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편. 성현 도통(聖賢道統)

 

신이 살피건대, 상고(上古)의 성신(聖神)이 하늘을 이어 만민의 준칙을 세우니, 이로부터 도통(道統)의 전승이 시작되었습니다.
문자가 생기기 전은 막연하여 상고해 볼 수 없고, 8괘(卦)가 처음으로 그어지니, 인문(人文)이 비로소 선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삼가 모훈(謀訓: 뒷 임금에게 모범이 될 교훈)에 의거하고 겸해서 사적을 고람하여, 대략 여기에 기술하였습니다.

복희씨(伏羲氏)252)로부터 주자에까지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실적을 나타내었으니,
먼저 공효를 살피고 뒤에 실적을 고람하면 가히 따를 바에 어둡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은 도통(道統)의 복희씨(伏羲氏)로부터 주공(周公)에 이른 것입니다.
성인(聖人)의 덕으로 군사(君師)의 지위에 앉아 자기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림이 각각 지극하였습니다.
(주공(周公)은 비록 임금의 지위에 있지는 않았으나 역시 천하를 다스리는 도(道)를 다하였습니다.)

옛날 포희(包犧)씨가 천하를 다스릴 적에는 우러러 하늘의 형상을 보고,
구부려 땅의 법도를 보며 조수(鳥獸)의 무늬[文]와 땅의 마땅한 것을 관찰하며,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해서,
이에 비로소 8괘를 만들어 신명(神明)의 덕을 통하고, 만물의 정을 분류하였다. (역계사(易繫辭)하동)

왕소소(王昭素)는 말하기를, "여지(與地)라는 글자 사이에 다른 본(本)에는 천(天)자가 많이 있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구부려보기도 하고 우러러보기도 하며 멀리도 취하고 가까이도 취하는 것이 한결 같지 않으나,
이것은 다 음양(陰陽)의 기운이 소식(消息)하는 두 끝[兩端]에 체험할 뿐이다.
신명의 덕이란 것은 건(健)·순(順)·동(動)·지(止)의 성(性)이요, 건(乾)은 건(健)하고, 곤(坤)은 순(順)하며,
진(震)은 동(動)하고, 간(艮)은 지(止)합니다.

만물의 정(情)이란 것은 우레[雷]·바람[風]·산(山)·못[澤]과 같은 현상이다." 하였습니다.
진(震)은 우레가 되고, 손(巽)은 바람이 되며, 간(艮)은 산이 되고, 태(兌)는 못이 됩니다.

○사략(史略)에 이르기를, "태호(太昊) 복희씨의 성은 풍씨(風氏)인데,
처음으로 여덟 괘(卦)를 획정(劃定)하고 문자를 만들어서 결승의 정[結繩之政]253)을 개혁하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제도를 만들어, 여피(儷皮:한 쌍의 가죽인데 혼례의 납폐(納幣)로 쓰인다.)를 납폐(納幣)의 예로 삼고
그물을 만들어서 사냥하고 고기잡는 것을 가르치고,
짐승을 길러서 이것을 희생하여 <신에 제사하기 위하여> 포주(廚:여기서는 희생물을 요리하는 요리장)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것을 포희(犧:복희씨임)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포희씨가 돌아가자 신농(神農)씨가 일어났다.
나무를 깍아 보습[]을 만들고 나무를 구부려 쟁기[]를 만들어 밭을 갈고 김매[]는 이로움으로써 천하를 가르쳤다.

절재 채씨(節齋蔡氏)는 말하기를, "보습은 쟁기의 날이요, 쟁기는 보습을 지탱하는 <기구>이다." 하였습니다.

○한상 주씨(漢上朱氏)는 말하기를, "염제(炎帝) 때에는 백성들이 물고기나 짐승을 잡아먹는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쟁기와 보습을 만들어 천하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그를 신농씨(神農氏)라고 한다. 누()는 김맨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사략(史略)에 이르기를, "염제(炎帝)인 신농씨의 성은 강씨(姜氏)인데,
처음으로 밭가는 것을 가르치고, 여러 가지 풀을 맛보아 처음으로 의약(醫藥)을 만들며,
또 낮에 시장을 만들어 물건을 서로 교환하여 가기를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하였습니다.

신농씨가 돌아가고 황제(黃帝)와 요(堯)·순(舜)이 일어났다.
그 변화를 통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게으르지 않게 하였으며, 신통한 것으로써 교화하여 백성들에게 모든 것을 편이하게 하니,
옷을 늘어뜨리고 있어도 천하가 다스려졌다.

건안 구씨(建安丘氏)는 말하기를, "복희씨와 신농씨 때에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일은 비록 없었으나,
인문(人文)이 나타나지 아니하였고, 의식은 비록 족하였으나 예의가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여기에 세 성인 황제·요(堯)·순(舜)입니다.) 이 천지를 살펴서 건곤(乾坤)의 형상을 체득하되, 의상(衣裳)을 바르게 하고,
군신의 분의(分義)를 천지(天地) 사이에 그 구별을 분명하게 하였으니, 어찌 천하가 잘 다스려지지 아니하겠는가.
이 때는 세상이 일신할 기회였고 백성들이 변하여 화하게 될 기회였다." 하였습니다.

○사략(史略)에 이르기를, "황제 헌원씨(軒轅氏)의 성은 공손씨(公孫氏)라고도 하고 희씨(姬氏)라고도 한다.
그는 일월(日月)과 성신(星辰)의 형상을 보고 비로소 천문(天文)의 관직을 두었고,
대요(大撓)에게 명하여 북두(北斗)의 가리키는 것을 점쳐서 갑자(甲子)254)를 만들게 하며,
용성(容成)에게 명하여 책력을 만들게 하고, 예수(隸首)에게 명하여 산수(算數)를 만들게 하며,
영륜(伶倫)에게 명하여 6률(律)과 6려(呂)255)를 만들게 하였다." 하였습니다.

○「역경」의 계사전(繫辭傳)에 이르기를, "나무를 쪼개어 배를 만들고, 나무를 깍아 노[楫]를 만들어, 통하지 못하던 곳을 건너게 하고,
소와 말을 사용하여 무거운 것을 끌고 멀리 이르게 해서 천하를 이롭게 하였으며, 문을 겹으로 하고 딱딱이를 쳐서 난폭한 사람을 못오게 대비하며,
나무를 잘라 절구의 공이를 만들고, 땅을 파서 절구를 만들어 절구와 공이의 이로운 것을 가지고 만민을 구제하였으며,
나무를 휘어서 활을 만들고, 나무를 깍아 화살을 만들어, 활과 화살의 이로운 것을 가지고 천하를 위압하였으며,
옛날에는 굴이나 들판에서 거처하고 있었는데, 후세의 성인은 이를 바꾸어 집과 방을 만들되 들보를 올리는 집을 지어서 비바람을 막았으며,
옛날에는 장사를 지낼 적에 두터운 나무 섶으로 시체를 덮어 들 가운데 두고는, 봉분도 안 만들고 나무도 심지 않았는데,
후세의 성인은 그것을 관[棺槨]으로 바꾸어서 땅에 묻었으며,
또 옛날에는 결승(結繩)의 정(政)으로 다스렸는데 후세의 성인은 문자(文字)로써 이를 바꾸어,
백관에게는 그것으로 다스리게 하고 백성에게는 그것으로 살피게 하였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황제의 뒤에 소호(少昊)·전욱(頊)·제곡(帝)의 삼제(三帝)가 있어서 다 성스러운 임금인데,
계사(繫辭)에서는 다만 황제와 요·순만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도 여기서 요(堯)로써 황제(黃帝) 다음에 붙였습니다.
( 선현들이 도통의 전승을 논함에도 역시 삼제(三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크도다, 요의 임금됨이여, 높고도 높구나.
오직 홀로[惟] 저 하늘이 클 뿐인데 요임금만이 이와 평등[則]하니 그 넓은 덕을 백성들은 무엇이라 이름짓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유(惟)는 홀로라는 뜻이오, 칙(則)은 준칙이란 뜻이다.
탕탕(蕩蕩)은 광원(廣遠)한 것을 일컫는 것이니, 물건이 아무리 높고 크다 하더라도 하늘보다 더 높고 큰 것이 없지마는,
홀로 요임금의 덕만은 하늘에 준(準)하기 때문에 (준(準)한다는 말은 하늘과 더불어 평등하다는 뜻이다.)
그 덕의 광원한 것은 역시 하늘과 같아서 말로서는 형용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사략(史略)에 이르기를, "제요(帝堯) 도당씨(陶唐氏)의 성은 이기(伊祁)씨인데, (제곡(帝)의 아들이고 황제(黃帝)의 현손입니다.)
그의 어진 것은 하늘과 같고, 그의 지혜로운 것은 신과 같아서 백성들이 해[日]를 따르듯 하고 백성들이 구름을 바라듯 하였다." 하였습니다.

아, 높고 높구나, 그가 이룩한 공적[成功]이여. 아, 빛나누나[煥], 그가 성취한 문장(文章)이여.

주자는 말하기를, "이룩한 공적이란 사업(事業)이요,
환(煥)이란 빛나고 밝은 모양이며, 문장(文章)은 예(禮)·악(樂)·법(法)·도(度)이다." 하였습니다.

○윤씨(尹氏)는 말하기를, "천도(天道)의 위대한 것은 하는 것같지 않으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오직 요는 이것을 본받아서[則]이 칙(則)자는 법칙의 칙자입니다.
천하를 다스린 까닭에 백성들은 그것을 무어라고 말로써 이름지을 수 없고, 다만 이름지을 수 있는 것은
그 공업(功業)과 문장이 위대하고 빛난다는 것뿐이다." 하였습니다.

요(堯)는 말하기를, "아[咨], 순(舜)아, 하늘의 역수(曆數)가 그대에게 있으니, 진실[允]로 그 적중함을 잡아 정사를 보살필 것이다.
사해가 곤궁해지면, 하늘에서 내린 복록이 영영 끊어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요가 순에게 명하여 왕위를 선양(禪讓)하는 말이다.
자(咨)는 감탄하는 소리요, 역수는(曆數)는 제왕(帝王)들이 서로 계승해 나가는 그 차례가
마치 해마다 다가오는 기절(氣節)의 선후와 같은 것을 말한 것이며, 윤(允)은 진실로라는 뜻이요,
중(中)은 지나치거나 불급(不及)한 것이 없는 중도(中道)를 말한다." 하였습니다.

○사략(史略)에 이르기를, "순(舜) 유우씨(有虞氏)의 성은 요씨(姚氏)인데,
그가 역산(歷山)에서 밭을 가니 백성들이 다 서로 밭 두덕을 양보하고,
그가 뇌택(雷澤)에서 고기를 잡으니 백성들이 다 고기잡는 자리를 양보하며,
하빈(河濱)에서 질그릇을 구으니 그릇이 하나도 추하거나 비뚤어진 것이 없고, 그가 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1년이면 촌락을 이루었고,
2년이면 읍(邑)을 이루었으며, 3년이면 도회(都會)를 이루었다.
그는 요(堯)를 도와 섭정하면서 환두(驩兜)256)를 추방하고 공공(共工)267)을 유배하였으며,
곤()258)을 죽이고 삼묘(三苗)259)를 내쳤으며, 그리고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 팔원(八元)과 팔개(八凱)260)를 기용하였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몸소 일하지 않고 나라를 잘 다스린 사람은 순(舜)이시다. 대체 무엇을 하셨겠는가.
그는 자기의 몸을 공손히 하여 임금의 자리에 있었을 뿐이었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일을 하지 않고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성인의 덕이 성하여 백성들이 감화되어 무슨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오직 순만을 칭찬한 것은 요의 뒤를 이어서 인재들을 등용하고는 많은 직책을 위임한 까닭에, 더욱 몸소 일한 자취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몸을 공손히 한다고 한 것은 성인의 공경하는 덕의 형용인데, 이미 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이 같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순이 우(禹)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땅이 평(平)하고 하늘이 이루어지니 육부(六府)와 삼사(三事)가 진실로 잘 다스려져서
만세토록 길이 의지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대의 공이라." 하였습니다.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하동)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수(水)·토(土)가 다스려지는 것을 평(平)이라고 하는데, 수·토가 이미 다스려져서 만물이 이루어지게 된 것을 말한다.
육부(六府)는 곧 수(水)·화(火)·금(金)·목(木)·토(土)·곡(穀)인데 이 여섯 가지에서는 재용(財用)이 나오므로 부(府)라고 한다.
그리고 삼사(三事)는 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의 세가지인데, 이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까닭에 사(事)라고 한다.
이 글은 순이 우(禹)의 공을 미루어 아름답게 여긴 것이다." 하였습니다.

○사략(史略)에 이르기를, " 하후씨(夏后氏)인 우(禹)의 성은 사씨(氏)인데, 곤()의 아들이다.
곤은 홍수를 다스리는 일을 맡았으나 도리어 막히어 다스리지 못하므로' 순이 우(禹)를 기용하여 이에 대체하니,
그는 전심전력하여 외지(外地)에 거처한 지 8년만에 자기의 집 앞을 지나도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9주(州)261)를 개척하고 9도(道)를 통하게 하였으며, 9택(澤)262)에 재방을 하고 산(山)을 측량하여 마침내 공업을 이루었다.
이것을 순에게 고하였는데 순은 그 사업을 칭찬하여 모든 관리들을 통솔하게 하고 천자의 일을 돕게하니,
그의 말은 곧 법이 되고 그의 몸은 곧 모범이 되어, 마치 왼손에는 준승(準繩)을 가지고
오른 손에는 그림쇠[規矩]를 들고 있는 것 같았다." 하였습니다.

인심(人心)은 오직 위태하고 도심(道心)은 오직 미묘하니 정밀(精密)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으리라.

이에 대한 주는 이미 위에서 말했습니다.

○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옛성인은 천하를 전수할 때 그 치법(治法)도 겸하여 전하였다.
그 경전에 나타난 것이 이와 같으니 후세의 임금은 어찌 깊이 생각하고 공경히 지키지 아니하겠는가."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아, 높고 거룩하구나[巍巍], 순(舜)과 우(禹)의 천하를 가지고도 불여(不與)함이여." 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주자는 말하기를, "외외(巍巍)는 높고 큰 모양이요, 불여(不與)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으니,
이 말은 왕위에 있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안 진씨(新安陳氏)는 말하기를, "순과 우는 천하를 가지고서도 그 마음을 동요하지 않았으니,
즐거움으로 살지 않았다는 것으로도 높고 거룩한 모습을 엿볼수 있다." 하였습니다.

성탕(成湯)은 크게 만방에 고하기를, "그대들이 선을 한다면 짐(朕)은 은폐해 두지 않을 것이요,
죄가 짐의 몸에 있다면 감히 내 스스로가 사(赦)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직 이것을 열람[簡]하는 것은 하느님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대를 만방 백성에게 죄가 있다면 그 책임은 나 한 사람에게 있으나,
나 한 사람에 죄가 있다면 그대들 만방 백성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탕고(湯誥))

채씨는 말하기를, "간(簡)은 열람한다는 뜻이다.
잘하고 못하는 것을 한결같이 하늘에서 열람하고 있으나, 하늘이 천하를 내게 맡겼으니,
백성들에게 최가 있다면 실로 임금이 한 죄요, 임그에게 죄가 있다면 이것은 백성들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특히 성인은 자기의 잘못을 책망하기를 엄하게 하고 남의 잘못을 책망하기를 가볍게 할 뿐 아니라,
이것은 이(理)의 소재(所在)인 것이며, 군도(君道)의 당연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사략(史略)에 이르기를, "은왕(殷王) 성탕(成湯)의 성은 자(子)씨이고, 이름은 이(履)이다.
그 선조는 설(契)이라는 사람인데, 제곡(帝)의 아들이다.
탕은 처음에 박()이라는 땅에 도읍을 정하고, 사람을 보내어 폐백을 가지고 이윤(伊尹)을 신(莘)의 땅에서 초빙하여,
그를 걸(桀)에게 다섯 번이나 나아가게 하였으나, 한 번도 기용(起用)하지 않았다.
걸은 탐욕하고 포악하여 나라가 크게 붕괴되었으므로 이윤이 탕의 재상이 되어 탕을 도와 걸을 토벌하여 남소(南巢)에 추방하니,
제후들이 탕을 높여 천자로 삼았다." 하였습니다.

시(詩)에 이르기를, "그윽한 [穆穆] 문왕이여, 아[於], 끊임없이[緝] 밝고[熙] 공경에 머물렀네[敬止]." 하였으니,
남의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머물렀고 남의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에 머물렀으며, 남의 아들이 되어서는 효(孝)에 머물렀고,
남의 아비가 되어서는 자(慈)에 머물렀으며, 나라 사람들과 사귐에는 신(信)에 머물렀다." (대학(大學))

주자는 말하기를, "시는 시경(詩經)의 대아(大雅) 문왕(文王)편이요,
목목(穆穆)은 그 덕이 그윽하다 덕(德)의 용태(容態)를 말합니다. 는 뜻이요,
오(於)는 탄미(歎美)하는 말이요, 즙(緝)은 계속의 뜻이요, 희(熙)는 광명의 뜻이요,
경지(敬止)는 공경하지 않는 것이 없고, 머무를 데에 머무른다는 말이다.
이시를 인용한 것은 성인의 머무름이 지선(至善)이 아닌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다섯 가지는 바로 그 조목의 큰 것들이다." 하였습니다.

○사략(史略)에 이르기를, "주(周)나라 고공(古公) 후직(后稷)의 후손입니다. 의 막내아들인 계력(季歷)이 태임(太任)에게 장가들어서 창(昌)을 낳으니,
성덕이 있어서 추대하여 서백(西伯)으로 삼았는데, 제후들이 모두 귀복하여 천하의 3분의 2의 땅을 차지하였다.
무왕(武王)이 천자가 되고 나서 추존(追尊)하여 문왕(文王)으로 삼았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천하를 삼분(三分)하여 그 둘을 두었는데도 은(殷)나라에 복종하였으니,
주나라의 덕은 지극한 덕이라 하겠다." 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 "문왕은 상(商)나라에 반기를 든 나라들을 거느리고 주(紂)를 섬겼다." 하였습니다.

○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문왕의 덕은 상(商)나라를 대신할 만하여 천인(天人)이 귀속(歸屬)하였으나,
공격[功取]하지 않고 오히려 복종하였으니 그래서 <주나라>의 덕은 지극한 덕이라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문왕이 주(紂)를 섬긴 것은 오직 신하로서 임금을 섬기는 것을 알았을 뿐이요,
그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은것이니 이것이 그 지극한 덕이다." 하였습니다.

무왕(武王)이 문왕의 왕업[統緖]을 계승[纘繼]하여 한 번 융의(戎衣)를 입고서 천하를 차지하였지마는,
그래도 천하에 드러난 명성을 잃지 않았다. (중용(中庸) ○ 역시 공자의 말씀입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찬(纘)은 잇는다는 뜻이요, 서(緖)는 왕업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융의(戎衣)는 갑옷과 투구 등속이니, 한 번 융의를 입는다는 것은 한번 갑옷과 투구를 입고서 주(紂)를 토벌한다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 사략(史略)에 이르기를, "주(紂)는 달기(己)를 사랑하여 그 말이면 무엇이든지 다 좇아서,
부세를 과중하게 하고, 원대(苑臺)를 넓혀서, 많은 술과 안주를 차려 놓고 밤이 새도록 마셨으며,
형벌을 엄중하게 하여 쇠를 달구어 단근질하는 형[烙之刑]을 행하니, 제후가 모두 반기를 들었다.
서백(西伯)이 죽고 아들 발(發)이 서니 이가 무왕이다.
무왕이 서백의 왕업을 계승하여 닦으니 13년 동안에 제후들이 서로 기약하지 않고도 이에 모여든 이가 8백명이었다.
그들이 모두'주(紂)는 토벌해야 한다.' 해도 무왕은 '옳지 못한 일이다.' 하니 이끌고 돌아갔는데,
주는 끝내 죄악을 뉘우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왕은 토벌하였다.
주는 목야(牧野)에서 패하여 보옥(寶玉)을 몸에 지니고 스스로 분신자살한지라, 무왕은 은(殷)나라를 멸하고 천자가 되었다." 하였습니다.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요(堯)와 순(舜)은 본성대로 한 임금이요,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은 본성을 되찾은 임금이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본성대로 하였다는 것은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온전한 것을 부여(賦與)받아,
이것을 더럽히는 일이 없을 뿐더러, 조금도 몸을 닦을 필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은 성(聖)의 지극한 것이요, 본성을 되찾았다는 것은 몸을 닦아 그 본성을 돌이켜서 성인에 이른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요(堯)와 순(舜)은 두 분 간에 우열(優劣)이 없고, 탕(湯)과 무(武)는 <우열의>분별이 있다.
맹자는 '본성대로 하고 본성을 되찾았다.' 하였으니, 예로부터 사람들이 이와 같은 말을 한적이 없다.
오직 맹자가 이렇게 분별한 이래로 요와 순은 나면서부터 알던 이이고, 탕과 무는 배워서 안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왕의 덕은 요와 순에 비슷하고 우(禹)의 덕은 탕과 무에 비슷하니, 요컨대 이분들도 다 성인이다." 하였습니다.

우(禹)는 맛 좋은 술을 싫어하고, 착한 말을 좋아하였다.

전국책(戰國策)에 이르기를, "의적(儀狄)이라는 자가 술을 만들었는데 우왕이 마셔보고 심히감미(甘美)롭다고 느끼고는
'후세에 반드시 이 술로 인하여 그 나라를 망칠 자가 나올 것이다.' 말하고,
그 뒤로는 의적을 멀리하고 이 맛 좋은 술을 끊어버렸다." 하였습니다.

○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우왕은 좋은 말을 하는 이에게 절을 하였다." 하였습니다.

탕왕(湯王)은 중(中)을 지키고[執], 어진 이를 기용하는 데는 그 귀천의 유를 가리지 않았다.

주자는 말하기를, "집(執)은 지켜서 잃지 아니하는 것을 말하고, 중(中)은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는 것을 말하며,
방(方)은 유(類)의 뜻이요, 어진 이를 기용하는 데는 귀천의유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오직 어질기만 하면 벼슬자리에 기용하고,
그 귀천의 유를 묻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이 탕왕의 집중(執中)은 자막(子莫)의 집중(執中)264)과는 다르니,
탕왕은 다만 일마다 흡족하여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문왕은 백성들을 보기를 다친 사람을 보고 마음 아파하듯 하였고, 도를 바라보고도 아직 못본 듯이 하였다.
이(而)는 여(如)로 읽습니다. 이(而)와 여(如)는 고자(古字)에는 통용됩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들이 이미 평안해졌는데도 이들을 보기를 다친 사람을 보고 마음 아파하듯 하고,
도가 이미 지극하였는 데도 이것을 사모하고 바라기를 아직 못본 듯이 하였으니,
성인의 백성을 아끼는 것이 깊고 도를 구하는 절실함이 이와 같아서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종일토록 쉬지 않아서 마음을 부지런히 한다." 하였습니다.

무왕(武王)은 가까운 데를 함부로 친근[泄]하지 않았고, 먼 데를 함부로 잊지도 않았다.

주자는 말하기를, "설(泄)은 친근하여 함부로 하는 것이다.
사람이 가까운 데는 친근하기가 쉬운데 <함부로> 친근하지 않았고, 먼 데는 잊기가 쉬운데 잊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덕의 성한 것이요, 인(仁)의 지극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공(周公)은 이 삼왕(三王: 삼대(三代)의 왕))의 장점을 겸하여 네 가지의 일을 다시 행하려고 생각하였으되,
그 마음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이것을 생각하였는데,
밤을 잊어버렸다. 다행히 좋은 도리를 깨닫게 되면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주자는 말하기를, "3왕은 우왕·탕왕·문무(文武)이요, 네 가지 일은 위에 열거한 네 왕의 네 조항의 일이다.
그 일이 혹시 때가 다르고 형세가 다르므로 합당하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을 생각해서 얻는다면 비로소 그 이치가 다른 것이 없게 된다.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이것을 빨리 실행하자는 급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 글은 여러 성인들에 대한 것을 서술하여 그분들의 일을 각각 하나씩 들어서 그 근심하고 부지런하며, 두려워하고 위태로와하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대개 이것이 천리(天理)는 항상 보존되고 인심(人心)은 죽지 않는 까닭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맹자가 말한 것은 그분들의 한 일 중에 각각 그하나씩 만을 들어서 말한 것이지,
무왕이 중용을 지키고 어진 이를 기용하지 못했다거나 탕왕이 가까운데를 친근하지 않았다거나 먼 데를 잊었다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각각 그 성한 일을 열거하였다.' 하나 이것도 역시 아니다. 성인은 또한 성하지 아니한 일이 없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무왕과 주공(周公)은 정말 달효(達孝)로다." 하였습니다. (「중용」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달(達)은 통(通)한다는 뜻인데, 천하 사람들이 모두 효(孝)라 이르는 것이다.
맹자의 말에 달존(達尊)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하였습니다.

대저 효란 선인(先人)의 뜻을 잘 계승하고 선인의 사업을 잘 발전시키는 것이다.

신안 진씨(新安陳氏)는 말하기를, "조부(祖父)께서 하고 싶어 하던 뜻을 미처 이루지 못하였을 때는,
자손이 그 뜻을 잘 계승하여 이것을 성취시키는 것이요,
또 부조께서 이미 해놓은 사업이 있어서 가히 본받을 만할 때는 자손이 그 사업을 잘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 서산 진씨(西山眞氏)는 말하기를,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것은 진실로 이어서 발전시키는 것이요,
마땅히 변통해야 할 것을 변통하는 것도 역시 이어서 발전시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 위(位)를 밟으면〔踐〕선왕이 행하던 예법을 행하고, 선왕이 연주하던 음악을 연주하며,
선왕이 높이던 이를 공경하고, 선왕이 친애하던 이를 친애하여, 죽고 안계신 선왕을 섬기기를
마치 살아 있을 때 섬기듯 하는 것이 효의 지극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천(踐)은 밟는다는 뜻이요, 기(其)는 선왕을 가리키는 것이며,
높일 데와 친애할 데는 선왕의 조고(祖考)·자손·신서(臣庶)를 말하는 것이다.
처음 죽는 것을 사(死)라 하고, 장례를 지내면 돌아가 없다고 하는 것이니, 다 선왕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글은 뜻을 계승하고 사업을 발전시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周)나라는 2대(代)를 보아 절충하니〔監〕그 문화가 대단히 찬란하다〔郁郁〕.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다. (「논어」○ 역시 공자의 말씀입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감(監 )은 본다는 뜻이요. 2대는 하(夏)나라와 상(商)나라인데, 2대의 문물제도를 보고 이에 손익(損益)을 하였다는 말이다.
욱욱(郁郁)은 찬란하고 성한 모양이다." 하였습니다.

○ 윤씨(尹氏)는 말하기를, "3대의 문물제도는 주나라에 와서 크게 완비하였으므로, 공자는 그 문화를 아름답게 여겨 이에 따른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도통이 공자에 와서 집대성(集大成)되어 만세의 스승이 되신 것인데,
공자 이후로는 도가 자기 몸에만 이루어지고 그 시대에는 행해지지 못했습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나는 15세가 되어서 학문에 뜻을 두었다." 하였습니다.(「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옛 사람들은 15세가 되면 대학(大學)에 들어갔는데, 여기서의 소위 학문이란 곧 대학의 도〔大學之道〕이다.
이 대학의 도에 뜻을 두었다는 것은 생각이 늘 여기에 있고 이것을 공부하는데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30세가 되어서 자립을 하였다.

주자는 말하기를, "자립을 하면 지키는 것이 확고하므로, 여기에서는 뜻을 두는 것을 일삼을 필요가 없다." 하였습니다.

40세가 되어서는 마음에 의혹되는 일이 없었다.

주자가 말하기를, "사물의 당연한 이치에 의혹되는 일이 없으면 아는 것이 밝아서 여기에서는 지키는 것을 일삼을 필요가 없다." 하였습니다.

50세가 되어서는 천명(天命)을 알았다.

주자는 말하기를, "천명은 곧 천도의 유행(流行)으로서 사물에 부여한 이(理)인데, 이것은 바로 사물이 당연히 그렇게 되는 소이연(所以然)이다.
이것을 알면 아는 것이 지극히 정밀하여 여기에서는 의혹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하였습니다.

60세가 되어서는 귀로 들으면 저절로 그 뜻을 알았다.

주자는 말하기를, "소리가 마음에 들어가면 통하여 조금도 거슬림이 없는 것인데,
이것은 아는 것이 극진한 데 도달하므로 생각하지 않고서 저절로 얻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70세가 되어서는 마음의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從〕법도〔矩〕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주자는 말하기를, "종(從)은 따르는 것이요, 구(矩)는 법도가 되는 기구로서 모난 것을 만드는 것이다.
마음의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스스로 법도에서 지나침이 없으니, 이것은 편하게 행하여지고 힘쓰지 않아도 맞는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성인은 나면서 알고 편안히 행하여 본래 하나 둘 쌓아 올라가는 일이 없다.
그러나 그 마음으로는 일찌기 이미 여기에 이르렀다고 하지 않는다.
위에 말한 것은 성인이 일상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자기만이 그 나아간 곳을 깨닫고, 남들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므로
여기에 그 근사한 일을 가지고 스스로 말한 것이다.
배우는 이가 앞으로 이것을 법으로 삼아서 스스로 힘쓰게 하려고 한 것이요,
마음은 실상 스스로 성인이면서 아직 이것을 실행하는 데 사양한 것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성인의 가르침에는 역시 술(術)이 많다.
그러나 그 요령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심을 잃지 않게 하는 것뿐이다.
그 본심을 얻으려고 하는 자는 오직 성인이 제시한 학문에 뜻을 두어 그 차례를 따라 나아가면서
허물이 하나도 없고 일만가지 이치가 다 밟아지면 일상생활에서 본심이 환하게 밝아져 하고 싶은데로 하여도 지리(至理)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대개 마음은 곧 체(體)요, 욕(欲)은 곧 용(用)이며, 체는 곧 도(道)요, 용(用)은 곧 의(義)다.
성(聲)은 율(律)이 되고, 몸은 법도가 된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성인이 이것을 말한 것은 첫째로는 배우는 사람에게 이것을 보여서 마땅히 마음이 누그러워서
함양(涵養)하는데 차례를 건너뛰지 못하게 한 것이요,
둘째로는 배우는 사람에게 이것을 보여서 마땅히 날로 달로 진취하여 중도에서 그만두는 일이 없게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사기 세가(史記世家)에 말하기를, "공자의 이름은 구(丘)요, 자(字)는 중니(仲尼)인데 그 조상은 송(宋)나라 사람이었다.
부친은 숙량흘(叔梁紇)265)이요, 모친은 안씨(顔氏)였다.
공구는 어릴 때 놀면서 늘 조두(俎豆)를 늘어놓고 예모를 차리더니 자라서 주나라에 가서 노자(老子)에게 예(禮)를 물었고,
돌아오니 제자들이 더욱 많이 모여들었다. 제(齊)나라에 갔다가 노(魯)나라에 돌아오니 정공(定公)이 중도재(中都宰)를 시켰는데,
1년이 되자 사방에서 모두 그를 본받게 되어 마침내 사공(司空)이 되었고,
또 대사구(大司寇)가 되어 국상(國相)의 일을 섭행(攝行)하여, 국정에 참여한 지 3개월만에 노나라가 매우 잘 다스려졌다.
제나라 사람들이 여악(女樂)을 보내어 <노나라를> 혼란시키려 하였는데, 계환자(季桓子)가 그 여악을 받고,
교사(郊祀 : 천재天祭)를 지내고도 대부(大夫)에게 음복(飮福)을 보내지 않아서 공자는 노나라에서 다른 데로 가버렸다.
위(衛)나라로 갔다가 진(陳)나라로 갔으며, 또 채(蔡)나라와 섭(葉)나라로 갔다.
초(楚)나라 소왕(昭王)은 공자를 봉하려 하였으나 영윤(令尹) 자서(子西)가 반대하여서 그만두었다.
그리하여 위나라로 되돌아갔다가 또 노나라로 돌아왔다. 그때 나이는 68세였다.
노나라는 마침내 공자를 등용하지 못하였고, 공자 역시 벼슬하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이여 서경(書經)을 서술하였고,
예기(禮記)를 전술하였으며, 시경(詩經)을 산정(刪定)하였고, 악기(樂記)를 교정하였으며,
역경(易經)의 단전(彖傳)·계사전(繫辭傳)·상전(象傳)·설괘(說卦)·문언(文言)을 서술하고 춘추(春秋)를 지었다.
제자는 대개 3천 명이었고, 그 중에 자신이 육예(六藝)에 통한 이가 72명이었다." 하였습니다.

봉(鳳)새가 오지 않고, 황하(黃河)에서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 나는 그쳐야〔已〕겠다.

주자는 말하기를, "봉(鳳)은 신령스러운 새로서 순(舜)임금 때 와서 거동하였고, 문왕 때에는 기산(岐山)에 와서 울었다.
하도(河圖)는 복희씨(伏羲氏) 때에 황하 속에서 용마(龍馬)가 그림을 지고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다 성왕의 상서(祥瑞)이다. 이(已)는 그친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봉이 날아오고 하도가 나타난 것은 문화가 찬란해질 좋은 징조이다.
복희씨와 순(舜)·문왕의 상서가 이르지 않으니 공자의 문장은 끊어지고 말았을 줄 안다." 하였습니다.

중니(仲尼)는 요(堯) · 순(舜)을 조술(祖述)하고 문왕 · 무왕을 헌장(憲章)하였으며, 위로 천시(天時)의 운행을 법하고,
아래로 수토(水土)의 이치를 좇았다. (「중용」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조술(祖述)한다는 것은 멀리 그 도(道)를 존숭한다는 뜻이요, 헌장(憲章)한다는 것은 가까이 그 법도를 지킨다는 것이다.
천시를 법한다는 것은 그 자연의 운행을 법한다는 뜻이요, 수토를 좇는다는 것은 수토의 일정한 이치를 따른다는 뜻이니,
이것은 다 내외(內外)를 겸하고 본말(本末)을 갖추어서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정밀한 도리는 근본이 되고 안이 되며 소원한 도리는 끝이 되고 바깥이 된다." 하였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땅이 받쳐 실어주지 않음이 없고, 하늘이 덮어 감싸 주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으며,
4철이 번갈아〔錯〕행하고 일월(日月)이 번갈아 비치는 것과 같다.

주자는 말하기를, "착(錯)은 질(迭)의 뜻과 같다. 이 네 가지는 성인의 덕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만물이 병육(育)되어 서로 방해되지 않고, 도가 병행(行)되어 서로 어긋나지〔悖〕않는다.
소덕(小德)은 시내가 흐르는 것과 같고, 대덕은 교화가 돈독한 것과 같으니 이것이 천지가 위대한 소이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패(悖)는 어긋난다는 뜻이다.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실어주기 때문에 만물이 그 사이에서 병육하여 서로 어긋나지 않으니,
방해되지도 않고 위배되지도 않는 까닭은 소덕이 시내의 흐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요, 병육되고 병행되는 까닭은 대덕의 교화가 돈독하기 때문이다.
소덕은 전체가 온갖 다른 것으로 나누는 것이요, 대덕은 온갖 다른 것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시내의 흐르는 것과 같다는 것은 시냇물의 흐름과 같이 흐르되 맥락(脈絡)이 분명하여 지식(止息)되지 않는 것이요,
교화가 돈독하다는 것은 그 화육(化育)을 돈후(敦厚)하게 하는 것으로서 근본이 <대덕이> 성대하게 작용하여 무궁한 것을 말한다.
이 글은 천지의 도를 말하여 위에 비유한 글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하였습니다.

○ 황씨(黃氏)는 말하기를, "천명의 성〔天命之性〕은 바로 대덕의 교화가 돈독한 것이요,
솔성의 도〔率性之道〕는 바로 소덕이 시내와 같이 흐르는 것이다.
대덕의 교화가 돈독하다는 것은 체(體)요, 소덕이 시내와 같이 흐른다는 것은 용(用)이다." 하였습니다.

자공(子貢)은 말하기를, "부자(夫子)가 만약 집정의 기회를 얻어 나라를 다스렸다면야,
그야말로 세우면 서고, 이끌면 따라오고, 편안케 하면 모여들고, 움직이면 화응하여, 살아 있을 때는
사람마다 영광으로 여겨 받들고 돌아갔을 때는 누구든지 슬퍼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논어(論語) )

주자는 말하기를, "세운다는 것은 백성들의 살 방도를 세운다는 것을 말하고,
도(道)는 이끈다는 것이니 가르친다는 것을 말한다. 행(行)은 따른다는 뜻이요, 수(綏)는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내(來)는 돌아와 부속 된다는 뜻이요, 동(動)은 고무(鼓舞)시킨다는 뜻이다.
화(和)는 소위 「오변시옹(於變時雍 : 「서경」에 나오는 말로 변하여 화목하다는 말.)」이니,
그 감응하는 묘미의 신속한 것이 이 같은 것을 말한다. 영(榮)은 높이고 친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음을 말하고,
애(哀)는 부모를 잃은 듯이 슬퍼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성인의 신화(神化)는 상하로 천지와 더불어 동류이다." 하였습니다.

그 예(禮)를 보면 그 사람의 정치를 알게 되고, 그 음악을 들으면 그 사람의 덕을 알게 되는데,
백세 뒤에 백세의 왕들을 견주어보면 그 표준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부자〔孔子〕같은 이는 아직 없다. (맹자(孟子)하동 역시 자공(子貢)의 말)

주자는 말하기를, "대개 그 사람의 예를 보면 그 사람의 정치를 알 수있고,
그 사람의 음악을 들으면 그 사람의 덕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백세 뒤에 지나간 백세의 왕들을 견주어보면 그 실정을 숨길 수 없으니,
그들을 다 비교해 보아도 부자〔夫子〕같이 성한 이는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재아(宰我)266)는 말하기를, "내가 보는 견지로서는 부자〔孔子〕는 요(堯) · 순(舜)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성(聖)으로 말하면 다름이 없으나, 그 한 일과 공을 가지고 말하면 다름이 있다.
부자가 요·순보다 어질다는 것은 일과 공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대개 요·순은 천하를 다스렸고, 부자는 또 그 도를 미루어서 가르침을 만세에 떨치었다.
만약 요·순의 도가 공자를 얻지 못하였으면 후세의 사람들이 어디에 근거를 하였겠는가."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공자 같은 분을 가리켜 집대성(集大成)한 이라고 하는 것이다.
집대성했다는 것은 금속 소리를 울려 내고 옥(玉) 소리를 떨쳐 내어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음악에 있어서 금속 소리는 처음에 조리있게 시작하는 것을 말하고, 옥 소리는 조리있게 끝맺는다는 것이다.
조리있게 시작한다는 것은 지(智)의 하는 일이요, 조리있게 끝맺는다는 것은 성(聖)의 하는 일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성(成)이라는 것은 음악이 한 번 끝나는 것이니 서경(書經)에 소위「소소구성(簫韶九成」의 성(成))과 같은 것이다.
악(樂)에는 8음(八音)267)이 있으니 만약 그 8음 중에 한 음만을 독주할 때는 그 한 음이 독자적으로 한 곡의 시종(始終)을 이루므로,
이것이 하나의 소성(小成)이요, 8음 중에 금(金)과 석(石)이 중요한 음이므로 8음을 합주(合奏)할 때는 먼저 쇠북을 쳐서 그 성음을 펴고,
뒤에 경옥을 쳐서 그 성운(聲韻)을 거두어들인다. 펴는 것은 처음에 하고 거두어들이는 것은 끝에 한다.
이리하여 처음과 끝 사이에 음들이 합주되어 맥락(脈絡)이 관통되어 갖추지 않는 것이 없다.
여러 소성(小成)을 합하면 하나의 대성(大成)이 되는데,
이것은 마치 공자의 지혜가 극진하지 아니한 것이 없고 덕이 온전하지 아니한 것이 없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도통의 전함이 맹자에 와서 중절된 것입니다.

○ 안연(顔淵)이 크게 감탄〔〕하여 말하기를, "<공자의 도는> 우러러보면 볼수록 더욱 높고,
뚫으면 더욱 견고하여 들어 갈 수 없고 앞에 있는 듯하더니 어느 틈에 뒤에 있도다." 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위()는 감탄하는 소리이요, 우러러보면 볼수록 더욱 높다는 것은
거기까지 미칠 수가 없다는 것이요, 뚫으면 더욱 굳다는 것은 거기까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앞에 있다는 말과 뒤에 있다는 말은 황홀하여 무엇이라고 그 형상을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글은 안연(顔淵)이 부자의 도가 무궁무진하여 방체(方體)가 없음을 깊이 알고 감탄한 것이다.
성인은 다만 한 개의 중(中)의 도리인데, 높고 여물고 앞에 있다가 뒤에 있다는 것은
다만 행동에 있어서 중용(中庸)이므로 능히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부자는(夫子)는 사람을 순순(循循)히 잘 인도〔誘〕한다. 글로 나의 지식을 넓혀주고, 예(禮)로 나의 행동을 단속하여 준다.

주자는 말하기를, "순순(循循)은 차근차근 차례가 있는 모양을 말하고
유(誘)는 인도하여 나아가게 하는 것이며, 박문 약례(博文約禮)는 가르치는 순서이다.
이 글은 부자의 도가 비록 고묘(高妙)하나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차례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후씨(候氏)는 말하기를, "글로 나의 지식을 넓혀 준다는 것은
치지(致知) 격물(格物)이요, 예(禮)로 나의 행동을 단속하여 준다는 것은 극기복례(克己復禮)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이 글은 안자(顔子)가 성인을 칭송하는데 가장 적당한 말이니,
성인이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오직 이 두 일뿐이다." 하였습니다.

내가 이제는 배움을 그만둘래야 그만둘 수 없어서 내 재주를 다했더니 무엇인지 앞에 우뚝 서 있는〔卓〕것이 보이는 것 같았지만
아무리 따라가려고 하여도 따라갈 수가 없다〔末〕.

주자는 말하기를, "탁〔卓〕은 우뚝 서 있는 모양이요, 말(末)은 없다는 뜻이다.
이 글은 안자가 스스로 자기의 학문의 도달한 바를 말한 것이니,
대개 즐겨하는 바가 깊고 힘쓰는 것이 극진하여 보이는 바가 더욱 친근해졌으나 또 그 힘을 쓸 바가 없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오씨(吳氏)는 말하기를, "이른바 탁이(卓爾 : 우뚝하게 서있는 모양)라는 것은
역시 일용 행사 사이에 있는 것이지, 소위「요명 혼묵(窈冥昏默)」같은 것은 아니다." 하였습니다.

○ 양씨(楊氏)는 말하기를, "가히 하고자 함이 선이란〔可欲之謂善〕데에서 확충하여 큰 데에 이르는 것은
역행(力行)을 쌓은 것이요, 대하여 화하는〔大而化之〕것은 역행의 미칠 곳이 아니다.
이것이 안자의 일간(一間)이 미달한 곳이다." 하였습니다.

○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안자는 학문을 이미 얻었기 때문에 성인의 학문에 들어갈 때
그 도가 어렵다는 까닭과 학문을 하여 뒤에 얻은 그 연유를 기술하여 공을 성인에게 돌려보낸 것이다.
'높고 여물고 앞에 있다가 뒤에 있다.' 하는 것은 도체(道體)를 말한것이요,
앙찬(仰鑽)과 첨홀(瞻忽)은 그 요긴한 것을 포착하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오직 부자〔孔子〕는 순순히 잘 인도하여 먼저 내게 글로써 지식을 넓혀 주어서 나로 하여금 고금을 알게 하고,
사물의 변화에 통탈케 한 연후에 내게 또 예(禮)로써 행동을 단속하여 나로 하여금 들은 것을 높이게하고 아는 것을 행하게 하니,
마치 길가는 사람이 집으로 가거나, 밥 먹는 사람이 배부르기를 구하는 것과 같았다.
이러므로 배움을 그만둘래야 그만둘 수 없어서 진심진력하여 조금도 쉬거나 그만두는 일이 없으니
마침내 부자(夫子)가 앞에 우뚝 서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렇지만 따라가려고 하여도 따라갈 길이 없다는 것이니,
이것은 대개 따르는데 게을리 하지 않고 반드시 탁연히 우뚝 서는 경지에 이르기를 구하는 말이다.
아마 이 감탄은 안자(顔子)가 '청컨대, 이 극기 복례(克己復禮 : 자기의 사욕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는 것)의 말을 받들어 실천하겠습니다.
' 한 뒤이요, '석달 동안을 인(仁)을 어기지 않는다.' 하던 때에 있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회(回)는 그 마음이 석달 동안을 인(仁)을 어기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안연(顔淵)이 방국(邦國)을 다스리는 일에 관해서 물었다.

주자는 말하기를, "안자는 왕을 보좌할 재능이 있었던 까닭에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물은 것인데,
방국(邦國)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한 것은 겸사해서 한 말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역법(曆法)은 하(夏)나라의 역법을 쓸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 하(夏)나라의 역법은
두병(斗柄 : 북두칠성의 국자 모양의 자루에 해당되는 세 개의 별)이 초저녁에 인(寅)의 방향(方向)을 가리키는 달을 정월로 삼았다.
하늘은 자시(子時)에 열리고 땅은 축시(丑時)에 열렸으며,
사람은 인시(寅時)에 난 까닭에, 두병이 자·축·인의 방향을 가리키는 달은 다 정월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역법은 사람이 농사짓기에 편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 세월은 당연히 사람을 위주하여 시작해야 한다.
대개 이것은 역법(曆法)의 바른 것과 시령(時令)의 착한 것을 취하여 안자(顔子)에게 고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수레는 은(殷)나라의 수레를 탈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상(商)나라의 수레는 나무로 만든 수레인데 노(輅)는 큰 수레를 이른다.
옛날에는 수레를 나무로써 만들었을 뿐이나 상나라에 와서는 노(輅)의 이름이 있게 되었다.
대개 처음으로 그 제도를 달리한 것이다.
주(周)나라 사람들은 수레를 금과 옥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므로 너무 사치스러우며, 또 부서지기 쉬웠으니,
이것은 상나라 수레의 검박하고 튼튼하며 등위가 이미 분변되어 질에 있어서 그 중정(中正)을 얻은 것만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면류관(冕旒冠)은 주(周)나라의 면류관을 쓸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주나라의 면류관은 다섯 가지 등위가 있었으며, 이것은 제복(祭服)에 쓰는 갓이다. 황제(黃帝) 이래로 이미 있었던 것이나
제도와 의용(儀容) 그리고 등급은 주나라에 와서 비로소 완비되었다.
공자가 이것을 취한 것은 대개 문(文)이 역시 그 중정(中正)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음악은 소무(韶舞)로써 할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선(善)을 다하였고 미(美)를 다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취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어떤 이가 주자에게 묻기를, "안자가 나라의 다스림을 물으니 공자가 다만 이 사대(四代)의 예악(禮樂)만을 가지고 말해 주고,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안자가 평일에 본래 강구(講究)한 것으로 공자의 재언(再言)을 기다리지 아니한 것인가?" 하니,
주자가 대답하기를, "사실 그렇다." 하였습니다.

정(鄭)나라의 음악은 금지할 것이고, 아첨하는 사람을 멀리할 것이니,
정나라의 음악은 음란한 까닭이고 아첨하는 사람은 위태한 까닭이다.

이 말의 주는 이미 위에서 말하였습니다.

○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정사에 대해 묻는 이가 많았으되, 오직 안연에게만 이것을 가지고 말해 주었다.
대개 삼대의 제도는 다 시대를 따라 손익(損益)이 있었는데, 세상이 오래 됨에 이르러 폐가 없을 수 없었다.
주나라가 쇠하니 성인이 일어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공자는 여기에 선왕의 예를 짐작하여
만세상행(萬世常行)의 도를 세우고 이를 발설하여서 징조를 보인 것이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구하면 다른 것도 다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안연이 죽자 공자는 말하기를, "아〔噫〕, 하늘이 나를 망치는 구나,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희(噫)는 슬퍼서 통탄하는 소리이다.
도를 전해 줄 이가 없음을 슬퍼하여, 마치 하늘이 자기를 망치는 것과 같구나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운봉 호씨(雲峰胡氏)는 말하기를, "공자가 위로 문왕(文王)의 전하는 것을 이어받았음을 말할 때는
'하늘이 아직 이 글을 없애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하였으며,
아래로 안연에게 전할 것을 잃었음을 말할때는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라고 하였으니,
이렇다면 도통(道統)을 끊거나 하는 것은 다 하늘이다." 하였습니다.

○ 애공(哀公)이 묻기를,"제자들 중에 누가 배움을 좋아하느냐." 하니,
공자는 대답하기를, "안회(顔回 : 회는 안연의 이름입니다.)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배우기를 좋아하여 변덕스럽게 화를 잘 내지 않고 허물을 두 번 저지르지 아니하였는데
불행히도 명이 짧아 일찍 죽고 지금은 없으니,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을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유능하면서 무능한 사람에게도 물어보며,
견문이 넓으면서도 견문이 좁은 사람에게 물어보며, 있어도 없는 것같이 하며, 꽉 차 있어도 빈 것같이 하며,
자기를 욕하여도 용서해 주는 일은 옛날 내 벗이 이렇게 하였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친구란 마씨(馬氏)는 안연(顔淵)이라고 하였습니다.

삼(參 : 증자의 이름)은 둔〔魯〕하다. 공자의 말

주자는 말하기를, "노(魯)는 둔(鈍)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증삼(曾參)은 필경 노둔한 것을 가지고 성취하였다." 하였고,
또 "증자(曾子)의 학문은 성실하고 독실한 것뿐이다.
성문(聖門)의 학도들 중에 총명하고 변재(才辨)있는 이들이 많았지마는, 마침내 그 도를 전승한 이는 바로 이 자질이 둔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배움이란 성실을 귀한 것으로 삼는다." 하였습니다.

○ 윤씨(尹氏)는 말하기를, "증자의 재주가 둔한 까닭에 그 배움이 확고하였다.
이것이 도에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된 소이(所以)이다." 하였습니다.

증자는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나 자신을 세 가지로 반성하는데 즉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는데 마음을 다하지〔忠〕않았는가,
벗들과 사귀는데 신용〔信〕없이 하지는 않았는가, 스승으로부터 가르쳐 받은 것(傳)을 익히지(習)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자기를 다하는 것을 충(忠)이라 하고, 진실하게 하는 것을 신(信)이라 한다.
전(傳)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요, 습(習)은 몸에 이것을 익히는 것이다.
증자는 이 세 가지로써 날마다 그 자신을 반성하여 이런 일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힘썼는데,
그가 스스로 자기를 다스리는 정성이 이와 같았으니 정말 학문을 하는 바탕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순서로는 또 충(忠)·신(信)을 전습(傳習)의 근본으로 삼는다." 하였습니다.

○ 윤씨(尹氏)는 말하기를,"증자는 자기를 제약하기 때문에 행동하면 반드시 자기를 반성하여 잘못이 없는가 추구한다." 하였습니다.

○ 사씨(謝氏)는 말하기를, "제자(諸子)의 학문은 다 성인에게서 나왔으나,
그 뒤에 시대가 점점 멀어짐에 따라 그 참된 것을 더욱 잃어버렸는데, 다만 증자의 학문만이 안으로 용심(用心)하는데 전력하였으므로,
그 학문이 폐단 없이 전해졌으니, 이에 대한 것은 자사(子思)와 맹자(孟子)에게서 보면 잘 알 수 있다.
아, 애석하구나. 그 아름다운 말과 착한 행실이 세상에 다 전하지 못함이여, 그러나 다행히 현존하여 인멸되지 않은 것이야
배우는 이들이 마음을 다하여 공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삼(參)아, 나의 도(道)는 하나로써 관통하였다." 하니, 증자(曾子)는 대답하기를, "예, 그렇습니다." 하였습니다.

이 글의 주는 이미 위에서 말하였습니다.

공자가 밖으로 나가자 제자들이, "무슨 말씀입니까?" 하고 물으니,
증자는 말하기를, "선생님의 도는 충(忠) · 서(怒)뿐〔而已矣〕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자기를 다하는 것을 충이라 하고, 자기를 미루어 남에게 미쳐 나가는 것을 서(恕)라 한다.
이이의(而已矣)라는 것은 다하고 남음이 없다는 말이다.
공자의 일리(一理)는 혼연(渾然)하여 널리 응해도 꼭꼭 들어맞았는데,
이것은 비유하면, 마치 천지가 지성무식(至誠無息)하여 만물이 각각 그 마땅한 바를 얻는 것과 같다.
이 이외에는 본래 다른 이법(理法)이 없고 또 미루어볼 수도 없다.
증자는 이런 것을 알았으나 말로써 표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배우는 이는 자기를 다하고,
자기를 미루어 남에게 미쳐 나가는 것을 가지고 이것을 밝혀서,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깨닫게 하였다.
대개 지성무식(至誠無息)이라는 것은 도(道)의 체(體)인데, 일만 가지 현상의 근본이 되는 것이며,
만물이 각각 그 마땅한 바를 얻는 것은 도의 용(用)인데, 한 근본이 일만 가지 현상으로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본다면, 하나로써 관통한 것이라〔一以貫之〕는 실상을 가히 알 수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성인이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각각 그 재질을 따라서 하는데 '나의 도는 하나로써 관통하였다.'는 것은
오직 증자만이 통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공자는 이렇게 말한 것이요, 증자는 또 문인에게 고하여,
'선생님의 도는 충(忠)·서(恕)뿐이다.' 하였으니, 이것은 역시 공자가 증자에게 고한 방법과 같다." 하였습니다.

자사(子思)는 증자에게 배워서 중용(中庸)을 지었다. (사기(史記))

사기(史記)에 이르기를, "공자가 이(鯉)를 낳으니 자(字)는 백어(伯魚)이다.
백어는 공자보다 먼저 죽었는데, 아들 급(伋)을 낳으니 자(字)가 자사(子思)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중용은 무엇 때문에 지었는가.
자사(子思)가 도학(道學)의 전통이 끊어질까 우려하여 지었다.
상고(上古)에 성신(聖神)이 하늘을 이어 만인의 준칙을 세우면서부터 도통의 전승이 시작되어 왔는데
그 경서(經書)에 나타난 것으로는 '진실로 그 중(中)을 잡아라.' 하여 요(堯)가 순(舜)에게 전수하였고,
인심(人心)은 오직 위태하고, 도심(道心)은 오직 미미하다.
오직 정밀히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을 잡을 것이다.' 하여 순이 우(禹)에게 전수하였다.
요의 한 마디가 지극하고 극진하였는데, 순이 다시 그것에다가 세 마디를 더한 것은
요의 한 말이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거의 실천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요·순·우는 천하의 대성(大聖)들이요, 천하로써 서로 주고 받는 일은 천하의 대사이다.
천하의 대성으로서 천하의 대사를 행하되 그 수수(授受)의 즈음에 정녕코 고계(告戒)한 것은
이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천하의 도리가 어찌 이에 더할 것이 있겠는가.
이 뒤로 성인과 성인이 서로 이어왔으니, 성탕(成湯)·문왕·무왕 같은 이의 임금됨과
고요(皐陶)·이윤(伊尹)·부열(傅悅)·주공(周公)268)·소공(召公)269) 같은 이의 신하됨은 이미 다 이것으로써 도통의 전승을 접하였고,
우리 부자 〔孔子〕같은 이는 비록 그만한 지위를 얻지는 못하였으나,
왕성(往聖)을 이어주고 내학(來學)을 열어 준 것은 그 공이 도리어 요·순보다 훌륭하다.
그러나 당시에 보고서 안 이는 오직 안자(顔子)·증자(曾子)의 전승한 것이 정통을 얻었고, 증자(曾子)를 거쳐 재전되어,
또 부자의 손자 자사(子思)를 얻음에 미쳐서는, 성인의 시대에서 멀어져 이단(異端)이 일어났다.
여기에 자사는 시대가 오래면 오랠수록 더욱 도통의 진수를 잃게 될까 두려워하여,
이에 요·순 이래로 전승되어 내려온 뜻을 미루어 바탕으로 하고 평일에 들었던 사부(師父)의 말씀을 가지고 질정(質正)하여
번갈아 연역(演繹)해서 이 중용의 책을 만들어 후세의 배우는 이들에게 알려 주었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요(堯)와 순(舜) 때로부터 탕왕(湯王) 때까지는 그 간오백 년인데, 우왕(禹王)이나 고요(皐陶) 같은 분은 보고서 알았고,
탕왕 같은 분은 듣고서 알았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조씨(趙氏: 조기(趙岐))는 말하기를, "5백 년마다 성인이 나오는 것은 천도(天道)의 떳떳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역시 느리고 빠른 것이 있어서 꼭 5백 년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여년(餘年)이라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 윤씨(尹氏)는 말하기를, "안다는 것은 그 도를 안다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탕왕 때부터 문왕(文王) 때까지 그간 5백여 년인데, 이윤(伊尹)과 내주(萊朱) 같은 분은 보고서 알았고, 문왕같은 분은 듣고서 알았다.

조씨는 말하기를, 내주(萊朱)는 일설에 중훼(仲)라고도 하는데 탕왕의 좌상(左相)으로 있었다." 하였습니다.

또 문왕 때부터 공자 때까지 그 간 5백여 년인데, 태공망(太公望)과 산의생(散宜生) 같은 분은 보고서 알았고, 공자는 듣고서 알았다.

주자는 말하기를, "자공(子貢)이 '문무(文武)의 도가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사람에게 있다.
어진 이는 그 큰 것을 기록하고, 어질지 못한 이는 그 작은 것을 기록하여, 문무의 도를 보유(保有)하지 않은 이가 없으니,
공자가 어찌 배우지 아니하였겠는가.' 하였으니, 이것은 소위 듣고서 안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 때부터 지금까지는 백여 년밖에 안된다.
성인이 살던 세대에서 이토록 가깝고, 성인의 살던 곳에서 이토록 가까운데도 공자의 도를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아마 앞으로는 들어서 알 사람도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임씨(林氏)는 말하기를, "이 말은 맹자가 지금이 공자 때에서 멀지 않고,
추(鄒) 땅과 노(魯)나라가 거리가 가깝지마는 공자의 도를 보고 아는 사람이 없으니,
앞으로 5백여 년 뒤에 또 어찌 도를 들어서 알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이 말은 맹자가 비록 스스로 공자의 도를 전수(傳受)하였다고는 하지 않았지마는,
후세에 마침내 그 도의 전하는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근심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스스로가 그 도를 얻었음을 자임〔自任〕하여 사양하지 아니한 것이 있음을 보인 것이요,
또 천리(天理)와 민리(民 : 백성들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가 절대로 인멸 할 수 없는 것이니,
아마 앞으로 백세(百世) 뒤에는 반드시 신회(神會)하여 이것을 마음에 터득하는 이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성인의 도통을 역력히 서술하여 그 결론을 맺었으니,
이것은 그 전하는 것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밝히고,
또 뒷성인을 무궁하게 후세에 기다리는 소이(所以)로서 그 뜻이 심히 깊도다." 하였습니다.

나는 공자의 문도(門徒)가 되지는 못하였지마는 현인들을 통해서 공자의 도를 사숙(私淑)하였다.

주자는 말하기를, "사(私)는 혼자서 가만히란 뜻이요, 숙(淑)은 선(善)이란 뜻이다.
이씨(李氏)는 말하기를, '사숙(私淑)이란 말은 방언(方言)이다' 하였다.
사람이란 것은 자사(子思)의 문도(門徒)를 말한다.
맹자가 말하기를, 내가 비록 직접 공자의 문하에서 수업을 하지는 못하였으나 그래도 그 학문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들에게 공자의 도를 얻어 듣고 혼자서 가만히 몸을 착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대개 이것은 공자를 추존하고 자기를 겸사하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 사기(史記)에 이르기를, "맹가(孟軻 : 자(字)는 자거(子車), 일설에는 자여(子與)입니다.)는 추(鄒)땅의 사람이다.
그는 자사의 문인에게 수업(受業)하였는데 도가 이미 통하자, 제 선왕(齊宣王)·양혜왕(梁惠王)을 만나 왕도(王道)를 펼쳤다.
그들은 맹자를 인견하여 말을 듣고서 현대의 실정에 너무 멀고 또 사정에 어둡다고 생각 하였다.
당시에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合從)270)과 연횡(連衡)에 전력을 기울여 싸움하고 치는 것을 현명한 일로 알았다.
그런데 맹가는 오로지 당(唐)·우(虞)·삼대(三代)의 제왕의 덕을 찬술하였으니, 이로써 가는 곳마다 용납되지 않았다.
물러와서 만장(萬章)의 무리들과 시경(詩經)·서경(書經)을 서술도 하고 중니(仲尼)의 뜻을 강술하여 맹자 7편을 지었다." 하였습니다.

옛날에 우(禹)는 홍수를 다스려〔抑〕서 천하를 평온하게 하였고,
주공(周公)은 이적(夷狄)을 병합〔兼〕하고 맹수를 몰아내어 백성을 편안하게 하였으며,
공자께서는 춘추(春秋)를 완성하여 난신(亂臣)·적자(賊子)가 두려워하였다.

주자는 말하기를, "억(抑)은 그치게 하는 것이요, 겸(兼)은 병합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주공이 무왕(武王)을 도와서 주(紂)를 쳐 없애고,
엄(奄)나라를 정벌한 지 3년 만에 그 임금을 주살(誅殺)하고, 비렴(飛廉)을 바다 구석으로 몰아다가 죽였으니,
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50번이나 되는 데다가 범·표범·외뿔소·코끼리 등 맹수를 멀리 쫓아버리니 천하가 크게 기뻐했다." 하였습니다.

나도 역시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 잡고, 사설(邪說)을 없애고, 치우친 행동을 막고, 음탕한 말을 몰아내어 세 성인을 계승하려고 한다.

한씨(韓氏)는 말하기를, "요(堯)는 이것을 순(舜)에게 전하고, 순은 이것을 우(禹)에게 전하였으며,
우는 이것을 탕(湯)에게 전하고, 탕은 이것을 문(文)·무(武)·주공(周公)에게 전하였으며,
문·무·주공은 이것을 공자에게 전하고, 공자는 이것을 맹가에게 전하였으나, 맹가가 죽은 뒤로는 전해지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중니(仲尼)는 천기(天氣)이요, 안자(顔子)는 봄의 생육하는 기상이며,
맹자는 가을에 사멸하는 기상이 아울러 보인다.
중니는 전체를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안자는 어김이 없고 어리석은 것같이 하는 학문을 후세에까지 전하시니,
자연스러운 화기(和氣)가 말없이 화하는 이요, 맹자는 그 재질을 드러냈으니, 대개 이것은 또한 시대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중니는 천지(天地)요, 안자는 화한 바람과 좋은 구름이요, 맹자는 태산의 높고 높은 기상이다. 이것은 그 말을 보면 다 알 수 있다.
중니는 자취가 없고, 안자는 조금 자취가 있으며, 맹자는 그 자취가 드러났으니 공자는 참으로 명쾌(明快)하고 안자는 참으로 개제(愷悌)하며,
맹자는 참으로 웅변(雄辯)한 이라." 하였습니다.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부자는 천명한 것이 몸에 있음이 마치 청천백일과 같은 까닭에 그 명쾌함이 지극하였고,
안자는 있어도 없는 것 같이하고, 차있어도 빈 것 같이하며, 자기를 욕하여도 용서해 주는 까닭에, 그 개제(愷悌)함이 지극하였고,
맹자는 사설(邪說)을 없애고 치우친 행동을 막고 방자한 말을 몰아냈기 때문에, 그 웅변(雄辯)이 지극하였습니다.
이 글 한 단(段)은 대성(大聖)과 대현(大賢)의 기상을 반복 형용하여 각각 그 진묘한 과에 이르렀으니,
고금을 통하여 성현에 대해 언급한 것이 이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배우는 이들은 여기에 마음을 잠기게 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도통이 전한 것은 복희씨(伏羲氏)로부터 시작하여 맹자에 와서 그치고, 드디어 전하지 않았습니다.
순경(荀卿)·모장(毛)·동중서(董仲舒)·양웅(楊雄)·제갈량(諸葛亮)·왕통(王通)·한유(韓愈)의 무리들이 입언(立言)하고 입사(立事)하여
세상을 교화하는데 보충한 것은 있었지마는, 순경과 양웅은 다 편박(偏駁)하였고, 모장은 공을 나타낸 것이 없었고,
왕통은 견해가 좁은데다 속성하려 하였으니, 다 볼 만한 것이 적었습니다.
그 중에서 오직 동중서는 정의(正誼)와 명도(明道)의 의논이 있었으며, 제갈량은 유자(儒者)의 기상이 있었으며,
한유(韓愈)는 불노(佛老)를 배척하였으니, 제자(諸子)보다는 우수합니다.
그러나 동중서는 재이설(災異說)에 흘렀고, 제갈량은 신한(申韓)의 익힘에 가까왔으며,
한유는 실천 궁행의 학에 소홀하였는데, 이것은 맹씨(孟氏)의 전통을 이어 받지 못한 까닭입니다.

 

◆ 다음은 끊어졌던 도통이 주자(周子)에 와서 이어지고 크게 나타난 것입니다.

○ 주무숙(周茂叔)271)은 인품이 매우 고결하여 흉중이 쇄락(灑落)한 것이 마치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다.
(황정견(黃庭堅)의 염계(濂溪) 시(詩) 서문에 있음.)

연평 이씨(延平李氏)는 말하기를, "이 말은 도(道) 있는 이의 기상(氣象)을 잘 형용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염계선생의 사장(事狀)에 이르기를, "선생은 대대로 집이 도주 영도현(道州營道縣)에 있었다.
성은 주씨(周氏)이요, 이름은 돈실(惇實)인데, 뒤에 영종(英宗)의 구명(舊名)을 피하여 이름을 돈이(惇)라고 고쳤다.
박학역행(博學力行)하여 일찌기 도를 알았고, 일에 임하면 강하고 과단성이 있어서 옛 사람의 기풍이 있었으며,
정사를 하는데는 정밀하고 엄하였으며, 도리를 다하였다.
일찌기 태극도(太極圖)272)와 역설(易說)과 역통(易通) 수십 편을 지었다." 하였습니다.

도를 잃은 지 천년 동안에 성인이 난 지 오래되어 옳은 말은 다 없어졌다.
여기에 선각자가 없다면 누가 우리를 열어 주겠는가. 글로써 말을 다하지 못하고 그림으로써 그 뜻을 다 나타내지 못한다.
풍월(風月)은 끝이 없고 뜰 앞의 풀은 번갈아 푸르니 여기에 그 기상을 보겠구나.(주자가 지은 염계선생의 화상찬(畵像贊)입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선생은 아무에게도 배움도 없이 도체(道體)를 알아 그림을 만들고 글을 엮어서 그 요령을 끝까지 하였다.
당시에 보고서 안 사람은 정씨(程氏)였다.
정씨는 마침내 이것을 확대하고 미루어 밝혀서,천리(天理)의 미묘한 소이(所以)와, 인륜의 현저한 소이와, 사물의 중다(衆多)한 소이와,
귀신의 유심(幽深)한 소이를 명백하게 다 일관하여 주공과 공자·맹씨의 도통을 다시 세상에 환하게 밝혔다.
뜻 있는 선비가 이것을 얻어 하나하나 더듬어서 토론하고 몸소 행하여 그 바른 것을 잃지 않는것을 마치 삼대 전에 나온 것과 같이하니,
아, 참으로 성하도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선생의 말에 있어서 그 높은 것은 태극(太極)273)과 무극(無極)의 묘리에 극진하되,
그 실제는 일용의 사이를 떠나지 않고, 그 깊숙한 것은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에 대한 조화의 미묘한 곳까지 탐지하되,
그 실제는 인(仁)·의(義)·예(體)·지(智)와 강(剛)·유(柔)·선(善)·악(惡)의 사이를 떠나지 아니하니,
그 체(體)·용(用)의 일원(一源)과 현미(顯微)의 사이가 없는 것이 진한(秦漢) 이래로 이러한 이치에 도달한 자가 없으나,
그 실상은 육경(六經)과 논어(論語)·대학(大學)·중용(中庸)·맹자 7편의 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선생은 위로 공(孟)·맹(孟)에게 천 년의 도통을 이어받고,
아래로 정씨(程氏)에게 백세의 전함을 열어 준 것은 맥락이 분명하고 규모가 원대하다.
제유(諸儒)들의 전수한 차례를 두루 뽑아서, 처음으로 열어 시작하고 옛과 같이 일으켜 회복하며
이단(異端)의 학문을 널리 쓸어버리고 평정한 공효를 논한다면 이보다 더 높은 이가 없다." 하였습니다.

하남(河南) 정씨(程氏) 두 부자(夫子: 여기서는 명도(明道) 정호(程顥)와 이천(伊川) 정이(程) 두 형제에 대한 존칭)가 출현하여
맹씨의 전함을 이어 받았다. (주자(朱子) 대학 서(大學序))

주자는 말하기를, "왕단명(汪端明)이 일찌기, '두 정자(程子)의 학문이 오로지 주(周)선생에게서 이어 받은 것은 아니다.
' 한 말은 대개 통서(通書)를 사람들이 소홀하게 여겨 일찌기 이것을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통서를 보니, 다 이것은 태극도를 부연하여 밝힌 것인데, 글이 비록 많지는 않으나 강령을 이미 다하였으니,
두 정자는 대개 그의 전함을 얻은 것이며, 단지 이정(二程)의 공업(功業)이 넓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온화〔揚休〕하고 엄숙〔山立〕하며 옥같은 빛이요, 금 같은 소리로다. 원기(元氣)가 모임이여, 혼연히 자연으로 이루었도다.
좋은 날씨와 상서로운 구름이요, 화한 바람과 감미로운 비로다.
용덕(龍德)이 정히 중(中)에 나타나니 은택이 넓도다. (주자(朱子)가 지은 명도(明道) 선생의 화상찬(畵像贊)에 있습니다.)

명도(明道) 선생의 행장(行狀: 이천(伊川)선생이 지은 것입니다.)에 이르기를,
"선생의 이름은 호(顥)요, 자(字)는 백순(伯淳)인데, 하남인(河南人)이다.
자질(資質)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도(道)를 따라 공부를 해서 정금(精金)과 같이 순수하였고, 양옥(良玉)같이 부드러웠다.
관대(寬大)하되 절제가 있었으며, 화락하되 음란한 데 흐르지 않았다.
충성은 금석(金石)을 꿰뚫었고 효제(孝悌)는 신명에 통하였다.
그 얼굴빛은 봄볕처럼 따뜻하게 사물(事物)을 접하였고, 사람에 대한 말씨는 마치 내리는 비처럼 부드럽게 들렸다.
가슴에 품은 뜻이 깊어서 사물을 환히 보았으니, 그 쌓인 것을 헤아리면 마치 넓고 넓은 바다처럼 가 없는 것 같았고,
그 덕을 다 표현하려면 아름다운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선생이 몸소 행한것을 보면, 안으로는 경(敬)으로 주재하였고, 밖으로는 서(恕)를 행하여, 남의 착한 일을 보면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좋아하였으며,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게도 베풀지 아니하였다.
넓은 곳에 거하고 대도(大道)를 행하였으며, 말에는 실상〔物〕이 있었고, 행동은 떳떳하였다.
선생이 공부한 것을 보면 5·6세 때부터 여남(汝南)의 주무숙(周茂叔)이 도를 논하는 말을 듣고는
드디어 과거의 업을 싫어하고 구도(求道)의 뜻이 있었는데,
도의 요령은 알지 못하여 제가의 학문을 널리 탐구하고 노석(老釋 : 노장학과 교학)에 출입한 지 수십 년에 다시 6경에서 구하여 도를 얻었다.
(주자는 말하기를, "돌아와 6경에 구하여 도를 얻었다는 것은 특별히 그 공용(功用)이 크고 온전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요,
명도 선생이학문에 들어간 곳이 염계(濂溪)로 부터라는 것은 속일 수 없는 일이다." 하였습니다.)
모든 사물에 대해서 밝았고, 인륜을 살펴서 성(性)을 다하고 명(命)에 이르는 것은 반드시 효제에 근본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궁신지화(窮神知化)가 예악에 의해 통하는 것을 알았다.
사이비(似而非)한 이단적(異端的)인 의논을 분별하였고, 백대 동안 밝히지 못했던 의혹을 해명하였으니,
진한(秦漢) 이래로 아직 이러한 바른 의논에 도달한 이는 없었다.
선생은 '맹자가 몰한 뒤에 성학(聖學)이 전하지 않았다.' 하여 사문(斯文)을 다시 일으키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하였으며,
나아가서는 세상 사람들을 깨닫게하려 하였고 물러가서는 경전(經典)의 뜻을 밝히려 하였는데, 불행히도 일찍 세상을 떠나 다 미치지 못하고 말았다.
선생이 정묘하게 변석(辨析)한것이 지금 세상에 조금 보이는 것은 그에게 배운 학자들이 전한 것이다.
선생의 문하에서 배운 이가 많았는데, 선생의 말이 평이하여 알기 쉬워서, 어진 이나 어리석은 이 할 것 없이, 다 그 유익한 것을 얻었으니,
이것은 마치 많은 무리가 목이 말라 강물을 마시는데 각각 자기 양대로 채울수 있는 것과 같았다.
선생이 사람을 가르치는데는, 치지(致知)로부터 지지(知止)에 이르기까지,
성의(誠意)로부터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 쇄소응대(灑掃應對 : 물 뿌려 쓸고 응하고 대하는 것)로부터
궁리진성(窮理盡性 : 이치를 궁구하고 본성(本性)을 다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정연히 질서가 있었다.
세상의 학자들이 인간에 가까운 것은 버리고 요원한 것을 추구(追求)하며,
아래에서 공연히 높은 것만 엿보고 경솔하게 스스로를 크게 여겨 마침내 아무 소득도 없게 되는 것을 병통으로 여겼다.
선생은 사물을 접하면 분별해서 환하게 잘 알았고, 남도 느끼도록 해서 통하게 해 주었다.
사람들을 가르치면 그들이 쉽게 따랐고 성을 내도 그들이 원망하지 않았으니, 어진 이·어리석은 이, 착한 이·악한 이 할 것 없이
모두 그 심성(心性)을 받아서 교활하고 거짓된 자도 정성을 바쳤고, 포악하고 거만한 자도 공경을 다하였으며,
그 명성을 듣는 이는 진실로 열복하고, 그 덕을 보는 이는 마음으로 취하였으며,
비록 소인으로서 이해(利害)를 추향(趨向)하는 자라도 눈 앞에서는 배척하였으나 물러가 혼자서 사사로히 반성해 보고는
선생을 군자라고 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선생의 정사(政事)한 것을 보면, 악을 다스리는 데는 관대하게 하였으며 번잡한데 처하여도 여유가 있었다.
일찌기 번잡한 법령(法令)에 당하여도, 군중을 좇아 조문(條文)에 응하여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다 구애(拘) 받는 것을 병폐라 여겨도 선생은 여유있는 마음으로 작연(綽然)히 이에 처하였고,
뭇 사람이 심히 어렵다고 근심하는 것도 선생은 패연(沛然)히 해치웠으며, 비록 창졸한 일을 당하여도 조금도 성색(聲色)을 변하지 않았다.
선생이 만든 강조 법도(綱條法度)는 사람들이 본받아 할 수 있으나 인도하면 따랐고,
움직이면 화하였으며, 물(物)을 구하지 아니해도 물이 응하였고,
믿음을 베풀지 아니해도 백성들이 믿었던 것은 보통 사람들은 미칠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묘표(墓表)에 이르기를, "노국태사(潞國太師 : 문언박(文彦博)입니다.)가 그 묘비의 제(題)를 써서 명도(明道)선생이라 하였고,
아우 이()는 이에 서문을 써 말하기를, "주공(周公)이 세상을 떠나자 성인의 도가 행하지 아니하고, 맹자가 돌아가자 성인의 학이 전하지 아니하였다.
도가 행하지 않으면 백세토록 세상이 잘 다스려지지 않으며, 학이 전하지 아니하면 천 년토록 세상에는 진유(眞儒)가 없어진다.
세상이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그나마 선비가 앞 현인을 통해 그 잘 다스리는 도를 사숙(私淑)하여 후세에 전할 수 있지마는,
세상에 진유가 없으면 천하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몰라서 자기의 갈 바를 알지 못하며, 인욕(人欲)이 방자해지고 천리(天理)가 인멸해질 것이다.
선생은 1천 4백년 뒤에 나서, 전하지 못하였던 학문을 전성(前聖)이 남긴 경서(經書)에서 얻어 이 도로써 백성을 깨우치려고 뜻하였다.
그리하여 이단(異端)을 분별하여 배척하고 사설(邪說)을 막아서 성인의 도가 환하게 다시 세상에 밝게 하였으니,
대개 맹자 뒤로 진유는 오직 이 한 분뿐이다.
그러나 배우는 이들이 도(道)에 대하여 그 지향할 바를 알지 못한다면 누가 이 분의 공을 알겠으며,
이 분의 학문이 어디에까지 도달하였는가를 알지 못한다면 누가 이 이름이 실정에 합당하다는 것을 알겠는가." 하였습니다.

선생은 규(規: 둥근 원을 그리는 기구, 즉 콤파스)처럼 둥글고, 구(矩: 직각 자)처럼 모나며,
승(繩: 먹줄)처럼 곧고, 준(準: 평행 저울)처럼 평평하니 진실로 군자이구나. 참으로 크게 이루었도다.
비단 같은 문장이요, 숙속(菽粟: 콩과 좁쌀) 같은 맛이로다.
이 덕을 아는 이가 드문데 누가 그 진귀한 것을 알겠는가. (주자(朱子)가 지은 이천(伊川)선생의 화상찬(畵像贊)입니다.)

이천선생의 연보(年譜)에 이르기를, "선생의 이름은 이()요, 자는 정숙(正叔)인데, 명도선생의 아우다.
어릴 때부터 식견이 높아서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더니, 4·5세가 되면서 명도선생과 같이 주무숙선생에게 수학하고,
18세에 나라에 글을 올려 인종(仁宗)에게 왕도를 행하고 생령(生靈)을 돌보며 세속의 속된 말을 물리치고, 비상한 공을 세우기를 권유하였으나,
인종이 듣지 않았다. 철종 초에 사마광(司馬光)·여공저(呂公著)가 공동으로 올린 차자(箚子)에, '하남(河南) 처사 정이(程)가 학문에 힘쓰고
옛 도를 좋아하며, 가난에 안분(安分)하고 절개를 지키며, 말은 언제나 충신(忠信)을 말하고 행동은 반드시 예의를 좇습니다.
나이 50이 넘도록 벼슬에 나아가기를 구하지 아니하니 참으로 이는 진실한 선비의 높은 자취〔高蹈〕이며,
성세(聖世)의 드러나지 않은 백성입니다.' 하였고, 간관(諫官) 주광정(朱光庭)은 말하기를, '이()는 도덕을 순수하게 갖추었고,
학문이 넓고 깊으며 재질이 굳세고 발라 중립 불의(中立不倚)의 기풍이 있고 알고 생각함이 명철하여 거의 신묘한 곳에까지 이르며,
언행이 서로 합하여 선택할 것이 없고, 인의(仁義)가 몸에 있어도 스스로 자랑하지 않습니다.' 하였으며,
또 그는, 이()는 선왕의 심오(深奧)한 도리를 연구하고, 당세의 시무(時務)에 통달하였으니,
이는 바로 천민(天民)의 선각자이요, 성대의 진실한 선비입니다.' 하였으며,
또, '천지를 경위(經緯)하는 재주가 있고 예악을 제작하는 학식을 갖추었으며,
도를 말하면 삼재(三才 : 천天·지地·인人)를 관철하여 한 오라기의 틈도 없고,
덕을 말하면 뭇 아름다움을 다 포괄하여 하나의 선이라도 빠지지 않으며,
학을 말하면 고금을 널리 통하여 하나라도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재주를 말하면 개물성무(開物成務 : 만물의 이치를 개통하고 천하의 임무를 성취하는 것)하여 하나의 이치라도 거느리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성인의 도가 여기에 전하고 있으니, 하물며 천자께서 진학의 처음을 당하여
만약 진실로 선비로 하여금 경연(經筵)을 전담하게 한다면 어찌 성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하였습니다.

○ 송사(宋史)에 이르기를, "이()는 글에 대해서는 읽지 않은 것이 없고,
그 학문은 성에 근본하여 대학·논어·맹자·중용을 목표로 삼아 6경에 통달하였고,
동지(動止)·어묵(語默)은 한결같이 성인을 스승으로 하여 성인에 이르지 않으면 그치지 않았다.
일찌기 그는 이르기를, '지금 농부들이 혹독한 추위와 무더운 장마비에도 깊이 갈고 김매어서 오곡을 파종한 것을 내가 얻어 먹고 있으며,
기예(技藝)가 있는 백공(百工)들이 기물을 만든 것을 내가 얻어 사용하고 있으며,
투구 쓴 군사들이 갑옷을 입고 병기를 들어서 강토를 방위하기 때문에 내가 편안히 살고 있는데,
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공택(功澤)도 미치지 못하고 세월만 허랑하게 보내고 있으니, 천지 간에 하나의 좀〔〕이다.
오직 성인의 남긴 글을 엮어서 이것을 세상에 전한다면 그래도 조금의 도움이 될 것이다.' 하고는,
역전(易傳)과 춘추전(春秋傳)을 지었다.
그는 평생 동안 사람을 가르치는데 게으르지 아니한 까닭에 배우는 사람들이 그 문하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
그리하여, 그의 학문의 연원(淵源)이 점점 배어서 다 명사가 되었는데,
유현(劉絢)·이유(李)·사량좌(謝良佐 )·유작(遊酢)·장역(張繹)·소병(蘇昞)·여대림(呂大臨)·여대균(呂大鈞)·윤순(尹焞)·양시(楊時) 등은
덕이 성한 이로서 저명하였다." 하였습니다.

횡거(橫渠)274)의 학문은 고심하여 얻은 것이므로 이것은 바로 치곡(致曲 : 곡진히 이룬 것)이다. (주자 어록)

주자는 말하기를, "횡거와 정자(程子)를 비교하면, 마치 백이(伯夷)·이윤(伊尹)을 공자에 비유하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초년에는 손·오(孫吳)에서 빠져나오고, 만년에는 노·불(老佛)에서 도망쳤다.
용감하게 고비 (皐比 : 호랑이 가죽. 여기에서는 종전에 노불 계통의 스승을 가리킴)를 걷어치우고 일변하여 도에 이르렀다.
정밀하게 생각하고, 힘써 실천하며, 신묘하게 깨달은 것을 빨리 표현하였는데,
서명(西銘)의 훈계가 우리에게 광거(廣居 : 맹자에 인(仁)을 광거(廣居)라 하였다.)를 보였다.
(주자(朱子)가 지은 횡거(橫渠)선생의 화상찬(畵像贊)에 있습니다.)

송사(宋史)에 이르기를, "장재(張載)는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운암령(雲巖令)이 되어서 근본을 독실히 하고,
풍속을 착하게 하는 것을 먼저 힘썼다.
임금(신종(神宗) 입니다.)이 처음에 즉위하여, 여러 가지 제도를 일신하고 재주있고 명철한 선비를 얻을려고 꾀하였다.
여공저(呂公著)가 장재를 옛 도학이 있다고 추천하므로,
임금이 인견(引見)하여 치도(治道)를 물었는데,
장재가 대답하기를, '정치를 하는데 3대를 본받지 않는 자는 마침내 도에 구차한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기뻐하여 숭문 교서(崇文校書)로 삼았다.
왕안석(王安石)과 같이 신법(新法)을 논의하여 이에 의견이 맞지 않았으므로 병을 핑계하고 남산(南山) 아래에 은거하였다.
그의 학문은 예를 존중하고 덕을 귀히 여기며, 낙천안명(樂天安命)하여 역(易)을 종(宗)으로 삼고, 중용(中庸)을 체(體)로 삼았으며,
공(孔)·맹(孟)을 법으로 삼아 괴망(怪妄)한 것을 물리치고 귀신을 분변하였다.
그의 가례(家禮)의 혼상장제(昏喪葬祭)는 다 선왕의 뜻을 좇아 쓰되 지금의 예를 참작하였다.
저서로는 정몽(正蒙)과 서동명(西東銘)이 세상에 행한다." 하였습니다.
(어떤 이가 정자(程子)에게 서명(西銘)은 어떠한가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이것이 횡거(橫氣)의 글 중에 가장 순수한 것이다." 하자,
"그 뜻때로 다 확충하면 어떠한가." 하니, 대답하기를, "성인(聖人)이 된다." 하자 "횡거가 능히 확충하였습니까." 하니,
"말이 여러 가지다. 유덕(有德)한 말도 있고 조도(造道)한 말도 있다.
유덕한 말이란 것은 자기의 일을 말한 것이니, 성인이 성인의 일을 말하는 것이요, 조도한 말이란 것은 그 지혜가 족히 이것을 아는 것이니,
현인(賢人)이 성인의 일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행장에(여여숙(呂與叔)이 찬하였습니다.) 말하기를, "선생의 휘(諱)는 재(載)요, 자는 자후(子厚)인데, 대대로 대량(大梁)에서 살았다.
강정(康定)이 용병(用兵)할 때에 선생의 나이 18세였는데, 개연히 공명으로써 자허(自許)하여
글을 올려 범문 정공(范文正公 : 인종仁宗)을 뵈오니, 공이 그 원기(遠器)인 것을 알고 성취시키고자 해서
이에 선생을 책망하여 말하기를, '유자(儒者)는 스스로 명교(名敎)가 있는데 어찌 병사를 일삼는가.' 하고, 중용(中庸)을 읽기를 권하였다.
선생이 중용을 읽고 비록 이것을 아꼈으나 그래도 부족하다고 여기어,
또 노불(老佛)의 책을 탐구하여 여러 해만에 그 학설을 다 연구하고는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음을 알고, 다시 돌아와 6경에서 도를 구하였다.
가우(嘉祐 :인종(仁宗)의 연호이다.) 초에 정백순(程伯淳)·정정숙(程正叔)을 경사(京師)에서 보고 같이 도학의 요령을 논하고,
선생은 깨달은 바 있어서 환연(渙然)히 자신을 가지고 말하기를, '우리 도가 스스로 족한데 어찌 방구(旁求 : 옆으로 구하는 것)를 일삼겠는가.' 하고는,
이로부터 이학(異學)을 다 버리고 순수하게 되었다.
(송사(宋史)에 이르기를, "장재(張載)가 일찌기 호피에 앉아 역(易)을 강하니, 듣고 좇는 자가 심히 많았다.
하루 저녁에는 정호(程顥)와 정이(程)가 와서 같이 역(易)을 논하였는데,
그는 그 다음날 사람들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요즈음 보니 두 정자는 역도(易道)에 심히 밝아 나의 미칠 바가 아니더라.
너희들은 그분 들을 스승으로 삼아 배우는 것이 가할 것이다.' 하고는, 곧 자리를 걷어버리고 강의를 폐하였다." 하였습니다.)
선생은 만년에 숭문(崇文) 벼슬로부터 병을 핑계하고 서쪽으로 횡거에 돌아와서 날마다 종일토록 한 방에 꿇어 앉아 책을 좌우에 두고,
구부려서 읽고 우러러서 생각하여 터득하는 대로 기록하였다.
때로는 밤중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서 촛불을 밝히고 이것을 썼는데,
그 도를 지향하고 생각하는 것이 정밀하여 조금도 쉬지 않았으며,
또 조금도 잊지 않았다. 배우는 이들이 물을 때는 항상 예를 알고 성(性)을 이루어서 기질(氣質)을 변화시키는 도로써 말해 주고,
또 배움이란 반드시 성인이 되어야만 그만둔다고 하였으니 듣는 이가 감동하여 정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선생은 일찍이 문인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학문이 이미 마음으로 얻어졌다면,
그 사명(辭命)을 잘 닦아서 사명에 어긋남이 없어야만 일을 잘 결단할 수 있고, 일을 결단하는데 실수가 없으면,
내가 이에 패연(沛然)히 되는데, 정의(精義)가 신묘해지는 것은 미리 준비하는 것뿐이다.' 하였다.
선생은 기질이 강의(剛毅)하고 덕이성하며 용모가 위엄스러우나 사람과 더불어 거할 때는 오래될수록 점점 더 친해진다.
그 치가(治家)와 접물(接物)하는 대요는 자기 몸을 바르게 함으로써 남을 감동하게 하고,
남이 이것을 믿지 않을 때도 스스로 반궁(反躬)하여 자기를 다스릴 뿐, 남에게는 말하지 아니했다.
비록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더라도 편안히 행하면서 아무 후회를 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아는 이나 모르는 이나 할 것 없이 그 명성을 듣고 두려워하여,
감히 털끝만큼이라도 옳지 않은 일은 선생에게 언급하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강절(康節)275) 소씨(邵氏)는 내성 외왕(內聖外王:안으로는 성인이요 밖으로는 왕이란 뜻인데,
즉 유교의 수기(修己) 치인(治人)이다.)의 학문은 안이(安易)하게 이루어졌으나, 선현들이 일찌기 그를 도통의 정맥으로 허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여기에 싣지 못했습니다.
정문(程門)의 제자들 가운데는 사도(斯道)에 보탬이 된 사람은 많았지마는,
도를 전하는 임무를 질 수 있는 사람은 역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두 정자(程子)와 장횡거 뒤에는 주자(朱子)로써 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귀산(龜山)이 정자에게 수업하였고, 예장(豫章:나중소(羅仲素))은 귀산에게 수업하였으며,
연평(延平)은 예장에게 수학하였는데 이들 세분 선생은 업은 비록 넓지 않다 하더라도,
이 분들은 주자의 연원이 되는 까닭에, 간략하게 그 행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귀산(龜山)선생 양시(楊時)의 자는 중립(中立)인데, 천성이 인후(仁厚)하고 관대하여, 모든 것을 잘 용납하며,
남보다 별다른 초세속적인 행동을 해서 세상의 명예를 구하는 일이 없었으며, 사람들과 사귐에는 시종 그 행동이 한결 같았습니다.
또 효도가 지극하여 어려서 모친을 여의었을 때 그 슬퍼하는 것이 성인(成人)과 같았습니다.
하남(河南)의 두 정선생의 도를 듣고 곧 가서 종학(從學)하였는데, 이 때 두 선생에게 종학하는 학자가 심히 많았지만,
선생만이 유독 여러 해 경서(經書)에 파고 들어, 스승의 학설을 널리 미루어 궁구하고 탐구하여 힘껏 찾아서 그 취의가 극진하여,
함축성(涵蓄性)이 있고 광대(廣大)하였으나, 감히 경솔히 스스로 방자하지 않았습니다.

○ 예장(豫章)선생 나종언(羅從彦)의 자는 중소(仲素)인데, 어릴 때부터 남보다 총명하여 언어 문자의 학문을 하지 않았으며,
장성해서는 견고 각려(堅苦刻)하여 뜻을 독실히 하고 도를 구하였습니다.
처음에 오국화(吳國華)에 종학하다가 조금 뒤에 귀산선생이 이락(伊洛)의 학을 (정이천의 학문을 말합니다.)얻었음을 듣고 가서 배웠는데,
이로부터 지난 날 배운 학문이 그르다는 것을 알고 3일 간이나 놀래어 등에 땀을 흘리면서 '거의 일생을 그르칠 뻔하였다.'고 말하며 탄식하였습니다.
귀산이 도를 동남으로 창도하니 따르는 자가 천여 명이나 되었으나, 깊이 생각하고 힘써 행하되
무거운 짐을 지고 극진한 데 나아간 이는 선생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 연평(延平)선생 이동(李)의 자는 원중(愿中)인데 나면서부터 뛰어난 천품을 가졌고 어릴 때부터 영리하고 민첩하였습니다.
조금 자라니 효우(孝友)가 근독하였습니다.
같은 고을 사람인 나중소(羅仲素)선생이 이락(伊洛)의 학을 얻었음을 듣고 가서 배웠습니다.
나공(羅公)은 맑은 절개로써 세속과 인연을 끊었으므로 마을사람들이 알지 못하였는데, 선생이 종유하여 업을 받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비난하였습니다.
선생은 들은 체하지 않고 이에 종학한 지 수년에, 특히 춘추(春秋)·중용(中庸)·논어·맹자의 설을 배워서 조용히 완미하여
이것을 마음으로 체득해서 그가 전하는 심오한 뜻을 다 얻었습니다.
나공은 좀처럼 남을 칭찬하지 않았는데 선생만은 심히 칭찬하였습니다.
선생은 물러나와 산전(山田)에 은거하여 초옥(草屋)과 산수(山水)간에 살면서 세고(世故)를 사절한 지 40여 년 동안에 곤궁하여
끼니가 다 떨어져도 기꺼이 스스로 즐겼습니다.
선생은 천품이 굳세고 특이하여 기질이 호매하였으나 수양이 완수(完粹)하여 모난 데가 없었습니다.
가을달 같이 맑고 깨끗하여 한 점의 티도 없어 그 정순(精純)한 기질이 얼굴에 달하여, 안색이 온화하고 말이 엄정하였으며,
정신이 안정되고 기운이 화하였으며, 어묵동정(語默動靜)이 바르고 상세하였으며, 한가하고 태연하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도를 듣고는 초연히 벼슬을 단념하고 멀리 숨어 있었기 때문에 마치 당세에 아무 뜻이 없는 것 같았으나,
시국을 근심하여 일을 논함에는 그 사람을 감격하게 움직였고, 치도를 말함에는 반드시 천리를 밝히고 인심을 바르게 하며,
절의를 숭상하고 염치를 힘쓰는 것을 먼저 하여 처음과 끝을 구비하였으니, 이 점은 가히 들어서 행할 만한 것이었으며,
다만 공연히 말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방자(李方子)가 주자를 칭찬하여 말하기를, "공(孔)·맹(孟) 이래로 박문약례(博文約禮)가
그 극진한 데 이른 이는 선생 한 사람뿐이다." 하였습니다. (이락연원속록(伊洛淵源續錄))

주자 행장(면재 황씨(勉齋黃氏)가 지었습니다.)에 말하기를,
"선생의 성은 주씨(朱氏)요, 이름은 희(熹)이며, 자는 중회(仲晦)이다.
주씨는 무원(源)땅의 드러난 성인데 선비로써 이름 있는 집이요, 대대로 위인이 있었다.
이부공(吏部公: 주자의 부친. 이름은 송(松)입니다.)은 문장과 행의(行義)가 학자의 사표가 되었는데, 호는 위재(韋齋)선생이다.
주자는 어릴 때 영리하고 민첩하며 장중하였다.
스승에게 나아가 배우는데 효경을 가르쳐주니, 한 번 보고는 덮고 그 위에 글을 쓰기를, '이와 같이 아니하면 사람이 아니다.' 하였다.
일찌기 여러 아이들과 놀다가 모래 위에 단정히 앉아 손가락으로 모래를 긋는데 보니, 팔괘(八卦)였다.
조금 자라서는 뜻을 성현의 학문에 두고 널리 경전의 뜻을 구하고 두루 당세의 유식한 선비를 교우하였다.
연평(延平) 이선생은 위재와 동문의 친구였는데, 선생은 연평에게 배우기 위해 수백 리를 멀다고 여기지 아니하고 걸어 다니면서 종학하였으니,
이로부터 여러 해 정밀히 생각하고 체험해 배워서, 조예(造詣)가 더욱 깊어졌다.
선생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궁리(窮理)하여 치지(致知)하고, 반궁(反躬)하여 실천(實踐)하되 거경(居敬)으로 처음과 끝을 이루었다.
이르기를, '치지를 경으로 하지 아니하면 의혹에 빠져 분란이 생겨 의리로 돌아가는 것을 살피지 못하고,
궁행을 경으로 하지 아니하면 태만하고 행동에 절제가 없어서 의리의 실상을 이루지 못한다.'하여
제장정일(劑莊靜一)한 가운데 이 마음을 보존하고, 학문을 사변(思辨)할 즈음에 이 이치를 궁구하였다.
다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소당연과 바뀔 수 없는 소이연을 알았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데서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더욱 엄숙하고 더욱 공경하였다.
은미하게 그윽히 홀로 있을 즈음에 반성하고 살피어 더욱 정일하고 엄밀하였으며,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하되 지각(知覺)은 어둡지 아니하고,
사물에 이미 접하였으되 품위와 절도가 어긋나지 아니하였다. 사사로운 인욕(人欲)을 용납하지 아니하였고,
천리(天理) 바른 것을 온전하게 하여 편견(偏見)을 불안해 하였으며, 작은 것을 이루는데 조급하지 아니하였으니, 도의 정통이 여기에 있었다.
그 도에는 태극(太極)에서 음양이 나누어지고, 음양에서 오행(五行)이 갖추어졌다.
하늘이 부여한 것은 명(命)이요, 사람이 부여 받은 것은 성(性)이다.
사물에 감동되는 것은 정(情)이요, 성정을 통괄하는 것은 마음이다.
사람에게 구하면 사람의 이치가 자기와 다른 것이 없고, 물(物)에 참조하면 물의 이치가 사람과 다른 것이 없어서
분석하면 지극히 정밀하여 혼란이 없고, 합하면 지극히 커서 남김이 없었다.
선생의 도에 대해 말한 것은 천지에 세워 보아도 패역(悖逆)하지 아니하고, 성현에 대조해 보아도 의심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그 자신의 덕을 얻어서 한 마음으로써 조화의 원리를 궁구하고 성정(性情)의 묘리를 다하여 성현의 심오한 뜻에 통달하였으며,
한 몸으로써 천지의 운행을 체득하고 사물의 이치를 갖추어, 강상(綱常)의 책무를 다하였다.
그리고 총명(聰明)은 그 세미(細微)한 것을 살폈고, 그 강단(剛斷)은 무거운 책무를 맡았으며, 넓은〔弘〕뜻은 그 광대한 것을 이루었고,
굳센〔毅〕뜻은 그 떳떳한〔常〕것을 극진히 하였다.
그 마음은 비워서 고요하였고, 그 발(發)하는 데는 과감하고 확실하였다.
그 쓰는 데 있어서는 일에 응하고 물(物 )에 접하여서 궁하지 아니하였고,
그 지키는 데 있어서는 변고를 지나고 험난한 것을 밟아도 바뀌지 아니하였다.
본말(本末)과 정추(精粗)를 그 잃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표리(表裏)와 시종(始終)이 달라지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수양(修養)을 깊이 이루고 두텁게 싸았되 긍지(矜持)는 순수하게 익었고 위엄은 화평하여서,
마음은 잡아주지 않아도 존(存)하고, 의리는 찾지 않아도 정(精)하였다.
그런데 선생은 세월이 한도가 있어서 의리를 다 궁구할 수 없다하여 항상 겸연(慊然)히 부족하게 여겼다.
대체로 날로 새롭고 새로운 것이 있어서 스스로 그만둘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뒤 학자들이 모방하거나 의논해 볼 수 없다.

그 볼 만한 행실로는, 몸을 닦는데는 그 모습이 장엄하고 그 말이 엄정하였으며,
그 행동은 여유가 있고 공손하였으며, 그 앉은 모습은 단정하고 곧았으며,
한가한 사이에는 밝기 전에 일어나 심의(深衣)와 복건(幅巾)과 모난 신〔方履〕을 신고 가묘에 가서 배례하여 선성(先聖)에까지 미쳤으며,
물러나서는 서재에 앉아 책상을 반드시 바르게 놓고 서적과 기물(器物)을 반드시 정리하였으며,
음식을 먹을 때는 국과 밥을 놓는 위치가 정해져 있었고, 수저를 들고 놓는 데도 정한 곳이 있었으며,
피곤해서 쉴때는 눈을 감고 단정히 앉아서 쉬다가, 일어나면 몸을 바르게 하고 서서히 거닐었다.
밤중이라도 자다가 깨면 이불을 안고 앉아서 간혹 아침이 되도록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거동이 규칙적인 것은 소시 때부터 노경에 이를 때까지,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역경에 이르렀을 때도 잠간동안이라도 조금도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집에서 행하는 것으로는 어버이를 봉양하여 효도를 극진히 하였고 아랫 사람을 자애로써 극진히 어루만졌으며
집안에서는 안과 밖의 분간이 엄격하였으되 은의(恩義)가 두터워 화락하였다.
제사를 지낼 때는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반드시 정성껏 공경하되 조금이라도 예에 맞지 않으면 종일토록 즐거워하지 아니하였고,
제사가 끝나도록 예에 어긋남이 없으면 유연(油然)히 기뻐하였다. 상사(喪事)에는 슬퍼하고 통곡하였으며,
음식이나 상복은 각각 그 정(情)을 다하였고, 빈객이 왕래할 때는 가정의 형편에 맞도록 대접하되 항상 그 기쁨을 다하였으며,
친한 사이에는 비록 멀리 있어도 반드시 그 사랑을 다하였고, 향려(鄕閭)에서는 비록 미천한 이라도 반드시 공손하게 하였다.
그래서 길흉·경조의 일에는 예에 빠진 일이 없었으며, 주휼문유(問遺:가난한 사람이나 가엾은 사람을 구하고 동정하는 것을 주휼이라 하고,
안부를 묻고 물건을 보내고 하는 것을 문유(文遺)라고 한다.)하는 일에도 은혜가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신의 생활로는, 옷은 몸을 가리울 정도였고, 음식은 배만 채울 정도였으며,
거처는 비바람을 막을 정도로서 다른 사람은 견딜 수 없었으나 여유가 있어 하였다.
그가 조처한 사업으로는 주현(州縣)에서의 시설〔施設〕과 조정에서의 언론(言論)에서,
경륜(經綸)과, 규획(規劃)이 정대하고 위대한 것을, 가히 볼 수 있다.
벼슬에 나아가 비록 당대에 도를 행하지는 못하였으나, 물러나서 밝힌 도는 족히 만대에 전할 수 있었다.
선생은 이르기를, '성현들이 도학을 전한 것이 책에 산재(散在)되어 있는데 성현의 경훈(經訓)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도학의 정통이 비로소 어두어 졌다.' 하면서 정력을 다하여 성현의 경훈을 깊이 궁구하였다.
그 깊은 것을 탐구하고 은미한 것을 찾아서 그 뜻을 남김없이 발현하였다.
선생이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대학·논어·맹자·중용의 순서로써 도에 들어갔으며,
글을 읽는 데는 음운(音韻)과 해석으로 변파하게 하였고,
그 장구(章句)를 바르게 하였으며, 말을 완미하게 하여 뜻을 구하되 정밀하게 연구하게 하였다.
그리고 알기 어려운 곳은 생각을 오래하여 궁구하고, 심기(心氣)를 평이하게 하여 스스로 얻기를 기다리게 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자기를 위하여 실상에 힘쓰고 의(義 )와 이(利)를 분별할 것이며,
자기를 속이지 말고 홀로 있을 때를 경계하라.'고 재삼 말하였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공자는 모든 성인들을 종합하여 이를 대성하였고 주자는 모든 현인들을 종합하여 이를 대성하였다고 봅니다.
성인은 나면서부터 알아서 안이하게 행하여 혼연히 아무 행적이 없기 때문에, 갑자기 배울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주자는 공부를 쌓아서 취할 모범이기 때문에, 먼저 주자를 배워야만 공자를 배울 수 있으므로 여기에, 행장(行狀)을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명도(明道)의 행장을 보면 자품이 고명한 것을 상상해 볼 수 있고, 주자의 행장을 보면공부의 정밀한 것을 깊이 체찰할 수 있습니다.

공자 이후에는 증자(曾子)와 자사(子思)가 그 심미(深微)한 것을 이었는데 맹자에 이르러 비로소 환하게 드러났으며,
맹자 이후에는 주자(周子)·정자(程子)·장자(張子)가 그 끊어진 학통(學統)을 이었는데 선생에 이르러 비로소 환하게 드러났다. 행장(行狀)중의 말

면재 황씨(勉齋黃氏)는 말하기를, "천여 년 동안에 공·맹의 학도가 이도를 미루어 밝힌 것이 이미 불에 타버리고,
남은 것도 산산이 흩어지고 쪼개졌으며, 구멍이 뚫어져 미묘한 말이 거의 끊어졌다.
주자(朱子)와 정자·장자가 사문이 인멸된 나머지 인심이 좀먹고 무너진 뒤에 우뚝 일어나서 이것을 부지식립(扶持植立)하였으니,
그 공이 위대하나, 이로부터 백년이 못되어 회박(晦駁)이 더욱 심하였다.
선생이 나와서 비로소 주(周)나라 이래로 성현이 서로 전하던 도가 하루 아침에 활연(豁然)히 밝은 태양이 중천(中天)에 뜬 것 같아서 환하게 드러났고,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배우는 이로서 그 글을 전하고 그 도를 믿는 이가 더욱 많았으니, 또한 의리가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것이 깊었음을 보겠다.
지난 성현들의 미미해진 단서를 이어 전현(前賢)의 발견치 못하였던 기미를 열고, 제유(諸儒)들의 득실을 분별하며,
이단(異端)의 그릇된 것을 물리쳐서 천리를 밝히고 인심을 바르게 하였으니, 사업의 큰 것이 이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 북계 진씨(北溪陳氏)는 말하기를, "선생은 도가 높고 덕망이 있었으며, 의(義)가 정일(精一)하고 인(仁)이 성숙하였다.
언어가 바르고 온화하여, 인심과 천리에 통철하였다.
군철(哲)에 통달하고 백성(百聖)을 이해하여 수(洙)·사(泗)·이(伊)·낙(洛)의 학업에 정(精)하여 무릇 앞날의 단서만 있고
결론이 없었던 것을 다 이제 완비하였으며, 종전에 분별하기에 의심이 있어서 밝히지 못한 것이 이제는 더욱 확실해져서
그 대강(大綱)과 대의(大義)가 마치 손바닥을 가리키는 것같이 분명해졌다.
1천 1백 년 동안의 오류를 씻고, 뒤 학자들이 함부로 바꿀 수 없는 준칙을 정하였으니,
말은 간략하되 이(理)는 극진하였고 취지는 밝고 의미는 깊었다.
그 심도(心度)는 밝고 명랑하여 아무 티도 없었으며, 공부는 치밀하여 물샐 틈도 없었으니, 그 말과 기운 사이에서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공(孔)·맹(孟)·주(周)·정(程)의 도가 선생에 이르러 더욱 밝아졌으니,
소위 이 세상에서 종주(宗主)하기를 맹세했다고 할 만한 사람은 오직 선생 한 분일 뿐이다." 하였습니다.

○ 초려 오씨(草廬吳氏)는 칭찬하여 말하기를, "의리가 현미(玄微)한 것이 명주실이나 소털 같고,
가슴 속이 넓은 것은 넓은 바다나 높은 산 같으니, 호걸의 재사(才士)요, 성현의 학문이다.
빛나는 별이요, 상서로운 구름이며〔景星慶雲〕, 태산(泰山)이요 교악(喬嶽)이로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주자(朱子) 뒤에 도통의 정맥을 얻은 이는 꼭 누구라고 지적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봅니다.
장남헌(張南軒)은 주자와 더불어 도의(道義)의 교우로 강론의 공이 있었고 채서산(蔡西山) 이하 제공(諸公)은
다 주자의 학문에서 얻었기 때문에 간략하게 그 행적을 아래와 같이 나타냈습니다.

송사(宋史)에 이르기를, "장식(張)의 자는 경부(敬夫:남헌선생(南軒先生)입니다.)인데 정승 장준(張浚)의 아들이다.
영리하고 민첩하였기 때문에 성숙하여 준(浚)이 아꼈다.
어릴 때부터 글을 배우는데 가르치는 것이 인(仁)·의(義)·충(忠)·효(孝)의 실용이 아닌 것이 없었다.
자라서 호굉(胡宏:오봉(五峰)선생입니다.)을 스승으로 삼으니 굉이 한 번 보고는 곧 공자가 문인에게 인(仁)을 논하는 친절한 취지로써 가르쳤는데,
식()이 물러가 사색(思索)하여 얻은 바가 있었기 때문에 굉은 칭찬하여 말하기를, '성문(聖門)에 사람이 있다.' 하니,
식이 더욱 스스로 분발하고 힘써서 옛 성현과 같이 되겠다고 스스로 기필하여 희안록(希顔錄)을 지었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공은 어려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집안에서 나오지 않고 공부하여 진실로 충효의 전함을 얻었고,
또 오봉(五峯)의 문하에 강학하여 그 뜻의 귀취를 알았으니, 마음으로 묵묵히 안 것이 남들은 알아내지 못할 것이었다.
그 논설에 나타난 것으로는 의(義)와 이(利) 사이를 세밀하게 분별해서 대개 전철(前哲)들이 말하고 싶었으나,
미처 연구하지 못한 것에서 나왔고, 사업에 있어서는, 그 대강(大綱)과 대용(大用),
그리고 거(巨)·세(細)·현(顯)·미(微)가 흉중에 환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한 오라기도 공리(功利)의 잡된 것이 없었다.
이러므로 집에서 도를 논하니, 사방의 학자가 서로 다투어 모여와서 배웠고,
또 임금을 모시고 글을 가르쳤으며, 외임(外任)에 나가니 천자가 또한 그가 말한 것을 음미하고 그 공적을 치하하였으며,
또한 장차 크게 기용(起用)하려고 하였는데, 경부(敬夫)가 불행히도 죽었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 채원정(蔡元定)276)의 자는 계통(季通)인데(아래는 다 송사(宋史)에 나오는 말입니다.)나면서 영민하고 민첩하였습니다.
부친 발(發)은 뭇 책을 널리 열람하였는데, 호는 목당노인(牧堂老人)입니다.
그는 정씨(程氏)의 어록과 소씨(邵氏:소강절(邵康節))의 황극 경세(皇極經世)와 장씨(張氏:장횡거(張橫渠))의 정몽(正蒙)을 원정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이 공·맹의 정맥이다." 하니, 원정이 읽어서 그 뜻을 깊이 연구하였는데, 자라서 변석(辨析)을 더욱 정밀하게 하였습니다.
서산(西山) 꼭대기에 올라 굶주림을 참고 냉이〔薺〕를 씹으면서 독서하다가 주희(朱熹)의 이름을 듣고 가서 스승으로 삼으니,
주희가 그 학문의 정도를 알아보고, 크게 놀라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나의 노우(老友)이지 제자의 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하고는
마침내 한 자리에 앉아 모든 경전의 심오한 뜻을 강론하였는데, 매일 밤까지 이렇게 계속하였으며,
사방에서 학자가 오면 주희는 반드시 먼저 원정에게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원정이 죽자 희는 글로써 애통하여 말하기를, "정예(精詣)한 학식과 탁월한 재질과 불굴의 뜻과 무궁한 변론을 다시 얻어 볼 수 없도다." 하였습니다.
배우는 이들이 그를 높여 서산(西山)선생이라고 하였습니다.

○ 황간(黃)의 자는 직경(直卿)입니다.
유청지(劉淸之)를 만나니 청지가 그를 기특하게 여겨 말하기를, "자네는 바로 원기(遠器)이다." 하고,
곧 명하여 주희에게 수업하게 하였는데, 간()은 주희를 만난 후로 밤에 자리를 깔지 않고,
허리띠도 풀지 않고 앉아서 공부를 하면서, 조금 피곤하면 편하게 앉아 의자에 몸을 기댔다가 다시 하였는데,
간혹 새벽까지 이렇게 하였습니다. 주희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직경(直卿)은 뜻이 굳고 생각이 독실하므로 같이 있으면 심히 유익하다." 하였습니다.
주희가 병이 위독하니 심의(深衣)와 지은 책을 간에게 전수하고 손수 글을 써서 주면서 영결하여 말하기를,
"우리의 도(道)가 여기(황간을 가리킴)에 있으니 나는 아무 유감이 없다." 하였습니다.
간의 제자가 날로 성하여 파촉(巴蜀)과 강호(江湖)의 선비들이 다 와서 의문되는 것을 묻고
유익한 것을 청하는 것이 주희 때와 같았습니다.

○ 이번(李燔)의 자는 경자(敬子)입니다.
주희에게 학문을 배우자 희가 증자(曾子)의 홍의(弘毅)란 말로써 가르치니,
번(燔)이 물러가서 홍(弘)이란 글자를 넣어 자기 서재〔劑〕의 이름을 지어 스스로 경계하였습니다.
주희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번의 교우(交友)함이 유익하고 학문이 두렵도록 나아가며 또 솔직하고,
믿을 만하며, 순박하고 착실하며, 처사하는 것이 구차하지 아니하니 뒤에 사도(斯道)를 맡을 이는 반드시 번이다." 하였습니다.
사미원(史彌遠)이 황자 횡()을 폐하니, 번은 삼강(三綱)에 관계된다고 하고는 이로부터는 다시 그 세상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자기 집에서 도를 강하니 배우는 이들이 그를 높여 황간(黃)과 병칭하여 황리(黃李)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주자의 뒤에는 진덕수(眞德秀)와 허형(許衡)이 선비로서 세상에 이름이 났으나,
살펴볼 때, 그 출처의 절도에 있어서 논의할 소지가 있음으로 여기에 감히 수록하지 않았으며,
또 명(明)나라의 이름 있는 신하들에 이르러서도 역시 대부분 이학(理學)에 파고 들어간 이는 많으나
도통의 정맥에 접할 만한 이는 볼 수 없으므로, 감히 여기에 기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신은 그윽히 이르기를, 태초의 생민들은 풍기(風氣)가 처음으로 열리어 새처럼 거처하고 혈식(血食)하여 생활의 도리가 구비되지 못하였으며,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발가벗고 있었으며, 인문(人文)이 구비되지 못하여 임금도 없이 모여 살고 있었으므로 물어 뜯고 손톱으로 움켜쥐어 먹고 살았는데,
소박한 생활은 이미 흩어지고 대란이 일어나려고 할 때에, 여기에 성인이 여러 중물 가운데서 뛰어나,
총명과 지혜로써 그 성품을 온전하게 하니, 억조의 백성들이 자연히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툼이 있으면 해결해 주기를 구하였고, 의문이 있으면 가르쳐 주기를 구하여 <백성들이> 받들어 임금으로 삼았는데,
민심의 향하는 바가 바로 천명(天命)의 돌아오는 바이라, 이 때문에 성인은 억조의 백성이 스스로 돌아온 것을 알고
군사(君師)의 직책을 맡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천시(天時)에 순하고 지리에 따라서 백성을 기르는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궁실과 의복과 음식과 기용(器用)이 점차로 구비되고 백성들이 필수품을 얻어서 생을 즐기면서 업에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안일하게 지내면서 가르치지 않으면 금수에 가까와짐을 근심하여 인심에 따르고 천리에 근본하여 교화의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부자(父子)·군신(君臣)·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가 각각 그 도리를 얻으니, 하늘의 질서가 이미 밝아지고 또 시행되었습니다.
또 시대가 같지 않기 때문에 제도를 마땅히 하여야 하고, 현우(賢愚)가 같지 않기 때문에 교치(矯治)하는 방법을 고려하여,
인정을 절제하고 시무(時務)를 촌탁해서, 이에 더하고 줄이는 규범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문질(文質)과 정령(政令)과 작상(爵賞)과 형벌이 각각 마땅하게 되었는데, 그 과한 것은 억제하고 그 미치지 않은 것은 끌어 올려서,
착한 이는 일으키고 악한 자는 징계하여 마침내 대동(大同)으로 돌아 왔습니다.
성인이 하늘을 이어 준칙을 세워 일세를 다스린 것도 이러한 것에 불과하였고 도통의 이름은 여기서 생기었습니다.
성인이 능히 대군(大君)으로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도덕이 능히 일세를 복종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요, 세력을 빌렸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이미 세상을 떠나면 또 다른 성인이 나와서 대신 천하에 군림하여,
수시로 변통하면서 백성으로 하여금 궁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소위 인심에 따르고 천리에 근본한다는 도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치 않는 것은 천지의 상경(常經)이요, 변통하는 것은 고금의 통의(通誼)입니다.
시대가 점차 내려오면서 풍토가 옛날과 같지 않고 성인이 드물게 나서 성군(聖君)으로써 성군을 이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대통(大統)이 정해지지 않아서 도리어 간웅이 이것을 엿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이것을 근심하여 바로 아들에게 전하는 법을 세웠는데, 아들에게 전한 뒤에는 도통이 반드시 임금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아래에 있는 성현(聖賢)들이 도와서 재결(裁決)하고, 보필(輔弼)하는 도를 이루어서 사도(斯道)의 전통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러므로 3대 이상은 임금이 반드시 성스럽지 않아도 천하가 치평된 것입니다.

시대가 더욱 내려가면서 풍기가 혼란하고 백성들의 거짓이 날로 더하여 가서 교화가 이루어지기 어려웠고,
임금은 이미 자기 수양의 덕이 없으며 또 현인을 좋아하는 성의가 결핍되어,
천하를 자기의 오락으로 삼고는 천하를 근시하지 않았으며, 사람을 덕으로써 쓰지 않고 세상을 도로써 다스리지 않았으니,
이래서 아래에 있는 성현은 스스로 조정에 설 수가 없어서 그 재능을 깊이 간직하여 팔지를 아니하였고,
보물을 쌓아 두고 일생을 그냥 마치게 되었습니다.
의(義)를 버리고 이(利)를 따르는 자들은 서로 배척하면서 다투어 나아가 상하가 제각기 이익만 취하니,
도학의 전통이 비로소 항간이 필부에게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도통이 군상(君相)에게 있지 않는 것은 참으로 천하의 불행입니다.
이 뒤로부터는 교화가 무너지고 풍속이 퇴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단(異端)이 횡행하고 기만하는 계책이 치열하여,
나날이 어두워지고 점점 고질이 깊어 삼강이 윤락되고, 구법(九法)이 괴멸되니,
도학의 전통이 항간에서도 끊어지게 되었는데, 천지의 암흑이 여기서 극도에 달했습니다.
간혹 임금이 재지(才智)로써 소강(小康)을 이루었으나, 대개는 공리설(功利說)에 빠져서 도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는데,
비유하면, 이것은 마치 어둡고 긴 밤에 반짝이는 불빛과 같을 뿐이니,
어찌 우주를 지탱하고 일월을 밝게 하여 도통을 전하는 책임을 맡겠습니까.

아, 도는 고원한 것이 아니요, 다만 일용의 사이에 있을 뿐인데,
일용의 사이와 동정(動靜)의 즈음에 사리를 정밀히 관찰하여 진실로 그 중(中)을 체득한다면 이것이 바로 도에 어긋나지 않는 방법입니다.
이것으로 덕을 이루는 것을 수기(修己)라 하고 교(敎)를 베푸는 것을 치인(治人)이라 하며, 수기·치인의 실상을 다하는 것을 전도(傳道)라 합니다.
그러므로 도통이 군상(君相)에게 있으면 도가 그 시대에 행해져서 혜택이 후세에 흐르고,
도통이 필부에게 있으면 도가 그 세상에 행해질 수 없고 다만 후학들에게 전하여 질 뿐인데,
만약 도학의 전통을 잃고 필부까지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천하는 어두워 그 좇을 바를 모르게 됩니다.
주공(周公)이 세상을 떠난 지 백세(百世)가 되어서도 잘 다스려지지 않고,
맹가(孟軻)가 돌아간 지 천 년이 되어서도 세상에 진유(眞儒)가 없었다는 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제 신은 삼가 선유(先儒)들의 말에 의하여 도통의 전함을 역력히 서술 하였습니다.
복희씨(伏羲氏)에서 시작하여 주자(朱子)에서 끝을 맺었는데, 주자 이후에는 또 확실한 전통이 없으니,
이것을 신은 길이 한탄 하는 바이며, 깊이 전하에게 총망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도학(道學)이 고원하여 행하기 어렵다고 하고,
또 옛날과 지금은 마땅히 해야할 일이 다르다는 것을 가지고 바꿀 수 없는 정론으로 삼고 있습니다.
대개 천지가 처음 열린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몇천 년이 되었는지 모르나,
천지의 혼륜(混淪)한 것과 광대한 형상은 그래도 옛 모습과 같고,
산천이 솟아 있고 흐르는 형상도 옛 모습과 같으며 초목과 금수의 형상도 옛 모습과 같고,
궁실(宮室)과 의복·음식·기용에 이르기까지도 성인의 제작에 의하여 그 생명을 길러 폐하지 못하면서,
오직 하늘의 질서에 있어서는 인심을 따르고, 천리에 근본하여 만고에 걸쳐서 변할 수 없는 것인데,
퇴패한 것을 편안히 여기고 마침내 복고(復古)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무슨 생각이겠습니까.
아, 그 역시 생각하지 않을 뿐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도에 뜻을 두어, 게으르게 하지 마시고,
멀리 요(堯)·순(舜)을 본받아 학(學)으로써 선을 밝히고 덕으로써 몸을 성실하게하여,
수기의 공부를 다하시고 치인의 교화를 베풀어서 물러서려는 생각에 흔들리지 마시며, 이해(利害)에 관한 말에 움직이지 마시며,
묵은 인습(因習)을 지키자는 말에 구애되지 마시고 반드시 사도(斯道)를 크게 밝고 크게 행하게 하셔서
도학의 전통을 이으신다면 만세토록 매우 다행할 것입니다.

 

< 주 >

252) 중국 고대의 임금. 처음으로 백성에게 고기잡이 사냥·목축 등을 가르치고, 8괘(八卦)와 문자(文字)를 만들었다고 한다.

253) 문자가 없었든 때 새끼로 매듭을 맺어 일을 표시하였든 일. 중국의 유사(有史)이전의 간이(簡易)한 정치를 말한다.

254) 갑(甲)은 십간(十干), 자(子)는 12지(十二支). 즉 간지(干支)의 총정이다.

255) 12율 가운데에 음성(陰聲)에 속하는 여섯 가지의 소리. 대려(大呂)·중려(仲呂)·임종(林鐘)·남려(南呂)·협종(夾鐘)·응종(應鐘).

256) 중국 고대(古代) 요(堯) 임금 때의 악인(惡人). 순(舜)임금 때에 숭산(崇山)으로 추방되었다.

257) 중국 고대(古代) 순(舜)임금 때에 백공(百工)의 일을 맡아 보았던 관리.

258) 중국 고대(古代)의 우(禹)임금의 아버지.

259) 중국 고대 요순시대의 나라 이름. 「竄三苗于三危」≪書舜典≫

260) 여덟 사람의 선량한 사람과 여덞 사람의 화합(和合)한 사람.
판원(八元)은 고실씨(高辛氏)의 재자(才子)·백분(伯奮)·중감(仲堪)·숙헌(叔獻)·계중(季仲)·백호(伯虎)·
중웅(仲熊)·숙표(叔豹)·계리(季狸)등이며,
팔개(八凱)는 고양씨(高陽氏)의 재자(才子)인 창서(蒼舒)·퇴고(鼓)·도연()·대림(大臨)·방강(尨降)·
정견(庭堅)·중용(仲容)·숙달(叔達)등이다.

261) 중국 전토(全土)를 아홉으로 나눈 명칭.
즉 기주(冀州)·연주(州)·청주(靑州)·서주(徐州)·형주(荊州)·양주(梁州)·예주(豫州)·양주(梁州)·옹주(雍州)이다.

262) 중국에 있는 아홉 개의 연못,
곧 대륙(大陸)·뇌하(雷夏)·맹제(孟諸)·하택(荷澤)·영택(榮澤)·대야(大野)·팽려(彭)·진택(震澤)·운몽(雲夢).

263) 옛날 중국에 구주(九州)의 명산 회남자(淮南子)에는
회계(會稽)·태산(泰山)·수산(首山)·태화(泰華)·기산(岐山)·태행(太行)·양장(羊腸)·맹문(孟門)의 아홉 산을 들었다.

264) 맹자에 "자막(子莫)은 집중(執中)하나 집중만 하고 권도(權道)가 없으니 이것은 역시 일편을 잡은 것과 같다"고 하였다.

265) 공자의 아버지로 추읍(鄒邑)의 대부(大夫)를 지냈으며 키가 십척(十尺)이고 무력(武力)이 출중하였다.
일찌기 시씨(施氏)에게 장가들었으나 딸만 아홉을 낳고 남자가 없었다.
뒤에 다시 안씨(顔氏)의 어린 딸 징재(徵在)에게 장가들어 이구산(尼丘山)에 빌어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 공자가 세살 때 숙량흘이 돌아갔다.

266) 춘추전국 시대의 노(魯)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문인(門人)·언어(言語)에 뛰어났음.

267) 여덟 가지의 악기 또는 그 소리.
금(金-鍾)·석(石-磬)·사(絲-絃)·죽(竹-管)·포(匏-笙)·토(土-壎)·혁(革-鼓)·목(木-枳).

268) 중국 고대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무왕(武王)의 아우. 이름은 단(旦). 시호는 원(元).
문왕과 무왕을 도와 주(紂)를 치고, 성왕(成王)을 도와 왕실의 기초를 세우고 제도와 예악(禮樂)을 발전시켜,
주(周)의 문화발전에 기여한 바 공로가 지대하였다.

269) 주(周)의 공후(公侯). 이름은 석(奭). 시호는 강(康). 문왕(文王)의 서자(庶子). 무왕이 주(紂)를 멸하고 북연(北燕)에 봉(封)함.
성왕(成王) 때 주공(周公)과 함께 삼공(三公)이 되어 섬서성(陝西省) 이서(以西)를 다스림·선정(善政)을 베풀었다고 한다.

270) 동맹의 뜻. 전국시대(戰國時代)에 한(韓)·위(魏)·조(趙)·연(燕)·초(楚)·제(齊) 여섯 나라가 동맹하여
진(秦)나라에 대항하자는 소진(蘇秦)의 계책을 합종(合從)이라고 하고,
여섯 나라가 모두 진(秦)나라에 복종할 것을 주장한 장의(張儀)의 계책을 연횡(連衡)이라고 한다.

271) 북송(北宋)의 대유학자(1017∼1073). 자(字)는 무숙(茂叔). 호는 염계(廉溪). 시호는 원공(元公).
정이천 정명도의 스승이며, 송학(宋學)의 비조(鼻祖)가 됨. 저서로는 「통서」(通書)「태극도설」(太極圖說) 등이 있다.

272) 성리학서(性理學書). 무극(無極)·태극(太極)에서부터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
곧 우주 및 인류 만물의 생성(生成)의 원리와 발전과정을 도해(圖解)하고 설명을 달았다.

273) 천지가 개벽되기 이전의 혼돈(混沌)한 상태. 우주 만물 구성의 근원이 되는 본체(本體).

274) 북송(北宋)의 유학자(1020∼1077). 자(字)는 자후(子厚). 이름은 재(載). 시호는 명(明).
그의 학문은 역(易)과 중용(中庸)에 근거를 두어 공맹(孔孟)의 학을 최초로 삼음.
저서에는 『동명』(東銘).·『서명』(西銘)·『정몽』(正蒙)·『역설』(易說) 등이 있다.

275) 송대(宋代)의 유학자. 이름은 옹(雍), 자(字)는 요부(堯夫).
주렴계가 송학(宋學)의 이기론(理紀論)을 세운데 반하여, 그는 같은 때에 상수론(象數論)을 제창하였다.

276) 남송(南宋)의 유학자(1161∼1237) 호는 목당(波堂). 자(字)는 계통(季通). 저서로는 경해무집(經解文集) 40권이 있다.

 

(이 글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율곡전서'를 인용하였습니다)

 

 


제4편. 위 정(爲政)

 

신이 살피건대, 국가〔國〕란 것은 가정〔家〕을 미룬 것인데, 가정을 바르게 하여야만 국가를 바르게 할 수 있으므로,
위정(爲政)을 정가(正家) 다음에 두었습니다.

 

제1장. 위정 총론(爲政總論)

신이 살피건대, 정치를 하는 데는 근본이 있고, 규모가 있으며, 절목(節目)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제 이것을 합하여 한 장(章)을 만들어 첫머리에다 두었습니다.

 

◆ 정치하는 근본에 대한 말씀

오직 천지는 만물의 부모요, 사람은 만물 가운데서 신령스러운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총명한 이가 원후(元后:임금)가 되고, 원후는 백성의 부모가 된다. (주서(周書) 태서(泰誓))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단(亶)은 성실하여 망녕됨이 없음을 말한 것이니, 총명이 천성에서 나온 듯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크도다, 건원(乾元:하늘)이여, 만물은 건원이 바탕이 되어 시작한다.
지극하도다, 곤원(坤元:땅)이여, 만물은 곤원이 바탕이 되어 생성된다. 그러므로 천지는 만물의 부모이다.
만물이 생겨날 때 오직 사람은 그 뛰어남을 얻어 나왔기 때문에 신령스러워 사단(四端)이 갖추어지고,
만선(萬善)이 구비되어 지각(知覺)이 유독 다른 물건과는 다른데,
그 중에도 특히 성인은 가장 준수하고 가장 신령스러운 사람으로서 천성이 총명하여, 힘쓰지 않아도 그 앎이 남보다 앞서고,
그 깨달음이 남조다 앞서서 다른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난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하의 큰 임금이 되어, 천하의 피(疲)·융()·잔(殘)· 질(疾)은 그 삶을 얻고,
환(鰥)·과(寡)·고(孤)·독(獨)은 보호되어서 만백성이 하나도 그 적소(適所)를 얻지 못한 이가 없는 것이니 임금은 또 백성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대저 천지가 만물을 낳음에 유독 사람에게 후하게 하고, 천지가 사람을 낳음에 유독 성인에게 후하게 하는데,
성인에게 후하게 하는 까닭은 역시 성인이 백성들의 군장(君長)이 되어, 천지가 백성들의 부모되는 마음과 같이 해달라고 하기 위한 것이다.
하늘이 백성을 위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임금의 책임을 맡은 이가 백성들의 부모된 그 의의(意義)를 몰라서야 되겠는가." 하였습니다.

○ 대학(大學)에 이르기를, "시경(詩經)에 '도를 즐기는 군자만이 백성들의 부모로다.' 하였는데,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백성들의 싫어하는 바를 싫어하는 바를 가지고 백성들의 부모라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천지는 만물의 부모요, 임금은 백성들의 부모라는 이 말은 매우 적절합니다.
장자(張子: 장횡거(張橫渠)) 서명(西銘)에는 천지를 부모로 삼고, 대군(大君)을 종자(宗子)로 삼았는데,
그 설이 더욱 소상하게 구비되었기 때문에 삼가 다음에 기록합니다.

서명(西銘)에 이르기를, "건(乾)은 부(父)요, 곤(坤)은 모(母)인데, 내 이 조그마한 몸이 혼연(混然)히 그 가운데 처하였다.
(주자가 말하기를, "조그마한 몸으로 천지에 혼합해서 사이가 없어 그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천지의 색(塞:충만한 기운)은 내 몸이 되었고, 천지의 수((帥): 으뜸되는 것을 말함)는 그 성(性)이 되었다.
(주자는 말하기를, "건(乾)은 양(陽)이요, 곤(坤)은 음(陰)이니, 이것은 천지의 기운이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인데,
인물(人物)은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몸이 되었다.
그리고 또 건의 건(乾)과 곤의 순(順)은 이것이 천지의 뜻인데, 기(氣)의 원수(元帥)로서 인물은 이것을 얻어 성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하여 깊이 관찰해 보면 건(乾)을 부로 하고 곤(坤)을 모로 하여

내가 혼연히 그 가운데 처해 있는 실상을 알 수가 있다." 하였습니다.)
백성은 나의 동포요, 만물은 나와 더불어 있으며, 대군(大君)은 내 부모의 종자(宗子)요, 대산(大臣)은 종자의 가상(家相)이다.
나이 많은 이를 높이는 것은 자기의 어른을 높이는 것이요, 고독하고 유약한 이를 자애하는 것은 자기의 어린이를 자애하는 것이다.
성인은 천지의 덕에 합한 이요, 현인은 무리 가운데서 뛰어난 사람이며,
천하의 피·융·잔·질이나 환·과·고·독은 다 내 형제로서, 유리되어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다.
어느 때나 천명을 잘 보존하는 것은 아들이 부모에게 조심하는 것이요, 천명을 즐거워하고 근심하지 않는 것은 효도에 순일한 자이다.
그리고 인(仁)을 어기는 자는 덕을 거스리는 자라 하고, 인을 해치는 자는 적(賊)이라고 한다.
악(惡)을 행하는 자는 부재(不才)한 자식이요, 사람의 도리를 행하는 이는 어진 아들이다.
천지 조화를 아는 이는 부모의 사업을 잘 기술〔術〕하는 이요, 신묘한 이치를 궁득(窮得)한 이는 부모의 뜻을 잘 계승하는 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화(化)하는 것은 곧 기(氣)인데 그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事)라 하고, 신(神)한 것은

곧 이(理)인데 그 형체를 엿볼 수 없는 까닭에 지(志)라고 했다." 하였습니다.)
사람이 잘 안 보이는 곳〔屋漏〕에서 부끄럽지 않은 것은 부모에게 누덕이 안되는 것이요,
심성(心性)을 존양(存養)하는 것은 효도에 게으르지 않은 것이다.
맛 좋은 술을 미워하는 것은 우(禹)의 고양(顧養)이요, 영재(英才)를 기르는 것은 영봉인(穎封人:영고숙(穎考叔)을 말함)의 석류(錫類)174)이다.
괴로움을 무릅쓰고 부모를 즐겁게 하는 것은 순(舜)의 공덕이요, 도망하지 아니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신생(申生)175)의 공손함이다.
부모에게서 받은 몸을 그대로 보존하여 돌아간 것은 증삼(曾參)이요, 용감하게 죽어서 부모의 영을 순종한 것은 백기(伯奇)176)이다.
부귀와 복택은 내 삶을 두터이 해 주려고 하는 것이요, 빈천과 우척(憂戚)은 나의 사람됨을 옥같이 되게 해 주려는 것이다.
생존하면 내가 순하게 섬기는 것이요, 죽으면 내가 가서 편안히 하는〔寧:시경(詩經) 귀령부모(歸寧父母)란 뜻〕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정완(訂頑), 즉 서명(西銘)임 일편의 뜻이 극히 완비되어 있으니 이것은 곧 인(仁)의 체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서명은 학자들의 인(仁)을 위한 공부요, 오로지 임금이 하는 일만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이 장(章)에 기재한 것은 임금이 하늘을 아버지로 섬기고, 땅을 어머니로 섬기며, 백성을 형제로 삼고,
만물을 동류로 삼아서, 인심(仁心)을 충만하게 하여야만 그 직책을 극진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편은 임금에게 더욱 절실한 것입니다.
대개 천지는 만물을 낳아도 작위(作爲)함이 없으며, 백성과 만물은 천명을 받았으나 자립할 수 없으니,
위로는 천공(天工: 하늘이 백성을 다스리는 활동)을 대신하고 아래로는 만물을 다스려서, 천지로 하여금 그 자리를 얻게 하고,
만물로 하여금 그 적소를 얻게 하는 것이 임금에게 있지 않겠습니까.

우(禹)가 말하기를, "임금이 임금의 도리를 어렵게〔艱〕여기며,
신하가 신하의 도리를 어렵게 여겨야만 정사(政事)가 겨우〔乃〕 다스려져서 백성이 덕에 민첩하다." 하였습니다.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하동)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간(艱)은 어렵다는 뜻이요, 내(乃)는 어렵게 여기는 말이며, 민(敏)은 빠르다는 말이다.
우는 말하기를, '임금은 그 임금된 도리를 감히 쉽게 여기지 않고, 신하는 그 신하된 직분을 감히 쉽게 여기지 아니하며,
밤낮으로 조심하고 두려워하되 당연히 각각 할 것을 극진히 힘써 해야만, 그 정사가 능히 잘 다스려져서 사특(邪慝)한 것이 없고,
백성들이 또 자연히 보고 느껴서 선에 속히 교화되지 않을 수가 없다.'하였다." 하였습니다.

순(舜)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진실로 이와 같이 하면 아름다운〔嘉〕말이 숨겨져 묻히지 않을 것이며,
초야에 묻혀 있는 어진 이가 없어서 만방(萬邦)이 다 편안할 것이니, 뭇 사람에게 상고하여 자기의 소견을 버리고 타인을 좇으며,
무고(無告)한 이를 학대하지 않고, 곤궁한 이를 저버리지 아니한 것은 오직 요(堯)가 능히 하였다." 하였습니다.

채씨는 말하기를, "가(嘉)는 선이요, 유(攸)는 바〔所〕라는 뜻이다.
위의 말은 순이 우의 말을 그러하다고 하였고,
이어서 진실로 이와같이 하면 널리 중론을 청취하고 뭇 어진이들을 다 맞이하여 천하의 백성들이 다 그 혜택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사사로움을 잊고 이(理)에 순하며, 백성을 사랑하고 선비를 좋아하게 되지 않으면 여기에 미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오직 요만이 능히 하였다고 한 것은 대개 순이 겸사를 하여 자기는 감히 꼭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한 것이니,
순이 임금의 도리를 어렵게 여기는 것을 여기에서도 역시 볼 수 있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자기를 버리고 남을 좇는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소견이라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니 아무리 버린다 해도
아마 자기를 지키는 것은 견고하고 남을 좇는 것은 경시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인정은 보통 하지 못하는 것을 하라고 책하면 그래도 힘써 좇을 수 있지마는,
만일 잘하고 있는 이에게 또 그렇게 하라고 책하면 반드시 자만심이 생겨서 도리어 책하는 이를 잘 알지 못한다고 원망하게 됩니다.
대개 능히 어렵게 여기는 도리는 아름다운 말이 숨어서 묻히지 않게 하고, 자기를 버리고 남의 중론을 좇는 데 있으니,
순이 성인이 되어 나라를 잘 다스린 것은 실로 이 때문입니다.
우가 순의 잘한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로되 오히려 하는 일이 여유(餘裕)있다고 아니하고 거듭 경계하니,
순도 역시 자기가 잘하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감히 당하지 못한다 하였으니,
이것은 우(虞)나라 조정의 군신이 서로 그 도를 극진히 한 것이요, 성인으로서 더욱더 성인이 된 것입니다.

정공(定公)이 묻기를, "한 마디로 나라가 흥할 수 있다고 하니, 그런 말이 있습니까." 하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말을 그렇게 기필〔幾〕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임금노릇 하기도 어렵고 신하노릇 하기도 쉽지 않다' 하니,
만일 임금노릇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면 한 마디로 나라를 잘되게 한다는 말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기(幾)는 기필한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또 묻기를, "한 마디로 나라를 망하게 한다고 하니 그런 말도 있습니까." 하니,
공자는 대답하기를, "말을 그렇게 기필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는 임금노릇 하는 데에 즐거움이 없고, 다만 내가 말을 하면 내 말을 어기지 못하는 것이 즐거움이다 하니,
만일에 좋은 말을 어기는 이가 없다면 좋지 않겠습니까마는, 그렇지 않고 좋지 않은 말을 어기는 이가 없다면
한 마디로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말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사씨(謝氏)는 말하기를, "임금된 도리의 어려움을 알면 반드시 공경하고 조심할 것이며,
오직 내 말을 어기지 말라 하면 아첨하는 간신들이 모일 것이니, 나라가 갑자기 흥하고 망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흥하고 망하는 근원은 여기서 나누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기미를 아는 군자가 아니면 어찌 이런 것을 알겠는가." 하였습니다.

중훼(仲 : 탕(湯)임금의 신하 이름)가 고(誥)를 지어 아뢰기를,
"덕이 날로 새로우면 만방의 민심이 돌아오고, 자만(自滿)하는 뜻이 있으면 구족(九族)이 떠날 것이니,
임금은 힘써 대덕(大德)을 밝히어 백성에게 중도(中道)를 세우소서.
의(義)로써 일을 제단(制斷)하고, 예(禮)로써 마음을 절제해야, 후손에 끼치는 덕이 넉넉할 것입니다.
듣건대, ‘스스로 스승을 얻는 이는 임금이 되고, 남이 자기만 못하다고 하는 이는 망한다.’ 하였는데,
묻기를 좋아하면 넉넉하고, 스스로 제 마음대로 하면 작아질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중훼지고(仲之誥)). ○이 글은 중훼(仲)가 성탕(成湯)에게 고한 말임.)

채씨는 말하기를, “중(中)이라는 것은 천하 사람의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임금이 이 중을 세우지 아니하면 백성들이 스스로 중을 세울 수 없다.
예(禮)와 의(義)라는 것은 중을 세우는 것인데, 의(義)는 마음의 재제(裁制)요, 예(禮)는 이(理)의 절문(節文)이다.
의로써 일을 결단하면 일이 마땅해지고, 예로써 마음을 절제하면 마음이 바르게 되어 안팎의 덕이 합하여 중도(中道)가 서게 된다.
이와 같이 하면 당세의 백성에게만 중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후세의 자손에게도 끼치어져서 작연(綽然)히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도는 반드시 배워야만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또 고인의 말을 들어서 스승을 높이고 묻기를 좋아하면,
덕이 높아지고 업(業)이 넓어지며, 스스로 어질다 하여 제 마음대로 하면 이와 반대가 된다고 한 것이다.
스스로 스승을 얻는다는 것은 진실로 자기가 부족하고 남이 여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

허심탄회하게 듣고 순종하여 거슬림이 없는 것을 말한다.
맹자는 말하기를, ‘탕(湯)은 이윤(伊尹)한테서 배운 뒤에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아니하고 왕자가 되었던 것이다.’ 하였으니,
이것은 탕이 스스로 얻은 것이다.

그런데 후세에는 예와 같지 않았는데,
특히 세도(世道)가 퇴락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도(師道)도 밝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중훼(仲)의 의논은 그 지극히 중요한 것을 요약하여, ‘스스로 스승을 얻어야 한다.’는 말 한 마디에 귀결시켰으니,
이것은 실로 제왕의 대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기자(箕子)가 말하기를, “임금〔皇〕은 극(極)을 세워야〔建〕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홍범(洪範))

채씨는 말하기를, “황(皇)은 임금이요, 건(建)은 세움이요, 극(極)은 북극의 극과 같으니, 지극하다는 뜻이어서 표준이 된다는 말인데,
중립(中立)하여 사방에서 취하여 바르게 하는 것이다.
임금은 마땅히 지극한 인륜을 다해야 할 것이니, 부자(父子)간에는 극진히 친(親)하여 천하의 부자(父子)가 이에서 그 준칙을 취하고,
부부간에는 극진히 분별하여 천하의 부부(夫婦)가 이에서 그 준칙을 취하게 할 것이다.
이리하여 한 가지 사물(事物)을 접촉하고, 한 가지 언동(言動)을 발할 때도 그 의리의 당연한 것을 극진히 하여
조금이라도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차이가 없다면 극이 서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정치〔政〕를 하는데 덕으로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北極星)이 제 자리에 있고, 뭇 별들이 그것을 향(共)하여 도는 것과 같다.”하였습니다.

(공(共)이란 글자는 역시 공拱자와 같음.○「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정(政)이라고 하는 것은 바른 것이니, 사람의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이요,
덕이라는 것은 얻는다는 말인데, 도를 행하여 마음에 얻는 것이 있는 것이요,
북신(北辰)은 북극성을 말하는 것인데 하늘의 지도리〔樞〕요,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요,
공(共)이라는 것은 향한다는 뜻이니, 뭇 별들이 사면으로 둘러싸서 모두 북극성을 향한다는 말이다.
정치를 하는데 덕으로 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교화되어 천하 사람들이 귀복(歸服)하는 그 모습이 마치 이와 같다.”하였습니다.

○ 어떤 이가 묻기를, "위정이덕(爲政以德)이란 말이 덕으로서 정치를 한다는 말입니까.”하니,
주자는> 말하기를, "덕을 가지고 가서 정치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以)라는 글자에 구애될 필요가 없고, 다만 정치를 하는데 덕이 있다는 말과 비슷하다.”하였습니다.

○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정치를 하는데 덕으로써 하면, 움직이지 않아도 화하고 말하지 않아도 믿으며,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어도 이루어져서, <위정자>의>지키는 것이 지극히 간략해도 능히 번거로운 것을 막아내고,
처하는 것이 지극히 고요하여도 움직이는 것을 제어하며, 힘쓰는 것이 지극히 적어도 대중을 잘 복종시킨다.”하였습니다.

○ 계강자(季康子)177)가 정치에 대하여 공자에게 물으니 공자는 대답하기를,
"정치라는 것은 바르게 하는 것이데, 그대가 바르게 거느리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아니하겠는가.”하였으며,
또 계강자가 도둑을 근심하여 공자에게 물으니,
공자는 대답하기를, "진실로 그대에게 욕심이 없다면, (탐욕이라는 말입니다.) 비록 그들에게 상을 주어 도둑질을 하라 하더라도
그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순자(荀子) (순황荀況이 지었습니다.)에 말하기를, "몸을 닦는다는 말은 들었으나 나라를 닦는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였다.
임금은 소반〔槃〕과 같은 것인데, 소반이 둥글면 물〔水〕이 둥글 것이며, 임금은 또 사발과 같은 것인데, 사발이 모나면 물이 모날 것이다.
임금은 또 근원인데, 근원이 맑으면 흐르는 것이 맑고, 근원이 흐리면 흐르는 것이 탁하다." 하였습니다.

○ 동씨(董氏)는 말하기를, "임금이 된 이는 마음을 바르게 하여 조정을 바루고, 조정을 바르게 하여 백관을 바루며,
백관을 바르게 하여 만민을 바루고, 만민을 바르게 하여 사방을 바룰 것이니,
사방이 바르면 원근(遠近)이 다 한결같이 바르지 아니한 것이 없어서 사기(邪氣)가 그 틈에 침범하지(범한다는 것입니다.)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음양이 화(和)하고 풍우가 때에 알맞으며 만물이 화(和)하고 만민이 고르게 불어난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천하의 일은 변화가 무궁하여 그 단서(端緖)가 한이 없으되 하나도 임금의 마음에 근본하지 아니한 것이 없는데
이것은 자연적인 이치인 것이다.
그러므로 임금의 마음이 바르면 천하의 일은 하나도 바르지 아니한 것이 없고, 임금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천하의 일이 하나도 바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임금의 조그마한 한 몸으로 깊은 궁중에 거한다고 그 마음의 사(邪)와 정(正)을 엿볼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표적이 밖에 드러나는 것이 항상 열 눈〔十目〕으로 보는 것 같으며 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 같아서 숨길 수 없다.
이 때문에 순(舜)은 오직 정일(精一)하라고 경계하였고, 공자는 과도한 욕망을 억제하고 예절을 좇으라고 훈계하였으니,
다 내 이 마음을 바르게 하여 천하의 모든 일에 근본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이 마음이 이미 바르게 되면 보고 듣는 것이 총명하여 주선하는 것이 예(禮)와 맞아서, 몸이 바르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소행에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이 없어서 중(中)을 잡을 것이며,
비록 천하가 광대하다 하여도 한 사람이라도 나의 인(仁)에 귀화(歸化)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邪)와 정(正)의 표적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내 집사람에게 가장 먼저 드러나고,
다음에는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며, 그 다음에는 조정에까지 달하여 천하에 미치게 되는데,
만약 궁중 안이 단정촵장엄하고 엄숙촵정제하여 왕후가 관저(關雎)의 덕이 있고,
후궁들에는 색(色)을 즐기는 일이 없이 질서가 정연하여, 사은(私恩)을 믿어서 전상(典常)을 문란하게 하거나,
뇌물을 바쳐 청탁을 하는 이가 한 사람도 없으면 집안이 바른 것이다.

임금이 퇴조(退朝)한 뒤에, 조용히 쉴 때에 좌우에 모시고 앉은 귀척(貴戚)촵근신(近臣)과,
노복(奴僕)촵환자(宦者)들이 각각 그 직분을 착실히 하여, 한 사람이라도 내외를 통하여 간사함을 부리거나,
위복(威福)을 훔쳐서 권세를 부리거나, 총애(寵愛)를 빙자하여 조정의 정사를 문란하게 하지 않으면, 이것은 좌우가 바른 것이다.
안으로 금성(禁省:궁내)으로부터 밖으로 조정에 이르기까지 이 양자 사이에 통연히 조금이라도 사사(私邪)로운 것이 없어야만
호령을 발하는데 듣는 이가 모두 의심하지 아니할 것이며, 어진 이를 발탁하고 간사한 자를 물리치는데 뭇 사람들이 다 열복(悅服)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강(紀綱)이 진작되어 침요(侵撓)되는 환란이 없고, 정사가 닦아져서 아부하는 폐단이 없을 것이니,
이것은 조정촵백관과 육군(六軍)촵만민이 다 감히 바르지 아니할 수 없는 소이(所以)로서, 치도(治道)는 여기에서 종결되는 것이다.

만약 마음이 조금이라도 바르지 아니하면 위에 말한 이 여러가지가 진실로 그 바른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니,
이 여러가지 중에 하나라도 바르지 못한 것이 있는데 내가 마음이 바르다고 한다면,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임금이 덕을 닦는 것은 정치의 근본이니,
먼저 임금의 직분이 백성들의 부모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안 뒤에 중(中)을 세우고 극(極)을 세워서 표준을 삼게 되면,
그 효과가 마치 뭇 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순과 우촵공자촵중훼(仲)의 설은 중을 세우고 극을 세우는 요령입니다. 그러므로 모두 여기에 실었습니다.
아, 부모가 자식을 자애하는 이는 많지마는, 임금이 백성에게 인(仁)으로 행하는 이는 적은데,
그것이 천지가 부여한 직책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심한 것입니다.

 

◆ 다음은 위정(爲政)에 대한 말씀

○ 공자는 말하기를, "천승(千乘)의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매사에 조심하여 신용있게〔敬事而信〕하며,
재용(財用)을 절약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백성을 부리되 때를 택해서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도(道)는 다스린다는 뜻이요, 경사이신(敬事而信)이라는 것은 그 일을 조심하여 백성들에게 신용있게 한다는 것이며,
시(時)는 농한기(農閑期)를 말한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이 말은 지극히 얕은 말이나 그 당시에는 제후가 정말 여기에 능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성인의 말은 지극히 비근하지만 상하의 모든 이치가 다 통한다.
이 세 가지 말을 만약 그 극진한 데까지 미루어보면 요(堯)촵순(舜)의 정치도 역시 이 말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보통 사람의 말 같으면 쉬우면 단지 천근(淺近)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 양씨(楊氏)는 말하기를, "위에 있는 사람이 불경(不敬)하면 아래에 있는 사람이 태만하고,
위에 있는 사람이 신용이 없으면 아래에 있는 사람이 의심을 한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 태만하고 의심을 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일을 조심히 해나가고 신용있게 한다는 것은
위정자가 몸소 솔선수범한다는 것이다.
사치스럽게 쓰면 재물이 손상되고, 재물이 손상하게 되면 반드시 백성을 해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백성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재용(財用)을 절약해야 한다.
그리고 백성을 농한기에 부역(賦役)시키지 아니하면 농사짓는 이들이 농사에 전력하지 못할 것이니,
비록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백성들은 그 은택을 입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특히 위정자의 그 마음 가짐을 논하였을 뿐이며, 정사하는 데는 언급하지 아니한 것이니,
진실로 이 마음이 없으면 비록 정사를 하더라도 정치가 제대로 행해지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대개 여기에 말한 이 여러가지는 또 다 공경을 주(主)로 삼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가 위(衛)나라에 가실 때 염유(有)가 수레를 몰〔僕〕고 갔는데, 공자는 말하기를, "백성이 많구나〔庶〕."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복(僕)은 수레를 모는 것이요, 서(庶)는 무리가 많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염유가 말하기를, "이미 백성이 많을 때는 무엇을 더 힘써야 합니까." 하니, 공자는, "백성을 부유하게 해 주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이 많은데 부유하지 아니함은 백성들의 삶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까닭이니,
정전법(井田法)178)을 제정하고 부세를 적게 하여 백성들을 부유하게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이미 부유하면 또 무엇을 더 힘써야 합니까." 하니, 공자는, "가르칠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이 부유하더라도 가르치지 아니하면 금수(禽獸)에 가까와지므로,
반드시 학교를 세우고 예의를 밝혀서 백성을 가르칠 것이다.”하였습니다.

○ 호씨(胡氏)는 말하기를,“하늘이 백성을 낳으면서 사목(司牧:임금)을 세워서 삼사(三事:서(庶)와 부(富)와 교(敎)를 말함)로써 책임을 맡겼다.
그러나 3대 이후로는 능히 이 직분을 행한 이가 백에 하나 둘도 없었다.
한(漢)나라의 문제(文帝)촵명제(明帝), 당(唐)나라의 태종(太宗)은 또한 백성을 많게 하고 부유하게 했다고 하겠으나
서경(西京:여기서는 서경에 도읍을 두었던 문제를 말함)의 가르침은 들은 바가 없었다.
명제는 사부(師傅)를 존중하고 옹(雍:태학을 말함)에 가서 삼로(三老)에게 배례하였고,
그 종척(宗戚)의 자제(子弟)들도 모두 학업을 받았으며, 당 태종은 명유(明儒)들을 크게 불러서 생원(生員)의 수를 많게 하여
그 가르침이 또한 지극하나 그 가르치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
3대의 가르침은 천자와 공경(公卿)이 몸소 위에서 실행하여 그 언행과 정사가 다 사법(師法)이 될 만하였다.
그런데 저 두 임금이야 어찌 그렇게 하였겠는가.”하였습니다.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서 물으니, 공자는 말하기를,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고, 병력을 충족시키면 백성들이 신임할 것이다.”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창고가 가득 차고 무력이 완비하여야만 교화가 행해져서
백성들이 나를 신임하여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자공이 말하기를, “부득이 하여 버리게 된다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하니
공자는 “병력을 버릴 것이다.”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먹을 것이 족하고 신임이 흡족하면 병력은 없어도 지키는 것이 견고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자공이 말하기를, “부득이하여 버린다면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하니
공자는, “먹을 것을 버릴 것이다. 옛날부터 죽음이란 다 있는 것이지만 백성들의 신임을 잃는다면 서지를 못할 것이다.”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죽는 것은 사람이 반드시 면하지 못하는 것이지마는, 신임이 없으면 비록 산다 하더라도 자립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죽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차라리 죽을지언정 백성들에게 신임을 잃지 아니하여야만
백성도 역시 죽게 되더라도 내게 신임을 잃지 않게 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공문(孔門)의 제자가 묻기를 철저히 하였다.
이 같은 장(章)은 자공이 아니면 능히 묻지 못했을 것이요, 또 성인이 아니면 이렇게 대답할 수도 없다.”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인정으로 말하면 병력과 식량이 족해야만 백성들이 나를 신임할 것이요,
덕으로써 말한다면 신임은 본래 사람마다 고유(固有)한 것이니, 병력과 식량이 이에 앞설 수 없다.
이러므로 위정자는 마땅히 몸소 신임으로써 그 백성을 통솔하여 죽음으로써 지킬 것이요,
위급하다 해서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하였습니다. (지킨다는 것은 신임을 지키는 것이요, 버린다는 것은 신임을 버리는 것입니다.)

 

◆ 다음은 위정(爲政)의 절목(節目)에 대해 정치의 근본을 미루어 말함

○ 공자는 말하기를, “대개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아홉 가지 상도〔經〕가 있는데,
이것은 몸을 닦는 것〔修身〕, 현자를 존경하는 것〔尊賢〕, 친족을 친애하는 것〔親親〕, 대신을 공경하는 것〔敬大臣〕,
군신을 체찰하는 것〔體臣〕, 서민을 사랑하는 것〔子庶民〕, 백공을 오게 하는 것〔來百工〕,
원방 사람들에게 관유하는 것〔柔遠人〕, 제후들을 포용하는 것〔懷諸候〕등이다.”하였습니다.(「중용」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경(經)은 떳떳한 도라는 뜻이요, 체(體)는 그 처지에 처하여 그 마음을 살피는 것이요,
자(子)는 부모가 그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백성을 사랑한다는 뜻이요,
유원인(柔遠人)은 손님과 나그네를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손님과 나그네란 사신같은 이나 또는 상인으로서 먼 곳에서 온 사람같은 이를 말합니다.)
이 대목은 9경(經)의 조목을 열거한 것이다.”하였습니다.

○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천하 국가의 근본이 몸에 있기 때문에 수신이 9경의 근본이 된다.
그러나 반드시 스승과 친하고 벗을 취한 뒤라야 수신의 도가 나아가므로 어진 이를 존경하는 것이 이에 다음하였고,
도가 행해짐은 또 가정보다 먼저 되는 것이 없으므로 친족을 친애하는 것이 그 다음이요,
가정으로 말미암아 조정에 미치는 까닭에 대신을 공경하고 군신을 체찰하는 것이 그 다음이며,
조정으로 말미암아 방국(邦國)에 미치는 까닭에 서민을 자애하고 백공을 오게하는 것이 그 다음이고,
방국으로 말미암아 천하에 미치는 까닭에 원방의 사람에게 관유하고 제후를 포용하는 것이 그 다음이 되니,
이것은 9경의 차례이다.
군신을 보기를 내 사체(四體)와 같이 하고, 백성을 보기를 나의 자식과 같이 하는 것은 곧 신하와 백성을 보는 차별인 것이다.”하였습니다.

몸을 닦으면 도가 서게 되고, 어진 이를 존경하면 의혹이 없게 되며,
친족을 친애하면 제부(諸父)와 형제들이 원망하지 않게 되고, 대신을 공경하면 현혹되지 않게 되며,
군신을 체찰하면 그들이 예(禮)를 무겁게 보답하게 되고, 서민을 자식처럼 사랑하면 백성들이 서로 권면(勸勉)하게 되며,
백공을 오게 하면 재용(財用)이 풍족하게 되고, 원방의 사람들에게 관유(寬柔)하게 하면 사방이 모두 귀순해 오게 되며,
제후를 포용하면 천하가 모두 두려워 복종하게 된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9경의 효과를 말한 것이다.
도가 서게 된다는 것은 도가 몸에 이루어져서 백성들의 표준이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니
이른바, ‘임금이 그 극(極)을 세운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의혹이 없게 된다는 것은 이치에 의심이 없게 된다는 말이요, 현혹되지 않게 된다는 것은 일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신을 공경하면 전적으로 신임하기 때문에 소인들이 이간하지 못하므로 일을 당해도 현혹되지 아니한다.
백공을 오게 하면 서로 공을 통하고 일을 바꾸어서 농사와 상사가 서로 조력하기 때문에 재용이 풍족하게 되고,
원방 사람들에게 관유하게 하면 천하의 나그네가 다 기뻐하여 그 나라에 다니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방이 모두 귀순해 오게 되며,
제후를 포용하면 그 덕이 널리 베풀어져서 그 위엄이 널리 뻗치기 때문에 천하가 모두 두려워 복종하게 된다고 한 것이다.”하였습니다.

마음을 전일하게〔薺明〕하고, 정숙하게〔盛服〕하여 예(禮)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몸을 닦는 것이요,
참소를 버리고 여색을 멀리 하며, 재화를 천하게 여기고 덕을 귀중히 여기는 것은 어진 이를 권장(勸奬)하는 것이요,
그 지위를 높여주고 녹(祿)을 무겁게 해주며, 좋아하고 미워함을 함께 하는 것은 친족끼리 서로 친애하는 것을 권장하는 일이며,
관속(官屬)을 많이 두어서 족히 부리게 하는 것〔官盛任使〕은 대신을 권장하는 것이요,
마음껏 신임하고 봉록(俸祿)을 무겁게 해주는 것〔忠信重祿〕은 관리를 권장하는 것이며,
농한기에 부리고 세금을 가벼이 하는 것은 백성들을 권장하는 것이요,
날로 살피고 달로 시험하여 일의 성과에 맞게〔稱事〕 급여〔旣〕하는 것은 백공을 권장하는 것이며,
가는 이를 환송하고 오는 이를 환영하며, 착한 이를 가상히 여기고 부족한 이를 긍휼(矜恤)하는 것은 원방 사람들에게 관유히 하는 것이요,
끊어진 세계(世系)를 이어 주고 폐한 나라를 일으켜 주며, 난(亂)을 다스려주고 위급한 것을 구원해 주며,
조빙(朝聘)을 정기적으로 하고, 보내주는 것을 두터이 하고, 가져오는 것을 가벼이 하는 것은 제후를 포용하는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9경의 일을 말한 것이다.
관성임사(官盛任使)라는 것은 관속을 많이 두고 성하게 하여 족히 부리게 하는 것을 말한 것인데,
대개 대신이 자신이 사소한 일을 친히 할 수 없기 때문에 이와같이 우대하는 것이다.
충신중록(忠信重祿)이라는 것은 대우하기를 성의껏 하고 봉록을 후하게 해주는 것을 말한 것인데,
대개 이것은 몸소 체찰하여 웃사람에게 힘입는 것이 이같은 것을 아는 것이다.
기(旣)자는 희()자로 읽으니 희름()은 초식(稍食) (관리의 봉급. 초(稍)자는 점점 나온다는 뜻입니다.)의 뜻이다.
칭사(稱事)는 주례(周禮)의 고인직(人職)에, ‘그 활을 만드는 성과를 살펴서 그 급여를 올리고 내린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가는 이를 환송하고 오는 이를 환영한다는 것은 갈 때는 절(節)을 주어서 보내고, 오는 이는 대우를 잘하여 맞이한다는 것이다.
조(朝)는 제후가 와서 천자를 보는 것을 이름이요, 빙(聘)은 제후가 대부를 시켜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을 말한 것이니,
예기(禮記)의 왕제(王制)편에, ‘해마다 한번씩 소빙(小聘)을 하고 3년만에 한 번씩 대빙(大聘)을 하며, 5년마다 한 번씩 조(朝)를 한다.’ 하였다.
보내주는 데는 두터이 하고 오는 것은 가벼이 한다는 것은 선물을 증여하는 것은 두터이 하고,
공물을 받는 것은 가볍게 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대개 천하의 국사를 다스리는 데는 아홉 가지 상도가 있는데, 이것을 행하게 하는 것은 하나〔一〕다.

주자는 말하기를, “하나라는 것은 성(誠)이니 아홉 가운데 한 가지라도 성실치 아니하면 이 아홉 가지가 다 헛일이 된다.
이것이 9경의 실(實)이다.”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어진 이를 존중하고 유능한 이에게 일을 시켜 재주가 뛰어난 인물이 벼슬 자리에 있으면 천하의 선비들이다
기뻐하여 그 나라의 조정에 서기를 원할 것이다.
시장에서는 점포세(店稅)만 징수하고 물품세는 징수하지 않거나, (전(廛)은 시장의 점포이니, 그 점포세만 받고 그 물품세는 받지 않는 것입니다.)
또는 시장의 불법만을 다스리고 점포세도 받지 않으면 (시관(市官)이 법으로 다스리고 점포세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천하의 상인들이 다 기뻐하여, 그 나라의 시장에 상품을 두기를 원할 것이다.
관문(關門)에서는 이상한 일이 없는가 하는 것만 살피고 관세(關稅)를 징수하지 않으면 천하의 나그네들이 다 그 나라의 도로에 다니기를 원할 것이다.
농경자(農耕者)에게는 공전(公田)은 협조하여 짓게 하고, 사전(私田)은 세를 받지 아니하면
천하의 농민들이 다 기뻐하여 그 나라의 들에서 농사짓기를 원할 것이다.
거주지에 인구세(人口稅)와 가옥세가 없으면(주례周禮에, “집 주위에 나무를 심지 않는 자는 가옥세를 물고,
백성 중에 직업이 없는 이는 인구세를 문다.”하였습니다. 전국시대에는 누구에게나 이것을 다 받았습니다.)
천하의 백성들이 다 기뻐하여 그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진실로 이 다섯 가지를 실시하면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그 나라의 임금을 부모같이 우러러보게 될 것이다.
그 자제들이 떼를 지어 그들의 부모를 공격하는 일은 세상에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이와 같이 된다면 천하에 대적이 없을 것이니 천하에 적이 없는 이는 천리(天吏)이다.
그렇게 되고서도 왕노릇 하지 못한 이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 없다.”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어진 이를 신임하지 아니하면 나라가 공허(空虛)하고,
(비록 백관유사(百官有司)가 있다 하더라도 그 직책을 제대로 못하면 사람이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금金나라 사람이 하수河水를 건너가서 말하기를, “남송(南宋)은 사람이 없다고 하겠구나.
만약에 1, 2천 명으로 하수를 지켰다면 우리가 어찌 건넜겠는가.”하였으니,
이것이 공허한 그 한 가지 예입니다.) 예의가 없으면 상하가 문란하며, 정사가 없으면 재용이 부족하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정치하는 요령은 대개는 이 장에 다 실려 있는데, 다음 글에서 의미를 더 부연하여 설명하였으니,
건중(建中)과 건극(建極)은 정치하는 근본이요, 백성이 많고 부유한 뒤에 가르치는 것은 정치하는 규모(規模)이며,
9경의 일은 정치하는 절목입니다.
그러나 다만 9경은 본말(本末)을 통하여 말한 것이니,
소위 수신(修身)이란 것은 바로 건중과 건극을 말한 것이요,
소위 하나〔一〕라는 것은 또 건중과 건극의 근본이니, 전하께서는 이것을 유념하시옵소서.

 

< 주 >

174) 「시경」의 "효자 불궤 영석이류(孝子不永錫爾類)"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효자의 집에는 대대로 효자가 나오도록 하늘이 마련해 준다는 뜻이다.

175)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태자.
헌공이 여희(驪姬)를 총애하여 여희의 아들 해제(奚齊)를 세우기 위해 신생(申生)을 곡옥(曲沃)으로 내 보냈는데
여희가 다시 참소하자 헌공은 아예 신생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에 공자(公子) 중이(重耳)가 도망갈 것을 권유했으나 신생은 불가하다 하고 스스로 자살하였다.

176) 중국 왕국(王國)의 아들. 전처(前妻)의 아들이 백기(伯寄)요,
후처(後妻)의 아들은 백봉(伯封)이었는데 후처가 자기 아들을 태자(太子)로 세우기 위하여 백기를 왕에게 참소하였다.
왕은 그것을 그대로 믿고 백기를 추방하였다.

177)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 대부(大夫). 이름은 비(肥), 강(康)은 시호이다.
계환자(季桓子)의 아들로서 노나라 때 권신인 삼가(三家)의 하나이다.

178) 주(周)나라 때에 농지 1리(一里)를 정자(井字)모양으로 9등분하여 중앙의 한 구역을 공전(公田),
주위의 8구역은 사전(私田)이라 하여 8농가에 맡겨 사유(私有)로 하고 공전은 8농가가 공동으로 경작하게 하여
그 수확된 것을 나라에 바치게 하던 제도. 맹자(孟子)가 이 정전법을 대단히 중시하였다.

 


제2장. 용 현(用賢)

 

신이 살피건대, 공자는 말하기를, “정치하는 데는 인재를 얻어야 되는 것인데, 어진 이를 기용하지 않고 정치를 잘 하는 이는 없다.”하였습니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잘 만나야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임금의 직책은 오직 어진 이를 알아 잘 맡기는 것을 선무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장을 먼저 놓고 장 가운데 의논을 특히 상세하게 하였습니다.

 

◆ 관인(觀人)의 술(術)에 대한 말씀

공자는 말하기를,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능히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오직이란 말은 독(獨)이라는 뜻이다.
대개 사람은 사심이 없어야만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므로,
정자(程子)의 소위 ‘그 공정한 것을 얻는다.’는 것이 이것이다.”하였습니다.

○ 유씨(游氏)는 말하기를, “착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것은 천하 사람들의 같은 정상(情狀)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늘 그 바른 것을 앓는 것은 마음이 사정에 얽매여 스스로를 극복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오직 어진 사람은 사심이 없기 때문에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공정하게 능히 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

경원 보씨(慶源輔氏)는 말하기를, “말은 마음의 소리다.
말의 득실(得失)로 인하여 그 사람의 사(邪)와 정(正)을 알 수 있으니,
오직 격물(格物)하고 궁리하는 군자라야 이것을 능히 한다.”하였습니다.
(이 두 절은 몸을 닦아 마음이 공정하고 이치에 밝은 뒤에라야 사람을 잘 알 수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 하는〔以〕것을 볼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以)는 한다는 말이다. 착한 것을 하는 이는 군자가 되고, 악한 것을 하는 이는 소인이 된다.”하였습니다.

그 하는 연유(緣由)를 살펴볼〔觀〕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관(觀)은 본다〔視〕는 것보다 상세하는 보는 것이요, 유(由)는 소종래(所從來)란 뜻이다.
일은 비록 착하나 뜻의 소종래가 착하지 못하면 역시 군자가 되지 못한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소행이 비록 착할지라도 만약 명예를 좋아하고 벼슬을 좋아하는 생각이 마음에 있다면 그 하는 일의 소종래가 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편안하게〔安〕 여기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찰(察)자는 관(觀)자보다 더욱 상세하게 본다는 뜻이요, 안(安)은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 하는 일의 소종래가 비록 착하다 하더라도 마음에 즐거워하는 것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역시 거짓일 것이니
어찌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였습니다.
(소위(所爲)는 보기 쉽지마는 소유(所由)와 소락(所樂)같은 것은 이치를 궁구하고 말을 아는 이가 아니면 변식(辨識)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어찌〔焉〕 숨기며〔〕 사람이 어찌 숨기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언(焉)이란 것은 「어찌」라는 뜻이요, 수()는 숨긴다는 뜻이다.
거듭 되풀이하여 말한 것은 그 깊이 숨기지 못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하였습니다.

○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내 자신이 말을 알고 궁리하면 능히 이 소위(所爲)와 소유(所由)와 소안(所安)으로써 사람을 살피기를
성인(聖人)과 같이 할 수 있다.”하였습니다.

남이 자기를 속일〔詐〕 것이라고 미리 예측하지〔逆〕말고, 남이 자기를 불신(不信)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미리 억측〔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속이고 불신하는 일에 대하여 먼저 깨닫는 자라야만 현명한 사람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역(逆)이란 것은 아직까지 이르지 아니하였는데 맞이하는 것이요,
억(億)은 아직까지 보이지 아니하는데 그러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사(詐)는 남이 자기를 속이는 것을 말하고,
불신(不信)은 남이 자기를 의심하는 것을 말하며, 억(抑)은 반어사(反語辭)이다.
비록 자기를 속이리라든가 불신하리라는데 대하여 미리 예측하고, 억측하지 않을지라도
남의 실정과 허위에 대하여 자연히 선각(先覺)을 하여야만 현명한 이가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 양씨(楊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성(誠)을 한결같이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誠)한 이로는 밝지 못한 이가 없는 까닭에 비록 남이 자기를 속일 것이라고 여겨 미리 예측하지 아니하고
남이 자기를 불신한 것이라고 여겨 미리 억측하지 아니하더라도 항상 먼저 깨닫는다.
만약 남이 속일 것이라고 예측하지도 않고 남이 불신할 것이라고 억측하지도 않다가〔不逆不億〕 마침내 소인에게 속게 되면
이는 또한 보잘것 없는 사람이다.”하였습니다.

○ 신안 진씨(新安陳氏)는 말하기를, “미리 예측하고 미리 억측한다는 것은 사견이 분요(紛擾)한 것이요,
먼저 깨닫는다는 것은 진견(眞見)이 철저히 밝은 것이다.
진실로 먼저 소인의 간사한 것을 예측할 것은 아니지마는,
역시 일을 당하여 소인의 간사한 데 떨어지지 아니해야 성명(誠明)한 군자가 된다.”하였습니다.

뭇 사람들이 미워해도 반드시 살펴야 하며, 뭇 사람들이 좋아해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맹자는 말하기를, “좌우에서 다 어질다고 해도 옳지 못하며 모든 대부들이 다 어질다고 해도 옳지 못하다.
나라 사람들이 다 어질다고 하여야만 이것을 살펴서 그 어진 것을 본 뒤에 기용할 것이며,
좌우에서 다 옳지 못하다 해도 듣지 말고, 모든 대부들이 다 옳지 못하다 해도 듣지 말 것이며,
나라 사람들이 다 옳지 못하다고 하여야만 이것을 살펴서 그 옳지 못한 것을 본 뒤에 버릴 것이다.”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풍속대로 하여서 대중에게 기쁨이 되는 이도 있고,
풍속 밖에 특별한 짓을 해서 세속에 미움을 받는 이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스스로 자신이 깊이 살펴서
그 어질고 어질지 못한 실상을 발견한 연후에 기용하든지 제거하든지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어진 이에 대하여 아는 것이 깊고 그에게 맡기는 책임이 무거워 재주 없는 자가 요행히 진용(進用)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하였습니다.

 

◆ 다음은 군자(君子)의 행실에 대한 말씀

○ 맹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하지 아니하는 일이 있어야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하지 아니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선택할 줄을 안다는 것인데,
오직 하지 아니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하지 않는 일이 없는 자가 어찌 능히 하는 바가 있겠는가.”하였습니다.

○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불인(不仁)을 하지 않는 자라야 인(仁)을 할 수 있고, 불의(不義)를 하지 않는 자라야 인(仁)을 할 수 있다.”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대개 선비가 빠른 시일에 도에 깊이 들어가기는 어려우나,
다만 그 마음에 있는 것이 발라서 선악을 분별하고 염치를 알 것이니, 이런 이들이 많으면 또한 점점 좋아질 것이다.”하였습니다.

「역경」에 이르기를, “군자는 같으면서도 다르다.”하였습니다. (규괘(卦)179) 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성현이 세상에 처함에 인간의 도리에 떳떳한 것은
대체로 세속과 같지 않은 것이 없으나 세속의 같이 해 나가는 같은 가운데는 때로 다른 점도 있다.
능히 같이 하지 못하는 자는 윤상〔倫〕을 문란하게 하고 이치를 어기는 자이며, 홀로 다르게 하지 못하는 이는 세속을 따라 그른 것을 익히는 자이다.
요컨대 같으면서도 능히 달리 하는 데에 있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군자는 이륜(彛倫)180)의 행위에 있어서는 세속과 대동하지마는, 그 가운데 다른 것이 있습니다.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같지마는 부모를 도리로서 깨닫게 하여, 명령에 복종하는 것만으로 효도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속인과 다르고,
임금을 존경하는 것은 같지마는 임금을 도리에 맞도록 인도하다가 합하지 않으면 떠나가는 것이 속인과 다르며,
처를 사랑하는 것은 같지마는 서로 손님같이 존경하여 정욕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속인과 다르고,
형에게 순종하는 것은 같지마는 화락한 마음으로 서로 힘써서 학행을 연마하는 것이 속인과 다르며,
친구끼리 사귀어 노는 것은 같지마는 오래도록 존경하고 서로 보살펴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속인과 다릅니다.

제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고, 제 임금을 존경하지 않으며, 부부끼리 눈흘기고, 형제끼리 불화하며, 친구끼리 서로 해치는 것은,
본래 상도를 어지럽히고 풍속을 퇴패하게 하는 사람이니 말할 것도 못됩니다마는, 세속에 행실이 있다는 사람도 군자의 도를 모르기 때문에,
다만 구체(口體)만을 기르다가 부모를 죄과에 빠뜨리면서도, 도리어 군자가 어버이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것을 의심하여 불효라고 생각하고,
임금에게 뜻을 얻지 못하면 이에 마음이 초조〔熱中〕하여 나아가기에 그칠 줄을 모르면서 도리어 군자가 세상에 나가기를 어렵게 여기고,
물러서기를 쉽게 하는 것을 의심하여 불경이라고 생각하며, 정욕(情欲)으로 예를 무너뜨려 애정에 치우치면서
도리어 군자가 낮에는 내실에 있지 않는 것을 의심하여 비정(非情)이라고 생각하고, 형제끼리 서로 모여 오락하고 주식(酒食)으로 즐기면서
도리어 군자가 서로 격려하고 경계하여 학문에 힘쓰는 것을 의심하여 우애를 상하게 한다고 생각하며,
친구끼리 함부로 하여 어깨를 치며 옷소매를 잡고 서로 희롱하면서, 도리어 군자가 위의(威儀)를 지키는 것을 의심하여
우정이 친밀치 못하다고 생각하니, 정말 속견(俗見)의 고질이 오래 되었습니다.
만일 윗 자리에 있는 이로서 먼저 도리를 알아서 밝게 보는 이가 아니라면,
세속과 다른 것을 그르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가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군자가 속인과 다른 까닭은 풍속이 옛 도(道)를 회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덕화가 행하여 풍속이 아픔다워지고 도(道)가 밝아져서 크게 행해지면 속인들이 다 군자일 것이니,
비록 홀로 다르게 하려고 하더라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훌륭한 신하는 도로써 임금을 섬기다가 옳지 못하면 그만둔다.”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옳지 못하면 그만둔다는 것은 마음이 합하지 않으면 그만두고 가는 것을 말한다.
도로써 임금을 섬기는 이는 임금의 욕심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요,
옳지 못하면 그만둔다는 것은 반드시 자기의 뜻을 행한다는 것이다.”하였습니다. (이상은 주자의 본주(本註)입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임금을 섬기되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며, 물러나와서는 임금의 허물을 바루어〔補〕주기를 생각한다.
그래서 그 임금의 아름다운 것은 받들어 따르고 그 악한 것은 바루어서 구원을 하기 때문에 위와 아래가 서로 친하게 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진씨(眞氏)는 말하기를“나아간다는 말은 들어가서 그 임금을 보는 것을 말한 것이요,
물러간다는 것은 나와서 자기 집〔私室〕에 가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어려운 것을 임금에게 하라고 책임지우는 것을 공(恭)이라고 하고, 선을 베풀고 간사한 것을 막는 것을 경(敬)이라고 하며,
우리 임금이 무능하다고 하는 것을 적(賊)이라고 한다.
나는 요촵순의 도가 아니면 감히 임금 앞에 의견을 늘어 놓지 아니하는데, 제(齊)나라 사람들은 나만큼 임금을 공경하는 이가 없다.”하였습니다.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신하가 어려운 일로써 임금에게 책임지워서 그 임금으로 하여금 요촵순 같은 임금이 되게 하는 것은
임금을 높이는 것이 큰 까닭이며, 착한 도를 베풀고 사심을 막아서 임금이 혹시나 허물 있는 지경에 빠질까하고 염려하는 것은
임금을 공경하는 것이 지극한 까닭이며, 그 임금이 도를 행할 능력이 없다고 하면서 서로 고하지 아니하는 것은
그 임금을 해롭게 하는 바가 심한 것이다.”하였습니다.

○ 이상 2조는 도로써 임금을 섬기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 또, “벼슬을 하는 자로서 그 직분대로 할 수 없으면 가고, 간관(諫官)들은 그 간하는 말을 듣지 않을 때는 간다.”하였습니다.
○ 송(宋)나라 신종(神宗)이 사마광(司馬光)을 쓰려고 하여 불러서 허주령(許州令)을 맞기고는, 허주로 가는 길에 임금을 와서 보라 하고
조서(詔書)를 내릴 적에 임금이 정호(程顥)181)에게, “내가 사마광을 부르는데 경의 생각에는 사마광이 올 것으로 보는가.”하니,
정호가 대답하기를 “폐하가 그의 말을 능히 받아들이면 그가 반드시 올 것이요,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반드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하였습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말이야 받아들이든지 안 받아들이든지 사마광 같은 이가 항상 좌우에 있게 되면
임금에게 스스로 허물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하였는데, 광이 과연 소명을 사양하였습니다.
(신종이 사마광의 어진 것을 알면서 그의 말은 받아들이지 않고 다만 소명으로 부르려고만 하였으니, 어진 이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이상의 2조는 옳지 못하면 그만둔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임금을 섬기되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여기고,
물러가는 것은 쉽게 여기면 관위(官位)에 질서가 있고, (어진 사람이 쓰이고,
어질지 못한 사람이 어진 사람에게 취역(就役)당하면 관위가 질서가 있습니다.)
나아가기를 쉽게 여기고 물러가기를 어렵게 여기면 관위가 문란하다.
(문란하다는 것은 어진 이와 어질지 못한 이가 전도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가 세 번 읍하다가 나아가고 한 번 사양하다가 물러나는 것은 난을 멀리 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여씨(呂氏)는 말하기를“세 번 읍(揖)하는 것은 세 번 사양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만약 주인의 공경함이 지극하지 아니한데 구태여 나아가거나, 주인의 마음이 태만한데 사양하지 않으면 빈주(賓主)의 관계가 문란하다.
벼슬을 할 만하면 하고, 그만둘만하면 그만두며, 만날 만하면 만나고, 사양할 만하면 사양하여 진퇴의 의리가 한결같아야 한다.”하였습니다.)

○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임금이 나를 믿어야 스승으로 삼을 수 있으니,
내게 배운 뒤에 나를 신하로 삼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나아가지 아니하며, 나를 믿어야 국정을 잡을 수 있으니,
계손씨와 맹손씨의 중간 대우를 한다 하더라도 역시 나아가지 아니하며, 번육(肉:제(祭)지낸 고기)이 이르지 아니하자 곧 가버리고,
영공(靈公)이 진치는 것을 묻자 곧 가버렸다.
군자의 도는 임금을 바르게 할 따름인데, 몸을 굽히는 자로서 남을 바르게 하는 이는 없다.”하였습니다.
(이상의 조목은 진퇴하는 도리를 통틀어 논한 것입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선비는 궁해도 의(義)를 잃지 아니하고, 영달하더라도 도를 떠나지 아니하나니,
궁해도 의를 잃지 아니하기 때문에 선비는 스스로를 잃지 아니하고〔得己〕,
영달해도 도를 떠나지 아니하기 때문에 백성이 실망하지 아니한다.”하였습니다. (맹자)

주자는 말하기를, “득기(得己)라는 것은 스스로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요, (그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백성들이 실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본래 그 도를 일으키고 선치(善治)를 하기를 바랐는데, 지금 과연 소망과 같다는 뜻이다.”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옛 사람은 뜻을 얻으면 은택을 백성들에게 가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몸을 닦아 세상에 그 이름을 나타내며, 궁하면 홀로 그 몸을 착하게 하고, 영달하면 천하를 다같이 착하게 한다.”하였습니다.

「역경」에 이르기를,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그 일을 높이 숭상한다.”하였습니다. (고괘(蠱卦)182) 상구효사(上九爻辭))

정자는 말하기를, “선비가 스스로 높이 숭상하는 것은 한 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길이 있다.
도덕을 품었으나 때를 만나지 못해 고결하게 스스로를 지키는 이도 있고,
(이윤(伊尹)183)과 태공(太公)184)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때 같은 것입니다.)
또 지족(止足)의 도를 알아서 물러가 스스로 몸을 보존하는 이도 있으며, (장량(張良)185)과 소광(疏廣)186)같은 유입니다.)
또 자기 재능을 요량하고 자기 분수를 헤아려서 남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구하지 아니하는 것을 편안히 여기는 이도 있고,
(서치(徐穉)187)와 신도반(申屠蟠)188)의 유입니다.) 또 청렴하게 스스로 절개를 지켜서 천하의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아니하고
홀로 그 몸만을 깨끗이 하는 이도 있으니, (접여(接輿)189)와 하궤(荷)190)의 무리입니다.)
이들은 처사가 비록 득실(得失)과 대소(大小)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다 스스로 자기의 일을 높이 숭상하는 사람들이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선비가 벼슬을 아니하는 것은 본래 그 단서가 한 가지가 아닌데, 대개는 정자(程子)가 논한 네 가지에 불과합니다.
이른바 득(得)이란 것은 위의 세 가지이고, 실(失)이란 것은 아래의 한 가지이며, 대(大)란 위의 한 가지이고, 소(小)란 것은 아래의 세 가지입니다.
대개 임금이 경(敬)을 극진히 하고 예(禮)를 다하지 않으면 도덕의 선비는 구할 수 없으며,
간()하는 것을 실행하거나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신하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니, 임금은 마땅히 정성껏 위임하여 시종 의심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칠 줄을 알고 분수를 헤아릴 줄 아는 선비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만일 위란의 기미를 알고 먼저 물러가면 임금은 마땅히 느끼고 깨달아 개과하여 화근을 끊어 없애며,
정성을 다하여 수용해야 할 것이요, 만일 화의 기미를 보지 않고 다만 편안하기를 구하여 물러가면 임금은 마땅히 그 뜻을 빼앗지 말고
그 절조를 가상히 여겨 염치를 장려하는 자료로 삼을 것이며, 혼자 제 몸만 결백하게 하는 사람은 비록 중(中)에 지나치고 정(正)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이욕(利欲)을 벗어난 사람이니, 성명(性命)의 정(情)을 잃어버리고 부귀를 탐내는 사람에게 비하면 청탁(淸濁)의 구별이 환하니
임금은 역시 마땅히 포장(奬)의 뜻을 보여 은일〔隱逸〕의 이름을 이루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후세의 임금들은 어진 이를 좋아할 줄을 알면서도 그 좋아하는 도리를 알지 못하여 작록(爵祿)으로 붙잡아 놓기만 하고
그 말을 채용하지 아니하여 그로 하여금 진퇴를 곤란하게 하는 임금도 있으며,
(시에 이른바, “나를 굳이 붙들지만 내 힘을 쓰지 않네”라는 유와 같습니다.)
또 다만 그 이름만 좋아하고 그 실상을 구하지 아니하여 강제로 힘에 겨운 것을 맡겨서 그로 하여금 일을 저질러서 자기를 잃어버리게 하는 임금도 있으니,
(진(晋)이 은호(殷浩)를191) 쓴 것과 같은 유입니다.) 다 참으로 어진 이를 좋아하는 임금이 아닙니다.
반드시 사람을 아는데는 그 총명을 극진히 하여야 하고, 사람을 기용(起用)하는 데는 반드시 그 재능에 적합하게 하여야 하며,
신임하는 데는 반드시 그 정성을 극진히 하여야만 참으로 어진 이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다음은 소인(小人)의 간사함을 분별하는 데 대한 말씀

○ 공자는 말하기를, “비부(鄙夫)가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는가.”하였습니다. (여평성(與平聲) ○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비부는 용악(庸惡)하고 비열하다는 말이다.”하였습니다.

그 벼슬을 얻지 못하였을 때에 얻기를 근심하고, 이미 얻었으면 잃을까 근심한다.

하씨(何氏)는 말하기를, “얻기를 근심한다는 것은 얻지 못할까 근심한다는 것이다.”하였습니다.

○ 신안 진씨(新安陳氏)는 말하기를, “얻는다는 것은 부귀 권리를 얻는다는 말이다.”하였습니다.

정말 잃을까 근심하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작게 말하면 헌데나 빨고 등창을 빠는 것이나,
크게 말하면 아비와 임금을 죽이는 것이 다 잃을까 근심하는 데서 나온다.”하였습니다.

○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허창(許昌:지명(地名))의 근재지(裁之)192)란 사람이 ‘선비의 품위(品位)에는 대개 세 가지가 있는데,
도덕에 뜻을 둔 이는 공명(功名)으로써 그 마음을 더럽힐 수 없고, 공명에 뜻을 둔 이는 부귀로써 그 마음을 더럽힐 수 없다.
부귀에만 뜻이 있을 뿐이라면 무엇이든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한 말이 있는데,
부귀에만 뜻이 있다는 것은 곧 공자의 이른바 비부이다.”하였습니다.

말을 교묘〔巧〕하게 하거나 외모(外貌)를 잘 꾸미는 사람 중에 인인(仁人)이 드물다.

주자는 말하기를, “교(巧)는 번질하게 잘한다는 것이요, 영(令)은 좋게 꾸미는 것이다.
말을 번질하게 하거나 외모를 좋게 꾸며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고 힘쓰게 되면, 사람의 욕심이 방자하여 본심의 덕이 없어진다.
성인은 말을 절박하게 하지 아니하므로, ‘드물다’ 한 것은 ‘절대로 없다’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깊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용모와 말씨는 바로 배우는 이가 힘써 길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을 교묘하게 하거나 외모를 잘 꾸며서〔巧言令色〕 사람의 보고 듣는 것을 즐겁게 하려하면 마음이 밖으로 달려서 인(仁)한 이가 드물다.
만일에 이 용모와 말씨에 나아가 잘 수양해서, 말을 할 때는 조급하지 아니하고, 행동할 때는 반드시 온공하게 하여,
다만 내심을 곧게 하고 외면을 방정하게 하는 실정에 꼭 맞도록 하게 되면 이것은 몸을 위하는 공부요,
인(仁)을 구하는 데 긴요한 것이니, 무엇이 병될 것이 있겠는가마는, 소인은 남의 결점만 드러내어 말하는 것으로써 곧은 체하고,
겉으로는 엄한 체하나 안으로는 요리조리 붙으니, 비록 말을 교묘하게 하거나 외모를 번질하게 하는 자와는 다르나
그 교정(矯情)으로 거짓을 꾸미는 것만은 실상 교언영색하는 것보다 더한 사람이니, 성인이 이것을 미워한 것이다.”하였습니다.

자색(紫色)이 주색(朱色)을 빼았는 것을 미워하며, 정성(鄭聲)193)이 아악(雅樂)194)을 문란하게 하는 것을 미워하며,
말을 교묘하게 하는 입〔利口〕이 나라를 전복〔覆〕시키는 것을 미워한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주색(朱色)은 정색(正色)이요, 자색은 간색(間色)이며, 아(雅)는 바른 것이요,
이구(利口)는 말이 빠르고 넉넉한 것이요, 복(覆)은 경패(傾敗)시키는 것이다.”하였습니다.

○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천하의 일은 대개는 바르게 하여 이기는 사람이 적고, 바르지 못하게 하여 이기는 사람이 많다.
성인이 이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말 잘하는 사람은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하며, 어진 이를 불초하다고 하고,
불초한 이를 어질다고 하는데, 임금이 진실로 그 말을 믿으면 국가의 전복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하였습니다.

향원(鄕原)은 덕의 적(賊)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원(原)자는 원(愿)자와 그 뜻이 같으니, 근원(謹愿:삼가해 보이고 후하게 보이는것)한 사람을 말한다.
공자는 ‘그 덕은 비슷한 것 같으나 덕이 아니므로 덕의 적(賊)이다.’하였다.”하였습니다.

○ 만장(萬章)이, “한 고을 사람들이 모두 원인(原人:근엄하고 후덕한 사람)이라고 일컫는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원인이 아닐 수 없는데,
공자가 덕의 적(賊)이라고 하신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하니,
맹자는 말하기를, “그를 비난하려 들더라도 이렇다고 드러낼 비난거리가 없고, 그를 공격하려 들더라도 이렇다 할 공격거리의 과실이 없다.
유속(流俗)과 동조하고 더러운 세상과 합류하여, 들어앉아 있을 때는 충직하고 선의가 있는 듯하며, 나아가 행동할 때는 청렴하고 결백한 듯해서,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한다. 그러면 스스로도 옳다고 여기지만 그러한 사람과는 요촵순의 도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덕의 적이라고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탐오(貪汚)하고 아첨하는 것은 소인의 변함없는 상태입니다.
만일 어리석고 어두운 임금이 아니면 이것을 분변하기 어렵지 않지마는, 오직 사이비(似而非)한 자에 대해서는 비록 밝은 왕이라도
분변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군자는 낯빛을 바르게 하여 곧은 말을 하는데, 소인은 외형에 엄한 체하고 교활하여 곧게 하는 것이 마치 군자와 같고,
또 군자는 행실이 완전하여 결점이 없는데, 소인은 근원(謹愿)하여 나무랄래야 나무랄 것 없는 것이 마치 군자와 같으니,
성현이 이로써 깊이 경계한 것입니다.
대개 향원은 엄연(然)히 세상에 좋게 보여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며, 한 패를 지어 고식(姑息)하고 비오(卑汚)한 경지에서 편안히 여겨서,
도를 행하는 선비를 저지하고 학문하는 길을 두절시키니, 그 해되는 것이 이단(異端)이 세상을 현혹시키는 것보다 더욱 심합니다.
후세의 선비가 만일 향원으로 지목되면 누가 부끄러워 하고 또 노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의 선비들의 소행을 상고하면, 앞뒤를 살펴보아 근신지록(謹身持祿:임금께서 바른 말을 하면 죄를 얻어
벼슬 자리를 보존하지 못할까 하고 근신하는 것)하다가 한 번 복고(復古)의 설을 듣든가,
아니면 한 번 지도(志道)의 선비를 보든가 하면 문득 실천하기 어려운 우활(迂闊)한 말이라고 비웃고,
다만 구습(舊習)을 지키고 미봉하는 것으로 일을 삼으니, 이것은 모두 향원을 본 받는 사람들입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상도(常道)를 돌이킬 뿐이다. 상도가 바르면 서민이 흥기한다.”하였으니,
상도를 돌이키는 책무를 깊이 전하께 희망하나이다.

 

◆ 다음은 군자와 소인에 대한 통론

○ 공자는 말하기를, “언론만 독실(篤實)하다해서 좋다고 한다면 그가 군자다운 사람인지,
겉으로만 공손한체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다만 그가 언론만 독실하다고 해서 이를 좋아한다면 그가 과연 군자인지, 겉으로만 공손한체 하는 사람인지 모를 일이다.
말과 외모로써 사람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을 잘하나, 말 잘하는 사람은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으나, 용기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어질지는 아니하다.

주자는 말하기를, “덕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화순하여 그 영화가 밖으로 발하거니와 말을 능통한 이는 더러는 말만을 잘할 뿐이다.
어진 이는 마음이 사사롭지 않아서 옳은 것을 보면 반드시 행하지만 용기가 있는 사람은 가끔은 혈기만 강할 따름이다.”하였습니다.

군자는 작은 것은 알 수 없어도 큰 것은 받을 수 있고, 소인은 큰 것은 받을 수 없어도 작은 것은 알 수 있다.

주자는 말하기를, “안다는 것은 내가 안다는 것이요, 받는 것은 저쪽에서 받는다는 것이다.
대개 군자는 작은 일에는 볼 만한 것이 없어도 그 재능과 덕망이 족히 중요한 것을 맡을 수 있고,
소인은 비록 도량이 얕고 좁지마는 한 가지의 장점은 취할 것이 반드시 없지는 않다.”하였습니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喩〕, 소인은 이(利)에 밝다.

주자는 말하기를, “유(喩)는 깨닫는다는 말과 같다. 의(義)는 천리의 마땅한 것을 말하고, 이(利)는 인정의 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군자의 의는 소인의 이(利)와 같으니, 오직 깊이 깨닫기 때문에 군자는 의를 독실하게 좋아하고,
소인은 이를 독실하게 좋아한다.”하였습니다.

○ 양씨(楊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생(生)을 버리고 의를 취한다.
이(利)로써 말하면 사람의 하고 싶은 것에 생(生)보다 더 심한 것이 없고, 미워하는 것에 죽음보다 더 심한 것이 없는데,
누가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는가. 군자는 밝은 것이 오직 의뿐이기 때문에 이(利)가 이로움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소인은 군자와 반대이다.”하였습니다.

○ 상산 육씨(象山陸氏)195)는 말하기를, “이 장은 의와 이로써 군자와 소인을 판별한 것인데,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여기에서 그 뜻을 분변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깨닫는 것은 그 습성에 말미암은 것이요, 그 습성은 그 뜻하는 바에 말미암은 것이니,
뜻하는 바가 의에 있으면 익히는 것도 반드시 의에 있게 되어 곧 의를 깨닫고,
이(利)에 있으면 익히는 것이 반드시 이에 있게 되어 곧 이를 깨닫는다.”하였습니다.

○남헌 장씨(南軒張氏)는 말하기를, “배우는 사람은 의와 이를 분변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으니, 의라는 것은 무엇을 위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이다.
대개 위하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다 인욕(人欲)의 사사로운 것이요, 천리(天理)의 공(公)은 아니니,
이것이 의와 이의 분간되는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의義가 위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이라는 말은 앞 성인들의 발명하지 못한 것을 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하였습니다.)
대개 성인의 학문은 위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인데, 이것은 천명의 마지못하는 소이요, 성품이 편벽되지 아니한 소이며, 교(敎)의 무궁한 소이다.
스스로 탁연히 먼저 의와 이가 천양의 판〔壤之判〕이 있는 것을 살펴서 생각을 가다듬고 힘써 행해서 밤낮을 놓치지 아니함이 아니라면
어찌 참으로 얻을 수가 있겠는가.
그 하는 일이 비록 착하다 하더라도 납교(納交)와 요예(要譽) 또는 비난하는 원성을 듣기 싫다는 생각이 혹시라도 마음에 싹튼다면
이것은 역시 이일 따름이다.”하였습니다.

군자는 화(和)하면서 동(同)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동하면서 화하지 아니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화(和)라는 것은 어그러진〔乖戾〕마음이 없는 것이요, 동(同)은 아부하여 편당을 든다는 뜻이다.”하였습니다.
○ 윤씨(尹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의를 숭상하는 까닭에 동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이(利)를 숭상하는데 어찌 화할 수가 있겠는가.”하였습니다.

○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 “제경공(齊景公)이 사냥을 갔다가 돌아오니, 안자(晏子)196)는 그를 모시고 있었는데,
자유(子猶)(양구거(梁丘據)의 자(字) 입니다.) 가 달려 오자, 공이 말하기를, ‘오직 자유가 나와 화(和)한다.’하였다.
안자가 대답하기를, ‘자유는 동하는 것이지 어찌 화하는 것이겠습니까.’하니, 공이 말하기를, ‘화와 동이 다른가.’하였다.
대답하기를, ‘다릅니다. 화는 국을 끊이는 것과 같습니다.
물촵불촵식초촵간장〔醯〕촵소금촵매실〔梅〕을 어육(魚肉)에 넣어 함께 삶을 적에 섶〔薪〕으로써 불을 때고
재부(宰夫:요리인)가 국을 조화시켜 그 지나친 것을 없게(없게 한다는 것은 그 맛이 안 좋은 것을 좋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는데,
군자는 이것을 먹고 그 마음을 화평하게 합니다. 임금과 신하가 역시 그러해야 하니,
임금이 옳다고 하는 것에 옳지 못한 것이 있으면 신하가 그 옳지 못한 것을 말하여 옳은 것을 이루게 하고,
임금이 옳지 않다고 하는 것에 옳은 것이 있으면 신하가 그 옳은 것을 말하여 그른 것은 버리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경」에 이르기를, ‘국을 조화하여 끓여서 맛을 고르게 하였도다.’하였습니다.
지금 자유는 그렇지 못하여, 임금이 옳다고 하는 것은 자유도 역시 옳다고 하고, 임금이 그르다고 하는 것은 자유도 역시 그르다고 하니,
이는 물에 물을 탄 것과 같아 누가 먹을 것이며, 거문고와 비파가 소리가 한 가지라면 누가 듣겠습니까.
동(同)의 옳지 못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하였다.”하였습니다.

군자는 보편적〔周〕이고 편당적〔比〕이 아니며, 소인은 편당적이고 보편적이 아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주(周)는 보편적인 것이요, 비(比)는 편당적인 것이니,
다 사람과 친후(親厚)하다는 뜻인데, 다만 주(周)는 공(公)이요, 비(比)는 사(私)이다.”하였습니다.

○ 주자가 승상(丞相) 유정(留正)에게 편지로써 말하기를, “붕당(朋黨)의 화는 진신(縉紳)에만 그치는 것인데,
옛날에 붕당(朋黨)을 미워하여 버리게 하고자 한 이가 이따금 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까지 이른 일이 많습니다.
대개는 그 어질고 어질지 못한 것과 충성스럽고 간사한 것을 살피지 않고,
오직 당만 없애려고 힘쓰면 저 소인들이 반드시 교묘한 꾀로 자취를 덮으려 하고,
군자는 그 공심(公心)과 바른 길만 믿고 말과 일을 공정하게만 해 나가다가 이따금 도리어 소인에게 밀려서 편당이라고 지목을 받게 되니,
한(漢) (당고(黨錮)의 화입니다.) 당(唐) (청류淸流의 화입니다.)
송(宋)의 소성(紹聖)197) (원우당(元祐黨)의 화입니다.) 의 일들이 지금 멀지가 않습니다.
승상이 붕당으로써 염려를 하니, 나는 혹시나 승상이 깊이 천하의 현(賢) 부(否)와 충(忠) 사(邪)를 살피는데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합니다.
대개 문을 닫고 스스로 지켜서 고립하여 붕당에 안드는 것은 일개인(一個人)의 행실이요,
어질고 유능한 이를 맞아들이고 간험(姦險)한 자를 물리쳐서 천하 사람들을 합하여 천하의 일을 구제하는 것은 재상의 직책입니다.
어찌 반드시 당이 없는 것만을 옳다고 하고, 당이 있는 것만을 그르다고 하겠습니까.
대개 승상의 오늘의 처지를 보면 당이 없다고 하면 없다고 할 수 있지마는, 소인의 도(道)는 날로 늘어가고 군자의 도는 날로 사라져,
천하의 걱정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면 승상이 어찌 그 책임을 피하겠습니까.
주희(株熹)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근심스러워 견디지 못할 지경이오니, 원컨대 승상은 먼저 현촵부와 충촵사를 분변하는 것으로 자기의 책임을 삼아서,
과연 어질고 충성스러운 사람이면 곧 드러내어 등용하되, 오직 그 당이 맞지 않아 같이 천하의 일을 도모하지 못할까 두려워 할 것이고,
과연 간사한 사람이면 곧 드러내어 물리치되, 오직 그들을 다 제거하지 못하여 나의 어진 이를 등용하는 공효를 해칠까 두려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군자들이 당을 짓는 것을 미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당을 짓는 것도 꺼리지 말 것이요, 내가 당을 짓는 것을 꺼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앞으로 임금을 인도하여 당을 하게 하는 것도 꺼리지 말아야 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천하의 일이 거의 희망일 있을 것입니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신하의 악(惡)은 사당(私黨)보다 더 심한 것이 없고 임금이 몹시 미워하는 것도 붕당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소인이 군자를 모함하는 데는 반드시 이것으로써 효시(嚆矢)로 삼습니다.
다만 임금이 이것을 살피지 못함을 근심할 뿐입니다.
진실로 이것을 살핀다면 공(公) · 사(私)와 충(忠) · 영( :아첨하는 것)을 분변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살핀다는 것은 다만 그 마음을 살피는 것인데, 그 마음이 임금을 바르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데 있는가,
몸을 영달하게 하고 권세를 굳게 하는 데 있는가에 있습니다.
임금을 바르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선비는 도를 같이 함으로써 벗으로 삼는 자이라 일심으로 임금을 사랑하고 일심으로 나라에 충성하여,
당이 성할수록 임금도 더욱 성(聖)하고, 나라도 더욱 편안할 것이니, 임금은 오히려 그러한 당이 적을까 염려할지언정
어찌 그 휘정(彙征:같은 유가 모여 드는 것)을 근심하겠습니까.
몸을 영달하게 하고 권세를 굳게 하는 선비는 이(利)를 같이 함으로써 벗을 삼는 자이니,
이들은 사(私)를 도모하고 공을 멸시하며, 임금을 뒤로 하고 부모를 유기(遺棄)하나니,
그 당은 비록 적더라도 또한 족히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망하게 할 것입니다.
임금은 마땅히 불이 처음 붙을 때에 끄듯이 해야 할지언정, 어찌 그것이 번성하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그러나 소인의 마음은 다만 이만 구할 뿐이요, 임금과 부모는 돌보지 않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체결된 붕당은 이익이 다 되면
교제가 소원하여지기도 하고, 형세가 궁박하여지면 서로 도모하기도 하니, 그 붕당이란 것은 잠간 합해진〔假合〕 것뿐이요,
군자의 도의에 입각한 붕당과 같이 시종여일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구양수(歐陽脩)198)는 말하기를, ‘소인은 벗이 없고 오직 군자만이 벗이 있다.’하였으니, 이 말이 옳습니다.
아아, 상(商)나라 신하는 억만(億萬)이었으나, 그 마음도 억만이었으니 당이 없었다고 할 수 있으나 주(紂)는 망하였고,
주(周)나라 신하는 3천이로되 그 마음은 일심이었으니 일대의 큰 당이 되었지만 무왕(武王)은 임금이 되었으니,
다만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데 있을 뿐입니다.
비록 그러나 임금이 먼저 이(理)를 밝히지 아니하고 억측으로 살핀다면, 그것은 공을 사라고 하고 영()을 충(忠)이라 하지 않는 이가 적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학문은 이(理)를 밝히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과실은 각각 그 유(類)에 따라서 다르니, 과실만 보아도 그 사람의 어진 것을 알게 된다.

주자는 말하기를, “당(黨)은 유(類)이다.”하였습니다.

○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사람의 과실은 각각 그 유에 따라 다른 것이니, 군자는 항상 과실이 두터운 데에 있고,
소인은 항상 과실이 엷은 데에 있다.
군자는 지나치게 사랑하고 소인은 지나치게 잔인하다.”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지나치게 청렴하고, 소인은 지나치게 탐(貪)하며, 군자는 지나치게 깨끗하며,
소인은 모든 것에 지나치게 통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이런 유이다. 그러나 또한 이에만 그치지 않는다.
다만 이런 것에 나아가 보면 사람의 어질고 어질지 않은 것을 볼 수 있고 인의 기상을 또한 알 수 있는 까닭에
이로써 그 사람의 어진 것을 알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 말은 또 사람이 비록 과실이 있다 하더라도, 그 과실의 유에 따라서 그 사람이 후한 사람인가 박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요,
반드시 허물이 있는 것을 기다려야만 그 사람의 어질고 어질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하였습니다.

○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임금은 마땅히 신하가 과실이 있으면 그 마음을 살펴 보아야 한다.
만일 임금을 사랑해서 극진히 간(諫)한다면 그 간하는 말에는 광알(狂)한 과실이 없지 아니하지마는,
요컨대, 그 용심(用心)은 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 어진 것은 취하고 그 과실은 용서해 주는 것이 옳을 것이며,
임금을 사랑하여서 임금의 명령을 어기게 되면 교불(矯拂)한 과실이 없지 아니하지마는, 요컨대,
그 용심은 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 어진 것은 취하고 그 과실은 용서해 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간사한 신하들은 덮어서 가리기를 잘하니 반드시 과실을 지적할 것은 없으나 그 마음은 어떠한가.
대개 이것은 다 사람을 관찰하는 일단(一端)인데, 이런 유로써 추찰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임금을 잘 섬기는 사람이 있으니,
임금을 섬기게 되면 임금에게 잘보여 임금을 즐겁게 하는 자이다.”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아첨해서 잘 보이려고 하고 임금의 뜻을 맞추어서
 즐겁게 하는 것은 비부(鄙夫)의 일이요, 첩부(妾婦)의 도이다.”하였습니다.
사직(社稷)을 편하게 하는 신하가 있으니 사직을 편하게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대신이 사직을 편하게 하는 것을 꾀하는 것은 마치 소인이 그 임금을 즐겁게 하기를 힘쓰는 것과 같아서,
여기에 항상 마음을 써서 잊지 않는다.”하였습니다.

천민(天民)이 있으니 영달하면 천하에 행할 수 있은 뒤에라야 나가서 행하는 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이란 위(位)가 없는 것을 일컫는 것인데, 그가 천리(天理)를 온전히 다하여 하늘의 백성이기 때문에 천민이라고 한다.
반드시 그 도를 천하에 행할 수 있어야만 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세상에 파묻혀 남에게 알려지지 못해도 후회하지 아니하며,
그 도를 조금 쓰기 위해 사람에게 따르기를 좋아하지 아니한다.”하였습니다.

○ 장씨 (張氏)는 말하기를, “반드시 공이 이 백성들에게 덮힐 만하여야만 나아가는 것인데,
이윤(伊尹)과 여상(呂尙:강태공(姜太公)을 말함.) 같은 이가 그러하다.”하였습니다.

대인(大人)이 있으니 자기 몸을 바르게 하여서 물(物)이 저절로 바르게 되도록 하는 이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대인은 덕이 성하여 위 아래가 화(化)해지는 것인데, 소위 현룡(見龍)이 밭에 있으니, 천하가 문명(文明)해 진다는 것이다.
사람의 인품이 같지 아니하여 대략 4개 등분이 있는데, 용열(容悅)하는 영신(臣)은 말할 것도 없고,
사직을 편하게 하는 이는 충(忠)이나 그는 아직 일국의 선비요, 천민은 일국의 선비가 아니지마는 오히려 자기의 포부를 펴보자는 뜻이 있는 이다.
뜻도 없고 기필하는 것도 없으며 오직 그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물(物)이 화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는 것은
오직 성인이라야 이를 능히 한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주자는 말하기를, “사람 알기가 어렵다는 것은 요촵순도 병통으로 여겼으며,
공자도 ‘그 사람의 말을 듣고도 행실까지 보아야 한다.’는 경계가 있다.
그러나 일찌기 생각하건대, 이것은 특히 소인을 두고 한 말이다.
만일 사람들이 다 군자라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대개 천지간에는 자연의 이치가 있는데, 모든 양(陽)은 다 강(剛)하며 강하면 반드시 밝고, 밝으면 알기가 쉬우며,
모든 음(陰)은 반드시 유(柔)하며 유하면 반드시 어둡고, 어두우면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성인이 역(易)을 지을 때에, 양을 군자로 삼고, 음을 소인으로 삼았으니,
그 유(幽)와 명(明)의 소이연에 통하고, 만물의 정에 따라 분류한 것은, 비록 백세(百世)가 되더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일찌기 역설(易說)을 미루어 천하 사람들을 살펴 보니, 대체로 광명정대하고 널리 통달하여, 청천백일(靑天白日)과 같고,
높은 산이나 큰 냇물 같으며, 뇌정(雷霆)의 위험 같고, 우로(雨露)의 윤택 같으며, 용호(龍虎)의 용맹 같고,
인봉(麟鳳)의 상서(祥瑞)같이 드러나서, 추호도 의심스러운 것이 없는 이는 반드시 군자요,
아부하고 혼탁하여 서로 머뭇거리고 엎드려 숨어서 얼키는 것이 뱀이나 지렁이 같고, 좀스럽기로는 이〔蝨〕같으며,
귀역(鬼)과 같고, 여우가 호리는 것 같으며, 방자하기로는 도적 같으며, 잔 재주에 능란하고 교활하여 아무 것에도 비할 수 없는 자는 소인이다.
군자와 소인의 지극한 것이 이미 마음 속으로 정해졌으니, 말씨나 행동의 세세한 것이라도 밖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는데,
하물며 사업이나 문장에서야 찬연히 드러나지 않겠는가. 소인을 알아내기가 어렵다고 하나, 이렇게 본다면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하였습니다.
신은 아뢰옵건대, 주자의 이 말이 군자와 소인의 정상(情狀)을 다 갖추었으니, 전하께서는 이것으로 사람을 관찰한다면 쉽게 알 것입니다.
군자와 소인은 음양이나 주야(晝夜)와 같아서 매양 서로 반대되나, 요령있게 말하면 임금을 사랑하는 사람은 군자요,
작록을 사랑하는 사람은 소인입니다.
대개 소인은 그 임금의 명철하거나 암매(闇昧)한 것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다만 작록에만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만약 몸에 이롭다면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비록 군부(君父)를 속이고, 국맥(國脈)을 손상하게 한다 할지라도 돌아보지 아니합니다.
이러므로 작록의 권리가 임금에게 있으면 임금에게 아첨하고, 권신과 행신(幸臣)에게 있으면 권신과 행신에게 붙으며,
외척에게 있으면 외척과 결탁하고, 심하면 적국과도 몰래 내통하여 그 임금을 마치 개가 주인에게 짖고 물어뜯듯이 하는 것까지도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작록이니 어느 겨를에 임금을 사랑하겠습니까.
군자는 그렇지 아니하여 사직(社稷)만 마음에 두고 생민만 생각에 두니, 진실로 임금을 바르게 할 수만 있다면 다른 것에는 애착이 없습니다.
의(義)가 벼슬을 지키는 데 있게 되면 군명(君命)이라도 복종하지 않을 때가 있고,
의가 말을 다하는 데 있게 되면 임금의 위엄도 피하지 않으며, 의리를 밝히고 페혹을 막아 임금을 인도하되,
도에 합당하도록 해서 임금으로 하여금 과오가 없는 처지에 서도록 하며, 만일 벼슬에 앉아 자기 직책을 다할 수 없고,
또 간관이 되어 자기 언책(言責)을 할 수 없으면서 녹만 먹고 나라에 유익한 것이 없다면,
몸을 받들어 물러가는 것도 또한 어쩔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러나와 초야에 있으면서도 잠간 사이라도 잊지 않고 임금이 감오(感悟)하기를 바라나니 진퇴(進退)로써 마음을 달리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임금이라, 어느 겨를에 작록을 탐내겠습니까.
말속(末俗)이 도도(滔滔)하고 도학이 밝지 아니하여, 신하는 이미 임금을 바르게 할 뜻이 없고, 임금 역시 사람들이 순종하는 것만 좋아하여,
작록을 탐하는 자를 <오히려> 임금을 아끼는 자라고 여기고,
임금을 아끼는 자를 <오히려> 임금을 원망하는 자라고 여기니, 아아 탄식할 만한 일입니다.

 

◆ 다음은 용사(用捨)의 합당함에 대한 말씀

○ 애공(哀公)이 묻기를,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복종하겠는가.”하니,
공자는 대답하기를, “곧은 이를 들어 쓰고 모든 굽은 이들〔諸〕을 버리면〔錯〕 백성들이 복종하고,
굽은 이를 들어 쓰고 곧은 이들을 버리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아니합니다.”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조(錯)는 버려둔다는 뜻이요, 제(諸)는 무리〔衆〕라는 뜻이다.”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기용하고 버리는 것을 옳게 하면 인심이 복종할 것이다.”하였습니다.

○ 사씨(謝氏)는 말하기를, “곧은 것을 좋아하고 굽은 것을 미워하는 것은 천하의 지정(至情)이니, 이 지정에 순하면 백성들이 복종하고,
만약 이에 거슬리면 가버리는 것은 필연의 이치이다.
그러나 혹시 곧은 것과 굽은 것을 관찰할 만한 도가 없다면 곧은 것을 굽다 하고, 굽은 것을 곧다 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이러므로 군자는 거경(居敬)을 크게 여기고 궁리(窮理)를 귀하게 여긴다.”하였습니다.

어진 이를 보고도 들어 쓰지 못하며, 들어 쓰되 일찌기 하지 못하는 것은 태만〔命〕한 것이요,
선하지 않은 이를 보고도 물리치지 못하여, 물리치되 멀리 하지 못하는 것은 과실이다. (대학)

주자는 말하기를, “정씨(鄭氏:정현(鄭玄))는 ‘명(命)은 마땅히 만(慢)이라 하여야 한다.’하였다.
이러한 사람은 사랑하고 미워할 줄은 알지마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도에 극진하지 못한 이니, 대개 군자이면서 어질지 못한 사람이다.”하였습니다.

○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제환공(齊桓公)이 곽(郭)나라에 가서 부로(父老)에게 묻기를,
‘곽이 무슨 이유로 망하였는가.’하니, 부로들이 말하기를, ‘착한 이를 착하게 여기고 악한 이를 미워했기 때문입니다.’하였다.
그러니까 공이, ‘자네들 말과 같으면 곧 어진 임금인데 어찌 망하는 데까지 이르렀는가.’하니,
말하기를, ‘곽나라 임금은 착한 이를 착하게 여겼으나 능히 쓰지를 못하였고,
악한 이를 미워했으나 능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망했습니다.’하였다.
대개 착한 이를 착하게 여기되 능히 쓰지 못하면 그 착한 사람을 아는 것만으로 귀한 것이 될 수 없고,
악한 이를 미워하되 능히 버리지 못하면 그 악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만으로 귀한 것이 될 수 없다.
선악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른는 사람은 그래도 오히려 바라볼 여지가 있지마는,
이미 알고도 그 아는 것을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군자는 높이 행하여 멀리 가버리고, 소인은 자행(恣行)하는데 기탄이 없다.
그러면 곽나라를 망하게 한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곽임금이 스스로 망친 것이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임금이 비록 군자를 좋아하고 소인을 미워할 줄을 알면서도,
들어 쓰고 내칠 때에 그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실제로 결행하지 못한다면 치란(治亂)에 있어서 유익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곧은 이를 들어 쓰고, 굽은 이를 버리는데 알맞게 하는 것을 귀히 여깁니다.
비록 그러나 저 곧은 이를 들어 쓰고, 모든 의로운 이를 쓰는데 아직 극진히 알맞게 하지 못하는 이는,
실로 아직 좋아하고 미워하는 데 대한 올바른 견해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참으로 선을 좋아하기를 색(色)을 좋아하듯이 하고,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듯이 한다면,
어찌 그런 사람을 먼저 들어 쓰지 못하고, 그런 사람을 멀리 물리치지 못하겠습니까.
겉으로는 악을 미워한다고 하면서 실은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진 이와 어질지 못한 이가 전도(顚倒)되어 혼란이 일어나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자가 논한 절의(節義)를 위하여 죽는다는 설은 말이 자못 격절(激切)하므로 임금이 알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삼가 다음에 기록합니다.

주자의 봉사(封事)에 말하기를,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가 공언하기를, ‘폐하께서 일찍 이르기를, 오늘날 천하에는 다행히 사변이 없다.
그러므로 정의를 위하여 죽는다는 선비가 있다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고 하였다.’하였습니다.
이 말이 한 번 전파되자 크게 식자들 간에 근심이 되었습니다.
신은 그것이 반드시 폐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대개 절의를 위하여 죽는 선비는 평상시의 무사할 때에는 참으로 아무 소용이 없는 듯하나,
옛날 임금이 반드시 급급하게 이런 사람을 구한 까닭은 대개 이런 사람은 환난에 임하여 능히 사생을 떠날 수 있기 때문에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반드시 작록을 가벼히 여길 것이고, 환난에 임하여서는 능히 충절을 다할 수 있기 때문에,
또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반드시 바른 길이 아니면 따르지 않을 것이니, 평화롭고 사건이 없을 때 이런 사람을 얻어 쓰게 되면,
임금의 마음이 위에서 바르게 되고 풍속이 아래에서 아름다와져서, 간악한 싹을 꺾고 재화의 근원을 가만히 없앨 수 있으며,
자연히 절의를 위하여 죽는 일에 이르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후일에 변고가 있을 것을 알고 미리 이런 사람을 육성하여 두었다가 거기에 대비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평상시에 스스로 편안하다고 믿고 바로 이와 같은 인재는 필요가 없다고 하여,
다만 일종의 도리도 없고 학식도 없어서 작록이나 중히 여기고 명의(名義)를 가벼히 여기는 사람을 채용하여,
풍습을 바루고 격려하는데 힘쓰지 않는다고 여겨 그런 사람을 존총(尊寵)하여 이로서 기강(紀綱)이 날로 무너지고 풍속이 날로 각박하여져서,
비상한 재화가 모르는 사이에 잠복하여 있다가 일조에 불의의 변이 발생하면 평상시에 소용이 있던 사람은 제각기 팔을 들어 항복하고,
한 사람도 환난을 같이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한 뒤에야 전일에 버림을 받고 유락(流落)되었던 사람이 비로소 다시 불행히도 그 충절(忠節)을 나타내게 됩니다.
천보(天寶)199)의 난으로 이런 것을 관찰해 보면,
그 장상(將相)촵귀척촵가까운 행신(幸臣)은 이미 다 적정(賊庭)에 나아가 이마를 조아리고 항복하였는데,
군사를 일으켜 적을 토벌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죽고 친족을 죽여도 후회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
예를 들면 장순(張巡)200)·허원(許遠)·안고경(安卿)과 같은 유인데, 그들은 멀리 하읍(下色)에 있어서 임금도 그 면목을 모르던 사람들입니다.
명황(明黃)으로 하여금 일찌기 장순과 같은 사람을 얻어서 등용하게 하였던들 어찌 우환이 싹트기 전에 이것을 방지할 수가 없었겠으며,
장순과 같은 사람이 일찌기 명황에게 등용이되었던들 또 어찌 참으로 절의를 위하여 죽는 일이 있게 되었겠습니까.
‘상(商)나라의 귀감(龜鑑)이 멀지 않다. 하후(夏后)의 세(世)에 있다.’하니,
이 때문에 식자들 가운데서 공언한 어떤 이의 말을 깊이 우려하는 것입니다.
비록 신은 폐하께서 성학(星學)이 고명하고 식견이 심원하시어 결단코 이런 말이 있지 않았으리라고 알지마는,
매양 소인이 감이 성훈(聖訓)을 칭탁하여 자기의 간악한 것을 덮으려고 하는데,
그 해독이 깊이 천하의 충신 의사의 기개를 저상(沮喪)할 것을 생각하면 또한 마음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으니,
감히 식자들의 우려가 지나친 걱정이라고는 못하겠습니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주자의 설은 명백하고 통쾌하여 단번에 사론(邪論)을 씻어버릴 수 있다고 봅니다.
옛날 송(宋)나라 효종(孝宗)이 절의를 위하여 죽는 선비를 얻기 어렵다고 탄식하니,
장남헌(張南軒)이 말하기를, “적의를 위하여 죽는 선비는 마땅히 임금 앞에서 용감히 간(諫)하는 사람 중에서 구하여야 합니다.”하였습니다.
이 말은 간략하고도 적절하니 임금께서는 알아두지 않아서는 아니됩니다.

 

◆ 다음은 구현(求賢)의 도(道)에 대한 말씀

○ 「역경」에 이르기를, “비룡(飛龍)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보는 것이 이(利)롭다.”하였습니다. (건괘(乾卦)구오효사(九五爻辭))

정자는 말하기를, “성인이 이미 천위(天位)를 얻었으면
아래로 큰 덕(德)이 있는 사람을 만나 보고서 같이 천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이롭다.”하였습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하니,
물은 젖은 데로 흐르고 불은 마른 데로 번져가며,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하였습니다.

또 「역경」에 이르기를, "기(杞)로써 오이[瓜]를 쌌으니,
장(章:아름다운 문채)을 머금으면 떨어지는 것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리라." 하였습니다. (구괘(卦) 구오효사(九五爻辭))

정자는 말하기를, "기(杞)는 높은 나무로서 잎이 큰 것이다.
높은 데서 물건을 쌀 만한 것은 기(杞)이고, 아름다운 열매로서 아래에 있는 것은 오이이다.
높이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아래에 어진 이를 구하여 지극히 높은 것으로써 지극히 낮은 것을 구하는 것은,
기(杞)의 잎으로써 오리를 싸는 것과 같다.
이금이 비록 몸을 굽혀서 어진 이를 구할지라도, 만일 그 덕이 바르지 아니하면 어진 이가 즐거워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아름다운 것을 함축해서 안으로 지성(至誠)을 쌓으면 하늘로부터 내려 올 것이다.
하늘로부터 내려온다는 것은 반드시 얻을 것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옛날부터 임금이 지성으로 자기를 굽혀 중정(中正)한 도로써 천하의 어진 이를 구하면 만나지 못할 리가 없다.
고종(高宗:은(殷)나라 임금)은 자다가 꿈에서 <부열(傅說)을> 얻고,
문왕(文王:주(周)나라 임금)은 낚시터에서 강태공(姜太公)을 만난 것이 이 도(道)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천지가 서로 만나지 아니하면 만물이 나지 못하고, 군신이 서로 만나지 아니하면 정치가 흥하지 못하며,
성현이 서로 만나지 아니하면 또 덕이 형통하지 못하고, 사물이 서로 만나지 아니하면 공용(功用)이 이루어지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중궁(仲弓)이 어진 이를 기용하는 방법을 묻기를, "어떻게 <제가 혼자서천하의> 어진 이를 다 알아 기용하겠습니까." 하니,
공자는 말하기를, "그대가 아는 이만 다 기용한다면 모르는 이는 다른 사람이 기용하여 줄 것이다." 하였습니다. (논어)

정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각각 그 친한 이만 친히 한다고 그 친히 하는 이만 친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중궁이 '어떻게 어진 이를 다 알아 기용하겠습니까.'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그대가 아는 어진 이만 다 기용한다면 모르는 어진 이는 다른 사람이 기용하여 줄 것이다.'고 하였으니,
곧 중궁과 성인의 마음 쓰는 것이 크고 작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뜻으로 미룬다면 마음 하나로 나라를 일으킬 수도 있고 나라를 망칠 수도 있으니, 이것은 다만 공(公)과 사(私)에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 명도(明道)가 신종(神宗)을 만나서 인재를 의논할 때, 신종이 말하기를, "나는 아직 인재를 보지 못하였다." 하니,
명도가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어찌 천하의 선비를 경시하십니까." 하자,
신종은 용연(聳然)히 놀라면서 말하기를, "나는 앞으로는 감히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
나는 앞으로는 감히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천지가 한 세상 사람들을 낳았으니 이들은 족히 그 세상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탄스러운 것은 그 세상 인재를 다 기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세상을 크게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요(堯)는 순(舜)을 얻지 못하는 것을 자기의 근심거리로 삼았고,
순은 우(禹)와 고요(皐陶)를 얻지 못하는 것을 자기의 근심거리로 삼았다.
남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는 것은 혜(惠)라 하고, 남에게 선을 가르쳐 주는 것은 충(忠)이라 하며, 천하를 위하여 인재를 얻는 것을 인(仁)이라 한다.
이러므로 천하를 남에게 주는 것은 쉬워도 천하를 위하여 인재를 얻는 것은 어렵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요·순이 백성을 근심한 것은 일일이 근심한 것이 아니라 먼저 할 일을 급하게 하였을 뿐이다.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는 것은 조그마한 은혜일 뿐이고, 사람들에게 선을 가르쳐 주는 것은 비록 백성을 사랑하는 실심(實心)은 있으나,
그 미치는 데가 또 한정이 있어서 오래 가기가 어렵다.
오직 요가 순을 얻은 것과 순이 우와 고요를 얻은 것 같이 하여야만, 소위 천하를 위해 사람을 얻는 것이라 할 수 있고,
그 은혜가 광대하고 그 교화가 무궁할 것이니, 이것이 인(仁)인 것이다."하였습니다.

옛날의 어진 임금들은 선을 좋아하고, 권세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옛날의 어진 선비들은 어찌 유독 그렇지 않았겠는가.
자기의 도를 즐기고 남의 권세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왕공이라도 경의(敬意)를 표하고 예를 다하지 아니하면 그들을 자주 만날 수 없었다.
만나는 것마저 자주 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그들을 얻어서 신하로 삼는데 있어서랴.

주자는 말하기를, "임금은 마땅히 몸을 굽혀서 어진 이를 대접해야 할 것이며, 선비는 도를 굽혀서 이(利)를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인데,
이 두 가지는 형세가 서로 상반되는 것 같으나, 실을 서로 상성(相成)되는 것이므로 역시 각각 그 도를 다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옛날 임금으로서 천하에 뜻이 있던 이는 천하의 어진 이를 기용하는 것을 급한 일로 삼았다.
어진 이 구하는 것을 급한 일로 삼은 까닭은,
어진 이로 하여금 문장을 쓰게 하여 임금의 공덕을 자랑해서 일시에 보고 듣는 것을 아름답게 하려고 한 것만은 아니다.
대개 그 임금의 견문이 미치지 못한 것과 사려의 이르지 못한 것을 넓히고,
또 처신(處身)하고 접물(接物)하는 사이에 혹시나 미진한 것이 있을까 염려해서, 어진 이들이 바루어 주기를 원해서이다.
이르므로 그 구하는 것을 넓게 하지 않을 수 없고, 예(禮) 베푸는 것을 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대접하는 것을 정성스럽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하여 반드시 천하의 어진 이 중에 본래 아는 이나 모르는 이 할 것 없이
모두 내 앞에 오게 하여 내 허물을 돌봐주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 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내 덕업(德業)은 은미(隱微)한 것도 부끄럽지 않고, 점점 광대(光大)한 것에 극진해질것이다.
그러나 그 어진 이들은, 밝은 것이 이미 사리의 미묘한 곳까지 환해지고, 지키는 것이
이미 성현의 궤도를 따르므로 그 스스로 처하는 것이 반드시 고결하여 유속과 같이 하거나 오탁한 데에 합류하여 명예를 구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자기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두터워서 말을 떠벌리거나 꾸며서 자기를 소개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의 믿음이 독실해서 몸을 굽히거나 말을 재치 있게 잘 하여 구차하게 잘 보이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므로 왕공 대인이 비록 어진 이를 좋아하고 착한 것을 즐기는 정성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사람의 성명을 듣고
그 사람의 얼굴을 알고 그 사람의 심지(心志)를 다 알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처음부터 이런 뜻이 없고 취하는 것이 단지 문자나 언어에 있어서이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크게 다스릴 수 있는 임금은 반드시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있다.
의론을 할 일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나아간다.
그 덕을 높이고 도를 즐기는 것을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서로 큰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크게 다스릴 수 있는 임금이란 것은 비상하게 창의력이 있는 임금이란 말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옛날 사람은 반드시 임금이 경의를 표하고 예를 극진히 하여야만 물러났던 이유는,
스스로 자기를 존대(尊大)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임금과 같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선을 좋아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데도 넉넉[優]하다.
진실로 선을 좋아하면 사해안의 사람들이 다 천리길을 대수롭게[輕] 여기지 아니하고 모여 들어서 선을 말해 주려고 할 것이요,
진실로 선을 좋하하지 아니하면 사람들이 장차 말하기를, "저 임금은 똑똑한 체[] 하는 것을 자기는 벌서 알고 있다." 하여
똑똑한 체하는 소리나 기색은 사람들을 천 리 밖에서 막는 것이다.
선비들이 천 리 밖에서 머물러 있게 되면 참소하고 아첨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될 것이다.
만약에 참소하고 아첨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게 된다면 나라가 다스려지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넉넉하다[優]는 것은 여유가 있다는 것이니 비록 천하를 다스린다 해도 오히려 여력이 있다는 말이다.
경(輕)은 쉽다는 것인데, 천 리를 어렵게 여기지 아니한다는 말이다.
이이()는 스스로 그 지혜를 만족하게 여겨서 선한 말을 즐기지 않는 모양이다.
군자와 소인은 서로 소장(消長)하는 것인데, 곧고 믿음직하고 들은 것이 많은 선비가 멀어지면 참소하고 아첨하는 사람이 곁에 모이는 것은
이치와 형세가 그런 것이다.
이 글은 정사하는 것이 자기 한 사람의 장처(長處)를 쓰는 데 있지 아니하고,
천하의 선을 오게 하는 것이 귀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임용(任用)의 도에 대한 말씀

○「역경」에 이르기를, "성인은 어진 이를 길러서 만민에게 미치게 한다." 하였습니다. (이괘(卦) 단사(彖辭))

정자는 말하기를, "성인은 어진 이를 길러서 높은 벼슬을 주고, 그로 하여금 천록(天祿)을 먹게 하며,
혜택을 천하에 베풀게 하니 어진 이를 길러 만민에게 미치게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가 어진 이를 기르는 것을 논한 차자(箚子)에서 말하기를,
"신이 가만히 살피건대, 당대를 의논하는 이들은 모두 어진 이를 얻으면
천하가 다스려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되 어진 이를 오게 하는 도는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비록 중론이 분연(紛然)하여 그 요령을 가려내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지마는, 기실은 극진하지 못하고
조정에서도 역시 행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실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대에 어진 이를 기른 것은 반드시 학문에 근본하였기 때문에 덕화가 행해지고 치도(治道)가 나왔습니다.
우리 조정에서는 당(唐)나라의 옛 법을 이어 받아서 관각(館閣)의 청선(淸選)도
다만 거기에서 문자만 내놓는 구실만 하여서 명실(名實)이 바르지 아니하니, 어진 이를 부르고 인재를 길러서,
시국을 돕고 교화를 도우려고 하지마는, 앞으로 무엇을 좇아서 이것을 이루게 되겠습니까.
옛날의 명철한 임금은 허심하여 다스림을 구하듯이 어찌 일찍 천하의 인재를 다 구해서 자기의 덕을 이루지 아니하였겠습니까.
신은 지금 원하건대, 조정은 연영원(延英院)을 설치하여 사방의 어진 이를 대접하고,
공론으로 추천된 이나 숨어있는 어진 이를 반드시 불러서 우대하고,
자품을 보아 봉급을 주되 갑자기 관직은 주지 않고 다만 응조(應詔)라고 명명(命名)해서,
무릇 정사가 있으면 그들에게 맡겨서 상세히 계획을 정하게 하고,
전례(典禮)가 있으면 그들로 하여금 토론하게 하고 계획해서 진술해 올리게 하면 치란을 강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들로 하여금 여럿이 모여 절마(切磨)하여 날마다 그 재질을 다하게 하고 정부와 근신으로 하여금
서로 서로 접촉하게 하며 때로는 불러서 대해보고 치도(治道)로써 묻는다면, 그 재식과 기능을 알 수 있을 것이니,
이렇게 하여 여러 해를 살펴보면 인품은 더욱 분간될 것입니다.
그런 뒤에 어진 이는 위(位)에 나아가게 하고, 재능이 있는 이는 직책을 맡기게 하되, 군현(郡縣)의 원도 맡기고,
선비의 사표(師表)도 삼을 것이니, 덕업이 더욱 특이한 사람은 점점 나아가게 하여
수신(帥臣: 큰 신하를 말함)과 직사(職司)의 임을 맡기게 한다면, 보필도 될 수 있고,
공경도 될 수 있어서, 어디라도 다 맞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동류(同類)를 끌고 같이 나아가게 되어, 초야에 남아 떨어져 있는 어진 이가 없을 것이니,
폐하의 어진 이를 높이고 선비를 대우하는 마음이 이 천하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이를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수족이 구비되어야 사람이며,
어진 신하가 보필해야 임금이 성스럽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열명(說命)편. 하동)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수족이 구비되어야 사람이 이루어지고, 어진 신하가 보필해야 임금이 성스러워진다." 하였습니다.

옛 선정(先正)인 보형(保衡: 벼슬 이름. 이윤(伊尹)의 벼슬)은 우리 선왕을 흥기시켰는데[作]그가 말하기를,
" 내 능히 임금으로 하여금 요·순이 되게 하지 못하면 마음의 부끄러움이 거리에서 종아리 맞는 것과 같으며,
한 사람이라도 얻지 못하면 이것은 나의 허물이라 하여, 우리 열조(烈祖)를 도와서 황천에 다다르게 하였으니,
네가 거의 나를 밝게 도와서[保] 아형(阿衡)으로 하여금 상(商)나라의 아름다움을 혼자 하게 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채씨는 말하기를, "선정(先正)은 선세의 장관을 한 신하요, 보(保)는 편하게 한다는 뜻이니, 보형(保衡)은 아형(阿衡)이란 말과 같은 것이다.
작(作)은 흥기시키는 것이요, 거리에서 종아리를 맞는다는 것은 매우 부끄럽다는 것이요, 얻지 못한다는 것은 그 있을 곳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글은 고종(高宗)이 이윤의 말을 들어서 이윤과 같이 해달라고 부열에게 바라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임금은 어진 이가 아니면 다스리지 못하고, 어진 이가 임금이 아니면 먹지 못하는 것이니,
너는 능히 너의 임금이 선왕을 잇게 하여 길이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라." 하니,
열(說)이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되, "감히 천자의 아름다운 명을 그대로 선양(宣揚)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채씨는 말하기를, "이 말은 군신이 서로 잘 만나기 어려운 것이 이와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니,
고종은 성탕(成湯)으로써 자기(自期)를 하고, 부열은 이윤(伊尹)으로써 자임(自任)하여, 군신이 서로 근면·장려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아뢰기를, "임금은 정승의 기용을 의논하는 것을 그 직분으로 삼고, 재상은 임금을 바르게 하는 것을 그 직분으로 삼아서,
양자가 각각 그 직분을 다하여야만 체통이 바르게 되고, 조정의 권위가 높아져서,
천하의 정사는 반드시 한 군데서만 나오게 되고 여러 군데서 나오는 폐단이 없게 될 것입니다.
만일 재상을 의논하는 이가 자신에게 적합한 이만 구하고, 그 자신을 바르게 해 주는 이를 구하지 않거나,
그가 아끼는 이만 취하고 그가 두려울 만한 이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는 임금이 그 직분을 잃은 것이요,
마땅히 임금을 바르게 해야 할 이가 옳은 말을 드리고 그른 것을 버리게 하는 것을 일로 삼지 않고,
임금의 기분이나 맞추어 주는 것으로써 능란한 체하거나, 세상을 경영하고 일을 맡아보는 것을 마음으로 삼지 아니하고,
자신을 잘 보여 사랑을 굳게 하는 것을 계책으로 삼는다면 이는 재상이 그 직분을 잃은 것입니다.
양자가 모두 그 직분을 잃어서 체통이 바로 서지 아니하고 강기(綱紀)가 서지 아니한다면 좌우의 근신들은 다 위세(威勢)를 절롱(竊弄)하여,
정체(正體)가 날로 소란하게 될 것이고, 국세(國勢)가 날로 줄어들 것이며,
비록 비상한 화가 모르는 가운데 잠복해 있더라도 위는 위대로 안일하게 여기고, 아래는 아래대로 좋아 날뛰며,
이것을 염려할 줄을 모를 것입니다.
어찌 그 소이연(所以然)을 살펴서 이미 반복하여 쓰였던 사람을 도태시키거나, 앞으로 쓸 사람을 살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임금을 능히 바르게 해주고 두려울 만한 이를 발탁해 쓴다면 반드시 스스로 자기 자신을 무겁게 하는 선비를 얻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그 사람에게 책임지우는 것이 무겁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요, 그 사람에게 책임지우는 것이 이미 무거우면,
그 사람은 옳은 말은 드리고 그른 것은 버릴 것이며, 뜻을 다해서 세상을 경영하고 일을 맡아서 성심껏 실행할 것입니다.
또 천하의 곧아서 믿음직하고 못할 말을 능히 할 수 있는 선비를 발탁하여 대간(臺諫)과 급사(給舍)로 삼고,
그 의논을 참작하되, 마음가짐이나 보고 듣는 것은 항상 어진 사대부(士大夫)에만 두고 뭇 소인들에게 두지 않도록 하며,
선악을 상벌하는 권리는 항상 조정에 있고 사문(私門)에서 나오지 않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고서도 임금의 위엄이 서지 않고 국세가 강하지 않거나,
강유(綱維:삼강(三綱)과 사유(四維))가 서지 않고 형정(刑政)이 맑지 않거나,
민력이 넉넉하지 않아서 군정(軍政)이 닦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신은 믿을 수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주자의 봉사(封事) 가운데 있는 말이기 때문에 신이라고 일컬었습니다.

맹자는 제(齊)나라 선왕(宣王)을 만나서 아뢰기를,
"거실(巨室)을 지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공사(工師)를 시켜서 큰 나무를 구해 오게 할 것이고,
건축사가 큰 나무를 얻었다면 왕께서는 기뻐하고 그 나무가 제 구실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장인(匠人)이 그 나무를 깎아서 작게 만들면 왕께서는 성을 내고 그 나무가 제 구실을 해내지 못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려서 배우는 것은 장성해서 행하려고 하는 것인데,
왕께서 '네가 배운 것은 아직[姑]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고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거실(巨室)은 큰 집이요, 공사(工師)는 목수의 어른이다.
장인(匠人)은 뭇 목수요, 고(姑)는 아직이란 뜻이다.
이 글은 어진 이가 배운 것이 큰데 왕이 이를 적게 하려고 한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지금 여기에 박옥(璞玉)이 있다면 그것이 1만 일(鎰)이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옥인(玉人)을 시켜서 다듬게 할 것이다.
국가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네가 배운 것은 아직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 한다면,
옥 다루는 사람에게 옥 다듬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박(璞)은 돌 속에 들어 있는 옥이요, 일(鎰)은 스무[二十]냥이다. 옥의 갑이 1만 일이란 말입니다.
옥인(玉人)은 옥을 다듬는 공인(工人)이다.
옥을 감히 스스로 다듬지 못하고 잘 다듬는 이에게 부탁하는 것은 옥을 아껴서 그런 것인데,
국가를 다스리는 데서는 사욕을 따르고 어진 이에게 맡기지 아니하니, 이것은 국가를 아끼는 것이 옥을 아끼는 것보다 못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옛날의 어진 이는 임금이 항상 그 어진 것을 배운대로 시행하지 않을까 걱정하였고,
세상의 용렬한 임금은 또 항상 어진 이가 그 임금의 좋아하는 대로 좆지 못할까 걱정한다.
이러므로 군신이 서로 만나는 것은 옛날부터 어려운 일인데, 공자와 맹자가 종신토록 임금을 만나지 못한 것은 대개 이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지혜는 쓰되 그 거짓된 것은 버리며, 그 사람의 용맹은 쓰되 그 성내는 것은 버리며,
그 사람의 어진 것은 쓰되 탐(貪)내는 것은 버릴 것이다. (예기)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임금은 사람을 쓰되 마땅히 장점은 취하고 그 단점은 버릴 것이다.
대개 중인(中人)의 재능은 장점이 있으면 반드시 단점도 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이 말은 여러 관리를 다 온전한 인재로 얻을 수 없으니, 마땅히 그 장점만을 취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개 어진 재상(宰相)을 삼가 택하여 책임을 맡기면 이루어질 것이니, 백관과 유사(有司)는 반드시 한 사람에게만 구비될 필요가 없습니다.
재상을 잘 발탁하지 못하면 정권이 비인(非人)에게 맡겨져 조정이 혼란하게 될 것이며,
유사를 반드시 완비된 인재만으로 구하려면 사람을 채용하는 길이 좁아서 여러 직책에 공석이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오늘날 사대부 중에서는 어진 이를 못 보겠다."하니,
정자가 말하기를, "사대부가 어질지 못하다고 하지말고, 조정에서 사람 쓰는 것이 어진 이를 쓰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천하의 선비는, 뜻이 조정에 있으나 재주가 부족한 이도 있고, 재주는 쓸 만하나 성의가 부족한 이도 있는데,
오늘날은 재주와 성의가 갖추어져야 사업을 이룰 수 있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예경 친신(禮敬親信)의 도에 대한 말씀

○ 정공(定公)이 묻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니,
공자는 대답하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리는 데 예로써 하며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도 충(忠)으로써 해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주자는 말하기를, "두 가지는 다 이세(理勢)의 당연한 것이니, 각자가 스스로 극진히 하려고 할 따름이다." 하였습니다.

○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임금은 신하를 부리되 그가 불충(不忠)하리라고 걱정하지 말고,
그에게 예로써 다하지 못할까 걱정할 것이며, 신하는 임금을 섬기되 임금이 무례(無禮)하리라고 걱정하지 말고,
나의 충성이 부족할까 걱정해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남의 위에 있는 이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면 알고 의심이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하고,
남의 아래에 있는 이는 자기의 한 일을 칭찬하여 기록할 만할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임금은 신하에대해 의심하지 않을 것이요, 신하는 임금에 대해 의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윤(伊尹)이 말하기를, '오직 내가 탕(湯)과 함께 일덕(一德)이 있었다.'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예기)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임금은 신하를 대접하되 겉과 속이 한결같은 까닭에 바라보면 알고,
신하는 임금을 섬기되 한결같이 충성을 다하기 때문에,
그 직분과 공업을 다 칭찬하여 기록할 만하면 위와 아래가 의심도 없고, 의혹도 없다." 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날카로운[利] 것은 금(金)을 끊으며, 마음을 같이 하는 말은 그 냄새가 난초 향기같다. 역계사(易繫辭)

주자는 말하기를, "이 말은 물질이 두 사람의 마음을 틈이 나게 하지 못하고 그 말에 맛[味]이 있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성재 양씨(誠齋 楊氏)는 말하기를, "금석(金石)은 지극히 굳은 물건이나 마음보다는 굳지 못하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돌도 깨뜨릴 수 있고, 금도 꺾을 수 있다.
(보통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해도 금석을 뚫는데, 군신이 마음을 같이 하면 무슨 일을 이룰 수 없겠습니까.)
훈(薰:좋은 냄새나는 풀)과 유(: 악한 냄새가 나는 풀)가 같은 그릇에 있으면 어린애라도 능히 그 냄새를 분별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 냄새가 같지 않기 때문이요, 남산의 난초를 가지고 북산의 난초와 섞으면,
열 사람의 황제(黃帝)도 그 냄새를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은 그 냄새가 같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유유[] 한 사슴의 울음 소리여, 들에서 풀을 뜯어 먹는구나.
내게 아름다운 손님이 왔으니 비파를 퉁기고 피리를 부노라.
피리와 생황[簧] 불어 폐백 담은 바구니筐)를 받들고(承) 손님께 드리오니[將] ,
손님은 나를 즐겨 큰 도[周行] 를 보여주니." 하였습니다. (소아(小雅) 녹명(鹿鳴)편)

주자는 말하기를, 유유()는 화평한 소리를 형언한 것이요, 승(承)은 받드는 것이요, 광(筐)은 폐백을 담는 그릇이요, 장(將)은 행한다는 것이니,
바구니에 폐백을 담아 예를 행한다는 뜻으로 술을 마실 때와 식사를 할 때 손님에게 많이 드시도록 권하는 것이다.
(빈객은 본국 신하이겠으나 제후의 사신일 때도 있습니다.)
대개 군신의 분수는 엄(嚴)한 것을 주로 하고, 조정의 예는 공경하는 것을 주로 한다.
그러나 한결같이 엄하고 공경만 하면 정이 혹시 통하지 못해서 그 충고하는 것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황이 회식하는 연회의 예를 만들어 상하의 정을 통하게 하였는데, 풍악의 노래는 녹명편(鹿鳴篇) 사슴의 우는 것으로써 흥을 일으킨 것이다.
그 예의의 두터움이 이와 같으니, 아마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으로써 대도(大道)를 보여 주기를 바란 것이다.
「예기」에 이르기를, '사사로운 은혜는 덕이 될 수 없으므로, 군자는 사사로운 은혜에 머물지 아니한다.' 하였으니,
대개 임금이 군신과 빈객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대도로써 자기에게 보여 주는 것이요,
사사로운 은혜로 자기에게 베풀어 주는 것을 덕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아, 이것이 함께 화락하면서도 음란하지 않는 까닭[所以]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대신이 친근하지 못하면 백성이 편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충(忠)과 경(敬)이 부족하고, 부귀가 과한 것이다.
이리하여 대신이 다스리지 못하고 가까운 신하가 편당을 만들 것이기 때문에, 대신은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는 백성의 길[道]이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예기(禮記))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대신이 임금을 친근하게 믿지 아니하면 백성이 그 영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편안하지 못하다.
대개 이것은 임금에 대한 신하의 충성이 부족하거나, 임금의 공경이 신하에게 부족하고, 다만 부귀가 너무 지나쳐서 그런 것이다.
이 때문에 가까운 신하들이 편당을 서로 짓고 대신의 권리를 빼앗아 그 일을 다스리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공경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백성의 바라는 의표(儀表)가 되기 때문이요, 가까운 신하가 삼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임금의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이들에게 달려 있어서, 바로 백성들에게 길이 되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 대신을 신임하되 그 사이에 아무 틈이 없으면, 일을 당해도 현혹되지 않는다는 어떤 이의 말이 있는데,
대신이 어질면 모르겠으나 만약에 불행히도 조고(趙高)·주이(朱)201)·우세기(虞世基)202)·이임보(李林甫)203) 같은 무리가 있다면,
추양(鄒陽)204)이 이른바, '편벽 되게 듣는 데서 간사한 것이 생기고,
한 사람에게 맡기는 데서 난이 일어난다.'는 말과, 범수(范)205)가 이른바, '어진 이를 질투하고 재사(才士)를 미워하여 아래를 막고 위를 가려서,
사사로운 짓을 하더라도 임금은 깨닫지 못한다.'는 말이 또 어찌 염려되지 않겠습니까." 하니,
주자는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몸을 닦으면 보는 것이 밝고 듣는 것도 밝아져 어질고, 어질지 못한 것을 속지 않으며,
<또> 어진 이를 존경하면 대신의 자리에 반드시 그리 나쁜 이는 섞이지 않을 것이다.
불행히도 혹시 실수가 있다면 속히 좋은 사람을 구해서 대체할 뿐이다.
어찌 그가 간악한 짓을 해서 나라를 패망하게 할 줄 알면서, 대신의 지위에 그대로 두어서 문서를 처리하는 직책을 맡게 하겠으며,
또 소신(小臣)들이 살피는 것만 믿고 이런 일을 방비할 수 있겠는가.

대개 어진 이를 구하기는 힘들어도 얻으면 편안한 것이니, 맡긴다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이 나면 맡기지 말 것이다.
이것이 옛 성군(聖君) 현상(賢相)들이 서로 성의를 합해서 양자가 그 도를 서로 다하여 광명정대한 업을 이룬 소이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위에서 꺼리고 두려워하여 방비하는 것이 더욱 치밀하여, 그 현혹이 더욱 심할 것이요,
아래에서 속이고 가리는 것이 더욱 교묘하여 해가 더욱 심할 것이다.
불행히 간악한 신하의 모책이 이루어지면 그 화는 실로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며,
다행히 임금의 위엄이 간신을 극복한다 하더라도 소위 '편벽되게 듣고 한 사람에게 맡기는 데서 오는 폐단'이 아래를 막고 위를 가린다면,
간악한 자가 대신 가운데에 있지 않으면 좌우의 근신 가운데에 있을 것이니,
그 나라의 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 위태로운 일이로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소인(小人)을 멀리하는 데 대한 말씀

○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 하였습니다. (곤괘(坤卦) 초륙효사(初六爻辭))

정자는 말하기를, "음(陰)이 엉기어 비로소 서리가 되는데, 서리가 내리면 음이 차츰 성하여 굳은 얼음에 이를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말은 소인이 처음에는 비록 미약하다 할지라도 자라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자라면 성하여지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선을 쌓는 집은 반드시 여경(餘慶)이 있을 것이요, 불선을 쌓는 집은 반드시 여앙(餘殃)이 있을 것이니,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거나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것은 하루 아침 하루 저녁의 까닭은 아니다.
이것은 종전부터 점점 커져 내려온 것인데, 다만 분변하기를 일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정성(鄭聲)을 내쫓고[放] 영인(人)을 멀리 할 것이니,
정성은 음탕하고 영인은 위태롭기[殆]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주자는 말하기를, "방(放)은 금절(禁絶)한다는 것이요, 영인(人)은 비굴하고 아첨하여 말만 잘하는 사람이며, 태(殆)는 위태롭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장씨(張氏)는 말하기를, "정성과 영인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지킬 바를 잃게 하는 까닭에, 내쫓고 멀리 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영인이란 아첨하고 순종할 따름인데 가까이 하면 반드시 위태롭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영인은 의(義)가 있는 곳을 모르고 이욕(利慾)만 따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교묘한 말로 아첨하면 반드시 패역(悖逆)하려는 마음이 없다가도,
그 지위를 잃을 까 끈심하는 데 이르러서는 무슨 짓이라도 못할 짓이 없어서, 마침내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망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자도 모두 처음에는 아첨하고 순종하는 자들이다." 하였습니다.

○ 장씨(張氏)는 말하기를, "소인으로서 국가에 화를 주는 것으로는 유악(柔惡)한 이가 더욱 두렵다.
강악(剛惡)한 이는 흉악하고 강폭하므로, 재주가 평범한 임금이라도 오히려 두려워하여 멀리 하기 때문에 그 해되는 것이 그래도 얕지마는,
오직 유악한 자는 아첨하고 간사하여 사람들로부터 희애(喜愛)를 받으면서 가깝게 하니 총명한 임금도 오히려 의혹되어 나라가 망하여도 깨닫지 못한다.
공자가 영인(人)을 들어서 말한 것도 소인 중에서도 심한 자를 든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일찍이 금중(禁中)의 나무를 구경하다가 말하기를, "아름다운 나무로구나." 하니,
우위 대장군(右衛大將軍)인 우문사급(宇文士及)206)도 곁에서 그 나무를 찬탄하기를 마지않은지라,
태종이 정색하여 말하기를, "위징(魏徵)이 일찌기 나를 권하여 영인을 멀리하라고 하였는데,
영인이 누군지 알지 못하였더니, 이제 참으로 알았구나." 하니,
사급(士及)이 사과하여 말하기를, "남아(南衙)의 군신들은 폐하를 면접하여서도 <폐하의> 말을 반박하고 조정에서도 폐하의 말을 다투니
폐하께서 꼼짝을 못하셨습니다.
지금 신이 다행히 좌우에 있어서 조금 폐하의 마음을 순열(順悅)케 안해드린다면 폐하가 비록 천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의 뜻이 풀렸다고 합니다.
사신(史臣)이 이 말에 대해 평하기를, "태종은 사급의 아첨하는 것을 알고도능히 물리치지 못하였으나,
재주가 평범한 임금은 아첨하는데 의혹되지 않는 것마저 어려울 것이다." 하였으며,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사급의 말이 임금에게는 짐독(毒)207)과 같은 것이다.
대개 성스럽고 밝은 세상에는 충성스럽고 바른 말하는 이가 조정에 가득 차서 임금의 언동이 조금 어긋나면 즉시 경계하는 말을 하니,
천자의 귀한 몸으로는 무료할 것 같지마는 매양 몸을 지극히 편안하고 영화스러운 곳에 두게 되며,
반대로 혼란스러운 세상에는 아첨하는 말이 귀에 차서 사치를 다하고 욕심대로 하되, 아랫사람으로 감히 간하는 이가 없으니,
천자의 귀한 몸으로는 뜻에 맞을 것 같지마는, 매양 몸을 지극히 위태롭고 어려운 가운데 둔다.
그러면 임금으로서는 어느 것을 택해야 하겠는가.
사급 같은 이는 망한 수(隋)나라의 남은 요물이라 그렇게 심하게 책망할 것까지는 없지마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태종이 그 아첨하는 것을 알고도 버리지 못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잠계(箴戒)가 많은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이는 특히 안으로는 욕망이 많으면서 밖으로는 인의(仁義)를 베푸는 체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임금이 마음을 바루고 몸을 닦아서 학문을 좋아하고 선한 것을 즐긴다면, 잠계가 귀를 기쁘게 하는 것은
추환(芻)(풀을 먹는 마소나 곡물을 먹는 개·돼지 따위) 이 입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찌 무료히 생각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만약 안으로는 수기(修己)의 실(實)이 없고, 거짓으로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이는 잠계가 오면 억지로 좇는 체하지마는,
심중에는 실로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오래도록 변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당(唐) 현종(玄宗)이 한휴(韓休)208)를써서 몸이 수척해진 까닭에 마침내 천보(天寶)의 난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목왕(穆王)이 백경(伯)209)에게 명하기를,
"간사한 사람을 가까이 하여 이목(耳目)의 관직으로 삼거나, 선왕의 법이 아닌 것으로써 임금을 인도하지말라."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경명(命))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이 글은 대개 목왕이 스스로 그 덕이 견고하지 못한 것을 알아서
좌우의 사람들이 곁에서 이단(異端)으로써 자기의 마음을 방탕하게 할까 두려워서 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마음을 꾸준히 계속 하지 못하고는, 조보(造父)로 하여금 말을 몰게 하여 천하를 두루 유랑(流浪)하였다.
그는 미리 경계할 바를 알아서 근심과 생각이 깊고 길었으되, 오히려 자신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사람의 마음이란 가지면 있고 놓으면 잃어버리는 그 무상함이 두렵도다." 하였습니다.

자장(子張)이 명철(明哲)한 것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는 말하기를, "차츰 차츰 스며들어오는[浸潤] 참소[]와, 자신에게 직접 자극[膚受]을 주는 탄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처리하지 않는다면
명철하다고 말할 수 있고, 차츰차츰 스며들어오는 참소와 자신에게 직접 자극을 주는 탄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처리하지 않는다면
보는 것이 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논어(論語))

주자는 말하기를, "침윤(浸潤)이란 물이 차츰차츰 스며들어오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갑자기 서두르지 않는 것을 말한 것이요,
참()은 남의 행실을 헐뜯는 것이요, 부수(膚受)란 살과 살갗에 닿는 것으로 이해(利害)가 내몸에 직접 절실한 것을 말한 것이다.
소()는 자기의 원통함을 하소연하는 것이다.
남을 헐뜯는 이의 그 참소하는 말이 갑자기 서두르지 않고 차츰차츰 스며들어오면, 듣는 이가 그 들어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믿기를 깊이 하며, 원통한 것을 하소연하는 자가 급박하게 몸에 절실하도록 하면, 듣는 이가 미처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그 하소연에 동정심이 발한다.
이 양자는 살피기가 어려운데 이것을 잘 살피면, 그 마음이 밝고, 가까운데 가리워지지 아니했음을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난이 처음 생겨나는 것은 참언(僭言)을 비로소 받아들인[涵] 때문이요, 난이 또 생겨나는 것은 군자가 참언을 믿기 때문이다.
군자가 참언에 진노하면 난이 빨리[] 그칠[沮] 것이고, 군자가 어진 이의 말에 기뻐하면 난이 빨리 그칠 것이다." 하였습니다. (소아(小雅) 교언(巧言)편)

주자는 말하기를, "참시(僭始)란 것은 불신(不信)의 발단이요, 함(涵)이란 것은 용납한다는 것이며,
군자는 왕을 가르키는 것이요, 천()은 빠른 것이요, 저(沮)는 그치는 것이요, 지(祉)는 <어진 이의 말에> 기뻐한다는 말이다.
난이 일어나는 까닭은 참언하는 자의 믿을 수 없는 말이 처음들어갔는데, 왕이 용납하고 그 진위(眞僞)를 살피지 않기 때문이요,
난이 또 일어나는 것은 그 참언을 믿고 그것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군자가 참언하는 자의 말을 듣고 만일 노하여 그를 책하면 난은 빨리 그칠 것이요,
어진 이의 말을 듣고 만일 기뻐하여 그 말을 용납하면 난이 빨리 그칠 것이다.
그런데 용납하는데 결단이 없어서 참언과 신언(信言)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참언하는 자는 더욱 승(勝)하여 가고, 군자는 더욱 병들게된다." 하였습니다.

○ 소씨(蘇氏)는 말하기를, "소인이 그 임금에게 참소할 적에는 반드시 차츰차츰 그 말이 스며들어가게 하는데,
처음에는 진언(進言)을 하여 시험을 해본다. 임금이 용납하여 거절하지 아니한다면 그말을 꺼리지 않은 줄을 알고 다시 참언을 하는데,
이렇게 하여 임금이 믿게 되면 난이 일어난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임금이 진실로 어진 이를 쓰려고 하면 반드시 소인을 멀리 해야 합니다.
그런 뒤라야 군신의 사이가 시종 간격이 없어서 치도(治道)를 이룰 수 있습니다.
만일 약을 엄격히 미워하지 아니하여, 소인으로 하여금 참설(讒舌)을 놀리게 한다면 군자가 어찌 편안히 조정에 서겠습니까.
대개 참언하는 자는 남의 거동을 잘 살피고 둔갑을 잘하여 겉으로는 돕고 속으로는 누르기도 하여,
처음에는 칭찬을 하다가도 나중에는 훼방을 하여, 무죄한 사람을 모함하여 교묘하게 명목을 세우며,
독실하게 행하는 이를 가리켜 위선(僞善)이라고하며, 도를 지키는 자를 가리켜 위학(僞學)이라고 하고,
은거하여 뜻을 숭상하는 사람을 가리켜 세상을 업신여긴다고 하며,
나아가기를 어렵게 여기고 물러나가기를 쉽게 하는 사람을 가리켜 임금에게 잘보이기 위해 하는 짓이라고 하며,
조정에서 바른 말 하는 사람을 가리켜 곧은 것을 판다[賣]고 하며, 국사에 진심하는 사람을 가리켜 전천(專擅)한다고 하며,
어진 이를 천거하여 협력하는 사람을 가리켜 붕당(朋黨)이라고 하며,
묵은 폐단을 개혁하는 사람을 가리켜 정치를 어지럽게 한다고 하니, 선량한 사람을 모함하는 수단은 이루 다 열거할수 없습니다.
임금으로서 만일 깊이 미워하여 이것을 통절(痛絶)하지 않고, 바로 함께 수용하여 같이 그리는 계책을 쓴다면,
점점 그 꾀에 빠져 마침내 뭇 간신이 모여들고 군자는 멀리 물러가게 됩니다. 아! 두렵지 않습니까.

이윤(伊尹)이 유신(有莘)의 들에서 밭을 갈고 살면서 요·순의 도를 즐거워하여, 의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
천하를 녹으로 준다 하더라도 돌아다보지 않았고, 말 천 사(千駟:수레 하나에 말 4마리가 달린 것을 1사(駟)라 함)를 매어 놓고 기다린다하여도
보지 않았으며, 의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 한 오라기의 풀도 남에게 주지 않고 한 오라기의 풀도 남에게서 취하지 않았습니다.
탕왕(湯王)이 사람을 시켜 폐백을 보내 그를 초빙하니, 태연하게 말하기를 태연하다고 함은 스스로 얻을 욕심이 없는 모양입니다.
"내가 어떻게 탕왕의 초빙하는 폐백을 받겠는가.
내가 어찌 밭 가운데 살면서 요·순의 도를 즐거워하는 것과 같겠는가." 하였습니다.
탕왕이 세 번째 사람을 시켜 초빙하러 가니, 그제서야 번연(幡然)히 태도를 바꾸고서, 말하기를,
"내가 밭 가운데 살면서 이렇게 요·순의 도를 즐거워하는 것이 어찌 이 임금을 요순의 임금으로 만들게 하는 것과 같겠으며,
이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들게 하는 것과 같겠는가. 내가 어째 몸소 직접 보는 것 같겠는가.
하늘이 이 백성을 낳을 적에 선지자(先知者)로 하여금 후지자를 일깨워 주게 하고, 선각자(先覺者)로 하여금 후각자를 일깨워 주게 하였다.
나는 천민의 선각자다. 나는 앞으로 이 도로써 이 백성을 일깨워 주련다.
내가 그들을 일깨워 주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는 천하 백성들 중 필부필부(匹夫匹婦)까지라도 요·순의 덕택을 입지 않으면 마치 자기가 그들을 웅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이 생각하였는데,
그는 천하의 중책을 자임(自任)하는 것이 이와 같아서 탕왕을 도와 천하의 왕노릇을 하였습니다.
탕왕이 붕(崩)하자 태정(太丁)은 서지 못하고 (탕의 태자인데 임금이 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외병(外丙)은 2년을 <왕위에 있었고>, 중임(仲任)은 4년을 <왕위에 있었으며>, (외병과 중임은 다 태정의 아우입니다.)
그 뒤가 태갑(太甲)인데, (태정의 아들인데 왕이 되었습니다.)
탕왕의 전형(典刑)을 전복하므로 이윤이 그를 동궁(桐宮)210)으로 추방하니,
그는 3년만에 자기의 허물을 회개하여 스스로 원망하고 스스로를 다스려서[艾], 인(仁)에 처하고 의(義)에 옮기어 이윤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박(:서울의 이름)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윤은 이미 정권을 임금에게 돌리고,
벼슬을 그만두면서 떠나가기에 앞서 태갑의 덕이 순일하지 못하여 비인(非人)을 임용할까 염려하여
함유일덕(咸有一德) (서경(書經)의 편명입니다.) 을 지어 훈계하였습니다.

○ 낭야(琅) 땅의 제갈량(諸葛亮)211)은 양양(襄陽)의 융중(隆中)에 우거하여
매양 스스로 관중(管仲)과 악의(樂毅:중국전국시대의 명장)에게 비교하니, 당시 사람들이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소열(昭烈:중국 삼국시대의 유비)이 형주(荊州)에 있을 때에 양양의 사마휘(司馬徽)212)에게 선비를 물으니,
사마휘가 말하기를, "유생(儒生)·속사(俗士)가 어찌 시무(時務)를 알겠습니까.
시무를 아는 것은 준걸(俊傑)이어야 하는데 이 부근에 복룡(伏龍)과 봉추(鳳雛)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소열이 묻기를, "누구인가." 하니, 그는 말하기를, "제갈공명(諸葛孔明)과 방사원(龐士元)213)입니다." 하였습니다.
서서(徐庶)214)가 소열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와룡(臥龍)인데 장군은 어찌 그를 보기를 원합니까." 하니,
소열이 말하기를,"그대가 같이 데리고 오오." 하였습니다.
서서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나아가서 보아야지 굽혀오게 할 수 없습니다.
장군이 마땅히 찾아가셔서 보아야 합니다." 하였습니다.
소열은 이에 양(亮)에게 나아가기를 무려 세 번이나 하여 비로소만나 보고서,
적을 토벌하고 나라를 부흥시키는 계책을 물었는데, 좋다고여겼으므로 양(亮)과 정의가 날로 좋아졌습니다.
소열을 도와서 익주(益州)를 취하였고, 소열이 황제의 위에 오르자 양을 승상(丞相)으로 삼았습니다.
소열이 임붕(臨崩)할 때, 양에게 이르기를, "그대의 재능이 조비(曺丕)215)보다 10배나 되니,
반드시 국가를 편안하게 하여 마침내 대사를 정할 것이다.
사자(嗣子)를 도울 만하거든 돕고, 만일 그가 임금 노릇을 못하겠거든 그대가 스스로 취하여 임금을 하라." 하였습니다.
양이 눈물을흘리면서 말하기를, "신은 감히 고굉(股肱: 가장 믿어주는 신하)의 힘을 다하고 충정(忠貞)의 절개를 본받아 죽음으로써
그 뜻을 이어 받들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양이 후제(後帝)에게 표(表)를 올려 밀하기를, "신은 본래 서민(庶民)으로 몸소 남양(南陽)에서 밭을 갈고 살며
구차히 성명(性命)을 난세에보존하면서 영달을 제후에게 구하지 않았는데,
선제(先帝)께서 신을 비천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스스로 몸을 굽혀,
신을 세 번이나 초려(草廬:초가집)로 방문하여 신에게 당세의 일을 물으시므로,
드디어 감격하여 선제께 적을 무찌르기를 허락하였습니다.
선제께서 신의 근신하는 것을 아시고 임붕할 때에 대사를 부탁하시므로,
명을 받은 이래로 밤낮 걱정이 되옵고 부탁하신 일에 대해 효과가 없어 현명한 선제를 손상할까 두렵습니다.
이제 마땅히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북으로 중원(中原)을 평정하여 한실(漢室)을 부흥시키고, 옛 도읍에 돌아와야 할 것인데,
이것은 신이 선제께 보답하고 폐하께 충성하는 직분입니다.
신은 죽도록까지 몸과 마음을 다하겠사오나, 성패(成敗)와 이둔(利鈍)은 신이 미리 알 수 없습니다." 하고는,
군사를 내어 위(魏)나라를 치다가 군중에서 죽었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어진 이는 국가의 기용(器用)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면서 어진 이를 구하지 않는 것은 노[楫]를 버리고 하천을 건너려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이윤과 제갈량에 대한 출처의 사적을 위에서 열거하였는데, 이것으로도 그 나머지는 알 수 있습니다.
이윤이 유신(有莘)의 들에 있을 때에 몸소 밭갈고 도를 즐거워하여 당세에 뜻이 없는 것 같았고,
성탕이 재차 초빙하러 올 적에도 뜻이 그래도 오히려 굳어서 가지 않을 생각이 있었는데,
그 정성이 매우 간절하므로 그제서야 번연(飜然)히 부르는 데 응하였습니다.
그래서 뜻을 같이 하고 덕이 합하여 황천에까지 감동하였으며, 재상을 역임한 지 수대에 걸쳐 임금을 추방하기까지 하였으나 혐의를 받지 않았고,
진실한 덕업이 이미 끝나고 벼슬을 그만두게 되면서도 오히려 간절한 훈계를 진술하며, 늙도록 더욱 독실하였습니다.
제갈량은 융중(隆中) 땅에 있을 때는 무릎을 안고〔抱膝〕 길게 휘파람을 불면서 우주에 눈을 높이 두고 몸을 마치려고 하였으므로,
소열이 두 번째 찾아가도 오히려 은둔(隱遁)할 생각이 견고하였으나, 마음 가운데 그를 좋아하여 세 번 가기를 게을리하지 아니하니,
그제서야 마음을 돌리고 몸을 맡기자 모책이 서로 부합하였으니, 재능을 다하고 정성을 극진히 함으로써 회복하기를 기약하였습니다.
유주(幼主:후제인 유선(劉禪))를 도우면서부터는 정책이 자기에게서 나왔는데 이간하는 말이 없었고, 강대한 위나라도 겁을 내었으며,
거의 예악(禮樂)에 가까왔습니다. 이 두 사람은 비록 도에는 정추(精粗)가 있고 덕에는 대소가 있다 하더라도, 임금을 얻어 충성을 다한 것은
한 가지이니 후세의 미칠 바가 아닙니다. 이 어찌 두사람의 현명한 것만으로 그렇게 되겠습니까.
실은 임금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건대, 탕왕이 이윤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원성(元聖)을 구하여 같이 힘을 다했다." 하였으니,
 지극히 감복한 것이며, 소열이 양(亮)을 칭찬하여 말하기를,"나에게 공명(孔明)이 있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이 있는 것과 같다." 하였으니,
그 매우 즐거워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신이 서로 이렇게 마음이 맞으니 두 사람이 어찌 독실하게 서로 돕지 않았겠습니까.
후세의 임금은 어진 이를 좋아하는 것이 성탕이나 소열 같은 이가 없기 때문에,
성현의 학자와 호걸의 재사(才士)가 흔히 자기 집에서 늙어버리게 되고, 시국을 엿보고 세력을 알아서 구차하게 아부하여,
용납되기를 바라는 이가 도도(滔滔)하게 뜻을 얻게 되었으니, 어찌 세상을 다스리겠습니까.
하지만 임금은 반드시 먼저 궁리(窮理)와 지언(知言)을 하여 권도(權度)가 틀리지 않아야만 어진 이를 알아볼 수 있고 ,
아는 것이 심히 밝아서 폐부(肺腑)까지 통찰하여야만 서로 믿을 수 있으며,
믿음이 심히 돈독하여 부절(符節:신부(信符)와 같음)같이 합하여야만 서로 기뻐할 수 있고,
기뻐하고 심히 가깝게 되어 은혜가 부자(父子)같이 되어야만 위임할 수 있으며,
그에게 위임하기를 심히 성실성 있게 하여 두 가지 마음을 먹지 않아야만 도를 행하고 다스림을 지극히 할 수 있어서,
오직 하고 싶은 대로 한 시대를 훈도(薰陶:임금이 백성을 교화함)하고 그 여운을 만세에 끼칠 수 있습니다.
군신이 서로 만나는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5제216)·3왕도 모두 이 도에 말미암았으니 후왕은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후세에 비록 소강(小康)한 임금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쓰지 않고 혼자서는 다스리는 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임금이 선왕의 성덕에 미치지 못하고, 신하가 고인의 현 명한 것만 같지 못하기 때문에, 공렬(功烈)이 비열해지는 것을 면하지 못합니다.
이와 반대로 이미 수기(修己)의 공부가 없고 또 사람을 아는 통찰력이 어두워,
허명(虛名)을 취하기도 하고 순종을 기뻐하기도 해서, 혹시 좋은 이가 있어도 좋아하기를 끝까지 하지 못하고,
맡기면서도 의심을 하며,의논이 때에 어긋나도 오히려 작록으로 붙들고, 받드는 것이 임금을 그릇되게 하여도 오히려 충량(忠良)하다고 하며,
국사가 날로 그릇되어도 상하에서 모두 근심은 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징계하는 사람을 의심하고 꺼리어
자기가 오로지 하고 남에게 맡기지 아니하며, 총명이 넓지 못하고 세세한 일까지도 다 간섭하여 벼슬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여
서무(庶務)만 떨어뜨리면 난망(亂亡)으로 돌아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임금이 마땅히 깊이 경계하여야 할 것이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잘 살피시옵소서.

 

< 주 >

179) 「주역」 64괘중 38번째 괘 이름이다.

180) 떳떳한 윤리라는 뜻으로 인륜(人倫)을 가리킨다.

181) 1032∼1085년 사이 생존했던 북송(北宋)의 큰 학자. 자는 백순(伯淳),
시호는 순공(純公). 명도(明道) 선생이라 불리웠으며, 아우 이()와 같이 주렴계(周濂溪)의 문인이다.
이 두 형제를 이정(二程)이라 부르기도 하고 존칭으로 정자(程子)라고 하기도 한다.

182) 「주역」 64괘 중 18번째 괘 이름.

183) 은(殷)나라의 명재상. 탕(湯)의 세번의 초빙을 받고 탕의 재상이 되어 걸(傑)을 치고 탕으로 하여금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하였다.

184) 주(周) 나라의 명신(名臣).

185) 한(漢) 고조(高祖)의 충신. 자는 자방(子房). 시호는 문성(文成).
한 고조를 도와 천하를 통일함. 소하(蕭河)촵한신(韓信)과 함께 한(漢)의 3걸이라 칭한다.
만년에는 벼슬에서 물러나 신선술(神仙術)을 익히며 고고하게 살다가 여생을 마쳤다.

186) 전한(前漢)의 학자. 자는 중옹(仲翁). 춘추학(春秋學)에 밝았다고 한다.
선제(宣帝)때에 박사(博士)가 되고 뒤에 태자(太子)의 태부(太傅)가 되었는데
재직한지 5년만에 벼슬이 높아지고 이름이 멀리 나면 후회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 하고는
벼슬을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가서 나라에서 내려준 재산을 가지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잔치하고 즐겁게 보내며 여생을 마쳤다.

187) 중국 후당(後唐)시대 남창(南昌)사람. 자는 유자(孺子).
집이 가난 하였으나 고고하게 숨어 살면서 평생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았다.
태수(太守) 진번(陳蕃)이 평소에는 손님을 접대하지 않았는데 서치(徐穉)가 찾아오면
특별히 자리를 하나 마련하여 정중하게 예우하였고 서치가 가면 그 자리를 도로 매달아 두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남주(南州) 고사(高士)로 일컬어졌다.

188) 중국 동한(東漢) 시대 진류(陳留) 사람. 자는 구룡(九龍)이다.
집이 가난하여 칠공(漆工)노릇을 하였지만 채옹(蔡邕)등이 그 그릇을 매우 높이 평가하였다.
뒤에 나라에서 벼슬을 주어 누차 불렀으나 모두 응하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며 깊이 숨어 살았다.

189) 중국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은자(隱者). 성은 육(陸), 이름은 통(通). 접여는 그의 자(字)이다.
소왕(昭王) 때에 정치의 질서가 없고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일부러 머리를 풀어헤치고 거짓 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벼슬을 하지 않았다.

190) 하(荷)는 짊어졌다는 뜻이고 궤()는 초기(草器)로서
공자(孔子) 당시에 궤를 짊어지고 공자의 집 문앞을 지나가며 비평하였던 은사(隱士)를 가리킨다.
이 은자는 공자를 향하여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둘 일이지 굳이 자기의 뜻을 펼려고 억지로 애쓰는 것은 비루한 일이라고 비평하였다.

191) 중국 진(晉)나라 장평(長平) 사람. 자는 심원(深源).
지식이 높고 인품이 깨끗하여 약관(弱冠) 시절부터 명성을 떨쳤다.
오주(五洲)의 도독(都督)을 지내고 중원(中原)을 평정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삼았으나
요양(姚襄)을 징벌하다 패배한 뒤 환온(桓溫)의 모함에 걸려 파직당하고 서인(庶人)이 되었다.

192) 중국 송(宋)나라 영천(潁川), 즉 허창(許昌) 사람. 일찌기 호안국(胡安國)선생을 사사하였고 유학(儒學)에 정통하였다.

193) 춘추시대(春秋時代) 정(鄭) 나라의 음란한 음악이다.

194) 옛날에 종묘(宗廟) 궁중에서 쓰던 고전음악이다.

195) 중국 남송(南宋)의 유학자. 금계(金谿) 사람. 자는 자정(子靜) 호는 상산(象山)이다.
그의 학문은 덕성(德性)을 위주로 하고 저술(著述)을 일삼지 않았으며 심즉리(心卽理)의 유심론을 주창하였다.
주자(朱子)와는 서로 대립되는 학문체계로서 당시 일대 논전을 벌렸던 아호(鵝湖)에서의 모임은 유명하다.

196)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어진 신하로 이유(夷維) 사람이다. 이름은 영(). 시호는 평(平).
자는 중(仲)으로 안평중(晏平仲)이라 불리기도 한다.
제나라의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등 삼대에 걸쳐 섬겼는데 근검과 절약을 바탕으로 생활하고 또 직간(直諫)을 자주하였다.
호구(狐) 한 벌 을 가지고 30년을 입은 그의 고사는 유명하다.

197) 중국 송(宋)나라 철종(哲宗, 1094∼1098)의 연호(年號)이다.

198) 중국 송(宋)나라 문인촵정치가. 여릉(廬陵) 사람으로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또는 육일거사(六一居士)이다.
참지정사(參知政事)촵태자소사(太子小師) 등을 역임하다가 왕안석(王安石)의 개혁에 반대하여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저서에 『신당서』(新唐書), 『모시본의』(毛詩本義), 『육일시화』(六一詩話) 등이 있다.

199) 중국 당(唐)나라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의 연호(年號)이다.

200) 중국 당(唐)나라 남양(南陽) 사람으로 현종(玄宗)때 안록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일으켜
수양태수( 陽太守) 허원(許遠) 등과 합세해서 싸워 적을 토벌하는데 크게 공을 세웠다.

201) 중국 양(梁)나라 사람으로 자는 언화(彦和)이다.
무제(武帝)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산기상시(散騎常侍)를 거쳐 시중(侍中)에 올랐다.
조의(朝儀)·국전(國典)·조고(詔誥)·칙서(勅書) 등을 모두 한 손에 장악한 채
재물을 탐하고 뇌물을 좋아하여 임금을 기만하는 일이 잦았으므로 당시 조신(朝臣)들이 모두 심히 미워하였다.

202) 중국 수(隋)나라 사람. 자는 무세(茂世). 양제(煬帝) 때에 내사시랑(內史侍郞)이 되었다.
국가의 기밀을 전담하면서 임금에게 사건을 사실대로 보고 하지 않았으며,
또 매관(賣官) 매직(賣職)을 자행하였으므로 조야(朝野)의 질시와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203) 중국 당(唐)나라 사람으로 호는 월당(月堂)이다.
성품이 교활하고 권모 술수에 능하였는데 현종(玄宗) 때에 벼슬이 병부상서(兵部尙書)·겸중서령(兼中書令)에 이르렀다.
환관(宦官)·비빈(妃嬪)들과 결탁하여 임금의 동정(動靜)을 낱낱이 알아냈으므로 언제나 임금의 비위를 잘 맞추었다.
19년 동안 조정에 있으면서 정권을 제멋대로 휘둘러 끝내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일으키게 하는 장본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204) 중국 한(漢)나라 임치(臨淄) 사람. 지략과 기개가 있었다.
처음에 오왕(吳王)을 섬기가 이지(異志)가 있는 것을 보고 간하여도 듣지 않으므로 뒤에 양(梁)으로 가서 효왕(孝王)을 섬겼다.

205)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위(魏)의 변설가(辯說家). 자는 숙(叔).
진(秦)의 소왕(昭王)때 대신(大臣)이 되어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을 써서 제후(諸侯)들을 침략하였다.

206) 중국 당나라 사람. 우문(宇文)은 성, 사급(士及)은 이름으로 자는 인인(仁人)이다.
수양제(隋煬帝)의 사위가 되었으며 당나라에 벼슬하며 전중감(殿重監) 등을 역임했다.

207) 짐() 새의 깃과 털을 술에 담가서 만든 죽이는 독. 심히 지독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208) 중국 당(唐) 현종(玄宗)의 명신(名臣). 장안(長安) 사람으로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황문시랑(黃門侍郞)·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등을 역임하였는데 사람됨이 강직하여
현종이 조금만 과실이 있어도 즉각 간언과 상소를 올렸으므로 좌우(左右)에서 한후가 재상이 된 뒤로
폐하의 몸이 전보다 수척해졌으니 쫓아내라고 진의하였다. 뒤에 공부상서(部尙書)로 있다가 파면 당하였다.

209) 중국 주(周) 목왕(穆王) 때의 어진 신하. 태복정(太僕正) 벼슬을 역임하였다.

210) 중국 동(桐) 땅에 있는 궁(宮)으로서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을 추방하여 잠시 거처하게 했던 곳이다.
동(桐)은 탕(湯) 임금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서 태감이 정사를 어지럽히자 이윤이 이리로 보내어
선왕(先王)의 바른 정신을 상기하여 허물을 고치도록 하였다.

211)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 사람(181∼234년). 자(字)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忠武). 유비(劉備)를 보필하여 오(吳)와 연합하여 조조(曹操)를 적벽(赤壁)에서 격파하고 파촉(巴蜀)을 얻어
촉한국(蜀漢國)을 세우고 유비(劉備)가 죽은 뒤,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후주(後主)를 보필함에
오장원(五丈原)에서 사마일과 대전 중 병으로 진중에서 54세를 일기로 죽었다.

212) 중국 후한 말(後漢末) 영천(穎川)사람. 자는 덕조(德操).
인품이 청아하고 인재를 알아보는 지혜가 있었다. 수경(水鏡) 선생이라 일컬어 졌다.

213) 중국 삼국(三國)시대 촉(蜀)나라 사람. 이름은 통(統).
사원(士元)은 그의 자. 제갈량(諸葛亮)과 함께 유비(劉備)를 도와 촉나라 건국에 크게 기여 했다.
호는 봉추(鳳雛). 시호는 정(靖)이다.

214) 중국 촉한(蜀漢) 영천(穎川) 사람. 자는 원직(元直).
제갈량과는 친한 친구 사이로 소열(昭烈)에게 그를 천거하였다.
조조(曹操)가 그 어머니를 포로로 하자 서서는 소열을 떠나조조에게로 갔는데 어머니는 그걸 알고 목매어 자살하였다.
그후 서서는 벼슬이 어사중승(御史中丞)에 이르렀으나 조조를 위해서는 한 가지 계략도 제공하지 않았다.

215) 중국 삼국시대 위(魏)의 문제(文帝). 조조(曹操)의 장자로 비(丕)는 그의 이름.
자는 자환(子桓). 시호는 문(文). 조조가 죽은 후 그를 계승하여 승상(丞相)의 직에 있다가 이에 위왕(魏王)이 되었다.
후한(後漢) 건안 말 (建安 末)에 헌제(獻帝)를 폐하여 산양공(山陽公)이라 칭하고 한을 찬탈하여 낙양(洛陽)에 도읍하였다.

216) 옛날 중국에 있었던 전설상(傳說上)의 다섯 황제(黃帝). 전욱(頊), 제곡(帝), 제요(帝堯), 제순(帝舜).

 

 

제3장. 취 선(取善)

 

신이 살피건대, 군신(君臣)이 이미 서로 맺어지면 반드시 그 사람의 착한 점을 취하여,
모든 계책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들어서 시행하여야만 정치를 온전히 잘 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취선장(取善章)을 다음에 두었습니다.

이윤(伊尹)이 말하기를, "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못하며, 백성은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못하는 것이니,
<임금이> 스스로 높다 하여 사람을 낮게 얕보지 마시옵소서.
필부(匹夫)와 필부(匹婦)가 스스로 지극하게 다하지 않으면 임금은 그 공효를 이루지 못합니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함유일덕(咸有一德)하동. 이윤 이 태갑에게 경계하여 한말.)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임금과 백성이 서로 기다리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을 말한 것은,
태갑(太甲)으로 하여금 감히 <이 점을>소홀히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무(無)는 '말라[毋]'는 뜻과 같다.
이윤이 또 말하기를, '임금과 백성의 부리고 섬기는 것은 비록 귀천(貴賤)이 다르나,
사람에게 착한 것을 취하는 데는 귀천의 구별이 없다.'하니 대개 하늘이 하나의 이치로써 사람에게 품부(품賦)하여
<이것이> 흩어져서 만 가지 선한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임금은 천하의 만 가지 선한 것을 합한 후에 이치가 순일(純一)한 것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며,
만일 스스로 높다하여 사람을 낮게 얕보면 필부가 스스로 임금에게 지극하게 다하지 않으므로 하나의 선한 것도 갖추지 못하여
임금이 또 그 공효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덕(德)에 떳떳한 법이 없어서 선에 주재하는 것이 법이 되며, 선에 떳떳한 주재가 없어서 능히 순일한 것에 합하는 것이다.

채씨는 말하기를, "떳떳하지 않다는 것은 어는 하나에 집착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사(師는) 법(法)이요, 협(協)은 합한다는 말이며, 덕(德)은 선을 총칭한 것이요,
선은 덕을 실천하는 것이며, 일(一)은 근본(本原)을 모아서 합한 것을 말한 것이다.
덕은 여러 선한 것을 겸한 것인데, 선에 주재하지 아니하면 한 근본에서 만 가지 다른 이치를 얻지 못할 것이며,
선은 순일(純一)한 것에 근원한 것인데 이 순일한 것이 합하지 아니하면,
만 가지 다른 것이 한 근본의 미묘한 것에 통달하지 못하므로,
범박(汎博)하여 여러가지 선(善)에 구하며 요약하여 지일(至一)한 이치에 회통하는 것이니
이것이 성학(聖學)에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조리(條理)의 차례이며,
공자가 이른바 일관(一貫)이라는 것과 거의 같다." 하였습니다.

기자(箕子)217)가 무왕(武王)에게 아뢰기를, "무릇 그 백성들 중에서 계책을 가진 이나 시행하거나 준수하는 이가 있다면,
임금께서는 그들을 생각하시며, 극(極)에 합하지 않더라도 허물에 걸리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옵소서.
그리고 부드러운 얼굴 빛으로 내가 좋아하는 바는 덕(德)이라고 하거든,
임금께서는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흥범(洪範))

채씨는 말하기를, "계책을 가졌다는 것은 모책(謀策)이 있는 자이고, 시행한다는 것은 시설(施設)이 있는 자이며,
준수한다는 것은 자기가 지켜야 할 도를 지키는 자인데, 이 셋은 임금이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극(極)에 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에 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허물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악(惡)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것은> 중간치의 사람들이다. 받아들이라는 것은 거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밖에 드러나게 편안하고 화한 빛이 있거나 마음으로 덕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으면 복을 내려 줄 것이니,
복이라는 것은 작록(爵祿)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말이 착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등용하지 않고, 사람이 악하다고 해서 그 말까지도 버리지는 않는다." 하였습니다. (논어)

남헌 장씨(南軒張氏)가 말하기를, "말이 착하다고 해서 등용하면 실천성이 없는 이가 천거되는 일이 있어서 이것은 본래 불가하다.
그러나 비록 소인의 말이라도 <이것이> 착한 말이라면 또한 착한 말이 되는 데는 해롭지 않으니,
사람이 악하다고 해서 그 말까지 버린다면 착한 말이 버려진다." 하였습니다.

순(舜)은 정말 큰 지자(知者)이다. 순은 묻기를 좋아하였고 이언(邇言)까지도 살피기를 좋아하였다.
<남의> 나쁜 점은 숨겨 주고 좋은 점은 선양해 주었으며, 극단(極端)을 피하여 그 중(中)을 백성에게 베풀었으니,
이것이 바로 순의 순된 소이이다. (「중용」○ 역시 공자의 말)

주자는 말하기를. "순(舜)이 큰 지자가 된 까닭은 그 스스로 시행하지 않고 남에게서 취하여 시행하였기 때문이다.
이언(邇言)이란 것은 천박한 말인데 <순은 천박한 말까지도> 오히려 반드시 살피었으니 그는 선(善)을 남겨 놓지 않았다.
선하지 못하면 숨기어 선양(宣揚)하지 않았고, 그것이 선하면 전파하여 숨기지 않았다.
그 넓고 밝은 것이 또 이와 같으니, 누가 착한 것을 말하기를 즐거워하지 않겠는가.
양쪽 극단이란 것은 뭇 의논이 일치하지 않는 극단을 말한다. 대개 모든 사물은 다 양쪽 극단이 있는데 크고 작거나 두텁고 얇은 따위이다.
선 가운데서도 또 그 양쪽 극단을 피하여 중(中)을 헤아려 취하여야만, 이것을 운용하면 택하는 것이 정밀하고 행하는 것이 지극하게 된다.
그러나 나에게 있는 권도(權度)가 정밀하고 적절하여 어긋나지 않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렇게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위대한 순은 선한 것을 남과 같이 하기를 좋아하여서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랐으며, 남에게서 취하여 선을 행하기를 즐거워하였다.
농사짓고 질그릇 굽고 고기잡이하는 데서부터 황제가 되기까지 남에게서 취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선을 남과 같이 한다는 것은 천하의 선을 공적(公的)으로 하고 사적(私的)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은 미천할 때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지었고, 하빈(河濱)에서 질그릇을 구웠으며, 뇌택(雷擇)에서는 고기잡이를 하였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또, "남에게서 선을 취하여 하는 것은 곧 남이 선을 하기를 돕는〔與〕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남이 선을 하는 것을 돕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 '여(與)는 허(許)한다. 돕는다.' 는 말과 같다.
남의 선을 취하여 내가 행하면 곧 남에게 더욱 선을 권면(勸勉)하는 것이니, 이것은 내가 그 사람이 선을 행하는 데 돕는 것이다.
능히 천하의 사람이 선을 행하도록 권면한다면 군자의 선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는가.
이것은 선을 즐겨 하는 성의가 당초부터 피차의 사이가 없으므로,
남에게 있는 것을 받아들여 넉넉하게 하고, 내게 있는 것도 남에게 미치게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선민(先民)이 말하기를 추요()에게도 물어보라 하였다." 하였습니다. (대아(大雅)의 판편(板篇))

주자는 말하기를, "선민은 옛 현인(賢人)이요, 추요()는 나무꾼이다." 하였습니다.

○ 풍성 주씨(豊城朱氏)는 말하기를, "천박한 말에도 지극한 이치가 있으니, 그 사람이 천하다고 해서 소홀히 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에 말하기를, "지혜로써 임하니 <이것은> 대군(大君)으로서 의당(宜當)한 길이며,
길(吉)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임괘(臨卦) 六五의 효사(爻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5가 높은 자리에 거하여 아래 2의 강중의 신〔剛中之臣〕에 상응해 있으니,
5는임금의 지위이고 2는 신하의 자리이니, 5·2는 서로 응하는 효(爻)이다.
이것은 임금이 어진 신하에게 국정을 위임하여 힘 안 들이고도 나라가 다스려지는 상태인데, 곧 지혜로써 아래 백성에 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개 한 사람의 몸으로 광대한 천하에 임하는 데 있어서, 만약에 구구(區區)한 일까지 전담한다면 어찌 능히 모든 일에 두루 도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임금이> 스스로 전담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오직 천하의 선(善)을 취하고, 천하의 총명한 이에게 위임한다면, 모든 일이 두루 도달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크게 지혜로운 것이요, 대군의 의당한 일이며 그 길(吉)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천하는 지극히 광대하고 일의 기틀은 지극히 번다하기 때문에 임금이 묘연(然)한 몸으로서 고요하게 거처하고,
간략하게 살면서 상응하는 데 여유있게 하는 것은 다만 천하의 지혜를 모아서 천하의 일을 결단하는 데 있을 뿐입니다.
사람은 제 각기 지혜가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이라도 한 가지의 지혜는 있는 것이니,
만약에 뭇 지혜를 다 취하여 하나의 지혜로 합하고 난뒤 골고루 살피고 정밀하게 밝히어 중(中)을 얻는다면,
천하가 비록 광대하다 하더라도 손바닥 위에서 <물건을> 운용하는 것과 같고, 일의 기틀이 비록 번다하다 하더라도
이것을 결단하는 것은 동이[]를 세우는 것처럼 쉽습니다.
대개 천하의 눈〔目을 <나의> 눈으로 삼는다면 보이지 않는 것이 없고, 천하의 귀〔耳〕를 <나의> 귀로 삼는다면 들리지 않는 것이 없으며,
천하의 마음〔心〕을 나의 마음으로 삼는다면 생각하지 못할 지혜가 없을 것이니,
이것이 성스러운 황제나 밝은 왕이 천하를 고무(鼓舞)하면서도 심력(心力)을 수고롭게 하지 않아도 되는 소이입니다.
<임금으로서> 이에 배치되면 스스로 착한 체하는 데 엄폐(掩蔽)되고, 스스로 전천(專擅)하는 데 고질이 되며,
자기의 총명을 스스로 자랑하여 일세(一世)를 업신여기고, 천하의 사람들을 다 자기만 못한 것으로 여깁니다.
장막 사이나 담장(蕭墻) 안에서도 오히려 견문이 미치지 못한 것이 있는데 하물며 광대한 천하에 서겠습니까.
아, 스스로 성스러운 지혜를 가졌다고 하지 않고 백성들에게서 착한 것을 힘써 취하는 것은 비천한 것 같지마는 실은 순(舜)이 실행한 것입니다.
순의 총명이 어찌 남만 못하여서 바드시 '남에세 취하여 선을 했다.' 하겠습니까.
참으로 도리는 무궁하고 성인의 마음은 광대·공명하여, 하나의 착한 말을 들으면 패연히 그것으로 말미암아 남과 자기의 간격을 두지 아니하기 때문에,
천하의 선을 모아서 스스로 시행(施行)하였으니, 이것이 순이 지극히 성스럽게 된 소이입니다.
임금으로서 어찌 스스로 성스러운 임금인 체하고, 스스로 전천(專擅)하면서 순보다 고명한 것을 바라서, 도리어 어둡고 막힌 길을 걸어가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묻기를, "임금이 비록 여러 사람의 계책을 모으더라도 어진 선비들이 명에 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므로,
신이 대답하기를, "다만 임금이 선을 좋아하는 성의가 없는 것만 근심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만일 선을 성심껏 좋아한다면 선비들이 천리도 가깝게 여기고 모여들 것입니다.
어진 이는 그 도를 행하려고 할 것이고, 지혜로운 이는 그 계책을 다하려 고할 것이며, 곧은 이는 그 충성을 바치려고 할 것이고,
용맹스러운 이는 그 힘을 다하려고 할 것이니, 어찌 선비가 명에 응하지 않을까 근심하겠습니까.
만약에 말로만 선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그 실상이 없으면, 여러 계책이 이미 모여도 권도(權度)의 정당성을 잃어서,
난초의 향기를 가리켜 고약한 냄새라 하고, 숯을 가리켜 희다고 할 것이며, 모야()를 가리켜 둔하다고 하고,
납으로 만든 칼을 가리켜 날카롭다 하며, 또 혹 비(非)를 시(是)라 하고 정(正)을 사(邪)라 하더라도 막연하게 취하거나 버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발언(發言)은 궁정에 가득 찼는데 하나도 시행하지 못하고, 마치 묘연히 깊은 우물 속에 빠진 것과 같다면,
선비는 실망하고 돌아가버릴 것입니다. 그 뒤에 비록 선한 말〔善言〕을 구하거나 어진 선비를 초빙한다 하더라도
누가 감히 그 명에 응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모두 임금이 스스로 취하는 것입니다.
득실(得失)이 이와 같으니 전하께서는 굽어살피옵소서.

 

< 주 >

217) 중국 은(殷)의 주왕(紂王)의 숙부(叔父), 은(殷)이 멸망한 수 기자조선(箕子朝鮮)의 시조(始祖)가 되었다고 하나 이설(異說)이 있다.
기자(箕子)는 미자(微子)·비간(比干)과 함께 은(殷)의 삼인(三仁)으로 꼽혔다.

 

제4장. 식시무(識時務)

 

신이 살피건대, 지혜로운 이는 알지 못하는 것이 없지마는, 마땅히 힘써야 할 것을 급히 하여야 하니,
여러 계책이 비록 모였다 하더라도 반드시 면저 시무(時務)에 절실한 것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식시무장(識時務章)을 취선장(取善章) 다음에 두었습니다.

 

◆ 시무의 마땅히 알아야 할 것에 대한 말씀

학문을 논할 때는 곧 이치를 밝혀야 하고, 정치를 논할 때는 반드시 체계를 알아야 한다. (정씨유서(程氏遺書) ○ 명도 선생의 말 )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학문을 논하되 이치에 밝지 못하면 한갓 기록하여 외우는 사장(詞章)의 말단적인 것을 일삼을 뿐이요,
학문을 안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며, 정치를 논하되 그 체계를 알지 못하면 한갓 제도와 절문(節文)의 말단적인 것을 강(講)할 뿐이요,
정치를 안다고 하지는 못한다."하였습니다.

생각이 선하거든 동(動)하되, 동하는 것을 때에 마땅하게 하라. (상서(商書) 열명(說命))

채씨는 말하기를, "선은 이치에 합당하다는 뜻이요, 시(時)는 때에 마땅하다는 뜻이다.
생각이 진실로 이치에 합당하여야 하지마는, 동하는 것이 그 때가 아니면 오히려 유익함이 없기 때문에,
성인은 이 세상에 수작(酬酢)하는 것이 또한 그 때에 마땅하게 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 역경(易經)에 말하기를. "천지는 순조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해와 달은 그 궤도에 지나치지 아니하고, 사시(四時)는 그 절기에 어긋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성인도 순조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형벌이, 공평하고 맑아서 백성들이 복종한다." 하였습니다.

○ 설씨(薛氏)는 말하기를, "큰일에 처하면 인식이 앞서고 결단(決斷)은 그 다음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창업(創業)의 도에 대한 말씀

○ 「역경」에 말하기를, "구름과 천둥은 둔(屯)인데 군자는 이를 보아서 나라를 경륜(經綸)한다." 하였습니다. (둔괘(屯卦)128) 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구름은 비가 될 것이지마는, 이루지 못한 것이니,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인 때문에 둔괘이다.
군자는 <이> 둔괘의 상(象)을 잘 관찰해 보고서 천하의 일을 경륜하여 세상을 둔란(屯難)에서 구제한다.
경륜(經綸)은 영위(營爲)하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둔란한 세상은 군자가 영위하여야 할 때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황제(黃帝)와 요(堯)·순(舜)이 나와서 그 변화를 통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싫증 나지 않게 하며,
신묘하게 교화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마땅하게 하였다.
역(易)은 궁(窮)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 간다.
이 때문에 하늘이 도와 주므로 길하여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역(易)의 계사(繫辭))

정자는 말하기를, "변(變)을 알고 화(化)를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금의 풍기(風氣)가 같지 않으므로 그 기용(器用)도 또한 다르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 변화를 통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싫증 나지 않도록 각각 그 시대를 따라서 알맞게 하였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군자가 창업수통(創業垂統)219)하는 것은 계승해 나가도록만 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앞에서 왕업의 터전을 세우고 뒤로는 후세에 왕통을 전하여,
그 바른 것을 잃지 않고 후세로 하여금 계속하여 시행할 수 있도록 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의 불의(不義)를 행하고 한 사람의 죄없는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는다 하더라도 이런 일은 하지 않는다.

주자는 말하기를, "한 가지의 불의를 행하고 한 사람의 죄없는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더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이 바른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수성(守成)의 도에 대한 말씀

○부열(傅說)이 아뢰기를, "선왕의 이룬 법〔憲〕을 보아서 길이 허물〔愆〕이 없이 하옵소서." 하였습니다.
(상서(商書)의 열명(說命) ○ 부열이 고종(高宗)을 경계한 말 )

채씨는 말하기를, "헌(憲)은 법이요, 건(愆)은 허물이다.
반드시 선왕의 법을 살펴보아야 한다함은, 선왕이 이룬 법을 자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경」에 말하기를, 허물을 짓지도 않고 잊지도 않으며, 전장(典章)을 따르리라." 하였습니다. (대아(大雅)의 가락(假樂)편 )

주자는 말하기를, "건(愆)은 허물이요, 솔(率)은 따르는 것이며, 장(章)은 선왕의 전법(典法)이다.
행하는 것이 허물을 짓는 일도 없고 잊지도 않는 것은 선왕의 옛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 한(漢)나라 찬후(侯)인 소하(蕭何)220)가 죽고 조참(曹參)221)이 하(何)를 대신하여 정승이 되었을 때,
그는 한결같이 하의 약속을 따라서 정사를 해 나갔습니다.

군국(郡國)의 관리 중에서 문사(文辭)에는 서툴러도 중후한 장자(長者)면 곧 불러서 정승으로 삼고,
관리 중에 언문(言文)에 매우 깊고 명성(名聲)에만 힘쓰는 이는 문득 축출하였으며,
또 사람에게 조그마한 허물이 있는 것을 보면 오로지 덮어서 가려 주었기 때문에,
부중(府中)에는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문제(文帝)는 국상(國相)이 <시책을> 꾀하지 않는 데도,
나라가 저절로 다스려지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니,
조참이 아뢰기를, "고제(高帝)께서 소하와 더불어 천하를 평정하여 법령이 이미 밝아졌으니,
폐하께서는 가만히 계시고 저희들은 직분을 지켜 <소하의> 법령을 잃지 않고 지킨다면 또한 가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문제가 이르기를, "착하도다." 하였습니다. 조참이 정승이 된 지 3년 만에 백성들이 노래하기를, "소하가 만든 법이 참으로 바르도다.
조참이 뒤를 이어 그의 법을 지키니, 정사는 절로 되고 백성들이 편하구나." 하였습니다.

 

◆ 다음은 경장(更張)의 도에 대한 말씀

역경(易經)에 말하기를, 항(恒)은 형통(亨通)하여,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로우니라." 하였습니다. (항괘(恒卦)222) 단사(彖辭))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항(恒)은 오래 간다는 뜻인데, 항도(恒道)는 형통할 수 있어서 어느 일우(一隅)만을 지켜 변(變)을 알지 못함이 아니다.
그러므로 가는 것이 있음이 이로운 것이다. 오직 그 가는 것이 있기 때문에 오래 갈 수 있다. 만약 일정하다면 언제나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수시로 변역(變易)하는 것이 곧 상도(常道)이니,
천지가 오래 가는 도와 천하가 오래 가는 이치는, 도를 하는 이가 아니면 누가 능히 이것을 알겠는가."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개혁(改革)하자는 말이 세 번 이루어지면 믿음이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혁괘(革卦)223) 9·3 효사)

정자는 말하기를, "혁언(革言)은 마땅히 개혁하여야 한다는 의논이고, 취(就)는 성취한다는 것이며 합한다는 것이다.
마땅히 개혁하여야 한다는 말을 살펴보아 이 말이 세 차례나 다 합하면 믿을 만하다.
마땅히 개혁하여야 할 일을 만약 두려워하여 개혁하지 않는다면 때를 잃어서 해가 된다.
오직 마땅히 지극히 신중하게 하되 스스로 강하다고 자신이 맡지 말고,
공론을 살피고 상고하여 개혁하자는 의논이 세 차례 이루어지는데 이르러서 이것을 개혁하면 과실이 없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거친 것을 포용하며, 큰 강물을 걸어서 능히 건너며, 먼데 것을 버리지 아니하며,
붕당(朋黨)을 없애면 증도(中道)에 합당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태괘(泰卦)224) 9·2 효사)

정자는 (程子)는 말하기를, "거친 것을 포용하고, 큰 강물을 걸어서 능히 건너며, 먼데 것을 버리지 아니하며,
붕당을 없애는 이 네 가지는 태평세대에 처하는 도이다.
사람의 마음이 안일하고 방자하면 정치가 이완(弛緩)되고 법도가 해이(解弛)해져서 모든 일이 절도가 없게 된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반드시 거칠거나 지저분한 것이라도 포용하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시정(施政)이 너그러워지고 찬찬하고 세밀해져서, 폐해가 되는 것이 개혁되어 일이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이 편안해진다.
만약 널리 포용하는 도량은 없으면서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만 있다면 심원(心遠)한 생각은 없고,
사납게 소요(騷擾)할 근심만 있어서 묵은 폐단을 벌릴 수 없고 새로운 환란(患亂)만 생긴다.
그러므로 사람을 포용할 도량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강물을 걸어서 건넌다.' 는 것이란,태평하고 편안한 세상에는 사람의 마음이 오래도록 안일한데 젖어서 굳게 지키는 것만을 편하게 여겨,
묵은 습관을 버리는 데 나태(懶怠)하고 변경하는 것을 꺼리니, 강물을 뛰어서 건널 용기가 있지 않으면 능히 이 때를 당하여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강물을 걸어서 건넌다.'는 것은 강(剛)하고 용감하여 족히 깊은 곳을 건너고, 위험한 곳을 넘어갈 수 있음을 말한다.
옛날부터 태평스러운 치세(治世)가 점점 쇠퇴해지는 것은 대개 안일에 젖어서 묵은 습관을 버리지 못하여 그런 것인데,
강단(剛斷)이 있는 임금과 영민(英敏)한 신하가 없으면, 능히 분발(奮發)하여 그 묵은 폐단을 개혁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강물을 걸어서 <능히> 건너야 한다고 한 것이다.
위에 말한 '포용한다.' 는 것은 포함하고 관용(寬容)한다는 뜻이요, 여기에 말한 강물을 걸어서 능히 건너야 한다는 것은 분발하여 개혁한다는 뜻이다.
서로 상반되는 것 같은 것은 포용하는 아량을 가지고 강하고 과단성 있게 시행하는 것이, 곧 성현의 하시는 것임을 알지 못함이다.
'먼 데 것을 버리지 아니한다.' 는 것은 태평 세대에 인심이 안일에 젖으면 구차하게 안일해질 뿐인데,
어찌 능히 먼 데 일에까지 미칠 깊은 생각이나 걱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
태평스런 때를 다스리는 이는 마땅히 모든 일이 비록 먼 데 것이라도 버려서는 안된다.
일의 은미(隱微)한 것이나 어질고 재주 있는 이가 낮은 곳에 있는 것이 다 먼 데의 것으로서 시대가 태평스러우면 잊어버리기가 쉽다.
'붕당(朋黨)을 없앤다.'는 것은 때가 이미 태평스러우면 사람들이 안일에 젖어서, 그 마음이 방자하여 절도를 잃기 때문에,
이것을 제약하여 바르게 하려 한다면 붕당을 만드는 사사로움을 근절해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붕당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옛날부터 법을 세우고 일을 제재하는 것은 인정에 얽매여서 마침내 시행되지 못한 것이 많은데,
만약 사치를 금하자고 하면 가까운 친척에게 해가 된다고 <걱정하고>, 전산(田産)을 제한하자고 하면 귀족에게 해가 된다고 걱정하니,
이러한 유(類)를 대공(大公)으로 단행하여 실행하지 않는다면 붕당에 이끌리게 된다.
태평 세대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붕당을 능히 없애지 않는다면 다스려지기가 어렵다.
태평 세대를 다스리는 도가 이 네가지에 있다면 능히 중도에 합당할 수 있다. 상(尙)은 합당하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또 그는 말하기를, "다스리는 도에는 근본을 좇아 말한 것도 있고, 일을 좇아 말한 것도 있다.
근본을 좇아 말한다면 오직 임금의 마음이 그른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인데,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면 조정이 바르게 되고,
조정이 바르게 되면 백관(百官)이 바르게 된다.
그리고 일을 좇아 말한다면 <세상을> 구제하지 않겠다면 그만이지마는, 만약에 구제해야 하겠다고 한다면 변혁을 해야 할 것인데,
큰 변혁이 있으면 큰 이익이 있고 작은 변혁이 있으면 작은 이익이 있다." 하였습니다.

○ 동씨(董氏)는 말하기를, "금슬(琴瑟)의 소리가 고르지 못하면 반드시 줄을 풀어서 다 바꾸어 갈아야만 고루어진다.
정치를 하는 데도 잘 다스려지지 아니하면 반드시 변혁하여 다시 바꾸어야 다스릴 수 있다.
옛 사람의 말에, '못에 다달아 고기를 부러워하는 것은 물러가서 그물을 만드는 것만 같지 못하고,
정치에 당면하여 다스려지기를 소원하는 것은 물러가서 다시 개혁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였으니 개혁하면 잘 다스려 질 수 있고,
잘 다스려지면 재해가 날로 없어져서 날로 복록이 온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옛날 선위(禪位)의 아름다운 것으로는 요와 순보다 나은 것이 없다.
순이 요를 계승하여 왕위를 전해 받은 지 28년간에 예악(禮樂)·형정(刑政)에 있어서 새로이 고쳐진 것이 많았다.
그 큰 것으로는 16정승을 기용한 것인데 이것은 다 요가 기용하지 못한 것이며, 또 4흉인을 제거한 것인데 이것은 모두 요가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순은 혐의하지 않았고, 요는 그것을 죄로 삼지 않았으며, 천하의 백성들은 그것을 그르다고 하지 않았으니,
묵은 습관을 따르고 개혁하며, 덜고 더함은 오직 의리로써 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시무(時務)는 어느 때나 한결같지 않고 각각 마땅한 것이 있사오니, 그 대요를 요약하면, 창업(創業)한다는 것과,
부조(父祖)의 업을 지키는 것과 개혁한다는 것 세 가지뿐입니다.
창업의 도는 요(堯)·순(舜)과 탕(湯)·무(武)의 덕으로 개혁할 세태를 당하여야 하되
천리(天理)와 인사(人事)에 순응하지 않으면 아니 되기 때문에 이것은 더 논의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소위 부조의 업을 지킨다는 것은 성스러운 임금과 어진 대상에 의하여 법을 창제해서,
정치 기구를 다 베풀고 예악을 융성하게 하면, 후세의 임금과 후세의 어진 이는 다만 그 이룬 어진 법구에 따라
가만히 팔짱을 끼고 이것을 준수하는 것 뿐인 것을 말한 것이오며, 소위 개혁한다는 것은,
<나라가> 극성하면 가운데에 미약해지고, 법이 오래 되면 폐가 생기고, 마음이 안일에 젖으면 고루한 것에 인습되고,
백 가지 제도가 해이해지면 나날이 어긋나서 나라를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반드시 현명한 임금과 현철한 신하가 있어서 개연히 일어나 근본을 붙들어,
혼탁한 것을 다시 일으키고 묵은 인습을 깨끗이 씻어서 숙폐(宿弊)를 개혁하며, 선왕의 뜻을 잘 이어서 일대의 규모를 새롭게 한 뒤,
그 공업(功業)이 선열에 빛나고 후손〔後裔〕에 끼쳐지는 것입니다.
'부조(父祖)의 업을 지킨다'는 것은, 비록 중주(中主)와 구신(具臣)이라 할지라도 또한 잃지 않고 지킬 수 있으므로 부조의 업을 지킴은 쉬운 것입니다.
개혁 한다는 것은 높은 견해나 영재(英才)가 있지 않으면 할 수 없으므로 어려운 것입니다.
마땅히 부조의 업을 지키기만을 하여야 할 때인데 개혁에 힘을 쓴다면,
이것은 병도 없는데 약을 먹는 것과 같아서 도리어 병을 얻게 되는 것이요,
마땅히 개혁을 하여야 할 때인데 준수(遵守)에 힘을 쓴다면,
이것은 병에 걸렸는데 약을 물리치는 것과 같아서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는 격입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부조(父祖)의 업을 지킨다는 것은 크게 무도한 세상이 아니라면
다 능히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이지마는, 만일 개혁을 하려면 반드시 그 사람을 기다려야 할 것이니,
비록 개혁을 하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하기에,
신은 답하기를. "그렇지 않다. 임금이 이 세상에 뜻이 없다면 그만이겠으나,
만일 성심으로 나라가 다스려지기를 원하셔서, 누추한 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밝게 들추어 낸다면 어찌 그 사람이 없겠는가." 하였습니다.
옛날부터 어찌 임금께서는 도를 배우고 어진 이를 좋아하며, 창생을 구조할 뜻이 있으시면서도 어진 이를 구하여도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정치를 할 수 없었던 일이 있었겠습니까.
다만 그 배우는 것이 도가 아니요, 좋아하는 것이 어진 이가 아니므로 뜻은 비록 부지런하나 도는 더욱 이탈되고, 어진이는 더욱 멀어질 뿐입니다.
비유하건대, 자손이 선인(先人)의 옛 집을 지키고 있는 것과 같으니, 해가 묵어서 재목이 썩어 무너지려고 하는데,
대목〔工師〕을 만나지 못하면 개수(改修)할 수 없기 때문에, 집 주인은 천 리길이라도 멀다 하지 않고 가서 급히 대목을 구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대목을 얻지 못한다고 핑계하면서 앉아서 그 무너지는 것만 지켜보고 있겠습니까.
폐정(弊政)을 개혁하는 것도 어찌 이것과 다르겠습니까.
아, 인정(人情)은 옛 풍속에 안일하고, 세습은 전대의 법규에 젖어서 마치 기둥을 아교폴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타려고 하며〔膠柱瑟〕,
나무를 지키고 앉아서 토끼를 기다리는 〔守株待兎〕것과 같이, 변통할 줄도 모르고,
구차하게 눈앞에 아무 일이 없는 것만을 다행으로 여기다가, 뜻밖에 엄청난 화근을 빚어내는 일이 많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경계하옵소서.

 

< 주 >

218) 「주역」 64괘 가운데 세 번째 괘.

219) 나라를 처음으로 세워 왕통을 전하는 것이다.

220) 중국 한(漢)나라 고조(高祖) 때의 공신(功臣). 패현(沛縣) 사람. 장량(張良),
한신(韓信)과 더불어 한의 삼걸(三傑)의 한 사람으로 고조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221) 한 고조(漢高祖)의 공신. 고조와 동향(同鄕)인 패현(沛縣) 사람.
소하(蕭何)와 더불어 고조를 보좌하여 천하를 평정하였고,
소하가 죽은 뒤에 그 유지(遺志)에 따라 한(漢)의 재상이 되어 소하의 법을 잘 실행하여 한 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하였다.

222)「주역」 64괘 가운데 32번째 괘.

223)「주역」 64괘 가운데 49번째 괘.

224)「주역」64괘 가운데 열 한 번 째 괘.

 

 

제5장. 법선왕(法先王)

 

신이 살피건대, 비록 시무(時務)에 있어서 그 마땅한 것을 능히 밝게 깨닫는다 하더라도 선왕(先王)의 정치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비유하건대,
마치 그림쇠[規矩]를 따르지 않고 손으로 방원(方圓)을 그리는 것과 같아서, 마침내 능히 세도(世道)를 만회(挽回)하여 잘 다스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법선왕 장(法先王章)을 이 다음에 두었습니다.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이루(離婁)의 밝은 시력과 공수자(公輸子)의 교묘한 기술로도, 그림쇠[規矩] 를 쓰지 않으면 방원을 그리지 못하고,
사광(師曠)의 밝은 청각으로도 6률(六律)225)을 쓰지 않으면 5음(五音)226)을 바르게 탈 수 없으며,
요·순의 도(道)로도 인정(仁政)을 행하지 않으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 수 없다." 하였습니다.(「맹자」하동)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이것은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법도(法度)가 없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인데,
인정(仁政)이라는 것은 천하를 다스리는 법도이다." 하였습니다.

이제 어진 마음과 어질다는 소문이 있으면서도 백성들이 그 은택을 입지못하여,
후세에 모범이 될 수 없는 것은 선왕의 도를 실천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어진 마음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어질다는 소문이란 남을 사랑한다는 소문이 사람들에게 들리는 것이며,
선왕의 도란 인정(仁政)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범씨는 말하기를, "제(齊)나라 선왕(先王)은 한 마리의 소가 사지(死地)로 끌려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여,
양(羊)을 가지고 대체하라고 한 것은 어진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양(梁)나라 무제(武帝)는 종일토록 단 한 끼의 소사(蔬食)만을 하고 종묘(宗廟)애는 밀가루〔〕를 제물(祭物)로 하며,
사형을 시킬 때는 반드시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천하가 그의 인자(仁慈)한 것을 알았으니,
이것은 어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나라 선왕 때는 제나라가 다스려지지 아니하였고,
무제의 말엽에는 강남(江南)이 크게 어지러웠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는 어진 마음과 어질다는 소문은 있었지마는 선왕의 도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한갓 착하기만 한 것으로는 정치를 하기에 부족하고, 한갓 법도만으로는 능히 저절로 행하지 못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한갓 도(徒)자는 공연하다는 뜻과 같다.
그 마음에는 착한 것을 가지고 있으나 정치에 이것을 베풀지 않는 것을 한갓 착하기만 한 것〔徒善〕이라 하고,
그 정치에 법도를 베풀기는 하나 어진 마음이 없으면 이것을 한갓 법도〔徒法〕라고 한다.
정자는 일찌기 말하기를, '정치를 하는 데는 요컨대 반드시 기강(紀綱)과 문장(文章)이 있고,
권형(權衡)을 삼가고 도량을 살피며, 법을 읽고 물가(物價)를 고르게 하는 것까지 하나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하고,
또 말하기를, '반드시 관저(關雎)와 인지(麟趾)의 뜻이 있어야만 주관(周官)의 법도를 행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 말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하였습니다.

높게 하려면 반드시 언덕을 이용하고, 낮게 하려면 반드시 개울과 못을 이용 한다하니,
정치를 하면서 선왕의 도를 따르지 않는다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언덕은 본래 높고, 개울과 못은 본래 낮으니, 높게 하려고 하든지 낮게 하려고 하는 사람은,
이것으로 인하여 해 나가면 힘은 적게 들고 성공은 많아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림쇠〔規矩〕는 방원(方圓)의 극치이요, 성인은 인륜의 극치이다.
임금 노릇을 하려면 임금의 도를 다하여야 하고, 신하 노릇을 하려면 신하의 도를 다하여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다 요·순을 모범으로 삼아야 할 뿐이다.
순이 요를 섬기던 방법으로써 임금을 섬기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기 임금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요,
요가 백성을 다스리던 방법으로써 백성을 다스리지 않으면 그 사람은 백성을 해치는 사람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요·순을 모범으로 삼아서 군신의 도를 다하는 것은,
마치 그림쇠를 사용하여 방원(方圓)의 극치를 다하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부열(傅說)이 말하기를, "사람을 견문이 많은 이를 구하는 것은 오직 일을 세우기 위한 것인데,
옛 가르침을 배워야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일을 하는데 옛 <가르침을> 본받지 아니하고도, 오래 갈 수 있다는 말은 열(說)이 듣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열명(說命))

채씨는 말하기를, "옛 가르침은 옛 성스러운 임금의 교훈이니, 몸을 닦고 천하를 다스리는 도를 기재한 이전(二典)·삼모(三謨) 같은 것이다.
옛 가르침을 본받지 아니하고도 길이 세상이 다스려지고 오래 편안할 수 있다는 말을 열(說)이 듣지 못했다는 것은,
절대로 이런 이치가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선왕(先王)의 세대는 도로써 천하를 다스렸고, 후세에는 오직 법만으로써 천하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그는 또 말하기를, "3대(代)와 같은 다스림을 후세에서도 결코 회복할 수 있으나,
3대와 같이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결국 도에 구차하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신은 살피건대, 뒷 세상의 임금이 3대와 같이 성대하게 다스리는 것을 사모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마는,
다만 고금이 다르다고 해서 감히 그대로 시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명도(明道)선생의 차자(箚子)에는 3대를 회복할 수 있다고 극론하였사온데,
그 말이 모두 사실을 취하여, 의거하여 시행할 만하기 때문에, 삼가 다음에 기록하였습니다.

정자는 신종(神宗)에게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신은 삼가 아룁니다.
성인의 법을 세우는 것은 모두 인정에 근거하고 물리(物理)에 극진하기 때문에,
비록 이제(二帝)·삼왕(三王)이라도 때를 따라 개혁하고 일을 따라 더하고 줄이는 제도가 없지 않았으나,
정치하는 근본과 백성을 다스리는 도(道)의 요령이야 앞 성인이나 뒷 성인들이 어찌 같지 않은 것이 있겠습니까.
대개 고금(今古)과 치란(治亂)을 논할 것 없이 만약 생민을 다스리는데 궁한 것이 있다면, 성스러운 임금의 법으로써 개혁할 수 있습니다.
고금과 치란을 (논할 것 없이 만약 생민을 다스리는 데 궁한 것이 있다면,
오직 성스러운 임금의 법으로써 그 폐(弊)를 고칠 수있음을 말합니다.)후세에서도 능히 이 도를 다한다면 크게 다스려지고,
혹시 편벽되게 한다면 소강(小康)상태가 될 것이니, 이것은 역대를 내려오면서 밝게 실증(實證)된 것입니다.
만일 한갓 옛 것에 얽매이기만 하여 지금에 능히 이것을 시행하지 못하고,
다만 형식적인 이름에만 따르고자 하며 그 실질적인 시행을 그만둔다면, 이것은 비루한 선비의 소견일 것이니 어찌 치도(治道)를 논할 수 있겠읍니까.

그러나 혹시, 오늘날의 인정이 모두 옛과는 다르니 선왕이 하던 업을 지금 회복할 수는 없다고 하여,
당장 눈앞에 보이는 편리한 것만 힘쓰고 고원(高遠)한 것에는 힘쓰지 않는다면, 이것은 아마 크게 유위(有爲)한 이론이 아닐 것이오며,
지금 당면하고 있는 지극한 폐단을 구제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령·의복·음식이나 궁실(宮室)·기용(器用)· 같은 것이 저렇게 하는 것이 오늘날에 있어서 편리한다고 하여,
기존 법도가 있는 것들을 어찌 갑자기 개혁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천리(天理)는 바꿀 수 없는 것이며 사람이 이에 의존해 사는 것으로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성인이 반드시 해야 한다고 했던 것은 본래 대개 시행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행하는 데는 선후가 있고 이것을 시행하는 데는 완급이 있으니,
만약 그 헤아려 이루거나 움직여 운용하거나 주선(周旋)하여 각각 합당하게 하는 것은 조정에서 이것을 강구하여 실시하는데 달렸을 뿐입니다.
엣날에는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스승과 벗을 기다려 그덕업(德業)을 성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순(舜)·우(禹)나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성인도 또한 모두 따라서 배운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부(師傅)의 직(職)에 닦아지지 못하고, 우신(友臣)의 의(義)가 밝게 드러나지 못하니 그래서 덕을 높이고 선을 즐기는 풍조가
천하에 성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하늘이 낳은 백성을 임금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되, 항산(恒産)을 제정하여 생(生)을 후(厚)하게 하면 경계(經界)가 바르지 아니할 수 없고,
토지를 나누기를 고르게 아니할 수 없으니, 이것은 위정(爲政)하는 근본입니다.
당(唐)나라는 그래도 식구에 따라 전지(田地)를 나누어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지금은 법이 없어서 부자(富者)들이 주(州)와 현(縣)을 빼앗아 차지해도 막지 못하며, 가난한 자는 흩어지고 굶어죽어도 구출하지 않으며,
요행히 사는 백성들은 많으나 의식(衣食)이 부족한 이는, 대개 무수하게 많습니다.
날로 인구가 불어나는데, 이들을 위한 대책이 없다면 의식은 날로 줄어 전전하다 죽는 자는 날로 많아질 것이오니, 이것은 치란(治亂)의 기틀입니다.
어찌 그 도모하는 대책을 강구하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또한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정(政)·교(敎)가 향리(鄕里)에서 시작되었고,
법이 동네〔比閭〕에서 일어나 족(族)·당(黨)·주(州)·향(鄕)·찬()·수(遂) 같은 지역들이 서로 연속 통치(統治)되어,
백성들이 서로 편안하고 친목해져서 형법을 범하는 이가 드물고 염치가 쉽게 행해졌으니,
이것은 또한 인정의 자연적인 것으로서 이렇게 하면 성과가 있는 것은 또한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학교의 교육은 선왕이 인륜(人倫)을 밝혀 천하의 교화를 이루기 위한 것인데,
지금은 사학(師學)이 폐하여 도덕이 순일하지 못하고 향사(鄕射)가 없어져 예의가 일어나지 못하며,
뛰어난 선비가 학교에서 길러지지 아니하여 인재가 많이 폐하였으니, 이 환한 사실도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백성들이 9년 먹을 양식이 있어야 했는데, 3년 먹을 양식이 없다면 나라가 나라 꼴이 되지 못하는 것이니,
신이 천하를 관찰해 보건대, 경작하는 사람은 적고 먹는 사람은 많으며, 지력(地力)은 다하지 못하고 인공(人功)은 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록 부자(富者)나 세력 있는 종실(宗室)이라 하는 집들도 축적해 둔 것이 드문데, 하물며 빈한한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혹시 한 주(州)나 한 현(縣)이 어떤 해에 흉년이 든다면 도둑이 횡행하고 주린 자가 길에 가득차는데,
만약 불행히도 천 리가 재해를 입거나 여러 해 동안 흉년이 든다면, 조정이 무슨 대책으로 이에 대처할지 그 근심을 말로써는 다할 수 없습니다.
어찌 옛날에는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 하여 이것을 다행으로 여겨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점점 옛 제도를 따라서 밭을 백성에게 고루 나누어 주고,
농사에 힘써서 공가(公家)에서나 사가(私家)에서 서로 곡식을 저장하여 흉년에 대비해야 할 것이니, 이것도 또한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성인이 하늘을 받들고 사물을 다스리는 도는 육부(六府)227)에 있으며,
육부에서 맡은 것은 오관(五官)228)에서 다스려지고, 산(山을 맡고 못〔澤〕을 맡은 관청에서 각각 금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만 가지 물건이 풍부하고 재용이 부족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오관이 닦아지지 아니하고,
육부가 다스려지지 아니하여 쓰는 것이 절도가 없고 취하는 것이 때가 없으니, 모든 물건이 제대로 길러지지 아니합니다.
나무를 도끼로 마구 남벌하여 산을 벌겨숭이로 만들어도 금하지 아니하고,
시내와 못에서는 고기를 너무 심하게 잡아서 씨를 마르게 하니, 장차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극한 폐단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직 우관(虞官)의 직책을 닦아서 이런 것을 장차 잘 기르게 하면 변통이 있을 것이며, 오래도록 그 형세를 유지하게 될 것이니,
이것도 또한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관혼상제(冠婚喪祭)와 거복기용(車服器用)의 등차가 분별되어 있어서 감히 품계를 넘지 못하였기 때문에,
재용이 넉넉하고 백성들은 늘 마음이 착하였는데, 지금은 예제(禮制)가 닦아지지 아니하고 사치를 숭상하여,
경대부들이 능히 예(禮)에 맞는 것이 없고, 장사치들이 혹시 삼공(三公)의 품계를 넘어 예제가 인정(人情)을 단속하지 못하고,
명수(名數)가 귀천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귀천에 정해진 푼수가 없으면 간사한 것이나 속이는 것이나 약탈하는 것을
사람마다 실컷 욕심대로 하고야 말 것이니, 어찌 멈추는 일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쟁란(爭亂)의 도이니 이에 선왕의 법을 본받아 잘 강구하여 덜 것은 덜고 더할 것은 더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도 또한 고금을 통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여기에 든 것은 다만 그 실마리일 뿐으로 신은 그 큰 실마리를 노하였습니다.
생각건대, 3대의 법은 반드시 시행할 만한 효험이 있으니,
그 강조(綱條)와 도수(度數)와 시위(施爲)와 주조(注措)의 도 같은 것에 있어서는 잘 살펴 행하면,
이것은 반드시 떳떳한 교훈에 상고해 보아 합당하고, 인정에 베풀어 보아 마땅할 것이니,
이것은 분명히 정해진 이치이며, 어찌 한갓 멀고 성기어 아무 소용이 없는 설이겠습니까.
밝은 성상께서는 헤아려 택(擇)하시옵소서."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3대의 도를 오늘날에도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은 정자의 이론으로도 상세합니다.
다만 유속(流俗)에 가리워 능히 문무(文武)의 정치를 시행하지 못하고,
한갓 빈말에 붙여 상하 수천 년간이 긴 밤으로 쓸쓸할 뿐이니 기가 막힐 일입니다.
대개 어진 정사〔仁政〕를 꼭 시행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성현의 말이요, 옛날의 도(道)를 회복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속된 무리의 말입니다.
당대의 임금인 세상의 주인이 성현의 말은 믿지 않고 이 속의(俚俗) 말만 깊이 믿사온데, 왜 그런가 하오면 스스로 도를 향하려는 뜻이 없고,
또 어진 이를 좋아하는 정성이 없어서 그런 것으로서, 마땅히 안일을 즐겨하고 진작(振作)하기를 꺼려할 것입니다.
다행히 임금이 옛날의 도를 행하려고 유신(儒臣)을 친근히 하여 조금 하시는 바가 있으면,
속된 무리들의 비방이 국이 끓듯 하고 매미소리같이 시끄러워 반드시 저지하여 무너져야만 그만둡니다.
임금이 도를 독실하게 믿지 않고 어진이를 깊이 알고자 아니하신다면 어찌 본심을 지켜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개 속된 무리의 고질은 갑자기 고치기 어렵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옛날의 도를 시행한다면,
백성들의 마음이 불안하여 처음에는 도리어 사리를 거슬리는 것으로 보는 것이 사세의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구애되어 마침내 일할 수 없다면 떨어지기만 하는 세도(世道)를 어느 때에 만회할 수 있겠습니까.
비유하건대, 냉질(冷疾)병에 걸린 사람과 같은데, 가슴에 열(熱)이 날 때 냉질을 다스리는 약을 조금 쓰면 번비(煩)가 더욱 심하고,
만일 열이 날 때 항상 냉약을 마시면 뱃속에 냉기가 쌓여 치료할 수가 없어서 마침내는 죽고야 말뿐입니다.

아, 소위 후세의 선비라는 자들이 읽는 것은 전(典) 모(謨)와 훈(訓) 고(誥)요,
사모하는 것은 공·맹(孔孟)과 정·주(程朱) 이기 때문에 누가 감히 성인을 비난하는 말을 그 입으로 말하겟습니까마는,
그러나 처신하거나 정치하는 데 이르러서서는 절대로 그렇지 아니하여 조금이라도 성인의 가르침을 국가에 시행하려고 하면
번번히 저들은 깜짝 놀래어 좌로 견제하고 우로 억눌러서 예측할 수 없는 화(禍)가 머지 않아 일어날 것이라고 하며
만일 안상수고(安常守故)의 이론을 듣는다면, 이 말에 찬동하고 화창하기가 포백(布帛)이나 숙속(菽粟)에 비하는 듯하니,
과연 이와 같다면, 성현이 헛말을 만들어 후세를 속이고 맛있는 음식이라고 오훼(烏喙:독약)를 칭찬하고,
물과 불을 밟을 수도 있다고 한 것이 되며, 향리의 거칠고 더러운 말이 곧 공평하고 적실하여 만세에 전해도 폐단이 없는 것이니,
육경(六經)을 어찌 읽을 필요가 있겠으며 오교(五敎)229)를 어찌 베풀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 인신(人臣)이 옛날의 도를 비난하고 훼방하는 것은 소인의 진정(眞情)인데, 한탄되는 것은 임금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소인〔鄙夫〕이란 좋아하는 것이 작록(爵祿)이요, 탐내는 것이 권세이며, 구하는 것이 뇌물이요,
즐거워하는 것이 음란하고 사치로운 것이며, 편하게 여기는 것이 안이로서, 때를 노려서 길을 얻고, 지기(志氣)가 가득 차서,
구차하게 눈앞의 요행이나 바라며 화패(禍敗)는 아랑곳하지 않을 뿐이니, 장래 종사(宗社)에 대한 근심이야 어찌 염두에나 있겠습니까.
진실로 임금이 삼대의 다스림을 회복하는 데 뜻을 두고, 어진 신하를 구해서 정사를 맡긴다면,
그들은 작록을 보존할 수 없을 것이고, 기강을 통할한다면 그들은 권세를 굳게 할 수 없을 것이며,
조정이 청명하다면 뇌물을 받을 수 없을 것이고, 예의로써 풍속을 이룬다면 음란하고 사치로움을 홀로 할수 없을 것이며,
공적(功績)을 살펴서 승진시키고 내쫓고 한다면 오래도록 안일(安逸)할 수 없을 것이니,
이렇게 되면, 임금이 옛날의 도를 시행하는 것이 바로 소인에게는 짐독(毒)이 되는 것인데,
어찌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다하여 저지 시키지 아니하겠습니까.
간혹 어진 사대부가 있더라도 식견이 천박하고 짧아서 다만 편안한 것만 좋아하는 자가 있는데
또한 그들을 따라 도우면 더욱 임금에게 신용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선비로서 재주를 품고 도를 가지고 경세제민(經世濟民)할 수 있는 이는 모두 보배를 두고 값을 기다리며 가볍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임금께 달(達)하지 못합니다.
조정에서 능히 옛날의 도를 말하는 이도 다만 경망하고 소탈(疎脫)한 무리들 뿐이니,
어찌 치도(治道)의 본체를 밝히거나 뭇 사람들의 지껄임을 제지시켜, 임금의 환심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옛날의 도를 끝내 회복하지 못하는 소이입니다.
임금은 깊이 생각하고 패연히 결단하여 반드시 학문이 밝고 실천력이 있으며 재성(才誠)을 겸비한 선비를 얻어서,
이의 보필을 받아 해마다 공효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속된 의논이 그 사이에 개입되지 않게 하여야만 의심하고 비난하던 자도 차츰 믿게 될 것이고,
비방하고 조소하던 자도 차츰 복종하게 될 것이며, 시기하고 질투하던 자도 차츰 항복하게 되어서,
옛날의 도를 거의 실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잘 살펴 생각하옵소서.

 

< 주 >

225) 12율 가운데에 양(陽)의 소리에 속하는 여섯 가지 음이다.
곧 황종(黃鍾)·태주(太簇)·고선(姑洗)·유빈(賓)·이칙(夷則)·무역(無射)

226)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다섯 음율.

227) 수(水)·화(火)·금(金)·목(木)·토(土)·곡(穀)을 말함.
이 여섯 가지는 재용(財用)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부(府)라고 한 것이다.「六府三事 允治萬歲 永賴時乃功」《書大禹謨》

228) 옛날 다섯 개의 관직. 곧 사도(司徒)·사마(司馬)·사공(司空)·사사(司士)·사구(司寇)이다

229) 오륜의 가르침

 

 

제6장. 근천계(謹天戒)

 

신이 살피건대, 임금이 하늘을 섬기는 것은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항상 이에 대하여 게속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아니되며,
인사(人事)가 이미 닦아지면 천계(天戒)를 더욱 공경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근천계 장(謹天戒章)을 다음에 놓았습니다.

 

◆ 복선화음(福善禍淫)의 이(理)에 대한 말씀

이윤(伊尹)이 말하기를, "아, 하늘은 친(親)한 이가 없고 능히 공경하는 사람만을 친하며,
백성은 일정하게 그리워하는 이가 업고, 인(仁)을 둔 이를 그리워하며,
귀신은 일정하게 흠향하는 이가 없고 능히 정성스러운 이를 흠향하나니,
임금의 자리란 어려운 것이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의 태갑(太甲))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경(敬)과 인(仁)과 성(誠)은 각각 그 주재되는 것으로 인하여 말한 것인데,
하늘을 경(敬)으로서 말하는 것은 하늘에는 이치가 있는 곳이라 동정(動靜)·어묵(語默)에 한 오라기라도 거만할 수 없기 때문이며,
백성을 인(仁)으로 말하는 것은 백성이야 임금이 아니면 누구도 추대할 사람이 없는지라 환과고독(鰥寡孤獨)도 다 임금이 근심할 바이기 때문이며
귀신을 성(誠)으로 말하는 것은 정성스럽지 아니하면 물(物)이 없는지라, 여기에서 정성이 선 뒤라야 신(神)이 저기에서 이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를 마땅히 다 해야 하는 것이 이와 같은데, 임금이 천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어찌 하는 일을 가볍게 할 수 있겠는가.
이는 나누어 말하면 셋이요, 합하여 말하면 하나의 덕(德)일 뿐이다." 하였습니다.

덕(德)이 순일하면 움직이는 곳마다 길(吉)하지 않은 곳이 없고,
덕이 두셋으로 뒤섞이면 움직이는 곳마다 흉하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오직 길하고 흉한 것이 어긋나지 아니하여 사람에게 있는 것은,
오직 하늘이 재앙과 상서(祥瑞)를 내리는 것은 덕에 있기 때문이다. (상서(商書) 함유일덕(咸有一德) ○ 역시 이윤(伊尹)의 말.)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두 셋이란 것은 뒤섞인 것이요, 참〔僭〕은 어긋난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우(禹)는 말하기를, "도〔迪〕를 따르면〔惠〕 길하고(吉), 역(逆)을 따르면 흉할 것이니,
이는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우서(虞書)의 대우모(大禹謨))

채씨는 말하기를, "혜(惠)는 순한다는 뜻이요, 적(迪)은 도(道)라는 뜻이며, 역(逆)은 도에 배반된다는 뜻이다.
도를 따르고 역(逆)을 따른다는 것은 선을 따르고 악을 따른다는 말과 같다.
위의 글은 천도가 가히 두려운지라 길흉이 선악에 응하는 것이 마치 그림자와 메아리가 형상과 소리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오직 문왕(文王)은 조심하고 공손해서 상제(上帝)를 밝게〔昭〕섬겨 많은 복을 오게 하니〔懷〕,
그 덕이 사곡되지〔回〕않아서 방국(方國)에 주인이 되었다." 하였습니다. (대아(大雅) 대명(大明)의 편(篇))

주자는 말하기를, "조심하고 공손한 것은 공경하고 조심하는 모습이니 이른바 경(敬)이다.
문왕의 덕은 여기서 성해졌다.
소(昭)는 밝음이요, 희(懷)는 오게 함이며, 회(回)는 사곡한 것이요, 방국(方國)은 사방에서 와서 붙는 나라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착하게 하여 복을 받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성탕(成湯)이 고(誥)를 지어 이르기를, " 하왕(夏王)이 덕을 멸하고 위엄을 부리어 만방(萬方)의 백성에게 모질게 하거늘,
하늘의 도는 선한 이에게 복을 주고, 음(淫)한 이에게는 화를 주는지라,
재앙을 하(夏)나라에 내려서 그죄를 밝힌 것이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의 탕고(湯誥)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걸(桀)은 이미 음학(淫虐)하였기 때문에, 하늘이 재앙을 내려 그 죄를 밝혔다.
살피건대, 당시에 필시 재변(災變) 있었으니,
주어(周語)에 이른바, '이천(伊川)과 낙수(洛水)가 다 마르니 하(夏)나라가 망하였다.' 하는 종류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악한 짓을 하여 화를 받은 것을 말합니다.)

 

◆ 다음은 재앙을 만나 수신(修身)하는 도에 대한 말씀

○윤후(胤候)가 말하기를, "선왕(先王)은 능히 천계(天戒)를 삼갔도다〔謹〕.
신하가 능히 떳떳한 법도〔常憲〕를 세우고 백관(百官)들이 그 직무를 닦아서 보필하니 그 임금은 밝고 밝으니라." 하였습니다. (하서(夏書)윤정(胤征))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삼간다는 것은 두려워하고 자기를 반성하여 어떤 재변을 없애게 하는 것이요,
떳떳한 법도라는 것은 법을 받들고 직무를 닦아서 이바지하는 것이다.
임금이 위에서 천계(天戒)를 능히 삼간다면 신하는 능히 아래에서 떳떳한 법도를 세워서 백관들이 각각 그 직무를 다하여 임금을 보좌하므로,
임금은 안으로 덕(德)을 잃지 않고 밖으로 정사를 그르침이 없어서 밝고 밝은 임금이 된다." 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하늘이 노하는 것을 공경하여 네 멋대로 행패를 하지 말 것이며,
하늘의 변하는〔〕것을 공경하여 네 멋대로 욕심을 부리지 말라. 높은 하늘은 지극히 밝아서 네가 가는〔王〕곳을 다 보며,
높은 하늘은 지극히 밝아서〔旦〕 네가 이리저리 노는〔遊衍〕곳을 지켜본다." 하였습니다. (대아(大雅) 판(板)의 편)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유()는 변한다〔變〕는 말이요, 왕(王)은 간다는 뜻과 통하니 나가서 가는 것이 있음을 말한다.
단(旦)도 역시 밝다는 것이요, 연(衍)은 이리저리 거니는 것을 뜻한다.
하늘이 총명하여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가히 공경하지 아니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동씨(董氏)는 말하기를, "사람이 하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곧 천지와 함께 유통하고 왕래하며 상응(相應)한다.
그러므로, 천인(天人)이 서로 상여(相與)할 때가 매우 두렵다.
국가가 도를 잃으려고 하면 하늘이 이에 먼저 재해를 내려 경고하고, 스스로 반성할 줄 모르면 또 괴이한 일을 일으켜서 경고하여 두렵게 하며,
그래도 그 변괴를 알지 못하면 손상하고 패망〔傷敗〕함이 이르른다.
이로써 천심이 어질고 임금을 사랑하여 그 난을 지식시키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크게 무도한 세상이 아니라면 하늘은 이릉 다 부지(扶持)하여 안전케 하려 하는 것이니,
일은 오직 하늘을 공경하는 데 힘쓰고 힘쓸 뿐이다." 하였습니다.

○ 광형(匡衡)은 말하기를, "하늘과 사람 사이에 좋은 기운과 나쁜 기운이 서로 통하며,
선과 악이 서로 추급되어 일이 아래에서 일어나면 상(象)이 위에서 움직이다.
음양(陰陽)의 이(理)가 각각 거기에 감응하여 음이 변하면 정(靜)이 동(動)하고,
(지진(地震)같은 것입니다.) 양이 가리워지면 밝은 것이 어두어지며, 일식(日食)과 같은 것입니다.
수재와 한재가 그 종류에 따라 일어난다." 하였습니다.

순(舜)은 말하기를," 강수(降水)(강()이라고도 씁니다.) 가 나를 경계하도다." 하였습니다. (우서(虞書) 순전(舜典))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살피건대, 맹자의 말에, '물이 역행하는 것을 강수(降水)라 한다.' 하였는데,
물이 역행 범람하는 재앙은 비록 요(堯)때에 일어났으나 순이 위를 이었어도 그 해(害)는 오히려 지식되지 아니하므로,
순이 스스로 이르기를, '이것은 하늘이 나에게 경계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성스러운 황제가 밝은 왕이 하늘을 두려워하고, 자기를 반성하는 유가 이와 같다.
그 뒤에 성탕(成湯)이 한재가 극심하여 또 여섯 가지 일을 가지고 스스로 자책하여 말하기를, '정사가 법도에 맞지 못하였던가,
백성들을 모질게 부렸던가, 궁실이 높았던가. 여색(女色)을 성히 하였던가.
뇌물이 행하였던가. 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던가.' 하였는데,
대체로 성탕같은 성스러운 임금이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마는 그래도 오히려 몸을 반성하여 스스로를 질책함이 이와 같이 지극하였으니,
탕(湯)의 마음은 곧 순의 마음이었다.
그런데,한(漢)나라 무제(武帝)때에 이르러 공손홍(公孫弘)은 이에 말하기를,
'요(堯)는 홍수를 만나서 우(禹)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지, 순이 수재를 당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으며,
탕이 한재를 극심하게 당하였다는 것도 걸(桀)의 여독(餘毒)이다.' 하였다.
대개 순은 수재를 가지고 스스로를 경계하였는데 공손홍은 이것을 요에게 돌렸고,
탕은 한재를 가지고 스스로를 책하였는데 공손홍은 이것을 걸에게 돌렸다.
이렇게 간사하고 아첨하는 마음은 그 임금을 그릇되게 하여 천계(天戒)를 업신여기는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주공(周公)은 말하기를, "은왕(殷王)인 중종(中宗)은 엄하고 공손하며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천명을 스스로 법받았다."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무일(無逸))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능히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정성을 다하여 천명으로써 몸을 경계하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 사기(史記)에230) 이르기를, "태무(太戊)가 즉위하고 이척(伊陟)이 정승이 되니, 아침에 뽕나무가 나서 하루 저녁에 크기가 한 아름이 되었다.
태무가 놀래어 이척에게 물으니, 이척이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요사한 것은 덕을 이기지 못한다 합니다.
임금께서 정사를 하는데 무슨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으니,부디 덕을 닦으시옵소서.' 하므로 태무가 이를 따르니,
상서롭지 못한 뽕나무가 말라 죽고 은(殷)나라의 도가 다시 일어났으며, 태무를 중종(中宗)이라고 호칭하였다." 하였습니다.

한(漢)나라가 선제(宣帝)의 조서(詔書)에 이르기를, "내가 육예(六藝)231)에 밝지 못하여 대도(大道)에 답답하며,
음양(陰陽)과 풍우(風雨)가 때로 순조롭지 못하니, 관리와 백성중에 몸을 닦아서 바르게 하고,
문학에 통하여 선왕의 술(術)에 밝은 이를 널리 천거하라." 하였습니다. (전한서(前漢書))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임금이 경(經)에 밝지 못하고 도를 알지 못하면, 마음을 바루고 몸을 닦지 못한다.
그리고 한 가지 마음이라도 불순한 것이 있거나, 한 가지 움직임이라도 중도(中道)를 잃는 것이 있으면 모두 족히 음양의 화(和)를 범하는 것이다.
후세의 임금들 중에는 이것을 아는 이가 거의 없는데, 선제(宣帝)는 홀로 이것을 아니, 가히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왕의 술에 밝은 이가 천거되었다는 소문은 끝내 듣지 못했다.
대개 몸을 바루고 도에 밝은 선비는 진실로 세상에 드문 것이나, 임금이 과연 성의를 가지고 이들을 구하기만 한다면,
어찌 한둘의 그럴듯한 사람이 나와 임금을 위해 쓰이지 않겠는가.
당시를 두루 상고해 볼 때 오직 왕길(王吉)만이 다소나마 만세의 계책을 세워, 임금을 삼대의 융성할 때와 같이 밝혀 보려고 하였으나,
선제가 그만 오활(汚闊)하게 보고 말았는데, 이 때 자사(子思)나 맹자(孟子)가 나왔다 하더라도 인의(仁義)에만 바르게 할 뿐이요,
공리(功利)에는 급급(汲汲)하지 않았을 것이니, 임금과는 서로 어긋나며 상통되지 않은 것이 더욱 심했을 것이다.
그러니 몸을 바루고 도에 밝은 선비는 이 취지를 잘 규찰하여 보고서, 어찌 가볍게 함부로 임금을 위해 나왔겠는가." 하였습니다.


◆ 다음은 환난을 예방하는 뜻에 대한 말씀

○ 성왕(成王) 말하기를, "옛날 크게 꾀할 때는 다스림이 어지럽지 않을 때에 단속하고,
나라가 위태롭지 않을 때 보전하였다."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주관(周官))

공자는 말하기를, "위태롭게 여기는 것은 그 위(位)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요, 망할 것으로 여기는 것은 그 보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어지러울 것으로 여기는 것은 그 다스림이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편안하되 위태로울 것을 잊지 아니하며,
보존하되 망하는 것을 잊지 아니하고, 다스리되 어지러운 것을 잊지 아니하기 때문에,
몸이 편안해지고 나라가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성인이 경계하는 것은 반드시 성할 때인데, 사람은 대개 그 성할 때에 경계할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안일하고 부유한 데 젖으면 교만하고 사치해지며, 한가하고 방자한 데 즐기면 기강이 무너지며,
화란(禍亂)을 잊어버리면 죄악이 싹트는 데 이렇게 점점 음탕하게 되어 난(亂)에 이르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경(詩經) 에 이르기를, "하늘이 장맛비를 내리기 전에, 뽕나무 뿌리〔桑土〕(음은 두(杜)입니다.)를 캐어 가지고,
창문을 단단히 얽어매여 대비하면, 이제 너희들 백성들이 누가 감히 나를 업신여기겠는가."
「天之未陰雨 徹彼桑土 綢繆戶 今女下民 或敢侮予」하였습니다. (빈풍(風) 치효()편)

주자는 말하기를, "태()는 미친다는〔及〕 뜻이요, 철(徹)은 취한다는 뜻이며, 상두(桑土)는 뽕나무 뿌리이며,
주무(綢繆)는 얽어맨다는 뜻이며 유()는 새집의 기(氣)를 통하게 하는 곳이며, 호(戶)는 그 출입하는 곳이다.
새가 되어 말하기를, '내가 하늘이 아직 장맛비를 내리기 전에 날아가서 뽕나무 뿌리를 가져다가 집의 틈을 얽어매고 견고히 하여
장마의 근심을 덜게 한다면, 백성들이 누가 감히 나를 업신여기겠는가.' 한 것은
깊이 왕실을 사랑하여 그 환난을 예방한다는 뜻을 비유한 것이므로, 공자는, '이 시를 지은 이는 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능히 그 나라를 다스린다면, 아무도 감히 그를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사람은 천지의 마음입니다.
임금이 능히 선정을 행하여 화(和)한 기운이 위에 감응되면, 아름다운 상서〔祥〕가 이르고,
비도(非道)를 많이 행하여 괴이한 기운이 위에 감응되면, 재앙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어째서 하늘의 마음이겠습니까.
모두 사람이 부른 것입니다. 다만 그 사이에 떳떳한〔常〕것도 있고 변하는〔變〕 것도 있는데, 선에는 상서가 이르고,
악에는 재앙이 이르는 것은 이(理)의 떳떳한 것이요, 선에도 상서를 보지 못하거나 악에도 재앙을 보지 않는 것은 이수(理數)의 변괴(變怪)입니다.
성스러운 임금이 재앙으로 인하여 자기 몸을 닦고 반성하면 재앙이 변하여 상서가 되고,
용렬하고 어두운 임금이 재앙이 오지 않는다 하여 묶은 관습에 젖어 있으면 도리어 재앙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것은 필연적인 사세입니다.
대개 하늘에는 진실로 응하지 꾸밈으로는 하지 아니하는 것인데,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한 덕(德)을 닦으면 위태로운 것을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어지러운 것을 다스릴 수 있으며,
멸망하는 것을 보존할 수 있으니, 어찌 재앙을 가히 편안하게 할 수 없겠습니까.
그러나 오직 밖으로는 두려워하는 용태를 보이면서도 안으로는 몸을 닦고 반성하는 진실한 덕이 없기 때문에,
하늘의 노여움을 돌이킬 수 없고, 나라의 형세를 구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임금은 국가가 한가한 때를 당하여도 마땅히 미리 덕정(德政)을 닦고 깊이 환난을 막아서 길이 다스려서 영구히 편안한 계책을 삼아야 할 것인데,
하물며 재변이 있어서 경계하는 것이겠습니까.
보통 사람의 마음은 걱정이 눈앞에 나타나면 능히 근신하고, 환난이 생각 밖에 있으면, 모두 경계할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재변(災變)이 처음 일어날 때를 당하면 비록 평범한 임금이라도 경동(驚動)할 줄 알지마는
재변이 자주 일어나서 조석으로 <요얼(妖)>의 응하는 것을 보지 못하면 이것을 업신여겨서 두려워하지 아니하여,
요얼의 응하는 것이 혹 늦기도 하고 속하기도 하나, 속하면 화가 적고 늦으면 화가 큰 것인 줄 모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환란이 이미 일어나 멸망의 증상이 나타난 뒤에는 비록 마음을 혁신하고 덕을 닦으려 하여도 벌써 늦어서 소용이 없습니다.
천고 이래로 실패한 자취가 서로 일치하니 가히 슬퍼할 만한 일입니다.
아, 성탕(成湯)은 자책하여서 큰 비가 천리나 내리었고, 태무(太戊)는 선을 좇아서 상서롭지 못한 뽕나무가 말라 죽었으니,
이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한 덕을 닦은 효험(效驗)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이것을 본받으시옵소서.

 

< 주 >

225) 12율 가운데에 양(陽)의 소리에 속하는 여섯 가지 음이다. 곧 황종(黃鍾)·태주(太簇)·고선(姑洗)·유빈(賓)·이칙(夷則)·무역(無射)

226)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다섯 음율.

227) 수(水)·화(火)·금(金)·목(木)·토(土)·곡(穀)을 말함.
이 여섯 가지는 재용(財用)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부(府)라고 한 것이다.「六府三事 允治萬歲 永賴時乃功」《書大禹謨》

228) 옛날 다섯 개의 관직. 곧 사도(司徒)·사마(司馬)·사공(司空)·사사(司士)·사구(司寇)이다

229) 오륜의 가르침

230) 한(漢)나라의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책.
위로는 황제(皇帝)로부터 아래로는 한(漢) 무제(武帝)에 이르기까지 12본기(本紀)·10표(表)·8서(書)·
30세가(世家)·70열전(列傳)으로 나누어 쓴 기전체(紀傳體)의 역사서(書).

231) 』역(易) ·시(詩)·서(書)·춘추(春秋)·예(禮)·악(樂)②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제7장. 입기강(立紀綱)

 

신이 살피건대, 위의 6장에서는 위정(爲政)의 근본과 위정을 갖추는데 대하여 논의하였습니다.
이 장 이하에서는 이에 위정하는 이에 대하여 논하겠는데, 위정하는 일은 기강(紀綱)을 세우는 것을 첫째로 삼습니다.

 

◆ 기강을 세워야 한다는데 대한 보편적인 말씀

선의(善醫)는 사람이 수척(瘦瘠)하거나 비대한 것을 보지 않고 그 맥을 짚어 보고 병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피며,
천하를 잘 경영하는 이는 천하의 안위(安危)를 보지 않고 그 기강의 치란(治亂)을 살핀다. (창려문집(昌黎文集))

한씨(韓氏)는 말하기를, "천하가 사람이라면 안위는 비대한 것과 수척한 것이요, 기강은 맥이다.
맥이 병들지 않으면 비록 수척하다 하더라도 해롭지 않고, 맥이 병들면 비록 비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죽는다.
이 말에 통하는 사람은 천하를 다스리는 소이를 알 것이다.
그러므로 사지(四支)가 비록 무고하더라도 믿을 수 없고 오직 맥에 달려 있을 뿐이요.
사해(四海) 가 비록 무사하더라도 자랑할 수 없고, 오직 기강에 달려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소위 강(綱)이라는 것은 그물에 벼리〔綱〕가 있는 것 같고 소위 기(紀)라는 것은 실꾸리에 끝〔紀〕이 있는 것과 같다.
그물에 벼리가 없으면 스스로 펼 수가 없고, 실꾸리에 끝이 없으면 스스로 풀수가 없다.
그러므로 한 집에는 한 집의 기강이 있고 한 나라에는 한 나라의 기강이 있는데, 만일 향(鄕)이 현(縣)에 통솔되고,
현이 주(州)에 통솔되고, 주가 노(路)에 통솔되고, 노가 대성(臺省)에 통솔되고, 대성이 재상에 통솔되고,
재상은 모든 중직(衆職)을 겸통하여 천자와 더불어 가부(可否)를 의논하여 정령(政令)을 내는 것은 곧 천하의 기강이다."하였습니다.

 

◆ 다음은 사심(私心)없는 것이 기강을 세우는 근본이라는 말씀

○ 공자는 말하기를, "하늘은 사사로이 덮는 것이 없고, 땅은 사사로이 실는 것이 없으며, 해와 달은 사사로이 비추는 것이 없으니,
이 세 가지를 받들어 천하에서 일을 하면, 이것을 세 가지의 무사(無私)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예기(禮記))

주자는 말하기를, "기강은 스스로 설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인주(人主)의 심술이 공평정대하고 편당반측(偏黨反側)하는
사사로음이 없어야만 기강이 서게 되고, 또 임금의 마음은 스스로 바르게 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어진 신하를 친하고 소인을 멀리하여 의리의 귀추를 강명(講明)하고 사사(私邪)로은 길을 막아 없애야만 가히 바르게 될 수 있다." 하였습니다.

○ 또, 봉사(封事)232)를 올려 말하기를, "한 개인으로 말하면, 한 집안의 사사로운 것을 가지고 있어 그 고을에 통할 수 없고,
한 고을 사람으로 말하면 한 향리의 사사로운 것을 가지고 있어 그 나라에 통할 수 없으며,
한 제후로 말하면 한 나라의 사사로운 것을 가지고 있어 천하에 통할 수 없거니와 천자에 이르러서는
하늘과 땅 끝까지 천자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어서 밖으로 통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으니,
또 무슨 사사로움이 있어서 되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을 본다면, 그 일념(一念)의 사사(私邪)를 능히 이기지 못하여 사심(私心)을 두는 데 이르고,
그 집안 사람을 능히 바루지 못하기 때문에 사인(私人)을 두는데 이르니,
사심으로써 사인을 쓰면 능히 사비(私費)가 들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안으로는 들어올 경비가 줄고,
밖으로는 남는 재산을 헌납할 곳이 있어서 사재(私財)를 두게 되므로, 만사의 폐단이 이로부터 나오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 마음으로 근심하여 절실히 나라가 다스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어찌 나라의 법도를 떨치고 풍속을 아름답게 하려고 하지 아니하시겠습니까.
단지 일념의 사사(私邪)를 능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조정에 충(忠)과 사(邪)가 섞이고, 형벌과 포상이 분별되지 아니하며,
사부(士夫)간에는 뜻이 비루해지고, 염치가 폐괴(廢壞)되어도 돌아보고는 오히려 사리의 당연한 것이라 하여
진기(振起) 시키기 힘써서 이것을 교정하고 개혁하려고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개 안으로 밝아야만 밖으로 정연해지며, 자신에 잘못이 없어야만 남을 비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궁성(宮省)은 임금이 계신 곳인데 불공(不公)한 도와 부정한 사람이 그 속에서 소굴(巢窟)을 만들고 가득 차 있으므로
폐하께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불공과 부정 아닌 일이 없게 되며, 불길로 찌고 녹혀서 폐하의 선을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며,
악을 미워하는 뜻을 깊지 못하게 하니, 그 해는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강이 흔들려 패하니 중외(中外)의 사람들은 이것을 듣고 마음 속으로 그르게 여겨 모두 조정을 경모(輕侮)하니,
폐하께서는 이 기강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반성하여 내 몸에 구하지 않고 갑자기 진작될 수 있겠습니까.
위에서 기강이 진작(振作)되지 아니하면 아래에서는 이 때문에 풍속이 퇴폐해지며,
겉으로만 아름답게 보이려는 태도에 능숙하여 계교(計較)해 나가므로, 오직 구하여 얻는데 염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치고 형이 아우를 힘쓰게 하는 데에도 한결같이 이 술(術)을 쓰고, 충의(忠義) 명절(名節)의 귀한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한 사람의 굳세거나 정직하며, 도를 지켜 이(理)에 순하는 선비가 그 간에 나오면 무리들이 그를 기롱하고 배척하여, 과격하다는 죄를 더하니,
이런데 다시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 다음은 공정한 상벌(賞罰)이 기강을 세우는 방법이라는 말씀

○ 고요(皐陶)가 말하기를, "하늘이 덕 있는 이에게 명하면 다섯 가지의 복장으로 다섯 등급을 나타나게〔章〕 하며,
하늘이 죄 있는 이를 치면 다섯 가지 형벌로써 다섯 가지에 적용하니, 정사에 힘쓰고 힘쓰소서." 하였습니다.(우서(虞書)의 고요모(皐陶謨)
○ 고요(皐陶)가 순임금에게 고한 말입니다.)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장(章)은 나타나게 한다는 뜻이요,
오복(五服)은 다섯 가지 등급의 복장이니, 9장(章)으로 부터 1장에 이르기까지가 이것이다.
위의 글은 하늘이 덕 있는 사람에게 명하면 다섯 등급의 형벌로써 징계함을 말한다.
대개 상작(賞爵)과 형벌(刑罰)은 임금이 하는 정사로서 임금은 이를 주관하고 신하는 이를 적용하는데
마땅히 힘써야 하며 태만히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만물은 다하나의 천리(天理)이니 여기에 사심이 어찌 있어서 되겠는가.
하늘이 죄있는 이를 치면 다섯 가지 형벌로써 다섯 가지를 나타나게 한다.' 말한것은
다만 천리의 자연스러움이 마땅히 이와 같은 것이며 여기에 어찌 마음의 희로(喜怒)를 그 사이에 참여시킬 수 있겠는가.
순(舜)이 16명의 정승을 기용하였는데, 요(堯)가 어찌 이것을 알지 못하였겠는가.
다만 그들의 선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기용하지 못하였며, 순이 4명의 흉인을 죽였는데, 요가 어찌 이것을 살피지 못하였겠는가.
다만 그들의 악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어찌 죽일 수가 있었겠는가.
기용하고 주육하는데는 오직 하나의 의리가 있으니 의(義)에 따라서 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 할 것이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하지 아니하고,
말이 순하지 아니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형벌이 맞지 아니하며 형벌이 맞지 아니하면 백성들이 수족을 둘 곳이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양씨(楊氏)는 말하기를, "이름이 그 실상에 합당하지 아니하면 말이 순하지 아니하고,
말이 순하지 아니하면 실상을 고람하여 일을 이룰 수 없다." 하였습니다.

○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일이 그 차례를 얻는 것을 예(禮)라 하고, 물이 그 화(和)를 얻는 것을 악(樂)이라 한다.
일이 이어지지 아니하면 차례가 없어져서 조화가 안되는 까닭에 예악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정치를 베풀어 나가는 것이 모두 그 도를 잃는 까닭에 형벌이 맞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이름과 실상은 서로 기다리는 것이니 한 일이 구차하면 그 나머지는 다 구차하다." 하였습니다.

정치가 행하여지지 않는 것과 교화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것은
작녹(爵祿)이 족히 권하지 못하고 형벌이 족히 부끄럽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예기」○ 역시 공자(孔子)말.)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정치가 행해지지 아니하고 교화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것은
웃사람이 작록과 형벌을 마땅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작록이 그 사람에게 맞지 아니하면 착한 이는 권할 수 없고,
형벌이 그 죄에 맞지 아니하면 소인이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이것을 말하여 형벌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작록을 가볍게 한다고 한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봉사(封事)를 올려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사해(四海)가 지극히 넓고 백성이 지극히 많아서
사람들은 각각 뜻이 있어서 자기의 사사로움을 행하려고 하는데,
정치를 잘하는 사람은 이것을 잘 총섭(總攝)하여 정제하여 백성들에게 각각 그 이(理)를 따르도록 하면서
내 뜻의 하고 싶은 바를 다 하도록 하는 것은 먼저 위에서는 기강을 유지하고 다음 아래에서는 풍속을 몰아가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기강이라 하는가 하면, 어질고 어질지 못한 이를 분별하여 상하의 구분을 정하고, 공과 죄를 잘 밝혀서 상벌의 시행을 공정히 하는 것이며,
무엇을 풍속이라 하는가 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다 착한 것을 알아서 이것을 사모하여 반드시 행하게 하고,
또 사람으로 하여금 착하지 못한 것을 알아서 이것을 부끄러워하여 반드시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강이 떨쳐지는 소이는 재상은 꼭 장악하여 실정(失政)을 하지 않으며, 대간(臺諫)은 잘 살펴서 사사로운 바가 없고,
임금은 또 공정(公正)한 마음으로 위에서 몸을 공손히 하되 백성들을 밝게 비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진 이는 반드시 위에 있고 어질지 못한 이는 반드시 밑에 있으며, 공 있는 이는 반드시 상을 받고 죄 있는 이는 반드시 형을 받아서,
만사의 계통이 결함(缺陷)이 없는 것입니다.
기강이 이미 떨쳐지면 천하의 사람들은 각각 스스로 분발하고 또 서로 권면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대체로 출척(黜陟)233)과 상벌이 일일이 백성들 각자의 몸에 가해지지 않더라도 예의와 염치의 풍속이 크게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도(正道)가 위에서 행해지지 아니하면, 이로써 재상과 대간될 사람을 적임자를 얻지 못하고,
출척과 상벌이 사의(私意)에서 많이 나와서, 천하의 풍속이 마침내는 흐려져서 명절(名節)과 행검(行)의 귀한 것을 알지 못하고,
오직 아첨하고 아양을 부려서 서로 교제를 잘하려고 경쟁하는 데 힘을 쓰며,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말을 단정하게 하거나 얼굴빛을 바르게 한 이가 있다면,
그 무리들은 기롱하고 배척하여 반드시 이 세상에서 용납되지 못할 지경에까지 몰아넣고야 만 그만두니
이렇게 되면 나라의 형세는 마치, 기울어져 가는 집이 겉모양은 아름답고 고와서 외부의 변화는 깨닫지 못하나
내부의 재목은 이미 다 좀먹고 썩어서 다시 지탱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임금께서 진실로 스스로 뜻을 결단하시어 그 마음을 깨끗이 씻고, 크게 경각심을 발휘하여,
크고 작은 신하로 하여금 각각 그 직(職)을 수행토록 해서 출척(出陟)을 분명히 하고 상벌을 신실히 하지 않는다면
어찌 무너진 기강을 진작시키고 무너진 풍속을 바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관자(管子)는 말하기를, 예(禮)·의(義)· 염(廉) ·치(恥)를 4유(四維) 라고 하는데 사유가 베풀어지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한다. 하였으며,
가의(賈誼)는 일찌기 한(漢)나라 문제(文帝)를 위하여, 이 말을 외워 말하기를, 관자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모르지만
관자를 다스리는 체계(體系)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였으니,
이 두 사람의 말은 명백하고 절실하며, <조금도> 빈말이 아니라고 생각되니,
성명께서 유의하시면 천하가 심히 다행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주자의 전후 봉사(封事) 당시의 폐단을 진술한 것인데 오늘날의 병통에 가장 적중한 까닭에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기강(紀綱)이란 것은 국가의 원기(元氣)입니다.
기강이 서지 않으면 만사가 퇴폐되고, 원기가 튼튼하지 않으면 백해(百駭: 몸 전체를 말함.) 가 해이해집니다.
오늘날 논의하는 사람들이 입을 열면 곧 기강을 마땅히 세워야 한다고 말하지마는, 아직 그 요령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대개 정치를 하는데 기강을 잘 세운다는 것은 마치 학자가 의(義)를 모아서 호연(浩然)의 기를 낳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 한 가지의 영(令)이 바른 것을 얻고, 한 가지의 일이 마땅한 것에 적합하다고 하여 갑자기 그 효과를 보겠습니까.
대체로 위에서는 반드시 다스려야겠다는 뜻이 없고 아래에서는 녹을 타 먹겠다는 마음만 품고 있어서,
착한 이를 보고도 능히 등용하지 못하고, 악한 이를 보고도 능히 물리치지 못하며, 공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상주지 아니하며,
죄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형을 주지 아니하여 도학이 폐절(廢絶)되고 교화가 무너지며 풍속이 쓰러져서,
다만 권세와 이익에만 쏠리면서, 쓸데없이 혀끝으로만 간절히 기강을 세울 것을 든다면,
이 어찌 고질(痼疾)에 걸린 사람이 입으로만 양약(良藥)을 말하면서 실지로는 목구멍에 넘기지 못하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반드시 임금이 뜻을 먼저 정하여 학문을 바르게 하고 몸을 성실히 하며,
호령을 발하고 일을 거행함이 한결같이 공정(公正)한 도에서 나오지 아니하는 것이 없어서,
뭇 신하들로 하여금 다 임금의 마음을 우러러 보고 맑은 하늘과 같이 느끼게 하여 흥기하는 것이 있게 하여야만 합니다.
그런 뒤에 어진 이를 높이고 능한 이를 부리며, 망령된 이를 쫓아내고 간사한 이를 제거하며,
실적을 고람하여 상벌을 분명히 하며, 일을 시행(施行) 하고 조처하는 것이 천리에 순하고,
인심에 합당하지 않는 것이 없어서 크게 일세를 복종시킨다면 기강이 진작되고 영(令)이 행해져서
천하의 일이 모두 여의(如意)치 않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二帝)와 삼왕(三王) 인심을 열복(悅服) 시키고 세도를 유지하여, 수백 년을 전하여도 견고하여 허물어지지 않았던 소이입니다.
오늘날 법도가 행해지지 아니하고 정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다 기강이 서지 아니한 연유(緣由)이니,
폐하께서는 기강을 진작(振作)시키기를 엎드려 바라옵니다.

 

< 주 >

232) 밀봉하여 천자에게 상주(上奏)하던 의견서(意見書).

233) 유능한 이를 기용하고, 무능한 자를 내어쫓음.

 

 

제8장. 안 민(安民)

 

신이 살피건대, 이미 기강이 서서 백료(百僚)가 다 자기 직분을 받들은 뒤에 정치기구가 곧 베풀어지고 혜택이 생민에게 입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강장(紀綱章)다음에 안민장(安民章)을 놓았습니다.

 

◆ 다음은 군민상수(君民相須)의 도에 대한 말씀

부열(傅說)이 말하기를, "밝은 임금이 천도(天道)를 받들고 순응하여,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베풀어서, 후왕(后王)과 군공(君公)을 세우고,
대부와사장(師長)으로써 받들게 한 것은, 안일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열명(說命))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후왕(后王)은 천자요, 군공(君公)은 제후(諸侯)이며, 치란(治亂)을 난(亂)이라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순(舜)이 우(禹)에게 명하기를, "사랑할 만한 이는 임금이 아니며, 두려워할 만한 이는 백성이 아닌가.
백성은 임금이 아니면 누구를 떠받들며, 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더불어 나라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니,
공경하여 너의 위(位)를 삼가서 원할 만한 것[願]을 삼가 닦아라.
사해(四海)가 곧 궁해지면 하늘이 내린 녹(祿)이 길이 마치리라." 하였습니다. (우서(虞書)의 대우모(大禹謨))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가원(可願)이라 하는 것은 맹자에 이른바 '가욕(可欲)'이라 하는 것과 같다.
대체로 원할 만한 것은 다 착한 것이니, 임금이 마땅히 그 거하는 바의 위를 조심하여 착한 것을 공경히 닦아야 한다.
만약에 한 오라기만큼이라도 착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생겨서 정사를 해롭게 하면 백성들은 그 몸 둘 곳을 얻지 못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온 백성들이 곤궁한데 빠지면 임금의 천록(天祿)도 끊어져서 다시는 계속하지 못하는 것이니, 어찌 깊이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는가.
위의 이 글은 안위(安危)와 존망(存亡)에 대한 경계로서 지극히 경고한 것이다.
그 임금의 공덕이 성하여 반드시 이러한 존망의 지경에 이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감히 <마음>을 안일하게 놓지 않고, 호리(毫釐)의 사이라도 조심하게 하고자 하니 이것이 성인의 마음인 소이이다." 하였습니다.

오자의 가〔五子之歌〕에 이르기를, "황조(皇祖:우왕(禹王)을 가리킴.)께서 이런 훈계를 하셨다.
백성들은 가깝게 할지언정 천대하지는 못한다.
백성은 오직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어야만 나라가 편안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서(夏書))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이것은 우(禹)의 훈계이다.
임금과 백성간의 관계를 그 형세로 말하면, 존비(尊卑)의 분수가 천지와 같고, 정(情)으로 말하면,
서로 기다려 편안한 것은 신체가 서로 도와서 생존해 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형세로 멀리하면 멀어지고, 정(情)으로 친하면 합하는데, 친하기 때문에 가깝다고 하고, 멀리하기 때문에 천대한다고 한다.
<이것은 이금이 백성과> 친해야 하고 멀리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한 것이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으로서 근본이 굳어야만 나라가 편안해지고, 근본이 굳지 못하다면
비록 진(秦)나라 만큼 강하고 수(隋)나라 만큼 부(富)하더라도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애민(愛民)의 도에 대한 말씀

○목왕(穆王)이 말하기를, "여름에 더운 비를 백성이 원망하고 겨울에 큰 〔祁〕 추위를 백성이 원망한다.
그들은 참으로 어려우니 그 어려움을 생각하여 <모든 것이> 용이(容易)하도록 꾀하면 백성들이 편안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서(周書)의 군아(君牙)

○ 목왕(穆王)이 군아(君牙)를 대사도(大司徒)로 임명하면서 한 말입니다.)

채씨는 말하기를, "기(祁)는 크다는 뜻이다.
더운 비와 큰 추위를 백성이 원망하는 것은 스스로 그 삶이 어려움을 가슴아파 한 것이다.
'그 어려웁다'는 것은 그 백성이 살기가 진실로 어려움을 탄식한 것이다.
그 어려운 것을 생각하여 용이하게 도모한다면 백성들이 곧 편안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강고(康誥)234)에 말하기를,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것과 같이 하라." 하였으니, (강고의 말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마음으로 정성껏 구하기만 하면 비록 적중되지는 않더라도 멀지는 않을 것이다.
대개 자식을 기르는 법을 익힌 뒤에 시집갔다는 사람은 없다." 하였습니다. (대학(大學))

삼산 진씨(三山陳氏)는 말하기를, "갓난아이는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스스로 말을 할 수 없는 것인데,
오직 자모가 그 아기의 하고 싶은 것을 알게 된다.
비록 그 하고 싶은 것에 꼭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거기에서 멀지 않는 것은 사랑이 진실하여 피차간에 틈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으로 구하는 것은 배움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였습니다.

○ 장자(張子)가 말하기를, "대체로 임금과 정승은 천하의 부모와 같이 함으로써 왕도(王道)를 할 수 있다.
부모의 마음으로 백성들에게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면 이것을 왕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소위 부모의 '마음'이란 것은 한갓 말로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해(四海) 안의 백성을 자기의 자식과 같이 보는 것을 말한 것이니,
만약 사해의 안을 다자식처럼 본다면 정치하는 방법이 반드시 진(秦)·한(漢)처럼 적은 은혜를 베풀지는 않을 것이며,
오패(五伯)같이 이름을 빌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늙어서 아내 없는 것을 환(鰥)이라 하고 늙어서 남편 없는 것을 과(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 없는 것을 독(獨)이라 하고 어려서 아비 없는 것을 고(孤)라고 한다.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은 세상에 가장 곤궁한 자들이어서 호소할 데도 없는 사람들이다.
문왕(文王)은 정령(政令)을 발하여 인정(仁政)을 베풀 때에는 반드시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을 먼저 돌보았던 것이니,
시(詩)에 이르기를, '부자(富子)들이야 괜찮지만, 외로운 사람들이 불쌍하구나.' 〔矣富人 哀此獨〕하였다." 하였습니다. (맹자(孟子) )

주자는 말하기를, "선왕이 백성을 기른 정책은 백성들의 처자를 잘 인도하여 이들로 하여금 늙은 이를 봉양하게 하고,
어린 이를 애휼(愛恤)하게 한다.
백성들 중에 불행히 환과고독(鰥寡孤獨)의 부류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이들은 더욱 애휼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들을 먼저 돌보게 된다.
시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정월(正月)편이요, 가()는 가(可)하다는 뜻이며, 경()은 괴롭고 근심스런 모습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지극히 인(仁)하면 천지가 한 몸덩어리가 되고, 천지 사이의 만가지 형태와 물이 사지(四肢)가 되고 백체(百體)가 된다.
대개 사지와 백체가 되는 것을 보고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의서(醫書)에 '수족이 풍완(風頑)한 것을 사체 불인(四體不仁)이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아픈 것이 그 마음에 관련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대저 수족이 나에게 있는데, 그 아픈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불인(不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상의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은혜를 베푸는 것이 없는 자는, 스스로 자기를 버리는 것이 역시 이와 같을 따름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외민(畏民)의 도에 대한 말씀

소공(召公)이 성왕(成王)에게 고하기를, "임금께서는 빨리 덕을 공경하여 크게 백성들을 화하게〔誠〕 하는 것을 지금의 아름다음으로 삼으시옵소서.
임금께서는 감히 뒤로 미루지 말고 백성들의 험난한 것을〔〕돌보아 두렵게 여기옵소서."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소고(召誥))

채씨는 말하기를, "함(誠)은 화한다는〔和〕뜻이요, 암()은 험난하다는 뜻이다.
왕이 크게 백성을 화하게 하는 것을 지금의 아름다움으로 삼아야 한다.
백성은 비록 지극히 미미하나 지극히 두려워해야 하므로 임금은 당연히 덕을 공경하여 뒤로 미루지 말고,
백성들의 험난한 것을 돌보아 두렵게 여겨야 한다." 하였습니다.

오자의 가〔五子之歌〕에 말하기를, "어리석은 남자나 어리석은 여자라도 다 나보다 나으리라.
나는 만백성을 대하되 마치 썩은 새끼로 여섯 마리의 말을 모는 것같이 두려워하는데,
남의 위에 있는 사람이 어찌 공경하지 아니하겠는가." 하였습니다. (하서(夏書))

채씨는 말하기를, "임금이 인심을 잃으면 독부(獨夫:국민에게 악정을 행하여 버림받은 군주. 죽 필부를 말함.)가 된다.
독부가 되면 어리석은 남자나 어리석은 여자라도 다 나를 이길 것이다.
썩은 새끼는 끊어지기 쉬워서 말을 몰 수가 없는데, 이것은 매우 두렵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맥구읍인(麥丘邑人)이 제환공(齊桓公)에게 축원하기를, "임금께서는 신하들과 백성에게 죄를 얻지 마시옵소서." 하니,
공이 화를 버럭 내면서 하는 말이, "나는 듣건대, 아들이 아버지에게 죄를 얻고, 신하가 임금에게 죄를 얻었다는 말은 들었지만는,
임금이 신하에게 죄를 얻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노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맥구의 읍인이 절하고 일어나면서 하는 말이,
"아들이 아버지에게 죄를 얻으면 고모나 자매나 숙부를 통해서 양해를 시키면 아버지가 능히 죄를 사(赦)해 줄 것이고,
신하가 임금에게 죄를 얻으면 좌우의 근신들을 통하여 사죄하면 임금이 능히 사하여 줄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 걸(桀)이 탕(湯)에게 죄를 얻고 주(紂)가 무왕(武王)에게 죄를 얻은 것은 임금이 신하에게 죄를 얻은 것이니,
사죄하여 줄 사람이 없어서 지금까지 죄를 얻고 있습니다." 하니,
공이 말하기를, "좋은 말이로다." 하고는 맥구(麥丘)땅으로 그를 봉(封)하였습니다.

 

◆ 다음은 혈구(矩)235)의 도에 대한 말씀

○ 충서(忠恕)가 도에서 거리가〔違〕멀지 않으니, 나에게 베풀어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 (중용(中傭))

주자는 말하기를, "나의 마음을 다하는 것은 충(忠)이요, 나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은 서(恕)이다.
그리고 위(違)는 가는 거리라는 뜻이니 여기에서부터 저기까지 서로 거리가 멀지 않다는 말이다.
나의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 일찌기 같지 아니한 것이 없는 까닭에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면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장자(張子)가 말한바,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면 인(仁)을 다하는 것이다.' 한 말이 바로 이것이다." 하였습니다.

위에서 늙은이를 늙은이로 섬기면 백성들이 효성에 흥기(興起)하고, 위에서 어른을 어른으로 받들면 백성들이 공경에 흥기하며,
위에서 외로운 이들을 가련하게 여기면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기 때문에 군자는 혈구의 도〔矩之道〕가 있나니라." 하였습니다.

주자가 말하기를, "늙은이를 늙은이로 섬긴다는 것은 소위 내 늙은 이를 늙은 이로 섬긴다는 말이요,
흥(興)은 감발(感發)하여 흥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혈()은 헤아린다는 뜻이요, 구(矩)는 모난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구(矩)는 모난 물건을 만드는 것으로 속칭 곡척(曲尺)이라 합니다.
위에 말한 이 세 가지는,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도 본받는데 빠른 영향이 있다.
여기에서 인심의 같은 것을 볼 수 있으니, 한 사람도 그 얻지 못하는 이가 있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인심이 같은 것을 미루어 (같은 것이란 마음이요, 마음이란 곧 구(矩)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여,
피차간에 각각 그 분원(分願)을 얻게 하면 상하와 사방이 균형되고 방정하여, 천하가 화평해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웃사람에게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 것이요, 아랫사람에게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웃사람을 섬기지 말 것이며,
앞 사람에게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뒷사람에게 먼저 하지 말 것이요, 뒷 사람에게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앞사람에게 따르지 말 것이며,
오른쪽 사람에게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왼쪽 사람에게 건네지 말 것이요, 왼쪽 사람에게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오른쪽 사람에게 건네지 말 것이니,
이런 것을 혈구의 도〔矩之道〕라고 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 말은 윗 글의 혈구(矩) 두 글자의 뜻을 거듭 해석한 것이다.
만일 웃사람이 내게 무례하게 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반드시 이런 마음으로 아랫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역시 무례하게 부리지 말 것이요,
아랫사람이 내게 불충(不忠)하게 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또한 반드시 이런 마음으로 웃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불충하게 섬기지 말 것이니,
일의 전후좌우에서 사람마다 다 이와 같이 해 나간다면
자기 몸이 처한 곳의 상하 사방은 그 장단(長短)이나 광협(廣狹)이 피차 한결같아서 공정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백성들이 다 함께 이런 마음을 지니고 흥기하는 이 또 어찌 한 사람이라도 얻지 못하는 이가 있겠는가.
잡은 바(혈구의 도)는 간략하나 미치는 바는 넓으니, 이는 천하를 화평하게 하는 요도(要道)이다." 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백성들의 즐거움을 즐긴다면 백성들 역시 그 임금의 즐거움을 즐기고,
백성들의 근심을 근심한다면 백성들 역시 그 <임금의> 근심을 근심한다.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의 즐거움을 가지고 즐기며, 천하사람들의 근심을 가지고 근심하여야 할 것이니,
그리고도 왕노릇을 하지 못한 이는 없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걸(桀)·주(紂)가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은 것이고, 그 백성을 잃은 것은 그 민심(民心)을 잃은 것이다.
천하를 얻는 데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백성을 얻는 것이 곧 천하를 얻는 것이다.
그 백성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는데 그 민심을 얻는 것이 곧 백성을 얻는 것이다.
그 민심을 얻는데는 방법이 있는데, 그 하고자 하는 것을 거두어 주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을 베풀지 않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맹자」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들의 하고자 하는 것을 다 이루어 주되 마치 거둬들이 듯 해 주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은 그들에게 베풀지 말라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 조조(錯)가 말하기를, "삼왕(三王) 때는 신하와 임금이 다 어질어 함께 꾀하고 서로 보필하였으며,
천하를 편안하게 하기 위한 계책은 하나도 백성들의 마음에 바탕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백성들의 마음은 오래 살기를 윈하지 않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왕은 이들의 생명에 손상이 없게 하였고,
백성들은 생활이 넉넉하기를 윈하지 않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삼왕은 이들을 후하게 하여 곤궁하지 않게 하였으며,
백성들은 마음이 편안하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삼왕은 이들을 부호(扶護)하여 위태롭지 않게 하였고,
백성들은 안일하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삼왕은 이들에게 힘을 여유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법령을 만들어서는 인정에 합당하여야만 행하고, 대중을 동원하고 백성을 부리는 데는 백성들의 사업에 근본을 두고 하였기 때문에
천하의 사람들이 그 정사를 즐거워하고, 그 덕에 돌아가서 바라기를 마치 부모와 같이 하고, 따르기를 마치 흐르는 물과 같이 하였다 ." 하였습니다.

편안하게 해주려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부린다면 비록 피로하더라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살려 주려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죽인다면 비록 죽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편안하게 해주려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부린다는 것은 본래의 목적이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려는 데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씨앗을 뿌리고 집을 다스리게 하는 부류요, 살려 주려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죽인다는 것은
본래의 목적이 백성을 살려 주려는 데 있는 것을 말한 것인데, 이것은 해(害)됨을 없애고 악을 버리게 하는 부류이다.
대개 부득이 그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면 비록 백성들의 욕망에는 거슬린다 하더라도 백성들은 원망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이와 반대가 된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박세렴(薄稅斂)의 도에 대한 말씀

○ 주공(周公)이 말하기를, "아, 군자는 안일하지 않는 것을 처소〔所〕로 한다.
먼저 농사짓기의 어려움을 알고, 이에 안일한 자리에 있으면 소인이 의지하는 것을 알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서(周書)의 무일(無逸). 하동)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소(所)는 처소(處所)와 같다.
군자는 편안히 그냥 놀지 않는 것을 자기의 처소로 하여 동정(動靜)과 식식(食息)에 이에 있지 않을 때가 없는 것인데,
만약 하다가 말다가 하면 소위 처소가 아니다.
먼저 농사짓기의 어려움을 알고 후에 안일한 자리에 있다는 것은 왕이 부지런히 애쓰는 마음을 가지고 왕위의 안일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의지〔依〕한다는 것은 농사짓는 일을 가리켜 한 말인데, 소민(小民)의 의지하여 사는 것임을 말한다.
사민(四民:사(士)·농(農)·공(工)·상(商) )의 일 중는 농사짓는 일보다 더 수고로운 것은 없고,
생민의 공(功) 중에는 농사짓는 일보다 더 큰 것은 없다.
주공이 무일(無逸)의 훈계를 발하면서 맨 먼저 이것을 언급하였으니, 이것은 이유가 있다." 하였습니다.

문왕(王文)은 감히 놀이와 사냥을 즐기지 아니하고 여러 고을에서 정상적인 공(供)만을 받아들였다.

채씨는 말하기를, "놀이와 사냥하는 데는 나라의 떳떳한 법이 있다.
문왕은 놀이나 사양에서 법도 없이 하지 아니하여 위에서 낭비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아래에서 백성에게 지나치게 거둬들이지 아니하여 능히 정상적인 공(供)만으로도 만족하여
공물(貢物)을 정수(正數) 외에는 횡포하게 거두는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애공(哀公)이 유약(有若)에게 묻기를, "흉년이 들어 비용이 부족하니, 이것을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논어」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비용은 나라의 비용이니, 공애(公哀)의 뜻은 대개 부세(賦稅)를 더함으로써 비용을 족하게 하려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유약(有若)이 대답하기를, "어찌 철법(徹法)을 쓰지 않습니까."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철(徹)은 통(通)한다는 뜻이요, 고룬다〔均〕는 뜻이다.
주(周)나라 제도에는 한 농부가 밭 백 묘를 받아서, 도랑〔溝〕을 같이하고 밭〔井田〕을 같이하는 사람과 더불어
힘을 합해 농사를 지어서 묘(畝)를 계산하여 고르게 거두었으니, 대개 백성은 그 9를 얻고 관청에서는 1을 취하므로 이것을 철법(徹法)이라고 한다.
노(魯)나라에서는 선공(宣公) 때부터 묘(畝)에 세를 받았으며, 또 그 밖의 묘마다 10분의 1을 취하였으니 결국은 10분의 2를 취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유약이 오직 철법을 시행하여 애공(哀公)이 절용함으로써 백성을 후대하기를 요청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애공이 말하기를 2도 내가 오히려 부족하거늘 어찌 그 철법을 쓰리요." 하였습니다.

주자는, "2는 10분의 2를 말한다.
공은 유약이 자기의 취지를 깨닫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렇게 부세를 더 받을 뜻을 보였다." 하였습니다.

유약이 대답하기를, "백성이 족하다면 임금이 누구와 더불어 부족하다 하겠으며,
백성이 부족하다면 임금이 누구와 더불어 족하다 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이 넉넉하면 임금이 홀로 가난하게 되지 않을 것이며, 백성이 가난하면 임금이 홀로 넉넉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유약은 깊이 군민(君民)이 일체(一體)가 될 것을 말하며, 공의 많이 거두어들이려는 뜻을 저지 시켰으니,
남의 위가 된 사람은 마땅히 깊이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 경원 보씨(慶源輔氏)는 말하기를, "애공이 부세를 더하려고 한 것은 오직 말단적인 이익만 도모하는 것이요,
유약이 철법을 쓰려고 한 것은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의론이다.
사사로운 뜻에서 눈앞만 보면, 근본으로 돌아가는 의론은 멀어지고, 말단적인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하루 아침의 순간적인 효과가 있다.
공평한 이치로써 장구한 데서 보면 하루 아침의 순간적인 효과는 뒷날의 우환이 되게 하며, 근본으로 돌아가는 의론은 실로 오래가는 이익이 된다.
대개 말류(末流)의 폐는 더욱 말단적인 것을 구하여 마침내는 패망하고마니 이것은 고금을 통해 동일하다." 하였습니다.

○ 정씨(鄭氏)는 말하기를, "백성들의 재물은 곧 임금의 재물이고, 백성들의 힘은 곧 임금의 힘이다.
수레와 말은 다 백성이 생산하는 것이요, 곡식은 다 백성이 바치는 것이며, 힘의 사역(事役)은 다 백성이 하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능히 그 부세를 줄여서 관대하게 하면 그들은 생(生)의 안정을 얻어서 힘을 내어 공상(公上)에 매우 이바지하게 될 것이니
이렇게 되면 무엇이 부족하다고 근심하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가정들은 서로 이산(離散)되고 밭과 들은 황무지가 될 것이니, 임금은 어디서 취하여 비용을 족하게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대영지(戴盈之)가 말하기를 "10분의 1의 세법을 실시하고, 관문(關文)과 거리에서 징세(徵稅)를 폐지하는 것은,
지금은 능히 시행할 수 없으니 조금 경감하는 정도로 했다가 내년까지 기다린 후에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습니다. (「맹자」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영지(盈之)는 송(宋)나라 대부이요, 10분의 1은 정전법(井田法)이며, 관문과 시장의 세는 장사세를 말함이요,
그만둔다〔已〕는 것은 폐지한다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지금 매일 그 이웃 닭을 훔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그것은 군자가 할 짓이 아니다.' 하니
말하기를, '그러면 그 수효를 줄여서 한 달에 닭 한 마리씩을 훔치다〔攘〕가 내년까지 기다린 후에 그만두도록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가정해 보자.
만약에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당장에 빨리 그만둘 것이지, 왜 내년까지 기다리겠는가."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양(攘)은 물건이 저쪽에서 저절로 이쪽에 온 것을 훔치는 것을 말하고, 손(損)은 감한다는 뜻이다.
의리에 불가한 것을 알고도 능히 빨리 고치지 못하는 것은 달마다 닭 한 마리씩을 훔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였습니다.

○ 남헌 장씨(南軒張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불의를 멀리하기를 마치 악한 냄새를 싫어하는 것같이 하며,
감히 가까이 하지 아니하기를 마치 끓는 물에 손을 넣는 것같이 하며, 감히 잠간이라도 편히 여기지 아니하기를 마치 도탄에 앉아 있는 것같이 한다.
그리고 의(義)에 옮기기를 마치 기갈을 만난 이가 음식을 대하는 것같이 한다.
대개 보기를 밝게 하고 결단하는 용기가 이와 같지 아니하면 스스로 뽑아버리고 스스로 새롭게 할 수 없다고 여긴다.
선비가 몸가짐에 있어서 개과천선(改過遷善)할 즈음에 대영지(戴盈之)의 말대로 하면 종신토록 허물 속에 빠져 골몰할 것이요,
신하가 나라 일을 꾀하여 폐단을 개혁하고 옛을 돌이키는 일에 있어서 대영지의 말대로 하면 마침내 묵은 습속에 젖어서 구차한 지경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수신(修身)에서부터 치국(治國)에 이르기까지 지(知)·인(仁)· 용(勇)의 3덕이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된다.
지(知)는 이것을 아는 것이요, 인(仁)은 이것을 행하는 것이요, 용(勇)은 이것을 결단하는 것이니, 가히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 다음은 요역(役)을 가볍게 하는 도에 대한 말씀

○ 왕제(王制)에, "백성을 부리는 일은 1년에 3일을 지나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예기(禮記))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민력(民力)을 부린다는 것은 성곽(城郭)·도로 (道路)·구거(溝渠:도랑)와 궁묘(宮廟)를 짓는 일 같은 유인데,
주례(周禮)에 본시, 풍년에는 3일, 보통 해에는 2일, 흉년에는 1일뿐이나 군역(軍役)에는 이 제도에 구애되지 않았다." 하였습니다.

흉년에는 부역도 없고 부세도 없다. (주례(周禮))

정씨(鄭氏)는 말하기를, "부역을 없앤 것은 그 노고를 가엾이 여기는 것이요, 부세를 없앤 것은 그 곤궁한 것을 가엾이 여기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역정(力政)은 백성을 부역시키는 것입니다.

재물이 다하면 원망하고, 힘이 다하면 한탄한다.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이것은 백성의 상정(常情)이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임금은 부세를 경감하여 그 재물을 탕진(蕩盡)하지 아니하였고, 부역을 감하여 그 힘을 괴롭히지 아니하였다." 하였습니다.

장공(莊公) 9년 겨울에 수수(洙水)를 팠다. (춘추경(春秋經))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것은 백성을 보존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민력(民力)을 부리기를 가볍게 여겨 경망하게 큰 역사를 일으켜서 나라의 기틀이 한 번 흔들리면 비록 긴 강이나 큰 냇물이 막고 있어서
그 봉역(封域)이 동정호(洞庭湖)236)와 팽려(彭) 그리고 하수(河水)와 한수(漢水)같이 험고(險固)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의지할 수 없는데,
하물며, 수수(洙水:강 이름) 이겠는가.
수수를 팠다는것을 기록한 데서, 국가를 지키는 말무(末務)로 백성들을 괴롭혀서,
근본을 알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으니, 뒷 사람들의 경계로 삼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형벌을 신중히 하는 도에 대한 말씀

○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못 위에 바람이 있는 것은 중부(中孚)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옥사(獄事)를 의논하고 죽음을 늦춰 준다." 하였습니다. (중부괘상사(中孚卦象辭)237)

정자(程子)는 말하기를,"못위에 바람이 있는 것은 수체(水體)가 허(虛)한 까닭에 바람이 잘 들어오고,
인심이 허한 까닭에 사물을 보면 마음을 감동하게 한다.
바람이 못에 움직이는 것은 마치 사물이 마음 가운데에 감동하는 것과 같은 까닭에, 중부(中孚)의 상(象)이 된다.
군자가 옥사(獄事)를 의논하는데는 그 충(忠)을 다할 뿐이고, 죽음을 판결하는데는 측은(惻隱)한 마음을 극진히 할 뿐이다.
천하의 일은 그 충을 다하지 아니할 곳이 없으나 옥사를 의논하고 죽음을 늦춰 주는 것은 그 가장 큰 것이다." 하였습니다.

순제(舜帝)가 말하기를,"고요(皐陶)여, 지금 신하들이 아무도 나의 정사에 범하는[干] 이가 없는 것은
그대가 사사(士師:형을 다스리는 벼슬)가 되어 다섯 가지 형벌을 밝히고, 다섯 가지 가르침을 도와 나를 다스리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형벌을 쓰되 형벌이 없어지도록 하여 백성들을 중도(中道)의 바른 길에 맞게 한 것은
그대의 공이니, 더욱 힘쓸 지어다." 하였습니다. (우서(虞書)의 대우모(大禹謨)하동)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간(干)은 범한다는 말이요, 정(正)은 정사(政事)이며, 필(弼)은 도운다는 말이다.
성인의 정치는, 덕으로써 백성을 교화하는 근본으로 삼고, 형벌은 특히 그 미치지 못하는 것을 도울 뿐이다.
기(期)라는 것은 먼저 일에 있어서 꼭 그렇도록 기약 하는 것을 말한다.
백성들이 다 중도(中道)의 바른 길에 합하면 형벌은 과연 쓸 곳이 없게 되는 것이다. 무(懋)는 힘쓴다는 뜻이니,
순임금이 고요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여 이를 권면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고요(皐陶)가 말하기를, "임금님의 덕에 허물이 없어서 아래로 신하를 간략하게 대하시고,
백성을 너그럽게 부리시며, 형벌은 자손[嗣]에게까지 미치지 않고, 상은 후세[世]에까지 뻗치게 하셨으며, 모르고 지은 죄는 커도 용서하시고,
알고 일부러[故] 저지른 죄는 작아도 벌하셨으며, 의심스러운 죄는 그 형을 가벼히 하시고, 의심스러운 공은 그 상을 무겁게 하셨으며,
죄없는 이를 잘못 죽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법도[經]가 아닌 것에 허물하셔서 삶을 좋아하는 덕[好生之德]이 백성들의 마음 속에 담뿍 젖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유사(有司)의 법도에 범하지 아니 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채씨는 말하기를, "사(嗣)라는 것은 친근한 것이요, 세(世)라는 것은 소원한 것이다.
죄는 부자에게도 서로 미치지 않고 상(賞)은 먼 후세에까지 뻗치게 하였으니, 그 착한 것을 좋아함은 길고, 그 악한 것을 미워함은 짧기가 이와 같다.
과(過)라는 것은 알지 못하고 저지른 범행이요, 고(故)라는 것은 알고 고의로 저지른 범행이다.
모르고 저지른 죄는 비록 큰 것이라도 반드시 용서해 주고, 고의로 저지른 범행은 비록 작은 것이라도반드시 형벌을 주며,
죄의 적용이 의심스러워 무겁게 할 수도 있고 가볍게 할 수도 있을 경우라면 가벼운 것을 따라서 죄를 주고,
공(功)의 해당이 의심스러워 가볍게 할 수도 있고 무겁게 할 수도 있을 경우라면 무거운 것을 따라서 상을 주었다는 것이다.
경(經)은 떳떳한 법도이다.법도에 죽일 수도 있고 안 죽일 수도 있다면,
죽여서 생명을 해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이지 말고 스스로 형벌이 잘못이 되었다고 인책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인 인애충후(仁愛忠厚)의 지극한 것인데, 다 이른바  꼭?좋아하는 덕[好生之德]이다.
대개 성인의 법은 한정이 있으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무궁한 까닭에 형(形)을 쓰고 상(賞)을 행하는데
혹시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항상 법을 굴(屈)하고 은혜를 펴서 법을 집행하는 뜻이 그 삶을 좋아하는 덕에 이김이 없도록 하니,
여기서 그 본심이 막히는 일이 없고 도리어 그 본심이 상법(常法)의 밖에서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그 본심이 점점 넘쳐 흘러 민심 속에 스며들면 천하사람들이 애모(愛慕)하고, 감열(感悅)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선에 흥기하여 유사(有司)의 법도를 법하지 아니한다. 고요(皐陶)는 순이 자기의 공을 아름답게 여긴 까닭에
이것을 말하여 공을 순에게로 돌린 것이다." 하였습니다.

계강자(季康子)가 공자에게 정치에 관해서 묻기를, "무도한 자들을 죽여서 올바른 길로 가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공자는 대답하기를,"당신은 정치를 하면서 어찌 죽인다는 말을 하오.
당신이 선을 원한다면 백성들이 곧 선해집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風]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草]과 같아서 풀은 위로 바람이 지나가면 반드시 눕[偃] 부습니다." 하였습니다. (「논어」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들은 위정자를 보고 본을 받는 것인데 어찌 죽이는 것을 <함부로>하겠는가. 위에서 착하려로 하면 백성들은 착해진다.
상(上)이란 글자는 어떤 데는상 (尙) 자로 되어 있으니 더한 다는 뜻이요, 언(偃)은 눕는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윤씨(尹氏)는 말하기를, "죽인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어찌 남의 위에 있는 사람의 할 말이겠는가.
몸소 궁행하면서 가르치면 복종하고, 말로써만 가르치면 송사(訟事)를 하는 것인데 하물며 죽이는 것으로써 가르침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하였습니다.

맹씨(孟氏)가 양부(陽膚)에게 사사(士師)를 시키거늘<양부가> 증자(曾子)에게 그 일을 물어보니,
증자가 말하기를,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정도(正道)를 잃어 백성들이 흩어진 지가 오래 되었다.
<그들이 죄를 범하게 된> 실정을 알게 되거든 슬퍼하고 불쌍하게 여기고 기뻐하지는 말라."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이 흩어지는 것은 정의(情義)가 멀어져서 서로 단결되지 않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사씨(謝氏)는 말하기를, "백성들의 마음이 단결되지 않고 흩어지는 것은 부리는데 도가 없고, 미리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으로서,
그들이 범법을 하는 경우는 부득이 해서 빠진 것이 아니라면 몰라서 거기에 빠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죄를 범하게 된 실정을 알게 된다면 슬퍼하고 불쌍하게 여길 것이지 기뻐할 수는 없다."하였습니다.

○ 면재 황씨(勉齋黃氏)는 말하기를, "죄의 정상을 알게 되었다고 기뻐하면 너무 각박한 뜻이 법 밖으로 넘치게 되고,
죄의 정상을 알게 되어 불쌍하게 여기면 차마 못하는 마음이 항상 법 안에 작용하게 된다.
어진 사람의 말은 대개 이와 같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 신이 살피건대, 부세를 적게 하는 것, 부역을 가볍게 하는 것, 형벌을 삼가는 것의 세 가지는 백성을 편하게 하는 큰 요령입니다.
반드시 의(義)와 이(利)를 분별하고, 절용(節用)하여 재물을 생산하며 백성의 일정한 재산[恒産]을 만들고
군정(軍政)을 잘 닦아 밝혀야만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도를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래 글에는 이것을 순서로 삼았습니다.

 

◆ 다음은 의리(義理)를 분별하는데 대한 말씀

○ 의(義)가 이(利)를 이기면 치세(治世)가 되고, 이(利)가 의(義)를 이기면 난세가 된다.
임금이 의를 중히 여기면 의가 이(利)를 이기고, 임금이 이(利)를 중히 여기면 이가 의를 이긴다.
그러므로 천자는 많고·적은 것을 말하지 않고, 제후는 이·해를 말하지 않으며, 대부는 득·실을 말하지 않고, 사(士)는 재화(財貨)를 통하지 아니한다.
이것은 다 이(利)를 부끄럽게 여겨 백성들과 더불어 사업을 다투지 아니하는 것이니, 나누어서 베푸는 것을 즐거워하고,
쌓아서 저장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순자(荀子))

한(漢)의 문학(文學)(문학은 당시 군국(君國)에서 추천한 벼슬입니다.) 이 말하기를, "말단적인 이(利)를 억제하고,
인의(仁義)를 열어서 이(利)를 취하는 것을 보이지 말게 하여야만 교화가 일어날 수 있고, 풍속이 착한 데로 옮겨질 수 있다.
전(傳)에'제후가 이(利)를 좋아하면 대부가 더러워지고, 대부가 더러워지면 서민이 도둑질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것은 이를 탐하는 구멍을 열어 놓는 것은 백성들에게 죄의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다.
또 이는 하늘로부터 온 것도 아니요, 땅으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요, 한결같이 백성들에게서 취한 것이다.
오얏과 매실의 열매가 많이 열리면 다음해에는 이것 때문에 나무가 쇠해지고 신곡이 익으면 구곡(舊穀)은 이것 때문에 이지러지는 것이니,
천지로부터 두 개가 한꺼번에 이득을 볼 수는 없는 것인데, 하물며 인사에 있어서는 여기에서는 이(利)를 보면 반드시 저기에서 손해를 본다.
지금은 개와 말의 사육이나 벌레와 짐승의 <곡식을>먹는 것이나 쓸데 없는 관리나 급하지 않는 일을 벌리는 것이나,
공없이 의식(衣食)을 취하는 현관(縣官)등이 많기 때문에 위로는 <재용(財用)>이 부족하고 아래로는 <생활>이 궁핍하다." 하였습니다.

재화(財貨)를 거두어 모으면 백성이 흩어지고, 재화를 나누어 주면 백성이 모이나니,
인자(仁者)는 재화로써 몸을 일으키고[發], 불인자(不仁者)는 몸으로써 재화를 일으킨다. (「대학」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발(發)한다는 것은 일으킨다는 뜻과 같다.
인자(仁者)는 재화를 나누어 줌으로써 백성을 얻고, 불인한 자는 몸을 망치는 것으로써 재화를 거두어 모은다." 하였습니다.

웃사람이 인(仁)을 좋아하는데 아랫사람들이 의(義)를 좋아하지 않는 일은 없다.
아랫사람들이 의를 좋아하고서 웃사람이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 적은 아직 없었으며,
부고(府庫) 속의 재화가 그의 재화가 되지 않은 적은 아직 없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웃사람이 인(仁)을 좋아하여 아랫사람들을 사랑하면 아랫사람들은 의(義)를 좋아하여 웃사람에게 충성하니,
이렇게 되면 일이 반드시 이루어지고, 부고의 재화는 패악불순하게 나갈 걱정이 없다." 하였습니다.

○ 육지(陸贄)가 덕종(德宗)에게 간(諫)하기를, "성인이 교(敎)를 세우는 데는 재화를 천하게 여기고 예양(禮讓)을 높이며
이(利)를 멀리하고 청렴(淸廉)을 숭상하기 때문에 천자는 재화가 있고 없음을 묻지 아니하고, 제후는 재화의 많고 적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는 뇌물은 인심을 자극하여 화(禍)의 실마리를 열고 풍교(風敎)를 상하게 하여, 나라와 집을 어지럽게 할까 두려워함입니다.
그러므로 재화를 많이 모으는데 힘써서 탕고(帑庫)에 두텁게 싸아두는 것은
필부(匹夫)의 부(富)요, 재화를 나누어서 몸을 일으켜 백성들의 마음을 거두는 것은 천자의 부(富)인지라,
여기에 어찌 지존한 지위를 떨어뜨려서, 유사(有司)의 직을 대신하며, 천자의 자리를 욕되게 하여 필부의 거두어 모으는 것을 본받겠습니까.
대개 국가의 일에 대하여 공공(公共)을 위해 마음을 쓰면 사람들이 반드시 즐거워하여 이에 따르고,
사사로이 자기 몸을 위해 마음을 쓰면 사람들이 반드시 어겨서 이에 배반할 것이기 때문에 남의 위에 있는 사람은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씻어서 삼무사(三無私)238)를 본받아 한결 같이 대중을 받들어야 합니다.
이러고서도 사람들이 혹시 따르지 않는다면 그때 형(刑)을 쓸 것입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에게는 이(利)를 베풀고 그 자신에게는 사(私)를 금하는 것이니 천자가 믿고서 천하를 다스리는 기구입니다.
이것을 버리고 힘쓰지 아니하며 백성들의 이(利)를 막고 내사리(私利)를 행한다면 백성들의 탐냄을 없애고자 하나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보건대, 임금의 두 창고[二庫]는 진폐(珍幣)의 관리가 탁지(度支:호조(戶曹)지금의 재무부(財務部))에 영속(領屬)되지 않았으니,
이것은 사리를 행하는 것이고, 경비를 지출해 주지 않으니, 백성들에게 이를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인심이 이산하고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폐하(陛下)께서는 평소의 한결같은 욕심을 돌아보고 경계하여서
기용(器用)의 취급을 너무 풍유하게 쓰지 말 것이며, 의식의 편안함을 반드시 아랫사람에게 나누어주되,
두 창고에 있는 재화를 다 공있는 이에게 내어 주도록 하고, 탄연히 회포를 열어 민중과 더불어 소욕(所欲)을 같이하며,
이렇게 한 뒤에는 납공(納貢)을 반드시 유사(有司)에게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면 난세는 반드시 치세가 될 것이요, 적(賊)은 반드시 평정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조금 저축한 것을 나누어 크게 저축하게 되고, 조그마한 보물을 드려서 큰 보물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 주자의 봉사(封事)에 말하기를, "내탕(內帑 : 임금의 금고)의 세입이 얼마인지를 알지 못하는데,
이것을 사사로운 재화로 여겨 사인(私人)에게 맡겼으므로 재상(宰相)이 일정한 방식으로 공(貢)의 출납(出納)을 고루 하지 못하고
판조(版曹:국가 재을 맡은곳, 호조(戶曹)의 별칭)가 장부에 얼마나 있는지를 헤아리지 못하며,
날마다 소모하여 사생활에 쓰이는 비용이 그 얼마인지를 알지 못할 정도이고,
오직 판조의 경비를 날로 심히 궁핍하게 하고 그 독촉을 날로 준급(峻急)하게 하여
조종(祖宗)의 좋은 법을 폐지하는 데까지 이르러 다투어 혹독하게 하니. 이것이 민력이 매우 곤궁하게 되는 소이(所以)입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천자의 부(富)는 사해(四海)에 간수하고, 제후의 부는 백성에게 간수하니,
창고(倉庫)와 부고(府庫)를 두는 것은 공공의 물품을 보관하기 위한 것으로 사사롭게 축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임금이 사사로이 축적을 하면 이것은 이(利)를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원(利源:이(利)가 쫓아 나오는 원천)이 한번 열린다면 모든 신하들이 제각기 다투어 가면서 그 쪽으로 기울어질 것이오니,
무슨 일이든지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전하께서 진정코 선정을 해 보실 마음이 있으시다면,
반드시 먼저 내탕고(內庫)239)와 내수사(內需司)240)를 호조(戶曹)에 부속시켜 국가 공공(公共)의 비용으로 삼고,
사재(私財)로 삼지 말아서 신민으로 하여금 분명히 전하께서 한 오라기의 이(利)도 취하는 마음이 없으심을 우러러보게 하여야만,
더러운 버릇을 씻고 사유(四維)를 붙들어 지극히 좋은 정사를 이룰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 다음은 절용 생재(節用生財)에 대한 말씀

○ 재물을 생산하는 데에는 큰 방도가 있는데, 생산하는 사람은 많고 무위도식 하는 자가 적으며,
만드는 사람는 민활하게 하고 소비하는 사람은 서서히 하면 재물은 항상 풍족할 것이다. (대학(大學))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나라에 노는 백성이 없으면 생산하는 이가 많을 것이요, 조정에 요행으로 얻은 벼슬이 없으면 도식하는 자가 적을 것이며,
백성들의 농사철을 빼앗지 아니하면 만드는 일이 민활할 것이요, 수입(收入)을 헤아려서 지출(支出)한다면 소비가 서서히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나라를 넉넉하게 하는 방법은 농사에 힘쓰고 비용을 절약하는데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나라에 9년의 저축이 없으면 부족(不足)하다. 하고, 6년의 저축이 없으면 급하다. 하고, 3년의 저축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다 한다.
3년을 경작하면 반드시 1년 먹을 식량의 여분이 있고 9년을 경작하면 반드시 3년 먹을 식량의 여분이 있는 것이니,
비록 한재(旱災)나 수재(水災)가 있다 하더라도 백성들이 굶주린 기색이 없는 것인데,
그래야만 천자의 음식상에 날로 좋은 찬을 드리게 되며, 음악을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예기)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인력이 갖추어지면 천변(天變)에 응할 수 있으니, 왕은 백성들과 더불어 근심을 같이 한다.
그러므로 비록 한재나 수재가 있다 하더라도, 백성들이 굶주린 기색이 없어야만
천자의 음식상에 좋은 찬을 드려서 음악으로 이것을 권한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에 말하기를, "하늘과 땅이 절도가 있어서 4철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제도로써 절도있게 하여 재물을 상하지 않도록 하며 백성들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절괘(節卦)241)단사(彖辭))

정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절(節)의 도를 미루어 말한 것이다.
천지가 절도가 있는 까닭에 4철을 이루는 것이니, 절이 없으면 차례를 잃는다.
성인이 제도를 세워 절도 있게 하는 까닭에 능히 재물을 상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
사람은 인욕(人欲)이 무궁하므로 진실로 제도로써 절제하지 않으면 사치하고 방자해서, 재물을 상하여 백성을 해치는 데 이른다." 하였습니다.

○ 또 손괘(損卦)의 전(傳)에 말하기를, "손(損)이란 지나치는 것을 덜어서 중(中)에 나아가는 것이요, 말단적인 것을 덜어서 본질에 나아가는 것이다.
천하의 해(害)는 말단적인 것이 이겨서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없다.
큰 집과 조각한 담장[峻宇雕牆]은 궁실(宮室)에서 나왔고, 술의 못과 고기 수풀[酒池肉林]은 음식(飮食)에서 나왔고,
음란하고 잔인(殘忍)한 것은 형벌에서 나왔고, 군사를 동원하여 함부로 전쟁을 하는 것은 본래 정벌(征伐)에서 나왔으니,
대개 사람의 욕심이 지나친 것은 다 본래 몸을 받들고 기르는 것에서 나왔다. 그리하여 그 말류(末流)가 점점 해가 되는 것이다.
선왕(先王)이 그 근본을 제정한 것은 천리(天理)요, 뒷 사람이 말류에 흐르는 것은 인욕(人欲)인데,
손(損)의 뜻은 이 인욕을 버리고 천리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국가의 재용이 다 백성에게서 나왔는데, 만약 이것을 절제하지 아니하여 용도에 부족하다면,
부세를 백성들에게 모질게 거둘 것이니, 비록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백성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사랑하려는 이는 반드시 먼저 절용(節用)을 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은 바꾸지 못할 원리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제민 항산(制民恒産)에 대한 말씀

○ 맹자는 말하기를, "항산(恒産)이 없더라도 항심(恒心)을 갖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그렇게 할 수 있고,
일반 백성들은 일정한 재산이 없으면 그 때문에 항심을 못 가지는 것이다.
만일 항심이 없다면 방탕한 짓이나 사악(邪惡)한 짓 등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죄를 지은 뒤에 뒤따라 처벌한다면, 이것은 백성들에게 그물을 쳐서[罔] 잡는 것이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임금의 자리에 앉아 백성들에게 그물을 쳐서 잡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맹자」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항(恒)은 항상이란 뜻이요. 산(産)은 생업(生業)이란 뜻이다.
항산은 항상 살아나갈 수 있는 생업을 말하고, 항심은 사람이 항상 지니고 있는 선심이다.
선비는 일찌기 학문을 하여 의리를 알기 때문에 비록 항산이 없다 하더라도 항심이 있지마는, 백성들은 그렇게 될 수 없다.
망(罔)은 나망(羅網)인데 보지 못하게 속여서 잡는 것을 말한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어진 임금은 백성의 산업을 제정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위로는 넉넉히 부모를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넉넉히 처자를 먹여 살릴 수 있어서 풍년이 들면 종신토록 배불리 먹을 수 있고, 흉년이 들더라도 죽음을 면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하여야만 백성들을 지도하여 선한 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를 따라 가기가 수월한[輕] 것이다. (축 허육반(畜許六反))

주자는 말하기를, "경(輕)은 쉽다는 뜻이다. 이말은 백성들이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음을 이른 것이다." 하였습니다.

오늘날 백성들의 산업을 제정하는 데는 위로 부모를 섬기기에 부족하고, 아래로 처자를 먹여 살리기에 부족하여,
풍년이 들더라도 종신토록 고생해야 되고, 흉년이 든다면 굶어서 죽을 도리밖에 없다.
이러고서야 백성들이 죽음에서 구제되기에도 힘이 족[贍]하지 못할까 걱정인데, 어느 여가에 예(禮)를 닦고 의(義)를 행하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섬(贍)은 족하다는 뜻이다. 이 말은 소위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농사철을 어기지 않게 하면 곡식은 이루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넉넉하게 될 것이고,
가는 그물[細網]을 못에 넣지 않게 하면 물고기는 이루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넉넉하게 될 것이며,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한하여 산림(山林)을 벌채하게 하면, 재목은 다 쓸 수 없을 만큼 넉넉하게 될 것이니,
곡식과 물고기가 이루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넉넉하고, 재목이 다 쓸 수 없을 만큼 넉넉하다면,
백성들에게 산 사람을 부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데 유감이 없도록 한 것이다.
산 사람을 부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데 유감이 없도록 하는 것은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시작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농사철이란 봄에는 밭갈고 여름에는 김매고 가을에는 거두는 시기를 말한다.
대개 국가에서 부역[役]을 일으킬 적에는 백성들에게 농사철을 빼앗아 동원하지 말고, 겨울에 동원하여 부역을 시킬 것이다.
촉(數)은 빽빽하다는 뜻이요, 고()는 그물이며, 오()는 웅덩이인데 물이 괴어 있는 곳이다.
옛날에 그물은 반드시 네 치[寸]의 눈을 사용하고, 고기는 한 자[尺]가 차지 아니하면 시장에 팔지 못하고 사람들은 먹지 않았다.
그리고 산림과 시내나 못은 백성들과 더불어 공유(共有)하되 이것을 지키고 금하는 것이 있으며,
여()는 막고 지키는 것이니, 백성들이 적절한 시기가 아닌데 취하는 것을 금하는 것입니다.
초목의 잎이 다 떨어진 뒤라야 도끼를 들여 놓는다 하니, 이것은 모두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초기에 아직 법제가 미비하여
천지 자연의 이로운 것을 따라서 절약하고 아껴 기르던 일이다.
그러나 음식과 궁실은 산 사람을 부양하는 것이요, 제사와 관곽(棺槨)은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일로서 이것은 다 백성들에게 급한 일이요.
없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런데 모두 이렇게 하도록 해준다면 사람들은 여한이 없을 것이다.
왕도(王道)라는 것은 민심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왕도의 시작이라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5묘(畝)의 택지에다 뽕나무를 심으면 50세의 노인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을 것이고,
닭·돼지·개 등의 가축을 기르는데 그 번식 시기[時]를 잃지 않으면 70세의 노인이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이고,
1백 묘의 전답을 가진 경작자의 농번기를 빼앗지 않는다면 여러 명의 식구를 가진 자가 굶주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상서(庠序)교육을 신중하게 실시하고 이에 효제(孝悌)의 도의를 되풀이[申] 하여 가르친다면
반백(頒白)된 노인이 짐을 지거나 이고서 길을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70세의 노인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일반 백성이 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게 되고서도 왕노릇을 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시(時)는 새끼를 밸 때를 말하는 것이니, 예를 들면 맹춘(孟春:음력 정월)의 고기를 암컷은 쓰지 아니하는 유와 같은 것을 말한다.
상서(庠序)는 모두 학교를 말한 것이요. 신(申)은 거듭한다는 뜻이요, 반(頒)은 반(班)자와 같으며 노인의 머리가 반은 검고 반은 흰 것을 말한다.
이 말은 법제와 품절(品節)의 상세한 것을 다하고 재성(財成) 보상(輔相)의 도를 극진히 잘 이루어 백성을 돌보아 인도해 나가는 것을 말한 것이니,
이것은 왕도의 완성이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하늘 과 땅이 사귀는 것은 태괘(泰卦)이다.
임금은 이를 본떠서 하늘과 땅의 도(道)를 바탕으로 잘 이루고,
하늘과 땅의 알맞은[宜] 도움으로써 백성들을 돌보아 잘 인도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태괘(泰卦) 상사(象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지가 사귀어서 음양이 화(和)하면 만물이 무성하게 이루어지는데,
이것을 태괘(泰卦)라 한다.
임금은 마땅히 천지 통태(通泰)의 상(象)을 체득하여 천지의 도를 잘 이루고 천지의 마땅한 도리를 도움으로써 생민을 돌보아 잘 인도해 나가야 한다.
재성(財成)은 그 시행되는 길을 잘 만들어 이루는 것을 말한 것이요, 보상은 백성들에게 천시(天時)를 쓰고 지리(地利)를 따르게 하여
교화 육성의 공을 도와서 그 풍성하고 아름다운 이(利)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수명 군정(修明軍政)에 대한 말씀

○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지(地) 가운데에 수(水)가 있는 것은 사괘(師卦)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백성들을 포용(包容)함으로써 무리를 기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사괘(師卦)242) 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땅 가운데에 물이 있는 상(象)을 보고서 백성을 보존하고, 그 무리를 기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물은 땅에서 나오고 군사는 백성 가운데서 나오기 때문에 백성들을 잘 기르면 무리를 얻을 수 있다." 하였습니다.

사(師)는 곧은 것[貞]이니 장인(丈人)이면 길(吉)하고 허물이 없을 것이다. (사괘 단사)

정자는 말하기를, "사(師)의 도는 바른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군대를 발동하여 천하에 해독을 끼치고 부정을 저지르면 백성들이 따르지 아니한다.
이것은 강제로 몰아다가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사(師)는 곧은 것을 가지고 주재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그 무리의 동원이 비록 바르다 하더라도 통솔자가 반드시 장인(丈人)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을 것이다.
장인이란 것은 존엄한 이를 말하는 것이니, 군사를 통솔하는 이가 그 무리들에게 존대를 받고 두려워하여 굴복함을 받지 못하면
어찌 인심이 쏠리게 될 수 있겠는가.
소위 장인이란 것은 반드시 본래 그 처한 곳이 숭귀(崇貴)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재모(才謀)와 덕을 무리들이 두려워하고 굴복하는 바이면 된다." 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그대의 거마(車馬)와 궁시(弓矢)와 군사[戎]를 잘 정돈하여 전쟁이 일어나는데 대비하여
먼 데 있는 오랑캐에게 사용하라." 하였습니다. (대아(大雅)의 억편(抑篇))

주자는, "계(戒)는 대비한다는 뜻이요, 융(戎)은 군사이며, 작(作)은 일 어남이요, 척()은 멀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옛날에는 병사와 농사를 나누지 아니하였습니다.
평일에는 민생을 후하게 하여 은택을 입히며, 때로는 무예(武藝)를 익혀서 사냥을 하고, 무사시에는 비려(比閭)와 족당(族黨)이 되어,
사도(司徒)에게 교육을 받으며, 임금을 높이고 친족을 사랑하는 행실을 독실히 하고,
유사시에는 군사가 되어 사마(司馬)에게 복종하여 웃사람을 친하고 어른을 위해 죽는 뜻을 분발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왕자의 병(兵)은 정벌은 하여도 전쟁은 없어서 감히 대적할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세에는 양민(養民)하는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단지 점병(點兵)하는 법만 엄격하여 거리의 사람을 몰아서 적군과 싸우게 하며,
나라의 재용을 다하여 군량을 공급하였으니, 이것은 당송(唐宋)때 병정(兵政)의 폐단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선왕들은 백성들 중에서 선발하여 병정을 만들었고, 병정을 농경에 종사하게 하였다가
식량이 넉넉하여지면 군대로 나아가게 하였고는 또 번갈아 휴식하게 하였으니, 나라에는 군량의 낭비가 없었고,
군사 또 혼자서만 고생하는 한탄이 없어서 그 법이 심히 아름다왔습니다.
그런데 차츰 민생이 곤핍하여짐에 따라 근본이 튼튼하지 못하고, 각 진영의 장수들은 침박(侵剝)을 일삼아 백성들이 계속적으로 흩어지고,
변방경비의 결원 보충은 그 족린(族)으로 충당하니, 도망치는 이가 날로 많아서 그 해독이 날로 커지고,
장정을 끌어다가 인원수를 채워 놓으면 곧 도망해 버리고 돌아오지 아니하여, 병적을 완비하기에 힘을 쓴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빈 명부만 안고 있었으니, 이렇게 나가면 그 형세는 결국 백성들이 그 혈유(孑遺)까지도 없어지게 되여야만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그 폐단의 근원을 궁구하며 실로 이것은 백성들이 항산(恒産)이 없고, 장수를, 적임자를 얻지 못한 데서 오는 소치입니다.
이러므로 백성들을 포용하고 무리를 길러 나가는 것이 군정(軍政)의 근본이 되고, 장인(丈人)이 솔사(帥師)하는 것이 군정의 강령이 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신이 살피건대, 임금은 나라에 의존하고, 나라는 백성에게 의존하는 것이므로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식(食)을 하늘로 삼는 것이라,
백성이 하늘을 잃으면 국가가 의존할 데를 잃어버립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眞理)입니다.
왕자(王者)의 정치는 오직 백성에게 부모 노릇하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 민력(民力)을 늦추어 주고 민산(民産)을 후하게 해주어서
백성들이 하늘로 여기는 식(食)이 풍유하여 그 본연의 착한 마음을 보존하게 할 뿐입니다.
임금으로서 이런 정치를 능히 행하지 못하는 것은 욕심(慾心)에 얽매여 스스로 절도를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자기에게 이롭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남에게 해롭게 되니, 어찌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도 그 해로움이 백성에게 미치지 아니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간혹 임금 중에는 비록 욕심의 누(累)는 없다 하더라도, 태만한 것에 인습이 되어 백성을 구하지 못하는 이가 있으니,
이것은 욕심이 많은 것과는 간격이 있지마는, 백성들의 심한 고통을 풀어 주지 못하고 나라의 근본을 손상하여,
다 같이 난망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아, 부모는 자식을 충심으로 사랑하여 그 즐거워하는 것을 이루어 주고 , 그 싫어하는 것을 제거해 주어 그 극진한 것을 다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임금이 진실로 백성에게 부모 노릇을 하고자 한다면, 한 백성이 그 자리를 잃어버려도 다 나의 적자(赤子)가 우물로 빠져 들어 가는 것같이 여겨,
미친 듯이 달려가서 기를 쓰고 이것을 구제하려 할 것입니다.
누가 적자가 우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앉아서 보기만 하고 태연히 웃고 담화하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옛날 성스러운 임금은 그 직책이 백성들에게 부모 노릇하는 곳에 있는 줄을 깊이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애쓰고 안타깝게 여겨 밥 먹을 겨를도 없고 마음은 언제나 이 백성들에게 있었을 뿐입니다.
그 백성의 힘을 아끼기를 마치 살을 베어 내기 어려운 듯이 하고, 그 백성의 생산에힘쓰기를 마치 배고플 때 먹이를 구하듯이 하며,
그 폐습(弊習)을 혁신하기를 마치 급한 병에 약을 복용하듯 하여, 반드시 그 백성들을 지극히 만족하고 즐거운 경지에 도달하게 하야만
비로소 마음으로 만족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백성은 은혜가 골수에 스며들고 사랑이 폐부(肺腑)에 맺히어, 임금을 위하여 죽는 것을 단 엿을 먹는 것보다 더 쉽게 하였으니,
어찌 국세(國勢)가 , 장구히 다스려져 안정되지 않았겠습니까?

임금이 다만 부모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백성들도 임금을 사랑하는 생각이 없고,
굶주림이 몸에 절박하면 예의가 다 상실되어 그들이 임금 보기를 시랑이나 호랑이·원수와 같이 여깁니다.
임금이 된 이도 또 그들을 업신여기면서 '누구도 감히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재화의 배태(胚胎)가 컴컴한 가운데 잠복되어도 경계할 줄 모르다가, 하루 아침에 뜻밖의 변이 일어나고
소홀히 여기던 데에 환(患)이 생겨서 필부필부(匹夫匹婦)가 다 강적이 된 뒤에는, 비록 후회한다 하더라도 이미 미칠 수 없습니다.
대개 백성의 힘이 쉬지 못하거나 백성의 생산이 증식되지 않으면, 비록 군사가 진(秦)나라와 같이 강하고,
재물이 수(隋)나라와 같이 부유할지라도 뿌리를 제거한 나무와 다름이 없습니다.
비록 지엽(枝葉)이 무성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말라버리는 것을 서서 기다릴 수 있는 일인데,
하물며 수나라와 진나라만큼 부강하지 못한 데 있어서이겠습니까.
이러므로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요, 백성을 편안히 하는 것은 자기를 편안히 하는 것입니다.
대개 백성을 편안히 한다는 것은 그들을 위하여 이(利)를 일으키고 해(害)를 없애어 그 삶을 즐겁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만일 고루한 것을 그대로 따르고 그릇된 것을 그대로 지켜, 안일하게 세월이나 보내어 일폐(一弊)도 혁신하지 못하고
일정(一政)도 거행하지 못하고서, 다만 타이르는 태도로써 조석으로 호령하면서, "나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 한다." 고만 하면,
이것은 성심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백성들은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지극히 신명(神明)한데 어찌 혀끝으로 속일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백성들이 편안하지 못한 것은 전하께서도 아시는 바이오니, 알고 구제하지 않으시면 백성들의 원망이 더욱 심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 주 >

232) 밀봉하여 천자에게 상주(上奏)하던 의견서(意見書).

233) 유능한 이를 기용하고, 무능한 자를 내어 쫓음.

234)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

235) 사람을 생각하고 살피어서 바른 길로 향하도록 하게 하는 도덕상의 규칙.

236) 호남성(湖南省) 북부에 위치한 중국 제일의 대호수, 상수(湘水)완수(浣水)등의 물을 받아 양자강으로 흘러 들어감.

237) 「주역 」64괘 가운데 61 번째 괘.

239) 임금의 사사 재산을 넣어두던 곳간.

240) 궁궐에서 쓰는 쌀·베·곡물·노비 등에 관한 사무를 맡아 보던 관청.

241) 「주역」 64괘 주60 번째 괘.

242) 「주역」 64괘 중 7번째 괘.

 

 

제9장. 명 교(明敎)

 

신이 살피건대, 「예기」에 이르기를, "광토(曠土)가 없고 유민(遊民)이 없어서 절제 있게 먹고 때에 따라 일을 하여
백성들이 모두 편안하게 살 수 있어서 일을 즐거워하고 공업(功業)을 힘쓰며,
임금을 높이고 웃사람을 친하게 여겨야만 학문을 일으킨다." 하였으니,
먼저 부유하게 하고 그 다음에 교화하는 것은 이치와 사세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민장(安民章)뒤에, 명교(明敎)로써 끝을 맺습니다.

 

◆ 흥교(興敎)의 근본에 대한 말씀

공자는 말하기를, "법령[政]으로 인도[道] 하고 형벌로 다스리면[齊] 백성들이 형벌을 면(免)하여도 수치심이 없다." 하였습니다. (「논어」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도(道)는 인도한다는 뜻과 같으니 앞에서 이끄는 것을 말한 것이요,
정(政)은 법제(法制) 금령(禁令)을 말한 것이며, 제(齊)는 한결같게 다스려 나간다는 뜻이니,
인도하되 따르지 않는 자는 형으로 한결같이 다스려 나간다는 것이다.
면하여도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은 구차하게 형벌을 모면하여도 부끄러워 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개 감히 악을 저저르지는 못할지라도 악을 하려는 마음은 없어지지 않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덕으로 인도하고 예(禮)로 다스리면 수치를 알고, 또 착한 데로 나아갈[格]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예는 제도품절(制度品節)이요, 격(格)은 이른다는 뜻이다.
임금이 몸소 행하여 거느리면 백성들이 진실로 보고 느끼는 것이 있어서 흥기한다.
그러나 여기에 보고 느끼는 것이 천심(淺深)과 후박(厚薄)의 한결같지 않음이 있으므로
또 예(禮)로써 한결같이 다스리면, 백성들이 불선(不善)을 수치로 여기고 선에 나아가는 것이다.
일설에는 격(格)은 바르게 하는 것이니, 서경(書經)에, '그 그른 마음을 바르게 한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정(政)이라는 것은 다스리는 기구[具]이요, 형(刑)이라는 것은 다스리는 데 보조 역학을 하는 법이요,
덕과 예는 다스리는 데 근본이 되는 것인데, 덕은 또 예(禮)의 근본이다. 이것은 서로 시종(始終)이 되므로 그 중에 하나라도 편벽되게 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政)과 형(刑)은 다만 백성들에게 죄를 멀리하는 것이요, 덕과 예는 그 효력이 백성들로 하여금 날마다 부지중에 선에 나아가게 하는 까닭에,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 말단적인 정형(政刑)만 믿지 마고, 당연히 깊이 그 근본을 더듬어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사람을 가르치는 이가 선심을 기르면 악이 자연히 없어지고,
백성을 다스리는 이가 공경과 겸양으로 인도하면 다툼이 자연히 없어질 것이다."하였습니다.
○ 가의(賈誼)가 상소하여 아뢰기를,"대개 사람의 지혜는 능히 지난 일은 볼 수 있지마는 앞으로 다가올 일은 능히 보지 못합니다.
예(예)는 행동이 앞으로 그러하기 전에 미리 금하고, 법은 행동이 이미 그렇게 되고 난 뒤에 금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은 무엇 때문에 사용한다는 것은 알기가 쉽고, 예가 무엇 때문에 생겼다는 것은 알기 어렵습니다.
대저 경하[慶]와 상(賞)으로써 선을 권하고 형벌로써 악을 징계하는 것은, 선왕이 이런 정(政)을 지키기를 금석(金石)같이 굳게 하였고,
이런 영(令)을 행하기를 사시(四時)처럼 신실히 하였으며, 이런 공정함에 근거하여 무사하기를 천지와 같이 하였으니,
돌이켜보건대, 어찌 이것을 사용하지 아니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예(禮)여.' '예여'하고 말했던 것은 악이 싹트기 전에 근절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교(敎)를 미요함에 일으켜서 백성으로 하여금 부지중에 선에 나아가고, 죄를 멀리하게 한 것입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송사를 듣고 판정하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과 같으나 반드시 송사를 없게 할 것이다.' 하였으니,
임금이 된 이는 먼저, 취하고 버릴 것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취하고 버리는 극진한 것이 안에서 정해지면 편하고 위태로운 싹이 밖에서 응하는 것입니다.
편안한 것은 하루하침에 갑자기 편안한 것이 아니요, 위태로운 것도 하루아침에 갑자기 위태로운 것은 아닙니다.
다 점점 쌓여서 그렇게 된 것이니 살피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임금이 쌓는 것은 그 취사(取舍)에 있는 것이니, 예의로써 다스리는 사람은 예의를 쌓고 형벌로써 다스리는 사람은 형벌을 쌓으니,
형벌이 쌓이면 백성들이 원망하고, 예의가 쌓이면 백성들이 화친합니다.
그러므로 대개 임금들이 백성을 착하게 하고 싶은 것은 같지마는, 백성들에게 착하게 하는 방법은 달라서,
혹 덕교(德敎)로써 인도하기도 하고 혹 법령으로써 몰기도 하니, 덕교로써 인도하면 덕교가 흡족해서 백성들의 기상이즐겁고,
법령으로써 다스리는 이는 법령이 지극하여 백성들의 기풍이 애절해지니 애락(哀樂)이 감동하는 데 화복이 응합니다.

진시왕(秦始王)이 종묘를 높이고 자손을 편안하게 하려던 것은 탕(湯)·무왕(武王)과 같았으나,
탕과 무왕은 그 덕을 광대히 하여 6·7백년을 행하여도 잃지 않았고, 진시왕은 천하를 통치한 10여 년만에 크게 패하였으니,
이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탕과 무왕은 천하를 정하는 데 취사(取舍)를 잘 살폈고,
진시왕은 천하를 정하는 데 취사를 살피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대개 천하는 큰 그릇이라, 지금 사람이 그릇을 두되 편안한 데 두면 편안해지고, 위태로운 데 두면 위태로우나니,
탕과 무왕은 천하를 인(仁)·의(義)·예(禮)·악(樂)에 두었기 때문에 덕택이 만맥사이(蠻貊四夷)에까지 흡족하게 입혀져서,
그 자손 수십 대로 쌓여나갔으니, 이것은 천하가 다들은 바입니다.
진시왕은 천하를 법령과 형벌에 두었기 때문에 덕택은 없고 원독(怨毒)만 세상에 차서 화가 거의 몸에 미치고 자손까지 끓어졌으니,
이것은 천하가 다 본 바입니다. 이것이 그 밝은 공효요, 큰 증험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말에, '남의 말을 듣는 법은, 반드시 그 일을 가지고서 보면, 말하는 자가 감히 망령되게 하지 못한다.'하였습니다.
지금 혹시 말하기 를 '예의가 법령만 같지 못하고 교화가 형벌만 같지 못하다.'하면,
임금된 이는 어찌 은(殷)나라·주(周)나라·진(秦)나라의 일을 끌어서 보지 아니하십니까." 하였습니다.

 

◆ 다음은 입교(立敎)의 절목(節目)에 대한 말씀

○ 순(舜)이 말하기를, "설(契)아, 백성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지 않으며, 오품(五品)이 손순치[遜]아니한다.
그대에게 사도(司徒)243)의 직을 맡기니, 삼가 오교(五敎)를 펴되[敷] 너그러이[寬] 하라." 하였습니다. (우서(虞書)순전(舜典))

채씨(蔡氏)는 말하기를,"오품(五品)은 부자·군신·부부·장유·붕우 다섯가지 인륜의 명위 등급(名位等級)이요,
손(遜)은 순(順)한다는 말이 며, 사도(司徒)는 가르침을 맡은 벼슬이고, 부(敷)는 편다는 말이며,
오교 (五敎)는 다섯 가지 당연한 이치로써 교령(敎令)을 삼는 것이요, 관(寬)은 여유 있게 기다린다는 뜻이다.
이것은 백성들에게 점점 배어들게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도가 있 기 때문에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편히 거처하지마는
교(敎)가 없 다면 새나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
성인은 이 점을 근심하여 설( )에게 사도(司徒)의 직을 주어 인륜을 가르치게 하였다.
즉 부자간에는 친함이 있어야 하고, 군신간에는 의리가 있어야 하며, 부부간에는 분별이 있어야 하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하며, 벗들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사도(司徒)가 육례(六禮)를 닦아서 백성들의 성품을 절제하고, 칠교(七敎) 를 밝혀서 백성들의 덕을 일으키고,
팔정(八政)을 정제하여 음탕한 것을 막 고 도덕을 순일하게 하여 풍속을 같이하고, 노인을 봉양하여 효도(孝道)를 이루고,
고독한 이를 가련히 여겨 부족한 것을 채워 주고, 어진 이를 숭상하 여 덕을 높이고 불초(不肖)한 이를 미워하여 악을 물리친다. (예기(禮記))

「예기」에 이르기를, "육례(六禮)는 관례(冠禮)·혼례(婚禮)·상례(喪禮)·제례(祭禮)·향례(鄕禮)·상견례(相見禮)이요,
향례(鄕禮)와 상견례는 지금 향음주(鄕飮酒)와 선비의 상견례만 있어, 참고해 볼 수 있습니다.
칠교(七敎)는 부자·형제·부부·군신·장유·붕우·빈객이요, 팔정(八定)은 음식·의복·사위(事爲:백공기예(百工伎藝))·
이별(異別)(지방에 따라 사용하는 용기를 구별합니다.
·도(度:자[尺])·양(量: 말과 되)·수(數)·제(制:포백의 규격)도량은 장단대소(長短大小)가 다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요,
수와 제는 다과 광협(多寡廣狹)이 다르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학교를 일으켜 사습(士習)을 바르게 하는 데 대한 말씀

○ 옥은 다듬지 아니하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면 도를 알지 못하는데,
군자가 만일 백성을 교화하여 풍속을 이루려하면 반드 시 그 배움으로 말미암아야 한다. (「예기」 하동)

진씨(陳氏)는 말하기를,"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는 데는 반드시 당우(唐虞)때의,
'아, 변하여 이에 화평하였노라.'하느 것과 같아야 이에 지극하게 된다.
여기의 배움은 곧 대학의 도인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의 일이다." 하였습니다.

옛날의 교육 기관으로 가(家)에는 숙(塾)이 있고, 당(黨)에는 상(庠)이 있 었으며, 술(術) 주(州)를 말합니다.
에는 서(序)가 있고, 국(國)에는 학(學)이 있다.

진씨(陳氏)는 마하기를,"옛날에는 25가(家)가 한 여(閭)가 되니, 여는 한 거리에 같이 있는 것이다.
거리의 입구에는 문이 있고 문 곁에는 숙(塾) 이 있다. 백성으로서 가(家)에 있는 이는 조석으로 숙에서 교육을 받는다.
5백가가 한 당(黨)이 되는데 당의 교육기관을 상(庠)이라 한다. 상에서는 여숙(閭塾)에서 뽑혀 올라온 사람을 가르친다.
그리고 천자가 거하는 도읍과 제후의 국중(國中)의 학교를 국학(國學)이라고 하니,
여기서는 임금의 맏아들과 중자(衆子)·경대부와 선비의 아들 그리고 준재로서 뽑혀 올라온 선비들을 가르친다." 하였습니다.

악정(樂正)이 사술(四術)을 숭상하고, 사교(四敎)를 세워서 선왕의 시(詩)·서(書)·예(禮)·악(樂)의 순서로
선비를 양성[造] 하되 봄가을에는 예악을 가르치고 겨울과 여름에는 시서를 가르쳤다.

오씨(吳氏)는 말하기를, "악정(樂正)은 교육을 맡은 벼슬이다.
술(術)은 길이라는 것이니 시·서·예·악의 네가지 가르침이 바로 덕에 들어가는 길인 것을 말한 것이다. 조(造)는 이룬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진씨(陳氏)는 말하기를,"옛 사람의 교육은 비록 4철에 따라 각각 그익히는 것이 있으나,
그 실제는 풀을 자르듯이 저것을 버리고 이것만을 익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아마 서로 그렇게 한다는 말이니, 봄가을에 시서를 가르치치 않고 여름과 겨울에 예악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하였습니다.

○ 동씨(董氏)의 대책(對策)에 이르기를,"춘추(春秋)에,하나로 통합하는 것을 크게 여긴 것은
이것이 천하의 상경(常經)이요, 고금의 통의(通誼) 입니다.
(춘추 공양전(公羊傳)에 은공(公)원년 봄 왕정월(王正月)이라 함에 있어서 무엇 때문에 「왕정월」이라 하였겠는가.
이것은 하나로 통하는 것을 크게 여겼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동중서(董仲舒)는 대개 이것을 빌어서 천하의 도술은 마땅히 하나로 통일이 되어야 함을 밝혔습니다.)
지금은, 스승들의 도가 다르고 사람들의 이론이 달라서, 백가(百家)가 모두 방향을 달리하고 뜻이 같지 아니하기 때문에
뒤에서 하나로 통합할 수가 없어서 법제가 자주 변하여, 아래에서는 그 지킬 바를 알지 못하오니,
어리석은 신은 생각컨대, "육예(六藝)의 과목과 공자의 술(術)에 있지 않은 것은 다 그 도를 끊어버리고 다시 나오지 못하게 하여,
간사하고 편벽된 말이 사라져야만 기강이 하나로 될 수 있고, 법도가 밝아질 수 있으며, 백성들이 따를 곳을 알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중고(中古)이래로 도술이 분열되어, 노(老)·장(莊)·양(楊)·묵(墨)·신(申)·한(韓)·소(蘇)·장(張:신불해·한비자 소진과 장의)의
설이 백성들을 혼란케 하였고, 한당(漢唐)에 내려오면서 불교가 겹쳐 천하가 혼잡하여 따를 곳을 알지 못해 호걸(豪傑)다운 선비도 많이 침닉되었습니다.
이 때를 당하여 인재가 배출하여 이따금 실용(實用)에 적합하였습니다.
송(宋)나라 이후부터는 정(程)·주(朱)의 공이 우주를 떠받치는 도술이 통일되었고,
이외에 다른 갈래가 없어져 마땅히 인재를 이룩하기에 용이할 듯하였는데,
오직 사람들이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세도(世道)는 날로 떨어지고 인심은 더럽혀져서, 의리는 돌보지 않고 오직 이(利)만을 구하니,
인물이 묘연( 然)하여 도리어 이단(異端)이 횡행하던 때만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욕(利欲)의 해가 이단의 해보다 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깊이 개탄할 만한 일이오니 전하께서는 마땅히 급하게 서둘러서 복고(復古)를 하시고 잘 교회(敎誨)하여 성취하옵소서.

대사도(大司徒)는 향(鄕)의 삼물(三物)로써 만민(萬民)을 가르쳐서 이에 어진이를 들어[興] 대접하였다. (「주례」 하동)

주씨(朱氏)는 말하기를,"물(物)은 일이란 뜻이요, 흥(興)은 천거한다는 말이다.
삼사(三事)가 이루어졌다고 고(告)하면 향대부(鄕大夫)가 그 현능(賢能)한 이를 천거하여 예로써 빈접(賓接)한다." 하였습니다.

삼사(三事)중에 첫째 것은 육덕(六德)인데, 지(知)·인(仁)·성(聖)·의(義)·충(忠)·화(和)이다.

주씨는 말하기를,"지(知)는 시비를 분별한다는 것이요, 인(仁)은 사욕이 없다는 것이며,
성(聖)은 통달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는 것이요, 의(義)는 단제(斷制)가 있다는 것이며,
충(忠)은 자기의 마음을 다하는 것이고, 화(和)는 어그러지고 요란스럽지 않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삼사 중에 둘째 것은 육행(六行)인데, 효(孝)·우(友)·목(睦)·인()·임(任)·휼(恤)이다.

주씨는 말하기를,"효(孝)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요, 우(友)는 형제에게 우애하는 것이며,
목(睦)은 구족(九族)에게 친목하는 것이요, 인()은 외친(外親)에게 화목하는 것이며,
임(任)은 벗에게 신임이 있는 것이요, 휼(恤)은 가난한 이를 진휼(賑恤)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삼사 중에 세째 것은 육예(六藝)인데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이다."

주씨는 말하기를,"예(禮)는 오례(五禮)이요, 악(樂)은 육악(六樂)244)이며, 사(射)는 오사(五射)245)요,
어(御)는 오어(五御)246)이며, 서(書)는 육서(六書)요, 수(數)는 구수(九數)이다." 하였습니다.

○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예(禮)로써 마음[中]을 제지하고, 악(樂)으로써 화(和)를 인도하며,
사(射)로써 덕행을 보고, 어(御)로써 말달리기를 바르게 하고, 서(書)로써 마음의 계획을 보고,
수(數)로써 물(物)의 변화를 다하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지극한 이치가 있어서 일용(日用)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하 다스리는 것을 잘 말하는 이는 법도가 세워지지 않은 것을 근심하지 아니하고,
인재가 이룩되지 못한 것을 근심이여, 수신(修身)을 잘 하는 이는 기질(氣質)이 아름답지 못한 것을 근심하지 아니하고,
사학(師學)이 밝지 못한 것을 근심하는데, 인재가 이룩되지 못하면 비록 좋은 법과 아름다운 뜻이 있다 하더라도 누구와 이것을 행하며,
사학이 밝지 못하면 비록 도를 받아들이는 바탕이 있다 하더라도 누구와 이것을 이룩하겠는가." 하였습니다.

○ 또 그는 말하기를,"옛날 사람은 어려서 배울 때부터 이목(耳目)으로 보고 들으며 노는 곳과 보는 것이 모두 착하고
커서도 좋지 못한 사물을 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인재가 성취되기가 쉬웠다.
그런데 오늘날은 사람들이 어릴때부터 보는 것이 모두 착하지 못하여, 겨우 말을 할 수 있을때가 되면
곧 더럽고 나쁜 것을 익혀 본성을 날마다 잃어가니, 여기에 다시 또 무슨 천리(天理)가 있겠는가.
모름지기 인리(人理)는 다하였으나 그래도 본성이 조금 남아있어서 다 녹이지 못한다.
그러므로 또 이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는 동안에 다소의 교묘한 거짓을 일으키고 기정(機穽:기교(技巧))을 싹트게 하는데,
이런 것이 가득히 차서 기운을 동하게 하니, 성현이 나지 않고 화기(和氣)가 싹트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평상시에 혹시 약간 화한 때가 있고, 풍년이 드는 해가 있더라도 이것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옛날에는 한때 또는 한 집에서 성인이 함께 났는데도, 후세에 와서는 수천 년이나 적막하게 되는가." 하였습니다.

「역경」에 이르기를, 위는 천(天)이요, 아래는 택(澤)인 것은 이괘(履卦)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위와 아래를 분별하여 백성들의 뜻을 안정시킨다."하였습니다. (이괘(履卦)의 247)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상하의 분별이 분명하여야만 백성들의 뜻이 정하여지고 백성들의 뜻이 정하여져야만 다스림을 말할 수 있는데,
만약 백성들의 뜻이 정하여지지 아니하면 천하를 얻어 다스릴 수 없다.
옛날에는 공경대부 이하가 모두 그 지위가 각각 그 덕에 맞아서 종신토록 그 자리에 있으면서 자기의 분수를 얻었다.
지위가 덕에 미흡(未洽)하면 임금이 들어서 승진 시켰다.
선비가 그 학문을 닦고 학문이 지극하면 임금이 그를 구하였으며, 자신이 그것을 예기했던 것은 아니다.
농(農)·공(工)·상고(商賈)가 그 일을 부지런히 하고 향유하는 것이 한정이 있기 때문에 다 뜻이 정해져 있고,
따라서 천하의 마음이 통일될 수 있었다. 그런데 후세에는 서인(庶人)이나 선비로부터 공경대부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존영(尊榮)스러운 지위에 뜻을 두고, 농·공·상고는 날마다 부유하고 사치스러운 일에 뜻을 두어,
백성들의 마음이 서로 이(利)에만 쏠려서 천하가 분연(紛然)하니, 어찌 하나로 통일될 수 있겠는가.
어지럽지 않기를 원하나 어려운 것은 상하가 뜻을 정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履)의 상을 본받아 상하가 분별하여 각각 그 분수에 맞도록 하여, 백성들의 뜻을 안정케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귀천에 등급이 있고, 의복에 분별이 있으며, 조정에 지위(地位)가 있다면 백성들은 사양하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 하늘에 놀고, 물고기는 펄쩍 물속에 뛰노네.
즐거울사 우리 군자 어찌 사람을 고무시키지 않으리요."[鳶飛戾天魚躍于淵 豈弟君子 遐不作人]하였습니다. (대아(大雅)의 한록(旱麓)편)

상채 사씨(上蔡謝氏)는 말하기를,"'솔개는 날아 하늘에 놀고 물고기 펄쩍 물속에 노네' 하는 말은 상하가 각각 그 자기의 자리를 얻은 것이니,
시인(詩人)이 이 같은 기상은 주(周)나라가 사람을 고무시키는 것이 이와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이 시는 문왕(文王)의 덕을 읊어 노래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아름답다 많은 선비, 이 왕국(王國)에 태어났네. 왕국은 어진 선비 잘도 낳으니, 이들은 주(周)나라의 기둥이로다.
어진 선비 많고많아 문왕(文王)은 편하시리. (대아(大雅)문왕(文王)편)

주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문왕의 나라가 이렇게 많은 선비를 낳았기 때문에 이들은 나라의 기둥이 될 수 있고,
따라서 문왕은 이에 힘을 입어 편안하게 되리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가 신종(神宗)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이제 천하가 쇠퇴하여 인정은 날로 투박하고 풍속은 말세적이어서,
말만 숭상하고 다시 염치가 없으니, 이것은 대개 조정에서 덕을 높이고 도를 즐거워하는 풍속이 일어나지 못한 것이며,
돈독하고 충후한 교화가 아직 펴지지 못한 까닭이니, 오직 폐하께서는 성인의 수훈(垂訓)을 상고하여 선왕의 다스림을 본받고,
일심 성의하여 하늘의 강건(剛健)함을 본받아 힘써 행하면 천하가 다행해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가르치되 스스로 자기 몸을 닦느데 근본을 둘 것을 말한 것입니다.

○ 그는 또 말하기를,"한(漢)나라가 어진 이를 용하였다 하는 것은,
남이 천거(薦擧)한 것이므로 공손홍(公孫弘) 같은 이도 오히려 억지로 일으켜 나아갔는데,
후세에 어진이란 자기자신이 기용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만약 이 중에 그래도 '내 마음에 꼭 임금을 대면해서 천하의 일을 직언하고 싶다.'하여 나아가는 이가 있으면
이런 이는 또한 숭상할 만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만약에 뜻이 부귀에 있을 때는, 그 뜻을 얻으면 곧 교만하고 방종하며,
그 뜻을 잃으면 곧 언행에 구속됨이 없거나 비수(悲愁)에 빠질 뿐이다." 하였습니다.

○ 또 그는 조정에 진언(進言)하기를,"천하를 다스리는데 있어서는 풍속을 바르게 하고,
어진 인제를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니, 임금은 마땅히 먼저 근시(近時)와 모든 집사(執事)들에게 예(禮)로서 명령하고,
마음을 다하여 사람을 물색하되 덕업(德業)이 충실히 갖춰진 이가 있으면 이를 사표(師表)로 삼아야 하며,
그 다음으로는 뜻을 독실히 하고 학문을 좋아하며 재질이 어질고 행실이 닦인 이가 있으면,
사람을 보내어서 이를 초빙하여 서울에 모아 아침저녁으로 서로 강명(講明)하여 학문을 바르게 해야하니,
그 도(道)는 반드시 인륜에 본원을 두고 물리를 밝혀야 하며,
그 교(敎)는 소학(小學)의 쇄소 응대(灑掃應對)에서부터 시작하여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닦는 데까지 이르게 하며,
예악(禮樂)을 잘 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잘 인도하고 격려하며, 점점 좋아지게 하여 성취해 나가는 길은 다 절도와 차례가 있으니,
그 요령은 선을 택하여 몸을 닦아서 천하를 덕화(德化)하는 데 이르고, 향인(鄕人) 한 사람 한 사람에서부터 성인의 도에 이르고,
그 학행이 모두 이에 합한 자는 성덕(成德)이 됩니다.
먼저 재질과 식견이 밝고 통달하여 선에 나아갈 자를 택하여, 이들로 하여금 날마다 그 학업을 받게 하고,
그 중에 학문이 밝고 덕행이 높은 이를 택하여 태학(太學)의 스승으로 삼으며, 그 다음에는 천하의 교학을 나누어 가르칠 것입니다.
선비를 선발하여 학교에 입학시키되, 현(縣)에서는 주(州)로 천거하고 주에서는 태학(太學)으로 천거하면,
태학에서는 이들을 모아 가르쳐서 해마다 그 중에 어진 이와 재능이 있는 이를 조정에 의논해 천거합니다.
대개 선비를 선발하는 법으로는 성행(性行)이 바르고 깨끗하며 효제(孝悌)를 행하여 염치와 예의와 겸손이 있으며,
학업에 밝게 통하며, 치도(治道)에 밝게 통달한 이로써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선악을 분별하여 풍속을 바루는 말씀

○ 「역경」에 이르기를, "산(山)위에 나무[木]가 있는 것은 점괘(漸卦)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어진 덕에 의거하여 풍속을 착하게 한다." 하였습니다. (점괘(漸卦)248) 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산 위에 나무가 있어서 높은 것은 점점 커 올라가기 때문이다.
군자는 이 점점이 커 올라가는 점(漸)의 상(象)을 본받아 어질고 착한 덕에 의거하여 풍속을 화미(化美)해 나간다.
풍속을 옮기고 바꾸는 것은 하루 아침이나 하루 저녁에 이를 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착한 풍속은 반드시 점점 그렇게 되어 나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성왕(成王)이 군신(君陳)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오직 백성들이 날 때의 본성은 두터우나 사물로 말미암아 바뀌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위에서 명령하는 것을 어기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만을 따르고자 한다.
그대가 능히 법을 공경하되 몸에 덕을 나타낸다면,
곧 변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되어 진실로 큰 도에 오르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군진(君陳))

채씨는 말하기를, "이 백성들이 태어날 때의 본성은 본래 두터웠으나,
이것이 박절하게 되는 까닭은 습속에 유인되고 사물로 말미암아 바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두터운 것이 바뀌어져서 엷게 되었다면 엷은 것은 어찌 도로 두텁게 할 수 없겠는가.
엷은 것을 돌이켜 두텁게 하려면 성음(聲音)과 소모(笑貌)만 가지고 능히 할 수 없다.
백성은 웃사람의 명령은 진실로 좇지 아니하고, 그들의 좋아하는 것만 좇는데
이것은 「대학」에 말한, '그 명령하는 것이 백성들의 좋아하는 바에 배반되면 좇지 않는 다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경전(敬典)이란 것은 군신·부자·형제·부부·붕우의 상도(常道)를 공경하는 것이요,
재덕(在德)이란 것은 5륜의 상도를 얻어서 몸에 나타내는 것이다.
대개 법을 공경할 줄만 알고 덕을 몸에 나타낼 줄 모르며는 법과 내가 오히려 둘이 된다.
오직 법을 공경하고도 몸에 덕이 있으면 공경하는 법은 실상으로 몸에 둔 것이 된다.
실덕(實德)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북채로서 북을 치는 것보다 빠르기 때문에,
풍속이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진실로 큰 도에 오르게 된다." 하였습니다.

대사도(大司徒)가 향(鄕)의 팔형(八刑)을 가지고 만민을 바르게 하는데,
첫째는 불효의 형이요, 둘째는 불목(不睦)의 형이며, 세째는 불인(不)의 형이요,
네째는 부제(不弟)의 형이며, 다섯째는 불임(不任)의 형이요, 여섯째는 불휼(不恤)의 형이며,
일곱째는 조언(造言)의 형이요, 여덟째는 난민(亂民)의 형이다. (주례(周禮))

주자는 말하기를, "삼물(三物:육덕(六德)과 육행(六行)과 육예(六藝)를 말함)의 가르침을 좇지 않으면,
8형(刑)을 만들어 이것을 바르게 한다." 하였습니다.

도는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가 있고, 정사는 풍속을 따라서 개혁하는 것이다.
그 착한 것을 착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을 권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주서(周書)의 필명(畢命) 하동)

채씨는 말하기를,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다.'는 말은, 높아질 때도 있고 낮아질 때도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를 하는 이는 풍속을 따라서 변혁을 한다." 하였습니다.

선[淑]한 이를 표창하고 악[惡]한 자를 구별하여 선한 이가 사는 마을에 정표(旌表)를 하며,
선한 것을 드러내고 악한 것을 병[]되게 하여 물리쳐서 명성(名聲)이 들리게 하라.
교훈과 법을 따르지 않으면 그 사는 마을에는 경계(界)를 달리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있게 하라.

채씨는 말하기를, "숙(淑)은 선이요, 특(慝)은 악이며, 단()은 병이다.
선한 이가 사는 마을을 정표한다는 것은 정문(旌門)을 세우는 유와 같은 것이다.
그 선한 일을 하는 이를 드러내고 선하지 않은 일을 하는 이를 병처럼 물리쳐서,
선한 것을 한 이의 명성을 들리게 하여 당시에 드러나게 하고, 후세에 전하게 하는 것이 소위 선한 이를 정표하는 것이요,
그 교훈과 법을 따르지 않는 자이면 그 사는 마을의 경계를 달리하게 하여, 선한 이와 함께 섞여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예기(禮記)에 말한,'변하여 착하게 되지 않으면 교(郊)에 옮기고, 변하여 착하게 되지 않으면 수(遂)에 옮긴다.' 하는 것이 곧 그 법이다.
악한 일을 함으로써 화(禍)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게 하며, 선한 일을 함으로써 복이 오는 것을 그리워하게 하는 것으로
소위 악한 이를 구별하여 두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역경」에 이르기를, "나의 하는 것을 살펴볼 것이니 군자라면 탈이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관괘(觀卦)249)의 효사)

정자(程子)는 말하기를,"관괘의 9·5효사(爻辭)는 임금의 자리에 거하여 세상의 치란(治亂)과 풍속의 미악(美惡)이
모두 나에게 매어 달려 있는 것을 보는 효사인데, 만약에 천하의 풍속이 모두 군자의 풍속이라면,
이것은 내가 행한 정치와 교화가 착한 것이므로 곧 탈이 없을 것이요,
만약에 천하의 풍속의 군자의 도에 합당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내가 행한 정치가 착하지 않는 것이므로 허물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제사를 바르게 하여 신간(神姦)을 없애는 말씀

○천자(天子)는 천지에 제사지내고 제후는 사직(社稷)에 제사지내며 대부는 오사(五祀) 250)에 제사지낸다.
천자는 천하의 명산과 대천에 제사지내고, 제후는 자기 땅에 있는 산천에 제사지낸다. (예기(禮記))

주자는 말하기를, "천자는 천지에 제사지내고, 제후는 자기 국내의 산천에 제사지내니,
이것은 오직 그것이 내게 속해 있기 때문에 제사지내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내게 속하지 아니하면 기운이 서로 감응하지 아니하는 것인데, 어찌 그것에게 제사를 지내겠는가."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그 귀신이 아닌데 제사지내는 것은 아첨(諂)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그 귀신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히 제사를 지낼 귀신이 아니라는 말이요, 첨(諂)은 아첨을 구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즐거울사 군자는 복(福)을 구하는 데 간사롭지 [回] 않네." 하였습니다. (대아(大雅)의 한록(旱麓)편)

주자는 말하기를,"회(回)는 간사하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정씨(鄭氏)는 말하기를, "이 시의 말은 문왕(文王)이 복을 구하는 데도 덕을 닦아서 기다리고,
간사한 행동을 하여서 구하지 않는 것을 찬미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봉사(封事)에서 말하기를,"신은 듣건대, 하늘에 밝은 도가 있으므로, 선한 것은 선한 대로 악한 것은 악한 대로 드러낸다.
선을 하는 사람에게는 백 가지 길상(吉祥)을 내려주고, 선하지 못한 짓을 하는 자에게는 백 가지 재앙을 내려준다." 하였으니,
이는 사람의 화복은 다 그 자신이 스스로 취하는 까닭입니다.
선한 일을 하지 아니하고 아첨하게 빌어서 복을 얻는 자는 있지 아니하며, 악한 짓을 하지 아니하고 바른 것을 지키면서 화를 얻은 이는 없습니다.
하물며 제왕(帝王)은 실상 천명을 받아서 교(郊)·묘(廟)·사직(社稷)·신·인의 주인이 되었는데,
진실로 덕을 잘 닦고 정사를 행하여 만백성을 편안하게 구제하려 한다면 어찌 빌어서 재해를 제거하겠으며,
어찌 빌어서 복록(福祿)이 오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만약에 이에 배반되면 하늘에 죄를 얻어 사람들이 원망하고 신이 노여워할 것이니,
비록 악한 귀신을 물리치고 진인(眞人)을 오게 하려고 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물며 선왕이 제정한 예(禮)는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양친의 은혜에 보답하는 제사는 다 떳떳한 법도가 있고,
그 제물[牲器]과 시일(時日)도 모두 떳떳한 법도가 있습니다.
드러나기로는 예악(禮樂)이 밝게 존재하고 이면에는 귀신이 깊숙이 있으니, 여기에는 일리(一理)가 관통해서 애당초 간격이 없습니다.
진실로 예(禮)로써 아니한 곳에는 신이 흠향하지 아니합니다.
이러므로 귀신이 아닌데 제사를 지내는 것은 곧 음사(淫祀)가 되는데, 음사가 복이 없다는 것은 경(經)에 명문(明文)이 있습니다.
굳이 이것을 만들어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은 이치의 자연한 것이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 때로 황홀한 사이에 간혹 신의 영향(影響)이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주(主)되는 마음이 없어서 그런 것인데,
여기서 망령되게 우려(憂慮)와 의심을 품고, 마침내는 무당과 요인(妖人)이 그 틈을 타서 간사하고 기만적인 짓을 마음대로 하니,
이렇게 하여 속이고 유혹하는 술(術)이 행해지면 그 화(禍)가 또 이르지 아니하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고금에 있어서 이것으로 말미암아 난망(亂亡)을 이룬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므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진실로 학문을 졍밀하게 이루어 성명(性命)의 이치를 밝히고, 마음으로 환하게 의혹되는 것이 없게 해서 마땅히 있게 해야 할 것은 있게 하고,
없게 해야 할 것은 없게 하지 아니하면, 무엇에 웅거하여 예를 잡고 법을 쥐어서 요망스러운 뿌리를 끊겠습니까.
선왕때의 정사에서는 옳지 못한 도로써 정치를 어지럽게 하거나 귀신에 가탁하여 대중을 의혹하는 자는 다 반드시 주륙(誅戮)하고 듣지 아니하였으니,
그 심려(深慮)가 이와 같았습니다.
전(傳)에 말하기를, '천지의 성(性)에 밝은 이에게는 신괴(神怪)로써 유혹할 수 없고,
만물의 정(情)에 밝은 이에게는 그른 비류(非類)를 가지고 속일 수 없다.'하였으니,
그 망령된 것은 대개 살피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성왕께서는 이 점을 유의하시면 천하가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하늘이 이 백성을 낳을 때에 그들에게 사목(司牧)을 세웠는데, 사목은 실로 임금과 스승을 겸하였습니다.
목자(牧者)로서 그들을 기르고, 임금으로서 그들을 다스리며, 스승으로서 그들을 가르쳐야만 이 백섣들이 그 삶을 편히 즐길 수 있고
그 악을 개혁할 수 있으며, 그 선을 흥기시킬 수 있습니다.
삼대(三代)이전에는 세 가지가 각각 그 도를 극진히 하였으므로, 정사가 이루어지고 덕화(德化)가 행해졌으며,
융성하게 다스려지고 풍속이 아름다와졌습니다.
그러나 후세에 내려오면서부터는 도학(道學)이 행해지지 아니하여 임금은 스스로 궁행(躬行)의 실상이 없고, 사방을 바르게 밝히지 못하여,
다만 법령으로 일세를 지탱하였을 뿐입니다.
때로는 간혹 인자한 임금이 있어서 이 백성들을 지극히 넉넉하게 한 일도 있었지마는, 교(敎)에 있어서는 들어볼 만한 것이 없었느니,
어찌 윤리(倫理)가 질서를 잃고, 풍속이 퇴폐한 것을 괴이하게 여기겠습니까.
옛 도는 행해지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일반 사람은 귀로 듣는데 편안하고 눈으로 보는데 익숙하여,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도리어 옛 도를 보고 몹시 놀랄 만한 것이라고 하니, 지사(志士)는 분개하고 한탄하여 마지않습니다.
대개 옛 도라는 것은 산을 겨드랑에 끼고 바다를 건너 뛰는 것이나, 허공을 업신여겨 달리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부자간에는 인(仁)을 다하고 군신간에는 의(義)를 다하고, 부부간에는 별(別)을 다하고, 장유(長幼)간에는 그 예(禮)를 다하고,
붕우간에는 그 신(信)을 다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천성을 근거하여 발해서 의덕(懿德)이 되는것이요, 본래 실행하기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앞에서는 기품(氣稟)의 구애를 받고, 뒤에서는 물욕으로 빠지게 하고, 그 위에 또 항산(恒産)이 없기 때문에 점점 갈 바를 잃고,
죽음을 구제하려 하여도 힘이 부족하여 그 양심을 잃으며, 한갓 형벌의 무서운 것만 알고, 명의(名義)와 절개를 지키는 데 근심하지 아니하여,
간사[邪]를 더하고 거짓을 조장시켜 교묘하게 법망(法網)을 피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웃사람은 교화의 도가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다만 형법의 주밀하지 못한 것만 근심하여 과조(科條)를 첨가하여 속이는 것을 막으려고 하니,
법이 더욱 주밀할수록 간악한 것은 더욱 자심하여 풍속이 날로 무너지고 세도(世道)가 날로 야비해져서 구할 수가 없게 됩니다.
때로 간혹 개연히 세상의 악습을 교정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교(敎)를 베푸는 데는 근본이 있고,
백성을 덕화하는 데는차례가 있는 것을 모르고, 한갓 그 이름만 생각하여 그 실상을 얻지 못하여,
근본을 뒤로 하고 끝을 먼저 하니 가르침은 있어도 효과가 없습니다.
이리하여 여기에 방자하기를 즐기고 검속하기를 꺼리는 사람은 틈을 타서 이것을 힘써 공격하여,
옛 도는 진실로 회복할 수 없다고 하니, 이것은 한 잔의 물을 가지고 한 채의 수레에 붙은 불을 끄려고 하다가
물이 불을 끄지 못한다 하는 것과 다름이 있겠습니까. 반드시 임금께서 먼저 궁행하기를 힘쓰고, 어진이를 얻어 같이 다스리며,
조정의 명령은 인심을 열복(悅服)시키되, 전도(顚倒)되어 의탁할 곳이 없는 백성으로 하여금 다 흥기할 생각을 품게 한 뒤에 ,
그들의 폐단이 되는 것은 버리고 괴로움이 되는 것은 풀어주며, 그들에게 동네[田里]를 제정하여 그 삶을 이룩하여 주고,
학교를 설립하여 그들의 길을 교도하여 주며, 예(禮)를 제정하여 그 절도를 단속하고, 향사(鄕射)와 향음주(鄕飮酒)251)의 의례를 만들어서,
그들의 화락을 인도하고, 선을 들어 권장하여 나아갈 방향을 알게 하고, 악을 물리쳐서 징계함으로써 그 배반됨을 알게 하면,
앞으로 학교의 교육은 성할 것이요, 향당(鄕黨)은 공경과 겸양의 풍을 일으키게 할 것이니.
때가 크게 다스려져서 형벌을 사용하지 않고 예악이 성할 것입니다. 옛 도를 어찌 참으로 오늘날에 실시할 수 없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묻기를,"이것은 그렇지마는 만약에 반드시 임금이 몸소 실천하여
먼저 백성을 증가(增加)시키고 부유하게 한 뒤라야 교(敎)를 베풀 수 있다면,
임금이 몸소 실천하는 날이 없고 백성을 증가시키고 부유하게 하는 기일이 없을 적에는
마침내 교를 베풀 수가 없지 않겠는가." 하기에, 신은 대답하기를, "임금이 만일에 몸소 실천하지 아니하고 백성을 기르는 데 힘쓰지 아니하면,
이것은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니 구제할 방책이 없다.
어찌 옛 교(敎)를 베풀 수 있겠는가.
만일 또 임금이 덕을 이루고 이 백성들이 증가되고 부유하게 한 뒤라야 비로소 교를 베푼다고 하면
이 역시 하나에만 집착된 이론이다.
오직 임금이 곧 몸소 실천할 뜻을 세우고, 곧 인정(仁政)을 베풀며 점차로 교육을 시행해 나가면
기르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병행하여 서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백성을 교화하는 도는 그 요령이 이와 같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힘쓰시옵소서.

 

< 주 >

243) 주대(周代)에 교육을 맡아 보던 벼슬이름. 지금의 문교부 장관과 같다.

244) 중국의황제(黃帝) 이하 6대(代) 고전 음악. 즉 황제의 음악인 운문(雲門), 요(堯) 임금의 음악인 함지(咸池),
순(舜) 임금의 음악인 대소(大韶), 우(禹)임금의 음악인 대하(大夏), 탕(湯) 임금의 음악인 대호(大濩),
무왕(武王)의 음악인 대무(大武)등을 가리킨다.

245) 중국 고대의 활쏘던 다섯 가지 방법. 즉 백시(白矢)·참연(參連)·염주(剡注)·양척(襄尺)·정의(井儀) 등을 말한다.

246) 중국 고대의 수레를 몰던 다섯 가지 방법. 즉 명화란(鳴和鸞)·축수곡(逐水曲)·과군표(過君表)·무교구(舞交衢)·축금좌(逐禽左)등을 가리킨다.

247) 「주역」 64괘 중 10번째 괘.

248) 「주역」 64괘 중 53번째 괘.

249) 「주역」 64괘 중 20번째 괘

250) 「나라」를 위하여 드리는 다섯 가지 제사. 즉 사명(司命)·중류(中)·국문(國門)·국행(國行)·공려(公 )

 

 

제10장. 위정 공효(爲政功效)

 

신이 살피건대, 임금이 가르치고 기르는 도를 극진히 하였으면 반드시 풍동(풍동)의 교화가 있어서, 그 영향을 만세에까지 끼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그 공효(功效)를 나타내었습니다.

 

◆ 인(仁)이 천하를 덮는 공효(功效)에 대한 말씀

대도(大道)가 행할 때에는 천하를 공유(公有)로 생각하여 어진 이와 능한이를 선발하여 신의(信義)를 강구하고 화목을 닦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의 어버이만 어버이로 여기지 아니하고, 자기의 아들만 아들로 여기지 아니하며,
늙은이는 종신할 곳이 있고 젊은이는 쓰일 곳이 있으며, 어린이는 자랄 곳이 있으며,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독신,
그리고 병든 불구자도 모두 부양될 곳이 있다.
이러므로 모략이 일어나지 아니하며, 도둑이 일어나지 아니하여 사립문을 열어 놓고 닫지 아니하니, 이것을 대동(同大)이라고 한다. (예기(禮記))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모폐(謀閉)라는 것은 간사한 꾀가 폐색(閉塞)되어 일어나지 않는 것이요,
대동(大同)이란 것은 공평한 도가 행하는 대동의 세상이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패자(覇者)의 백성들은 환우(驩虞)한 듯하고, 왕자의 백성들은 호호()한 듯하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환우(驩虞)는 즐거워 날뛰며 좋아하는 모양을 말하는 것이요,
호호()는 마음이 넓어 스스로 만족하는 모양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환우는 사사로이 작은 은혜를 베풀어 사람들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니,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밭을 갈아 밥을 먹고 우물을 파서 물 마시며 편안하게 지내니,
임금의 힘이 나에게 미치는 것을 알겠는가.' 하였는데,
이것은 하늘이 자연한 것과 같은 것이니, 이것이 바로 왕자(王者)의 정치이다." 하였습니다.

왕자(王者)의 백성들은 죽여도 원망하지 않고, 이롭게 해 주어도 공[庸] 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날로 선한 데로 옮겨가면서도 그렇게 만드는 사람을 모른다.

주자는, "이것이 이른바 호호하듯 한 모습이다. 용(庸)은 공(功)이다." 하였습니다.

○풍씨(豊氏)는, "백성들의 미워하는 바를 따라서 제거해 주는 것이지,
본래 마음이 이것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닌데 어찌 원망이 있겠으며, 또 백성들의 이로운 바를 따라서 이롭게 해 주는 것이지,
본래 마음이 이것을 이롭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데 어찌 공으로 여기겠는가.
다만 그 성품의 자연스런 것을 도와서 스스로 얻을 수 있게 해 준 까닭에 백성들은 날로 선한 데로 옮겨가면서도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는 모른다." 하였습니다.

군자가 지나가는 곳은 모두 교화[化]되고 그가 마음을 둔 곳은 신묘[神]하다.
위로는 천덕(天德)과 합하고, 아래로는 지덕(地德)과 합하여 그 운행을 같이 하나니, 어찌 조그마한 혜택이라고 말하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여기에서 군자는 성인에 대한 통칭이다.
지나가는 곳은 다 교화가 된다는 말은 성인이 지나가는 곳에는 사람들이 다 교화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이니,
이것은 마치 순(舜)이 역산(歷山)에서 밭을 갈고 있을 때에는, 밭 가진 사람들이 모두 밭두덕[畔]을 사양하고,
하빈(河濱)에서 질그릇을 만들 때 에는 그릇이 추하거나 비뚤어짐이 없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가 보존하고 있는 곳이 신묘하다는 말은, 군자 [聖人]가 마음을 두고 있는 곳은 신묘하여 측량할 수 없다는 말이니,
이것은 마치 공자가, '세우면 곧 서고, 인도하면 곧 따르고, 품으면 곧 모여들고, 움직이면 곧 화응(和應)한다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하는 데도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덕업(德業)의 성한 것으로서 천지의 화육(化育)과 더불어 같이 운행하여 일세의 사람들을 모두 들어서 교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니,
어찌 패자(覇者)가 조그마한 혜택을 베푸는 것과 비할 것인가.
이것은 왕도(王道)가 위대하다는 소이(所以)인데,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마음을 다해야 할 점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명성이 중국(中國)에 넘치고 야만의 지역에까지 뻗쳐 가 배수레가 이르는 곳이나 인력의 통하는 곳,
하늘이 덮여 있는 곳이나 땅이 실려 있는 곳, 해와 달이 비치는 곳이나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곳의 무릇 혈기(血氣)를지닌 자는 높이고
친애하지 않는 이가 없기 때문에 하늘을 짝한다고 일컫는다. (중용)

주자는 말하기를, "하늘을 짝한다는 것은 그 덕이 광대하게 미치는 것이 하늘과 같다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덕이 천심에 부합하는 공효에 대한 말씀

○「시경」에 이르기를, "아름다운 군자여, 어진 덕이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하여 하늘에서 복받았네.
하늘은 거듭[申] 돌보며, 도우고 명(命)하네."하였습니다. (대아(大雅)의 가락(假樂)편)

주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임금을 가리킨 것이요, 민(民)은 뭇 백성이요, 인(人)은 벼슬에 나아가 있는 이며,
신[申]은 거듭이란 뜻이다. 이 시(時)는 임금의 덕이 관민(官民)을 편의(便宜)하게 하여 하늘에서 복록을 받게 되었고,
하늘이 임금에게 돌보아 주기를 싫어하지 아니하고, 거듭 보우 (保祐)하고 명령하였다는 것을 읊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이르기를, "문왕(文王)이 위에 있으니 하늘에 밝도다. 옛 주(周)나라지만 내린 명은 새롭도다." 하였습니다. (대아(大雅) 문왕(文王)편 )

주자는 말하기를, "이 시는 문왕이 이미 돌아가고 그 신령이 위에 있어서 하늘에 밝으니,
이로써 주(周)나라는 비록 후직(后稷:주나라의 선조(先祖) 기(棄)의 별명)으로부터 시작하여 천여 년이 되었지만,
그 천명을 받은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읊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동양 허씨(東陽許氏)는 말하기를, "문왕이 명덕(明德)을 밝혀 백성들에게 미치게하여
정교(政敎)가 날로 새로우니 이로써 처음으로 천명을 받았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등문공(文公)에게 말하기를,"시에 이르기를,'주(周)나라는 비록 옛 나라지만 그 내린 명은 오직 새롭다.' 함은 문왕을 말한 것이다.
자네도 힘써 행하면 역시 자네의 나라를 새롭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 다음은 은덕이 후세에 흘러 내려가는 공효에 대한 말씀

○「시경」에 이르기를, "인도(人道)보다 더 강한 것이 없으므로 사방이 이에 따르도다.
덕(德)보다 더 드러난 것이 없으므로 여러 후왕[百宮]이 본받도다.
아! 전왕(前王)을 잊을 수 없구나." 하였습니다. (주송(周頌) 열문(烈文)편)

주자는 말하기를, "인도보다 강한 것이 없고 덕보다 크게 드러난 것이 없다.
사람이 선왕의 덕을 잊을 수 없는 까닭은 이 도(道)를 썼기 때문이다.
전왕은 문왕·무왕(武王)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군자는 그 어지심을 어질게 여기고, 그 친하심을 친하게 여기며, 소인은 그 즐겁게 하심을 즐거이 여기고,
그 이롭게 하심을 이롭게 여기니, 이 때문에 전왕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못내 잊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大學) )

주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후세의 현자(賢子)와 왕자(王者)를 말하는 것이요, 소인은 후세의 서민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글은 전왕이 신민(新民)하는데, 지선(至善)에 머물러서 천하 후세로 하여금 한 사물이라도 그 처소를 얻지 않는 것이 없게 하였기 때문에,
이미 전왕이 세상을 떠났어도 사람들이 그를 사모하고 오래도록 잊지 못해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그 어지심을 어질게 여긴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는 그 덕업의 성한 것을 숭앙하는 것이요,
그 친하심을 친애한다는 것은 자손들이 보존하여 그 길러 준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며,
그 즐거움을 즐거이 여긴다는 것은 배부르게 먹고 그 즐거움을 편안히 누리는 것이요,
그 이로움을 이롭게 여긴다는 것은 밭을 갈아 밥을 먹고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며 그 이로움을 누리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선왕의 성덕(盛德)과 지선(至善)의 여택(餘澤)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위정(爲政)의 보람은 인덕(仁德)을 천하에 입히고 은택을 후세에 흐르게 하는 것이니,
성인의 능사(能事)가 여기서 더할 수 없으니, 참으로 고원(高遠)하여 거의 미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궁행(躬行)하는 데 근본을 두고 순서에 따라 점진해 나간다면, 마치 길 걷는 사람이 물러서지 않으면 반드시 집에 이르고,
밥 먹는 사람이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배부르게 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따라서 본래 바람이나 그림자를 잡는 것처럼 그 효과를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마는,
다만 임금이 참으로 이것을 고원하다고만 여겨 실행하지 아니한 것을 근심할 뿐입니다.
성왕의 정치가 책에 진술되어 있으니 마치 그림쇠[規矩]가 손에 있어서 모난 물건과 둥근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아서,
처음에는 비록 저오(齟齬)가 있더라도 나중에는 점차로 익숙하여질 것이니, 어찌 왕정(王政)을 시행할 수 없음을 근심하겠습니까.
대개 임금으로서의 병통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다욕(多慾)에 끌려 왕정을 행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유속(流俗)에 빠져 왕정을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욕에 끌린 사람은 시비(是非)의 공정한 것이 항상 사사로운 이익에 가리워지고,
유속에 빠진 사람은 성현의 말보다 항상 비루[鄙俚]한 말에 굴하게 됩니다.
후세에 있어서 다스려지는 날이 항상 적은 것은 오직 이 때문입니다.
대개 인의(仁義)를 몸소 실천한다는 것은 천덕(天德)이요, 생민을 교화하고 양육한다는 것은 왕도(王道)입니다.
후세의 임금들은 항상 말하기를, "나 같은 소자가 어찌 감히 옛 도를 바라겠는가." 합니다.
천덕과 왕도에 대한 말은 옛 성현의 일이요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인식하여, 신하가 이에 대해 진언(進言)하면 문득 손가락질하고 웃으면서,
"뜻만 높아서 실상이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는, 특히 내 마음의 정대무사(正大無私)한 것이 바로 천덕인 것과, 처사를 의당하게 하여
인심에 순하는 것이 바로 왕도인 줄을 모릅니다.
때에는 고금이 없고 도는 고원한 것이 아니며, 바로 일용적인 상사(常事)에 있는 것이니, 다만 이것을 아직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근심할 뿐입니다.
욕심이 많은 임금은 자포자기하는 것을 즐기고 있으니, 이것은 본래 말할 것이 못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선을 하는 임금도 흔히 유속(流俗)에 빠지게 되니, 더욱 애석한 일입니다.
세속의 사람들은 반드시 말하기를, "옛 도는 결코 회복할 수 없다. 이제 만일 묵은 것을 개혁하여 새롭게 하려면
인심이 불안하여 장차 위란이 이르게 되리라." 하니, 임금이 그 말을 깊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선비들의 말이 서로 동떨어져서,
마침내 부합되는 이치가 없습니다. 어찌 깊이 생각하되, 지금 기강이 떨치고 있느냐, 퇴폐하고 있느냐, 선비들의 버릇이 정당하냐 구차하냐,
재상은 나라를 다스리고 있느냐, 일없이 녹만 먹느냐, 백관들은 자기 직책을 감당하고 있느냐, 게을리 하고 있느냐,
백성들은 잘 휴양하고 있느냐, 곤췌(困)하고 있느냐를 살펴서 만일 기강이 떨치고 있으며, 선비들의 버릇이 정당하고,
재상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며 백관이 직책을 감당하고 있고, 백성들이 잘 휴양하고 있다면, 이것은 거의 왕도정치에 가깝습니다.
일변(一變)하면 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데, 어째서 옛 도를 회복할 수 없겠습니까.
만일 기강이 퇴폐하여 선비들의 버릇이 구차하고, 재상이 일없이 녹만 먹고,
백관이 사무에 게으르고 백성들이 고생스러우면 이것은 앞으로 망할 증상입니다.
마땅히 급급히 서둘러서 개혁하여야 할 것인데, 우선 당장 탈이 없다고 안심하고 도리어 일하려는 것을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이것은 아마 지혜가 천박하고 모자라서 앞으로의 큰 근심을 염려하지 못하면서 다만 목전의 무사한 것만 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아마도 어진 이는 초야(草野)에 있고 어질지 못한 이가 조정에 있어서 같은 말로써 위를 속이는 것이요, 실로 국인(國人)의 뜻은 아니며,
또 아마도 당로자(當路者)가 재주와 지혜가 부족하여 능히 스스로 할 수도 없고, 또 어진 이를 천거할 줄도 모르며,
다만 구차하게 죄책만 모면하려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생각하여 그 소이연(所以然)을 얻으면 세속적인 뭇 사람의 비방하는 것은 한 번 휘둘러 안정할 수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무도(無道)한 나라에서는 선인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하로서 선(善)을 하다가 살육을 당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임금이 도를 행하다가 화를 입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대개 임금이 위에서 명령을 세워서 난(亂)을 치(治)로 돌이키는 데는 다만 마음 하나에 있을 뿐이니,
마음 하나가 도를 향하여 쉬지 않고 힘써 나가면, 곧 정치에 베풀어져서 세도(世道)가 일변할 것입니다.
어찌 기강을 세우고 선비의 버릇을 교정(矯正)하고, 재상에게 정사를 맡기며, 백공(百工)에게 일을 빛나게 하고,
서민들을 안락하게 하여, 선왕의 도를 따르는데 도리어 화패(禍敗)를 당할 이(理)가 있겠습니까.
아, 생각하지 않는 탓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정치를 함에는 반드시 성스러운 임금을 좇아야 할 것인데,
임금이 몸소 행하는 것이 오히려 덕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찌하느냐." 하기에,
신은 답변하기를, "수신(修身)을 치국(治國)보다 먼저 한다는 것은, 다만 그 순서의 당연한 것을 말했을 뿐이다.
만일 반드시 수신이 지극한 데 이르기를 기다린 뒤에 비로소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진실한 덕이 미치기 전에는 국가를 어디에 두겠는가." 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후왕이 춘추(春秋)의 의(義)를 알면,
비록 덕은 우(禹)와 탕(湯)이 아닐지라도 오히려 삼대(三代)의 정치를 본 받을 수 있다." 하였습니다.
정자가 어찌 거짓말로써 사람을 속였겠습니까.
다만 임금이 취사선택할 줄 알고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성실히 하며,
반드시 다스려지도록 하겠다는 뜻을 떨쳐서 어진 이를 구하여 신임한다면,
덕은 비록 이루어지지 아니하더라도 치도(治道)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로부터 이후로 날로 넓어지면 수신(修身)과 치국(治國)이 함께 그 극진한 곳까지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상천(上天)의 명을 두렵게 여기시고, 부모의 책하심을 생각하시며,
백년 사직(社稷)의 중대성을 생각하시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는 고통을 민망히 여기시며,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확충하시고 사람을 사랑하는 정치를 시행하시어, 널리 백성들을 구제하여 예악(禮樂)을 빛나게 일으키시며,
세도(世道)를 한 번 새롭게 하여 삼황오제(三皇五帝)에 비함으로써 조종(祖宗)의 선열을 빛내시고 어진 자식과 어진 손자에게 모범을 보이시면
만세에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 주 >

251) 주대(周代)지방에서 3년 동안의 학업을 닦는 사람들 가운데,

우수한 이를 임금에게 천거할 때 그를 송별하기 위하여 향대부가 베풀던 연회이다.



 


제3편. 정 가(正家)

 

신이 살피건대,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자기가 몸소 도(道)를 행하지 아니하면 처자에게도 도가 행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부리는 데 도(道)로써 하지 아니하면 처자에게도 <영(令)이> 행해지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자신이 도를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행하는 것으로써 말하는 것이요,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가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을 부리되 도로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로써 말한 것이며, 행할 수 없다는 것은 영〔令〕이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대개 자기 몸을 닦고 난 다음에야 집안을 바르게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정가(正家)를 수기(修己) 다음 차례에 둔 것이오니,
이 아래는 치인(治人)하는 도입니다.

 

제1장. 정가 총론(正家總論)

 

 

 

신이 살피건대, 집안을 바루는〔正家〕데에는 모두 절목(節目)이 있기 때문에, 이제 대강의 줄거리를 논한 것들을 가지고 첫머리에 밝힙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데에는 근본이 있는데, 자기 자신을 일러 말한 것이요, 천하를 다스리는 데에는 법도가 있는데, 그 집을 말한 것이다.
근본은 반드시 단정해야만 하는데, 근본이 단정하려면 마음을 정성스럽게 해야 하며,
법도는 반드시 선해야만 하는데 법도가 선하려면 어버이를 화평하게 해야한다. (주자(周子) 통서(通書))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칙(則)은 사물의 본받을 수 있는 것을 법으로 삼는 것을 말하는데,
속어(俗語)로 칙례(則例)·칙양(則樣) 같은 말이 바로 이것이다.
마음이 정성스럽지 아니하면 몸을 바룰 수가 없으며, 어버이가 화평하지 아니하면 그 집안이 다스려질 수가 없다." 하였습니다.

그 집안 사람을 가르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집밖에 나가지 아니 하고서도 나라에 가르침을 이룩하는 것이다.
효도〔孝〕라는 것은 임금을 섬기는 길이요, 공경〔弟〕이라는 것은 어른을 섬기는 길이며,
자애〔慈〕라는 것은 여러 사람을 부리는 길이다. (대학(大學))

주자는 말하기를, "효도·공경·자애는 자기 자신을 먼저 수양하여 집안에서 가족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임금을 섬기고, 웃어른을 섬기며, 여러 사람을 부리는 길도 이 방법에서 벗어나지 아니한다.
이것이 집안은 위에서 다스려지고 가르침은 아래에서 이룩된다는 이유이다." 하였습니다.

역(易)에 이르기를, "부모가 부모의 할 일을 하고, 자식이 자식의 할 일을 하며, 형이 형의 할 일을 하고,
아우가 아우의 할 일을 하며, 남편이 남편의 할 일을 하고, 아내가 아내의 할 일을 할 것 같으며,
집안의 규범이 바로 서게 되고, 집안이 바르게 되면 천하가 안정된다." 하였습니다. (가인괘(家人卦)104) 단사(彖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부자·형제·부부가 각기 그도를 지키면 곧 그 집안의 가도(家道)가 바로 서게 된다.
한 집안의 가도를 미루면 천하의 모든 일에 미칠 수가 있다.
예로부터 성왕(聖王)은 자기를 공손하게 하고, 집안을 바르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지 아니한 일이 없다.
그러므로 그 집안의 가도가 이미 지극하면, 근심하거나 수고하지 아니하여도 천하는 다스려진다." 하였습니다.

사람의 도리와 기강을 바르게 하고, 은혜와 덕을 두텁게 하는 것이 집안 사람이 해야 할 도이다. (정자(程子) 역전(易傳))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사람의 도리와 기강을 바르게 한다면 신분의 높고 낮음이 분명해지고,
은혜와 덕을 두텁게 한다면 웃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이나 뜻이 서로 잘 맞게 될 것이다.
이 두 일이 아울러 실행되어야만 집안을 처리하는 도가 분명해진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람의 도리와 기강을 바르게 하는 일을 반드시 먼저 해야만 하는 것이니,
사람의 도리와 기강이 바르게 되지 아니하고서도 은혜와 덕이 두터워진 적은 아직껏 없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임금의 집안이 잘 정돈된다면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고,
임금의 집안이 잘 정돈되지 아니하면서 능히 그 천하를 잘 다스린 사람은 없다.
이런 때문에 성현(聖賢)이라고 불리운 임금으로서 능히 그 정사(政事)를 잘한 이는 집안을 정돈하는 일을 근본으로 삼지 아니한 적이 없다.
대개 남자는 밖으로 그 위치를 바르게 하고, 여자는 안으로 그 위치를 바르게 함으로써 부부간의 분별이 엄격하게 되는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 것이요,
처(妻)는 위에서 몸을 정제하고, 첩(妾)은 아래에서 이어받아서 적(嫡)과 서(庶)의 분별이 정해지는 것이 집안이 다스려지는 것이며,
덕이 있는 이를 본받고 성색(聲色)을 경계하며, 엄격하고 공경할 만한 사람을 가까이 하며,
재주 있고 잘하는 체하는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집안을 다스리는 것이요,
집안의 말이 <밖에> 새어 나지 아니하고 밖의 말이 안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뇌물 꾸러미가 통하지 아니하고 <권력 세도에> 청탁하는 일이 행해지지 아니하는 것이 집안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나 안방 잠자리 속에서의 사랑은 늘 옳은 일을 가리기가 일쑤이니,
이 때문에 비록 뛰어난 영웅의 재간을 가지고서도 오히려 술과 여자에게 곤욕을 당하고,
애정(愛情)에 빠져서 능히 스스로를 이겨내지 못하는 자가 있다.
만일 자기의 마음을 바로 잡고, 자신의 덕을 닦아서 예의로써 행동하여,
사람을 나의 덕에 심복하게 하고 나의 위엄을 두려워하게 하지 않는다면, 또한 무엇으로 그 궁중왕래를 바르게 하고,
그 청탁을 막아내며 그 친척들을 단속하여 화란(禍亂)이 싹트는 것을 막을 수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집안을 바르게 다스리는 도(道)는 바른 윤리(倫理)와 돈독한 은의(恩義)의 두 가지를 벗어나지 않으니,
다음의 글에서는 이것을 미루어 설명하기로 합니다.

 

< 주 >

104) 「주역」64괘 중 37번째 괘 이름.

 

 

제2장. 효 경(孝敬)

 

신이 살피건대, 효도는 모든 행동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집안을 바르게 다스리는 도(道)는 효도와 공경하는 일을 그 첫째로 삼습니다.

 

◆ 사친(事親)의 도에 대한 총론

공자는 말하기를, "신체(身體)와 모발〔髮〕과 피부 등은 부모에게서 물려 받은 것이니,
감히 <그것을> 훼손하거나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처음이며, 입신(立身)하여 도를 실천하고 후세에 이름을 떨쳐서,
그것으로써 부모의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 일이 효도의 마지막이다.
대체로 효도는 부모를 섬기는 일에서 시작하고, 임금을 섬기는 일이 중간이 되며, 입신하는 것을 그 마지막에 둔다." 하였습니다. (「효경」하동)

오씨(吳氏)는 말하기를, "사람의 신체는 부모가 물려준 것이니, 스스로 아껴서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능히 입신하여 도(道)를 실천한다면 곧 자기의 이름이 후세에 떨쳐지고, 부모의 이름까지도 역시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효도의 마지막이다." 하였습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감히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아니하며,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감히 다른 사람에게 거만하게 하지 아니한다.
사랑하고 공경하여 부모를 극진히 섬긴다면 덕과 교화가 백성에게 더해지고, 온누리에 모범이 되는 것인데, 이것은 바로 천자가 하는 효도이다.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효도라는 것은 사랑하고 공경하는 데서 벗어나지 아니할 따름이니,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미루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질투하고 미워하는 일이 없어지며,
부모를 공경하는 심정을 미루어서 다른 사람을 존경하면, 남을 낮추어 보거나 업신여기는 바가 없을 것인데,
<이를> 위에서 몸소 실천한다면 도덕과 교화가 자연 아랫사람의 본보기가 되어서,
천하 사람들은 모두 그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웃자리에 있으면서 교만하지 아니하면 높은 지위에 있어도 위태롭지 아니하고,
자제(自制)하고 절도가 있어 법도를 존중하면 가득 차 있어도 넘치지 아니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여야만 능히 그 사직(社稷)을 잘 보존할 수가 있고,
그 백성들을 화목하게 할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은 제후(諸侯)가 하는 효도이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제절(制節)은 스스로 예절을 적당하게 조절하여 지킴이요,
근도(謹度)는 법규와 제도를 삼가서 지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선왕(先王)이 법으로 마련한 의복이 아니면 감히 입지 아니하고, 선왕의 법(法)이 있는 말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道〕아니하며,
선왕의 덕 있는 행동이 아니면 감히 행하지 않을 것이니 그렇게 한 다음에야 능히 그 종묘(宗廟)를 잘 보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경(卿)과 대부(大夫)가 하는 효도이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법(法)은 법도(法度)이며, 도(道)는 말한다〔言〕는 뜻이다.
종(宗)이라고 함은 사람이 여기에 모이어〔宗〕<조상에게> 제를 지내는 것이다.
경과 대부는 모두 사당이 있으므로, 그 때문에 종묘를 보존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효도로써 임금을 섬기면 충(忠)이요, 공경으로써 웃어른을 섬기면 순(順)이 된다.
충과 순을 잃지 아니하고 그것으로 위를 섬긴 연후에야, 능히 그 제사 지내는 일을 잘 지켜 나갈 수가 있는데, 이는 곧 선비가 하는 효도이다.

진씨는 말하기를, "부모를 섬기는 효도를 옮겨서 임금을 섬기면 곧 충성이 되며, 부모를 섬기는 공경을 옮겨서 웃어른을 섬기면 곧 순함〔順〕이 된다.
위〔上〕는 곧 임금과 웃어른을 가리킨다.
선비는 전답과 녹(祿)이 있어 그것으로 제사를 받들 수 있기 때문에, '제사 받드는 일을 지킨다.'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늘의 도〔道〕를 따르고 땅의 이(利)를 이용하여, 몸가짐을 조심하고 씀씀이를 절약〔節用〕하여서 그것으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니,
이것은 일반 백성들이 하는 효도이다.

오씨(吳氏)는 말하기를, "하늘의 도를 따른다는 것은, 하늘이 낳아서 자라게 하고 거두어 간직하는 <도리에> 따라,
밭갈고 김매는 일과 곡식을 거둬들이는 일을 각각 그 <알맞는> 때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땅의 벼와 수수〔稻梁〕, 기장과 피〔黍稷〕등을 각각 적당하게 심는 것을 말한다.

몸가짐을 조심〔謹身〕한다는 것은 자신의 분수를 지켜서 망령된 일을 하지 않는 것이요,
씀씀이를 절약한다는 것은 쓰는 일에 검소하게 하여 함부로 낭비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능히 이와 같이 할 수만 있다며, 몸이 안정되고 힘이 넉넉하여 그것을 가지고 그 부모를 봉양할 수가 있는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위로는 천자(天子)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효도하는 일에 처음과 끝이 없고서도 환란이 미치지 아니하는 자는 없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부모를 섬기는데 능히 처음과 끝이 있지 아니한 자는 재앙이 반드시 그 자신에게 미친다." 하였습니다.

효자가 부모를 섬기는 일은 그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공경을 다하고, 봉양할 때에는 그 즐거움을 다해 드리며,
병환에 계시면 그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시면 그 슬픔을 다하여, 제사를 받들 때에는 그 엄숙함을 다할 것이니,
<위의> 다섯 가지를 다 갖춘 연후에야 능히 부모를 잘 섬길 수가 있다.

진씨는 말하기를, "다한다는 것은 지극한 것을 말한 것이요, 즐겁다는 것은 얼굴 표정을 유쾌하게 보이고, 상냥스러운 모습을 지니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자식으로서 부모를 섬기는 마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털끝만큼이라도 다하지 못한 것이 없어야 효도라고 말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맹의자(孟懿子)105)가 효도를 물으니, 공자는 말하기를, "어기지 말라." 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어기지 말라고 한 것은 사리에 어그러지지 아니함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번지(樊遲)106)가 모시고〔御〕가는데, 공자가 그에게 일러 말하기를, "맹손씨(孟孫氏)가 나에게 효도를 묻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어기지 말라' 말하였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공자는 맹의자가 아직 통달하지 못하여 능히 묻지 않으니,
그 가리킨 뜻을 알지 못하고 부모가 시키는 일에만 순종하는 것이 효도하는 것이라고 여길까 염려하여,
번지에게 말하여서 그 뜻을 드러낸 것이다." 하였습니다.

번지가 말하기를,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 하니,
공자는 말하기를, "살아서는 예로써 섬기고 죽어서는 예로써 장사지내며 예로써 제사지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살아서 섬기고, 죽어서 장사지내며,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부모 섬기는 일의 처음과 끝은 <모두> 갖춘 것이다.
예는 곧 이치를 알맞게 갖춘 것이니, 사람이 부모를 섬기는 일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로 일관하고 구차하게 아니하면
그 부모를 높이는 것이 지극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사람이 그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비록 한정이 없다고 하지만,
분수에는 한도가 있으므로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구차하고 간략하며, 검소하고 누추한 것을 말합니다.)
능력이 없으면서도 <과분하게> 하는 것이 (사치하고 사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다 같이 불효에 속한다.
이른바 예로써 한다는 것은 그 <능력대로> 할 수 있는 바를 하는 것뿐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살아서 섬기는 도리에 대한 말씀

○무릇 사람의 자식이 되어 해야 할 예(禮)는, 겨울에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리는 일과,
저녁에 잠자리를 정해 드리고 새벽에 문안을 드리는 일과, 밖에 나갈 때 반드시 여쭙고, 돌아오면 반드시 뵙는 일과,
노는 곳이 반드시 일정함이 있어야 하고, 익히는 것은 반드시 일정한 것이 있어야 하며,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에 늙었다는 말을 써서는 아니 되는 것들이다. (「예기」하동)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따뜻하게 해서 그 추위를 막아 드리며, 서늘하게 해서 시원하도록 하고,
주무실 자리를 정해 드리고 그 안부를 살피며, 외출하면 나간다고 여쭙고, 귀가하면 돌아왔다고 여쭈어야 된다.
'노는 데에 일정함이 있어야 한다.' 함은 몸이 다른 곳에 가지 아니한다는 말이요,
'익히는 것은 일정한 것이 있어야 한다.' 한 것은 마음을 다른 데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효자가 노부모를 봉양할 때에는, 그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고 그 뜻을 어기지 아니하며,
그 보고 듣는 것〔耳目〕을 즐겁게 해드리고 그 잠자는 처소를 편하게 해 드리며, 음식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봉양한다." 하였습니다.

방씨(方氏)는 말하기를, "부모를 봉양하는 데 물질로 봉양하면 족히 그 입과 몸을 봉양할 뿐이지만,
정성으로써 봉양할 것 같으면, 족히 그 뜻을 받들 수 있다." 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부모가 사랑하는 것을 역시 사랑해야 되고, 부모가 존경하는 것을 역시 존경해야 된다.
개나 말이라도 다 그렇게 할 것이거늘,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증자(曾子)의 말은 여기에서 그침.)

오씨(吳氏)는 말하기를, "효자가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씨는 이르지 아니한 곳이 없으므로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바를 역시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효자로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반드시 온화한 기운이 있고, 온화한 기운이 있는 자는 반드시 기뻐하는 안색이 있으며,
기뻐하는 안색이 있는 자는 반드시 상냥스런 모습을 가진다. 효자는 <부모 섬기기를> 옥(玉)을 잡는 것같이 하고,
가득 찬 것을 받드는 것같이 하며, 동동 촉촉(洞洞蜀蜀)하여 이기지〔勝〕못하는 것같이 하고, 장차 잃을 것같이 한다.
위엄을 부리며 근엄한 모습으로 조신(操身)하는 것은 부모를 섬기는 바 도리가 아니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동동이라 함은 공경하는 데에 겉과 속의 차이가 없음이요, 촉촉이라 함은 성실하여 거짓이 없음을 가리킨다.
이긴다는 것은 당해 낸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진씨는 말하기를, "온화한 기운, 기뻐하는 안색, 상냥스런 모습 등은 모두 사랑하는 마음에서 드러나는 것이요,
옥(玉)을 잡는 것 같고, 가득 찬 것을 받드는 것 같으며, 이기지 못하는 것 같고, 장차 잃을 것 같다고 하는 것은
모두 공경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니, 사랑과 공경이 함께 지극하면 그것이 바로 효자의 도(道)이다." 하였습니다.

소리 없는 데에서 듣고 형상이 없는 데에서 본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부모의 뜻을 먼저 알고, 그 뜻을 이어받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씨는 말하기를, "늘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면 마치 <부모의> 형상을 보고 <부모의> 음성을 듣는 것과 같아서,
부모가 장차 자식에게 그렇게 시키는 것이 있을 듯하다고 함이다." 하였습니다.

부모가 병환이 나면 장가든 성인은 빗질을 하지 않고 길 가는 데 활개치고 걸어다니지 아니하며 말을 게으르게 하지 않고
거문고와 비파를 타지 아니하며, 고기를 먹는 게 입맛이 변할 정도에까지 이르지 아니하고,
술을 마시는 데 용모가 변할 정도까지 이르지 아니하며, 웃어도 잇몸〔齒本〕을 드러내지 않고,
노하여도 욕설하는 지경에 이르지 아니하다가 병환이 나으면 다시 그 전대로 돌아간다.

진씨는 말하기를, "이 말은 부모의 병환을 봉양하는 예를 말한 것이다.
빗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몸치장을 안하는 것이요, 활개를 치지 않는다는 것은 맵시를 내지 아니하는 것이며,
게으르지 않다는 것은 다른 일에는 미치지를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고기를 실컷 먹어서 입맛이 변할 정도에 이르지 않게 하고,
술을 마셔서 훈훈하게 취하여 안색이 변할 정도에 이르지 않게 할 뿐이다. 치본(齒本)은 잇몸을 말한다.
웃을 때 잇몸이 드러나면 이것은 큰 웃음이다.
성내어 꾸짖는 것을 욕설이라고 한다.
성이 나서 욕설하는 데에 이르면 이는 대단히 노한 것이다.
모두 근심 걱정을 잊어버린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경계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부모를 섬기는 데 은밀〔幾〕하게 간(諫)하고, 그 뜻을 살펴보아 따르지 아니하더라도
또 애써서 공경하고 어기지 아니하며 원망하지도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이 장(章)과 (예기(禮記)의) 내칙(內則)의 말은 서로 앞뒤가 된다. 기(幾)는 미(微)이다.
'은밀하게 간한다.'함은, 이른바 부모가 잘못이 있으면 흥분을 가라앉히고 안색을 부드럽게 하여
유순한 음성으로 간하는 것을 가리킨 것이다.
(이른바 이하는 도두 내칙(內則)의 글입니다. 아래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 뜻이 따르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뜻은 부모의 뜻을 말합니다.)
또 공경하고 어기지 아니한다.'는 말은, 이른바 간하여도 부모가 만약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시 공경하고 효도하되,
즐거워하게 되면 또 다시 간하는 것을 말한다. '애쓰면서도 원망하지 아니한다.'는 말은, 이른바 그 고향 마을에서 죄를 얻느니 보다는,
오히려 익숙히(숙(孰)은 숙(熟)자와 같습니다.) 간할 것이니,
부모가 노하여 기뻐하지 아니하거나, 그래서 종아리를 맞아 피가 흐른다 할지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아니하고,
다시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명의〔公明儀〕가 증자(曾子)에게 묻기를, "선생님〔夫子〕은 가히 효도를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증자가 말하기를, "그것이 무슨 말인가. 그것이 무슨 말인가.
군자의 이른바 효도라는 것은 먼저 부모의 뜻을 알고, 부모의 하고자 하는 뜻을 이어받아서,
부모를 도(道)로써 깨우쳐 드리는 것이나, 다만 나는 봉양만 할 뿐인데, 어찌 효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예기」하동)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깨우쳐 드린다는 것은 비유하고 설명하여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자식된 자는 평소에 능히 사리로써 그 부모를 잘 깨우쳐 허물이 없게끔 모셔야 한다.
이는 마치 신하가 임금을 섬길 적에 그릇된 마음을 바로 잡아 그것을 도(道)에 맞도록 인도하는 것과 같다.
<이를> 그 허물을 보고 난 다음에 간하는 데 비하면, 공(功)이 백 갑절이나 되는 것이기 때문에
군자는 오히려 그렇게 하기를 어렵게 여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사람의 자식으로서 효도하는 데에는 정밀한 것도 있고 거친 것도 있습니다.
따뜻하게 해드리거나, 시원하게 해드리거나, 잠자리를 보아 드리거나, 문안을 드리는 일은 효도 중에서도 조촐한 것이고 정성으로 봉양하고,
사랑으로 공경하는 일은 효도 중에서도 정밀한 것입니다.
안색을 즐겁게 하고 용모를 순후하게 하며 소리가 없어도 듣고 형체가 없어도 보는 것은, 정밀하고도 정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평소에 봉양하는 것을 말한 것뿐입니다.
만일 부모가 질병이나 우환을 당하면, 마땅히 그 근심을 다하여야 하고 만일 부모가 잘못〔過惡〕을 저지르는 일을 당하면,
마땅히 익히 간하여야 하며, 먼저 부모의 뜻을 알고, 부모가 하고자 하는 뜻을 이어받아서 부모에게 도(道)를 깨우쳐 드려야지 만,
지극한 효도가 되는 것입니다. 거친 것으로부터 정밀한 것에 들어가는 그 순서는 이와 같습니다.
정밀한 것과 거친 것에는 본래 어렵고 쉬운 것이 있지만, 다만 그 거친 것을 극진히 다하여야만 능히 그 정밀한 것을 다할 수가 있는 것이니,
그것은 쉽다고 해서 소홀히 할 수 없으며, 또한 어렵다고 해서 스스로 그만두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문왕(文王)·무왕(武王)과 우순(虞舜)이 한 일을 인용하여 그 실적을 드러내겠사오니, 바라옵건대 효심에 유의하옵소서.

문왕(文王)은 세자(世子)로 있을 때에, 왕〔王季〕에게 문안하는 일을 하루에 세 번하였다.
첫닭이 울면 옷을 입고 침전(寢殿) 문밖에 이르러 번(番) 들고 있는〔御〕내수(內)에게 묻기를 "오늘 안부가 어떠하신가." 하여
내수가 대답하기를, "편안하십니다." 하면, 문왕이 곧 기뻐하고, 대낮에 가서도 역시 그렇게 하고, 저녁에 가서도 그렇게 하였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내수는 궁 안뜰에서 잔일을 보는 신하요, 어(御)라 하는 것은 그 날의 당직자를 말한다.
세자가 그 부모를 문안드리는 일은 아침저녁으로 두 번하는 것이 예이지만,
문왕은 하루에 세 번하였으니,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행실이었다." 하였습니다.

편하지 않은 일이 있으면 내수가 그것을 문왕에게 고한다.
그러면 문왕은 근심스러운 안색으로 황급히 갔는데, 능히 신도 바르게 신지 못하였다.
왕계가 보통 때와 같이 식사를 하게 된 연후에 자신의 식사도 역시 그 전대로 하였다.
식사를 올리면 반드시 그 차고 뜨거운 것을 여러 모로 살펴보고〔在〕, 식사를 물리면 반드시 드신 분량을 물어보고는,
음식 일을 맡아보는 이에게 명해 말하기를, "먹다 남은 음식을 다시 올리지 말아라〔末〕." 하고, "예, 알았습니다." 하여야만 물러나갔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재(在)자는 살핀다는 뜻이오, 식사 드신 것을 물어본다는 것은 그 식사 드신 분량이 많은가 적은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말(末)은 하지 말라는 뜻과 같고, 원(原)은 두 번 다시란 뜻이니, 일단 식사를 들고 남은 음식을 두 번 다시 올려서는 아니된다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무왕(武王)도 그대로 따라서 행하였는데 감히 더할 수가 없었다.
문왕(文王)이 병환이 있으며 무왕(武王)이 그 갓과 띠를 풀지 아니하고 곧 병 간호를 하였는데,
문왕이 밥 한 술을 들면 역시 밥 한 술을 들고, 밥 두 술을 들면 역시 밥 두 술을 들었다.

장씨(莊氏)는 말하기를, "천하의 이치란 지극히 다하면 다시 더할 것이 없는 것인데,
문왕(文王)이 부모를 섬기는 데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이르지 아니한 것이 있었겠는가.
음식이란 혹시 거칠 수도 있고, 혹시 여러 번 먹을 수도 있어, 주리고 배부른데 따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부모의 병환 때문에, 뜻이 전혀 음식에는 있지 않아 밥 한 술, 두 술 드는 것을 부모의 하는 대로 따를 뿐이요,
감히 평소 때와 같이 사사로운 욕심에 맞게 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우순(虞舜)의 아버지는 완악(頑惡)하였고 어머니는 간특〔〕하였으며, 상(象)은 <또> 방자하였는데,
그것을 효도로써 능히 잘 화합〔諧〕시키고, 점점 나아가〔烝〕나쁜 데 이르지 않게 하였다. (우서(虞書) 요전(堯典))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순(舜)의 아버지를 고수()라고 부른다.
마음 속에 마땅히 지녀야 할 도덕과 신의의 도리가 없는 것을 완악이라 한다.
어머니는 순(舜)의 계모이다. 입으로 정성스럽지 않고 미덥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을 간특이라고 한다.
상(象)은 순(舜)의 배가 다른 동생의 이름이다. 방자하다는 것은 교만하다는 말이다.
해(諧)는 화목한 것이요, 증(烝)은 나아간다는 것이다.
순(舜)은 불행히 이들을 만났어도 능히 효도로써 잘 화목하게 하였고,
그들을 선으로써 점점 나아가게 하고 스스로 다스리게 하여, 크게 간특하거나 포악한 데는 이르지 아니하게 한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순(舜)이 부모를 섬기는 도(道)를 다하니 고수()가 기뻐하게〔豫〕되었고,
고수가 기뻐하게 되니 온 천하도 이에 감화되었으며, 또한 온 천하의 부자(父子)의 도가 안정되었다.
이것을 대효(大孝)라고 일컫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맹자(孟子))

주자는 말하기를, "지(低)는 이른다는 것이요, 예(豫)는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고수는 지극히 완악하여 일찍이 순을 죽이려고 했었는데 이에 이르러 기뻐하게 되었으니,
서경(書經)에 이른바, '나쁜 데 이르지 아니하고 역시 믿고 따른〔允若〕다.'(윤약(允若)은 믿고서 그것을 따르는 것입니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대개 순은 이 경우에 이르러서도 부모에게 순순히 따랐다.
그러므로 천하의 자식된 자는 천하에 섬기지 못할 부모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부모를 섬기는 것이 순이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힘써서 효도하지 않는 이가 없고, 그 부모된 이도 역시 기뻐하게 되어,
천하의 부모 된 자 역시 자애롭지 아니한 자가 없게 되었으니, 이른바 감화(感化)라고 하는 것이다.
자식은 효도하고 부모는 자애로워 각각 그 처할 곳에 처하여 그 처한 곳이 편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의미가 이른바 안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천하에 본보기가 되어 가히 후세에 까지 전할 수가 있고, 내 한 몸 한 집안에 그치는 효도만이 아니니,
이것이 이른바 대효(大孝)가 되는 까닭이다." 하였습니다.

○이씨(李氏)는 말하기를, "순(舜)이 고수를 기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도리를 다하여 부모를 섬겨 자식된 직분을 공손히 다하고 부모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옛날에 나중소(羅仲素)107)가 이것을 말하기를, '다만 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하니,
요옹(了翁)108)이 듣고 그 말을 좋다고 하면서, '오직 이와 같이 해야만 천하에 부자의 사이가 안정되는 것이다.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거나 아들이 그 아버지를 죽이는 것은 항상 옳지 않은 것을 보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문왕(文王)·무왕(武王)은 그 정상 상태에서 처신을 하였고,
우순(虞舜)은 그 변측적인 상황에서 처신을 하였으니, 그 정상 상태에서 처신하는 일은 쉽고 변측적인 상황에서 처신하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변측적인 상황에 처하여 그 도(道)를 극진히 다하여야만 대효(大孝)로서 더욱 크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순이 한 일을 가지고 끝을 맺습니다.

 

◆ 다음은 죽어서 장사지내는 도리에 대한 말씀

○공자(孔子)는 말하기를, "자식이 나서 3년이 되어야만 부모의 품〔懷〕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3년상을 지내는 것은 천하에 공통되는 상례(喪禮)이다." 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주자는 말하기를, "회(懷)란 안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맹자가 말하기를, "3년상을 지낼 때에 아래 단〔齊〕을 한 거친〔疏〕베옷을 입고 미음이나
죽〔粥〕을 먹는 것은 천자(天子)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예이다." 하였습니다. (맹자(孟子))

주자는 말하기를, "자〔齊〕는 옷의 아랫단을 꿰매는〔縫〕것이다.
아랫단을 꿰매지 아니한 상복을 참최(斬衰)라고 하고, 아랫단을 꿰맨 것은 자최(齊衰)라고 한다.
소(疏)는 성글다는 뜻인데, 바로 발이 굵고 바탕이 거친 생베를 말한다.
전()은 미음을 가리킨다. 상(喪)을 당했을 때, 복입는 예법에는 3일만에 비로소 미음을 먹고 장례를 마치고 난 다음부터는 소찬(疏饌)을 먹는 것이다.
이것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신분의 귀천을 가릴 것 없이 공통적으로 행해지는 예이다." 하였습니다.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상처가 크면 시일이 오래 가고, 아픔이 심하면 더디게 낫는 것인데,
3년이라고 한 것은 정리(情理)를 헤아려서 예문(禮文)을 만든 것이다.
애통한 것이 아직 다 가시질 아니하고, 사모하는 정이 아직 잊혀지질 아니하더라도 복 입는 일을 이렇게 단정한 것은
죽은 이를 보내는 일에 한도가 있고, 산 이가 회복하는 데는 절도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무릇 천지간에 사는 것 중에 혈기(血氣)가 있는 족속들은 반드시 지각(知覺)이 있고, 지각이 있는 것들은 같은 족속끼리 사랑을 모르는 것이 없다.
가령 지금 큰 새나 짐승들의 무리도 짝을 잃게 되면, 달〔月〕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어도 반드시 돌아와서,
그 옛집을 지나가면서 두루 날아 빙빙 돌고 울부짖으며, 주춤거리고 머뭇거리다가 얼마 뒤에야 떠나는데,
작은 것으로는 제비와 참새에 이르기까지도 오히려 잠시 동안 지저귀면서 슬피울다가 떠나는 것이다.
본래 혈기가 도는 족속들 중에서 사람보다 더 분별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 사람으로서 그 부모에 대하는 심정은 죽음에 이르러도 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못 되었거나 음란한 사람이라면, 그 부모가 아침에 죽었다 하더라도 저녁에는 그것을 잊는 것이니,
그런데 만일 그것을 따른다고 하면, 오히려 새나 짐승들만도 못한 것이다.
그 어찌 능히 서로 무리를 이루어 살겠으며, 문란하지 않겠는가.
수신하는 군자는 곧 3년상을 25개월에 마치는 것이 마치 빠른 사마(駟馬)가 문틈으로 빨리 지나가는 듯이 여겨질 것이니,
그대로 따른다며 끝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왕(先王)은 그것을 위하여 중도(中道)에 맞게 예절을 제정하여 모든 사람이 충분히 정리(情理)를 다 할 수 있도록 만들어
그런 뒤에 상을 벗도록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자사(子思)는 말하기를, "상사(喪事)의 3일만에 빈(殯)하는데, 대개 몸에 부치는 것들은 반드시 정성스럽게 하고 진실되게 하여,
후회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며, 석 달만에 장례를 하는데, 대개 관(棺)에 부치는 것들을 반드시 정성스럽게 하고 반드시 진실되게 하여,
후회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예기(禮記), 하동. ○자사(子思)의 말은 여기서 그침.)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몸에 부치는 것이란 염습하는 데 갖추어야 할 겉옷과 이불 등을 가리키는 것이요,
관(棺)에 부치는 것이란 같이 묻는 명기(明器)109)와 소용되는 기구를 의미한다." 하였습니다.

○김화응씨(金華應氏)는 말하기를, "관(棺)에 부치는 것이란
그 무덤의 자리·봉분(封墳) 등을 가려서 정하는 일과, 흙을 돋우고 나무를 심는 일같은 것이요,
다만 명기(明器)로 쓰이는 기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천자(天子)는 7일만에 빈하고, 7개월만에 장례를 치룹니다.
제후(諸侯)는 5일만에 빈하고, 5개월만에 장례를 치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대부(大夫)의 예법을 말한 것입니다. 천자와 제후의 예법은 이것을 미루어 가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그 묘자리를 정한다 하는 것은
그 묘자리의 지세가 좋은가 나쁜가를 가려서 정하는 것인데, 만일 지세가 좋으면 신령(神靈)이 편안해서, 그 자손이 번성하게 될 것이다.
지세가 좋다고 하는 것은 흙의 빛깔이 윤택이 나고 초목이 무성한 것이 바로 그 징험(徵險)인 것이다.
그런데 <지세에> 구애받는 자는 지세의 방위를 가리거나 길흉에 따라 날을 결정하기도 하는데 심한 자는 조상을 받들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오히려 자손의 이익을 위해 염려하니, 더욱 편안하게 모시려는 효자로서의 마음 씀이 아니다.
오직 염려되는 다섯 가지를 삼가지 아니할 수가 없는데, 다른 뒷날 도로가 될 자리가 아닌가,
성곽(城郭)터가 될 자리가 아닌가, 도랑이나 연못이 되지 아니할까, 지위 높고 세도 있는 자에게 빼앗길 자리가 아닌가,
농지로서 갈 땅이 되지 않을까 등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지세가 좋다는 것은 오직 바람을 막을 수 있고, 양지바른 쪽이며,
흙이 두터워서 물이 <땅 속>깊이 있는 것 등이며, 방위(方位)·수파(水破) 등의 풍수설(風水說)에 관계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묘자리를 가리려는 자는 지세의 길흉을 보는 지서(地書)만을 편벽되게 믿고는, 널리 그것을 찾아다니다가
채 <묘자리를> 정하지 못하여 오랫동안 그 부모를 장례지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 의혹이 심합니다.
나라 임금의 현궁(玄宮) 같은데 있어서도 반드시 새로운 곳을 가려서 정하는 것은
역대(歷代) 임금의 수(數)가 오래 이어가면 기전(畿甸) 안의 땅은 앞으로 다 산림과 새 짐승의 소굴이 될 것이니, 더욱 계승할 만한 도리가 아닙니다.
중국에서는 역대 임금의 의관(衣冠)을 묻기 위하여 산 하나를 선정하여 그것을 무궁토록 전승(傳承)하게, 하는데
이것은 가히 본받을 만한 일입니다.

처음 돌아가면〔死〕 근심하여〔充充〕 궁한 것같이 하고,
이미 빈(殯)하면 놀라서 침착하지 못하여〔瞿瞿〕 구(求)하여 찾는 것을 얻지 못한 것같이 하며,
이미 장사를 지내고 나면 허둥지둥〔皇皇〕하여 마치 바라보고도 이르지 못하는 것같이 한다.
연복(練服:소상을 지나고 나서부터 담제 전에 입는 상복)을 갈아입고 나서는 세월의 빠른 것을 탄식하고,
대상(大祥)을 마치고 나서는 속이 텅 빈 것 같이 허전해한다.

소(疏)에 말하기를, "일이 다하고 그 이치가 다해진 것을 궁(窮)이라 한다.
부모가 처음 사망했을 적에 효자는 땅에 포복(匍匐)하여 통곡하고 마음은 답답하고 형용은 엉거주춤하여,
마치 길을 급히 가다가 막히여서 극에 이르러 다시 더 갈 바가 없는 것과 같이 한다.
궁(窮)은 급하다는 것을 형용한 것이다.
구구(瞿瞿)란 눈으로 빨리 돌아보는 모양을 말하는데, 마치 잃은 물건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황황(皇皇)이란 허둥지둥이란 말과 같은 것인데, 부모가 초토(草土)로 돌아가셨으니 효자의 심정이 의탁할 곳이 없어서,
마치 <누가> 돌아오기를 바라는데도 이르지 아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소상(小祥)에 이르면 다만 세월이 빨리가는 것을 슬피 탄식할 뿐이며,
대상(大祥)에 이르면 곧 정의가 쓸쓸하고 텅 빈 것같이 허전하여 즐겁지 아니할 따름이다." 하였습니다.

자로(子路)는 말하기를, "내가 선생〔夫子〕에게 들으니,
상례(喪禮)에는 그 슬픔이 부족하고 예가 넉넉한 것보다는, 오히려 예가 부족하되 슬픔이 여유가 있어야 하며,
제례(祭禮)에는 그 공경하는 것이 부족하고 예가 넉넉한 것보다는 오히려 예가 부족하되 공경하는 것이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그 예를 알면서도 재물이 없으면
곧 예가 부족할 수 있겠지마는 슬퍼하는 것이나 공경하는 심정은 곧 스스로 다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제사(祭祀) 지내는 도리에 대한 말씀

신이 살피건대, 제사는 먼저 정성스럽고 공경스러운 것을 주로 하며, 번거롭게 여러 번 자주 지내는 것을 예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周)나라의 제도에 천자(天子)의 종묘에 제사 지내는 일은 월제(月祭)(한 달에 한 번만 제사 지냅니다.)에 그치었고,
부열(傅說)은 번거롭게 자주 지내는 것은 제사를 모독하는 것이며, 정성을 드리는 일이 아니라고 고종(高宗)에게 경계하였습니다.
후세에 원묘(原廟)를 다시 설치하는 것은 이미 예의(禮意)에 벗어나게 되었고, 향사(享祀)의 번거로움은 날마다 제사를 지내게까지 되어,
제사를 맡아 보는 유사(有司)는 피로하고 싫증이 나서 정성드리고 공경하는 태도가 모두 결여되었으니,
가히 예가 번거롭고 어지럽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반드시 성왕(聖王)께서 깊이 효하는 도에 통달하시와 힘써 고례(古禮)를 회복하셔야만 제사 지내는 법도를 바로잡을 수사 있을 것입니다.

○ 제사는 자주 지내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인데, 자주 지내게 되면 번거롭게 되고 번거롭게 되면 곧 공경하지 아니하게 된다.
또한 가끔 지내려고 하지도 말아야 할 것인데, 가끔 지내게 되면 게으르게 되고 게으르게 되면 곧 잊어버리게 된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천도(天道)에 맞추어, 봄에는 체()(약()자로 해야 합니다.)를 지내고 가을에는 상(嘗)을 지낸다.
가을에 내린 서리와 이슬을 군자가 밟는다면, 반드시 구슬픈〔悽愴〕 심정이 있는 것이니, 이는 차가와서가 아닌 것이며,
봄에 촉촉히 적시는 비나 이슬을 군자가 밟으면 반드시 슬픈〔〕 심정이 생기는 것이니,
마치 <부모>가 나타나서 볼 것같은 것이다. (「예기」 하동)

보씨(輔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그 부모를 종신토록 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계절이 바뀌고 보이는 것이 달라지면, 곧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치제(致齊)를 안에서 하고 산제(散齊)를 밖에서 하되 제계하는 날, 부모의 거처하시던 곳을 생각하고,
웃으면서 이야기 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뜻하신 것을 생각하고, 그 좋아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그 즐겨 잡수시던 것을 생각하여, 3일을 제계하면 부모를 보는 것 같은 것이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치제를 안에서 한다는 것은, 마음 속에 구차 스러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며,
산제를 밖에서 한다 하는 것은 술을 마시지 아니하고 매운 채소를 먹지 않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소(疏)에 말하기를, "먼저 그 간략한 것부터 생각할 수 있어야 점차 그 세밀한 것에 좋아하시고 즐겨하시던 일을 생각한다." 하였습니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다섯 기(其)자와 그 아랫글에 소위(所爲)라는 것은 모두 부모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비릉모용씨(毗陵慕容氏)는 말하기를, "마음의 직분(職分)은 생각하는 것인데, 생각이 지극하면 곧 통달되지 않는 것이 없다.
대저 그 마음을 둘로 하지 아니하고서 그 제사 지내는 데에 온 마음을 다하므로 형체가 없는 가운데에서도 보면 보이는 바가 있으며,
소리 나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들으면 들리는 바가 있는 것이니, 모두가 생각으로 도달한 것이다.
부모가 거처하시고, 웃으시며 말씀하시고, 뜻하시며 좋아하시고, 즐겨하시는 것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시기 때문에,
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닌데, 그 어찌 형체가 서로 접촉될 수 있겠는가.
생가의 지극한 바에 족히 거기와 통하는 것이다.
'3일 동안 제계하면 부모를 보는 것 같은 것이다.'한 말은 생각이 지극하면 마치 그 계신을 보는 것 같은 것을 말한 것이니,
은미한 것이 나타나고 정성을 가릴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 하였습니다.

제삿날 방에 들어서면, 그 자리에 모신 분의 모습이 어렴풋이〔然〕 보이는 듯하고, 두루 돌아 방문을 나서면,
숙연(肅然)히 그 몸짓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며, 그 사당 밖에 나아가 들어보면 개연(愾然)히 그 탄식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방에 들어간다는 것은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애연(然)하다는 것은 비슷하여 방불(彷佛)한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요, 숙연(肅然)하다는 것은 마음을 가다듬고 공경하는 모양을 가리킨다.
몸짓하는 소리라는 것은 곧 그 몸가짐과 움직이는 소리를 말한다."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선왕(先王)이 하던 효도는 곧 부모의 안색을 눈에서 잊지 아니하고, 그 음성을 귀에서 끊지 아니하며,
부모가 마음으로 그 뜻하시는 바와 즐기어 그 하고자 하시는 바를 내 마음 속에서 잊지 않는다.
사랑을 극진히 다하면 곧 계시게〔存〕 되고, 정성을 극진히 다하면 곧 나타나시게〔著〕 된다.
나타나시거나 계시게 되는 것을 내 마음에서 잊지 않는데, 그 어찌 공경하지 아니할 수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엄릉방씨(嚴陵方氏)는 말하기를, "그 안색을 눈에서 잊지 아니한다는 것은 항상 그를 직접 뵙고 모시는 것같이 하는 것이요,
그 음성이 귀에서 끊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은 항상 그 분부를 듣는 것같이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그 정성의 극치를 말한 것이다.
존(存)자는 위의 글에서 잊지 않는다는 세 가지를 말한 것이요,
저(著)자는 위의 글에서 그 자리에 계신 것을 보는 것 같다고 한 이하의 세 가지를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우리 황조(皇祖)께서 뜰에 오르내리던 그 모습을 생각하고,
오직 나〔小子〕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도록 삼가 멈추어 있을 곳에 멈춘다." 하였습니다. (주송(周頌) 민여소자편(閔予小子篇))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황조라는 것은 문왕(文王)을 말한 것이다.(이것은 성왕(成王) 때의 시입니다.)
<이는> 무왕(武王)의 효도를 말한 것인데, 문왕(文王)을 마음 속으로 생각하기를 항상 그가 뜰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뵙는 것같이 하였으니,
마치 이른바 '담장에서도 요(堯)를 보고 국〔羹〕에서도 요(堯)를 본다.' 한 말과 같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탕(湯) 임금의 손자 음악을 연주하여 조고(祖考) 앞에 이르시니
우리를 편안하게〔綏〕 하되 사모하여 나타난 이로 하도다." 하였습니다. (상송(商頌) 나편(那篇))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수(綏)는 편안히 한다는 것이다,
사모하여 나타난 이란 것은 정씨(鄭氏)는 말하기를, '나를 편안하게 하되 사모하여 나타난 이로 한다는 것이니
신면(神明)이 나의 마음 속으로 내려와 다다르는 것을 말한다.'하였다.
대개 재계하여 그를 사모하고 제사를 지내어 마치 그를 보고 들을 수 있는 것같이 한다면
이는 곧 그 사람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효로써 수신(守身)하는 데 대한 말씀

○공자(孔子)는 말하기를, "부모는 오직 그 <자식이> 병에 걸릴까 염려한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부모는 그 자식을 사랑하는 심정이 지극하지 않은 일이 없겠으나,
특히 자식이 질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일상 그것 때문에 근심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자식된 자가 이같은 부모의 심정으로써 마음을 쓴다고 할 것 같으면,
무릇 그 몸을 간직하는 바를 스스로 삼가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니, 어찌 효도가 되지 않겠는가." 하였습니다.

부모를 섬기는 자는 웃자리에 있을 때에는 교만하지 아니하고, 아랫사람이 되었을 때에는 소란(騷亂)을 피우지 아니하며,
같은 무리〔醜〕 속에 있을 때에는 다투지 아니한다.
웃자리에 있으면서도 교만하다면 망신하게 되고, 아랫사람이 되어 소란을 피운다면 곧 형벌을 받게 될 것이며,
같은 무리 속에서 다툰다면 곧 살상〔兵〕하게 될 것이니,
이 세 가지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비록 날마다 삼생(三牲)으로써 봉양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불효가 되는 것이다. (효경(孝經))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추(醜)는 같은 무리를 의미하고, 병(兵)은 칼을 가지고 서로 찌르고 치는 것을 뜻한다.
삼생(三牲)이란 소·양·돼지 등을 가리킨다.
이 세 가지의 좋지 못한 일을 제거하지 아니하면, 그 재앙이 장차 부모에게 미칠 것이므로 큰 불효가 될 것이다.
따라서, 입이나 몸에만 맞도록 봉양하는 것으로써, 어찌 그 큰 죄를 족히 씻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증자(曾子)는 말하기를, "신체는 부모가 물려주신 몸〔體〕이다.
부모가 물려주신 그 몸으로써 받들어 행하되 감히 공경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거처가 단정하지 아니한 것도 효도가 아니고, 임금을 섬기는데 충성스럽지 못한 것도 효도가 아니며,
벼슬 자리에 임하여 엄숙하지 못한 것도 효도가 아니고, 친구 사이에 신의가 없는 것도 효도가 아니며,
전쟁터에 나아가서 용기가 없는 것도 효도가 아니다.
이 다섯 가지를 수행하지 아니하면, 재앙이 그 부모에게 미치게 되는 것인데, 어찌 감히 공경하지 아니하겠는가." 하였습니다. (「예기」 하동)

오씨(吳氏)는 말하기를, "행(行)한다는 것은 받드는 것과 같다.
혹은 '부모가 물려 주신 몸으로써 받들되 전쟁터에 나아가 용기가 없는 것이 효도가 아니다.'고 한 것이 무엇인가를 의심하기도 하나,
대개 제 몸을 죽여서 인(仁)을 이룩한다면, 효도는 곧 그 속에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수목은 그 시기를 가려서 벌목해야 하고, 새나 짐승도 그 시기를 가려서 도살해야 한다.
공자(孔子)는 말하기를, "나무 하나를 자르고 짐승 한 마리를 죽이는 데도, 그 시기를 가리지 아니한다면 이는 효도가 아니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그 부모를 섬김으로써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함으로써 만물(萬物)을 사랑한다." 하였습니다.

증자가 병환으로 <이불 밑에서> 그 문하에 있는 제자들을 불러서 말하기를,
"나의 발을 헤쳐〔啓〕 보라. 내 손을 헤쳐 보라. 「시경」에 이르기를, '매우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마치 깊은 물가에 서 있는 것같이 하고, 엷은 살얼음을 밟는 것같이 한다.' 하였는데,
이제야 내가 그런데서 벗어나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제자들아."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계(啓)는 해친다는 것이다.
증자는 평소(平素)에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감히 다치거나 상하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던 까닭에,
이처럼 이불을 헤쳐서 신체를 완전하게 보존했다는 것을 문하 사람들에게 보이고,
그 신체를 보존하는 것이 어려우니 죽어야만 비로소 그 다치고 상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신체도 오히려 다칠 수가 없는 것인데, 하물며 그 행실이 어긋나서 부모를 욕되게 할 수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악정자춘(樂正子春)110)은 말하기를, "하늘이 낳아서 땅이 기르는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람이다.
부모가 온전하게 낳아 주신 것을 자식이 온전하게 돌려 준다면 가히 효도라고 할 수 있다.
그 몸을 다치지 아니하고 그 자신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면, 가히 온전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군자는 반걸음을 내딛을 때에도 감히 효도를 잊지 아니하고, 한 발자국을 옮길 적에도 감히 부모를 잊지 아니한다.
이 때문에 길을 가되 좁은 지름길로 가지 아니하고 배를 타되 물에서 놀지 아니하여,
감히 부모가 물려주신 몸으로써 위태로운 행동을 하지 아니한다.
한번 말이 입 밖으로 나가더라도 감히 부모를 잊지 아니하기 때문에 나쁜 말이 입에서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분한 말이 내몸에 돌아오지 아니한다.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수치스럽게 하지 아니하면, 가히 효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효도로써 천하에 미루는 것에 대한 말씀

○이윤(伊尹)은 말하기를, "사랑을 심는 것〔立〕은 오직 부모이고, 공경을 심는 것은 오직 웃어른이다.
처음에 집안과 나라로부터 시작해서 온 천하의 사해(四海)에 미친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이훈(伊訓)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을 훈계한 말.)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입(立)자는 심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사랑하고 공경하면 저기에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이 드러난다.
나의 부모를 섬기어 남의 부모에게도 미치고, 나의 웃어른을 공경하여 남의 웃어른에게도 미치나니,
집안에서 시작하여 나라에 통달하고, 끝내는 그것을 온 천하에 베푸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孔子)는 말하기를, "사랑하는 것을 부모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백성에게 화목(和睦)을 가르친다는 것이요, 공경하는 것을 웃어른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백성에게 순리(順理)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자애와 화목으로써 가르치면 곧 백성들은 부모를 모시기를 좋아할 것이요,
어른을 공경함으로써 가르치면 곧 백성들은 명령을 받들기를 좋아할 것이다.
효도로 부모를 섬기고 순리로 명령을 받든다면, 그것이 천하에 베풀어져서 행하여지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증자는 말하기를, "돌아간 이를 신중하게 모시고 먼 조상을 추모할 것 같으면 백성의 덕이 후하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돌아간 이를 신중하게 모신다는 것은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극진히 지내는 것이요,
먼 조상을 추모한다는 것은 조상의 제사를 정성을 다해 극진히 지내는 것이다.
돌아간 분은 소홀히 여기기가 쉬운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잘 추모해야만 후하게 하는 도(道)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스스로 행하면 곧 자기의 덕이 두터워지고,
아래로 백성들이 감화하면 곧 그의 덕도 또한 두터운 데로 돌아갈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한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홀아비와 과부도 감히 업신여기지 않는데, 하물며 사민(士民)에게 그렇게 하겠는가.
그러므로 백성의 환심을 얻어 돌아가신 임금을 섬기는 것이다.
한 집안을 다스리는 자는 그 하인에 대해서도 감히 실수를 하지 아니하는 것인데, 하물며 처와 자식에게야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의 환심을 얻어서 그 부모를 섬기는 것이다.
대개 그 때문에 부모가 살아 계신다면 편안하게 해 드리고,
제사를 지내면 귀신이 흠향하여 재해가 나지 아니하고, 화란이 일어나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효경」 하동)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사람이 화목하면 곧 하늘과 땅도 역시 화목해진다.
처음에는 부모를 사랑하는 심정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고, 마지막에는 남을 사랑하여 복을 받아서 부모에게 미치게 하는 것인데,
이른바 효도로써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이다.
후세의 임금은 그 백성에게 포학하게 하기 때문에, 원수를 맺거나 재화(災禍)를 쌓아서 그 부모를 위태롭게 하고, 다시 종묘에까지 미치게 한다.
그리고서야 성인의 말씀이 진실로 백세(百世)의 밝은 귀감(龜鑑)인 것을 알게 된다." 하였습니다.

옛날의 밝은 임금은 아버지 섬기기를 효도로써 하였기 때문에, 하늘을 밝게 섬기었고,
어머니 섬기기를 효도로써 하였기 때문에 땅을 살려서 섬기었으며, 어른과 어린이가 순위를 지켰기 때문에 아래위의 질서가 다스려졌다.
하늘과 땅이 밝아지고 살펴지면 신명(神明)이 나타나는 것이다.
종묘에 공경을 다하는 것은 부모를 잊지 아니한다는 것이요, 몸을 닦는 데 행동을 신중하게 한다는 것은 그 조상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종묘에 공경을 다하면 귀신이 나타나는 것이다. 효도하고 존경하는 것이 지극하면 신명에 통달하며 광영이 사해(四海)에 비치어 통하지 않는 데가 없다.

진씨(眞氏)가 말하기를, '하늘과 땅은 사람의 부모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효도로써 섬기면 곧 하늘을 섬기는 이치가 밝아지고,
어머니를 효도로써 섬기면 땅을 섬기는 이치가 살펴진다.
밝히고 살핀다고 한 것은 밝고 뚜렷이 드러나서 마음에 깊이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를 섬기는 일이나 하늘과 땅을 섬기는 일이 어찌 두 길〔道〕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맹자(孟子)는, '그 마음을 잡고 성품을 기르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길이다.'하였다.
효도와 공경은 한가지 마음이기 때문에, 효도가 이미 지극하면 곧 공경도 역시 지극할 것이요,
하늘과 사람은 한가지 이치이기 때문에, 신명(神明)에 통달하면 곧 또한 온 천하에 빛나는 것이다.
이것은 효도와 공경의 지극한 공을 미루어서 말한 것이므로, 임금된 이는 마땅히 깊이 체득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신이 살피건대, 사람의 자식된 이는 부모가 낳아 주신 것이기 때문에, 피와 살과 성명(性命)도 모두 다 부모가 물려주신 것입니다.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은혜는 넓은 하늘도 이보다는 지극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들도 그 부모를 사랑할 줄 아는 것은 천성(天性)이 그러한 까닭입니다.
다만 물욕에 가려서 그 본심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에 부모가 물려 주신 몸을 자기의 소유인 것으로 알고는,
부자간에도 바로 남같이 분별하여 낳으시고 기르신 수고를 생각하지 아니하며, 다만 일시적인 은혜가 적은 것만 원망합니다.
그러므로 효도와 사랑의 뿌리는 심어지지 아니하고, 자기의 사사로운 싹이 쉽게 자라서 흔히 자기를 먼저 내세우고
부모를 뒤로 물려 놓는 자가 많이 있습니다.

이 몸은 부모가 낳은 것이니 부모가 아니었다면 곧 이 몸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몸은 나의 소유가 아니고 바로 부모의 소유인 것입니다.
물건을 주어도 역시 감사할 줄 알 것인데, 하물며 몸을 물려 주신 이에게이겠습니까.
힘을 다하고 목숨이 그치도록 다하여도 족히 은혜를 보답할 수 없는 것이니, 사람의 자식된 자로서 능히 이 이치를 알 수 있다면,
곧 생각이 사랑하고 공경하는 도(道)에 그 반이 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효도하는 데 있어서 혹시 사랑할 줄은 알면서도 능히 공경할 줄을 모르고,
혹시 사랑하고 공경할 줄은 알면서도 능히 그 도(道)를 극진히 다할 줄을 모르기도 합니다.
필경에는 사랑은 그 인(仁)을 완전하게 하는 데 이르게 되고, 공경은 그 의(義)를 완전하게 하는 데 이르게 되어야만
가히 낳아 주신 바를 욕되게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 사람의 성명(性命)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며, 그 성명 가운데 모든 이치가 다 구비되어 있는 것인데,
한 가지 이치라도 밝혀지지 아니했거나 실천되지 못했다면 내가 부모에게 받은 바의 본체(本體)에 결함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본 모습을 부족한 것 없이 실천하여야만 본체(本體)가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성인처럼 인도(人道)를 지극히 다하지 않고서는 족히 효도를 다하였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사람이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 몸가짐을 근신하지 않게 되고 왕왕 더러운 지경으로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마음으로 항상 부모를 생각하고 있다면 한 번쯤 잘못되는 일만 있어도 송연(悚然)히 놀라고 두려워하되,
마치 부모를 훼상하는 일이 있는 것같이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곧 부모가 물려 주신 몸이 항상 청명정대(淸明正大)한 경지에 서서 우러러,
운행하는 질서의 법도를 본받아 족히 하늘을 섬길 수 있고,
굽어보고는 두터운 덕을 본받아 족히 땅을 섬길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을 미루어 온 천하 사해(四海)에 통달하게 한다면 준칙이 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준(準)은 사람이 이것을 가지고 준칙(準則)으로 삼는 것입니다.)
사람의 자식으로 어찌 마음이 통쾌하지 아니하겠습니까.
또 제왕의 효도는 필부의 그것과 차이가 있는 것이며, 조상의 유업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더욱 정성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낱 필부가 자손에게 십금(十金)의 재간을 물려 주더라도, 그 자손은 오히려 잘 간직하려고 하는 것인데,
하물며 백 년의 사직(社稷)과 천 리의 봉강(封疆)을 들어서 물려 주신 것에 있어서이겠습니까.
만일 털끝만치라도 스스로 한가해 하고 스스로 편안해 하는 생각이 있다면,
곧 효도하는 생각에 결함이 되고 선왕의 사업이 훼손되는 것인데, 하물며 감히 방자하게 방탕하여 종묘를 위태롭게 하거나,
선군(先君)을 욕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한 나라의 임금은 흔히 그 모후(母后)를 섬기는데 있어서도, 궁중에 예의가 엄격하여 정의(情意)가 가로막혔기 때문에,
일반 사람의 모자가 아침 저녁으로 유쾌하고 유순하게 지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환시(宦侍)나 부녀자들이 거짓된 충성으로 참소와 이간질을 쉽게하여,
명철한 임금의 효행을 손상시키고 현철한 모후(母后)의 자애로운 심정을 감손시키므로,
만일 효도와 공경이 본래 신실하여 신명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참소하는 말도 역시 우려할 만한 것입니다.
이것은 고금으로 궁중의 공통된 우환이오니, 삼가 전하께서는 깊이 살피시기 바랍니다.

 

< 주 >

105) 춘추(春秋)시대 노(魯)나라 대부(大夫) 중손하기 (仲孫何忌). 맹손씨(孟孫氏)라고도 한다.

106) 중국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 공자의 제자 이름은 수(須). 자는 자지(子遲). 노나라 계씨(季氏)에게 벼슬하였다.

107) 중국 송(宋)나라 남검(南劍) 사람. 이름은 종언(從彦) 양귀산(楊龜山)의 제자로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있었다.

108) 중국 송(宋)나라 대 사람. 이름은 관(瓘). 요옹(了翁)은 그의 호임. 저서로 요옹역설(了翁易說), 존요집(尊堯集) 등이 있다.

109) 장사지낼 때 무덤 속에 시체와 함께 묻는 식기(食器), 악기(樂器), 즙기(汁器), 무기(武器) 등 여러 가지 기물(器物).

110) 중국 춘추(春秋)시대 노(魯)나라 사람. 증자(曾子)의 제자(弟子)로 부모에 대한 효성이 두터웠다.

 


제3장. 형 내(刑內)

 

신이 살피건대, 집을 다스리는 데는 먼저 아내를 바르게 하여야 합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내를 바르게 하여 형제<간에> 이르고 그리하여 집과 나라를 다스린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효경장(孝敬章) 뒤에 형내(刑內)장을 두었습니다.

 

◆ 다음은 선(善)이 본보기가 될 만한 것에 대한 말씀

「역경」에 이르기를, "집안 사람의 도(道)는 여자의 바름〔貞〕을 이로운 것으로 한다." 하였습니다. (가인괘(家人卦) 단사(彖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집안 사람의 도로서는 여자가 발라야 이로운 것이 있다.
여자가 올바르게 되면 곧 가도(家道)가 발라진다.
다만 여자의 정절만을 말한 것은 여자가 올바르게 되면, 곧 남자도 바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먼저 아내를 바르게 해야 하는 것이다.
아내가 올바르게 되면 곧 남편도 바르게 되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여자는 안에서 그 위치를 바르게 하여야 하고, 남자는 밖에서 그 위치를 바르게 하여야 한다.
남녀가 바른 것은 천지의 대의(大義)이다. (가인괘 단전(彖傳))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존비(尊卑)와 내외(內外)의 도(道)가 바르게 되어야 비로소 천지 음양의 대의에 합치한다." 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꾸룩꾸룩(關關) 저구새(雎鳩)는 강가에서 속삭이고,
요조(窈窕)한 숙녀(淑女)는 군자의 좋은 짝〔逑〕이라." 하였습니다. (주남(周南)의 관저(關雎)편)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꾸룩꾸룩〔關關〕이라는 것은 암컷과 수컷이 상응해서 화답하는 소리이다.
저구(雎鳩)는 물새로서 그 모양이 오리나 갈매기와 비슷한데, 지금 양자강과 회수(淮水) 사이에 <깃들고> 있다.
정한 짝이 있어서 서로 그 짝 사이를 문란하게 하지 아니하고,
항상 나란히 헤엄치고 놀면서도 서로 너무 가까이 달라 붙지는 않는데 대개 그 성질이 그러한 것이다.
요조(窈窕)라는 것은 얌전하고 정숙하다는 뜻이요, 군자는 문왕(文王)을 가리킨 것이다.
구(逑)는 짝이란 말이다.
문왕(文王)은 나면서부터 성덕(聖德)이 있었으며, 또 성녀(聖女) 사씨(氏)를 얻어 배필로 삼았는데,
궁중 안의 사람들이 그녀가 처음 이르렀을 적에 그 얌전하고 정숙한 덕을 보았기 때문에, 이 시를 지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광형(匡衡)은 말하기를, "배필은 사람을 낳는 시초가 되고 만복의 근원이 된다.
그러므로 혼인의 예가 바르게 되어야만 만물이 이루어져서 천명을 다하게 된다.
공자(孔子)가 「시경」을 논하면서 관저(關雎)장을 그 맨처음으로 삼은 것은 태상(太上)(임금을 말한 것입니다.)은 백성의 부모인 까닭으로,
왕과 부인의 행위가 천지와 짝하지 않으면 곧 신령의 계통을 받들어 만물의 정당한 것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경」에, '정숙하고 아름다운 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다.'고 한 것은
능히 그 정숙한 것을 다하고 그 지조를 변치 아니하여, 위의를 갖추어 욕정을 느끼는 감정이 없고
사사롭게 즐기려는 의도가 그 거동에 드러나지 아니한 것을 말한 것이다.
대개 그렇게 하여야만 가히 지존(至尊)의 짝이 될 수가 있고, 종묘를 받드는 주인이 될 수 있다.
이것은 기강(紀綱)의 으뜸이며 임금이 교화(敎化)를 이룩하는 실마리이다.
상고 시대 이래로 삼대의 흥망〔興廢〕이 이것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송(宋)나라 범조우(范祖禹)111)가 선인왕후(宣仁皇后)112)에게 아뢰기를,
"황제가 황후를 맞아들이는 일은 국가의 대사(大事)이며 만세의 근본입니다.
이는 나라의 복록이 걸려 있고 백성의 덕화에 앞서는 것입니다.
지금 마땅히 먼저 알아야 될 일이 네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문벌〔族姓〕이요, 둘째는 여자의 덕행이며, 세째는 예를 융숭하게 하는 것이요, 넷째는 널리 의논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문벌이라는 것은 옛날의 제왕은 혼인할 적에 반드시 옛성인의 자손이거나, 공이 있고 어진 이의 후예로써 하였고,
비천한 자로서 위로 임금과 짝을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 복록이 성대하고 자손이 번창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문벌은 귀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른바 여자의 부덕〔女德〕이란 것은 삼대가 일어날 적에는 모두 현숙한 후비(后妃)가 있었고,
망할 적에는 모두 요녀〔嬖女〕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夏)나라가 일어나게 된 것은 도산(塗山)113) 때문이요, 그것이 망하게 된 것은, 말희(喜)114) 때문입니다.
은(殷)나라 상탕(商湯)이 일어나게 된 것은 유융(有)115) 때문이요, 망하게 된 것은 달기(己)116) 때문입니다.
주(周)나라가 일어나게 된 것은 강원(姜嫄)117) 때문이요, 망하게 된 것은 포사(褒)118)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두 성현들이 기록한 시(詩)와 서(書)에 실려서 후세에까지 오래도록 거울로 삼는 것입니다.
정숙하고 착한 숙녀를 간택하여온 천하의 어머니에게 본보기로 삼아서 육궁(六宮)119)을 바르게 하는 것인데,
덕이 없이 누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안방 깊숙이 있는 규수(閨秀)의 덕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문벌을 보고 조(祖)·부(父)를 보며, 그 가풍을 살피어 여러 가지로 참작해 보면 역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예를 융숭히 한다〔隆禮〕는 것은
천자는 그 후비(后妃)와의 관계가 마치 하늘이 땅에 있어서와 해가 달에 있어서와 양(陽)이 음(陰)에 있어서
서로 기다린 뒤에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애공(哀公)이 묻기를, '면례복(冕禮服)을 입고 그 신 이하는 친영례(親迎禮)는 너무 과중하지 아니한가요.' 하자,
공자(孔子)는 슬픈 기색을 지으면서 대답하기를, '두 성(姓)이 아름답게 결합하여 선왕의 뒤를 계승하여
천지·종묘·사직의 주인이 되는 것이니 임금께서는 어찌 너무 과중하다고 하십니까.'" 하였으니,
공자는 대개 그 말은 대단히 그르다고 한 것입니다.
예를 살피건대, 관례와 혼례에는 오직 사대부의 예만 있고, 천자와 제후의 예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삼대(三代) 이래로 오직 사대부의 예에 미루어 그것을 높여서 천자나 제후의 예로 삼았습니다.
그것은 대개 사람의 부부관계는 천자(天子)로부터 사대부에 이르기까지 다 같기 때문입니다.
천하에 어찌 홀로 존귀하여 배우(配偶) 없는 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는 융숭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른바 널리 의논한다〔搏議〕는 것은 옛날의 천자는, 그 후비(后妃)를 맞이할 때에 상공(上公)이 그를 맞이하였고,
제후가 그것을 주관해 모셨으니, 나라에 대사가 있으면 대신들이 미리 알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의견을 아뢰는 이는 반드시 '이것은 폐하(陛下)의 가정일이므로, 바깥 사람이 참여하여 알 바가 아닙니다.' 고 하지마는,
예로부터 흔히 임금을 그르친 것은 바로이런 말 때문이었습니다.
천자는 온천하 사해(四海)를 집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안팎의 일은 어느 것이나 집안일이 아닌 것이 없으며,
대신들이 그것을 미리 알아서는 안 될 이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임금이, 한 사람의 정승을 임용하거나 한 사람의 근신(近臣)을 진급시키는 데도,
반드시 천하 여망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인데, 하물며 황후를 세워 그를 천하의 어머니로 삼으려고 하는데 있어서이겠습니까.
이제 폐하가 선택한 바를 성씨를 들어서 대신들에게 널리 묻는 것만 같은 것이 없으니,
만일 임금의 뜻이 이미 정해졌고, 여럿의 의견이 모두 같다고 한다면 점을 쳐도 합당하게 될 것이고,
귀신도 일치하여 하늘과 사람의 생각이 같이 않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또 이르기를, "닭이 울었어요. 조정에는 신하들이 차 있어요.
닭의 울음이 아니라 청파리의 우는 소리였다오." 하였습니다.(제풍(齊風) 계명편(鳴篇))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옛날의 왕비는 처소에서 임금을 모실 때에 날이 밝을 무렵에는 반드시 임금에게 고하기를, '닭이 이미 울었습니다.
조정에 조회하러 모인 신하들이 이미 가득 차 있습니다.' 하여, 그 임금이빨리 일어나 조회에 나가 보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실은 닭이 울었던 것이 아니었고 바로 청파리가 우는 소리였다.
대개 현숙한 왕비는 새벽에 일찍 일어날 무렵이 되면 언제나 늦을까 염려하여, 그 비슷한 소리만 들어도 그것이 정말 <닭우는 소리>인가 여기었다.
이는 그 마음이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데 있는 것이며, <만약> 편안한 욕망에 머문 것이라면 어찌 능히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시인이 그 사실을 서술해서 찬미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주(周)나라 선왕(宣王)120)의 비(妃) 강후(姜后)는 현숙하고 덕이 있어서, 일이 예가 아니라면 말하지 아니하였고,
행실이 예가 아니라면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선왕(宣王)이 일찍이 저녁에 빨리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났었기 때문에,
강후(姜后)가 이에 비녀와 귀고리를 벗어 버리고 영항(永巷: 궁녀를 가두는 일종의 유치장)에서 대죄(待罪)하면서,
유모를 시켜 왕에게 아뢰기를, "첩이 재덕이 없어서 첩의 음탕한 마음이 드러났습니다.
군왕으로 하여금 예를 잃게 하여 조회에 늦게 하였으니, 군왕이 색(色)을 즐겨서 덕을 잃게 된 것을 드러내었습니다.
대개 색을 즐겨 하면 반드시 사치를 좋아하게 될 것이고, 사치를 좋아하면 반드시 향락을 다하게 될 것이며,
향락을 다하면 반드시 어지러움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어지러움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만든 것은 첩이오니, 감히 첩에게 죄를 주시기를 청합니다." 하였더니,
왕이 이르기를, "과인(寡人)이 덕이 없어서 스스로 지은 허물이요, 부인의 죄가 아니오." 하고는,
드디어 강후를 복위시키고, 정사(正事)에 힘을 써서 아침 일찍 조정에 나가고 저녁 늦게 물러나와,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업적을 이어받아 주(周)나라 왕실의 왕업을 부흥시켰습니다.

○ 당(唐)나라 태종(太宗)121)의 문덕(文德)황후 장손(長孫)122)씨가 그림으로 풀이된 전기(傳記)를 즐기어,
예로부터 지금까지에 이르는 선한 일, 악한 일들을 보고서 스스로의 거울로 삼아서, 엄숙히 예법을 받들고 효도로 고조(高祖)를 섬겼습니다.
성품이 검소하여 의복도 몸에 맞으면 그뿐이었습니다.
황제와 더불어 말할 때에 천하일에 언급하다가 사양해 말하기를,
"암탉이 울어 새벽 일을 맡게 되면 그 집안이 다 망한다고 하는 데도 좋겠습니까." 하고는,
황제가 굳이 요구해도 끝내 대답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후에 조정에서 죄를 지은 자가 있어서 황제가 노하여 포박하여 다스림에, 그 마음이 풀릴 때를 기다려서 천천히 사리를 펴서 설명하였고,
끝내 억울한 일이 없게 하였습니다.
친정 오빠인 무기(無忌)123)는 황제가 아직 자리에 오르기 전에 사귄 친구로서, <황제의> 천명을 도운 1등 공신이었기 때문에,
황제가 끌어서 정권을 맡기려고 하자, 황후는 굳이 불가하다고 하였으며, 몰래 <오빠에게도> 사양하게 하였으므로,
황제는 마지못하여 들어 주었더니, 황후의 기뻐하는 빛이 얼굴에 나타났습니다.
<황후>의 병환이 다급하여 태자(太子)가 대사(大赦)를 내릴 것과 도인(道人)을 불러 재앙을 막자고 청하려 하니
황후는 말하기를,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는 것이요, 인력으로 연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복을 닦아서 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내가 악한 일을 하지 아니하였고, 착한 일을 하였다 하지만, 효험이 없다면 무엇을 구하겠는가.
대사(大赦)는 나라의 중대한 일이요, 불교와 도교(道敎)124)는 이단의 교이기 때문에 다 위에서 할 바가 아닌데,
어찌 나 때문에 천하의 법도를 어지럽게 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황제에게 청하기를, "상께서는 충신을 용납하여 간하는 말을 받아들일 것이며,
모함하는 참소를 물리치시고, 사냥이나 부역(賦役)에 동원하는 것만 줄이신다면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후(后)는 일찍이 옛날 부인들의 일을 채집하여 여칙(女則) 10편을 저술하였는데, 그녀가 죽음에 미쳐서 궁사(宮司)가 그것을 아뢰자,
황제는 그것을 보고 통곡하였습니다.

또 이르기를, "반짝이는 저작은 별〔〕 드문드문〔三五〕동녘에 있네.
근엄히〔肅肅〕, 늦은 밤 이른 새벽 공(公)을 돌보니, 참으로 그 도리는 같지 않구나." 하였습니다. (소남召南 소성小星의 편)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혜()는 작은 모양의 형용이요, 삼오(三五)라는 것은 그 드문 것을 말한다.
대개 초저녁 저물 때나 혹 새벽 동이 트려는 때를 말한다.
숙숙(肅肅)은 근엄한 모습이다.
남국부인(南國夫人)들이 후비(后妃)의 감화를 받아서 (문왕:文王의 비妃 태사太의 감화를 말합니다.) 투기와 질투를 하지 아니하고,
그 아랫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그러므로 그 여러 첩들이 그를 찬미하는 것이 이와 같았다.
대개 궁중의 여러 첩들은 나아가 임금을 모시는 데 감히 온 밤을 지내지 못하고, 별을 보고는 가고 별을 보고는 돌아옴으로써,
그 주어진 분수가 존귀한 분과는 같지 않다는 사유를 말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임금을 모실 수가 있는 것은 부인의 깊은 은혜 때문이며, 감히 왕래하면서 힘쓰는 수고에 대해서 원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였습니다.

○ 한(漢)나라 현종(顯宗)125)의 명덕왕후(明德皇后) 마씨(馬氏)126)가,
나이 13세 때에 태자의 궁에 들어와 위로는 음황후(陰皇后)(광무후(光武后)입니다.)를 받들어 모시고,
옆으로 같은 지위를 대할 때에는 예절이 잘 갖추어졌으므로 아래 위가 다 편안하여졌습니다.
현종(顯宗)이 황제로 즉위하자 황후 다음에 가는 귀인(貴人)으로 삼았습니다.
그 때 후(后)의 전 어머니의 큰딸 가씨(賈氏)도 역시 뽑혀 들어와 숙종(肅宗)을 낳았는데,
황제는 왕후에게 자식이 없다 하여 그를 양육하게 하고 이르기를, "사람이 반드시 자기 자신이 자식을 낳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랑으로 기르는 것을 다하지 못할까 염려가 될 뿐이다." 하였습니다.
후는 이에 온 마음을 극진히 다하여 사랑으로 길러서 수고롭게 근심하는 것이 친자식에 대하는 것보다도 더 과하였습니다.
숙종의 효성스러운 성품은 순박하고 두터웠으며, 은혜로운 성품은 천생으로 지극해서 모자간의 사랑은 시종 작은 티끌만큼도 틈이 나지 아니하였습니다.
후(后)는 언제나 그 황사(皇嗣:황제의 후계자)가많지 않은 것을 탄식하고 근심하여,
좌우 사람을 추천하기를 마치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 같이 하였습니다.
후궁 가운데 가까이 보는 자가 있으면 매양 위로하고 받아들였으며, 만약 <황제의> 총애하는 바가 빈번하면 곧 융성하게 대우를 더하였습니다.
유사(有司)가 장추궁(長秋宮) (마황후(馬黃后(의 (宮名)입니다.)을 세울 것을 아뢰니,
황제가 아직 말한 바 있지 아니하여서, 황태후(皇太后)가 말하기를 '마귀인(馬貴人)의 덕이 후궁들 가운데서 으뜸이므로 바로 그 사람이 된다'고 하여,
마침내 세워서 황후가 되고 궁위(宮)의 위치를 바르게 하니, 더욱 스스로 겸손하고 조심하였습니다.

 

◆ 다음은 악(惡)이 경계가 될 만한 것에 대한 말씀

○ 「시경」 에 이르기를, "똑똑한〔哲〕남편은 성(城)을 이룩하고, 똑똑한 부인은 성을 기울어뜨린다.
아름답고〔懿〕똑똑한 부인이여, 올빼미가 되고 부엉이가 되도다.
부인의 수다스러움은 재해를 불러들이는 계제일진대,
어지러움은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라 부인이 스스로 만든 것이리라," 하였습니다. (대아(大雅)의 첨앙(瞻仰)편)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철(哲)은 안다는 말이요, 의(懿)는 아름답다는 말이다.
남자가 밖에서 올바른 위치를 취하면 그 나라의 주인이 되는고로, 지혜가 있으면 곧 능히 나라를 세울 수 있다.
부인은 그른 것도 없고 본받을 것도 없는 것을 선(善)이라 할 수 있고 똑똑한 것은 소용이 없다.
똑똑하면 곧 나라를 뒤엎을 따름이기 때문에 이 아름답고 똑똑한 부인은 도리어 올빼미나 부엉이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함으로써 능히 재앙과 변란의 계제를 가져오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와 같다면 어찌 변란이 정말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겠는가.
특히 이 부인으로 말미암아서 일어나는 것일 따름이다.
이것은 유왕((幽王)127)이 포사()를 총애한 까닭에 변란이 일어나게 되었던 일을 풍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포사는 어린 첩이 낳은 딸입니다.
유왕이 그를 총애(寵愛)하여 출입하는데 같이 <어가(御駕)를> 타고 나랏일을 보살피지 아니하였으며,
말을 몰아 사냥하기를 아무 때나 하여 포사의 뜻을 맞추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음란한 데 빠져서, 광대와 기녀들이 그 앞에서 춤과 노래를 밤낮으로 계속하였습니다.
포사가 웃지 않으므로 유왕은 그를 웃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하였으나 끝내 웃지를 아니하였습니다.
유왕이 일찍이 제후(諸侯)들과 더불어 약속하기를, 외적이 침입하여 봉화(烽火)를 올리면 그 군대가 달려 와서 구원하도록 하였는데,
아무 연고도 없이 봉화를 올려 보았습니다.
제후들은 모두 다 달려왔으나 외적은 없었습니다.
그 때 포사가 크게 웃었습니다. 이에 바로 신왕후((申王后)를 폐위하고 포사를 후로 삼았으며, 그를 기쁘게 하려고 번번히 봉화를 올렸습니다.
충심으로 간(諫)하는 자는 죽이고, 오직 포사의 말만을 들었기 때문에 위아래가 서로 아첨만을 일삼았으며, 백성들은 <나라를> 등지고 떨어져 갔습니다.
신후(申候)128)가 견융(犬戎)과 더불어 주(周)나라를 침략해 들어오니, 유왕이 봉화를 올렸으나 군사는 오지 아니하였습니다.
<적은> 마침내 여산(驪山) 아래에서 유왕을 시해(弑害)하고, 포사를 사로잡아 떠나가 버렸습니다.

○ 목강(繆姜)이라 하는 이는 노(魯)나라 선공(宣公)의 부인이며, 성공(成公)의 어머니입니다.
총명하고 슬기로왔으나 행실이 음란하여 숙손교여(叔孫喬如)와 간통하였습니다.
교여가 목강과 모의하여 계맹(季孟)129)을 제거하고, 노나라를 멋대로 천단(擅斷)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노나라 사람은 순종하지 아니하였고, 동맹하여 교여를 쫓고 목강은 동궁(東宮)으로 내쫓았는데,
처음 갈 때에 목강이 사람을 시켜 점을 쳐 보았더니, 간괘(艮卦)의 육(六)을 맞추었습니다.
점장이가 말하기를, "이는 간(艮)의 수괘(隨卦)를 말하므로 그 나아가는 것을 따르라 한 것이니,
그대는 반드시 빨리 나올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목강이 말하기를, "옳지 않다. 「주역」에 이르기를, '수(隨)는 원(元)·형(亨)하니 이(利)·정(貞)이라 허물이 없다.'고 하였는데,
원은 선한 일의 제일이요, 형은 아름다운 것이 합한 것이며, 이(利)는 옳은 일이 화한 것이요, 정은 일의 줄기이다.
이 때문에 비록 나온다 하여도 허물이 없는 것이지마는, 지금 나는 부녀자이면서 난(亂)에 참여하였고,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어질지 못하였으니 가히 원이라고 이를 수가 없으며, 나라를 편안하게 하지 못하였으니
가히 형이라고 이를 수가 없으며, 일을 일으켜서 몸을 해쳤으니 가히 이라고 이를 수도 없으며,
지위를 버리고 음란하였으니 가히 정이라고 이를 수가 없는 것이다.
네 가지 덕을 가진 자는 따른다 하더라도 허물이 없을 것이겠으나, 나는 모두 다 갖지를 못하였으니 어찌 따를 수 있겠는가.
나는 곧 악한 일만 취하였으니 어찌 허물이 없다 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이곳에서 죽을 것이고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하더니, 마침내 동궁에서 죽었습니다.

○ 남자(南子)는 송(宋)나라 여자로서 위(衛)나라 영공(靈公)의 부인입니다.
영공이 밤에 부인과 더불어 앉았는데, 수레 소리가 덜거덕거리다가 대궐 앞에 이르러 그치고,
대궐을 지나서 다시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공이 부인에게 묻기를,
"이것이 누구인 줄 알겠는가." 하자, 부인이 대답하기를, "이는 거백옥(伯玉)130)입니다." 하였습니다.
공이, "무엇으로 그것을 아느냐." 하자, 부인은, "제가 들으니,
예법에 대궐 문앞에서 내리고 노마(路馬: 임금이 타는 말)에게 경계하는 것은 공경을 넓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대개 충신과 효자는 신의와 절조를 드러내어서 하는 것이 아니며, 으슥하고 어두운 데서도 행할 일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는 것인데,
거백옥은 위 나라의 어진 대부(大夫)입니다.
그는 어질고도 슬기로와서 위를 섬기는데 공손하니, 이 사람은 반드시 어둡다고 예를 폐하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인줄로 앏니다." 하였습니다. 공(公)이 사람을 시켜 알아보았더니 과연 백옥이었습니다.
공이 돌아와서 부인을 놀리려고 일부러 "그 <사람이> 아니다." 하니, 부인이 술잔에 술을 부어 올리면서 두 번 절하고는 공을 축하하였습니다.
공은, "그대는 무엇 때문에 나〔寡人〕를 축하하느냐." 하자, 부인은 "처음 저는 위(衛)나라에 오직 거백옥 한 사람이 있는 줄만 알았는데,
지금 위(衛)나라에 다시 그와 더불어 짝 지을 만한 이가 있으니, 이는 곧 임금에게 신하가 둘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에 어진 신하가 많이 있다는 것은 곧 나라의 복입니다. 저는 이 때문에 축하한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 공이 놀래어 말하기를, "훌륭하다." 하고 드디어 그 사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공이 부인과 더불어 수레를 타고 가는데 공자(孔子)를 다음 수레에 타도록 하고는, 겉으로 뽐내면서 시가를 지나가므로,
공자는 그것을 추하게 여겨 말하기를, "나는 이제까지 덕(德)을 좋아하되 색(色)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하고는 물러나
송(宋)나라로 가버렸습니다.
그 뒤 남자(南子)는 음란한 행실을 하여 송나라의 공자(公子) 조(朝)와 간통하였습니다.
위나라 태자 괴외()가 그것을 알고 그를 미워하였는데, 남자는 영공에게 태자를 모함하기를, "태자가 나를 죽이려 합니다." 하니,
공이 크게 노하므로 괴외는 송나라로 도망쳤습니다.
영공이 죽자 괴외의 아들 첩(輒)이 대를 이어 즉위하였는데 이이가 곧 출공(出公)입니다.
괴외가 다시 들어오자 출공은 노나라로 달아나 버렸으며, 괴외가 임금이 되어 남자를 죽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이 시(詩)는 본래 포사()를 풍자한 것입니다.
여자로 인하여 일어나는 변란은 모두 엎어진 수레바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강과 남자의 일을 함께 같이 실었습니다.
옛날부터 요염한 아내는 한 사람뿐이 아닌데, 다만 두 여자만을 인용한 까닭은 무엇인가 하면,
대개 얼굴이 예쁜 것은 음란한 마음을 자극하지 마는, 재주가 없어 어둡고 용렬한 임금이나 미혹시킬 수 있을 뿐이고,
영특한 임금은 반드시 거기에 빠져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총명한 재주와 지혜가 족히 다른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는 이는 가장 두려운 사람인 것입니다.
저 목강과 남자 두 여자는 지(智)는 족히 선과 악을 가릴 수 있었고, 변(辨)은 족히 의리를 밝힐 수 있어서,
그 말을 들어보면 가히 태임(太任)과 태사(太)를 따를 수가 있었는데도, 그 행실을 살펴보면 포사()나 달기(己)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명철한 임금이라도 혹시 그 여색을 아끼고 그 재주를 기뻐하지 아니할 수 없어서,
차차로 마음이 혹하게 되고 덕을 잃게 되기 때문에 그것을 지적하여 경계하도록 한 것입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이구(李)131)가, '만일 관중(管仲)132)을 오래도록 궁중에 있도록 하였다면
다시 여섯 사람인들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그렇지 않다.
관중이 있을 때에는 환공(桓公)133)의 마음이 변하지 아니하였었다.
만일 이미 마음이 변해 버렸다면 비록 관중인들 어찌할 수 있었겠는가.
마음이 변하고서도 오히려 관중의 정치 의논을 채택하여 썼을 리는 만무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안으로 아름다운 여색〔美色〕을 즐기고 밖으로 어진 신하를 등용하는 것은,
서로 방해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충신이나 훌륭하게 보필한 이들이 급급하게 여색의 총애를 경계한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임금이 덕을 좋아하는 정성이 여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지못하면,
곧 임금 베개머리에서 교태를 부리거나 아양떠는 해독이 날로 스며들고 달고 스며들어 깊이 골수에까지 들어박히어서,
임금의 사욕을 막는 법도를 지키는 선비들의 말이 날마다 거슬리고 날마다 어긋나서 이것을 들어도 돌아다보지도 않게 될 것이옵고,
그러면 반드시 거기에 뜻을 잘 맞추고 악을 조장하는 신하는 틈을 엿보아 못된 심복이 되어,
귀여움을 받는 천한 여자를 근간〔根〕으로 삼아서, 안과 밖으로 얽혀서 정령(政令)이 뒤엎어지고,
멸망이 뒤따라서 위태롭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렴(飛廉)과 악래(惡來)134)는 달기를 근간으로 삼아서 은(殷)나라를 멸망시켰고,
임보(林甫)135)와 국충(國忠)136)이 태진(太眞)137)을 근간으로 삼아서 당(唐)나라를 어지럽혔으니,
정자의 <이> 말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살피건대, 이것을 형내(刑內)라 장(章)을 이름하였는데 다만 후비(后妃)의 선악만을 논한 것뿐이고,
형처(刑妻)의 도(道)를 말하지 아니한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대개 아내를 법도에 알맞게 대우하는 형처의 도리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자신의 몸을 닦는〔修己〕데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몸을 닦는 일이 이미 지극해지면 안으로 마음과 뜻이 하나로 되고, 밖으로 용모가 장중하여 언어와 동작이 모두 예의에 맞게 됩니다.
그리고 부부간에 서로 공경하기를 마치 손님을 대하듯 하거나, 이부자리에서 너무 가까이 희롱하는 실수가 없거나,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정숙한 용모를 가질 수 있다면, 역시 후비(后妃)가 보고 감화되어 변할 것입니다.
비록 학문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오히려 능히 스스로 삼가고 예의를 이행할 줄 알 수 있을 것인데,
하물며 타고난 성품이 순수하고 고와서, 본래부터 학문을 잘할 줄 아는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만일 먼저 몸을 닦지 아니하고 스스로 반성하여 본다면, 부끄러운 일이 많은데도 다만 후비(后妃)의 정대할 것만을 요구하며
예모를 갖추는 데 절박하고, 은밀한 때에는 욕정을 함부로 하여 예의를 잃어버리게 된다면,
이미 정가(正家)의 근본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니, 어찌 한 집안의 모범이 되겠습니까.
더구나 이것보다 더 못한 이는 아름다운 여색에 혹하여 그 바른 이치를 잃어버리고,
후비(后妃)가 비록 현명하더라도 버리고 돌아다보지 아니하며, 사사로이 사랑하는 자에게 빠져서 그 말만을 따르기 때문에,
정사에 해를 끼치고 나라에 재앙을 빚어내게 하는 것인데, 무엇이라고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전(傳)에 이르기를, "음식과 남녀 사이에는 큰 욕심이 존재한다." 하였고,
공자(孔子)는, "나는 아직 덕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듯 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비록 영웅의 재주로써 그 기개가 일세(一世)를 뒤덮는 이라도 오히려 한 여자에게 마음이 고혹(蠱惑)되어 그 평생을 그르치게 하는 이가 많습니다.
오로지 도(道)만을 준수하고 다스리기를 염원하는 임금으로서, 그 뜻이 선(善)한 데만 있고 다른 물욕에 옮겨지지 아니하는 이라야만,
정(正)으로써 스스로 처신할 수 있고, 또한 능히 정으로써 집안을 잘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니,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옵소서.

 

< 주 >

111) 중국 송(宋)나라 사람. 자는 순부(淳夫) 또는 몽득(夢得).
사마광(司馬光)과 함께 자치통감(資治痛鑑)의 편수에 참여함.
선인태후(宣仁太后) 생전은 물론 돌아간 뒤로도 정국의 혼미를 걱정하여 건의한 바가 많았다.

112) 송(宋)나라 영종(英宗)의 왕후. 성은 고씨(高氏).
철종(哲宗)이 즉위한 후 태황태후(太皇太后)가 되어 섭정(攝政)함.
신당(新黨)을 배격하고 사마광(사마광) 등을 기용하여 원우지치(元祐之治)를 이룩하였다.

113) 중국 하(夏)나라 우(禹)임금의 왕비. 계(啓)의 모친. 도산씨(塗山氏)의 장녀(長女)이다.

114) 중국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비(妃).
뛰어난 미색(美色)을 지녀 걸(桀)이 항상 가까이 두고 아꼈으나
덕(德)이 부족하여 결국 하나라가 혼란하여 멸망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115) 중국 상(商)나라 선조인 설(契)의 어머니로 유융씨(有氏)의 딸이다.

116) 중국 상(商)나라 주왕(紂王)의 비(妃). 유소씨(有蘇氏)의 딸.
왕의 총애를 말고 음탕하고 포악하였다. 뒤에 상의 멸망과 함께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117) 중국 주(周)나라 선조인 후직(后稷)의 어머니. 강(姜)은 성(姓). 원(嫄)은자(字)이다.

118) 중국 주(周)나라 유왕(幽王)의 총비(寵妃).
유왕은 포사가 웃는 것을 보려고 여러 가지로 시험하였으나 웃지 않고 거짓으로 봉수(烽燧)를 울리어
지방의 제후(諸侯)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는 비로소 웃었다.
그 뒤에 참으로 난리가 나서 봉화를 올렸으나 제후들이 또 속는 줄 알고 오지 아니하여 주나라가 멸망하였다.

119) 옛날 중국의 황후(皇后)는 정침(正寢)하나 연침(燕寢) 다섯 등 육궁(六宮)을 거느렸다.

120) 중국 주(周)나라 여왕(王)의 아들로 이름은 정(靜)이다.
여왕의 쇠패(衰廢)한 정치를 뒤 이어 다시 선정을 펼쳐서 주실(周室)을 중흥시키는 공업을 이룩하였다.

121) 중국 당(唐)나라 고조(高祖)의 차자(次子)로 이름은 세민(世民)이다.
수(隋)나라 말엽에 고조를 도와 기병하여 당나라를 세우는 데 기여했다.
뒤에 왕으로 즉위하여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 위징(魏徵) 등과 같은 당시의 명신들을 등용하여
율령(律令)의 찬정(撰定), 군정(軍政)의 정비, 학예(學藝)의 장려 등에 힘써 선정을 베풀고 국세를 내외에 떨쳐
그 유명한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룩하였다.

122) 중국 당(唐)나라 사람 성(晟)의 딸이며 무기(無忌)의 여동생으로 태종(太宗)의 황후가 되었다.
독서하기를 좋아하고 부덕을 갖추어 태종이 선치를 펴는데 있어서 많은 내조를 하였다. 문덕(文德)은 그의 시호이다.

123) 당나라 낙양(洛陽) 사람으로 자는 보기(輔機)이다.
널리 경사(經史)를 섭렵하였고 겸하여 무략(武略)이 있었다.
태종을 도와서 천하를 평정하는데 크게 공헌했으며 고종 이후에도 국정에 기여한 바가 많았다.

124) 황제(黃帝), 노자(老子), 장자(莊子) 등을 교조(敎祖)로 하는 종교의 한 종류,
무위(無爲) 자연(自然)을 종지(宗旨)로 하고 음양오행설 신선(神仙)설을 혼합하여 불노장생을 구하였다.
우리 나라에는 고구려 때에 들어왔다고 한다.

125) 중국 동한(東漢) 광무제(元武帝)의 제 4자(四子)로 이름은 장(莊)이다.
재위하는 동안 학문을 장려하고 선정에 힘썼다.
또 천축(天竺)으로 사신을 보내서 사문(沙門)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 등을 맞아오고
아울러 불경(佛經)도 들여와 이때 정식으로 불교가 중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현종은 그의 묘호(廟號)이며 시호는 명제(明帝)이다.

126) 중국 후한(後漢) 사람 마원(馬援)의 딸로 부덕이 있어 명제(明帝)의 황후가 되었다. 명덕(明德)은 그의 시호이다.

127) 중국 주(周) 나라의 제12대 왕으로 선왕(宣王)의 아들이다.
요사스런 포사()를 총애하여 백복(佰服)을 낳은 뒤,
이윽고 왕후인 신후(申后)를 폐위시키고 포사를 세웠으며 또 태자 의구(宜臼)를 폐위하고 백복을 세웠다.
뒤에 신후의 친정 아버지인 신후(申侯) 등에게 시해 당하였다.

128) 신왕후(申王后)의 친정 아버지이다.

129) 중국 노(魯) 나라의 권력있었던 대부(大夫)들이다.
둘다 노환공(魯桓公)의 자손으로서 막내아들의 자손이 계손씨(季孫氏)요,
큰아들의 자손이 맹손씨(孟孫氏)인데 계손씨가 더 권력이 강하였다.
또 둘째아들의 자손은 숙손씨(叔孫氏)인데 이들을 삼환(三桓) 또는 삼가(三家)라고도 하였다.

130) 중국 춘추(春秋)시대 위(衛)나라 대부. 이름은 원(瑗). 공자(孔子)의 제자이다.

131) 중국 송(宋)나라 남성(南城)사람. 자는 태백(泰伯), 문장(文章)에 능하였다.
범중엄(范仲淹)의 추천으로 태학설서(太學說書)를 역임했다. 저서로 퇴거류고(退居類稿) 등이 있다.

132) 중국 춘추(春秋)시대 제(齊) 나라의 정치가.
이름은 이오(夷吾). 중(仲)은 그의 자이다.
처음에는 공자규(公子糾)를 섬겼으나 뒤에 다시 제환공(齊桓公)을 섬겨 재상이 되어
제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으며 마침내 제 나라를 당시의 제후들 중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로 만들었다.

133) 중국 춘추시대 제(齊) 나라의 임금. 양공(襄公)의 아우로 이름은 소백(小白)이다.
관중(管仲)을 등용하여 오패(五覇) 중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관중이 죽은 후로 관중의 권유를 어기고
수조(), 역아(易牙), 개방(開方) 등 소인들을 기용하여 정사(政事)를 태만히 하는 바람에 패업(覇業)이 점차 쇠퇴되었다.

134) 모두가 은(殷)나라 주(紂)의 간신들이다.

135) 중국 당(唐)나라 현종(玄宗)때 사람으로 성은 이(李)씨 호는 월당(月堂)이다.
병부상서(兵部尙書) 중서령(中書令) 등을 역임했다.
성품이 교활하여 권모 술수에 능하였으며 환관(宦官) 비빈(妃嬪)들과 결탁하여 19년 동안 정권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136) 중국 당(唐) 나라 사람. 양귀비(楊貴妃)의 사촌오빠로 현종(玄宗) 때 재상을 역임했다.
성품이 음란하고 방탕하여 당나라를 기울게 한 간신이다. 안록산의 난에 죽었다.

137) 중국 당나라 현종(玄宗)의 귀비(貴妃)로 성은 양(楊)씨 태진(太眞)은 그의 호이다.
재색(才色)이 뛰어나 현종의 총애를 받아 귀비로 책봉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안록산의 난에 죽음을 당했다.

 


제4장. 교 자(敎子)

 

신이 살피건대, 부부의 예가 올바르게 세워져야만 교훈(敎訓)의 법도를 거양(擧揚)할 수 있기 때문에,
교자장(敎子章)을 다음에 두었습니다.

 

◆ 태교(胎敎)에 대한 말씀

옛날에는 부인이 아이를 임신하면 옆으로 누워〔側〕자지 아니하고 비스듬히〔邊〕앉지를 아니하였으며,
외발로〔〕서지 아니하고 맛이 야릇한〔邪味〕 음식은 먹지 아니하였다.
자른 자리가 바르지 아니한 <음식은> 먹지 아니하고 자리가 바르지 아니하면 앉지 아니하였다. (열녀전(列女傳) 하동)

오씨(吳氏)는 말하기를, "측(側)은 그 몸을 옆으로 눕히는 것이요, 변(邊)은 그 몸을 비스듬히 치우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필()은 피(跛)로써야 마땅할 것인데 한쪽 다리에만 치우치게 몸을 맡기는 것을 말한다.
사미(邪味)는 바르지 않은 맛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사특한 색깔은 보지 아니하고 음란한 소리는 듣지 아니하며, 밤이면 장님으로 하여금 시를 외우게 하고 바른 일을 말하게 한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도(道)는 말한다는 뜻이요, 정사(正事)란 일이 예에 알맞는 것을 가리킨다.
장님에게 시를 외우게 한다는 것은 그 소리가 정밀하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이같이 한다면 곧 자식을 낳을 경우 그 형체나 용모가 단정하고, 재주가 남보다 뛰어날 것이다.

진씨는 말하기를, "부인이 임신하였을 때에는 잠자는 일, 먹는 일, 앉는 일, 보는 일, 듣는 일, 말하고 행동하는 일이
하나 같이 모두 다 올바라야만 자식을 낳으면 그 형체나 용모가 단정하고, 재주가 남보다 뛰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입교(立敎)의 차례에 대한 말씀

○ 무릇 자식을 낳으면 그 여러 어머니〔諸母〕중에서나, 또는 유능한 자를 가리되, 반드시 너그럽고 인자하며,
사랑스럽고 온화하며, 착하고 공손하며 삼가 <예의를 지키고>, 말을 적게 하는 이를 골라서 그를 자식의 스승으로 삼는다. (「예기」하동)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제모(諸母)라는 것은 여러 첩을 말하는 것이다.
유능한 자라고 한 것은 비록 첩(妾)이 아니라도 가히 자식을 가르칠 스승이 될 만한 자를 말한다." 하였습니다.
사마온공(司馬溫公)138)은 말하기를, "유모가 선량하지 못하다면 비단 그 집안의 가법(家法)을 폐하고 어지럽힐 뿐만 아니라,
아울러서 그가 길러낸 자식도 그를 닮아 같은 유가 되도록 한다." 하였습니다.

자식이 능히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면 오른손으로 밥을 먹도록 가르치고, 능히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사내는 빨리〔唯〕대답을 하도록 하고,
계집애는 느리게〔兪〕대답을 하도록 한다.
그리고 사내는 가죽으로 된 주머니〔〕를 차게 하고, 계집애는 실로 만든 주머니를 차게 한다.

오씨(吳氏)는 말하기를, "사(食) (아랫 글자는 사(食) 입니다.)는 밥이란 뜻이다.
사내나 계집애나 모두 오른손으로 하는 것은 그 강함을 취한 것이다.
유(唯)는 대답하는데 빨리하는 표현이요, 유(兪)는 대답하는데 느리게 하는 표현으로서, 단단한 것과 부드럽다는 것을 뜻한다.
반()은 작은 주머니로서 수건을 담는 것이다.
사내는 가죽을 사용하고 계집애는 비단천을 사용하는데, 역시 단단하다는 것과 부드럽다는 것을 뜻한 것이다.
또, 한 설명에 의하면, 반()을 큰 띠〔大帶〕라고도 한다." 하였습니다.

나이 여섯 살이 되면, 수(數)와 방위(方位)의 이름을 가르치고, 일곱 살이 되면 사내와 계집애를 같은 자리에 있지 못하게 하며,
음식을 같이 먹지 못하게 한다. 여덟 살이 되면 문을 출입할 때나, 자리에 앉을 때나, 음식을 먹을 때에,
반드시 웃어른이 하고 난 다음에 하도록 하여 비로소 사양(辭讓)하는 것을 가르친다.
아홉 살이 되면 날짜 세는 법을 가르치게 된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수란 것은 일(一)·십(十)·백(百)·천(千)·만(萬)을 말하고, 방위(方位)의 이름이란 것은 동·서·남·북을 말한다.
날짜를 센다는 것은 초하루·보름과 육갑(六甲)139)을 아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나이 열 살이 되면 바깥 스승에게 나가서 공부하고, 거처는 바깥방에서 하며,
글〔書〕과 셈을 배우고 옷은 비단으로 저고리나 바지를 해 입지 않으며, 예를 처음대로 따라 행하고,
아침저녁으로 어린이의 범절을 배우되 주로 간단하고 진실한 것을 익힌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서(書)는 육서(六書)140)를 말하고, 계(計)는 구구셈을 말한다.
비단으로 저고리나 바지를 해입지 않는 것은 너무 따뜻하기 때문이다.
예를 처음대로 따라 행한다는 것은, 모두 처음 배운 방법에 따라서 동작한다는 것이다.
이〔肄〕는 익힌다는 뜻이요, 간(簡)은 간략하고 요긴하다는 뜻이며, 양(諒)은 진실하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간단하여 알기 쉽고 진실하여 믿기 쉬운 일을 익히는 것을 말한다.)

나이 열 세 살이 되면 악(樂)을 배우고, 시(詩)를 읽으며 작(勺)을 춤추고, 성동(成童)이 되면 상(象)을 추며 활쏘기와 말달리는 법을 배운다.

오씨(吳氏)는 말하기를, "작(勺)은 주송(周頌)의 작시(酌詩)인데, 수작〔酌〕을 노래하는 풍류 가락의 춤으로서
문무(文舞: 문(文)을 상징하는 특정의 복장을 하고 추는춤)를 말하고, 상(象)은 주송(周頌)의 무시(武詩)인데,
코끼리〔象〕를 노래하는 풍류 가락의 춤으로서 무무(武舞)라 말한다." 하였습니다.

스무 살이 되면 관례(冠禮)를 행하고 비로소 예(禮)를 배우며, 갖옷과 비단옷을 입고 대하(大夏)춤을 출 수가 있다.
효도와 우애를 돈독히 실행해 나가고, 널리 배우되 남을 아직 가르치지 못하며, 그 미덕을 마음 속에 지니되드러내 보이지 못한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비로소 예(禮)를 배운다는 것은,
성인(成人)의 도(道)로서 마땅히 <제사지내는> 길례(吉禮),
<상을 당했을 때의> 흉례(凶禮), <군에 들어갔을 때의> 군례(軍禮),
<손님을 대할 때의> 빈례(賓禮) <관례(冠禮)·혼례(婚禮)인> 가례(嘉禮) 등,
오례(五禮)를 다 함께 아울러 배워서 익혀야 된다는 것이다.
대하(大夏)는 하(夏)나라의 우(禹)가 지은 음악인데, 문(文)과 무(武)를 겸비한 것이다.
남을 가르치지 아니한다는 것은 배운 것이 아직 정숙하지 못할까 염려되기 때문에 스승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속에 지니되 드러내 보이지 못한다는 것은 마음 속에 깊숙이 그 미덕을 쌓아 두기는 하되,
그 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 보이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옛날 사람은 자식을 낳아서 그가 능히 스스로 밥먹을 줄 알거나, 능히 말할 줄 알게 되면,
곧 그를 소학(小學)의 법도를 가르쳐 미리 교육을 시켰다.
사람이 어렸을 때는 지각이나 생각에 있어 아직 주장이 투철하지 못하므로 곧 격언(格言)과 지당한 의론으로써
날마다 그 앞에서 얘기하고 비록 잘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또한 마땅히 배우고 익히게 하면 귀에 차고 마음에 가득하여
오래 가면 스스로 편안히 익혀져서 마치 그것이 본래부터 있는 것같이 되어, 비록 다른 말로써 현혹시킨다 할지라도 빠져들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좀 장성하게 되면, 사사로운 생각과 편벽스런 호기심이 마음 속에 싹트고,
뭇사람들의 말들이 밖에서 호리기 때문에 순수하고 완전한 것을 바라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자제(子弟)가 재주가 뛰어나거나 경솔한 것이 염려되는 자는,
다만 경학(經學)과 책을 읽는 것 (책을 외우는 것입니다.) 을 가르칠 것이며 문장을 짓는 것은 가르쳐서는 안된다." 하였습니다.

나이 서른 살에 아내를 갖고 비로소 남자의 할 일을 처리하며, 널리 학문을 배우고 친구를 공손하게 대하여 그 뜻을 본다.

진씨는 말하기를, "남자의 할 일이라는 것은 토지를 받고〔受田〕141) 정치에 참여하며, 부역에 나가는 것이다.
방(方)자는 상(常)자와 같다.
친구를 공손하게 대한다는 것은 친구들과 순하게 화합하여 교제한다는 것이다.
뜻을 본다는 것은 그 의지(意志)의 향하는 바를 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나이 40살에 비로소 벼슬을 하게 되고 일을 대하여 지모를 짜내며, 생각을 발표하여,
도리에 합치할 것 같으면 복종을 하고, 옳지 아니하면 그만두고 떠나간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방(方)은 대(對)한다는 뜻이요, 물(物)은 일〔事〕이란 말과 같다.
일에 따라서 지모를 짜내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나이 50살에 명을 받아 대부(大夫)가 되고, 벼슬자리에 나아가 정사(政事)를 맡아 보며〔服〕, 나이 70살에 치사(致仕)한다.

진씨는 말하기를, "복〔服〕자는 맡는다〔任〕는 뜻과 같고, 벼슬자리에 나가 정사를 맡아본다는 것은
나라의 대사(大事)에 참여하여 듣는 것을 말한다. 치사한다는 것은 맡은 일을 모두 군주에게 되돌리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세자(世子)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말씀

○ 무릇 삼대(三代)의 임금은 그 세자(世子)를 가르치는 것을 반드시 예(禮)와 악(樂)으로써 하였다.
악(樂)은 안을 닦는 것이고 예(禮)는 밖을 닦는 것이다. 안에서 예와 악이 서로 교차하면 밖으로 그 형체가 드러난다.
이런 까닭으로, 그 성취되는 것이 <더욱> 나아가며, 공경하고 화하고 문채가 나게 된다. (「예기」하동)

진씨는 말하기를, "안을 닦는다는 것은 마음 속에 쌓인 사특한 것을 쓸어 없앤다는 것이요,
밖을 닦는다는 것은 그 공손하고 엄숙한 범절을 닦아 이루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악(樂)은 안에서 밖으로 통달하고, 예(禮)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간다.
이 두 가지는 술에 훈훈히 취한 듯이 통달하여, 서로 틈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 성취되는 것은,
다만 <더욱> 나아가서 즐거워하며, 공경하고 화하고 문채가 나게 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진씨는 말하기를, "공경하여 성실한 덕이 있고,
또 온화하고 윤택(潤澤)하여 문채 나는 기상이 있게 되면, 예(禮)와 악(樂)의 가르침이 큰 것이다." 하였습니다.

태부(太傅)·소부(小傅)를 두어서 그를 가르치게〔養〕하는 것은, 부자(父子)·군신(君臣)의 도리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태부는 부자(父子)·군신(君臣)의 도리를 살펴서 그를 가르치고,
소부는 세자(世子)를 받들어서 태부(太傅)의 덕행(德行)을 보고 살펴서 그것을 깨우치게 한다.
태부는 앞에 있고 소부는 뒤에 있으며, 안으로 들어가면 곧 보(保)가 있고, 밖으로 나가면 곧 사(師)가 있다.
이로써 가르치고 깨우쳐서 덕을 이룩하게 하는 것이다.
사(師)라는 것은 일로써 가르치고 덕으로써 깨우치게 하는 것이요,
보(保)라는 것은 그 몸을 삼가 조심함으로써 그를 도와 인도하여 도(道)로 귀착하게 하는 것이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양(養)은 조용하게 그 길을 열어 줌으로써, 그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착한 성품을 길러 주어서,
그로 하여금 자연히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살펴서 가르친다는 것은 자신이 덕을 닦음으로써 그에게 보이는 것이요,
살펴서 깨우친다는 것은 언어로 그 뜻을 설명함으로써 그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태부(太傅)는 그 자신의 행동으로써 가르치고, 소부(小傅)는 언어로서 가르치는 것인데, 대개 서로 협력하여 계발하는 것이다.
사(師)라는 것은 일로써 가르치고 덕으로써 깨우치게 하는 것인데,
그에게 부모를 섬기는 일을 가르치게 되면 바로 효도하는 덕을 알게 되고,
그에게 웃어른을 섬기는 일을 가르치게 되면 바로 공경하는 덕을 알게 되므로,
이는 천하에 일 이외의 다른 덕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보(保)라는 것은 곧 세자(世子)의 몸을 안전하게 호위하여 그를 돕고 그를 인도하여, 그 도(道)에 돌아가게 하는 것인데,
귀·눈·입·몸이 사욕으로 동하지 않게 하는 것이, 이른바 도(道)란 것이니 천하에 몸 이외에 또 다른 도는 없는 것이다.
한 세자에게 네 사람이 붙들어 도와 주고 곁에서 받들어 주는데, 어찌 가르침이 통달하지 않을 수가 있겠으며,
어찌 덕망이 이룩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남의 자식노릇을 할 줄 알아야만 가히 남의 부모노릇도 할 수가 있는 것이요,
남의 신하노릇을 할 줄 알아야만 가히 남의 임금 노릇도 할 수가 있는 것이며, 남을 섬길 줄 알아야만 능히 남을 부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자를 길러 가르치는 일을 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엄릉방씨(嚴陵方氏)는 말하기를, "임금의 자리나 아버지의 자리에 있으면 부리고 명령하는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인데,
어찌 신자(臣子)로서 남을 섬기는 도를 알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하였습니다.

한 가지 일〔一物〕을 행하고 세 가지 선(善)을 모두 얻을 수가 있는 것은 오직 세자가 태학(太學)에 입학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세자가 태학에 입학하게 되면
첫째로 나라 사람들이, "장차 나의 군주가 될 터인데 나에게 나이로써 사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할 것이니,
"부모가 살아 계셔서 그렇다." 한다면, 일반 사람도 부자간의 도리를 알게 될 것이요,
둘째로, "장차 나의 군주가 될 터인데 나에게 나이로써 사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할 것이니,
"임금이 그 자리에 계시므로 예법이 그러하다." 한다면, 일반 사람도 군신간의 의리에 밝게 될 것이며,
세째로, "장차 나의 군주가 될 터인데 나에게 나이로써 사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할 것이니,
"어른을 어른으로써 <대접하는> 것이다." 한다면, 일반 사람도 어른과 어린이의 범절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자식의 <도리로써> 하게 되는 것이고,
군주가 자리에 계시면 신하의 <도리로써> 하게 되는 것이니,
신자(臣子)의 도리를 지키는 것은 군주를 귀히 여기고 부모를 모시는 길이다.
부자(父子)·군신(君臣)·장유(長幼) 간의 도리를 터득하면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것이다.
옛말〔語〕에 '악정(樂正)은 학업의 일을 주로 맡고, 부사(父師)는 그 덕이 성취하는 것을 맡아서,
한〔一〕사람이 선량해지면 만국(萬國)이 그 때문에 다스려진다." 하였는데, 이는 세자(世子)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일물(一物)이란 한 가지 일〔事〕을 말한다.
어(語)는 옛말을 말한다.
악정(樂正)은 세자에게 시(詩)와 서(書)를 가르치는 일을 주관하는 자이고,
부사(父師) (태사(太師) 입니다.)는 그 덕을 성취하는 일을 주관하는 자이다.
일유(一有)는 서경(書經)에 한 사람〔一人〕이라고 씌어 있는데, 세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세자가 크게 선(善)하면 곧 만방(萬邦)이 모두 바르게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세자 자신이 군주를 존숭하고 부모를 친근히 모시며, 웃어른을 존경하는 도리를 천하에 제창한다면,
사람이 흡연(翕然)히 모여들어서, 보고 본받지 아니할 자가 있겠는가.
진(秦)·한(漢) 이후로 예(禮)와 악(樂)이 이미 모두 폐하여지고,
또 사(師)·보(保)의 가르침과 나이를 따져서 세자를 가르치는 예의가 없어졌으니,
세자는 탄생하면서부터 귀하고 교만스러운 습관에 익숙된다.
이것이 옛과 같이 다스려지지 않는 소이이다." 하였습니다.

○ 보부편(保傅篇)에 이르기를, "사람의 성품은 서로 거리가 대단히 먼 것이 아닌데도,
무엇 때문에 삼대(三代)의 군주는 도(道)가 있어 길었고, 진(秦)나라 군주는 도가 없어 짧았는가.
그 까닭을 가히 알 수가 있다.
옛날의 왕(王)은 태자(太子)가 탄생하게 되면 본래 예로써 받들어 길렀고,
선비에게 그를 맡겨 유사(有司)로 하여금 재계하여 엄숙하게 하고, 단정한 예복으로 남교(南郊)142)에서 뵙게 하는 것인데,
이는 하늘을 뵙는 것이다. 대궐 앞을 지날 적에는 수레에서 내리고, 종묘 앞을 지날 적에는 빨리 걸어가는 것인데, 이는 효자의 도리이다.
그러므로 날때〔赤子〕부터 스스로 그 가르침이 진실로 다 이행되는 것이다.
어린 나이로서 지각이 있으면
삼공(三公)·태사(太師) (태부(太)傅·태보(太)保 입니다.)·
삼소(三少)(소사(少師)·소부(少傅)·소보(小保)입니다)가,
진실로 효(孝)와 인(仁)과 예의를 밝혀 인도(引導)하여 간사한 사람을 물리치고, 나쁜 행동을 보지 않게 한다.
모두 천하의 올바른 선비를 뽑되 효도 있고 우애있으며, 견문이 넓고 도덕과 학문이 있는 자로써 하여 그를 보살피고 돕도록 하여
태자와 함께 거처하고 출입하도록 한다.
태자는 탄생하면서부터 바른 일을 보고 바른 말을 듣고 바른 길을 가는 것은 전후좌우(前後左右)에 있는 사람이 모두 바르기 때문이다.
대개 바른 사람과 함께 거처하게 되면 바르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마치 제(齊)나라에 나서 자란다면 제나라 말을 잘하지 못할 수가 없는 것과 같다.
그리고 만일 바르지 못한 사람과 함께 거처하게 되면 그 바르지 못한 것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이는 마치 초(楚)나라에 나서 자란다면 초나라 말을 잘하지 못할 수가 없는 것과 같다.
공자(孔子)는 말하기를, '어려서 이루는 것은 마치 타고난 성품과 같고, 습관은 마치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과 같다.' 하였다.
태자가 조금 자라면 학교에 들어가 스승을 받들어 도(道)를 묻고, 물러나와 익혀서 태부(太傅)에게 점고(點考)받으며,
태부(太傅)는 그 도리에 어긋난 것을 벌하고, 그 미치지 못한 것을 바로잡는다면, 곧 덕과 지능이 자라서 이치와 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태자가 이미 관례(冠禮)를 하고 성인(成人)이 되어 보부(保傅)의 엄격한 가르침을 벗어난다면, 곧 허물을 기록하는 사관이 있고
음식 거두는 것을 주관하는 벼슬아치가 있으며, 선(善)을 본받도록 올리는 깃대가 있고, 잘못을 써붙여 비방하는 나무가 있으며,
과감하게 간(諫)하는 북이 있다. 고사(史)가 시를 읊고 공(工)143)이 잠언(箴言)으로 간하는 것을 외우며,
대부(大夫)가 지혜〔謀〕를 가르치고, 사(士)144)가 백성의 말을 전하여 습관이 지혜와 같이 자란다.
그러므로 간절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다.(간(諫)하는 것이 비록 간절하다 하더라도 능히 그것을 잘 받아들일 수가 있어서,
부끄러움이나 한스러움이 없는 것입니다.) 교화가 마음과 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도(道)에 합하는 것이 마치 타고난 성품과 같다.(도(道)에 합치하는 바가 마치 성품이 저절로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대개 삼대(三代)가 오래 갈 수 있었던 것은 그 태자를 도와서 인도하는데 이같이 갖추었기 때문이다.
진(秦)나라에 이르자 그렇지 못하여, 본래 사양하고 겸손한 태도를 귀히 여기던 풍속은 없어지고,
고자질하는 것을 최상(最上)으로 여겼으며, 본래 귀중하게 여기던 예의는 생각하지도 아니하여, 형벌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겼다.
조고(趙高)를 호해(胡亥: 진시황의 아들)의 사부(師傅)로 삼아 그에게 옥사(獄事)를 가르치니,
배우는 것이 사람의 목을 베거나 코를 베는 형벌이 아니면 삼족(三族)을 멸(滅)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호해는 오늘 제위(帝位)에 오르자 내일부터 사람을 싫어하여,
충성으로 간하는 자를 가리켜 비방하는 자라 하고 깊이 계책을 세우는 사람을 가리켜 요망한 말을 하는 자라고 하였으며,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기를 마치 풀이나 띠풀을 베는 것같이 여겼으니,
이것이 어찌 호해가 성품이 악하기 때문이라고만 말할 수 있겠는가.
이는 그를 인도하는 도가 이치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담에 말하기를, '앞에 가는 수레가 뒤집혀지면 뒤따르는 수레가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다.
진나라의 대(代)가 빨리 끊어지게 된 이유는, 그 바퀴 지나간 자취를 볼 수가 있는데도 이것을 피하지 않는다면,
뒤따라 가는 수레가 또 필연적으로 뒤집혀지게 될 것이다.
천하의 운명은 태자에게 달려 있으며, 태자가 선(善)하게 되는 것은
일찌기 일러 가르치는 것과 좌우에서 보좌하는 이를 선택하는 일에 달려 있는 것이다.
대개 좌우에서 바르게 가르친다면 태자는 바르게 되는 것이며,
태자가 올바르게 되면 천하가 안정되는 것이다."
(신씨(愼氏)는 말하기를, "보부(保傅)편은 비록 한(漢)나라 가의(價誼)가 지은 것이나, 대체로 옛날 사람들이 남겨 놓은 말이다." 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근세(近世)에 이르러 제왕이 그 자식을 가르치는 법이 소홀하고 관심이 적어서,
대개 그 가르치는 방법이 기억하거나 외우거나 글쓰거나 편지하는 공부에 지나지 아니하며,
일찌기 인(仁)·효(孝)·예·(禮)·의(義)의 학습으로 계도하는 일은 없다.
용모와 말씨, 기품과 의복, 기구와 쓰임새 같은 것이 비록 사치의 극치에 달하는 일이 있더라도 일찌기 이를 절제한 일은 없었다.
따르는 관속들은 그 숫자만 갖추었을 뿐 보부(保傅)로서 엄격한 지도는 없었고,
경전(經典)을 강독하여 예의는 갖추었으나 경계하여 바로 잡는 이익은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함께 출입하고 거처를 같이하여 서로 친밀하고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된 사람들로는,
환관(宦官)이나 가까이 모시는 자나 청소하는 자나 심부름꾼 따위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대개 제왕의 평생에 마땅히 전해 주어야 될 근본은 위로 소중한 종묘와 사직이 있고, 아래로 사해(四海)에 백성들의 생명이 있는 것이다.
앞에는 조종(祖宗)이 창업하셔서 물려 주신 어려움이 있고, 뒤에는 자손이 오래도록 번영하게 해야 할 계획이 있는데도 자손을 돕고
가르쳐야 할 방법이 이와같이 소홀하니, 이는 마치 명월주(明月珠)와 야광벽(夜光璧)이 있는데
그것을 도둑떼가 우굴거리는 네거리 길가에 두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 어찌 위태롭지 아니하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삼대(三代)에 세자를 교육시키는 방법이 예기(禮記)와 보부(保傅)편에 다 갖추어져 있는데,
근세(近世)에는 그것이 유실(流失)되었다고 주자(朱子)도 상세하게 언급을 하였습니다.
대개 사람이 공경하는 바가 있으면 방지하지 아니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멋대로 방탕하지 아니하는 것인데,
그래야만 능히 마음이 움직여 성정을 누르고, 학문에 나아가 덕을 닦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후세의 교육이 매우 소홀하고 간략한데, 6·7세가 되면 바로 보좌하는 관리나 요속(僚屬)들이 있어서, 이미 임금이 될 공부를 하게 되어,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없고, 나아가 강론하는 벼슬아치가 너무나 존대하고 떠받들어서,
스승의 도(道)가 허물어지고 없어져서 때때로 접견은 한다고 하지만 바른 말로 간하고 훈계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다만 환관(宦官)과 궁첩(宮妾)들이 날마다 친근하여 편히 즐기는 놀이로서 인도하며 사치스러운 기구에 습관이 되도록 해 주기 때문에,
옛일과 옛 습관이 모두가 바르지 못하니 이와 같이 하고서 세자(世子)의 학문이 이루어지거나 도덕이 서서,
만세(萬世)의 신민들이 우러러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도와 덕 있는 선비를 선발하여 사부(師傅)로 삼아서, 세자로 하여금 공경을 극진히 다하게 하여,
스승의 도를 엄정히 하여 보고 느끼는 데에서 본을 받게 하며,
보좌하는 요속들도 모두 단정하고 뜻이 바르며 도가 있는 선비를 선발하여 밤낮으로 함께 같이 있게 하면서,
좌우에서 붙들어 보좌하게 하고 훈습(薰習)시켜 천성(天性)을 이루게 하되, 잘못이 있으면 기록하고 게으르면 경계하여,
세자로 하여금 언제나 마음으로 근신하게 하여, 스스로 안일한 여가를 갖지 못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야만 학문이 날마다 성취할 수 있고, 덕이 날마다 높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군주는 세자에게는 법칙이 되는 것입니다.
군주가 스스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없이 위에서 방탕하고 방자스럽게 할 것 같으면
곧 세자가 본받을 모범을 취할 바가 없게 되는 것이니,
그렇다면 저 사부(師傅)와 요속(僚屬)들이 어질지라도 역시 앞으로 조정에 있기가 불안해져서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가 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비록 도로써 가르쳐 기르려해도 가히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시경」에 이르기를, "그 자손에게 꽤〔智謀〕를 주어 공경할 자(子)를 편안케 한다." 하였고,
「서전」에 이르기를, "우리 후인(後人)을 도와서 인도하되, 모두 다 정(正)으로써 하고 결함〔缺〕이 없다." 하였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이것을 깊이 생각하시옵소서.

 

< 주 >

138) 중국 송대(宋代)의 학자,
정치가, 자는 군실(君實). 신동(神宗) 초년에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하여 관을 사직했다가,
철종(哲宗)이 즉위하자 다시 재상으로 기용되어 백성들에게 폐해가 되는 신법들을 모두 개혁하였다.
저서로 자치 통감(資治通鑑) 등이 있으며 온국공(溫國公)을 추증하였다.

139) 60갑자(甲子)를 뜻한다.

140) 한자(漢字)의 구성과 운용에 대한 여섯 가지의 기본 방법.
지사(指事)―추상적으로 사물의 뜻을 나타낸 것으로 상·하(上·下) 따위,
회의(會意)―이미 구성된 두 개의 문자를 합쳐서 뜻을 나타낸 것으로 무신(武信) 따위,
형성(形聲)―이미 구성된 문자에서 일부는 뜻을, 일부는 음을 취하여 합친 것으로
강·하(江·河) 따위, 전주(轉注)―문자의 모양을 전변하여 쓴 것으로
고·노(考·老) 따위, 가차(假借)―다른 문자를 차음(借音)하여 쓰는 것으로 영·장(令·長) 따위이다.

141) 주(周)나라 때에는 토지가 모두 국가 소유로 되어 있어 농가 한 집당 백묘(百畝:8천평)씩 받아서 경작하였다.
여기서 토지를 받는다는 것은 남자가 성인이 되어서 새로 한집을 창립을 하면 새로 백묘를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142) 중국의 법규에는 오직 천자만이 하늘에 제사지낼 수 있는데, 그 제사는 남교(南郊)에다 단(壇)을 쌓고 거기서 지낸다.
그러므로 왕세자가 하늘을 뵈려면 남교로 가는 것이다.

143) 악공(樂工)을 말한다. 그가 경계하는 잠언(箴言)을 모아서 드렸다.

144) 하급 관원인데 주나라 관제에는 상사(上士), 중사(中士), 하사(下士)의 세 등급의 사(士)가 있었다.

 

 

제5장. 친 친(親親)

 

신이 살피건대, 부모에 대한 효도와 자식에 대한 자애를 미루어 나가는 데는 친척을 친애하는〔親親〕장을 다음에 놓았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가위나무〔棠〕꽃이여, 환하게〔〕활짝 피지〔〕 않았는가.
모든 사람들이 내 형제만 같으리." 하였습니다. (소아(小雅) 상체(常)편. 하동)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악()은 화사하게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불(不)은 어찌 그렇지 아니한가. 하는 뜻이다.
위위()라는 것은 빛나고 밝은 모습을 가리킨 것이다.
이것은 형제를 위해 잔치를 베풀어 즐기는 노래이다." 하였습니다.

할미새〔脊令〕가 둔덕에 있는데, 위급한 곤난을 당하고 있구나.
사이좋은 친구가 있다 하나 길이 한탄만 하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척령(脊令)은 물가에 사는 새다.
날 때에는 곧 울부짖고 걸을 때에는 곧 몸을 뒤흔들어 위급하고 곤란한 의미가 있으므로 그것으로써 홍을 일으킨 것이다." 하였습니다.

○ 동래여씨(東來呂氏)는 말하기를, "그 친근히 해야 할 이를 소홀히 하거나,
그 소홀히 할 이를 친근히 한다는 것은 그 본심(本心)을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詩)는 친구가 형제만 같지 못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대개 친근하거나 성긴 사이의 분별을 제시함으로써 도리켜 그 근본에 따르도록 한 것이다.
본심이 이미 얻어지면 곧 친근하고 성긴 것이 질서있게 차례가 잡힐 것이고, 형제가 친근하면 곧 친구간의 의리도 돈독해질 것이다.
처음부터 친구에게"대해서 박절하게 하자는 것은 아니다.
참으로 잡스럽게 하여 공손하지 못하다면 비록 친구에게 후덕하다고 할지라도 이는 마치 근원이 없는 물과 같아서,
아침에 가득차도 저녁에 없어질 것이니, 어찌 가히 보존할 수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처자식이 화합함이 마치 비파와 거문고 타는 것 같도다. 형제가 화목하여야〔翕〕, 즐겁고 또한 즐겁다.〔湛〕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흡(翕)은 화합한다는 뜻이요, 담(湛)은 즐거움이 오래도록 계속된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첩산사씨(疊山謝氏)는 말하기를, "형제가 화목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곧 가정의 분위기가 어긋나서 어지럽지 아니한 것이 없게 되어,
비록 처와 자식을 거느리는 즐거움이 있다 할지라도 역시 그 즐거움은 불안하게 될 것이다.
오직 형제가 화락하면 한 집안의 우애가 서로 화목하지 않을 수 없으며, 역시 처와 자식의 즐거움이 오래 갈 수 있는 것이다.
대개 천성(天性)으로 화합한 것이 조금이라도 어긋나거나 어지러워진다면 사람의 화합하는 것 역시 불안해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요(堯)가 그 큰 덕〔俊德〕을 잘 밝혀〔明〕그것으로써 그 구족(九族)145)을 친(親)하게 하고,
그 구족이 이미 화목하게〔睦〕되니 백성을 다 같이〔平〕 밝게〔章〕 다스리고,
그렇게 해서 백성이 모두 밝게 소명(昭明)해졌다. (우서(虞書) 요전(堯典))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명(明)은 그것을 밝힌다는 뜻이요.
준(俊)은 크다는 뜻이다.
구족이란 고조(高祖)대로부터 현손(玄孫) 대에 이르는 직계친(直系親)을 중심으로, 방계(傍系)를 포함하는 것으로
가까운 데를 들어 먼데를 겸한 것이니 오복(五服) 이성(異姓)의 친척도 역시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목(睦)은 친하여 화목하다는 뜻이요, 평(平)은 다 같다는 뜻이며, 장(章)은 밝힌다는 뜻이다.
소명(昭明)은 모두 능히 스스로 그 덕을 밝힌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왕씨(王氏)는 말하기를, 친(親)은 친근하게 한다는 뜻이요. 목(睦)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서로 친근하게 한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공족(公族)이 죄가 있으면, 세 번 그 죄를 용서해 주고 난 다음에 형벌을 준다. (예기)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공족(公族)이 죽을 죄가 있다면, 곧 전인(甸人)에게 넘겨 목을 매어〔磬〕죽인다.
(경(磬)은 목을 매달아 죽이는 것입니다.
전인(甸人)은 시골을 관장하는 벼슬아치이니, 그것을 숨기고 남에게 보이려 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거리에서 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 형죄(刑罪)는 역시 전인(甸人)에게서 고(告:국문할 국鞠자로 읽습니다.)하도록 되어 있다.
공족에게는 궁형(宮刑)146)은 없다.
사건을 처리하는 옥사(獄事)가 이루어지면 유사(有司)가 공(公)에게 죄상을 고하기를, '아무개의 죄는 사형〔〕에 처한다.' 하면,
공이, '그 죄를 용서해 주라.' 한다. 유사가 또, '사형에 처한다.' 하면,
공은 또, '용서해 주라.' 한다. 유사가 또, '사형에 처한다.' 하며
세 번 용서를 청하는 데 미쳐서는 대답을 하지 아니하고 달려 나가 전인에게 처형을 하도록 한다.
공이 또 사람을 시켜 그를 쫓아 따라가게 하여 말하기를,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 죄를 사면하여 주기 바란다.'고 전한다.
유사가, '미칠 수 없다.' 하면, 돌아가서 공에게 그 처형한 일을 보고하고,
공이 흰 상복을 입고 거(擧)147)하지를 아니하고 친히 통곡한다." 하였습니다.

○ 장락진씨(長樂陳氏)는 말하기를, "공의 처지로써 법을 극진하게 다하지 아니하며 의(義)로써 은혜를 가릴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세 번 용서를 빌어 또 그것을 따라 가되 미치지 못하여야만, 흰 상복을 입고 거(擧)하지 아니하고 변(變)에 대처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친한 이를 더 친히 하는 것은 집안의 급한 일인데, 친한 이를 더 친하게 하는 일은 비단 한 가지 도만이 아닙니다.
한 종족(宗族)가운데에는 어질고 어리석은 것이 같지 아니하니 돈독하고 화목한 은혜는 마땅히 균일하여야 하며,
취하고 버리는 것은 마땅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후하게 양육하고 부지런히 가르쳐서 그 재덕(才德)이 현저한 자는 택하여 친히 등용하고,
그 재덕이 없어서 등용해 쓸 수 없는 자는 그로 하여금 녹(祿)만이라도 먹게 한다면, 곧 종족(宗族)도 보전할 수 있고,
정사에도 결함되는 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후세에는 그 알맞는 중도(中道)를 얻지 못하여 편벽되게 믿고는 위임해 버리니,
곧 왕명(王令)을 제멋대로 천단(擅斷)하게 되어 제제할 수 없게 되고,
또 만일 폐단을 교정하여 억제하는데 너무 지나치게 한다면 비록 현명하고 유능한 자가 충성하기를 원한다고 할지라도 등용할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가 다 선왕(先王)께서 친한 이를 더 친하게 하게 하시던 의리가 아닌 것입니다.
주는데는 절제가 있는 것이고, 접견하는 데는 때가 있어야 하며, 따뜻하고 관대한 것으로 열어 주어서,
그 학습한 것을 시험하여 보고, 그로 하여금 각각 자기가 쌓아 온 것을 전개시키도록 하되,
유능한 자는 권장하고 능하지 못한자를 경계한다면 곧 정(情)과 예(禮)가 병행하고 흥기(興起)하여 선(善)을 하게 될 것입니다.

후세에는 이 알맞는 중도를 얻지 못하여 만일 사사로운 일에 치우쳐서 너무 지나치게 후하게 된다면,
곧 요구하는 일이 있을 경우 반드시 허락하게 되고, 죄가 있더라도 다스리지 아니하여 그 때의 정사에 해를 주게 되는 것이며,
또 만일에 범연(泛然)히 하여 친절하지 아니하면, 도무지 서로 상접할 수 없어서 마치 길가는 사람을 보듯 소홀하게 대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모두 다 선왕(先王)께서 친한 이를 더 친하게 하시던 은덕이 아닌 것입니다.
반드시 사사로운 은혜로써 공의(公儀)를 해치지 말 것이며, 공의로써 사사로운 은혜를 끊지 아니하여,
은(恩)과 의(義)가 다 극진하여야만 친한 이를 더 친하게 하는 도리인 것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시옵소서.

 

< 주 >

145) 고조(高祖)로부터 증조·조부·부·자신·자손·증손·현손(玄孫)의 직계친(直系親)을 중심으로 하여
방계친(傍系親)으로 고조의 4대손되는 형제, 종형제, 재종형제, 삼종형제를 포함하는 동종(同宗) 친족을 일컫는다.

146) 형벌의 일종. 남자는 거세(去勢)하고 여자는 음부를 유패한다.

147) 식사할 때 음악을 듣지 않는 것이다.

 


제6장. 근 엄(謹嚴)

 

신이 살피건대, 윤리를 바로 잡는 일과 은의를 돈독하게 하는 일의 설명은, 위의 네 장(章)에서 그 대개가 진술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두 가지는 근엄(謹嚴)을 위주로 삼은 것이기 때문에, 그 다음에 근엄 장(章)을 놓았습니다.

 

◆ 부부간의 분별이 근엄해야 한다는 말씀

예(禮)는 부부가 서로 삼가는 데서 비롯되므로, 궁실(宮室)을 정하는 데 있어서 안과 밖을 분별하되, 남자는 밖에서 거처하고 여자는 안에서 거처한다.
깊숙한 내실은 문을 단단히 닫고 혼시(寺)148)가 지키며, 남자는 안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여자는 밖에 나가지 아니한다. (「예기」하동)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부부는 인륜(人倫)의 시초가 되기 때문에 삼가지 아니한다면, 곧 그 인륜의 질서가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부부가 서로 삼가는 데서 비롯된다고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남자는 안 일에 관해서 말하지 아니하고, 여자는 바깥 일에 관해서 말하지 아니한다.
제사지낼 경우와 상(喪)을 당하였을 때가 아니면 서로 그릇을 주고 받지를 아니한다.
그 서로 주고 받아야 할 경우라면, 곧 여자가 네모난 대광주리〔〕로써 받는다.
그 대광주리가 없으면, 곧 모두 앉아서 그것을 바닥에 놓아야만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진씨는 말하기를, "제사지내는 일은 엄숙한 경우이요, 상을 당하는 경우는 갑작스러운 때이므로, 다른 혐의가 없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우가 아니라면, 여자는 반드시 네모난 대광주리를 들어서 주는 자가 그것을 그 가운데에 놓도록 해야 되는 것이다.
모두 앉는다고 한 것은 남자나 여자가 모두 다 무릎을 꿇어 앉는 것을 말한다.
주는 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것을 땅바닥에 놓으면,
곧 받는 자 역시 무릎을 꿇고 앉아 그 땅바닥에서 그것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안과 밖에서 우물을 공동으로 사용하지 아니하고, 목욕간〔〕을 공동으로 사용하지 아니한다.
잠자리를 두루 통하게 아니하고 빌어 쓰는 일을 두루 통하게 아니하며, 남자와 여자가 의복을 통해서 입지 아니한다.
안의 말이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바깥 말이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한다.
남자가 안에 들어갈 적에는 휘파람을 불거나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다.
밤에 길을 갈 적에는 촛불을 들고 가되 촛불이 없으면 곧 그만둔다.
여자가 문 밖에 나갈 적에는 반드시 그 얼굴을 싸서 가리고, 밤에 길을 갈 적에는 촛불을 들고 가되, 촛불이 없으면 곧 그만둔다.
길에서는 남자는 오른쪽으로 다니고, 여자는 왼쪽으로 다닌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벽()은 목욕간을 가리킨다." 하였습니다.

「주역」에 이르기를, "집안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막는다면, 후회할 일이 없다." 하였습니다. (가인괘(家人卦) 초구(初九) 효사(爻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한(閑)은 하지 못하게 방지하는 법도를 일러 말한 것이다.
집안을 다스리는 자가 진심으로 법도를 가지고서 분수에 벗어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아내지 아니한다면,
사람의 정은 곧 죄를 짓는대로 흘러서, 반드시 후회하거나 한탄하게 되는 것이다.
어른과 어린이간의 질서를 상실하거나, 남녀간의 분별을 문란하게 하거나,
은의(恩義)를 손상하게 되거나, 윤리(倫理)를 해치게 되어, 그 <혼란이> 이르지 아니하는 곳이 없을 것이다.
능히 법도로써 그 분수에 어긋나는 일을 잘 막아낸다면 곧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니, 후회할 일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부녀자와 아이들이 지나치게 웃거나 떠든다면〔〕, 마침내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가인괘(家人卦) 구삼(九三) 효사(爻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희희()는 웃거나 즐기는 것이 절도가 없다는 것이다.
집안에서 같은 육친인 부자간에는 대개 정(情)으로써 예(禮)를 이기고, 은(恩)으로써 의(義)를 빼앗게 되는 것이다.
오직 강직하게 뜻이 선 사람만이 능히 사사로운 사랑 때문에, 그 정리(正理)를 잃지 않는 것이므로, 마음이 강직한 것을 최선으로 삼는다.
엄격하고 삼가는 것이 지나치면, 비록 정리가 손상되지 않을 수 없으나,
진실로 법도를 세우고 윤리를 올바르게 하면, 바로 은의가 존립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에 희희()하여 절도가 없으면, 법도가 그 때문에 폐지되는 것이요, 윤리가 그 때문에 문란해 지는 것인데,
그렇다면 어찌 능히 그 집안을 보존할 수 있겠는가.
끝내는 패가하는 지경에 이르고, 부끄러워서 후회하고 한탄하게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사람을 대하는 데 근엄해야 한다는 말씀

○ 사람이란 자기가 친애하여도 치우치게 되는 것이요, 자기가 천하게 미워하여도 치우치게 되는 것이며,
자기가 두려워하거나 공경하여도 치우치게 되는 것이요, 자기가 슬퍼하거나 가엾게 여겨도 치우치게 되는 것이며,
자기가 오만하게〔敖〕 굴거나 게을러도〔惰〕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아하면서도 그 나쁜 점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좋은 점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흔하지 않다. (「대학」하동)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지(之)자는 마치 어(於)자와 같은 것이다.
벽()은 치우친다는 것이다. 이런 다섯 가지는 사람에게 있어 그 본래부터 당연한 법칙이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심정이란 오직 그 향하는 바에 따를 뿐이고, 살펴보는 일을 더하지 아니하니,
그렇게 되면, 반드시 한쪽으로 치우쳐서 자신의 몸을 닦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북계 진씨(北溪陳氏)는 말하기를, "오(敖)는 다만 예(禮)에 간략한 것이며, 타(惰)는 다만 예에 게으른 것이다.
어떤 종류의 사람이 첫째 사랑할만하지도 않고, 다음으로 공경할 만하지도 않으며,
다만 보통이라면, 그를 접할 적에 스스로 소홀히 하거나 업신여기게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속담〔諺〕에, "사람이란 자기 자식의 악한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 논의 벼가 자란 것을 알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언(諺)은 속담을 말한다.
사랑에 빠진 자는 밝지 못하고, 얻기를 탐내는 자는 싫어하는 것이 없는 것인데, 이것은 치우쳐서 해가 되는 것이니,
집안이 가지런히 다스려지지 못하는 까닭이 된다." 하였습니다.

공자(孔子)는 말하기를, "오직 여자와 소인(小人)은 기르기가 어렵다.
그를 가까이 하면 공손하지 못하고, 그를 멀리 하면 원망을 하게 된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이 소인이란 역시 심부름시키는 종이나 하인을 말한 것이다.
군자가 신첩(臣妾)에게 장중한 태도로써 임하거나 사랑으로써 용납할 것 같으면, 곧 두 가지 우환이 없어진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적(嫡)·첩(妾)의 분별이 근엄해야 한다는 말씀

○ 처(妻)가 없으면 첩(妾)이 시중을 드는데, 처가 시중드는 밤에는 밤을 감히 차지하지〔當夕〕못한다. (예기)

오씨(吳氏)는 말하기를, "옛날에는 처와 첩이 시중을 드는데, 각각 그 맡은 날이 정해 있는 법이다.
당석(當夕)이라고 말한 것은 처가 맡은 날에 시중드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엄릉 방씨(嚴陵方氏)는 말하기를, "자기 분수에 넘친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초록빛 의복이여, 겉옷이 초록빛인데 속옷은 노란빛이로다.
근심스런 마음이여, 언제 그것이 멈출〔已〕것인가." 하였습니다. (패풍(風) 녹의편(綠衣篇))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녹색은 푸른 색이 노란 색보다 많이 섞인 간색(間色)이요, 황색은 중앙의 흙을 상징하는 정색(正色)이다.
간색(間色)은 천한 빛깔인데, 그것을 겉옷으로 삼고, 정색(正色)은 귀한 빛깔인데 그것을 속옷으로 삼는다는 것은
모두 다 그 마땅히 있어야 할 바를 잃은 것을 말한다.
이(已)자는 그만 그친다는 뜻이다.
장공(莊公)은 첩(妾)들을 치우치게 총애하여 현혹되었기 때문에, 그 부인 장강(莊姜)이 현숙하였는데도 그 정실(正室) 자리를 상실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詩)를 지어 초록빛으로 만든 겉옷과 노란빛으로 만든 속옷을 대조시켜서,
천한 첩이 높아져서 드러난 반면에 정실 부인이 유폐되어 미미해진 일을 비교하여,
나로 하여금 심란한 마음을 스스로 그치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유(辛有)는 말하기를, "두 왕후(王后)를 아우르거나〔竝后〕 서자가 적자(嫡子〕와 대등하게〔匹敵〕 하거나,
정치를 둘이서〔兩政〕하거나, 나라를 쌍립시키는〔禑國〕 일은 어지러운 근본이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춘추(春秋) 좌씨전(左氏傳))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하늘에는 해가 둘이 없고, 땅에는 왕이 둘이 없으며, 높은 자리에는 두 어른이 없다.
그러므로 첩은 후(后)와 아울러 같은 지위에 나란히 할 수가 없는 것이고, (병후(竝后)라 함은 첩(妾)이 후(后)와 같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서자(庶子)는 적자(嫡子)보다 더할 수가 없는 것이며, (필적(匹嫡)이란 서자가 마치 적자와 같은 신분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신하는 임금을 흉내내어 참람한 짓을 할 수가 없는 것인데, (양정(兩政)이란 신하가 제멋대로 임금의 명을 천단(擅斷)하는 것이고,
우국(禑國)이란 대부(大夫)의 고을을 마치 국도(國都)와 같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천지의 영구히 불변하는 도리요, 대의(大義)인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유(辛有) (주(周)나라의 대부(大夫)입니다.)는 이 네 가지로써 다 함께 말하였는데,
병후(竝后)를 첫머리로 삼았기 때문에, 여기에 서술하게 된 것입니다.

○ 한(漢)나라 문제(文帝)가 총애하는 신부인(愼夫人)과 궁궐 안에서 언제나 황후와 자리를 같이 해서 앉았습니다.
그 행차가 상림(上林)에 이르러 자리를 베풀었을 때에, 원앙(袁)이 신부인(愼夫人) 자리를 (좌(坐)자는 석(席)자와 같습니다.) 끌어 물리쳤습니다.
부인이 노하고 임금 역시 노하니, 앙이 앞에 나와 말하기를,
"신이 들어서 알기로는 높은 자리와 낮은 자리에 차례가 유지되어야만 곧 위와 아래가 화목해진다고 하는데,
지금 이미 후(后)가 서 있으므로 부인은 바로 첩입니다.
첩과 주인이 어찌 더불어 자리를 같이 하여 앉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폐하께서는 혼자만 인체(人)149)를 보지 아니하셨습니까." 하였습니다.
임금은 부인에게 타일러 말하고는, 앙에게는 황금 50근(斤)을 내려 주었습니다.
(진씨(眞氏)는말하기를, "문제(文帝)가 다만 그 죄를 용서해 준 것뿐만이 아니라, 또한 상을 내려주는 일까지 있었으니,
앙의 곧은 마음씨는 진실로 가상히 여길 만한 것이겠지만, 문제 역시 현명하였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태자를 정하는 데 근엄해야 한다는 말씀

○ 환공(桓公) 6년9월 정묘(丁卯)에 아들 동(同)150)이 탄생하였다. (춘추경(春秋經). 하동)

호씨(桓氏)는 말하기를, "경서(經書)에 아들 동〔子同〕이 탄생한 것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나라의 근본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요,
후세에 적자(嫡子)를 배정(配定)하는 경우에 그 정실(正室)소생의 신분을 빼앗는 일을 막기 위한 것이니 후세에 전하는 교훈의 뜻이 큰 것이다.
이것은 세자에<대하여> 말한 것인데, 세자(世子)라는 말을 쓰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인가.
천하에 나면서부터 귀해지는 사람은 없는 것이니, 천자에게 맹세를 하여야만 세자가 되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가의(賈誼)151)의 서(書)에서 이르기를,
'형세가 분명하면 곧 백성이 안정되어 도(道)가 한 길로부터 나오게 되기 때문에,
사람은 재상이 되기 위하여 서로 다투기는 할지라도, 세자가 되기 위해서 농간을 부리지는 아니하는 것이다.
재상의 그 지위는 높고 세자의 지위는 낮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자리는 지모(智謀)로써 가히 구할 수는 없는 것이요,
또 힘으로써도 가히 다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였다. (이상은 가의(賈誼)가 한 말입니다.)
옛날 사람은 세자가 탄생한다면 곧 발표하되, 그것을 겉으로 드러나게 하여 그 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다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니,
여러 사람들의 중망(衆望)에 부치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라의 근본이 정해지는 일이 바로 태자를 세울 때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가 처음 탄생하는 날에 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춘추(春秋)에 자동이 탄생한 일을 삼가 기록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희공(僖公) 5년 여름에, 공(公)과 제후(齊候)·송공(宋公)·진후(陳候)·위후(衛候)·정백(鄭伯)·허남(許男)·조백(曺伯) 등이
수지(首止)에서 왕세자(王世子)와 회합을 가졌다. 그 해 가을 8월에 제후들이 수지에서 맹약을 하였다.

임씨(林氏)는 말하기를, "혜왕(惠王)이 태자 정(鄭)을 폐위시키고 왕자 대(帶)를 세우려 하였다.
그 때문에,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왕태자와 회합을 가진 것이며, 그것으로 그 태자의 자리를 확정 지은 것인데,
이것은 주나라 왕실의 안정을 꾀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왕이 장차 귀여워하는 자식으로 세자의 자리를 바꾸려고 하니,
환공(桓公)이 그 일에 우려를 표시하여, 큰 나라를 끌어 당기고 작은 나라를 붙들어서, 수지에서 회합을 가진 것이다.
그것으로 그 자리가 확정되고 태자는 왕위를 이어 천조(踐祚)하게 되니 이이가 곧 양왕(襄王)이다.
이는 한 번 바로 잡아 부자(父子)와 군신(君臣)의 도를 모두 다 얻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그것을 칭찬하기를, '관중(管仲)이 환공(桓公)을 도와서 천하를 한 번 바로 잡았기 때문에,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그 혜택을 입고 있다. 만일 관중이 없었다고 하면
나는 머리를 풀고 옷섶을 왼쪽으로 여미면서 살 뻔하였던 것이다."152) 하였습니다.
중국(中國)이 중국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부자와 군신의 큰 윤리가 있었기 때문이요,
그것을 일단 상실하였더라면 오랑캐〔夷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수지(首止)에 모여서 맺은 맹약은 위대한 것 중에서도 가장 위대했던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한(漢)나라 문제(文帝) 원년 정월에 유사가 진언(進言)하기를,
"일찍 태자를 세우는 것은 종묘(宗廟)를 존중하여 받드는 일이므로, 태자를 세울 것을 청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이미 덕이 없어서 상제의 신명(神明)은 아직 감동하지 아니하고,
천하의 백성들이 아직 만족스러운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지금 비록 천하에 재능이 있고 인격이 훌륭한 현성(賢聖) 가운데에서 덕망이 있는 사람을 널리 구하여
천하를 그에게 선양(禪讓)해 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태자를 미리 세워야 한다는 것은
나의 부덕한 것을 더 가중시키는 것이니, 천하를 어찌하겠는가.
천천히 하라." (안(安)은 천천히 하라(徐)는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유사는 말하기를, "태자를, 미리 세우자는 것은 종묘와 사직을 정중하게 받들고, 천하를 잊지 않는 길입니다.
후사(後嗣)를 세우는데 반드시 아들로써 정하는 내력이 벌써 오래입니다.
아들 계(啓)(경제(景帝)의 이름입니다.)는 나이도 가장 위이고, 순후하고 인자(仁慈)하므로,
바라옵건대, 그를 세워 태자로 삼으소서." 하니, 상은 곧 그것을 허락하였습니다.

○ 제나라 경공(景公)의 적자(嫡子)는 죽고 그 애첩인 예희(芮姬)가 아들 다(茶)를 낳았습니다.
다는 어린 데다 그 어미는 천하여 행실이 없었습니다.
여러 대부들은 그가 대(代)를 이을 사자(嗣子)가 될까 두려워하여, 진언(進言)하기를,
"여러 아들 중에서 나이가 위이고 가장 어질고 덕있는 자를 택하여 태자로 삼으소서." 청원하였습니다.
경공은 늙어서 후사를 정하는 일에 대하여 말하기를 싫어하였고,
또 한편으로 다의 모자(母子)를 사랑하여 그를 태자로 세우고 싶었으나, 그 일을 입 밖에 내기를 꺼려하여,
여러 대부에게 이르기를, "다만 낙관(樂觀)할 따름이다. 어찌 나라에 임금이 없을까 근심을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경공이 병으로 눕게 되자 국혜자(國惠子)·고소자(高昭子)에게 명하여, 어린 아들 다를 세워 태자로 삼고 여러 공자(公子)들을 물리치게 하였습니다.
경공이 죽자 태자 다가 그 자리에 섰는데, 이이가 곧 안유자(安孺子)입니다.
여러 공자들은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모두 망명하였습니다.
전걸(田乞) (제나라 대부입니다.) 이 고소자(高昭子)를 쳐서 그를 죽이고,
이에 곧 사람을 시켜 노(魯)나라에 보내어 공자(公子) 양생(陽生) (경공자(景公子)입니다.) 을 불러 들이고는,
여러 대부들에게 양생을 세우기로 맹서하기를 요청하였는데, 이 이가 도공(悼公)입니다.
안유자를 귀양보내어 죽이고, 예자(芮子)를 축출하였습니다.
예자는 미천한 자였고, 또 유자(孺子)는 어렸기 때문에 권위가 서지 아니하여 나라 사람들이 그들을 경멸했습니다.
(문제(文帝)는 일찌기 나이 위인 자(長)를 세웠기 때문에 한(漢) 나라가 흥하였고,
반대로 경공(景公)은 미리 세우지도 아니하고 나이 어린 자를 세웠기 때문에 제(齊)나라가 그로써 어지러워졌습니다.
하나는 가히 본받을 만하고 하나는 가히 경계할 만합니다.)

 

◆ 다음은 친척을 다스리는 데 근엄해야 한다는 말씀

○ 나라가 잘 다스려지거나 어지러워지는 일은 오직 여러 관원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벼슬자리는 사사로이 친밀한 자에게 미치지 아니하여야 하고, 오직 그 능력이 있는 자를 등용하여야 하며,
작위(爵位)는 악덕(惡德)한 무리에게 미치지 아니하여야 하고, 오직 어질고 덕있는 자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상서(商書) 열명(說命))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육경(六卿)153)과 여러 집사(執事)를 관(官)이라 하고,
공(公)·경(卿)·대부(大夫)·사(士) 등을 작(爵)이라 한다.
관은 일을 맡고 있기 때문에 능이라 하고 작은 덕(德)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질다한 것이다.
오직 현명하고 오직 유능한 이로 하는 것은 잘 다스려지는 길이요,
사사로이 친밀하거나 악덕(惡德)한 이로 하는 것은 어지럽게 되는 길이다." 하였습니다.

○ 오씨(吳氏)는 말하기를, "관과 작을 사사로이 친밀한 이나 악덕한 무리에게 미치게 한다면
사정(私精)에 가리게 되어 하늘의 총명을 법받는 것이 아니다." 하였습니다.

○ 한(漢)나라 문제 때 두후(竇后)154)의 형 장군(長君)과 아우 소군(少君)은 후(后)가 섰다는 소문을 듣고,
글월을 올려 스스로 후에게 고해 말하였습니다.
후가 황제에게 말하자 황제가 불러 들여서 물으니 그 까닭을 다 말하였습니다.
이에 두후가 그들 손을 붙들고 울고는, 장안(長安)에다가 집을 마련하여 주었습니다.
강후(絳侯) (주발(周勃) 입니다.)·관장군(灌將軍)(영()입니다.) 등이 말하기를,
"이 두 사람은 출신이 미천하므로 불가불 스승을 택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며,
또 다시 여씨(呂氏)를 본받는다면 큰 일인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이에 곧 나이 많은 사람 가운데 절도 있고 행실 있는 자를 뽑아 같이 있게 하니,
장군과 소군은 이로 말미암아 물러나 양보하는 군자(君子)가 되었고, 감히 부귀로써 다른 사람에게 교만을 떨지 아니하였습니다.
뒤에 황제가 광국(廣國)(바로 소군의 이름입니다.
소군은 그의 자(字)인 것입니다.)이 현명하기 때문에 재상으로 삼으려고 하였으나,
천하 사람들이 사사롭다고 여길까 두려워하여, 오래동안 생각한 끝에 불가하다고 여겨 신도가(申屠嘉)155)를 정승으로 삼았습니다.

○ 성제(成帝)는 건시(建始)156)원년에 그 여러 외숙(外叔)들을 모두 봉(封)하여 후(侯)로 삼았는데,
여름 4월에 누른 안개가 사방으로 둘러싸였습니다.
그런데 상(上)은 그 큰 외숙 대사마(大司馬) 왕봉(王鳳)에게 정사를 맡겼습니다.
이에 유향(劉向)157)은 왕씨(王氏)의 권력과 지위가 너무 성하고 상제는 시(詩)·서(書)·옛글만을 좋아하는 까닭으로,
이에 곧 상서(尙書) 홍범(洪範)에 의해서 상고(上古) 이래로부터 춘추(春秋)와 육국(六國)을 거쳐
진(秦)·한(漢)에 이르는 동안의 상서로운 징조와 천재(天災) 지변(地變)의 기록들을 한데 모았습니다.
그 행적(行跡)을 미루어 복과 재앙을 관련시켰으되, 그 점(占)의 효험을 나타낸 것을 같은 유(類)를 따라 모아서 각각 조목(條目)을 세웠는데,
모두 11편이었습니다.
이름하여 홍범 오행전론(洪範五行傳論)이라 하고, 아뢰어 들이니,
천자는 향(向)이 충성된 정성으로 봉(鳳)의 형제들 때문에 논을 지은 것을 알았으나, 끝내 왕씨(王氏)의 권력을 능히 빼앗지는 못하였습니다.
<또> 왕장(王章)은 봉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러 임금의 존재를 가리는 허물을 아뢰자, 상은 깨달은 바 있어서 그것을 받아 들였습니다.
봉은 우려하고 두려워하여 상소를 올리기를 해골이나 성하게 물러갈 것을 애걸하였는데,
그 글의 뜻이 대단히 애처로워서 태후는 그것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음식을 들지 아니하였습니다.
상도 어려서부터 봉에게 친히 의탁하였기 때문에, 차마 폐출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곧 상서(尙書)로 하여금 장을 탄핵하도록 하고, 법리(法吏)를 시켜 마침내 옥중에서 죽게 하였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공경(公卿)들은 봉을 만나면 곁눈으로 흘겨 보았습니다.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성제(成帝)는 본래 장(章)을 유도하여 말을 올리도록 시켜놓고는,
이미 봉을 물리치는 일을 차마 하지 못하게 되니까 이에 곧 상서로 하여금 장을 탄핵하도록 하였으니,
이는 유인하여 죄에 빠지도록 한 것이다.
어찌 그 농간을 부리는 신하에게는 차마 하지를 못한다 하고 나라를 위하여 충성된 말을 올리는 선비들에게는 차마 할 수가 있는 것이겠는가.
충성된 말을 올리는 선비가 누구를 위해 계획한 일이 길래 조금도 애석한 마음이 없는 것인가." 하였습니다.

○ 신이 살피건대, 성제는 깨달은 바가 있고도 왕씨(王氏)를 물리치는 일을 능히 할 수 없었던 것이니,
이것은 나라의 위급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구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임금의 마음이 이와 같다면 또 다시 그것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아, 슬픕니다.)

봉이 병들자 왕음(王音)을 천거하여 자기를 대신하게 하였으며, 봉이 죽자 음이 대사마(大司馬)가 되었습니다.
음이 죽자 왕상(王商)이 대사마가 되었으며, 상이 죽자 왕근(王根)이 대사마가 되었습니다.
근이 병으로 벼슬을 사면하자 왕망(王莽)158)을 천거하여 자기를 대신하도록 하였는데,
왕망은 마침내 한나라의 역적이 되었다가 동한(東漢)이 일어나게 되자, 주살(誅殺) 당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외척(外戚)의 화는 역사상에 끊임없이 기록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두 사람의 경우만을 취하여 여기에 기록하였습니다.
두씨(竇氏)의 현명한 것은 가히 법도로 삼을 만하고, 왕씨(王氏)의 간악한 것은 가히 경계하여야 할 만합니다.
어떤 이는 문제(文帝)가 광국(廣國)을 재상으로 삼지 않은 것을, 내심으로 그를 부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협의받는 일을 피하려고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문제를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자손들을 위하여 생각하는 것이 깊었던 것입니다.
광국과 같이 현명한 이도 오히려 나라의 정치권력을 잡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현명하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서 이겠습니까.
이것으로써 방벽을 삼았으되, 자손들이 가법(家法)에 어두어서, 역시 외가(外家)때문에 나라를 망쳤는데,
하물며 평소부터 자손을 위하여 남겨 준 계책도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대개 외척이 정사를 어지럽게 한 것은 모두 다 임금이 능히 현명한 사람을 좋아하지 못한 까닭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다만 그 현명한 이를 능히 좋아하지 못한 까닭에 충(忠)·사(邪)·선〔臧〕·악〔否〕을 아득히 분별하지 못하였고,
소원(疎遠)한 신하들은 모두 믿지 못할 것으로 돌려버렸으며, 다만 외척붙이만이 친근하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소인은 이(利)를 보면 의(義)를 잊어버려 비록 부자간이라고 오히려 틈이 나지 아니할 수가 없을 것인데
하물며 외척 권속들에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를 깨달은 군자라야만 비로소 임금을 아버지와 같이 사랑할 수가 있어서, 절개를 지키고 의에서 죽을 수가 있는 것인데,
어찌 친하고, 소원한 것이나, 멀고 가까운 구별이 있겠습니까.
이로써 아뢴다면 임금의 외척은 재주와 그 덕망이 겸비하였거나 충성이 현저하게 드러나서
그 때의 청론(靑論)의 종주(宗主)가 되는 이가 아니라면 끝내 그에게 나라의 정사를 맡길 수 없는 것입니다.
대개 그들은 은혜로써 무마하고, 그 재주와 능력을 적절하게 등용하되 그들에게는 그 녹(祿)만은 잃지 않게 하는 것이
본래 외척권속들을 가르치는 선책(善策)이며, 겸손하여 물러나되 스스로 분수를 지키며,
요직에 있지 아니 하고 가족을 보호하여 한 집안을 온전하게 하는 것은 역시 친척들이 스스로 처신하는 좋은 계책입니다. 훌륭한 일입니다.
번굉(樊宏)(한(漢) 광무(光武)의 외숙입니다.) 은 말하기를, "부귀가 가득 차서 넘쳐 흐르면 그것을 끝까지 잘 보존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직 없다.
나도 영화와 권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천도(天道)는 가득 차 넘치는 것을 싫어하고 겸양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니,
전세(前世)의 귀척(貴戚)들이 모두 다 밝은 경계가 되는 것이다.
몸을 보호하고 온전히 하는 일이 어찌 즐겁지 아니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굉은 겸손하고 유순하며, 두려워하고 삼가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처신하여 종족(宗族)은 그 덕화에 물들어 일찌기 범법한 일이 없었으며,
영화와 총애를 종신토록 받았고, 자손들은 그 남은 경사를 받았습니다.
후세의 임금으로서 외가를 보존시키려고 하는 이는 마땅히 이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외척이 권력을 탐내고 세도를 부리기를 즐겨하여, 그칠 줄을 모르고 뻗쳐나가 나라를 위태롭게 하거나,
집안을 패망하게 하는 이도 역시 이것을 본받아서,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바르게 고치는 것이 옳습니다.

 

◆ 다음은 환관 · 내시를 대하는 데에 근엄해야 한다는 말씀

○ 「시경」에 이르기를, "교훈도 깨우침도 안되는 것은 부녀자〔婦〕와 환관〔寺〕의 말이다." 하였습니다. (대아(大雅) 첨앙(瞻仰)편)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시(寺)는 환관(宦官)의 뜻이다.
그 말이 비록 많아도 가르치고 깨우치는 이익이 있지 아니한 자는 오직 부인들과 내시(內侍)일 뿐이다.
어찌 그를 가까히 할 수가 있겠는가.
대개 이들 둘은 항상 서로 의지하여 간사한 짓을 일삼는 것인데, 아울러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구양공(歐陽公)이 일찌기 말하기를, '환관들의 끼치는 화는 여자를 총애하는 일보다도 더 심하다.' 하였으니, 그 말이 대단히 적절한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로서 가히 경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 공씨(孔氏)는 말하기를, "환관은 임금을 친히 가까히 받드는 자이므로,
평범하고 용렬한 임금은 그 나이 어릴 적에 친숙히 익힌 습관과 아침 저녁으로 심부름시키던 것으로써,
찾아가서 묻는 것을 기탄〔忌憚〕없이 하며, 은혜와 친근한 것만 즐겨하는 기색이 있다.
또한 그 내시(內侍)는 궁중 깊숙히 오래도록 거처하여서 옛 제도에 자못 밝고 임금의 뜻을 잘 탐지하여 알며,
때로는 혹 안색을 화기있게 하기도 하고, 용모를 후하게 하기도 하여, 꾀를 숨기고 간교를 품으며,
때로는 혹시 민첩하게 빨리 대하기도 하고, 기민한 재주로 간교를 꾸미며,
진실을 어지럽게 하여 드디어 보고 듣는 것을 혼미하게 하는 것인데, 어리석은 임금은 이런 자를 신임하여 맡기게 된다.
나라가 멸망하는 것이 이 때문에 일어나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씨의 말은 환관들의 생각과 태도를 대단히 잘 밝힌 것입니다.)

○장자소(張子韶)는 말하기를, "환관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나라의 상서롭지 못한 것이다.
요(堯)·순(舜)의 환관은 전(典)과 모(謨)에 알려져 있지 않고, 삼왕(三王)의 환관도 역시 서(誓)와 고(誥)159)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수조()160)가 제(齊)나라에서 알려졌기 때문에 제나라는 어지러워졌고,
이려(伊戾)161)가 송(宋)나라에서 알려졌기 때문에 송나라는 위태롭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 당(唐)나라 환관 구사량(仇士良)162)이 벼슬을 내놓고 물러나게 되어 그 무리들이 사가(私家)로 전송하였는데,
사량이 권세와 총애를 오래토록 변치 아니하고 더욱 더 받을 수 있는 술법을 가르쳐 말하기를, "천자(天子)는 잠시라도 한가롭게 해서는 안된다.
항상 사치로써 그 이목(耳目)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하되, 날로 새롭게 하고 달고 성대하게 하여, 다시 다른 일에 관심이 미칠 여가가 없게 하여야만 한다.
그렇게 하여야만 가히 제 뜻대로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삼가 조심해서 황제가 책을 읽고 유학(儒學)하는 신하와 친근하게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가 전대(前代)의 흥망을 보고 속심으로 근심하거나 두려워 할 줄 알게 되면 우리 무리들은 푸대접을 받게 되며,
물리침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하니, 그 무리들은 감사해 절하고 돌아갔습니다.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사량(士良)의 이른바 '가히 뜻대로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그렇지 않다.
대저 임금이 덕을 닦고 학문을 강론한다면, 곧 천하가 안정하여 곤충이나 초목이라도 모두 그 있을 바를 얻을 수 있는 것인데,
하물며 좌우에 있는 신하로서 그 있을 바를 얻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
임금이 덕을 닦지 아니하거나 학문을 강론하지 아니한다면 곧 천하가 어지럽게 되어 곤충이나 초목이라도 모두 그 있을 바를 잃게 되는 것인데
하물며, 좌우에 있는 신하로서 그 있을 바를 얻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진(秦)나라의 왕실이 위태롭자 이사(李斯)163)·조고(趙高)164)는 죽음을 당하였고,
한(漢)나라 왕업이 무너지자 장양(張讓)165)·조충(趙忠)166)도 죽음을 당하였다.
사량은 소인이기 때문에 단지 사사로운 권세를 탐내고 총애를 굳게 받는 것만으로써 영화를 누릴 줄만을 알았을 뿐이요,
나라가 패망하고 집안이 파멸하면 그 권세와 총애도 역시 보존할 수가 없게 된다는 이치를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량은 오조(五朝)에 걸쳐 정치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고 그 자신만은 비록 요행히 화를 면하였다 할지라도
집안이 파산당하는 화가 마침내 그가 죽은 뒤에 미치게 되었던 것이다.
어찌 마존량(馬存亮)167)과 같은 무리들이 권력을 탐낸다든가, 총애를 넘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만 같겠는가.
그러나 사량의 이 말은 옛부터 간사한 신하들이 미처 말하지 못한 바의 것이었다.
임금된 이는 마땅히 이 한 통의 글을 베껴서 그 곁에 놓아 두고서, 반드시 유생을 가까이 하고,
반드시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친하게 다룰 것 같으면, 곧 사치로운 것이 임금을 능히 현혹시킬 수 없을 것이며,
간사스러운 아첨이 능히 그 현명을 가리울 수 없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곧 사량의 무리들에게 우롱당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환관의 화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반드시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개 그가 임금을 친근히 하여 정이 익숙하여지거나, 그 행동이 숨겨져 차차로 젖어들어간 것이 넓고,
세월이 오래가면 임금은 선(善)을 좋아하는 마음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없어지고 해이해지는 까닭입니다.
한(漢)나라에서는 <그들>에게 위력과 권세를 주었으며, 당(唐)나라에서는 병권(兵權)을 맡기게 되어,
그들을 제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던 일이 역사에 현저하게 밝혀져 있는 데, 가히 거울로 삼아 경계할 만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선왕(先王)의 가법(家法)이 엄숙하여서, 2백 년 내려오는 동안 일찌기 환관이 정치에 참여하였던 일은 없었던 것인데,
이것은 실로 근대에서는 드물게 듣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를 믿고 소홀히 하여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날로 새롭게 단속하고 억제하여, 궁중(宮中)과 모든 관서(官署)가 한 몸이 되어 내시의 무리들에게 사대부를 엄하고
두려운 것으로 여기게 하여야만 선왕의 가법을 가히 오래도록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이 살피건대, 이 근엄(謹嚴)의 장(章)에 집안을 다스리는〔治家〕 도가 다 갖추어져 있다고 봅니다.
대개 내외(內外)를 분별하여 예법으로써 간격을 두게 하면 남녀가 각각 그 올바른 것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며,
편벽된 사심을 물리치고 공명한 것으로써 임한다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이치에 맞게 되는 것이며,
정실과 첩의 구분을 엄격하게 한다면 곧 위는 화락하고 아래는 공경하게 되는 것이며,
나라의 근본을 정하는데 삼가하고 조심한다면 통일이 되어 백성들이 편안하게 될 것이며,
친척이나 권속들은 겸양하는 덕으로써 가르친다면 의리가 정당해지고 은혜가 융숭하게 되는 것이고,
환관들을 늘 정당한 법규로써 단속하고 거느린다면 양(陽)은 자라나고 음(陰)(환관은 음류陰類 입니다.)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니,
그 강령(綱領)은 예의로써 간격을 두고 공도(公道)로써 임하는 것일 뿐인 것입니다.
예의가 엄정하지 아니하거나, 마음이 공평하지 아니하다면 곧 좋은 말이나 잘한 정사가 모두다 구차스럽게 글월에 쓰이는 수식어가 될 따름입니다.
이른바 예의를 엄정하게 한다는 것은 임금이 거처하는 궁중〔宮〕이 정숙하고,
존비(尊卑)와 장유(長幼)의 질서가 정연하여 감히 그 분수를 넘지를 못하며,
친척 권속들이 삼가하고 조심하여 감히 사사로이 통하거나, 청알(請謁)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 것입니다.
또 이른바 마음이 공평하다는 것은 안팎을 한결같이 보고, 조금이라도 편벽한데 얽매이는 일 없이,
내정(內庭)에서 선(善)한 일을 한 이나, 악(惡)을 한자나 친척들 중에서 충성된 일을 한 자나,
죄를 범한 자를 모두다 유사에 돌려서 그 상벌을 논하게 하되, 한결같이 바른 것으로 결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개 이와 같이 하여 윤리가 바로 잡히거나 은의가 돈독하게 된다면 곧 이것을 미루어 치국(治國)·치천하(治天下)를 할 수 있으며,
어디를 가더라도 정당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옵소서.

 

< 주 >

148) 혼()은 중문(中門)을 말하는 것이요, 시(寺)는 환관으로 즉 중문을 지키는 환관이다.

149) 중국 한(漢) 나라의 고조(高祖)가 죽은 뒤에 그의 애첩이었던 척부인(戚夫人)을
고조의 정실 황후인 여후(呂后)가 팔과 다리를 자르고 눈을 빼고 혀를 자른 뒤 뒷간에 서있게 하고 사람돼지라고 하였던 것을 가리킨다.

150)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 환공(桓公)으로 동(同)은 그의 이름이다.

151) 중국 서한(西漢)의 학자 정치가. 낙양(落陽) 사람.
23세에 박사(博士)가 되고 문제(文帝)에게 상주하여 예악(禮樂)을 일으키고 제도(制度)를 개혁할 것 등을 역설했다.
뒤에 좌천되어 양왕(梁王)의 태부(太傅)가 되었다가 33세로 요절했다.
저서로 신서(新書) 좌씨전훈고(左氏傳訓) 등이 있다.

152) 머리를 풀어 산발하고 옷 섶을 왼쪽으로 여미는 것은 오랑캐의 풍속이었다.
공자가 관중(管仲)의 공로를 칭찬하여 '만일 관중이 아니었더라면 중국 땅이 오랑캐의 나라로 되었을 것이다'라고 한 말이다.

153) 육관(六官)의 장(長). 천관(天官)의 장으로서 궁중의 일을 통할한 총재(宰),
지관(地官)의 장으로서 내정(內政)과 교육을 통할한 사도(司徒),
춘관(春官)의 장으로서 제사·예악을 통할한 종백(宗伯),
하관(夏官)의 장으로서 군사를 장악한 사마(司馬), 추관(秋官)의 장으로서 사법·외교를 장악한 사구(司寇). 동관(冬官)의 장으로서
영조(營造) 공작(工作)을 장악한 사공(司空) 등을 말한다.

154) 중국 한(漢)나라 관진(觀津) 사람.
여태후(呂太后) 때 양가(良家) 자녀로 선발되어 궁녀(宮女)로 들어 갔다.
뒤에 태후가 궁인(宮人)들을 축출하여 제왕(諸王)들에게 하사 할 때 대(代)로 가서 대왕(代王)의 총애를 받아 경제(景帝)를 낳았다.
문제(文帝)가 즉위 하자 황후(皇后)가 되었다.

155) 중국 한(漢)나라 사람. 고조(高祖)를 좇아서 항우(項羽)와 싸웠으며 문제(文帝) 때에 재상이 되었다.
위인이 청렴 정직하였는데 경제(景帝)가 즉위한 뒤로 조조(晁錯)가 용사(用事)하자 그를 미워하며 분통이 터져 죽었다.

156) 한(漢) 성제(成帝)의 연호(年號). BC.31∼28.

157) 중국 전한 시대의 학자. 자는 자정(子政)). 선(宣) 원(元) 성(成) 3제(帝)를 섬겼다.
기원전 26년 광록대부(光祿大夫) 때에 왕의 칙명을 받아 궁중의 장서를 바탕으로 하여 여러 가지 책의 교정을 시작하였다.
저서로는 설원(說苑) 신선(新序) 등이 있다.

158) 중국 전한(前漢) 말기의 참주(僭主). 자는 거군(巨君).
책모(策謨)로써 평제(平帝)를 죽이고 한조(漢朝)를 빼앗아 즉위하여 신(新) 나라를 세웠으나
내치와 외교에 모두 실패하고 재위 15년만에 멸망하였다.

159) 모두 중국 고전(中國古典)인 서경(書經)에 있는 편(篇)의 이름으로
대우모(大禹謨) 고요모(皐陶謨) 감서(甘誓) 탕서(湯誓) 강고(康誥) 중훼지고(中之誥) 등을 가리킨다.

160) 중국 춘추(春秋)시대 제(齊)나라 사람. 제환공(齊桓公)의 내시(內侍)로서 매우 총애를 받았다.
뒤에 환공이 죽자 역아(易牙) 개방(開方) 등과 함께 난(亂)을 일으켰다.

161) 중국 춘추시대 송(宋)나라 사람으로 성은 혜장씨(惠墻氏). 이려(伊戾)는 그의 이름이다.
내시(內侍)로서 태자(太子) 내시의 장(長)을 맡았는데 늘 태자의 총애를 받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여겨
태자를 모함하여 죽게 하였다가 뒤에 처형당하였다.

162) 중국 당(唐)나라 흥녕(興寧) 사람. 자는 광미(匡美), 20여년
 동안 권좌에 있었는데 성품이 잔인 무도하여 많은 사람을 살해 하였다.
163) 중국 전국(戰國)시대 초(楚)나라 사람. 진(秦)의 객경(客卿)이었으며 그 후 승상(丞相)이 되었다.
시황제(始皇帝)를 도와서 천하를 통일하고 군현제(郡縣制)를 실시하여 중앙집권을 확립하고
분서(焚書)에 의하여 사상통일을 강행하였으며 또 소전(小篆)을 만들었다.
뒤에 조고(趙高)의 모함에 의하여 함양(咸陽) 시중에서 처형당하였다.

164) 중국 진(秦) 나라의 환관(宦官).
시황제(始皇帝)가 죽자 거짓 조서를 꾸며 시황제의 장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우둔한 호해(胡亥)를 제 2세 황제로 즉위시켰다.
이어 이사(李斯)를 죽이고 정승(政丞)이 되어 온갖 횡포한 짓을 많이 하고 음모를 꾸미다
나중에 자신은 처형 당하고 삼족이 멸하였다.

165) 중국 후한(後漢) 영천(穎川) 사람. 영제(靈帝) 때 중상시(中常侍) 벼슬을 지냈다.
임금에게 권유하여 세금을 많이 걷우게 하고 궁실(宮室)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심했다.
영제가 죽은 뒤 하상(河上)으로 도망하다가 군사가 급히 추격하자 물에 빠져 죽었다.

166) 중국 후한 시대 사람으로 중상시(中常侍)를 역임했으며 도향후(都鄕候)에 봉해졌다.
성격이 잔학하고 탐욕이 많았는데 뒤에 원소(袁紹)에게 붙잡혀 처형 당하였다.

167) 중국 당(唐)나라 하중(河中) 사람으로 자는 계명(季明)이다.
본래는 환관(宦官)이었는데 소현명(蘇玄明)의 난(亂)을 평정하는데 있어 최고의 공훈을 세워 2백호(二百戶)를 봉하였다.
뒤에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일부러 권좌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한직을 구하여 나갔으며 이어 조용히 벼슬에서 물러났다.

 


제7장. 절 검(節儉)

 

신이 살피건대, 정가(正家)하는 범절은 이미 앞 장(章)에서 다 갖추어졌다고 봅니다.
그런데 절검(節儉)은 무엇보다도 임금에게는 가장 미덕(美德)이 되는 것이므로 표출하여 밝혔습니다.

공자(孔子)는 말하기를, "우(禹)임금은 나로서는 조금도 흠잡을 데가 없는 것이다.
먹는 음식은 간략〔菲〕하였으나 귀신에게는 효성을 다 하였고,
의복은 거칠었으나 불의(衣)와 면관(冕冠)은 아름답게 하였으며, 궁실(宮室)은 허술하였으나 봇도랑〔溝〕에는 힘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우(禹)임금은 나로서는 조금도 흠잡을 데가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간(間)은 벌어진 틈이니, 그 벌어진 틈을 가리켜 논의하여 비난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비(菲)는 소박하다는 뜻이다.
귀신(鬼神)에게 효성한다〔致孝〕는 것은 제사지내는 일을 풍족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의복(衣服)이란 늘 입는 보통 옷을 말한 것이다. 불()은 무릎을 가리는 것이니, 가죽으로 그것을 만들었다.
면(冕)은 머리에 쓰는 관인데, 모두 다 제사지낼 때 입고 쓰는 것이다.
봇도랑〔溝〕은 전답(田畓) 사이에 있는 도랑이다. 그것으로써 전답의 경계를 바르게 하고, 가뭄과 장마에 대비한다.
혹시 풍족하거나 혹시 검소한 것은 각각 그의 당한 대로 좇아서 적합하게 하였으므로, 벌어진 간격을 논의하거나 비난할게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번 다시 말하여 깊이 찬미하였던 것이다." 하였습니다.

○ 양씨(楊氏)는 말하기를, "자기 자신을 받드는 일에 대하여는 박하게 하면서 백성들을 위하는 일에는 부지런히 힘썼으며,
종묘(宗廟)와 조정(朝廷)에는 입는 예복은 아름답게 꾸몄으니, 이는 천하를 가지고서도 사사로운 물건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므로,
그 어찌 비난할만한 틈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주공(周公)은 말하기를 "문왕(文王)은 비천한 옷을 입고 강공(康功)과 전공(田功)을 이룩하였다."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무일(無逸))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비천한 옷〔卑服〕은 이른바 나쁜 의복이다.
강공(康功)은 백성을 편안히 살게 하는 공덕이요, 전공(田功)은 백성을 기르는 공덕을 말한다.
문왕(文王)은 의복을 받드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성품이었고, 오로지 백성들을 편안히 하고 기르는 데만 그 뜻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비천한 옷이라고 한 것은 대개 일단(一端)을 들어 말한 것이다
궁실(宮室)과 음식 등을 받들기도 박하게 하였다는 것을 이것으로써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 한(漢)나라 문제(文帝)는 천자에 즉위한 지 23년이나 되어도 거처하는 궁실(宮室)이나,
새 짐승을 놓아 기르는 동산이나, 수레와 타는 말이나, 의복과 부리는 하인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모두 다 증가시킨 것이 없어서
불편한 것이 있어도 번번히 늦추어서 백성들을 이롭게 하였다.
일찍이 임금이 노대(露臺: 지붕이 없는 높다란 집)를 지으려고 목수를 불러들여 설계하도록 하였는데,
비용이 백 금(百金)이나 들게 되었다. 그러자 상제가 말하기를, "백 금이라고 하면 중산층(中産層) 열 집의 재산에 해당된다.
내가 선제(先帝)의 궁실을 받들고서도 항상 그것을 두려워하고 부끄럽게 여기고 있는데, 어찌 노대를 지울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는 검은 빛깔의 검소한 비단 옷〔戈〕를 입었으며, 신부인도 땅에 끌리지 않는 옷을 입었고,
휘장과 장막에는 무늬있는 수를 없이 하여 진실하고 순박한 것을 천하에 앞장서서 보여 주었습니다.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문제가 한 이 말에는 두 가지 선(善)한 뜻이 있다.
첫째로 백 금이 중산층 열 집의 재산에 해당된다고 말한 것은 백성들의 생활해 가는 어려움을 염려한 것이며,
다음으로 내가 선제(先帝)의 궁실을 받들고 항상 두려워하고 부끄럽게 될까 여긴다고 말한 것은,
조종(祖宗)의 창업한 어려움을 생각한 것이다.
임금이 항상 이와 같은 마음으로써 있다면 비록 사치를 하도록 권고하여도 역시 하지 아니할 것이다.
무릇 여러 대를 이어 내려오는 임금 중에는 이목(耳目)의 오락만을 자행하는 이가 많이 있는 것이다.
이는 진정 얼마 아니되는 재용(財用)도 생민(生民)의 고혈(膏血)이고 자기가 거처하는 곳이
모두 다 선세(先世)에 대대로 쌓아온 나머지의 공덕 때문임을 알지 못하는 연고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문제가 한 이 말을 두 가지 선(善)한 뜻이 있다. 한 것이니,
가히 후세(後世)에 본받을 법이 될 만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무제(武帝) 때에는 천하가 낭비하고 사치하여 말단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상제가 묻기를,
"내가 백성들을 교화시켜 선량하게 만들고 싶은데 어떤 방법이 없겠는가, 하니
동방삭(東方朔)168)이 대답하기를, "요(堯)·순(舜)·우(禹)·탕(湯)·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강왕(康王) 등 상고(上古) 때의 일들은
수천 년이나 되었기 때문에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신이 바라옵건대, 가까이 효문황제(孝文皇帝) 당시 덕이 높고 나이가 많은 이들이 모두 다 듣고 본 일들을 진술하겠습니다.
귀히 천자가 되어 부(富)가 사해(四海)를 소유하였는데도 스스로는 검은 빛깔의 검소한 비단 옷〔戈〕을 입었고,
발에는 가죽신(革)을 신었으며, 가죽 띠를 칼 띠로 삼았고, 청포를 바닥에 까는 자리로 만들었으며,
병장기에는 칼날이 없었고 의복〔縕袍〕에는 무늬가 없었습니다.
글 올리는 상서(上書) 주머니를 모아서 대궐의 휘장을 만들고, 도덕을 아름다운 것으로 삼았으며, 인의(仁義)를 주칙으로 삼았습니다.
이에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 모습을 우러러보고 그것을 풍속으로 이루어 소연(昭然)히 교화되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토목(土木)에다 무늬와 수를 입히고 마구간의 말에다 아름다운 비단으로 엮은 너울을 씌우며,
궁녀들은 구슬과 보석을 드리우며 빛나는 장식품으로 꾸미고 진기하고 괴이한 것들을 수집하고 있으니,
황제께서는 이 같이 방탕하고 사치스러우면서 백성들에게는 홀로 사치를 하지 못하게 하며
농사짓는데 실패하지 않게 하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폐하께서 진심으로 신(臣)·삭(朔)의 계책을 쓰실 수가 있다면 이것 저것의 휘장을 걷어내어 네 거리에서 불살라 없애버릴 것이며
주마(走馬: 잘 달리는 말)를 내보내 다시 쓰지 아니한다는 것을 보일 것 같으면
요(堯)·순(舜) 때의 융성한 것에 견줄 만큼 다스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동방삭은 가히 백성을 교화시키는 근본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문제의 검소한 생활이 저와 같았는데, 어찌 풍속이 두터워지지 아니할 수가 있겠으며,
무제(武帝)의 사치스런 생활이 이와 같았는데, 어찌 풍속이 박해지지 아니할 수가 있겠는가.
삭이 가까이 효문(孝文) 때의 일을 진술한 것은 임금을 사랑하는 충정에서 이었고,
다스림의 정확한 의론을 말하였는 데도 무제는 그것을 듣지 아니하였고,
마침내 사치로써 그 나라를 피폐하게 하였으니 애석 하도다." 하였습니다.)

이윤(伊尹)은 말하기를, "너의 검소한 덕을 삼가하여 오로지 장래를 위하는 영원한 계획을 생각하라."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태갑(太甲) ○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에게 훈계한 말)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이윤이 재상인 아형(阿衡)169)으로 있을 때에 태갑이 어질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이윤이 그를 훈계한 바가 이와 같았던 것이다.
대개 검소하면 마음이 작아 생각하는 것이 원대해지고, 사치로우면 마음이 커서 계책이 소홀해지는 것이다.
이 때에 태갑은 욕심으로 법도를 무너뜨리고, 방종으로 예절을 무너뜨렸던 것이다.
마음이 두 가지의 가린바 되니 마치 뜬구름이 해와 달을 가리는 것 같아서 이 훈계가 충성스러운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인(仁)에 처하고 의(義)에 옮겨서 그 본심이 다시 밝아지자,
병을 얻은 근원이 분명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서 아름답게 끝을 맺어 역사에 밝게 빛나게 되었으니,
이윤의 훈계한 공로가 그 어찌 적은 것이 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검소하다는 것은 덕의 공순한 것이며, 사치라는 것은 악의 큰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검소해 진다면 마음이 항상 방탕하지 아니하여, 경우에 따라서 스스로 적합하게 할 수 있으며,
사치로와 진다면 곧 마음이 항상 바깥으로 치달아 날마다 방자하게 되어 만족한 것이 없는 까닭입니다.
지금 집 안에서 자손의 예를 들어 말한다면 선대(先代)의 조상이 부지런히 일해서 산업을 이룩한 것을
자손이 검소하게 절약하여 간직하는 이는 여러 대에 전하여도 가업(家業)이 쇠하지 않는 것이나,
한 번 사치스럽고 방종한 사람이 나오면 방자스럽게 향락을 일삼아 여러 해를 두고 쌓아온 재물을 하루아침에 탕진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한 집안의 흥하고 패하는 것은 그 관련되는 바가 적은 것이나,
국가의 경우라면 조종이 쌓아올린 공은 한 집안을 일으키는데 비유할 수 없는 것이며,
부고(府庫)에 소장(所藏)된 재물은 추호라도 생민의 고혈(膏血)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니
어찌 감히 망령되게 사치를 일삼아서 천재(天財)를 낭비하고 민력(民力)을 곤궁하게 하며,
선조(先朝)에서 이룩한 왕업을 패망토록 하겠습니까?

우리 나라는 선왕(先王)들이 여러 대에 걸쳐서 절검을 하여 집안을 거느렸고,
수입을 헤아려서 지출을 하였기 때문에, 재물에는 넉넉하게 여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고에 쌓인 것이 묵고 묵었으나 연산(燕山) 이후부터는 궁중에서 쓰이는 용도가 날로 늘어나고 사치로와져서,
선왕(先王)이 끼친 옛 기풍은 따르지 아니하고, 그 뒤부터는 우물쭈물 묵은 관습에 젖어서 기강을 바로 잡는 일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에서 쓰는 비용은 날로 위축되어 지금은 궁중에서도 특별하게 호화로운 사치의 행습이 없고,
국내에서도 별로 때 아닌 토목(土木) 공사를 하는 일이 없는데도 한 해의 세입이 능히 한 해의 지출을 지탱해 낼 수가 없어서,
여러 대를 걸쳐 쌓아온 저축은 앞으로 다 고갈되고 말게 되었습니다.
만일 기근(飢饉)의 재해나 병화(兵禍)의 염려가 있게 된다면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게 되었으니, 어찌 한심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궁중에서 입는 의복도 이미 국초(國初)와 달라져 절검하던 것을 시범해 보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평민이 사는 여항(閭巷)에서도 사치하는 풍조가 이루어져서 아름답고 화려한 의복이나 진귀하고 맛있는 성찬(盛饌)으로써
그 재능과 기교를 다투고, 미천한 천민들도 비단 위에서 잠자고 거처하며, 위아래의 규율이 없고, 낭비가 적지 아니하여
인심은 날로 방탕해 지고 백성들의 기력은 날로 곤궁해지니 만일 스스로 성상께서 이것을 고치지 아니한다면
나라가 점점 나라꼴이 되지 아니하는 데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고치는 방법은 일반적인 법규로써 처리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위에서부터 요(堯) 임금이 지붕을 띠풀로 잇고 계단을 흙으로 쌓았던 것을 마음으로 삼고
내전(內殿)에서는 마후(馬后)가 몸소 무명옷을 입었던 것을 모범으로 삼아서,
궁중의 쓰임새를 절약하되 검약(儉約)하는 제도는 궁중〔掖庭〕에서부터 시작하여,
사대부 가정에서 보고 느껴 본 받도록 하고 곧 서민(庶民)에게까지 도달하게 하여야 할 것이니,
그래야만 고질된 관습을 개혁할 수가 있을 것이며, 천재(天財)를 유실하지 아니할 수 있고, 민력은 점점 펼쳐 나가게 될 것입니다.
오거(伍擧: 중국 춘추시대 초(楚)대부)가 이르는 말에, "사욕이 많으면 덕의(德義)가 적어지고,
덕의가 행해지지 않으면 가까운 사람은 어수선하여 흩어지고, 먼 데 사람은 크게 사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생각하옵소서.

 

< 주 >

168) 중국 한(漢) 나라 염차(厭次) 사람. 자는 만청(曼). 문장을 잘하였으며 해학(諧謔)을 즐겼다.
무제(武帝) 때에 시중(侍中) 벼슬을 역임하였는데 늘 해학과 풍자로써 임금을 감동시켰다.
속설(俗說)에,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죽지 않고 장수(長壽)하였다 하여 「삼천 갑자(甲子) 동방삭」이라고 일컫는다.

169) 중국 은(殷)나라 때 벼슬 이름. 아(阿)는 의(倚), 형(衡)은 평(平)의 의미로서,
이윤(伊尹)은 탕(湯)이 의지하여 천하를 평정케 한 분이므로 그의 벼슬 이름을 이렇게 호칭했다고 한다.

 


제8장. 정가 공효(正家功效)

 

신이 살피건데, 임금이 정가(正家)하는 효과는 부부간의 잠자리 사이에서 쌓이고 쌓이면 그것이 나라의 경내에 넘쳐 흐르게 되고,
그러면 호령을 발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풍속을 쉽게 개량할 수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덕화(德化)가 백성에게 이루어지는 것으로써 끝을 맺겠습니다.

한 집안이 인(仁)하다면 온 나라가 인해지고, 한 집안이 겸양하다면 온 나라가 겸양해 진다. (「대학」하동)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이것은 교화(敎化)가 온 나라에 이루어지는 효과에 관해서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에 이르기를, "그 법도에 어긋남이 없으니 사방의 나라를 바로 잡으리라." 하니
부자(父子)·형제(兄弟)가 본을 받아야만 백성들이 본받게 된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시(詩)는 조풍(曹風) 시구(鳩)편이다." 하였습니다.

○ 묻기를, "부자·형제가 본을 받아야만 백성들이 본 받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요(堯)·순(舜)은 그 아들을 감화시키지 못하였으며, 주공(周公)은 그 형과 아우를 화목하게 할 수가 없었으니,
이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하였더니, 주자는 말하기를, "성현(聖賢)은 그 보편적인 경우를 논하는 것이요,
요·순과 주공(周公)은 그 변칙에 처하였던 것이다.
천하를 그 아들에게 주지 아니하고 어진 이에게 전해 준 것을 바로 이러한 변칙을 잘 처리한 것이다.
만일 주공이 관숙(管叔)170)을 죽이지 아니하였다면 주(周)나라가 어지럽게 되지 아니하였겠는가.
이것은 부득이 하여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것을 보편적인 경우로 이해하기 때문에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아버지로서 고수()171)와 같은 이가 있었고 형과 아우로서 관숙(管叔)과 채숙(蔡叔)172)과 같은 이가 있었던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변칙적인 경우를 논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詩)에 이르기를, "요요(夭夭)한 복사꽃이 활짝〔灼灼〕 피었네.
이 딸〔之子〕 시집가니〔歸〕 그 집안〔室〕 화목하리〔宜〕." 하였습니다. (주남(周南) 도요(桃夭)편)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요요(夭夭)는 젊고 고운 모습이고, 작작(灼灼)은 꽃이 성하게 피어나는 모습이다.
지자(之子)란 이 자식이라는 뜻인데, 시집가는 사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부인이 시집가는 것을 귀(歸)라고 한다.
의(宜)는 화순하다는 뜻이요, 실(室)은 부부가 거처하는 곳을 말한 것이며, 가(家)는 한 집안을 말한 것이다.
문왕(文王)의 덕화가 집안으로부터 나라에 미쳐서 남녀가 바르게 되고 혼인을 제 때에 하게 되었기 때문에
시인이 보는 것으로 흥(興)을 일으키고, 그 여자의 현숙한 것을 감탄하여
그가 반드시 그 실가(室家)를 화목하게 할 것을 알겠다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이르기를, "남쪽에 큰 교목(喬木)이 있어도 쉴 수가 없고,(한시(韓詩)에는 사(思)로 쓰였습니다.)
한수(漢水)에 물놀이하는 여자가 있어도<애정을> 구할 수 없네. 한수는 드 넓어 헤엄칠 수가 없고,
양자강은 길어서 뱃놀이〔方〕 할 수가 없어라." 하였습니다. (주남(周南) 한광(漢廣)편)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사(思)자는 어조사(語助辭)이다. 방(方)은 뱃놀이를 말한다.
문왕의 덕화가 가까운 데서부터 먼데로 미쳐서 먼저 양자강과 한수간에 미치게 되어,
그 음란한 풍속을 그것으로써 변하게 하였기 때문에 밖에 나가서 놀이하는 여인들도 바라보면
그 단정하고 장엄하며 정숙한 것이 하나도 그 전날에는 다시 구해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키가 큰 교목(喬木)으로써 흥(興)을 일으키고, 양자강과 한수를 비(比)하여 반복해서 그것을 읊고 감탄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이르기를, 정제〔肅肅〕한 토끼 그물〔〕은 말뚝치는 소리에 쩡쩡〔丁丁〕울리네.
용감한〔赳赳〕무사는 공(公)·후(候)의 간성〔干城〕이네." 하였습니다. (주남(周南) 토저(兎)저편)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숙숙(肅肅)이란 정제한 모습이요, 저()는 그물이다.
정정(丁丁)이란 말뚝을 치는 소리이며, 규규(赳赳)란 씩씩한 무사의 모습이다.
간(干)은 방패이므로 간성(干城)이란 모두 외적을 막아내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덕화(德化)가 행하여 져서 풍속이 아름다워지고 현명하고 재능있는 이가 많아져서,
비록 그물로써 토끼를 잡는 야인(野人) 일지라도 그 재주가 가히 쓸 나한 것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그 일에 따라 흥을 일으키고, 그것을 찬미하였다.
그리하여 문왕(文王)의 덕화가 성대하였다는 것을 가히 짐작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주남(周南)은 정가(正家)의 시(詩)입니다.
그러므로 3편의 시를 인용하여 정가의 효과를 밝혀 드러내었습니다.
대개 남녀간이 바르게 됨으로써 양자강과 한수간에 음란하던 풍속을 변화시키었으며,
현명하고 재능있는 이가 많아져서 야인이라도 간성(干城)이 될 만한 자질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덕화한 것이 대단히 깊었던 것입니다.
그 근본을 미루어 살펴보면 이는 문왕이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은 공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는 공적이 쉬지 아니하고,
오랫동안 계속하게 된다면 곧 그 훈증(熏蒸)한 것이 몸에 투철하고, 그 융액(融液)이 널리 두루 퍼져서,
저절로 그만 두지 못하게 되는 것인데, 지력(智力)으로는 능히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닌 것이다." 하였습니다.
오직 그 뜻이 정성스럽지 아니하거나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지 아니하기 때문에,
정가하는 데까지 능히 미루어 나갈 수가 없는 것이며,
집 안이 바르지 아니하기 때문에 능히 치국(治國)하는 데까지 미루어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실로 뜻을 정성스럽게 하여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을 수가 있다면 집안과 나라를 다스리기는 쉬운 것입니다.

옛날의 임금들 가운데는 실로 집 안은 바르게 하지 못하면서도 그대로 나라를 다스려 나갔던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제(齊)나라의 환공(桓公) 같은 이는 궁 안에 여섯 사람의 총애하는 여자를 두고 있었으면서도,
관중(管仲)을 신임하여 여러 제후(諸侯)들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당(唐)나라 태종(太宗)은 궁중에서 추잡스럼 행동을 많이 하였음에도 위징(魏徵)173)을 등용하여 천하를 다스렸던 것입니다.
비록 인의(仁義)를 빌려서 일시적인 안정상태는 획득할 수가 있었으나, 비유하여 말할 것 같으면 마치 근원이 없는 물과 같아서,
비록 그 물이 넘쳐흐를지라도 말라버리기 쉬운 것이며,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아서, 비록 무성할지라도 말라죽기가 쉬운 것입니다.
환공은 그 자신이 죽어서 장례를 지내지 못하여 시체에서 생긴 벌레가 문 밖에까지 나왔었으며,
제(齊)나라의 혼란은 여러세대에 걸쳐서 안정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태종(太宗)은 비인(非人)에게 부탁하여 그 무덤 앞에 심은 묘목(墓木)이 채 아름드리가 되기도 전에 여자들이 모여
짐승 같은 음란을 피워 천륜을 더럽혔고, 자손은 모조리 죽음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이 어찌 삼 대(三代)의 성왕(聖王)들이 자신으로부터 집안에 미치고, 집안으로부터 나라에 미치며,
나라로부터 천하에 미치게 하되, 근원이 있고 근본이 있어서 물줄기가 멀리 흘러서 물결이 성하며,
꽃이 아름다워서 열매가 많이 열리는 것과 같겠습니까?

특히 임금만이 그러할 뿐 아니라 남의 신하된 사람으로서 임금에게 극진히 충성을 다하고,
백성에게 혜택을 끼쳐 주려고 하는 자가 혹시 언어의 학문으로써 말로서만 느끼고 깨달을 것을 구하려 하되,
한 번도 자기 몸을 반성하지는 아니하며, 그 행동을 살핀다면 부끄러움을 면할 수가 없고
그 사람의 집안을 관찰해 볼 것 같으면 화목하고 엄숙하지 아니하여, 남자는 욕심에 끌리어
그 강직한 기품을 잃고, 부녀자는 버릇없이 말하여 그 온순한 것을 잃은 사람이 많은 것이니,
그 어찌 성실로써 능히 임금을 움직일 수가 있겠으며, 혜택을 백성들에게 미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임금이 궁중 안을 바로 잡지 못하고, 백성을 교화(敎化)시키려고 한다거나, 신하된 자가 그 처자를 바로 잡지 못하고
임금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것은 마치 밭을 갈지 아니하고도 수확을 걷우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어진〔仁〕체하여 잠시나마 일세(一世)를 구제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어찌 장구하게 가리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국가(國家)의 근본을 바로 잡으시고,
힘껏 선(善)한 도를 행하셔서 관저(關雎)와 인지(麟趾)의 뜻으로써
주관예악(周官禮樂)의 제도를 행하신다면 만세(萬世)에 큰 다행일까 합니다.

 

< 주 >

170) 중국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제3자(子)로 무왕(武王)의 아우이며, 주공(周公)의 형이다.
이름은 선(鮮)인데 관(管)에 봉하였으므로 관숙(管叔)이라 칭한다.
뒤에 반란(叛亂)을 일으켰으므로 주공에 의해서 처형되었다.

171) 중국 우(虞)나라 순(舜) 임금의 아버지 이름.
고수()란 눈이 없는 소경을 지칭하는 말인데 순 임금의 아버지가 눈은 있으나 현우(賢愚)를 분간하지 못하여
소경이나 다를 바 없으므로 그 당시 사람들이 그를 이렇게 불렀다.

172) 중국 주문왕(周文王)의 제5자(子)로 무왕의 동생이다.
무왕이 은(殷)을 정벌하고 주(周)를 세운 뒤 채(蔡)에 봉하였으므로 채숙이라 칭한다.
뒤에 주공(周公)이 섭정(攝政)하자 채숙이 관숙으로 더불어 의심을 갖고 무경(武庚)과 어울려 반란을 일으키므로
주공이 무경을 처형하고 채숙을 곽린(郭)으로 추방하여 거기서 죽었다.

173) 중국 당(唐)나라 곡성(曲城) 사람으로 자는 현성(玄成)이다.
독서하기를 좋아하여 경사(經史)에 널리 통하였으며 고조(高祖) 때에 비서승(秘書丞)으로 발탁되고
태종(太宗) 때에는 간의대부(諫議大夫), 검교시중(檢校侍中)이 되었다.
지략과 담력이 있어서 바른 말을 많이 하였고 당나라 정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저서로는 군서치요(群書治要) 등이 있다.

 

제2편. 수 기(修己)

 

신이 살피건대「대학」에 이르기를, "천자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한결 모두 몸을 닦는 것[修身]을 근본으로 삼을 것이니,
그 근본이 어지러우면 지말(枝末)이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같이 제왕의 학문에는 몸을 닦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사옵니다.


제1장. 수기 총론(修己總論)

 

신이 살피건대, 몸을 닦는 공부에는 지식을 넓히는 것도 있고, 행하는 것도 있사옵니다.
지식은 착한 것을 밝히는 것이요, 행하는 것은 몸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니,
이제 지식과 행하는 것을 합하여 말한 것을 취하여 첫머리에 드러내었습니다.

군자는 덕성(德性)을 높이고 학문을 닦을지니, 광대한 것을 이루고 정미한 것을 다하며,
높고 밝은 것을 지극히 하고 중용을 행하며 옛 것을 익혀서 새 것을 알고,
두터운 것을 돈독히 하여 예의를 높여야 한다. (중용)

주자는 말하기를, 존(尊)은 공경하여 받든다는 뜻이다.
덕성(德性)은 내가 하늘에서 받은 바른 이치이다. 도(道)는 말미암는다[由]는 뜻이다.
온(溫)은 심온(溫)의 온과 같은 것이니 (불[火]이 물건을 익히는 것을 심이라고 합니다.)
앞에 배운 것을 또 다시 때때로 익히는 것을 말한다.
돈(敦)은 두터운 것을 더하는 것을 말한다.
존덕성(尊德性)은 마음을 보존하여 도의 체(體)의 큰 데까지 극진히 하는 것이요,
도문학(道問學)은 지식을 극진히 하여 도의 체의 세밀한 데까지 다하는 것이다.
한 오라기의 사사로운 뜻으로써 스스로 가리지 않고, (광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한 오라기의 사사로운 욕심으로써 스스로 더럽히지 않으며, (고명(高明)을 지극히 하는 것입니다.)
그 이미 아는 바에 함영(涵泳)하고 (옛 것을 익히는 것입니다.)
그 이미 능한 바를 돈독히 하는 것 (돈후(敦厚)의 뜻입니다.) 은, 모두 마음을 보존하는 등속이다.
이치를 분석하면 호리(毫釐)의 차이도 있지 않게 하며,
(정미(精微)함을 다한 것입니다.) 일을 처리하면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잘못이 있지 않게 하며,
(도중용(道中庸)의 뜻입니다.) 이의(理義)는 날마다 그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지신(知新)입니다.) 절문(節文)은 날마다 그 삼가지 못한 것을 삼가는 것(숭례(崇禮)입니다)은,
다 지식을 이루는 등속이다. 대개 마음을 존함이 아니면 지식을 극진히 하지 못하며,
또 마음을 보존하면 지식을 극진히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다섯 구절은 크고 작은 것이 서로 연관되고, 처음과 끝이 서로 응한다.
(동양 허씨(東陽許氏)는 말하기를, "큰 것은 위의 5절을 말한 것이요, 작은 것은 아래의 5절을 말한 것이며,
처음은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門學)의 한 구절을말한 것이요, 끝은 아래의 4귀절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성현이 보여 준 '덕에 들어가는 방법'이 이보다 더 자세한 것이 없으니 배우는 이들은 마땅히 마음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가 글에서 널리 배우고 예로써 요약하면 또한 도에 배치되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약(約)은 요약의 뜻이요, 반(畔)은 배(背)치 (배(背)는 음이 패(佩)입니다.)된다는 뜻이다.
군자는 학문은 넓히고자 하기 때문에 글에 상고하지 않는 것이 없고, 도를 지킴은 요령을 취하려고 하므로,
움직일 때는 반드시 예로써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도리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면재 황씨(勉齋黃氏)는 말하기를, "박(博)은 넓게 취하여 그 넓은 것을 지극하게 하는 것이요,
약(約)은 돌이켜 단속하여 그 요령을 지극히 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요약(要約)하지 않으면 반드시 한만(汗漫)한 데 이를 것이니,
널리 배우고 또 능히 예를 지켜 규범[規矩]을 따르게되면 도리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몸을 닦는 공부는 거경(居敬)과 궁리(窮理)와 역행(力行)의 세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는 그 실마리를 간략하게 드러내었으며, 자세한 것은 다음에 있습니다.

 


제2장. 입 지(立志)


신이 살피건대 배움에는 뜻을 세우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는 것이니,
뜻이 서지 아니하고는 능히 공부를 이룬 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몸을 닦는[修己] 조목에 뜻을 세우는 것[立志]을 맨 앞에 놓았습니다.

◆ 입지에 대한 보편적인 말씀

공자가 말하기를, "도에 뜻을 두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뜻[志]이라는 것은 마음의 가는 바를 이르는 것이요,

도라는 것은 인륜(人倫)·일용(日用)의 사이에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이르는 것이니,

이것을 알고 마음이 반드시 가면 나아가는 바가 발라서 다른 길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뜻이라는 것은 덕에 나아가는 기초이다.

성현이 여기서 시작하여 멀어도 도달하지 아니하는 곳이 없으며, 굳어도 파고 들지 아니하는 것이 없다.

착하고 악한 두 갈래 길은 오직 도(道)와 이(利)일 뿐이기 때문에,

도에 뜻을 두면 곧 이의(理義)가 주재가 되어 물욕이 능이 바꾸지 못할 것이며,

이(利)에 뜻을 두면 물욕이 주재가 되어 이의가 능히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요(堯)와 걸(桀), 순(舜)과 척(蹠)이 서로 차이가 있게 된 점이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 북계 진씨(北溪陳氏)는 말하기를, "도에 뜻을 둔다는 것은 이 마음이 완전히 도에 향하는 것이니

만약 하다가 말든지 중도에서 물러설 의사가 있다면 이는 뜻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성품이 착하다[性善]고 말씀하시되, 말씀하실 때마다 반드시 요(堯) · 순(舜)을 일컬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도라는 것은 말한다는 뜻이요,

성(性)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품수하여 태어나는 이치인데, 혼연히 지극히 착해서 일찌기 악한 것이 없다.

사람은 본래 요·순과 조금도 차이가 없으나 다만 보통 사람은 사사로운 욕심에 빠져서 착한 성품을 잃었고,

요·순은 사사로운 욕심에 가리우지 않아서 능히 그 성품을 확충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성(性)은 착하다고 말하되, 반드시 요·순을 일컬어서 실증하여,

인의(仁義)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며 배우면 성인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노력을 하는 데에 게으르지 않게 하도록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대개 사람은 모름지기 성현과 같이 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아야 할 것인데,

많은 세상 사람들이 성현은 높고 자신은 낮다고 여기기 때문에 나아가기를 즐기지 않는다.

이는 대개 타고난 성품은 <성인도> 보통사람과 같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

어찌 성현과 같이 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안연(顔淵)27)이 말하기를, "순(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렇게 함이 있으면 역시 순과 같이 된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능히 그렇게 함이 있다면 모두 순과 같이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분발하여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

일용(日用)의 사이에 한 오라기의 사사로운 욕심도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신속(迅速)하게 흥기(興起)함이 있어야 비로소 자리가 잡혀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기름에 그림을 그리고 얼음에 조각을 하는 것과 같아서 진실로 힘을 얻을 곳이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반드시 스스로 적실(的實)하고 평온한 공부를 하여야 할 것이다.

한갓 주야로 생각함이 나의 하는 바로써 순(舜)의 하는 바에 비교해 보고, 매양 순만 같지 못하다고 걱정하여서는 안 된다.

마치 병든 사람이 올바르게 순서를 밟아 약을 먹어서 점차로 다스려 자기 기력이 충만하게 하고 그래서 보통 사람과 같이 된 뒤에는 그만두는 것과 같다.

어찌 한 알의 환약이나 한 첩의 가루약으로, 일조일석에 효험을 바라서, 성급하게 보통 사람과 같지 않은 것을 괴상히 여기겠는가." 하였습니다.

○ 또 배우는 이에게 가르쳐 말하기를, "글을 기억하지 못하거든 숙독(熟讀)을 하면 기억할 것이고, 뜻이 서지 않으면 곧 힘을 들일 곳이 없다.

지금 이익이나 국록만을 탐내면서 도의는 좋아하지 않고, 귀한 사람이 되기만 바라면서 좋은 사람이 되기는 바라지 않으니,

이는 모두 뜻이 서지 못한 병통이다. 모름지기 되풀이 생각하여 병통을 찾아보고,

용감히 분발하여 성현의말한 바 온갖 말들이 한 가지도 실제의 말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보아야만 비로소 뜻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공부를 쌓아 점차로 향상해 가면 크게 할 일이 있을 것이니, 제군은 힘써야 할 것이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입지의 절목(節目)에 대한 말씀

○ 천지를 위하여 마음을 세우고, 백성을 위하여 도(道)를 세우며, 옛 성인을 위하여 끊어진 학통을 잇고,

오랜 세상[萬世]을 위하여 태평(太平)을 연다." 하였습니다. (횡거문집(橫渠文集))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천지는 낳고 낳는 것을 마음으로 삼으니,

성인이 천지에 참여해 화육(化育)을 도와서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성명(性命)을 바르게 하는 것은, 천지를 위하여 마음을 세우는 것이다.

의리를 밝히고 도의[綱常]를 붙들어 세우는 것은 백성을 위하여 도를 세우는 것이다.

끊어진 학통을 잇는다는 것은 도통(道統)을 이어 서술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요,

태평을 연다는 것은 만약 왕자가 일어나면 반드시 와서 법을 취하여 공리와 혜택을 만세에 끼치는 것이니,

배우는 자가 이것으로 뜻을 세우면 책임한 바가 지극히 크고 마음가짐이 지극히 공평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임금의 도의 큰 것은 옛 바른 학문을 상고하여 선악의 귀추를 밝히고,

충사(忠邪)를 분별하여서 밝게 도의 바른 곳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

그러므로 임금의 뜻이 먼저 정해지는 데 있는 것이니, 임금의 뜻만 먼저 정해지면 천하의 다스림은 이루어진다.

이른바 뜻을 정한다는 것은 마음을 전일하게 하고 뜻을 정성스럽게 하여 착한 것을 가려서 굳게 지키는 것이다.

대저 의리를 먼저 다하지 않으면 많이 들어도 마음이 현혹하기 쉽고, 뜻을 먼저 정하지 않으면 착한 것을 지켜도 이탈하기 쉽다.

오직 성현의 교훈을 반드시 따라야 할 것으로 여기고, 선왕(先王)의 다스림을 반드시 본받아야 될 것으로 여겨

후세의 착잡한 정치에 견제되지 않고 세속의 안일한 의논에 현혹되지 않으며,

스스로 알기를 지극히 밝게 하고 도를 믿기를 지극히 돈독하게 하며,

어진 이에게 맡기되 의심하지 말고 사(邪)를 버리되 의심하지 말아서,

반드시 세상을, 삼대(三代)의 융성한 때와 같이 만들고야 말겠다고 기약하는데 있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임금의 뜻을 세우는[立志] 것을 말한 것이지만 또한 학자에게도 절실한 것입니다.)

◆ 다음은 입지의 공효(功效)에 대한 말씀

○ 공자가 말하기를, "인(仁)이 멀리 있는 것이랴. 내가 어질려고 하면 이에 인(仁)이 이르게 된다." 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인(仁)이라는 것은 마음의 덕으로서,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놓고 구하지 않기 때문에 멀다고 여기는 이가 있지마는, 돌이켜 구하면 곧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어찌 먼 데 있겠느냐."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인(仁)을 행하는 것은 자기에게 달려 있는 것이며, 이것을 행하려고 하면 곧 이르게 된다. 어찌 먼 데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진실로 인(仁)에 뜻을 둔다면 악한 짓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구(苟)는 성실의 뜻이다. 그 마음이 진실로 인(仁)에 있으면 반드시 악한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양기(陽氣)가 발하는 곳에 쇠나 돌도 뚫을 수가 있고, 정신이 한 군데로 집중되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는가? (주자(朱子)의 말)

주자는 말하기를, "세속의 학문이 성현과 같지 않은 까닭은 알기 어렵지 않다. 성현은 다만 진실로 할 뿐이다.

정심(正心)을 말하면 바로 마음을 바르게 하고, 성의(誠意)를 말하면 곧 뜻을 성실하게 하며,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도 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의 학자들은 정심을 말하면 다만 정심을 입으로만 떠들고, 한 번 성의를 말하면 또 성의를 입으로만 떠들며,

한 번 수신을 말하면 성현들이 허다하게 말한 것을 가지고 입으로만 떠들 뿐이다. 혹은 옛 언어나 주워 모으고,

또 시속글이나 주워 엮는데, 이 같이 학문을 해가지고서야 자신에 대하여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여기 대하여 모름지기 정신을 기울여 이해하여야 한다.

지금 사람들은 진실로 성현의 학문을 듣기를 즐거워하는 이가 있으나, 끝내 세속의 비루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다만 뜻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는 이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뜻을 세우는 것이며, 배우면 문득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그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세속에는 조화(造化)의 힘을 뺏는 세 가지 일이 있다.

나라를 위하여 하늘에 기도해서 명을 길게 하는 것과, 형체를 길러 길이 사는 데 이르는 것과, 배워서 성인에 이르게 되는 것 등이다.

이 세 가지 일은, 분명히 사람의 힘으로 조화를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인데 사람이 스스로 힘쓰지 않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입지의 반대에 대한 말씀

○ 맹자는 말하기를, "스스로 해하는[自暴] 자와는 더불어 말할 수 없고 스스로 버리는[自棄] 자와는 더불어 행할 수 없다.

예의를 그르다고 말하는 것을 스스로 해한다 하고,

나의 몸은 능히 인(仁)에 있거나 의(義)를 행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버린다고 한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포(暴)라는 것은 해(害)한다는 뜻이요, 비(非)라는 것은 비방한다는 뜻이다.

스스로 그 몸을 해하는 이는 예의의 아름다운 것을 알지 못하고 비방을 하니, 비록 더불어 말하더라도 반드시 믿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그 몸을 버리는 이는 그래도 인의(仁義)가 아름다운 줄을 알고는 있으나, 게으른 데 빠져서 스스로 행하지 못한다고 하니,

그와 더불어 일을 하여도 반드시 힘을 다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선(善)으로써 스스로 다스리면 <착한 데로> 옮기지 못할 이가 없다.

비록 아주 어리석은 이라도 모두 점차로 연마하여 나아갈 수 있다.

오직 스스로 해하는 이는 거절하여 믿지 않고, 스스로 버리는 이는 거절하여 행하지 않으니, 비록 성인과 같이 있더라도 능히 감화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너무 어리석은 자는 옮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1등(等)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2등을 하겠다고 하지 말라.

만일 이러한 말을 한다면 이것이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배움을 말하면 문득 도를 뜻으로 삼고, 사람을 말하면 문득 성인을 뜻으로 삼아야 한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일생을 게을리 하는 것은 스스로 포기하고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명도(明道)가 신종(神宗)에게 다스리는 도리를 적극 아뢰니,

신종이 이르기를, "이것은 요·순의 일인데, 짐(朕)이 어찌 감히 감당하겠는가." 하였더니,

명도는 슬픈 빛으로 아뢰기를, "전하의 이런 말씀은 종사(宗社)와 생민(生民)의 복이 아니옵니다." 하였습니다.

인(仁)은 사람의 편한 집이요, 의(義)는 사람의 바른 길인데,

편한 집을 비워 두고 거처하지 아니하며, 바른 길을 버리고 행하지 아니하니 가련(可憐)하도다.

주자는 말하기를, "인이라는 것은 본마음 전체의 덕으로서, 천리(天理) 자연의 안정됨은 있으나, 사람 욕심의 빠지는 위태로움은 없으니,

사람은 항상 그 가운데 있어야 하고 잠시라도 떠나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편한 집이라' 한 것이다.

의(義)라는 것은 마땅한 것이니 천리의 마땅히 행할 바이요, 사람의 욕심처럼 간사하고 잘못됨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를> '바른 길이라' 한 것이다. 광(曠)은 비었다[空]는 뜻이고 유(由)는 행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도가 본래 고유한 것인데, 사람이 스스로 끊으니 이것이 가련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성현의 깊은 훈계이니 배우는 이는 마땅히 맹성(猛省)을 하여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뜻이란 것은 기(氣)의 장수[帥]이니, 뜻이 전일하면 기가 동하지 아니함이 없는데,

배우는 이가 종신토록 글을 읽어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다만 뜻이 서지 않은 까닭입니다.

♠ 입지가 이루어지지 않는 병적 원인 세가지

뜻이 서지 않는 데는 그 병통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불신(不信)이요, 둘째는 부지(不智)이며, 세째는 불용(不勇)입니다.

1. 불신(不信)

불신(不信)이라는 것은, 성현이 후학(後學)에게 밝게 알려 명백하고도 간절하게 가르쳐 주었으니,

만일 그 말에 따라 순서대로 나아가면 성인도 되고, 현인도 되는 것은 이치의 당연한 것으로서 그런 일을 하고도 그런 공이 없는 이는 있지 않습니다.

저 불신(不信)하는 이는 성현의 말이 사람을 권유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라 생각하고, 다만 그 글만 음미[玩味]할 뿐, 몸으로 실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떠드는 것은, 성현의 글이지마는 행하는 것은 세속의 행위입니다.

2. 부지(不智)

부지(不智)라는 것은, 인생의 기품이 만 가지나 되어 같지 않으나 힘써 알고 힘써 행하면 성공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뛰놀며 장사지내는 놀이[踊躍築埋]를 한 것은 맹자의 유희였지마는 마침내 아성(亞聖)이 되었고, 저물게 돌아오고 사냥하는 것을 즐긴 것

[暮歸喜獵]은 정자의 버릇이었지마는 마침내 큰 현인이 되었으니, 어찌 반드시 나면서부터 알아야만 비로소 덕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저 부지(不智)한 이는 스스로 자기의 자질이 불미(不美)하게 태어났다고 하여 퇴보(退步)하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고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아니하여,

나아가면 성인도 되고 현인도 되며, 퇴보하면 어리석은 자도 되고 어질지 못한 자도 되는 것은 모두 자기의 소위인 줄을 알지 못합니다.

이러므로 읽는 것은 성현의 글이지마는 지키는 것은 기품에 구애된 것뿐입니다.

3. 불용(不勇)

불용(不勇)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성현은 우리를 속이지 아니한다는 것과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다소 알면서도,

다만 태만하게 항상 머물러 있으면서 분발(奮發)하고 진작(振作)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어제 한 일을 오늘 개혁하기를 어렵게 여기고,

오늘 좋아하는 일을 내일 개조하기를 꺼려합니다.

이같이 고식적(姑息的)으로 우물쭈물하며 한 치를 나아가면 한 자씩 후퇴하는 것은 불용(不勇)의 소치입니다.

이러므로 읽는 것은 성현의 글이지마는 안주 하는 것은 케케묵은 관습입니다.

사람들에게 이 세 가지 병통이 있기 때문에 군자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육적(六籍)28)은 빈 말이 되고 마는 것이니, 아! 몹시 서글픈 일입니다.

진실로 성현의 말을 깊이 믿어 불미(不美)한 자질을 바루되 실로 백·천배의 공부를 하여 끝까지 퇴전(退轉)하는 때가 없게 되면,

큰 길이 앞에 있어 직접 성인의 경지를 가르쳐 줄 것이니, 어찌 도달하지 못할 것을 근심하겠습니까?

대개 사람은 작은 몸으로 세상에 참여하여 병립(立)하고 있으며,

학문의 공업은 위육(位育)을 능사(能事)로 삼기 때문에 필부(匹夫: 은나라 신하인 이윤(伊尹) 같은 이를 말함.)로도 그 임금을 얻게 되면,

오히려 한 백성에까지라도 혜택을 입히지 못할까 걱정하는데,

하물며 임금은 군사(君師)의 지위를 겸하여 교양(敎養)의 책임을 지고 세상의 표준이 되었으니, 그 책임이 얼마나 중하겠사옵니까?

한 마음의 차질이 정사를 그르치고 한 마디 말의 실수가 일을 패하게 하옵니다.

도에 뜻을 두고 도를 따라 행하여 이로 말미암아 한 세상을 당(唐)·우(虞)의 세상으로 되게 하는 것도 자기에게 있는 것이요,

욕심에 뜻을 두고 물욕에 따라 행하여 이로 말미암아 한 세상을 말세(末世)가 되게 하는 것도 자신에 말미암은 것이니,

임금은 뜻의 향하는 바를 더욱 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설문청(薛文淸)은 말하기를, "내마음이 진실로 학문에 뜻을 둔다면 하늘이 마침내 나의 소원을 이루어 줄 것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학문이 나아가지 않는 것은 대개 우물쭈물하는데 말미암은 것이다." 하였으니,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옵소서.

 

< 주 >

27) 공자의 수제자. 이름은 회(回), 연(淵)은 그의 자(字)임.

노(魯)나라 사람으로 호학(好學)하여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다고 하며 학덕이 가장 높아 스승의 많은 총애를 받았다.

28) 시(詩)·서(書)·역(易)·춘추(春秋)·예기(禮記)·악기(樂記)를 말한다.

 

제3장. 수 렴(收斂)

 

신이 살피건대 경(敬)이라는 것은 성학의 시작이요, 끝입니다.

그러므로 주자는 말하기를, "경을 가지는 것은 궁리(窮理)하는 근본이니, 아직 깨닫지 못한 이는 경이 아니면 알 수 없다," 하였고,

정자는 말하기를, "도에 들어가는 데는 경만한 것이 없으니, 치지(致知)를 하면서 경에 있지 않은 이는 없다." 하였으니,

이것은 경이 학문의 시작이 됨을 말한 것입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미 깨달은 이는 경이 아니면 지킬 수 없다." 하였고,

정자는 말하기를, "경과 의(義)가 이루어지면 덕이 외롭지 아니한데 성인까지도 또한 이러하다." 하였으니,

이것은 경이 배움의 끝이 됨을 말한 것입니다.

이제, 경의 공부에서 학문의 시작이 되는 것을 취하여 궁리장(窮理章) 앞에 놓고 이것을 수렴(收斂)이라 제목하여 「소학」의 공부에 해당시키옵니다.

◆ 용지(容止)의 수렴에 대한 말씀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무겁지[重] 아니하면 위엄이 없으니 배워도 견고[固]하지 못하게 된다."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중(重)은 중후하다는 뜻이요, 위(威)는 위엄의 뜻이고, 고(固)는 견고하다는 뜻이다. 외부가 가벼우면 반드시 내부가 견고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도 없고, 배워도 역시 견고하지 못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장자는 말하기를, "의리의 학문은 모름지기 깊이 생각을 해야 비로소 나아감이 있을 것이요, 얕고 경망해서는 얻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군자의 용모는 여유있고 우아[舒遲]하되 존경하는 사람을 보면 조심하고[齊] (재齋입니다) 삼가야 한다. (「예기」하동)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서지(舒遲)는 여유 있고 우아한 모양이요,

제(齊)는 기기제율(夔夔齊慄)29)의 제(齊)자와 같고, 속()은 삼가고 방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구용(九容)

발 모양은 무겁[重]고, 손 모양은 공손[恭]하며 눈 모양은 단정[端]하고, 입모양은 정지[止]하며, 말소리는 조용[靜]하고,

머리 모양은 곧으며[直] 기운 모양은 엄숙[肅]하고, 선 자세는 후덕[德]하며, 얼굴 모양은 씩씩하여야 한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중(重)은 가볍게 옮기지 않는다는 것이요, 공(恭)은 경만하지 않는 것이요,

단(端)은 흘겨보지 않는 것이요, 지(止)는 망동하지 않는 것이요, 정(靜)은 목소리를 크게 하지 않는 것이요,

직(直)은 넘보지 않는 것이요, 숙(肅)은 숨쉬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요,

덕(德)은 중립하여 의지하지 않아서 엄연하게 덕이 있는 기상이요, 장(莊)은 긍지가 있는 모양이다." 하였습니다.

○ 어떤 사람이 묻기를, "사람이 한가하게 있을 때에 몸가짐은 게으르더라도 마음이 태만하지만 않으면 괜찮습니까." 하니,

정자는 대답하기를, "어찌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마음이 태만하지 않은 이가 있겠는가.

옛날에 여여숙(呂與叔)30)이 6월에 구지(氏)31)에 찾아왔었는데 혼자 있을 때, 내가 가만히 보니 반드시 엄연히 꿇어앉아 있었으니 돈독하다고 할 것이다.

학자는 모름지기 공경하여야 하지마는 구속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만일 구속된다면 오래 가기가 어렵다." 하였습니다.

○ 요진경(寥晋卿)이, "무슨 책을 읽어야 하겠습니까?" 하고 청하니, 주

자는 대답하기를, "공의 마음이 흩어진 지 이미 오래이니 먼저 정신을 가다듬어,

옥조(玉藻)32)의 구용(九容)을 자세히 체인(體認)하여 뜻이 선 뒤에 문득 글을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경(敬)을 말하는 이는 다만 이 마음만 간직하면 자연히 이치에 맞을 것이라 하고, 용모와 사기(辭氣)는 전혀 공부를 하지 않으니,

설사 참으로 이렇게 해서 마음을 간직하더라도 또한 석노(釋老)33)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더구나 마음과 생각이 황홀해서 참으로 마음을 보존하지 못하는 것이겠는가?" 하였습니다.

○ 절효(節孝) 서공(徐公)이 처음에 안정호선생(安定胡先生)을 따라 배우더니,

스스로 말하기를, "처음 선생을 뵈올 적에 머리 모양이 조금 기울었는데 안정(安定)이 갑자기 언성을 높여서 말하기를,

'머리 모양을 곧게 하라.'고 하거늘 내가 스스로 생각하되, 다만 머리 모양만 곧게 할 것이 아니라,

마음도 역시 곧아야 한다 하고 이로부터 감히 사심(邪心)을 갖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이선생(李先生 : 이연평李延平선생으로 주자의 스승임)은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있어도

신채(神彩: 뛰어난 용모)가 맑고 밝아 조금도 게으른 기세가 없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종일토록 빠른 말과 급한 기색이 없다.' 하더니,

그 분은 진실로 이러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가까운 데를 가면 반드시 천천히 걷고 먼 데를 가면 반드시 급하게 걷지마는,

선생은 가까운 데를 가도 그러하였고 먼 데를 가도 역시 그러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사람을 불러서 오지 않으면 반드시 소리를 지르나, 선생은 불러서 오지 않더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또 벽을 향하여 앉을 적에 글자가 있으면 머리를 들고 한번 보는 것이 보통인데,

선생은 그렇지 않아서 앉았을 때에는 진실로 보지 않지만, 만일 보라면 반드시 일어나 벽 아래에 나아가서 보았으니,

그 사물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대개 이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연평 이선생(延平李先生)은 본래 함양(涵養)한 것이 순수하게 익어서 그렇게 된 것이나, 처음 배우는 이도 마땅히 이것을 법으로 삼아야 합니다.)

◆ 다음은 언어(言語)의 수렴에 대한 말씀

○ 시에 , "너의 말하는 것을 삼가고 너의 위의를 공경히 하여, 유(柔)하고 가(嘉)하게 하라.

흰 옥[白圭]의 티[]는 갈면 되지마는 이 말의 티는 어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생각 없이 경솔히 말하지 말고 구차하게 이렇다고 이르지 말라.

나의 혀를 잡아 줄 이가 없으니 함부로 입 밖에 말을 내지 말라." 하였습니다. (대아(大雅) 억(抑)의 편)

주자는 말하기를, "유(柔)는 편안한 것이요, 가(嘉)는 착한 것이요, 점()은 이지러진 것이다.

이(易)는 가벼운 것이고, 문()은 잡는 것이요, 서(逝)는 가는 것이니, 마땅히 말을 삼가라는 것이다.

대개 구슬이 이지러진 것은 갈아서 반반하게 할 수 있지마는, 말은 한 번 실수하면 구제할 수가 없고, 나를 위하여 그 혀를 잡아 줄 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은 나자신에게 연유하여, 실수하기가 쉽기 때문에 항상 잡고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니, 그 훈계가 깊고 간절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왕의 말이 사(絲) 같다면 그 나아가는 것은 윤(綸)과 같고,

왕의 말이 윤과 같다면 그 나아가는 것은 발( : 음은 불(弗))과 같다." 하였습니다. (예기(禮記))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윤(綸)은 인끈[綬]이요, 불()은 관(棺)을 매는 큰 줄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이것은 왕의 말씀은 비록 적은 것이라도 그 이해(利害)의 공효는 매우 큰 것이오니, 삼가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옵니다.

"군자는 방에 앉아서 말을 하여도 착하면 천 리 밖에서도 응하거늘, 하물며 가까운 데 있어서랴.

방에 앉아서 말을 하여도 착하지 아니하면 곧 천리밖에서도 어기거늘, 하물며 가까운 데 있어서랴.

말은 몸에서 나와 백성에게 미치고, 행동은 가까운 데서 나와 먼 곳에 나타나는 것이라,

말과 행동은 군자의 추기(樞機)이니, 추기가 발하는 것이 영욕(榮辱)을 주재한다.

말과 행동은 군자가 천지를 움직이는 것인데, 어찌 삼가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역계사(易繫辭) ○ 역시 공자의 말임.)

절재 채씨(節齋蔡氏)는 말하기를, "말이라는 것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이라는 것은 마음의 흔적이니, 말과 행동은 바로 감응하는 추기이다,

착한 것은 이치이고 착하지 아니한 것은 이치에 어그러진 것이다." 하였습니다.

(군자의 말과 행동이 착하면 화한 기운이 응하고, 착하지 아니하면 어긋난 기운이 응한다.

화(和)한 것이 지극하면 천지가 편안하고 만물이 생육하며, 어긋난 것이 지극하면 천지가 막히고 어진 이가 숨기 때문에 "천지를 움직인다."한 것입니다.)

◆ 다음은 마음[心]의 수렴에 대한 말씀

○ 오만[敖]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고 욕심을 따라서는 안 되며, 뜻은 만족해서는 안 되고 즐거움은 지극해서는 안 된다. (예기)

응씨(應氏)는 말하기를, "공경의 반대가 오(敖)요, 정(情)이 움직이는 것은 욕심이다. 뜻은 만족하면 넘치고 즐거움이 지극하면 슬픔이 온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뜻이 가득 찬다[志滿]는 것은 적게 얻은 것을 만족하게 여기어 치연(侈然)히 스스로 큰 체하는 것입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닭이나 개를 놓친 것은 구(求)할 줄 아는데, 마음을 놓치고는[放心] 구할 줄 모른다.

학문의 도란 다른 것이 아니고 그 놓친 마음을 구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맹자)

정자는 말하기를, "마음은 지극히 무겁고 개와 닭은 지극히 가벼운 것인데, 개와 닭을 놓친 것은 구할 줄 알면서 마음을 놓친 것은 구할 줄을 모른다.

어찌 지극히 가벼운 것은 사랑하고 그 지극히 무거운 것을 잊어 버리겠는가. 이것은 생각을 하지 않아서 그럴 뿐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학문하는 일은 진실로 한 실마리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놓은 마음을 구하는 데 있을 따름이다.

대개 능히 이같이 한다면 지기(志氣)가 환하게 밝아지고 의리가 환하게 드러나서 위에 이를 수가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아니하면 어두워지고 방탕해서 비록 배움에 종사한다 하더라도, 마침내 밝게 트이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자는 말하기를, '성현의 천만 가지 말은 다만 사람이 이미 놓은 마음을 거두어 몸으로 들어오게 하려는 것이니,

스스로 찾아 향상하여 가서 하학(下學)하여 위에 이르러야 한다' 하니 이것은 맹자가 절실한 말을 개시(開示)한 것이며,

정자가 또 발명하여 그 뜻을 간곡히 한 것이니 배우는 이는 마땅히 마음에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맹자가 학문의 도는, 단연코 '놓은 마음을 구하는 데 있다.'고 하였으니, 배우는 이는 모름지기 먼저 그 놓은 마음을 수습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고 이 마음을 풀어 놓으면 학문을 넓히는 데도 등한하고 질문하는데도 등한할 것이니, 어떻게 밝게 분변하며 돈독히 행할 수 있겠는가.

대개 몸은 집과 같고 마음은 집주인과 같으니, 집주인이 있어야 능히 마당에 물을 뿌리고 쓸며 집안 일을 정돈할 것인데,

만약 주인이 없다면 이 집은 한 황폐된 집에 지나지 아니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이른바 마음을 놓친다는 것은 마음이 딴 곳으로 도망쳐 가는 것이 아니라 눈 깜짝할 사이에 문득 보이지 않는 것이다.

또 깨달으면 문득 눈앞에 있기 때문에 이는 수습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끌어당기면 문득 보이는 것이다.

만일 마음을 수습하여 의리의 안정한 곳에 두고, 요란한 생각이 없이 오래 가면 스스로 물욕은 적어지고 의리는 두터워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거경이 궁리의 근본이 된다는 말씀

○ 함양(涵養)은 모름지기 경(敬) 공부를 하여야 할 것이며, 학문을 진취시키는 것은 곧 치지(致知) 하는 데 있다. (

정씨 유서(程氏遺書) ○ 이천(伊川) 선생의 말.)

정자는 말하기를, "근본을 먼저 배양한 뒤에야 방향을 정립할 수 있다.

그 방향이 이미 바르면, 이루는 바의 얕고 깊은 것은 힘써 행하거나 힘써 행하지 않는 데 달려 있다." 하였습니다.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마음의 덕을 길러서, 근본을 깊고 두텁게 한 뒤라야 방향을 세워도 어긋나지 않으며,

또 쉬지 않고 힘써야 능히 깊이 이를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배우는 이는 모름지기 공경히 이 마음을 지키되, 절박하게 해서는 안 되고,

마땅히 깊고 두텁게 배양하여 그 속에 깊이 잠긴 뒤라야 스스로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절박하게 구하면 단지 사심일 뿐이어서, 마침내 도에는 이르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함양(涵養)공부를 아마 옛날 사람은 바로 「소학」중에서 함양하여 성취하였던 듯하다.

그래서, 「대학」의 도는 다만 격물(格物)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다.

지금 사람은 앞서 이런 공부는 하지 않고 「대학」의 격물을 먼저하는 것만 보고는, 다만 생각이나 지식만으로 구하려 하여,

다시 마음을 잡아 보존하는[操存] 데는 힘쓰지 않으니, 비록 궁구하여 충분히 얻었다 하더라도 역시 실지 의거할 곳이 없는 것이다.

대개 경(敬)자는 위로도 통하고 아래로도 통하며, 격물 치지(格物致知)는 그 속에 절차로서 나아가는 곳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지금 사람은 모두 근본적으로 이해하기를 즐겨 하지 않는다.

가령 경(敬)자를 다만 입으로 떠들 줄만 알며, 실행에 옮길 줄을 모른다. 근본이 서 있지 않기 때문에 기타 사소한 공부는 모일 곳이 없게 되는 것이다.

명도(明道)와 연평(延平)이 다 사람을 '정좌(靜坐)하라.'고 가르친 것을 보더라도 모름지기 정좌하여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마음이라는 것은 지극히 허령(虛靈)하며, 신묘한 것을 측량할 수 없어, 항상 한 몸의 주인이 되며,

만 가지 일의 벼리[綱]를 관장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보존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한 번 자각하지 못하고 달려 나가 물욕을 몸 밖에서 따른다면, 한 몸의 주재가 없어지고 만 가지 일이 벼리가 없어져서,

비록 쳐다보고 되돌아보는 사이에도 이미 그 몸의 있는 바를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데

하물며 성인의 말씀을 반복하고 사물을 참고하여 의리의 마땅한 귀결을 구할 수가 있겠는가.

진실로 능히 공경하고 조심해서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하여, 종일토록 물욕에 빠지는 바가 되지 않게 한다면,

곧 이것으로 독서하고 이것으로 이치를 관찰함에, 가는 데마다 통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을 것이며,

이것으로 사물에 응하고 접하면 어떤 일이나 마땅하게 대처되지 아니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공경에 거하고 뜻을 바루는 것이 글을 읽는 근본이 되는 까닭이다." 하였습니다.

○ 설씨(薛氏)는 말하기를, "고요한 가운데 무한한 묘리(妙理)가 모두 나타난다." 하였습니다.

○ 신이 살피건대, 남당진백(南塘陳栢)이 지은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은 배우는 이로서 공부하는 데 매우 적절합니다.

그러므로 삼가 아래에 기록하오니, 수렴하는 데 가장 유력할 것입니다.

잠(箴)에 말하기를, "닭이 울면 깨어 생각이 점점 흩어지거든 그 사이에 맑게 정돈하여, 혹은 옛 허물을 반성하고 혹

은 새로 얻은 것을 추출하여 차제(次第)와 조리(條理)를 요연하게 묵묵히 깨달아라. (위는 숙오(夙寤)를 말한 것입니다.)

근본이 이미 섰으면,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빗질하며 의관하고, 단정히 앉아서 형체를 거두어, 이

 마음을 이끌어 들여 밝기가 돋는 해와 같게 하여 엄숙하고 정제(整齊)하며 비어 밝고[虛明] 고요하여 하나가 되게[靜-] 하라.

(이상은 신흥(晨興)을 말한 것입니다.)

이에 책을 펴서 성현을 대하면, 공자가 앉아 있고 안(顔)·증(曾)이 앞뒤에 있으니,

성사(聖師)의 말씀을 친절히 공경스럽게 들으며 제자들의 묻고 변론한 것을 반복하여 참고하라. (위는 독서를 말한 것입니다.)

일이 이르면 이에 응하여 사물에 증험하게 되니 밝은 명(命)이 빛남을 항상 눈여겨 그것을 응시하라.

일에 응함이 이미 그치면 나는 예전과 같이 하여 마음을 맑게 하여 정신을 모우고 생각을 쉬라. (이상은 일에 응함을 말한 것입니다.)

동정(動靜)이 쉬지 않고 돌매 오직 마음을 보되, 정하면 보존하고 동하면 살펴서 두 갈래나 세 갈래가 되지 말게 할 것이며,

글을 읽은 여가에는 가끔 푹 쉬어서 정신을 누그럽게 하고 정성(情性)을 휴양하라. (이상은 일건(日乾)을 말한 것입니다.)

날이 저물면 사람이 게을러져서 혼미해지기 쉬우니, 단정히 재계하고 정제하며 정신을 밝게 진작(振作)하라.

밤이 으슥하면 자되, 손은 모으고 발을 거두고서 생각을 하지 말고 심신(心神)이 돌아가 잠들라. (이상은 석척(夕)을 말한 것입니다.)

밤의 기운으로 기르매 정(貞)하면 근본[元]으로 회복될 것이니 생각을 여기에 두어 밤낮으로 부지런히 힘쓰라." 하였습니다.

(이상은 숙야(夙夜)를 겸해서 말한 것입니다.)

신이 살피건대 놓친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학문의 기초입니다.

대개 옛 사람은 스스로 밥 먹고 말할 수 있을 때부터 바로 가르쳐서 행동마다 잘못이 없게 하고,

생각마다 지나친 것이 없게 하여 그 양심을 기르고 그 덕성(德性)을 높이는 것이, 어느 때 어느 일이거나 그렇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격물 치지(格物致知) 공부는 여기에 의거하여 머물 데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젊었을 때부터 이런 공부는 않고 지름길로 이치를 궁구하고, 몸을 닦는 것만 하려 하기 때문에 마음이 혼란하여지고 행동이 규범에 어긋나서,

그 공부가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여 결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현(先賢)들이 사람에게 정좌(靜坐)하는 것을 가르치고, 또 구용(九容)으로 몸가짐을 하게 하였던 것이니

이는 배우는 이로서 최초로 힘쓰는 곳입니다. 그러나 정좌하는 것은 역시 일이 없을 때를 가리킨 것입니다.

만일 사물에 응하고 접할 때라면 정좌하는 것에 고집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물며 임금의 한 몸에는 만 가지 일이 쌓여 있으니, 만일 일 없을 때를 기다려 정좌한 뒤에 배운다면 아마 그럴 여가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동하고 정하는 것을 막론하고 이 마음을 잊지 아니하고 마음 지키기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여,

허로재(許魯齋)가 말한 바와 같이, 비록 천만 사람 가운데 있더라도 항상 자기자신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일이 없을 때에는 비어 고요하게 본체[體]를 기를 수 있고, 일이 있을 때에는 밝게 살펴서 발용(發用)을 바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성학(聖學)의 근본이 여기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현의 교훈은 밝아서 속이지 아니하는 것이오니, 유념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 주 >

29) 마음을 조심스럽게 갖는 것을 뜻함. [祇載見 夔夔齊慄] 《書, 大禹謨》

30) 송(宋)나라 사람. 이름은 대림(大臨) 여숙(與叔)은 그의 자임.

처음에는 장재(張載)의 제자였으나 장재가 죽은 뒤 다시 정자(程子)에게 사사하여 정문사선생(程門四先生)의 한분으로 일컬어졌다.

31) 산(山)이름. 중국 하남성(河南省) 언사현(偃師縣) 남쪽에 있다.

32) 예기(禮記)의 편명(篇名).

33) 석가(釋迦)와 노자(老子)를 가리킴.

 


제4장. 궁 리(窮理)

 

신이 살피건대, 수렴(收斂)한 뒤에는 궁리로써 치지를 하여야 하기 때문에 궁리장(窮理章)을 그 다음에 두었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대개 한 가지 물(物)에는 한 가지 이치가 있는데, 모름지기 그 이치를 궁리하여 극진히 하여야 한다.

궁리하는 데도 많은 실마리가 있는데, 혹시 책을 읽어서 의리를 해명하기도 하고, 옛날이나 지금의 인물을 논하여 그 시비를 분별하기도 하며,

사물에 응하고 접하여 그 당연한가 아니한가를 처리하는 것이 모두 궁리이다." 하였습니다.

궁리하는 공부는 대략 이러하온데 그 자세한 것은 다름과 같습니다.

◆ 궁리의 용공(用功) 방법에 대한 말씀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하게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깝게 생각하면 인(仁)이 그 가운데에 있다." 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이 네 가지는 다 학문(學問)·사변(思辨)의 일일 따름이요, 힘써 행하여 인(仁)을 하는데는 미급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종사하게 되면 마음이 밖으로 흩어지지 않아서 있는 바가 스스로 익숙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仁)이 그 가운데 있다고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가깝게 생각한다[近思]는 것은 유(類)로써 미루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소씨(蘇氏)는 말하기를, "널리 배우되 뜻을 돈독하게 하지 아니하면 크기만 하고 이룸이 없을 것이며,

엉성하게 묻고 멀리 생각하면 수고만 하고 공효가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배우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마음에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어두워서 얻는 것이 없고, 그 일을 익히지 아니하기 때문에 위태로와서 편안하지 못하다.

대개 학(學)자는 행(行)자의 뜻을 겸하였으니, 가령 의리를 강구하여 밝히는 것은, 학문이지만 그 하는 바를 본받으면, 곧 행하는 뜻이 있다." 하였습니다.

○ 주자가 정윤부(程允夫)에게 답하는 글에서 말하기를, "매양 오제(吾弟)와 더불어 강론하면 오제의 명민한 것을 알게 된다.

문자를 보는데 힘을 허비하지 아니하여도 도리를 얻는 데 용이하고 분명하지마는, 다만 다소 깊이 음미하고 실천하는 공부를 저버리기 때문에

그 도리가 비록 분명한 것 같으나, 문득 자신의 몸과 마음과는 관계가 없게 된다.

그래서 좋은 뜻이 오래가지 못하고 조금 지나면 바로 쉬게 되니, 도리어 느리고 둔한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하여

나아가 얻어서 뜻을 오래 간직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것은 근본상의 큰 병통이며 한 마디 말, 한 가지 뜻의 과실만은 아니다.

먼저 고사(高沙)에 있을 적에 오제(吾弟)가 "이와 같은 강론이 도무지 돌아가 머물 데가 없다'고 하기에 일찌기 받들어 답하기를,

'강론을 마치고 바로 실천에 옮기면, 곧 돌아가 머무를 수 있다'고 하였었는데, 이 말이 의미가 있는 듯하기에 다시 고하니 생각해 보게." 하였습니다.

착한 데 밝지 아니하면 몸을 성실하게 하지 못한다. (「중용」○ 역시 공자의 말)

주자는 말하기를, "착한 데 밝지 아니하다는 것은 일에 나아가 이치를 궁구하지 아니하여 진실로 착한 것이 있는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유씨(遊氏)는 말하기를, "그 뜻을 성실하게 하려면 먼저 그 지식을 극진히 하여야 할 것이니,

착한 데 밝지 아니하면 그 몸을 성실하게 하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설은 경(經)의 글에는 상세하지 아니합니다.

선현(先賢)들이 많이 밝혀 내었으나, 정자·이씨(李氏)·주자(朱子) 세 선생의 설이 가장 명백하고 적절하기 때문에 삼가 그 대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옵니다.

어떤 사람이, "학문에 뜻은 있으나 지식이 가리어 굳어졌거나 역량이 이르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하니,

정자는 대답하기를, "다만 이 치지(致知)를 해야 할 것이니 만약 지식이 밝아지면 역량(力量)은 스스로 나아간다." 하였습니다.

○ 또 어떤 사람이, "충신(忠信)은 힘쓸 수가 있으나 치지(致知)는 어려우니 어떠한 까닭입니까." 하니,

정자는 대답하기를, "성실한 것과 공경하는 것은 참으로 힘쓰지 않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천하의 이치를 먼저 알지 못하면 역시 힘써 행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의 차서에 치지(致知)를 먼저하고 성의(誠意)를 뒤에 한 것이니, 그 등급을 뛰어 넘어서는 안 된다.

진실로 성인 같은 총명이나 밝은 지혜가 없이 한갓 힘써 그 일을 행한 흔적만을 실천하려고 하면

어찌 저와 같이 동작하는 절차가 자연히 예에 맞게 될 수 있겠는가.

오직 이치를 밝힘이 분면하면 힘쓰지 않고도 스스로 이치에 따름을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대개 사람의 성(性)은 본래 착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치를 좇아 행하면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오직 그 지식은 지극하지 않았는데 힘만으로써 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어려운 것만 괴롭게 여기고, 그 즐거운 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아는 것이 지극하게 되면, 이치를 따르면 즐겁고 이치를 따르지 아니하면 즐겁지 않은 것이니, 무엇이 괴로와 이치를 따르지 아니해서,

나의 즐거움을 해되게 하겠는가. 만일 착하지 않은 것을 해서는 안되는 것을 알면서 그래도 혹시 한다면, 역시 진실로 한 것이 아닌 것이다." 하였습니다.

○ 묻기를, "격물(致知)이라는 것은 반드시 물건마다 격(格)하는 것입니까.

일물(一物)을 격하면 만 가지 이치가 다 통하는 것입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일물을 격하여 만가지 이치가 통하는 데는 안자(顔子)도 역시 이르지 못하였다. 오직 오늘 일물을 격(格)하고, 내일 또 일물을 격하여 익히어 많이 쌓아야만 열려서 관통(貫通)될 수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한 몸에서부터 만물의 이치에 이르기까지 이해가 깊으면 자연히 열리어 깨닫는 곳이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궁리한다는 것은 반드시 천하의 이치를 다 궁구하는 것은 아니나, 다만 한 가지 이치만 궁구하여 얻으면 되는 것도 아니다.

곧 쌓인 것이 많아지면 스스로 열리어 깨닫는 곳이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한 가지 일을 다 궁구하면 다른 것은 유추(類推)할 수 있다.

만약 한 가지 일을 궁구하여 얻지 못하면 또 별도로 한 가지 일을 궁구하되, 혹시 쉬운 것을 먼저 하기도 하고,

어려운 것을 먼저 하기도 하여 각각 자기 정도의 얕고 깊은 것을 따라야 할 것이다.

비유한다면 천 갈래 길이나 만 갈래 길이나 다 서울에 갈 수는 있지마는, 다만 한 길만을 택하여 들어가면

나머지 길은 미루어 비유하여 통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대개 만물은 각각 한 가지 이치를 갖추었으며,

만 가지 이치는 모두 한 근원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래서 미루어 비유하면 통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물(物)에는 반드시 이치가 있어서 마땅히 다 궁구할 바이니, 천지의 높고 낮은 까닭이나, 귀신의 깊숙하고 나타나는[幽顯] 까닭이 이것이다.

만약 내가 하늘은 높은 것을 알 뿐이고, 땅은 그 낮은 것을 알 뿐이며, 귀신은 그 깊숙하고 나타나는 것을 알 뿐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이미 그러한 말인데 또 무슨 이치를 궁구할 것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 만약 효도를 하려면 마땅히 효도하는 방법을 알아야 할 것이니,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히 봉양(奉養)하는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따뜻하게 하고 서늘하게 하는 절도인지를

모두 궁구하여야 효도를 능히 할 수 있을 것이요, 효(孝)자 한 자만을 지킨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하였습니다.

○ 어떤 사람이 묻기를, "물(物)을 보고서 몸을 살핀다는 것은 물(物)을 봄으로 인하여 몸에 돌이켜 구한다는 것입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꼭 그렇지도 않다. 물과 나는 한 이치이기 때문에 저것을 밝히면 곧 이것을 깨닫게 되므로 이것은 안팎을 합한 도리이다." 하였습니다.

또 묻기를, "그러면 먼저 사단(四端)34)에 구하는 것이 옳습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정성(情性)에 구하면 진실로 몸에는 절실하지마는, 풀 한 잎, 나무 한 가지에도 다 이치가 있으니,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치지(致知)를 하는 요령은 지선(至善)이 있는 곳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가령 아비는 사랑하는데 그치고, 아들은 효도하는데 그치는 유이다.

만약 이것을 힘쓰지 아니하고 한갓 범연하게 만물의 이치를 보려고 하면,

대군(大軍)의 떨어져 나간 군졸이 너무 멀리 나아가서 돌아올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을까 염려된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격물(格物)은 몸을 살펴서 더욱 간절하게 얻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반드시 천하의 이치를 다 궁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미 말하였고, 또 물에는 반드시 이치가 있으니 다 마땅히 궁구하여야 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또 이미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살펴야 한다고 하였고, 또 몸에 살펴서 더욱 간절하게 얻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한 것은

다 서로 밝혀 각각 그 뜻을 다 한 것이오니 모름지기 자세히 이해하여 꿰뚫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 연평 이씨(延平李氏)는 말하기를, "학문을 하려면 먼저 마음을 보존하여야 하고, 학문 이외의 다른 일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된다.

대개 한 가지 일을 만나면 곧 그 일만 되풀이하며 파고 들어서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의문이 풀리는 것을 기다려서

차례로 따라 나아가서 다른 일을 궁구해야 하고, 이렇게 하기를 오래하여 쌓인 것이 많으면 가슴 속은 스스로 상쾌해지는 것인데,

이것은 글 몇 자나 말 몇 마디가 미칠 바가 아니다." 하였습니다.

○ 주자가 말하기를, " 천도(天道)가 유행하고 조화(造化)가 발육하여, 무릇 천지 사이에 차 있는 무릇 소리와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 물이다.

이미 이 물이 있으면 그 물이 된 것은 각각 당연한 법칙이 있는 것이고, 스스로 그렇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인데,

이것은 다 하늘이 내려준 것이요, 사람이 능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가령 지극히 간절하고 가까운 것으로 말한다면, 마음이란 것은 실로 몸을 주재하고 있으며,

그 체(體)에는 인(仁)·의(義)·예(禮)·지(智)의 성(性)이 있고,

그 용(用)에는 측은(惻隱)·수오(羞惡)·공경(恭敬)·시비(是非)의 정(情)이 있어

혼연(渾然)히 가운데 있어서 감촉함을 따라 응하는데 각각 주재하는 바가 있어 혼란할 수 없다.

다음으로 몸의 갖춘 바에 미치면 입·코·귀·눈·사지(四肢) 등의 용(用)이 있으며,

또 다음으로 몸에 관계되는 바에 미치면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 등의 상(常)이 있는데,

이것은 다 반드시 당연한 법칙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이른바 이치이다.

이것이 밖으로 사람에 이르면 사람의 이치는 자기와 다른 것이 없고, 멀리 물(物)에 이르면 물의 이치는 사람과 다른 것이 없다.

그 큰 것을 지극히 하면, 천지가 움직이는 것이나 고금(古今)이 변하는 것도 여기서 벗어나지 아니하며,

작은 것을 지극히 하면, 티끌 하나의 미미한 것이나 숨 한 번 쉴 순간도 이것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상제(上帝)가 내려준 성[降衷]이요, 모든 백성이 가지고 있는 떳떳한 것[秉彛]이니,

유자(劉子)의 이른바 '천지(天地)의 중'(中) 이며, 공자의 이른바 '성(性)과 천도(天道)'요,

자사(子思)의 이른바 '천명(天命)의 성(性)' 이며, 맹자의 이른바 '인의(仁義)의 마음' 이고,

정자의 이른바 '천연(天然) 있는 그대로의 중(中)이며, 장자(張子)의 이른바 '만물의 근원'이고,

소자(邵子)의 이른바 '도리의 형체(形體)' 라는 것이다.

다만 그 기질(氣質)이 맑고 탁한 것과, 치우치고 바른 것의 다름이 있으며, 물욕(物慾)이 많고 적은 것과, 두텁고 엷은 것의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과 물(物),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가 서로 두드러지게 달라 같지 않은 것이다.

그 이치가 같기 때문에 한 사람의 마음으로써 천하 만물의 이치를 알지 못할 것이 없으나,

그 타고난 자질이 다르기 때문에 그 이치는 다 궁구하지 못하는 수가 있으며,

이치를 다 궁구하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지식을 극진히 하지 못한다.

지식이 극진하지 못하면 그 마음의 발하는 것이 반드시 의리에 순수할 수 없어서 물욕의 사사로운 잡념이 없지 못하니

이것이 그 뜻이 성실하지 못하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며, 몸을 닦지 못하여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옛날의 성인이 이를 근심하여 처음에 소학(小學)을 가르쳐서 정성과 공경함을 익히게 하였으니,

곧 그 놓친 마음을 거두어 들이고 덕성(德性)을 기르는데 있어 이미 그 지극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으며,

「대학」으로 나아가면 또 사물 가운데 나아가서, 이미 아는 바 이치를 따라 깊이 궁구하여 각각 그 극치에 이르게 하였으니,

나의 지식이 또한 두루 통하고 정밀하여 다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

만약 그 힘을 기울이는 방법은 혹 일의 현저한 데 상고하고, 혹은 생각의 미미한 데서 살피기도 하며,

혹 문자 가운데서 구하기도 하고, 혹 강론할 지음에 모색하기도 하여,

신심(身心)·성정(性情)의 덕(德)과 인륜(人倫)·일용(日用)의 상(常) 뿐 아니라 천지·귀신의 변하는 것과

새·짐승이나 풀·나무의 마땅한 것까지도 물마다 다 소당연(所當然)35) 하여 마지 아니하는 것과,

그 소이연(所以然)36) 하여 바꾸지 못하는 것을 얻어 보지 못하는 것이 없어서,

반드시 겉과 속과 정밀한 것과 거친 것을 다하지 않은 것이 없게 하며,

또 더욱 비유하여 미루어 통하여 어느 날 환하게 꿰뚫으면 천하의 물에 대하여 그 의리의 정밀한 데까지 지극히 궁구하게 되며,

나의 총명과 밝은 지혜도 역시 그 마음의 본체를 다하여 극진하지 아니함이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도리는 형체나 그림자는 없고, 오직 사물이나 언어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해 이해(理解)가 지극히 자세하면 곧 도리도 지극히 정밀하게 된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지금 사람들은 선하지 아니한 것[不善]은 마땅히 해서는 안될 줄 알면서도

일을 당하면 또 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다만 이것은 아는 것이 극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훼(烏喙 : 독한풀 부자附子)는 사람을 죽이므로 먹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당연히 끝내 먹지 아니하니, 이것은 진실로 안 것이다.

선하지 않은 것을 해서는 않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혹 한다면 이것은 오직 진실로 안 것이 아니다." 하였습니다.

○ 어떤 사람이 묻기를, "일을 당하지 않았을 때에는 옳은 것을 가려 알았으나, 일을 당하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그것은 단지 판단하고 조치하는 것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격물(格物)은 한가한 때에 해야 하며 그때에 임박하여 이해해서는 안된다.

한가한 때에 도리를 분명히 안다면 일에 당하여 판단하고 조치하기는 자연히 쉬운 것이다." 하였습니다.

○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아홉 가지 생각하는 것이 있으니, 봄[視]에 분명함을 생각하고 들음[廳]에 총명함을 생각하며,

안색은 온화함을 생각하고, 용모는 공손함을 생각하며, 말은 충성스러움을 생각하고, 일에는 공경함을 생각하며,

의문스러우면 물을 것을 생각하고, 분(忿)하면 어려움을 생각하며, 얻는 것이 있으면 의(義)를 생각한다."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보는 데 가리는 것이 없으면 자세히 보이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며, 듣는 데 막힌 것이 없으면 밝게 들리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안색은 얼굴에 나타난 것이고, 용모는 온 몸을 말하는 것이다. 물음을 생각하면 의심이 쌓이지 않을 것이며,

어려움을 생각하면 반드시 분(忿)이 막힐 것이며, 의를 생각하면 얻는 데 구차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어떤 사람이 묻기를, "사람은 마땅히 일에 따라서 생각해야 하며, 만약 아무 일이 없이 생각하면 이것은 망상(妄想)입니까." 하니

주자가 대답하기를, "만약 한가한 때에 생각하지 않고 일을 당하여 생각하면 이미 미치지 못한다.

일은 모름지기 먼저 그 사리를 깨달아 알아야 한다." 하였습니다.

(만 가지 일과 만 가지 물(物)을 다 이해하여야 하지마는, 몸을 살피는 것이 더욱 간절합니다. 그러므로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표현하였습니다.)

○ 의리에 의심이 있으면 묵은 견해를 씻어버리고 새로운 뜻이 나오게 하여야 한다. (횡거문집橫渠文集)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마음에 의심이 있어도 묵은 견해에 가로 막히면 치우쳐서 고집하게 될 것이니, 새로운 뜻이 어디서 나올 것인가." 하였습니다.

○ 장자(張子)가 말하기를, "의심할 줄을 알지 못하는 이는 다만 실상으로 공부를 하지 않은 탓이다. (실지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이미 실상으로 공부를 하게 되면 곧 의문이 있어서 반드시 행하지 못할 곳이 있을 것이니 이것이 의문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가 말하기를, "의리를 사색(思索)하다가 혼란하여 막히는 곳이 있으면 모두 털어버리고[掃去], 마음 속을 텅비게 하며,

그러다 문득 들쳐 한 번 살펴보면 곧 스스로 집히는게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앞서 이선생(李先生)을 뵈었더니 이 말씀을 들려 주셨는데 오늘에야 시험해 보니 빈말이 아니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연평 이선생(延平李先生)이 일찌기 말하기를, '도리는 낮에는 깨달아 알고,

밤에는 문득 고요한 곳에서 앉은 자세로 생각을 하여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 하였다.

내가 이 설에 의하여 공부를 해 보니 진실로 옳은 말이다." 하였습니다. (마음이 고요하면 이치가 밝아집니다.)

○ 치지(致知)는 수양하는 데 있는데, 수양을 하는 데는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정씨외서(程氏外書) ○ 이천(伊川)선생의 말.)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밖으로 물욕에 흔들리지 않으면 마음의 경지가 맑아지고, 안으로 함양(涵養)하는 공부가 있으면 밝은 지혜가 생긴다." 하였습니다.

○ 주자가 말하기를, "배우는 이의 공부는 오직 거경(居敬)·궁리(窮理)에 있는데, 이 두 가지 일은 서로 협조가 된다.

능히 궁리하면 곧 거경의 공부가 날로 나아가며, 능히 거경하면 곧 궁리의 공부가 날로 치밀하여진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학문을 강론하는 데 힘쓰는 이는 실천하는 데 결점이 많고,

실천하는 데 마음을 오로지 하는 이는 또 학문을 강론하는 것을 무익(無益)하다고 한다.

자못 실천을 통해서 학문을 강론하는 공효를 이루어 지식을 더욱 밝게 하면 곧 지키는 바가 날로 굳어져서

입이나 귀로서 구구하게 말하는 것과는 같이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독서(讀書)하는 방법에 대한 통괄적인 말씀

○「주역」에 말하기를, "하늘이 산중(山中)에 있는 것은 대축괘(大畜卦)37) 이다.

군자는 이것을 보고 옛 언행(言行)을 많이 알아서 그 덕을 기른다." 하였습니다. (대축괘(大畜卦)의 상사(象辭))

정자가 말하기를, "하늘은 지극히 큰 것인데 산중에 있으니 기르는 것의 지극히 큰 형상이다.

군자가 그 형상을 보아 쌓아 축적하는 것을 크게 한다.

사람의 온축(蘊蓄)함은 학문으로 말미암아 확대하니 옛날 성현의 언행(言行)을 많이 듣는 데 있다.

<성현의> 남긴 자취를 상고하여 그 용(用)을 관찰하고, <성현의> 말씀을 살펴서 그 마음을 구하여 인식하여,

얻어서 그 덕을 길러 이루는 것이, 곧 대축(大畜)의 뜻이다." 하였습니다.

본심(本心)이 타락한 지 오래 되매 의리가 투철하게 통하지 못한다.

글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여, 항상 끊임없이 하면 물욕이 능히 이기지 못하여 본심의 의리가 편안하고 굳어질 것이다. (주자대전朱子大全)

주자는 말하기를, "천하의 이치는 미묘하고 정미(精微)하여 각각 마땅한 바가 있기 때문에 옛과 지금을 통하여 바꾸지 못한다.

오직 옛날 성인은 능히 이치를 다하여 그 언행(言行)은 천하나 뒷 세상에서의 바꿀 수 없는 규범이 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나머지는 거기에 따른 이는 군자가 되어서 길(吉)하고, 저버린 이는 소인이 되어서 흉(凶)하다.

길한 것이 큰 이는 사해(四海)를 보전하여 모범이 되고, 흉한 것이 심한 이는 그 몸도 보전하지 못하여 경계가 된다.

이것은 그 찬연(粲然)한 흔적이며, 반드시 그러한 공효로서 경훈(經訓)과 사책(史冊) 가운데 갖추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천하의 이치를 궁구하려고 하면서 여기에 나아가 구하지 아니하면 이는 담[墻] 앞에 정면으로 선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궁리는 반드시 독서하는 데 있는 까닭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사람이 학문하는 까닭은 나의 마음이 성인의 마음과 같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성인의 마음과 같지 못하기 때문에 이치를 밝히는 데 밝지 아니 하고, 준칙(準則)이 되는 바가 없어서

그 좋아하는 것에 따라서 높은 이는 지나치고, 낮은 이는 미치지 못하되 스스로는 지나치고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반드시 앞에 나아간 이의 말로써 성인의 뜻을 구하고, 성인의 뜻으로써 천지의 이치에 달하여야 한다.

구하는 데는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미치고, 이르는 데는 가까운 곳에서 먼 곳에 미쳐 순순하여 차례가 있어야 하며

서둘거나 절박한 마음으로 구해서는 안된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글을 읽되, 즐겨하지 않는 이는 게으르고 소홀하며 지속성이 없어 성공하지 못한다."

<글읽기를> 즐겨하는 이는 또 대체로 많은 것을 탐(貪)하고 넓은 것을 힘써서, 가끔 그 실마리도 잡지 못하고 급작히 그 끝을 찾으려 하며,

이것을 궁구하지도 못하고 문득 뜻이 저기에 있다. 그러므로 비록 종일토록 노동을 하고도 쉬지 못하며,

마음이 총총하고 항상 분주하게 쫓기는 것 같아서 고요히 함영(涵泳)하는 즐거움이 없으니,

어찌 스스로 얻은 것을 깊이 믿어서 오래도록 싫지 않아서 저 게으르고 소홀하여 지속성이 없는 이와 다른 것이 있겠는가.

공자의 이른바 '빨리 서두르면 달하지 못한다.' 한 것이나 맹자의 이른바, '나아감이 빠르면 물러나는 것도 빠르다." 한 것은 바로 이를 말한 것이다.

진실로 이것을 거울로 삼아 반성하면 마음이 하나로 가라앉아, 오래도록 흔들리지 않아서 글을 읽으면 문의(文意)가 이어지고 혈맥(血脈)이 관통하며,

자연히 점점 배어서 흡족하게 되어 마음이 사리를 깨달아 알아서, 선한 것을 권하는 것이 깊고, 악한 것을 경계하는 것이 절실하게 될 것이니,

이것이 차례를 따라 정밀하게 읽는 것이, 독서하는 방법이 되는 까닭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글을 읽어도 의심이 없는 것은 처음 배우는 이의 공통된 병통이다.

<이것은> 대개 평소에 많이 읽기만 했을 뿐 자세하게 연구를 하지 않고 속히 읽어 넘긴[涉獵] 탓이다.

지금 이런 일을 깊이 경계하여 일소하고 따로 규모를 갖추어 문자(文字)를 보되, 더욱 정밀하고 가장 급(急)한 것을 가려내어 한 책을 보고,

하루의 힘에 따라 한두단(段)을 보되 한 단을 깨달으면 비로소 한 단을 나아가고, 한 책을 다 마치면 또 한 책을 바꾸어 읽어야 한다.

먼저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고르게 한 다음에 숙독(熟讀)하고, 정밀하게 생각하여 한자·한 구절을 다 이해하고 지나가고

여러 어진 이의 주해(註解)를 일일이 꿰뚫은 뒤에 그 시비(是非)를 비교하여 성현이 말씀하신 근본 뜻을 구할 수 있다.

비록 얻었더라도 역시 되풀이하여 익혀서 그 의리가 살[肌]에 배이고 골수에 젖어야만 학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윤화정(尹和靖)38)의 문인이 그 스승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위대한 성현의 가르침인 육경(六經)의 편(編)을 귀에 순하고 마음으로 체득하여

자기의 말을 외우는 것과 같이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지위에 이르러야 비로소 독서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글을 읽되 처음 읽을 적에는 의문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다가, 다음에 점점 의문이 생기고 중간에는 마디마디 의문이 되니,

이런 고비를 지난 뒤에야 의문이 점점 풀리며, 자세히 이해하고 꿰뚫어서 의문스러운 것이 모두 없어져야 비로소 학문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대개 문자를 보되 먼저 반드시 그 문장의 뜻을 깨달아야만 그 뜻을 알 수 있으며,

문장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글의 뜻을 이해하는 이는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위는 독서를 하려면 정밀히 해야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 귀산 양씨(龜山楊氏)39)는, "독서를 하는 법은 몸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경험하여, 조용히 유한(幽閒)하고 정일(靜一)한 가운데서 묵묵히 이해하고,

초연히 책의 글과 형상의 뜻 밖에 스스로 얻어야 할 것이니, 대개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이 이와 같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독서를 함에는 모름지기 몸을 단정하게 정좌(正坐)하여 눈을 지긋이 뜨고 작은 소리로 읽으며,

마음을 비워 함영(涵泳)하고, (함영(涵泳)은 숙독(熟讀)하여 깊이 익히게 됨을 말한 것입니다.)

몸을 절실하게 성찰(省察)하여야 한다. 한 구(句)의 글을 읽으면 그 한 구를 자신이 장차 어느 곳에 응용할 것인가를 몸소 살펴야 한다." 하였습니다.

○ 어떤 사람이 묻기를, "평소에 글을 읽을 때에는 역시 소견이 있는 것 같으나 이미 책을 놓으면

또 일반(一般)이니, 병통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니,

주자는 대답하기를, "이것은 몸에 구하지 아니하고 전혀 책에만 구하기 때문에 진실로 이와 같다.

대개 내 몸이 일상 생활하는 사이에 도(道)가 아닌 것이 없고, 글은 이 마음을 연결할 뿐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먼저 몸에서 구한 뒤에 책[書]에서 구하면 곧 글을 읽는데 진미가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대개 문자를 볼 때는, 7년이다, (大國五年 小國七年) 1세(世)다, (雖有王者 必世而後仁) 백 년이다,

(善人爲邦 百年亦 可以勝殘 去殺矣) 하는 종류를 (다 논어論語에 보입니다.) 다 어떻게 하여야 할까를 생각하여야 유익하게 된다." 하였습니다.

○ 동래 여씨(東來呂氏)40)가 말하기를, "지금 사람들은 글을 읽되 전혀 쓰일 데가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2·30년을 두고 성인의 글을 읽어도 하루아침에 일을 당하면 문득 거리의 사람들과 다른 것이 없으니 이는 다만 글을 읽을 뿐이며,

쓰일 데가 있는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이상은 글을 읽는 것은 실제로 사용을 위한 것이어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 다음은 소학(小學)을 읽는 방법에 대한 말씀

○ 주자의 소학서(小學書)가 강령(綱領)이 매우 좋아서 날로 쓰는 데 가장 적절하여

비록 대학(大學)의 성공에 이르더라도 역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아니한다. (소학집설(小學集說) ○ 진순씨陳淳氏의 말)

과재 이씨(果齋李氏)는 말하기를, "선생은 나이 58세에 소학(小學)이라는 책을 엮었는데,

책이 완성되자 어린 선비를 가르쳐, 그 기본적인 것을 배양하고 그 지엽적인 것을 통달하게 하였다.

내편(內篇)은 입교(立敎)·명륜(明倫)·경신(敬神)·계고(稽古)41)이고, 외편(外篇)은 두 가지인데,

고금(古今)에서 아름다운 말을 취하여 넓히고 선행(善行)으로 충당하였으니,

비록 이미 「대학」에 진학한 이라도 역시 얻어서 겸비해 두면 수신(修身)의 규범이 여기에 대략 갖추어져 있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옛 사람은 「소학」에서 이미 존양(存養)42) 하는데 성숙하여 기본 바탕이 이미 두텁기 때문에,

「대학」에 가서는 다만 그 위에 약간의 정채(精采)를 나타낼 따름이었던 것이다." 하였습니다.

○ 어떤 사람이 묻기를, "제가 어려서부터 「소학」의 차서를 잃었는데, 「대학」을 배우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주자가 대답하기를, "「대학」을 배우려면 먼저 「소학」을 보아야만 한다. 달포의 공부를 하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 노재 허씨(魯齋許氏)43)는 말하기를 "「소학」 책은 내가 신명과 같이 믿으며, 부모와 같이 공경한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사서(四書)를 읽는 방법에 대한 말씀

주자가 말하기를, "먼저 「대학」을 읽어 그 규모를 정하고, 다음에 「논어」를 읽어 그 근본을 세우며,

다음에 「맹자」를 읽어 그 뛰어남을 보고 다음에 「중용」을 읽어 옛 사람의 미묘한 것을 구해야 한다.

「대학」을 꿰뚫어 이해하여 의문이 없어진 뒤에 「논어」와 「맹자」를 읽어야 하고, 또 의문이 없어진 뒤에 「중용」을 읽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 처음으로 배워서 덕(德)에 들어가는 입문서(入門書)로 「대학」만한 것이 없다. (정씨유서程氏遺書 ○ 이천伊川 선생의 말.)

주자가 말하기를, "「논어」와 「맹자」는 일에 따라 문답(問答)한 것이기 때문에 요령을 보기 어렵다.

오직 「대학」은 증자(曾子)가 공자의 설을 서술한 것으로서 옛 사람의 공부하던 방법인데,

그 문인이 또 전술(傳述)하여 그 뜻을 밝혀서 앞뒤가 서로 연결되고, 체통(體統)이 모두 갖추어졌으니,

이 책을 통하여 옛 사람의 학문의 방향을 알고, 논어(論語)와 맹자(孟子)를 읽으면 들어가기 쉬워서,

그 후의 공부할 것은 비록 많더라고 대략의 체계는 이미 확립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대학(大學)을 읽는 것은 어찌 그 언어(言語)를 보려는 것이겠는가. 바로 마음이 어떠한가를 체험하려는 것이다.

'선을 좋아하기를 호색(好色)을 좋아하는 것같이 하고 악을 싫어하기를, 악취(惡臭)를 싫어하는 것 같이 하라' 는 것을

내 마음 속에서, 과연 선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기를 이 같이 하는가 시험해 보며,

'한가하게 지낼 적에 선하지 못한 짓을 하는 것을, 과연 이런 일이 있는가.

시험해 보아 한 가지라도 이르지 못한 것이 있으면, 용감하게 분발하여 그만두지 아니한다면 반드시 장족의 발전이 있을 것이다.

지금 이런 것을 알지 못하면 글은 글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을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대개 독서讀書하는 법은 다 이러하고 비단 대학(大學)만이 아니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대학의 글에는 정경(政經)이 있고, 장구(章句)가 있으며 혹문(或問)44)이 있는데,

보아오고 보아가는데 따라 혹문은 보지 아니하고 다만 장구만 보아도 이해할 수 있고, 더 오래 되면 정경만 보아도 될 수 있으며,

또 더 오래 되면 대학(大學) 한 권이 나의 가슴 속에 차 있기 때문에, 정경을 역시 보지 않아도 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만큼의 허다한 공부를 하지 아니하면 역시 나의 말을 소화해 내지 못할 것이며,

성현만큼의 허다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역시 성현의 말을 이해해 낼 수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논어(論語)의 글은 그 말은 가까우나 그 뜻은 멀고, 말은 다함이 있으나 뜻은 무궁하니,

그 다함이 있는 것은 주해에서 찾을 것이요, 무궁한 것은 마땅히 정신으로서 이해해야 한다. (「논어」집주(集註) 정자(程子)의 말.)

연평 이씨(延平李氏)는 말하기를, "사람의 몸가짐은 마땅히 공자를 본받아야 한다.

공자와 서로 거리가 천여 년[千餘載]이나 되기 때문에 이미 친해질 수 없고, 볼 수 있는 것은 다만 논어(論語)뿐이다.

「논어」에 기록된 것은 공자의 언행(言行)이다. 매양 읽어서 음미(吟味)하고 익혀서 해석하며,

미루어 행한다면 비록 당(堂)에 오르고 방[室]에 들어갈 정도는 되지 못하더라도, 역시 사군자(士君子)로서는 잃는 것이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가 말하기를, "「논어」를 읽는 이가, 다만 여러 제자(弟子)들이 묻는 것을 곧 자기의 물음으로 생각하고,

성인이 대답한 것을 지금 귀로 듣는 것처럼 생각하면 자연히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만약 「논어」와 「맹자」의 글 가운데에서 깊이 구하고 익혀 음미해서 함양(涵養)한다면 비상한 기질(氣質)을 이룰 것이다." 하였습니다.

(심생(甚生)은 비상(非常)과 같습니다.)

○ 또 말하기를, "만약 「논어」를 읽지 않았을 때도 이런 사람이요, 읽고 난 뒤에도 이런 사람이라면 이것은 곧 읽지 아니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성인의 도(道)를 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맹자」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창려문집(昌黎文集))

정자가 말하기를, "안자(顔子)가 죽은 뒤에 마침내 성인의 도를 얻은 이는 증자(曾子)이고, 그 학문을 전한 이는 자사(子思)와 맹자(孟子)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맹자」가 성문(聖門)에 공이 있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중니(仲尼 : 공자孔子)는 다만 하나의 인(仁)자를 말하였고, 맹자는 입만 열면 문득 인의(仁義)를 말하였으며, 중

니는 다만 하나의 지(志)자를 말하였고. 맹자는 문득 기운을 기르는 허다한 설을 말하였으니, 단지 이 두 글자에 그 공효가 매우 많다." 하였습니다.

「논어」와 「맹자」를 읽고도 도를 알지 못하면, 그것은 이른바 '비록 많지만 무엇하겠는가.' 한 것이다. (정씨유서(程氏遺書) ○ 이천(伊川)선생의 말.)

주자는 말하기를, "「논어」의 말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으되, 사람에게 보인 것은 모두 조존(操存) · 함양(涵養)의 요령이요

<맹자> 7편의 뜻은 궁구하지 아니한 것이 없으되 그 사람에게 보인[示]것은 대개 체험(體驗)과 확충(擴充)의 실마리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배우는 이는 마땅히 「논어」와 「맹자」를 근본으로 삼아야 하며,

「논어」나 「맹자」를 제대로 읽으면 육경(六經)은 별 힘들이지 않아도 밝아질 것이다.

글을 읽는 이는 마땅히 성인이 경(經)을 지은 의도와, 성인의 마음쓰는 것과 성인이 성인으로 이르고,

내가 이르지 못하고 얻지 못한 까닭을 구절마다 구하여, 낮에는 외워서 음미하고, 밤에는 생각하여 그 마음을 고르게 하며,

기운을 바꾸며 의문은 버리면 곧 성인의 뜻이 보일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사람이 다만 이 두 책을 얻어 보면 몸에 절실하여 종신(終身)토록 사용하여도 남는다." 하였습니다.

○ 중용(中庸)은 공부가 치밀하고 규모가 크다. (주자대전(朱子大全))

주자는 말하기를, "중(中)은 치우치지 아니하고 의지하지 아니하면 (미발(未發)의 중(中)입니다.)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한 것이 없는 것이며 (이발(已發)의 중(中)입니다) 용은 평상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치우치지 않은 것을 중이라 하고, 바꾸지 않는 것을 용(庸)이라고 한다.

중이라는 것은천하의 바른 도리요, 용이라는 것은 천하의 정해진 이치이다.

이 편(篇)은 공문(孔門)에서 전해 준 심법(心法)45)인데, 자사는 너무 오래되어 어긋날까 염려하였다.

그러므로 책을 써서 맹자에게 전수하였는데, 그 책의 첫머리는 한 이치를 말하고, 가운데는 흩어져서 만 가지 일이 되고, 끝은 다시 합하여 한 이치가 된다.

풀어놓으면 육합(六合)46)에 차고 접으면 깊숙이 감추어져서 그 맛이 무궁하니 다 실학(實學)47)이다.

선독(善讀)하는 이가 깊은 뜻을 생각하여 찾아보아 얻는 것이 있다면, 곧 종신토록 쓰더라도 다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중용을 읽는 이가 높은 것을 바라지 아니하고 기이한 것에 놀라지 아니하여,

반드시 구두(句讀)와 문의(文義) 사이에 깊이 잠겨 그 귀추를 이해하며, 반드시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가운데 삼가고 두려워하여,

그 실지대로 실천하면 거의 마음이 너그럽고 만족하여져서, 진실로 힘을 쌓아 오래하면 박후(博厚)하고 고명(高明)하며

유구(悠久)한 영역에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홀연히 이를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육경(六經)을 읽는 방법에 대한 말씀

○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육경은 모름지기 순환하여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의리(義理)가 참으로 무궁하니 자신이 조금 나아가면 또 보이는 것이 다름이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소자(小子)들아, 어찌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흥(興)하기도 하고, 관(觀)하기도 하며, 군(群)하기도 하고, 원(怨)하기도 한다." 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소자(小子)는 제자(弟子)이다. 흥(興)은 뜻을 감응·발동하는 것이다.

관(觀)은 득실(得失)을 상고해 보는 것이고, 군(群)은 조화하되 유입(流入)하지 않는 것이며, 원(怨)은 원망하되 노(怒)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시는 성정(性情)에 근본하여 사(邪)도 있고 정(正)도 있다.

그 말이 알기 쉬운데 읊조리고 음조(音調)의 높고 낮은 것을 반복하는 사이에 사람이 또 감동하기 쉽다.

그러므로 배우는 이가 그 착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켜

스스로 그치지 못하는 것을 반드시 여기서 얻게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가까이는 아버지를 섬길 수 있고,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다.

주자는 말하기를 "인륜(人倫)의 도가 시에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이 없으나, 이 두 가지는 중요한 것을 들어서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조수(鳥獸)와 초목(草木)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된다.

주자는 말하기를. "그 나머지는 또 많이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시를 배우는 법을 이 장(章)에서 다하였으니, 이 경(經)을 읽는 이는 마음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를 배우지 아니하면 말을 할 수가 없다.

주자는 말하기를, "시는 사람의 정(情)에 근본하고 물(物)의 이치를 겸하여, 풍속(風俗)의 성쇠(盛衰)를 징험하고,

정치의 득실(得失)을 볼 수 있으며, 사리가 통달하고 심기(心氣)가 화평하다. 그러므로 능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지금 사람은 독서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가령 '시 3백을 외워도 정사(政事)를 맡겨 통달하지 못하며, 사방(四方)에 심부름시켜 단독으로 대꾸하지 못한다면,

비록 많이 읽은들 무엇하겠는가.' (공자의 말씀임.) 모름지기 시를 읽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정사에 통달하지 못하고,

전혀 단독으로 대답도 못하지마는, 이미 시를 읽은 뒤에는 문득 정사에도 통달하고,

능히 사방(四方)에 단독적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이것이 비로소 시를 읽은 것이다.

'사람이 주남(周南)과 소남(召南)48)을 읽지 아니하면 담장을 대한 것과 같다.' (역시 공자의 말씀임.)

모름지기 시를 읽지 아니한 때에는 담장을 대한 것과 같으나 시를 읽은 뒤에는 곧 담장을 대한 것과 같지 않아야 비로소 효험이 있는 것이니,

대개 독서(讀書)는 이와 같아야만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예(禮)를 배우지 아니하면 서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예는 공경하는 것과 겸손한 것으로 근본을 삼지마는,

절문(節文)과 도수(度數)의 자세한 것이 있어 사람의 기부(肌膚)의 회(會)와 근해(筋骸)의 속(束)을 굳게 한다.

그러므로 배우는 이가 탁연(卓然)히 자립(自立)하여 사물(事物)에 흔들려서 빼앗기는 바가 되지 않는 것을 반드시 여기서 얻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품절(品節)이 상세히 밝으며 덕성(德性)이 굳게 정(定)해지기 때문에 능히 서게 된다." 하였습니다.

○ 영가 주씨(永嘉周氏)는 말하기를, "경례(經禮) 3백과 위의(威儀) 3천이 모두 성(性)에서 나온 것이며, 모양을 속이고 정(情)을 가식[飾]한 것은 아니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기 때문에 예가 떳떳하게 섰으며, 유(類)로 모이고 무리로 나누어졌기 때문에 예가 진실로 행해졌다.

사람이 천지 사이에 위치하고 만물의 위에 섰으니, 존비(尊卑)와 분류(分類)는 베풀지 아니하여도 드러난다.

성인이 이것을 좇아서 관혼 상제(冠婚喪祭)와 조빙 향사(朝聘鄕射)의 예(禮)를 만들어

군신(君臣)·부자(夫子)·형제(兄弟)·부부(夫婦)·붕우(朋友)의 의리를 행하게 되었다.

그 형이하의 것은 음식·기복(器服)의 쓰이는 데서 나타나며, 형이상의 것은 무성(無聲)·무취(無臭)의 은미함에까지 지극하다.

뭇 사람은 힘쓰고 현인은 행하며 성인은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그 몸과 그 집과 나라와 천하는 예가 다스려지면 다스려지고, 예가 어지러워지면 어지럽고, 예가 있으면 존재하고, 예가 망하면 망한다.

진씨(秦氏)49)가 책을 불살라서 3대(代)의 예문(禮文)이 크게 무너졌다.

한(漢)나라가 흥하여 책을 구입하였으나, 예기(禮記) 49편이 여러 선비들의 전기(傳記)에서 섞여 나왔으며 성인의 뜻을 다 얻지는 못하였다.

그 글의 뜻을 살펴보니, 때로는 서로 어긋나는 것이 있으나, 그 글은 번거롭고 뜻은 넓으니,

배우는 이가 널리 배워 요약하면 역시 <도에>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대개 그 내용이 추(粗)한 것은 응대(應對)하고 진퇴(進退)하는 사이에 있고,

정(精)한 것은 도덕(道德)과 성명(性命)의 요긴함에 있으며, 어린애의 학습에서 시작하여 성인(聖人)에 이르는 데서 끝난다.

오직 옛 도(道)를 달한 뒤라야 능히 그 말을 알고, 그 말을 안 뒤라야 능히 예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예가 예된 것이 그 법칙이 멀지 않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 덕(德)이라는 것은 성(性)의 실마리요, 악(樂)이라는 것은 덕(德)의 영화(英華)이다.

금(金)·석(石)·사(絲)·죽(竹)은 풍악의 기구이다.

시(詩)는 그 뜻을 말한 것이고 노래는 그 소리를 읊은 것이며, 춤은 그 몸을 움직이는 것이니,

이 세 가지는 마음에 근본하여야만 악기(樂器)가 뒤따를 것이다.

그러므로 정(情)이 깊어서 문(文)이 밝고, 기운이 성하여 변화가 신통하다,

화하고, 순한 것이 중(中)에 쌓이면 영화(英華)가 밖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니 오직 음악은 거짓으로 하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예기(禮記))

유씨(劉氏)는 말하기를, "뜻이라는 것은 실마리[端]가 처음 발하는 것이다.

(덕은 마음에 있는 것이고, 성(性)은 그 덕의 근본이기 때문에 말하기를, "덕이라는 것은 성의 실마리이다." 하고,

뜻은 이 마음의 가는 바이기 때문에 말하기를, "실마리가 처음 발(發)하는 것이다." 한 것입니다.)

목소리와 용모는 영화(英華)가 이미 나타난 것이다.

뜻이 움직여 시가 형성되고, 시가 이루어져 그 소리를 길게 노래하며, 길게 노래하는 것으로 부족하면

자기도 모르게 손과 발을 흔들어 춤추고 뛰며, 그 몸을 움직이게 된다.

이 세 가지는 다 마음이 여러 가지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임에 근본한 뒤에 팔음(八音)의 악기에 올려서 간척(干戚)과 우모(羽)에 미치게 된다.

정(情)이 마음 속에 감응하는 것이 깊으면 문(文)이 밖에 나타나는 것이 밝다.

이는 마치 천지의 기운이 안에 성하면 조화가 물에 미치는 것이 신묘(神妙)하여 예측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화하고 순한 것이 중(中)에 쌓이어 영화(英華)가 밖에 발한다.' 하였다.

이것으로 본다면 풍악의 풍악되는 것을 거짓으로 할 수 있겠느냐."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풍악에는 5성(聲)과 12율(律)50)이 있는데, 서로 노래부르면서 서로 화답하여 가무(歌舞)를 하면

8음절(音節)이 사람의 성정(性情)을 길러서 간사하고 더러운 것을 씻고, 찌꺼기는 말끔히 사라질 것이다.

배우는 이는 의리가 정밀하고, 인(仁)이 익어서 스스로 도덕에 화하고 순하는 것을 반드시 여기서 얻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옛날 풍악은 이미 망하여 다시 배울 수 없게 되었고, 다만 학문을 강론하고 실천하는 사이에서 그 남긴 뜻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 임천 오씨(臨川吳氏)는 말하기를, "예경(禮經)이 겨우 남아 있는 것은 그래도 지금의 의례(儀禮) 17편이 있는데, 악경(樂經)은 없다.

그 경(經)은 아마 성음(聲音)과 악무(樂舞)의 절이 대부분으로, 사구(辭句)로서 읽어 외우고 기록하여 적을 수 있는 것이 적었기 때문에,

진(秦)이 책을 불사른 뒤에 전하지못한 듯하다. 여러 선비들은 능히 음악의 뜻을 말한 데 지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주(周)나라가 쇠하자 예악(禮樂)이 무너졌으나 예서(禮書)는 오히려 남은 것이 있어서,

제도(制度)와 글을 상고하여 찾을 수 있었지마는, 악서(樂書)는 다 망하고 남지 않았다. 뒤

에 예를 찾은 것도 이미 선왕(先王)의 제도와는 맞지 않지마는 음악은 더욱 심하다.

지금 세상에서 쓰이는 것은 대개 정위(鄭衛)의 음(音)에 오랑캐의 음이 섞이어 인심을 방탕하게 하고,

풍속을 허물어지게 하기에 알맞으니, 어찌 도움이 되겠는가.

그러나 예악(禮樂)의 제도는 비록 망하였으나 예악의 이치는 남아 있다.

장엄하게 공경하는 것은 예의 근본이요, 온화하게 즐기는 것은 음악의 근본이다.

배우는 이가 진실로 장엄하게 공경하는 것으로 그 몸을 닦고, 온화하게 즐기는 것으로 마음을 기르면 곧 예악의 근본을 얻을 것이니,

역시 몸을 세우고 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서경(書經)을 본다면 모름지기 2제(帝)와 3왕(王)의 도를 보려고 해야 한다. (정씨유서(程氏遺書) ○ 명도(明道)선생의 말)

주자는 말하기를, "상서(尙書)를 읽음에 역대(歷代)의 세상이 변하는 것은 보기 어려우니, 성인의 마음을 구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가령 요(堯)는 그 백성을 다스린 까닭을 생각하고, 순(舜)은 그 임금을 섬긴 까닭을 생각하는 것들이다.

또 가령 탕서(湯誓)에 말한 바, '내가 상제(上帝)를 두려워하여 감히 바르게 아니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것들을

숙독(熟讀)한다면 어찌 탕(湯)의 마음을 보지 못하겠는가."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상서는 처음 읽으면 너무 어려워서 자기와 서로 관계되지 않는 것 같으나,

뒤에 숙독하면 요(堯)·순(舜)·우(禹)·탕(湯)·문(文)·무(武)의 사적이 모두 몸에 절실한 것임을 알게 된다." 하였습니다.

○ 무이 채씨(武夷蔡氏)는 말하기를, "2제와 3왕의 천하를 다스리는 큰 경(經)과 법(法)이 다

이 책에 실렸는데, 수 천년 뒤에 나서수 천년 전의 것을 강론하여 밝히려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2제와 3왕의 다스림은 도에 근본하고, 2제와 3왕의 도는 마음에 근본하였으니, 그 마음을 얻으면 도와 다스림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정일(精一)하여 중(中)을 잡는다는 것은 요(堯)·순(舜)·우(禹)가 서로 준 심법(心法)이요,

건중(建中)·건극(建極)51)은 상(商)의 탕(湯)·주(周)의 문(文) 무(武)가 서로 전한 심법(心法)인 때문이다.

덕(德)·인(仁)·경(敬)·성(誠)이란 것은 말은 비록 다르나, 이치는 하나이니 모두 이 마음의 미묘함을 밝힌 것이다.

후세의 임금이 2제와 3왕의 다스림에 뜻을 둔다면 그 도를 구해야 할 것이며, 2제와 3왕의 도에 뜻을 둔다면 그 마음을 구해야 할 것이니,

마음을 구하는 요령은 이 책을 버리고서 어찌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서전서문>

○ 공자는 말하기를, "대개 역(易)이란 무엇을 하는 것인가 하면, 그것은 물(物)을 열고 일을 이루어 천하의 도를 포괄[冒]함이니, 이러할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역으로써 천하의 뜻을 통하며, 역으로써 천하의 공업을 정하며, 역으로써 천하의 의심을 결단한다." 하였습니다. (역계사易繫辭)

주자는 말하기를, "물(物)을 열고, 온갖 일을 이룬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점을 쳐서 길하고 흉한 것을 알아서 사업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천하의 도(道)를 포괄[冒]한다는 것은 괘(卦)와 효(爻)를 이미 베풀어서 천하의 도가 모두 그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역은 변하고 바뀌는 것이니, 수시로 변하고 바뀌어 도(道)를 따르는 것이다.

그 글이 광대하여 다 갖추어져서 성명(性命)의 이치와 유명(幽明)의 이유를 밝히고, 사물의 정(情)을 다하여,

물(物)을 열고 일을 이루는 도를 보인 것이니, 성인이 뒷 세상을 근심한 것이 지극하다 하겠다.

지극히 은미(隱微)한 것은 이(理)이고, 지극히 드러난 것은 상(象)이다.

체(體)와 용(用)이 일원(一源)으로서 나타나고 숨는 것이 틈이 없으니 회통(會通)을 관찰하여 그 전례(典禮)를 행하면

(주자는 말하기를, "회(會)는 이치가 모인 것을 말한 것이요, 통(通)은 일의 마땅한 것을 말한 것이다." 했습니다.

뭇 이치가 모이는 곳에는 곧 쉽고 어려움과 막히고 방해됨이 있으니, 반드시 그 가운데서 통하는 곳을 얻어야 행할 수 있습니다.

전례(典禮)라는 것은 전상(典常)한 이치입니다.) 곧 말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잘 배우는 이는 말[言]을 구하되 반드시 가까운 데서 구한다. 가까운 데를 쉽게 여기는 이는 말을 아는 자가 아니다.

내가 전(傳)한 것은 말[辭]이니, 말로 말미암아 뜻을 얻는 것은 곧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時)를 알고 세(勢)를 아는 것이 역(易)을 배우는 큰 방법이다. (정자역전程子易傳)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방(方)은 술(術)과 같다. 시(時)는 성하고 쇠한 것이 있고, 세(勢)는 강하고 약한 것이 있는데,

역을 배우는 이는 마땅히 그 시세(時勢)를 따라서, 변화에 적응하되 오직 도를 따라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왕자의 자취가 없어지니 시가 망하고, 시가 망한 뒤에 춘추(春秋)를 짓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왕자의 자취가 없어졌다는 것은 평왕(平王)이 동천(東遷)하여 정교(政敎)한 호령(號令)이 천하에 미치지 못한 것을 이른 것이요,

시가 망했다는 것은 서리(黍離 : 시전의 편명)가 강등되어 국풍(國風)이 되어 아(雅)가 망한 것을 말한 것이다. 춘

추(春秋)는 노(魯)나라 사기(史記)의 이름인데, 공자가 거기에 필삭(筆削)하되 노나라 은공(隱公) 원년(元年)에서부터 시작하였으니,

실은 주나라 평왕(平王) 49년이다." 하였습니다.

그 일은 제(齊)나라 환공(桓公)과 진(晋)나라 문공(文公)이요, 그 글은 사기인데,

공자가 말하기를, "그 뜻은 곧 내[丘]가 사사로이 취[竊取]하였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춘추 때에 오패(五覇)52)가 잇달아 일어났으나 환공(桓公)·문공(文公)이 가장 성하였다.

사(史)는 사관(史官)이다. 절취(竊取)라는 것은 겸손한 말이다.

공양전(公羊傳)에는 기사 즉 구유죄언[其辭則丘有罪焉]이라 하였으니, 뜻이 같은 것이다.

대개 결단하는 것은 자신에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니, 이른바 쓸 만하면 쓰고, 깎을 만하면 깎았는데,

자유(子游)와 자하(子夏)가 능히 한 마디도 거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윤씨(尹氏)는 말하기를, "공자가 춘추(春秋)를 지음은 역시 사관(史官)의 글로써 당시의 일을 기재하였으나,

그 뜻은 천하의 사정(邪正)을 정하여 백왕(百王)의 큰 법으로 삼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하늘이 백성을 낳자 무리에 재주가 뛰어난 이가 반드시 있어서, 일어나 군장(君長)이 되어

다스려 쟁탈(爭奪)이 그쳐지고, 인도하여 잘 살게 되며, 가르쳐서 윤리가 밝아져야만

인도(人道)가 서고 천도(天道)가 이루어지며, 지도(地道)가 고르게 된다.

2제(帝) 이전에는 성현이 때때로 나와 수시로 진작하여서 풍기(風氣)의 마땅함에 순(順)하게 하였으며,

하늘을 어기어 사람을 가르치지 아니하였고, 각각 때를 따라 정사를 세웠다.

그 뒤에 3왕이 잇달아 일어남에 이르러서는 삼중(三重:왕도정치를 하는데 있어서 세가지 중대한 일.

곧 의례(議禮)·제도(制度)·고문(考文)·「王天下有三重焉 其寡過矣乎」≪中庸≫)이 이미 갖추어졌으니,

자(子)·축(丑)·인(寅)으로 정월(正月)을 삼고, 충(忠)·질(質)·문(文)으로 서로 숭상하여 인도(人道)가 갖추어지고 천운(天運)이 순환하였다.

그러나 성왕(聖王)이 이미 다시 일어나지 않자 천하를 둔 자가 비록 옛날의 자취를 모방하려고 하나, 역시 사사로운 뜻으로 망동(妄動)할 뿐이다.

일이 그릇되어 진(秦)나라는 건해(建亥)를 정월(正月)로 삼고, 도(道)가 그릇되어 한(漢)나라는 오로지 지혜로써 세상을 다스렸으니,

어찌 다시 선왕(先王)의 도를 알 수 있겠는가, 공자가 주(周)나라 말엽에 이르러 성왕(聖王)은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고,

하늘에 순하고 때에 상응하는 다스림이 다시 있지 않자 여기서 「춘추」를 지어 백왕(百王)의 바꿀 수 없는 큰 법으로 삼았으니,

이른바 3왕에 상고하여도 어긋나지 아니하고, 천지에 세워도 어긋나지 아니하며, 귀신에 질정하여도 의심이 없고,

백세(百世)에 성인을 기다려도 의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춘추」의 큰 의리는 수십(數十) 가지이다.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춘추」의 큰 의리는 임금을 높이고 신하를 낮추며 인의(仁義)를 귀히 여기고,

간사한 것을 천하게 여기며, 중국(中國)을 안으로 하고 오랑캐를 밖으로 하는 유례와 같은 것입니다.)

그 의리가 비록 크나 밝기가 해와 별 같아서 보기가 쉽지마는, 오직 그 미미한 글과 숨은 뜻의 때에 따라 마땅한 것을 따르는 것은 알기가 어렵다.

혹은 누르고 혹은 놓아 주며 혹은 허여하고, 혹은 빼앗으며 혹은 나아가고 혹은 물러가기도 하며 혹은 적어지기도 하고,

혹은 드러나게 하여서 모두 의리의 편안함과 문질(文質)의 중(中)과 관(寬)·맹(猛)의 마땅함과 시(是)·비(非)의 공평함을 얻었으니,

곧 일을 제재하는 저울이요, 도를 헤아리는 모범이다.

후세의 임금이 「춘추」의 의리를 알면 비록 덕이 우(禹)와 탕(湯)과 같지는 못하더라도, 오히려 3대의 다스림을 본받을 수 있다.

그 뜻을 얻고, 그 쓰인 것을 법받으면 곧 3대를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사기(史記)를 읽는 방법에 대한 말씀

○ 사기(史記)를 읽으면, 모름지기 치란(治亂)의 기틀과 현인 군자의 출처(出處)와 진퇴(進退)를 보아야 할 것이니,

이것이 곧 격물(格物)이다. (정씨유서程氏遺書 ○ 이천 선생伊川先生의 말)

정자는 말하기를, "대개 사기를 읽을 때에는 한갓 사적(事迹)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그 치란(治亂)과 안위(安危)와 흥폐(興廢)와 존망(存亡)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가령 만약 한고조의 고제기(高帝紀)를 읽는다면 모름지기 한나라 4백 년의 시종(始終) 치란이 어떠하였던가를 알아야 할 것이니,

이것이 역시 배우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나는 매양 「사기」를 읽다가 반쯤 읽으면 곧 책을 덮어두고 생각하여,

그 성공과 폐망을 헤아려 본 뒤에 다시 읽으며 부합되지 않는 곳이 있으면 또 다시 정밀하게 생각하는데,

그 사이에는 다행히 성공한 것과 불행히 실패한 것도 많았다.

지금 사람들은 다만 성공한 이는 옳다고 하고 실패한 이는 곧 그르다고 하며, 성공하 자도 도리어 옳지 않은 것이 있고,

패망한 자도 도리어 옳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 동래 여씨(東萊呂氏)는 말하기를, "대개 「사기」를 보되 잘 다스린 것을 보면 잘 다스렸다 하고,

어지러운 것을 보면 어지럽다고 하면서 한 가지 일을 보면 한 가지 일을 아는데 그친다면, 「사기」를 보고 취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모름지기 자신이 그 가운데 있는 견지에서 일의 이해(利害)와 때의 화란(禍亂)을 보고, 반드시 책을 덮고

스스로 내가 이러한 일을 당하면 마땅히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사기」를 본다면, 학문도 나아지고 지식도 높아져서 비로소 유익(有益)하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 허씨(許氏)는 말하기를, "사기를 보되 마땅히 먼저 그 사람의 큰 대목을 훑어본 뒤에 그 세세한 행을 보아서,

착하면 본받고 악하면 경계하여야 내 몸가짐을 바루는 데 유익하게 될 것이며 한갓 그 사건만 기억하고 그 글만 외우는 것은 배우는 것이 아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독서는 궁리하는 한가지 일인데 독서에도 차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가 성현의 말을 채택하여 위와 같이 엮었습니다.

다만 사서(四書)와 육경(六經) 외에도 송대(宋代)의 참다운 유학자인 주자(周子)·정자(程子)·주자(朱子) 등의 글의 성리학은

다 성상이 학문을 하시는 데 적절하므로 정밀하게 음미하고 또 깊이 연역(演繹)하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만히 생각컨대, 「경전」이 있게 된 이래 선비로서 누가 글을 읽지 않았겠습니까마는,

참다운 유학자는 드물게 일어났었고, 임금으로서 누가 글을 읽지 않았겠습니까마는 좋은 정치는 드물게 있었던 것은 그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독서한 것이 단지 귀로 들어가고 입으로 나오는 자료가 되었을 뿐이요, 유용한 도구가 되지 못하였던 까닭입니다.

여릉(廬陵) 나대경(羅大經)53)의 말에 의하면 "지금의 선비는 요·순·주공·공자의 말이 아니면 말하지 않고,

논어·맹자·중용·대학이 아니면 보지 않으며, 말은 반드시 주(周)·정(程)·장(張)·주(朱)를 일컫고, 학문은 반드시 치지(致知)와 격물(格物)을 말한다.

이런 일은 3대 이후로 아직까지 없었으니 성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호걸(豪傑)의 선비가 나오지 않고 예의의 풍속이 이루어지지 않아 선비의 기풍은 날이 갈수록 비루해지고, 인

재는 해가 갈수록 쇠잔해지니 통탄할 일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의 병통을 말한 것입니다.

아, 선비들의 독서는 부귀(富貴)나 이욕을 구하기 위한 것이 되었으므로, 그 병통이 이런 것입니다.

임금과 같은 이는 이미 지극히 숭고하고 부귀하기 때문에 힘쓰는 것은 궁리하는 것과 마음을 바루는 것이요, 구

하는 것은 천명이 길기를 하늘에 비는 것 외에는 아무 소망이 없어야겠는데 오히려 많이 찾아 조사하고 널리 상고하여서,

겉만을 수식(修飾)하는 데 힘쓸 뿐이고, 자기 몸에 절실한 용도로 삼지 않는 것은 어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심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이 폐단을 경계하시고, 힘써 성리학(性理學)에 정밀하게 하여 실제로 몸소 이행함으로써

「경전」을 빈 말이 되지 않게 하신다면 국가에 매우 다행일까 합니다.

◆ 다음은 천지(天地)·인물(人物)의 이(理)에 대한 포괄적인 말씀

○ 역(易)에 태극이 있는데, 이것은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으며 사상은 팔괘(八卦)를 낳는다. (역계사易繫辭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하나가 매양 둘을 낳는 것은 자연의 이(理)이다. 역(易)이라는 것은 음·양이 변화하는 것이요, 태극이라는 것은 그 이치이다.

양의라는 것은 비로소 한 획[一]이 되어 음·양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사상(四象)이라는 것은 다음에 두 획[二]이 되어 태(太)와 소(少)로 나뉜 것이다.

팔괘(八卦)라는 것은 다음에 세 획[三]이 되어 비로소 삼재(三才 : 하늘·땅·사람)의 형상이 갖추어진 것이다.

이상의 말은 실로 성인이 역(易)을 만드는 데에 자연의 차례요, 추호(秋毫)도 사람의 지혜를 빌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하였습니다.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는 것을 도라고 이른다.

주자는 말하기를, "음·양이 서로 운행하는 것은 기(氣)이고, 그 이(理)는 이른바 도(道)이다.

음·양은 기요, 도가 아니며, 음·양이 되게 하는 까닭이 도인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을 잇는 것은 선(善)이요, 이것을 이룬 것은 성(性)이다.

정자는 말하기를, "낳고 낳는 것을 역(易)이라 하는데, 이것이 천도(天道)가 된 것이다.

하늘은 다만 낳는 것으로 도를 삼는데, 이 낳는 이치를 이은 것이 곧 선(善)이다.

선에는 곧 하나의 원(元)이라는 뜻이 있는데, 원(元)이라는 것은 선의 큰 것이다.

만물이 다 생하는 뜻이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을 잇는[繼] 것이 선이라는 것이다.'

이룬다[成]는 것은 만물이 스스로 그 성(性)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다려서 얻게 되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도는 음에서 갖추어져서 양으로 행한다.

잇는다[繼]는 것은 그 발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선(善)이라는 것은 조화생육(造化生育)의 공효를 말하는 것이므로 양의 일이다.

이룬다[成]는 것은 갖춘다는 말이요, 성(性)이라는 것은 물이 받은 것을 이른 것이다.

물이 나면 성이 있어서 각각 이 도를 갖추는 것이므로 음의 일이다." 하였습니다.

인자(仁者)는 보고서 인이라 하고, 지자(知者)는 보고서 지라고 하며, 백성은 날로 쓰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가 적다.

건안 구씨(建安丘氏)는 말하기를, "성(性)이 이루어진 뒤에 사람이 양(陽)의 동한 것을 품수한 이는 인(仁)이 되고,

음(陰)의 정(靜)한 것을 품수한 이는 지(知)가 된다.

오직 그 품수한 것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보는 것이 편벽되어, 인자는 인(仁)만 보고 지(知)는 보지 못하므로 그 도는 인에서 그치며,

지자는 지(知)만을 보고 인을 보지 못하므로 그 도(道)는 지(知)에서 그친다.

백성들은 매일 쓰고 먹고 마시는 것이 이 도의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되 이 도가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군자의 도가 적은 까닭이다." 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행하여도 밝게 알지[著] 못하며, 익혀도 정밀히 살피지[察] 못하므로, 종신토록 그 도를 알지 못하는 이가 많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저(著)라는 것은 그 당연한 것을 밝히는 것이고, 찰(察)이라는 것은 그러한 까닭을 아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이상(形而上)의 것을 도(道)라 하고, 형이하(形而下)의 것을 기(器)라 하며, 조화하여 재제(裁制)하는 것을 변(變)이라 하고,

미루어 행하는 것을 통(通)이라 하며, 이것을 들어서[擧] 천하의 백성에게 베푸는 것을 사업(事業)이라 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음·양은 다 형이하의 것이요, 그 이(理)는 도이다. 그 자연의 변화에 따라 이것을 재제하는 것은 변화의 뜻이다." 하였습니다.

○ 북계 진씨(北溪陳氏)는 말하기를, "도는 사물을 떠나서 따로 비고 허망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실제로는 도가 물을 떠날 수 없으며, 물을 떠나서는 도라는 것이 없다.

가령 군신(君臣)에는 의리가 있는데, 의리는 도요, 군신은 기(器)이다.

부자(父子)에는 친(親)이 있는데 친(親)은 도요, 부자(父子)는 기(器)이다.

부부(夫婦)에는 부부의 분별이 있고, 장유(長幼)에는 어른과 어린이가 순서가 있고, 붕우(朋友)에는 믿음이 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물에는 반드시 이(理)가 있으니 모름지기 다 궁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인용한 공자의 계사(繫辭)의 말씀은 이학(理學)의 근본이 되옵니다.

다음에는 경전(經傳)의 여러 설을 인용하여 물에도 존재하고 몸에도 존재하는 이(理)를 대략 밝혀 그 실마리를 구하는 자료로 삼았습니다.

만일 이미 말한 것으로 인하여 말하지 못한 것을 미루어 확충(擴充)시키면 치지(致知)의 공부에 거의 가까와질 것입니다.

○ 무극(無極)하되 태극(太極)이다. (주자(周子)의 태극도설(太極圖說).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하늘 위에는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나 실로 조화(造化)의 바탕[樞紐]이며, 만물의 근본(根本)이 된다.

그러므로 무극(無極)하되 태극(太極)하다고 한 것이며 태극 밖에 따로 무극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태극이라는 것은 다만 이 음·양 속에 있는 것인데,

지금 사람들이 음·양 위에 따로 형체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것이 하나 있다고 하여 이것을 태극이라고 함은 그릇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면재 황씨(勉齋黃氏)는 말하기를, "무극하되 태극하다는 것은 형체가 없으되 지극히 형체가 있고,

모가 없으되 크게 모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태극이 동(動)하여 양을 낳아 동이 지극하여 정(靜)하여지고, 정하여 음을 낳아 정이 지극하여 다시 동하여진다. 동

하기도 하고 정하기도 하니 서로 그 근본이 되고, 음으로도 나누어지고 양으로도 나누어지니 양의(兩儀)가 성립된다.

주자는 말하기를, "태극이 동하고, 정하는 것은 천명(天命)의 유행(流行)이다.

태극이란 것은 본연(本然)의 묘(妙)요, 동하고 정하는 것은 타는[乘] 바 기(機)이며, 태극은 형이상의 도요, 음과 양은 형이하의 기(器)이다.

그러므로 나타난 것을 가지고 관찰하면, 동하고 정하는 것이 그 때가 같지 않고,

음과 양이 위치가 같지 아니하여 태극이 있지 않은 곳이 없으며 은미한 것을 가지고 관찰하면

충막무짐(沖漠無朕 : 공허해서 아무것도 없음.)하여 동하고 정하는 것과 음과 양의 이(理)가 이미 다 그 가운데 갖추어져 있다.

비록 그러나 이것을 앞으로 미루어 보아도 그 처음의 합해진 것을 보지 못하고 이것을 뒤로 인용하여 보아도 그 끝의 멀어진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정자는 말하기를, '동하고 정하는 것은 끝[端]이 없고 음과 양은 처음[始]이 없다." 하였으나,

도를 알지 못하는 이로서 누가 이것을 알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동하고 정하는 기(機)는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요, 이(理)와 기(氣)도 앞뒤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氣)가 동하고, 정하는 것은 모름지기 이(理)가 근본이 됩니다.

그러므로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고 정하여 음을 낳는다' 한 것입니다.

만일 이 말을 고집하여 태극은 음양 이전에 홀로 전해하며 음양이 무(無)에서 나온 유(有)라고 한다면

이른바 '음양은 처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니 가장 융통성있게 간파하여 깊이 익혀야 합니다.

양이 변(變)하고 음이 합하여져서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를 낳으니, 오기(五氣)가 순하게 펼쳐져서 사시(四時)가 행해진다.
주자는 말하기를, "태극이 있으면 동하고 정하여 양의(兩儀)가 나누어지고, 음과 양이 있으면 변하고 합하여 오행(五行)이 갖추어진다.

그러나 오행이라는 것은 질(質)은 땅에 갖추어지고 기(氣)가 하늘에 행하는 것이다.

질(質)로써 그 낳는 순서를 말하면 수·화·목·금·토라 하는데, 수·목은 양이요, 화·금은 음이다.

기(氣)로써 그 행하는 순서를 말하면 곧 목·화·토·금·수라 하는데 목·화는 양이요, 금·수는 음이다." 하였습니다.

묻기를, "양은 어찌하여 변한다 하고, 음은 어찌하여 합한다고 합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양이 동하면 음이 따르기 때문에 변하고 합한다고 한다." 하였습니다.

오행은 한 음·양이요, 음·양은 한 태극인데 태극은 본래 무극(無極)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오행이 갖추어지면 곧 조화(造化)하고 발육하는 기구가 갖추어지지 아니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또 나아가 근본을 미루어 혼연 일체(一體)로서 무극의 묘(妙) 아닌 것이 없으며,

무극의 묘 역시 일찌기 일물(一物)마다 갖추지 아니한 것이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하였습니다.

오행은 날 때에 각각 그 성(性)은 하나씩이다.

장남헌(張南軒)54)이 말하기를, "오행이 낳은 질(質)은 비록 같지 않으나 태극의 이(理)는 일찌기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다.

오행이 각기 성(性)이 하나씩이라 하면 곧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의 이(理)가 되어 오행이 각각 그 하나씩을 오로지 가진다." 하였습니다.

무극의 진(眞)과 음양 오행의 정(精)이 묘합(妙合)하여 응(凝)하여, 건도(乾道)는 남성(男性)을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성(女性)을 이루어 이기(二氣)가 서로 감응하여 만물을 화생(化生)하니, 만물이 낳고 낳아 변화가 무궁하다.

주자는 말하기를, "진(眞)은 이(理)를 말한 것인데, 망령되지 아니하다는 것이고, 정(精)은 기(氣)를 말한 것인데 둘[二]이 없다는 것이다.

묘합이라는 것은 태극과 음양·오행이 본래 융합하여 간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理와 기氣는 원래 서로 떠나지 못하는 것인데 어찌 합하겠습니까.

융합하여 간격이 없으므로 묘합妙合이라고 한 것입니다만 역시 융통성있게 보아야 합니다.)

응(凝)이라는 것은 모인다는 것이니 기가 모여서 형체를 이루는 것이다.

대개 성(性)은 주재가 되고 음양과 오행은 경위(經緯)가 섞여 엉켜지고, 또 각기 동류(同類)끼리 엉켜 모여서 형체를 이루는데,

양으로서 굳센 것은 남성을 이루니 아비의 도이고, 음으로서 순한 것은 여성을 이루니 어미의 도이다.

이것은 사람과 물이 시작될 때에 기로써 화(化)한 것이다.

기가 모여서 형체를 이루면 곧 형체가 교류하고, 기(氣)가 감응하여 드디어 형체로써 화(化)하여 사람과 물이 낳고 낳아 변화가 무궁한 것이다.

남녀(男女)로서 보면 곧 남녀는 각각 그 성이 하나씩이나 남녀가 한 태극이요, 만물로서 보면 곧 만물은 각각 그 성이 하나씩이나 만물이 한 태극이다.

대개 합하여 말하면 만물이 전체가 하나의 태극이요, 나누어 말하면 일물(一物)이 각각 하나의 태극을 갖춘 것이다." 하였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그 정수를 얻어 가장 신령하다.

형체가 이미 생기면 정신[神]이 발하여 알게 되고, 오성(五性)이 감동하여 선악이 나누어지고, 만 가지 일이 여기서 나온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뭇 사람은 동하고 정하는 이(理)를 갖추었으나 항상 동하는 데에서 잃게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대개 사람과 물이 낳음에 모두 태극의 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음양과 오행의 기질(氣質)이 교류[交運]함에 있어 사람의 품수[]한 것이 홀로 뛰어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가장 영묘하여 그 성(性)의 전체를 잃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른바 천지의 마음[心]이요, 사람의 극치(極致)이다.

그러나 형체는 음에서 생기고 정신은 양에서 발하고 있기 때문에 오상(五常)의 성이 물에 감응되어 동하여,

양은 선하고 음은 악하며, 또 같은 유로 나뉘어 오성의 다른 것은 분산되어 만 가지 일로 된다.

대개 이기(二氣)와 오행이 만물을 화생하는데 사람의 경우는 또 이와 같다." 하였습니다.

성인(聖人)은 중(中)·정(正)·인(仁)·의(義)로써 만 가지 일을 처리[定]하되 정(靜)한 것을 주재로 하여 사람의 법칙[人極]을 세웠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였고, 일월(日月)로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하였고,

사시(四時)와 더불어 그 차서를 합하였으며, 귀신과 더불어 그 길(吉)·흉(凶)을 합하였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성인은 동과 정의 덕을 온전하게 하는데 항상 정(靜)한 것을 근본으로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대개 사람은 음양·오행의 뛰어난 기(氣)를 받아서 낳는데, 성인이 난 것은 또 그 뛰어난 데서 더욱 뛰어난 것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것을 행하는 데는 중(中)하고, 그것에 처하는 데는 바르며, 그것을 발하는 데는 어질고, 그것을 결단하는 데는 의(義)롭다.

대개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하는 것이 모두 태극의 도를 완전하게 하여 이지러짐이 없으면 욕심이 동(動)하고 정(情)이 이겨서,

이해(利害)가 서로 침범하는 것이 여기서 정(定)하여진다.

그러나 정(靜)이란 것은 성(誠)의 복(復)이요, 성(性)의 정(貞)이다.

(동(動)이란 것은 정성이 통한 것이요, 천도(天道)의 원형(元亨)인 것이며, 정(靜)이란 것은 정성의 복(復)이요, 천도(天道)의 이정(利貞)인 것입니다.)

진실로 이 마음이 조용하게 되어 욕심이 없어져서 정(靜)하지 않으면 역시 어떻게 사물의 변하는 것을 수작(酬酢)하여 천하의 동하는 것을 통일하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은 중(中)·정(正)·인(仁)·의(義)가 동정(動靜)에 교류[周流]하되, 동하면 반드시 정(靜)한 것을 주로 하기 때문에

그 위치가 중(中)을 이루어 천지·일월·사시(四時)·귀신이 능히 어기지 못하는 것이다.

대개 반드시 체(體)가 선 뒤에 용(用)이 행해지는 것인데, 정자(程子)가 건곤(乾坤)의 동정을 논하여 '오로지 하나로 하지 않으면

능히 곧게 나가지 못하고, 합하여 모이지 않으면 능히 흩어져 발하지 못한다.' 한 것도 역시 이런 뜻이다." 하였습니다.

군자는 <사람의 법칙[人極]>을 닦아서 길(吉)하고, 소인은 이것을 어겨서 흉(凶)하다.

주자는 말하기를, "성인은 태극의 전체(全體)로서 한번 동하고 정하는 것이 가는 데마다 중(中)·정(正)·인(仁)·의(義)의 지극한 것이 아닌 것이 없는데,

대개 닦지 아니하고도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지 못하고 닦으니 군자의 길한 바요, 이것을 알지 못하고 어기니 소인의 흉한 바이다.

닦고 어기는 것은 역시 공경하고, 방자한 사이에 있을 뿐인데, 공경하면 욕심이 적어지고 이(理)가 밝아지며,

적고 또 적게 하여 무(無)에 이르면 곧 고요함에는 비고 움직임에는 곧아서 성인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도를 세우는 것을 음과 양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우는 것을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를 세우는 것을 인(仁)과 의(義)라 한다 하고,

또 처음에 근본하여 끝을 돌이키므로 생사(生死)의 설을 알게 된다. 하니 크도다! 역(易)이여, 지극(至)하도다.

주자는 말하기를, "음양이 상(象)을 이루는 것은 천도(天道)가 서기 때문이요,

강(剛)과 유(柔)가 질(質)을 이루는 것은 지도(地道)가 서기 때문이며, 인(仁)과 의(義)가 덕을 이루는 것은 인도(人道)가 서기 때문이다.

도는 하나뿐이나 일에 따라서 나타나기 때문에 삼재(三才)55)의 구별이 있고, 그 가운데 또 각 체(體)와 용(用)의 나누어짐이 있으나,

그 실상은 하나의 태극이다. 양(陽)·강(剛)·인(仁)은 물의 처음이요, 음(陰)·유(柔)·의(義)는 물의 끝이다.

능히 그 처음에 근거하여 낳는 것을 알면 그 끝을 돌이켜 죽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천지 사이에 조화(造化)의 줄거리[綱紀]가 되어 옛날이나 지금도 유행해서, 말할 수 없는 미묘함인데,

성인이 주역을 엮는데도 그 큰 뜻은 대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설을 인용하여 증명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기(氣)는 앙연(然 : 無涯)히 태허(太虛)하여 승강(升降)하고 비양(飛揚)하여 일찌기 그치지 않는다.

이것이 허실(虛實)·동정(動靜)의 기틀이요 음양(陰陽)·강유(剛柔)의 처음이다.

떠서 오르는 것은 양의 맑은 것이요, 아래로 내려 앉는 것은 음의 탁한 것이니, 만나서 감응되고 엉키고 뭉쳐서 바람과 비가 되고, 서리와 눈도 된다.

만 가지 형체나, 산과 시내가 화하여 이루어진 것이나, 찌꺼기[糟粕]나 불에 탄 재[燼]까지 가르침이 아닌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만변 불궁(萬變不窮)함은 다 도체(道體)의 유행이다. 그러므로 가르침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유기(遊氣)가 어수선하고 떠들썩하여 [紡擾] 합하여 실상으로 이루어져 사람과 물의 만 가지 다른 것을 낳았고,

그 음양 양단(兩端)이 순환하여 그치지 않는 것이 천지의 큰 뜻을 세운 것이다." 하였습니다.

○ 원(元) · 형(亨) · 이(利) · 정(貞)은 천도(天道)의 상(常)이요,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는 인성(人性)의 강(綱)이다. (주자의 소학小學 제사題辭)

정자는 말하기를, "원(元)이라는 것은 만물의 시초요, 형(亨)이라는 것은 만물의 자라는 것이요, 이(利)라는 것은 만물의 나아가는 것이요,

정(貞)이라는 것은 만물의 이루어지는 것이니, 건곤(乾坤)은 이 사덕(四德)이 있다." 하였습니다. (건곤乾坤은 천지의 성정性情입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인(仁)이라는 것은 마음의 덕이고 사랑의 이(理)이다.

의(義)라는 것은 마음의 제재(制裁)하는 것이고 일의 마땅한 것이다. (의(義)는 이 마땅한 이치입니다.)

예(禮)라는 것은 천리(天理)의 절문(節文)이요, 인사(人事)에 있어서 예절의 법도이다." 하였습니다. (예는 이 절문(節文)의 이(理)입니다.)

○ 또 말하기를, "성(性)은 이가 나에게 있는 것이요, 인(仁)은 곧 온화하고 자애로운 도리이며, 의(義)는 곧 결단하고 분별하는 도리이고,

예(禮)는 공경하고 겸손한 도리이며, 지(智)는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도리이니,

이 네 가지는 본래 사람의 마음에 갖추어진 것이며 성(性)의 본체(本體)이다." 하였습니다.

○ 오씨(吳氏)는 말하기를, "만세(萬世)를 거쳐도 바뀌지 않으므로 상(常)이라 하고,

만가지 선(善)을 통괄하여서 남기지 않으므로 강(綱)이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태극이, 하늘에 있는 것을 도(道)라 하고, (이 도道자는 천명天命이 유행하는 도로서 말한 것이며,

솔성率性의 도는 인물人物이 마땅히 행할 도道를 말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는 것을 성(性)이라 하니, 원(元)·형(亨)·이(利)·정(貞)은 도가 유행하는 것이요, 인(仁)·의(義)·예(禮)·지(智)는 성(性)의 갖추어진 것입니다.

원(元)은 때로 말하면 봄이 되고, 사람으로 말하면 인(仁)이 되며, 형(亨)은 때로 말하면 여름이요,

사람으로 말하면 예(禮)이며, 이(利)는 때로 말하면 가을이요, 사람으로 말하면 의(義)이며, 정(貞)은 때로 말하면 겨울이요,

사람으로 말하면 지[智]입니다. (원·형·이·정은 유행하는 용(用)으로 서(序)를 삼고, 인·의·예·지는 서로 상대하는 체(體)로 이름을 세운 것입니다.)

만물의 일원(一原)을 보면 이(理)는 같고 기(氣)는 다르며, 만물의 이체(異體)를 보면 기는 오히려 서로 가까우나 이는 절대로 같지 않다.

기(氣)의 다른 것은 순수하고 섞인 것이 같지 아니한 것이요, 이의 다른 것은 편벽되고 온전한 것이 혹시 다른 것이다. (주자대전朱子大全)

주자는 말하기를, "바야흐로 만물에 부여하는 처음에는 천명(天命)이 유행(流行)하는 것은 같을 뿐이므로 이(理)는 같고,

음양·오행의 기(氣)는 맑고 탁한 것과, 순수하고 섞인 것이 있기 때문에 기는 다르다.

만물이 이미 이것을 얻은 뒤에 비록 맑고 탁한 것과, 순수하고 섞인 것이 같지 않은 것이 있으나,

이 음양·오행의 기를 같이 하였기 때문에 기는 서로 가깝고, 그 어둡고 밝은 것과, 열리고 막힌 것이 매우 멀기 때문에 이는 절대로 같지 아니하다.

기가 서로 가까운 것은, 춥고 더운 것을 알고, 배고프고 배부른 것을 알며, 사는 것을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며,

이(利)를 따르고 해(害)를 피하는 것 같은 것이니, 사람과 물이 모두 같다.

이(理)가 같지 않은 것은, 벌과 개미의 군신(君臣) 관계는 다만 이 의리의 한 가지만이 밝고,

범과 이리[狼]의 부자(父子) 관계는 다만 이 인(仁)의 한 가지만이 밝은 것 같은 것이다. 다른 것은 더 이상 미루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천지·음양의 변화는 바로 둘[兩]이 움직이는 맷돌과 같은데, 오르고 내리는 것과,

차고 빈 것과 세고 부드러운 것이 본래 일찍이 정지되지 않아서 양은 항상 차 있고, 음은 항상 이지러져 비어 있기 때문에 문득 고르지 아니한 것이다.

비유하면 맷돌[磨]이 도는데 이[齒]가 모두 고르지 아니하면 만 가지로 변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물(物)이 고르지 아니한 것은 물의 정(情)이다." 하였습니다.

○ 귀신이라는 것은 이기(二氣)의 본래 능(能)한 것이다. (장자정몽張子正蒙)

주자는 말하기를, "이기(二氣)로써 말하면 귀(鬼)라는 것은 음의 영묘한 것이요, 신(神)이라는 것은 양의 영묘한 것이다.

일기(一氣)로써 말하면 이르러서 펴는 것은 신(神)이요, 돌이켜서 돌아가는 것은 귀(鬼)이지마는, 그 실상은 한 가지 물(物)일 뿐이다.

본래 능(能)하다 한 것은 오고 가는 것과 오무리고 펴는 것이 이(理)의 자연스러운 것이요, 안배(安排)하여 조치(措置)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이기(二氣)는 곧 음양이요, 본래 능하다는 것은 그 영묘한 곳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귀신(鬼神)이라는 것은 천지의 공용(功用)이요 조화(造化)의 자취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공용(功用)이라 하는 것은 다만 발현된 것을 논한 것이니,

가령 추위가 오면 더위가 가고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봄에는 나고 여름에는 자라는 것은 다 이 조화(造花)의 미묘한 것으로써 볼 수도 없는 것이고

그 기의 오고 가며 오무리고 펴는데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귀신이 아니면 곧 조화는 자취가 없다." 하였습니다.)

○ 장자는 말하기를, "물(物)이 처음 나면 기가 날로 이르러[至] 번성해 지고 물이 생겨서 이미 차면 기가 날로 반(反)하여 흩어진다.

이르는 것을 신(神)이라 하는 것은 펴지기 때문이요, 반(反)을 귀(鬼)라 하는 것은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천지 사이에서 사라지는 것은 귀(鬼)이고, 살아나는 것은 신(神)이며, 사는 것은 신이고 죽는 것은 귀이다.

사시(四時)에서는 봄·여름은 신이요, 가을·겨울은 귀이다.

사람에서는 혼(魂)은 곧 신이요, 백(魄)은 곧 귀이며, 말하는 것은 신이고 침묵하는 것은 귀이며,

동(動)하는 것은 신이고, 정(靜)하는 것은 귀이며, 부는[呼] 것은 신이고 빨아들이[吸]는 것은 귀이다." 하였습니다.

이 이하는 오로지 사람에게 있는 이치만을 말하겠습니다.

◆ 다음은 만물 중에서 사람이 귀하다는 데 대한 말씀

○ 사람이라는 것은 그 천지의 덕이고 음과 양의 교합한 것이며, 귀신의 모인 것이고 오행(五行)의 빼어난 기운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라 함은 천지의 마음이다. (예기)

장자는 말하기를, "천지의 덕이란 사람의 덕성(德性)이 천지의 성(性)과 같음을 말한 것이니, 사람이 귀하다는 것이 이것이다.

오행(五行)의 기를 품수하고 태어나서 만물 중 가장 영특하니, 이것이 그 빼어났다는 것이다.

대개 나는 것은[生] 곧 펴는 것이고, 마치는 것은[終] 곧 돌아가는 것인데, 한 물체가 그 처음과 끝을 겸하였으니, 이것이 귀신이 모인 것이다.

음과 양의 합치는 것과 귀신의 모이는 것과 오행의 기(氣)는 물이 날 때다 그러하지만 사람이 구비하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교화(敎化)는 다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그래서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용천 섭씨(龍泉葉氏)는 말하기를, "천지의 정성(情性)은 사람이 아니면 능히 체득하여 참여하지 못하며,

천지의 공용(功用)은 사람이 아니면 능히 살펴서 법(法)받지 못한다.

천지가 쉬지 않는 까닭을 인도(人道)를 말미암은 뒤에 보게 되기 때문에 사람이 천지의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본연의 성(性)에 대한 말씀

○ 위대하신 상제(上帝)께서 충(衷)을 백성에게 내리사 약(若)하여 떳떳한 성품이 있다. (상서탕고(商書湯誥))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황(皇)은 큰 것이요, 충(衷)은 중용이요, 약(若)은 순(順)하는 것이다.

하늘이 명(命)을 내려, 인·의·예·지·신의 이를 갖추어 편벽되거나 의지한 바 없는 것을 충(衷)이라 하고,

사람이 명을 품수[命]하여 인·의·예·지·신·의 이를 갖추어 마음과 같이 간직한 것을 성(性)이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 유강공(劉康公)은 말하기를, "백성이 천지의 중(中)을 받아 생겨나는 것을 명(命)이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하늘로 말하면 이것을 명(命)이라 하고, 사람으로 말하면 이것을 성(性)이라 하는데, 실상은 한 가지입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다 사람에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不忍]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가 말하기를, "천지는 생물(生物)을 마음으로 삼고, 소생된 물은 각각 천지의 생물의 마음을 얻어서 마음으로 삼으니,

그래서 사람이 다 사람에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하였습니다.

사람이 다 사람에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지금 사람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홀연히 다 놀래어[]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에게 교제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마을 사람이나 친구들에게 칭찬을 들으려는 것도 아니며,

그 비난하는 소리를 무서워서 그런 것도 아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사(乍)는 홀연히라는 뜻이요, 출척()은 놀래는 모양이다.

측(惻)은 근심하는 것이 간절한 것이요, 은(隱)은 아픈 것이 심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람이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납[內]은 맺는다는 것이고, 요(要)는 구한다는 것이며, 성(聲)은 악명인 것이다.

 (명(名)은 사람을 구원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악명(惡名)을 얻는 것입니다.)

갑자기 보았을 때에 문득 이 마음이 보는 것을 따라 발하는 것이고, 위의 세 가지로 말미암아 그런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강자(腔子)에 가득한 것은 이 측은한 마음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강자(腔子)는 몸[軀殼]이라는 말과 같다."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측은한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럽거나 미워하는[羞惡]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辭讓)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른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수(羞)는 자기의 착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고, 오(惡)는 남의 착하지 못한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사(辭)는 풀어서 자기에게서 떠나게 하는 것이고, 양(讓)은 미루어서 남에게 양보하는 것이다. 시(是)는 착한 것을 알고 옳다고 하는 것이며,

비(非)는 그 악한 것을 알고 그르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이 네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측은 한 것을 논함을 인하여 그것을 모두 세어 말하기를 '사람이 만일 이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고 한 것이니,

반드시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하였습니다.

측은한 마음은 인(仁)의 실마리[端]이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실마리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실마리이고, 옳다 그르다 하는 마음은 지(智)의 실마리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측은해 한다거나, 부끄러워하고 미워한다거나, 사양한다거나,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정(情)이요, 인·의·예·지는 성(性)이다.

단(端)은 실마리이다.

그 정이 발함으로 인하여 성의 본연(本然)을 볼 수 있으니, 마치 물이 중(中)에 있어 실마리가 밖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 사단(四端)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사체(四體)를 가진 것과 같은데,

이 사단(四端)을 두고도 스스로 불능(不能)하다고 하는 이는 스스로를 해[賊]하는 자요, 그 임금을 불능하다고 이르는 이는 그 임금을 해하는 자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사체(四體)는 사지(四肢)이니, 반드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불능하다고 하는 것은 물욕이 이를 가렸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대개 사단(四端)이 나에게 있는 것을 모두 확충(擴充)할 줄을 알면, 불[火]이 타기 시작하는 것과 같고,

샘물[泉]이 나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진실로 능히 이것을 충만하게 하면 사해(四海)를 보전할 것이요,

진실로 이것을 충만하게 하지 못하면 부모도 섬기지 못할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확(擴)은 미루어 넓히는 뜻이요, 충(充)은 가득한 것이다.

사단은 나에게 있어서 곳에 따라서 나타나는 것인데,

이에 나아가 미루어 넓혀서 본연(本然)의 도량을 충만하게 할 줄을 알면 날로 새로워져서 스스로 마지못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능히 이것으로 말미암아 드디여 확충하면 사해(四海)가 비록 멀더라도 역시 나의 역량이 미치는 것으로 무난히 보전할 것이며,

능히 확충하지 못하면 비록 일이 지극히 가깝더라도 능하지 못할 것이다.

이 장(章)에 논한 것은 사람의 성정(性情)과 마음의 체용(體用)이 본래 완전히 갖추어져서, 각각 조리가 있음이 이와 같다는 것이니

배우는 자가 여기서 돌이켜 구하고 묵묵히 생각하여 이것을 확충하면, 곧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을 다 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사단에서 신(信)을 말하지 않은 것은 이미 성심(誠心)이 있기 때문에

사단(四端)에는 곧 신(信)이 그 중(中)에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사단의 신(信)은 오행의 토(土)와 같다. 정한 위치도 없고, 이룬 이름도 없으며,

전일한 기(氣)) 없으나 수(水)·화(火)·금(金)·목(木)+이 이것을 기다려서 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토는 사행(四行)에 있지 않은데가 없고, 사시(四時)에는 곧 왕성[王]함에 붙으니, 그 이(理)가 역시 이와 같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마음은 생하는 도(道)이다. 사람은 이 마음이 있고 이 형체가 갖추어져서 태어난다.

측은한 마음은 사람의 생하는 도로서 걸(桀)과 척(蹠)이라도 이것이 없이는 생하지 못한다.

다만 <그들은> 이것을 해쳐서 하늘을 멸할 뿐이다.

처음에는 물을 사랑할 줄 알지 못하다가 조금 있으면 차마 하는데 이르고, 나아가서는 살륙하는 데까지 이르며,

이것을 확충하면 살륙을 좋아하게 될 것이니, 어찌 사람의 이(理)이겠는가." 하였습니다.

「시」에 이르기를, "하늘이 만백성을 낳으니 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도다.

백성들의 간직한 성품이 있기에 아름다운 덕[懿德]을 좋아한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이 시를 지은 이는 그 도를 아는구나.

그러므로 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는 것이니 백성의 간직한 성품[]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시는 대아(大雅)·증민(烝民)의 편(篇)이다.

증(烝)은 무리이고, 물(物)은 일이며, 칙(則)은 법칙이요, 이()는 떳떳한[常] 것이고, 의(懿)는 아름다운 것이다.

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는 것은 귀와 눈이 있으면 총명의 덕이 있고,

부자(父子)가 있으면 사랑하고 효도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은 것인데, 이것은 백성이 간직한 바 떳떳한 성[性]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정(情)이란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이니, 사람의 성품이 착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만물은 모두 나에게 갖추었다.

주자는 말하기를, "크게는 군신(君臣)·부자(父子)와, 작게는 사물의 세미한 것에 이르기까지

그 당연한 이(理)가 성분(性分) 안에 한결같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성(性)은 이 태극의 혼연한 체(體)이므로 본래 명(名)자로 말하지 못한다.

다만 그 중에 만 가지 이치가 포함되었는데, 벼리[綱]가 되는 큰 이치가 넷이 있다.

그러므로 인(仁)·의(義)·예(禮)·지(智)라고 명한 것이다.

공자 때에는 성선(性善)의 이(理)가 본래 밝았으므로 비록 그 조목을 자세히 드러내지 않아도 그 말이 스스로 갖추어졌었지만,

맹자 때에 이르러서는 이단(異端)이 많이 일어나서 가끔 성(性)을 불선(不善)하다고 하므로,

맹자는 이 이가 밝혀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밝히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다만 혼연히 전체(全體)라고만 하면 눈금 없는 저울[秤]이나 칫수 없는 자[尺]와 같아서 마침내 천하를 깨닫게 하지 못할 것이므로,

여기서 분별하여 말하되 한계를 넷으로 하여, 사단(四端)의 설이 성립되었다.

대개 사단이 발하지 않으면 비록 적연(寂然)히 동(動)하지 않으나 그 중에 스스로 조리가 있고 간가(間架)가 있으며,

농통(농통: 아직 그릇을 이루지 않은 것)하여 도무지 일물(一物)도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외변(外邊)에서 감촉하면 내면(內面)에서 문득 응하여 사단이 발하는데 각각 면모(面貌)가 같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이다.

혼연한 전체(全體)의 가운데 찬연히 조리가 있는 것이 이러하니 성(性)의 선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사람의 사람됨이 천지와 병립(竝立)하여 삼자(三者)가 되는 까닭은

대개 형체는 크고 작은 것이 다르나 이(理)에는 크고 작은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인가 하면 인·의·예·지이다. 천도(天道)로부터 말하면 원(元)·형(亨)·이(利)·정(貞)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하나일 뿐이다.

사람은 천지와 더불어 본래 하나요, 둘이 아닌데 그 다르다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은 무심(無心)한데 사람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천지의 쉬지 않는 명(命)은 예부터 항상 새로워서 원(元)하면 형(亨)하고, 형하면 이(利)하고, 이하면 정(貞)하며,

정하면 원(元)하여, 한번은 통(通)하고 한번은 복(復)하여 순환하여 틈이 없다.

사람은 날 때부터 다 이 이를 전부 갖추었으되 오직 그 형체의 누(累)가 있어서 물욕의 사사로움이 없지 않다.

그러므로 측은한 마음이 발함에 있어 흔들리면 곧 인(仁)을 충실히 하지 못하고,

부끄럽다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발함에 있어 빼앗기는 것이 있으면 곧 의(義)를 충실히 하지 못한다.

공경(恭敬)(사양(辭讓)을 공경(恭敬)이라고 합니다.)과 시비(是非)의 발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맹자가 확충(擴充)하라는 말을 간절히 한 것이다. 대개 선한 실마리가 발하면 그 시초에는 매우 은미하다.

마치 음양의 기(氣)가 이지(二至: 동지와 하지)에서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다 묘연하여 나타나지 아니하다가 양(陽)이 점점 자라서 정월에 이르면,

곧 천지의 기가 화(和)하여 물(物)이 다 발달하고, 음(陰)이 점점 자라서 7월에 이르면 곧 천지의 기가 엄숙하여 물(物)이 다 수렴(收斂)하는 것과 같다.

천지가 만물을 생성(生成)하는 이치는 다 은미한 데서부터 나타나는 데로 이르는 것이니, 어느 해나 그렇지 아니한 것이 없다.

사람이 능히 천지의 마음을 체득하여 그 마음으로 삼고 그 선한 실마리가 발로함을 인하여 보양(保養)하고 부지(扶持)하여

그 침해하는 바를 제거하기를 불이 타는 것을 부채질하는 것같이 하고 샘물이 흐르는 것을 터 놓는 것과 같이 한다면

일념(一念)의 측은한 마음이 백세(百世)를 윤택하게 하고, 일념(一念)의 부끄러워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만백성을 바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요(堯)·순(舜)의 인(仁)과 탕(湯)·무(武)의 의(義)가 천지와 더불어 그 큰 것을 같이한 까닭은 능히 확충(擴充)하였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사람의 한 마음에는 만 가지 이치가 전부 갖추어져 있으니,

요·순의 인(仁)과 탕·무의 의(義)와 공(孔)·맹(孟)의 도(道)는 다 성분(性分)의 고유한 것입니다.

다만 이 기품(氣稟)이 앞에서 구애되고 물욕이 뒤로 함몰시켜 총명(聰明)한 사람이 혼미하여지고,

정대(正大)한 사람이 간사하게 되므로, 혼미하여 어리석은 중인(衆人)이 되어. 실상 새나 짐승과 다름이 없으나,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이는 그대로 공명하고 정대합니다.

다만 엄폐(掩蔽)되어 있을 뿐이며 끝내 이는 식멸(息滅)되지 않기 때문에 진실로 혼미한 것을 제거하거나

그 간사한 것을 끊어버린다면, 밖에서 빌리지 않더라도 요·순·탕·무·공·맹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비유한다면,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 있는 무진장의 보물(寶物)을 으슥한 땅에 묻어 놓고도 알지 못하여

빈한하게 구걸하면서 사방으로 떠돌아 다니는데 만일 선각자(先覺者)가 나타나 보물이 매장된 곳을 알릴 경우,

독실히 믿어서 의심하지 않고 그 매장한 것을 발굴하게 되면 무진장의 보화가 다 자기의 소유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이치가 매우 명백한데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하니 슬픈 일입니다.

다만 이 마음에 이(理)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만 알 뿐이요, 그 이상으로 가리고 덮인 것을 힘써 제거하지 않는다면,

실은 보물이 매장된 곳도 알지 못하면서 나는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속여 말하는 것일 뿐이니 또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바라옵건대, 유념(留念)하시옵소서.

◆ 다음은 기질의 성(性)에 대한 말씀

○ 형체가 있은 연후에 기질(氣質)의 성(性)이 있으니 이를 잘 반성하면 천지의 성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기질의 성은 성으로 여기지 아니한다. (장자 정몽)

주자는 말하기를, "천지의 성은 오로지 이를 가리켜 말한 것이요, 기질의 성은 이(理)에 기가 섞인 것을 말한다.

 다만 이 성(性)(본연의 성입니다.)이 있을 뿐인데 기질 가운데 있기 때문에, 기질을 따라서 스스로 하나의 성[一性]이 된 것이다. (기질의 성입니다.)

성을 물[水]에 비유하면 본래는 다 맑은 것인데 맑은 그릇에 담으면 맑고, 더러운 그릇에 담으면 혼탁해진다.

다만 맑게 다스리면 본연의 맑은 것이 있지 않는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기(氣)가 모여서 형체를 이루매 성(性)이 기질에 구애되어 순박(純駁)·편정(偏正)의 다른 것이 있으니, 이른바 기질의 성이다.

사람이 능히 선한 도리로 스스로 반성하면 곧 천지의 성이 다시 완전해질 것이기 때문에 기질의 성을 군자는 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개 기질의 편곡[偏]함을 따르지 아니하고 반드시 그 본연의 선(善)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성은 하늘에서 나오고, 재(才)는 기질에서 나오니, 기질이 맑으면 재도 맑고, 기질이 흐리면 재도 흐려진다.

재에는 선(善)도 있고, 불선(不善)도 있지만, 성에는 불선이 없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성을 논하고 기를 논하지 않으면 구비되지 아니하고,

기를 논하고 성을 논하지 않으면 밝지 아니하나 이것을 둘로 하면 또한 옳지 않다." 하였습니다.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성의 선(善)한 것만 논하고 그 기품(氣稟)이 같지 않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지혜롭고 어리석음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불비(不備)하고 하였으며, 기품의 다른 것만 논하고 그 성(性)이 다 선(善)한 데 근거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 근본에 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불명(不明)이라고 하였다.

성이란 것은 기(氣)의 이(理)이고, 기란 것은 성의 질(質)이므로 원래 서로 떠나지 못하는 것인데 갈라서 둘로 하면 역시 잘못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본연의 성과 기질의 성은 이성(二性)이 아닙니다.

기질의 위에 나아가 단순히 그 이만을 가리켜 본연의 성이라 하고, 이와 기질을 합하여 기질의 성이라고 한 것입니다.

◆ 다음은 심·성·정에 대한 통괄적인 말씀

○ 사람이 나서 정(靜)한 것은 하늘의 성이요, 물에 감응하여 동(動)하는 것은 성의 욕(欲)이니,

사물이 이르러 지(知)가 안[知] 뒤에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나타난다. (예기(禮記) 하동)

유씨(劉氏)는 말하기를, "사람이 나서 고요한 것은 희·노·애·낙이 발하지 않은 중(中)인데

<이는> 천명(天命)의 성이요, 물에 감응하여 동하면 곧 성이 발하여 정(情)이 된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위의 지(知)자는 체(體)이고, 아래의 지(知)자는 용(用)이다." 하였습니다.

무엇을 인정(人情)이라고 하는가 하면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의 일곱 가지로서 이 일곱 가지는 배우지 않고도 능한 것이다.

정자는 말하기를, "천지가 정(精)을 쌓아서 오행(五行)의 우수한 것을 얻어 사람이 되므로, 그 본래는 참되고 정(靜)하며,

그 미발(未發)한 때에 오성(五性)을 갖추었으니, 인·의·예·지·신이라 하고, 형체가 이미 생기면 외물(外物)이 그 형체에 부딪쳐서 그 중(中)을 동(動)하게 한다.

 그 중이 동하여 나온 것이 7정인데 희·노·애·구·애·오·욕이다.

정(情)이 이미 성하여 더욱 방탕하여지면, 그 성이 깎여 감해지기 때문에 선각자는 그 정(情)을 절제하여 중에 일치하게 해서,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성을 기르며, 어리석은 자는 곧 이것을 제재하지 못하여, 그 정을 방종하게 해서 편벽하고 간사해져서,

그 성을 질곡(桎梏)시키므로 망하게 된다." 하였습니다.

○ 어떤 사람이 애(愛)와 욕(欲)을 어떻게 구별합니까?" 물으니,

주자가 대답하기를, "애는 널리 사랑하는 것이요, 욕은 반드시 얻는 데 뜻을 두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제(帝: 순임금)가 말하기를,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미미하니 정밀하고 전일하게 하여야 진실로 그 중을 지키리라." 하였습니다.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순(舜)이 우(禹)에게 명한 말.)

주자는 말하기를, "마음의 허령(虛靈)·지각(知覺)은 하나일 뿐인데, 인심과 도심이 다른 것은 혹 형기(形氣)의 사사로움에서 생기며,

혹 성명(性命)의 정(正)에 근거하여 지각(知覺)하는 바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혹은 위태로와서 편안하지 않고 혹은 미묘하여서 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이 형체를 갖지 않은 이가 없기 때문에, 비록 뛰어난 이[上智]라도 능히 인심이 없지 아니하며,

또한 이 성이 없는 이가 없기 때문에, 비록 아주 어리석은 이[下愚]라도 능히 도심이 없지 아니하다.

두 가지가 마음 사이에 섞여 있는데, 이것을 다스릴 줄을 알지 못한다면, 곧 위태로운 것은 더욱 위태로와지고,

미묘한 것은 더욱 미묘하여져서 천리(天理)의 공평한 것이 사람의 사사로운 욕심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정(精)이란 곧 이 두 가지 사이를 살펴서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요, 일(一)이란 곧 그 본심의 정(正)한 것을 지켜서 이탈하지 않는 것이니,

여기에 종사하여 조금의 빈 틈도 없어 반드시 도심이 항상 한 몸의 주재가 되고,

인심이 매양 청명(聽命)하게 한다면 곧 위태로운 것이 편안해지고 미묘한 것이 나타나서,

동정(動靜). 운위(云爲 : 말하고 행하는 것)가 자연히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차오(差誤)가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오봉 호씨(五峰胡氏)는 말하기를, "천리와 인욕은 행(行)함은 동일하되 정(情)이 다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다만 이 한 사람의 마음이 도리에 합하는 것은 천리이며, 정욕(情欲)에 따르는 것은 사람의 욕심인데,

마땅히 이 분계(分界)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하였습니다.

○잠실 진씨(潛室陳氏)는 말하기를, "이 말은 진실로 익혀 음미하여야 할 것이니, 음식이나 남녀의 욕정은 요·순도 걸(桀)·주(紂)와 같다.

다만 이치에 맞고 절도에 맞으면 천리가 되고, 이치에 어긋나고 절도에 어긋나면 절도에 어긋나면 곧 사람의 욕심이 된다." 하였습니다.

○ 어떤 사람이, "음식 가운데 어느 것이 천리이며, 어느 것이 사람의 욕심입니까." 물으니,

주자는 대답하기를, "마시고 먹는 것은 천리이나, 미미(美味)를 요구하는 것은 사람의 욕심이다." 하였습니다.)

○ 면재 황씨(勉齋黃氏)는 말하기를, "요(堯)·순(舜)의 성스러움으로 제왕(帝王)의 높은 지위에 처하였으되

스스로 그 마음을 다스리는 바가 이러하였는데, 세상의 배우는 자가 이 마음의 중한 것을 알지 못하고,

정(情)에 따르고 욕심에 방종해서 교만하고 안일하며 방탕하여, 사려(思慮)할 때에 혹 올라가 하늘을 날고,

혹은 떨어져서 못에 빠지며, 혹은 뜨거워서 불이 타고, 혹은 추워서 얼음이 엉기니 어찌 민망하지 않겠는가.

성현의 교훈[垂訓]이 환하게 명백한데 배우는 자로서 어찌 깊이 생각하여 익혀 음미하지 아니하겠는가." 하였습니다.

○ 서산 진시(西山眞氏)는 말하기를, "인심유위(人心惟危) 이하의 16자는 곧 요·순·우(禹)의 전해 준 심법(心法)이요, 만세 성학(聖學)의 근본이다.

선유(先儒)의 훈고나 주석(註釋)이 비록 많으나, 유독 주자의 설이 가장 정(精)하고 확실하다.

무릇 성색(聲色)과 취미(臭味)의 욕심은 이른바 인심이요, 인·의·예·지의 이(理)는 이른바 도심이다.

인심의 발하는 것은 섬봉(鋒 : 날카로운 병기.)이나 한마(悍馬 : 사나운 말)와 같아서 쉽게 억제하지 못하므로 위태롭다 하고,

도심의 발하는 것은 불이 처음으로 타거나 샘물이 비로소 흐르는 것과 같아서 쉽게 확충하지 못하므로 미묘하다고 한다."

(의리는 정미(精微)하여 보기 어렵기 때문에, 미(微)라 한 것이요, 쉽게 넓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름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서산(西山)의 설도 통(通)하여 따로 일설(一說)로 할 만하기 때문에 이것을 취하였습니다.)

오직 평소에 씩씩하고 공경한 것으로써 스스로를 견지하여, 한 생각의 좇아 일어난 바를 살펴서,

그 성색(聲色)과 취미(臭味)를 위하여 발한 것이라면, 곧 힘쓰고 지극히 다스려서 번성하여 자라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그 인·의·예·지를 위하여 발한 것이라면 곧 한 뜻으로 지켜서 변천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대개 이렇게 하면 이(理)·의(義)는 항상 간직되고 물욕이 물러날 것이니,

이것으로써 만 가지 변화를 응대(應對)하면 중(中)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만년(晩年)의 정론(定論)에서 인심을 사람의 욕심으로 삼지 않았으니, 대개 인심은 다만 형기(形氣)에서 난 것이라,

비록 성인이라도 역시 있는 것입니다. 인심이 주재가 되어 도심에 청명(聽命)하지 않아야만 사람의 욕심이 됩니다.

진씨(眞氏)의 설은 비록 인심을 바로 해석한 것은 아니나, 천리와 사람의 욕심을 논한 것이 분명하여 배우는 이에게 유익하므로 아울러 취하였습니다.)

마음은 성정(性情)을 통괄하는 것이다. (횡거어록(橫渠語錄))

주자는 말하기를, "통(統)은 주재한다는 뜻이다.

성은 마음의 이(理)요, 정은 마음의 용(用)이요, 마음은 성정의 주재이니, 곧 이(理)를 갖추어서 이 정(情)을 행하는 것이다.

지(智)로써 말하면, 시비(是非)를 아는 이치는 곧 성이요, 시비를 알고 시비를 하는 것은 정이요,

이 이를 갖추어 그 시비가 되는 것을 깨닫는 것이 마음이다.

이 분별은 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밀하게 살펴야 볼 수 있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마음의 전체가 맑게 허명(虛明)하여 만 가지 이치가 구비되어, 그 유행(流行) 이 동(動)·정(靜)에 관통하니,

그 미발(未發)한 전체로써 말하면, 성(性)이요, 그 이발(已發)한 묘용(妙用)으로써 말하면 정(情)이다.

그러나 다만 혼돈한 일물(一物) 중에 나아가서 그 이발과 미발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지 성(性)도 하나이고 마음도 하나이며,

정도 하나라는 것으로서 이렇게 현격(懸隔)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였습니다.

○ 소자(邵子)는 말하기를, "성(性)은 도의 형체요, 마음은 성(性)의 성곽[郭 : 성 밖의 큰 성]이며, 몸은 마음의 집이요,

물(物)은 몸의 주거(舟車)이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것이 거의 적은데[幾希], 서민은 그 다른 것을 버리고 군자는 이것을 간직한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기희(幾希)는 적다는 뜻이다. 인물은 나면서부터 천지의 이를 같이 얻어서 성이 되고, 또 천지의 기도 똑같이 얻어서 형체가 되었지마는,

그 같지 않은 것으로써 사람은 다만 그 사이에서 형기(形氣)의 바른 것을 얻어서, 그 성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비록 조금 다르다고 하나 인물이 구분되는 까닭은 실로 여기에 있다. 뭇 사람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이를 버리니,

이름은 비록 사람이지마는 실상은 금수와 다를 것이 없다.

군자는 이것을 알고 보존하여 전긍척려(戰兢廬 : 조심하고 두려워함)하여 마침내 능히 그 받은 바의 다른 것을 온전하게 한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인물의 같은 것은 이(理)이고, (천지의 성은 인물(人物)이 하나입니다.) 같지 아니한 것은 마음이다.

 (기(氣)에는 편정(偏正)·통색(通塞)이 있기 때문에 마음은 같지 않습니다.)

인심은 허령(虛靈)하여 밝지 않은 것이 없고, 금수는 어두워서 다만 한두 가지의 밝은 것만 있는데,

부자(父子)가 서로 사랑한다거나 자웅(雌雄)이 서로 분별이 있는 것 같은 유(類)이다.

사람의 허령은 다 미루어 나가는데 금수는 문득 미루어 나가지 못한다.

사람이 만약 사사로운 욕심으로 그 허령을 가린다면 이는 금수이니,

사람과 금수는 다만 이런 사소한 데서 구분되기 때문에 기희(幾希)라고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범씨(范氏) (준(浚)입니다.) 심잠(心箴)에 이르기를, "망망(茫茫)한 천지는 굽어보고 쳐다보아도 끝이 없다.

사람이 그 사이에 묘연하게 몸을 두었으니, 이 몸의 작은 것은 큰 창고의 쌀알과 같다.

삼재(三才)에 참여하게 된 것은 오직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누가 이 마음이 없었겠는가마는, <이> 마음이 물욕에 끌리어 짐승이나 새와 같이 된다.

오직 입·귀·눈과 수족은 동(動)·정(靜)하는 사이에서 틈을 타 그 마음의 병통이 된다.

한 마음의 가는[微] 것을 뭇 욕심이 침공하니, 그 간직하는 이가 거의 드물다.

군자는 정성을 다하여 잘 생각하고 잘 공경하므로 마음이 태연하여 백체(百體)가 명령을 따른다." 하였습니다.

그 마음을 다한 이는 그 성(性)을 알기 때문이니 그 성을 알게 되면 곧 하늘을 알게 된다.

주자는 말하기를, "마음이란 사람의 신명(神明)인데 뭇 이치를 갖추어서 만 가지 일에 응하는 것이요,

성이란 마음의 갖춘 바 이치이요, 하늘은 또 이(理)의 좇아서 나온 바이다. (하늘이 곧 이理이니, 이 이는 성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하늘은 넓어서 가가 없는데, 성(性)은 그 온전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의 본심은 그 체가 확연하여 또한 한량이 없다.

그러나 오직 그 형기의 사사로움에 질곡(桎梏)되고, 듣고 보는 것의 작은 것에서 막히어, 가려서 다하지 못한 바가 있으니,

사람이 능히 사물에 나아가서 그 이(理)를 궁구하여 어느 날 회통하고 관철해서,

남기는 바가 없는 데 이르면 곧 그 본연의 체(體)를 온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능히 그 마음의 전체를 극진히 하여 부진(不盡)한 것이 없는 이는, 반드시 이(理)를 궁구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는 이일 것이니,

이미 그 이를 알면 곧 그 좇아 나온 바도 또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를 대학(大學)의 서(序)로써 말하면, 지성(知性)은 곧 물격(物格)을 이른 것이요, 진심(盡心)은 곧 지지(知至)를 이른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물(物)이나 몸에 있는 이는 다 마땅히 궁구해야 할 것이지마는, 물에 있는 것은 넓기 때문에 대략 말하고,

몸에 있는 것은 긴요하기 때문에 좀 자세히 말한 것입니다.

몸에 있는 것은 상세히 하여야 하고, 물에 있는 것은 간략하게 하여도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가까히 생각하고 유(類)를 미루어 다하지 않은 것이 없으면 사소한 한 가지 물이나 한 가지 일까지도

그 이치를 통찰하지 못한 것이 없을 것이데, 하물며 천지의 광대하고 귀신의 미묘한 것이야 상세하지 않은 것이 있겠습니까.

신이 또 살피건대, 선유(先儒)의 심(心)·성(性)·정(情)의 설은 자세히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

러나 각각 위주하는 바가 있어서 말이 한결같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뒷사람들이 말에 얽매여 뜻에 혼란을 일으키는 이가 많습니다.

'성이 발하여 정이 되고, 마음이 발하여 뜻이 된다.'고 하는 것은, 뜻이 각각 존재함이 있으며 심·성을 두 가지 작용으로 나눈 것이 아닌데,

뒷사람들이 마침내 정과 뜻을 두 갈래로 생각하였습니다.

(성이 발하여 정이 된다는 것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요, 마음이 발하여 뜻이 된다는 것은 성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마음은 성을 극진히 할 수 있으나, 성은 마음을 검속할 수 없고, 뜻은 정을 운행할 수 있으나 정은 뜻을 운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을 주로 하여 말한다면 성에 속하고, 뜻을 주로 하여 말한다면 마음에 속하지마는, 실상은 성은 마음이 미발(未發)한 것이요,

정과 뜻은 마음이 이발(已發)할 것입니다.)

사단(四端)은 다만 이만 말한 것이고, 칠정(七情)은 이와 기를 합하여 말한 것이며, 두 가지 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뒷사람들은 마침내 이와 기를 서로 발한다고 생각하였으니,

(4단은 성의 본연의 성을 말한 것과 같고, 7정은 성의 이기(理氣)를 합하여 말한 것과 같습니다.

기질(氣質)의 성은 실은 기질 가운데 있는 본성이고, 두 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7정은 실로 4단을 포괄한 것이요, 두 정이 아닙니다. 모름지기 두 성이 있어야 비로소 두 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의(情意)를 두 갈래로 생각하는 것과 이기(理氣)가 서로 발한다는 설을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개 마음의 체(體)는 성이요, 마음의 용(用)은 정인데, 성정 밖에 또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자는 말하기를, "마음이 동하는 것이 정이다." (주자의 말은 여기서 그칩니다.) 하였습니다.

정은 물(物)에 감동하여 처음으로 발하는 것이요, 뜻은 정으로 말미암아 계교(計較)하는 것이니 정이 아니면 뜻이 말미암을 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자는 말하기를, "뜻은 정에 말미암아야만 작용한다.

그래서 마음이 적연(寂然)히 부동(不動)한 것을 성이라 하고, 마음이 감동하여 드디어 통하는 것을 정이라 하며,

마음이 감수된 것에 따라 추출하고 헤아려 생각하는 것을 뜻이라고 한다." 하였으니,

마음과 성이 과연 두 작용이겠으며, 정과 뜻이 과연 두 갈래가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묻기를, "뜻은 본연의 정에 의하여 계교하는 것이지마는,

사람이 아직 물과 접촉하지 아니하여 소감所感이 없을 때에도 염려의 발단發端이 있으니, 어찌 반드시 정에 의한다고 하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이것도 옛날에 발단되었던 정을 축출한 것이다.

그 때를 당하여 비록 아직 사물에 접촉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실상 옛날에 느꼈던 사물을 사념하는 것이니,

어찌 정에 의하는 것이라 하지 않겠는가." 하였습니다.)

오성(五性) 밖에 다른 성은 없고, 칠정(七情) 밖에 다른 정은 없습니다.

맹자가 7정 가운데에서 그 선정(善情)만 적출하여 4단으로 지목한 것이요, 7정 밖에 또 4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의 선(善)·악(惡)이 그 어느 것인들 성에서 발하지 않은 것이 있겠습니까.

그 악(惡)이란 것은 본래 악이 아니요, 다만 형기에 음폐되어 지나친 것과 미치지 못한 것이 있어서 악이 됩니다.

그러므로 정자는 말하기를, "선·악은 다 천리이다." 하였고, 주자는 말하기를, "천리로 인하여 사람의 욕심이 있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4단과 7정이 과연 두 정이요, 이(理)와 기(氣)가 과연 서로 발하는 것이겠습니까.

(정(程)·주(朱)의 설을 얼핏 보면 매우 놀라운 듯하나, 깊이 생각하면 의심이 없습니다.

사람의 희·노·애·낙은 성인이나 미치광이거나 다 같이 가지고 있는데, 그 희·노·애·낙하는 소이연(所以然)의 이치는 성입니다.

그 희·노·애·낙을 아는 것은 마음이요, 사물을 만나 희·노·애·낙하는 것은 정입니다.

마땅히 기뻐할 것은 기뻐하고 마땅히 화낼 것을 화내는 것은 정의 선(善)한 것이요,

마땅히 기뻐하지 않을 것을 기뻐하거나 마땅히 화내지 않을 것을 화내는 것은 정의 불선(不善)한 것입니다.

정의 선한 것은 청명한 기를 올라타고 천리에 따라 곧장 나오니,

그것이 인(仁)·의(義)·예(嘉)·지(智)의 실마리인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4단으로 지목하였습니다.

정의 불선한 것은 역시 이에 근거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미 더럽고 흐린 기에 음폐된 바 되어,

도리어 이를 침해하니 그것이 인·의·예·지의 실마리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4단이라고 말할 수 없을 뿐이요, 성에 근거하지 않고 따로 두 근본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이른바, "선악(善惡)은 다 천리요, 천리에 따라 인욕이 있다." 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욕을 천리라고 한다면 이것은 도둑놈을 아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여름철에 고기젓[=肉醬]이 변하여 구더기가 생기는 것과 같은데, 구더기는 본래 고기젓에서 생겼습니다.

그러나 바로 구더기를 고기젓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구더기는 고기젓에서 생겼지만 도리어 고기젓을 해칩니다.

인욕도 천리에서 나왔지마는 도리어 천리를 해치니 그 이치는 한가지입니다.)

대개 심(心)·성(性)을 두 용[二用]으로 생각하고 4단과 7정을 두 정[二情]으로 생각하는 것은 다 이(理)·기(氣)에 있어서 투철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대체로 정이 발할 때에 발하는 것은 기요, 발하는 까닭은 이입니다.

기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발할 까닭이 없으니, 이·기는 섞이어 원래부터 서로 떠나지 못합니다.

만일 이(離)·합(合)이 있으면 동(動)·정(靜)도 끝이 있고, 음·양도 처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란 것은 태극이요, 기란 것은 음양인데, 이제 태극과 음양이 서로 동한다고 하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태극가 음양이 서로 동할 수 없으면 이와 기가 서로 발한다는 것이 어찌 오류가 아니겠습니까.옛

날에 어떤 사람이 미발(未發) 이전의 마음과 성의 구별을 물었더니, 주자는 말하기를, "마음에는 체(體)와 용(用)이 있으나,

미발은 마음의 체요, 이발은 마음의 용인데, 어떻게 지정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마음과 성의 두 가지 현상이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과 성에 두 가지 현상이 없으면 4단과 7정도 어찌 두 가지 정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묻기를, "주자는 말하기를, '정(情)에는 선(善)·악(惡)이 있지마는 성은 완전히 선하다.' 하였는데,

그렇다면 기질의 성도 불선이 없는 것인가." 하므로, 신이 대답하기를, "기질의 성은 본래 선·악의 같지 않은 것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성이라고 하는 것은 다만 미발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사람은 비록 지극히 악(惡)한 자라도 미발인 때에는 본래 불선이 없다가 비로소 발하면 바로 선·악이 있게 된다.

그 악한 것은 기질과 물욕의 구애나 음폐하는 데 말미암는 것이요, 그 성의 본체는 아니다.

그러므로 '성은 완전히 선한 것이라'고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또, "인심과 도심이 이미 두 가지 마음이라면 4단과 7정도 어찌 두 가지 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물으므로,

신이 대답하기를, "이것도 말에 얽매여 뜻을 미혹하는 유이다. 마음은 하나인데 어찌 둘이 있겠는가.

다만 주재하여 발하는 것에 두 가지 이름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주자는 말하기를, '위(危)란 것은 인욕의 싹이요, 미(微)란 것은 천리의 깊고 묘한 것이다.

마음은 하나인데 정(正)과 부정(不正) 때문에 그 이름을 달리할 뿐이요, 도심을 한마음으로 삼고, 인심을 한마음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하였다.

이 말을 본다면, 마음이 두 가지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 어떤 사람이, "천리로 인하여 인욕이 있다는 설은 의심스럽다." 하므로, 신이 이것을 해석하여 말하기를,

"천리와 인욕은 처음부터 두 근본이 아니요, 성 가운데는 다만 인·의·예·지 네 가지가 있을 뿐인데, 인욕이 어찌 성 가운데에 뿌리를 박고 있겠는가.

다만 그 기에는 청(淸)·탁(濁)이 있어서 수치(修治)와 혼란(混亂)이 같지 않기 때문에 성이 발하여 정이 될 때에 지나침과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인(仁)이 어긋날 때에는 애정이 흘러서 탐욕이 되고, 의(義)가 어긋날 때에는 단제(斷制)가 흘러서 잔인(殘忍)이 되며,

예(禮)가 어긋날 때에는 공경이 흘러서 아첨이 되고, 지혜가 어긋날 때에는 지모(智謀)가 흘러서 사기(詐欺)가 된다.

이것을 미루어 그 나머지를 알 수 있다.

본래 다 천리이지마는, 흘러서 인욕이 되는 것이므로 그 근본을 미루어본다면 천성의 선(善)을 알 수 있고,

그 말단을 살펴본다면, 인욕으로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주자가 학자에게 현저히 보여 준 것이 역시 적절하다." 하였습니다.

○ 어떤 사람이 묻기를, "마음은 하나인데 정이라고도 하고, 지(志)라고도 하며,

의(意)라고도 하고, 염(念)이라고도 하며, 여(廬)라고도 하고, 사(思)라고도 하니, 어찌 그 이름이 번다하여 한결같지 않는가." 하여

신이 대답하기를, "정이라는 것은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어서 동(動)하는 것이다.

동하면 바로 정으로 자유로 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평상시에 함양(涵養)·성찰(省察)의 공이 지극하면, 정의 발하는 것이

자연히 이(理)에 맞고 절(節)에 맞지마는, 만일 마음을 다스리는 힘이 없으면 흔히 맞지 않는 것이 있다.

지(志)란 것은 마음의 가는 바가 있는 것을 이른 것이니, 정이 이미 발하여 그 추향(趨向)을 정한 것이다.

선(善)으로도 가고 악(惡)으로도 가는 것이 모두 지(志)이다.

의(義)라는 것은 마음에 계교가 있는 것을 말하는데, 정이 이미 발하여 생각도 하고 운용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자는, '정은 주거(舟車)와 같고 의(意)는 사람이 그 주거를 부리는 것과 같다.' 하였다.

염(念)·여(慮)·사(思) 세 가지는 다 의(意)의 별명인데, 사(思)는 비교적 중(重)하고, 염(念)과 여(慮)는 비교적 경(輕)하다.

의(意)는 거짓으로 할 수 있지마는, 정은 거짓으로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의(誠意)라는 말은 있지마는, 성정(誠情)이라는 말은 없다." 하였습니다.

또 묻기를 "지(志)와 의(意)는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뒤인가.

" 이에 대답하기를, "지(志)와 의(意)가 정하여진 것이요, 의란 것은 지가 아직 정하여지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지가 의의 뒤에 있는 듯하나 지가 먼저 서면 의가 뒤따라 생각하는 것도 있고,

의가 먼저 경영되고 지가 따라 정하여지는 것도 있으니, 일률적으로 논할 수 없다.

정(情)·지(志)·의(意)는 다 한 마음의 작용인데, 그 주재하는 바를 따라 각각 그 이름을 세우는 것이요, 여러 가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였습니다.

또 묻기를, "인심과 도심은 정(情)인가, 의(意)인가.

" 이에 대답하기를, "정과 의를 총괄하여 말한 것인데, 발하여 나오는 것은 정이요, 헤아려 생각하는 것은 의이다.

4단은 다만 도심을 가리킨 것이요, 7정은 인심과 도심을 총칭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신에게, "이(理)와 기(氣)는 1물인가, 2물인가." 하여

신은 대답하기를, "예전 사람들의 해석을 참고한다면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다.

이와 기는 혼연히 간격이 없어서 원래부터 서로 떠나지 못하여 2물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정자는 말하기를, '기(器)도 도(道)요, 도도 기이다.' 하였다.

비록 서로 떠나지 못하더라도 혼연한 가운데서 서로 섞여 있지 않으니 1물이라고 가리킬 수 없으므로,

주자는 말하기를, '이(理)는 이(理)요, 기(氣)는 기(氣)니, 서로 섞여 있지 않다.' 하였다."

두 가지 말을 합하여 음미하고 사색한다면, 이(理)·기(氣)의 묘한 것을 거의 알 것이다.

대체로 말한다면 이는 형체가 없고, 기는 형체가 있기 때문에 이통 기국(理通氣局)이요, (이통(理通)이란 천지 만물이 동일한 이라는 것이요,

기국(氣局)이란 천지 만물이 각각 일기(一氣))는 것입니다.

이일분수(理一分殊)란 것은 이는 본래 하나인데, 기가 고르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소속한 바에 따라 각각 한 이가 되니,

이것이 분수인 이유요, 이(理)가 본 일(一)이 아니란 것은 아닙니다.)

이는 무위(無爲)인데, 기는 유위(有爲)하기 때문에 기발 이승(氣發理乘)이다.

(음·양이 동(動)·정(靜) 하는데, 태극이 이것을 올라타니 발하는 것은 기이며, 그 기(機)를 올라타는 것은 이(理)입니다.

그러므로 인심은 지각[覺]이 있고, 도체(道體)는 무위(無爲)입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도를 넓힐 수 있으되, 도는 사람을 넓힐 수 없다." 하였습니다.)

무형(無形)·무위(無爲)이면서 유형(有形)·유위(有爲)의 주재가 되는 것은 이요, 유형·유위이면서 무형·무위의 기(器)가 되는 것은 기이다.

이것은 이·기를 궁구하는 큰 실마리이다." 하였습니다.

○ 또 묻기를, "이에는 체(體)도 있고 용(用)도 있는데 어떻게 분변하여야 하는가." 하기에,

신은 대답하기를, "중용(中庸)에, '군자의 도(道)는 비(費)하고도 은(隱)하다.' 하였고,

주자(朱子)는 이것을 해석하여, '비(費)는 용(用)의 넓은 것이요, 은(隱)은 체(體)의 미미한 것이다.' 하였다.

사물에 흩어져 있는 이의 당연한 것은,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사랑이 되고, 아들에 있어서는 효도가 되며, 임금에 있어서는 의리가 되고,

신하에 있어서는 충성이 되는 따위인데, 이것이 비(費)요, 용(用)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된 까닭은 지극히 은미한 이치가 있으니 이것이 그 본체(本體)이다.

이는 사물에 존재하는 것을 말한 것이요, 도는 유행하는 것을 말한 것인데, 그 실제는 하나일 뿐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의 차이에 대한 말씀

○ 맹자는 말하기를, "힘으로 인(仁)을 빌리는 자는 패(覇)인데 패는 반드시 큰 나라를 두며,

덕(德)으로 인을 행하는 자는 왕(王)인데 왕은 큰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탕(湯)은 70리로써 하고 문왕(文王)은 100리로써 하였다." 했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힘이란 토지와 강한 군사의 힘이다.

인을 빌리는 자는 본래 이 마음이 없으나 그 일을 빌어서 공(功)으로 삼는 자이다.

패란 것은 제(齊)나라 환공(桓公)이나 진(晋)나라 문공(文公)같은 이를 말한다.

덕으로 인을 행하면 나의 마음에 얻은 것으로부터 미루기 때문에 가는 데마다 인 아닌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비록 천하의 일을 공적으로 하더라도, 만약 사의(私意)를 가지고 한다면 바로 이것이 사(私)이다." 하였습니다.

힘으로 사람을 굴복하게 하는 이는 심복(心服)한 것이 아니라 힘이 넉넉하지[贍] 못한 것이요,

덕으로 사람을 굴복시키는 사람은 진심으로 기뻐서 굴복하는 것이니, 칠십자(七十子)가 공자에게 굴복하는 것과 같다.

시에 이르기를, "'서(西)로도 동으로도 남으로도 북으로도, 생각하여 굴복하지 않는 이 없다.' 한 것은 이런 것을 이른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섬(贍)이란 넉넉하다는 뜻이다. 시(詩)는 대아문왕유성(大雅文王有聲)편이다.

왕(王)과 패(覇)의 마음은 성(誠)과 위(僞)가 같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응하는 것도 같지 않은 것이 이러하다." 하였습니다.

○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공자는 필부(匹夫)로서 지위를 얻지 못하여도 칠십자(七十子)가 종신토록 따랐는데,

이것은 누가 시켜서 그랬겠는가. 이는 진심으로 기뻐서 굴복한 것이니, 왕자(王者)가 사람을 복종하게 하는 것도 이와 같다." 하였습니다.

○ 추씨(鄒氏)는 말하기를, "힘으로써 사람을 굴복시키는 이는 그 뜻이 사람을 굴복시키는 데 있으므로,

사람이 감히 굴복하지 아니하지 못하고, 덕으로써 사람을 굴복시키는 이는 그 뜻이 사람을 굴복시키는 데 있지 아니하나, 능히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옛날부터 왕(王)과 패(覇)를 논한 이가 많으나 이 장(章)과 같이 매우 절실하고 저명(著明)한 것은 있지 않다." 하였습니다.

어진[仁] 이는 그 의리[誼]를 바르게 하고 이(利)는 꾀하지 않으며, 그 도를 밝히고 공효는 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니(仲尼 : 공자의 자字)의 문하에서는 오척 동자(五尺童子)라도 오패(五覇)를 일컬음을 부끄러워하였으니,

그 속이는 힘[詐力]을 먼저하고 인의(仁義)를 뒤에 하였기 때문이다. (전한서前漢書. 동중서전董仲舒傳)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맹자 이후에 능히 오패(五覇)를 배척한 이는 오직 동중서(董仲舒)이다.

대개 어진 이는 의리를 바르게 할 뿐이요 이(利)가 있고 없음은 논하지 않으며, 도를 밝힐 뿐이요 공효가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꾀하지 않는다.

의리는 합당한 이(理)이요, 도는 통행(通行)하는 길이니 그 실제는 하나이다.

패도(覇道)를 하는 자는 오직 이(利)만을 꾀하고 의리는 돌보지 않으며,

오직 공효만을 꾀하고 도는 돌보지 않으니 이것이 공자의 문하에서 내치게 된 까닭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신종(神宗)에게 말하기를, "천리(天理)의 바른 것을 얻고, 인륜(人倫)의 지극한 것을 극진히 하는 것은 요·순의 도요,

그 사사로운 마음으로 인의(仁義)의 벽됨에 의지하는 것은 패자의 일입니다.

왕자의 도는 숫돌과 같이 평평하여 인정(人情)에 근거하고 예의에서 나오기 때문에, 한 길[大路]을 밟고 가는 것과 같아서

다시 돌거나 구부러지는 일이 없지만, 패자의 도는 험란하여 구부러진 길 가운데 거꾸러지고 엎어져서 끝내 요·순의 도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심으로 하여 왕도를 하면 곧 왕이 되고, 빌어서[假] 패도를 하면 곧 패(覇)가 됩니다.

이 두 가지는 그 도가 같지 않은 데 그 처음을 살펴야 할 뿐입니다.

「주역」에 이른바, '그 차이[差]는 호리(豪釐)와 같으나 천리나 어긋난다.'는 것과 같으니, 그 처음을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선성(先聖)의 말씀을 생각하시고 인사(人事)의 이(理)를 살피시되, 요·순의 도가 자신에 갖추어진 것을 알아서 몸에 돌이키고,

성실하게 하여 미루어 사해(四海)에 미친다면 곧 만세(萬世)에 다행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이단(異端)의 폐해에 대한 말씀

○ 공자는 말하기를, "이단(異端)을 전공(專攻)하면 해로울 뿐이다." 하였습니다. (논어)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공(攻)이란 오로지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석(木石)이나 금옥(金玉)을 다스리는 장인[工匠]을 공(攻)이라고 한다.

이단은 성인의 도가 아니요 따로 한 일단(一端)을 말하는 것이니, 양(楊)·묵(墨)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천하를 거느리되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는데 이르게 되니, 오로지 다스려서 정밀하고자 하면 해됨이 심하다." 했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오직 오로지 다스려서는 안 된다는 것뿐만 아니다. 문득 간략히 이해하여도 아니된다.

다만 자기의 학문이 정(定)해져 이단을 보게 되면 그 병통을 알게 된다." 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양씨(楊氏)는 나만 위하였으니 이는 임금이 없는 것이요,

묵씨(墨氏)는 평등하게 사랑하였으니 이는 아비가 없는 것이므로,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으면 이것은 금수이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양(楊)·주(朱)는 다만 자기 몸만을 알고 다시 몸을 바치는[致身] 의리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였으니

임금이 없는 것이며 묵적(墨翟)은 사랑이 평등하여 그 지친(至親)을 뭇 사람과 다름없이 보았으니 아비가 없는 것이다.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음은 인도(人道)의 절멸(絶滅)이다. 그러므로 역시 금수일 뿐이다." 하였습니다.

능히 양(楊) · 묵(墨)을 막으려 하는 이는 성인의 무리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참으로 능히 이 양·묵의 설을 막는 자는 그 추향(趨向)하는 바가 바르므로, 비록 도를 알지 못하더라도 역시 성인의 무리이다.

대개 사설(邪說)이 정(正)을 침해하면 사람마다 이를 공격할 수 있으며, 반드시 성현이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춘추(春秋)의 법에는 난신(亂臣)이나 적자(賊子)는 사람마다 벨 수 있으며, 반드시 사사(士師)라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 노자(老子)를 배우는 이는 유학(儒學)을 배척하고 유학은 역시 노자를 배척하니,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꾀하지 못한다. (사기史記)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노자(老子)의 글은 포괄한 바가 많다.

그의 무위(無爲)·무욕(無慾)은 이(理)에 가까운 말이라 군자가 취하고, 그의 양생(養生)의 말은 방사(方士 : 신선술을 하는 사람)들이 숭상하는 것이요,

빼앗으려면 반드시 먼저 준다는 것은, 음모(陰謀)의 말이라 병가(兵家)가 숭상하며,

그 사물을 조적(粗迹)으로 삼고 공허(空虛)를 묘용(妙用)으로 삼는다는 것은 청담(淸談)하는 이가 모방하였다.

그 이(理)에 가까운 것을 가지고 말하면 진실로 취할 바가 있으나, 모두 우리 성인의 소유한 것이요,

이 이하로는 일편(一偏)·일곡(一曲)의 학문으로 그 폐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양생(養生)의 설은 신선(神仙) 방약(方藥)의 나온 바요, 음모의 술(術)은 신(申)·상(商)·한비(韓非)가 근거한 것이요,

청담의 화(禍)는 왕필(王弼)·하안(何晏)에 이르러서 지극하였는데, 모두 세주(世主)를 미혹하여 어지럽히고 생민(生民)을 해하여 죽이었다.

비록 노장(老壯)의 학문이라도 처음에는 여기에 이르지 않았으나 근본에서 조그마한 차이 때문에 그 유폐가 심하니,

이로써 말한다면 어찌 요·순·주(周)·공(孔)의 도로 말미암아 폐단이 없는 것만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 도기(導氣)한다 말하는 어떤 이가 정자(程子)에게, "당신도 역시 술(術)이 있는가." 물으니,

대답하기를, "나는 일찍이 여름에는 갈(葛)옷을 입고 겨울에는 핫옷을 입으며,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뎐 마시며,

알맞게 즐기어 욕심을 조절하며, 심기(心氣)를 안정하게 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또, "신선(神仙)의 설이 있는가." 물으니, 대답하기를, "말하자면 백일(白日)에 비승(飛升)하는 유례는 없으나,

산림(山林)속에 살면서 몸을 보전하고, 기를 연마하여 나이를 연장하고 목숨을 보전할 수는 있다.

비유한다면, 화롯불을 바람 결에 두면 쉽게 타고 밀실(密室)에 두면 잘 타지 않는 이치와 같다. " 하였습니다.

또 "성인이 능히 이러한 일을 하는가." 물으니, 대답하기를, "이것은 천지 사이에 하나의 도적이다.

조화(造化)의 기밀을 도둑질하지 않고서야 어찌 능히 나이를 연장하겠는가.

만일 성인이 하실 것이라면주공(周公)·공자(孔子)도 이것을 하였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불교(佛敎)라는 것은 이적(夷狄)의 한 법(法)이다. (창려문집(昌黎文集))

물헌웅씨(勿軒熊氏)는 말하기를, "<불교는> 후한(後漢) 때에 중국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연(緣)과 업(業)을 논하여 어리석은 백성을 유혹하는 데 불과할 뿐이었는데,

그 뒤로 심성(心性)을 설하여 비록 총명한 선비도 역시 현혹하였으니, 학자는 힘껏 살펴서 밝게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불씨(佛氏)의 말은 양(楊)·묵(墨)에 비한다면 더욱 이(理)에 가까와서 그 폐해는 더욱 심하다.

배우는 자는 마땅히 음성(淫聲)이나 미색(美性)처럼 멀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점차로 그 가운데 들어가게 된다. (정씨유서(程氏遺書) 명도(明道)선생의 말.)

주자는 말하기를, "양·묵은 학설이 천박하여 사람을 미혹하지 못하지마는 불씨(佛氏)는 가장 정미하여 사람을 경동케 하므로

그 설을 따름이 깊을수록 더욱 사람을 해친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석씨(釋氏)의 설을 만약 궁구하여, 버리고 취하려 한다면, 그 설을 궁진하지도 못하고 이미 화하여 부처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다만 그 자취에서 상고해야 할 것이다.

그 설교(說敎)하는 것이 이러하니, 곧 그 마음은 과연 어떠하겠는가. 그 마음은 취하고 그 자취를 취하지 않기는 어렵다.

이 마음이 있으면 곧 이 자취가 있는 것이다. 왕통(王通)56)이 말하기를, "마음과 자취가 다르다"고 함은 난설(亂說)이다.

그러므로 자취에서 그것이 성인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단정하는 것이 좋다.

만일 일치한 것이 있다면 곧 우리의 도에 이미 있는 것이요, 불일치한 것이 있다면 진실로 취하지 않을 것이니

이렇게 정해지면 문득 간편하며 쉬울 것이다." 하였습니다.

(섭씨(葉氏)가 말하기를, "이 말은 비록 처음 배우는 자로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이를 위하여 세운 것이나,

맹자가 양(楊)·묵(墨)을 배척한 것도 역시 그 자취를 상고하고, 그 마음을 미루어서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는 데가지 극진히 한것에 불과한 것이니,

이것이 실로 이단을 분별하는 요령이다." 하였습니다.)

○ 왕씨(汪氏)는 말하기를, "정(程)·주(朱)의 시대에도 유학(儒學)이 불선(佛禪)에 유전(流轉)된 이가 있었는데,

지금의 학자는 이에 대하여 일절 말을 하지 않게 되었으니 정·주의 공적이 크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불씨(佛氏)의 설은 정미한 것도 있고, 조잡한 것도 있습니다.

조잡한 것은 다만 윤회응보(輪廻應報)57)의 설로서 죄와 복을 확장시키고,

우매한 백성을 유혹 협박하여 그들로 하여금 공양(供養)을 분주하게 시킬 뿐이지마는, 그 정미한 것에 있어서는 극히 심성(心性)을 논하였는데,

이(理)를 마음으로 인정하여 마음을 만 가지 법칙의 근본이라 하고, 마음을 성으로 인정하여 성(性)을 보고 듣는 작용이라 하며

적멸(寂滅)을 종지(宗旨)로하여 천지 만물을 환망(幻妄)이라 하고, 출세(出世)를 도로하여 윤리 도덕을 질곡(桎梏)이라 하였습니다.

그 공부의 요점은 문자(文字)를 내세우지 않고 바로인심을 가리키며, 성(性)을 보아 불(佛)을 이룬다하여

갑자기 깨달은 뒤에 비로소 점점 닦는데〔修〕, 만일 뛰어난 사람이면 바로 깨닫고 바로 닦는 사람도 있습니다.

달마(達磨)58)가 양무제(梁武帝) 때에 중국으로 들어와 비로소 그 도를 전하였는데, 선학(禪學)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당대(唐代)에 이르러 크게 번성하였는데, 그 무리가 천하에 가득차서 양미순목(揚眉瞬目)하고

방할대소〔棒喝大笑: 선가에서 문답하는 것〕함으로서 서로 인증(印證)하였습니다.

대개 무의(無意)로써 도를 얻는 것으로 삼아 선악(善惡)은 논하지 않았으며, 만일 유의(有意)로써 <도를> 얻으면 다 망령된 견해하고 합니다.

반드시 마음대로 행하여 의사(意思)를 사용하지 않아야만 비로소 진실한 견해라고 합니다.

여기에 도달하지 못한 이는 반드시 한 귀 두귀의 의미없는 말을 (구자(狗子) 무불성(無佛性)과 정전(庭前) 백수자(栢樹子)와 같은 유(類)입니다.)

무한한 묘리(妙理)로 삼아, 드디어 크게 위심하여 마음을 오로지하여 궁구하고 끊임없이 공을 쌓아서 고요하게 좌정(坐定)한 끝에,

심성(心性)의 그림자를, 방불하게 생각할 무렵에 대략 보고는 드디어 이것을 할연히 크게 깨달았다고 여겨 미친 듯이 방자해 하며, 할 일을 마쳤다고 말합니다.

송(宋)나라 시초까지도 그 무리들이 아직 치열하였는데, 정(程)·주(朱)가 배척해서 맑게 한 뒤로부터는그 세력이 비로소 쇠퇴하여

지금은 선학(禪學)이 거의 절멸하였습니다.

또 육상산(陸象山)이 주자와 같은 세대에 출생하여 치지(致知)의 공을 배격하여, 지리하고 번잡하여 진리를 잃는다고 여겨

오로지 본심(本心) 공부만 하였는데, 이것도 함양하는 데는 도움이 없는 것은 아니나 배우는 자는 반드시 지식과 실천을 병행하여야 합니다.

만일 도리도 모르고 시비도 가릴 줄 모른다면 마음을 보존한다는 것이 무엇에 의거 하겠습니까.

만일 정좌(靜坐)만을 한다고 모든 진리가 스스로 밝혀진다면, 공자는 어찌하여 반드시, "문(文)에 박학하여야 한다." 하였겠으며,

자사는 어찌하여 반드시, "학문에 연유하여야만 한다." 하였겠습니까.

이것은 피음(淫)·사둔(邪遁)의 선학의 설과 가깝지 않겠습니까.

상산(象山)은 이미 죽었으나 그 학풍은 끊어지지 않아 지금은 주자의 정통적인 학문과 병립(竝立)하여 서로 대항하니,

근로(勤勞)를 싫어하고 간편한 것을 즐기는 무리들은 서로 심오하고 황홀한 설을 만들어 그들과 부합합니다. 아, 그것도 사도(斯道: 유학)의 불행입니다.

선학은 사람을 의혹하게 하되 그 언어(言語)는 유학이 아니며,그 행실은 윤리를 절멸하게 하니,

세상에서 병이(秉彛: 하늘이 정한 상도(常道))가 있음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는 진실로 이미 의심하였으며,

또 정·주가 선학을 배척하여 그 자취는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육상산의 학은 그렇지 않아서 말은 반드시 공(孔)·맹(孟)을 일컫고, 행실은 반드시 효제(孝悌)에 근거하였으나, 그 마음을 쓰는 정미한 곳은 선학과 같습니다.

이를 물리치기가 어찌 불씨(佛氏)보다 10배나 힘들지 않겠습니까.

불씨의 폐해가 외구(外寇)의 침략과 같다면 육씨(陸氏)의 피해는 간신이 나라를 그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몰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여기서 아울러 썼습니다.

○ 신이 살피건대, 궁구할 사물을 다 기록할 수는 없고 다만 왕도(王道) 패도(覇道),

이단의 폐해만은 분변하지 않을 수 없어서 대략 서술하였사오니, 다른 것은 유추(類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이 가만히 살피건대, 성현의 궁리하는 설의 대요(大要)는 이 장(章)에서 인용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일 그 말에 의하여 실지로 공부하여 순서에 따라 차츰 전진하신다면, 관통(貫通)하는 효과는 미약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거두어질 것입니다.

대개 만사와 만물에는 이치가 없는 것이 없는데, 사람의 마음은 온갖 이치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궁구하지 못할 이(理)는 없습니다.

그러나 개명성(開明性)과 엄폐성(掩蔽性)이 한결같지 않고, 총명성(聰明性)과 암매성(暗昧性)의 차이가 있어서,

궁리하고 격물할 때에 한 번 생각하여 바로 체득하는 것도 있고, 정미하게 생각하여 비로소 깨닫는 것도 있으며,

마음을 써서 애를 태워도 투철하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생각하다가 얻음이 있어서 환연(渙然)하게 자신(自信)하고 패연하게 즐거우며, 쇄연하게 말로써 형용할 수 없게 된다면 이것은 진실로 체득한 것입니다.

비록 체득한 것이 있는 듯하더라도 믿는 가운데 의문이 있으며, 위태롭고 편안하지 못하여 석연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면

이것은 억지로 추측한 것일 뿐이며 진실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제 사물에 대하여 이해하거나 또 성현의 말씀을 살핌에 있어 만일 마음가짐이 깨끗하여, 한 번 보고도 문득 마음으로 이해하여

조금도 의심스러운 것이 없다면, 이것은 한 번 생각하여 문득 얻는다는 것인데, 만일 다시 의문을 제기하면 도리어 진실한 견해를 어둡게 하는 것입니다.

가령 명도(明道)가 일찍이 창고 가운데에서 긴 행랑집의 기둥을 잠자코 헤아려 보고는,

맞지 않는다고 의심하여 몇 번이나 헤아려 보았으나 더욱 틀리는지라, 드디어 사람을 시켜서 기둥을 두드리며 이것을 헤아려 보니

처음에 잠자코 헤아려 본 것과 같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한 것입니다.

만일 사색하여 체득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오로지 치지(致知)하여 죽도록 싸워 침식도 잊어버리게 되어야만 비로소 깨닫는 것이 있게 되는데,

가령 연평선생(延平先生)이, "하나이기 때문에 신(神)하고 들이기 때문에 화(化)한다." 한 말을 연구하여 얻지 못하여

밤새도록 의자 위에 앉아서 사색하여 몸소 그 속에서 체험하여 비로소 평온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나

관중(管仲)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귀신도 통할 것이니,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고 정신의 극치이다." 한 말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한 것입니다.

또 혹은 오랫동안 애를 태우고서도 마침내 석연치 못하여 생각이 막히고 분분하고 어지러우면 모름지기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마음속을 비워서

일물(一物)도 없게 한 뒤에 문득 들추어 정미하게 생각하고, 그래도 오히려 환히 얻지 못한 것도 갑자기 자각(自覺)될 때가 있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거기서 이미 이해하지 못한 것을 만일 그쪽에서 전일하게 지키고 있으면 도리어 혼미(昏迷)하게 된다.

모름지기 다른 것을 궁구하여야 할 것이니 그러면 혹시 이 때문에 저것이 밝혀질 수도 있다."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 세 조목은 서로 발명한 것으로 궁리의 요법(要法)이니, 여기에 종사하여 조금도 게으르지 않고, 정양(靜養)함으로써

맑혀 그 근본을 배양하고 의문을 묻고 판단함을 인해서 그 의취(意趣)를 펴게 하되, 오랫동안 공을 쌓아 하루아침에 활연히 관통하여

물(物)이 궁구되지 않은 것이 없고, 마음이 다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이른다면, 나의 식견이 성현과 부합되어 욕심의 유혹이나,

공리(功利)의 학설이나 이단의 방해와 같은 것은 모두 나의 마음을 더럽힐 수 없고, 한결같이 평탄하여 멀리 가도 의심이 없습니다.

거기서 성의정심(誠意正心)하면 큰 일을 처리하고, 대업(大業)을 결정함이 마치 강물을 터놓은 듯하여 능히 막지 못합니다.

학문을 하고 이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어찌 학문을 한다고 하겠습니까.

또 생각하면, 임금의 자리는 필부와는 같지 않습니다.

필부는 반드시 몸을 닦아서 때를 기다리고 임금을 얻어서 도를 행하기 때문에, 학문이 부족하면 감히 얼른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그렇지 아니하여 이미 신민의 주(主)가 되었고, 이미 교양(敎養)의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지금 몸을 닦고 있으므로 사람을 다스릴 겨를이 없다." 한다면, 나라의 정치가 폐지됩니다.

그러므로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도(道)를 모두 같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 동안에 접촉하는 바가 만 가지 일이니 매양 한 사건을 만날 때마다 반드시 지당한 이치를 구하여,

그 그른 것을 버리고 그 옳은 것은 행하며 유학하는 신하와 친근하여 의리를 강론하고, 간(諫)하는 것을 받아들여서

오직 선(善)만을 위주하는 것은 다 임금의 궁리하는 일입니다.

장구(章句)를 찾고 화려한 언사(言辭)를 채집하여 빈 말로만 돌릴 뿐이요,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실용적인 공부(功夫)를 시행하지 않는다면,

비록 안목(眼目)이 높고 의논이 정묘하다 하더라도 마침내 학문에 힘스고 몸을 성실하게 하는 공효를 보지 못할 것이니, 역시 무슨 이익이 있겠읍니가.

자계황씨(慈溪黃氏)는 말하기를, "물을 퍼내려는 사람은 반드시 그 근원을 깊게 하며, 그 근원을 깊게 하는 것은 물을 퍼내기 위한 것인데, 도

리어 그 물을 버리고 퍼내지 않는 것은 무슨 뜻이며, 열매를 먹으려는 이는 반드시 그 뿌리를 북돋우어 주며, 그

 뿌리를 북돋우어 주는 것은 그 열매를 먹기 위한 것인데, 도리어 그 열매를 버리고 먹지 아니하는 것은 무슨 뜻이며,

몸소 바르게 실천하려는 이는 반드시 성리학(性理學)을 정밀히 하며, 성리학을 정밀히 하는 것은 몸소 바르게 실천하기 위한 것인데,

도리어 몸소 실천하는 것을 불문에 붙이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였습니다.

이 말은 매우 적절하오니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유념(留念)하옵소서.

 

< 주 >

34) 사단(四端)이란 맹자(孟子)가 말한 것으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지단(仁之端),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지단(義之端),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지단(禮之端),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지단(智之端)의 사단을 말한다. 풀

어 말하면 측은해 하는 마음은 사랑의 실마리이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정의의 실마리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질서의 실마리이고,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마음은 지혜의 실마리라는 것이다.

35)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뜻하는데 송대 성리학의 중요한 개념으로 소당연지리(所當然之理)라는 용어와 함께 썼다.

36) 그렇게 되는 원인 까닭을 의미하며 성리학에서 소이연지리(所以然之理)라는 개념과 함께 쓰고 있다.

37) 「주역」64괘 중 26번째의 괘이름.

38) 송(宋)나라 낙양(洛陽) 사람. 이름은 순(焞) 자는 언명(彦明). 화정(和靖)은 그의 호이다.

정이(程)의 문인으로 저서에 맹자해(孟子解) 화정집(和靖集) 등이 있다.

39) 송(宋)나라 사람. 이름은 시(時) 자는 중립(中立).

귀산(龜山)은 그의 호임 정자(程子)에게 수학하여 뒤에 주자의 근원이 됨. 저서로는 이정수언(二程粹言) 귀산집(龜山集) 등이 있다.

40) 송(宋)나라 금화(金華) 사람. 이름은 조겸(祖謙) 자는 백공(伯供) 동래(東萊)는 그의 호임,

주희(朱熹) 장식(張)과 함께 동남삼현(東南三賢)으로 일컬어졌다.

41) 입교(立敎)란 가르침에 관한 것을 세웠다는 뜻이고, 명륜(明倫)이란 인간의 도리를 밝힌다는 뜻이며,

경신(敬身)이란 몸가짐을 공경히 한다는 뜻이며, 계고(稽古)란 옛 것을 상고한다는 뜻이다.

42) 존양(存養)이란 존심양성(存心養性)의 줄인 말로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함양한다는 뜻이다.

43) 원(元)나라 하내(河內) 사람. 이름은 형(衡) 자는 중평(仲平) 노재(魯齋)는 그의 호임.

정주(程朱)의 학문을 익히고 뒤에 국자제주(國子祭酒) 등을 지냈다.

44) 대학혹문(大學或問)은 중용혹문(中庸或問)과 함께 주희(朱熹)가 지은 것으로서 문답형식으로 「대학」의 뜻을 밝히고 있다.

45) 요(堯)·순(舜)·우(禹)·탕(湯)·문무(文武)·주공(周公)·공자(孔子)로 전수된 심법지학(心法之學)을 의미하는데,

인심(人心)은 위태하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니 정일(精一)로 그 중(中)을 잡아야 한다는 심법(心法)에 연유하고 있다.

46) 천지(天地)와 사방을 말한다.

47) 성리학(性理學)적인 의미에서 쓰이는 실리(實理)·실심(實心)·실사(實事)를 추구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48) 「시경」국풍(國風)의 2편의 시.

49) 진시황(秦始皇)을 말함. 시·서를 불사르고 유사(儒士)를 죽였다.

50)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를 5음(五音)이라 하고, 12률(十二律)이란 6률(六律)과 6려(六呂)를 의미한다.

양(陽) 6률(六律)은 황종(黃鐘-11월)·태주(太주簇-1월)·고선(姑洗-3월)·유빈(賓-5월)·이칙(夷則-7월)·무역(無易-9월),

음(陰) 6려(六呂)는 대려(大呂-12월)·협종(夾鐘-2월)·중려(仲呂4월)·임종(林鐘-6월)·남려(南呂-8월)·응종(應鐘-10월).

51) 중(中)을 세우고 극(極-즉 中)을 세운다는 뜻.

52)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제후(諸侯)의 맹주(盟主)로서 패업(業)을 이룬 다섯 사람.

즉, 제환공(齊桓公)·진문공(晉文公)·진목공(秦穆公)·송양왕(宋襄王)·초장왕(楚莊王).

일설에는 진목공(晉穆公)과 송양왕(宋襄王) 대신에 오합려(吳闔閭)·월구천(越句踐)을 이르기도 한다.

53) 송(宋)나라 여릉(廬陵) 사람. 자는 경륜(景倫). 저서로 학림옥로(鶴林玉露) 등이 있다.

54) 송(宋)나라 광한(廣漢) 사람. 이름은 식(拭), 자는 경부(敬夫), 남헌(南軒)은 그의 호임. 호

굉(胡宏)을 사사하고 주자와는 친구사이로 이학(理學)에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는 남헌역설(南軒易說) 이천수언(伊川粹言) 등이 있다.

55) 천(天)·지(地)·인(人)을 가리킨다.

56) 수(隨)나라 용문(龍門) 사람. 자는 중엄(仲淹) 시호는 문중자(文中子) 하분(河汾)에 은거하며 제자를 양성하여 수업하는 자가 많았음.

방현령(房玄齡) 위징(魏徵) 등이 모두 그 문인이다.

57)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죽지 않고 다른 생명으로 환생한다는 불교의 한 이론.

58)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始祖).

양(楊)의 무제(武帝) 때에 중국에 건너와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간 면벽(面壁) 참선(參禪)하고 뒤에 혜가(慧可)에게 도를 전하였다.

 


제5장. 성 실(誠實)

 

신이 살피건대, 궁리(窮理)가 분명한 뒤에는, 궁행(窮行)할 수가 있는데, 반드시 마음이 진실하여야만 비로소 진실한 공부에 착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성실(誠實)이 궁행의 근본이 됩니다.

공자(孔子)는 말하기를, "충(忠)과 신(信)을 주(主)로 하라." 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스스로 양심(良心)에 충실한 것을 충(忠)이라 하고, 일에 진실한 것을 신(信)이라 한다.

충은 진실한 마음이고 신은 진실한 일이다. 사람이 충하고 신하지 못하다면 매사에 모두실상이 없을 것이다.

악을 행하기는 쉽고 선을 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이 충과 신을 주요한 도덕으로 삼아서 힘써야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자장(子張)이 행하는 도리를 물었더니, 공자는 말하기를, "말이 충하고 신하며, 행동이 돈독하고 경건하면,

비록 오랑캐〔蠻貊〕같은 야만의 나라일지라도 행할 수가 있을 것이나, 말이 충실하거나 성실하지 못하며,

행동이 돈독하거나 경건하지 못하다면, 비록 자기가 사는 향리(鄕里)인들 행할 수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자장의 뜻은 밖으로 영달하여 행하여지는 데 있기 때문에 공자는 자기 몸의 수양을 돌이켜 말한 것이다.

독(篤)은 도탑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장남헌(張南軒)은 말하기를, "독경(篤敬)은 돈독하게 공경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서 있으면 그것이 앞에 참여한〔參〕것을 보고, 수레에 있으면 그것이 멍에〔衡〕에 위지한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니, 그래야만 행하게 되는 것이다.

자장(子張)은 이 말을 잊지 않으려고 큰 띠〔紳〕에 써 두었다.

주자는 말하기를, "그것이란 충(忠)·신(信)·독(篤)·경(敬)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참(參)은 '가서 참여하지〔參〕말라.'는 참(參)과 같이 읽는다.

(곡례(曲禮*)에 보면,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에 내가 가서 참여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그것은 나와 그것이 서로 가까이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형(衡)은 멍에이다. 그 말의 뜻은 충·신·독·경을 항상 마음 속에 잊지 않게 두고, 자기의 소재(所在)에 따라 늘 보이는 듯하여

9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말은 반드시 충(忠)·신(信)이 되고자 하고 행동은 반드시 독(篤)·경(敬)이 되고자 하여,

그것을 항상 마음 속에 두고 잊지 않으면 마음과 눈〔心目〕사이에 나타남이 있다." 하였습니다.)

그것에서 일순간도 떠나려야 떠날 수 없게 되어야만, 일언(一言) 일행(一行)이 자연히 충·신·독·경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리하여 오랑캐의 야만국이라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紳)은 큰 띠의 드리운 것인데, <띠에> 기록한다는 것은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큰 임무를 맡으려면 모름지기 독실하여야 한다." 하였습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옛날의 배우는 이는 자기를 위하여 하였는데, 오늘의 배우는 이는 남을 위하여 한다." 하였습니다. (논어)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자기를 위한다는 것은 안으로 자기를 위하여 얻고자 하는 것이요, 남을 위한다는 것은 밖으로 남에게 알려지고자 하는 것이다.

옛날 배우는 자는 나를 위하였으되, 마침내 남까지 이루게 하는데 이르렀으나 오늘 배우는 자는 남을 위하였으되,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 상실하는 데 이르렀다." 하였습니다.

○ 또, "명예를 추구하는데 뜻을 두면 큰 근본을 이미 잃은 것인데, 다시 무엇을 배우겠는가.

명예를 좋아하는 것은 이익(利益)을 좋아하는 것과는 비록 청(淸)·탁(濁)의 다른 것은 있다 하더라도, 그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은 마찬가지다." 하였습니다.

○ 경원 보씨(慶源輔氏)는 말하기를, "나를 위한 공부와 남을 위한 공부는 그 차이가 다만 털끝 만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오직 나의 내적인 충실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남에게 알리려 할 필요가 없고, 조금이라도 남에게 알리고자 한다면,

반드시 자기의 내적인 충실을 기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내적인 충실을 얻고자 하는 자는 거둬들여서 독실(篤實)하고,

남에게 알리려고 하는 자는 경하고 들떠서 천로(淺露)하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성현들이 배우는 자의 마음가짐의 득실(得失)을 논한 설이 많다.

그러나 간절하고 요약된 것으로는 이 말과 같은 것이 없다.

이것을 명료하게 분변하여 날마다 이를 반성한다면, 따라 행할 바에 거의 어둡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그 뜻을 성실(誠實)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自欺〕말라〔毋〕는 것이다.

마치 악취(惡臭)를 싫어하듯 하며, 여자를 좋아하듯〔好色〕하는 것인데, 이것을 자겸(自謙) 겸(慊)으로 읽습니다. 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獨〕있을 때를 삼간다. (대학(大學))

주자는 말하기를,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 수신하는 것의 으뜸인 것이다.

무(毋)는 금지하는 말이요, 스스로 속인다〔自欺〕는 것은 선(善)을 행하고 악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긴 하면서도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직 참되지 못한 것이다.

겸(謙)은 유쾌하고 만족한 것이다. 독(獨)은 남이 알지 못하는 것이고, 나만이 홀로 아는 곳이다.

그 말은, 스스로 수신하고자 하는 자는 선을 행해야 하고 악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마땅히 그 힘을 다하여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서 악을 미워하기를 마치 악취를 미워하듯하며,

선을 좋아하기를 예쁜 여자를 좋아하기를 예쁜 여자를 좋아하듯하여,

<버릴 것은> 모두 버리도록 힘쓰고, <얻을 것은> 반드시 얻도록 구하여서 스스로 자기에게 유쾌하고 만족하게 하여야 하며

한갓 구차하게 밖으로 남을 위하여서는 아니된다.

그러나 그 참되거나 참되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없고, 나만이 홀로 아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여기에 근신해서 그 기미(幾微)를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가령 오훼(烏喙: 독초(毒草)의 이름)는 먹을 수 없고, 물과 불〔水火〕은 밟을 수 없다는 것을 알므로,

스스로 먹지도 않고 밟지도 않으며, 추우면 옷을 입고자 하고 배고프면 밥 먹고자하여 스스로 그만 두지 못한다.

사람이 과연 선을 보면 배고플 때 밥 먹고 싶듯이 하고, 추울 때 옷 입고 싶듯이 하며,

악을 보면 오훼를 먹어서는 안될 것으로 알고 물과 불을 밟을 수 없는 것으로 알 듯이 한다면, 이는 뜻이 스스로 성실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반은 알고 반은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선을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을 알면서도 도리어 충분히 선을 행하는 데 이르지 못한 다거나,

악을 행하여서는 아니될 것을 알면서도 도리어 자기 스스로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것은 바로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만일 9분(分)의 의리(義理)가 있되, 1분의 사사로운 뜻이라도 섞여 있다면, 이것은 곧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10분의 선을 하였어도 그 속에 1분의 좋지 않은 뜻이 잠재해 있다가 발동해서 사사된 길로 말미암아 못된 것이 자라나게 되면,

이것으로 충만하게 되어 전면(前面)에 선한 뜻은, 모두 없어지게 된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학문은 어두운 방에서도 속이지 아니하는 데서 시작된다." 하였습니다.

○ 유충정공(劉忠定公)이 사마온공(司馬溫公)을 보고 마음을 다하여 스스로를 행하는 요지로서 죽을 때까지 행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물었더니,

온공(溫公)이 말하기를, "성실이다." 하였습니다.

또, 행하는 데는 무엇부터 먼저 하여야 하는가를 물었더니, 공이 말하기를, "망령되이 말하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하라." 하였습니다.

유공(劉公)은 처음에 이것을 매우 쉽게 여겼으나, 물러나와 하루의 행동과 말이 서로 배치되거나 스스로 모순되는 점이 많았습니다.

그 뒤 힘써 7년을 행한 뒤에야 이루어졌는데, 이로부터 비로소 언행(言行)이 일치되었고 표리(表裏)가 서로 맞았으며,

일을 당해도 마음이 평탄하게 가라앉았고, 늘 여유가 있었습니다.

○ 사마온공(司馬溫公)이 일찍이 말하기를, "나는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없으나,

다만 평생에 행한 일이 남에게 말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일 뿐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경(經)에 이르기를, '그 뜻을 성실하게 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 지식을 투철하게 이루어야 한다.' 하였고,

또 '지식이 투철한 데 이르면 뜻이 성실하게 된다.' 하였다.

대개 심체(心體)의 밝은 것이 미진하면, 그 마음의 발하는 바가 능히 그 힘을 실지로 사용할 수 없어서 구차하게 스스로 속이게 되는 것이다.

혹시 이미 밝은 것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여기서 근신하지 않으면 그 밝은 것이 자기 것이 되지 못하여 덕으로 나아가는 터전이 될 수 없다.

그 차서를 가히 문란하게 할 수 없으며, 공을 드리는데 가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 하였습니다.

정성(誠)은 사물의 처음이요 끝이므로, 정성이 없으면 사물도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군자는 정성된 것을 귀하게 여긴다. (중용(中庸))

주자는 말하기를, "'정성이 없으면 사물도 없다.'는 말은 사람의 편에서 말한 것인데, 이 정성이 없으면 이 사물도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가령 보는 데 밝게 하지 않으면 능히 이 사물을 볼 수 없고, 듣는 데 밝게 하지 않으면 능히 이 사물을 들을 수 없으며, 효도를 하되 정성이 없으면 효가 없고,

공경〔弟〕을 하되 정성이 없으면 공경이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은 종류로 미루어 구한다면, 가히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배우는 자는 정성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정성되지 않으면 선(善)해 질 수 없고, 정성되지 않으면 군자가 될 수도 없다.

학문을 닦는데 정성으로 하지 않으면 군자가 될 수도 없다.

학문을 닦는 데 정성으로 하지 않으면 학문이 잡되고, 일을 하는데 정성으로 하지 않으면 일이 실패된다.

자기를 위하여 일하는데 정성으로 하지 않으면, 이는 자기의 마음을 속이거나 스스로 충실을 버리는 것이며,

다른 사람과 사귀는데 정성으로 하지 않으면 이는 자기의 덕을 잃어버리거나 남의 원망을 늘리게 되는 것이다.

이제 작은 도〔小道〕 이단(異端)이라도 또한 반드시 정성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인데, 하물며 군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 있어서랴.

그 때문에 '배우는 자는 정성되지 아니할 수 없다.' 한 것이다. 그렇지만 정성이란 도의 근본을 알아서 정성되게 하는 데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정성은 천도(天道)요, 정성되기를 생각하는 것〔思誠〕은 인도(人道)이다." 하였습니다. (맹자)

주자는 말하기를, "'정성'이란 것은 나에게 있는 이치가 모두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것이므로,

천도(天道)의 본연(本然)이요, '정성되기를 생각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는 이치가 모두 진실하고 거짓이 없고자 하는 것이니,

인도(人道)의 당연(當然)이다." 하였습니다.

○ 묻기를, "하늘에는 본래 진실한 이치가 있으니 사람에게는 마땅히 진실의 공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인은 생각지도 않고, 힘쓰지도 않아도 종용(從容)히 도에 합치되어, 참다운 이치가 행하여지지 않는 것이 없는데,

이것은 성인이 하늘과 일체가 되는 것으로서, 곧 천도(天道)인 것입니다.

성인의 지경에 이르지 못한 이는 반드시 선을 택하여야만 능히 선을 밝힐 수 있고, 반드시 그것을 굳게 지켜야만 능히 이 선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사(人事)의 당연한 것으로서 곧 인도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하니, 주자는 "좋은 말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하늘에는 진실한 이치가 있기 때문에 기화(氣化)가 쉬지 아니하고 유행(流行)하며,

사람에게는 진실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공부가 틈이 없이 밝아지고 넓어지는 것이니, 사람에게 진실한 마음이 없으면 하늘의 이치에 어긋나게 됩니다.

어버이가 있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효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없으면서도 효도하는 자는 드물며,

형이 있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없으면서도 공경하는 자는 적으며,

입으로는 부부(夫婦)가 서로 공경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제가(齊家)의 공효를 거두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장유(長幼)와 붕우(朋友)의 경우도 또한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어진 이를 보면 마당히 좋아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색(色)을 좋아하는 데로 옮아가고,

사악(邪惡)한 자를 보면 마땅히 미워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부하는 것을 사사로이 아껴서 받아주며,

벼슬자리에 있는 자로서 염결(廉潔)과 의리를 말하면서도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염결하거나 의롭지 못하며,

백성들에게 임하는 자로서 백성을 기르고 가르칠 것을 말하면서도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는 기르거나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또 혹시 억지로 인(仁)을 하려 하거나 의(義)에 힘써서 겉으로는 볼 만한 듯하나, 마음 속으로는 인과 의를 즐겨하지 아니합니다.

속이는 것은 오래 가기가 어려워서 처음에는 날카로이 힘쓰는 듯 하나 나중에는 게을리 하는데, 이런 따위는 모두 성실한 마음이 없는 까닭입니다.

한 마음이 성실하지 못하다면 만사가 모두 거짓이므로 어디로 간들 가히 행할 수 있겠으며, 한 마음이 실로 진실하다면,

만사가 모두 진실할 것이니 무엇을 한들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성실이란 성인의 근본이다." 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이점을 유념하시옵소서.

○ 신은 또 살피건대, 뜻을 성실하게 하는 것은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근본입니다.

지금 비록 따로 한 장(章)을 만들어 그 대개를 진술하였습니다마는 성실하게 하는 뜻은 실로 상하의 모든 장에 일관하고 있습니다. 만

일, 뜻이 성실하지 않으면 확립되지 못하고, 이치〔理〕가 성실하지 않으면 궁격(窮格)되지 못하며,

기질(氣質)이, 성실하지 않으면 변화할 수가 없으니, 다른 것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 「예기」 곡례(曲禮)의 원문(原文)은 "이좌리립 무왕참언(離坐離立毋往參焉)"이라 되어 있다.

이(離)는 양(兩)의 뜻인데,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에는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그 옆에 가서 말참견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제6장. 교기질(矯氣質)

 

신이 살피건대, 이미 학문을 성실히 하였다면 반드시 편벽된 기질을 고쳐서, 본연(本然)의 성(性)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그 때문에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학문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기질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기질을 고치는 것이 성실에 다음이 되는 소이입니다.

◆ 기질이 같지 않지만 그것을 교정하는 데 각각 방법이 있다는 데 대한 말씀

강(剛)의 선(善)은 의(義)롭고 곧으며〔直〕, 결단〔斷〕있고, 엄하고 굳세며〔嚴毅〕, 줄기차고 굳은〔幹固〕것이요, 악(惡)은 사납고〔猛〕·좁으며〔隘〕,

강하게 날뛰는〔强梁〕것이며, 유(柔)의 선(善)은 자애롭고〔慈〕, 순(順)하며, 부드러운〔巽〕것이며, 악(惡)은 나약(懦弱)하고 결단이 없는 것이며,

간사하고 아첨하는 〔邪〕것이다. (주자(周子)의 통서(通書). 하동)

주자(周子)는 말하기를, "기품(氣稟)의 강유(剛柔)는 진실로 음양(陰陽)의 크게 나뉘는 것인데, 그 가운데 또 각각 선과 악의 구분이 있다.

악은 실로 바르지 않은 것이어니와 선도 반드시 모두 중(中)을 얻은 것은 아니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목(木)의 기운을 많이 타고나면 굳세고 강한 것이 적고,

금(金)의 기운을 많이 타고나면 자애롭고 상서로운 것이〔慈祥〕적은 것인데, 미루어보면 모두 그렇다." 하였습니다.

오직 중(中)은 성인의 일이다.

주자(周子)는 말하기를, "이것은 성품을 얻음이 올바른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성인이 가르침을 세우는 데 있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그 악을 바꾸게 하고, 스스로 그 증(中)에 이르게 한 뒤 그친다.

주자(周子)는 말하기를, "그 악을 바꾸면, 강유(剛柔)가 모두 선하게 되어,

엄하고 굳세며 자순(慈順)한 덕(德)이 있고 강하게 날뛰거나 나약한 병통이 없게 된다.

그리고 그 중에 이르면, 혹 엄하고 굳세며 혹 자순하게 되기도 함이, 모두 절도에 맞아 지나치거나 못 미치는 잘못이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강하고 사나운 자는 마땅히 그것을 억제하여야 하고, 두려워서 위축된 자는 마당히 그것을 확충시켜 길러야 한다.

옛 사람이 부들부들한 가죽을 차고〔佩韋〕59) 다니거나, 활시위를 차고〔佩弦〕60) 다니면서 스스로를 경계한 것은 바로 이것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굳센 자는 억제하기가 쉽다.

자로(子路: 공자의 제자) 같은 이는 처음에는 비록 성인가지도 업신여겼으나,

그 뒤에 학문을 배우고는 문득 그 굳센 성품을 고쳐 매우 십게 자기를 극복하였다. 그

러나 두려워서 위축된 자는 기(氣)가 본래 유약(柔弱)하기 때문에, 모름지기 힘껏 노력하여야 한다." 하였습니다.

삼덕(三德)이란

첫째는 정직(正直)한 것이요, 둘째는 강경한 수단으로써 다스리는 것〔剛克〕이며, 셋째는 부드러운 수단으로써 다스리는 것 〔柔克〕인데,

평안하고 건전한 〔平康〕자에게는 정직한 것으로 다스리고, 깊이 잠긴〔沈潛〕자에게는 강경한 수단으로서 다스리며,

고명(高明)한 자에게는 부드러운 수단으로써 다스린다. 주서(周書) 홍범(洪範)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침잠(沈潛)한 자는 깊이 잠겨서 중(中)에 미치지 못하는 자요, 고명(高明)한 자는 높고 밝아 중(中)에 지나친 자이다.

평안하고 건전한 자에게는 정직한 것으로써 한다는 것은, 고치고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이요,

깊이 잠긴 자에게는 강한 수단으로써 다스린다는 것은 굳센 것으로써 부드러운 것을 다스린다는 것이요,

고명한 자는 부드러운 수단으로써 다스린다는 것은 부드러운 것으로써 굳센 것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周子)는 말하기를, "극(克)은 다스린다는 뜻이다.

자질(資質)이 침잠한 자는 마땅히 굳센 것으로서 다스려야 하고, 자질이 고명한 자는 마땅히 부드러운 것으로써 다스려야 한다." 하였습니다.

○ 황씨(黃氏)는 말하기를, "학문을 하는 데는 모름지기 그 기질(氣質)에 따라서 그 편벽된 것과 이르지 못한 것을 살피되,

그 가장 절실한 것을 택하여 자기의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비유하면, 약(藥)을 쓰는 거소가 같은 것인데, 옛 사람의 약 방문(方文) 또한 그 대법(大法)만을 말해 놓았을 뿐이며,

병의 증세는 여러 갈래이므로 또한 증세에 대응하여 좋은 약방문을 신중하게 택하여야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성품은 서로 비슷한 것이나, 습관이 서로 먼 것이다." 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주자는 말하기를, "기질의 성〔氣質之性〕은 그 바탕이 아름답거나 악한 것이 같지 않다.

그러나 그 처음으로 말한다면, 모두 심히 서로 거리가 먼 것은 아니다.

다만, 착한 습관을 들이면 착하게 되고, 악한 습관을 들이면 악하게 되어서, 비로소 서로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기질을 바로 잡는 방법이 극기에 있다는 말씀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하여 물었더니,

공자는 말하기를, "자기를 극복하여 예법에 돌이키는 것〔克己復禮〕이 인(仁)을 하는 것이니,

하루 동안 자기를 극복하여 예법에 돌이키면 천하가 인에 귀의할 것이다.

인을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에 말미암은 것이지, 남에게 말미암은 것이겠는가." 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인이란 본심의 온전한 덕〔全德〕이다.

경원보씨(慶源輔氏)는 말하기를, "인·의(義)·예(禮)·지(智)는 모두 마음의 덕이나 인(仁)이 의·예·지를, 포괄하였기 때문에

본심의 온전한 덕이라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극(克)은 이긴다는 뜻이요, 기(己)는 자기 일신의 사욕(私欲)을 말하는 것이며, 복(復)은 돌이킨다는 뜻이다.

예(禮)는 천리(天理)의 예절 규정〔節文〕이요, 인을 하는 것은 그 마음의 덕을 완전히 할 수 있는 소이이다.

대개 마음의 온전한 덕은 하늘의 이치가 아닌 것이 없으나, 또한 인욕(人欲)에 의하여 파괴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인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사욕을 이겨 예법에 돌이켜야 하고,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이 천리에 맞고 본심의 덕이 다시 나에게 온전하게 갖추어지게 된다.

귀(歸)는 귀의(歸依)하여 그 편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또 '하루 동안 극기복례(克己復禮)하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 인(仁)에 편들어 귀의한다'한 것은 그 효과가 매우 빠르고 지극히 크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또한 '인을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에 말미암는 것이요, 다른 사람이 능히 참여할 수 없는 것'이란 것은

그 동기가 나에게 있어서, 어렵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날마다 그것을 극복하되 어렵지 않게 된다면, 사사로운 욕심이 말끔히 다 씻어져서 천리가 유행(流行)하게 되고,

인이 풍부하여 다 쓸 수 없게끔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예가 아닌 것은 곧 사사로운 뜻이다.

이미 이것이 사사로운 뜻이라면 어떻게 인을 얻을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나의 사사로운 것을 다 극복하여 모든 것이 예에 복귀하게 되어야 비로소 인인 것이다." 하였습니다.

○사씨(謝氏)61)는 말하기를, "극기(克己)는 성질이 편벽되어 이기기 어려운 곳으로부터 그것을 이겨나가야 한다." 하였습니다.

(이 말은 사람이 색욕(色欲)이 지나치면 먼저 그 색을 절제하고, 이욕(利欲)이 지나치면 먼저 그 이를 끊어버린 다는 것과 같은 종류이니,

이것이 용맹스럽게 극기(克己)하는 요법(要法)입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자기의 사사로운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는 성질의 편벽된 것이요, 둘째는 귀·눈·입·코〔耳目口鼻〕감각기관의 욕망인 것이며, 셋째는 남과 나 간에 시기하고 이기려는 사욕인 것이다.

이것을 몸소 자세히 인식하여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사사로운 뜻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곧 그것을 이겨야 한다." 하였습니다.

설씨(薛氏)는 말하기를, "사사로운 것은 크고 작은 것을 가릴 것 없이, 그것을 깨달으면 곧 이겨내야 한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예란 자기 스스로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돌이킨다〔復〕고 말한 것은, 나의 사사로운 것을 극복하고 나서야 바야흐로 예에 돌이킨다는 것이 아니다.

저 일푼〔一分〕의 인욕(人欲)을 극복한다면 문득 일푼의 천리가 회복되어 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누가 묻기를, "보통 일에는 이것이 천리이고, 저것은 인욕인 것을 알 수는 있으나,

실제로 행동을 하는 데서는 인욕이 이끌어 가는 대로 따라 가게 되어, 일을 치른 뒤에 도리어 후회하게 되는데, 이는 어떤 까닭입니까." 하였더니,

대답하기를, "이는 곧 자기의 사욕을 극복하는 공부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곳이 극히 중요하니 여기서 수습을 잘 해야만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다.

가령 한 갈래의 큰 길〔大路〕이 있고, 또 한 갈래의 작은 길〔小路〕이 있다면, 분명히 큰 길로 가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작은 길 앞에 자기를 끌어당기는 것이 있어서 자기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작은 길로만 따라가게 되다가

마침내 앞에 우거진 가시덤불을 만나게 되면 도리어 후회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곧 천리와 인욕이 교전(交戰)하는 기미이니, 일을 당하였을 때 곧 그것을 극복하여야 할 것이며,

구차하게 어물어물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안연(顔淵)이, "극기 복례(克己復禮)62)의 조목을 묻고자 합니다." 하니,

공자는 말하기를, "예가 아니면 보지 말 것〔勿〕이요, 예가 아니면 듣지 말 것이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 것이요,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하였고, 안연은, "회(回)가 비록 불민하오나 이 말을 이행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목(目)은 조건(條件)을 말한다. 안연은 선생의 말을 듣고 천리와 인욕의 즈음에 있어서 이미 판연(判然)하게 깨달았다.

그 때문에, 다시 더 의문되는 것이 없이 바로 그 조목을 물은 것이다.

예가 아니라는 것은 나의 사사로운 것을 말하는 것이요, 물(勿)은 금지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인심이 주(主)가 되어서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가는 기틀이 되는 것이다.

사욕을 이기면 행동하는 가운데 예에 맞지 않는 것이 없고, 일상 생활에 있어서 천리가 아닌 것이 없다.

안연은 그 이치를 묵묵히 마음 속에 인식하고, 또 자기의 능력이 사욕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곧바로 그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아서 의심치 않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것은 그 밖으로부터 안으로 들어와서 작용하는 것을 막는 것이요,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말라는 것은 그 안으로부터 밖으로 나아가서 접촉하는 것을 삼가는 것이다.

안팎을 서로서로 닦아 나아가면 인을 하는 공부는 그 힘을 남김없이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성인의 말을 익히 파악하고, 안자(顔子)가 힘쓴 것을 탐구한다면, 그 요점은 다만 <예가 아니면> 그만 둔다거나 그만 두지 않는다는데 있을 따름이다.

이로부터 돌이켜 찾는다면 천리가 되고, 이로부터 흘러 버린다면 인욕이 되며, 이로부터 잘 생각하면 성(聖)이 되고,

이로부터 생각을 하지 않으면 광(狂)이 되는 것인데, 다만 털끝 만한 사이라도 이 같은 차이가 생길 따름이니,

배우는 자가 그 몸가짐을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어떤 이가 묻기를, "마땅히 보아서는 안될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자연히 눈으로 보게 되고,

그 마땅히 들어서는 안될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스스로 귀로 듣게 되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하니,

주자는 말하기를, "예가 아닌 것이 비록 눈을 스친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보는 마음은 있지 않아야 하고

예가 아닌 소리가 비록 귀를 스친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듣는 마음이 있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이 네 가지는 몸의 작용인데, 속에서 나와서 밖으로 응하는 것이니,

밖을 제어하는 것은 중심을 기르는 소이이다.

안연이 이 말을 받들어 실천한 것은 성인의 경지에 나아간 소이이다.

후대에 성인을 배우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명심하고 실천하여 잃지 말아야 한다.

이 때문에, 잠언(箴言)을 지어 스스로를 경계하노라.

시잠(視箴)에 이르기를, '마음은 본래 공허(空虛)한 것이어서 외물에 따라 응접(應接)함이, 그 자취가 없다.

이것을 조종하는 요령이 있는데, 그것은 보는 것을 법칙으로 삼아야 한다.

여러 가지 사욕이 앞을 가리면 가운데 마음이 그 쪽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밖에서 제어하여 마음 속을 편하게 하여야 한다.

자기를 극복하여 예에 돌이키면 오래매 성실할 수 있을 것이다.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눈이란 사람의 밝은 거울이요, 오행(五行)의 정화(精華)가 모인 것으로 마음 가운데 가장 절실한 것이다.

눈이 움직이면 마음이 반드시 따르고 마음이 움직이면 눈이 반드시 그 곳에 쏠린다.

허령(虛靈)한 마음은 온갖 변화와 조화를 이루는데 그것을 단속하고자 한다면 먼저 보는 것부터 올바른 표준을 세워야 한다." 하였습니다.)

청잠(聽箴)에 이르기를 '사람에게는 떳떳한 도리를 지키는 양심이 있는데, 이는 타고난 천성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앎〔知〕이 사물에 유혹되어 변질되어 드디어 그 올바른 것을 잃어버린다.

뛰어난 저 선각자(先覺者)들은 그칠 데를 알아서, 안정하므로 사심(邪心)을 막고 그 성실을 보존하여 예가 아니면 듣지 않는다.'

(앎이 사물에 유혹되어 변해 버린다는 것은 마음이 사물에 유혹되어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의 본체는 본래 바른 것이나 물에 유혹되어 버리기 때문에 드디어 그 바른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언잠(言箴)에 이르기를, '사람의 마음이 감동된 것은 말을 통해 발표된다.

말을 하는데 조급하거나 망령되지 않게 주의한다면, 마음속은 조용해지고 전일해질 것이다.

하물며 말이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추기(樞機)로서, 싸움을 일으키거나 우호(友好)를 맺는 결과를 이 말이 가져온다.

길(吉)하고 흉(凶)하고 영예롭고 욕된 것은 오직 이 말이 불러들이는 것이다.

너무 쉽게 하면 허망한 데 이르고, 번거롭게 하면 지리멸렬(支離滅裂)하게 된다.

내가 함부로 말하면 상대편이 거슬리게 되고, 이쪽에서 어긋난 말을 하면 상대도 어긋난 말로 대꾸한다. 법도가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니,

이 훈사(訓辭)를 공경해야 할 것이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지(支)는 나뭇가지가 몸 곁에서 마구 흩어져 뻗어나간 것과 같은 것이니, 곧 마음을 번거롭게 하는 실수인 것이다." 하였습니다.)

동잠(動箴)에 이르기를, 철인(哲人)은 일의 기미(幾微)를 먼저 알고 생각하는데 성실케 하며,

지사(志士)는 행동을 가다듬어 일하는데 도리를 지키는 것이니, 이(理)에 순종하면 마음이 너그럽지만, 사욕으로 행동하면 위태롭다.

잠시라도 도리를 생각하고, 늘 조심하거나 경계하면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그리하여 그렇게 조심하는 오랜 습관이 성품으로 굳어지면, 성현(聖賢)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사려(思慮)란 행동의 기미가 움트는 것이요, 행위는 행동의 현저한 것이며,

사려는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요, 행위는 밖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오랜 습관이 성품으로 된다는 것은 습관을 오래 쌓아 그것이 성공하면 마치 천성(天性)에서 우러나오는 것과 같은 것을 이르는 것이니,

이른바 소성(少成)이 천성과 같고 습관이 자연(自然)과 같다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성일나 애당초에 품수(稟受)하고 태어난 기질의 성〔氣質之性〕을 말하는 것이지, 본연의 성〔本然之性〕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 장(章)의 문답은 곧 심법(心法)을 전수(傳授)하는 절실한 말이므로 지극히 밝지 아니하고는 그 기미를 살필 수가 없으며,

지극히 굳세지 아니하고는 그 결단에 이를 수가 없다.

정자(程子)의 잠(箴)은 발휘하여 설명한 것이 친절하니, 학자들은 더욱 깊이 음미하여야 한다." 하였습니다.

(극기(克己)는 몸의 절실한 공부요, 기질(氣質)은 변화시키는 요법이기 때문에 정주(程朱)의 말이 이와 같습니다.)

역(易)에 이르기를, "산(山) 아래에 못〔澤〕이 있으면 손괘(損卦)63)가 된다.

이 때문에 군자는 분(忿)을 눌러 가라앉히고 욕심을 억제한다." 하였습니다. (손괘(損卦) 상전(象傳))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몸을 수양하는 도리에서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은 오직 분노〔忿〕와 욕심〔慾〕이다.

그러므로 그 분노를 눌러 가라앉히고, 그 욕심을 막아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사람의 정(情) 가운데 발하기는 쉬어도 제어하기가 어려운 것은 오직 노(怒)하는 것이 심하다.

다만 노하였을 때, 문득 그 노여움을 가라앉히고 도리의 옳고 그른 것을 볼 줄 알게 된다면 또한 바깥 유혹을 족히 미워할 것이 못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도리도 중간 정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분노는 다스리기 어렵고, 두려움도 또한 다스리기 어려운데,

다만 극기(克己)만이 분노를 다스릴 수 있고. 이(理)를 밝히는 것만이 두려움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논어」에, 정()64)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니 어찌 굳세다 할 수 있겠는가." 하였으니 심하구나. 욕심이 사람을 해침이여.

사람이 불선(不善)을 행하는 것은 욕심이 유혹하는 까닭이다.

유혹을 당하고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면 천리(天理)를 없애버리고 되돌아올 줄 모르는데 이른다.

그러므로 눈은 아름다운 색(色)을 욕심내고, 귀는 좋은 소리〔聲〕를 욕심내며, 코는 향기를, 입은 맛을,

사지(四肢)는 편안한 것을 욕심내는 데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모두 욕심이 그렇게 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그 욕심을 막아버릴 수 있겠는가,

사려(思慮)만이 <막을 수> 있을 뿐이다.

오직 사려를 통해서만이 능히 욕심을 막아낼 수 있는데, 증자(曾子)65)의 일일삼성(一日三省)66)은 욕심을 막는 방법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산의 상(象)을 보고 분노를 가라앉히고, 못〔澤〕의 상을 보고 욕심을 막아낸다.

그러므로 욕심을 막기를 구렁〔壑〕을 메우듯하고, 분을 가라앉히기를 산을 꺾〔〕듯한다." 하였습니다.

자기의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분노와 욕심입니다. 그러므로 표출(表出)하였습니다.

◆ 다음은 기질을 바로 잡는 공부가 면강(勉强)에 있다는 말씀

○널리 배우고, 살펴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고, 명석하게 분변하며, 독실하게 행해야 할 것이다. 「중용」하동

정자는 말하기를, "이 다섯 가지에서 한 가지라도 폐(廢)하면 학문이 아니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학문이란 곧 기질을 능히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데,

만일 책을 읽어 궁리하거나 공경을 주장하여 본심을 보존하지는 않고,

한갓 어제의 잘못과 오늘의 바른 것〔昨非今是〕을 헤아려 비교하는 데만 간절하다면,

아마 또한 공연히 수고롭기만 하고, 아무 도움이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배우지 않으려면 몰라도 배울 바에는 능숙해 지지 않고서는 그만 두지 않아야 하고,

묻지 않으려면 몰라도 물을 바에는 알지 않고서는 그만 두지 않아야 하며,

생각하지 않으려면 몰라도 생각할 바에는 터득하지 않고서는 그만 두지 않아야 하고,

분변하지 않으려면 몰라도 분변할 바에는 분명해지지 않고서는 그만 두지 않아야 하며,

행동하지 않으려면 몰라도 행동할 바에는 독실해지지 않고서는 그만 두지 않아야 하는데,

남이 하나에 능(能)하다면 나는 백에 능해야 하고 남이 열에 능하다면 나는 천에 능해야 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군자의 학문은 하지 않는다면 그만이지만, 할 바에는 반드시 이루려고 한다.

그러므로 늘 남의 백 배의 공을 들인다." 하였습니다.

○동씨(董氏)는 말하기를, "학문에 힘쓰면 문견(聞見)이 넓어지고, 지식은 더욱 밝아지며,

도를 행하는 데 힘쓰면 덕(德)이 날로 일어나 큰 공효가 있게 된다.

증자(曾子)는, '그 듣는 바를 존중하면 고명(高明)하게 되고, 그 아는 바를 행하면 광대(光大)하게 된다.'하였는데,

고명해지고 광대해 지는 것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뜻을 기울이는데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과연 이 도(道)를 능히 행한다면 비록 우매한 자라도 반드시 명석하게 될 것이요, 비록 유약한 자라 하더라도 반드시 강하게 될 것이다.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군자가 학문을 하는 까닭은 기질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덕(德)이 기질(氣質)을 눌러 이기면 우매한 자도 가히 명석해 질 수 있고, 유약한 자도 가히 강해 질 수가 있을 것이나,

덕이 기질을 이기지 못하면, 비록 학문에 뜻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또한 우매한 자는 명석해 질 수가 없고, 유약한 자는 능히 자립할 수가 없다.

대저 고루 선하여 악함이 없는 것을 본성으로서 사람마다 같은 것이요,

어둡고·밝고·강하고·약하여 기품이 고르지 못한 것은 재주〔才〕로서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성실하면 그 같은 것으로 돌이켜서, 다른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대저 아름잡지 못한 기질로서 그것을 변화시켜 아름답기를 구하는 데는 그 공을 백 배 하지 아니하고서는 구하는 결과를 이루기가 힘든다.

이제 노무멸렬(鹵莽滅裂)한 학문으로서 (노무(鹵莽)는 마음을 집중시켜 쓰지 않는 것이요, 멸렬(滅裂)은 공부를 경박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혹은 하다가 혹은 말다가 하면서 그 우수하지 못한 기질을 변화시키려다가 변화할 수없게 되면

곧 말하기를, '천부의 기질이 우수하지 못하므로 배운다고 해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하는 것은

스스로 포기〔自棄〕하는 결과로 나아가는 것인데, 그 인(仁)하지 못한 것이 심하다." 하였습니다.

○오씨(吳氏)는 말하기를, "학문이 기질을 족히 변화시킬 수 없다면 무엇 때문에 학문을 하겠는가.

세상에는 실로 자기의 뜻대로 하여 공을 세우고 업을 이루는 자도 있으나, 또한 자기의 정(情)이 이끄는 대로 절제 없이 따라가다,

나라를 패망케 하고 백성들을 죽게 하는 자도 있다.

그런 사람은 혹시 굳세고 유약하며, 혹시 선(善)하고 혹시 악(惡)한 것을 그 기질의 여하에 그대로 내어 맡겨,

다시 그것을 바로 잡거나 이겨내어 아름다운 것을 이룩하지 못하는 위인인 것이다.

배우는 자는 이와 같지 않다. 혼미한 것이 가히 명석하게 변화될 수 있고, 약한 것도 가히 강하게 변화될 수 있으며.

탐욕하는 것도 가히 청렴하게 변화될 수 있고, 악독한 것도 가히 자애로운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니, 배우는 공효가 큰 것이다.

대저 기질이 아름답지 못한 자도 모두 가히 변화시켜서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것인데, 하물며 태어나면서부터 아름다운 자에 있어서랴."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전자에 여백공(呂伯恭)을 만났는데, 그가 '젊었을 적에는 성품과 기질이 거칠고 사나와서 음식이 마땅치 않아도

문득 (가사(家事) 가사는 그릇을 말합니다.) 를 때려 부셨는데, 후일 오랜 병을 앓을 때 다만 논어(論語) 한 책을 가지고 아침저녁으로 읽다가

'궁자후 이박책어인(躬自厚 而薄責於人)67)'이라는 대목에 이르러 홀연히 깨달은 바 있어서,

의사(意思)가 일시에 평안해져 드디어는 종신토록 사납게 노하는 법이 없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가히 기질을 변화시키는 법이 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일기(一氣)의 근원은 담연(湛然 : 맑은 모양)히 청허(淸虛)한데 오직 그 양(陽)이 동(動)하고 음(陰)이 정(靜)하며 혹시 상승하기도 하고,

혹시 하강하기도 하다가,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사이에 합하여 질(質)을 이루어서, 드디어 고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物)의 편색(偏塞)된 것은 다시 이것을 변화시킬 방법이 없으나,

오직 사람은 비록 청탁(淸濁)과 수박(粹駁 : 순수와 박잡)의 같지 않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마음이 허명(虛明)하여 가히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맹자(孟子)는, "사람마다 모두 요순(堯舜)이 될 수 있다." 하였는데, 이것이 어찌 허언(虛言)이겠습니까.

기(氣)가 맑고 질(質)이 순수한 사람은 지(知)와 행(行)을 힘쓰지 않고도 능하게 되어 더할 것이 없으며,

기가 맑고 질이 박잡한 사람은 알 수는 있어도 능히 행할 수는 없는 것인데,

만일 궁행(躬行)에 힘써서 반드시 성실하고 반드시 독실하면, 행실이 가히 이루어지고 유약한 사람이라도 강하게 될 수 있으며,

질이 순수하고 기가 탁한 사람은 능히 행동할 수는 있으나 잘 알 수는 없는 것인데,

만일 묻고 배우는 데 힘써서, 반드시 성실하고 반드시 정밀하게 하면 지식을 통달할 수 있으며 우매한 자라도 명석하여질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기예(技藝)는 어디 나면서부터 지식을 얻어 가지고 나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시험삼아 음악을 배우는 한 가지 일을 가지고 말하겠습니다.

동남(童男)이나 치녀(穉女: 어린 계집아이)가 처음에 거문고와 비파를 배워 손가락을 놀리어

처음으로 소리를 낼 때는 듣는 사람이 귀를 가리고 듣지 않으려 할 것이지마는, 노력을 쉬지 않고 쏟으면 점점 그 아름다운 음률을 이루며

그 지극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그 소리는 청화(淸和)하고 원활한 흐름을 이루어 정묘한 것을 말로서는 다 표현할 수 없게 될수 있습니다.

저 동남이나 치녀가 어찌 음악을 나면서부터 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직 실지로 그 공력을 다하여 학습이 쌓여서 그와 같이 익숙하여졌을 뿐이요, 온갖 기예가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 백공(百工)의 기예가 세상에서 절묘(絶妙)한 자는 있으나 학문을 하는 이는 그 기질을 변하시킨 자는 볼 수 없고,

다만 그 지식의 광박(廣博)한 것이나 언론이 풍부한 것만을 힘입으려 할 뿐입니다.

그리하여 굳센 자는 마침내 유선(柔善)하여 질 수 없고, 부드러운 자는 마침내 굳세어 질 수 없으며,

탐욕한 자가 청렴하여 지는 것을 볼 수 없고, 불인한 자가 자애로워지는 것을 볼 수 없으며 경박한 자가 침중(沈重)하여지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실공(實功)은 다만 백공의 기예에만 있을 뿐이요, 학문에는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이겠습니까? 바라옵건대, 밝게 유념하시옵소서.

 

< 주 >

59) 성질이 급한 것을 늦추는 것을 말한다.

위(韋)는 부들부들하게 다룬 가죽으로 이것을 지니면서 자기의 성급한 성질을 고치려 하였다는 서문표(西門豹)의 이야기가 있다.

〔西門豹之性急 故佩韋以自緩〕≪韓非子, 觀行篇≫

60) 마음의 해이한 것을 고치는 것을 말한다.

현(弦)은 활시위로서 긴장(緊張)을 뜻하며 이것을 몸에 차고 다니면서 느리 마음을 고치려고 했다는 동안우(董安于)의 고사가 있다.

〔董安于性緩 故佩弦以自急〕≪韓非子 觀行篇≫

61) 이름은 양좌(良佐), 자(字)는 현도(顯道)이다. 송(宋)의 상채(上蔡) 사람이므로 흔히 사상채(謝上蔡)라고 부른다.

62) 자신을 극복하여 천리의 질서에 합한다는 뜻.

63) 「주역」64괘 가운데 41번째 괘이름.

64) 공자의 제자. 성(姓)은 신(申), 노(魯)나라 사람. 공자는 신정을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굳셀 수 없다.'고 평한 일이 있다.

〔桭也慾 焉得剛〕《論語公冶長》

65) 공자의 수제자의 한 사람으로 도덕에 가장 뛰어났다고 전하며 효경(孝經)을 지었다고 한다. 이름은 삼(參)이다.

66) 증자가 날마다 충(忠)·신(信)·습(習) 세가지 점에 대하여 자기 반성을 한 것을 말한다.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論語學而》

67) 공자의 말씀으로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무겁게 돌리고 다른 사람을 책하는데 있어서는 가볍게 한다는 뜻이다.

〔躬自厚而薄責於人 則遠怨〕《論語 衛靈公》

 


제7장. 양 기(養氣)

 

신이 살피건대, 기질(氣質)을 고쳐 다스리는 것을 마땅히 극진히(克盡)하여야 하나, 기를 보양(保養)하는 것도 치밀하지 않아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대개 정기(正氣)를 보양하는 것은 곧 객기(客氣)를 고쳐 다스리는 일로서, 고쳐 다스리고 보양하는 것은

실로 두 가지 일이 아니지만 그 말에 있어 각각 주장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나누어 두 장(章)을 설정하였습니다.

◆ 오로지 지기(志氣)를 기르는 것에 대한 말씀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본심을 기르는 데는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그 사람됨에 있어서 욕심이 적으면 본심을 보존하지 못하는 일이 비록 있더라도 그것이 적을 것이요,

그 사람됨에 있어서, 욕심이 많으면 비록 본심을 보존하는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적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욕심이란 귀〔耳〕·눈〔目〕·입〔口〕·코〔鼻〕나 사지(四肢)의 욕심과 같은 것이다.

사람에게는 비록 이것이 없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욕심이 많아서 절제하지 않는다면

그 본심을 잃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배우는 이는 마땅히 깊이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욕심을 부리는 것이 반드시 탐익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다만 하고자 하는 마음의 향하는 것만 있어도 그것은 곧 욕심인 것이다." 하였습니다.

○악기(樂記)68)에 이르기를, "군자는 그 도를 즐기고 소인은 그 욕심을 즐긴다.

도로서 욕심을 제어하면 즐거우며 어지럽지 아니하고 욕심 때문에 도를 잊으면 탐익에 혹(惑)하여 즐겁지 않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천리(天理)에 어두운 것은 다만 기욕(嗜欲)이 그것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장자(莊子)는, '그 기욕이 깊은 자는 천기(天機)가 얕다.'하였는데, 이 말이 가장 옳다." 하였습니다.

○오자지가(五子之歌 :서경(書經)·하서(夏書)의 편명)에 이르기를, "안으로 여색(女色)에 미치거나 밖으로 사냥하고 노는 데 미치거나, 술

을 좋아하고 소리를 즐기거나, 높은 집 화려한 담 등 이러한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망하지 아니하는 자가 없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무릇 모든 완호(玩好)는 모두 사람의 올바른 뜻을 빼앗는다. 글씨와 편지〔書札〕는 유자(儒者)의 일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이 일만을 좋아하여 집착하면 역시 뜻을 잃어버린다.

가령 왕(王: 왕희지王羲之)·우(虞: 우세남(虞世南)·안(顔:안진경顔眞卿)·유(柳: 유공권柳公權)와 같은 무리들은 진실로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있으나,

일찍이 글씨 잘 쓰는 사람으로서 도를 아는 사람을 본 일이 있는가,

평생의 정력을 오로지 이 글씨 쓰는 데만 쏟았으니, 이는 오직 한갓 시일만 헛되이 보내었을 뿐 아니라,

도에는 방해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족히 뜻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윗 장(章)에서는 극기(克己)를 말하였기 때문에 질욕(窒慾)이라 하였고,

이 장에서는 양심(養心)을 말하였기 때문에 과욕(寡欲)이라 한 것입니다.

질욕이라 할 때의 욕(慾)은 오로지 사욕(私欲)을 가리켜 말한 것이나, 과욕이라 할 때의 욕은 평범하게 마음의 하고자 하는 바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다만 욕심을 많이 내어 절제하지 아니하면 그것이 곧 사욕인 것입니다.

우산(牛山)의 나무들은 일찍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큰 나라 가까운 교외에 있음으로 해서 도끼로 남벌하고 말았으니,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밤낮으로 자라고 우로(雨露)의 혜택을 입어 싹이 돋아나지 않은 것은 아니로되, 거기에다 또 우양(牛羊)을 몰고 가서 마구 먹었기 때문에,

저와 같이 벌거숭이산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벌거숭이 같은 산을 보고는 그곳에는 본래 나무가 없었다고 하니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밤낮으로 자란다는 것은 기화(氣化)가 유행(流行)하여 일찍이 쉼이 없기 때문에 밤낮으로 만물이 모두 생장하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사람의 본성인들 어찌 인(仁)과 의(義)의 마음이 없겠는가.

그러나 사람이 양심을 잃어버리는 일은 또한 도끼로 나무를 날마다 찍어내는 것과 같은데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밤낮으로 양심이 자라면, 날이 샐 때는 청명(淸明)한 기(氣)가 감도는 데도, 좋아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사람의 양심과 가까운 것이 거의 적은데

낮에 저지르는 소행이 양심을 속박〔梏〕하며 기능을 잃게 한다.

이런 양심의 속박이 반복(反覆)되면 밤중에 자라나는 청명한 기〔夜氣〕가 보존되지 못하고,

야기가 보존되지 못하면 금수(禽獸)와 다를 것이 없게 된다.

사람들이 그 금수와 같은 자를 보고서 그 사람은 본래 재질〔才質〕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이 어찌 사람의 본 성정(性情)이겠는가.

그러므로 진실로 보양(保養)을 잘하면 생장하지 않는 것이 없고, 진실로 보양을 잘못하면 소멸되지 않는 것이 없다.

주자는 말하기를, "양심이란 인간 본래의 착한 마음인데, 곧 인의(仁義)의 마음이다.

평조(平旦)의 기(氣)란 외물과 아직 접촉하기 전의 청명한 기이다.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 비슷하다는 것은 인심(人心)의 모두가 함께 그런 것을 얻음을 말한다.

곡(梏)은 속박하는 수갑이요, 반복(反覆)은 전전(展轉)한다는 뜻이다.

그 말하는 뜻은, 사람의 양심을 이미 잃었다고 하나, 그래도 밤낮으로 반드시 생장하는 것이므로

날샐 즈음인 외물과 접촉하기 이전의 기가 청명할 때에는 그래도 양심이 발견되는 것이 있다.

다만 그 발견되는 양심이 지극히 미약한 데다 낮에 착하지 못한 소행이 뒤따라, 그 양심을 속박하여 소멸시키므로,

이는 마치 산의 나무를 베어버려도 싹이 돋아나기는 하나 그것마저도 우양(牛羊)을 방목하여 없애버리는 것과 같다.

낮의 행동이 이미 그 밤사이에 생장한 기를 해치고, 밤사이에 생장한 양심이 또한 낮의 소행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서로를 해치고, 이렇게 해서 야기(夜氣)의 생장은 날로 엷어져 그 인의(仁義) 양심을 보존할 수 없는데

이르면 아침의 기도 또한 능히 맑아질수 없게 되어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인심의 공통된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산의 나무와 사람의 마음〔人心〕이 그 이치는 한 가지이다." 하였습니다.

나는 나의 호연(浩然)한 기(氣)를 잘 기른다.

그 기는 지극히 크고 굳세어, 이것을 바른 도리로서 길러 해치지 않으면 천지 사이에 가득차게 된다.

주자는 말하기를, "호연(浩然)이란 성대하게 유행하는 모양이요, 지극히 크다는 것은 처음부터 한량이 없다는 것이요,

지극히 굳세다는 것은 굴복하거나 꺾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개 천지의 정기(正氣)인데 사람이 타고 나온 것이, 그 본체가 본래 이런 것이다.

오직 스스로 반성하여 곧으면 그 기르는 바를 얻을 수 있고,

게다가 또 행동이 그것을 해치지 않으면 본체가 이지러지지 않고 천지간에 가득히 찰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 기(氣)는 의(義)와 도(道)에 배합〔配〕되는 것으로서, 이것이 없으면 도의가 위축하여 버린다.

주자는 말하기를, "배(配)는 합하여 도움이 된다는 뜻이요, 의(義)란 사람 마음의 제제(裁制)하는 것이며, 도(道)란 천리(天理)의 스스로 그러한〔自然〕것이다.

뇌()란 주리고 결핍하여 기(氣)가 본체에 충만하지 못한 것인데, 그 말한 뜻은, 사람이 능히 그 기를 기를 수 있으면,

그 기가 도의에 배합하여 그것을 행하는 데 도움이 되어 그 행동하는 데 있어서 용기 있게 결단을 내려, 회의하고 꺼리는 바가 없도록 하며,

만일 이 기가 없으면 일시의 행동은 비록 도의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본체에 충만하지 않으면 또한 회의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면치못하고, 행동하는 데 부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의(義)를 모아서 생기는 것이지 의로 밖에서 엄습해〔襲〕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행동하여 양심에 만족하지 않으면 기는 위축되고 만다.

주자는 말하기를, "의(義)를 모은다는 것은 선을 쌓는 다는 말과 같은데, 대개 일마다 모두 의에 합당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습(襲)은 엄습하여 취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기(氣)가 비록 도의에 배합된다 하더라도 그 기를 기르는 것을 시작할 때에는 곧 일마다 모두 의에 합당하게 되어 스스로 반성하여 늘 곧으면,

그로서 부끄러울 바가 없는데 따라서 이 기가 자연히 그 가운데서 발생한다는 것이며,

다만 한 가지의 일을 행하는 데 우연히 도의에 합당한다 해서 문득 밖에서 엄습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행동하는 바가 하나라도 의에 합당치 않은 것이 있고, 스스로 반성하여 곧지 못하면 마음에 부족하게 되고, 그 체가 불충분하게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그 뜻을 견지하고 그 기가 방종하지 않으면 안팎으로 서로 길러진다." 하였습니다.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그 뜻을 견지한다는 것은 마음 속에 굳게 지키는 바가 있는 것이요,

그 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밖의 유혹에 의하여 방종하게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지키는 바가 있으면 기가 스스로 완전하고, 밖의 유혹에 의하여 방종되지 않으면

뜻이 더욱 굳어지는 까닭에 서로 길러진다고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아울러 혈기를 기르는 것에 대한 말씀

○공자는 말하기를, "군자에게는 세 가지의 경계가 있는데, 젊었을 때에는 혈기(血氣)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색(色)을 경계하고,

장년이 되어서는 혈기가 바야흐로 굳건하니 싸움을 경계하며,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쇠약하여 졌으니, 탐득(貪得)을 경계한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혈기는 형체가 그것을 기다려 생기는 것인데, 혈(血)은 음이요, 기(氣)는 양이다.

득(得)은 탐득(貪得)이다. 때를 따라 경계할 줄 알아서 이치로써 그것을 이겨내면 혈기의 사역(事役) 당하는 바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그 뜻과 기를 기르는 까닭으로, 혈기를 움직이는 바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이가 더욱 높아질수록 덕도 더욱 높아진다." 하였습니다.

역(易)에, "언어를 조심하고 음식을 절제하라." 하였습니다. (이괘(卦)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말을 조심하여 그 덕을 기르고, 음식을 절제하여 그 몸을 기른다.

일이 지극히 가까이 있으면서 그 관계된 바가 지극히 큰 것으로는 말과 음식만한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진원(眞元)의 기는 외기(外氣)와 서로 섞이는 것이 아니요, 다만 외기로서 함양할 따름이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 속에 있는데 물고기의 생명이 곧 물이 아니라, 다만 물로서 함양하여야 고기가 살 수 있는 것과 같다.

사람이 천지의 기 가운데 있는 것이 고기가 물 속에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음식의 보양도 모두 이 외기로서 함양하는 도리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동식(動息)·절선(節宣 : 철을 따라 몸을 조심하는 것)은 양생(養生)하는 것이요, 음식·의복은 양형(養形)하는 것이며, 위

의(威儀)·행의(行義)는 양덕(養德)하는 것이요, 나를 미루어 다른 물(物)에 미치는 것은 사람을 기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형서(邢恕)는 말하기를, "우리는 항상 정력(精力)을 아끼고 길러야만 된다.

정력이 조금만 부족하여도 권태로워 져서 일에 임하여 억지로 하게 되고 정성스러운 뜻이 없어진다.

<이러한 예는> 손님을 접대하고 말을 하는 데에서도 가히 볼 수 있는 데, 하물며 큰 일에 임하여서이겠는가." 하였습니다.

공자가 삼가한 것은 재계(齋戒)하는 것과 전쟁하는 것과 질병이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재(齋)의 말 뜻은 바르게 한다는 것인데,

제사 지내기에 앞서 그 생각 가운데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하여 신명(神明)과 교접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성이 지극한가 지극하지 못한가. 신이 제사를 흠향하는 안 하는가는 모두 여기에 달려 있다.

전쟁은 중민(衆民)의 사생(死生)과 나라의 존망(存亡)이 걸려 있는 것이요,

질병은 또한 나의 몸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죽고 살거나, 존재하고 멸망하게 되는 것이니,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병중에는 생각〔思慮〕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일을 제쳐 놓고 오로지 본심을 보존하고 기를 기르는 것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장사숙(張思叔)에게 말하기를, "나는 기를 매우 약하게 타고났었는데, 30세에 차차 성해지고, 40·50에 이르러서는 완전하여 졌으며,

지금은 나이 72세인데 근골(筋骨)이 젊은 나이에 비하여 손색이 없다." 하였습니다.

사숙(思叔)이 청하여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어떻게 해서 기를 받은 것이 약했는데 잘 보생(保生)을 하셨습니까." 하니,

정자는 묵연(默然)히 말하기를, "나는 생을 잊고, 욕심을 따르는 것을 깊은 수치로 여겨왔다." 하였습니다.

(장남헌(張南軒)은 말하기를, "다른 사람의 양생(養生)은 강강(康强)을 요구하는 것이니,

이는 다만 이익을 추구하는데 지나지 않으나, '이천(伊川)이 말한 것은 순전히 천리(天理)이라" 하였습니다.

또 정자가 부주(州)에서 돌아와서도 용모나 기색이나 수염이 모두 그전보다 나아졌기 때문에, 문인이 묻기를,

"어떻게하여 이와 같이 건강하실 수 있습니까." 하였더니, 말하기를, "학문의 힘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인의(仁義)의 마음은 사람마다 같이 받았으나 자품(資稟)이 트인 것〔開〕과 가리운 것〔蔽〕이 있으며,

진원(眞元)의 기는 사람마다 같이 가지고 있으나 혈기에 허(虛)와 실(實)이 있습니다.

인의의 마음을 잘 기르면 가린 것이 열릴 수 있어서 그 천부의 본심을 온전히 할수 있게 되고,

진원의 기를 잘 기르면 허가 실이 될 수 있어서 그 하늘로부터 받은 명을 보존할 수 있게 됩니다.

그 기르는 방법도 또한 밖에서 타물(他物)에 가탁(假託)하는 것이 아니요, 다만 흔들리거나 손상되지 않게 할 따름입니다.

천지의 기화(氣化)는 생생무궁(生生無窮)하여 잠간 동안이라도 정지하지 않는데, 사람의 기는 천지와 서로 상통하므로,

양심과 진기(眞氣)도 천지의 기와 함께 생장합니다.

다만 그것이 상(傷)하고 해(害)되는 것은 여러 갈래이어서 생장이 소멸하는 것을 능히 이겨내지 못하여, 계속 질곡되어 없어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마음은 금수(禽獸)가 되고, 기(氣)는 일찍 시들어버리게 되는 것이니, 가히 두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양심을 해치는 것은 귀·눈·입·코와 시지(四肢)의 욕망이고, 진기를 해치는 것도 또한 이 욕망 아닌것이 없습니다.

대개 귀와 눈이 성색(聲色)을 좋아하는 것은 진실로 마음에 해로운 것이지만, 음난한 소리와 아름다운 색은 뼈와 살을 결단내는 도기와 톱이요,

입과 몸으로 즐기고 좋아하는 것은 진실로 마음에 해로운 것이지만, 입을 상쾌하게 하는 맛은 반드시 오장(五臟)을 상하게 하고,

한가하고 안일한 것은 근육과 맥(脈)을 해이하게 하여, 드디어 행동과 휴식을 올바른 도리에서 어긋나게 합니다.

희(喜)·노(怒)는 그 중용의 도리를 잃어버려, 마음은 날로 방자해지고, 기는 날로 방탕하게 되어,

마침내는 일기(一氣)의 관통(貫通)이 끊어지고, 백해(百骸)의 유대가 풀어지게 되는 것이니,

장차 어떻게 입명(立命)하며 세상에 길이 살아갈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마음을 기르는 것과 기를 기르는 것은 실로 한 가지 일이므로,

양심이 날로 생장하면서 상하고, 해되는 것이 없어서 마침내 그 가려진 것을 모조리 다 없애버리게 되면 호연(浩然)의 기가 성대하게 흐르고 통하여,

장차 천지와 함께 동체(同體)가 될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과 길고 짧은 것은 비록 정하여진 수〔定數〕가 있다 하더라도, 나에게 있는 도리는 다한 것이니 어찌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겠습니까?

바라옵건대 유념하시옵소서.

 

< 주 >

68) 음악에 관한 기록으로 예기(禮記)속에 있는 편명(篇名)이다.

 

 

 

제8장. 정 심(正心)

 

신이 살피건대, 윗 두 장(章)의 공부는 정심(正心) 아닌 것이 없으나, 각각 주장하는 바가 있으므로,

따로 정심을 주로 한 선현의 말씀〔前訓〕을 편집하여 함양과 성찰의 뜻을 상세히 논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경(敬)은 성문(聖門)의 제일의(第一義)이므로 철두철미하게 하여야지 간단(間斷)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글의 대요는 경(敬)을 주로 삼았습니다. (제 3 장의 수렴(收斂)은 경의 처음이요, 이 장은 경의 끝입니다.)

◆ 함양(涵養)에 대한 말씀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그 마음을 간직하여〔存〕그 성(性)을 기르는〔養〕것은 하늘을 섬기〔事〕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맹자)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존(存)은 잡고 놓지 않는 것을 말한 것이요, 기른다〔養〕는 것은 순하여 해(害)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며,

섬긴다〔事〕는 것은 봉승(奉承)하여 어기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심성(心性)은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인데, 존양(存養)하지 못하여 이를 잃어버린다면, 하늘을 섬기는 소이가 아니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사람에게는 다만 하나의 천리(天理)가 있는 것인데, 만일 보존하여 얻지 못한다면 다시 무슨 사람이 되겠느냐."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만약 존양(存養)할 수 없다면 다만 말뿐인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맹자(孟子)의 이른바 존양은 동(動)과 정(靜)을 통관하여 말한 것으로서, 즉 성의와 정심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선현들이 정(靜)한 때의 공부를 논할 적에는 흔히 존양과 함양을 말하였으므로, 그 절요(切要)한말을 가려내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함양하면 곧 청명(淸明)하고 고원(高遠)한 데에 도달한다."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희(喜)·노(怒)·애(愛)·락(樂)을 하기 전에 동(動)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까, 정(靜)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정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정한 가운데 목적하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니, 여기가 바로 어려운 곳이다.

배우는 사람은 먼저 공경을 이해하는 것만 같지 못한 것인데, 능히 공경하면 스스로 이를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정좌(靜坐)할 때에 물(物)이 앞을 지나가면 보입니까, 안보입니까." 하니, 답하기를, "일이 어떠한가를 보아야 한다.

만약 큰 일이라면, 가령 제사(祭祀)때와 같이 구슬〔旒〕로 눈 앞을 가리우고, 솜〔〕으로 귀〔耳〕를 막았다면,

모든 물이 앞을 지나가도 보이지 아니하고 들리지 아니할 것이요. 만약 일이 없을 때라면, 눈으로 보고, 귀로는 들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소병(蘇昞)이 "희·노·애·락이 발현하기 전에 중(中)을 구하면 됩니까." 물으니, 대답하기를, "옳지 않다.

이미 희·노·애·락이 미발(未發)하기 전에 구한다고 하면, 바로 이는 생각한 것이니, 이미 생각한 것은 바로 이발(已發)이다.

이미 발하였으면 화(和)라 이르며, 중(中)이라 이르지 못한다. 희·노·애·락이 미발할 때에 존양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으나,

만약 희·노·애·락이 이발하기 전에 중을 구한다는 말은 옳지 않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정자(程子)의 '조금이라도 생각했다〔才思〕하면

곧 이미 발한 것〔已發〕이라'고 한 일구(一句)는 자사(子思)가 말한 이외의 뜻을 발명한 것이다.

이는 대개 희·노·애·락의 발현을 기다림이 없어도, 다만 생각하는 바가 있으면, 이것은 이발인 것임을 말한 것이다.

이 뜻은 정미(精微)하여 미발의 경계에 대해 충분히 다하였으니, 여기서 더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보지도 않고 듣지고 않을 때가 바로 희·노·애·락의 미발처이니,

항상 이 마음을 제기(提起)하여 여기서 미연에 방지하여야 한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계신(戒愼)·공구(恐懼)는 너무 중하게 여길 것은 없고,

다만 이를 수습(收拾)하여 나가면 곧 여기에 있는 것인데, 이것은 이천(伊川)의 이른바 공경이다." 하였습니다.

○서산 진씨(西山眞氏)는 말하기를, "계신·공구는 다만 사물이 형성되지 않았을 때에, 항상 지경(持敬)으로 혼매(昏昧)케 하지 않을 따름이다.

생각이 형성되지 않아서 지각(知覺)이 몽매(蒙昧)하지 않으면, 성(性)의 체(體)는 스스로 가릴 수 없는 것이니,

정자(程子)의 이른바 '정(靜)한 가운데에 물(物)이 있다'는 것을 배우는 사람들이 깊이 음미하여 실천해 보면,

마땅히 스스로 볼수 있을 것이며, 오로지 말로써만 구해서는 안된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미발할 때에는 마음이 적연(寂然)하여 진실로 털끝만한 생각도 없지마는,

다만 적연한 가운데서도 지각이 불매(不昧)하여, 마치 충막무짐(沖漠無朕) 하지마는, 만상(萬象)이 삼연(森然)하게 이미 갖추어져 있음과 같습니다.

이 경지는 극히 이해하기 어렵지마는, 이 마음을 공경으로 지키어 함양이 오래 쌓이면, 스스로 마땅히 힘을 얻게 됩니다.

이른바 '공경으로 함양한다'는 것은, 다른 방법이 아니라 다만 정적(靜寂)하여 염려가 생기지 않게 하고 성성(惺惺)하여

조금도 혼매(昏昧)하지 않게 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미발할 때에도 견문(見聞)이 있는가." 묻기에,

신은 대답하기를, "만약 물(物)을 보기도 하고 소리를 듣기도 할 때에 염려가 따라 발현되면, 이는 진실로 이발에 속한 것이요,

만약 물이 지나가는 것을 눈으로 보기만 하고 이것을 보는 마음이 일지 않았거나,

귀에 지나는 것을 듣기만 하고 이것을 듣는 마음이 일지 않았거나, 비록 견문이 있더라도 사유(思惟)를 하지 않았다면,

곧 그것이 미발이 되는데 방해 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눈으로는 모름지기 볼 것이요, 귀로는 모름지기 들을 것이다.'하였고,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만약 반드시 보고 듣는 것이 없는 것을 미발처라고 한다면,

다만 일종의 의식(意識)이 혼매한 사람이 수면(睡眠)이 부족할 때에,

사람에게 경각(驚覺)한 바 되면, 잠시 동안 주위(周圍)를 알지 못하는 시각(時刻)에 이런 기상(氣象)이 있는 것이다.

성현의 마음은 담연(湛然)하여 못과 같이 깊고 고요하며〔淵靜〕총명이 통철(洞徹)하므로, 결코 이와 같지 않다.'하였다.

이것으로 보면, 미발시에도 견문이 있다." 하였습니다.

○또 "보통사람〔商人〕의 마음이, 진실로 미발한 때가 있는데, 그 중체(中體)도 성현의 미발과 분별이 없는가."묻기에,

신은 대답하기를, "보통 사람은 함양과 성찰의 공부가 없으므로,

그 마음이 어둡지 않으면 어지러워져서 중체가 서지 않지마는, 다행히 잠시 동안이라도 혼란(昏亂)하지 않게 되면 그 미발의 중(中)은 성현과 분별이 없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혹시 방자하여지기도 하고, 요란하여지기도 하여, 도로 그 본체를 잃게 되니,

삽시간의 중(中)으로 어찌 온종일의 혼란을 구하여 큰 근본을 세울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또, "연평(延平) 선생은 정(靜)한 가운데서 희·노·애·락이 미발의 중(中)이라는 것을 본다고 하였는데, 미발은 어떤 기상(氣象)이 되는 것인가.

주자(朱子)는, '이선생(李先生)은 정(靜)한 가운데서 큰 근본을 체인(體認)하였다.'하였는데,

이 설은 어떤가."묻기에, 신은 대답하기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 이발이므로,

이미 체인이라고 하였으면 성찰의 공부요, 미발시의 기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주자(朱子)는 만년(晩年) 정론(定論)에 체인자(體認字)의 글자를 중하게 놓았다 하니, 이것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학자가 정좌(靜坐) 하고 있을 때에 이 공부를 하여, 미발시의 기상을 가만가만히 살펴보면,

학문에 나아가는 것과 마음을 기를 적에 반드시 유익할 것이니, 이는 또한 하나의 방법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미발(未發) 전(前)은 찾을 수 없고, 이미 깨달은 뒤에는 알맞게 갈라 부쳐서 안배(安排)하는 것을 용납되지 못한다.

그러나 평시에 장경(莊敬)으로써 함양하는 공부가 지극하여, 인욕(人欲)의 사사로운 것으로 어지럽히지 않는다면,

그 미발에는 밝은 거울이나 흔들리지 않는 물과 같고, 그 발하는 데도 중절(中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은 나날이 쓰는 본령(本領)의 공부인 것이니, 일에 따라 성찰하고 물에 나아가 미루어 밝히는 데도 반드시 이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종래의 사색(思索)하고 강론하는 것은 단지 마음이 이발한 것이며, 일용의 공부 또한 일의 본말 시종〔端倪〕을 살피고 인식함으로써,

최초의 입각점〔下手處〕으로 삼았다.

이러므로 평시에 함양하는 한 토막의 공부가 결여되어, 사람의 가슴 속을 들떠,

심잠순일(深潛純一)한 맛이 없게 하고 발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사이에도 항상 급박하고 들뜬 느낌을 나타내어서

다시 마음에 화락하고 온화〔雍容〕하며 심후(深厚)한 기풍이 없다.

대개 소견이 한 번 어긋나면 그 해로움이 이와 같이 되므로,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성찰(省察)에 대한 말씀

○성(誠)은 무위(無爲)이요, 기(幾)는 선악(善惡)이다. (주자(周子) 통서(通書))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진리는 자연스러운 것인데 무엇을 하는 것이 있겠는가. 미발시입니다.

기(幾)라는 것은 움직임의 미미한 것이니, 선악의 분별이 연유하는〔由〕것이다." 하였습니다.

○조치도(趙致道)는 말하기를, "이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미발의 체(體)를 밝히고, 이발의 단서(端緖)를 가리킨 것이다.

대개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물이 맹동(萌動)하는 미미한 것에서 살펴 나가, 결단하고 선택하여,

거취(去取)할 바를 알아서 본심의 체를 잃지 않게 하고자 한 것이다.

선과 악은 비록 상대되었지만, 마땅히 손〔賓〕과 주인〔主〕을 갈라야 하며,

천리와 인욕이 비록 분파(分派)되었지만 본 줄기〔宗〕와 곁 가지〔孼〕를 살펴야 한다.

정성이 동(動)하여 선(善)으로 나가는 것은, 나무가 뿌리로부터 줄기로 <통하고> 줄기로부터 잎〔末〕으로 <통하여> 상하(上下)로 서로 통달하는 것처럼,

천리의 유행은 마음의 근본〔本主〕이요, 성의 정통을 이은 본 줄기〔正宗〕인 것이다.

혹시 곁가지가 잘되고 옆으로 빼어난 것이 혹시 사마귀가 기생(寄生)하는 것과 같다면 이것이 비록 정성이 동이라도 사욕의 유행이기 때문에,

이른바 악인 것이니 마음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이는 대개 손〔賓〕으로서 의탁하는 것이며 정성의 본 줄기가 아니라, 이는 대개 곁 가지인 것이다.

실로 일찍이 변별(辨別)하지 않거나 세밀히 가려내지 않는다면,

 손〔客〕이 주인〔主〕을 타〔乘〕고 곁 가지〔庶子〕가 본 줄기〔宗子〕를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사물이 맹동하는 기미의 사이에 그 발하는 바 향배(向背)를 살펴본다면, 곧게 나가는 것은 천리(天理)가 되고,

곁으로 나가는 것은 인욕(人欲)이 되는 것이니, 곧게 나가는 것은 잘 인도하고, 옆으로 나가는 것은 막고 끊어야 할 것이다.

어러한 공력이 이미 지극하면 마음이 발하는 것은 자연히 한길〔一途〕에서 나오고 천명(天命)을 보전할 수가 있다." 하였습니다.

○범양 장씨(范陽張氏)는 말하기를, "한 생각〔一念〕이 선(善)하면 하늘의 신, 땅의 신, 상서로운 바람, 화평한 기운이 모두 여기에 있고,

한 생각이 약하면 곧 요망한 별·염병의 악귀·흉년·악질의 전염병이 모두 여기에 있기 때문에, 군자는 혼자 있을 때를 삼가한다." 하였습니다.

아무리 성(聖)이라도 생각치 아니하면 광(狂)이 되고, 아무리 광(狂)이라도 잘 생각하면 성이 된다. (주서(周書) 다방(多方))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성(聖)은 본래부터 하기 어려운 것이니, 광(狂)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이 되는 공부에 대해, 그 향하는 곳을 알 것이다.

성은 본래부터 이른바 망념(罔念)이 없지만, 조금이라도 어긋난 생각이 있으면,

비록 광에는 이르지 않았더라도 광이 되는 이치가 또한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孔子)는 말하기를, "잡으면〔操〕있고 놓으면〔舍〕없으며,

나가고 들어오는 데 때가 없어서 향할 곳을 알지 못하는 것은 오직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맹자(孟子))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마음이란 잡으면 여기에 있고 놓으면 잃어버리고 그 나가고 들어가는데,

정(定)한 때가 없고, 정한 곳도 없어 위태롭게 움직이고 안존하기가 어려움이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출(出)과 입(入)의 두 글자는 선도 있고 악도 있기 때문에, 다 놓아서 없는 소치(所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바로 마음의 체(體)·용(用)을 가리켜, 그 두루 흘러 변화하여 신명의 예측할 수 없는 묘(妙)를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어떤 이가> "불자(佛者)에는 관심(觀心)의 설(說)이 있다는데, 그렇습니까."물으니,

대답하기를, "마음은 몸의 주(主)가 되는 것으로서 하나이지 둘은 아닌 것이다.

이제 다시 어떤 물체가 있어서 마음을 관조한다면,

이것은 이 마음 외에 다시 한 마음이 있어서, 이 마음을 주관(主管)하는 것이 되므로, 이 말은 틀린다." 하였습니다.

묻기를, "'아직 발하기 전은 다만 공경으로써 지양(持養)하여야 하고 이미 발한 뒤에는 마땅히 공경으로써 살펴야 하는 것이나,

이미 발한 정(情)은 마음의 용(用)이어서, 이것을 심찰(審察)하면 마음으로써 마음을 보는 〔以心觀心〕병통을 면치 못한다.'어떠한가." 하니,

대답하기를, "이미 발한 곳을 마음의 본체의 권도(權度 : 권(權)은 저울, 도(度)는 자(尺))로하여 마음의 발한 것을 살피는 것은

경중(輕重)·장단(長短)의 차이가 있을까 염려해서이다.

만약 발한 바의 마음으로 따로 마음의 본체를 구하려고 한다면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대저 잡아 둔다는 것은, 저것으로서 이것을 잡아두는 것이 아니며, 놓아서 잃는다는 것은 저것으로서 이것을 놓아서 잃어버린다는 것은 아니다.

마음으로 스스로 잡으면 잃었던 것을 두게 되고, 놓고 잡지 않는다면 두었던 것도 잃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사람은 꿈꾸는 사이에도 자기가 배운 바의 얕고 깊은 것을 점칠 수 있는데, 꿈에 전도(顚倒)하는 것은

심지(心志)가 정해 있지 아니하거나, 잡아 두는 것이 굳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묻기를, "사람의 마음에 걸려 있는 일이 착하다고 하더라도 꿈에 보는 것은 해로운가." 하니,

대답하기를 "착한 일이라 하더라도 마음은 역시 동(動)하는 것이다.

무릇 일에 조짐(兆朕)이 있어 꿈에 나타난 것은 해롭지 않으며, 이 밖에는 다 망동(妄動)이 된다." 하였습니다.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마음이 맑을 때가 적고 어지로울 때가 많아 마음이 맑을 때는 보면 밝고 들으면 총명하여 사체(四體)가 얽매인〔束〕것이 없어서

자연히 공근(恭謹)하여 지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이와 반대인데 이와 같은 것은 무엇인가 하면

대개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미숙(未熟)하여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고, 상심(常心)이 적기 때문이요,

세 속의 마음을 없애지 않아서 실심(實心)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가 주차(奏箚)69)에서 이르기를, "사대부(士大夫)로서 의견을 아뢰는 자들이, 폐하의 몸에다 근본을 두지 못하고,

어떤 사건의 지엽적인 문제만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니 신(臣)은 그 정치가 나오는 근본을 단정히 하고,

사물에 응하는 근원을 맑게하여 폐하의 정대하고 굉원(宏遠)하신 의도를 도와서, 천하의 일을 다 성지(聖志)의 바라시는 대로 되게 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신이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한 생각이 싹트면 반드시 이것이 천리(天理)냐, 인욕(人欲)이냐를 삼가 살피시고,

만일 천리이면 공경으로써 충하시되 조금이라도 막히지 않게 하시며, 만일 인욕이라면 공경으로써 극복하시되 조금도 얽혀 막히지 않게 하시어,

언어와 동작으로부터 사람을 쓰고 일을 처리하는 데까지도 이것으로써 미루어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아시면 행사하시는데 힘이 부족하지 않을까 두렵게 여기시고,

그것이 그르다는 것을 아시면 버리시는데 결단성이 없지 않을까 두려워 하신다면 성심(聖心)이 환하게 트여서

안팎이 서로 투철하여 털끝만한 사욕도 그 사이에 끼일 수 없게 되고,

천하의 일은 폐하의 원하시는 바의 뜻대로 아니 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몸에 노여워하는〔〕바가 있으면 그 바른 것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른 것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른 것을 얻지 못하고, 걱정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른 것을 얻지 못한다. (「대학」하동)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몸에 있다고 하는 몸은 마땅히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분치(忿)는 노(怒)한다는 것이다. 대개 이 네 가지는 모두 마음의 작용이므로, 사람에게 없을 수 없다.

그러나 한 번 있어 살피지 못한다면, 욕(欲)이 움직여서 정이 이겨, 그 작용의 행하는 바가 바른 것을 잃지 않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또, "이 네 가지는 다만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부터 나와야 하며, 미리 마음 속에 있어서는 안된다.

만약 노여운 마음이 있으면 죄 있는 자를 때려 주되, 그러고 나면 마음이 바로 화평하면 이것은 그 마음을 두지 않은 것이다.

만약 마음이 늘 화평하지 못하면 이는 곧 마음을 둔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마음은 물(物)에 얽히면 즉시 동(動)하게 되고 물에 얽히는 까닭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일이 오기 전에 기대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요,

<둘째는> 일이 이미 끝났는데도 아직 마음에 두고 잊지 못하는 것이며,

<세째는> 바로 일에 응하여 편중(偏重)하는 뜻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물에 결박하여 매여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는 것이므로 다른 일이 면전(面前)에 오게 되면,

곧 어긋나게 되는 것이니 어찌 마음의 바른 것을 얻겠는가. 성

인의 마음은 형연(瑩然)히 허명(虛明)하여, 사물을 보면 크나 작으나 4방 8면으로 물에 따라 응하지 않는 것이 없고,

이 마음에는 처음부터 그런 일들이 있지 않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가 단주(州)에서 다리를 수리할 때, 긴 통나무 하나가 부족하여 널리 민간에 구하였다.

뒤에는 나들이 하다가도 숲의 좋은 나무를 보게 되면 꼭 계산하여 보는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에

배우는 사람들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마음에는 한 가지 일〔事〕도 있어서는 안된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자기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이 없을 수 없으나, 가슴 속에 오래 두고 뉘우치는 것은 부당하다." 하였습니다.

마음이 있지 아니하면 보아도 보이지 아니하고,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마음이 있지 않다면 곧 주재하는 것이 없어서 그 몸을 검속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이 마음의 신령한〔靈〕것은 한 몸의 주(主)가 되는 것이므로,

진실로 그 바른 것을 얻어서 이에 있지 아니함이 없다면, 귀·눈·코·입과 사지백해(四肢百骸)가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이 없이 그 일에 이바지하고,

동정(動靜)·어묵(語默)·출입(出入)·기거(起居)가 오직 내가 할 대로 하게 되어서 이(理)에 맞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몸은 여기에 있으되 마음은 저기로 팔려서 혈육의 몸〔軀〕을 관섭(管攝)하는 것이 없어서,

얼굴을 들어 새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돌려 다른 사람에게 딴 소리 하지 않는 일이 드물다." 하였습니다.

○또, "오늘의 배우는 자들이 놀라운 진보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다만 마음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하건대, 내가 소년시(少年時)에 동안(同安)에서 살았는데,

밤에 종 소리가 울리면 한 번 울리는 소리가 끊어지기도 전에 이 마음은 이미 달리기 시작했다.

이로 인하여 경계하고 반성하였으며, 이 때문에 위학(爲學)은 모름지기 치지(致志)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마음은 반드시 내 몸 속〔腔子裏〕에 있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강자(腔子)는 구각(軀殼)과 같은 말입니다.

○남헌 장씨(南軒張氏)는 말하기를, "마음이 있다는 것은 공경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교봉 방씨(蛟峯方氏)는 말하기를, "위에서는 마음이 있는 것의 병을 말한 것이요, 여기서는 마음이 없는 것의 병을 말한 것이다.

신이 살피건대, 이는 비록 마음이 있고 마음이 없는 구별이 있지마는, 그 실상은 마음이 편벽되게 얽히는 것이 있으므로,

주재를 세울 수가 없어서 있지 않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유심과 무심은 두 병이 아닙니다.

◆ 다음은 함양과 성찰에 대한 통론

○이윤(伊尹)은 말하기를, "이〔〕하늘의 밝은 명령〔明命〕을 돌아본다〔顧〕."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태갑(太甲))

주자(周子)는 말하기를, "고(顧)는 항상 눈〔目〕을 거기에 두는 것을 말한것이요, 시()는 이〔此〕와 같은 말이다.

하늘의 밝은 명(命)은 곧 하늘이 나에게 준 것으로서, 나의 덕(德)이 된 것이니, 항상 눈을 여기에 둔다면 밝지 않을 때가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다만 도리가 오래도록 눈 앞에 있는 것을 보며, 사물에 막히거나 꺼리끼지 않게 되어서,

한 사물도 있지 않으면 그 형상(形象)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쌍봉 요씨(雙峯饒氏)는 말하기를, "정존(靜存)과 동찰(動察)은 다 돌아보는 것이다.

고요할 때는 보이지 않는 데서도 삼가고 들리지 않는 데서도 두려워하며,

그 동함에는 물에 당하여 이치를 보고〔卽觀物理〕일에 따라 마땅한 것을 헤아리는 것, 이것을 항상 눈을 거기에 둔다고 한다." 하였습니다.

○호계수(胡季隨)는 말하기를. "아직 발하기 전은 다만 함양(涵養)할 것이요,

발하는 곳에서는 반드시 성찰(省察) 공부를 할 것이니, 함양하는 것이 익숙할수록 성찰도 더욱 정(精)하여 진다." 하였습니다.

불경(不敬)하지 말고〔母〕엄연(儼然)히 생각하듯 하며, 말〔辭〕이 편안하며 일정하면 백성을 편안하게 할 것이다. (예기(禮記))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무(無)는 금지하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경례(經禮) 삼백(三百)과 곡례(曲禮) 삼천(三千)을 한마디로 말하게 되면, 불경(不敬)한 것이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불경(不敬)하지 않으면 상제(上帝)라도 대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마음이 안정된 사람은 그 말이 편안하고 조용하며, 안정되지 못한 사람은 그 말이 가볍고 빠르다." 하였습니다.

이상의 네 가지는 경의(經意)를 해석한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마음을 오로지 하나로 하는 것〔主一〕을 공경이라 하고, 잡념을 가지지 않는 것〔無適〕을 일(一)이라 한다." 하였습니다.

(주일무적(主一無適)을 물으니,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다만 달려가지 않는 것인데,

예를 들면 지금의 세상 사람들이 한 일〔一事〕을 끝내기도 전에 또 다른 일을 하려고하여,

마음에 일일이 가려 낼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의 갈피〔千頭萬緖〕를 갖고 있는 것과 같은데, 학문은 다만 전일(專一)하여야 한다." 하였습니다.

○설씨(薛氏)는 말하기를, "첫 걸음을 가면 마음이 첫 걸음에 있고, 두 걸음을 가면 마음도 두 걸음 위에 있는 것을 공경〔敬〕이라 한다.

만일 첫 걸음에 마음은 두세 걸음 밖에 있고, 두 걸음에 마음이 다섯 여섯 걸음 밖에 있으면 공경이 아니다.

따라서 글씨를 쓴다든가 처사(處事)하는 데서도 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으니, 첫 글자를 쓰면 마음이 첫 글자에 있고,

첫 일을 할 때는 마음도 첫 일에 있어서, 일마다〔件件〕전일하면 바로 공경〔敬〕이다." 하였습니다.)

○각헌 채씨(覺軒蔡氏)는 말하기를, "주일(主一)이란 것은 동정(動靜)을 포괄한다.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이 담연(湛然)하여 항상 존(存)하면 이것은 정할때 주일한 것이요,

일이 있을 때는 마음이 이 일에 응하여 다시 다른 일이 섞이지 않으면 이것은 동할 때 주일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일이 없을 때는 공경〔敬〕이 이면(裏面)에 있고, 마음 속을 이르는 것입니다.

일이 있을 때는 공경이 일 위에 있어서, 일이 있든 없든 나의 공경은 일찍이 간단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자(程子)는, '배움은 전일(專一)한데에 이르러야 좋다.'하였는데, 대개 전일하면 일이 있든지 없든지 모두 이와 같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정제(整齊)하고 엄숙(嚴肅)하면 마음이 곧 전일해지는 것인데 전일하면 그르거나 편벽된 것이 범(犯)하지 않는다.

엄위(嚴威)와 엄각(儼恪 : 공경하고 조심함)은 공경의 도가 아니지만, 공경에 이르려면 모름지기 이를 좇아 들어가야 한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이천(伊川)의 정제 엄숙(整齊嚴肅)의 한 마디는 간절하고 지극한 공부를 사람에게 말하여 주었다." 하였습니다.

○상채 사씨(上蔡謝氏)는 말하기를, "공경은 항상 성성(惺惺)하는 법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성성(惺惺)이란 곧 마음이 혼매(昏昧)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공경을 저에 엄숙한 것으로 말한 것이 진실로 옳다.

그렇지만 마음이 만약 혼매하여 촉리(燭理)에 밝지 않다, 비록 억지로 위엄을 부린들 어찌 공경이 될 수 있겠는가.")하였습니다.

○화정 윤씨(和靖尹氏)는 말하기를," 공경이란 것은 그 마음을 거두어 들여서 일물(一物)도 용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윤씨(尹氏)는 말하기를, 공경에는 형(形)과 영(影)이 없고, 다만 심신(心身)을 수렴하면 곧 주일(主一)인 것이다.

예컨대, 사람들이 신을 모신 사당〔神祠〕에 가서 경건한 자세를 가질 때에,

그 마음을 수렴하고 다시 털끝만한 잡념도 없이 하면, 그것이 주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 선생의 (정자(程子)와 사씨(謝氏)와 윤씨(尹氏)입니다.)

공경〔敬〕에 대한 말이 다른 것을 물었더니, 주자이 대답하기를, "비유하면 이 방〔室〕으로 사방에서 다 들어올 수 있지만,

만약 한 쪽으로 따라서 여기까지 들어왔다면, 나머지 세 쪽〔三方〕에서 들어오는 곳도 다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요자회(廖子晦)는 말하기를, "정자(程子)는, '주(主)가 있으면 실(實)하여진다.'하였고,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주가 있으면 실하게 되고, 외환(外患)이 들어 올 수 없다." 하였습니다.)

또, '주가 있으면 허(虛)하여진다.'고 하였는데,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주가 있으면 허하여진다고 한 것은 간사한 것이 들어갈 수 없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허(虛)와 실(實)의 두 설(說)은 비록 같지 않지만, 모두 공경을 위주(爲主)로하여 말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자회(子晦)의 말은 매우 좋다.

공경하면 곧 안으로 욕심이 싹트지 못하고, 밖으로 유혹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안에서 욕심이 싹트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면 허(虛)요,

밖에서 유혹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면 실(實)로서 이것은 단지 동시적인 일이다." 하였습니다.

(이상의 여덟 가지는 공경의 뜻을 논한 것입니다.)

○정자(程子)는, "예기(禮記) 표기(表記)의 '군자가 장중하고 공경하면 날로 강하고, 편안 하고 방자하면 날로 게으르다.'는 말을 가장 좋아했다.

대개 보통 사람의 정(情)은 기탄 없게 되면 날로 광탕(曠蕩)하여지고, 스스로 검속(檢束)하면 날로 규구(規矩)를 이룬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공경은 백사(百邪)를 이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공경은 사람을 붙들어 주는 도리이다.

사람이 기탄없이 행동하고 몹시 게으를 때 공경하면, 바로 이 마음을 붙들어 주고 받쳐 주게 되는데,

항상 이와 같이 하면, 비록 방벽사치(放僻邪侈 : 아무 꺼리낌 없이 제 마음대로 분수에 넘친 치레만 함)하려는 의사가

조금 있더라도 스스로 물러나게 된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공경은 인욕(人欲)을 대적(對敵)하는 소이(所以)인 것이니, 사람이 항상 공경하면 천리(天理)가 스스로 밝아지고

인욕이 올라 오지 못하게 된다." 하였습니다. (이상의 네 가지는 공경이 인욕을 이기는 것을 논한 것입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정(靜)한 가운데 사사로운 마음이 넘쳐 나오게 되는 것은 배우는 사람들의 통환(通患)이다.

마땅히 경(敬)을 위주로하여, 사사로운 뜻이 싹트는 것이 주로 어떠한 일인지를 깊이 살피고,

그 가장 심각한 곳에 나아가 무섭게 억누르는〔窒懲〕노력을 가하여, 오래 순숙(純熟 : 완전히 익음) 하여지면 스스로 그 효력을 볼 것이다.

" 하다가도, 또 곁에서 따로 한 소념(小念)이 생겨서 점차 널리 퍼져 가는 것이니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하였습니다.

○묻기를, "평소 지경(持敬)하는 데는 정(靜)한 때가 가장 좋으나, 일에 임하면 염증이 나고 게을러진다든가.

일에 임하여 혹 힘을 쓰면 분요(紛擾)한 것을 깨닫는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공경을 지니고 있을 때에 갑자기 생각에 끌려 가버리게 되니, 이 세 가지 것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지금 세상의 사람들이 공경을 따로 하나의 일로 간주하기 때문에, 염증이나 권태를 느끼고 생각에 이끌려 가는 것이다.

공경은 다만 자기의 한 마음이 항상 성성(惺惺)한 것이요, 이것을 따로 어떤 일로 간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선생이 묻기를, "백우(伯雨)는 어떻게 공부를 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정좌(靜坐)를 배우고 생각을 억눌렀다."고 한다.

말하기를, "억눌러서는 안되고 다만 방퇴(放退)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방퇴(放退)는 다만 염려(念慮)에 끌려 함께 가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전혀 사려(思慮)가 없다는 것은 안되고, 단지 간사한 생각이 없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묻기를, "오로지 마음을 잡고 있다가 놓아버리면 문득 다시 해이하여 흩어지니 어찌하여야 되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그것은 그렇게 힘써 잡을 것은 아니다.

만약 힘써 잡으려 하면 또 한 개의 마음을 더하게 될 것이다.

그대가 만약 마음을 놓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정신을 일으키면 이것이 곧 공경〔敬〕공부인 것이다." 하였습니다.

묻기를, "고요히 정좌(靜坐)를 오래하고 있으면 <어느>한 생각이 발동되는 것을 면하지 못하니,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그 생각이 어떤 일을 하려는 것인지를 살펴야 한다.

만약 좋은 것이라면 마땅히 그대로 진행할 것이요, 혹시 일을 요량하는 데 투철하지 못하다면 더 생각을 해 볼 것이며,

만약 좋지 못한 것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신이 이와 같이 깨닫게 된다면 공경의 공부는 곧 그 속에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공경하는 마음이 있으면 몸 가짐이 자연히 수렴(收斂)되고 힘써 조절되기를 〔安排〕기다리지 않아도 온 몸이 저절로 안정되어진다.

만약 너무 힘써 몸을 조절하려 하면 오래하기가 어렵고 병통이 생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정연하게 수렴하면 너무나 힘쓰는데 빠지게 되고 조용히 마음을 놓으면 또 해이해져서 타락하게 되니,

이것이 배우는 자의 공통되는 근심이다.

그러나 정자(程子)가 일찍이 말하기를, '역시 반드시 이렇게 스스로 공부해 가면서 덕이 성하게 되면

자연히 이럭 저럭 하여도 그 정당한 것을 얻게 된다.'하였다.

지금은 역시 마땅히 정연하게 수렴하는데 힘쓰되, 다만 몸가짐을 너무 조절해서는 안 된다.

이는 곧 병통을 이룩하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위의 7조목은 병통을 살펴 다스리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정심(正心)의 처음은 마땅히 자기의 마음을 엄한 스승(嚴師)으로 삼아서 모든 동작(動作)을 하게 되면, 두려운 바를 알아야 한다.

이렇게 1·2년 동안 굳세게 지켜 가면 자연히 마음이 바르게 된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공경이란 송연(然 : 황송하여 옹송그림)히 두려워하는 바가 있는 듯하다는 뜻인데,

항상 두려워하는 바가 있는 듯하게 되면 감히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못하게 되고 성(誠)에 나아갈 수 있다." 하였습니다.

○면재 황씨(勉齋黃氏)는 말하기를, "공경은 주일무적(主一無敵)을 말한다고 정자(程子)는 말하였으나,

선생(주자朱子를 가리킴)의 설은 또한 '공경은 오직 두려워하는 것이 거기 가까운 것'이라 하였으니,

대개 공경은 이 마음이 숙연(肅然)하여 두려워하는 바가 있는 것을 말한다.

두려워하면 마음이 하나〔一〕로 주재〔主〕된다.

가령 종묘(宗廟)에 들어가 군부(君父)를 뵈올 때는 스스로 잡념이 없게 되고,

한가하여 제 멋대로 행동할 때에는 생각이 어수선하고 혼란하여 하나로 주재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설은 서로 표리(表裏)가 되므로, 배우는 자가 체험해 보면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각헌 채씨(覺軒蔡氏)는 말하기를, "사람의 일심(一心)은 허령 지각(虛靈知覺)한 것이니,

항상 숙연(肅然)하여 어지럽지 않고, 형연(炯然)하여 어둡지 않으면 고요하여는

이(理)의 본체가 존재하고 감응하여는 이(理)의 작용이 행하여지지 않는 것이 없다.

다만 허령 지각이 능히 욕심에 움직이지 않을 수 없으므로,

곧 이 마음의 체용(體用)도 따라 어두워지고 어지러운 것이며, 이 때문에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진실로 척연(두려워하는 모양)하고 송연(悚然)하여, 항상 귀신이나 부사(父師)가 위에 임한 듯이 하며,

아래로는 깊은 못이나 살얼음이 있는 듯이 할 수 있다면 허령 지각이 스스로 어둡거나 어지러운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공경의 뜻이 오직 두려워하는 바가 거기 가깝다는 것이다." 하옵니다.

이상 네 가지는 두려움을 가지고 공경〔敬〕의 뜻을 풀이한 것입니다.

○남헌 장씨(南軒張氏)는 말하기를, "이계수(李季修)가 묻되, '공경은 마땅히 힘써야 할 것이요

진실로 게을러서는 아니 되나, 해가 저 안식(安息)할 때에도 마땅히 때에 따라 힘 쓸 것이다.'하였는데,

나의 생각으로는, 해가 져서는 안식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공경인 것이니, 해가 져 안식하는 것이 게으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가히 공경의 이치를 논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공경이 있지 않을 때가 없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대개 주야(晝夜)의 동정(動靜)에 마땅히 끊임이 없어야 할 것이니. 만약 밤이 되어 안식하는 것을 공경이 아니라고 한다면, 공경을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설씨(薛氏)는 말하기를, "'공경은 덕(德)이 모이는 것이라.'고 한 옛말이 있는데, 이 말은 아주 체득(體得)해야 할 말이다.

대개 도(道)의 묘한 것은 헤아릴수가 없고 정(定)한 바가 없으나, 오직 공경하면 능히 엉겨 모여서 이 이치가 항상 있게 된다.

마음이 공경하면 능히 엉겨 모여서 덕이 마음에 있게 되며, 용모〔貌〕를 공경히 하면 엉겨 모여서 능히 덕이 용모에 있게 되면,

귀·눈·입·코와 같은 종류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공경하지 않으면 마음이 방일(放逸)하여, 온 몸이 해이하게 이지러져서 비록 사람의 형체가 있다고 해도,

그 실상은 괴연(塊然 : 홀로 있는 모양)한 혈기의 몸뚱이일 뿐이요 만물〔物〕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敬)이란 한 글자가 곧 덕을 엉겨 모으는 근본이고, 천형진성(踐形盡性)하는 요령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공경으로써 덕을 모은다는 말입니다.

군자는 공경〔敬〕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리〔義〕로써 밖을 방정하게 하여 공경과 의리가 서게 되면 덕(德)이 고립되지 않는다.

역(易) 곤괘(坤卦) 문언(文言)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군자는 공경을 주로 하여 그 안을 곧게 하고 의리를 지켜서 그 밖을 방정하게 한다.

공경이 서면 안이 곧게 되고 의리가 나타나 밖이 방정하게 되는 것인데, 의리가 밖에 나타난다는 것은 밖에 있다는 것이 아니다.

공경과 의리가 서 있으면 그 덕이 성할 것이니, 덕이 고립되지 않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본령(本領)은 마땅히 공경을 위주로 삼고 또 집의(集義)의 공효를 얻어

이욕(利欲)이 가리는 것을 물리치면 공경에 더욱 도움이 되는 것이니, 다만 이 하나의 진작과 경각이 동정(動靜)을 관통(貫通)하는 것이다.

단지 일이 없을 때는 한결같이 지양(持養)하여야 하나, 일이 있으면 시비(是非)와 취사(取舍)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안을 곧게 하고 밖을 방정하게 하는 구별이 있게 되는 것이며, 동정으로 판연히 이물(二物)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존양(存養)을 익숙하게 하고 나서 태연하게 행해 나가면, 길이 나아갈 수 있다."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공경으로써 안을 곧게 하는 데만 힘쓰고, 밖을 방정하게 하는데는 힘쓰지 아니한다면 어떠합니까." 하니,

정자는 말하기를, "안〔中〕에 있으면 반드시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오직 안이 곧지 않은 것을 걱정할 뿐이요,

안이 바르면 반드시 밖에도 방정하게 된다." 하였습니다.

○오봉 호씨(五峯胡氏)는 말하기를, "공경한다는 것은 의리를 밝게 하는 소이다." 하였습니다.

○묻기를, "공경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리로써 밖을 방정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니,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말로는 이렇게 하였는데, 모름지기 스스로가 공부를 해 가야 이러한 것을 볼 수 있다.

공경으로써 안을 곧게 한다는 것〔敬以直內〕은 조금도 사사로운 뜻이 없고 가슴 속이 통연(洞然)하며,

위로도 통하고 아래로도 통하는 표리(表裏)가 한결같은 것이요, 의리로써 밖을 방정히 한다는 것〔義以方外〕은 바른 곳을 보면 이렇게 결정하고,

바르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지 않게 결정하여, 절연(截然 : 칼로 끊은 듯이 확연한 모양)히 방정하게 하여서, 반드시 스스로 공부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성문(聖門)에서 배운 사람들은 한 귀(句)를 물을 때에, 성인이 한 귀로 답해 주면 곧 이해하여 실천에 옮겼다.

지금은 말만 많이 하고 실행하려고는 하지 않지만, 만약 실지로 공부를 해보려면,

단지 경이직내(敬以直內)와 의이방외(義以方外)의 여덟 자(字)를, 일생동안 다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경〔敬〕이 게으른 것을 이기는 이는 길(吉)하고 게으른 것이 공경을 이기는 이는 멸(滅)하며,

의리가 욕심을 이기는 이는 순(順)하고 욕심이 의리를 이기는 이는 흉(凶)하다. 대대례(大戴禮)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공경하면 설 수 있고, 게으르면 쓰러지는 것이다.

이(理)로서 일에 따르는 것은 의리요, 이로서 일에 따르지 아니하는 것은 욕심이다.

공경과 의리는 체용(體用)이다." 하였습니다.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공경하면 만가지 선(善)이 함께 서고, 게으르면 만가지 선이 함께 폐해진다.

의로우〔義〕면 이(理)가 주재되고 욕심스러우면 물이 주재하여, 길흉 존망(吉凶存亡)이 나누어지게 되는 것인데,

옛 성인들은 이미 이것을 조심하였다." 하였습니다.

(차단(此段)의 말은 단서(丹書)70)에서 나온 것입니다. 단서에는 황제(黃帝)·전제(帝) 도(道)가 실린 까닭으로 옛〔上古〕성인들이라 한 것입니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공경과 의리를 겸비〔夾持〕하면, 이것으로부터 곧 천덕(天德)에 상달(上達)한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협지(夾持)의 두 자(字)를 놓은 것은 매우 좋다.

경(敬)은 안〔中〕에서 주재하고, 의리는 밖에서 막아, 둘이 서로 겸비〔夾持〕하여, 놓아 두려고 해도 되지 않아 조금도 주실(走失)이 있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하면, 아래에서는 물욕(物欲)에 물들지 않고, 다만 천덕에 상달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공경〔敬〕은 체(體)요, 의리〔義〕는 용(用)이라 하여 비록 내외(內外)로 나눈다 하더라도 그 실은 공경이 의리를 겸비하고 있습니다.

대개 안을 곧게 하는 경은 공경으로서 존심(存心)하는 것이요, 밖을 방정하게 한다는 의리는 공경으로써 일에 응하는 것입니다.

주자의 경재잠(敬齋箴)에 발명이 친절하므로 삼가 다음에 기록합니다.

잠(箴)에 이르기를, "의관(衣冠)을 바르게 하고, 높이 바라보며, 마음을 정(靜)하게 하여, 상제(上帝)에 대월(對越)하라.

(이것은 정(靜)에 어김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발의 움직임은 무겁게 해야 하고, 손의 움직임은 공순해야 하며, 땅을 가려서 밟고 개미둑〔蟻封〕은 돌아가라.

(의봉(蟻封)은 개미둑이요, 협소한 땅도 능히 돌아서 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동(動)에 어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문(門)을 나갈 적에는 손님을 보는 듯하며, 일하기를 제사 받들 듯이 하라.

전전긍긍(戰戰兢兢)하여 감히 혹 쉽게 하지 말라. (이것은 겉〔表〕의 바른 것을 말합니다.)

입을 지키기는 병(甁)같이 하고 뜻을 막기는 성(城)같이 하라. 조심하고 조심하여 가볍게 하지 말라. (이것은 속〔裏〕의 바른 것을 말합니다.)

동으로 간다 하고는 서로 가지말 것이며, 남으로 간다 하고 북으로 가지 말라.

일을 당하면 간직하여 다른 데로 가지말라. (이것은 마음의 바른 것이 일에 미치는 것을 말합니다.)

두 가지로써 마음을 이(貳)로 하지말 것이며, 세가지로써 마음을 셋으로 하지 말 것이며 오직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만변(萬變)을 관찰하라.

(이것은 일은 주일(主一)하여 마음에 근본함을 말합니다.)

여기에 종사(從事)하는 것을 지경(持敬)이라 하는데, 동정(動靜)에 어기지 않게 하며 표리(表裏)를 서로 바르게 하라.

이것은 윗 글을 다 맺는 것입니다.

잠시라도 틈이 있으면, 사욕이 만갈래로 일어나서, 불을 놓지 않아도 뜨거우며, 얼음이 얼지 않아도 차진다.

(수유(須臾)는 때를 말합니다. 이것은 마음이 무적(無適)하지 못하는 병통을 말합니다.)

조금〔毫釐〕이라도 어긋나는 것이 있게되면, 천지(天地)의 위치가 바뀌어, 삼강(三綱)이 이미 문란하게 될 것이고, 구법(九法)71)도 무너질 것이다.

(호리(毫釐)는 일을 말합니다. 이것은 일의 주일(主一)하지 못하는 병통을 말합니다.)

아아, 너희들은 생각해야 하고 공경해야 할 것이다. 묵경(墨卿)에게 이 경계를 맡겨서 감히 영대(靈臺 : 마음)에 고(告)한다." 하였습니다.

이 일편(一篇)은 총괄하여 맺는 것입니다.

○서산 진씨(西山眞氏)는 말하기를, "공경의 뜻은 여기에 이르러 더 남은 것이 없으니,

성학(聖學)에 뜻을 둔 이는 마땅히 익히며 반복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의 집 양쪽에는 좁은 방이 두 개가 있었는데, 한가한 날은 그 안에서 묵좌(默坐)하여 독서하였으니,

왼쪽은 경재(敬齋)라 이름하고, 오른 쪽은 의재(義齋)라 이름하여, 기록하기를,

"주역〔易〕을 읽고 두 가지 말을 얻은것은, 경이직내(敬以直內)와 의이방외(義以方外)이며,

학문하는 큰 요령은 이와 바꿀 것이 없다고 여겼으나, 힘쓸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

「중용」을 읽고 수도(修道)의 가르침을 논한 것을 보니, 반드시 계신 공구(戒愼恐懼)를 처음으로 삼아야만 지경(持敬)하는 근본을 얻으며,

또 「대학」을 읽고 명덕(明德)의 차례를 논한 것을 보니 반드시 격물 치지(格物致知)를 먼저 하여야만 명의(明義)의 단서(端緖)를 얻을 수 있었다.

이미 본 두가지의 공부는 일동일정(一動一靜)이 서로 용(用)으로 되는 것이었으며,

또 주자(周子)의 태극(太極)의 논에 합쳐져 천하의 이(理)가 유명 거세(幽明鉅細)와 원근 천심(遠近淺深)이 일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완미(玩味)하고 즐거워서, 족히 내가 종신토록 해도 싫지 않을 것이니, 또한 밖으로 사모할 겨를이 어찌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 다음은 존성(存誠)을 반복하여 정심(正心)의 의(義)를 다하였으며, 또한 함양 · 성찰을 겸하여 말씀드림

○공자(孔子)는 말하기를, "간사한 것〔邪〕을 막아 그 성실이 존재토록 한다." 하였습니다. (역(易) 건괘(乾卦) 문언(文言))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간사한 것을 막으면 성실은 절로 간직되는 것이니, 사람이 집에서 낮은 담〔坦牆〕을 고치지 않으면 도둑을 막지 못하는 것과 같다.

도둑이 동쪽에서 들어온 것을 쫓으면 다시 서쪽으로 들어오고, 한 도둑을 쫓으면 다시 한 도둑이 들어오는 것은

그 낮은 담을 고쳐서 도둑이 자연히 이르지 않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하기 때문에 간사한 것을 막고자 한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공경은 간사한 것을 막는 도(道)이니, 간사한 것을 막는 것과 정성을 보존하는 것은 다만 이 한 가지 일이다.

선(善)을 버린다면 곧 악(惡)이요, 악을 버린다면 곧 선인 것인데, 비유하면 문을 나가지 아니하면 들어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묻기를, "생각〔思慮〕은 비록 많지만 바른 데서 나온 것이라면, 역시 해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하니,

말하기를 "가령 종묘〔宗廟〕에서는 공경을 주로 하고 조정에서는 씩씩한 것을 주로 하며,

군려(軍旅)에서 엄숙한 것을 주로 하는 것이라면 좋으나,

만약 때가 아닌데도 발하여 분연하게 절도가 없다면 비록 바른 것이라도 간사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이(李)선생이 '사람 마음 가운데 커다란 악념(惡念)은 제복(制伏)하기 쉽고,

대단치 않은 이해(利害)를 계교(計較)하여 잠간 오고가는 염려 (이것은 부념(浮念)입니다.) 가 부단히 서로 이어져서

몰아내어 없애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였는데, 이제 보니 사실 그렇다." 하였습니다.

○임천오씨(臨川吳氏)는 말하기를, "범인(凡人)들도 자못 이것이 이(理)가 되고 선(善)이 되는 것을 알며,

저것은 욕(欲)이 되고 악(惡)이 되는 것을 알되, 뜻이 기(氣)를 이기지 못하여, 한가히 홀로 처하는 사이에 간사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인데,

간사한 생각이 있게 되면 곧 막고 누르는 것이 스스로 속이지 않는 성실인 것이다.

대저 이미 간사한 생각이 없다면 생각하는 바가 다 이(理)요, 선(善)이다.

그런나 한 생각이 일어나자 마자 또 한 생각이 싹트거나, 그것이 그치지도 않았는데 여러 생각(諸念)이 서로 이어진다면 이것은 이(二)이요, 잡(雜)인 것이다.

욕(欲)이나 악(惡)은 아니나 역시 간사한 것이라 한다.

대개 먼저 사욕과 악념의 간사한 것을 끊어버린 뒤에 이(二)나 잡된 간사〔邪〕한 것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니,

성의 정심(誠意正心)의 차례를 어찌 뛰어 넘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시경(詩經) 삼백편(三百篇)의 뜻을 한 마디로 총괄한다면 "생각〔思〕에 간사한 것〔邪〕이 없다." 하엿습니다. (「논어」 ○역시 공자(孔子)의 말)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시경(詩經)에 내용이, 선한 것은 사람의 착한 마음을 감동시켜 일으킬 수 있고,

악한 것은 사람의 나쁜 뜻을 징창(懲創 :징계하고 벌함)할 수 있어, 그 작용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정성(情性)의 바른 것으로 돌아가게 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 말은 미완(微婉)하고, 또 각각 한가지 일로 인하여 발한 것도 있어서,

그 전체를 바로 가리킨 것을 구하면, 이보다 명백하고도 다한 것이 있지 아니하므로,

공자〔夫子〕가 '시 3백 편인데 오직 이 한 마디로써 그 뜻을 충분히 다 덮을 수 있다, 한 것이다.

그 사람에게 명시(明示)한 뜻이 깊고 간절하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공자의 이 말씀은 시를 논하기 위하여 말한 것인데, 다만 사무사(思無邪)는 성이라고 생각하므로, 정심(正心)의 장(章)에 실었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사무사(思無邪)와 무불경(毋不敬)의 이 두 귀〔二句〕만을 따라 행하면 어찌 어긋남이 있겠는가.

어긋남이 있는 것은 다 불경(不敬)과 부정(不正)에 말미암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소자(邵子)가 말하기를, "입으로 말하는 것은 몸으로 행하는 것보다 못하고, 몸으로 행하는 것은 마음으로 다하는 것만 못하다.

입으로 말하는 것은 사람이 들을 수 있고, 몸으로 행하는 것은 사람이 볼 수 있으며, 마음으로 다하는 것은 신(神)이 알 수 있다.

사람의 총명한 것도 속일 수가 없는데, 하물며 신의 총명한 것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입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몸이 부끄럽지 않은 것만 못하고, 몸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마음이 부끄럽지 않은 것만 못하다.

입의 허물은 없애기 쉬우나, 몸의 허물은 없애기가 어렵고, 몸의 허물은 없애기 쉬우나, 마음의 허물은 없애기가 어렵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생각에 간사한 것이 없다는 것〔思無邪〕은 성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생각은 말과 실천보다 먼저 있으므로 생각에 간사한 것이 없으면 말하는 바와 행하는 바가 다 간사하지 않은 것이다.

실천에 간사한 적이 없다는 것은 성이 아니며 생각에 간사한 것이 없다는 것이 곧 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표리(表裏)가 다 간사하지 않은 것이니, 진정 털끝만한 부정(不正)도 없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정성이란 것은 하늘의 실리(實理)요, 마음의 본체인데,

사람이 그 본심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은 사사(私邪)가 있어 가려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공경을 주로 삼아 사사를 다 없애면 본체는 곧 완전하게 됩니다.

공경은 용공(用功)에 긴요한 것이요, 정성〔誠〕은 수공(收功)하는 곳이므로, 공경으로 말미암아 정성으로 이르릅니다.

신이 살피건대, 마음의 본체는 담연(湛然)히 비고 밝아서 빈 거울과도 같고, 평평한 저울대와도 같은데,

물(物)에 감응되어 동하면 칠정(七情)이 응하는 것이니, 이것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다만 기(氣)가 구속되고 욕심이 가려져서 본체가 능히 서지 못하므로 그 작용이 혹시 그 바른 것을 잃기도 하는 것이니,

그 병통은 어둡고 어지러운 것에 있을 따름입니다.

어두움〔昏〕의 병통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지혼(智昏)이란 것으로 이는 궁리를 못하여 시비에 몽매(蒙昧)한 것을 말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기혼(氣昏)이란 것으로 게으르고 방일(放逸)하여 잠잘 생각만 있는 것을 말합니다.

어지로운〔亂〕병통도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악념(惡念)이란 것으로 외물(外物)에 유혹되어 사욕을 비교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부념(浮念)이란 것인데, 도거(掉擧) 산란(散亂)하여 (도거(掉擧)는 생각이 일어나는 모양입니다.) 끊임 없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생각은 선(善)도 아니고 악(惡)도 아니므로 부념(浮念)이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은 이 두 가지 병통에 곤란을 겪게 되어, 아직 물에 감응되기 전에는 어둡지 않으면 어지러워서 이미 미발(未發)의 중을 잃고,

물에 감응되었을 때에는 지나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하는데, 어찌 그 이발(已發)이 화(和)할 수 있겠습니까.

군자는 이 때문에 근심하므로 궁리하여 선(善)을 밝히고, 돈독한 뜻으로 기(氣)를 거느리며,

함양하여 정성을 보존하고, 성찰하여 거짓을 버리어 이로써 그 혼란(昏亂)을 다스린 뒤에 감응하지 않았을 때에는,

지허지정(至虛至靜)하여 감공형평(鑑空衡平)한 체(體)가 비록 귀신이라도 그 끝을 엿볼 수 없고

감응할 때에는 절(節)에 맞지 않는 것이 없어서 감공형평의 작용은 유행하여 머물지 않으니,

정대하고 광명한 것은 천지(天地)와 서참(舒慘)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학자의 용력(用力)으로 가장 효과를 얻기 어려운 것은 부념(浮念)입니다.

대개 악념(惡念)은 비록 실(實)하더라도, 만일 성실하게 위선(爲善)에 뜻을 둔다면 이것은 고치는 데 쉽습니다.

다만 부념(浮念)은 무사할 때에 문득 일어났다가 문득 없어져 자유를 얻을 수 없는 것이므로,

대개 온공(溫公)의 성의로도 오히려 분란(紛亂)한 것을 근심 하였는데, 하물며 초학자는 어떻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군실(君實 : 사마온공의 자)이 일찍이 사려(思慮)의 분(란(紛亂)한 것을 근심하여,

때로는 밤중에 일어나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았으니 가위 스스로 고생한다 하겠다." 하였습니다.

다른 날 또 말하기를, "군실이 근년에 와서 그런 병이 점차 비교적 줄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학문을 모르는 사람은 방심하여 그의 생각대로 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부념인 불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학자는 정좌수심(靜坐收心)하여 바로 부념의 요란한 것을 알게 됩니다.)

학자는 모름지기 항상 공경을 주로 하여 경각(頃刻)이라도 잊지 말 것이니,

일을 당하면 하나〔一〕를 주장하여, 마땅히 머물러야 할 데에 각각 머무르게 하고,

일이 없이 정좌하고 있을 때에는, 만약 생각이 일어나면 반드시 무슨 일인가 곧 각성하되

악념(惡念)일 것 같으면 곧 용맹하게 단절시키어, 털끝만큼이라도 나타날 실마리〔苗脈〕를 머물러 두지 말 것이요.

만약 선념(善念)이면서 마땅히 생각해야 할 일이라면 (이것은 선념이 때에 맞는 것입니다.)그 이치를 궁구할 것이요,

아직 요해(了解하지 못한 것을 요해하여 이 이치를 미리 밝게 할 것이다.

만약 이해(利害)와 관계없는 생각이거나, 혹시 선념일지라도 적당한 때가 아니면 이것은 부념입니다.

부념이 일어나는 것을 일부러 싫어하면 더욱 어지럽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이 싫어하는 마음도 역시 부념인데 부념인 것을 깨달아 안 뒤에는 다만 가볍게 추방하고

이 마음을 수습하여 그것과 함께 가지 말게 하면 그런 생각이 일어나도 다시 그치게 됩니다.

(염려가 분란할 때에, 이 마음으로 살펴 깨달아 그것이 부념인 줄 알고, 끌려 함께 가지 않으면 차츰 스스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용공(用功)하여 아침 저녁으로 씩씩하게 하여 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말고 게으른 생각을 내지 말 것이니,

만일 힘을 얻지 못하여 혹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한 생각이 들 때에는, 역시 반드시 정신을 가다듬어 일으키고,

마음 속을 정결하게 하여 일념(一念)도 없게 하고, 기상(氣象)을 청화(淸和)하게 하여, 오랫동안 순수하게 익혀서, 엉겨 정해지면,

항상 이 마음이 탁월하게 서 있어서, 사물에 이끌려 더럽혀지지 아니하고, 나의 시키는 대로 되어 뜻과 같지 않은 것이 없어서,

본체의 밝은 것이 가려지는 바가 없고, 밝은 지혜가 비추어 권도(權度)가 어긋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정(定)한 연후에 광명(光明)이 있는 것이니, 만약 이역(移易)하여 정하지 않으면, 어찌 광명이 있겠느냐." 하였습니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급하게 조석(朝夕)으로 효과를 기대하여, 효과가 없으면 곧 타락(墮落)하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정심(正心)은 종신의 사업입니다.

그 중요한 것은 방씨(方氏)의 이른바 "중허(中虛)하면서 주재(主宰)가 있다."는 것이오니, 바라옵건대 유념(留念)하시옵소서.

 

< 주 >

69) 임금에게 올리는 간단한 형식의 상소문(上疏文).

70) 도가(道家) 계통의 서적을 말한다. 〔黃帝頊之道存乎 師尙父曰 在丹書〕《大戴禮武王踐》

71) 홍범(洪範)의 구주(九疇)를 말한다. 〔聖賢之道不明 則三綱淪 而九法〕《韓愈與孟尙書書》

 

 


제9장. 검 신(檢身)

 

신이 상고하옵건대, 정심(正心)은 안을 다스리는 것이요, 검신(檢身)은 밖을 다스리는 것으로서, 이것은 사실 똑같이 하는 일이요,

오늘 정심을 하고 내일 검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공부는 안과 밖의 구별이 있기 때문에 두 장으로 나눈 것입니다.

◆ 다음은 몸을 공경하고 예법을 조심하는 공부에 대한 말씀

공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공경하지 않음이 없지만 몸을 공경하는 것이 큰 일이 된다.

몸이라는 것은 어버이의 가지니, 감히 공경하지 않을 것이랴.

그 몸을 공경하지 못하면 이것은 어버이를 상하는 것이요, 그 어버이를 상하면 이것은 그 근본을 상하는 것이요,

그 근본을 상하면 가지도 따라 망하게 되느니라." 하였습니다. (예기(禮記)하동. ○공자의 말은 여기서 그침.)

장락 유씨(長樂劉氏)는 말하기를, "몸은 비록 내게 있는 것이지만 그 기운은 어버이로부터 받았고 선조에게서 전하여온 것이니,

자기가 가볍게 생각하여 욕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군자는 음탕한 소리와 어지러운 색을 듣고 보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음란한 풍악과 사특한 예절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태만하고 간사하고 편벽한 기운을 몸에 두지 않아서, 귀·눈·코·입·마음·몸 등의 모든 것이 모두 순하고 바름으로 말미암아 그 의(義)를 행하게 한다.

서산진씨(西山眞氏)는 말하기를, "군자가 스스로 수양하는 것은 다른 것이 없고, 안과 밖으로 그 공이 이르게 하는 것뿐입니다." 하였습니다.

예법과 음악은 잠시도 몸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니 중심이 잠시라도 화평하지 않고, 즐겁지 않으면 야비하고 간사한 마음이 들어오며,

외모가 잠시라도 장엄하지 않고, 경건(敬虔)하지 않으면 태만한 마음이 쉽게 들어오는 것이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들어온다〔入〕는 한 글자는 바로 그것이 밖에서 유인되어 그렇게 되는 것이요,

본심에 사실 이런 나쁜 것이 있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데 본시 있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 안을 차지하여 주인이 될 수 있다면 이것이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였습니다.

사람은 예법이 있으면 편안하고 예법이 없으면 위험하다.

공자는 말하기를, "예법이 없으면 손·발을 둘 데가 없고, 귀·눈을 더 할 데가 없어서, 진퇴(進退)하며 읍양(揖讓)하는 데에 규칙이 없게 된다.

이런 때문에 거처하는 데는 어른과 어린이가 그 분별을 잃으며, 집안에서는 삼족(三族)이 그 화목을 잃으며, 조정에서는 관작(官爵)이 그 차례를 잃으며,

사냥하는 데에는 무술 다루는 일〔戒事〕이 그 계책을 잃으며, 군중〔軍中〕에서는 무공(武功)이 그 법칙을 잃으며,

궁실이 그 절도를 잃으며 양정(量鼎)은 그 원모습을 잃고, 맛이 그 때를 잃으며, 음악은 그 절차를 잃고, 수레는 그 바퀴를 잃으며,

귀신이 그 흠향함을 잃고, 상사에 그 슬픔을 잃으며, 변명하여 설명함에 그 당(黨)(당은 유(類)입니다.)을 잃으며,

벼슬이 그 체모를 잃고, 정사가 그 시책(施策)을 잃으며, 몸에 더하고 앞에 놓음에 모든 움직임이 그 마땅함을 잃는다." 하였습니다.

○관의(冠義)에 말하기를, "대개 사람의 사람된 소이는 예의(禮義)인데, 예의의 시초는 용체(容體)를 바루고, 안색을 정제하고, 말씨를 순하게 함에 있다.

용체가 바르고, 안색이 정제하고, 말씨가 순한 후에 예의가 갖추어져서 바른 군신이 되고,

부자가 친히 하며, 장유가 화목하여, 군신이 바루 되고, 부자가 친해지고, 장유가 화목한 후에 예의가 서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공부하는 이가 예의를 버린다면 배불리 먹고 종일토록 생각하고,

일하는 것이 없이 하류의 백성들같이 되고, 하는 일이란 옷입고 밥먹는 것과 즐기고 노는 즐거움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어떤 이가 정숙(正叔)선생을 위로하여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예법에 조심하기를, 4·50년이나 하시니 매우 수고롭고 괴롭겠습니다." 하니,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날마다 편안한 곳으로만 다니니 무엇이 괴로우리오.

다른 사람들은 날마다 위태로운 곳으로만 다니니 그것이 수고롭고 괴로운 일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위의(威儀) 용지(容止)의 규칙에 대한 말씀

○「시경」에 이르기를, "주밀한〔抑抑〕위의(威儀)는 덕의 바른 곳〔隅〕이로다.

위의를 공경하고 조심하여야 백성의 법칙이로다." 하였습니다.(대아(大雅)의 억편(抑篇))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억억(抑抑)은 주밀한 것이요. 우(隅)는 가의 모난 곳〔廉角〕이다." 하였습니다.

○정씨(鄭氏) 말하기를, "사람이 위의에 주밀하고 자세한 것은 그 덕이 반드시 엄정(嚴正)함으로서이다.

그러므로 옛날 어진 이는 도를 행하고 마음이 평정하여 밖을 보아서 안을 알 수 있는 것이니

궁실(宮室)의 제도에서 안에 먹줄을 쳐 곧게 하면 밖에 가녁이 모나 바른 곳〔隅廉〕이 있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증자(曾子)는 말하기를, "군자가 도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세 가지가 있다.

용모를 움직이는 데에는 사나움과 거만함을 멀리 하고, 안색을 바루 하는데에는 믿음을 가까이 하며,

사기(辭氣)를 내는 데에는 비루하고, 어긋남을 멀리 해야 할 것이다.

<제사 드리는 데 쓰는> 변두(豆)에 관한 일 같은 것은 맡은 사람〔有司〕이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귀하다는 것은 소중하다는 것과 같다. 용모는 온 몸을 들어 말한 것이다.

사나움〔暴〕은 거칠고 사나움이요, 거만한 것〔慢〕은 버릇 없는 것이다.

믿어움〔信〕은 진실한 것이니, 안색을 바르게 하는 데에 믿어움을 가까이 한다 함은 안색만 장엄함이 아니다.

사(辭)는 언어요, 기는 성기(聲氣)요, 비루함〔鄙〕은 평범하고 누추한 것〔凡陋〕이다.

어긋남〔倍〕은 배(背)와 같으니 이치에 어긋남을 말하는 것이다.

변()은 대그릇이요, 두(豆)는 나무그릇이다.

이 글의 뜻은, 도(道)는 있지 않는 곳이 없지만 군자가 중히 여겨야 하는 것은 이 세 가지 일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몸을 닦는 요점이요, 정사를 하는 근본이니 공부하는 이가 마땅히 잘 간수하고 보살펴서 잠시라도 어길 수 없는 것이다.

변두에 관한 일 같은 것은 기구(器具)의 작은 것인데 도의 전체에서 보면 포함하지〔該〕않은 것이 없지만

거기에 대한 것은 맡은 이가 할 일이요, 군자의 중히 여길 바는 아니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용모와 사기(辭氣)는 이것이 바로 덕의 표시〔符〕다." 하였습니다.

○여형공(呂滎公)은 항상 말하기를, "뒷날 공부하는 이는 모름지기 기상(氣象)을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니 기상이 좋을 때는 온갖 일이 잘 된다.

기상이라는 것은 사령(辭令)과 용지(容止)의 경솔하고 진중함과 빠르고 천천히 하는 데에서 넉넉히 볼 수 있다.

군자와 소인을 여기서 분별할 뿐만 아니라, 귀하고 천하며 오래 살고 일찍 죽음도 여기에 의하여 정해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앉는 것은 시동(尸童)72)같이 하며, 서는 것은 재계함같이 해야 한다.(「예기」하동)

정씨(鄭氏)는 말하기를, "시동이 신의 자리〔神位〕에 있는데 앉기를 반드시 장엄하게 하니, 앉는 법이 반드시 시동이 앉듯이 하여야 하며,

사람이 기대서면 거만하고, 공손하지 못함이 많으니 재계하지 않을 때라도 마땅히 제사지내기 전에 재계함과 같이 하여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사씨(謝氏)는 말하기를, "명도선생(明道先生)이 종일 단정히 앉아 있기를 흙으로 만든 사람〔泥塑人〕같이 하다가도

사람을 대하게 되면 온통 한 덩어리의 화기로 되니, 이른바 바라보면 장엄〔儼然〕하다가도 나아가면 온화하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가 공부하는 이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호(顥:정자의 이름)를 이렇게 보지만 호는 매우 공부에 힘을 쓴다." 하였습니다.)

무릇 시선이 낯 위로 올라가면 거만한 것이요, 띠〔帶〕아래로 내려가면 근심하는 것이요, 옆으로 가면 간악한 것이다.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보는 것이> 낯 위로 올라가는 자는 기운이 교만하니 사람에게 낮추어 대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으며,

띠 아래로 내려가는 자는 그 정신을 뺏긴 것이니 근심이 마음에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눈길이 옆으로 가면 반드시 부정한 마음이 가슴 속에 있는 것이니, 이것은 군자로서 삼가야 할 일이다." 하였습니다.

벤〔割〕것이 바르지 않으면 먹지 않으며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는다. (「논어」○공자의 사실을 기록한 것.)

주자는 말하기를, "잠시라도 바른 데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사씨(謝氏)는 말하기를, "성인은 마음이 바른 데에 자리 잡았으므로 바르지 못한 데에는 작더라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옛날 군자는 반드시 옥을 찻는데, 오른 쪽에는 치(徵)와 각(角)으로 하고 왼쪽에는 궁(宮)과 우(羽)로 하였다. (「예기」하동)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치·각·궁·우는 옥소리에 해당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오음(五音)에 있어서> 치는 일〔事〕이 되고 각은 백성이 되기때문에 오른 쪽에 있으니, 오른 쪽은 동작하는 방위가 되는 것이다.

궁은 임금이 되고, 우는 물건이 되는데 임금의 도는 고요하여야 하고, 물건의 도는 쌓여야 하기 때문에 왼 쪽에 있으니, 왼 쪽은 바로 일 없는 방위이다.

상(商)을 말하지 않은 것은 혹, 그것이 서녘의 쌀쌀한 가을 소리〔肅殺之音〕이기 때문에 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하였습니다.

나아가는〔趨〕데에는 채제(采齊)의 <시로>하고 행하는 데에는 사하(肆夏)의 <시로>하며 두루 도는 것(도는 것을 말합니다.)은 규(規)에 맞고,

꺾어 도는 것은 구(矩)에 맞아, 나가면 읍하고 물러가면 처든〔揚〕연후에야 옥소리가 울리는 것이다.

때문에 군자가 수레에 있으면 방울소리〔鸞和之聲〕73)를 듣고, 걸어갈 때에는 옥패물을 올리니 그래서, 그르고 치우친 마음이 들어갈 곳이 없는 것이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나갈 때에는 채제의 시를 노래하여 절차로 삼고, 행할 때에는 사하(肆夏)의 시를 노래하여 절차로 삼는다.

규에 맞는 것은 둥근〔圓〕것이요, 구에 맞는 것은 모난〔方〕것이다.

나가서 앞으로 하면 그 몸이 약간 굽으니 읍하는 것 같고, 물러가서 뒤로 하면 그 몸이 좀 들쳐지기 때문에 처든다고 하는 것이다.

나가고 물러나고, 구부리고, 처드는 것이 모두 거기에 맞는 절차를 얻기 때문에 옥패물의 울리는 소리가 장연(然)하여 들을 만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몸가짐과 행동하는 것〔動容周旋〕이 모두 예법에 맞는 것은 성한 덕이 지극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숙인(淑人) 군자는 그 예의가 어긋나지 않도다.

그 예의가 어긋나지〔〕않으니 사방 나라를 바르게 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조풍시구편(曹風鳩篇))

주자는 말하기를, "특()은 어긋나는 것이니, 일정한 법도가 있고 그 마음이 한결같기 때문에 예의가 어긋나지 않으며,

예의가 어긋나지 않으면 사방 나라를 바루할 수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북궁문자(北宮文子)는 말하기를, "위엄이 있어 두려울 만한 것을 위(威)라 하고, 법도가 있어 법받을 만한 것을 의(儀)라 한다.

임금이 임금으로서의 위의가 있으면 그 신하가 두려워 사모하고, 본받아 법하기 때문에 능히 그 국가를 소유하고 어진 소문이 오래도록 가는 것이며,

신하가 신하로서의 의의가 있으면 그 아랫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사모하기 때문에 능히 그 벼슬자리를 지키고 삼족을 보전하며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하도 모두 이와 같을 것이니, 이래서 위 아래가 서로 굳건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위(衛)나라 시에, '위의가 점잖으니〔〕선택할 것이 없다.'하였는데, 이것은 군신·상하·부자·형제·내외·대소가 모두 위의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주(周)나라 시에는 이르기를, '친구들의 돕는 것은 위의로 돕는다.'하였으니, 친구의 도는 반드시 서로 위의로 교훈삼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때문에 군자는 위(位)에 있으면 두려워할 만하고 은혜를 베푸는 것은 사랑 받을 만하고, 나가고 물러가는 것은 법도가 될 만하며,

주선하는 것은 본받을 만하고, 용모와 거동은 볼 만하고, 하는 일은 법될 만하고 덕행은 따를 만하고, 성기(聲氣)는 즐길 만하며 동작에 문채가 있고,

언어에 빛이 있어 아랫사람에게 이르르니 이래서 위의가 있다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옛부터 위의를 논하는 이 문자(文子)<의 말>처럼 갖춘 것이 없다.

대개 위(威)란 엄하고 사나운 것이 아니요, 의관을 바루 하고, 첨시(瞻視)를 높이며 의젓하여 사람들이 보고서 존경하는 것이니,

이것이 위(威)라는 것이며, 의(儀)란 수식함이 아니요, 몸 가짐과 동작이 예법에 맞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의(儀)라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경계하고 다듬어서 게으름이 없어야 함에 대한 말씀

○소공(召公)이 무왕(武王)에게 고하기를, "아, 밝은 임금은 덕을 삼가나니, 덕이 성하면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군자를 업신여기면 인심을 다하게 할 수 없고 소인을 업신여기면 그 힘을 다하게 할 수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여오(旅獒), 하동)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덕이 성하면, 몸가짐과 옷차림이 모두 예법에 맞아 능히 업신여기는 마음이 없어질 것이니,

덕을 삼가는 것은 그 지극한 데에까지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을 말한 것이다.

덕이 지극하지 않으면 업신 여기는 마음이 있음을 면하지 못한다.

군자를 업신여기면 안색을 보고 일어나, 저편에서 반드시 펄쩍 뛰고 멀리멀리 바라보면서 가버릴 것이니, 어찌 그 마음을 다하리요,

소인을 업신여기면 비록 미천하고 위엄을 무서워하여 부리기 쉬울 것 같지만,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도 신명이 있을 것이니

또한 어찌 능히 그 힘을 다할 것이랴." 하였습니다.

귀 · 눈의 가는 대로만 따라가지 않으면 모든 일의 절도가 정(貞)하기만 하다.

채씨는 말하기를, "정(貞)은 바른 것이다. 귀·눈의 좋아하는 대로 따라 가지 않으면 온갖 하는 일이 바르기만 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밤·낮으로 혹시라도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다.

조그마한 행실에 긍지(矜持)하지 않으면 끝내는 큰 덕에 누(累)가 되는 것이니 아홉 길의 산을 만드는 데 공이 한 삼태기 모자라는데서 무너지게 된다.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혹시(或)는 만일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긍(矜)은 긍지한다는 의미의 긍이다." 하였습니다.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이것이 곧 덕을 조심하는 공부이다.

혹(或)이라는 한 글자가 가장 의미가 있으니 한 번이라도 잠시 쉬면 이것은 덕을 조심함이 아니다." 하였습니다.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임금의 한 몸은 온갖 일〔萬化〕의 근원이니 진실로 이치에 있어 털끝만큼이라도 다하지 못함이 있으면

이것은 곧 생민(生民)에게 무궁한 해를 끼치는 것으로서 창업 수통(創業垂統)74)의 <큰 일을> 계승하는 길이 아니다.

무왕 같은 성인도 소공 이 이렇게 경계하였으니, 후대의 임금으로서 깊이 생각하고 다시금 명념하지 않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상고하옵건대, 마음은 몸의 임자가 되고 몸은 마음의 그릇이 되는데, 임자가 바르면 그릇도 당연히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자연히 바루되게만 맡겨 두고 검칙(檢飭)하며 정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대학」의 차례에 수신이 정심(正心)의 뒤에 있는 것인데,

그 힘쓰는 방법은 용모와 시청(視聽)과 언어와 위의를 한결같이 천리에 좇을 따름입니다.

형상과 빛깔〔形色〕은 천성이니, 한 몸 가운데 움직임과 고요함이 어느 것이 천칙(天則)이 없는 것이겠습니까.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는 이 법칙을 밝히는 것이요, 성의·정심·수신은 이 법칙을 행하는 것이니,

두 가지가 모두 갖추어져야만 몸소 행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입니다.

세상사람 중에는, 혹, 얼굴과 겉모습은 수식하여 매우 볼 만하게 하면서도 안에는 <착한 마음을> 지키고 보존하는 노력이 없는 이가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좀도둑〔穿〕에 비할 것이니 의논할 것이 되지 못합니다.

만일 그의 타고난 바탕이 욕심이 적어서 물욕의 유인을 받지 않고 마음 편하게 혼자서 즐기며, 다만 안으로 마음을 바르게만 하여,

반드시 외모에 구속할 것이 없다하는 이도 역시 도에는 들어갈 수 없고 끝내 세속중의 호인(好人)이 되고 말 것입니다.

더구나 외모가 장엄하지 못하면 마음도 게으르게 되어 방탕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을 것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래서 그 마음을 바루 하고서도 또 그 몸을 잘 다스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에 대한 단속이 없는 자는 마음이 반드시 바루 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마음을 바루 하였다면 무슨일이나 바르도록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어찌 자기의 몸으로 부정한 것에 안심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몸을 닦지 않음도 역시 마음의 부정 때문입니다. 밝은 생각으로 유의하시기 바라나이다.

 

< 주 >

72) 옛날에 제사지낼 때에 신위(神位) 대신으로 그 자리에 앉히던 어린 아이를 가리킨다.

〔孝子之祭 不見親之形象 心無所繫 立尸而主意焉〕《儀禮 士虞禮注》

73) 수레의 위에 달린 난(鸞)과 화(和)의 두 방울소리를 말한다. 〔鸞在衡 和在軾〕《禮記玉 藻君子聞鸞和之聲註》

74) 어느 왕조를 처음으로 창건한 것을 창업이라 하고, 그 후대에 물려 준 것을 수통(垂統)이라 하니 통은 그 계통을 말하는 것이다.

 


제10장. 회덕량(恢德量)

 

신이 상고하옵건대 상편 9장에서 이미 몸닦는 차례를 자세히 말하였습니다.
<여기서는> 다시 회덕량(恢德量)·보덕(輔德)·돈독(敦篤)의 3장으로 거듭 그 남은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개 덕량이 넓지 못하면 적은 것을 얻어도 만족하고, 한 구비〔一曲〕에 치우쳐서 고명박후(高明博厚)한 지경에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덕량을 넓히는 것이 몸을 검속하는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 덕을 나아가게 하는 도량을 넓힘에 대한 말씀

공자는 말하기를, "잘한 것은 남이 하였다 하고, 잘못한 것은 제가 하였다 하면 백성이 다투지 않는다.
이런고로 군자는 <자신의> 능한 것으로 남을 병들게 여기지 않고,
남의 능하지 못한 것으로 그 사람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예기)

엄릉 방씨(嚴陵方氏)는 말하기를,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네가 교만하지 않으면 천하의 <사람들이> 너와 더불어 잘하는 것을 다투지 않으며,
네가 자랑하지 않으면 천하의 <사람들이> 너와 더불어 공을 다투지 않는다.'하였다.
잘한 것은 남이 하였다 하고, 잘못한 것은 제가 하였다고 한다면, 교만하고 자랑하지 않는다고 할 만하다.
때문에 백성이 다투지 않는것이다." 하였습니다. (임천 오씨(臨川吳氏)는 말하기를,
"백성이 화(化)하면 역시 잘한 것을 남에게 사양하여 다른 사람과 더불어 다투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사람을 부끄럽게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잘한 것을 자기의 소유로 하면 그 잘한 것을 상실하고, 능한 것을 자랑하면 그 공을 상실한다. (상서열명(商書說命))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스스로 그 잘한 것을 소유하면 자기가 더 힘쓰지 않아서 덕이 이지러지며,
스스로 그 능한 것을 자랑하면 사람이 힘을 다하지 않아서 공이 떨어진다." 하였습니다.
○동래 여씨(東萊呂氏)는 말하기를, "도리는 무궁한 것이니
공부하는 이는 먼저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였습니다.

「주역」에 이르기를, "땅의 형세는 곤(坤)하니 군자가 본받아 후한 덕으로 만물을 심는다." 하였습니다. (곤괘(坤卦) 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땅의 후한 형상을 보아서, 깊고 후한 덕으로 모든 물건을 용납하여 싣는다." 하였습니다.

함(含)하고, 홍(弘)하고, 광(光)하고, 대(大)하여 만물〔品物〕이 모두 형통한다." (곤괘(坤卦) 단사(彖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함·홍·광·대의 네 가지로 곤도(坤道)를 형용한 것이다.
함은 포용(包容)하는 것이요, 흥은 너그러운 것이요, 광은 밝은 것이요, 대는 넓고 두터운 것이다.
이 네 가지가 있기 때문에 능히 하늘의 공을 이어받드는 공을 이루어서 만물이 모두 형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묻기를, "사람들이 의론을 할 때에는 대부분 자기 마음 그대로 하고
함용(含容)하는 기운이 없는데 이것은 기운이 불평한 것이 아닙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원래 이것은 기운이 불평한 것이지만 역시 도량이 좁은 것이다.
사람의 도량이란 학식을 따라 자라지만 또 학식은 높으면서도 도량이 자라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학식이 사실 이르지 못함이다.
대개 다른 일은 사람이 모두 억지로 할 수도 있지만, 학식이나 도량만은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사람은 두초(斗)75)의 도량도 있고, 부곡(釜斛)76)의 도량도 있으며,
종정(鍾鼎)77)의 도량도 있고 강하(江河)의 도량도 있는데 강하의 도량이 역시 큰 것이다.

그러나 <강하는> 물 가가 있고 때로 가득 차기도 한다.
오직 천지(天地)의 도량은 가득 차는 일이 없기 때문에 성인은 천지의 도량인 것이다.
성인의 도량은 도(道)요, 보통 사람으로서 도량이 있는 것은 타고난 바탕이니 타고난 바탕에 있는 도량은 한정이 있는 것이다.
대저 <인간들의> 6척 몸뚱이의 역량은 다만 이런 것이니, 가득 차지 않으려 하여도 될 수 없는 것이다.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등애(鄧艾)78)는 정승의 자리에 있으면서 나이 70에 처세가 매우 좋았지만,
촉(蜀)나라를 항복받아 공이 있게 되면서는 <그 마음이> 움직였으며,
<진(晋)나라 정승> 사안(謝安)79)은, 소식을 듣고 객을 대하여 바둑을 두며 보고가 들어와도 기뻐하지 않다가
<바둑을 다 두고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나막신 굽〔齒〕이 부러졌으니 억지로 하는 일은 끝내 될 수 없는 것이다.
또 사람이 크게 취한 후에 더욱 공손하고 조심하는 자가 있기도 한데, 다만 더욱 공손하고 조심하는 것은 <그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비록 함부로 구는 자와는 같지 않지만 술에 의하여 움직여진 점은 한 가지이다.
또 귀공자가 있어 지위가 더욱 높아지면서도 더욱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기서 낮추어 겸손하기만 하는 것은 이것도 바로 움직인 것이다.
교만 무례한 자와는 같지 않다고 하지만 그 지위로 하여 <본심이> 움직여진 것은 한 가지이다.
오직 도를 아는 이는 도량이 자연 넓고 커져서 애써 하지 않아도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 중에 소견이 낮고 보잘 것 없는 이가 있는데, 다름 아니라, 역시 학식과 도량이 부족한 탓이다." 하였습니다.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마음이 크면 온갖 물건이 모두 통하고, 마음이 작으면 온갖 물건이 모두 병든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공부하는 이는 모름지기 기개와 도량을 길러 열리고 넓게 하여야 한다." 하였습니다.

○설씨(薛氏)는 말하기를, "첫째로, 혼후(渾厚)하며, 포함(包涵)하고,
조용하며, 광대(廣大)한 기상이 있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도량이 좁은 자는 물건을 용납하지 못하니, 좁고 막힌 데에서 만 가지 병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 다음은 무리를 포용하는 도량을 넓힘에 대한 말씀

○「주역」에 이르기를, "군자는 무리에 임함에 어둠으로써 하여 밝게 한다." 하였습니다. (명이(明夷)82)의 상사(象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밝음을 쓰기를 지나치면 살핌에 손상이 된다. 너무 살피면 일을 다하여 함(含)·홍(弘)의 도량이 없기 때문에,
군자는 그 밝게 살피는 것을 끝까지 하지 않고 어둠을 쓴다.
그런 후에야 능히 물건을 용납하고 무리를 화목하며, 무리가 친하고 화목하는 것이니, 이것은 어둠을 쓰는 것이 그대로 밝음이 되는 것이다.
만일 스스로 그 밝은대로 하여 살피지 않는 것이 없다면 관후(寬厚)·함용(含容)의 덕이 없으며,
인정이 어그러지고 의심하여 불안하게 될 것이니, <이것은> 무리를 다스리는 도를 잃는 것이니,
이야말로 밝지 못함이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완악한 이에게 성내고 미워하지 말며, 한 평범한 사람에게 갖춤을 구하지 말라. (주서(周書) 군진(君陳) 하동)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사람이 아직 화하지 못하였음을 분하여 하지 않으며,
그 사람이 능히 할 수 없는 것을 갖추어 구하지 않음이다." 하였습니다.

○위개(衛)는 말하기를, "사람이 미치지 못함이 있으면 정(情)으로써 용서하고,
옳지 못한 의사로 서로 관계하면 이치로써 보아둘 것이다. 때문에 종신토록 기쁘고, 성내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반드시 참음이 있어야 일을 이룸이 있으며, 용납함이 있어야 덕이 커지게 된다.

채씨는 말하기를, "공자는 말씀하시기를,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 계교를 어지럽힌다.'하였으니
반드시 참는 바가 있은 후에야 능히 이룸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억지로 제어하고, 힘으로 기르는 의사가 있다,
만일 넓고 여유 있으며 너그러워서 크게 둘러싼 듯이 여지가 있다면 이야말로 덕의 큰 것이다.
참는 것은 일을 말함이요, 용납하는 것은 덕을 말함인데, 각기 깊고 옅음으로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공평한 도량을 넓히는 일에 대한 말씀

○편(偏)함이 없고, 피(陂)함이 없어 왕의 의(義)를 좇고, 좋은 것을 한다고 하지 말고 왕의 법도를 좇을 것이며,
싫은 것이 있다 하지 말고, 왕의 길을 좇아라.
편(偏)함도 없고 당(黨)함도 없으면 왕도(王道)가 탕탕(蕩蕩)하며,
당함도 없고 편함도 없으면 왕도가 평평(平平)하며, 반(反)함도 없고, 측(側)함도 없으면 왕도가 정직(正直)할 것이다. (주서홍범(周書弘範))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편(偏)은 중도가 못됨이요, 피(陂)는 공평하지 못함이다.
작호(作好)와 작오(作惡)는 좋아하고 미워함으로 더한다는 뜻이다.
"(장씨(張氏)는 말하기를, "천하에 공변됨이 있으면, 좋아함과 미워함을 지을 수 없다. 짓는다면 <그것은> 그른 것이다." 하였습니다.)
당(黨)은 공변되지〔公〕못함이요, 반(反)은 정상과 어긋남이고, 측(側)은 바르지 못한 것이다.
편·피·호·오는 자신의 사사로움이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요, 편·당·반·측은 자신의 사사로움이 일에 나타나는 것이다.
탕탕(蕩蕩)은 넓고 먼 것이요, 평평은 평이한 것이며, 정직은 치우쳐 사특하지 않음이다." 하였습니다.

○손씨(孫氏)는 말하기를, "큰 길은 매우 평탄하지만 백성은 지름길을 좋아하는데,
욍의 도(道)와 왕의 길〔路〕은 이른바 매우 평탄한 그 길이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공변된 것은 하나인데, 사사로운 것은 일만 가지로 다르다.
인심이 같지 않음이 얼굴이 다름과 같은 것이니, 다만 이것이 사심(私心)인 것이다." 하였습니다.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안팎을 합하여 물건과 나를 평등하게 하는 것이 도를 보는 큰 실마리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이 마음이 휑하여〔曠然〕털끝만한 사사로운 뜻도 없으면 곧 하늘·땅과 도량을 같이 하는 것이니,
여기에 천하를 한 집으로 삼고 중국으로 한 사람을 삼는 의사가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상고하옵건대, 도량의 넓지 못함은 기질(氣質)의 병에 있사온즉,
덕과 도량을 넓히는 데는 다른 공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기질을 바로잡는 한 가지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따로이 한 장(章)을 만든 것은 임금의 덕은 더욱 그 도량을 크게 함에 있는 것이므로 특별히 내세운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천승(千乘)83)의 나라를 얻고서도 크게 생각치 않고 겸연하고 스스로 겸손하는 자가 있으며,
한 고을의 조그마한 벼슬〔一命之官〕을 얻고도 거만하게〔肆然〕높은 척하는 자가 있으니, 이것은 도량이 크고 작은 때문입니다.
도량이 작은 자는 그 병통이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편곡(偏曲)이요, 둘째 자긍(自矜)이요, 셋째 호승(好勝)입니다.
편곡한 자는 정체(停滯)하고 두루하지 못하니, 공평한 마음으로 이치를 살피지 못하며, 자긍하는 자는 적게 얻은 데에도 만족하니,
뜻을 겸손하게 하여 덕에 나가지 못하며, 호승하는 자는 그른 것을 꾸미기에 태연하여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서 선(善)을 좇지 못하니,
세 가지가 모두 하나의 사심을 따름입니다.
아, 하늘과 사람은 원래 한 가지로서 다시 분별이 없었지만,
하늘과 땅은 사(私)가 없고 사람은 사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하늘·땅과 더불어 그 큼을 같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인은 사가 없기 때문에 덕이 하늘·땅에 합치는 것이며, 군자는 사를 버리기 때문에 행실이 성인에 합치는 것이니,
공부하는 이는 마땅히 그 사를 극복하고 도량을 넓혀서 군자와 성인에 미치기를 애써야 할 것입니다.
사를 다스리는 방법은 학문하는 것뿐이니 학문이 나아가면 도량도 커지는 것으로서, 타고난 바탕의 좋고 나쁜 것은 의논할 것이 아닙니다.
힘쓰고 또 힘써 그치지 않아, 마음이 환하게 트여서 털끝만한 사사로운 뜻도 그 사이에 관계하는 일이 없게 된다면,
순(舜)과 우(禹)가 천하를 소유하고서도 관계하지 않으며 문왕(文王)이 도를 바라보면서도 아직 보지 못한 것같이 하는 것도
여기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유의하시기를 엎드려 바라나이다.

 

< 주 >

75) 두(斗)는 한 말, 초()는 한 말 두되들이의 대그릇(竹器). 도량이 좁은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76) 부(釜)는 6말 4되, 곡(斛)은 10말 드는 그릇이며 두초의 도량보다 조금 큰 것을 말한다.

77) 종(鍾)은 6곡(斛) 4두(斗)가 드는 그릇이며, 정(鼎)은 큰 솟이니 상당히 도량이 넓은 것을 말한다

78)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 사람. 원제(元帝) 때 종회(鍾會)와 함께 촉(蜀)을 공격하여 크게 전공을 세워
후주(後主)를 항복받아 벼슬이 태위(太尉)에 이름. 뒤에 종회의 미움을 사서 반역죄로 모함되어 처형당하였다.

79) 진(晉)나라 양하(陽夏) 사람. 자는 안석(安石). 인품이 고결하여 젊어서부터 명망이 높았다.
뒤에 환온(桓溫)의 부름을 받고 벼슬길에 나왔으며 부견(符堅)의 100만 군대를 회비(淮肥)에서 대파하여 태보(太保)가 되었다.

80) 진(晉)나라 양하(陽夏) 사람. 사안(謝安)의 조카로 자는 현도(玄度).
사안의 천거로 건무장군(建武將軍)이 되어 정병(精兵) 8천을 이끌고 진왕 부견(符堅)의 100만 대군을 비수(肥水)에서 대패시켰다.

81) 진(晉)나라 때 오호 십육국(五胡十六國) 중의 하나인 전진(前秦)의 왕.
자는 영고(永固) 또는 문옥(文玉). 전연(前燕)과 전량(前)을 항복시킨 후 강북을 통일,
이어 동진을 멸하고 천하를 통일하려고 하였으나 진(晉)나라 사현(謝玄) 등에게 패전하고 돌아와 뒤에 부하에게 살해 당하였다.

82) 「주역」64괘 중 36번째 괘.

 

 

제11장. 보 덕(輔德)

 

신이 상고하온즉, 천자로부터 필부(匹夫)에 이르기까지 친구를 기다려서 덕을 이루지 않음이 없으니,
증자의 이른바, "친구로 인(仁)을 돕는다."는 말이 이것입니다.
스스로 <몸을> 다스리는 조목들은 이미 앞에서 갖추어 말하였으므로 보덕(輔德)에 대한 것을 그 다음으로 하여,
바른 선비를 친히 하여 간하는 것을 좇아 허물을 고치는 뜻을 논술합니다.

◆ 바른 선비를 친근히하는 일에 대한 말씀

공자는 말하기를, "유익한 친구가 세 친구요, 손해 되는 친구가 세 친구이다.
곧은〔直〕친구와, 성실한〔諒〕친구와, 들은 것이 많은 친구는 유익하고,
편벽(便)된 친구와, 아첨을 잘하는 친구와, 편영(便)된 친구는 손해가 된다."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친구가 곧으면 자기의 허물을 듣게 되고,
친구가 진실하면 정성스러운 데에 나아가게 되며, (양(諒)은 믿음직스러움입니다.) 친구가 들은 것이 많으면 밝은 데에 나아가게 된다.
편(便)은 익숙한 것이니, 편벽은 위의(威儀)에 익숙하고 곧지 못함이다.
선유(善柔)는 잘 뵈여 기쁘게 하는 데에만 잘하고 진실하지 못한 것이며, 편영은 입으로 말하는 데에만 익숙하고 듣고 본 실적이 없는 것이니,
세 가지는 손해와 이익이 서로 반대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따르는 신하〔僕臣〕가 바르면 임금도 바르고, 따르는 신하가 아첨하면 임금은 제가 잘난〔自聖〕줄 안다.
임금의 덕도 신하에서 오고, 부덕(不德)도 신하에서 온다. (주서(周書) 경명편(命篇) ○목왕(穆王)이 백경(伯)에게 명하여 태복정(太僕正)을 삼은 글.)

채씨는 말하기를, "자성(自聖)은 스스로 성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옛날부터 소인이 임금의 덕을 깎아버려 어둡고 사납고 사치하고 방종하게 하는 일이 어찌 다함이 있으리요.
스스로 잘난 체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해되는 것이 옅은 것 같은데, 목왕이 홀로 이 말로써 결단해 말한 것은
대개 소인이 그 임금을 혹하게 하여 반드시 헛된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부풀게 하여 거만스럽게 스스로 잘난척하게 되면
누구나 자기 같은 사람이 없다 하고, 제 말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려 한다.
그런 후에는 법도 있는 사람과 바른 말하는 선비는 날로 멀어가며, 유쾌하고 마음대로 하는 일이 혹시라도 그 사이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스스로 잘난 척 하는 징조가 이미 나타나서 온갓 병이 따르는 것이다.
어둡고, 사납고, 사치하고, 방종한 것은 모두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니 의논할 것이 못된다." 하였습니다.

종축(宗祝)은 사당에 있고, 삼공(三公)은 조정에 있으며, 삼로(三老)는 학교에 있다. 왕의 앞에는 무당이요,
뒤에는 사관(史官)이며, 복서(卜筮)와 고유(侑)가 모두 좌우에 있으니, 왕은 중앙에 거하여 중심에 하는 것이 없다.
지극히 바른 것을 지킬 뿐이다. (예기)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사당에는 종축이 있고, 조정에는 삼공(三公)이 있으며,
학교에는 삼로(三老)와 오경(五更)84)이 있어 예교(禮敎)를 밝혀 천하를 착하게 하는 것이 아님이 없는데,
임금이 그 가운데 거처하니 그 마음이 무엇을 할 것인가. 임금이 도리의 지극히 바름을 지키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서산 진씨(西山眞氏)는 말하기를, "무당은 제사를 맡아서 귀신의 일로 왕께 고하고,
(무당은 제사를 맡아 본래 부정한 것이 아니었는데, 후에 와서 잘못 변하여 사특한 말로 사람을 혹해서 바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관은 글을 맡아서, 삼황 오제(三皇五帝)의 일로 왕께 고하며, 점치는 것을 맡은 자는 길·흉의 사실로 왕께 간하고,
판수 늙은이〔之〕(곧 판수는 악관〔侑〕이니 음악으로 식사 때 반주하는 벼슬아치다.)는 노래와 시로 왕께 간한다.
한사람의 몸인데, 좌·우·전·후에서 끼고 도우니 비록 잠시나마 마음대로 하려 하지만 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초어(楚語)에 이르기를, '옛날 위(衛)나라 무공(武公)은 나이 95세이지만 오히려 온 나라에 글로 주의시켜 이르기를,
경(卿) 이하로 스승과 선비에 이르기까지 조정에 있는 사람이라면 나를 늙었다 버리지 말고,
반드시 아침저녁으로 공손하게 하고 조심하며 서로 경계하라.
내가 수레에서는 여분(旅賁)의 규정(「주례」에, "여분씨는 창과 방패를 가지고, 수레를 호위하여 나가는 일을 맡았다.
수레가 멈추면 수렛바퀴를 버틴다." 하였습니다.)이 있고, 집에 자리잡으면 관사(官師)의 법이 있으며,
궤()를 의지하면 송훈(誦訓)의 간(諫)(관사는 중하사(中下士)85)요, 송훈은 글 외우는 일을 맡은 벼슬이다.)이 있고,
침실에 있으면(설어(御)의 주의 설어는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이다.)가 있고, 일에 당하면 고()·사(史)의 인도가 있으며,
사사로이 거처할 때에는 사공(師工)의 외움이 있는데,(고사는 천도(天道)를 아는 자요, 사공은 악관이다.) 사관은 글에 실수하지 않으며,
눈 먼 이는 외우는 데에 실수하지 않아서 가르쳐 모신다.
여기서 좋은 경계문을 지어 스스로 경계한다.'하였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니 예성무공(睿聖武公)이라 시호하였다." 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의지〔馮〕(의지하는 것입니다.)할 이도 있고, 도울 이도 있으며 효도하는 이도 있고
덕이 있는 이도 있어서 인도〔引〕하고 도우〔翼〕면,
편안하고 즐거운 군자〔豈弟君子〕를 사방에서 법받으리로다." 하였습니다. (대아(大雅) 권아(卷阿)편)

주자는 말하기를, "빙(馮)은 가히 의지가 됨을 말함이요, 익(翼)은 가히 도욱이 됨을 말함이다.
효(孝)는 능히 어버이를 섬기는 사람을 말함이요, 덕은 자신에게서 얻어진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인(引)은 앞에서 인도함이요, 익은 좌우에서 돕는 것이다.
개제군자(豈弟君子)는 왕을 가리킨 것이니, 어진 이를 얻어 스스로 보좌하기를 이같이 한다면,
그 덕이 날로 닦아져서, 사방에서 법으로 삼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동래 여씨(東萊呂氏)는 말하기를, "어진 이의 행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반드시 효가 있고 덕이 있다고 한 것은 무슨 일인가.
대개 임금은 항상 자상(慈祥) 독실한 사람과 함께 거처하면, 선의 실마리를 일으키고 덕성(德性)을 함양(涵養)하며 조급한 것을 진정하고,
사특한 것을 소멸하여, 날마다 고치고 달마다 화하는 것이 언어간에 있지 않음이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사람 <쓰는 잘못>을 나무랄 것이 아니며, 정사의 실수를 비난할 것이 아니다.
대인(大人)이라야만 능히 임금의 마음 그른 것을 바르게 하나니, 임금이 어질면 어질지 않은 이가 없고, 임금이 옳으면 옳지 않은 이가 없으며,
임금이 바르면 바르지 않은 이가 없다. 한 번 임금을 바르게 하면 국가가 안정된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조씨(趙氏)는 말하기를, "적(適)은 허물〔過〕이요, 간(閒)은 그르게〔非〕여기는 것이요, 격(格)은 바루함〔正〕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임금의 사람 잘못 쓰는 것을 허물하여 비난할 것이 아니며, 행정의 실수를 비난할 것이 아니다.
대인의 덕이 있는 이라면, 능히 임금 마음의 바르지 못한 것을 바루하여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면 나라가 다스리지 못함이 없다.
대인은 큰 덕의 인물인데, 몸을 바루하면 물건이 바루되는 사람이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천하가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짐은 임금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에 달려 있다.
마음이 그르면 정사에 해가 되는 것이니, 이것은 밖에서 생기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옛날 맹자가 세 번 제(齊)나라 임금을 보고서도 일을 말하지 않으니 문인(門人)들이 의심하자,
맹자가 말하기를, '내가 먼저 그 사특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니 마음이 바루된 후에야 천하의 일이 따라서 다스려지는 것이라.'하였다.
대저 정사의 실수와 사람 쓰는 데의 잘못은 아는 자라면 고칠 수 있고, 곧은 자는 간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거기에> 있지 않으면 일마다 고쳐야 하고 <고친> 후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 나중에는 아주 고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 사람 쓰는 것이 글렀다.>고 하여 사람마다 버리고, 버린 후에도 다시 그런 사람을 쓴다면 나중에는 이루다 버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러므로 재상의 직책은 반드시 임금 마음의 그름을 바로하는 데에 있고, 그런 후에는 바루지 않음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임금 마음의 그름을 바로하는 일은, 대인의 덕이 있지 않으면 역시 될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왕의 지혜롭지 못함을 의혹〔或〕하지 말라.
비록 천하에서 쉽게 나는 물건이라 할지라도, 하루 따뜻하게〔暴〕하고, 열흘 차게 하면 능히 살 것이라고는 없게 된다.
내가 <왕을> 뵈옴이 드문데, 내가 물러나면 차게 하는 자가 이르르니, 내가 <왕의 어진 마음의> 싹을 돋아나게 함이 있다 한들 어찌할 것이랴.

주자는 말하기를, "혹(或)은 혹(惑)자와 <뜻이> 같다. 왕은 제(齊)나라 임금을 가리킨 것 같다. 포(暴)는 따뜻하게〔溫〕함이다.
내가 왕을 볼 때가 적으니 하루 동안 따뜻하게 하는 것과 같으며, 내가 물러나면 아첨하는 무리가 섞여 나오는〔雜進〕날이 많으니,
이것은 열흘 동안 차게하는 것인 즉 비록 싹이 돋아나는 것이 있다하더라도, 내가 또한 어찌할 수 있으랴." 하였습니다.

지금 바둑 두는 것이 작은 기술〔數〕이라고 하지만, 전심치지(專心致志)하지 않으면 될 수 없다.
혁추(奕秋)는 나라에서 제일 바둑 잘 두는 사람이다. 혁추로 두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치게 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전심치지하여 (혁추의 가르치는 말)만을 듣고, 한 사람은 <그 말을> 듣기는 하지만,
한편 마음으로는 홍곡(鴻鵠)이 날아올 것이라 하며, 활을 당겨 주살〔〕로 쏘아 마칠 것을 생각한다면,
비록 같이 배운다 하더라도 똑같이 잘 두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을 그들의 지혜가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바둑 두는 것〔奕〕은 위기(圍棋)이다. 수(數)는 기능〔技〕이요, 치(致)는 다하는 것이다.
혁추는 바둑 잘두는 사람인데, 이름이 추(秋)이다. 주살〔〕은 노끈으로 화살을 매어 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임금의 마음은 오직 수양하기에 있다.
군자는 착한 것으로 수양시키니 지혜롭고, 소인은 악한 것으로 수양시키니 어리석게 된다.
그러나 어진 사람은 멀어지기 쉽고, 소인을 친근하기 쉬우니, 이래서 적은 것이 많은 것을 이기지 못하고, 바른 것이 사특한 것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국가에 다스리는 날이 항상 적고,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은 것이 대개 이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정자가 신종(神宗)에게 고하기를, "천하의 일에, 우환은 항상 소홀하고 작게 여기는 데에서 생기고, 뜻은 역시 점점 익혀지는 데에 경계하여야 합니다.
이런 때문에, 옛날 임금은 비록 출입하고 조용한 한가로움〔閒燕〕중에도 반드시 옛 글을 외워 가르치고,
법의 말〔箴〕로 간하는 신하가 있어 좌·우·전·후에 바르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 그래서 그 덕업(德業)을 이룬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예로써 노성한 어진 선비들을 명하시되, 반드시 직책을 주어 수고롭게만 할 것이 아니라,
날마다 편한 자리에 가까히하고 도의를 강론하게 하여 성스러운 덕을 보좌하게 하십시오.
또 천하의 어질고 준걸된 이들을 뽑아서 곁에 모시고 법으로 따르게 하며, 아침저녁으로 맞아 보아서 착한 도리를 개진(開陳)하게 하고,
다스리는 체계를 강마(講磨)하게 하여, 듣고 봄을 넓혀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성상의 지혜가 더욱 밝고, 큰 계교가 참으로 튼튼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경연(經筵)을 논하는 차자(箚子)86)에서 말하기를, "옛날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보좌하였는데, 어려서부터 가까이 하였습니다.
보는 것은 반드시 바른 일이며, 듣는 것은 반드시 바른 말이며, 좌·우·전·후에 모두 바른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습관이 지혜와 함께 자라고 화(化)가 마음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사대부 집에서도 자제(子弟)를 잘 가르치려는 이도 반드시 명망과 덕행이 있고,
단아(端雅)하고 방정(方正)한 선비를 맞아 함께 거처하여, 젖고 물들어 〔薰染〕천성을 이루게 하기 때문에,

'젊어서 이루는 것은 천성인 것 같고, 습관은 자연인 것 같다.'합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폐하는 연세 많으시고 밝고 성스러운 바탕이 원래 타고 나셨다고는 하지만,
보좌 수양하는 길을 다하지 않을 수 없사온대, <그것은> 함양(涵養)하고 훈도(薰陶)함에 있을 뿐입니다.
대개 하루 중에 어진 사대부를 친근히 하는 시간은 많고, 내시(內侍)나 궁녀를 친근히 하는 시간은 적으면,
자연 기질(氣質)이 변화되어 덕기(德器)가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조정에서는 삼가 어질고 덕있는 선비를 선택하여 모시고 권장하고 강의하게 하며,
항상 두 사람을 머물게 하여 낮에는 당직하게 하고, 밤이면 한 사람은 숙직하게 하면서 찾아 물으시도록 하십시오,
때때로 내전에서 불러보시고 조용하고 한가롭게 말씀하신다면 점점 도의를 밝힐 뿐만 아니라,
사람의 정과 물건의 형세와 농사짓는 일의 간난(艱難)한 데에 이르기까지 오래되는 동안에 자연 통달하게 되실 것이니,
그저 항상 궁중에만 계시는 데에 비하여 유익함이 어찌 매우 크지 않겠습니까.
가만히 듣사온즉, 가끔가다 한번씩 경연을 열고 두어 줄 글을 강독하며, 여러 신하들이 나열하여 모셔 점잖게〔儼然〕있다가 물러가니,
감정과 의사가 서로 접하지 못한다 하옵니다. 이렇게 하고서도 보좌 수양의 공적을 얻으려 하신다면 역시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였습니다.

◆ 다음은 간언(諫言)을 좇는 것에 대한 말씀

○「주역」에 이르기를, "산 위에 못이 있는 것이 함괘(咸卦)87)이니,
군자는 거기에 의하여 허(虛)함으로 사람을 받아들인다." 하였습니다. (함괘(咸卦)의 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산과 못의 기운이 통하는 형상을 보고서 그 속을 허하게 하여 사람에게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속을 허하게 한다〔虛中〕는 것은 나의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다. 속에 사사로운 주장이 없다면 느껴서 통하지 않음이 없다." 하였습니다.

쾌()한 이(履)는 정(貞)하되 여()하다. (이괘(履卦) 구오88) 효사(九五爻辭))

정자는 말하기를, "쾌()는 굳세게 결단하는 것〔剛決〕이다.
5는 양강(陽剛)한 신분으로 지극히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9·5는 이것이 임금자리입니다.) 그 굳세게 결단함에 의존해서 행하는 것이니,
이렇게 한다면 비록 바르게 되더라도 오히려 위태로운〔危〕것이다.
옛날 성인은 천하의 높은 자리에 거처하여 밝음은 넉넉히 비칠 수 있으며, 강함은 넉넉히 결단할 수 있고, 세력은 넉넉히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찍이 천하의 의논을 다하지 않음이 없으며, 꼴 베고 나무 베는 한미 <한 사람의 말까지>도 반드시 받아들이니 이래서 성인이 되는 것이다.
만일 스스로의 강명(剛明)함에 맡겨서 결행(決行)하여 돌아보지 않는다면 비록 바르게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오히려 위태로운 길이니,
하물며 강명이 부족한 자야 일러 무엇하랴." 하였습니다.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을 훈계하여 이르기를,
"아, 선왕께서는 간하는 것을 좇아 거스르지〔〕않으시며 선민(先民)들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이훈(伊訓))

채씨는 말하기를, "불()은 거슬리는 것이요, 선민(先民)은 전배(前輩)와 구덕(舊德)을 말함이다.
간하는 것을 좇아 거슬리지 않고, 선민들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착한 것을 즐기는 데 정성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였습니다.

말하는 것이 네 마음에 거슬리면 반드시 도(道)에서 <그 거슬리는 이유를> 찾아보고,
말하는 것이 네 뜻에 공손하면 반드시 도가 아닌 것에서 <그 공손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상서의 태갑편〔太甲籍〕 역시 이윤의 말.)

채씨는 말하기를, "굳고 강한 말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요, 공손하고 순한 말은 사람들이 좇기 쉬운 것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데에서는 반드시 <그 이유를> 도에서 찾아볼 것이지, 문득 마음에 거슬린다고 하여 막아서는 안되며,
좇기 쉬운 데에서는 반드시 <그 이유를> 도 아닌 데에서 찾아볼 것이지, 문득 뜻에 순하다고 하여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개 이윤이 태갑으로 하여금 감정에 치움침을 바로 잡으려함이었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다스리는 길은 별다른 설명이 없는 것이다.
만일 임금으로 하여금 공검(恭儉)하고 착함을 좋아하여 말이 마음에 거슬리면 반드시 <그 거슬리는 이유를> 도에서 찾아보며
말이 뜻에 순하면 반드시 <그 순한 이유를> 도 아닌 데에서 찾아보게 한다면 어찌 다스리지 않음이 있을 것인가.
예로부터 모든 성공의 사실은 곧 이같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고종(高宗)89)이 부열(傅說)90)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네 마음을 계(啓)하여 짐의 마음을 옥(沃)하게 하라." 하였습니다. (상서의 열명편〔說命籍〕)

채씨는 말하기를, "계(啓)는 여는〔開〕것이요, 옥(沃)은 물대는〔灌漑〕것이다.
네 마음을 열라는 것은 그 마음을 열어놓고, 숨기지 말라는 것이요, 짐의 마음을 물댄다는 것은,
내 마음을 물대어서 풍족하게〔厭〕하라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 약이 아찔하지〔瞑眩〕않으면 병이 낫지〔〕않고, 발 벗고서 땅을 잘 보지 않으면 발이 상하게 된다.

채씨는 말하기를, "방언(方言)에 이르기를, '약(藥)을 먹으면 독(毒)하다는 것을 해대(海垈)91) 지방에서는 아찔〔瞑眩〕하다고 한다.
요〔〕는 낫는다는 말이다. 아찔하지 않는다는 말은 신하의 말이 입을 괴롭게 하지 아니함을 비유한 것이요,
땅을 보지 않는다 함은 나의 행하는 바가 소견이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열(說)이 왕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무를 자를 때는 먹줄을 따르면 바르게 되고, 임금이 간언(諫言)을 좇으면 성군(聖君)이 되는 것입니다.
임금이 지극히 착하시면 신하들은 명령하지 않아도 그 뜻을 받들 것이니, 누가 감히 왕의 아름다운 명령을 좇지 않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채씨는 말하기를, "나무를 자를 때 먹줄에 따른다고 한 것은 임금이 간언을 좇아야 된다는 것을 비유한 말로서,
간언은 결코 듣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고종(高宗)은 마땅히 자기 <자신>이 간언을 받아들이기에 힘 쓸 것이요, 반드시 신하의 진언(進言)을 책구(責求)할 필요는 없다.
임금이 과연 간언을 좇는다면 신하들은 비록 명령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임금의 뜻을> 알아 받들 것이므로
하물며 이렇게 명령한다면 누가 감히 그 훌륭한 명령에 공경한 마음으로 순종하지 않겠느냐."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바로잡고자 하는 말을 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잘 못을> 고치는 것이 소중하다.
완곡하게 일러주는 말을 즐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뜻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이 소중하다.
즐겨하면서 실마리를 찾지 아니하고, 좇는 체하면서 고치지 않는다면 나도 어찌할 수 없을 따름이다."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원문(原文)에> 법어(法語)라고 한 것은 <과실을> 바루고자 바로 말하는 것이고,
손언(巽言)이라고 한 것은 완곡하게 지도하는 말이며, 역(繹)이라고 한 것은 실마리를 찾는다는 <뜻>이다.
<허물을> 바루는 말은 사람이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좇는다.
그러나 좇는 체하면서 <지적한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면대(面對)했을 때만 좇는 체하였을 뿐이다.
완곡하게 일러주는 말은 귀에 거슬리는 것이 없으므로 반드시 즐겨한다.
그러나 <즐겨하기만 하고 그 말 뜻의> 실마리를 찾지 않는다면 또 그 <말의> 은미(隱微)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한무제(漢武帝) 같은 이는 급암(汲)92)이 곧은 것을 보고서 깊이 존경하고 두려워하여
장막 가운데에서 그가 아뢰는 말을 옳다고 하였으니 <바른 말을> 좇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무제(武帝)는 속으로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만 인의(仁義)를 베풀었으니 어찌 면전(面前)에서만 좇는 것이 아니겠는가.
맹자가 색(色)을 좋아하고 재물을 좋아하는 것에 관하여 논(論)하였을 때, 제선왕(齊宣王)이 어찌 즐거워 하지 않았겠는가.
만약 그 말 뜻의 실마리를 알지 못하였다면 한갓 옛사람의 이른바 색을 좋아한다는 것만을 알고,
그들이 능히 안으로는 원망하는 여자〔怨女〕가 없게 하였고, 밖으로는 고독한 남자〔曠夫〕가 없게 하였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한> 옛사람들의 이른바 재물을 좋아하였다는 것만을 알고, 그들이 능히 제 집에 살고 있는 자는 곡식을 쌓은 창고가 있게 하였으며,
여행하는 자는 휴대할 식량이 있게 하였다는 것은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양씨(楊氏)는 말하기를, "말하여도 통하지 아니하며, <말을> 막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것은 오히려 좋다.
그는 혹 깨우치면 오히려 고칠 수도 있고, 실마리를 찾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좇는 체하고 즐겨하는 듯하면서 고치지 않고, 실마리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람은 마침내 고치지도 않고,
실마리를 생각치도 않을 것이니, 성인(聖人)이라도 <이런 자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좌전(左傳)에, "은공(隱公) 5년 봄에 공이 당(棠)에 가서 물고기를 구경하려고 하니,
장희백(臧僖伯)이 간하기를, '무릇 사물이 큰 일을 강구(講求)하기에 부족하고,
그 재목이 기용(器用)에 대비(對備)할 만하지 못하다면 임금은 그것을 거론(擧論)하지 않는 법입니다.
산림(山林)과 천택(川澤)을 충실하게 만드는 것은 하인〔隸〕들의 할 일이요, 관리들이 맡아 처리할 일이지, 임금이 관여하실 바가 못 됩니다.'하였다.
공(公)이 말하기를, '내 장차 전국을 순시(巡視)하려 한다.'하고, 드디어 순싯길에 오르니, 희백(僖伯)은 병이 났다 핑계하고 쫓아가지 아니하였다.
희백이 죽고나서 공이 말하기를, '숙부(叔父)가 과인(寡人)에게 감의(憾意)가 있었더니 과인이 감히 잊을 수가 없구나.'하고
관등(官等)을 한 계급 높여서 장사 지내었다." 하였습니다.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희백이 간하였으나 <임금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병을 핑계하고 수행하지 아니한 것은 충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은공이 희백의 관등을 한 계급 높여서 장사지내 주었던 것도 타당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은공은 감히 그의 충성을 잊지 못하면서도 그의 간언은 들어주지 않았으니,
<이는> 곽공(郭公)이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면서 등용하지 못하여 끝내 나라가 멸망하는 데 이르게 하였음과 같은 것이다.
그에게 <화(禍)가> 미친 것은 당연하다." 하였습니다.
(<화가> 미쳤다고 한 것은 종무(種巫)에서의 시해(弑害) 당함을 말합니다. 은공의 아우 환공(桓公)이 공을 종무에서 시해하였습니다.

○임씨(林氏)는 말하기를, "곽공(郭公)은 어진이를 어질게 여기면서 등용하지 못하여 나라가 멸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하였고,
은공은 충간(忠諫)을 착하게 여기면서 쓰지 못하여 몸을 망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옛날부터 헛된 이름만 드러나고 실행함이 없어서 패망(敗亡)하기에 이른 자가 많은데 살피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습니다.)

◆ 다음은 허물을 고치는 것에 대한 말씀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풍(風)과 뇌(雷)는 보태는〔益〕것이니,
군자(君子)는 그것을 본받아 선(善)을 보면 자신에게 옮겨 <실천하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 하였습니다. (익괘(益卦)93) 상사(象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바람이 맹렬하면 우뢰가 빠르고, 우뢰가 급하면 바람이 성내어, 이 두 가지는 서로 보태는 〔益〕것이다.
군자는 바람과 우뢰가 서로 보태는 현상〔益之象〕을 보고 자신에게 보탬이 되는 것을 찾는다.
선(善)한 것을 보고 능히 자신에게 옮겨 실천할 수 있다면, 온 세상의 선(善)한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허물이 있을지라도 능히 고친다면 허물은 없는 것이다. 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것으로 이 보다 더 큰 것은 없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선한 것을 <보고> 자신에게 옮기기를 마땅히 바람처럼 빠르게 하고,
허물을 고치는 일을 마땅히 우뢰의 사나움과 같이 <단호하게 고쳐야> 한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허물이 있고도 고치지 아니하면 이것을 허물이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허물이 있을 때 능히 고친다면 허물 없는 데로 돌아가지만,
고치지 아니하면 그 허물이 드디어 이루어져서 장차 고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허물을 부끄럽게 여겨서 아닌 것처럼 조작하지 말라. (상서(商書) 열명(說命))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허물〔過誤〕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지만, 그것을 허물이 아닌 것처럼 조작하는 것은 고의(故意)에서 나온다." 하였습니다.

자공(子貢)94)은 말하기를, "군자의 허물은 일식(日食)이나 월식(月食)과도 같아서, 허물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고,
고치면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본다." 하였습니다. (「논어」하동)

면재 황씨(勉齋黃氏)는 말하기를, "허물이 있을 때는 명백하게 드러나서 덮거나 가리움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다 볼 수 있으며
<있던 허물을> 고친 때는 맑고 투명하여서 티나 흠〔瑕疵〕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다 우러러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자하(子夏)95)는 말하기를, "소인(小人)은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꾸민다.〔文〕."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문(文)이란 꾸민다는 뜻이다.
소인은 허물 고치기를 꺼리고 스스로 속이는 것은 꺼리지 아니하므로 반드시 <허물이 아닌 것처럼> 꾸며서 그 허물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하였습니다.

○신안 진씨(新安陳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허물을 숨기지 아니하기 때문에 허물이 생기면 사람들이 볼 수 있고,
허물을 빨리 고치기 때문에 허물이 없어져서 사람들이 다 우러러보기를 마치 해와 달같이 한다.
비록 일식이나 월식을 간혹 면하지 못할지라도 도로 밝아지면 무엇이 광명에 손상되겠는가.
소인(小人)은 허물을 숨겨서 덮어 가리어 고치지 아니하고 허물이 있으면 <고치는 데> 굳이 인색하여
더욱 그 허물을 중하게 하므로 더욱 어둡고 더욱 심하여진다. 어찌 해와 달같이 명백하고 투철한 기상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자로(子路)96)는 남이 허물을 말하여 주면 기뻐하였다. (맹자)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그는 <자신에게 허물이 있다고 충고하는 말을>들으면 기뻐하여 고쳤으니,
그가 스스로 몸을 닦는 데는 이와 같이 용감하였다." 하였습니다.

○주자(周子)97)는 말하기를, "중유(仲由: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말 듣기를 기뻐하여서 훌륭하다는 이름이 무궁하였는데,
지금 사람들은 허물이 있을 때 남이 규정(規正)하여 주는 것을 즐겨하지 아니한다.
마치 병을 숨기고 의사(醫師)를 꺼려하여 마침내 자기의 몸을 죽음에 빠뜨리게 함과 같은데, <이를> 깨닫지 못하니 슬픈 일이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자로(子路)는 역시 영원히 후세(後世)의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진실로 <자신의> 허물을 듣기를 원한다면 다만 <일러주는 말을> 하나하나 관용(寬容)하여 받아들여야 하되
다시 그것이 사실이고 사실 아닌 것을 따지지 않아야 한다.
그리하면 일의 크고 작음 없이 사람들은 다 말하여 주기를 좋아하여 숨기는 마음이 없을 것이다.
만약 하나 하나 계산하고 배교하여 기어이 변명하고 <옳고 그름을> 논쟁한다면 아마 허물을 일어주면 기뻐한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멀지 않아 돌아와, 후회하는 데 이르지 않으니, 크게 길(吉)하다." 하였습니다. (복괘(復卦)98) 초구(初九)의 효사(爻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잃은 뒤라야 돌아옴이 있다. 잃지 않는다면 무슨 돌아옴이 있겠는가.
다만 잃었으나 머지않아 돌아온다면 후회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을 것이니, 크게 선(善)하고 길(吉)하다는 것이다.
학문을 하는데 다른 길이 없다. 다만 불선(不善)임을 알면 속히 고치고 선(善)한 것을 좇을 따름이다." 하였습니다.

○쌍봉 요씨(雙峯饒氏)는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에는 선(善)의 단서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어서 본시부터 서로 연속되고 있다.
사물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사이에 비록 간혹 조금 잘못됨이 있더라도,
그 <잘못이> 마음에 걸리어 스스로 불안(不安)하게 여기는 뜻이 이미 마음 속에 싹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천지의 물(物)을 생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것〔露呈〕으로서 맹자(孟子)가 말한 바,
'두려워하고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惻隱之心〕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다만 반성하고 살펴서 사욕을 이기고 허물을 다스리는 공력을 더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비록 선(善)을 행할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도 선(善)에 돌아가는 실천이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욕심에 방종하여 함부로 망령되이 행하니 그 후회함이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수양을 잘하는〔善用力〕이가 진실로 이 마음이 싹틈으로 해서 재빨리 <선(善)에> 돌아가, 후회하기에까지 이르지 않게 하면
사람의 욕심〔人欲〕은 사라지고 천리(天理)가 돌아올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안씨(顔氏)의 아들이 거의 <현인(賢人)에> 가깝구나. 불선(不善)함이 있으며 일찍이 알지 못한 적이 없고,
알면 일찍이 다시 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 계사(繫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안자(顔子)와 같은 지위에 있는 이가 어찌 불선(不善)함이 있었겠는가.
이른바 불선이라고 말한 것은 다만 조금 어긋나고 잘못됨이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조금 어긋나고 잘못됨이 있었는가 하면 곧 능히 그러함을 알고, 알기만 하면 곧 고치어서 다시는 <불선이> 싹트지 않도록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선(善)이 아님을 알고 일찍이 다시 하지 아니한 것은 허물을 두 번 거듭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지금 사람들은 다만 안자가 <잘못임을> 알고는 다시 행하지 아니한 것을 어려운 일인 줄만 알고,
도무지 잘못이 있을 때, 일찍이 <그것을> 모르는 적이 없었다는 것, 그 자체가 정말 어려운 것임을 알지 못한다.
지금 사람이 또한 도리를 얻을 줄 아는 이는 있다.
<그러나> 일이 눈앞에 도달하면 도리어 다만 사욕(私欲)에 따라 처리하고 전날에 알고 있던 것은 모두 잊어버린다.
이것은 일찍이 바르게 알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자(顔子)는 타고난 자질(資質)이 지극히 맑은 물과 같이 좋아서 가느다란 티라도 반드시 나타났던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내 나이가 16·7세 되었을 때 사냥하기를 좋아하였다.
얼마 뒤에 스스로, '이제 이것을 좋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말하였더니, 주무숙(周茂叔)99)이 말하기를, '어찌 말을 쉽게 하는가.
다만 그 마음(사냥을 좋아하는 마음)이 잠재해 있어서 <그저 밖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니,
하루 아침에 싹트게 되면 다시 처음과 같게 될 것이다.'하였다.
그 뒤 12년 되던 해 연말에 집에 돌아가다가 들〔野〕에서 사냥하는 사람을 보고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뻐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과연 그 마음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음을 알았다." 하였습니다.
(섭씨(葉氏)가 말하기를 "주자(周子)는 공부에 힘을 씀이 깊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없음을 알았으며,
정자(程子)는 마음을 다스림〔治心〕이 세밀하기 때문에 능히 눈에 보이는 것에 좇아 성찰(省察)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배우는 자는 경계해 살피고 극기(克己)해 다스리는 노력을 더욱 힘쓰지 않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남헌 장씨(南軒張氏)는 말하기를, "무릇 <배워서> 익히는 일〔習〕을 중단함이 있음은 마음의 허물〔心過〕이 해치기 때문이다.
마음의 허물은 더욱 방지하기 어려운데, 한 번 마음 속에 싹트게 되면 비록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을 수는 없으나
 내가 항시로 익히는 공부는 이미 사이가 끊어진 것이다. 살피는 것을 늦추면 <마음의 허물은> 불어나고 자란다.
사람들은 옛 버릇에만 안일(安逸)해져서 작은 일이라고 소홀하게 여긴다.
이런 <버릇을> 어찌 익숙한 습관이 되도록 버려 둘 수 있단 말인가.
오늘 한 가지 잘못된 생각을 고통스럽게 여겨 고치지 않으면 내일에 이 생각이 또 생기게 되어 쌓여서 습관으로 익어버리면
상시로 익히는 공부〔時習之功〕가 소각(銷却)되며, 이 두 가지가 함께 성립될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두려워한다. <마음의 허물이> 속에서 싹트면 반드시 깨닫고,
깨달으면 깊이 경계하여 끊기를 동엽(棟葉)을 분간하 듯하여 다시 계속되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 허물있는 지경은 저절로 소원하여지고 상시로 익히는 공부에 전심(專心)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덕(德)에 이르고 도(道)로 응고(凝固)할 수 있는 것이다.
안자(顔子)가 <허물을> 두 번 거듭하지 않았던 것은, 한번에 아주 단절(斷絶)시키고 다시 생기지 않게 하였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나의 거실(居室)을 불이(不貳)라고 이름을 지었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바른 데로> 돌아오는 것을 머뭇거리는 것은
흉(凶)하며 군주(君主)된 도리에 어긋난 것이다." 하였습니다. (복괘(復卦) 상륙효(上六爻) 의 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돌아오면 도(道)에 합당한 것인데, 이미 돌아오기를 주저하고 있으니 도(道)와 서로 어긋난다.
그러니 흉(凶)한 것을 알 수 있다.
남의 임금된 자가 위에 있어서 여러 국민을 다스리는 데는 마땅히 천하의 선(善)한 것에 좇아야 할 것인데,
<선으로> 돌아오는 것을 주저하고 있으니 임금된 도리에 어긋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상고하여 보건대, <임금의> 덕업(德業)을 도와 이루는 데는 바른 선비를 친근하게 하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습니다.
또 반드시 간언(諫言)에 따르는 것〔從諫〕과 허물을 고치는 것〔改過〕을 합하여 한 장(章)으로 한 것은,
남의 임금된 이가 어진 선비를 좋아하는 것은 한갓 그 사람을 친근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장차 그 사람의 선(善)한 것을 취하여 자기의 미치지 못하는 바를 보충하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간언이 있으면 반드시 좇고,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고치는 것은 곧 덕(德)을 진취시키고 업(業)을 닦는 데 바탕으로 하려는 것입니다.
만일에 한갓 그 어진 선비의 이름만을 흠모(欽恭)하여 공연히 측근에 두고는 간하는 말이 있어도 좇지 않고,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다면, 어진 선비가 어찌 헛된 예우(禮遇)에 얽매어 자기의 소신을 잃으려고 하겠습니까.
반드시 기회를 보아 물러가서 고반(考槃: 은거실(隱居室)을 지어 마음대로 즐기는 것)을 즐기려할 것이며,
임금의 측근에 있는 자는 아첨하여 총애만을 얻으려는 무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가 위망(危亡)에 이르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만약 현인(賢人)이라고 이름하는 자가 앉아서 영화와 총애를 받으면서,
충성스럽고 바른 간언으로 <임금의 허물을> 바로 잡아 구하여 주는 유익함이 없다면 역시 현자는 써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현명(賢明)한 임금은 바른 선비를 신중하게 선택하여서 날마다 함께 있으며,
함양(涵養)하고 그 <덕에> 훈도(薰陶)되어 자기의 욕심을 이기고 선(善)을 좇아서 덕(德)이 날로 높아지고, 왕업(王業)은 날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임금의 덕이 성취되는 것은 책임이 경연(經筵)에 있다." 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 주 >

83) 제후(諸侯). 승(乘)은 수레를 세는 단위.
주대(周代)에 있어서 전시에 천자(天子)는 만승(萬乘), 제후(諸侯)는 천승(千乘)을 내도록 되어 있었다.

84) 장로(長老)의 칭호. 옛날에 천자(天子)가 삼로(三老)와 오경(五更)을 두어 부형(父兄)의 예로 섬겼다. 〔食三老五更於大學〕《禮記, 樂記》

85) 사(士)는 관직이 없는 선비가 아니고 하급 관리인데, 그 사중에는 상·중·하의 세 계급이 있었다. 이것은 주(周)나라 시대의 관제(官制)이다.

86) 간단한 형식으로 하는 상소문이다.

87) 「주역」64괘 중 31번째 괘이름이다.

88)주역」, 64괘중 10번째 괘 이름.

89) 중국 상(商)나라의 어진 임금으로 이름은 무정(武丁)이다.

90) 상(商)나라 고종(高宗) 때의 어진 신하.
존래 토목공사장의 일꾼이었는데 고종이 훌륭한 인물이라하여 당시의 재상으로 발탁하여 국정(國政)을 맡기어 중흥의 대업을 이루었다.

91) 중국의 동해(東海)와 태산(泰山)의 중간에 위치한 땅의 이름. 순(舜) 임금이 설치한 12주(州) 중의 하나이다.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지방으로 대(垈)는 곧 태산을 가리킨다.

92) 한(漢)나라 복양(陽) 사람. 성격이 강직하여 곧은 말을 잘하였다.
하루는 한무제(漢武帝)가 갓을 벗고 있었는데 급암이 그것을 지적할까 두려워 장막 속으로 피하여 그가 하는 말을 윤허하였다.

93) 「주역」64괘 중 42번째 괘 이름.

94) 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 사람. 공자의 제자로 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賜), 자공은 그의 자(字). 공문(孔門) 십철(十哲) 중의 한 사람이다.

95) 공자의 제자 성은 복(卜), 이름은 상(商), 자하는 그의 자(字). 공자보다 44세 아래로 시(詩)에 뛰어났다.

96) 공자의 제자.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자로는 그의 자(字)임.
공문(孔門) 10철(十哲)중의 한 사람으로 정치방면에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용맹이 있었는데
위(衛)나라에서 벼슬하다가 공리(孔)의 난에 전사하였다.

97) 주렴계(周濂溪)의 존칭.

98) 「주역」64괘 중 24번째 괘 이름.

99) 중국 송(宋)나라 도주(道州) 사람. 이름은 돈이(敦) 무숙(茂叔)은 그의 자(字)임.
송(宋)·이학(理學)의 개산조(開山祖)이다. 이정(二程)이 모두 그 제자이며 저서로 태극도설(太極圖設)과 통서(通書)등이 있다.

 


제12장. 돈 독(敦篤)

 

신이 생각하여 보건대, 몸을 닦는 공부는 앞에 다 자세하게 기술하였으나,
오히려 중도에 폐지하는 일이 있을까 염려되기 때문에 돈독장(敦篤章)을 그 다음에 두었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처음이 있지 않음은 없으나 끝이 있는 것은 드물다." 하였습니다.
이른바 돈독(敦篤)이라고 한 것은 끝을 돈독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 돈독(敦篤)한 공부에 대한 말씀

증자(曾子)는 말하기를, "선비는 넓고 굳건하지 않을 수 없다. 임무는 무겁고 길은 멀다." 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넓다〔弘〕고 한 것은 관대(寬大)하고 넓음을 의미하고,
굳건하다〔毅〕고 한 것은 굳세고 인내성〔强忍〕이 있음을 뜻한다.
(신안 진씨(新安陳氏)는 말하기를, "관대하면 용납하여 받아들임이 많을 것이며, 넓으면 받들고 싣는 것이 클 것이다.
굳세면 잡아지키는 것이 견고할 것이며, 인내력이 있으면 짐을 지는 것이 오래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넓지 아니하면, 그 무거움을 견딜 수 없고 강인하지 아니하면 그 먼 곳에 이를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인(仁)을 자기의 임무(任務)로 하였으니 또한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라야 그칠 것이니 또한 멀지 아니한가.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인(仁)이라는 것은 인심(人心)의 온전한 덕(德)인데,
반드시 몸으로 본받아 이것을 힘써 실행하고자 한다면 정말 무겁다고 말할 수 있다.
한 가닥의 호흡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에라도, 이 뜻을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기를 용납하지 아니하므로 정말 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하늘의 운행은 건전(健全)하다.
군자(君子)는 <이 괘상(卦象)을 보고> 스스로 노력하여 쉬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건괘(乾卦)의 상사(象辭).)

광평 유씨(廣平遊氏)는 말하기를, "지극히 성실하여 쉼〔息〕이 없으니 하늘의 운행은 건전하다.
쉬지 않을 수 없는데 쉬지 아니함은〔未能無息而不息〕 군자가 스스로 힘쓰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항상 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늘의 이치가 항상 행하여 고루 흘러서 쉬지 않으리라." 하였습니다.

군자가 온종일 쉼이 없이 노력하고, 저녁에는 반성하여 삼가고 조심하면 위태한 일이 있을지라도 허물은 없을 것이다. (건괘(乾卦) 구삼(九三)의 효사)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낮과 저녁에 게을리 하지 않고 두려워하며 조심한다면, 비록 위태한 곳에 있을지라도 허물이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윤(伊尹)이 말하기를, 선왕(先王)은 매상(昧爽)에 일어나 그 덕(德)을 크게 밝히고〔丕顯〕,
앉아서 아침을 기다렸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의 태갑(太甲) 하동. ○이윤이 태갑에게 고(告)한 말.)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매상(昧爽)이라고 한> 매(昧)는 어두움이고, 상(爽)은 밝음이니,
매상이라 하면 날이 샐까 말까 할 때이다. 비(丕)는 크다는 뜻이고, 현(顯)은 또한 밝다는 뜻이다.
선왕(先王)(선왕(先王)은 탕(湯)입니다.)은 말이 샐까 말까 할 때에 깨끗이 씻고,
그 덕(德)을 크고 밝게 하고 앉아서, 아침이 되기를 기다려서 <덕(德)>을 행하였던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제 왕위를 이으신 왕이 새로운 천명(天命)을 받으셨으니 그 덕(德)을 새롭게 해야 한다.
끝이나 처음이나 오로지 한결같게 함이 곧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다.

채씨는 말하기를, "덕(德)을 새롭게 하는 요점(要點)은 한결같이 하는데 있을 뿐이다.
끝이나 처음이나 한결 같아서 간단(間斷)이 없으면 이것이 곧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군자의 배우는 일은 반드시 날로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니, 날로 새로워진다는 것은 날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날로 새로워지지 않는 자는 반드시 날로 퇴보(退步)한다.
전진(前進)하지 아니하면서 후퇴하지 아니하는 자는 없다.
오직 성인(聖人)의 도(道)만이 나아감도 물러남도 없으니 그 나아간 바가 극치에 이른 까닭이다." 하였습니다.

○영가 정씨(永嘉鄭氏)는 말하기를, "거울을 보다가 얼굴이 더러워졌으면 반드시 씻을 것이며,
옷을 털다가 깃이나 소매에 때가 묻었으면 반드시 세탁할 것이요, 거처하는 방에 책상이나 창이나 벽에 먼지〔塵〕가 있으면 반드시 털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마음이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하면서도 마음 속의 신명(神明)의 집에 대하여서는 더러워지고 때가 묻고 먼지가 나날이 쌓여도 씻거나 털어버릴 줄 모른다면,
작은 것은 살피면서 큰 것은 버려두는 것이며, 겉은 살피면서 안은 버려두는 것이니,
그 유사(類似)한 <사리를> 확충하지〔充〕못함이 역시 심하지 아니한가."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식사(食事)를 마치는 사이에도 인(仁)에 어긋남이 없다.
조차(造次)에서도 반드시 이것을 지키고 전패(顚沛)에도 반드시 이것을 지킨다."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식사를 마치는 사이〔終食之間〕라는 것은 한 번 식사하는 사이이고,
조차(造次)란 것은 급거(急遽)하고 구차(苟且)한 때이며, 전패(顚沛)란 것은 엎드러지고 자빠져서 유리(流離)되는 경우이다.
대체로 군자가 인(仁)에서 떠나지 아니함이 이와 같아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인(仁)하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인(仁)의 도(道)는 지극히 커서 전력을 다하여 쉬지 않고 본받는 자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전체(全體)라고 한 것은, 인(仁)의 전체를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고, 전력을 다하여 본받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전체라는 것은 천리(天理)가 혼연(渾然)하여 한 터럭만큼도 섞인 것이 없다는 것이요,
쉼이 없다는 것은 천리가 유행(流行)하여 한 번이라도 쉬는 사이가 없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알면 반드시 좋아하고, 좋아하면 반드시 찾으며, 찾으면 반드시 얻는다.
옛 사람의 배움이란 이것이 한평생의 일이었다.
과연 쓰러지거나 엎어지거나 급하고 구차한 경우를 <막론하고> 반드시 이 <인(仁)>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어찌 도리(道理)를 얻지 못하는 일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속히 이루어지기〔速成〕를 바라지 말며, 중도에서 폐지하는 것을 용허(容許)하지 않고,
부지런히 힘써서 죽은 뒤에라야 그치는 것이 좋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오곡(五穀)은 씨앗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성숙하지 아니하면 가라지나 피〔荑稗〕만도 못한 것이다.
무릇 인(仁)도 역시 이것을 익혀야 할 따름이다." 하였습니다.
(윤씨(尹氏)는 말하기를, "날마다 새롭게 하여 그치지 않으면 익혀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말에는 가르침이 있고, 행동에는 법도가 있으며, 낮에는 하는 일〔有爲〕이 있고, 밤에는 얻는 것이 있으며,
숨 한 번 쉴 때에도 함양(涵養)함이 있고, 눈 한 번 깜박이는 사이에도 tod각함이 있다. (장자정몽(張子正蒙))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선왕(先王)의 법언(法言)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아니하니, 말에는 가르침이 있는 것이요,
선왕의 덕행(德行)이 아니면 감히 행하지 아니하니, 행동에 법이 있는 것이다.
온종일 부지런하게 일하니 낮에는 할 일이 있는 것이며, 야기(夜氣)를 기르는 것이니, 밤에 얻음이 있는 것이다.
공기〔氣〕가 드나드는 것을 숨을 쉰다〔息〕고 한다. 한번 숨쉬는 동안에도 반드시 함양하는 바가 있다.
눈 한 번 깜박하는 것을 일순(一瞬)이라고 한다. 일순간에도 반드시 생각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군자는 어디에서나 언제나 배운다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반대로 나태의 병폐에 대한 말씀

○공자는 말하기를, 싹〔苗〕이 나왔어도 뛰어나지 못한 것이 있고, 뛰어나지만 결실되지 못한 것이 있다." 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곡식이 처음 나는 것을 싹이라 하고, 꽃이 피는 것을 빼어난다고 하며, 곡식으로 성숙하는 것을 결실(結實)이라고 한다.
대개 배워서 성취하는 데 이르지 못함이 이와 같은 점이 있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스스로 힘쓰는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 하였습니다.

○남헌장씨(南軒張氏)는 말하기를, "종묘(種苗)를 기르는 데는 김매고 북돋우는 때를 놓지지 않고, 그 생리(生理)에 거스리지 아니하여,
비와 이슬에 불어나고 밤으로 자라나서, 처음과 끝이 한결같아야 그의 성숙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버려둔 채 김매지 아니하거나 <인력(人力)으로> 뽑아 올려 성장을 도우며, 하루는 덥게 쬐어주고,
열흘은 춥게 하는 정도가 되면, 싹이 나서는 빼어나지 못하고, 빼어나서도 성숙하지 못하는 것이다.
배우는 일이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소질(素質)은 있으나 배우지 아니함은, 싹은 나왔으나 빼어나지 않는 것과 같고,
배우고서도 몸에 지니지 못한다면 빼어나기는 하였으나 결실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니 공자가 말하기를,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으며,
더러운 흙으로 된 장벽(牆壁)은 흙손질〔〕할 수 없는 것이니, 재여를 꾸짖어〔註〕무엇하겠느냐."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낮잠〔晝寢〕은 낮이 되어서 잠자는 것이다. 오〔〕는 흙손〔〕이다.
그의 지기(志氣)가 혼미하고 나태하여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여(與)는 어조사이다.
주(註)는 책(責)과 같으니 꾸짖는 것이다. 꾸짖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곧 심각하게 꾸짖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재여(宰予)가 지(志)로써 기(氣)를 거느리지 못하고 안이(安易)하고 나태하니,
이것은 편안하고자 하는 기(氣)가 스스로 경계하는 지(志)를 이겨서 나태한 것이다.
옛 성현(聖賢)들 치고 일찍이 게으름과 거칠고 편안한 생각이 들까 두려워하여
부지런히 힘써서 쉬지 않고 스스로 굳세게 하지 아니한 이가 없었으니 이것이 공자가 재여를 심각하게 꾸짖은 까닭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상고하여 보건대, 군자의 배우는 일은 성근(誠勤)하고 독실(篤實)해야 할 따름입니다.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어서 전진하지 아니하면 후퇴합니다. 만약 성근하고 독실하지 아니하면 어찌 성취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공자는 말하기를, "먼저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얻는다." 하였습니다. 공부가 지극하면 필경 효과가 오는 것인데, 어찌 미리 기약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사람들은 먼저 얻기부터 하려는 데 병폐가 있습니다.
미리 기약만 하고 공부는 지극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행한지 얼마 안 되어서 이내 싫어하고 권태로운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우는 자의 공통된 병폐입니다. 먼 곳에 가는 자가 한 걸음에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가까운 데서부터 점차로 가야됩니다. 높은 곳에 오르는 자는 단번에 뛰어오를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점차로 딛고 올라가야 합니다.
진실로 그 길을 잃지 않고, 부지런히 차례대로 질서있게, 날마다 공정(功程)을 정하여 전진할 뿐 후퇴됨이 없게 하면,
멀다고 못 갈 곳이 없고, 높다고 못 오를 곳이 없습니다.
사람의 심정(心情)이 제각기 즐기는 바가 있으나, 배우는 것을 낙(樂)으로 여기지 못하는 것은 반드시 가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니,
그 가리는 바를 알아서 힘써 제거하여야 합니다.
성색(聲色)에 가리워진 자는 노래와 여색(女色)을 멀리 하기에 힘 쓸 것이며,
재화(財貨)와 이익(利益)에 가리워진 자는 재물을 천하게 여기고 덕(德)을 소중히 여기기를 힘쓸 것이며,
치우치고 사사로운 것에 가리워진 자는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남의 의견을 좇기를 힘써야 합니다.
무릇 덮여 가리워짐이 있는 것은, 오로지 그 근본을 끊도록 힘써야 하고, 공부를 실천하는 일에는 어려움과 쉬움을 교계(較計)하지 말고,
용감하고 힘 있게 나아가며, 절실하게 괴로움을 참으면서 단연코 물러서지 아니하면,
공부가 진행되는 상태가 처음에는 매우 험난하고 막히지만, 뒤에는 점차로 조리(條理)가 시원하게 밝혀지며,
처음에는 매우 혼란하지만 뒤에는 점차로 정리될 것이며, 처음에는 매우 어렵고 빽빽하지만 뒤에는 점차로 통달하여 편리할 것이며,
처음에는 매우 담박하지만 뒤에는 점차로 맛이 있어서, 반드시 정(情)이 발로(發露)되어 배우는 것을 낙(樂)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온 천하의 물건이 배우는 일보다 더한 것이 없게 될 것이니,
어느 겨를에 바깥 것을 사모(思慕)하여 이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고 늦추는 일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안자(顔子)가 파(罷)하고자 하였으나 파할 수 없었던〔欲罷不能〕까닭입니다.
원하건대 예념(睿念)을 여기에 머무르게 하소서.

 

 

제13장. 수기 공효(修己功效)

 

신이 살펴보건대, 용공(用功)이 지극하면 반드시 효험(效驗)이 있는 데에 이르는 것이므로, 다음에는 공효를 차례로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지(知)와 행(行)이 겸비(兼備)하고 표리(表裏)가 하나같이 되어, 성인(聖人)의 경지에 들어가는 상태까지 다 말하였습니다.

◆ 지(知)를 거쳐서 행(行)에 도달하는 효험에 대한 말씀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오직 군자만이 온 천하 <사람들의> 뜻을 능히 통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동인괘(同人卦)100)의 단사(彖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하 <사람들의> 뜻은 천차만별(千差萬別)이지만 이치는 하나이다.
군자는 이치에 밝은 까닭에 능히 온 천하 <사람들의> 뜻에 통달할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은 억조창생(億兆蒼生)의 마음 보기를 한 사람의 마음과 같이 하는 것은 이치에 통탈하기 때문일 따름이다." 하였습니다.

그칠 곳을 알고 나서야 정(定)할 수 있고, 정(定)하고 나서야 정(靜)할 수 있으며,
정(靜)한 뒤라야 안(安)할 수 있고, 안(安)한 뒤라야 생각〔慮〕할 수 있으며, 생각한 뒤라야 능히 얻을 수 있다. (대학(大學))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그칠 곳〔止〕이라는 것은 마땅히 그쳐야 할 곳이니, 즉 지선(至善)이 있는 곳이다.
그칠 바를 알면 뜻에 정(定)한 방향이 있는 것이다.
(옳고 그른 것이 명백하여지면 반드시 선(善)에 향하고 악(惡)을 등질 것입니다.)
정(靜)하다고 한 것은 마음이 망령되게 움직이지 않음을 말한다.
(옳고 그른 것이 이미 정하여졌으므로, 다른 옆길에 마음이 동요되지 않아서, 마음이 항상 편안하고 고요한 것입니다.)
안(安)하다고 한 것은 처(處)하는 바가 편안하다는 것을 말한다.
(나의 권도(權度)101)를 바르게 하여 사물(事物)에 응(應)하니, 때에 따라 곳에 따라 태연(泰然)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생각한다〔慮〕고 한 것은 처사(處事)가 정순(精純)하고 자세함을 말한다.
(사물(事物)이 앞에와 닿으면 다시 모름지기 살펴야 할 곳을 궁구하고 연구하여 처리하는 것입니다.)
얻는다〔得〕고 한 것은 그 그쳐야 할 곳을 얻었음을 말한다. (행하여 지극히 선(善)한데 그침을 얻는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정(定)·정(靜)·안(安)의 세 글자를 비록 차례로 나누었으나 서로의 거리는 멀지 않고, 다만 얕고 깊음이 있을 뿐이다.
실은 그칠 바를 알게 되고 나서는 모두 용이하게 전진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안(安)하고 나서 능히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뒤라야 능히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진취(進就)하기 어려운 곳이다.
많은 <사람들은> 안(安)하는 곳까지 이르러서는 멈춰 버리는 것이다.

○쌍봉 요씨(雙峯饒氏)는 말하기를,
"저울에 비유하면 그칠 바를 안다〔知止〕는 것은 저울 위의 눈을 아는 것이요,
생각한다〔慮〕고 한 것은 장차 물건을 달려고 할 즈음에 다시 한 번 자세히 보는 것과 같다.
능히 얻을 수 있다〔能得〕고 한 것은, 바야흐로 가볍고 무거운 것을 정확하게 저울질해 알아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정(定)·정(靜)·안(安)은 일이 이르기 전에 있는 것이요, 생각한다〔慮〕는 것은 일이 바야흐로 도래(到來)할 즈음에 있는 것이다.
이 정(定)·정(靜)·안(安)과 생각하는 네 가지는 바로'그칠 바를 안다〔知止〕.'는 데서
'능히 얻을 수 있다〔能得〕.'는 경지에 도달하는 연결된 통로인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행(行)을 거쳐서 지(知)에 도달하는 효험에 대한 말씀

○맹자는 말하기를, "자신에게로 되돌려 살펴보아 진실로 그러하면 즐거움이 이보다 더 큰 것은 없다." 하였습니다. (맹자(孟子))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義), 부자(父子) 사이의 친(親)같은 도리는 본래 우리의 몸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진실로 그러하다〔誠〕는 것은, 진실로 이러한 이치가 있다는 뜻이다.
자기의 신상(身上)을 점검(點檢)하여 보아서 과연 잘못된 일이 없고, 임금을 섬기는 데 정말 충성하였으며,
아버지를 섬기는 데는 진정 효도를 다함으로써, 각각 그 마땅한 바를 다하여 한 터럭만큼도 미진한 곳이 없으면 우러러봐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봐서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서 자연히 쾌활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반성하여 보아 조금이라도 부실(不實)한 구석이 있으며,
마음이 부끄러워서 스스로 편안할 수가 없을 것이니 어떻게 즐거울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자신을 반성하여 보아, 갖추고 있는 이치가 모두 악취(惡臭)를 싫어하고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도리에 충실> 하였다면 그의 행하는 바는 애써 노력함을 기다리지 않고라도 이롭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니,
즐거움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삼(參:증삼(曾參))아, 우리의 도(道)는 하나로써 궤였다〔一貫〕." 하니, 증자(曾子)는, "예" 하고, 대답하였다. (논어)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삼아〔參乎〕라고, 한 것은 증자(曾子)의 이름을 불러서 일러준 것이다.
꿰였다〔貫〕고 한 것은 관통한다는 것이다. '예'〔唯〕라고 한 것은 대답하는 것이 빠르고 의심이 없다는 것이다.
성인(聖人)의 마음은 혼연(渾然)히 한 가지 이치이다.
그러나 널리 응용되고 곡진하게 합당하여 응용(應用)함이 각각 같지 않다.
비유하건대 천지〔天地〕의 지성(至誠)이 쉼〔息〕이 없어서 만물(萬物)이 제각기 그 곳〔所〕을 얻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증자가 그의 용(用)에 있어서는 대개 이미 일에 따라 정밀하게 살피고 힘써 행하였으나, 다만 그 체(體)가 하나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공자는 그가 진실로 쌓고 힘씀이 오래여서 장차 얻는 바가 있을 것을 알았다.
그런 까닭에 불러서 일러준 것이며, 증자는 과연 능히 묵묵히 그 가르침을 깨닫고 재빨리 응답하여 의심함이 없었던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 하나〔一〕라고 한 것은 한 마음이란 뜻이다.
꿴다〔貫〕는 것은 온갖 일이니 다만 이 한 마음의 이치로 여러 가지 이치를 다 관통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꿴다고 한 것은 흩어진 돈닢과 같고, 하나라고 한 것은 꿰는 노끈과 같다.
증자가 허다한 산전(散錢)을 모두 세었으나 다만 꿸 노끈 하나가 없었으므로 공자가 문득 꿰미를 집어 준 것이다.
지금 만약 한 닢의 산전도 없으면서 다만 한 가닥의 꿰미만 사용한다면 또한 무엇을 꿰겠는가.
이제 꿰는 것〔一〕을 얻지 못함을 근심하지 말고 다만 꿰일 것을 깊이 깨달아 얻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다.
관통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꿰이는 것을 얻는다고 말할 수 없다.
천품(天稟)이 높은 자는 흘러서 석가(釋伽)나 노자(老子) <같은 이단자(異端者)>가 되어버릴 것이고,
천품이 낮은 자는 다만 한 개의 조리없는 흐리멍덩한 물사(物事)를 만들고 말 것이다." 하였습니다.

○연평(延平)선생은 말하기를,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항상 가슴 속을 시원스럽게 터놓고 쇄락(灑落)하게 하여야 한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이 설(說)은 매우 좋다.
대체로 이러한 경지는 견식(見識)이 분명하며 함양(涵養)함이 순수하고 성숙한 효험으로서,
진실히 누적(累積)된 공용(功用) 속에서 나오는 것이요, 하루아침에 억지로 끌어다 힘써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臣)이 살펴보건대, 지(知)와 행(行)은 비록 선후(先後)로 나누었으나 실은 동시에 함께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이는 지(知)를 거쳐서 행(行)에 도달하고 어떤 이는 행을 거쳐서 지에 도달합니다.

◆ 다음은 속을 경유하여 겉으로 나타나는 효험에 대한 말씀

○군자는 안으로 살펴서 병〔疾〕됨이 없고 뜻에 미워함〔惡〕이 없다.
<사람들이> 군자에게 미치지 못하는 점은 오로지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는 일이다. (중용(中庸))

주자는 말하기를, "구()는 병(病)이란 뜻이다. 뜻〔志〕에 미워함이 없다는 것은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과 같다.

○서산진씨(西山眞氏)는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신령하여서 터럭만큼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속이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마음에 만족해 할 수 없는 것이 있게된다. 이것이 이른바 병〔〕이 된다는 것이요, 또한 이른바 <마음에>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오직 깊은 곳에 있으면서 드러난 데서와 같이 <행동>하고, 홀로〔獨〕 있으면서도 여러 사람과 같이 있는 것처럼 하여,
자신을 반성할 때에 병되거나 부끄러워할 것이 없으며, 이것이 군자가 사람들보다 크게 뛰어나는 점으로 사람들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부(富)하면 집이 윤택(潤澤)하여지고, 덕(德)이 있으면 몸이 윤택하여진다. 마음이 넓으면 몸이 편안하게 펴진다〔〕.
그런 까닭으로 군자는 반드시 뜻을 정성〔誠〕되게 한다. (대학(大學))

주자는 말하기를, "반()은 편안하고 펴진다는 것이다.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넓고 크고 너그러우며 평온하여서 몸이 항상 펴지고 편안하게 된다.
덕(德)이 몸을 윤택하게 한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대개 선(善)이 속에서 충실하여 밖으로 드러남이 이와 같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옥루(屋漏)102)에서도 부끄러움이 없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몸이 펴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인(인)·의(義)·예(禮)·지(智)가 마음에 뿌리를 박으면 그밖에 나타남이 수연(然)하게 얼굴에 드러나고 등 뒷면에도 풍부하여진다.
사체(四體)에 베풀어져 사체는 말하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깨우치게〔喩〕된다." 하였습니다. (맹자(孟子))

주자는 말하기를, "밖에 나타난다고 한 것은 드러나 보인다는 것이고,
수연(然)하다고 한 것은 맑고 화(和)하고 윤택한 모양이며, 풍부하여진다〔〕고 한 것은 풍후(豊厚)하고 차서 넘친다는 뜻이다.
사체(四體)에 베푼다고 한 것은 동작(動作)과 위의(威儀)에 드러나 보이는 것을 말한다.
깨우친다〔喩〕고 한 것은 깨닫는 것〔曉〕과 같다.
'사체는 말하지 아니하여도 깨우친다.'한 것은 사체가 나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능히 나의 뜻을 깨달아 안다는 뜻이다.
대체로 물욕에 구애가 없으면 성(性)의 사덕(四德)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그 쌓인 것이 성(盛)하게 되면 겉으로 나와서 드러나 보이는 것이므로,
말하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순응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되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음악〔樂〕은 마음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요, 예(禮)라고 한 것은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음악은 화(和)를 다하게 되고, 예(禮)는 순(順)함을 다하게 된다.
마음 속이 화하고 밖이 순하면 백성들이 그의 얼굴 빛만 보아도 서로 다투지 아니하고,
그의 용모(容貌)를 바라보기만 하여도 백성들은 쉽게 여기거나 업신여기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덕(德)이 빛나 마음 속에 움직이면, 백성들이 받들어 듣지 않는 자가 없으며,
이(理)가 밖으로 발로(發露)하면 백성들이 받들어 순응하지 않는 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악(禮樂)의 도(道)를 이루어 이것으로 시행한다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예기(禮記))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속에서 움직이면 능히 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밖에서 움직이면 능히 몸을 다스릴 수 있으며,
지극히 화(和)하고 지극히 순하면 잠깐 사이의 불화도 불순(不順)도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남을 감동시키는 효험이 이와 같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지(知)와 행(行) 겉과 속〔表裏〕을 합하여, 얕은 데서부터 깊은 데 이르는 것과 성(聖)스럽고 신비스러운 것의 극치에 대한 말씀

맹자는 말하기를, " 하고자 할 만한 것을 선(善)이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천하의 이치가 선(善)한 것은 반드시 하고자 할 만하고, 악(惡)한 것은 반드시 미워할 만한 것이다.
그 사람됨이 마음가짐, 일의 처리함, 자기 몸을 수행(修行)하고 남을 접대함에 있어서 한결같이 다 하고자 할 만하고 미워할 수 없다면,
선인(善人)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자기의 몸에 소유하는 것을 믿음성〔信〕이라고 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모든 선(善)이라고 하는 것을 진실로 다 <자기의 몸에> 가지고,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惡臭)를 싫어함과 같이 하며, <선(善)을 좋아하기를,> 여색을 좋아함과 같이 한다면,
믿음성있는 사람〔信人〕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선인(善人)이라는 것은 혹은 그의 천품이 아름답거나 혹은 배워 알아서 힘쓰고 사모하여 도달한 이도 있으나 반드시 그가 참으로 그렇게 하여,
과연 능히 잃지 않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힘을 씀〔用力〕이 오래되고, 진실로 이러한 선(善)을 몸에 지녀서 터럭만한 허위(虛僞)도 없어야만
믿을 만한 사람〔信人〕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충실(充實)한 것을 아름답다〔美〕고 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미 믿어우면 행하기에 반드시 힘 쓸 것이요, 지키는데 반드시 견고(堅固)할 것이다.
오로지 이렇게만 한다면 가진 바 선(善)은 그의 몸에 충족(充足)하고 포만(飽滿)되어,
비록 미세(微細)한 곡절(曲折)에도 역시 모두가 맑고 화(和)하며, 순수하고 의젓하여 불선(不善)한 것이 섞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른바 아름다운 사람〔美人〕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충실하여 광채가 나는 것을 크다고〔大〕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화하고 순한 것이 속에 쌓여서 꽃답고 고운 것이 밖에 나타나며,
미(美)가 그 가운데 있어서 사지(四肢)에 창달(暢達)되고,
사업(事業)에 발휘(發揮)되면 덕업(德業)이 지극히 성대(成大)하여서 더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미(美)는 능히 내부를 채워 줄 뿐이고, 반드시 그것이 밖에 나타나 보이게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이렇게 하여 마지아니하면 그 내면에 채워진 선(善)이 가득하여 지고 넘쳐서 막을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이 몸에 있어서는 낯빛을 수연(然)하게 하고 등〔背〕을 풍부하게〔〕하여 사체(四體)에 드러나게 한다.
그것이 일에 있어서는 덕(德)은 성대(盛大)하게 하고 인(仁)은 성숙(成熟)하여서 천하가 아름답고 광명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인(大人)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커서 화(化)하는 것을 성(聖)이라고 하고, 성(聖)하여 알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고 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커서 능히 화(化)하게 되어, 그 큰 것으로 하여금 아무런 다시 볼 만한 자취가 없는 경지에 이르게 하면,
생각하지 아니하고 힘쓰지 아니하여도 조용히 <저절로> 도(道)에 맞는데, 이는 사람의 힘으로는 능히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크고도 화(化)하지 아니하면 그 크다는 것이 아직 방체(方體)와 형적(形跡)의 <테두리를> 이탈하지 못한 것이다.
반드시 덕(德)이 성대(盛大)한 자는 날로 성대함을 더하고, 인(仁)이 성숙한 자는 날로 성숙함을 더하면,
소위 크다는 것〔大者〕은 봄이 무르익어 얼음이 풀리듯 혼연히 자취도 없어,
천지(天地)와 그 덕이 합치하고 일월(日月)과 광명이 합치하며, 사계절(四季節)과 질서가 합치하고 귀신(鬼神)과 길흉(吉凶)이 합치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을> 성인(聖人)이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커서 화한다는 것〔大而化之〕은 오직 이(理)와 자기가 하나로 되는 것이다.
아직 화(化)하지 못한 자는 사람이 자〔尺〕를 잡고 물건을 재는 것과 같지마는, 화하게 되면 몸이 곧 자가 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대(大)는 할 수가 있지만,
화(化)한다는 것은 <인위로> 할 수가 없고, 다만 성숙(成熟)하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성(聖)에 이르면 도(道)에 나아가고 덕(德)으로 들어가는 공부가 더할 수 없이 극진하게 된다.
이것은 성덕(盛德)과 지선(至善)의 극치(極致)인 것이다.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신묘(神妙)함이 반드시 귀와 눈으로도 능히 다 보고 들을 수 없으며,
마음의 생각으로도 능히 추측(推測)할 수 없는 바가 있는데, 이런 것을 이른바 신(神)이라는 것이요,
성인(聖人)의 위에 다시 신인(神人)이 있다고 한 것은 아니다.
대개 하고자 하는 것〔可欲〕에서 크다〔大〕는 것에 이르기까지는 생각하고 힘씀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것이지마는,
성(聖)하고 또 신(神)한 것에 이르러서는 생각하고 힘쓰는 것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생각하고 힘써서 그치지 아니하는 일 없이는 또한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위의 성(聖)과 신(神)의 설을 이어 성인의 도에 대해 극론(極論)함

공자는 네 가지를 끊었습니다. 사의(私意)가 없고〔毋〕, 기필(期必)함이 없으며,
고집(固執)함이 없고, 사사로운 아집(我執)이 없었습니다.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끊었다는 것〔絶〕은 완전히 없앤 것이다.
없다는 무(毋)자는 사기(史記)에 무(無)자로 썼으니 옳다.
사의(私意)라고 한 것은 사사로운 뜻〔意〕이다.
기필(期必)이라고 한 것은 꼭 그렇게 하고야 말겠다고 기약하는 것이다.
고집(固執)한다고 한 것은 고루(固陋)하게 집념을 가지고 정체(停滯)하는 것이다.
아집(我執)이라고 한 것은 사사로운 자기 본위의 생각이다.
이 네 가지는 서로 끝이 되고 처음이 되는 것이다.
사사로운 생각에서 일어나서 기필(期必)하는 데서 수행(遂行)되고, 고집하는 데서 머물러서 자기 본위의 주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체로 사의(私意)와 기필은 항상 사전(事前)에 있고, 고집과 아집은 항상 사후(事後)에 있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여기에 무(毋)자는 금지(禁止)하는 말이 아니다.
성인(聖人)이 이 네 가지를 끊었는데 무슨 금지의 말이 소용되겠는가.
성인의 마음은 하늘과 더불어 일체(一體)인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성인의 마음은 밝은 거울 같고 고요하게 머물러 있는〔靜止〕물과 같다." 하였습니다.

○장자는 말하기를, "네 가지 중에 하나라도 있다면 천지와 더불어 서로 같을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 1절은 성인(聖人)의 마음을 말한 것입니다.)

공자는 <용모(容貌)가> 온화(溫和)하면서도 엄숙하고, 위의(威儀)가 의젓하면서도 사납지 아니하며, 공손하면서도 안서(安舒)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여()는 엄숙한 것이다.
사람의 덕성(德性)은 본래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나 기질(氣質)의 주어진 바가 편파(偏頗)되지 않음이 드물다.
오직 성인(聖人)만이 전체가 혼연되어 음양과 덕이 합치되는 까닭에
그 중화의 기〔中和之氣〕가 용모(容貌)에 나타나 보임이 이와 같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 1절은 성인의 용모(容貌)를 말한 것입니다.)

군자(君子)는 움직이면 대대(世世)로 천하의 도리가 되어, 행(行)하면 대대로 천하의 법도(法度)가 되며,
말하면 대대로 천하의 준칙(準則)이 된다. 멀리서는 첨망(瞻望)하며, 가까운 데에서는 싫어하지 아니한다. (「중용」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동(動)한다고 한 것은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을 겸하여 말함이요,
도(道)라고 한 것은 법도와 준칙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 법(法)은 법도이고, 칙(則)은 준칙이다." 하였습니다.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멀리 있는 자는 그의 덕(德) 입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바라고 흠모(欽慕)하는 뜻이 있으며,
가까운 곳에 있는 자는 그의 행(行)함이 떳떳함에 익숙하여져서 싫어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 1절은 성인의 언행(言行)을 말한 것입니다.)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라야 능히 그 성(性)을 다할 수 있으며, 그 성(性)을 다할 수 있으면 사람의 성(性)을 다할 수 있다.
사람의 성을 다할 수 있으면 물(物)의 성을 다할 수 있으며, 물(性)의 성을 다할 수 있으면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고,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병립할 수 있다.

주자는 말하기를, "천하의 지성(至誠)이라고 한 것은 성인(聖人)의 덕(德)의 성실함이 천하에 더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 성(性)을 다한다고 한 것은 덕(德)이 성실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 없고,
천명(天命)이 나에게 있는 것을 살피고 좇아서 거대한 것이나 미세한 것, 정순(精純)한 것이나 조잡한 것에도 터럭만큼의 미진(未盡)함이 없는 것이다.
인성(人性)과 물성(物性)도 또한 나의 성(性)이며, 다만 품부(稟賦)된 형기(形氣)가 같지 아니하여 차이가 있을 뿐이다.
능히 다한다〔能盡之〕한 것은 아는 것이 밝지 않음이 없고,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음이 없는 것을 말한 것이다.
찬(贊)이라고 한 것은 돕는다〔助〕는 것과 같고, 천지와 더불어 병립한다 함은
하늘과 땅과 더불어 병립(竝立)하여서 셋〔三〕이 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 1절은 성인(聖人)의 덕업(德業)을 말한 것입니다.)

신(臣)이 살펴보건대, 성인의 덕(德)은 천지와 함께 일체(一體)가 되어서 신묘(神妙)함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비록 <그러한 경지에>도 달하기를 기대할 수 없는 것 같으나, 진실로 능히 공부를 쌓을 수만 있다면 이르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지 않는 것을 근심할지언정 불능(不能)한 것을 근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요(堯)·순(舜)·주공(周公)·공자 같은 이는 나면서부터 알아서 편안하게 행하여 점차로 조금씩 전진하는 공부가 없었지만,
탕왕(湯王)·무왕(武王)이하는 배워서 알고 힘써서 행(行)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니, 이미 천성(天性)에 돌리는 공부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보다 아래에 있는 자들은 비록 괴롭게 애써 배워 알고 힘써 행하였으나 성공(成功)한 뒤에는 동일(同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명도(程明道)를 보고 혼연(渾然)한 천성(天成)만을 좋아하고 그가 죽도록 애써 공부에 종사한 것은 알지 못하며,
회암(晦菴)을 보고 바다같이 넓고 하늘같이 높음만을 좋아하고
작은 수(銖)103)에서 거듭하고 치〔寸〕에서 거듭 쌓아올리는 공부에 종사하였음은 알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능히 그의 길을 따라 걸어간 발자국을 밟으면서 그 울타리를 지나서 문지방 안의 깊숙한 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한갓 앞 사람의 교훈을 가져다가 입에 올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법칙은 눈앞에 있건만 잘 배우는 자가 대(代)마다 나오지 않는 까닭입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성인(聖人)을 나는 얻어 볼 수 없다. 군자나마 얻어 보았으면 좋겠다." 하였습니다.
성인의 천부적(天賦的) 자질의 아름다움은 진실로 보통 사람이 미치기를 바랄 수 없는 바이나,
만약 군자라면 천품의 좋고 나쁜 것을 물론하고 다 배워서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건만 또한 얻어 볼 수조차도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군자로서 전진하고 전진하여 그치지 않는다면, 어찌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겠습니까.
처음은 하고자 할 만한 선〔可欲之善〕으로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천지와 병립하고,
화육을 돕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다만 지(知)를 쌓고 행(行)을 거듭하며, 그 인(仁)을 숙습(熟習)하기에 있을 따름입니다,
성현이 큰 길을 지시(指示)함이 명백하고 평탄하건만, 사람들이 잘 지나가는 이가 드무니 어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 평범한 필부(匹夫) 한 사람이 학문을 하여도 오히려 천지와 병립(竝立)하고 화육(化育)을 돕는 것으로 표준을 삼는데
하물며 제왕(帝王)이겠습니까. 옛날의 제왕도 반드시 나면서부터 저절로 선(善)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태갑(太甲)과 같은 이는 전형(典刑)을 전복(顚覆)시켰으나, 마침내 진실한 덕(德)을 이루기에 이르렀으며,
성왕(成王)은 유언(流言)을 살피지 못하였으나 마침내는 상벌(賞罰)을 합당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뒷 세상의 제왕들이 모두 두 임금의 시초〔初〕로써 경계를 삼아야 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행한 것을 살펴보면 모두 그 두 임금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능히 뜻을 겸손하게 하여 힘써 배우는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개 제왕의 바탕은 반드시 보통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게다가 정기(精氣)를 많이 모으고 사물을 쓰는〔用〕일은 넓습니다.
그런 까닭에 비록 나라를 멸망시킨 군주일지라도 재기(才器)가 남보다 뛰어난 자는 많습니다.
오직 그 재주를 정당하지 못한 데에 써서 도리어 재주의 누(累)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높게 높게 자존(自尊)하여 간하는 신하를 두려워 하지 않으며,
편안하고 즐거운 것을 스스로 즐겨하여 <화복(禍福)이 서로> 기복(起伏)하는 것은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퇴폐(頹廢)하고 타락하여 스스로 단념(斷念)하여, 떨치고 일어나지 못합니다.
나날이 비루하여지고 다달이 더러워져서, 작게는 몸이 위태롭고 국토(國土)가 깎이게 되며,
크게는 몸이 죽고 나라가 멸망하게 되니, 어찌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아, 온갖 선한 것이 성(性)에 갖추어져 있어서 밖에서 찾는 것은 용허(容許)하지 않습니다.
공(功)을 쌓는 것은 자기에게 연유할 뿐이요, 타력(他力)을 의지하지 아니합니다.
세상을 건지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도, 또한 나에게 있는 것이어서 누구도 감히 막지 못합니다.
이러한데 배우기를 일삼아 맑고, 넓은 경지에 이르지 아니하고서 도리어 욕심을 일삼아서 더럽고 낮은 것을 꾀하니,
아, 또한 생각하지 않음이 지나친 것입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전하 자신의 마음에 돌려서 찾으시고, 선성(先聖)을 바라보며 사모하시옵소서.
위로는 황전(皇天)과 조종(祖宗)이 내려주신 책임을 생각하시고 아래로는 신하와 뭇 백성들의 바라고 바라는 여망(輿望)을 좇으소서.
독실하게 성현의 학문을 믿고 성실하게 실천하여 차례를 따라 나아가기를 밤낮없이 부지런히 하면,
반드시 고명(高明)하고 박후(博厚)한 경지에 이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몸을 닦는 공(功)을 다하여 이 세상으로 하여금 요(堯)·순(舜)과 같은 임금을 얻어볼 수 있게 하시고,
이 백성들로 하여금 요·순의 세계와 같은 은택을 입게 한다면, 영원한 후세까지 행복됨이 매우 클 것입니다.

 

< 주 >

100) 「주역」64괘 중 13번째 괘 이름.

101) 권(權)은 저울〔衡〕을 가리키며 도(度)는 자〔尺〕를 말한다.

102) 방의 서북쪽으로 깊숙하여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어두운 곳.

103) 중량의 아주 낮은 단위를 가리킨다.

 

 

제1편. 통 설(統說)

 
신이 살피건대, 성현의 말씀이 횡(橫)으로 말하기도 하고 종(縱)으로 말하기도 하여,
한 마디 말로 체(體)와 용(用)을 다한 것도 있고, 여러 가지 말로 한 실마리만 말한 것도 있사옵니다.
이제 체(體)와 용(用)이 총괄된 말씀만을 취하여 머리 편[首篇]을 말들었사옵니다.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른 것을 도(道)라 하고, 도를 닦은 것을 교(敎)라 한다.(「중용」 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하늘이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으로 만물을 화생(化生)함에
기(氣)로써 형체를 이루고, 이(理)를 또 부여하니(이(理)와 기(氣)는 원래 서로 떠나지 못하는 것이니,
기에 나아가서 이가 그 가운데서 있습니다.
이것은 음양 화생이라는 말을 이었기 때문에, 기로 형태를 이루고 이를 또 부여한다고 한 것이요,
기가 있은 뒤에 이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말로써 뜻을 해치지 않아야 될 것입니다.) 명령함과 같다.
이에 사람과 물(物)이 날 적에 각각 그 부여한 바 이(理)를 얻어서, 건순(健順)과, 오상(五常)의 덕(德)이 되니 이른바 성(性)이다.
(건(健)은 양(陽)의 이(理)이고 순(順)은 음(陰)의 이(理)입니다. 오상의 덕(德)은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이니,
이것은 오행(五行)의 이(理)입니다.) 솔(率)은 따른다는 뜻이요, 도(道)는 길과 같은 것이다.
사람이나 물(物)이 각각 그 본성의 자연을 따르면, 그 일용하는 사물 사이에 모두 각각 마땅히 행할 길이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도(道)이다.(주자는 말하기를, "솔성(率性)은 사람이 솔(率)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본연(本然)의 성품을 따르면 스스로 허다한 도리가 있게 된다.
혹 솔성으로써 성명(性命)의 이를 순하는 것이라고 하니, 그렇다면 이는 도가 사람으로 인하여 비로소 있게 된다.”하였습니다.)
수(修)는 품절(品節)하는 것이다. 성(性)과 도(道)는 비록 같으나 기품(氣稟)이 혹시 다르다.
그러므로 능히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차이가 생기게 되는 것이니,
성인이 인·물(人物)의 마땅히 행할 바를 인하여 품절해서 천하의 법으로 삼았다.
이것을 교(敎)라 하는 것인데, 예(禮)·악(樂)·형(刑)·정(政) 따위가 이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의 성(性)이 있는 것만을 알고, 그것이 하늘에서 나온 줄을 알지 못하며,
일에 도(道)가 있는 것만을 알고, 그것이 성품에서 나온 줄을 알지 못하며, 성인(聖人)의 교(敎)가 있는 것만을 알고,
그것이 나의 고유(固有)한 것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알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자사(子思)가 여기에 맨 처음에 밝힌 것이요,
동자(董子)의 이른바, ‘도(道)의 큰 근원이 하늘에서 나왔다.’ 한 것이 또한 이 뜻이다.”하였사옵니다.

도(道)라는 것은 잠시도 떠나지 못할 것이니 만일 떠날 수 있는 것이라면 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바에도 경계하며, 남들이 듣지 못하는 바에도 두려워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도라는 것은 나날이 쓰이는 사물(事物)의 마땅히 행해야 할 이치인데,
모두 성품의 덕으로써 마음에 갖추었으니, 이 이치가 있지 않은 물건이 없고 이 이치가 있지 않을 때가 없다.
그런 까닭에, 잠간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떠날 수가 있다고 한다면 어찌 솔성(率性)이라고 하겠는가.
이러므로 군자의 마음은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비록 <남들이> 보고 듣지 않을 때라도 감히 소홀히 하지 아니하니,
이것이 천리(天理)의 본연(本然)의 성품을 내 마음에 두어서, 잠시라도 떠나지 않게 하는 까닭인 것이다.”하였습니다.
어두운 곳보다 더 나타나는 것이 없으며 미미한 것보다 더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혼자 있을 때에 삼간다.

주자는 말하기를, “은(隱)은 어두운 곳이고 미(微)는 미미한 일이요, 독(獨)은 남이 알지 못하고 자기 혼자만 아는 경지이다.
말하자면 깊숙한[幽暗] 곳과 미미한 일은 자취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나,
기틀은 이미 동하였고 남들은 아직 알지 못하나 자기 혼자만은 알고 있으니, 천하의 일이 드러나고 나타난 것에 이보다 더 지난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미 항상 경계하고 조심하되 여기에 더욱 삼간다.
그래서 사람의 욕심이 싹트려고 할 적에 막아서 은미(隱微)한 가운데 가만히 자라나서 도를 멀리 떠나는데 이르지 않도록 한다.”하였습니다.

○도향 추씨(道鄕鄒氏)가 말하기를, “독(獨)을 삼가는 것이 가장 도에 들어가는 요령이 되는 것이니,
이른바 독(獨)이라는 것은 비단 한가하고 조용하게 거처(居處)하는 것만이 아니다.
마음에<한 생각>이 싹 트는 것도 독(獨)이라 한다. 능히 여기에 온 힘을 다 한다면 잘못이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용」에 이 말로써 머리 편(篇)을 삼은 것이다.”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천덕(天德)이 있으면 문득 왕도(王道)를 말할 수 있으니, 그 요긴한 것은 다만 신독(愼獨)하는데 있다.”하였습니다.
(천덕이라 함은 곧 몸을 닦은 공효(功效)이고, 왕도라 함은 곧 집을 바르게 하고 정치를 하는 법도이며,
신독(愼獨)은 이러한 몸을 닦고, 가정을 바루고, 정치를 하는 세 가지의 중요한 핵심[樞紐]이옵니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발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하고, 발하여 모두 절도(節度)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하는 것이니,
중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라는 것은 천하의 통달한 도[達道]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정(情)이요, 그것이 발하지 않은 것은 성(性)이다.
편벽되고 기울어짐이 없기 때문에 중(中)이라 이르고, 발하여 모두 절도(節度)에 맞는 것은 정(情)의 바른 것이니,
어긋나고 패려함이 없기 때문에 화(和)라고 이른다. 대본(大本)이라는 것은 하늘이 명한 성이다.
천하의 이치가 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오게 되니 도(道)의 체(體)이다.
달도(達道)라는 것은 성품을 따름을 말함이다. 천하고금에 같이 말미암는 바이므로 도의 용(用)이 된다.
이것은 성정(性情)의 덕(德)을 말하여 (중(中)은 성(性)의 덕이 되고 화는 정(情)의 덕이 됩니다.)
도는 떠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것은 성정의 덕의 체단(體段)이 이와 같은 것을 말한 것이고, 공부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위글의 계구(戒懼)와 신독(愼獨)이 독 아랫글의 중화(中和)를 이루는 것의 공부입니다.)하였사옵니다.

○ 또 말하기를, “마음은 몸의 주재가 되어 동정(動靜)의 간격이 없다.
정(靜)할 때는 사물이 이르지 않고 생각이 싹트지 않아서, 일성(一性)이 혼연(渾然)하여 도의(道義)가 완전히 갖추니 이른바 중(中)이다.
이것은 마음의 체(體)로서 적연(寂然)히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동(動)하게 되면 사물이 서로 이르고 생각이 싹터서, 칠정(七情)이 서로 작용하여 각각 주(主)된 바가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화(和)이다. 이것은 마음의 용(用)으로서 감동하여 통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호계수(胡季隨)는 말하기를, “계구(戒懼)라는 것은 희(喜)·노(怒)·애(哀)·낙(樂)이 발하기 전에 함양(涵養)하는 것이고,
신독(愼獨)이라는 것은 희·노·애·낙이 이미 발한 뒤에 성찰(省察)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함양(涵養)과 성찰(省察)의 말이 비로소 이에 나타났는데, 아래 정심장(正心章)에 자세히 나옵니다.)

중(中)·화(和)를 이루면 천지(天地)가 안정되며 만물이 생육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치(致)라는 것은 미루어서 지극하게 한 것이다.
위(位)라는 것은 <있는>그 곳에서 편안한 것이요, 육(育)이라는 것은 그 생(生)을 완수하는 것이다.
계구(戒懼)로부터 요약하여 지극히 정(靜)한 가운데에, 편벽되고 기울어진 바가 없고 그 지키는 것을 잃지 않는 데까지 이르면,
그 중을 극진히 하여서 천지가 안정될 것이요, 신독(愼獨)으로부터 정밀히 하여 사물에 응하는 곳에, 조금도 어긋나는 것이 없고,
가는 데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는 데까지 이르면, 그 화(和)가 지극하여서 만물이 <다> 생육할 것이다.
대개 천지와 만물은 본래 나와 한몸[一體]이니, 나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도 또한 바루어지고,
나의 기(氣)가 순하면 천지의 기도 또한 순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효험이 이와 같은 데 이르는 것이니,
이것은 학문의 지극한 공효요, 성인의 가능한 일이다.
처음부터 외부의 도움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서, 도를 닦는 교(敎)도 또한 이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이것이 비록 하나는 체(體)이고 하나는 용(用)이 되어 동정(動靜)의 다른 것은 있으나,
반드시 그 체가 선 뒤라야 용이 행하게 되는 것이니, 그 실제는 또한 두 가지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합쳐 말하여 윗글의 뜻을 맺은 것이다.”하였습니다.

○서산 진씨(西山眞氏)는 말하기를, “중화(中和)를 이루는 공부는 경(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계구(戒懼)하는 것은 정(靜)한 때의 경이요, 신독(愼獨)하는 것은 동(動)한 대의 경이다.
정한 때 경하지 아니함이 없는 것은 중(中)을 극진히 하는 것이요,
동한 때 경하지 아니함이 없는 것은 화를 지극히 하는 것으로서, 자연히 천지가 안정되고 만물이 생육되는 것이다.
동중서(董仲舒)의 이른바, ‘임금이 마음을 바르게 하여 조정과 백관과 만민을 바르게 하면,
음양이 화하고 풍우(風雨)가 때에 맞춰서 모든 복이 이른다.’ 한 것은 이러한 이치이다.”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경(敬)을 맡으니, 실상은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강령(綱領)입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위는 자사가 도를 전수한 뜻을 서술하여(공자가 도를 증자에게 전하고, 증자는 <도를> 자사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전한 뜻을 기술한 것입니다.) 말을 세운것[立言]이니,
첫머리에는, 도의 본원은 하늘에서 나왔기 때문에 바꿀 수 없음과, 그 실은 몸에 갖추어졌기 때문에 떠날 수 없음을 밝힌 것이요,
다음은 존양(存養)하고 성찰(省察)하는 요령을 말한 것이요, 끝에는 성신(聖神)의 공화(功化)의 극진한 것을 말한 것이니,
대개 배우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에 돌이켜 구하여, 스스로 체득해서 외부에서 유혹하는 사사로움을 버리고,
그 본연의 착한 것을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하였습니다.

○「대학」의 도(道)는 명덕(明德)을 밝히는 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하는 데 있으며, 지극히 착한 데에 그침에 있다.(「대학」하동)

정자는 말하기를, “친(親)자는 마땅히 신(新)자로 보아야 한다.”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대학」이라는 것은, 대인(大人)의 학문이다. 명(明)은 밝힌다는 뜻이요,
명덕(明德)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으로 허령(虛靈)하여 어둡지 않아서[不], 모든 이치를 갖추어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허령(虛靈)해서 어둡지 않은 것은 마음이요,
이 이치가 마음에 갖추어 흡족해서 조금이라도 결함이 없는 것은 성(性)이요,
감촉하는 것을 따라 감동하는 것은 정(情)이다." 하였습니다.
옥계 노씨(玉溪盧氏)는 말하기를, "명덕(明德)이라는 것은 다만 이 본심(本心)이라." 하였습니다.)
다만 기품(氣)의 구애(拘碍)와 인욕(人欲)의 가린 바가 되어서 가끔 어두워지는 수가 있으나
그 본체(本體)의 밝은 것은 일찌기 쉴 때가 없다.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마땅히 그 발하는 바로 인하여 끝내 밝혀서 그 처음을 회복하여야 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명덕(明德)은 쉬지 않고 나날이 생활하는 사이에 때때로 나타난다.
가령,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것과, 의(義)가 아닌 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것과,
어진 사람을 보고 공경하는 것과, 착한 일을 보고 기뻐해서 사모하는 것은 모두 명덕의 발현이다.
비록 아주 악한 사람이라도 또한 때로는 착한 생각이 발하는 수가 있으니,
마땅히 그 발한 실마리로 인하여 계속하여 그것을 빛나게 밝혀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新)이라는 것은 옛것을 개혁함을 이름인데, 말하자면 스스로 그 명덕(明德)을 밝혔으면
그것을 또 마땅히 미루어 남에게 미치게 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역시 옛날의 잘못을 버리게 하는 것이다.
지(止)라는 것은 반드시 이에 이르러 옮기지 않는다는 뜻이요, 지선(至善)이라는 것은 사리(事理)의 당연한 극치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지선(至善)이란 지극히 좋은 도리란 말과 같으니, 충분히 다한 <최상의> 선(善)이 그 속에 있다."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명덕(明德)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을 다 마땅히 지극히 착한 경지에 그쳐서 옮기지 않는 것이니,
대개 반드시 그 천리(天理)의 지극한 것을 다하여 한 오라기만한 인욕(人欲)의 사사로움도 없게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지선(至善) 이라는 것은 이 명덕(明德) 밖에 따로 선이 있다는 것이 아니고,
다만 명덕(明德) 가운데에서 극처(極處)에 이른 것이 바로 이것 아니겠습니까." 하니,
주자는 대답하기를, "명덕 가운데도 지선이 있고 신민(新民) 가운데도 지선이 있으니,
모두 그 극처에 이름을 요한다. 다만 이해하기를 극처에까지 이르러야 할 뿐 아니라,
역시 행하기를 극처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하였습니다.)
이 세 가지는 「대학」의 강령(綱領)이다." 하였습니다.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가정을 다스리고, 그 가정을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고,
그 몸을 닦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하게 하고,
그 뜻을 성실하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지식을 극진히 하였으니, 지식을 극진히 함은 사물을 궁구하는 데에 있다.

주자는 말하기를, "명덕을 천하에 밝힌다는 것은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그 명덕을 밝히게 하는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그 체(體)와 용(用)의 전체를 극진히 하여 한 마디로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은 살피건대, 자기의 덕을 밝히는 것은 체요, 백성의 덕을 새롭게 하는 것은 용인데,
명덕을 천하에 밝힌다는 것은 체와 용을 합하여 말한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몸을 주재하는 것이다.
성(誠)은 진실한 것이요, 의(意)는 마음의 발하는 바인데,
그 마음의 발하는 바를 성실히 하는 것은 반드시 스스로 유쾌하여 속임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치(致)는 미루어 극진히 함이요, 지(知)는 식(識)과 같은 것이니,
나의 지식을 미루어 극진히 하여 그 아는바가 다하지 않은 것이 없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격(格)은 이른다는 뜻이요, 물(物)은 일[事]과 같으니,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그 극진한 곳에 도달하지 않은 것이 없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격(格)자는 궁(窮)과 지(至)의 두 가지 뜻이 있는데, 격물(格物)의 격(格)은 궁(窮)자의 뜻이 많고
물격(物格)의 격(格)은 다만 이 지(至)자의 뜻입니다.) 이 여덟 가지는 「대학」의 조목(條目)이다." 하였습니다.
(위는 역(逆)으로 미룬 공부입니다.)

○ 또 말하기를, "격물(格物)은 몽(夢)과 각(覺)의 관문[關]이요,
성의(誠意)는 이 인(人)과 귀(鬼)의 관문[關]이니,
이 두 관문의 공부를 마치면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더욱 쉬워져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이르러서는 그 걸음이 더욱 쉬워질 것이니,
모름지기 돌아보면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치지(致知)와 격물(格物)은 이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요,
성의(誠意)와 정심(正心)과 수신(修身)은 이 이치를 체득하는 것이요,
제가(齊家)와 치국과 평천하는 이 이치를 미루어 나아가는 것이니, 3절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격물(格物)로부터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는,
성인이 대략 선후를 나누어서 사람에게 주어 보게 한 것이요,
일건(一件)을 깨끗이 다하여 남음이 없는 뒤라야 비로소 일건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렇게 하면 어느 때에 성취(成就)를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물(物)이 궁구된 뒤에 아는 것이 지극하고, 아는 것이 지극한 뒤에 뜻이 성실하고,
뜻이 성실한 뒤에 마음이 바루어지고, 마음이 바른 뒤에 몸이 닦아지고, 몸이 닦아진 뒤에 가정이 다스려지고,
가정이 다스려진 뒤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 천하가 태평해진다.

주자는 말하기를, "물격(物格)이라는 것은 사물의 이치의 극진한 곳에 이르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고,

(이 구절은 아랫 구절과 상대하여 말한 것이기 때문에 글을 만든 것이 이와 같으나,

그 뜻은 사물의 이치가 그 지극한 곳에 이르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지(至)라는 것은 나의 마음의 아는 바가 다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다.

(물격(物格)과 지지(知至)는 다만 이 한 가지 일이지마는 사물의 이치로써 말하면 물격(物格)이라 하니,

사물의 이치가 각각 그 지극한 곳에 도달한 것을 말함이요, 나의 마음으로써 말하면 지지(知至)라 하니

나의 마음이 가는 바에 따라서 극진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이미 극진하면 곧 뜻이 성실하게 될 것이며,

뜻이 이미 성실하면 곧 마음이 바르게 될 것이니, 수신(修身) 이상은 명덕(明德)을 밝히는 일이요,

제가(齊家) 이하는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하였습니다. (위는 순(順)으로 미룬 공효(功效)입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치신(治身)과 제가(齊家)로부터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는
다스리는 도(道)요, 치강(治綱)을 세우고 백 가지 직책을 나누어 바르게 하여 천시(天時)를 따라 일을 제재하고,
제도와 법도를 만들어서 천하의 일을 다하는 것은 다스리는 법(法)이니,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도는 오직 이 두 가지뿐이다." 하였습니다.
(건안 섭씨(建安葉氏)는 말하기를, "도(道)라는 것은 다스리는 근본이요, 법이라는 것은 다스리는 도구이니 편벽되게 폐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근본이[立] 뒤에 그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성현의 학문은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데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이제 「중용」과 「대학」 첫 장의 설을 모아 엮게 되니, 실제로 서로 표(表)가 되기도 하고 이(裏)가 되기도 하여,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도가 갖추어 다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대개 천명(天命)의 성(性)은 명덕(明德)의 갖춘 바이요, 솔성(率性)의 도는 명덕의 행한 바이며,
수도(修道)의 교(敎)는 신민(新民)의 법도(法度)입니다.
계구(戒懼)라는 것은 정존(靜存)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는 유요, 신독(愼獨)이라는 것은 동찰(動察)하여 뜻을 진실하게 하는 유이며,
중화(中和)를 이룩하여 위육(位育)한다는 것은 명덕(明德)·신민(新民)이 지극히 착한 데에 그쳐 명덕을 천하에 밝히는 것을 말함입니다.
다만 미치는 바가 많고 적음이 있으며, 공효(功效)가 넓고 좁음이 있습니다.
치중화(致中和)의 공이 한 가정에 그치면 곧 한 가정의 천지가 안정하고, 만물이 생육하여 명덕(明德)이 한 가정에서 밝을 것이고,
(한 가정에 어찌 따로 천지와 만물이 있겠습니까?
다만 이 부자(父子)와 부부(夫婦)와 형제(兄弟)가 각각 그 분수를 바르게 하면, 이것이 천지가 안정된 기상이며,
자효(慈孝)와 우공(友恭)과 창수(唱隨)하는 것이 각각 그 정(情)을 다하면 이것이 만물이 생육하는 기상입니다.)
한 나라에 그치면 한 나라의 천지가 안정되고 만물이 생육하여 명덕이 한 나라에 밝아질 것이며,
천하에 미친다면 곧 천하의 천지가 안정되고 만물이 생육하여, 명덕이 천하에 밝을 것입니다.

3대 이후에 한 집안이 위육(位育)한 것은 세상에 간혹 있었지마는,
한 나라와 천하가 위육했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으니, 그래서 깊이 전하께 바라옵니다.

 

 

성학집요(聖學輯要)


《성학집요(聖學輯要)》는 율곡 선생이 40세 때 홍문관 부제학으로 있던 당시 완성하여, 선조 임금에게 올린 책이다.
그 내용은 유학의 기본 입문서인 대학(大學)의 가르침을 여러 성현의 말을 인용하여 고증하고
성리학적 입장에서 해설한 것으로, 유학의 가르침을 통해 자기완성을 이루고
나아가 가정, 사회, 국가를 편안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간결하게 엮었다.
이 내용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율곡전서》를 인용하였습니다


서(序)

신은 살피옵건대, 도(道)는 오묘해서 형상이 없기 때문에 글(文)로써 도를 표현한 것이옵니다.
사서(四書)와 육경(六經)1)에 이미 밝고 또 구비되었으니, 글로써 도를 구하면 이치가 다 나나탈 것이옵니다.
다만 전서(全書)가 호번(浩繁)하여서 요령을 얻기가 어려우니,

선현(先賢)이 「대학」을 표장(表章)하여 규모를 세웠사옵니다.
성현의 천만 가지 교훈이 모두 여기에 벗어나지 않사오니, 이것이 요령을 얻게 하는 방법이옵니다.

서산 진씨(西山眞氏)2)가 이 책을 미루어 넓혀서 연의(衍義)를 만들어,
널리 경전(經傳)을 인용하고 겸하여 사적(史籍)을 인용하여,
학문을 하는 근본과 다스리는 차례가 찬연(粲然)히 조리가 있아온데 임금의 몸에 중점을 두었으니,
참으로 제왕의 도에 들어가는 지침이옵니다.
다만 권수가 너무 많고 문장이 한만(汗漫)하여 일을 기록한 글 같고
실학(實學)3)의 체계가 아니니, 참으로 아름답기는 하나 다 착하지는 못하옵니다.
배움은 마땅히 넓게 하고 첩경으로 요약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다만 배우는 이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마음을 굳게 세우지 아니하고서,
먼저 넓히는데 일삼으면 심려(心慮)가 전일하지 못하고, 버리고 취하는 것이 정밀하지 못해서
혹시 지리(支離)하여 진실을 잃을 염려가 있으니, 반드시 먼저 요긴한 길을 찾고
확실하게 문정(門庭)을 열어 놓은 뒤에야 널리 배우기를 한이 없이 할 수 있고, 유(類)를 따라 향상될 것이옵니다.

항차 임금의 한 몸은 만 가지 일이 모이기 때문에 일을 처리하실 때는 많고 글을 읽을 때는 적사오니,
만약에 그 강령을 들며 그 종지(宗旨)를 정하지 않고 오직 넓히는 데로만 힘을 쓰면,
혹 기억하고 외는 습관에 거리끼게 되고, 혹은 사장(詞章)의 화려한 것에 빠져서,
궁리(窮理)4) · 정심(正心) · 수기(修己) · 치인(治人)의 도에는 참으로 얻는 것이 없을 것이옵니다.

신은 못난 선비로서 좋은 때를 만나 전하를 뵈옵건대 총명하고 지혜로움이 뛰어났으니,
진실로 학문의 공으로써 함양성취(涵養成就)하여 그 기량(器量)을 채우신다면
동방에서 요(堯) · 순(舜)의 다스림을 볼 수 있을 것이오니, 천 년에 한 번밖에 없는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되옵니다.

돌아보건대, 신은 경솔하고 천박하여 재기(才器)가 이미 얕으며,
거칠고 잡되어 학술이 또 보잘 것 없기 때문에 규곽(葵藿)5)의 정성은 비록 간절하오나 충성을 다할 길이 없사옵니다.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대학」은 본래 덕에 들어가는 입문인데,
진씨(眞氏)의 연의(衍義)는 오히려 간결하지 못하니, 진실로 「대학」의 뜻을 모방하여 차례를 따라 나누어서,
성현(聖賢)의 말씀을 정선(精選)하여 거기를 메우고 절목(節目)을 자세하게 하여,
말은 간략하되 이치가 다하게 되면 곧 요령의 방도가 여기에 있사옵니다.
이것을 우리 임금에게 올리면 근폭(芹曝)6)의 드림이 비록 옆사람의 웃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형촉(螢燭)의 빛은 아마 임금을 밝히는데 도움이 있을 것이옵니다.

이에 다른 일을 폐기하고 오로지 요령을 간추리는 것을 일삼아
사서(四書) · 육경(六經)과 선유(先儒)의 설과 역대의 역사에까지 깊이 탐색하고 널리 찾아서,
그 정수만을 채집하여 모으고, 차례를 나누어서 번거로운 것을 줄여 요약하며,
깊이 연구하고 거듭 바로잡아 두 해를 걸려 편성하였사온데 모두 다섯 편이옵니다.

1편의 통설은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을 합하여 말한 것으로서,
곧 「대학」의 이른바 덕을 밝히는 것과,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과, 지극히 착한 데 그치는[止於至善] 것이요,

2편의 수기(修己)는 곧 「대학」의 이른 바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인데, 모두 열세 조목이옵니다.
1장은 총론(摠論)이요, 2장은 입지(立志)요, 3장은 수렴(收斂)이라 한 것은 방향을 정해서
흩어진 마음을 구하여 「대학」의 기본을 세운 것이오며, 4장의 궁리(窮理)는 곧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7)이며,
5장은 성실(誠實)이요, 6장은 기질을 교정하는 것[矯氣質]8)이요, 7장은 양기(養氣)9)요,
8장의 정심(正心)이라는 것은 「대학」의 성의 정심(誠意正心)이요.
9장의 검신(檢身)이라는 곳은 곧 「대학」의 수신(修身)이요, 10장은 덕량(德量)을 넓히는 것이요.
11장은 보덕(補德)이요, 12장의 돈독(敦篤)이라는 것은 거듭 성의(誠意) · 정심(正心) · 수신(修身)의 남은 뜻을 논한 것이요,
13장은 그 공효를 논한 것으로서 수기(修己)가 지선(至善)에 그친 것이옵니다.

3편은 정가(正家)요, 4편의 위정(爲政)이라는 것은
「대학」의 이른바 신민(新民)인데, 정가라는 것은 제가(齊家)를 말함이요,
위정이라는 것은 치국 평천하(治國平天下)를 이른 것이옵니다.

정가(正家)의 조목이 여덟이니, 1장은 총론이요, 2장은 효경(孝敬)이요,3장은 형내(刑內)요,
4장은 교자(敎子)요, 5장의 친친(親親)이라는 것은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처자(妻子)에게 모범이 되며,
형제 간에 우애하는 도리이오며, 6장은 근엄(謹嚴)이요, 7장의 절검(節儉)이라는 것은 미진(未盡)한 뜻을 미루어 연역(演繹)함이요,
8장은 공효(功效)를 말하였으니, 곧 제가(齊家)가 지선(至善)에 그친 것이옵니다.

위정(爲政)의 조목이 열[十]이니, 1장은 총론이요, 2장은 용현(用賢)이요,
3장의 취선(取善)이라는 것은 곧 「대학」의 이른바 어진 사람이라야 능히 사랑하고 미워한다는 뜻이요,
4장은 시무(時務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요, 5장은 선왕(先王)을 본받음이요,
6장의 천계(天戒)를 삼가라는 것은 곧 「대학」에서 인용한, “마땅히 은(殷)나라에 볼지어다.
준명(峻命:천명을 말함)이 쉽지 않다.”는 뜻이요, 7장의 기강(紀綱)을 세운다는 것은
곧 「대학」의 이른바, “나라를 가진 자는 삼가야 할 것이니 편벽하면 천하의 살육이 된다.”는 뜻이요,
8장은 안민(安民)이요, 9장의 명교(明敎)라는 것은 곧 「대학」의 이른바,
“군자 혈구(矩)10)의 도가 있으니 백성이 효제(孝悌)에 흥기하며 배반하지 않는다.”는 뜻이요,
10장은 공효(功效)로써 매듭을 지어, 치국 평천하(治國平天下)가 지극히 착함[至善]에 그친 것이옵니다.

5편의 성현 도통(道統)이라는 것은 바로 「대학」의 실적(失跡)입니다.
모두 합하여 성학집요(聖學輯要)라 이름하니,
마지막으로 도를 전하는 책임을 성상에게 바른 것이라 해도 너무 지나친 말은 아니옵니다.
전하께서는 5백의 기(期)를 당하시고 군사(君師)의 지위에 거하시어,
착한 것을 좋아하는 지혜와 욕심이 적은 인(仁)과 일을 결단하는 용맹이 있으시니,
진실로 시종 학문을 힘쓰시어 끊이지 않고 계속한다면 무거운 책임을 감내하여 원대한 사업을 이루는 것을 어찌 못하겠사옵니까.

다만 어리석은 신(臣)이 견문이 넓지 못하고, 지식과 생각하는 것이 투철하지 못하와,
차례를 갖추는 데 순서를 잃은 것이 많사오나, 인용한 성현의 말씀은 모두 천지에 세워도 어긋나지 않고,
귀신에게 질정하여도 의심되는 것이 없으며, 뒷성인이 보더라도 의혹할 것이 없는 것이오니,
어리석은 신이 조리(條理)를 잘못 구분하였다고 해서 성인의 교훈을 경솔히 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옵니다.

혹 어리석은 신이 한 가지 터득한 설(說)을 그 사이에 섞은 것이 있사오나,
모두 삼가 성현의 교훈을 상고하여 거기 의거해서 글을 이룬 것이오며,
감히 방자하게 맹목적인 말을 발하여 종지(宗旨)를 잃지 않았사옵니다.
신의 정력을 여기에 다하였사오니, 만일 열람하시고 항상 상 위[案]에 두신다면,
전하께서는 천덕(天德)과 왕도(王道)의 학문에 아마 다소 도움이 없지 아니 할 것이옵니다.

이 책은 비록 임금의 학문을 주로 하였사오나 실상은 상하에 통하오니,
배우는 이로서 널리 보고 범람하여 귀결(歸結)이 없는 자는 마땅히 여기에 공(功)을 거두어 반약(反約)의 방법을 얻고,
배우지 못하고 고루하고, 견문이 좁은 자는 마땅히 여기에 힘을 들이어 향학(向學)의 방향을 정하여야 할 것이오니,
배움에는 빠르고 늦음이 있으나 모두 유익할 것이옵니다.

이 책은 사서와 육경의 계단이며 사다리[階梯]이오니, 만약 부지런한 것을 싫어하고 간편한 것을 편안히 여겨서,
학문의 공(功)이 여기에서 그친다고 하면, 이것은 그 문정(門庭)만 구하고 그 당실(堂室)은 찾지 못한 것이오니,
신이 책을 엮은 본의가 아니옵니다.

만력(萬曆) 3년 을해(乙亥)11) 가을 7월 16일에
통정대부홍문관 부제학 지제교 겸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관(通政大夫弘文館副提學知製敎兼經筵參贊春秋館修撰官)
신(臣) 이이(李珥)는 엎드려 절하옵고 삼가 서(序)를 쓰옵니다.

 
< 주 >

1) 중국의 여섯가지 경서(經書).

곧 주역(周易) 시경(詩經) 서경(書經) 춘추(春秋) 예기(禮記) 악기(樂記).
또는 악기 대신에 주례(周禮)를 넣기도 한다. 육예(六藝) 또는 육적(六籍)이라 부르기도 한다.

2) 송(宋)나라 포성(浦城) 사람.

이름은 덕수(德秀) 자는 경원(景元) 또는 경희(景希) 서산(西山)은 그의 호임.
저서로 대학연의(大學衍義) 사서집편(四書集編) 등이 있다.

3) 실리(實理)·실용(實用)·실적(實迹)·실심(實心)·실사(實事)를 추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4) 이치를 탐구하는 일.

대개 경외(敬畏)의 마음으로 이치를 탐구하는 일을 뜻한다.

5)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여 기울어진다는 뜻으로

아랫사람이 군왕(君王)이나 장상(長上)의 덕을 경앙하는 것을 뜻한다.

6)임금에게 미미한 충성을 바친다는 뜻.
옛날에 미천한 농부가 미나리가 맛있고 등에 쪼이는 봄볕에 좋다고 여겨 임금에게 바치기를 원했다는 고사가 있다.

7) 「대학(大學)의 8조목에 속하는 것으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지식을 극진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희(朱熹)는 격물「格物」의 「格」을 「至」, 즉 이르다는 뜻이라 하고 「物」을 사물이라는 뜻이라고 하여
사물의 개별적·경험적 탐구와 인식의 방법으로 풀이하였다.
치지(致知)에 관해서도 지(知)를 이루느냐 지(知)에 이르느냐는 논의가 있으나
주희(朱熹)는 지(知)를 이룬다는 입장에서 해석하였다.
이에 반하여 왕양명(王陽明)은 「格物」의 「格」을 正이라 풀이하여 사물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왕양명은 격물치지를 「치양지」(致良知)설과 지행합일(知行合一)설의 입장에서 해석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왕양명의 해석은 선험적·직관적인 방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본래 「대학」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주희적인 것과 왕양명적인 것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주희, 왕양명 양자는 그 한 편에 치우쳤다고 할 수 있다.

8) 편벽된 기질(氣質)을 변화시켜 교정한다는 뜻.

이 이론은 송(宋)대의 장횡거(張橫渠)에서 비롯되었다.

9) 기(氣)를 기른다는 뜻으로

맹자(孟子)에서 말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른다는 것을 말한다.

10) 「대학」의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해당되는 조목에서 제기된 것으로

혈구(矩)의 도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른바 천하를 화평하게 함이 그 나라를 다스림에 있다는 것은 위에서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에게 효도가 일어나며 위에서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에게 공경함이 일어나며,
위에서 외로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백성이 배반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혈구의 도를 지녀야 한다. 즉 위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 것이며,
아래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위를 섬기지 말 것이며, 앞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뒤에 먼저 하지 말 것이며,
뒤에서 실어하는 바로써 앞에 따라가지 말 것이며, 오른편에서 싫어하는 바로써 왼편에 건내지 말 것이며,
왼편에서 싫어하는 바로 써 바른편에 건네지 말 것이다. 이것을 혈구지도(矩之道)라 하는 것이다」

11) 명나라 신종의 연호로 1575년, 선조 8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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