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 상서 - 중훼지고(仲훼之誥)
▣ 중훼지고(仲텪之誥)
『仲텪는 臣名으로 奚仲之後니 爲湯左相하니라 誥는 告也라
周禮에 士師以『五戒주:오계』로 先後刑罰하니 一曰誓니 用之於軍旅요 二曰誥니 用之於會同이라하니 以喩衆也라
此但告湯이로되 而亦謂之誥者는 唐孔氏謂仲텪亦必對衆而言이니 蓋非特釋湯之慙이요 而且以曉其臣民衆庶也라하니라 古文有, 今文無하니라』
『 중훼(仲텪)는 신하(臣下)의 이름으로 해중(奚仲)의 후예이니, 탕(湯)의 좌상(左相)이 되었었다. 고(誥)는 고함이다.
《주례(周禮)》에 “사사(士師)가 다섯 가지 경계로써 형벌을 도왔으니,
첫번째는 서(誓)이니 군려(軍旅)에서 사용하고,
두번째는 고(誥)이니 회동(會同)에서 사용한다.” 하였으니, 무리들을 깨우친 것이다.
이는 단지 탕왕(湯王)에게 아뢴 것인데 또한 고(誥)라고 이른 것은 당(唐)나라 공씨(孔氏)가 이르기를
“중훼(仲텪)가 또한 반드시 무리들을 상대하여 말한 것이니, 단지 탕왕(湯王)의 부끄러움을 풀어줄 뿐만이 아니요,
또 그 신민(臣民)과 중서(衆庶)들을 깨우친 것이다.” 하였다. 고문(古文)에는 있고 금문(今文)에는 없다.』
▣ 제1장(第一章)
『 성탕(成湯)이 걸왕(桀王)을 남소(南巢)에 유폐(幽閉)시키고 부끄러워하는 덕(德)『[마음]』이 있어 말씀하기를
“나는 후세(後世)에 나를 구실(口實)로 삼을까 두려워한다.” 하였다.』
『 무공(武功)이 이루어졌으므로 성탕(成湯)이라 한 것이다. 남소(南巢)는 지명(地名)이다.
여강(廬江) 육현(六縣)에 거소성(居巢城)이 있으니, 걸왕(桀王)이 이곳으로 달아나자, 인하여 이곳에 유폐시킨 것이다.
탕왕(湯王)이 걸왕(桀王)을 정벌한 것은 비록 하늘의 뜻에 순종하고 사람의 마음에 응한 것이나
요(堯)•순(舜)•우(禹)가 주고받은 뒤를 이어서 마음에 끝내 불안한 바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 덕(德)이 옛날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였고, 또 천하(天下)와 후세(後世)에 빌려서 구실(口實)로 삼을까 두려워한 것이다.』
『 ○ 진씨(陳氏)가 말하였다.
“요(堯)•순(舜)이 천하(天下)를 양보함에 후세에 명예를 좋아하는 선비들이 오히려 알지 못하고 사모한 자가 있었으니,
탕(湯)•무(武)가 정벌하여 천하(天下)를 얻음에 후세에 이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찌 구실(口實)로 삼지 않겠는가.
이것이 탕왕(湯王)이 두려워하신 이유일 것이다.”』
▣ 제2장(第二章)
『 중훼(仲텪)는 마침내 다음과 같은 고(誥)를 지었다.
“아! 하늘이 내신 백성들이 욕심이 있으니, 군주(君主)가 없으면 마침내 혼란하므로 하늘이 총명한 사람을 내심은 쟁란(爭亂)을 다스리려고 하신 것입니다.
유하(有夏)가 덕(德)에 어두워서 백성들이 도탄(塗炭)에 빠지거늘 하늘이 마침내 왕(王)에게 용맹과 지혜를 내려주시어
만방(萬邦)을 표정(表正)하여 우왕(禹王)이 옛날 행하셨던 것을 잇게 하시니, 이는 그 떳떳함을 따라서 천명(天命)을 받들어 순히 하셔야 할 것입니다.』
『 중훼(仲텪)는 탕왕(湯王)의 근심과 부끄러움이 그치지 않음을 걱정하여 마침내 고(誥)를 지어서 그 뜻을 풀어준 것이다.
탄식하고 말하기를 “백성들이 태어남에 이(耳)•목(目)•구(口)•비(鼻)와 좋아하고 미워하는 욕망이 있으니,
군주(君主)가 없으면 다투고 또 어지럽게 된다. 하늘이 총명한 사람을 낸 것은 그를 군주(君主)로 삼아 그 쟁란(爭亂)을 다스리려 한 것이다.” 하였다.
추(墜)는 빠짐이다. 도(塗)는 진흙이고, 탄(炭)은 불이다. 걸(桀)이 백성의 군주(君主)가 되어 도리어 혼란함을 행해서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니,
이미 군주(君主)가 된 소이(所以)를 잃은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군주(君主)가 없을 수 없으므로 하늘이 탕왕(湯王)에게 용맹과 지혜의 덕(德)을 내리셨으니,
용맹은 일을 함이 있고 지혜는 도모함이 있으니, 용맹과 지혜가 아니면 천하(天下)의 대업(大業)을 이루지 못한다.
표정(表正)은 의표(儀表)가 여기에 바로잡혀 있으면 그림자가 저기에 곧게 나타나는 것이다.
하늘이 탕왕(湯王)에게 용맹과 지혜를 내려주신 것은 만방(萬邦)을 표정(表正)하여 우왕(禹王)이 옛날 행하셨던 것을 잇게 한 것이다.
이는 단지 그 떳떳함을 따라서 하늘을 받들어 순히 할 뿐이니, 하늘은 전상(典常)의 이치가 말미암아 나오는 곳이요,
전상(典常)은 우왕(禹王)이 행하신 것이다. 탕왕(湯王)은 하(夏)나라를 개혁하였으나 옛날에 행했던 것을 이었고,
무왕(武王)은 상(商)나라를 개혁하였으나 정사(政事)는 옛것을 따랐으니,
공자(孔子)의 이른바 ‘백세(百世)가 지나도 알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임씨(林氏)가 말하였다.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맹자(孟子)에게 묻기를 ‘탕왕(湯王)이 걸(桀)을 유폐하고 무왕(武王)이 주(紂)를 정벌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하니,
맹자(孟子)는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이르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이르며 잔적(殘賊)한 사람을 일부(一夫)라 이르니,
일부(一夫)인 주(紂)를 정벌했다는 말은 들었고 군주(君主)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군주(君主)를 세우는 이유는 백성들이 잔적(殘賊)한데도 주장하여 다스리는 자가 없을까 두려워해서이니,
군주(君主)가 되어서 스스로 잔적(殘賊)한다면 군주(君主)의 실제를 상실(喪失)한 것이다.
일부(一夫)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맹자(孟子)의 말씀은 바로 중훼(仲텪)의 뜻인 것이다.”』
▣ 제3장(第三章)
『 하왕(夏王)이 죄가 있어 하늘을 사칭하고 가탁(假託)하여 아래에 명령을 펴니,
상제(上帝)께서 좋지 않게 여기시어 상(商)나라로써 천명(天命)을 받아 그 무리를 밝히게 하셨습니다.』
『 교(矯)는 ‘교제(矯制)『[제명(制命)을 사칭함]』’의 교(矯)와 같다.
무(誣)는 속임이요, 장(臧)은 좋음이요, 식(式)은 씀이요, 상(爽)은 밝음이요, 사(師)는 무리이다.
천(天)은 형체로 말하고, 제(帝)는 주재(主宰)로 말한 것이다.
걸왕(桀王)은 민심(民心)이 따르지 않음을 알고는 속이고 거짓말하되 하늘을 가탁하여 무리를 혹하게 하였으니,
하늘이 그 소행을 선(善)하게 여기지 아니하여 상(商)나라로 하여금 천명(天命)을 받아서 하여금 그 무리를 밝히게 한 것이다.』
『왕씨(王氏)가 말하였다.
“하(夏)나라가 어두운 덕(德)이 있으면 백성들이 따라서 어두워졌고, 상(商)나라가 밝은 덕(德)이 있으면 백성들이 따라서 밝아졌다.”』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용상궐사(用爽厥師)는 아랫글의 간현부세(簡賢附勢)와 연결함에 뜻이 서로 관통하지 않으니, 의심컨대 탈오(脫誤)가 있는 듯하다.”』
▣ 제4장(第四章)
『 현자(賢者)를 소홀히 하고 세력에 붙는 자들이 실로 무리들이 많아서 처음 우리 나라가 유하(有夏)에게 있어 마치 묘(苗)에 피가 있고,
곡식에 쭉정이가 있는 것과 같아서 작고 큰 자들이 두려워하여 죄가 아닌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우리 탕왕(湯王)의 덕(德)이 말하면 사람들의 들음에 흡족함에 있어서이겠습니까.』
『 간(簡)은 소략함이요, 번(繁)은 많음이요, 조(肇)는 처음이다. 전전(戰戰)은 공구(恐懼)하는 모양이다.
말하기를 “현자(賢者)를 소홀히 하고 세력에 붙는 자들이 악(惡)을 함께 하여 서로 이루어서
실로 무리가 많아 처음 우리 나라가 유하(有夏)에게 있어서 걸왕(桀王)에게 미움을 받아 전제(剪除)를 가하고자 함이
묘(苗)에 피가 있는 것과 같고 곡식에 쭉정이가 있는 것과 같아 뽑아서 다스리고 까불러서 날려보내어 반드시 서로 용납하지 못하는 형세가 있었다.
그리하여 상(商)나라 무리중에 작고 큰 자들이 두려워하여 죄가 아닌 것에 빠질까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하물며 탕왕(湯王)의 덕(德)이 말하면 사람들의 들음에 흡족하여 더욱 걸왕(桀王)이 시기하고 미워하는 바에 있어서이겠는가.” 하였다.
묘(苗)와 곡식으로 걸왕(桀王)을 비유하고 피와 쭉정이로 탕왕(湯王)을 비유한 것은 단지 걸왕(桀王)에게 용납되지 못하여
자취의 위태로움이 이와 같음을 말했을 뿐이다.
《사기(史記)》에 “걸왕(桀王)이 탕왕(湯王)을 하대(夏臺)라는 옥(獄)에 가두었다.” 하였으니,
탕왕(湯王)의 위태로움이 여러 번이었으니, 무도(無道)하면서 유도(有道)한 자를 미워함은 형세가 반드시 이르게 되는 것이다.』
▣ 제5장(第五章)
『 왕(王)께서는 음악과 여색(女色)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재화(財貨)와 이익(利益)을 증식하지 않으시며,
덕(德)이 많은 자에게는 관직을 성대하게 내리고 공(功)이 많은 자에게는 상을 성대하게 내리시며, 사람을 등용하되 자신으로 생각하고,
허물을 고치되 인색하게 하지 않으시어 능히 너그럽고 능히 인자하여 드러내서 조민(兆民)들에게 믿음을 받으셨습니다.』
『 이(邇)는 가까움이요, 식(殖)은 모음이다.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재화와 이익을 증식하지 않은 것은
탕왕(湯王)의 덕(德)을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본원(本原)의 자리이니,
천덕(天德)에 순수하여 일호(一毫)라도 인욕(人欲)의 사(私)가 없는 자가 아니면 능할 수 없는 것이다.
본원(本原)이 맑고 깨끗한 뒤에야 사람을 등용하고 자기 몸을 처함에 각각 그 마땅함을 얻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무(懋)는 성함이니, 번다(繁多)의 뜻이니, ‘시내공무재(時乃功懋哉)’의 뜻과 같다.
사람 중에 덕(德)을 힘쓰는 자에게는 관직으로 성대히 하고 사람중에 공(功)을 힘쓰는 자에게는 상으로 성대히 하며,
사람을 등용할 때에는 자신으로 생각하여 사람 중에 선행(善行)이 있는 자는 용납하지 않음이 없고
허물을 고침에 인색하지 아니하여 자기의 불선(不善)을 고치지 않음이 없어서,
남의 재능을 시기하지 않고 자기의 허물을 고침에 인색하지 아니하여, 합병하여 공정(公正)하게 하고 사의(私意)를 세우지 않으니,
성인이 아니면 그 누가 이에 능하겠는가. 탕왕(湯王)이 사람을 등용하고 자기 몸을 처함이 이와 같았다.
그리하여 백성을 대하는 즈음에 이 때문에 능히 너그럽고 능히 인(仁)하였으니, 능(能)이라고 이른 것은 너그럽되 방종함에 잃지 않고,
인(仁)하되 유약(柔弱)함에 잃지 않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너그러움으로써 거하고, 인(仁)으로써 행함은 군주(君主)의 덕(德)이다.” 하였으니,
군주(君主)의 덕(德)이 밝게 드러나서 천하(天下)에 믿어지는 것이다.
탕왕(湯王)의 덕(德)이 사람들의 들음에 흡족함이 이와 같았다.』
▣ 제6장(第六章)
『 갈백(葛伯)이 밥을 먹이는 자를 원수로 삼자, 처음 정벌하기를 갈(葛)나라로부터 하시어 동쪽을 정벌하면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고,
남쪽을 정벌하면 북쪽 오랑캐가 원망하여 이르기를 ‘어찌하여 홀로 우리 나라를 뒤에 정벌하는가.’ 하였으며,
가는 곳의 백성들은 실가(室家)가 서로 경하(慶賀)하여 이르기를 ‘우리 임금님을 기다렸는데 우리 임금께서 오시니 소생할 것이다.’ 하였으니,
백성들이 상(商)나라를 떠받든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 갈(葛)은 나라 이름이요, 백(伯)은 작위이다. 향(餉)은 밥을 먹임이니, 구향(仇餉)은 밥을 먹이는 자를 원수로 여김을 이른다.
갈백(葛伯)이 제사하지 않으므로 탕왕(湯王)이 사람을 시켜 물으니, 대답하기를 “자성(칞盛)에 바칠 것이 없어서입니다.” 하였다.
탕왕(湯王)이 박읍(¨]邑)의 백성들로 하여금 가서 밭을 갈아주게 하였는데 노약자들이 밥을 내오자 갈백(葛伯)이 그 동자(童子)를 죽이고 빼앗았다.
이에 탕왕(湯王)이 마침내 정벌하였으니, 탕왕(湯王)의 정벌이 갈(葛)나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해(奚)는 어찌이고 혜(¶0)는 기다림이다.
소(蘇)는 다시 사는 것이다. 서이(西夷)와 북적(北狄)은 멀리 있는 자들이 이와 같으면 가까이 있는 자들은 알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탕왕(湯王)의 군대가 정벌을 가하지 않은 곳은 오기를 원망하고 바라면서 말하기를 “어찌 홀로 우리 나라를 뒤에 정벌하는가.” 하였으며,
가서 정벌하는 곳은 처자들이 서로 경하하여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을 기다린 지가 오래되었는데 우리 임금께서 오시니 우리들은 다시 살 것이다.” 하였으니,
타국(他國)의 백성들이 모두 탕왕(湯王)을 우리 군주(君主)라고 하여 오기를 바램이 이와 같았다.
천하(天下)가 상(商)나라를 사랑하고 떠받들며 귀의(歸依)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니,
상(商)나라의 기업(基業)이 일어남은 명조(鳴條)의 전역(戰役)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하(夏)•상(商)이 교체될 즈음에 군신(君臣)간이 자리를 바꾸니, 천하(天下)의 큰 변고이다.
그러나 보건대 정벌할 때에 당우(唐虞)의 도유(都兪)하고 읍손(揖遜)하는 기상이 의연히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하니,
요(堯)•순(舜)•우(禹)•탕(湯)이 도(道)로써 서로 전수하여, 세대는 비록 아래로 내려왔으나 도(道)는 내려가지 않은 것이다.”』
▣ 제7장(第七章)
『 제후(諸侯) 중에 현자(賢者)를 돕고 덕(德)이 있는 자를 도우시며, 충성스러운 자를 드러내고 어진 자를 이루어 주시며,
약한 자를 겸병하고 어두운 자를 공격하시며, 어지러운 자를 취하고 망하는 자를 상(傷)하게 하시어,
망하는 것을 밀어내고 보존하는 것을 튼튼히 하셔야 나라가 번창할 것입니다.』
『 앞에서는 이미 탕왕(湯王)의 부끄러움을 풀어드렸고, 이 아래는 인하여 권면한 것이다.
제후(諸侯) 중에 어질고 덕(德)이 있는 자를 돕고 보조하며, 충량(忠良)한 자를 드러내고 이루어줌은 선(善)한 자를 좋게 여기는 것이다.
모(侮)는 《설문(說文)》에 “상함이다.” 하였다.
제후(諸侯) 중에 약한 자를 겸병하고 어두운 자를 공격하며 어지러운 자를 취하고 망하는 자를 상하게 함은 악(惡)한 자를 미워하는 것이다.
선(善)을 말할 때에는 큼으로부터 작음에 이르고, 악(惡)을 말할 때에는 작음으로부터 큼에 이르렀다.
망하는 것을 밀어낸다는 것은 겸(兼)•공(攻)•취(取)•모(侮)이며, 보존하는 것을 튼튼하게 한다는 것은 우(佑)•보(輔)•현(顯)•수(遂)이다.
저들이 망하는 것을 밀어내고 우리가 보존하는 것을 튼튼히 하여야 나라가 번창할 것이다.』
▣ 제8장(第八章)
『 덕(德)이 날로 새로워지면 만방(萬邦)이 그리워하고, 마음이 자만하면 구족(九族)이 마침내 이반(離反)할 것이니,
왕(王)께서는 힘써 대덕(大德)을 밝히시어 백성들에게 중도(中道)를 세우소서.
의(義)로 일을 제재(制裁)하고 예(禮)로 마음을 제재(制裁)하셔야 후손들에게 넉넉함을 드리울 것입니다.
제가 듣자오니, ‘능히 스스로 스승을 얻는 자는 왕자(王者)가 되고, 남들이 자기만 못하다고 말하는 자는 망한다.
묻기를 좋아하면 여유가 있고, 스스로 지혜를 쓰면 작아진다.’ 하였습니다.』
『 덕(德)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것은 날로 그 덕(德)을 새롭게 하여 스스로 그치지 않는 것이요, 마음이 자만하다는 것은 이와 반대이다.
탕왕(湯王)이 대야에 새긴 글에 “만일 어느날 새롭거든 나날이 새롭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 하였으니, 이는 일신(日新)의 뜻을 넓힌 것이다.
덕(德)이 날로 새로워지면 만방(萬邦)이 비록 넓으나 그리워하지 않는 이가 없고, 마음이 자만하면 구족(九族)이 비록 친하나 또한 이반(離叛)한다.
만방(萬邦)은 멂을 들어 가까움을 나타낸 것이요, 구족(九族)은 친함을 들어 소원함을 나타낸 것이다.』
『 왕(王)은 힘써 대덕(大德)을 밝혀 중도(中道)를 천하(天下)에 세워야 하니,
중(中)은 천하(天下)가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나 군주(君主)가 세워주지 않으면 백성들이 스스로 맞게 하지 못하며,
예의(禮義)는 중(中)을 세우는 것이다. 의(義)는 마음의 제재(制裁)요 예(禮)는 이치의 절문(節文)이니,
의(義)로 일을 제재(制裁)하면 일이 그 마땅함을 얻고 예(禮)로 마음을 제재(制裁)하면 마음이 그 바름을 얻게 되니,
내외(內外)가 덕(德)을 합하여 중도(中道)가 확립된다.
이와 같이 하면 다만 백성에게 중도를 세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후세에 드리움이 또한 넉넉하여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도(道)는 반드시 배운 뒤에 이른다.
그러므로 또 옛사람의 말을 들어 이르기를 “스승을 높이고 묻기를 좋아하면 덕(德)이 높아지고 업(業)이 넓어지며,
스스로 어질다고 여기고 스스로 지혜를 쓰는 자는 이와 반대이다.” 라고 한 것이다.
스스로 스승을 얻었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과 남의 넉넉함을 참으로 알아서 마음을 맡겨 듣고 순종하여 어기고 거슬림이 없음을 이른다.
맹자(孟子)는 말씀하기를 “탕왕(湯王)이 이윤(伊尹)에게 배운 뒤에 신하(臣下)로 삼았기 때문에 수고롭지 않고도 왕자(王者)가 되었다.” 하였으니,
이것이 탕왕(湯王)이 스스로 스승을 얻은 것일 것이다.』
『 중훼(仲텪)는 제후들을 회유하는 도(道)를 말하고, 미루어 덕(德)을 닦고 몸을 검속함에 이르렀으며, 또 미루어 스스로 스승을 얻음에 이르렀으니,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스승을 버리고 성공하는 자는 있지 않으니,
비록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성인(聖人)이라도 또한 반드시 스승이 있어야 한다.
후세가 옛날만 못한 것은 단지 세도(世道)가 낮아져서일 뿐만 아니라, 또한 사도(師道)가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훼(仲텪)의 의논은 흐름을 거슬러 근원에 이르러서 그 극(極)을 요약하여 스스로 스승을 얻는다는 한 말에 돌렸으니,
제왕(帝王)의 대법(大法)이 될 만하다 할 것이다.』
▣ 제9장(第九章)
『 아! 그 종(終)을 삼가려면 시작을 잘해야 하니, 예(禮)가 있는 자를 봉(封)해주며 어둡고 포악한 자를 전복시켜,
천도(天道)를 공경하고 높이셔야 천명(天命)을 영원히 보존할 것입니다.”』
『 상문(上文)에서는 이미 권면(勸勉)하였고, 여기서는 탄식하고 말하기를 “종(終)을 삼가는 도(道)는 오직 시작에 도모하여야 한다.” 하니,
시작을 삼가지 않고서 종(終)을 삼가는 자는 있지 않다. 이윤(伊尹) 역시 “종(終)을 시작에 삼가라.” 하였으니,
일은 비록 똑같지 않으나 이치는 하나이다. 흠숭(欽崇)은 공경하고 높여 받드는 뜻이다.
예(禮)가 있는 자를 봉해 주고 어둡고 포악한 자를 전복시켜 망하게 함은 하늘의 도(道)이니,
하늘의 도(道)를 공경하고 높이면 천명(天命)을 길이 보전할 것이다.』
『 〈중훼지고(仲텪之誥)〉를 살펴보면 세 가지 대의(大意)가 있으니,
먼저는 하늘이 군주를 세운 뜻과 걸왕(桀王)이 천명(天命)을 거슬려 하늘이 탕왕(湯王)에게 명한 것을 사양할 수 없음을 말하였고,
다음은 탕왕(湯王)의 덕(德)이 족히 백성을 얻어서 백성들이 탕왕(湯王)에게 돌아온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님을 말하였고,
맨끝에는 군주 노릇하기가 어려운 도(道)와 인심(人心)이 이합(離合)하는 기틀과
천도(天道)가 선(善)한 자에게 복(福)을 주고 악(惡)한 자에게 화(禍)를 줌이 두려울 만함을 말하여,
지금에 하(夏)나라를 받은 것이 자기를 이롭게 함이 아니요 마침내 무궁한 근심이 있음을 밝혀,
탕왕(湯王)을 깊이 위로하고 그 부끄러움을 풀어드린 것이니, 중훼(仲텪)의 충성과 사랑이 지극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탕왕(湯王)이 부끄러워한 것은 후세(後世)에서 구실로 삼을까 두려워한 것인데, 중훼(仲텪)는 끝내 감히 없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군신(君臣)의 직분이 두려워할 만함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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