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庸章句大全


中者는 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이오 庸은 平常也니라.
중자는 불편불의무과불급지명이오 용은 평상야니라.

 

중(中)은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지나침(過)과 미치지 못함(不及)이 없음의 이름이고, 용(庸)은 평상(平常)함이다.

偏 ; 치우칠 편. 倚 ; 기울 의.


子程子曰 不偏之謂中이오 不易之謂庸이니 中者는 天下之正道오 庸者는 天下之定理라
자정자왈 불편지위중이오 불역지위용이니 중자는 천하지정도오 용자는 천하지정리라

 

此篇은 乃孔門傳授心法이니 子思 恐其久而差也라
차편은 내공문전수심법이니 자사 공기구이차야라

 

故로 筆之於書하야 以授孟子하시니 其書 始言一理하야 中散爲萬事하며
고로 필지어서하야 이수맹자하시니 기서 시언일리하야 중산위만사하며

 

末復合爲一理하야 放之則彌六合하고 卷之則退藏於密하야 其味無窮하니 皆實學也라
말부함위일리하야 방지즉미육합하고 권지즉근장어밀하야 기미무궁하니 개실학야라

 

善讀者가 玩索而有得焉이면 則終身用之라도 有不能盡者矣리라.
선독자가 완색이유득언이면 즉종신용지라도 유불능진자의리라.

 

선생님이신 정자께서 말씀하시길
“치우치지 않음을 중(中)이라 이르고, 바뀌지 않음을 용(庸)이라 이르니,
”中“이란 것은 천하의 바른 도(正道)요 ”庸“이란 것은 천하의 정한 이치(定理)이다.
이 책은 이에 공문(孔門)에서 전수한 심법(心法)이니
자사(子思)께서 그 오래됨에 다름이 있을까 두려워하셨다.
그러므로 책에 써서 맹자에게 주신 것이니 그 책이 처음에는 한 이치를 말하여 가운데에는 흩어져,
만(萬) 가지 일이 되며 끝에는 다시 합하여 한 이치가 되어 이를 풀어놓으면 육합에 가득하고
이를 거두어들이면 물러나 은밀한 데 감추어져 그 맛이 다함이 없으니 다 실한 학문이다.
잘 읽는 자가 완미하여 찾아서 얻음이 있으면,
몸을 마치도록 그것을 쓰더라도 능히 다하지 못함이 있을 것이다.

易;바꿀 역. 恐;두려울 공. 筆;쓸 필. 復; 다시 부. 放; 놓을 방. 彌;두루 미.

 


중용 제 1장 천명장(天命章)

 

1.
天命之謂性이오 率性之謂道이오 修道之謂敎이니라.
천명지위성이오 솔성지위도이오 수도지위교이니라.

 

하늘의 명령은 본성을 말하는 것이다.
본성에 솔직한 것은 도(道)를 말하는 것이다.
도를 닦는 것은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하늘이 명한 것을 성품(性)이라 이르고,
천명의 성품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도(道)라 이르고,
그 성품을 따르는 길을 닦는 것을 가르침(敎)이라 이르느니라.

 

[본문 해설]

천명 = 성(性) ․ 솔성 = 도(道) ․ 수도 = 교(敎)는
대학의 첫머리에 나오는 삼강령인 명명덕(明明德)과 친민(親民)과 지어지선(止於至善)과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대학과 마찬가지로 중용도 天地人 삼재로 시작함을 알 수 있다.
하늘이 우리에게 명해준 것이 성품이므로 곧 天命之謂性이고,
하느님에게서 타고난 성품을 내가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길(道)이므로 곧 率性之謂道이고,
그 성품을 따르는 도를 잘 닦아 나가 마름질 해놓은 것이 가르침이므로 곧 修道之謂敎이다.
도를 잘 닦아 나가는 것, 즉 마름질하는 것이 바로 교육적인 가르침(敎)이 되는 것이다.
그 가르침을 받아 道를 따라가는 것이며, 그 도를 가다 보면 率性이 되고 결국 천명을 그대로 받드는 것이 된다.
성품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역 계사상전 제8장에서
공자가 “이루어진 성품을 존하고 존함이 도의의 문이라(成性存存이 道義之門이라)” 하신 말씀과 통하는 글귀이다.
주역 계사상전 제5장에서는 “한 번은 陰을 하고 한 번은 陽을 하는 것이 道이고, 이를 이어나가는 것은 善이 되며,
이를 이룬 것은 性이라(一陰一陽之謂 道니 繼之者 善也오 成之者 性也라)”하였다.

 

사람은 원래 善하게 타고 난다.
그 선을 바탕으로 이어나가면서 이룬 것이 性이 된다.
繼之者善은 1년으로 말하면 元亨의 봄과 여름을 말하고, 成之者性은 利貞의 가을과 겨울에 해당한다.
하늘 그대로 이어받기는 받았지만 어떻게 여물지 모르는 상태가 繼之者善이고
가을이 되면 부여받은 성질대로 여무는 것이 成之者性이다.
그 成之者性이 계속 存存하는 成性存存만 된다면 道義의 문이 된다는 것이다.

도는 그 體이고 義는 그 用이다. 곧 도덕과 의리이다.
성성존존하게 된다면 이것은 곧 도덕과 의리를 행하는 문이 되어서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이나 우리 몸은 모두가 역의 이치로 만들어졌다.
자신의 몸을 자연과 더불어 순수하게 천명 그대로 이끌어나갈 때 率性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存存하는 것이다.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모습 그대로 천성을 따르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주역의 본체로 들어가서 역을 깨닫고 도를 통하게 되는데,
중용을 소주역이라 하는 이치를 맨 먼저 중용 머릿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편으로 黃帝陰符經을 보면 “天性은 人也요 人心은 機也니 立天之道하야 以定人也니라
(하늘의 성품이 곧 사람의 것이고 사람의 마음은 움직이는 기틀인 것이니
하늘의 도를 잘 세움으로써 사람을 정립하느니라)”라 하였다.
또한 마음에서 물건이 나오고 물건에서 죽으니 그 기틀이 눈에 있다
(心生於物하고 死於物하나니 機在於目이니라) 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보는 것에 따라 항상 흔들리므로 항상 하늘의 도를 잘 세워 용맹정진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논어의 가장 첫머리에서 ‘學而時習之(배우고 때로 익힌다)’를 내세워
항상 공부해야 함을 강조함도 흔들리는 사람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방법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命은 猶令也이요 性은 卽理也니라
 명은 유영야이요 성은 즉리야니라 

 

天以陰陽五行으로 化生 萬物하야 氣以成形하고 而理亦賦焉하니 猶命令也니라 
천이음양오행으로 화생 만물하야 기이성형하고 이리역부언하니 유명령야니라 

 

於是에 人物之生이 因各得其所賦之理하야 以爲健順五常之德하니 所謂性也이리라.
어시에 인물지생이 인각득기소부지리하야 이위건순오상지덕하니 소위성야이리라.

 

명은 영(令)과 같고 성은 즉 이치이니라.
하늘이 음양과 오행으로써 화하여 만물을 내니 기운으로써 형체를 이루고
이치를 부여해주니 (하늘이 사람에게) 명령함과 같음이라.
이에 사람과 모든 물건의 생함에는 각기 그 부여받은 바의 이치로 인하여
건순오상의 덕을 갖추고 나왔으니 성품이라 이르느니라.

 

[해설]

윗글은 주자가 달아놓은 앞주이다.
천명은 하늘의 命令이며,
性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이 사람에게 어떻게 살라고 부여해준 보이지 않는 이치를 말함이다.
하늘이 음양오행의 이치로 만물을 화생하여 그 기운으로써 형체를 이루고

그 속에 보이지 않는 이치를 준 것이다.
천명지위성의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
이러한 하늘의 이치에는 건순오상의 덕이 있다.
주역 건괘 대상전에서 공자는 “하늘의 움직임은 굳건하여 군자가 이로써 스스로 굳세어 쉬지 않는다
(天行이 健하니 君子 以하야 自彊不息하나니라)”라고 하여 하늘은 순양으로써 굳셈을 나타내었고,
곤괘 문언전에서는 “곤의 도가 순한저! 하늘을 이어 때로 행하느니라
(坤道 其順乎. 承天而時行하나니라)”고 하여 땅은 순음으로써 유순함을 말하였다.
곧 사람의 하늘과 땅의 음양의 도에 따라 健順함을 부여받았으며,
음양이 사귀는 가운데 나온 오행에 따라 仁 義 禮 智 信이라는

다섯 가지의 떳떳한 덕인 五常의 덕을 부여받은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란 누구나가 健順五常이라는, 하늘이 명한 성품을 갖고 나왔다는 것이다.
중용을 ‘소주역’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머릿장에 천명을 언급하고 있으니
그것은 곧 주역의 음양 이치에 따른 글이기 때문이다.

 

率은 循也요 道는 猶路也니라 人物이 各循其性之自然이면
솔은 순야요 도는 유로야니라 인물이 각순기성지자연이면

 

則其日用事物之間에 莫不各有當行之路하니 是則所謂道也니라.
즉기일월사물지간에 막불각유당행지로하니 시즉소위도야니라.

 

‘솔’은 ‘따를 순’과 같고, ‘도’는 ‘길 로’와 같음이라.
사람이나 모든 물건이 각각 그 성품의 자연함을 따르면,
날로 쓰는 사물의 사이에 각각 마땅히 행해야 할 길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곧 도이니


[해설]
道와 路를 합하여 道路가 된다.

道는 ‘머리 수(首)’와 ‘갈 지(之)’가 합한 글자로 머리가 가는 것이 으뜸이요 원칙이고,
路는 ‘발 족(足)에 ’각기 각(各)‘을 합하였으니 각각 나아가는 것으로

道는 나아가는 길의 體가 되고, 路는 用이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가야 할 길이 있는 한편으로,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각기 처한 바 위치에 따라서 마땅히 가야 할 길이 있음을 말한다.

 

修는 品節之也니라 性道는 雖同而氣稟이 或異니라
수는 품절지야니라 성도는 수동이기품이 혹이니라 

 

故로 不能無過不及之差할새 聖人이 因人物之所當行者而品節之하야
고로 불능무과불급지차할새 성인이 인인물지소당행자이품절지하야

 

以爲法於天下則爲之敎이니 若禮樂刑政之屬이 是也니라.
이위법어천하칙위지교이니 약예악형정지속이 시야니라.

 

수는 품절(마름질하는 것)이라.
성과 도는 비록 같으나 기품이 혹 다르니라.
그러므로 과하거나 불급함의 차이가 없지 않기 때문에
성인이 사람과 물건의 마땅히 가야할 바를 인하여 잘 품절하여 써 천하의 법을 삼으니
이를 일러 교라고 하니 예를 들어 예절과 음악과 형벌과 정치 같은 등속이니라.

 

[해설]
닦는다는 것은 마름하는 것이다.
물품을 잘 손질하고 다듬어 절도 있게 하는 것이다.
하늘의 명이 性이고 그 성품을 닦는 것이 道이므로 하늘이 부여하는 원리는 같으나
사람마다 타고 나는 기질적인 품성(稟性)은 각기 다르다.
타고난 성질이 급한 사람도 있고 느린 사람도 있으며, 타고난 기질이 강한 사람도 있고 유약한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모두가 똑같이 중을 지켜나간다면 별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타고난 과불급의 차이가 있기에 성인이 사람마다 물건마다
마땅히 가야 할 바에 대해 잘 닦아나갈 수 있도록 마름질을 한다.
그것이 곧 ‘敎’, 가르침인데 이에는 예절과 음악, 형벌과 정치 등등의 여러 방법이 있다.

 

蓋人이 知己之有性호대 而不知其出於天하며 知事之有道호대
개인이 지기지유성호대 이부지기출어천하며 지사지유도호대

 

而不知其由於性하며 知聖人之有敎호대 而不知其因吾之所固有者하야 裁之也니라
이부지기유어성하며 지성인지유교호대 이부지기인오지소고유자하야 재지야니라

 

故로 子思이 於此에 首發明之하시니 而蕫子所謂道之大原이 出於天이라하니 亦此意也라.
고로 자사이 어차에 수발명지하시니 이동자소위도지대원이 출어천이라하니 역차의야라.

 

대개 사람이 자기에게 성품이 있음을 알되 그것이 하늘에서 나옴을 알지 못하며,
사물이 가야 할 길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이 하늘이 부여해준 성품을 따라야 하는 연유는 알지 못하며,
성인의 가르침이 있는 것을 알면서 그 나의 진실로 둔 바를 인하여 마름하는 것은 알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자사가 이에 (중용의) 머릿장에 밝히시니 동자(董子 ; 동중서)란 이가
도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왔다 이르니 또한 이 뜻이니라.


2
道也者는 不可須臾離也이니 可離면 非道也니라 
도야자는 불가수유리야이니 가리면 비도야니라 

 

是故로 君子는 戒愼乎其所不睹하며 恐懼乎其所不聞이니라.
시고로 군자는 계신호기소부도하며 공구호기소불분이니라.

 

도라 하는 것은 가히 잠깐이라도 떠나지 못할 것이며 가히 떠나면 도가 아니니라.
이런 고로 군자는 그 보지 못한 바에서 경계하고 삼가하며

그 듣지 못한 바에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느니라.

 

[해설]
우리가 가야 할 길, 곧 도라는 것은 내 몸에서 잠깐이라도 떠나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길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도를 실천하지 않아 벌어질 무서움이나 두려움을 보고 난 뒤에야
어거지로 하는 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보지 않고(不睹) 듣지 않더라도(不問)
이것이 사람이 가야 할 길이겠구나 하는 원리에 입각해
스스로 늘 조심조심 도를 따라가야 한다(戒愼恐懼)는 것이다.

 

불가(佛家)의 금강경(金剛經) 사구게(四句偈)에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만약 빛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하는 것이니
영원히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니라)라고 한 말도 바로 不睹하고 不聞이라 하여 도를 닦지 않음을 경계한 말이다.

 

道者는 日用事物當行之理니 皆性之德而具於心하야 無物不有하고 無時不然하니 所以不可須臾離也니라
도자는 일용사물당행지리니 개성지덕이구어심하야 무물불유하고 무시불연하니 소이불가수유리야니라

 

若其可離면 則豈率性之謂哉이요 是以로 君子之心이 常存敬畏하야
약기가리면 즉기솔성지위재이요 시이로 군자지심이 상존경외하야

 

雖不見聞이나 亦不敢忽이니 所以存天理之本然이요 而不使離 於須臾之頃也니라.
수불견문이나 역불감홀이니 소이존천리지본연이요 이불사리 어수유지경야니라.

 

도라 하는 것은 날로 쓰는 사물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이치이니 모두가 성품의 덕이요
그것이 마음에 다 갖추어져 물건마다 (도를) 두지 않음이 없고
때로 그렇지 않음이 없으니 써한 바가히 잠깐이라도 떠나지 않음이 없느니라.
만약 가히 떠나면 어찌 하늘이 정한 성품을 따른다고 할 수 있으리요.
이로써 군자의 마음이 항상 경외롭게 두어(곧 戒愼恐懼) 비록 보고 듣지 못하나
또한 감히 경솔히 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이 써한 바 천리의 본연(곧 性道)을 존하는 것이고
잠깐의 경각이라도 떠나지 못함이니라.
 
[해설]
윗 글의 常存敬畏는 대학 전문 제6장 제2절의
"小人 閒居 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 厭然揜其不善 而著其善

 "소인 한거 위불선 무소불지 견군자이후 염연엄기불선 이저기선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 君子 必愼其獨也"

 인지시기 여견기페간연 즉하익이 차위성어중 형어외 고 군자 필신기독야" 

 

(소인이 한가하게 있을 때에 불선을 행함이 이르지 아니하는 바가 없다가
군자를 보고 난 뒤에 슬며시 그 불선을 가리고 선을 드러내지만,
남들이 자기를 알아봄이 마치 나의 폐장과 간장을 보는 듯할 것이니 그렇다면 어찌 유익하겠는가.
이를 일컬어 ‘속마음에 성실하면 밖으로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니,
때문에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를 삼가니라).”는 내용과 같이
항상 .戒愼恐懼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아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3
莫見乎隱이며 莫顯乎微니 故로 君子는 愼其獨也이니라.
막현호은이며 막현호미니 고로 군자는 신기독야이니라.

 

숨은 것보다 나타나는 것이 없으며 미미한 것보다 드러나는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를 삼가느니라.

 

[해설]
천자문에 屬耳垣墻(속이원장), 寓目囊箱(우목낭상)이라는 말이 있다.
귀는 담장에 붙어 있고, 눈은 내가 늘 쓰는 상자 속이나 천장에 붙어 있으니 말조심 행동조심 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숨어있는 것이 절대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더 잘 나타나고,
미미한 것이라 하여 결코 드러나지 않으리라 여기지만 역시 다 드러나기 때문에 숨어 있을 때나
은미할 때나 남이 보지 않고 듣지 않을 때라도 다시 말해 홀로 있을 때라도 스스로를 삼가야 한다.
주역 풍화가인(風火家人)괘에서 언급한 ‘君子는 言有物而行有恒이라
(말에는 실물이 있고 행동에는 항상함이 있다)’ 하여야 하고 앞서도 나왔듯이 必愼其獨해야 한다는 뜻이다.

 

隱은 暗處也이요 微는 細事也니라 獨者는 人所不知而己所 獨知之地也니라
은은 암처야이요 미는 세사야니라 독자는 인소부지이기소 독지지지야니라

 

言幽暗之中 細微之事에 跡雖未形이나 而幾則已動하니 人雖不知나 而己獨知之하니
언유암지중 세미지사에 적수미형이나 이기즉이동하니 인수부지나 이이독지지하니

 

則是天下之事니無有著見明懸而過於此者니라
즉시천하지사니무유저견명현이과어차자니라

 

是而로 君子는 旣常戒懼하야 而於此에 尤加謹焉이니
시이로 군자는 기상계구하야 이어차에 우가근언이니

 

所以遏人欲於將萌하야 而不使其潛 滋暗長於隱微之中하야 以至離道之遠也니라.
소이알인욕어장맹하야 이부사기잠 자암장어은미지중하야 이지리도지원야니라.

 

隱은 어두운 곳이요 微는 가느다란 일이라.
홀로란 것은 남이 알지 못하는 바이며 나 혼자만이 알고 있는 것이라.
그윽하고 어두운 가운데 세미한 일이 비록 자취라는 형체는 있지 아니하나
기미는 이미 움직이고 있어 남들이 비록 알지 못하나 나 홀로는 아는 것이 곧 천하의 일이니
나타나고 밝게 드러나 여기에 지남이 있지 않느니라.
이로써 군자가 항상 계신공구하야 이에 더욱 더 삼갈 것이니,
써한 바 사람의 욕심이 장차 싹 트는 것을 막아 은미한 가운데 푹 잠겨 차차 불어나고(潛滋)
어두운 속에서 점차 커져(暗長) 도를 떠나 멀리 이르지 않게 함이니라.

 

[해설]
아무리 비밀스럽게 하는 일이라도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기에
형체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미 기미는 드러나 있는 것이니 곧 만천하에 다 알려진다.
주역 14번째 화천대유(火天大有)괘에 보면 "遏惡揚善(알악양선)하야
順天休命(순천휴명)하나니라(악한 것을 막고 선한 것을 드날려서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르느리라)”하였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모든 것이 많아지고 풍성해지다보니 이를 탐하고 욕심을 내어 죄짓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물질이 풍요롭고 빈부의 격차가 나면 없는 사람는 없기에 가지려고 죄짓고, 있는 사람은 더 가지려고 죄를 짓는다.
그래서 遏惡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맹자에도 ‘遏人欲存天理(사람의 욕심을 막아 하늘의 이치를 보존해야 한다)’라 하였다.
즉 하늘이 부여해주 性道를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 戒愼恐懼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대목이다.

 

4
喜怒哀樂之未發을 謂之中이요 發而皆中節을 謂之和이니
희노애락지미발을 위지중이요 발이개중절을 위지화이니

 

中也者는 天下之大本也이오 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니라.
중야자는 천하지대본야이오 화야자는 천하지달도야니라.

 

희노애락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때를 中이라 이르고
나타났지만 節에 맞게 함을 和라 하니
中이라 하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和라는 것은 천하의 통한 道이니라(모두가 가야 할 길이니라)

 

[해설]
여기서부터는 중용을 설명하고 있다.
앞에서는 도를 말하였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기뻐하거나 성내거나 슬퍼하거나 즐거워할 때가 있다.
이것이 아직 마음 속에 있을 때가 중이고,
그것을 잘 조절해 적절히 나타났을 때를 和, 곧 조화, 화합이라고 한다.
이것이 곧 中和이며, 中庸을 말한다. 中은 언제나 中이고, 和는 ‘떳떳함(庸)’, 正, 節로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中和라 하면 中庸이요, 中正이요 中節이요 中道로도 얘기할 수 있다.
中은 속에 있는 것이므로 뿌리가 되기에 大本으로 표현했고,
근본에서 나와 가지를 뻗어 나가는 것이 道이므로 누구나 다 가야할 길이기에 和를 達道로 표현했다.
곧 내적인 大本이 中, 外的인 達道가 和가 된다.

 

喜怒哀樂은 情也이니 其未發則性也니라 無所偏倚라
희노애락은 정야이니 기미발즉성야니라 무소편의라

 

故로 謂之中이요 發皆中節은 情之正也니라 無所乖戾라
고로 위지중이요 발개중절은 정지정야니라 무소괴려라

 

故로 謂之和라 大本者는 天命之性이니 天下之理가 皆由此出하니
고로 위지화라 대본자는 천명지성이니 천하지리가 개유차출하니

 

道之體也니라 達道者는 循性之謂니 天下古今之所共由니
도지체야니라 당도자는 순성지위니 천하고금지소공야니

 

道之用也라 此言은 性情之德이니 以明道不可離之意니라.
도지용야라 차언은 성정지덕이니 소명도불가리지의니라.

 

희노애락은 (사람의) 감정(情)이니 그것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를 性이라 함이라.
치우치고 기울어지는 바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이를 중이라 함이요

발하되 절도에 맞는 것을 감정의 바름이니라.
어긋나거나 거스리는 바가 없으므로 이를 和라 이르니라.
대본이라는 것은 천하의 성품이니 천하의 이치가 모두 이로 말미암아 나오니 도의 體이니라.
통한 도라고 하는 것은 성품을 따름을 이름이니 천하와 고금이 한가지로 말미암은 바이니 도의 用이라.
이것은 성정의 덕을 말함이니 써 밝은 도는 가히 떨어질 수 없다는 의미니라.

 

[해설]
大本은 곧 道之體가 되며 中이 되며, 바로 중용 맨첫머리에 언급한 天命之謂性을 말한다.
達道는 곧 道之用이 되며 和가 되고 率性之謂道에 해당하고 性情之德을 말한다.


5
致中和면 天地位焉하며 萬物이 育焉이니라.

치중화면 천지위언하며 만물이 육언이니라.

 

중화에 이르면 천지가 자리하며 만물이 길러지느니라.


[해설]
주역 계사상전 첫머리에 “易簡而天下之理ㅣ 得矣니 天下之理ㅣ 得而成位乎其中矣니라
(쉽고 간단함에 천하의 이치를 얻으니, 천하의 이치를 얻음에 위를 그 가운데에 이루느니라)’고 하였으며,
천부경에도 ‘人中天地一’라 하여 가운데 자리하는 것을 매우 소중함을 밝히고 있다.
하늘이나 땅이나 중화라는 제 위치를 잃는다면 만물이 길러질 수 없음을 표현해
중화는 곧 천지로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다.

 

致는 推而極之也니라 位者는 安其所也이오 育者는 遂其生也니라
치는 추이극지야니라 위자는 안기소야이오 유자는 수기생야니라

 

自戒懼而約之하야 以至於至靜之中하야 無所偏倚而
자계구이약지하야 이지어지정지중하야 무소편의이

 

其守를 不失이면 則極其中而天地가 位矣요 自謹獨而精之하야
기수를 부실이면 즉극기중이천지가 위의요 자근독이정지하야

 

以至於應物之處에 無小差謬而無適不然이면 則極其和而萬物이 育矣이니라
이지어응물지처에 무소차류이무적불연이면 즉극기화이만물이 유의이니라

 

蓋天地萬物은 本吾一體니 吾之心이正이면 則天地之心이 亦正矣이요
개천지만물은 본오일체니 오지심이정이면 즉천지지심이 역정의이요

 

吾之氣가 順이면 則天地之氣가 亦順矣이라 故로 其效驗이 至於如此하니
오지기가 순이면 즉천지지기가 역순의이라 고로 기효험이 지어여차하니

 

此는 學問之極功이요 聖人之能事라 初非有待於外나 而修道之敎로 亦在其中矣니라
차는 학문지극공이요 성인지능사라 초비유대어외나 이수도지교로 역재기중의니라

 

是其一體一用이 雖有動靜之殊나 然이나
시기일체일용이 수유동정지수나 연이나

 

必其軆立而後에야 用이 有以行이면 則其實이 亦非有兩事也니라 
핀기체립이후에야 용이 유이행이면 즉기실이 역비유양사야니라

 

故로 於此에 合而言之하야 以結上文之意이니라.
고로 어차에 함이언지하야 이결상문지의이니라.


치는 미루어 극함이라, 위라는 것은 그 곳에서 편안함이오, 육은 그 생함을 이룸이니라.
계신공구로부터 간략히 하여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이르러 치우치거나 미뤄지는 바가 없어
그 지키는 바를 잃지 않으면 그 중이 지극해져 천지가 위를 얻게 되고,
근독(홀로를 삼가함)으로부터 정미롭게 해서 써 물건을 응하는 곳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어긋남이 없어서 어디를 가든지 그렇지 않음이 없으면(中이라는 體를 잘 잡는다면)
그 화함을 극하게 해서 만물이 길러지느니라.
대개 천지만물이라 함은 본래 내 한 몸이니 나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도 바를 것이요
나의 기운이 순하면 천지의 기운도 또한 순하느니라.
그러므로 그 효험이 이와 같은데 이르니 이것은 (중용이라는) 학문의 지극한 공이며 성인의 능한 일이니라.
처음에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지 아니하나(내 성품 밖으로 나가지 않으나)
도를 마름하는 敎(修道之敎)가 또한 그 가운데 있느니라
(도를 잘 마름하고 밖으로 나가 가르치니 효험이 커짐이 있음이라).
이 그 일체일용이 비록 동하고 정하는 다름이 있으나 반드시 그 체가 선 뒤에 용이 써 행함이 있으면
즉 그 실지(실상)가 두 가지 일이 있지 않음이니 고로 이에 합해서 말하니 윗글의 뜻을 여기에 말함이라


[해설]
천지인이 모두가 하나임을 밝히고 있다.
천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 속에 있음을 부연설명하고 체용의 이치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체를 바로 세우고 행해야 함을 덧붙이면서 一體一用은 곧 一原을 밝히고 있다.


右는 第一章이라


子思가 述所傳之意以立言하야 首明道之本原이 出於天而不可易하니
자사가 술소전지의이립언하야 수명도지본원이 출어천이불가역하니

 

其實은 體備於己而不可離이요 此言 存養省察之要하야
기실은 체비어기이불가리이요 차언 존양성찰지요하야

 

終言聖神功化之極하니 蓋欲學者로 於此에 反求諸身而自得之이니
종언성신공화지극하니 개욕학자로 어차에 반구제신이자득지이니

 

以去夫外誘之私而充其本然之善이니라
이거부외유지사이충기본연지선이니라 

 

楊氏 所謂一篇之體要요 是也이니라 
양씨 소위일편지체요요 시야이니라

 

其下十章은 蓋子思가 引夫子之言하야 以終此章之意이니라.
기하심장은 개자사가 인부자지언하야 이종차장지의이니라.
 
자사가 전한 바의 뜻을 지어서 써 말을 세워서 먼저 도의 본원이 하늘에서 나와서
가히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밝혀 놓았으니
그 실지는 체가 몸에 갖추어져 가히 떠나지 못함을 (머릿장에) 밝힌 것이오,
이 말은 살피고 살핌의 중요함을 잘 존양하고(말해놓고 ) 마침내는 성신(성인의 신비로움)의
공되고 화하는 지극함을 말해 놓았으니, 대개 배우는 자가 이에 저 몸에 돌이켜 구해(反求諸身)
스스로 얻어서 밖으로 유혹되는 사사로움을 버리고 본연의 선함을 충족시키게 함이라 .
양씨가 한편의 체요라고 말한 바가 이것이니라.
이하 십장은 대개 자사가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써 이장의 뜻을 마무리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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