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夕, 仲秋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나라마다 명절(festive day)은 존재한다.
한국에도 설,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유두, 추석, 동지, 칠석 등 예로부터 내려오는 명절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각 명절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고유의 풍습과 놀이, 음식 등을 즐겼다.
하지만 아쉽게도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큰 명절이 아니고서는 잘 챙기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오늘은 다 알고 계시겠지만 추석 중추절의 대해서 잠시 알아보고자한다.


추석명절의 유래  


추석은 중부지방보다 남부지방에서 설날과 같은 제일 큰 명절로 취급하고 있다.
추석절의 의미는 벌초와 성묘를 최고로 생각하며,
조상으로부터 음덕을 받아 후손들의 삶이 풍요롭고 훌륭한 인재배출로
가문이 번창하길 기원하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그래서 추석에는 너도나도 고향 산소를 찾아 벌초하고 성묘하면서 차례를 지낸다.
경제가 어려워도 조상에 대한 정성만큼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차례상 준비에 더 많은 정성을 쏟아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세시풍속은 시대에 따라 변천되었지만,
당초에는 궁중 내에서 여자들의 길쌈 노동의 놀이로 시작했던 것이
민속명절로 전개되었고 성묘와 조상제사와 연관된 것 같은데 상세한 내력은 불분명하다.

 

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대사회의 풍농제에서 기원했으며 일종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조에 기록하고 있는데
유리왕 9년(32)에 왕이 6부 호칭을 정하고 중간을 나눠 둘로 편성한 다음
왕녀 2인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편을 나누어
7월 보름날부터 매일 이른 아침에 대부(大部)의 마당에 모아놓고
길쌈을 해 이경쯤에 일을 끝내는 것을 8월 보름날까지 계속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시대에도 추석명절을 쇠었으며
중종 13년(1518)에는 설·단오와 함께 3대 명절로 정해지기도 했다.

추석명절은 마음과 삶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 같다.

바쁜 일년동안 삶의 전쟁으로 잊어버렸던 조상과 나를 찾아보고 고향을 생각하며,
잠시나마 조상에게 정성을 들이고자 모두가 고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들녘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어 더욱 심신의 피로를 녹이는 듯하다.
아늑하고 따뜻한 고향산천의 자연과 함께 보내는 날이 가장 즐거운 날이 될 것이다.
 
추석의 어원

추석이라는 말은 예기(禮記)의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중추절(仲秋節)이라 하는 것도 가을을 초추·중추·종추 3달로 나눠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었으므로 붙은 이름이다.

 

추석은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로 한가위, 중추절(仲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한다.
한가위의 한은 '하다(大·正)'의 관형사형이고, 가위란 '가배(嘉俳)'를 의미한다.

이때 가배란 '가부·가뷔'의 음역(音譯)으로서 '가운데'란 뜻인데,
지금도 신라의 고토(故土)인 영남 지방에서는 '가운데'를 '가분데'라 하며,
'가위'를 '가부', '가윗날'을 '가붓날'이라고 한다.

 

또 8월 초하루에서 보름께 까지 부는 바람을 "8월 가부새 바람 분다"라고 한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가뷔·가부는 뒷날 가위로 속전(俗轉)된 것으로 알 수 있으니,
'추워서'를 현재에도 '추버서'로 하는 것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가위란 8월중에서도 정(正)가운데란 뜻이니,
정중심(正中心)을 우리가 '한가분데' 또는 '한가운데'라고 하듯이
'한'은 제일(第一), 큰(大)의 뜻 이외에도 한(正)의 뜻이 있음도 알 수 있다.

 

한가위를 추석, 중추절(仲秋節·中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 한 것은 훨씬 후대에 와서 생긴 것이다.
즉 한자가 전래되어 한자 사용이 성행했을 때 중국 사람들이 '중추(中秋)'니 '추 중(秋中)'이니 하고,
'칠석(七夕)'이니 '월석(月夕)'이니 하는 말들을 본받아 이 말들을 따서 합하여
중추(中秋)의 추(秋)와 월석(月夕)의 석(夕)을 따서 추석(秋夕)이라 한 것으로 생각된다.


추석의 유래

추석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고대로부터 있어 왔던 달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사회에 있어 날마다 세상을 밝혀 주는 태양은 당연한 존재로 여겼지만
한 달에 한번 만월(滿月)을 이루는 달은 고마운 존재였다.

밤이 어두우면 맹수의 접근도 알 수 없고
적의 습격도 눈으로 볼 수가 없기에

인간에게 있어 어두운 밤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만월은 인간에게 있어 고마운 존재였고,

그 결과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게 되었다.

 

그런데 만월의 밤중에서도 일년 중 가장 큰 만월을 이루는 8월 15일인 추석이
큰 명절로 여겨진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고 먹고 마시고 놀면서 춤추었으며,
줄다리기, 씨름, 강강수월래 등의 놀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고대에 만월을 갈망하고 숭상하던 시대에
이미 일년 중에서 가장 달이 밝은 한가위는 우리 민족 최대의 축제로 여겨지게 되었고,
후에 와서 의식화(儀式化)되어 명절로 제정(制定)을 보게 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잘 나타나 있다.

"신라 제3대 유리왕(儒理王) 9년(서기 32년)에 왕이 6부를 정하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두 패로 가른 뒤,
편을 짜서 7월 16일부터 날마다 6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
밤늦게 일을 파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이 많고 적음을 살펴 가지고
지는 편은 술과 밥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에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것을 이를 가배(嘉俳)라 한다"고 하였고,
또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다웠으므로 뒷날 사람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추석의 풍속

추석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는
벌초(伐草)·성묘(省墓)·차례(茶禮)·소놀이·거북놀이·강강수월래·원놀이·
가마싸움·씨름·반보기·올게심니·밭고랑 기기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밭고랑 기기는 전라남도 진도에서는 8월 14일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연령 수대로 밭고랑을 긴다.
이 때에 음식을 마련해서 밭둑에 놓고 하는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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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명절
 
추석이란?
한 해의 추수를 감사하는 우리나라 명절

추석의 뜻
음력 팔월 보름을 일컫는 말로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며
또한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연중 으뜸 명절이다.
 
 
추석의 어원과 유래
 
1. 추석의 어원
 
추석은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로 한가위, 중추절(仲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한다.
한가위의 한은 '하다(大·正)'의 관형사형이고, 가위란 '가배(嘉俳)'를 의미한다.
이때 가배란 '가부·가뷔'의 음역(音譯)으로서 '가운데'란 뜻인데,
지금도 신라의 고토(故土)인 영남 지방에서는 '가운데'를 '가분데'라 하며,
'가위'를 '가부', '가윗날'을 '가붓날'이라고 한다
또 8월 초하루에서 보름께까지 부는 바람을 "8월 가부새 바람 분다"라고 한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가뷔·가부는 뒷날 가위로 속전(俗轉)된 것으로 알 수 있으니,
'추워서'를 현재에도 '추버서'로 하는 것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가위란 8월 중에서도 정(正)가운데란 뜻이니,
정중심(正中心)을 우리가 '한가분데' 또는 '한가운데'라고 하듯이
'한'은 제일(第一), 큰(大)의 뜻 이외에도 한(正)의 뜻이 있음도 알 수 있다.
 
한가위를 추석, 중추절(仲秋節·中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 한 것은 훨씬 후대에 와서 생긴 것이다. 
즉 한자가 전래되어 한자 사용이 성행했을때 중국 사람들이 '중추(中秋)'니 '추 중(秋中)'이니 하고,
'칠석(七夕)'이니 '월석(月夕)'이니 하는 말들을 본받아 이 말들을 따서 합하여
중추(中秋)의 추(秋)와 월석(月夕)의 석(夕)을 따서 추석(秋夕)이라 한것으로 생각된다.
 
 

 2. 추석의 유래

추석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고대로부터 있어 왔던
달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사회에 있어 날마다 세상을 밝혀 주는 태양은 당연한 존재로 여겼지만
한 달에 한번 만월(滿月)을 이루는 달은 고마운 존재였다.
밤이 어두우면 맹수의 접근도 알 수 없고 적의 습격도 눈으로 볼 수가 없기에
인간에게 있어 어두운 밤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만월은 인간에게 있어 고마운 존재였고, 그 결과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게 되었다.
그런데 만월의 밤중에서도 일년 중 가장 큰 만월을 이루는 8월 15일인 추석이
큰 명절로 여겨진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고 먹고 마시고 놀면서 춤추었으며,
줄다리기, 씨름, 강강수월래 등의 놀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고대에 만월을 갈망하고 숭상하던 시대에 이미 일년 중에서 가장 달이 밝은 한가위는
우리 민족 최대의 축제로 여겨지게 되었고, 후에 와서 의식화(儀式化)되어 명절로 제정(制定)을 보게 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잘 나타나 있다.
 
"신라 제3대 유리왕(儒理王) 9년(서기 32년)에 유리왕은
백성들이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살기를 바라는 '도솔가'를 지어 부르게 하였고,
여러가지 산업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가 일으킨 산업의 한가지로 유명한 것은 길쌈이었다.
유리왕은 6부(六部, 신라 때 씨족 중심으로 나눈 경주의6개의 행정구역)를 정하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두 패로 가른 뒤,
편을 짜서 7월 16일부터 날마다 6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이 많고 적음을 살펴 가지고
지는 편은 술과 밥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에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것을 이를 가배(嘉俳)라 한다"고 하였고, 또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다웠으므로 뒷날 사람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7월이 되면 부녀자들은 두 왕녀의 응원을 받으며 열심히 베를 짜기 시작했고,
임금이 지어준 도솔가를 흥얼거리면서 밤을 낮삼아 열심히 짜다보면 8월 보름은 금새 닥치는 듯 하고
마침내는 저마다 마음을 졸이며 그 동안 짜 놓은 베를 가지고 내기 장소에 나왔다.
유리왕과 왕비를 비롯한 궁중의 관리들이 나와 유리왕이 판결을 내리면
이긴 편에서는 환성을 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진 편에서는 그 동안 별미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을 대접하였다.
맛있는 송편, 기름에 지진 고기, 전 등 갖가지 별식과 밤, 대추, 머루, 다래, 배 등이 푸짐하게 마련되면
양편은 모두 둥그런 원을 그리며 둘러앉아 함께 먹으며 노래와 춤을 즐겼다.
어두워지면 하늘에는 둥근달이 떠오르고 갖가지 놀이를 하면서 즐거운 밤을 보냈다.
서라벌에서는 이 날 8월 15일을 가배라 일컬었는데
이것이 '한가위'라는 신라의 큰 명절이 되어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추석명절은 고려시대에도 쇠였으며 1518년(중종 13)에는 설, 단오와 함께 3대 명절로 정하였다.
(한식을 포함하여 4대 명절로도 하고 있다.)
 

오늘날 추석은 한해 동안 농사한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님께 감사하는 차례를 지내고,
달맞이를 하면서 여러 민속놀이를 즐기는데 이러한 우리나라의 풍습을 다루어 봄으로써
전통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혀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조상의 얼과 문화가 계승되고, 우리나라에 대한 애착심도 싹트게 될 것이다.
 

 
3. 추석의 풍속
 
추석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는 벌초(伐草)·성묘(省墓)·차례(茶禮)·
소놀이,거북놀이,강강수월래,원놀이,씨름,반보기,올게심니,밭고랑 기기 등을 들 수 있다.
추석은 옛날부터 설날과 단오와 함께 3대 명절로 꼽혔다.
새로 나온 과일과 곡식으로 상을 차려 차례를 지내고 산소에 성묘를 했다.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들이 모처럼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고 놀이도 했으며,
특히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에서 만나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회포를 푸는 중로상봉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추석은 풍성함을 감사하고 나누는 날이라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습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란' 말이 나왔다고 한다.
 
 

(1) 벌초와 성묘
추석에 조상의 무덤에 가서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 주는데 이를 벌초라 한다.
옛날 조상의 묘를 풍수설에 의하여 명당에 쓰기 위하여 몇 십리 먼 곳에까지 가서 쓰는 수가 많았고,
또 묘를 쓴 다음 이사를 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묘가 집근처가 아니라 먼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추석을 맞이하여서는 반드시 벌초를 하는 것이 자손의 효성의 표시와 도리로 여겼다.
한가위 때에 성묘를 와서 벌초를 안했으면 보기에도 흉할 뿐만 아니라 불효의 자손을 두었거나 임자 없는 묘라 해서 남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2) 차례
추석 이른 아침에 사당을 모시고 있는 종가(宗家)에 모여 고조(高祖)까지의 차례를 지낸다.
차례 지내는 절차가 설날과 다른 것은 흰떡국 대신 메[밥]를 쓰는 점이다.
조상에 대한 추원 보본(追遠報本)과 천신제(薦新祭)를 겸하였기 때문에 제물은 신곡으로 만들어 진열된다.
고조 이상의 윗대는 10월에 시제라 해서 묘에서 제사를 지낸다.
 
 
(3) 소놀이
추석날 차례를 마치고 난 뒤 알맞은 시간에 소놀이는 진행된다.
먼저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농악대가 풍물을 울리면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상쇠의 선도에 따라 한바탕 신나게 풍물을 울리며 어우러져 놀다가 소놀이가 시작된다.
두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그 위에 멍석을 뒤집어 씌우며 뒷사람은 큰 새끼줄로 꼬리를 달고,
앞사람은 막대기 두 개로 뿔을 만들어 소의 시늉을 한다.
소를 끌고 농악대와 마을 사람들은 그 마을에서 가장 부농집이나 그 해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사람의 집으로 찾아간다.
대문 앞에서 '소가 배가 고프고 구정물을 먹고 싶어 왔으니 달라'고 외치면 주인이 나와서 일행을 맞이한다.
소를 앞세우고 일행은 앞마당으로 들어가 농악을 치고 노래하고 춤추고 놀면 주인집에서는 술과 떡과 찬을 차려 대접한다.
마을 사람들은 한참 놀다가 다시 소를 끌고 다른 집으로 향한다. 이렇게 여러 집을 찾아가 해가 질 때까지 어울려 논다.
소놀이를 할 때는 당년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 머슴을 상머슴으로 뽑아 소등에 태우고 마을을 돌며 시위하는 경우도 있다.
농사를 천하의 대본으로 여겨온 농경 민족에게 있어 농사를 잘 지어 풍작을 거두게 하였다는 것은
큰 공이니 위로하고 포상하는 뜻에서 소에 태우는 영광을 주는 것이다.
한번 상머슴으로 뽑히면 다음해 머슴 새경을 정할 때 우대를 받게 된다.

 
(4) 원놀이· 가마싸움 
옛날 서당 교육은 훈장을 초빙해서 가르치는 것이었다.
명절이 되면 훈장도 고향에 가서 차례 성묘를 하게 되므로 서당은 며칠을 쉬게 되고 학동들은 자유롭게 놀 수가 있었다.
이럴 때에 학동들에 의해서 원놀이와 가마싸움이 있게 된다.
원놀이란 학동들 중에서 공부를 많이 했고 재치 있는 사람을 원님으로 선발하고
나머지 학동들은 백성이 되어 원님께 소장을 내어 그 판결을 받는 놀이인데,
오늘날의 대학에서 행해지는 모의재판과 그 성격이 유사하다.
이 때에 현명하고 지혜로운 원님은 사건을 잘 해결하지만 서투른 원님은 백성들의 놀림감이 된다.
장차 과거에 등과해서 벼슬을 하고 백성을 다스려야 할 학동들의 놀이로서는 매우 적격이었다.
 
가마싸움도 학동들이 주가 되어 행하여졌다.
훈장이 없는 틈을 타서 가마를 만들어 이웃마을 학동들과 또는  이웃 서당의 학동들끼리 대결을 하는 놀이이다.
가마를 끌고 넓은 마당에 나아가 달음질해서 가마끼리 부딪혀 부서지는 편이 지게 되는데 이긴 편에서 당년에 등과가 나온다고 한다.
 

 
(5) 반보기
추석이 지난 다음 서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끼리 일자와 장소를 미리정하고 만나는 것을 반보기라 한다.
옛날에 시집간 여자들은 마음대로 친정 나들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녀 사이에 중간 지점을 정해서 서로 즐기는 음식을 장만하여 만나
한나절 동안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회포를 푸는 것이 반보기인 것이다.
또 한 마을의 여인들이 이웃 마을의 여인들과 경치 좋은 곳에 집단으로 모여 우정을 두터이 하며 하루를 즐기는 수도 있다.
이 때에 각 마을의 소녀들도 단장하고 참여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며느릿감을 선정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반보기란 중로 (中路)에서 상봉했으므로 회포를 다 풀지 못하고 반만 풀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6) 올게심니
추석을 전후해서 잘 익은 벼, 수수, 조 등 곡식의 이삭을 한 줌 베어다가 묶어 기둥이나 대문 위에 걸어 두는데
이것을 "올게심니"라고 한다. "올게심니"를 할 때에는 주찬(酒饌)을 차려 이웃을 청해서 주연을 베푸는 수도 있다.
올게심니한 곡식은 다음해에 씨로 쓰거나 떡을 해서 사당에 천신하거나 터주에 올렸다가 먹는다.
올게심니를 하는 것은 다음해에 풍년이 들게 해달라는 기원의 뜻이다.
 

 
(7) 밭고랑 기기
전라남도 진도에서는 8월 14일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연령 수대로 밭고랑을 긴다.
이 때에 음식을 마련해서 밭둑에 놓고 하는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된다는 것이다.
 
 
(8) 그 외
황해도 황주지방에는 "우희"라하여 소놀이, 경기도와 충청도에서는 거북놀이가 있었고 닭잡는 놀이, 콩서리 등이 행해졌다.
또 중로보기(반보기)는 추석에 많이 행하는 것으로 원래는 시집간 딸이 친정집에 자주 못가니,
친정식구를 보기 위해 명절날 중간쯤에서 만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회포를 풀기도 하였다.
 

 
4. 추석의 음식
 
추석, 하면 뭐니 해도 송편입니다.
멥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반죽해서 속에 깨나 팥, 콩, 밤 등을 넣어 반달 모양으로 빚습니다.
쪄서 찬물에 헹군 다음 참기름을 고루 바르면 완성됩니다.
추석 전날 온 가족이 모여서 각기 자기특성에 맞는 송편을 만들죠.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아기를 낳는다고 해서 정성을 다해 빚습니다.
 
음식의 종류로는 송편, 토란국, 닭찜, 배숙, 햇밤, 송이 회, 송이버섯 탕, 송이산적,
송이밥, 화양 적, 청포묵 전, 감자전, 모듬나물 부침, 삼색 전, 느타리버섯산적, 녹두부침 등이 있습니다.

 
1).송편
송편은 한국 떡의 한 종류로 추석을 대표하는 전통음식입니다.
멥쌀가루를 익반죽하여 알맞은 크기로 떼어 거기에 소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빚어
솔잎을 깔고 쪄서 만들며, 소로는 깨·팥 콩 ·녹두·밤 등이 사용됩니다.
 

2).토란국
(1) 토란은 껍질을 벗기고 큰 밤톨 크기로 깎은 다음 팔팔 끓는 쌀뜨물에 소금을 넣고 삶습니다.
살캉하게 익으면 건져서 찬물에 담가둔다. 대파는 어슷하게 썹니다.
 
(2)사골 국물과 멸치 국물을 1:2 비율로 섞은 후 들깨가루를 넣고 믹서에 곱게 갈아 체에 거릅니다.
 
(3) 냄비에 ②의 국물을 넣고 손질한 토란을 넣고 끓입니다.
국물이 끓어오르면 다진 마늘과 야채즙, 어슷하게 썬 파를 넣고 국간장, 굵은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한소끔 끓입니다.
 

3).한과
꿀이나 설탕에 반죽한 밀가루를 네모지고 납작하게 만들어 기름에 튀긴 다음에 물을 들입니다.
추석 때는 추수가 끝나 새로 난 곡식과 과일 등이 풍성해 다양한 햇 음식을 먹습니다.
 
 
 

 
5.차례상 차리는법

차례상을 차리는 법은 복잡해 보이지만 몇 가지 격식만 알면 그다지 어렵지 안습니다.
기본적인 규칙 아래 지방과 가문에 따라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기도 하답니다.
제상은 방위에 관계없이 지내기 편한 곳에 차리지요.
신위(神位·조상의 영혼이 의지할 곳)를 모실 위치에 병풍을 치고 그 앞에 제상을 놓습니다.
두 분을 모시는 양위합제의 경우 제상의 왼쪽에는 남자, 오른쪽에는 여자를 모십니다.
이때 신위를 모신 위치를 북쪽으로 간주하며 제주(祭主)가 있는 쪽을 남쪽으로 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주가 제상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은 동쪽, 왼쪽은 서쪽이 되겠지요.
 

 

 

차례상은 대개 다섯 열로 음식을 놓습니다. 

 

1. 차례상 차리는 법

 


[차례상 차리기]

 

차례상 차리는 법은 지역마다 그리고 각 가정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인 상차림은 위와 같습니다.

 



  1열 시접, 잔반, 메(밥)

 

  떡국은 우측, 술잔은 좌측 

  잔반(받침대)를 놓고 떡국을 올림


 

 2열 어동육서(魚東肉西)

       두동미서(頭東尾西)

 

  어찬은 동쪽, 육찬은 서쪽

  생선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


  3열 탕류

 

   육탕, 소탕, 어탕 순


  4열 좌포우혜(左鮑右醯)

 

  왼쪽에 포(脯), 오른쪽에 식혜


 5열 조율이시(棗栗梨枾)

        홍동백서(紅東白西)

  왼쪽부터 대추, 밤, 배, 곶감 순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차례상 놓는 법]

 

※ 차례상 차릴 때 유의사항

① 삼치, 갈치, 꽁치 등 끝에 '치' 자가 들어간 음식은 쓰지 않습니다.

    (흔하고 천하다고 하여 제사상에 올리지 낳는 것이 풍습이 되었습니다.)

② 고추가루와 마늘 양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귀신을 쫓는다는 미신 때문입니다.)

③ 붉은 팥 대신 흰 고물을 씁니다.

    (귀신이 싫어한다고 합니다.)

④ 붕어, 잉어 등 비늘이 두꺼운 생선은 쓰지 않습니다.

⑤ 탕, 저, 고기 등은 따뜻하게 올립니다.

⑥ 과실 중 복숭아는 쓰지 않습니다.

    (옛분들은 복숭아 나무가 요사스런 기운을 몰아내고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 지방쓰는법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백숙부모

 

 

 

남편                                                                처

 

 

 

형                                             형수



한국 4대 명절의 하나인 음력 8월 15일.

 

중추절(中秋節)·가배(嘉俳)·가위·한가위라고도 한다.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때이다.
유래는 고대사회의 풍농제에서 기원했으며 일종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유리왕(儒理王) 때
6부(六部)의 여자들을 둘로 편을 나누어
두 왕녀가 여자들을 거느리고
7월 기망부터 매일 뜰에 모여 밤늦도록 베를 짜게 했다.
8월 보름이 되면 그동안의 성적을 가려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대접했다.
이때 〈회소곡 會蘇曲〉이라는 노래와 춤을 추며 놀았는데 이를 '가'라고 불렀다.

고려시대에도 추석명절을 쇠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적으로 선대 왕에게 추석제(秋夕祭)를 지낸 기록이 있다.
1518년(중종 13)에는 설·단오와 함께 3대 명절로 정해지기도 했다.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서
여름비에 무너진 무덤 보수와 벌초를 한다.
조상 상에 바치는 제물은 햇곡으로 준비하여 먼저 조상에게 선보이며
1년 농사의 고마움을 조상에게 전한다.
성주·터주·조상단지 같은 집안신들도 햇곡식으로 천신(薦新)하며 추석치성을 올린다.
추석에는 정월 대보름보다는 작지만 풍성한 민속놀이도 행해졌다.
씨름·소놀이·거북놀이·줄다리기 등을 즐긴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제주도 풍속에는 조리희(照里戱)라 부르는 줄다리기, 그네,
닭잡는 놀이인 포계지희(捕鷄之戱) 같은 놀이가 있다.
수확철이라 다양한 음식이 선보이며 추절시식(秋節時食)이라 하여
햅쌀로 술을 빚고 송편을 만들며 무나 호박을 넣은 시루떡도 만든다.
찹쌀가루를 쪄서 찧어 떡을 만들고 콩가루나 깨를 묻힌 인병(引餠),
찹쌀가루를 쪄서 꿀을 섞어 계란처럼 만든 율단자(栗團子)도 만들어 먹었다.

또 반보기의 풍습도 있었는데, 반보기란 시집간 여자가 친정에 가기 어려워,
친정부모가 추석 전후로 사람을 보내
만날 장소·시간을 약속하여 시집과 친정 중간쯤에서 만나는 것이다.
지금은 이 풍습이 없어졌지만 추석 뒤에 음식을 장만하여 친정에 가서 놀다 오게 한다.
추석은 지금까지도 우리 민족의 고유한 명절로 자리잡고 있어,
추석이 되면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간다.
북한에서는 추석을 쇠지 않았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공휴일로 정했다.

 

 

□ 추석의 유래는 ?

 

일반적으로 추석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해 신라시대의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신라시대에 나라 안의 부녀자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한달 동안 길쌈을 하여
마지막 날인 8월 15일에 승부를 가려 진 편에서 음식을 대접하고
'회소곡'을 부르며 밤새도록 노래와 춤을 즐겼는데,
이 길쌈놀이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 '가배' 오늘날 한가위의 '가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뜻은 가운데(中) 또는 반(半)이라는 의미라 한다.
따라서 한가위는 가을의 반, 중추(中秋)의 한국식 표기이다.

그리고 이맘때쯤이면 봄여름동안 땀흘려 기른 농작물이 여물어 수확을 한다.

예로부터 가을 수확을 하면 감사의 뜻으로
조상님께 먼저 햇곡식을 올리는 천신(薦新)을 했는데,
상례적으로 추석날 천신을 했었다.
그래서 차례상에 올리는 제수는 햅쌀로 만든 메, 떡, 술 등과 오색 햇과일로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9천년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은
이미 아주 오랜 옛날부터 추석뿐 아니라 제사풍습이
우리문화의 근간으로 깊이 자리잡아 왔다.

그리고 이 제사의 대상은 일차적으로는 조상님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우주의 주재자이신 삼신(三神) 상제(上帝)님께 제사를 지냈다.

 

이것을 신교(神敎) 신앙이라 하는데,
서기전 2333년에 조선을 개국한 제 1세 단군임금도 상제님께 제사[天祭]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환단고기]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10월 상순에는 모두가 나라의 큰 축제에 참여하였다.
이때 둥근 단(圓丘)을 쌓아 하늘에 제사 지냈는데,
땅에 제사 지낼 때는 네모지게 쌓았으며(方丘),
조상에 제사지낼 때는 각목(角木)을 썼다.

 

제천(祭天)할 때는 임금(韓)께서 반드시 몸소 제사지냈으니,
그 예가 매우 성대하였음을 가히 알 수 있으리라........
이에 온 나라에서 제사를 받들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도 제천(祭天)행사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추석이나, 조상제사는 바로 이러한 신교문화의 맥을 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이 우주 만유에는 모두 신(神)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 민간신앙의 형태로 남아 있는 당산제, 성황제, 산신제, 용왕제, 풍어제 등도
모두 신교신앙의 자취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은 예전에 비해 제사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형식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여전히 이 지구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조상님 제사를 중요시 여기고 있다.

 

 

□ 기제사(忌祭祀)와 차례[茶禮]의 차이점은?

 

먼저 기일에 모시는 것은 기제사라 하고,
명절날 모시는 것은 차례라고 하는데 어떻게 다른 것일까?

 

차례[茶禮]는 매월 음력 초하루, 보름, 명절,
그리고 조상님 생일날 등에 낮에 지내는 간략한 제사를 말한다.
차례는 다른 말로 다례(茶禮)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차례상에 술을 올리지만
예전에는 차(茶)를 올렸다하여 다례(茶禮), 혹은 차례[茶禮]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는 설, 추석, 한식에만 차례를 지내고 있는데
설과 추석에는 대부분의 집안에서 다 모시고,
한식은 일부 가정에서 묘제(墓祭)형식으로 지내고 있다.

 

기제사(忌祭祀)와 차례[茶禮]의 차이점을 보면,
기제사는 그 날 돌아가신 조상님과 그 배우자만 지내는 반면
차례는 자기가 제사를 받드는 모든 조상을 다 지낸다.
또 기제사는 밤에 지내고 차례는 낮에 지낸다.

기제사와 차례 이외에 시제(時祭)가 있는데
이는 조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라 묘사(墓祀)라고도 한다.
조상신은 4대까지만 기제사를 지내고 그 이상의 조상은 함께 묘제를 지낸다.

 

 

□ 정말로 조상님이 직접 오셔서 음식을 드실까?

 

그러면 제사나 명절날 그렇게 정성껏 제수를 마련하여 올리는데
정말로 조상님이 오셔서 그 음식을 드시는 걸까?

아니, 과연 하늘에 조상님이 참으로 계시는 것일까?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생일(生日)이 있다.
우리의 생일이라는 것은 천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육신을 가지고 지상에 다시 태어난 날을 말한다.

반면 제삿날은 지상의 삶을 정리하고 천상에 다시 태어난 날, 즉 천상의 생일인 것이다.

조상님들은 육신은 없지만 천상에서 계속 살아가고 계시는 것이다.
제사를 모시는 것은 돌아가신 날을 기리는 것이지만
또한 천상의 생일을 축복해 주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천상의 조상님들은
제삿날이 되면 즐거운 마음으로 후손들이 차려주는 제삿상을 받으러 오신다.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제삿상에 올린 음식에 깃든 기운을 섭취하신다.
제사음식이 다른 음식보다 약간 푸석푸석한 느낌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첨언하여, 이러한 조상 제사문화는 같은 동양문화권내에서도
한국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동양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유교의 종주국이었던 중국은 일단 국가적 차원에서
종교활동이나 제례문화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제삿날이 되면 시골이나 일부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조용히 모실 뿐
문화혁명 이후로는 거의 사라졌으며,
설날 때 중국인들이 고향을 찾아 대대적으로 이동하는 것도
단지 신년이라는 의미에서 가족들과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의미가 더 크다.

 

일본은 제삿날이나 명절이 되면
공동묘지에 가서 납골묘에 안치된 유골을 닦아드리거나
비석을 닦아드리고 꽃을 올리는 풍습은 있지만 제사의식은 없다.
단지 일본은 대부분이 불교신앙이라 집안에 불단을 모시는 경우가 많고,
일부는 '신주'라 하여 국조인 천조대신과 지방신을 모시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 민족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조상님을 잘 모시는 민족인 것이다.
그리고 후손이 조상님을 잘 모시는 만큼
조상님들도 천상에서 늘 자손들을 보살피고 자손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계신다.

 

 


□ 음식준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명절이나 제사 때 올리는 음식은 조상님 대접이라 제일 좋은 걸로 구입하고,
음식을 준비할 때도 지극한 정성을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조상선영 신들은 마치 옆방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자손들이 하는 모든 행위를 하늘에서 텔레비젼을 보듯이 다 알고 계신다.
더욱이 신명은 행동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까지 훤히 꿰뚫어 본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 바로 내 옆에서 하나하나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이나 속이지 신명을 속일 수 있겠는가.

몸가짐을 깨끗하게 하고, 누가 보든 안 보든 지극한 정성을 다해야
조상님들도 더욱 좋아하며 흠향을 하시는 것이다.

 

 

□ 성묘(省墓)는 왜 할까?

 

명절이면 집에서 차례를 모시고 나서 가족들이 함께 성묘를 간다.
집에서 조상님께 차례를 모시는데 산소에까지 가서 다시 성묘를 모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묘(省墓)란 말 그대로 묘를 살핀다는 의미이다.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신라말
. 당시 승려이자 풍수지리학자였던 도선(道詵)대사는
왕융(王隆, 고려 태조 왕건의 아버지)에게 어느 곳에 집을 지으면
장차 왕이 될 큰 인물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에 왕융이 그 곳에 집을 지었는데 그 뒤 왕건이 태어났고,
도선대사의 예언대로 이후 고려왕조를 일으켰다.
그 이래로 풍수지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게 높아지면서
도선의 풍수지리를 신주 모시듯이 모셨고
집집마다 명당자리에 조상묘를 쓰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좋은 자리가 있으면 이미 묘가 들어서 있는데도
근처에 다른 사람들이 묘를 쓰고 또 쓰는 등 투장(偸葬)이 성행하였다.
이 때문에 후손들은 자손된 도리로서
마땅히 자기 조상님의 묘가 무사한지 수시로 가서 살펴보며
묘를 수호했는데 여기서 성묘가 유래하였다.
오늘날에는 설날, 추석, 한식 때 성묘를 가는데 그 날 이외에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

 

 

□ 물밥은 왜 올릴까?

 

집집마다 틀리지만 제사나 차례를 모실 때 물밥을 따로 마련하는 경우가 있다.

물밥이란 판수가 굿을 하거나 물릴 때
다른 신명에게 준다고 물에 말아서 던지는 밥을 말한다.
그런데 제사나 차례를 모실 때도
제삿상 옆에 물에 말아서 마루 같은데 따로 놓아두는데 이것을 물밥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 물밥은 왜 올리는 것일까?

 

지상에서의 고아는 부모가 없는 사람이지만,
천상의 고아는 자손이 없는 조상신명이다.
자손이 있는 신을 황천신이라 하고,
자손이 없는 신을 중천신이라 하는데,
자손이 있는 황천신은 후손들이 명절이나 제사 때
상을 차려드리므로 오셔서 흠향하실 수가 있다.
하지만 대가 끊어진 중천신들은 얻어먹을 데가 없다.
그래서 황천신을 따라온 중천신들은 얻어먹을 데가 없다.
그래서 황천신을 따라온 중천신을 위해 물밥을 두는 것이다.

신도세계에 대해 깊은 혜안이 있었던 우리 선조들은
갈 곳 없는 신명들까지 챙기는 세심한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사상에 비해 얼마나 조촐한가.
중천신들은 남의 집에 그런 물밥이나 얻어먹으며
외롭게 떠돌아다니니 그 한이 오죽이나 크겠는가.

명절이나 제사 때 한 많은 중천신들을 위해
마루에 작은 상이라도 마련해두면 더욱 좋을 것 같다.

 

 

□ 조상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는 것!

 

현재 내가 존재하는 것은 조상님의 지극한 공덕과 은혜로 인함이다.
내 생명의 근원이 바로 조상님임을 깨달아야 한다.

황천신은 삼신이 되어 자손을 타내는데,
보통 쓸 자손 하나를 타내는데 60년간을 공(功)을 드린다 한다.
60년이면 2대이다.
2대동안 천상 조상님들이 무한한 공부를 들인 끝에 태어난 것이
바로 우리들이니 그 얼마나 귀하게 그리고 어렵게 태어난 몸인가.
우리 몸뚱아리는 바로 조상님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또한 조상님이 남긴 유체(遺體)가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손된 도리로서 나의 천지인 부모님, 조상님을
지극한 정성으로 모심은 바로 천지의 도리이며 천지의 근본 예인 것이다.

 

요즈음은 관광지나 콘도에서 차례를 모시는 사람도 있고,
제사상을 통째로 파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하늘에 계신 조상님들이 보면 가슴치며 통탄할 일이 아닌가.
조상님들은 자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마음을 어떻게 쓰는지 까지 다 보고 계신다.
정성을 들이는 그 마음에 조상님도 고마워하고,
또 그만큼 자손을 위해 공을 들여주신다.

내 생명의 뿌리이신 부모님, 조상님께 깊이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번 추석 때는 더욱 정성껏 차례를 올려보자................

秋夕, 仲秋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나라마다 명절(festive day)은 존재한다.
한국에도 설,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유두, 추석, 동지, 칠석 등 예로부터 내려오는 명절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각 명절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고유의 풍습과 놀이, 음식 등을 즐겼다.
하지만 아쉽게도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큰 명절이 아니고서는 잘 챙기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오늘은 다 알고 계시겠지만 추석 중추절의 대해서 잠시 알아보고자한다.


추석명절의 유래  


추석은 중부지방보다 남부지방에서 설날과 같은 제일 큰 명절로 취급하고 있다.
추석절의 의미는 벌초와 성묘를 최고로 생각하며,
조상으로부터 음덕을 받아 후손들의 삶이 풍요롭고 훌륭한 인재배출로
가문이 번창하길 기원하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그래서 추석에는 너도나도 고향 산소를 찾아 벌초하고 성묘하면서 차례를 지낸다.
경제가 어려워도 조상에 대한 정성만큼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차례상 준비에 더 많은 정성을 쏟아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세시풍속은 시대에 따라 변천되었지만,
당초에는 궁중 내에서 여자들의 길쌈 노동의 놀이로 시작했던 것이
민속명절로 전개되었고 성묘와 조상제사와 연관된 것 같은데 상세한 내력은 불분명하다.

 

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대사회의 풍농제에서 기원했으며 일종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조에 기록하고 있는데
유리왕 9년(32)에 왕이 6부 호칭을 정하고 중간을 나눠 둘로 편성한 다음
왕녀 2인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편을 나누어
7월 보름날부터 매일 이른 아침에 대부(大部)의 마당에 모아놓고
길쌈을 해 이경쯤에 일을 끝내는 것을 8월 보름날까지 계속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시대에도 추석명절을 쇠었으며
중종 13년(1518)에는 설·단오와 함께 3대 명절로 정해지기도 했다.

추석명절은 마음과 삶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 같다.

바쁜 일년동안 삶의 전쟁으로 잊어버렸던 조상과 나를 찾아보고 고향을 생각하며,
잠시나마 조상에게 정성을 들이고자 모두가 고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들녘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어 더욱 심신의 피로를 녹이는 듯하다.
아늑하고 따뜻한 고향산천의 자연과 함께 보내는 날이 가장 즐거운 날이 될 것이다.
 
추석의 어원

추석이라는 말은 예기(禮記)의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중추절(仲秋節)이라 하는 것도 가을을 초추·중추·종추 3달로 나눠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었으므로 붙은 이름이다.

 

추석은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로 한가위, 중추절(仲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한다.
한가위의 한은 '하다(大·正)'의 관형사형이고, 가위란 '가배(嘉俳)'를 의미한다.

이때 가배란 '가부·가뷔'의 음역(音譯)으로서 '가운데'란 뜻인데,
지금도 신라의 고토(故土)인 영남 지방에서는 '가운데'를 '가분데'라 하며,
'가위'를 '가부', '가윗날'을 '가붓날'이라고 한다.

 

또 8월 초하루에서 보름께 까지 부는 바람을 "8월 가부새 바람 분다"라고 한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가뷔·가부는 뒷날 가위로 속전(俗轉)된 것으로 알 수 있으니,
'추워서'를 현재에도 '추버서'로 하는 것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가위란 8월중에서도 정(正)가운데란 뜻이니,
정중심(正中心)을 우리가 '한가분데' 또는 '한가운데'라고 하듯이
'한'은 제일(第一), 큰(大)의 뜻 이외에도 한(正)의 뜻이 있음도 알 수 있다.

 

한가위를 추석, 중추절(仲秋節·中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 한 것은 훨씬 후대에 와서 생긴 것이다.
즉 한자가 전래되어 한자 사용이 성행했을 때 중국 사람들이 '중추(中秋)'니 '추 중(秋中)'이니 하고,
'칠석(七夕)'이니 '월석(月夕)'이니 하는 말들을 본받아 이 말들을 따서 합하여
중추(中秋)의 추(秋)와 월석(月夕)의 석(夕)을 따서 추석(秋夕)이라 한 것으로 생각된다.


추석의 유래

추석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고대로부터 있어 왔던 달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사회에 있어 날마다 세상을 밝혀 주는 태양은 당연한 존재로 여겼지만
한 달에 한번 만월(滿月)을 이루는 달은 고마운 존재였다.

밤이 어두우면 맹수의 접근도 알 수 없고
적의 습격도 눈으로 볼 수가 없기에

인간에게 있어 어두운 밤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만월은 인간에게 있어 고마운 존재였고,

그 결과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게 되었다.

 

그런데 만월의 밤중에서도 일년 중 가장 큰 만월을 이루는 8월 15일인 추석이
큰 명절로 여겨진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고 먹고 마시고 놀면서 춤추었으며,
줄다리기, 씨름, 강강수월래 등의 놀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고대에 만월을 갈망하고 숭상하던 시대에
이미 일년 중에서 가장 달이 밝은 한가위는 우리 민족 최대의 축제로 여겨지게 되었고,
후에 와서 의식화(儀式化)되어 명절로 제정(制定)을 보게 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잘 나타나 있다.

"신라 제3대 유리왕(儒理王) 9년(서기 32년)에 왕이 6부를 정하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두 패로 가른 뒤,
편을 짜서 7월 16일부터 날마다 6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
밤늦게 일을 파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이 많고 적음을 살펴 가지고
지는 편은 술과 밥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에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것을 이를 가배(嘉俳)라 한다"고 하였고,
또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다웠으므로 뒷날 사람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추석의 풍속

추석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는
벌초(伐草)·성묘(省墓)·차례(茶禮)·소놀이·거북놀이·강강수월래·원놀이·
가마싸움·씨름·반보기·올게심니·밭고랑 기기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밭고랑 기기는 전라남도 진도에서는 8월 14일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연령 수대로 밭고랑을 긴다.
이 때에 음식을 마련해서 밭둑에 놓고 하는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 된다는 것이다.

 

우리고유의 전통 민속명절 한가위

조상님들의 음덕을 생각하며

일가친척 모두모여

줄겁고 흥겨운 명절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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