童蒙先習(동몽선습)


동몽선습의 저자는 박세무(朴世茂)이다.
박세무는 1487년 (성종 18)에 나서 1564년 (명종 19)에 사망했다.
자는 경번(景番), 호는 소요당(逍遙當)이다.
어려서부터 영리하여 12세에 아버지의 상을 당했으나 예를 다함이 어른과 같았다.
153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치는 동안 공이 많았다.
그는 성질이 안정(安靜)을 좋아해서 재산을 모으려 하지 않고, 시속에 붙좇지 않았다.
착한 일을 좋아하고 의리를 중히 여겼으며,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다.
그가 지은 이 동몽선습은 어린이의 교육을 위한 우리나라 최초의 교과서라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가 있다.
내용은 먼저 총론면에서,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오륜(五倫)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하여
오륜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이의 엄수를 강조한다.
그리고 뒤편에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간략한 역사를 서술했다.
이 책은 16세기 이후 우리 어린이 교과서로 널리 읽혀왔다.
그 뒤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출간되고, 아직까지도 시골에서 많이 읽히고 있다.

 

 

동몽선습(童蒙先習)


天地之間萬物之衆에 惟人이 最貴所貴乎人者는 以其有五倫也라.
천지지간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소귀호인자는 이기유오륜야라.
是故로 孟子曰 父子有親하며 君臣有義 夫婦有別하며 長幼有序하며
시고로 맹자왈 부자유친하며 군신유의 부부유별하며 장유유서하며
朋友有信이라 하시니 人而不知有五常卽其違禽獸不遠矣라.
붕우유신이라 하시니 인이부지유오상즉기위금수불원의라.
然卽父慈子孝하며 君義臣忠夫和婦順하며 兄友第恭朋友輔仁然後에야 方可謂之人矣라.
연즉부자자효하며 군의신충부화부순하며 형우제공붕우보인연후에야 방가위지인의라.

 

천지 사이에 있는 만물의 무리 중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니 사람이 귀한 까닭은 다섯가지 인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버이와 자식은 친함이 있고, 임금과 신하는 의리가 있으며,
남편과 아내는 분별이 있고, 어른과 어린이는 차례가 있으며, 벗끼리는 믿음이 있다 하시니,
사람으로서 이 오상(오상)을 알지 못하면 그 날짐승과 길짐승에 다름이 멀지 않다.
그러니 어버이는 인자하고 자식은 효성스러우며, 임금은 의롭고 신하는 충성스러우며, 남편은 온화하고 아내는 순하며,
형은 사랑하고 아우는 공경하며, 벗은 인(인)을 도운 연후에야 바야흐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부자유친(父子有親)
父子는 天性之親이라 生而育之하고 愛而敎之하며 奉而承之하고 孝而養之하나니 是故로 敎之以義方하여 弗納於邪하며 柔聲以諫하여 不使得罪於鄕黨州閭하니
부자는 천성지친이라 생이육지하고 애이교지하며 봉이승지하고 효이양지하나니 시고로 교지이의방하여 불납어사하며 유성이간하여 불사득죄어향당주려하니

 

어버이와 자식은 타고난 성품이 친하다. 어버이는 낳아서 기르고 사랑하고 가르치며, 자식은 받들면서 뒤를 잇고 효도하며 봉양한다.
그러므로 어버이는 자식을 옳은 방법으로써 가르쳐 나쁜 데 들어가지 않도록 하며, 자식은 부드러운 소리로써 간하여 세상에 죄를 짓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苟或父而不子其子하며 子而不父其父하면 其何以立於世乎리요 雖然이나 天下에 無不是底父母라 父雖不慈나 子不可以不孝니
구혹부이불자기자하며 자이불부기부하면 기하이입어세호리요 수연이나 천하에 무불시저부모라 부수불자나 자불가이불효니

 

아버지로서 그 자식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고, 자식으로서 그 어버이를 어버이로 대접하지 않으면 그 어찌 세상에 설 수가 있는가?
그러나 천하에는 옳지 않은 부모는 없는 까닭에, 어버이가 비록 인자하지 않더라도 자식은 효도를 아니하지 못할지어다.


昔者에 大舜이 父頑母은하여 嘗欲殺舜이어늘 舜이 克諧以孝하사 蒸蒸에하여 不格姦하시니 孝子之道가 於斯에 至矣라

석자에 대순이 부완모은하여 상욕살순이어늘 순이 극해이효하사 증증에하여 불격간하시니 효자지도가 어사에 지의라

孔子曰 五刑之屬이 三千이로되 而罪는 莫大於不孝라 하니라.
공자왈 오형지속이 삼천이로되 이죄는 막대어불효라 하니라.

 

옛날 대순(대순)이 아버지는 완악하고 어머니는 모질어 일찌기 순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순은 능히 효도로써 화합하기를 힘써 점점 나아져 간악한 데 이르지 않게 하였으니 효자의 도는 이와 같이 지극했다.
그래서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오형(오형)에 속한 것이 삼천이나 되지만 불효보다 더 큰 죄는 없다]고 하셨다.

 

 

군신유의(君臣有義)
君臣은 天地之分이라 尊且貴焉하며 卑且賤焉하니 尊貴之使卑賤과 卑賤之事尊貴는 
군신은 천지지분이라 존차귀언하며 비차천언하니 존귀지사비천과 비천지사존귀는
天地之常經이며 古今之通義是故로 君子는 體元而發號施令者也요 臣者는 調元而陳善閉邪者也라.
천지지상경이며 고금지통의시고로 군자는 체원이발호시령자야요 신자는 조원이진선폐사자야라.
會遇之際에 各盡其道하여 同寅協恭하여 以臻至治하나니 苟或君而不能盡君道하여 臣而不能修臣職이면 不可與共治天下國家也니라.
회우지제에 각진기도하여 동인협공하여 이진지치하나니 구혼군이불능진군도하여 신이불능수신직이면 불가여공치천하국가야니라.
雖然이나 吾君不能을 謂之賊이니 昔者에 商紂가 暴虐이어늘 比干이 諫而死하니 忠臣之節이 於斯에 盡矣라. 孔子曰 臣事君以忠이라 시니라.
수연이나 오군불능을 위지적이니 석자에 상주가 폭학이어늘 비간이 간이사하니 충신지절이 어사에 진의라. 공자왈 신사군이충이라 시니라.

 

임금과 신하는 하늘과 땅의 분수라. 임금은 높고 귀하며 신하는 낮고 천하니,
높고 귀한 임금이 낮고 천한 신하를 부리는 것과, 낮고 천한 신하가 높고 귀한 임금을 섬기는 것은
하늘과 땅의 떳떳한 도리이며 옛날과 지금에 공통되는 의리이다.
그러므로 임금은 하늘의 원리를 몸받아 호령을 발하고 명령을 내리는이요,
신하는 그 원리를 조화시켜 착한 일을 베풀고 간사함을 막는 자다.
임금과 신하가 모이고 만날 때는 각기 그 도리를 다하여, 함께 공경하고 서로 삼가서 훌륭한 정치에 이르게 한다.
진실로 혹 임금으로서 임금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며, 신하로서 신하의 직책을 닦지 못한다면 함께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지 못할 것 이다.
그러나 우리 임금의 능하지 못함을 적(적)이라고 말하니, 옛날에 상나라 주왕이 모질고 사나왔는데, 비간이 간하다가 죽으니 충신의 절개는 이에서 다했다.
그래서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데는 충성으로써 해야 한다]고 하셨다.

 

 

부부유별(夫婦有別)
夫婦는 二姓之合이라 生民之始며 萬福之原이니 行媒議婚하며 納幣親仰者는 厚其別也라
부부는 이성지합이라 생민지시며 만복지원이니 행매의혼하며 납페친앙자는 후기별야라
是故로 娶妻하되 不娶同姓하며 爲宮室辨內外하여 男子는 居外而不言內하고
시고로 취처하되 불취동성하며 위궁실변내외하여 남자는 거외이불언내하고
婦人은 居內而不言外하니 苟能莊以이之하여 以體乾健之道하고 柔以正之하여 以承坤順之義즉家道正矣라.
부인은 거내이불언외하니 구능장이이지하여 이체건건지도하고 유이정지하여 이승곤순지의즉가도정의라.
反是而夫不能專制하여 御之不以其道하고 婦乘其夫하여 事之不以其義하여 昧三從之道하고 有七去之惡즉家道가 索矣라
반시이부불능전제하여 어지불이기도하고 부승기부하여 사지불이기의하여 매삼종지도하고 유칠거지악즉가도가 색의라
須是夫敬其身하여 以其婦하고 婦敬其身하여 以承其夫하고 內外和順하여야 父母基安樂之矣라.
수시부경기신하여 이기부하고 부경기신하여 이승기부하고 내외화순하여야 부모기안락지의라.
昔者에 극缺이 누할새 其妻가 엽之하되 敬하여 相待如賓하니 夫婦之道는 當如是也라 子思曰 君子之道는 造端乎 夫婦하시니라.
석자에 극결이 누할새 기처가 엽지하되 경하여 상대여빈하니 부부지도는 당여시야라 자사왈 군자지도는 조단호 부부하시니라.

 

남편과 아내는 두 성(성)의 결합으로, 백성을 태어나게 하는 시초며 모든 복의 근원이다.
중매를 통하여 혼인을 의논하며 폐백을 드리고 친히 맞이하는 것은 그 분별을 두텁게 함이다.
그러므로 아내를 취하되 같은 성을 취하지 않고, 집을 짓되 안과 밖을 분별하여 남자는 밖에 있으면서 안의 일을 말하지 않고,
부인은 안에 거처하면서 밖의 일을 말하지 않는다.
진실로 남편은 씩씩함으로써 제 위치를 지켜 하늘의 건전한 도리를 몸받고
아내는 부드러움으로써 바로잡아 땅의 순종하는 의리를 이어나가면 집안의 도리는 올바르게 되려니와
이에 반하여 남편이 오로지 제어할 수가 없어서 지배하기를 도리로써 하지 못하고,
아내가 남편을 이겨서 섬김을 그 의리로써 아니하여, 삼종지도를 알지 못하고 칠거지악이 있으면 집안의 도리가 어지러워진다.
반드시 남편은 자신을 삼가 그 아내를 거느리고 아내도 자신을 삼가 그 남편을 받들어서 내외가 화평하고 유순해야 부모가 안락을 누릴 수 있다.
옛날에 극결이 밭에서 김을 맬 때에 그 아내가 밥을 내오는데 공경하여 대접함이 손을 대하는 것 같았다.
부부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사는 말하기를, [군자의 도리는 부부에서 처음으로 비롯된다]고 하였다.

 

 

장유유서(長幼有序)
長幼는 天倫之序라. 兄之所以爲兄과 第之所以爲第는 長幼之道가 所自出也라 蓋宗族鄕黨에 皆有長幼하니 不可紊也라
장유는 천륜지서라. 형지소이위형과 제지소이위제는 장유지도가 소자출야라 개종족향당에 개유장유하니 불가문야라
徐行後長子를 謂之第요 疾行先長者를 謂之不第라 是故로 年長以倍즉父事之하고 十年以長즉兄事之하며 五年以長즉肩隨之니
서행후장자를 위지제요 질행선장자를 위지부제라 시고로 연장이배즉부사지하고 십년이장즉형사지하며 오년이장즉견수지니
長慈幼하고 幼敬長然後에야 無侮少凌長之弊而人道는 正矣라.
장자유하고 유경장연후에야 무모소능장지폐이인도는 정의라.
而況兄第는 同氣之人이라 骨肉至親이니 尤當友愛하고 不可藏怒宿怨하여 以敗天常也라
이황형제는 동기지인이라 골육지친이니 우당우애하고 불가장노숙원하여 이패천상야라
昔者에 司馬光이 與其兄伯康으로 友愛尤篤하여 敬之如嚴父하고 保之如영兒하니 兄第之道가 當如是也라
석자에 사마광이 여기형백강으로 우애우독하여 경지여엄부하고 보지여영아하니 형제지도가 당여시야라
孟子曰 孩提之童이 無不知愛其親며 及其長也엔 無不知敬其兄也라 하시니라.
맹자왈 해제지동이 무부지애기친며 급기장야엔 무부지경기형야라 하시니라.

 

어른과 어린이는 천륜의 차례다.
형이 형 되는 까닭과 아우가 아우되는 까닭에서 어른과 어린이의 도리가 비롯되는 것이다.
대개 종목과 향당에는 모두 어른과 어린이가 있으니 문란하게 해서는 안된다.
천천히 행하여 어른의 뒤를 따라가는 자를 공손하다 이르고, 빨리 행해서 어른을 앞서 가는 자를 공손하지 않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많기가 배가 되면 어버이와 같이 섬기고, 10년이 위면 형과 같이 섬기며, 5년이 위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따라간다.
어른은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린이가 어른을 공경한 연후에야 젊은이를 업신여기고 어른을 능멸하는 폐단이 없어 사람의 도리가 바르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하물며 형제는 동기의 사람이라, 골육의 지친이니, 더욱 마땅히 우애하고
가히 노여움을 감추며, 원망을 품거나 해서 천륜의 떳떳함을 잘못 되게 해서는 안된다.
옛날에 사마광이 그의 형 백강과 더불어 우애가 더욱 독실하여 공경하기를 아버지같이 하고
보호하기를 어린애같이 하였으니, 형제의 도리는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린 아이가 그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일이 없으며, 자라서는 그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일이 없다]하셨다.

 

 

붕우유신(朋友有信)
朋友는 同類之人이라 益者가 三友요 損者가 三友니 友直하며 友諒하며 友多聞이면 益矣요 友便벽하며 友善柔하며 友便녕하면 損矣라.
붕우는 동유지인이라 익자가 삼우요 손자가 삼우니 우직하며 우량하며 우다문이면 익의요 우편벽하며 우선유하며 우편녕하면 손의라.
友也者는 友其德也라 自天子로 至於庶人에 未有不須友以成者하니 其分이 若疎而其所關이 爲至親하니
우야자는 우기덕야라 자천자로 지어서인에 미유불수우이성자하니 기분이 약소이기소관이 위지친하니
友也者는 友其德也라 自天子로 至於庶人에 未有不須友以成者하니 其分이 若疎而其所關이 爲至親하니
우야자는 우기덕야라 자천자로 지어서인에 미유불수우이성자하니 기분이 약소이기소관이 위지친하니
是故로 取友를 必端人하며 擇友를 必勝己니 要當責善以信하며 切切시시하여 忠告而善道之하다가 不可즉止니라.
시고로 취우를 필단인하며 택우를 필승기니 요당책선이신하며 절절시시하여 충고이선도지하다가 불가즉지니라.
苟或交우之際에 不以切磋琢磨로 爲相與하고 但以歡狎戱謔으로 爲相親직安能久而不疎乎리요.
구혹교우지제에 불이절차탁마로 위상여하고 단이환압희학으로 위상친즉안능구이불소호리요.
昔者에 晏子는 與人交하되 久而敬之하니 朋友之道는 當如是也랴 孔子曰 不信乎朋友이면 不獲乎上矣라.
석자에 안자는 여인교하되 구이경지하니 붕우지도는 당여시야랴 공자왈 불신호붕우이면 불획호상의라
信乎朋友에 有道하니 不順乎親이면 不信乎朋友矣라 하시니라.
신호붕우에 유도하니 불순호친이면 불신호붕우의라 하시니라.

 

벗과 벗은 같은 무리의 사람이다.
유익한 벗이 세 종류 있고 해로운 벗이 세 종류가 있으니,
벗이 곧고 벗이 미더우며 벗이 견문이 넓으면 이롭고, 벗이 편벽되고 벗이 유약하며 벗이 아첨하면 해롭다.
벗이란 그 덕을 벗하는 것이라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벗으로써 이루지 못하는 자가 없으니
그 정분이 성긴 듯하면서도 그 관계하는 바가 매우 친하게 된다.
그러므로 벗을 취하되 반드시 단정한 사람이어야 하며 친구를 선택하되 자기보다 나아야 한다.
그래서 마땅히 꾸짖고 믿음으로써 착하게 하고 간절히 진실하게 충고하며 선으로 인도하다가 안되면 그만둘것이다.
진실로 혹 사귀어 놀 때에 절차탁마로 서로 관여하지 않고 다만 장난이나 하고 익살이나 하며
서로 친해진다면 어찌 능히 오래도록 튼려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 안자는 남과 교제할 때 오래도록 공경하였으니, 벗끼리의 도리는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친구들에게 신용이 없으면 웃사람에게도 신망을 얻지 못한다.
친구들에게 신용을 얻는 방도가 있으니 어버이에게 공손하지 못하면 친구들에게도 신용이 없다]하셨다.

 

 

 

총론(總論)
此五品者는 天서之典而人理之所固有者라 人之行이 不外乎五者 而唯孝가 爲百行之源이라
차오품자는 천서지전이인리지소고유자라 인지행이 불외호오자 이유효가 위백행지원이라
而是로 孝子之事親也엔 鷄初鳴이어든 咸관漱하고 適父母之所하여 不氣怡聲하여 問衣욱寒하며 問何食飮하며
이시로 효자지사친야엔 계초명이어든 함관수하고 적부모지소하여 불기이성하여 문의욱한하며 문하식음하며
冬溫而夏淸하며 昏定而晨省하며 出必面하며 反必面하며 不遠遊하며 遊必有方하며 不敢有其身하며 不敢私其財라.
동온이하청하며 혼정이신성하며 출필고하며 반필면하며 불원유하며 유필유방하며 불감유기신하며 불감사기재라.

 

이 다섯 가지 윤리는 하늘이 편 법전이요 사람의 도리로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바다.
사람의 행실은 이 다섯 가지를 벗어나지 않으나 오직 효도가 모든 행실의 근원이 된다.
그러므로 효자가 어버이를 섬김엔 닭이 처음 울거든 세수와 양치질을 다 하고,
부모님의 처소로 가서 기운을 나직히 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옷이 더운가 추운가 묻자오며,
무엇을 잡숫고 싶으신가를 묻자오며,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해드리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정해드리고 새벽에는 문안드리며, 외출할 때는 반드시 고하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뵈오며,
멀리 나돌아다니지 않고 나돌아다니는 데는 반드시 행방을 알리며,
감히 마음대로 몸가짐을 하지 않고 감히 재물을 멋대로 처리하지 않는다.


父母가 愛之어든 喜而不忘하며 오之어든 懼而無怨하며 有過어든 諫而不逆하고 三諫而不聽이어든 號泣而隨之하며
부모가 애지어든 희이불망하며 오지어든 구이무원하며 유과어든 간이불역하고 삼간이불청이어든 즉호이수지하며
怒而撻之流血이라도 不敢疾怨하며 居즉致其敬하고 養즉致其樂하고 病즉致其憂하고 喪즉致其哀하고 祭즉致其嚴이니라.
노이달지유혈이라도 불감질원하며 거즉치기경하고 양즉치기락하고 병즉치기우하고 상즉치기애하고 제즉치기엄이니라.

 

부모가 사랑하거든 기뻐하여 잊지 말며 미워하면 두려워하면서도 원망하지 말며,
부모가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간하되 거슬리지 말며, 세 번 간해도 듣지 않으시거든 울면서 따른다.
또 부모가 노하여 때려 피가 나더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가 계실땐 공경을 다하고,
봉양할 때는 즐거움을 다하며, 병환에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시면 슬픔을 다하며 제사에는 엄숙함을 다해야 한다.

 

若夫人子之不孝也는 不愛其親이요 而愛他人하며 不敬其親이요 而敬他人하며 他其四肢하여 不顧父母之養하며 博奕好飮酒하여
약부인자지불효야는 불애기친이요 이애타인하며 불경기친이요 이경타인하며 타기사지하여 불고부모지양하며 박혁호음주하여
不顧父母之養하며 好환財하며 私妻子하여 不顧父母之養하며 從耳目之好하여 以爲父母戮하며 好勇鬪완하여 以危父母하느니라.
불고부모지양하며 호환재하며 사처자하여 불고부모지양하며 종이목지호하여 이위부모육하며 호용투완하여 이위부모하느니라.

 

만일 사람의 자식으로서 불효를 하는 자는 그 어버이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그 어버이를 공경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공경하며, 그 사지를 게을리 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아니하며,
장기, 바둑이나 두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으며, 보화와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를 사사로이 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으며, 이목의 좋아함만 따라 부모를 욕되게 하며, 용기를 좋아하여 싸움을 사납게 하여 부모를 위태롭게 한다.

 

噫라 欲觀其人이 行之善不善이댄 必先觀其人之孝不孝니 可不愼哉며 
희라 욕관기인이 행지선불선이댄 필선관기인지효불효니 가불신재며
可不懼哉아 苟能孝於其親즉推之於君臣也와 夫婦也와 長幼也와 朋友也에 何往而不可哉리요.
가불구재아 구능효어기친즉추지어군신야와 부부야와 장유야와 붕우야에 하왕이불가재리요.
然즉孝之於人에 大矣而亦非高遠難行之事也라硏이나 自非生知者면 必資學問而知之니 學問之道는 無也라
연즉효지어인에 대의이역비고원난행지사야라연이나 자비생지자면 필자학문이지지니 학문지도는 무야라
將欲通古今하며 達事理하여 存之於心하며 體之於身이니 可不勉其學問之力哉아 玆用차其歷代要義하여 書之于左하노라.
장욕통고금하며 달사리하여 존지어심하며 체지어신이니 가불면기학문지력재아 자용차기역대요의하여 서지우좌하노라.

 

슬프다! 그 사람의 행실이 착하고 착하지 못함을 보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의 효성스러움과 효성스럽지 아니함을 볼 것이니,
가히 삼가지 않으며 가히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진실로 그 어버이에게 효도를 할 수 있으면, 임금과 신하 사이에서나,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나,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서나, 벗과 벗 사이에서도 미루어 어디를 가나 옳지 않겠는가?
그러니 효도란 사람에게 중대한 일이지만 또 높고 멀어서 행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면 반드시 학문에 의하여 알아야 하나니,
학문의 길은 다름이 아니라, 장차 옛날과 오늘의 일에 통하며,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여 이를 마음에 간직하고 이를 몸에 몸받는 것이니,
가히 그 학문을 기르는데 힘쓰지 않겠는가? 이에 그 역대의 요점을 모아서 다음에 적는다.

 

蓋自太極肇判하여 陰陽始分으로 五行이 相生에 先有理氣이기 人物之生이 林林總總하더니
개자태극조판하여 음양시분으로 오행이 상생에 선유이기이기 인물지생이 임림총총하더니
於是에 聖人이 首出하여 繼天立極하시니 天皇氏와 地皇氏와 人皇氏와 有巢氏와 燧人氏가 是爲太古니 在書契以前이라 不可考라.
어시에 성인이 수출하여 계천입극하시니 천황씨와 지황씨와 인황씨와 유소씨와 수인씨가 시위태고니 재서계이전이라 불가고라.

 

대체로 태극이 처음으로 갈라져 음양이 비로소 나뉨으로부터 요행이 서로 생기고, 먼저 이기가 있었으므로 사람과 물건이 많아졌다.
이에 성인이 먼저 나타나 하늘의 뜻을 이어 등극하니 천황씨, 지황씨, 인왕씨, 유소씨, 수인씨가 곧 그들이다.
이 때는 태고적으로 서계가 있기 이전이라 가히 참고할 수 없다.

 

伏羲氏가 始劃八卦하며 造書契하여 以代結繩之政하고 神農氏가 作뢰사하며 制醫藥하고
복희씨가 시획팔괘하며 조서계하여 이대결승지정하고 신농씨가 작뢰사하며 제의약하고
黃帝氏가 用干戈하며 作舟車하며 造曆算하며 制音律하시니 是爲三皇이니 至德之世라 無爲面治하니라.
황제씨가 용간과하며 작주거하며 조력산하며 제음율하시니 시위삼황이니 지덕지세라 무위면치하니라.
少昊와 전頊과 帝곡과 帝堯와 帝舜이 是爲五帝라 皐夔稷楔이 佐堯舜而堯舜之治는 卓冠百王이라 孔子가 定書에 斷自唐虞하시니라.
소호와 전욱과 제곡과 제요와 제순이 시위오제라 고기직설이 좌요순이요순지치는 탁관백왕이라 공자가 정서에 단자당우하시니라.

 

복희씨가 비로소 팔괘를 만들고 서계를 만들어 결승의 정치를 대신하고,
신농씨가 농기구를 만들고 의술과 약을 만들었으며, 황제씨가 방패와 창을 만들고 배와 수레를 만들며
달력과 산수를 만들고 음률을 제정하니 이들이 삼황이다. 이 때는 지덕의 세상이라 무위로 다스렸다.
소호, 전욱, 제곡, 제요, 제순이 오제요, 고, 기, 직, 설이 요순을 도우니, 그 정치는 모든 왕의 으뜸이 되었다.
그래서 공자께서 <서경>을 정리할 때 당우로부터 잘랐다.

 

夏禹와 商湯과 周文王武王이 是爲三王이니 歷年이 或四百하며 或六百하며 或八百하니 三代之隆을 後世莫及而商之伊尹傅說과
하우와 상탕과 주문왕무왕이 시위삼왕이니 역년이 혹사백하며 혹육백하며 혹팔백하니 삼대지륭을 후세막급이상지이윤부열과
周之周公召公이 皆賢臣也라 周公이 制禮作樂하시니 典章法度가 粲然極備하더니 及其衰也하여 五覇樓諸候하며 以匡王室하느니라.
주지주공소공이 개현신야라 주공이 제례작악하시니 전장법도가 찬연극비하더니 급기쇠야하여 오패누제후하며 이광왕실하느니라.

 

하나라 우왕과 상나라 탕왕과 주나라 문왕, 무왕이 삼왕이 되니,
그 지낸 햇수가 혹은 4백년이요 혹은 6백년이며 혹은 8백년이 되니 이 삼대의 융성함을 후세에는 미칠 이가 없었다.
상나라의 이윤, 부열과 주나라의 주공, 소공은 모두 어진 신하다.
주공이 예법을 만들고 음악을 만드니 온갖 전장과 법도가 찬연히 모두 갖추어졌었는데,
그 나라가 쇠진하자 오패가 제후를 이끌고 왕실을 바로잡으니 제환공과 진문공과 송양공과 진목공과 초장왕이
서로 하의 맹서를 주장했으므로 왕의 위령이 떨치니 못했다.

 

孔子는 以天縱之聖으로 轍環天下하여 道不得行于世하여 刪詩書하고 定禮樂하며 贊周易하고 修春秋하여
공자는 이천종지성으로 철환천하하여 도불득행우세하여 산시서하고 정례악하며 찬주역하고 수춘추하여
繼往聖開來學하고 而傳其道者는 顔子曾子라 事在論語라 曾子之門人이 述大學하니라.
계왕성개래학하고 이전기도자는 안자증자라 사재논어라 증자지문인이 술대학하니라.

 

공자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 천하를 철환하였으나 도를 천하에 펼수가 없어 <시경>과 <서경>을 정리하고,
예악을 정하고 <주역>을 해석하고, <춘추>를 지어 기왕의 성현을 계승하고 후세의 학자를 열어 놓았으니
그 도를 전한 자는 안자와 증자인데, 사적은 <논어>에 실려 있다. 증자의 문인이 <대학>을 지었다.

 

列國은 즉曰魯와 曰衛와 曰晉과 曰鄭과 曰曹와 曰蔡와 曰燕와 曰吳와 曰齊와 曰宋과 曰陳과 曰楚와 曰秦이니
열국은 즉왈노와 왈위와 왈진과 왈정과 왈조와 왈채와 왈연와 왈오와 왈제와 왈송과 왈진과 왈초와 왈진이니
干戈日尋하여 戰爭이 不息하여 遂爲戰國하니 秦楚燕齊韓魏趙가 是爲七雄이라
간과일심하여 전쟁이 불식하여 수위전국하니 진초연제한위조가 시위칠웅이라
孔子之孫子思가 生斯時라하여 作中庸하시고 其門人之弟孟軻가 陳王道於齊梁하나 道又不行하여 作孟子七篇而異端縱橫功利之說이 盛行이라.
공자지손자사가 생사시라하여 작중용하시고 기문인지제맹가가 진왕도어제량하나 도우불행하여 작맹자칠편이단이종횡공리지설이 성행이라. 
吾道가 不傳이다. 及秦始皇하여 呑二周하고 滅六國廢封建하고 爲郡縣하며 焚詩書하고 坑儒生하니 二世而亡하다.
오도가 부전이다. 급진시황하여 탄이주하고 멸육국폐봉건하고 위군현하며 분시서하고 갱유생하니 이세이망하다.

 

열국은 노, 위, 진, 정, 조, 채, 연, 오, 제, 송, 진, 초, 진이니, 날마다 무기를 준비하여 전쟁이 그치지 않아 드디어 전국시대가 되었다.
그 가운데 진, 초, 연, 제, 한, 위, 조가 곧 칠웅이다.
공자의 손자 자사가 이 때에 태어나 <중용>을 짓고 그 문인의 제자인 맹가가 제나라와 양나라에 왕도를 펴려 했으나,
도가 또한 행하여지지 않아 <맹자>7편을 지었으나 이단, 종횡, 공리의 설들이 성행해서 우리의 도 곧 유교의 도는 전해지지 못했다.
진시황에 이르러서는 이주를 삼키고 육군을 멸하며 봉건제도를 폐하고 군현제도를 시시하며 시서를 불태우고 유생을 묻어 버리니 두 대에서 망했다.

 

漢高祖가 起布衣成帝業하여 歷年이 四百하되 在明帝時하여 西域佛法이 始通中國하여 惑世誣民하다
한고조가 기포의성제업하여 역년이 사백하되 재명제시하여 서역불법이 시통중국하여 혹세무인하다
蜀漢과 吳와 魏의 三國이 鼎峙하니 而諸葛亮이 仗義扶漢하다가 病卒軍中하니 晉有天下에 歷年이 百餘라.
촉한과 오와 위의 삼국이 정치하니 이제갈양이 장의부한하다가 병졸군중하니 진유천하에 역년이 백여라.

 

한고조가 포의로 일어나서 황제의 업을 이루어 역년이 4백년이었는데,
명제 때에 서역의 불교가 비로소 중국으로 들어와 세상을 현혹시키고 백성을 속였다.
촉한과 오와 위의 세 나라가 정립하여 대치할 때 제갈양이 정의를 위하여 한을 보전하려다가 군중에서 병으로 죽었다.
진이 천하를 차지하고 역년이 백여년이었다.

 

五胡가 亂華하니 宋齊梁陳에 南北分裂이러니 隋能混一하되 歷年이 三十이라.
오호가 난화하니 송제양진에 남북분열이러니 수능혼일하되 역년이 삼십이라.

 

오호가 중화를 어지럽히니 송, 제, 양, 진에 남북이 분열되었다가 수나라가 능히 천하를 하나로 통일하였는데 겨우 역년이 30년이었다.

 

堂高祖와 太宗이 乘隋室亂하여 化家爲國하여 歷年三百하니라. 五季는 朝得暮失하여 大亂이 極의라.
당고조와 태종이 승수실난하여 화가위국하여 역년삼백하니라. 오계는 조득모실하여 대란이 극의라.

 

당나라 고조와 태종은 수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서 집을 만들고 국가를 이룩하여 역년이 3백이었다.
후량과 후당과 후진과 후한과 후주가 오계로 되니 아침에 얻었다가 저녁에 잃어 대란이 극했다.


宋太祖가 立國之初에 五星이 聚奎하여 염洛關민에 諸賢이 輩出하니 若周돈이와 程顥와 程이와
송태조가 입국지초에 오성이 취규하여 염낙관민에 제현이 배출하니 약주돈이와 정호와 정이와
司馬光과 長載와 邵雍과 朱熹가 相繼而起하여 以闡明斯道로 爲己任하되 身且不得見容而朱子가
사마광과 장재와 소옹과 주희가 상계이기하여 이천명사도로 위기임하되 신차부득견용이주자가
集諸家設하여 註四書五經하시니 其有功於學者가 大矣로다 然而國勢가 不競하여 歷年三百하니
집제가설하여 주사서오경하시니 기유공어학자가 대의로다 연이국세가 불경하여 역년삼백하니
契丹과 蒙古와 遼와 金이 迭爲侵질而及其垂亡하여 文天祥이 竭忠報宋하다가 竟死燕獄하니라.
글단과 몽고와 요와 금이 질위침질이급기수망하여 문천상이 갈충보송하다가 경사연옥하니라.

 

송나라 태조가 나라를 세운 처음에 다섯 개의 별이 모여 염, 낙, 관, 민에 여러 현인이 무리로 나타나니
주돈이와 정호와 정이와 사마광과 장재와 소옹과 주희가 서로 이어 일어나 도를 열어 밝힘으로써 자신의 임무로 삼되
몸이 용납함을 보지 못하더니, 주자가 제자의 설을 모아 사서와 오경에 주를다니, 그학자에게 공을 끼침이 컸다.
그러나 나라의 형세가 강하지 못하고 역년이 3백에 글안과 몽고와 요와 금이 번갈아 침노하고 마주 쳐서
나라가 거의 망하게 되자 문천상이 충성을 다하여 송나라에 보답하다가 마침내 연의 옥에서 죽었다.

 

大明이 中天하여 聖繼神承하니 於千萬年이로다 嗚呼라 三綱五常之道가 與天地로 相終始하니
대명이 중천하여 성계신승하니 어천만년이로다 오호라 삼강오상지도가 여천지로 상종시하니
三代以前에는 聖帝明王과 賢相良佐가 相與講明之故로 治日이 常多하고 亂日이 常少하더니.
삼대이전에는 성제명왕과 현상양좌가 상여강명지고로 치일이 상다하고 난일이 상소하더니.

 

대명은 천은에 적중하여 성자신손이 뒤를 이어 계승하니 아! 천년 만년을 이으리라.
슬프다! 삼강과 오상의 도가 천지와 더불어 서로 종시를 같이하니,
삼대 이전에는 성스러운 황제와 밝은 군주와 어진 재상과 선량한 보좌인이 서로 이 삼강,
오상의 도를 강론하여 밝혔으므로 다스려진 날이 항상 많고, 어지러워진 날이 항상 적었다.

 

三代以後에는 庸君暗主와 亂臣賊子가 相與敗壞之故로 亂日이 常多하고 治日이 常少하니
삼대이후에는 용군암주와 난신적자가 상여패괴지고로 난일이 상다하고 치일이 상소하니
其所以世之治亂安危와 國之興廢存亡이 皆由於人倫之明不明如耳라 可不察哉아.
기소이세지치란안위와 국지홍폐존망이 개유어인륜지명불명여이라 가불찰재아.

 

임금과 어두운 군주와 문란한 신하와 역적이 서로 패배시키고 파괴하였으므로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고 다스려진 날이 항상 적었다.
그 세상이 다스려지거나 문란해지거나 편안하거나 위태하거나 나라가 흥하거나 패배하거나
존속하거나 망하는 까닭이 모두 인륜이 밝으냐 밝지 못하느냐 여하에 달린 것이니 가히 살피지 않겠는가?

 

東方에 初無君長이더니 有神人이 降于太白山檀木下하여 神靈明智어늘
동방에 초무군장이더니 유신인이 강우태백산단목하하여 신령명지어늘
國人이 立以爲君하니 與堯로 竝立하여 國號를 朝鮮이라하니 是爲檀君이라
국인이 입이위군하니 여요로 병립하여 국호를 조선이라하니 제위단군이라
殷太師箕子가 率中東래하여 敎民禮儀하고 設八條之敎하니 有人賢之化하더라.
은태사기자가 솔중동래하여 교민예의하고 설팔조지교하니 유인현지화하더라.

 

동방에 처음에는 임금이 없더니 신인이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자 나라 사람들이 이를 임금으로 세웠다.
그래서 중국의 요임금과 병립하여 국호를 조선이라 하니 이가 곧 단군이다.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여 백성들에게 예의를 가르치고 팔조의 교법을 베풀자 인현의 교화가 있게 되었다.

 

燕人衛滿이 因盧관亂하여 亡命來하여 誘逐箕準하고 據王儉城하더니 至孫右渠하여 漢武帝가 討滅之하시고
연인위만이 인노관란하여 망명래하여 유축기준하고 거왕검성하더니 지손우거하여 한무제가 토멸지하시고
分其地하여 置樂浪臨屯玄도眞蕃四郡하다 昭宰가 以平那현도로 爲平州하고 臨屯樂浪으로 爲東府二都督府하다.
분기지하여 치낙랑임둔현도진번사군하다 소재가 이평나현도로 위평주하고 임둔낙랑으로 위동부이도독부하다.

 

연나라 사람 위만이 망명하여 와서 기준을 꾀어 내쫓고 왕검성에 웅거하더니
손자 우거에 이르러 한나라 무제가 쳐서 멸하고 그 땅을 나누어 낙랑, 임둔, 현도, 진번의 네 군을 두었다.
소제는 평나라 현도로써 평주로 삼고, 임둔과 낙랑으로 동부의 두 도독부를 삼았다.

 

箕準이 避衛滿하여 浮海而南하여 居金馬郡하니 是爲馬韓이라
기준이 피위만하여 부해이남하여 거금마군하니 시위마한이라
秦亡人이 避人韓이어늘 韓이 割東界하여 以與하니 是爲辰韓이라.
진망인이 피입한이어늘 한이 할동계하여 이여하니 시위진한이라.
弁韓卽立國於韓地하니 不知其始祖年代라 是爲三韓이라.
변한즉입국어한지하니 부지기시조연대라 시위삼한이라.

 

기준이 위만을 피하여 바다로 해서 남쪽으로 가 금마군에 기처하니 이것이 마한이다.
진나라에서 망명하여 온 사람이 진나라를 피하여 한으로 들어오므로 한이 동쪽 경계를 쪼개어 주니 이것이 진한이 되었다.
변한은 한나라 땅에 나라를 세웠으나 그 시조와 연대를 알지 못한다. 이를 삼한이라 한다.

 

新羅始組赫居世는 都辰韓地하여 以朴으로 爲姓하고 高句麗始祖朱蒙은 至卒本하여 自稱高辛氏之後라하여 因姓高하고
신라시조혁거세는 도진한지하여 이박으로 위성하고 고구려시조주몽은 지졸본하여 자칭고신씨지후라하여 인성고하고
百濟始祖溫祚는 都河南慰禮城하여 以扶餘로 爲氏하여 三國이 各保一隅하여 互相侵伐하더니
백제시조온조는 도하남위례성하여 이부여로 위씨하여 삼국이 각보일우하여 호상침벌하더니
其後에 唐高宗이 滅百濟高句麗하고 分其地하여 置都督府하여 以劉仁願薛仁貴로 留鎭撫之하니
기후에 당고종이 멸백제고구려하고 분기지하여 치도독부하여 이유인원설인귀로 유진무지하니
百濟는 歷年이 六百七十八年이요 高句麗는 七百五年이라.
백제는 역년이 육백칠십팔년이요 고구려는 칠백오년이라.

 

신라의 시조 혁거세는 진한 땅에 도읍하고 박으로써 성을 삼았다.
고구려 시조 주몽은 졸본에 이르러 고신씨의 후손이라고 스스로 칭하고 성을 고라 하였다.
백제 시조 온조는 하남위례성에 도읍하여 부여로 성씨를 삼았다.
그리하여 삼국이 각기 한 귀퉁이씩을 차지하면서 서로 침략하고 정벌하더니 그 뒤에 당나라 고종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
그 땅을 나누어 도독부를 두고 유인원과 설인귀로써 머물러 있으면서 진무하게 했다. 그래서 백제는 역년이 678년이요, 고구려는 705년이었다.

 

新羅之末에 弓裔가 叛于北京하여 國號를 太封이라하고 甄萱은 叛據完山하여 自稱後百濟라하다.
신라지말에 궁예가 반우북경하여 국호를 태봉이라하고 견훤은 반거완산하여 자칭후백제라하다.
新羅가 亡하니 朴昔金三姓이 相傳하여 歷年이 九百九十二年이라.
신라가 망하니 박석김삼성이 상전하여 역년이 구백구십이년이라.

 

신라 말기에 궁예는 북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태봉이라 하였고 견원은 반란을 일으켜 완산에 웅거하면서 자칭 후백제라 하였다.
신라는 망하니 박, 석, 김 세 성이 서로 전위하여 역년이 992년이었다.

 

太封諸將이 立王建하여 爲王하니 國號를 高麗라하여 剋잔郡兇하고 統合三韓하여 移都松嶽하다 至于季世하여
태봉제장이 입왕건하여 위왕하니 국호를 고려라하여 극잔군흉하고 통합삼한하여 이도송악하다 지우계세하여
恭愍이 無嗣하고 僞主辛禑가 昏暴自恣而王瑤가 不君하여 遂至於亡하니 歷年이 四百七十五年이라.
공민이 무사하고 위주신우가 혼포자자이왕요가 불군하여 수지어망하니 역년이 사백칠십오년이라.

 

태봉의 여러 장수가 왕건을 세워 왕을 삼으니 국호를 고려라 했다.
그리고 모든 흉적을 쳐 죽이고 삼한을 통일하여 송악으로 도읍을 옯겼다.
그러나 말세에 이르러 공민왕이 아들이 없고, 가짜 임금 신우가 어둡고 사나우며 스스로 방자했으며,
왕요도 임금 노릇을 못하여 드디어 망하게 되니 역년이 475년이었다.

 

天命이 歸于眞主하니 大明太祖高皇帝가 賜改國號曰朝鮮이라하니
천명이 귀우진주하니 대명태조고황제가 사개국호왈조선이라하니
定鼎于漢陽하여 聖子神孫이 繼계繩繩하여 重熙累洽하여 歷年五百十九年이라. 式至于今하시니. 實萬世無彊之休로다.
정정우한양하여 성자신손이 계계승승하여 중희누흡하여 력년오백십구년이라. 식지우금하시니. 실만세무강지휴로다.

 

천명이 참된 임금(이성계를 말함)에게로 돌아오니, 명나라 태조 고황제가 나라 이름을 고쳐 주어 조선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한양에다 도읍을 정하고 신성한 자손들이 끊임없이 계승하여 거듭 밝고 더욱 흡족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래서 실로 만세에 끝이 없는 아름다움이 되었도다.

 

於戱라 我國이 雖僻在海隅하며 壤地編小하나 禮樂法度와 衣冠文物을 悉존華制하여
오희라 아국이 수벽재해우하며 양지편소하나 예악법도와 의관문물을 실존화제하여
人倫이 明於上하고 敎化가 行於下하여 風俗之美가 모擬中華하니 華人 稱之曰小中華라하니
인륜이 명어상하고 교화가 행어하하여 풍속지미가 모의중화하니 화인 칭지왈소중화라하니
玆豈非箕子之遺化耶리요 嗟爾小子는 宜其感而興起哉인저 必讀此書하라.
자기비기자지유화야리요 차이소자는 의기감이흥기재인저 필독차서하라.

 

아! 우리 나라가 비록 바다 귀퉁이에 치우쳐 있어 땅이 좁고 작으나 예악과 법도와 의관과 문물이 모두 중국의 제도를 준수하여
인륜이 위에서 밝고 교화가 아래에서 행해져서 풍속의 아름다움이 중국과 같아, 중국인이 작은 중화라 칭한다.
이것이 어찌 기자가 끼친 교화가 아니겠는가? 아! 여러 어린이들은 마땅히 이것을 보고 느끼어, 떨쳐 일어날 것이다.

 


 

어제동몽선습서(御製童蒙先習序)

 

夫此書(부차서)는 卽東儒所撰也(즉동유소찬야)라
總冠以五倫(총관이오륜)하고 復以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복이부자군신부부장유붕우)로 列之于次(열지우차)하고
而其自太極肇判(이기자태극조판)으로 三皇五帝 夏殷周 漢唐宋以至皇朝(삼황오제 하은주 한당송이지황조)히
歷代世系(역대세계)를 纖悉備錄(섬실비록)하고 逮夫我東(체부아동)에 始檀君 歷三國(시단군 역삼국)하야
至于我朝(지우아조)히 亦爲俱載(역위구재)하니 文雖約而錄則博(문수약이록즉박)하고 卷雖小而包則大(권수소이포즉대)라.

 
이 책은, 바로 우리나라 유학자가 저술한 것이다.
앞에는 五倫(오륜)을 총론으로 놓고, 다시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의 도리를, 다음에 열거하였으며,
太極(태극)이 처음 나뉨으로부터, 三皇五帝(삼황오제)와 夏하, 殷은, 周주, 漢한, 唐당, 宋송을 거쳐

皇朝(황제)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세계를 상세히 갖추어 기록하고,
우리나라에 미쳐서는, 檀君(단군)으로부터 시작하여 삼국시대를 거쳐, 우리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또한 모두 기록하였으니,
글은 비록 간략하지만 기록한 범위는 넓고, 卷(권)은 비록 작지만 포함하고 있는 뜻은 크다.

 

其況堯舜之道(기황요순지도)는 孝弟而已(효제이기)라
舜之命契(순지명설)하사대 以五品爲重(이오품위중)하시니 此文之冠以五倫者 其意宏矣(차문지관이오륜자 기의굉의)로다
噫(희)라 孝於親然後 忠於君(효어친연후 충어군)하고 弟于兄然後(제우형연후)에 敬于長(경우장)하나니
以此觀之(이차관지)컨대 五倫之中(오륜지중)에 孝弟爲先(효제위선)이라 雖然(수연)이나 詩贊文王曰 於緝熙敬止(시찬문왕왈)삿다하니
敬者(경자)는 成始終徹上下之工夫也(성시종철상하지공부야)라
故(고)로 大學要旨(대학요지)는 卽敬字也(즉경자야)요 中庸要旨(중용요지)는 卽誠字也(즉성자야)니
誠敬(성경)이 亦於學問(역어학문)에 車兩輪鳥兩翼者也(차양륜조양익자)라.

 
더욱이 요순의 도는, 효도와 공경일 뿐이다.
순임금이 契(설)에게 명령하시되, 五品(五倫)을 가장 중시하셨으니, 이 책에서 五倫을 맨 앞에 놓은 것은, 그 뜻이 크다고 할 것이다.
아! 부모에게 효도한 뒤에야, 임금에게 충성할 수 있고, 형을 공경한 뒤에라야, 윗사람을 공경할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을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오륜 가운데에서, 효도와 공경이 가장 우선이다.
그러나, ≪시경≫에서 문왕을 찬양하면서, "아! 끊임없이 빛내시어 敬(경)에 머무르셨다."고 했으니,
敬(경)이란, 처음과 끝을 이루고 上과 下에 모두 통하는 공부이다.
그러므로, ≪대학≫의 요지는, 敬(경) 한 글자에 있고, ≪중용≫의 요지는, 誠(성) 한 글자에 있으니, 誠(성)과 敬(경)이,
또한 학문을 해 나아가는 데에,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새의 두 날개와 같다고 하겠다.

 

 
今予於此書(금여어차서)에 以誠敬二字(이성경이자)로 冠于篇首(관우편수)하노니 誠然後(성연후)에야
能免書自我自(능면서자아자)오 敬然後(경연후)에야 可以欽體欽遵(가이흠체흠존)이니 學者豈可忽乎哉(학자개가홀호재)아
予又於卷下 國初開創 受號朝鮮之文(여우어권하 국초개창 수호조선지문)에 慨然追慕(개연추모)하야 三復興感也(삼부흥감야)하노라.

噫(희)라 繼繼承承(계계승승)하사 重熙累洽(중희누흡)이 寔是至仁盛德(식시지인성덕)과 深恩隆惠(심은융혜)가
垂裕後昆之致(수유후곤지치)시니 繼體之君(계체지군)이 式體至德(식체지덕)하야 兢兢業業(긍긍업업)하야
誠心調劑(성심조제)하야 至于蕩蕩(지우탕탕)하며 誠心愛民(성심애민)하야
永保元元(영보원원)이면 則吾國(즉오국)이 其庶幾也(기서기야)며 吾國(오국)이 其庶幾也(기서기야)인저.

 
이제 내가 이 책에서, 誠(성)과 敬(경) 두 글자를 가지고, 책의 맨 앞에 놓으니,
誠(성)을 이룩한 뒤에야, 책은 책 대로이고 나는 나 대로인 병통을 면할 수 있고,
敬(경)을 유지한 뒤에야 삼가 體行(체행)하고 삼가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니, 배우는 사람들이 어찌 이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또 책 말미에 국초에 나라를 세우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는 부분에 대하여, 개연히 추모해서 세 번 반복하여 읽고 감동했노라.

아! 끊임없이 이어서 거듭 빛내시고 여러 번 무젖어듬은 실로 선왕들께서 지극한 덕성과 깊은 은혜를 후손들에게 넉넉히 남겨주신 것이 이룬 것이니,
체통을 이어갈 군주들이 이 지극한 덕을 체행하여,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지니고 성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닦아 蕩蕩(공평 무사함)함을 이루며,
성심으로 백성들을 사랑하여 길이 만백성들을 보호한다면 우리나라는 잘 다스려지게 될 것이며, 우리나라는 잘 다스려지게 될 것이다.

 

 
且我東禮義 雖因箕聖之敎化(차아동예의 수인기성지교화)나 三韓以後(삼한이후)에는 幾乎泯焉(기호민언)이러니
入于我朝(입우아조)하야 禮樂(예악)이 畢擧(필거)하고 文物(문물)이 咸備(함비)하니 惜乎(차호)라
述者之猶遺乎此哉(술자지유유호차재)여 嗟爾小子(차이소자)아 益加勉佃也夫(익가면전야)인저
時玄黓閹茂 朝月上浣(시현익암무 조월상완)에 命芸館而廣印(명예관이광인)하고 作序文於卷首(작서문어권수)하노라.

泯 : 망할 민. 焉 : 어찌 언. 擧 : 들 거. 佃:말 그칠 전. 黓 : 검을 익, 天干의 壬의 딴이름. 閹 : 내시 엄, 환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예의는, 비록 箕子(기자)의 교화에 힘입었지만, 三韓(삼한) 이후에는, 거의 민멸 되었다가,
우리 조선조에 들어와, 예악이, 다 거행되고, 문물이, 다 구비되었는데, 저자가 이 내용을 빠뜨리고 기록하지 않은 것이 애석하다.
아! 小子들은 더욱 노력할지어다. 때는 壬戌年(1742년) 정월 상순에 芸館(예관)에 명하여 널리 인쇄해서 반포케 하고, 책머리에 서문을 쓰노라.

 


 

발문(跋文) - 終

 

孟子曰 讀其書(맹자왈 독기서)하고 誦其詩(송기시)하되 不知其人(부지기인)이 可乎(가호)아 하시니라
余幼時(여유시)에 見人家子弟初學者 無不以是書爲先(견인가자제초학자 무불이시서위선)하되
而第不知出於何人之手矣(이제부지출어하인지수의)러니 今朴上舍廷儀氏 來謂余曰(금박상사정의씨 래위여왈)
此(차)는 吾高祖諱世茂之所編也(오고조휘세무지소편야)라하니 余不覺驚喜曰(여불각경희왈) 今日(금일)에 始知其人矣(시지기인의)와라.

 
맹자께서는 "그 사람의 글을 읽고, 그 사람의 시를 읽으면서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어릴 때에, 남의 집안 자제들을 보니, 초학자로서, 모두 이 책을 제일 먼저 배우지 않음이 없었는데, 다만 누구의 손에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朴上舍 廷儀氏(박상사정의씨)가 와서 나에게, "이 책은, 저희 고조부이신 諱(휘)가 世茂(세무)인 분이 엮으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기뻐서 "오늘에야, 비로소 그 사람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公(공)은 爲明廟朝名臣(위명묘조명신)이라 其學問有淵源(기학문유연원)하고 而門路亦甚正(이문로역심정)하니
觀於此編(관어차편)하면 則可知矣(즉가지의)라 其該括約說(기해괄약설)이 無非學問中體認一大公案(무비학문중체인일대공안)이요
而所序歷代(이소서역대)는 又史家之總目也(우사가지총목야)라.

 
公(공)은, 明宗(명종) 代(대)의 이름난 신하로, 그의 학문은 연원이 있고, 門路(문로) 또한 매우 바르니,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내용이 포괄적이면서도 요약하여 말했으니, 이는 모두 학문하는 가운데 반드시 體認(체인)해야 할 일대의 公案(공안)이요,
차례대로 서술한 역대의 사실, 또한 史家(역사)의 總目(총목)이다.

 

或疑編內所輯理氣性貿說(혹의편내소집이기성명등설)은 非童學所能知(비동학소능지)라하나
此則不知作者本意所在也(차즉부지작자본의소재야)라 朱子嘗論仁說曰 此等名義(주자상론인설왈 차등명의)는
古人之敎 自小學之時(고인지교 자소학지시)로 已有白直分明訓說(이유백직분명훈설)하여 得知此道理(득지차도리)를
不可不著實踐履(불가불저실천이)니 所以實造其地位也(소이실조기지위야)라
若茫然理會不得(약망연리회부득)이면 則其所以求之者 乃其平生所不識之物(즉기소이구지자 내기평생소불식지물)이니
復何所向望慕愛而知所以用其力耶(복하소향망모애이지소이용기력야)아하시니
今之童學(금지동학)이 略識諸般名義界限(약식제반명의계한)하여 終有所歸宿者(종유소귀숙자)는
必於此書而得之(필어차서이득지)리니 其功(기공)이 豈不大哉(개불대재)아라.

 
어떤 사람은 이 책에 수록된 理氣(이기)나 性命(성명)과 같은 말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의심하지만,
이는 저자의 본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것이다. 朱子(주자)는 일찍이 仁(인)에 관한 내용을 논의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종류의 명칭과 의미는, 고인들이 가르칠 때에, ≪小學≫을 배울 때부터, 이미 명백 직절하고 분명한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배우는 사람이> 이 도리를, 착실하게 실천하지 않아서는 안 됨을 알 수 있었으니, 실제로 그와 같은 경지에 나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망연히 이해하다가 안 되면,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마침내 평생토록 알지 못할 개념이 되고 말 것이니,
다시 어디를 바라보고 사모하여 힘을 쓸 줄 알겠는가?."
요즘의 童學(동학)들이, 대략이나마 여러 가지 명칭과 의미가 구분됨을 알아서, 결국 귀결할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반드시 이 책에서 얻은 것일 터이니, 그 공로가, 어찌 크지 않다 하겠는가!

 

竊聞今上殿下每臨筵(절문금상전하매임연)에 喜說此書(희설차서)라하니 睿學之明(예학지명)이 必有以識此矣(필유이식차의)시리라.
公(공)의 字(자)는 景藩(경번)이요 咸陽人(함양인)이니 登第(등제)하여 始爲翰林(시위한림)하고 官止監正(관지감정)하니라
蘇齋盧相公守愼(소제노상공수신)이 以嘗著此書 訓其子弟(이상저차서훈기자제)로 載公墓碣云(재공묘갈운)이라.

竊 : 가만히 절, 저으기 절

 
저으기 들으니 지금 임금께서 經筵(경연)에 나아가실 때마다, 이 책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즐기신다고 하니,
임금님의 밝은 지혜가, 반드시 이 점을 아시기 때문일 것이다.
공의 자는, 景藩(경번)이고, 본관은 함양이니, 처음 과제에 올라, 한림이 되었고, 벼슬이 監正(감정)에 이르렀다.
蘇齋 盧相公 守愼(소제노상공수신)은, "공이 일찍이 이 책을 저술하여, 자제들을 가르쳤다."는 내용으로 공의 墓碣銘(묘갈로)에 기록하였다.

 
崇禎紀元之商橫(숭정기원지상횡)茂陽月日에 恩津宋時烈(은율송시열)은 謹跋(근발)하노라.

 
崇貞 기원후 庚戌年(1670년) 10월 某日에 恩津人 宋時烈은 삼가 발문을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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