)·개성(開城)·함흥(咸興)·금산(錦山)·단주(湍州) 등 1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 청주에서 분적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언제 어떻게 분적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한씨는 멀리 고조선시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청주한씨세보》에 의하면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마지막 왕인 준왕(準王)의 후대에

우성(友誠)·우평(友平)·우량(友諒)의 3형제가 있어, 각각 기씨(奇氏)·선우씨(鮮于氏)·한씨(韓氏)가 되었다고 하며,

따라서 청주한씨의 시조 한란(韓蘭)은 기자의 후예인 우량의 원손(遠孫)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종래 '기씨조선(箕氏朝鮮)'으로 알려졌던 고조선사회는 실상 '한씨조선'이고,

준왕은 '기준(箕準)'이 아니라 '한준(韓準)'이며, 따라서 한씨는 기자의 후예가 아니라

한국의 고유한 씨족이라는 것이 사학계의 통설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고조선의 한씨는 마치 부여의 해씨(解氏), 고구려의 고씨(高氏), 백제의 부여씨(扶餘氏),

신라의 박씨(朴氏)·김씨(金氏), 발해의 대씨(大氏), 고려의 왕씨(王氏),

조선의 이씨(李氏)와 마찬가지로 한국 고유의 대성(大姓)이었다.

고조선시대의 왕실이었던 한씨는 고려 후기에 이르러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는데,

우선 조선시대에 문과급제자 315명, 상신(相臣) 12명, 공신(功臣) 24명, 대제학 1명을 배출하였다.

한편, 왕비도 6명을 배출하였다. 오늘날 청주를 중심으로 한 충북 일대는 한씨의 동족부락이 적지 않아

신씨(申氏)와 함께 이 고장의 대성으로 꼽히고 있다.

 

청주한씨의 분포지역을 보면,

충간공파(忠簡公派)는 충남·경기,

문정공파(文靖公派)는 강원·경남,

몽계공파(夢溪公派)는 경상도 상주·합천,

관북파(關北派)는 평안북도 안변 및 함경도 함흥·영흥,

충성공파(忠成公派)는 충남·부산,

양절공파(襄節公派)는 전국 각처에 각각 분포되어 있다.

그밖에도 제주에 많이 살고 있는데, 이 일문(一門)은 고려 말기 예문관 대제학으로서

태조(太祖)를 섬기지 않아 유배된 천(蕆)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1960년도 국세조사에서는, 7만 1022가구에 인구 39만 7817명으로,

성별 순위는 258성 중 제11위였고, 1985년도 조사에서는 가구수 14만 9511가구,

인구수 62만 8388명으로 274성 중 제11위였다.

2000년 국세조사에서는 인구 70만 4365명, 가구수 21만 8821가구, 286성 중 제12위였다.

청주한씨의 세계(世系)는 시조 한란의 후대에서 30여 파로 나뉘는데,

그 중 후손이 많기로는 ① 양절공파, ② 문정공파, ③ 충간공파, ④ 몽계공파, ⑤ 관북파, ⑥ 충성공파 등

6파가 청주한씨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충성공파〉 한명회(韓明澮:충성공)는 시조 한란의 12대손 기(起)의 아들이다.

그의 조부 상질(尙質)은 고려 말기에 병마절도사를 역임하고

조선 개국 초기에 주문사(奏聞使)로 명(明)나라에 들어가 '조선'이라는 국호를 정해 받고 돌아온 사람이다.

증조부 수(脩)는 공민왕 때 대언(代言)이 되어 신돈(辛旽)이 집권하자 이를 반대하였으며,

당대의 명필로서 특히 예서와 초서에 뛰어났다.

종조부 상경(尙敬)은 조선 개국공신이 되어 공조판서·우의정 등을 지내고 영의정에 올라 서원(西原)부원군에 봉해졌다.

이렇듯 빼어난 가문을 배경으로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심복으로 단종 1년 '계유정난'에서

정난공신 1등에 올라 이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세조의 뒤를 이어 어린 예종이 즉위하여 세조비 윤씨가 수렴청정(역사상 첫 大妃聽政)을 하게 되자

신숙주 등과 그 일익을 담당하여 4차례의 공신이 되었다.

특히 한명회 일가의 혼인 관계는 당대 지배층 성격의 일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에게는 아들 하나 딸 넷이 있었는데, 맏딸은 세종의 부마인 '파평윤씨' 윤사로(尹師路)의 며느리가 되고,

둘째딸은 영의정 신숙주의 맏아들에게 출가하였으며, 셋째 및 넷째딸은 각각 예종비와 성종비가 되었다.

또, 손자는 성종의 부마가 되었다.

이렇듯 한명회 일가는 왕실과 이중삼중의 인척관계를 맺음으로써 족세(族勢)를 더욱 강화시킨 본보기이다.

 

〈양절공파〉 한확(韓確:양절공)은 세종 때 병조·이조판서를 거쳐 단종 때 우의정을 지내고, 세조 때 좌의정을 지냈다.

그의 딸은 덕종(성종의 아버지)비가 되었으며, 누이 둘은 각각 명(明)나라의 태종비(太宗妃)·선종비(宣宗妃)가 되었다.

또, 그의 세 아들 치인(致仁)·치의(致義)·치례(致禮) 등도 모두 현달하였다.

선조 때의 명상(名相) 응인(應寅)은 확의 6대손이다.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익모(翼謨)와 그의 형 대사헌 현모(顯謨)는 응인의 6대손이고,

이조판서 광회(光會)는 7대손이다.

또, 순조 때 영의정을 지낸 용구(用龜)는 현모의 손자이고,

예조판서 정교(正敎)는 용구의 손자이며,

고종 때 이조판서·대제학을 지내고 당대의 명문장으로 날렸던 장석(章錫)은 용구의 증손이다.

양절공파의 방계(傍系)로 확의 조카가 되는 치형(致亨)은 연산군 때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으나,

왕의 폭정을 충간하다가 참사를 당하였다.

 

〈문정공파〉 한계희(韓繼禧:문정공)는 관찰사 혜(惠)의 아들이다.

그는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세조 때에는 세자(世子)를 가르쳤으며, 성종 때에는 좌찬성에 이르렀다.

그는 '기내 훈구파(畿內勳舊派)'의 유학자로서 《경국대전(經國大典)》 《의방유취(醫方類聚)》 등을 편찬하였다.

형 계미(繼美), 아우 계순(繼純)도 모두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광해군 때 좌의정을 지낸 효순(孝純)은 계희의 현손이다.

당대의 이름난 학자로서 《동국지리지》를 저술하여 실학에 선구적 업적을 남긴 백겸(百謙)은 효윤(孝胤)의 아들이다.

그리고 석학 원진(元震)은 계희의 9대손이다.

원진은 영조 때 가장 걸출했던 학자로, 당시 심성론(心性論) 논쟁에서 '낙론(洛論)'인 이간(李柬)의 주장을 반대,

인간의 성(性)이 같지 않음을 주장하여 '호론(湖論)'의 영수가 되었다.

그는 김장생(金長生)-송시열(宋時烈)-권상하(權尙夏)로 이어지는 이이(李珥)의 학통을 계승,

송시열이 저술에 착수했던 《주서동이고(朱書同異考)》를 50년 만에 완성하였는데,

그 책은 한국 유학사상 괄목할 만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충간공파〉 고려 말기의 이부상서를 지낸 한리(韓理:충간공)를 시조로 한다.

그의 아들 승순(承舜)의 세 아들 서룡(瑞龍)·서봉(瑞鳳)·서구(瑞龜)의 후손에서 번창하였다.

특히 서룡의 아들 5형제 장손(長孫)·중손(仲孫)·종손(終孫)·천손(千孫)·만손(萬孫) 등이 빼어났다.

서구는 수양대군의 심복으로 계유정난에 공을 세워 정난공신에 오르고 중추원첨지사(中樞院僉知事)에 이르렀다.

 

〈몽계공파〉 세칭 보안한씨(保安韓氏)라 부르는 파로,

고려 말에 전법판서(典法判書)를 지낸 한철충(韓哲沖:몽계공)을 시조로 한다.

그는 고려가 망하자 산 속에 은거하면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켰다.

그의 아버지 희적(希迪)은 예의판서·보문각 대제학을 지내고, 조부 연(璉)은 보문각 직제학을 지냈다.

그의 아들 진(珍)·염(廉)·겸(兼)·문(文)은 각각 목사와 예조판서·현감 등을 지냈다.

 

〈관북파〉 세칭 안변한씨라 한다. 이들은 함남 북청·안변·함흥 일대에 많이 살고 있다.

시조인 한련(韓漣)은 예빈윤(禮賓尹)을 지내고 아들 유(裕)는 찬성사를 지냈으며,

고려 말에 밀직부사를 지낸 경(卿)이 그의 손자이다.

경의 딸이 이성계(李成桂)의 부인으로 신의왕후(神懿王后)에 추봉되었다.

태조가 즉위하자 문하부영사(門下府領事)를 지내고 안천(安川) 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밖에 한씨의 인물로는 동방 제1의 명필로 이름난 호(濩:石峯),

인조 때의 학자 교(嶠), 정조 때 동제활자(銅製活字)인 '한구자(韓構字)'로 이름난 구(構) 등이 있다.

근세의 인물로는 한말 참정대신으로 을사조약을 끝까지 반대한 규설(圭卨), 시인이며

승려로 3·1운동 당시 33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한 용운(龍雲),

1936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서 옥사한 한글학자 징(澄) 등이 역사상에 길이 빛날 인물들이다.

 

 

참고로 나는 문정공파 32世 燮자 를 쓰고 있다.

 

가화만사성 (家和萬事成)
모두가 아시다시피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이루워진다'라는 말입니다.
옛날부터 전해온 말이지만 시대, 장소를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들어맞는 진리라 생각됩니다
가정에서의 근심은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큰 부담이 될 것이며,
이런 부담은 성공에 이르는 길을 막게 될 것입니다.
가정의 평화는 성공의 주춧돌이며, 자녀들이 바르게 커갈수 있는 양분입니다.

 

우리나라 옛 전래동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색시가 시집을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하루는 밥을 짓다 말고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남편이 이유를 물으니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은

오늘은 바빠서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했더니
물이 부족해서 밥이 탔다며 이것은 자기의 잘못이라 위로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울음을 그치기는 커녕
감격하여 더 눈물을 쏟았습니다.
부엌 앞을 지나가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사정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가 늙어서 근력이 떨어져서 장작을 잘게 패지 못했기 때문에

화력이 너무 세서 밥이 탔다고 아들과 며느리를 위로했습니다.
그 때 이 작은 소동을 들은 시어머니가 와서
이제 내가 늙어서 밥 냄새도 못 맡아서 밥 내려 놓을 때를 알려주지 못했으니

자기 잘못이라고 며느리를 감싸주었습니다. 

옛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모두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잘못을 스스로 반성하고 또 자기가 잘못을 뒤집어쓰면서까지
남을 위하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화목이 찾아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대학』과 『여씨춘추』라는 책에 나온 말입니다.
"자신의 몸을 닦고, 가정을 바로잡으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히 한다"라는 말이지요.
유교에서의 말로써 가정을 바로잡고,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일에는 '수신'이 따라야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올바르게 발전시킨 사람이 가족을 잘 이끌수 있으며, 가족을 잘 이끌음으로써 더 큰일도 할 수 있고,
그것이 곧 자신을 수신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은섭 옮김

연꽃의 10가지 오묘한 특성과 심오한 의미


연꽃은 다음과 같은 10가지 오묘한 특성과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답니다.
연꽃에 담겨진 그 오묘한 특성과 깊은뜻을 헤아려 애써 닮고져하는 사람은
연꽃처럼 청정하게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군요.



1. 이제염오(離諸染汚)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주변의 부조리와 환경에 물들지 않고 고고하게 자라서
아름답게 꽃피우는 사람을 연꽃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이제염오(離諸染汚)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2. 불여악구(不與惡俱)

연꽃잎 위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
물이 연잎에 닿으면 그대로 굴러떨어질 뿐이다.
물방울이 지나간 자리에 그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와 같이 악과 거리가 먼 사람,
악이있는 환경에서도 결코 악에 물들지
않는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불여악구(不與惡俱)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3. 계향충만(戒香充滿)

연꽃이 피면 물속의 시궁창 냄새는 사라지고 향기가 연못에 가득하다.
한 사람의 인간애가 사회를 훈훈하게 만들기도 한다.
고결한 인품은 그윽한 향을 품어서 사회를 정화한다.
한자락 촛불이 방의 어둠을 가시게 하듯

한송이 연꽃은 진흙탕의 연못을 향기로 채운다.
이렇게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계향충만(戒香充滿)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4. 본체청정(本體淸淨)

연꽃은 어떤 곳에 있어도 푸르고 맑은 줄기와 잎을 유지한다.

바닥에 오물이 즐비해도 그 오물에 뿌리를 내린다.

연꽃의 줄기와 잎은 청정함을 잃지 않는다.
이와 같아서 항상 청정한 몸과 마음을 간직한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본체청정(本體淸淨)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5. 면상희이(面相喜怡)

연꽃의 모양은 둥글고 원만하여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온화해지고 즐거워진다.
얼굴이 원만하고 항상 웃음을 머금으며
말은 부드럽고 인자한 사람은 옆에서 보아도
보는 이의 마음이 화평해진다.
이런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면상희이(面相喜怡)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6. 유연불삽(柔軟不澁)

연꽃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하다.
그래서 좀처럼 바람이나 충격에 부러지지 않는다.
이와같이 생활이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으면서도
자기를 지키고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유연불삽(柔軟不澁)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7. 견자개길(見者皆吉)

연꽃을 꿈에 보면 길(吉)하다고 한다.

하물며 연꽃을 보거나 지니고 다니면 좋은일이 아니 생기겠는가!
많은 사람에게 길(吉)한 일을 전해주고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견자개길(見者皆吉)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8. 개부구족(開敷具足)

연꽃은 피면 필(必)히 열매를 맺는다.사람도 마찬가지다.
꽃피운 만큼의 선행은 꼭 그만큼의 결과를 맺는다.
연꽃열매처럼 좋은씨앗을 맺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개부구족(開敷具足)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9. 성숙청정(成熟淸淨)

연꽃은 만개(滿開)했을 때의 색깔이 곱기로 유명하다.
활짝핀 연꽃을 보면 마음과 몸이 맑아지고 포근해짐을 느낀다.

사람도 연꽃처럼 활짝 핀 듯한 성숙감을 느낄수 있는 인품의 소유자가 있다.
이런 분들과 대하면 은연중에 눈이 열리고 마음이 맑아진다.

이런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성숙청정(成熟淸淨)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10. 생이유상(生已有想)

연꽃은 날 때부터 다르다. 넓은 잎에 긴 대,
굳이 꽃이 피어야 연꽃인지를 확인하는것이 아니다.
연꽃은 싹부터 다른꽃과 구별된다.
장미와 찔레는 꽃이 피어봐야 구별되고, 백합과 나리도 마찬가지다.
이와같이 사람중에 어느누가 보아도 존경스럽고 기품있는 사람이 있다
옷을 남루하게 입고 있어도 그의 인격은 남루한 옷을 통해 보여진다.

이런 사람을 연꽃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생이유상(生已有想)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생명(生命)은 취산(聚散)이다.
일체(一切) 지, 수, 화, 풍(地水火風)이
모두 내 전생(前生)의 몸(身)이였으니
살아있는 모든 목숨들을 항상 존중해야 한다.

 

보살(菩薩)은 무슨 일을 하든지 중생(衆生)을 위해서 하고,
중생(衆生)은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自身)을 위해서 한다.
보살(菩薩)같은 마음으로 살자.

 

설사 신(神)에게 백, 천(百千)번 기도하고
모든 외도(外道)에게 공양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에게 기쁨으로 베푸는 공덕(功德)의
1/16에도 미치지 못 하리니,

사람을 가리지 말고
평등(平等)한 마음으로 골고루 보시(布施)하라.

 

선(善)과 악(惡)은 반드시 과보(果報)가 있으니
자신(自身)이 닦은 선악(善惡)의 과보(果報)는 그냥 살아지지 않는다.
현생(現生)에서 받지 않으면 후생(後生)에서 라도 받게 된다.

 

음식을 보시(布施)하면 큰 힘을 얻고,
의복을 보시(布施)하면 좋은 얼굴을 얻고,
등불(眞理)을 보시하면 밝은 눈을 얻는다.

평상시(平常時) 복(福) 짓는 마음을 갖추면
행복한 인생길이 열려있다.

 

idiots  HanEunS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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