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제 5편 공야장[公冶長]

 

 

此篇은 皆論古今人物賢否得失하니
蓋格物窮理之一端也니
凡二十七章이라
胡氏以爲疑多子貢之徒所記云이라.


이 편(篇)은 모두 고금(古今)의 인물(人物)에 대한 현부(賢否)와 득실(得失)을 평론했으니,
격물(格物)•궁리(窮理)의 한 가지이다.
모두 27장(章)이다.
호씨(胡氏)는 “이 편(篇)은 자공(子貢)의 문도(門徒)들이 기록한 것이 많은 듯하다.” 하였다.

 

 

1장
子謂 公冶長 可妻也. 雖在縲絏之中 非其罪也 以其子로妻之.
자위 공야장 가처야. 수재류설지중 비기죄야 이기자로처지.

 

子謂南容 邦有道 不廢 邦無道 免於刑戮 以其兄之子 妻之.
자위남용 방유도 불폐 방무도 면어형륙 이기형지자 처지.

 

공자(孔子)께서 공야장(公冶長)을 두고 평하시기를 “사위 삼을 만하다.
비록 포승으로 묶여 옥중(獄中)에 있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었다.” 하시고, 자기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셨다.

 

공자 남용에게 말씀하시기를,나라에 도가 있음에는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고 나라에 도가 없음에는 조심하여 형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시고 그 형의 자식을 그의 아내로 삼게 하셨다.

 

 

해설

공야장(公冶長)은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이다.
처(妻)는 <딸을 시집보내어> 그의 아내가 되게 하는 것이다.
누(縲)는 검정색의 포승이고, 설(絏)은 결박이다.
옛날 옥중(獄中)에서는 검정색의 포승으로 죄인(罪人)을 결박하였다.
공야장(公冶長)의 사람됨은 상고할 곳이 없으나,
부자(夫子)께서 ‘사위 삼을 만하다.’고 칭찬하셨으니,
그에게 반드시 취할 만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또 그 사람이 비록 일찍이 옥중(獄中)에 갇혀 있었으나 그 사람의 죄가 아니었으니,
참으로 사위 삼는 데에 나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죄가 있고 없음은 자신에게 달려 있을 따름이니,
어찌 밖으로부터 이르른 것을 가지고 영욕(榮辱)을 삼겠는가!

남용(南容)은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이니 남궁(南宮)『[남쪽에 있는 궁궐]』에 거주하였고,
이름은 도(縚』)이며 또 괄(适)이라고도 하였다.
자(字)는 자용(子容), 시호는 경숙(敬叔)이니, 맹의자(孟懿子)의 형(兄)이다.
불폐(不廢)는 반드시 쓰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언행(言行)을 삼가였으므로, 잘 다스려지는 조정에서는 쓰임을 당하고,
난세(亂世)에는 화(禍)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일은 또 제11편『〔先進〕』에 보인다.

혹자가 말하기를
“공야장(公冶長)의 어짊이 남용(南容)에 미치지 못하였으므로,
성인(聖人)이 자기 딸을 공야장(公冶長)에게 시집보내고
형의 딸을 남용(南容)에게 시집보냈으니,

이는 형에게 후히 하고 자기에게 박하게 한 것이다.” 하였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이는 자신의 사심(私心)을 가지고 성인(聖人)을 엿본 것이다.
무릇 사람들이 혐의를 피하는 것은 모두 자기 마음에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성인(聖人)은 본래 지극히 공정하시니, 어찌 혐의를 피할 일이 있겠는가?
하물며 딸을 시집보내는 일은 반드시 딸의 재질을 헤아려서 배필을 구하는 것이니,
더욱이 피하는 바가 있어서는 안 된다.
공자(孔子)의 이 일로 말하면,
그 연령의 차이와 시집간 시기의 선후(先後)를 모두 알 수 없거니와,
다만 혐의를 피했다고 하는 것은 크게 옳지 않다.
혐의를 피하는 일은 현자(賢者)도 하지 않는데 하물며 성인(聖人)에게 있어서이겠는가!”

 


2장
子謂子賤 君子哉 若人 魯無君子者 斯焉取斯.
자위자천 군자재 약인 노무군자자 사언취사.

 

공자가 자천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군자로구나 노나라에 군자가 없다면 어찌 이런 사람을 취하리오.

 

해설

 자천(子賤)은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이니, 성(姓)은 복(宓)이고, 이름은 불제(不齊)이다.
‘사언취사(斯焉取斯)’의 위 사자(斯字)는 이 사람『〔子賤〕』이고, 아래 사자(斯字)는 이러한 덕(德)이다.
자천(子賤)은 아마도 어진이를 존경하고 훌륭한 벗을 취하여 덕(德)을 이룬 사람인 듯하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이미 그의 어짊을 찬탄(贊歎)하시고,
다시 “노(魯)나라에 군자(君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취하여 
이러한 덕(德)을 이루었겠는가?”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로 인하여 노(魯)나라에 군자(君子)가 많음을 나타내신 것이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사람의 선(善)을 칭찬할 적에
반드시 그 부형(父兄)과 사우(師友)를 근본 하여 말하는 것은 후덕(厚德)함이 지극한 것이다.”

 

 

 

3장
子貢問曰賜也 何如 子曰 女 器也 曰 何器也 曰 瑚璉也.
자공문왈사야 하여 자왈 녀 기야 왈 하기야 왈 호련야.

 

자공이 묻기를 사는 어떠합니까? 하니공자 가라사대 너는 훌륭한 그릇이다
고 하시니 자공이 말하기를 어떤 그릇 입니까? 하니 호련이다고 했다.

 

해설

기(器)란 쓰임이 있는 완성된 재질이다.
하(夏)나라에서는 호(瑚)라 하였고, 상(商)나라에서는 연(璉)이라 하였고,
주(周)나라에서는 보궤(簠簋)라고 하였으니,
모두 종묘(宗廟)에서 서직(黍稷)을 담는 그릇인데, 옥(玉)으로 장식하였으니,
그릇 중에 귀중하고 화려한 것이다.
자공(子貢)은 공자(孔子)께서 자천(子賤)을 군자(君子)라고 허여 하심을 보았다.
이 때문에 저는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孔子)께서 이처럼 답하셨으니,
그렇다면 자공(子貢)은 비록 불기(不器)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또한 그릇의 귀한 것일 것이다.

 


4장
或曰 雍也 仁而不佞이 子曰 焉用佞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不知其仁 焉用佞.
혹왈 옹야 인이불녕이 자왈 언용녕 어인이구급 누증어인 불지기인 언용녕.

   

어떤이가 말하기를 옹은 이질기는 하나 말재주가 없습니다.하니 공자 가라사대
사람을 대하는데 말재주로서 하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일이 많다. 그의
어진 마음을 알지못하고 어찌 말재주따위를 쓰겠는가?

 

해설

어(禦)는 당(當)『[상대, 또는 막는 것]』하는 것이니, 남의 말에 응답함과 같다.
급(給)은 말을 잘하는 것이다.
증(憎)은 미워함이다.
말재주를 어디에다 쓰겠는가?
구변 좋은 사람이 남과 응답하는 것은 단지 입으로 약삭빠르게 말하여 이기기를 취할 뿐이요,
실정(實情)이 없어서 한갓 남들에게 미움을 받는 일이 많을 뿐이다.
내 비록 중궁(仲弓)이 인(仁)한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그의 말재주 없음은 바로 훌륭함이 되는 것이요 흠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말재주를 어디에다 쓰겠는가?”라고 다시 말씀한 것은 깊이 깨우치려고 하신 것이다.
혹자가 의심하기를
“중궁(仲弓)의 어짊으로도 부자(夫子)께서 그의 인(仁)을 허여 하지 않으심은 어째서인가?” 하였다.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인(仁)의 도(道)는 지극히 커서 전체가 인(仁)이고 그침이 없는 자가 아니고서는 이에 해당될 수 없다.
안자(顔子)와 같은 아성(亞聖)으로서도 오히려 3개월이 지난 뒤에는 인(仁)을 떠남이 없지 못하였다.
더구나 중궁(仲弓)은 비록 어질다고 하지만 안자(顔子)에 미치지 못하니,
성인(聖人)께서 참으로 가볍게 허여 하실 수 없는 것이다.”

 


5장
子使漆彫開 仕 對曰吾斯之未能信. 子 說.

자사칠조개 사 대일오사지미능신. 자 열.


공자께서 칠조개로 하여금 벼슬을 하게 하시니 칠조개가 답하기를
제가 아직 벼슬을 나갈 자신이 없습니다.고 했다.이에 공자께서 기뻐 하셨다.

 

해설

『칠조개(漆雕開)는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이니, 자(字)는 자약(子若)이다.
사(斯)는 이 이치를 가리켜 말한 것이요,
신(信)은 참으로 그러함을 알아 털끝 만한 의심도 없음을 말한다.
칠조개(漆雕開)는 스스로 말하기를
“아직 자신할 수 없어 사람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하였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그의 뜻이 돈독함을 기뻐하신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칠조개(漆雕開)가 이미 대의(大意)를 보았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기뻐하신 것이다.”
또 말씀하였다.
“옛사람은 도(道)를 봄이 분명하였다.
그러므로 그 말이 이와 같은 것이다.”』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칠조개(漆雕開)의 학문(學問)은 상고할 곳이 없다.
그러나 성인(聖人)께서 그로 하여금 벼슬을 하게 하였으니,
반드시 그의 재질이 벼슬할 만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은미(隱微)함에 이르러서는
털끝만큼이라도 자득(自得)하지 못함이 있으면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데 무방(無妨)『[불해(不害)]』하니,
이것은 성인(聖人)『[공자(孔子)]』도 아시지 못하는 것인데,
칠조개(漆雕開)가 스스로 안 것이다.
그 재질이 벼슬할 만한데도 그 그릇이 작은 성취에 안주하지 않았으니,
후일의 성취하는 바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부자(夫子)께서 이 때문에 기뻐하신 것이다.”』

 

 


6장
子曰 道不行 乘桴 浮于海 從我者 其由與 子路聞之 喜
자왈 도불행 승부 부우해 종아자 기유여 자로문지 희

 

子曰 由也 好勇 過我 無所取材.
자왈 유야 호용 과아 무소취재.

 

공자 가라사대 도가 행해지지 않는지라 바다로 떠나갈까 하니 나를 따르는 자는
아마도 유 일것이다.이말을 듣은 자로가 기뻐하자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유는 용
맹을 좋아 하기는 나보다 낫지만 재능에서 취할바는 아니다.

 

해설

『부(桴)는 뗏목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바다를 향해하겠다는 탄식은 천하(天下)에 어진 임금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서 하신 말씀이다.
자로(子路)는 의리(義理)에 용감하였으므로 그가 자신을 따라올 것이라고 하신 것이니,
이는 모두 가설(假設)해서 하신 말씀일 뿐이다.
그런데 자로(子路)는 이것을 실제라고 생각하여 부자(夫子)께서 자기를 허여해 주심을 기뻐하였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그의 용맹을 찬미하시고,
그 사리를 헤아려 의(義)에 맞게 하지 못함을 기롱하신 것이다.”』

 


7장
孟武伯 問 子路 仁乎 子曰 不知也 又問 子曰 由也 千乘之國
맹무백 문 자로 인호 자왈 불지야 우문 자왈 유야 천승지국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 求也 何如 子曰 求也 千室之邑
가사치기부야 부지기인야 구야 하여 자왈 구야 천실지읍

 

百乘之家 使爲之宰也 可不知其仁也 赤也 何如 子曰 赤也
백승지가 사위지제야 가부지기인야 적야 하여 자왈 적야

 

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也 不知其仁也.
속대립어조 가사여빈객언야 부지기인야.

 

맹무백이 자로에 대해 묻기를 자로는 어집니까 하니 공자가 답하기를

그가 어진지는 알수 없으나 유야는 천승의 나라에서 그 군사를 다스릴수는 있으나

그가 어짐은 알지 못하겠다 하셨다.

 

맹무백이 묻기를 구는 어떻습니까?

공자가 답하기를 천승의 고을과 백승의 집안에서 재가 될수는 있으나 그가 어짐은 알지 못하겠구나 하셧다.

 맹무백이 묻기를 적은 어떠합니까? 하니 공자가 답하기를

적은 띠를 두르고 조정에서서 빈객과 더블어 말하게 할수는 있으나 그가 어짐은 알지 못하겟다 고 하였다.

 

해설

『부(賦)는 병(兵)『[군(軍)]』이다.
옛날에는 토지의 세금을 따져 군사를 내었으므로,
군(軍)을 일러 부(賦)라 하였으니,
《춘추전(春秋傳)》에 이른바
“저희 나라의 군(軍)을 모두 모았다『〔悉索敞賦〕』.”는 것이 이것이다.
자로(子路)의 재주는 볼 수 있는 것이 이와 같을 뿐이며, 인(仁)한지는 알지 못하겠다고 말씀한 것이다.』
『“구(求)『[염유]』는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구(求)는 천실(千室)『[천호(千戶)]』의 큰 읍(邑)과
백승(百乘)『[경대부(卿大夫)]』의 집안에 재(宰)가 되게 할 수는 있거니와
그가 인(仁)한지는 알지 못하겠다.”』
『천실(千室)은 큰 읍(邑)이요, 백승(百乘)은 경대부(卿大夫)의 집안이다.
재(宰)는 읍장(邑長)과 가신(家臣)의 통칭이다.』
『“적(赤)은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적(赤)은 <예복(禮服)을 입고> 띠를 띠고서 조정에 서서
빈객(賓客)을 맞아 대화를 나누게 할 수는 있거니와 그가 인(仁)한지는 알지 못하겠다.”』
『적(赤)은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이니,
성(姓)은 공서(公西)요, 자(字)는 자화(子華)이다.』 

 

 

 

8장
子謂 子貢曰 女與回也 孰愈 對曰賜也何敢望回 回也 聞一以知十
자위 자공왈 녀여회야 숙유 대왈사야하감망회 회야 문일이지십

 

賜也는 聞一以知二. 子曰 弗如也.吾與女 弗如也.
사야는 문일이지이. 자왈 불여야.오여녀 불여야.

 

공자가 자공에게 묻기를 너희중에는 누가 나은냐 고 묻자

자공이 답하기를 제가 어찌회를 바라 보겠습니까

회는 하나를 듣으면 열을 알고 사는 하나를 듣으면 둘을 압니다.고 하니

공자 가라사대 너와 나는 같지 않구나고 햇다.

 

해설
『유(愈)는 낫다는 뜻이다.』
『일(一)은 수(數)의 시작이요, 십(十)은 수(數)의 끝이며, 이(二)는 일(一)의 상대이다.
안자(顔子)는 밝은 지혜가 비추는 바로 시작을 가지고 끝을 알았고,
자공(子貢)은 추측하여 알아 이것을 인하여 저것을 알았다.
<선진편(先進篇)에> 공자(孔子)께서 “내 말을 기뻐하지 않는 바가 없다.
『〔無所不說〕』.”고 안자(顔子)를 칭찬한 것과
<학이편(學而篇)에> “지나간 것을 말해주니 말하지 않은 것을 안다
『〔告往知來〕』.”고 자공(子貢)을 칭찬한 것이 그 증거이다.』

『여(與)는 허여(許與)이다.』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헌문편(憲問篇)에> 자공(子貢)이 사람들을 비교 평가하자,
공자(孔子)께서 ‘나는 그럴 겨를이 없다.’하셨으며,
또 ‘너는 안회(顔回)와 누가 나으냐?’고 물어,
그가 자기 자신을 앎이 어떠한가를 살펴보신 것이다.
문일지십(聞一知十)은 상지(上智)의 자질로,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이『〔生而知之〕』의 다음이요,
문일지이(聞一知二)는 중인(中人) 이상의 자질로, 배워서 아는 이『〔學而知之〕』의 재주이다.
자공(子貢)이 평소에 자신을 안회(顔回)에 견주어 따라갈 수 없음을 알았으므로,
비유하기를 이와 같이 한 것이다.
부자(夫子)는 자공(子貢)이 자신을 앎이 분명하고 또 자기를 굽히기를 어렵게 여기지 않았으므로,
그 말을 옳게 여기시고 또 거듭 허여 하신 것이다.
자공(子貢)은 이 때문에 끝내 성(性)과 천도(天道)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되었고,
비단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9장
宰予晝寢 子曰 朽木 不可雕也 糞土之墻 不可杇也 於予與 何誅
재여주침 자왈 후목 불가조야 분토지장 불가오야 어여여 하주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에 改是.
자왈 시오어인야 청기어이기신행 금오어인야 청기언이관기행 어여여에 개시.

 
재여가 낮잠을 자거늘 공자 가라사대

썩은 나무는 조각을 할수 없고 부스러진 흙으로 만든 담장은 흙손질 하지 못할것 이니

여에게 무엇을 꾸짖을꼬 하셨다

공자 가라사대 비로소 내가 그 말을 듣고 그 행실을 믿었었는데 사람들 말을 듣고
이제 그 행실을 보니 재에 있어서는 이런 행동을 고쳐야 한다 고 하셨다.

 

해설 

『주침(晝寢)은 낮을 당하여 잠자는 것을 말한다.
후(朽)는 썩은 것이요, 조(雕)는 조각이요, 오(杇)는 흙손질이다.
그 뜻과 기운이 흐리고 게을러 가르침을 베풀 곳이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여(與)는 어조사이다.
주(誅)는 꾸짖음이니, 꾸짖을 것이 없다고 말씀한 것은 바로 그를 깊이 꾸짖으신 것이다.』
『재여(宰予)는 말은 잘하였으나 행실이 말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재여(宰予)의 일로 인하여 나의 이러한 잘못을 고쳤다고 말씀하셨으니,

거듭 깨우치신 것이다.』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자왈(子曰)은 연문(衍文)인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한 때에 하신 말씀이 아닐 것이다.”』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가 학문(學問)에 대하여 날로 부지런히 힘써 죽은 뒤에야 그만둔다.
그러면서도 행여 따라 가지 못할까 두려워하는데 재여(宰予)는 낮잠을 잤으니,
스스로 포기함이 무엇이 이보다 심하겠는가?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그를 책망하신 것이다.”』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재여(宰予)가 의지로 기운을 통솔하지 못하고, 편안히『〔居然〕』 나태하였다.
이는 안락하려는 기운이 우세하고, 경계하는 뜻이 태만해진 것이다.
옛 성현(聖賢)은 일찍이 게으름과 편안히 지내는 것을 두렵게 여기고,
부지런히 힘쓰며 쉬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 힘쓰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이는 바로 공자(孔子)께서 재여(宰予)를 깊이 꾸짖으신 이유이다.
‘말을 듣고 다시 행실을 살펴보게 되었다.’는 것은,
성인(聖人)이 이 일을 기다린 뒤에 그렇게 되신 것도 아니며,
또한 이로 말미암아 배우는 자들을 모두 의심하신 것도 아니다.
다만 이를 인하여 교훈을 세워 제자(弟子)들을 깨우쳐서 말을 삼가고 행실을 힘쓰게 하려고 하신 것일 뿐이다.”』

 

 

10장
子曰 吾未見剛者 或對曰 申棖. 子曰 棖也 慾 焉得剛.
자왈 오미견강자 혹대왈 신정. 자왈 정야 욕 언득강.

 

공자 가라사대 나는 강한자를 아직 보지못하였다. 고 하니

어떤이가 말하기를 신정이란 사람이 있습니다.하니

공자 답하기를 욕심이 있음을 어찌 강하다 하랴.

 

해설
 강(剛)은 굳세고 강하여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니, 사람으로서 가장 능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게서 보지 못하였다고 탄식하신 것이다.
신장(申棖)은 제자(弟子)의 성명(姓名)이다.
욕(慾)은 기욕(嗜慾)이 많은 것이다.
기욕(嗜慾)이 많으면 강(剛)함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사람이 욕심이 있으면 강(剛)할 수 없고, 강(剛)하면 욕심에 굽히지 않는다.”』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강(剛)과 욕(慾)은 서로 정반대이다. 물건을 이길 수 있는 것을 강(剛)이라 한다.
그러므로 항상 만물(萬物)의 위에 펴 있고, 물건에 가려지는 것을 욕(慾)이라 한다.
그러므로 항상 만물(萬物)의 아래에 굽히게 된다.
예로부터 의지가 있는 자가 적고, 의지가 없는 자가 많으니,
부자(夫子)께서 강(剛)한 자를 만나보지 못하심이 당연하다.
신장(申棖)의 욕(慾)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 사람됨이 아마도 고집 세고 자기 지조를 아끼는 자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 때문에 혹자가 강(剛)하다고 여긴 듯하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욕(慾)이 되는 것인 줄을 알지 못한 것이다.”』

 

 

11장
子貢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子曰 賜也 非爾所及也.
자공왈 아불욕인지가제아야 오역욕무가제인.자왈 사야 비이소급야.


자공이 말하기를 나는 남이 나에게 더하는 일을 바라지 않으므로

나도 남에게 가하지 않겠습니다.고 하였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사야 이것은 네가 미칠바가 아니다

 

해설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남이 나에게 가(加)하기를 원하지 않는 일을 나도 남에게 가(加)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였으니,
이는 인자(仁者)의 일로서 억지로 힘쓰지 않고 저절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자공(子貢)이 미칠 바가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내가 남이 나에게 가(加)하기를 원하지 않는 일을 나도 남에게 가(加)하지 않으려고 함은 인(仁)이요,
자신에게 시행하여 원하지 않는 것을 나 역시 남에게 베풀지 않으려 하는 것은 서(恕)이다.
서(恕)는 자공(子貢)이 혹 힘쓸 수 있으나, 인(仁)은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건대, ‘무가제인(無加諸人)’의 무(無)는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요,
‘물시어인(勿施於人)’의 물(勿)은 금지하는 말이니, 이것이 인(仁)과 서(恕)의 구별이다.』

 

12장
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자공왈 부자지문장 가득이문야 부자지언성여천도 불가득이문야.

 

자공이 말하기를, “선생님의 문장은  얻어 들을 수 있지마는 

말씀 중에 성과 천도에 대한 말씀은  얻어 들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해설
 『문장(文章)은 덕(德)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위의(威儀)와 문사(文辭)가 모두 이것이다.
성(性)은 사람이 부여받은 천리(天理)요, 천도(天道)는 천리자연(天理自然)의 본체이니, 그 실상은 한 이치이다.』

『부자(夫子)의 문장(文章)은 날마다 밖으로 드러나 진실로 배우는 자들이 함께 들을 수 있으나,
성(性)과 천도(天道)에 있어서는 말씀을 적게 하시어 배우는 자들이 들을 수 없었다.
이는 성인(聖人)의 문하(門下)에서는 가르침이 등급을 뛰어넘지 않으므로,
자공(子貢)은 이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얻어 듣고는 그 훌륭함에 감탄한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이는 자공(子貢)이 부자(夫子)의 지극하신 말씀을 듣고 탄미(歎美)한 말이다.”』

 

13장
子路 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자로 유문 미지능행 유공유문.

 

자로는 깨우쳐 줌을 듣고 그것을 능히 행하지 못했으니 오직 다 깨우쳐 줌이 있을까 두려워 했다.

 

해설 

『前所聞者를 旣未及行이라 故로 恐復有所聞而行之不給也라』

『전에 들은 것을 이미 미처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다시 들음이 있어 그것을 실행함에 충분하지 못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范氏曰 子路聞善이면 勇於必行하니 門人自以爲弗及也라 故로 著之라 若子路면 可謂能用其勇矣로다』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자로(子路)는 좋은 말을 들으면 반드시 실행하는 데 용감하니,
문인(門人)들이 스스로 따라갈 수 없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이것을 기록한 것이다.
자로(子路)와 같다면 그 용맹을 잘 썼다고 말할 만하다.”』 

 

 

14장
子貢問曰 孔文子 何以謂之文也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자공문왈 공문자 하이위지문야 자왈 민이호학 불치하문.

 

是以謂之文也.
시이위지문야.

 

자공이 묻기를 공문자를 어찌 문 이라고 이르십니까? 고 하니

공자 가라사대
민첩하고 배움을 좋아하며 아랫사람 에게 묻는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문 이라고 이르는 것 이다.고 하셨다.

 

해설 

『孔文子는 衛大夫니 名圉라 凡人性敏者는 多不好學하고 位高者는 多恥下問이라
故로 諡法에 有以勤學好問爲文者하니 蓋亦人所難也라 孔圉得諡爲文은 以此而已니라』

 

『공문자(孔文子)는 위(衛)나라 대부(大夫)이니 이름은 어(圉)이다.
대체로 사람은 성품이 명민(明敏)한 자는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가 많고,
지위가 높은 자는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럽게 여기는 이가 많다.
그러므로 시호를 내리는 법에, 배우기를 부지런히 하고 묻기를 좋아하는 행실을 문(文)이라 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 역시 사람이 하기 어려운 것이다.
공어(孔圉)가 문(文)이라는 시호를 얻은 것은 이 때문일 뿐이다.』


『蘇氏曰 孔文子使太叔疾出其妻而妻之러니 疾通於初妻之娣한대
文子怒하여 將攻之할새 訪於仲尼하니 仲尼不對하고 命駕而行하시다
疾奔宋한대 文子使疾弟遺로 室孔姞하니 其爲人如此로되 而諡曰文하니 此子貢之所以疑而問也라
孔子不沒其善하여 言能如此라도 亦足以爲文矣니 非經天緯地之文也니라』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공문자(孔文子)가 태숙질(太叔疾)로 하여금 본 부인을 쫓아내게 하고는

자기의 딸인 공길(孔姞)을 그에게 시집보내었다.
그후 태숙질(太叔疾)이 본부인의 여동생과 정을 통하였다.
이에 공문자(孔文子)는 노(怒)하여 장차 태숙질(太叔疾)을 치려 하면서 중니(仲尼)에게 묻자,
중니(仲尼)는 대답하지 않고 수레를 재촉하여 떠나셨다.
태숙질(太叔疾)이 쫓겨서 송(宋)나라로 달아나니,
공문자(孔文子)는 태숙질(太叔疾)의 아우인 유(遺)로 하여금 공길(孔姞)을 아내로 맞이하게 하였다.
공문자(孔文子)는 사람됨이 이와 같았는데도 <죽은 뒤에> 문(文)이라는 시호를 받으니,
이 때문에 자공(子貢)이 의심하여 물은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그의 선(善)한 점을 없애지 않고,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더라도 문(文)이라고 시호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셨으니,
경천위지(經天緯地)의 문(文)은 아니다.』

 

 

15장
子謂子産 有君子之道四焉 其行己也恭 其事上也敬
자위자산 유군자지도사언 기행기야공 기사상야경

 

其養民也惠 其使民也義.
기양민야혜 기사민야의.

 

공자께서 자산에게 이르기를 군자의 도리에는 넷이 있으니

그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그 윗사람을 섬기기를 공손히 하고

그 백성을 다스림을 은혜로서 하고 그 백성을 부리기를 의롭게 하는것이다.

 

해설

『子産은 鄭大夫公孫僑라 恭은 謙遜也요 敬은 謹恪也요 惠는 愛利也라
使民義는 如都鄙有章하고 上下有服하며 田有封탳하고 廬井有伍之類라』

 

『자산(子産)은 정(鄭)나라 대부(大夫) 공손교(公孫僑)이다.
공(恭)은 겸손이요, 경(敬)은 삼감이요, 혜(惠)는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것이다.
백성을 부림에 의롭다는 것은 예를 들면 도시와 지방에 따라 법도의 차이가 있으며,
계급의 상하(上下)에 따라 복장이 다르며, 토지(土地)에는 두둑과 도랑을 두고,
사는 집과 마을『〔井〕』에는 다섯 가호씩 서로 조(組)가 되게 한 것과 같은 것이다.』


『吳氏曰 數其事而責之者는 其所善者多也니
『臧文仲不仁者三, 不知者三이 是也요 數其事而稱之者는 猶有所未至也니
子産有君子之道四焉이 是也주:장문중불인자삼』라
今或以一言蓋一人하고 一事蓋一時하니 皆非也니라』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그 일을 하나하나 열거하여 꾸짖는 것은 그의 선(善)한 점이 많은 것이니,
장문중(臧文仲)이 인(仁)하지 못한 것이 세 가지이고 지혜롭지 못한 것이 세 가지라 한 것이 이것이다.
그 일을 하나하나 열거하여 칭찬하는 것은 오히려 미진한 점이 있는 것이니,
자산(子産)이 군자(君子)의 도(道)가 네 가지 있다는 것이 이것이다.
오늘날 혹 한 마디 말로써 한 사람을 총평하거나,
한 일을 가지고 한 때를 단정지으려는 자가 있는데, 이것은 모두 잘못이다.”』

 

 


16장
子曰 晏平仲 善與人交 久而敬之.
자왈 안평중 선여인교 구이경지.

 

공자 가라사대 안평중은 사람과 잘 사귀는구나 오래도록 공경 하는도다.라고 히셨다.

 

해설

『晏平仲은 齊大夫니 名嬰이라 程子曰 人交久則敬衰하나니 久而能敬은 所以爲善이니라』


『안평중(晏平仲)은 제(齊)나라의 대부(大夫)이니 이름은 영(嬰)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사람은 사귀기를 오래하면 공경이 쇠해지니, 오래되어도 공경함은 사귀기를 잘한 것이 되는 것이다.”』

 


17장
子曰 臧文仲 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
자왈 장문중 거채 산절조탈 하여기지야.

 

공자 가라사대 장문중이 점치는 거북을 간직하기 위해 집을 지으메

기둥머리에 산을 새기고 동자기둥에는 마름을 그려 귀신에게 아첨 하였으니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

 

해설

『臧文仲은 魯大夫臧孫氏니 名辰이라 居는 猶藏也요 蔡는 大龜也라 節은 柱頭斗栱也라
藻는 水草名이요 棁은 梁上短柱也니 蓋爲藏龜之室而刻山於節하고 畫藻於棁也라
當時에 以文仲爲知라하니 孔子言其不務民義而諂瀆鬼神如此하니

安得爲知리오하시니 春秋傳所謂作虛器가 卽此事也라』

 

『장문중(臧文仲)은 노(魯)나라 대부(大夫) 장손씨(臧孫氏)이니 이름은 신(辰)이다.
거(居)는 장(藏)『[보관]』과 같다. 채(蔡)는 큰 거북이다.
절(節)은 기둥머리의 두공(斗栱)이다. 조(藻)는 수초(水草)의 이름이다.
탈(棁)은 들보 위 동자기둥이다.
<이는> 점을 칠 때 사용하는 거북껍질을 보관해 두는 방을 만들면서
기둥머리 두공(斗栱)에는 산(山) 모양을 조각하고 들보 위 동자기둥에는 수초(水草)를 그려놓은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장문중(臧文仲)을 지혜롭다고 하였다.
공자(孔子)께서 ‘그가 인간의 도의(道義)를 힘쓰지 않고 귀신에게 아첨하고 친압함이 이와 같았으니,
어떻게 지혜롭다 하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춘추전(春秋傳)》에 쓸데없는 기물을 만들었다는 내용은 곧 이 일을 가리킨 것이다.』


『張子曰 山節藻侻하여 爲藏龜之室은 祀爰居之義로 同歸於不知가 宜矣라』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절(節)에 산(山) 모양을 조각하고 탈(棁)에 수초(水草)를 그려 거북껍질을 보관하는 방을 만든 것과
원거(爰居)라는 새에게 제사한 의의는 모두 지혜롭지 못함에 귀결됨이 당연하다.”』

 

 


18장
子張問曰 令尹子文 三仕爲令尹 無喜色 三已之 無慍色
자장문왈 영윤자문 삼사위령윤 무희색 삼이지 무온색

 

舊令尹之政 必以告新令尹 何如 子曰 忠矣 曰 未知
구령윤지정 필이고신령윤 하여 자왈 충의 왈 미지

 

曰 仁矣乎 焉得仁 崔子弑齊君 陳文子有馬十乘
왈 인의호 언득인 최자시제군 진문자유마십승

 

棄而違之 至於他邦 則曰 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之一邦
가이위지 지어타방 칙왈 유오대부최자야 위지 지일방

 

則曰 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何如?
칙왈 유오대부최자야 위지 하여?

 

子曰 淸矣 曰 仁矣乎 曰 未知 焉得仁.
자왈 청의 왈 인의호 왈 미지 언득인.


자장이 묻기를 자문이 세번 벼슬을 하여 연윤이 되었어도 전혀 기쁜기색이 없었고

세번 벼슬을 그만두되 성내는 기색이 없고 자신이 맏았던바를 새로운 영윤에게 고하니 어떠합니까? 고 하니

공자가 말씀 하시기를 충의니라 하시니
자장이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어진건가요?

공자답하기를 어찌 어질다 하겠는가

다시 자장이 말하기를 최씨가 제나라 임금을 죽이니 진문자가 말 십승을 얻었다가 버리고 가서

다른 나라에 이르러 말 하기를 우리 대부 최씨와 같다고 하고

또다른 나라에 이르러서도 우리 대부 최씨와같다 고 말하고 떠났으니 어떻습니까?

공자답하기를 매우 청렴한 사람이다.고 하자 자장이 말 하기를 어진것입니까?
공자가 말 하기를 잘 모르겟다.어찌 어진 일 이겠는가? 고 했다.

 

해설 

『令尹은 官名이니 楚上卿執政者也라 子文은 姓鬪요 名穀於菟라
其爲人也喜怒不形하고 物我無間하여 知有其國而不知有其身하니 其忠盛矣라
故로 子張疑其仁이라 然이나 其所以三仕三已而告新令尹者가 未知其皆出於天理而無人欲之私也라
是以로 夫子但許其忠而未許其仁也시니라』

 

『영윤(令尹)은 벼슬 이름이니, 초(楚)나라의 상경(上卿)으로 정권을 잡은 자이다.
자문(子文)의 성(姓)은 투(鬪)요, 이름은 누오도(穀於菟)이다.
그의 사람됨이 기뻐함과 성냄을 나타내지 않고 남과 자기 사이에 간격이 없어 국가가 있음만을 알고
자신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으니, 그의 충성이 대단하다.
그러므로 자장(子張)이 인(仁)인가 하고 의심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세 번 벼슬하였다가 세 번 그만두고 물러나면서
새로 부임해온 영윤(令尹)에게 옛 정사를 말해준 것이 모두 천리(天理)에서 우러나와
인욕(人慾)의 사사로움이 없었는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부자(夫子)께서 다만 그의 충(忠)만을 허여 하시고 그의 인(仁)은 허여 하지 않으신 것이다.』


『崔子는 齊大夫니 名杼라 齊君은 莊公이니 名光이라 陳文子는 亦齊大夫니 名須無라
十乘은 四十匹也라 違는 去也라 文子潔身去亂하니 可謂淸矣라
然이나 未知其心果見義理之當然하여 而能脫然無所累乎아 抑不得已於利害之私하여 而猶未免於怨悔也라
故로 夫子特許其淸而不許其仁이시니라』

 

『최자(崔子)는 제(齊)나라 대부(大夫)이니, 이름은 저(杼)이다.
제(齊)나라 임금은 장공(莊公)이니, 이름은 광(光)이다.
진문자(陳文子)도 제(齊)나라 대부(大夫)이니, 이름은 수무(須無)이다.
10승(乘)은 40필이다. 위(違)는 떠남이다.
문자(文子)가 자기 몸을 깨끗이 하고 어지러운 나라를 떠났으니, 청백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과연 의리(義理)의 당연함을 보고 훌훌 벗어버려 누(累)한 바가 없었는지,
아니면  이해(利害)의 사사로움에 마지못한 것이어서 아직도 원망과 후회를 면치 못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부자(夫子)께서 다만 그의 청백함만을 허여 하시고 그의 인(仁)은 허여 하지 않으신 것이다.』


『愚聞之師하니 曰 當理而無私心이면 則仁矣라하시니
今以是而觀二子之事하면 雖其制行之高가 若不可及이나 然이나 皆未有以見其必當於理而眞無私心也라
子張未識仁體하고 而悅於苟難하여 遂以小者로 信其大者하니 夫子之不許也宜哉인저
讀者於此에 更以上章不知其仁과 後篇仁則吾不知之語와
幷與三仁夷齊之事觀之면 則彼此交盡하여 而仁之爲義를 可識矣리라
今以他書考之하면 子文之相楚에 所謀者無非僭王猾夏之事요
文子之仕齊에 旣失正君討賊之義하고 又不數歲而復反於齊焉하니 則其不仁을 亦可見矣니라』

 

『내가 선생(先生)『[연평(延平) 이동(李동)]』께 들으니
“이치에 합당하고 사심(私心)이 없으면 인(仁)이다.” 하셨다.
이제 이 말씀을 가지고 두 사람의 일을 관찰해 보면 그 행실의 높음은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모두 그것이 꼭 이치에 합당하고 참으로 사심(私心)이 없었는지를 볼 수 없다.
자장(子張)이 인(仁)의 본체를 알지 못하고 어려운 일을 구차하게 해내는 것만을 좋아하여
끝내 작은 것을 큰 것으로 믿었으니, 부자(夫子)께서 허여 하지 않으심이 당연하다.
독자는 이에 대해서 다시 위 장의 “그가 인(仁)한지는 모르겠다
『〔不知其仁〕』.” 하신 말씀과 뒤 편『[헌문편(憲問篇)]』의
“그가 인(仁)한지는 내가 모르겠다.” 하신 말씀과 및 아울러
<미자편(微子篇)의> 삼인(三仁)과 백이(伯夷)•숙제(叔齊)의 일을 가지고 본다면
저것과 이것이 서로 다하여 인(仁)의 의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다른 책을 가지고 살펴보면, 자문(子文)이 초(楚)나라를 도울 적에 획책한 것은
모두 왕(王)『[천자(天子)]』을 참칭하고 중국『[하(夏)]』을 어지럽히는 일 아님이 없었으며,
문자(文子)는 제(齊)나라에 벼슬할 때에 이미 임금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잃었고,
또 몇 년이 못되어 다시 제(齊)나라로 돌아갔으니, 그 인(仁)하지 못함을 또한 볼 수 있다.』

 

 

 

19장
季文子 三思而後行 子聞之 曰 再斯可矣.
계문자 삼사이후행 자문지 왈 재사가의.

 

계문자가 세번을 생각한후 행하니 공자께서 들으시고
말씀 하시기를 두번 함이 가하다 고 하시더라.

 

해설

『季文子는 魯大夫니 名行父라 每事必三思而後行하니 若使晉而求遭喪之禮以行이 亦其一事也라
斯는 語辭라 程子曰 爲惡之人은 未嘗知有思하니 有思則爲善矣라
然이나 至於再則已審이요 三則私意起而反惑矣라 故로 夫子譏之시니라』

 

『계문자(季文子)는 노(魯)나라 대부(大夫)이니,
이름은 행보(行父)인데, 매사를 반드시 세 번 생각한 뒤에야 행하였다.
예를 들면 진(晉)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가면서 <진(晉)나라 임금이 병을 앓는다는 말을 듣고>
상(喪)을 당할 경우 사신(使臣)으로서 행해야 할 예(禮)를 미리 찾아보고 간 것과 같은 것이 그 한 예(例)이다.
사(斯)는 어조사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악(惡)한 짓을 하는 자는 애당초 생각함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생각함이 있다면 선(善)을 할 것이다.
그러나 두 번 생각함에 이르면 이미 살핀 것이요, 세 번 하면 사사로운 뜻이 일어나 도리어 현혹된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비판하신 것이다.』


『愚按 季文子慮事如此하니 可謂詳審而宜無過擧矣로되 而宣公纂立에 文子乃不能討하고
反爲之使齊而納賂焉하니 豈非程子所謂私意起而反惑之驗歟아 是以로 君子務窮理而貴果斷이요 不徒多思之爲尙이니라』

 

『내가 살펴보건대, 계문자(季文子)가 일을 생각함이 이와 같았으니,
자세히 살핀다고 말할 만하여, 당연히 잘못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선공(宣公)이 찬탈하고 즉위하자,
계문자(季文子)는 마침내 토벌하지 못하고

도리어 선공(宣公)을 위해 제(齊)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가서 뇌물을 바쳤으니,
정자(程子)가 말씀한 “사사로운 뜻이 일어나 도리어 현혹된다.”는 증험이 아니겠는가.
이 때문에 군자(君子)는 궁리(窮理)를 힘쓰면서도 과단(果斷)함을 귀히 여기고,
한갓 생각만 많이 하는 것을 숭상하지 않는 것이다.』

 계문자는 사려가 깊고 매사에 조심이 깊은지라 두번만 생각하고
행동해도 실수가 없을것이라는 말 하지만 자로의 경우라면..
아마 5번은 생각해야 가 할것이라고 말햇을지도...

 

 


20장
子曰 甯武子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 可及也 其愚 不可及也.

자왈 영무자방유도칙지 방무도칙우 기지 가급야 기우 불가급야.

 

공자 가라사대 영무자는 나라에 도 가 있으면 지혜롭게 행동하고 도가 없으면 우직하게 행동 했으니

그의 지혜는 내가 따를수 있지만 그의 우직함은 내가 따를수가 없도다.

 

 해설

『甯武子는 衛大夫니 名兪라 按春秋傳하면 武子仕衛는 當文公成公之時하니 文公有道어늘
而武子無事可見하니 此其知之可及也요 成公無道하여 至於失國이어늘
而武子周旋其間하고 盡心竭力하여 不避艱險하니
凡其所處가 皆智巧之士所深避而不肯爲者로되 而能卒保其身하고 以濟其君하니 此其愚之不可及也라』

 

『영무자(甯武子)는 위(衛)나라 대부(大夫)이니, 이름은 유(兪)이다.
《춘추전(春秋傳)》을 상고해 보면 영무자(甯武子)가 위(衛)나라에서 벼슬한 시기는
문공(文公)과 성공(成公) 때에 해당되는데,
문공(文公)은 도(道)가 있었으나 영무자(甯武子)는 볼만한 일이 없었으니,
이것이 그의 지혜를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成公)은 무도(無道)하여 나라를 잃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영무자(甯武子)는 그 사이에서 주선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어렵고 험함을 피하지 않았다.
모든 그의 처세한 바는 지혜롭고 꾀있는 사람들은 모두 깊이 피하고 하려 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영무자(甯武子)는 마침내 자기 몸을 보전하고 그 임금을 구제하였으니,
이것이 그의 어리석음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程子曰 邦無道에 能沈晦以免患이라 故로 曰不可及也라하시니라 亦有不當愚者하니 比干이 是也니라』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나라에 도(道)가 없을 때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화(禍)를 면하였다.
그러므로 따를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또한 어리석어서는 안될 경우가 있으니, 비간(比干)이 이 경우이다.”』

 

21장
子在陳 曰 歸與歸與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자재진 왈 귀여귀여 오당지소자광간 비연성장 불지소이재지.

 

공자께서 진에 계실때 말씀 하시기를 돌아가자 돌아가자 우리들 젊은이들은 뜻은 높으나

일에는 소홀하여 비록 문체는 찬란하나 바르게 처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구나.

 

해설

『此는 孔子周流四方하되 道不行而思歸之歎也라
吾黨小子는 指門人之在魯者라 狂簡은 志大而略於事也라
斐는 文貌요 成章은 言其文理成就하여 有可觀者라
裁는 割正也라 夫子初心엔 欲行其道於天下러니 至是而知其終不用也라
於是에 始欲成就後學하여 以傳道於來世라
又不得中行之士하여 而思其次하시니 以爲狂士志意高遠하여 猶或可與進於道也라
但恐其過中失正而或陷於異端耳라 故로 欲歸而裁之也시니라』


『이것은 공자(孔子)께서 사방(四方)을 두루 돌아다니셨으나 도(道)가 행해지지 않자,
돌아갈 것을 생각하시며 하신 탄식이다.
오당(吾黨)의 소자(小子)는 노(魯)나라에 있는 문인(門人)을 가리킨 것이다.
광간(狂簡)은 뜻은 크나 행실에 소략한 것이다. 비(斐)는 문채 나는 모양이다.
성장(成章)은 문리(文理)『[위의(威儀)와 학문(學問)]』가 성취되어 볼 만함이 있음을 말한다.
재(裁)는 베어서 바르게 하는 것이다.
부자(夫子)의 처음 마음에는 그 도(道)를 천하(天下)에 펴보려 하였으나,
이 때에 이르러 끝내 쓰여지지 못할 줄을 아셨다.
이에 비로소 후학(後學)을 성취시켜 후세(後世)에 도(道)를 전하고자 하신 것이다.
또 중행(中行)『[중도(中道)]』의 선비를 얻지 못하여 그 다음 사람을 생각하셨으니,
광사(狂士)는 뜻이 고원(高遠)하여 혹 그와 더불어 도(道)에 나아갈 수 있다고 여기신 것이었다.
단 광사(狂士)들은 중도(中道)를 벗어나고  정도(正道)를 잃어 혹 이단(異端)에 빠질까 염려하셨다.
그러므로 돌아가 바로잡고자 하신 것이다.』

 

22장
子曰 伯夷叔齊 不念舊惡 怨是用希.
자왈 백이숙제 불념구악 원시용희.

 

공자 가라사대 백이와 숙제는 남의 지나간 악행을 생각하지 않는지라 원망하는 사람이 드물다.

 

해설

伯夷叔齊는 孤竹君之二子라
孟子稱其不立於惡人之朝하고 不與惡人言하며 與鄕人立에 其冠不正이어든
望望然去之하여 若將浼焉이라하시니 其介如此하니 宜若無所容矣라
然이나 其所惡之人이 能改卽止라 故로 人亦不甚怨之也니라』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고죽국(孤竹國) 임금의 두 아들이다.
맹자(孟子)는 그들을 일컬어 “악한 사람『[임금]』의 조정에서 벼슬하지 않았고,
악한 사람과는 함게 말하지 않았으며, 무식한 시골사람과 서 있을 때에
그의 갓『〔冠〕』이 바르지 않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려, 마치 자기가 오염될 것처럼 여겼다.” 하셨다.
그의 꼿꼿한 지조(志操)가 이와 같았으니, 당연히 포용하는 바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미워하던 사람이 잘못을 고치면 즉시 미워하는 마음을 그쳤다.
그러므로 사람들도 심히 그를 원망하지 않은 것이다.』


『程子曰 不念舊惡은 此淸者之量이니라 又曰 二子之心을 非夫子면 孰能知之리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남이 옛날에 저지른 잘못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청자(淸者)의 도량이다.”또 말씀하였다.
“두 사람의 마음을 부자(夫子)가 아니셨다면 누가 알았겠는가.”』


23장
子曰 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隣而與之.
자왈 숙위미생고직 혹걸혜언 걸제기린이여지.

 

공자 가라사대 누가 미생을 정직하다고 하는가

어떤사람이 초를 빌리면 그는 이웃에 가서 그것을 빌려다 주는구나.

 

해설 

『微生은 姓이요 高는 名이니 魯人이니 素有直名者라 醯는 醋也라
人來乞時에 其家無有라 故로 乞諸隣家以與之라 夫子言此는 譏其曲意徇物하고 掠美市恩하여 不得爲直也라』


『미생(微生)은 성(姓)이요, 고(高)는 이름이니,
노(魯)나라 사람으로 평소에 정직(正直)하다는 이름이 있는 자였다. 혜(醯)는 식초이다.
어떤 사람이 빌리려왔을 때 자기 집에 식초가 없으므로 이웃집에서 빌어다 준 것이다.
부자(夫子)께서 이를 말씀하신 것은 뜻을 굽혀 남의 비위를 맞추고 아름다움을 빼앗아 생색을 냈으니,
정직(正直)함이 될 수 없다고 기롱하신 것이다.』


『程子曰 微生高所枉雖小나 害直爲大니라
范氏曰 是曰是하고 非曰非하며 有謂有하고 無謂無를 曰直이라
聖人은 觀人於其一介之取予하여 而千駟萬鍾을 從可知焉이라
故로 以微事斷之하시니 所以敎人不可不謹也시니라』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미생고(微生高)의 정직(正直)하지 못함은 비록 작으나 정직(正直)함을 해침은 크다.”』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며,
있으면 있다고 하고, 없으면 없다고 하는 것이 정직(正直)이다.
성인(聖人)께서는 한 개를 주고받는 것에서 사람을 관찰하여
천사(千駟)『[천승(千乘)의 병거(兵車)]』와 만종(萬鍾)을 따라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그마한 일을 가지고 단정하신 것이니,
사람에게 작은 것이라 하여 삼 가지 않아서는 안됨을 가르치신 것이다.”』

 

 

24장
子曰 巧言令色足恭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자왈 교언령색족공 좌구명치지 구역치지.

 

匿怨而友其人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낙원이우기인 좌구명치지 구역치지.

 

공자 가라사대 지나치게 말을 공손히 하고 얼굴빛을 착하게 하는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도 이러한것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하셨다.

원망을 숨기고 그 사람과 벗하는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도 이러한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고 하셨다.


 해설

『足는 過也라 程子曰 左丘明은 古之聞人也라
謝氏曰 二者之可恥는 有甚於穿窬也어늘 左丘明恥之하니 其所養可知矣라
夫子自言丘亦恥之라하시니 蓋『竊比老彭주:절비노팽』之意요 又以深戒學者하여 使察乎此而立心以直也시니라』


『주(足)는 지나침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좌구명(左丘明)은 옛날에 유명했던 사람이다.”』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두 가지의 부끄러워할 만함은 담을 뚫고 담을 뛰어넘는 도둑질보다 심하다.
좌구명(左丘明)이 이를 부끄럽게 여겼으니, 그의 마음을 수양함을 알 만하다.
부자(夫子)께서 ‘나 또한 부끄러워한다.’고 스스로 말씀하셨으니,
이는 ‘저으기 노팽(老彭)에게 비한다『〔竊比老彭〕』.’는 뜻이다.
또 배우는 자들을 깊이 경계하여 이 점을 살펴 정직(正直)함으로써 마음을 세우게 하신 것이다.”』

 

 

25장
顔淵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子路曰 願車馬衣輕裘 與朋友共 敝之而無憾

안연계로시 자왈 합각언이지 자로왈 원차마의경구 여붕우공 폐지이무감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子路曰 願聞子之志
안연왈 원무벌선 무시로 자로왈 원문자지지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자왈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

 

안연과 계로가 공자를 모시는데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어찌 각자 너희의 뜻을 말하려 하지 않는가 고 하시니

자로가 말하기를 수레와 말과 갑옷을 친구와 함께 쓰다가 그것이 설령 낡아져도 유감이 없겠습니다.고 하니

안연이 말하기를
원컨대 잘 한것을 자랑하지 않으며 공로를 과장함이 없게 되기를 원합니다.라했다.
자로가 말하기를 선생님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공자 가라사대 늙은이를 편안 하게 하고 친구를 미덥게 사귀고 젊은 사람을 마음에 품어야한다.

나는이제 더 할말이 없구나.

 

해설
『盍은 何不也라』

『합(盍)은 어찌 않는가의 뜻이다.』

『衣는 服之也라 裘는 皮服이라 敝는 壞也요 憾은 恨也라』

『의(衣)는 입는 것이다. 구(裘)는 갖옷이다. 폐(敝)는 해짐이다. 감(憾)은 유감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伐은 誇也요 善은 謂有能이라 施亦張大之意라 勞는 謂有功이니 易曰 勞而不伐이 是也라
或曰 勞는 勞事也니 勞事는 非己所欲이라 故로 亦不欲施之於人이라하니 亦通이니라』


『벌(伐)은 자랑이요. 선(善)은 유능함을 말한다.
시(施)는 과시하는 것이요. 노(勞)는 공로가 있음을 말하니,
《주역(周易)》에 ‘공로가 있어도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것이다.
혹자는 “노(勞)는 수고로운 일이니, 수고로운 일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므로
남에게도 베풀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하니, 이 역시 통한다.』

 

老者를 養之以安하고 朋友를 與之以信하고 少者를 懷之以恩이라
一說에 安之는 安我也요 信之는 信我也요 懷之는 懷我也라하니 亦通이니라』

 

『늙은이를 편안하게 봉양하고, 붕우(朋友)를 신의로써 대하며, 젊은이를 은혜로 감싸주는 것이다.
일설(一說)에는 안지(安之)는 나를 편안하게 여기게 하는 것이요,
신지(信之)는 나를 믿게 하는 것이요, 회지(懷之)는 나를 사모하게 하는 것이라 하니, 역시 통한다.』

 

『程子曰 夫子는 安仁이요 顔淵은 不違仁이요 子路는 求仁이니라
又曰 子路顔淵孔子之志는 皆與物共者也니 但有小大之差爾니라
又曰 子路는 勇於義者니 觀其志하면 豈可以勢利拘之哉아 亞於浴沂者也니라 顔子는 不自私己라
故로 無伐善하고 知同於人이라 故로 無施勞하니 其志可謂大矣라
然이나 未免於有意也요 至於夫子하여는 則如天地之化工이 付與萬物而己不榮焉하니 此聖人之所爲也라
今夫羈靮以御馬하고 而不以制牛하나니 人皆知羈靮之作在乎人하고 而不知羈靮之生由於馬하니 聖人之化亦猶是也라
先觀二子之言하고 後觀聖人之言하면 分明天地氣象이니 凡看論語에 非但欲理會文字요 須要識得聖賢氣象이니라』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부자(夫子)께서는 인(仁)을 자연『[편안]』스레 행하신 것이요,
안연(顔淵)은 인(仁)을 떠나지 않은 것이요, 자로(子路)는 인(仁)을 구한 것이다.”』

『 또 말씀하였다.
“자로(子路)•안연(顔淵)•공자(孔子)의 뜻은 모두 남과 함께 하신 것인데,
다만 작고 큰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 말씀하였다.
“자로(子路)는 의리(義理)에 용감한 사람이니,
그의 뜻을 살펴보면 어찌 세력이나 이익을 가지고 그를 구속할 수 있겠는가?
‘기수(沂水)에 목욕하겠다.’고 한 증점(曾點)에 버금가는 자이다.
안자(顔子)는 자신을 사사로이 여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잘하는 것을 자랑함이 없었고, 남과 내가 같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공로를 과시함이 없었으니, 그 뜻이 크다 할 만하다.
그러나 의식(意識)이 있음을 면치 못하였다.
부자(夫子)에 이르러서는 마치 천지(天地)의 화공(化工)『〔造物主〕』이 모든 사물에 맡겨주고
자신은 수고롭지 않은 것과 같으니, 이는 성인(聖人)의 행하시는 바이다.
지금 굴레와 고삐는 말을 어거하는 데 사용하고 소를 어거하는 데는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굴레와 고삐를 만든 것이 사람에게 있다는 것만 알고,
이 굴레와 고삐가 생겨난 것이 말에게 말미암은 줄은 알지 못한다.
성인(聖人)의 조화(造化)도 이와 같다.
먼저 안연(顔淵)과 자로(子路) 두 사람의 말을 살펴보고,
뒤에 성인(聖人)『[공자(孔子)]』의 말씀을 살펴보면, 분명 천지(天地)의 기상(氣象)이다.
《논어(論語)》를 읽을 때에는 비단 글자의 뜻만 알려 할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성현(聖賢)의 기상(氣象)을 알아야 한다.”』

 

 

26장

子曰 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
자왈 이의호 오미견능견기과이내자송자야.

 

안타깝지만 나는 자신의 허물을 보고 마음속으로 스스로 꾸짖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햇다.

 

해설
『已矣乎者는 恐其終不得見而歎之也라
內自訟者는 口不言而心自咎也라
人有過而能自知者鮮矣요 知過而能內自訟者는 爲尤鮮이라
能內自訟이면 則其悔悟深切而能改가 必矣라
夫子自恐終不得見而歎之하시니 其警學者深矣로다』


『이의호(已矣乎)란 끝내 그러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탄식하신 것이다.
내자송(內自訟)은 입으로 말하지 않고 내심(內心)으로 자책(自責)『[자구(自咎)]』하는 것이다.
사람이 허물이 있을 때에 스스로 아는 자가 드물며,
허물을 알고서 내심(內心)으로 자책(自責)하는 자는 더더욱 드물다.
내심(內心)으로 자책(自責)한다면 그 뉘우침과 깨달음이 깊고 간절하여 허물을 고칠 것임에 틀림없다.
부자(夫子)께서 스스로 끝내 만나보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탄식하셨으니, 배우는 자들을 깨우치심이 깊다.』

 

 

 

27장
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자왈 십실지읍 필유충신여구자언 불여구지호학야.

 

공자 가라사대 열가구 이상 모여잇는 읍에는 반드시 충성과 믿음이
나와같은 이가 있겠지만 나만큼 배움을 좋아하지는 못할것이다.

 

해설

 『十室은 小邑也라 忠信如聖人은 生質之美者也라
夫子生知而未嘗不好學이라 故로 言此以勉人이라
言美質易得이나 至道難聞하니 學之至則可以爲聖人이요 不學則不免爲鄕人而已니 可不勉哉아』


『십실(十室)은 10호(戶)의 작은 읍(邑)이다.
충신(忠信)이 성인(聖人)과 같다면 타고난 자질이 아름다운 자이다.
부자(夫子)께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아신 분인데도, 일찍이 학문(學問)을 좋아하지 않은 젓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말씀하여 사람들을 힘쓰게 하신 것이다.
아름다운 자질을 얻기 쉬우나 지극한 도(道)는 듣기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이니,
배움을 지극히 하면 성인(聖人)이 될 수 있고, 배우지 않으면 시골 사람이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니,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은섭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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