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이야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독일어: Albert Einstein, 영어: Albert Einstein 앨버트 아인스타인,
1879년 3월 14일 ~ 1955년 4월 18일)은 독일 태생의 미국 이론물리학자이다.

그의 일반 상대성이론은 현대 물리학에 혁명적인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1921년 광전효과에 관한 기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독일 울름에서 전기 회사 사장이었던 유대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두 살 아래인 여동생 마야(Maya)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 헤르만 아인슈타인과 어머니 파브리네는 매주 교회에 나가는 로마 가톨릭 신자였으며, 집안에도 청동으로 만든 십자고상이 있었다.
한 살 때 아버지와 숙부의 전기 회사 설립으로 대대로 살던 울름을 떠나, 뮌헨으로 이사했다.
초등학교 시절 아인슈타인은 유럽인들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가 다닌 초등학교는 로마 가톨릭 학교였는데, 교사가 수업 시간에 대못을 보여 주며, "유대인은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고 말했던 것이다.[2]
반유대주의는 유대인 아인슈타인이 존경 받는 과학자가 된 후에도 그를 괴롭혔다.

그는 어려서부터 백부와 숙부의 영향으로 일찍이 수학과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계몽사에서 만든 학생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어릴적에 대수를 보고 궁금해하자 작은아버지가 대수에 대해 "모르는 숫자를 X라 하고,
답을 찾으려고 셈하는 것이야."라고 알기 쉽게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과학과 수학 성적은 매우 좋았으나 학교에서는 대체로 군대식 전체주의 교육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반항적인 학생이라 여겨졌다.
계몽사에서 만든 그림위인전기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어릴적에 아빠,
여동생 마야와 같이 군인들의 행렬을 보고는 "자유롭게 행동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군인들은 불쌍한 사람이기 때문에, 군인이 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런터라 학교에서의 전체주의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인슈타인은 동물도 좋아했는데,경인일보 기자가 쓴 웅진세계위인전기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어릴때에 다친 백로를 불쌍히 여겨서 집에 데려와서 돌보기도 했다.
백로를 돌보는 일을 의대생이 백과사전을 같이 읽으며 도와주었다.

1894년, 부친의 사업부진으로 가족 전체가 이탈리아 밀라노로 건너가게 된다.
그는 이후 홀로 독일의 김나지움에 진학했으나, 학생의 개성을 무시하는 군대식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였다.
결국 신경쇠약으로 공부를 쉬어야 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자,
17세의 아인슈타인은 "다시는 독일 땅을 밟지 않겠다."라며 학교를 떠났다.
이후 독학으로 공부하여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 Zürich)에 응시하였으나 낙방 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수학 성적을 눈여겨본 학장의 배려로 1년간 아라우에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나서 결국 연방 공과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대학 시절 아인슈타인은 그다지 눈에 띄는 학생도 아니었고, 성적도 중상위권을 맴도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학부 시절 교수였던 저명한 수학자인 민코프스키와의 마찰 때문에 수학에 대한 흥미를 상당히 상실한 상태에서 물리학에 더 심취하게 된다.
비교적 자유로운 풍토의 대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학과 공부에 대한 열의가 별로 없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 외에는 출석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학과 물리학 시험에서는 1등을 하기도 했으나 졸업 시험 때는 만점 6점에 평점 4.91점을 받아 전체 6명 중 4등을 했다.
그러나 대학 동기였던, 후일 아인슈타인의 아내가 되는 말레바는 졸업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서 결국 졸업을 하지 못한다.
특히 수학 성적이 부족했는데, 추후 재수를 했지만 결국 실패한다.

이는 후술하게 되는, 말레바가 초기 아인슈타인 논문의 조력자인가에 대한 논란을 해소하는 한 근거가 된다.

 

 

상대성이론(相對性理論, 독일어: Relativitätstheorie, 영어: theory of relativity)
또는 상대론(독일어: Relativität, 영어: relativity, 문화어: 상대성)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제창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물리 이론으로,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나뉜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서로 다른 상대 속도로 움직이는 관측자들은 같은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난 것으로 측정하며,
그 대신 물리 법칙의 내용은 관측자 모두에 대해 서로 동일하다.

상대성 이론은 단순한 자연 법칙이 아니고 일종의 사고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상대성 이론은 인식에 대한 대변혁을 일으킨 것이다.
추상적 수학 개념과 세밀한 관측이 자연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고 알려준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아이작 뉴턴이 해결하지 못했던,
측정의 대상이 되는 물체와 측정의 기준이 되는 기준 좌표계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고민에서 상대성 이론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 상대성 이론은 돌파구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심각하고 깊은 옛 이론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생겨났다.
이 새로운 이론은 일관성과 간결함을 유지하면서 옛 이론의 모순을 강력히 해결한다. ” 
 — 아인슈타인, 《물리학의 진화》에서 -

 

 

특수 상대성 이론

특수 상대성 이론은 시공의 구조에 대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의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
(독일어: Zur Elektrodynamik bewegter Körper, 영어: on the Electrodynamics of Moving Bodies)〉라는
논문에서 특수 상대성 이론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맥스웰의 전자기학이 고전역학의 갈릴레이 대칭성을 지키지 않는다는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자기학을 통해 전자기파의 속도를 계산할 수 있는데,
이렇게 구한 전자기파의 속도는 관측자의 상대 운동과는 관계없이 상수이며, 이는 갈릴레이 대칭성을 위반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두 개의 공준을 도입하고,
그 공준에 따르면 자연계는 갈릴레이 대칭성 대신 로런츠 대칭성을 따른다는 사실을 보였다.

특수 상대성이론에서는 관성 좌표계의 관측자가 자신의 "절대 운동"을 실험적으로 측정해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는 관성 좌표계에 있는 각각의 관측자 모두에 대해 동일하다고 가정한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단 두 개의 공준만을 바탕으로 하며, 이로써 다른 모든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1.진공에서의 빛의 속도는 모든 관측자에 대하여 동일하다.
2.모든 관성 좌표계에 있는 관측자에 대해 물리 법칙은 동일하다. (여기에는 전자기학의 법칙도 포함된다.)

첫 번째 공준은 (절대적 속도를 허용하지 않는) 고전역학의 갈릴레이 대칭을 부정한다.
두 번째 공준은 역학에서의 상대성 원칙을 전자기학까지 확장한 것이다.

이 두 공준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현상들을 예측할 수 있다.
시간 확장: 움직이는 물체 내(S1)에서의 시간변화는 외부관찰자(S)에게 천천히 시간이 변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길이 축소: 외부관찰자(S)의 눈에 움직이는 물체는 외부관찰자(S)의 눈에 비친 움직이는 방향으로 짧아져 보인다.
동시성의 상대성: 관찰자 A(S1)의 눈에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관찰된 어떤 두 사건은,
A에 대해 상대운동을 하는 외부관찰자 B(S)의 눈에는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질량-에너지 동등성: E = mc² 공식에 의해 에너지와 질량은 등가이고 변환 가능하다.

여기서 S는 고정 관성계이며 S1은 운동하는 관성계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은 1915년에 아인슈타인이 발표하였다.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에서 1915년 11월 25일에 제출)
일반 상대성이론은 특수 상대성이론의 확장판이라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 이론은 뉴턴의 고전 물리학에 결정타를 날림으로서 새로운 물리학적 이론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이를 전개하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 가정을 보도록 하자.
등가원리 -가속 좌표계에서 지구로 인해 생기는 중력과 중력가속도g로 운동하는 것으로 인한 관성력은 구분할 수 없다


1. 시공간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은 4차원, 즉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형태의 연속체'임을 규명했다.
뉴턴이 시공간이 시간과 공간으로 분리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별개의 공간인 점과,
공간위의 한 점에 위치한 물체에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에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에서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이 서로 상호작용함과,
공간위에 위치한 어떠한 질량을 가진 물체에 대하여 공간이 휘어짐을 제시하였다.


2. 중력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중력을 가속운동계에 적용시켰다.
그는 중력가속도g의 크기만큼 가속하는 가속계 내의 물체와, 중력을 받고있는 물체는
서로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이론을 내세움으로서 가속계를 관성계로 해석가능함을 보였다.


3. 중력으로 인한 시간팽창

위에서 가속계 역시 관성계로 인식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가속계의 물체는 관성계에서 물체의 이동으로 판단할 수 있고,
특수 상대성이론에 따라 시간지연이 일어남을 알 수 있다.
이로서 중력을 받는 물체는 그 물체에 흐르는 시간이 느려지게 된다.


4. 공간 왜곡으로 일어나는 현상

4-1. 빛의 휘어짐 : 빛의 움직임을 가속운동계에 적용시켜보면, 그 빛이 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중력으로 인하여 빛이 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2. 중력렌즈효과 : 이는 일식이 일어날 때 관측할 수 있는 현상인데,
바로 태양의 뒤에 위치하여 가려져 있던 천체가 태양의 중력에 의한 영향으로 그 빛이 휘어져 우리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흔히 '아인슈타인의 십자가'라는 것이 이로 인한 현상이다.

4-3. 블랙홀 : 질량이 매우 큰 천체는 공간을 심하게 왜곡하여 빛마저 삼켜버릴 수 있다.


5. 일반상대성이론의 증거

① 에딩턴의 태양의 일식 관측 : 지구에서 별을 관측할 때,
별과 지구사이에 태양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별의 관측위치를 비교하여 빛이 휘는 것을 관찰

② 수성의 세차운동 : 뉴턴의 이론에 따라 계산하면 100년동안 574´´만큼 이동해야 하지만,
실제 세차운동 관측결과 43´´정도 오차가 났다.
하지만 일반상대성 이론에 시공간의 곡률을 고려한 결과 이 차이를 정확히 설명

③ 중력렌즈 : 중력이 렌즈처럼 빛을 휘게 하는 현상이다.
대표적으로 퀘이사가 있다.(퀘이사는 은하의 중력 때문에 지구에서 4개의 빛나는 쌍둥이별로 오인했었다.)

④ 중력파 : 천체의 중력붕괴나 초신성폭발 같은 우주현상으로 발생하여 시공간이 일그러짐이 광속으로 파도처럼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이전까지 발견되지 않고있다가 최근 블랙홀에서 발견되었다.)

⑤ GPS : 인공위성이 움직이기 때문에 시간차이가 생기는데 속력과 중력의 작용을 고려하여 보정해줘야 한다.

⑥ 블랙홀 : 질량이 매우 큰 천체는 공간을 휘게하여 천체를 지나는 빛마저 흡수한다.
(아인슈타인이 2차원의 평면에 시간의 곡률을 표기한 그림에서 보면 블랙홀은 질량이 극도로 커 평면 자체가 엄청나게 움푹 들어가있다.
이때 블랙홀의 부분중 넘게되면 빛조차 절대 빠져나올수 없는 선이있는데 이곳을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하며
이 안쪽부분은 어떠한것도 빠져나오지 못하므로 검게보인다.)

 

 

특수 상대성 이론과 광양자설

1900년 봄, 아인슈타인은 연방 공과대학교를 겨우 졸업하였지만,
전술한 민코프스키 등 지도 교수와의 마찰에 의해 교수 추천서를 받지 못한 것과,
기타 시민권 문제와 유대인에 대한 배척 등의 이유로 전공 관련 직장에 취업을 하지 못하였다.
그 와중에 여자 친구였던 밀레바의 임신으로 인해 돈이 필요하던 중에 겨우 보험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으나,
이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일간지에 가정 교사 광고를 내는 등의 과외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힘들던 중에, 다행히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한 후, 대학 친구였던 수학자 마르첼 그로스만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베른에 있는 특허 사무소의 심사관으로 채용될 수 있었다.
특허 심사관으로 근무하던 1905년, 아인슈타인은 독일의 물리학 연보(Annalen der Physik)에 일련의 중요한 논문들을 다섯 편 연달아 발표한다.
우선 5월 한 달 동안 차례대로 브라운 운동에 관한 '정지 액체 속에 떠 있는 작은 입자들의 운동에 대하여'[3],
빛의 광전 효과를 설명하여 고전 양자론을 태동시킨 '빛의 발생과 변화에 관련된 발견에 도움이 되는 견해에 대하여',
그리고 특수 상대성이론을 소개한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를 발표하였다.
1905년 8월에는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설을 제창한 '물체의 관성은 에너지 함량에 의존하는가'를 발표하였다.
1905년에 발표한 이 네 편의 논문들은 최초로 원자의 존재와 통계적 요동을 바탕으로 브라운 운동을 설명하는 한편,
현대물리학에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라는 두 축을 등장시키게 되는 혁명적인 논문들이었다.

또한 도중에 같은 해 7월에는 '분자의 크기에 관한 새로운 규정'을 발표한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으로 취리히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이 논문은 고체를 이루는 분자의 운동과 에너지에 관련된 것이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의 전개

이후 특수 상대성이론이 알려짐에 따라 아인슈타인은 유럽에서 점점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상대성이론을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도입하여 중력을 포함한 이론으로 확장하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특허 사무소를 떠나서 학계로 입성한 그는 스위스에서 그리고 프라하와 독일의 대학교에서 정교수로 있었으며,
1912년 겨울에 모교인 ETH 취리히의 교수로 돌아왔다.
1914년에는 독일의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에 자리를 얻어 베를린에 머무르게 된다.
1914년에 드디어 일반 상대성 이론의 측지선 공식에 대한 최초의 형식화인 '일반 상대성 이론의 형식적 기초'를 발표하게 되었다.
그는 일련의 시행 착오 끝에 1915년에 발표한 4편의 논문 중 마지막인 '중력의 장방정식'에서
마침내 일반 상대성 이론의 완결된 장방정식을 최초로 구현해 내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물리학 이론은 ?

상대성 이론 16.4

만류인력과 운동법칙 13.9

양자역학 13.0

빅뱅과 현대 우주론 7.5

전자기학과 전자기유도 7.3

반도체와 트랜지스터 6.2

엔도르피의 법칙 5.5

빛의 이중성 5.4

나노테크놀로지 4.8

핵물리학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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