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의 나오는 민간요법


의성(醫聖) 허준(許浚)과 동양 최고의 의학서(醫學書) 동의보감(東醫寶鑑) 

 

 

1. 가는 세월 음양곽으로 붙잡아라.

또한 음양곽은 노인의 건망증, 중년의 건망증 부인들의 월경 과다 등에 좋다.

 
2. 가슴벌떡증, 불면증, 건망증, 해산후 심허증 등에는 복령(솔풍령)이 좋다.

 
3. 가슴답답증, 뼈아픔, 구토, 설사, 발열에 은행나무 잎.열매가 좋다.

 
4. 가슴답답증, 소갈병, 홍역초기, 관상동맥 경화증, 노인성 당뇨병,

이질, 협신증, 고혈압, 만성설사증, 술독 푸는 데는 칡뿌리(갈근)가 좋다.

 
5. 간에는 차전자(질경이 풀씨)가 좋다.

그밖에 노인성 배뇨 곤란, 음경동통, 대변이 묽거나 설사하는데,

눈이 충혈되고 꽃무늬 같은 것이 어른거리는데,

고혈압, 노인성 부종, 요도염, 방광염 등에 좋다.

 
6. 각종 위장 질환, 신경통, 고혈압, 감기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기능,

성인병 예방에 시금치가 좋다.

 
7. 각기병, 말초신경장애, 숨이 차고 가슴이 벌떡 거리는데,

신허로 오는 허리 통증, 몸이 허해져 시력이 떨어질 때,

어린이 간질, 약물중독, 식중독, 사기를 북돋워 주는데 검정콩이 좋다.

 
8. 감기에는 생강차가 좋다.

관절염에는 생강을 짓찧어 붙이면 효과가 있다.

 
9. 감기 혹은 목이 아플 때, 감기, 소화장애, 설사, 세균성 적리,

저혈압, 태동불안, 얼굴과 눈의 종기에 파뿌리(총백)가 좋다.

 
10. 감자만한 건강식품도 없다.

감자는 빈혈 예방, 동맥경화증 예방, 신장염, 붓는데.

피를 만드는 작용, 고혈압, 음식물의 소화 흡수, 장내 음식물의 부패를 막는다.

 
11. 감초가 빠지면 조화가 안된다.
감초는 해독작용, 강심작용, 간보호작용, 항궤양작용, 진정작용,

진해 거담작용, 항알레르기 작용, 항암작용, 위산도조절작용,

콜레스테롤 배설촉진작용 등이 있으며, 만성위염, 위경련,

기관지염, 간염, 인후두염 등에 효과가 있다.

 
12. 감잎차는 괴혈병, 자반병, 자궁출혈, 위장출혈,

중년기와 노년기의 당뇨병, 동맥경화증, 고혈압, 노인의 변비,

여러가지 화학적 유해물질(납, 비소 수은)중독, 과민반응에 좋다.

 
13. 기쁨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

 
14. 기억력 감퇴, 사고력 둔화에도 오미자차가 좋다.

또한 오미자는 시력을 개선하고 남자의 정액을 보충하고 음위(발기불능),

구갈(입이 마르는 현상), 번열, 혈액순환, 유정 등에 효능이 있다.

 
15. 구내염에는 대황이 특효이다.

 
16. 귤껍질은 담을 삭인다.

풍한으로 기침이 나며, 가래가 성하거나 열이 나면서 땀이 나고

맥이 부실한데, 급성 및 만성 기관지염. 기관지 천식, 폐결핵 등에 좋다.

또 변비. 만성위염에는 귤껍질(진피)이 좋다.

 
17. 과식은 원기를 해친다.

 
18. 관절염. 신경통. 중풍 후유증에는 독활(땅두릅)이 좋다.

독활은 피응고 촉진 작용, 강심작용, 혈압 강하작용등이 있다.

 
19. 꿀을 장복하면 몸이 가벼워진다.
또한 꿀은 위를 다스려 장복하면 귀와 눈이 밝아지고,

대변을 순하게 하여 몸이 가벼워져 장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위통 등 복부통증을 진정시키고 해독작용 및 산후 갈증,

화상을 입었을 때 직접 꿀을 발라 주어도 좋다.

나쁜 독으로 생긴 부스럼에도 파를 짓찧어 꿀에 섞어 붙이면 잘 낫는다.
※금기 : 토하고 난 후 또는 숙취에는 더운 꿀물이 좋으나,

이유없이 헛배가 불러 올 때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

  
20. 남성 신기(腎氣)부족, 정액 고갈, 음위증, 여자의 불임,

오줌 을 자주 누는 데와 간신이 허하여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데에도 산딸기가 약이다.
※금기 : 오줌양이 적고 잘 나가지 않을 때에는 쓰지 않는다.

 
21. 남자의 성기능 강화에는 피조개가 좋다.

또 냉병, 음위증, 위통, 소화 장애 등에 좋다.
※금기 : 습열(濕熱)이 왕성한 데는 쓰지 않는다.

 
22. 노화방지 효과, 주근깨 치료, 비만 해소, 땀이 많이 나거나 미열이 있을 때,

얼굴 등 겨드랑이에 생긴 기미에는 둥글레(옥죽)가 좋다.
 
23. 녹두는 해독 이뇨작용이 크다.

또한 다리 힘이 약해지고 저리거나 지각이상으로 잘 걷지 못할 때,

소갈, 옹종, 단독, 당뇨병, 홍맥 등에 좋다.

 
24. 다리힘이 약할 때, 식욕부진에는 밤이 좋다.
※금기 : 감기등 풍습으로 오는 외감병, 비만,

산후조리중 일 때와 변비가 심한 경우는 삼가하는게 좋다.

  
25. 당근 은 참기름과 함께 먹어야 좋다.

 
26. 두부는 최고의 다이어트 식품이다.

두부는 지방간, 동맥경화, 고혈압을 예방, 비만을 예방한다.

 
27. 독버섯 중독에는 가지가 특효이다.

가지는 종기나 유옹(젖앓이), 장 출혈,

겨울에 동상에 걸려 아프고 가려울때, 고혈압 등에 좋다.

 
28. 동충하초는 장수비약이다.

또한 숨이 차고 기침이 나는데, 저절로 땀이 나는데,

음위증, 유정, 허리와 무릎이 시리고 쑤시는데, 빈혈, 병후 쇠약

산후허약 등에 효능이 있다.
 
29. 대장염, 폐결핵, 폐농양, 관절염에는 쇠비름이 좋다.

또한 독을 풀며 어혈을 없애고, 기생충을 죽으며 오줌이 잘 나오게 한다.
※금기 : 허한성 설사와 고혈압 증상일 때는 쓰지 않는다.

 
30. 땅콩껍질은 젖을 잘 나오게 하고, 메스꺼움과 오랜 기침 폐결핵에 좋다.

 
31. 류마티즘, 신경통으로 허리가 아플때, 치질,

치은염(참깨를 달인 물로 양치질하면 효과가 있다.), 화상에도 참깨를 쓴다.
※금기 : 비위가 약하거나 설사 경향이 있을 때에는 쓰지 않는 것이 좋다.

  
32. 마늘은 하루 2-3쪽이 적당하며, 동맥경화 예방, 항암작용,

면역력 회복작용, 이뇨작용, 자궁수축 작용, 기침 기관지 천식,

고혈압, 동맥경화 등에 좋다.

 
33. 마른 기침, 변비, 현기증 치료에는 해송자(잣)가 좋다.

 
34. 마른 기침 열나는 가슴 답답증, 가래를 없애는데,

각혈, 폐기능이 약한데, 배뇨장애, 변비 등에는 맥문동이 좋다.

 
35. 만성 소모성 질병에는 당삼이 효과적이다.

또한 당삼은 만성 호흡기 질환, 빈혈과 만성 위장염,

위황병, 폐결핵, 백혈병 등에 좋다.

 
36. 무화과가 입맛을 돋운다.

무화과는 위(胃)를 든든하게 하고, 장열을 없애며,

부은 것을 낫게 하는 해독작용을 한다. 이질, 변비, 장염, 치질, 부스럼 등에 좋다.

약리 실험에서 혈압강하작용, 항암작용, 소화작용, 설사멈춤 작용 등이 밝혀졌다.

 
37. 모과는 위 기능을 개선한다.

또한 각기병, 관절동통, 좌골 신경통, 곽란으로 배가 아프며 토하고 설사하며,

비장근 경련이 일어나는데, 복부경련, 소화불량, 다리에 힘이 없는데,

근육 류마티즘, 소갈, 가래를 없애는데, 이질, 다발성 신경염 등에 좋다.

 
38. 목이 붓는데는 박하를 쓴다.

또한 두통, 목이 붓는 인후염, 소아의 두드러기,

관상 혈관의 순환장애로 인한 협심증 등에 좋다.

 
39. 목이 쉰데, 소갈, 이질, 코피, 두통, 기침, 식체, 설사,

노인의 만성 기관지염, 노인성 당뇨병, 가래, 기침에는 무(나복)이 좋다.

 
40. 몸이 붓는데는 옥수수 수염이 약이다.

또한 옆구리에 물이 차는 늑막염, 배에 물이 차는 복수증상,

신장염, 급.만성 방광염, 요도염, 황달, 간염, 담낭담도염,

방광결석, 담석증 등 에도 좋다.

  
41. 부스럼, 방광염, 요도염, 연주창, 단독,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데,

혈풍창에는 연교(개나리 열매)가 좋다.

 
42. 붓거나 멍든데는 띠뿌리가 좋다.

또한 피를 토하거나 코피, 혈뇨, 부정자궁 출혈, 임증, 황달, 소갈,

월경이 없는 증상, 타박상, 고혈압, 간염 등에도 좋다.

 
43. 빈혈에는 당귀(미나리과에 속한 풀)만한 약이 없다.

 
44. 뽕나무 가지는 팔이 쑤시고 저리는 관절염,

팔다리가 오그라지는 사지마비, 각기, 고혈압, 붓는 병, 결막염,

그리고 뼈마디를 부드럽게 한다.

  
45. 사과를 삶아 먹으면 식욕부진에 좋다.
또한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나 마른 기침, 변비, 빈혈증,

쉬 피로해지기 잘하는 사람에게 좋다.

삶아서 먹을 때 더 효과가 있고,

술과 함께 먹으면 뼈마디의 통증에도 잘 듣는다.
※현대 의학적인 작용과 용도 보약, 건위소화약, 설사 멎이약,

소화불량증, 급. 만성 대.소장염에 쓴다고 한다.

 
46. 산수유는 신허(腎虛: 무릎이 시큰거리고 아픔)를 보한다.

또 현기증, 이명, 식은 땀이 나고 소변이 잦는데, 여성들의 월경과다,

남성들의 유정, 정력감퇴, 음위증 등에 효과가 있다.
※산수유차는 무릎이 시큰 거리고 아플때 오줌을 자주 누는데,

음위증, 어지름증, 귀울림, 식은땀이 날때 좋다.
 
47. 산후증, 불면증, 현기증, 저린감, 땀이 나며 목이 마를때,

피부습윤, 소화장애로 인한 식욕부진, 피부건조, 메스꺼움 등에 메추리알이 좋다.

 
48. 석류껍질은 설사, 이질, 자궁부정출혈, 탈항(脫肛),

이슬, 유정, 장 출혈을 멎게 한다.

 
49. 성욕이 과하면 건강을 해친다.

 
50. 성인병 예방에는 구기자가 좋다.

또한 간신이 허하여 어지럽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데,

음위증과 유정, 허리가 시큰시큰 아플 때, 무릎에 힘이 없을 때,

영양실조, 신경쇠약, 당뇨병, 마른 기침, 중년기와 노년기에 올 수 있는 고혈압,

신경통, 동맥경화증, 빈혈, 암 예방, 노인성 갈증이나 변비에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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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銀燮
삶을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

오늘의 메뉴는 "삶을 맛있게 요리 하는 방법" 입니다.
먼저 크고 깨끗한 마음이라는 냄비를 준비한 후
냄비를 열정이라는 불에 달구어줍니다.
충분히 달구어지면 
자신감을 교만이라는 눈금이 안보일 만큼 부어야합니다.
자신감이 잘 채워지고나면
성실함과 노력이라는 양념을 충분히 넣어줍니다.
우정이라는 양념을 어느 정도 넣어주면
훨씬 담백한 맛을 낼 수 있으니
꼭 잊지 말고 넣어주어야 합니다.
약간의 특별한 맛을 원할 경우
이성간의 사랑을 넣어주면 좀 더 특별해집니다.
이사랑이 너무 뜨거워지면
집착이라는 것이 생기는데
생기지 않도록 불조절을 잘 해야 합니다.
만약 생길 경우는 절제라는 국자로
집착을 걷어내면 됩니다.
이때,실패하면 실연이라는 맛이 나는데
이 맛은 아주 써서 
어쩌면 음식을 망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이 쓴맛을 없애고 싶을 경우
약간의 용서나 너그러움
그리고 자신을 되돌아 불 수 있는
여유를 넣어주면 어느 정도 없앨 수 있습니다.
깊은 맛을 원할 경우는 
약간의 선행과 관용을 넣어주면 됩니다.
가끔 질투 욕심이라는 것이 생기는데
계속 방치해 두면 음식이 타게 되므로 그때그때 제거합니다.
또한 가끔 권태라는 나쁜 향이 생기는데
도전과 의욕이라는 향료를 넣어서 없애줍니다.
이쯤에 만약 삶이라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힘들어서
지치게 되고 포기하고 싶어지면
신앙이라는 큰 재료를 넣어주면
새로운 맛과 향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기쁨이라는 맛이 더해 가는 데
그 맛이 더해져 잘 어우러지면
진정한 자유라는 맛이 생기게 됩니다.
그 후에 평안과 감사함이라는
행복한 향이 더해짐으로
음식의 완성도도 높아집니다.
이 향은 아주 특별한 것이라서
이웃에게 베풀어 주고 싶게 됩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요리는 끝난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실이라는 양념을 넣어
한소끔 끊인 후 간을 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소스를 충분히 뿌려주면
이 모든 맛이 더욱 잘 어우러져서
정말 맛있고 깊은 맛이 나는
"삶"이라는 음식을 맛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때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맛을 내는 
요리를 만들고 계신가요.?
2012.7.7.
요리를 잘하는 남자 한은섭 올림.

강진 병영(康津 兵營)

 

조선시대 각 도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가 근무하는 주진(主鎭).

조선시대 충청도지도의 해미현 부분
정식 명칭은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으로 휘하의 거진(巨鎭)과 제진(諸鎭)을 통할했다.

고려 말엽의 도순문사영(都巡問使營)에서 비롯되었으며,

병마절도사의 전신(前身)인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가

조선 건국 직전에 설치된 이래로 그 근무지를 병영이라 불렀다.

병영은 각 도 국방의 요충지에 위치한 큰 고을에 설치되었고,

요새화된 성곽 안에 병마절도사의 하부 기구가 갖추어져 있었다.

전임직(專任職)으로서 임명되는 병마절도사의 주둔지에만 병영을 설치했으며,

전임직 병마절도사가 없는 도는 겸병마절도사인 관찰사의 감영(監營) 소재지에

병영기구를 설치하여 주진으로 기능하도록 했다.

 

한편 도내에 전임직 병마절도사가 2명이 임명되는 함경도·경상도에는 각각 2개의 병영이 설치되었다.

각 도의 병영 소재지는 시기에 따라 다소 변동이 있었으나 대체로 조선 전기에 충청도는 해미(海美),

전라도는 강진(康津), 경상도는 울산(蔚山:좌병영)·창원(昌原:우병영), 평안도는 영변(寧邊),

함경도는 경성(鏡城:북병영)·북청(北靑:남병영)이었으며,

조선 후기에 충청도는 충주(忠州), 경상도는 진주(晋州), 황해도는 황주(黃州), 평안도는 안주(安州)였다.

병영에는 병마절도사 이외에도 그의 참모격인 우후(虞候)와 평사(評事),

각급 군관(軍官)과 진무(鎭撫) 등 장교층이 근무했고,

수백 명의 직속 군사력이 배치되었으며, 영리(營吏)를 비롯한 아전(衙前)·

공장(工匠)·노비 등도 수백 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이같이 방대한 기구를 통해 병영이 각도 육군 사령부로서 도내 군사를 지휘하고 군사 행정을 총괄한 까닭에

그 재정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다량의 둔전(屯田)이 경영되었는데,

특히 조선 후기에는 막대한 환곡(還穀)이 소속되어 운영됨으로써 커다란 폐단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밖에 평안도·함경도에는 국방상의 필요에 의해 병마절도사가 병력을 이끌고 적침이 우려되는 시기에

최전방에 나가 주둔하는 이동 사령부로서 행영(行營)이 설치·운영되었다.

 

백제 시대에는 도무군의 도강과 동음현의 탐진이 영합된 지역으로

도강의 “강”자와 탐진의 “진”자를 합하여 강진이라 불렀다.

도강현은 백제시대에는 도무군, 신라 경덕왕 때에는 도무군이 양무군으로, 동음현은 탐진현으로 개칭되었으며,

고려 때 도강군으로 개칭함과 동시에 탐진현 지역 일부가 영암군과 장흥부에 속했다.

명종 2년(1172년) 이곳에 감무를 두어 행정과 병사를 병무하게 하였고,

조선 태종 17년(1417년) 도강현 지역의 일부인 현 병영면 지역에

전라도 병영(병마도절제사의 영)을 신설함과 동시에 도강현 일부와 탐진현을 합하여 강진현이라 하였다.

그 치소를 도강의 치소이던 송계로 옮겼으나 조선 성종 6년(1475년)에 다시 탐진의 치소(현 강진읍)로 복귀하였다.

 

1895년 음력 윤5월 1일 나주부 강진군으로 개편하였다. [1]
1896년 8월 4일 전라남도 강진군으로 개편하였다. [2]
1914년 4월 1일 백도면(현 신전면과 해남군 북일면의 일부)의

월성·향리·만수·좌일·금당·내봉·속리·중산·방책·남촌 등 10개 리를

해남군 부평면에 이속시키는 동시에 완도군 관할이던 가우도를 본군 도암면에 영속시켰다. [3]
1931년 4월 1일 고군면을 병영면으로 개칭하였다.[4]
1937년 7월 1일 강진면을 강진읍으로 승격하였다.[5]
1973년 7월 1일 도암면 남부의 7개 리를 분할하여 신전출장소를 설치하였고, 도암면 영파리를 강진읍에 편입하였다.
1974년 10월 26일 도암면 신전출장소를 군 출장소로 승격시켰다.
1980년 1월 1일 강진읍 송전리를 2개 마을에서 3개 마을(송정·장전·화전)로 분리하였다.
1982년 5월 10일 대구면 남부의 5개 리를 분할하여 마량출장소를 개소하였다.
1983년 2월 15일 신전출장소를 신전면으로 승격하였다.
1989년 4월 1일 마량출장소를 마량면으로 승격하였다.
1990년 8월 1일 해남군 옥천면 봉황리를 도암면으로 편입하였다.

 

강진의 문화 유적지로는

국가지정문화재(국보 1, 보물 9, 사적 3, 천연기념물 5)와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10, 무형문화재 3, 기념물 10, 민속자료 2) 및 문화재자료 3점, 등록문화재 1점이 있다.

칠량면 송정리의 지석묘군(전라남도 기념물 제66호)을 비롯하여,

대구면 수동리, 도암면 지석리, 성전면 월남리·월하리 일대에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으며,

성전면 성전리에서는 마제석검이 출토되었다.

만호성지와 신라시대 군마 방목장으로 이용한 연해산성지(沿海山城址)가 마량면 마량리에 있으며,

대구면에 구수리성지, 병영면에 병영성지가 있다.

 

 

 

 

 

불교유적으로 성전면 월하리의 무위사극락전(국보 제13호)·

선각대사편광탑비(先覺大師偏光塔碑 : 보물 제507호),

월남리 월남사지 내의 모전석탑(模塼石塔 : 보물 제298호)·석비(보물 제313호),

도암면 만덕리 백련사 내의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군동면 파산리의 금곡사5층석탑(金谷寺五層石塔 : 보물 제829호),

대구면 용문리의 정수사대웅전(淨水寺大雄殿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1호)이 있다.

 

사찰로는 무위사·백련사·금곡사·화방사·정수사·고성사·석문사가 있다.

유교문화재로 강진향교(康津鄕校)·남강서원(南康書院)·주자갈필각(朱子葛筆閣)·

수암서원(秀巖書院 : 전라남도 기념물 제39호)을 비롯하여,

이순신·김억추를 봉안한 강진금강사(전라남도 기념물 제81호), 다산초당(茶山草堂 : 사적 제107호) 등이 있다.

 

 

특히 다산초당은 정약용 이 강진으로 유배되어 살았던 집으로,

이곳에서 〈목민심서 〉등을 저술하여 실학을 집대성했다.

'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은 김정희 (金正喜)의 글씨로 유명하다.

이밖에 고려시대 가마터로 대구면 사당리의 도요지(사적 제68호)와

칠량면 삼흥리의 도요지(전라남도 기념물 제81호)가 있으며,

조선시대 가마터로 대구면 용운리, 칠량면 명주리·봉황리에 도요지가 분포하고 있다.

 

병영면 성동리에는 조선 숙종 때 숭록대부가 태어난 기념으로 축조했다고 전하는 홍교(虹橋)가 있으며,

강진읍 남성리에 강진영랑생가(전라남도 기념물 제89호),

칠량면 단월리에 강진염걸장군묘소(康津廉傑將軍墓所 : 전라남도 기념물 제36호)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대구면 사당리에 푸조나무(천연기념물 제35호),

마량면 마량리 까막섬의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172호), 병영면 삼인리의 비자나무(천연기념물 제39호),

도암면 만덕리 백련사의 동백림(천연기념물 제151호)이 있다.

무위사의 극락전
무위사의 극락전

 

주요관광자원인 많은 불교유적과, 유배되었던 유학자들의 유적지, 도요지 등이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전면 월남리의 월출산 남쪽 사면은 경치가 뛰어나 금릉경포대라 불리며,

이곳에서부터 서쪽으로 월하리에 무위사가 있고, 그 경내에는 벽화로 유명한 극락전이 있다.

만덕산 계곡에는 동백림으로 유명한 백련사가 있으며, 정약용이 귀양살이를 했던 많은 유적이 있다.

대구면에는 원형으로 복원되어 전시장이 운영되고 있는 사당리의 당전도요지를 비롯하여

약 100여 개의 도요지가 흩어져 있다.

마량면 앞바다는 도미낚시로 유명하여 주말이나 여름 휴가철이면 낚시꾼들이 찾아와 관광객 유치에 큰 몫을 한다.

 

2012.6.20.한은섭

배추쌈에 묵은지 볶음.양파 초절임

 

 달래무침

 

 냉이무침

 

 오이무침

 

 냉이무침과 봄동 걷저리

 

 바글바글 순두부 찌계

 

 건새우 고추장 볶음,오징어포 초무침.세멸치 볶음.

 

양파 간장 초절임.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세상을 살다보면 언제나 희비가 엇갈리게 마련입니다.
누구에게나 기억조차 하기 싫은 아픈 기억과
평생 간직하고 싶은 줄거운 추억이 있습니다.
아픈 기억의 순간에는
이것으로 인생의 마지막인가 하고 괴로워 했고
줄거운 기억의 순간에는
지금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아픈 순간은 기억 저편으로 흘러갔고
줄거운 순간 역시 내 마음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그때그때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처음부터
내것 이었던게 있을까요?
당신의 돈과 당신의 집도 남의 것이었고
심지어 당신의 목숨까지도 신이 주신것 아닌가요?
당신 것이 아니었던 만큼
그것이 당신 곁을 떠난다고
너무 아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의 것이 당신에게 왔듯이
당신의 것이 남에게 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언제나 큰 마음을 가지고
당신 곁을 떠나려 하는 것을 놓아 주세요.
그릇도 비워야 새 것을 담을 수 있으며
미련을 버릴 줄 알아야 마음이 자유로워집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처음부터 잘하는 것은 없습니다.
박태환 선수가
처음부터 수영을 잘 했던것은 아닙니다.
장미란 선수가 처음부터
그 무거운 바벨을 번쩍 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루하루 실력을 쌓아
마침내 세계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고난을 극복하면서 강해지는 것입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당신 마음의 근육은 날마다 조금씩 강해지고 있습니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지려 해야 합니다.
만약 둘을 가지려 덤벼들다가는
애초에 가질수 있던 하나마져 잃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작은것에 만족하고
적은 것이 흡족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자석과 같아서
욕심은 더 큰 욕심을 끌어 당기고
어두운 생각은 더 강한 어둠을 몰아옵니다.
그렇게 닥쳐온 욕심과 어두운 마음은
결국 우리의 몸과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고 맙니다.
걸레의 겉모습은 비천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만큼 귀하고 소중한 것도 없습니다.

 

걸레는
다른 사물에 묻어 있는 더러움을 닦아내기 위해
자신의 몸에 그 더러움을 묻히며 제 살을 떼어냅니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일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비천함과 소중함이 크게 엇갈릴수 있습니다.
사람을 보는 눈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이해하면 사랑의 씨앗이되지만
누구를 오해하면 미움과 증오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걸레가 되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극락과 지옥은 우리 마음속에 있으니까요..
오늘도 참된 인생을 만들어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면서..

 

 

                                               2012.6.20.바보 한은섭

여수 엑스포 빅오광장에서 분수쇼를 시원하게 감상하고있다.

동양 사상 [東洋思想]과 서양 사상 [西洋思想]

 

동양 사상 [東洋思想]
중국과 인도, 한국 등 동양에서 성립된 여러 사상을 통틀어 이르는 말.

 

사상 [四象] 동양 철학
우주 자연과 인간 사회의 여러 현상을 4가지 상징으로 풀이한〈주역 周易〉의 개념.

 

〈주역〉 계사상(繫辭上)에서는 "역(易)에 태극(太極)이 있다.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사상은 8괘(八卦)를 낳는다"고 했다.
여기서 양의는 음양(陰陽) 또는 천지(天地)를 가리키며,
이 양의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원리라는 것을 나타낸 것이 사상이다.
 

음양의 작용으로 생겨나는 사상은
춘,하,추,동의 4시,

수(水)·화(火)·목(木)·금(金)의 4원소,
태음(太陰)·태양(太陽)·소음(少陰)·소양(少陽) 등으로 표현된다.

사상을 4시나 4원소로 표현한 것은 오행설(五行說)의 영향이다.
송대의 소옹(昭雍)은 사상을 철학적 개념으로 체계화했다.
소옹은 철저히 〈주역〉의 계사전을 계승·발전시켰다.
"하늘은 동(動)에서, 땅은 정(靜)에서 생겨났고,
동과 정이 교차하여 천지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동은 곧 양이며, 극하면 음이 발생한다.
정은 또한 유(柔)이며, 극하면 강(剛)이 생겨난다"고 하여,
동에서 하늘의 음양이 생기고 정에서 땅의 강유(剛柔)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리고 "동이 큰 것은 태양, 동이 작은 것은 소양,
정이 큰 것은 태음, 정이 작은 것은 소음이라 한다"고 하여
동과 정의 정도에 따라 음양·강유를 태·소로 구별했다.
소옹은 이러한 구분으로 더위·추위·밤·낮의 변화와
비·바람·우뢰·이슬 등 구체적인 자연현상을 풀이했다.
또 소옹은 사상에 의한 자연현상의 분류를
하도(河圖)·낙서(洛書)의 선천·후천 도수(度數)와 결합시키기도 했다.
주희(朱熹)도 〈역학계몽 易學啓蒙〉에서 소옹의 상수론(象數論)과 오행설을 결합하여
태양·소음·소양·태음 등에 각각 숫자를 부여하고, 수·화·목·금에 짝지었다.
이와 같이 사상은 오행설과 역학의 상수론에 의해 해석되어,
자연과 인간을 철학적·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주역〉 연구가 심화되면서 사상을 다루었다.
서경덕(徐敬德)은 소옹의 학설을 계승하여<온천변 溫泉辨><성음해 聲音解> 등
사상론에 입각한 저술을 남겼으며,
이황(李滉)은 주희의 〈역학계몽〉을 풀이한 〈계몽전의 啓蒙傳疑〉를 지었다.
이러한 연구는 장현광(張顯光)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었는데,
그는 이전의 모든 역설(易說)을 총망라하여 세밀하게 분석했다.

한편 정약용(丁若鏞)은 〈주역〉을 고전의 본래적 의미로 이해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주역사전 周易四箋〉에서 여러 가지로 사상의 뜻을 살피고,
사상을 4계절의 변화와 8괘를 생성하는 4가지의 기로 풀이했다.
한말에는 이제마(李濟馬)가 사람의 체질을 사상으로 분류하여
치료법을 강구한 독창적인 의서인 〈동의수세보원 東醫壽世保元〉을 편찬했다.

 

서양의 사상

서양의 사상은 지금까지 많은 도전을 받았고,
자체 내에서 깊은 반성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아직도 현대 사상의 주역으로 군림하고 있다.
즉 서양인들의 역사와 생활 속에서 형성된 그들의 사상은
19세기부터 동방으로 진출하여 일시에 동양 사상을 위압한 채
자기들의 사상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여,
그 결과가 인간의 자기 소외(自己疏外), 물질문명의 만개(滿開)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평가는 어찌 되었든 그들의 사상이 이미 상당히 한국 속에 침투하여
한국인의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한국인로서는 앞으로 동서양이 하나가 되는 새로운 시대에
한국인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그들 사상의 유래와 진수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양 사상의 연원은

그리스 사상(헬레니즘)과

유대-기독교 사상(헤브라이즘)이다.

전자는 폴리스를 배경으로 한 자유로운 시민 사이에서,
후자는 광막한 사막 지대를 배경으로 한 수난의 유목민 사이에서

각각 발원하여 처음에는 한 사회,
한 민족의 사상이던 것이 점차로 그 심도(深度)와 진폭(振幅)이 확대됨에 따라
지중해 연안의 통일된 고대 사회 속에서 합류하게 되었다.

 

전사(戰士)의 공동체로서의 폴리스와 그들의 자각적(自覺的)인 연맹·단결 속에서
그리스인은 개인의 자각적·목적적인 의지나 자유를 익히게 되었고,
합리적인 이성이 인간 생활의 가장 중요한 본령(本領)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절망적인 자연환경과 타민족의 압박 속에서 온갖 수난을 겪고서도
민족의 통일성을 지켜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대적인 유일신(唯一神) 신앙 속에서 구원을 기대하고,
이 신앙을 통하여 자신들의 행복이나 단결을 기원하였다.
그들은 현실 속에서의 합리적인 사고보다는 절망적인 운명을 극복해 줄 수 있는
비합리적인 신앙과 신의 구원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스인들의 사고가 자연 철학에서 인간 중심으로,
다시 개인의 행복 문제로 초점을 옮겨가고 있는 동안에
이스라엘에서는 배타적인 민족종교로서의 유대교가 쇠퇴하고,
사랑과 구원의 종교인 기독교가 일어나 헬레니즘 세계 속에 파급되기 시작하였다.

로마 제국 속에서 만난 이들 두 사상은 처음에는 서로 충돌·절충을 거듭하였으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성 때문에 결국은 하나로 융합될 수 있었다.

즉 그리스 사상과 기독교 사상은 그들 간의 근원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 함께 민족을 넘어선 하나의 세계, 하나의 인류를 전제로 한 것이었고,
세속적인 문제를 넘어서서,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궁극적인 행복과
구원을 과제로 한 점에서 일치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전자가 비교적 로마의 상류층에서부터,
후자가 비교적 로마의 하층민 속에서부터 퍼져나갔지만,
그들은 결국 로마 세계의 붕괴와 함께 새로운 중세 사회의 두 기둥이 될 수 있었다.

사상사상(思想史上) 그들 두 사상이 어느 때는 한쪽이 다른 쪽을 위압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한쪽이 다른 쪽과 격렬한 대립을 일으키는 일이 있었지만,
서양 사상은 이 두 연원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표면상으로 기독교 사상이 그리스 사상을 위압하는 가운데
그러나 실은 내면적으로 후자를 포용하는 가운데,
중세 봉건사상이 1000년간 지속한 다음,

이번에는 후자의 전자에 대한 반발로부터
새 시대의 사상이 형성되니 이것을 근세(近世) 사상이라고 한다.

근세는 확실히 고대 그리스의 인간 중심·합리주의를 회복시켰고,
개인의 원자적(原子的)인 독립성을 더 추가하여

자유·평등·박애의 시민 민주주의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근세라고 해서 중세를 전면 부정한 것은 아니요,
중세의 기독교 사상은 계속해서 근세 사상의 저변(底邊)에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인간 이성의 능력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그 이성의 한계와 이성 이전의 비합리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미 자기들 내면에 깊이 파고든 두 사상의 갈등과 모순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성의 성과인 과학 문명의 발달과
시민 사회의 번영 속에서도 이성(理性)과 신앙(信仰) 간의 논쟁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더구나 고도화된 과학 문명과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한계가 뚜렷해지기 시작한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서양 사상은 다시 한 번 진통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부는 이성의 합리성을 교조화하여 무신론(無神論)·유물론(唯物論)으로 발전하였고,
일부는 이성의 한계를 절감하고 비합리주의 쪽으로 발전하였으며,
일부는 근대문명 자체에 절망한 나머지 중세 기독교로의 복귀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거쳐 온 이전의 사상 전체에 실망한 일부 사람은
자기들의 위기가 서양 사상 내부의 보다 근본적인 결함에서 온다고 생각하여,
지금까지 별로 겪지 못한 전연 이질적인 동양 사상에 기대를 걸어보기도 하였다.

이들 여러 갈래의 움직임은, 20세기 후반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그 중 어느 것이 과연 타당한 길인지 아직 판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 단계에서 한국인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서양 사상 자체의 내적 본질이나
현대 세계의 상황으로 보아 서양 사상만으로의 전개는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동양 사상이 이미 오래 전에 순수한 동양 사상만으로의 전개를 단념했듯이
서양 사상 역시 그들의 것만으로는 뚜렷한 진로를 찾기가 힘들 것이다.
세계가 이제 비로소 진정한 하나로 되어 가듯이 인간의 사상도 이제부터는 하나의 세계 속에서
새로 출발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2012.6.1.한은섭 옮김

 

사월초파일 [四月初八日] 석가모니의 탄생일

 

초파일이라고도 한다.
음력 4월 8일이며 불교의 연중 기념일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이다.
경론(經論)에는 2월 8일, 4월 8일의 설이 있으나,
중국·한국에서는 음력 4월 8일을 석가모니 탄생일로 기념하여왔다.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사월초파일을 기념하는 법회를 비롯하여
연등(燃燈) 관등(觀燈)놀이(제등행렬)·방생(放生)·물놀이·성불도놀이·탑돌이 등이 있다.
연등놀이는 석가 탄생을 축하하여 등공양(燈供養)을 하던 풍습에서 나온 것이다.
인도를 비롯하여 중국·한국·일본 등에서 널리 행하는 행사이다.
연등을 통해 지혜를 밝힌다는 상징성이 있다.
사월초파일 연등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의종 때 백선연(白善淵)이 4월 8일에 점등했다는 것으로,
당시 초파일 연등을 1번 밝히면 3일 낮과 밤 동안 등을 켜놓고 미륵보살회를 행했다고 한다.
연등을 만들 때 그 모양은 수박·거북·항아리 모양 등으로 매우 다양했다.
이렇게 만든 등은 등대(燈臺)를 세워 걸어놓거나 연등을 실은 배를 강에 띄워놓았다.
관등놀이는 일반 사람들이 연등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 놀이는 일제강점기에 금지되었다가 8·15해방 후 제등놀이로 부활되었다.
방생은 다른 이가 잡은 물고기·새·짐승 등의 산 것을 사서 산이나 못에 놓아 살려주는 일을 말하고,
물놀이는 아이들이 등대 밑에 자리를 깔고 느티떡과 소금에 볶은 콩을 먹으며 등대에다 물을 담아놓은
다음 바가지를 엎어놓고 이를 두드리며 노는 놀이를 말한다.
이렇듯 많은 놀이가 성행했음은 초파일 행사가 불교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민속놀이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날은 석가모니의 탄생일이라 하여 불탄일(佛誕日) 또는 욕불일(浴佛日)이라고도 하나,
민간에서는 흔히 초파일이라고 한다.
석가의 탄생일이기 때문에 원래는 불가(佛家)에서 하던 축의행사 (祝儀行事)였으나
불교가 민중 속에 전파됨에 따라서 불교 의식도 차츰 민속화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신라는 여러 가지 불교 행사가 성했는데,
무열왕과 김유신 장군이 불교를 호국(護國)의 바탕으로 참여시키는 정책을 유지하면서
불교행사는 이전부터 전해오던 세시행사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병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라의 팔관회(八關會)는 불교행사가 신라의 세시풍속으로 승화된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월 초파일은 불도의 행사가 신라의 호국불교로 승화된 이래 후삼국을 거쳐서
고려조에 이르는 동안 우리의 민속과 동화되었던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백제와 고구려 본기에는 불도의 행사가 세시의 행사로 거행되었다는 기록은 없으나
신라본기에서는 석가모니 탄생일을 팔관회로 거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고려사 (高麗史)》에 따르면, 왕성(王城)에서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정월 대보름에는 14일, 15일 이틀간 을 저녁에는 연등(燃燈)을 하던 풍속이 있었으나
최이(崔怡)가 4월 8일로 옮겨서 하게 하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사월 초파일은, 불교의 축의행사로 전래되었다가 민간의 세시풍속과 자연스럽게 동화되면서,
신라의 팔관회, 고려의 연등회 등을 거치면서 완전히 정착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월초파일의 풍속
이 날의 가장 대표적인 풍속은 관등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날을 관등절, 연등절 또는 등석 (燈夕)이라고도 한다.
초파일을 여러 날 앞두고 가정이나 절에서는 여러 가지 등을 만든다.
이 때 가정에서는 가족의 수대로 등을 만든다.
초파일 며칠 전부터 뜰에 등간(燈竿)을 세워 두고 간상 (竿上)에 꿩 꼬리털을 꽂고
물들인 비단으로 기를 만들어 다는데, 이를 호기(呼旗)라고 한다.
이 호기에 줄을 매고 그 줄에 등을 매단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 등간을 만들지 못하는 집에서는 나뭇가지나 혹은 추녀 끝에
빨래 줄처럼 줄을 매고 그 줄에 등을 매달아 두기도 한다.
그리고 초파일 저녁이 되면 등에 불을 밝힌다.
이 등석 행사는 그 이튿날인 9일에 그치는데,
부유한 집에서는 큰 대를 수십 개씩 얽어 매어 쓰기도 하고 해와 달의 형상으로 만들어 꽂아서
바람에 따라 굴러 돌게 하기도 하며, 굴러 돌아다니는 등[轉燈]을 매달아서
그 등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마치 탄환이 달아나듯 하게도 한다.
때로는 종이에다 화약을 싸서 이것을 노끈이나
또는 새끼줄에 얽어 매어 불을 당기면 터져서 꽃불같이 비 오듯 하게도 하고,
종이로 용을 만들어 바람에 날려 띄우기도 하며,
또는 인형을 만들어 옷을 입히고 얽어 띄워서 요동케 하여 놀기도 한다.
또 옛날 각 상점에서는 등대를 서로 높이 세우려 고 다투어 승부 삼아 만들기도 한다.
등의 모양은 과실, 꽃, 어류 또는 여러 가지 동물 모양을 본떠서 만들기 때문에
그 이름만 해도 수박등 · 마늘등 · 참외등 · 연화등 · 목단등(牧丹燈) ·
잉어등(鯉魚燈) · 거북등 · 봉등(鳳燈) · 계등(鷄 燈) · 학등(鶴燈) ·
오리등 · 일월등(日月燈) · 선인등(仙人燈) · 칠성등(七星燈) · 고등(鼓燈) ·
누각등(樓閣燈) 등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등에는 '태평만세(太平萬歲)' '수복(壽福)' 등의 글을 쓰기도 하고,
기마장군상(騎馬將軍像)이나 선인상(仙人像)을 그리기도 한다.
 또 화약을 층층으로 새끼줄에 매달아 불을 붙이면 불꽃이 튀면서 퍼지는데,
이러한 놀이로 흥을 돋우기도 하고 때로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줄에 매달아 바람에 흔들리게 하여 놀기도 한다.
그런데 등을 달았을 때 불이 환하게 밝으면 길조로 해석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사월 초파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인가와 관청, 저자에서는 모두가 등간(燈竿)을 세운다.
이 등간은 대나무를 연하여 묶고 그 높이는 십여 장(丈)이나 된다.
등간 위에는 비단이나 면포를 잘라서 꽂으며 깃발 밑에는 갈고리가 달린 막대기를 가로 대고
또 갈고리에는 줄을 얹어서 줄의 좌우 끝은 땅 위에까지 내려오게 한다.
그런 연후 밤이 되면 등에다 불을 켜는데

많이 달 때는 십여 개의 등을 달고 적게 달 때는 3, 4개의 등을 매달아 놓는다.
일반 민가에서는 아이들 식구 수대로 매다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등을 매단 모양이 층층이 연하여 마치 구슬을 꿰맨 모양 같이 보인다.
먼저 줄 한 끝을 꿰어 매고 그 다음에는 아랫 등의 꼬리편을 매어서 이것을 가만히 잡아 올리면
그 등을 매단 줄의 갈고리까지 한꺼번에 위로 올라간다.
등은 마늘, 외, 꽃잎, 새, 짐승 같은 형상의 것, 또 누대(樓臺)와 같은 것들이 있어서
각양각색으로 꾸며져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키는 어렵다.

어린 아이들은 등대 밑에다 깔개를 깔고 느티떡,
소금물에 볶은콩 등을 먹으며 물동이에 바가 지를 엎어놓고 돌리면서 바가지를 두드린다.
이 놀이를 수부(水缶) 즉 물장구 놀이라 한다.
중국의 연등회(燃燈會)는 정월 보름에 행하는 것으로 우리나라는 4월 8일에 행한다.
이 날의 근원은 불교에서 나왔고 석가모니의 탄생일이다."

 

4월의 시절음식
사월 초파일을 전후해 주로 먹는 음식으로는
찐떡(蒸餠)·화전(花煎)·어채(魚菜)·어만두(魚饅 頭)·미나리강회 등이 있다.
찐떡은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방울같이 빚어서 술에 찐다.
그런 다음에 팥 속에 꿀이나 설탕을 섞어서 방울 속에 넣고, 또 방울 위에는 대추를 붙인다.
화전은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동그랗게 만 들고 진달래꽃을 붙여서 기름에 지지는 것이다.
어채는 생선·국화잎사귀·파·석이버섯·전복· 달걀 등을 가늘게 썰어서 섞은 것인데,
여기에 초고추장과 참기름을 쳐서 먹는다. 어만두는 생선을 두껍게 져며 그 조각에 고기를 넣어서 익힌 것이다.
미나리강회는 미나리를 삶아서 파 하나, 마늘 하나를 함께 하여 고추 모양으로 감아서 회를 하는 것인데,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2012.5.26.한은섭 옮김

 

 

 


오늘은 2012년5월5일 어린이날 이기도 하지만
24절기중 하나 여름이 시작 된다는 입하다.
입하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기로 하자.

 

입하 [立夏] 발음 : [이파]
일 년 중 여름이 시작하는 때.

 

•24절기중 일곱 번째. 立夏는
음력으로는 4월절(四月節),
양력 5월 5~6일경으로, 곡우(穀雨)와 소만(小滿) 사이에 든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45도 때. '여름에 든다.'는 뜻으로 초여름의 날씨를 보인다.
여름은 立夏(입하)에서부터 시작하여 立秋(입추)전까지이다.

 

•옛사람들은 입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① 청개구리가 울고,
② 지렁이가 땅에서 나오며,
③ 왕과(王瓜: 쥐참외)가 나온다고 하였다.

 

•곡우 때 마련한 모판의 모도 잘 자라고 있어서 농사일은 더 바쁘다.
파릇한 신록(新綠)이 신비한 색상으로 온 누리를 뒤덮는다.

 

•곡우전후에 채다한 세작을 茶(차)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치나,
한국의 茶聖(다성), 초의(艸衣)선사는 '우리의 차(茶)는
곡우 전후보다는 입하(立夏) 전후가 가장 좋다'고 하였다.
춘분점을 기준으로 하여 태양이 황도(黃道)의 45도(度)에 이르는 때로 양력 5월 5,6일경이다.

 

입하는 말 그대로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과거엔 입하가 되면 농작물도 자라지만 해충도 번성하고 또 잡초까지 자라서
이것을 제거하는 행사를 권장하였다.

입하에 이르면 그간 일교차가 크고 변화많던 날씨는 안정되고,
천지만물은 무성히 자라기 시작한다.
잎새를 띄운 나뭇잎은 윤기를 더하고 그렇지 않은 나무들은 마지막으로 싹을 띄워
푸르름의 여름으로 넘어가고자 몸부림친다.
이때 마을에는 한두 그루쯤 있는 이팝나무에서 흰꽃이 핀다.
꽃이 마치 흰 쌀밥 같이 온 나뭇가지를 뒤덮으며 피는데
꽃이 한꺼번에 잘 피면 그해 풍년이 들고,

꽃이 신통치 않으면 흉년이 들 징조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 조상들은 쌀밥나무라 부른 이팝나무를 통해

그해의 풍흉을 점쳤던 것이다.

 

역시 계절의 여왕은 이때다.
산에는 뻐꾸기 울어 예고 들에는 온갖 나물들이 지천으로 돋아나 입맛을 돋군다.
녹음이 무성해지고 농가에서는 못자리 돌보기 등의 농사일이 한창일 때다.

"입하가 지나면 여름"이라 했지만
산간지방에서는 우박이 내려 담배, 깻잎, 고추 등 어린 모종이 해를 입기도 한다.
또 높새바람이 불어 농작물의 잎을 바짝 마르게 하는 해를 입히기도 한다.

여름 '夏'의 의미는 화려하게 꾸민 귀인의 모습에서 왔지만
뒤에 화려한 화(華)의 의미와 혼용되어 왕성한 계절인 여름의 뜻이 되었습니다.

역시 여름은 번창과 무성함을 의미하는 계절로 힘의 원천을 느낄 수 있고
개방적이며 젊음이 넘치는 시기입니다.

음력으로 4월에서 6월까지가 여름인데,
오행(五行)으로는 화(火)이고 방위는 남(南), 오색(五色)은 적(赤)에 해당합니다.

 

2012.5.5.아침 한은섭

 

 

 

 

 

 

밥맛도없고 입맛도 없는데

상큼한 냉이 무침과 달래 무침

그리고 오이무침으로 잃었던 입맛을 찾아보자

내가 직접 무친 세가지 반찬들

저녁에 마나님이 퇴근해서 집에오면

맛나게 먹겠지

맨날하는 요리 반찬 식사준비

오늘도 난 혼자서 저녁식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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