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제21장 자성명장(自誠明章)
自誠明을 謂之性이오 自明誠을 謂之敎니 誠則明矣오 明則誠矣니라.
자성명을 위지성이오 자명성을 위지교니 성즉명의오 명즉성의니라.
誠에서부터 明으로 구현되어 나아가는 것을 性이라 일컫고
明에서부터 誠으로 구현되어 나아가는 것을 敎라고 일컫는다.
誠하면 곧 明해지고 明하면 곧 誠해진다.
정성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을 ‘性’이라 이르고,
밝음으로 말미암아 정성스러워지는 것을 敎라 이르니,
정성스러우면 밝아지고 밝으면 정성스러워지느니라.
이장부터 소위 자사의 誠論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니까 21장은 子思誠論의 총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1장의 총론과 性과 敎라는 개념이 오버랩되고 있다.
주희도 이 장이 공자가 앞 장에서 誠者를 天道라 보았고
誠之者를 人道라 보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천도와 인도의 핵심을 같이 말한 총론장이라고 규정하고
제22장에서 32장까지 11개의 장은 모두 자사의 立論이며
그것은 바로 이 장의 내용을 반복하여 推明(추명=미루어 밝힘)한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다음 11개장은 천도나 인도 그 중 하나만을 번갈아 말한 것으로 본다.
[본문 해설]
『중용』은 이치가 깊은 글이니 생각을 많이 해야 뜻을 통할 수 있는 글이다.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훤히 밝아지는 것은 하늘로부터 그대로 받은 진실무망의 성품이고,
세상에 나와 배워 알면서 정성스럽게 하는 것은
하늘이 부여해준 본바탕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으로 이를 일러 교육이라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성과 밝음은 한 가지이기에 굳이 어떤 것이 더 먼저라고 구분할 문제는 아니다.
정성스러우면 밝아지고 밝으면 자연 정성스러워지기에
‘生而知之’거나 ‘學而知之’거나 ‘困而知之’거나를 막론하고
그 아는 데 이르러서 성공하는 것은 같다는 점이다.
自는 由也라 德無不實而明無不照者는 聖人之德이 所性而有者也니 天道也오
자는 유야라 덕무부실이명무부조자는 성인지덕이 소성이유자야니 천도야오
先明乎善而後에 能實其善者는 賢人之學이 由敎而入者也니 人道也라
선명호선이후에 능실기선자는 현인지학이 유교이입자야니 인도야라
誠則無不明矣오 明則可以至於誠矣니라.
성즉무불명의오 명즉가이지어성의니라.
自는 말미암음이라.
덕은 실하지 않음이 없고 밝음은 비추지 않음이 없는 것은 성인의 덕이 성품으로 해서 둔 것이니 하늘의 도요,
먼저 선에 밝은 뒤에 능히 그 선을 실지로 행하는 하는 자는
현인의 배움이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는 것이니 사람의 도라.
성실하면 밝지 않음이 없고 밝아지면 가히 성실함에 이르느니라.
右는 第二十一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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