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의 10가지 오묘한 특성과 심오한 의미


연꽃은 다음과 같은 10가지 오묘한 특성과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답니다.
연꽃에 담겨진 그 오묘한 특성과 깊은뜻을 헤아려 애써 닮고져하는 사람은
연꽃처럼 청정하게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군요.



1. 이제염오(離諸染汚)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주변의 부조리와 환경에 물들지 않고 고고하게 자라서
아름답게 꽃피우는 사람을 연꽃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이제염오(離諸染汚)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2. 불여악구(不與惡俱)

연꽃잎 위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
물이 연잎에 닿으면 그대로 굴러떨어질 뿐이다.
물방울이 지나간 자리에 그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와 같이 악과 거리가 먼 사람,
악이있는 환경에서도 결코 악에 물들지
않는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불여악구(不與惡俱)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3. 계향충만(戒香充滿)

연꽃이 피면 물속의 시궁창 냄새는 사라지고 향기가 연못에 가득하다.
한 사람의 인간애가 사회를 훈훈하게 만들기도 한다.
고결한 인품은 그윽한 향을 품어서 사회를 정화한다.
한자락 촛불이 방의 어둠을 가시게 하듯

한송이 연꽃은 진흙탕의 연못을 향기로 채운다.
이렇게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계향충만(戒香充滿)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4. 본체청정(本體淸淨)

연꽃은 어떤 곳에 있어도 푸르고 맑은 줄기와 잎을 유지한다.

바닥에 오물이 즐비해도 그 오물에 뿌리를 내린다.

연꽃의 줄기와 잎은 청정함을 잃지 않는다.
이와 같아서 항상 청정한 몸과 마음을 간직한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본체청정(本體淸淨)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5. 면상희이(面相喜怡)

연꽃의 모양은 둥글고 원만하여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온화해지고 즐거워진다.
얼굴이 원만하고 항상 웃음을 머금으며
말은 부드럽고 인자한 사람은 옆에서 보아도
보는 이의 마음이 화평해진다.
이런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면상희이(面相喜怡)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6. 유연불삽(柔軟不澁)

연꽃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하다.
그래서 좀처럼 바람이나 충격에 부러지지 않는다.
이와같이 생활이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으면서도
자기를 지키고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유연불삽(柔軟不澁)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7. 견자개길(見者皆吉)

연꽃을 꿈에 보면 길(吉)하다고 한다.

하물며 연꽃을 보거나 지니고 다니면 좋은일이 아니 생기겠는가!
많은 사람에게 길(吉)한 일을 전해주고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견자개길(見者皆吉)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8. 개부구족(開敷具足)

연꽃은 피면 필(必)히 열매를 맺는다.사람도 마찬가지다.
꽃피운 만큼의 선행은 꼭 그만큼의 결과를 맺는다.
연꽃열매처럼 좋은씨앗을 맺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개부구족(開敷具足)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9. 성숙청정(成熟淸淨)

연꽃은 만개(滿開)했을 때의 색깔이 곱기로 유명하다.
활짝핀 연꽃을 보면 마음과 몸이 맑아지고 포근해짐을 느낀다.

사람도 연꽃처럼 활짝 핀 듯한 성숙감을 느낄수 있는 인품의 소유자가 있다.
이런 분들과 대하면 은연중에 눈이 열리고 마음이 맑아진다.

이런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성숙청정(成熟淸淨)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10. 생이유상(生已有想)

연꽃은 날 때부터 다르다. 넓은 잎에 긴 대,
굳이 꽃이 피어야 연꽃인지를 확인하는것이 아니다.
연꽃은 싹부터 다른꽃과 구별된다.
장미와 찔레는 꽃이 피어봐야 구별되고, 백합과 나리도 마찬가지다.
이와같이 사람중에 어느누가 보아도 존경스럽고 기품있는 사람이 있다
옷을 남루하게 입고 있어도 그의 인격은 남루한 옷을 통해 보여진다.

이런 사람을 연꽃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연꽃의 생이유상(生已有想)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생명(生命)은 취산(聚散)이다.
일체(一切) 지, 수, 화, 풍(地水火風)이
모두 내 전생(前生)의 몸(身)이였으니
살아있는 모든 목숨들을 항상 존중해야 한다.

 

보살(菩薩)은 무슨 일을 하든지 중생(衆生)을 위해서 하고,
중생(衆生)은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自身)을 위해서 한다.
보살(菩薩)같은 마음으로 살자.

 

설사 신(神)에게 백, 천(百千)번 기도하고
모든 외도(外道)에게 공양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에게 기쁨으로 베푸는 공덕(功德)의
1/16에도 미치지 못 하리니,

사람을 가리지 말고
평등(平等)한 마음으로 골고루 보시(布施)하라.

 

선(善)과 악(惡)은 반드시 과보(果報)가 있으니
자신(自身)이 닦은 선악(善惡)의 과보(果報)는 그냥 살아지지 않는다.
현생(現生)에서 받지 않으면 후생(後生)에서 라도 받게 된다.

 

음식을 보시(布施)하면 큰 힘을 얻고,
의복을 보시(布施)하면 좋은 얼굴을 얻고,
등불(眞理)을 보시하면 밝은 눈을 얻는다.

평상시(平常時) 복(福) 짓는 마음을 갖추면
행복한 인생길이 열려있다.

 

idiots  HanEunSeob

 

 

 

 

이 글을 읽는 그대에게

 

지금 이 글 속에 나도 있고
이 글을 읽는 그대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글 속에서 그대는 꽃이 되고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됩니다.

 

이 글을 읽는 그대는 나무가 되고
나는 그대를 휘감는 바람이 됩니다.


글 속에서 그대는 그리움이 되고
나는 그대를 그리워하는 기다림이 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를 느끼고
그대의 가슴 속에 담아둘 수 있다면
난 그대의 시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 이 순간만이라도
그대와 나는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대를 사랑해서 인연이라 말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리움 하나 만들어 갈 뿐입니다.

 

글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하고
그리워하고 보고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늘이 허락한 인연이 아니라면
만남 또한 없을 겁니다.

 

만약에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인연이라 한다면
내 영혼을 불사른다 해도 아깝지 않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가난한 사랑이라 해도 좋은 그런 사랑이라면
우린 글 속에서 행복해 할 테니까요.

 

글 속에서 그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지라도
마음하나 만은 언제든 그대에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글 속에서 그대를 그리워하며
그대 사랑을 가슴속으로 느껴도 될는지요.?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는 미련이지만
글 속에서 그대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글 속에서는 그대와 나 함께 하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인연이라 말하며
이 글을 읽는 동안이라도
나의 그대가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언제나 그리워 할 그런 님이 되어 주시기를.

 

idiots HanEunSeob


 

 

아름다운 마음 그냥 드립니다.

 

마음이든,물건이든 남에게 주어
나를 비우면
그 비운 만큼 반드시 채워집니다.

 

남에게 좋은 것을 주면 준 만큼
더 좋은 것이 나에게 채워집니다.

 

좋은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좋은 말이 떠오릅니다.

 

좋은 글을 쓰면 쓸수록
그만큼 더 좋은 글이 나옵니다.

 

그러나 눈앞의 아쉬움 때문에
그냥 쌓아 두었다가는
상하거나 쓸 시기를 놓쳐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좋은 말이 있어도 쓰지 않으면
그 말은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더 이상 좋은 말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중에 할 말이 없어 질까 두려워
말을 아끼고 참으면 점점 벙어리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샘물과 같아서
퍼내면 퍼낸 만큼 고이게 마련입니다.

 

나쁜 것을 퍼서 남에게 주면
더 나쁜 것이 쌓이고,
좋은 것을 퍼서 남에게 주면
더 좋은 것이 쌓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그냥 쌓이는 게 아니라
샘솟듯 솟아 나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니 말입니다.

 

가난이 두렵다고
과도한 재물을 탐하지 말 것이며,
부자의 있음을 비방하여
자신의 무능을 비호하지 말아야 합니다.

 

차고 넘치면,
비우면 가득하다는
진실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욕심을 버린 자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날에도
견딜 수 있는
커다란 나무그늘 하나를
마음 속에 가진 자일 것입니다.

 

욕심을 버린 자는
찬바람이 몰아치는 광야에서도
견딜 수 있는
따스한 동굴 하나쯤 마련해 가지고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행복은 문을 두드리며
밖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마음 안에서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행복이라면

멀리 밖으로 찾아 나설 것 없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은 우리가 자신을 버리고
남에게 주느라고 여념이 없을 때
슬쩍 찾아와 피어납니다.

 

움켜쥐고 있는 행복은 씨앗이지만
나누는 행복은 향기로운 꽃입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무료로 드립니다..

향기로운 마음도 덤으로 드리지요..

부디 많이 가져가셔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이면
세상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남죠..

 

어느 꽃보다 아름다운 마음
어느 꽃보다 향기로운 마음..

함초롱 이슬 머금은
싱싱한 마음이 모두 무료입니다..

 

항상 결핍증에 시달리시는 분
어쩌다 마음이 상해서 못쓰게 된 분
신선한 마음 가져다 쓰세요..

idiots HanEunSeob


남녀 뇌 구조 차이[男女 腦 構造 差異]

 


남자보다 여자가 일반적으로 더 오래 사는 것으로 통계에 나와 있는데

(한국 평균수명 : 남자 75세, 여자 82세, 일본 평균 수명: 남자79세, 여자 86세)

이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여러 가지 가능한 이유가 제시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바로 뇌의 구조와 기능이

일부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비교적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남자의 뇌                                                                                        여자의 뇌

 

 

여자가 더 오래 산다, 그 이유는 뇌의 차이?

우선 염색체의 구성이 남자는 XY, 여자는 XX로 서로 다르다.

이런 염색체 구성의 차이가 어떻게 여자와 남자를 다르게 만드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염색체의 차이만이 남성다움의 결과를 자동적으로 가져오지는 않으며

남성이 남성으로 되기 위해서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의 수준이 높아야 한다.

이 남성호르몬의 생성과 유리는 뇌 호르몬 조절센터인 시상하부에서 직접 조절하고 있다.

즉 시상하부에서 호르몬 조절 인자가 나와 뇌하수체에 작용하고,

뇌하수체 호르몬이 유리되어 최종적으로 고환에 작용하여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유리되어 나온다.

동물의 경우 호르몬 생산 공장인 뇌하수체 바로 위에 있는 이 시상하부가 암컷보다 수컷에서 더 크다.
 

 

시상 하부의 크기, 남자가 더 크다

스탠포드 대학의 러셀 퍼놀드(Russell D. Fernald)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어느 한 수컷이 그 무리의 우두머리가 될 때 그 수컷의 시상하부가 눈에 띄게 커진다고 한다.

그러나 그 수컷이 다른 수컷에게 지배권을 빼앗기게 되면 그 시상하부가 쪼그라든다고 한다.

이 시상하부의 지배를 받고 있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유리되어 나와 거꾸로 뇌신경계에 영향을 미친다.

태어나기 전에 테스토스테론이 너무 많으면 왼쪽 뇌보다 오른 뇌 반구가 우세하게 된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 때문에 남자 쪽이 왼손잡이가 더 많은 것 같으며

남자 아이들을 더욱 난폭한 행동으로 몰아 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 인디아나 대학 킨제이 연구소장 준 라이니시 박사(June M. Reinisch)는

6-10세의 형제 17쌍과 자매 17쌍을 상대로 호르몬과 공격성 간의 상호관계를 연구하여 보고하였다.

스트레스가 가해지는 상황에 대한 대응을 상상해 보라는 다지 선택형 실험에서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보다 더 공격적인 대답을 하였다.

 

시상하부에 대한 연구와는 별도로 최근 뇌과학자들은

뇌의 왼쪽 반구와 오른쪽 반구간의 의사소통을 담당하고 있는

두꺼운 신경망인 『뇌량(뇌의 다리)』이 남자보다 여자 쪽이 약 10% 정도

더 크게 발달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뇌의 크기를 감안한 상대적인 뇌량의 크기는 여자가 더 크다고 보고하고 있다.

 

 

여자가 좌우의 뇌를 더 잘 연결해서 사용한다

남자는 분석적이고 언어적인 활동을 할 때 주로 좌뇌를 사용하나

여자는 양쪽 뇌를 동시에 같이 사용하는 것으로 대체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듣고 기억하고 말하는 중심센터인 측두엽 부위의 신경세포 숫자가

여자에서 10%쯤 많다는 사실도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왼쪽 대뇌손상은 여자보다 남자에게 언어능력의 장애로 잘 나타나고

오른쪽 대뇌손상은 남자에게 공간능력의 장애로 더 잘 나타난다.

즉 남자는 뇌 손상에서 여자보다 취약하여 손상에 더 큰 타격을 받기 때문에

이 또한 남자가 오래 못사는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연구팀에 의하면

여자는 철자를 생각하는데 뇌의 좌우 양쪽 모두를 쓰는데 비해 남자는 주로 왼쪽 뇌를 쓴다고 한다.

뇌의 오른쪽은 감정을 이해하는데 쓰이므로

여자들은 철자를 생각하는데도 더욱 많은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동원하는 셈이 된다.

이렇기 때문에, 더 언어구사능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철자를 쓸 때, 여자들이 더 많은 뇌를 사용한다.
고대에는 병법 가운데 “미인계”가 자주 이용되었다.

네덜란드 연구팀은 40명의 남녀 대학생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매혹적인 이성과의 대화가 뇌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고하였다.

남자의 경우 아름다운 미인과 대화할 때는 집 주소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고

기억력 테스트에서도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특히 여자에게 매력을 많이 느낀 남자일수록 점수가 낮았다.

그러나 여자는 매력적인 남자와 대화를 해도 기억력 점수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런 결과에 대해 연구팀은 여자는 좌우뇌를 모두 동원하여 나이, 경제력, 친절함 등을 다양하게 평가하나

남자는 좌뇌 위주로 분석하여 외모의 아름다움만을 보고

전체적인 이미지, 성격, 분위기 등을 다양하게 잘 보지 못하는 것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자의 뇌가 스트레스 해소를 더 잘한다

여자들은 분위기를 잘 감지하고 전체적인 감정 파악능력이 뛰어나나 감정에 치우치기가 쉽다.

여자들은 감정이 풍부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스트레스 상황 하에서

이를 감정적으로 해소를 잘하기 때문에 장수하는 경향이 많다는데,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모여 앉아 더 이야기를 잘 하고,

잘 웃을 뿐만 아니라 울기도 잘하며 복잡한 생각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움직이면서 살아간다.

심리학자인 노르만 커즌즈(Norman Cousins) 박사는

웃음이 질병치료에 신비로운 영향을 미치며 장수하는데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였다.

또한 프레이(William Frey) 박사는

감정적인 눈물 속에는 우리 신체가 내보내야 하는 많은 유해물질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는 때로는 우는 것도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같이 남자들은 외부로부터 오는 여러 가지 자극에 대하여 여자들처럼 감정적 반응을 잘 나타내지 않고

감정적 표현을 내부에서 억제하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더 많은 손상을 입고 있다. 
 
또한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여자들은 양쪽 뇌를 원활하게 잘 사용하기 때문에

주변 환경과 분위기와 감정 파악 능력이 뛰어나 환경에의 적응력이 남자보다 더 좋다.

여자들은 매일 살아가는 환경에 적극적으로, 효과적으로 더 잘 대처하기 때문에

생활 속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고 감정적으로 적응력이 더 좋다.

이에 비해 남자들은 좌뇌 위주의 논리적, 이론적 사고 속에서

상황을 주로 논리적으로 판단하면서 부딪치면서 더불어 살아가기보다,

남과 다른 대접을 받으면서 홀로 살아가기 때문에 변화무쌍한 환경에 감정적으로 적응을 잘 못하게 되어

생활 속에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여자보다 수명이 짧은 경향이 많다고 이해되고 있다.

이런 뇌의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실들이 작용하여 여자들이 평균 5년 이상 더 오래 살며,

100세 이상 장수자 가운데서도 여자가 2배 이상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래 살려면, 남자들도 여자들처럼 뇌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적어도 여자만큼 오래 살기 위해서는 남자들도 여자와 같은 뛰어난 적응력을 가져야 하며,

감정적 해소를 할 필요가 있다.

울적하여 울고 싶을 때는 참지 말고 울며, 이야기할 때는 너무 논리적인 데만 신경 쓰지 말고,

상대방 감정과 분위기를 파악하면서 이야기해야 한다.

어떤 생활 환경에서도 적극적이고도 낙관적인 태도로 열심히 일하고 단순하게 적응하는 것이 남자에겐 필요하다.

또한 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외상, 각종약물(향정신성 약물 등)과 알코올로부터

남자들은 뇌 손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는 것이 좋다.

즉, 위험인자에 노출되는 것을 가급적 피하고 내부에 스트레스나 자극을 쌓아두지 말고

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면서 남과의 접촉을 통해 즐겁게 더불어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부의 성문제

부부의 성을 찾아가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것은

아내는 남편의 성을,남편은 아내의 성을 추측 하는것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상대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성에 대한 당당함과 상대 배우자에게 자신의 성을 알리려는 노력이 함께해야 가능한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 여성들은 자신의 성적취향을 배우자에게 말하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부부의 행복한 성을 영위해 나가는데 있어 지뢰와도 같은것이다.

배우자가 자신의 성을 존중해주길 바라기에 앞서 자신의 성을 먼저 알고 존중하는 성숙한 여자와 남자가 되자.

 

서로 다른 남녀의 성 두뇌 지도

한마디로 남편의 뇌는 아내의 뇌보다 헐씬 성을 좋아한다.

인간의 뇌에는 성을 담당하는 버찌 크기의 시상하부가 있는데 그크기가 여자의 것보다 남자의 것이 클뿐 아니라

그것을 활성화 시키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양도 10-20배 더많다.

이는 종을 보존하려는 포유류 수컷들의 일반적 특징이다.

남편의 성적 욕구와 관심이 지나치다고 무조건 나무라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남편의 성 뇌가 매우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반면에 여자의 시상하부는 남자의 것보다 크기도 훨씬 작고 관련 호르몬의 양도 적다.

때문에 여자의 성충동은 남자에 비해 낮은것이다.

이는 여성의 임신,양육과 관련이 있는데,여자의 뇌는 남자를 고를때

상대가 자신과 자신의 아이가 자랄때까지 얼마나 잘보호하고  보살필수 있는지 그능력을 중요시 하게 된다.

여성이 결혼을 결심할 때 배우자의 경제적 능력과 책임감을 중요시 하는것은

이러한 본능과 연관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여자의 뇌에는 사랑중추와 성 중추(시상하부) 사이에 연결망이 형성되어 있어

여자의 성 중추가 작동되려면 먼저 사랑중추가 가동되어야 한다.

그러나 남자는 이런 연결망이 없기 때문에 성과 사랑을 마음먹기에 따라 따로 처리 할 수 있다.

그래서 남자의 뇌는 한번의 외도가 부부관계에 악 영향을 줄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여자의 뇌는 단 한번의 외도로 최악의 배신행위이고, 이혼사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바람을 피우는 남자는 많아도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더라도 바람을 피우는 여자는 드문것이다.

이러한 남자의 본질적 구조로 외도의 90%가 남자에 의해 주도된다.
 
남성 사망원인 1위가 암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일 통계청의 자료를 인용한 SBS의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의 사망원인 1위는 암(27.7%)으로 밝혀졌고,

2위는 뇌혈관질환, 3위는 심장질환으로 나타났다.

암은 10년 전보다 2.3% 증가한 수치를 보였으며,

여성도 암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10년 전(16.6%)에 비해 2.6% 더 늘어나 사망 원인 1위로 나타났다.

여성의 경우 다음으로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순이었다.

특히 자살로 인한 사망률이 남성의 경우 4.2%로 10년 전(2%)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고,

여성의 자살률도 1.0%에서 2.1%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기대수명은 남아의 경우 77.6세, 여아는 84.5세로 다소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남성 사망원인 1위’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남성 사망원인 1위가 암 때문이구나”,

“2001년 대비 수치도 많이 올랐다”,

“2001년보다 자살률도 2배나 올랐네”,

“자살률 증가에 대한 대책이 필요할 듯” 등의 반응을 보였다.

남자들이여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삽시다... 

 

1. 멀티 태스킹 - 다중 임무 처리 능력

여자 - 다중 프로세스 ,여자의 뇌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즉, 여자는 TV를 감상하면서 전화로 이야기하고 요리도 할 수 있습니다.

남자 - 단일 프로세스 ,남자의 뇌는 한 번에 하나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남자는 TV를 시청과 동시에 전화로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남자들은 말하는 동안에는 TV를 중지합니다.
남자들은 TV를 시청하거나 전화통화를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한가지만 할 수 있습니다.

 

2. 언어

여성은 쉽게 여러 언어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습니다.
남자는 쉽게 언어를 배울 수 없지만 남자들은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평균 3살짜리 소녀가 같은 나이의 소년보다 3배 정도 많은 어휘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분석 기술

남자의 뇌는 분석 과정을 처리하기 위한 공간이 넓습니다.
남자들은 쉽게 분석하고 과정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며 건물의 지도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지도를 여자들에게 보여주면 여자들은 잘 이해를 못합니다.
여자들은 쉽게 지도의 세부사항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자들에게는 단지 지도는 종이 위의 선들의 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4. 자동차 운전.
차를 운전하는 동안 남자들은 뇌 속에서 분석 공간이 사용이 됩니다.
남자들은 차를 빠르게 운전할 수 있습니다.
남자들은 멀리 있는 물체를 보면, 즉시 뇌가 물체의 방향과 속도를 분석하여 거기에 따라 운전을 합니다.

반면에 여자들은 물체의 방향이나 속도를 인식하는데 오래 걸립니다.
남자들은 차에서 오디오를 멈추면 그때는 그들의 단일 프로세스가 오로지 운전에만 집중하게 합니다.

 

5. 거짓말

남자가 여자 앞에서 거짓말을 하면 남자들은 쉽게 들킵니다.
여자들의 초자연뇌는 70% 얼굴의 표정과 20% 행동, 10%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관찰합니다.
남자의 뇌는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여자들은 쉽게 남자 앞에서 거짓말을 합니다.

오! 남자들이여... 여자 앞에서는 마주보고 거짓말 하지 마세요.^^


6. 문제 해결

만약에 남자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남자들의 뇌는 명확하게 그 문제를 분류하여
그것들을 뇌 속에 개개의 방을 만들어 넣고 차례로 해결책을 찾습니다.
종종 여러분은 오랫동안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남자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여자들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여자들은 문제를 분류할 수 없습니다.
여자들은 누군가 그것을 들어주기를 원합니다.
여자들은 누군가에게 그것을 다 말하고는 행복하게 잠자리에 들게 됩니다.
여자들은 문제가 해결되었던 안 되었던 그 문제에 관하여서는 걱정을 안 합니다.

 

7. 그들이 원하는것들

남자는 상태, 성공, 솔루션, 큰 프로세스 등을 원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관계, 친구, 가족 등을 원한다.


8. 불행

여자들은 그들의 관계에서 불행하다고 느끼면, 여자들은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남자들은 그들의 일에 있어서 만족할 수 없으면 그들은 그들의 관계에 집중할 수 없다.

 

9. 대화
여자들은 대화에서 간접적인 언어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남자들은 직설적인 언어들을 사용한다.


10. 감정에 대한 처리

여자들은 생각없이 많은 말들을 합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생각없이 많은 행동을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영혼의 편지)

 

요즘 버스 정류장에 보면 "반 고흐" 라는 큰 글씨로 쓴 광고 문구를 볼 수 있다.
그래 반 고흐 작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살짝 엿보기로 하자.


1889년 5월8일 고흐는 한 요양원에 들어간다.
그해 1월 그가 했던 사업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었던 고갱과의 협업 관계는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고 그린 자화상 사건으로 깨지고 말았다.
동생 태오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아오고 있었지만,그 돈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었었다.
빵마져 살 수 없는 궁지로 내몰리고 있던 그는 식비를 절약하기 위해 질이 안 좋고 딱딱하여 씹기조차 어렵고,
소화도 안되는 빵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거비까지 내는 건 더욱 어려운 일.
요양원에 들어간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 중에서 생활비가 가장 덜 들기 때문이었다.

그 용양원에서 6월9일 고흐는 동생인 테오에게 편지를 쓴다.

지난 해 아를에서 그린 "론 강 너머 별이 빛나는 밤"을 곧 있게 될 앙데팡당전에 출품하려면
"이 작품이 어떤 사람에게 내 것보다 나은 밤의 장면을 그리는 데 아이디어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했다.
또한 "비록 고갱과 베르나르의 최근 작품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 두 습작 "별이 빛나는 밤"과 "올리브 과수원"은
그들의 작품과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적었다.

7월7일 고흐는 요양소에 들어오기전에 생활하던 노란 집으로 자신의 짐과 작품들을 가지러 간다.
그러나 짐을 맡겨 뒀던 친척이 보관 상태도 안 좋았을 뿐 아니라 작품들도 형편없는 쓰레기라고 생각하여
크로키와 스케치 대부분은 버리고 유화는 인근 고물상에 헐값으로 팔아넘긴 뒤였다.
고물장수는 자신의 친구에게 싼값에 이 작품 몇 점을 넘겼고
이 친구는 경영하던 호텔에 몇 점을 걸어 놓는다.
또한 고물상에 있던 작품들은 인근의 가난한 사람들이 구매하여 자신의 집에 걸어 놓거나 물건을 싸는 용도로 사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의 투숙객들이 이 작품들을 높이 평가하면서 사 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작품의 값이 뛰어오른다.
고흐가 그렇게 바라던 물감 값보다 더 비싼 값에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는 시점이 드디어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 고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몇 해 전 장기 투숙했던 독일의 한 여관 인근 들판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한 고흐는
곧바로 죽지도 못하고 피를 흘리며 여관까지 왔고,
여관에서 의사와 여관 주인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별이 빛나는 밤"은 동생 테오에게 1889년 9월28일 전달 되었고,
테오는 이 작품을 1890년4월에 열린 앙데팡당전에 출품했다.
카달로그에는 'No.832,Le Cypres'라고 적힌다.

빈센트 반 고흐,그의 그림은 명작이 되었다.
그리고 불행했던 그의 삶은 그림만큼이나 유명해졌다.
자신의 손으로 두 귀를 자른 광기의 화가
언제나 돈 걱정을 해야 했고 동생 테오의 재정 지원이 없었다면 굶어 죽었을 사람
마지막에는 반복되는 발작으로 그림마져 뜻대로 그리지 못했던 사람
지독한 불행은 그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의 그림의 후광이 되었다.
위대한 예술은 고통 가운데 피어난다고 하지만,모든 고통 받는 이가 진정한 예술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반 고흐,영혼의 편지>는 불행과 광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흐의 영혼에 다가가도록 돕는 책이다.
'별이 빛나는 밤','해바라기','자화상'등 고흐가 남긴 수많은 작품에는 지상의 고통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
강렬한 색과 꿈틀대는 선들이 이끌어 가는 곳에 불행한 예술가의 우울과 신경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은 고흐 그림의 비밀을 제3자의 설명 없이 고흐의 목소리로 전달한다.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된 이책에는 궁핍한 생활,동생에 대한 부채감,
계속되는 발작으로 점철된 고흐의 불행한 삶이 고통을 견디며
영원을 꿈꾸는 위대한 영혼과 함께 씨실과 날실로 얽혀 있다.
그는 스물일곱아라는 늦은 나이에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전에는 그는 미술품 상점의 직원으로 전도사로 일했지만 언제나 주위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고
심지어 그의 가족들에게마저 신뢰를 얻지 못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안정된 직장 없이 방황했고 생계유지를 위해 노력했어야 할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그는 '최하 중의 최하급'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가난했고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예의와 관습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림을 시작하기 전이나 후에나 죽을 때까지 고흐는 자신에게 찍힌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에 괴로워했다.
눈에 금세 들어오는 당장의 결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의 잣대는 고흐의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드르지 않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지 않았고 돈도 벌지 못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쓸모없는 사람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세상은 비밀스럽게 일어나는 그 일을 가늠할 잣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흐는 세상이라는 새장에 갇힌 새였다.
하지만 고흐의 영혼은 부조리한 세상에 갇히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눈은 신의 습작과 같은 세상의 불안전함을 넘어서
별이 빛나는 밤 하늘에 닿은 영혼을 꿈꾸었다.
생명을 창조하는 예술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는 예술을 위해 그는 자신의 생명을 던졌다.
고흐는 작업실 냄새가 풍기는 그림에서는 사물이 가진 진실보다 화가의 편견이 드러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기차의 대합실과 거리,그리고 아를의 대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렸다.
밭을 갈고 있는 사람을 실제로 보면 화가가 머릿속으로 구상하던 인체의 비율은 간단히 뒤집어진다.
고흐는 도시의 아카데미에서 관습적으로 그려 내는 선과 색은 세련되긴 하지만
농촌의 아낙들이 일하는 모습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미켈란젤로와 같은 위대한 화가들이 그랫듯이 고흐 역시 사람의 관습에 따른 인체의 표현을 넘어서고자 했다.
"있는 그대로의 삶과 진실"을 그리는 일이야말로 그가 하고자 했던 일이었다.
당시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하가들에게 농부,광부,매춘부와 같은 이들은 더럽고 추악한 사람들 이었다.
그들은 보통 그림의 소재가 될 수 없거나 번지르르한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포장되었다.
가령 밭에서 일하는 농부의 모습은 한가로운 농촌의 고요함을 드러내는 장치의 불과했다.
그러나 고흐는 있는 그대로의 삶과 진실을 포착하고 싶었다.
냄새가 나는 밭과 노동의 찌들어 거칠어진 피부 그라고 그 속에 담긴 역동하는 생명이야말로 고흐가 본 삶의 진실이었다.
"감자 먹은 사람들"은 그렇게 탄생했다. 
고흐는 자신이 느낀 생명을 색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색을 찾아 1888년 2월 태양이 찬란한 빛을 지상에 던지는 프랑스 남부 지방 아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체력이 완전히 바닥날 때까지 매일같이 야외로 나가 굳건히 자란 사이프러스,
밀밭,씨를 뿌리는 농부,수확 하고 있는 농촌의 풍경을 그렸다.
고흐는 아를에서 그의 주요한 작품들을 남겼다.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사이프러스가 보이는 밀밭" 등을 이리저리 삮이는 색의 향연 속에서
고흐는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 안에 존재하는 영원을 보았다.

살아생전 고흐의 절대적인 지지자이자 비평가였던 동생 테오는 이 시기에 그려진 고흐의 그림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 그림들 모두에서 이전에는 형이 얻지 못했던 강렬한 색채의 힘을 볼 수 있었어.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귀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을텐데,형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더군.
그 그림들은 형이 자연과 생명체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거야.
형이 생명체 안에 본래부터 내제한다고 강렬하게 느끼는 것들.]

고흐는 날 때부터 천재적인 화가는 아니었다.
그보다도 그는 말하려는 것을 더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면 바로 "그래,내 그림들,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그로 인해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 버렸지.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라고 스스로 고백할 만큼 열정적이었다는 데 있다.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나 잘못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고흐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지고 캔버스 앞에 섰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훌륭하게 될 거라는 착각은 고흐에게는 자신의 침체와 평범함을 숨기려는 시도일 뿐이었다.
고흐는 "작품을 향한 진지한 열정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게 한다."고 썼다
그의 열정은 습작 시절부터 스스로를 예술가로 정의하게 했다.
고흐에게 예술가란 누군가로부터 부여받은 타이틀이 아니었다.
이미 무언가를 찾아냈다고 인정받은 사람이 예술가는 아니었다.
반대로 찾고 있는 것이 무었인지는 뚜렷이 모를지라도 찾기 위해서 열중하고 있는 사람이 예술가였다.
반 고흐가 남기고 간 편지를 통해 우리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넘어서는 예술가의 위대한 정신을 보게된다.

 

37년 생애 동안 지독한 가난과 고독에 시달렸던 고흐는 후원자이자 동반자였던
네 살 터울의 동생 테오와 1872년 8월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668통이나 되고 그 밖에 어머니,여동생 윌,

동려 화가 고갱과 베르나르 등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장 탁월한 기능을 발휘케 하는 그러한 궁극적 목적이란 무엇인가.?
궁극적 목적이란 그것이 다른 무엇에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뜻의 궁극성과,
더이상 아무것도 보탤 필요가 없는 자족함이라는 뜻의 완전성의 두 측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이 두가지 성질을 갖춘 그 긍극적 목적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Eudaimonia)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리스토스텔레스의 윤리관은 천당가기 위해서 존재한다 든가,
신이나 신의 중개자에 의하여 구원받기 위하여 존재한다 는 후대 기독교의 종말론적
구원론적 세계관과는 매우 다른것이다.그리고 훨씬 비종교적인 건강함이 있다.
그리고 인간을 신 앞에 왜소하게 비하시키지도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행복이 무엇이냐에 관한 것이다.
"행복"은 "기분 좋게 몽롱한 심적 상태(a mental state of euphoria)"가 아니다.
대개 현대인이 "행복하다"는 말을 쓸 때는 애인을 만나 몽롱하게 기분좋거나,
상을 받아 흥분되었다거나 하는 심리적 상태를 표현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유다이모니아"는 심적 상태가 아닌
"성공적 삶"을 말하는 갓이다.
그것은 정적인 상태가 아닌 동적인 활동(dynamic activity)이다.
물론 "성공적 삶"이란 "아레떼"라는 희랍인들의 일반적 관념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당연히 "성공적 삶"이란 인간이 인간적으로서의 특유한 총체적 기능을 가장 잘 발현하는 활동을 구현하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잘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목표는 영원이나 불멸이나 불사나 불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언어들은 모두 종교적 언어이다.
인생의 진리에 영원불변은 없다.
인간은 죽으면 끝이다.
아니 죽어도 이름을 역사에 남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영원한 것은 아니다.
결국 잊혀지고 만다.
인류의 역사에서 수없는 신들의 이름도 잊혀지고 말았다.
신들의 역사는 사실 알고보면 초라한 것이다.
지금 제우스를 믿는 자는 아무도 없다.
제우스는 관광상품이 되어 입장료수입으로 돈을 좀 벌고 있을 뿐이다.
야훼가 그런 신세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 있는가!
태양도 영원하지 않다.
앞으로 50억년이면 소진해버린다.
그럼 지구도 끝난다.
생명도 끝난다.
인류의 역사도 끝나버리는 것이다.
영원은 없다.불변은 없다.
하나님도 불변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 인간이 믿고 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삶의 "지속태"일 뿐이라고 공자-자사는 말한다.
희노애락의 삶 속에서 중용을 "지속"하는 것처럼 영원한 것은 없다.
그것처럼 지고하고 완전한 것은 없다.
지속이란 불변이 아니라 변화이며 시간 속에서 유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럼 알마만큼 지속해야 할까?1억년?평생?100년?
공자는 말한다
3개월만이라도 지속해 보아라!
아니 중용을 3개월 지속하는 것이 플라톤의 이데아보다 더 영원하단 말입니까?
공자는 힘주어 말한다."그렇구 말구.암~그렇구 말구"
공자는 말한다.
식과 색의 중용을 삼 개월만 지속해 보아라!
과연 그대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을 삼 개월이라도 실천해본 적이 있는가?
과연 그대는 항상 데리고 잘 수 있는 아리따운 여인이 옆에 있는데
삼 개월동안 색(色)을 멀리해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결재시간에 갇힌 스님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선남선녀의 일상적 삶 속에서의 이야기다.
중용의 용(庸)은 범용(凡庸)과 항상(恒常)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자는 말한다.
삼 개월만 철저히 중용을 지킬 수 있어도
그 후로는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그냥 굴러가게 된다고....


2012.11.24.한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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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진리와 구도의 길에 함께해 온 책들은 어떤 책들일까.?

모두가 잠든 밤 홀로 깨어 오두막을 밝혀 온 책들은 ....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중 맑고 고요한 등잔 불빛 아래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영혼이 투명할 대로 투명해진다 고 스님은 쓴적이 있다.

좋은책은 삶의 기쁨과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우리를 안으로 여물게 한다.

 

세상에 책은 돌자갈처럼 흔하다.

그 돌자갈 속에서 보석을 찾아야 한다.

그 보석을 만나야 자신을 보다 깊게 만들 수 있다.

 

"나는 이 계절의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술술 읽히는 책 말고,

읽다가 자꾸만 덮이는 그런 책을 골라 읽을 것이다.

좋은 책이란 물론 거침없이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한두 구절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서 나 자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양서란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 한 권의 책이 때로는 번쩍 내 눈을 뜨이게 하고

안이해지려는 내 일상을 깨우쳐 준다.

그와 같은 책은 지식이나 문자로 쓰인 게 아니라

우주의 입김 같은 것에 의해 쓰였을 것 같다.

그런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좋은 친구를 만나

줄거울 때처럼 시간 밖에서 온전히 쉴 수 있다."

 

시대의 정신을 읽고 지속 가능한 세상을 꿈꾼다.

진리와 구도의 길에 함께해 온 책들

모두 잠든 밤 홀로 깨어 오두막을 밝혀 온 책들

 

우리가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잠든 영혼을 일깨워 보다 값있는 삶으로 눈을 떠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서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그런 책까지도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책 속에서 그 길을 찾으라.

 

세상에 나도는 책이 다 양서일 수는 없다.

두 번 읽을 가치도 없는 첵이 세상에는 얼마나 쌓여 가고 있는가.

삶을 충만케 하는 길이 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을 넘어서

어디에도 의존함이 없이

독자적인 사유와 행동을 쌓아 감으로써

사람은 그 사람만이 지니고 누릴 수 있는 독창적인 존재가 된다.

 
어느 가을날 
 

파아란 하늘엔 뭉게구름 두둥실 떠다니고
길가엔 코스모스 하늘하늘 춤을추며
그 위로 빨간 고추잠자리 반기며 날고
들판엔 오곡백과가 풍성하게 무르익어
농심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여유롭게 하며
숲속엔 새들에 합창소리와 풀벌레  울음소리가
익어가는 가을을 재촉하고 있는가 하면
온 산야는 알록달록 아름다운 색갈로 옷을 갈아입고
우리의 눈과 마음을 현혹하고 있는 이 가을.!
너무도 아름답고 청명한 이 가을.!
이 향기로운 시간들을 좋은 추억으로
마음속 깊은곳에 저장 해 두시길 바랍니다.

 

2012.10.26. 한은섭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을 위하여

 

커피처럼 들꽃처럼 향기로운 이야기를
아름답게 쓸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 같다.

때묻지 않는 순수함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혹은 남들이 바보 같다고 놀려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듯 미소 지으며
삶에 여유를 가지고 살고싶다.

 

조금은 모자라도 욕심없이
아무 욕심없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속에서 언제나 음악이 흐르고
마음속에서 언제나 아름다운 언어가 흘러나오고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면
가진 것 넉넉하지 않아도 마음은 부자가 될 수 있을텐데

 

세월은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니며
시간 속에 사는 우리가 가고 오고 변하는 것일 뿐.
세월이 덧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다.

 

해가 바뀌면 어린 사람은 한 살 더해지지만
나이든 사람은 한 살 줄어든다.
되찾을 수 없는 게 세월이니 시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한다.

 

인간의 탐욕에는 끝이 없어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른다.
행복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가진 것만큼 행복한 것이 아니며,
부족한 만큼 불행한 것은 아니다.
마음먹기 달렸고 생각하기에 달라진다.

 

이 세상을 보는 눈은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
내 마음이 검으면 상대방 마음도 검게 보이고
내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상대방 마음도 깨끗할것이라 믿는다.

 

돈은 혼자 오지 않고 어두운 그림자와 동행 한다고 했던가.?
재산은 인연이 있어 잠시 맡은 것이니
내 것도 니 것도 아니므로 고루 나눠 가져야 한다.

 

우리는 부자가 되기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idiots HanEunSeob

아는것으로부터의 자유-지두 크리슈나무르티 .J.krishnamurti

 

오늘은 평소 법정스님이 좋아했던 책중에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책을 소개한다.


글쓴이의 위치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라는 이름이 붙은 책이 수십권이지만
실제로 그는 글을 써서 출판한 적이 없다고한다.
다만 진리의 세계를 여행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가 다른 이들과 나눈 대화를 누군가 녹음했다가
받아 적어 책으로 냈을 뿐이다.

남인도 첸나이에서 태어난 크리슈나무르티는 바닷가에서 놀던 열 네살의 어느 날
신지학회를 이끄는 영국인 애니 베산트와 리드비터에게 발견되어 새로운 메시아로 지목당한다.
이후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인류를 구원할"세계의 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으며
동시에 신지학회 안에 설립된 "별의 교단"의 교조가 되었다.
그러나 이십대에 스스로 시작한 명상의 결과로 발견한 진리는
특정한 종교나 종파에 소속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18년을 기다려 마침내 메시아로 추앙받으며 미륵불의 화신으로서 세계의 스승으로 즉위하는 날
크리슈나무르티는 그 자리에서 구세주를 원하는 무수한 이들의 바람을 저버린 채
"별의 교단"을 해체하고 자신 앞으로 모금된 엄청난 재산마저 포기했다.

자신에게 붙여진 구세주,부처의 화신,세계의 구루 같은 찬사와,
자기앞에 엎드려 절하는 수많은 정신적 금치산자들의 나약한 예배를 뿌리친 것이다.
"오늘 아침 우리는 별의 교단 해체를 놓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뻐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무척 슬퍼할 것입니다"로 시작하는
그의 "별의 교단"해체 선언문은 숱한 종교와 교파로 나뉘어 서로 자신의 것만 진리라고 내세우는
현대의 종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참으로 진실한 선언이었다.
"진리로 통하는 길은 따로 없습니다.종교나 종파를 통해서는 결코 진리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진리에는 끝도 한계도 접근하는 길도 없습니다.
따라서 진리를 향한 여행은 조직화될수 없습니다.
조직화 하면 진리는 죽어 버립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진리를 안겨 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별의 교단을 해체하려 합니다.
특정인의 뒤를 따름과 동시에 여러분은 진리 찾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조직을 해체하려는 것입니다."

이후 크리슈나무르티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진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단 한가지밖에 요구하지 않는다.
즉 관념과 지식의 세계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홀로 진리에 다가서라는 것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영적 교사라 불리는 이 사람의 통찰력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지금 이 모습 그대로였다.
즉 때때로 기쁨과 애정의 순간을 가지면서도 엄청나게 탐욕스럽고 갈망하고
공격적이고 질투하고 불안해하고 절망한다.
인간은 증오와 공포와 너그러움의 기묘한 혼합이다.
폭력인 동시에 평화다.
달구지에서 비행기에 이르는 외적 발전은 있었으나 심리적으로 개인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각각의 인간은 과거로 채워진 창고이다.
개인은 모든 인류인 인간이며 인간의 모든 역사는 개인 안에 쓰여 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인간들 각자가 모든 전쟁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전쟁은 인간이 지닌 삶의 공격성, 서로를 갈라놓고 있는 편견과 관념으로 인해 발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는 이 현존하는 혼돈과 전 세계에 걸친 비참한 불행에 대해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음을
깨달을 때에만 행동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일상생홯 속에서 이 세계에 기여햇으며 전쟁 분열 추악함
그리고 탐욕으로 얼룩진 이 기괴한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것이든 다른사람의 것이든 모든 권위에서 자유롭다 함은
어제의 모든 것이 죽는다는 뜻이며 그때 당신의 마음은 항상 신선하고 젊고 천진하고
활력과 정열이 넘치게 된다.
우리가 배우고 관찰하는 것은 오직 그런 상태에서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는 어떤 것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인간의 마음은 아주 복잡한 까닭에 인간은 단순성이라는 속성을 잃어버렸다.
또한 자신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겸손이 필요하다.
만일 "난 나 자신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데서 출발한다면
그사람은 이미 자신에 관해 배우기를 멈춘 것이다.
혹은"나는 단지 기억 관념 체험과 전통들이 모여 있는 하나의 꾸러미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에 관해서는 배울 게 많지 않다"라고 해도 역시 자신에 관해 배우기를 멈춘 것이다.
무언가를 성취하는 순간 인간은 그 천진성과 겸손이라는 속성을 잃어버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관념과 과거의 기억으로보터 벗어나
언제 어느 순간에서나 완전한 깨어 있음으로 전체성을 지니고 존재하는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그러한 깨어 있음을 방 안에서 뱀과 더불어 사는 것이 비유한다.
뱀과 같이 방 안에 살 때 우리는 그것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고
그것이 내는 작은 소리에도 매우 민감해진다.
그런 주의력의 상태가 바로 존재의 "전체적인 에너지"이다.
생각의 기능 가운데 하나는 항상 무언가에 점령당해 있기를 바라며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
비어 있는 것을 두려워하고 이 두려움을 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먼저 죽어야 한다고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한다.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내적으로 자신이 소중히 품어온 것들과
쓰라려하는 것들에 대해서 죽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죽는다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을 뜻하며
일상적인 소망,쾌락,괴로운 감정들을 비우는 것이다.
죽음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요 변화이며 그 안에서 생각은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생각은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을 때 거기엔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있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곧 구속이다.
그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때만 즉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만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

크리수나무르티는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왜 말을 하십니까.?"하는 질문을 받자
"장미꽃이 왜 피겠습니까? 장미에게 물어보십시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위대한 지성인은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서 영국과 인도 미국 호주 스위스 등
전 세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단체와 사람들에게
'인간 내면의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일평생을 바쳤다.
그의 일관된 메세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메시아나 구루라고 여기는 매스컴에 오랜시간 시달려야 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1986년 2월 오랜지밭 한가운데 있는
캘리포니아 오하이 밸리의 지신의 거쳐에서 90세를 일기로 평화롭게 생을 마감한다.
<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는 그의 강연을 녹음하여 펴낸 대표적인 책이다.
<한방산담>에 실린 '거꾸로 보기'를 통해 법정 스님은 이야기 한다.
"내 눈이 열리면 그 눈으로 보는 세상도 함께 열리는 법이다.
인도의 명상가이며 철학자인 크리슈나무르티는 그의 저서 <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보는 법을 안다면 그때는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보는 일은 어떤 철학도 선생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무도 당신에게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
당신이 그냥 보면 된다"
그 어떤 고정관념에도 사로 잡히지 말고 허심탄회 빈 마음으로 보라 는 것
남의 눈을 빌릴 것 없이 자기 눈으로 볼 때 우리는 대상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진리란 살아 움직이는 것이어서 쉴 곳이 없다.
어떤 절이나 교회에도 없으며 어느 종교나 교사,철학자,그 누구도 당신을 진리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신은 이 살아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은 분노,잔인성,폭력,절망 그리고 고민과 슬픔 속에 살고 있다.
진리란 이 모두를 이해하는 데 있으며 당신의 삶에 있는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만 비로소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

오랜 세월 우리는 선생들에 의해,권위자들에 의해,책과 성인들에 의해
마치 숟가락으로 떠먹여지듯 양육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들에 대해 말해 주세요.저 언덕들과 산 너머 그리고 지구의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그러고는 그들의 설명을 듣고 만족해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말에 의지해서 살며,우리의 삶이 경박하고 공허하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얻어들은 얘기만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늘 들은바에 따라 살았고,우리의 의도나 성향에 이끌려 왔으며 여러 조건과 환경에 맞추어
억지로 모든 것을 받아들여 왔다.
우리는 많은 영향을 받아 생긴 하나의 결과 이며
우리 안에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이 없고,우리 자신을 위해 발견한 것이 하나도 없다.
독창적이고도 원래 모습 그대로인 명징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변하기를 바란다,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일견 매우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 안에 질서를 가져다줄 권위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권위가 내적 질서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밖에서 부과된 질서는 언제나 무질서를 낳는다.
당신은 이러한 진실을 깨닫고 책의 권위,교사,아내나 남편,부모,친구 또는 사회
등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언제나 판에 박은 듯한 틀 안에 있어 왔으며
그 방식은 늘 이데올로기나 권위가 된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변화할 수 있나"라는 질문이 새로운 권위를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당신은 권위와 영원히 결별하게 된다.

어떤 사람을 따르지 않을 때 당신은 매우 외롭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외로워 하라.왜 외로움을 두려워 하는가?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대면하기 때문이며 자신이 공허하고 무디고
바보스럽고 추하고 죄스럽고 불안하다는 사실
즉 왜소하고 겉을 꾸미고 들은 풍월로 사는 존재임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사실을 직시하라.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마라.
도망치는 순간 두려움은 시작된다.

 

자유란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모든 의존,예속,순응,수락을 내던진다.
그런 자유에는 완전히 혼자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고독 하려면 과거에 대한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당신이 고독할 때 즉 어떤 가족에도 속해 있지 않고 어떤 나라에도, 어떤 문화에도,
특별한 대륙에도 속해 있지 않고 완전히 고독할 때 국외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렇게 자유로운 사람은 천진스러우며 슬픔에서 해방된다.

이제 자신의 관해 아는 것을 모두 잊으라.
자신에 관해 지금까지 가졌던 생각을 잊으라.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출발하려고 한다.
어젯밤에는 비가 몹시 내렸고 지금은 개기 시작한다.
새롭고 신선한 날이다.
이 새로운 날이 마치 단 하루밖에 없는 것처럼 만나자.
어제의 기억은 모두 뒤에 남겨 놓고 함께 여행을 떠나자.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 자신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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