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夕, 仲秋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나라마다 명절(festive day)은 존재한다.
한국에도 설,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유두, 추석, 동지, 칠석 등 예로부터 내려오는 명절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각 명절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고유의 풍습과 놀이, 음식 등을 즐겼다.
하지만 아쉽게도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큰 명절이 아니고서는 잘 챙기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오늘은 다 알고 계시겠지만 추석 중추절의 대해서 잠시 알아보고자한다.
추석명절의 유래
추석은 중부지방보다 남부지방에서 설날과 같은 제일 큰 명절로 취급하고 있다.
추석절의 의미는 벌초와 성묘를 최고로 생각하며,
조상으로부터 음덕을 받아 후손들의 삶이 풍요롭고 훌륭한 인재배출로
가문이 번창하길 기원하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그래서 추석에는 너도나도 고향 산소를 찾아 벌초하고 성묘하면서 차례를 지낸다.
경제가 어려워도 조상에 대한 정성만큼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차례상 준비에 더 많은 정성을 쏟아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세시풍속은 시대에 따라 변천되었지만,
당초에는 궁중 내에서 여자들의 길쌈 노동의 놀이로 시작했던 것이
민속명절로 전개되었고 성묘와 조상제사와 연관된 것 같은데 상세한 내력은 불분명하다.
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대사회의 풍농제에서 기원했으며 일종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조에 기록하고 있는데
유리왕 9년(32)에 왕이 6부 호칭을 정하고 중간을 나눠 둘로 편성한 다음
왕녀 2인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편을 나누어
7월 보름날부터 매일 이른 아침에 대부(大部)의 마당에 모아놓고
길쌈을 해 이경쯤에 일을 끝내는 것을 8월 보름날까지 계속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시대에도 추석명절을 쇠었으며
중종 13년(1518)에는 설·단오와 함께 3대 명절로 정해지기도 했다.
추석명절은 마음과 삶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 같다.
바쁜 일년동안 삶의 전쟁으로 잊어버렸던 조상과 나를 찾아보고 고향을 생각하며,
잠시나마 조상에게 정성을 들이고자 모두가 고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들녘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어 더욱 심신의 피로를 녹이는 듯하다.
아늑하고 따뜻한 고향산천의 자연과 함께 보내는 날이 가장 즐거운 날이 될 것이다.
추석의 어원
추석이라는 말은 예기(禮記)의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중추절(仲秋節)이라 하는 것도 가을을 초추·중추·종추 3달로 나눠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었으므로 붙은 이름이다.
추석은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로 한가위, 중추절(仲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한다.
한가위의 한은 '하다(大·正)'의 관형사형이고, 가위란 '가배(嘉俳)'를 의미한다.
이때 가배란 '가부·가뷔'의 음역(音譯)으로서 '가운데'란 뜻인데,
지금도 신라의 고토(故土)인 영남 지방에서는 '가운데'를 '가분데'라 하며,
'가위'를 '가부', '가윗날'을 '가붓날'이라고 한다.
또 8월 초하루에서 보름께 까지 부는 바람을 "8월 가부새 바람 분다"라고 한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가뷔·가부는 뒷날 가위로 속전(俗轉)된 것으로 알 수 있으니,
'추워서'를 현재에도 '추버서'로 하는 것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가위란 8월중에서도 정(正)가운데란 뜻이니,
정중심(正中心)을 우리가 '한가분데' 또는 '한가운데'라고 하듯이
'한'은 제일(第一), 큰(大)의 뜻 이외에도 한(正)의 뜻이 있음도 알 수 있다.
한가위를 추석, 중추절(仲秋節·中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 한 것은 훨씬 후대에 와서 생긴 것이다.
즉 한자가 전래되어 한자 사용이 성행했을 때 중국 사람들이 '중추(中秋)'니 '추 중(秋中)'이니 하고,
'칠석(七夕)'이니 '월석(月夕)'이니 하는 말들을 본받아 이 말들을 따서 합하여
중추(中秋)의 추(秋)와 월석(月夕)의 석(夕)을 따서 추석(秋夕)이라 한 것으로 생각된다.
추석의 유래
추석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고대로부터 있어 왔던 달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사회에 있어 날마다 세상을 밝혀 주는 태양은 당연한 존재로 여겼지만
한 달에 한번 만월(滿月)을 이루는 달은 고마운 존재였다.
밤이 어두우면 맹수의 접근도 알 수 없고
적의 습격도 눈으로 볼 수가 없기에
인간에게 있어 어두운 밤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만월은 인간에게 있어 고마운 존재였고,
그 결과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게 되었다.
그런데 만월의 밤중에서도 일년 중 가장 큰 만월을 이루는 8월 15일인 추석이
큰 명절로 여겨진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고 먹고 마시고 놀면서 춤추었으며,
줄다리기, 씨름, 강강수월래 등의 놀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고대에 만월을 갈망하고 숭상하던 시대에
이미 일년 중에서 가장 달이 밝은 한가위는 우리 민족 최대의 축제로 여겨지게 되었고,
후에 와서 의식화(儀式化)되어 명절로 제정(制定)을 보게 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잘 나타나 있다.
"신라 제3대 유리왕(儒理王) 9년(서기 32년)에 왕이 6부를 정하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두 패로 가른 뒤,
편을 짜서 7월 16일부터 날마다 6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
밤늦게 일을 파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이 많고 적음을 살펴 가지고
지는 편은 술과 밥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에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것을 이를 가배(嘉俳)라 한다"고 하였고,
또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다웠으므로 뒷날 사람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추석의 풍속
추석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는
벌초(伐草)·성묘(省墓)·차례(茶禮)·소놀이·거북놀이·강강수월래·원놀이·
가마싸움·씨름·반보기·올게심니·밭고랑 기기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밭고랑 기기는 전라남도 진도에서는 8월 14일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연령 수대로 밭고랑을 긴다.
이 때에 음식을 마련해서 밭둑에 놓고 하는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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