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주서-다사(多士)
▣ 다사(多士)
『商民遷洛者亦有有位之士라 故로 周公이 洛邑初政에 以王命으로 總呼多士而告之어시늘 編書者因以名篇하니 亦誥體也라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吳氏曰 方遷商民于洛之時엔 成周未作이러니 其後에 王與周公이 患四方之遠하고 鑑三監之叛하여 於是에 始作洛邑하여 欲徙周而居之하시니
其曰 昔朕來自奄할새 大降爾四國民命하여 我乃明致天罰하여 移爾遐캨하여 比事臣我宗多遜者는 述遷民之初也요
曰 今朕作大邑于玆洛은 予惟四方罔攸賓이며 亦惟爾多士攸服하여 奔走臣我多遜者는 言遷民而後作洛也라
故로 洛誥一篇은 終始皆無欲遷商民之意요 惟周公이 旣誥成王留治于洛之後에 乃曰伻來毖殷이라하고 又曰 王伻殷乃承敍라하니 當時商民이 已遷于洛이라
故로 其言如此하니라 愚謂 武王이 已有都洛之志라
故로 周公黜殷之後에 以殷民反覆難制라하여 卽遷于洛이러니 至是에 建成周하고 造廬舍하고 定疆헶일새
乃告命하여 與之更始焉爾니 此는 多士之所以作也라
由是而推하면 則召誥攻位之庶殷은 其已遷洛之民歟인저 不然이면 則受都는 今衛州也요 洛邑은 今西京也니 相去四百餘里라
召公이 安得捨近之友民하고 而役遠之讐民哉아 書序에 以爲成周旣成에 遷殷頑民者는 謬矣니 吾固以爲非孔子所作也라하노라』
『 상(商)나라 백성으로 낙읍(洛邑)에 옮긴 자들 또한 지위에 있는 선비가 있었다.
그러므로 주공(周公)이 낙읍(洛邑)에서 처음 정사를 펼 때에 왕명(王命)으로 다사(多士)『[여러 선비들]』를 모두 불러 고하였는데
책을 엮는 자가 인하여 이로써 편명(篇名)을 삼았으니, 또한 고체(誥體)이다.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막 상(商)나라 백성들을 낙읍(洛邑)으로 옮길 때에는 성주(成周)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그 뒤에 왕(王)과 주공(周公)은 사방이 멂을 걱정하고 삼감(三監)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거울삼아 이에 비로소 낙읍(洛邑)을 만들어
종주(宗周)『[호경(鎬京)]』를 옮겨 낙읍(洛邑)에 거하고자 하였으니, ‘옛날에 짐(朕)이 엄(奄)에서 올 적에 크게 형벌을 낮추어
너희 사국(四國)『[은(殷)•관(管)•채(蔡)•곽(쥦)]』의 백성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내 단지 밝게 천벌을 이루어 너희들을 먼 곳으로 옮겨서 우리 종주(宗周)에 공손함이 많은 자를 가까이 섬겨 신하가 되게 했다.’는 것은
백성을 옮긴 초기를 서술한 것이요. ‘지금 짐(朕)이 큰 도읍을 이 낙읍(洛邑)에 만든 것은 내가 사방에서 온 제후들이 손님으로 머물 곳이 없으며,
또 너희 많은 사(士)들이 일하여 분주히 우리의 공손함이 많은 자들에게 신하노릇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백성을 옮긴 뒤에 낙읍(洛邑)을 만듦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낙고(洛誥)〉 한 편(篇)은 시종(始終) 모두 상(商)나라 백성을 옮기려는 뜻이 없고,
오직 주공(周公)이 이미 성왕(成王)에게 낙읍(洛邑)에 머물면서 다스릴 것을 아뢴 뒤에 비로소 말하기를 ‘사람을 보내와서 은(殷)나라를 경계하였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왕(王)이 은(殷)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가르치는 차서(次敍)를 받들게 하라.’ 하였으니,
당시에 상(商)나라 백성들이 이미 낙읍(洛邑)으로 옮겼기 때문에 그 말이 이와 같은 것이다.”』
『 내가 생각하건대, 무왕(武王)이 이미 낙읍(洛邑)에 도읍하려는 뜻이 있었다.
그러므로 주공(周公)이 은(殷)나라를 축출한 뒤에 은(殷)나라 백성들이 반복하여 통제하기 어렵다 하여 곧 낙읍(洛邑)으로 옮겼는데,
이때에 이르러 성주(成周)를 세우고 여사(廬舍)를 만들고 강역(疆헶)을 정하면서 고명(告命)하여 이들과 더불어 경시(更始)『[새출발]』를 한 것이니,
이는 〈다사(多士)〉가 지어지게 된 이유이다.
이로 말미암아 미루어 보면 〈소고(召誥)〉에 집터를 다스린 서은(庶殷)은 이미 낙읍(洛邑)으로 옮긴 백성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수(受)의 도읍은 지금의 위주(衛州)이고 낙읍(洛邑)은 지금의 서경(西京)이니, 서로의 거리가 4백여 리이다.
소공(召公)이 어찌 가까이 있는 우민(友民)『[우호하는 백성]』들을 버리고 먼 수민(讐民)들을 부역시켰겠는가.
서서(書序)에 “성주(成周)가 이미 이루어짐에 은(殷)나라의 완민(頑民)을 옮겼다.”고 말한 것은 잘못이니,
나는 진실로 서서(書序)는 공자(孔子)가 지은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
▣ 제1장(第一章)
『3월에 주공(周公)이 처음으로 새 도읍인 낙읍(洛邑)에서 상(商)나라의 왕사(王士)들에게 고하셨다.』
『 이는 〈다사(多士)〉의 본서(本序)이다. 3월은 성왕(成王)이 낙읍(洛邑)에서 제사한 다음해의 3월이다.
주공(周公)이 낙읍(洛邑)에 온 지가 오래인데 여기에서 처음이라고 말한 것은
성왕(成王)이 이미 천도(遷都)를 결행하지 않고 공(公)을 머물게 하여 낙읍(洛邑)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공(公)이 처음으로 낙읍(洛邑)을 다스리는 일을 행하였기 때문에 처음이라고 말한 것이다.
상(商)나라의 왕사(王士)라 한 것은 그들을 귀하게 여긴 것이다.』
▣ 제2장(第二章)
『 왕(王)이 대략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너 은(殷)나라의 남은 다사(多士)들아. 하늘에게 가엾게 여김을 받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하늘이 크게 은(殷)나라에 망함을 내리시므로 우리 주(周)나라가 도와주는 명을 받아서 하늘의 밝은 위엄을 받들어 왕(王)의 벌을 이루어서
은(殷)나라 명을 바로잡아 상제(上帝)의 일을 끝마쳤노라.』
『 불조(弗弔)는 미상이니, 짐작컨대 탄식하고 민망히 여기는 말인 듯하니, 당시의 방언(方言)일 것이다.
민천(旻天)은 가을 하늘이니, 숙살(肅殺)을 위주하여 말한 것이다.
탄식하고 민망히 여겨 말하기를 “민천(旻天)이 크게 재앙을 내려 은(殷)나라를 망하게 하므로
우리 주(周)나라가 권우(眷佑)의 명을 받아 하늘의 밝은 위엄을 받들어 왕(王)의 형벌의 공정함을 이루어서
은(殷)나라 명을 바로잡아 개혁하여 상제(上帝)의 일을 마쳤다.” 하였으니, 이는 혁명의 공변됨을 미루어서 열어 깨우쳐 준 것이다.』
▣ 제3장(第三章)
『 그러므로 너희 다사(多士)들아. 우리 작은 주(周)나라가 감히 은(殷)나라의 명을 취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하늘이 은(殷)나라에게 명을 주지 않으신 것은 진실로 혼란한 자를 견고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도우신 것이니, 우리가 감히 〈천자의〉 지위를 구하였겠는가.』
『 사(肆)는 〈강고(康誥)〉에 “사여소자봉(肆汝小子封)”의 사(肆)『[그러므로]』와 같다.
익(칂)은 취함이니, 새를 주살로 쏘아 잡는 익자(칂字)이니, 취함에 마음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다사(多士)를 불러 고하여 이르기를 “형세로써 말하면 우리 작은 나라가 어찌 감히 은(殷)나라의 명을 취하려고 하였겠는가.
심은 것은 북돋우고, 기운 것은 전복시키니, 그 다스려짐을 견고히 하고 혼란함을 견고히 하지 않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하늘이 은(殷)나라에게 명을 주지 않은 것은 진실로 은(殷)나라의 혼란함을 견고히 하지 않은 것이니,
하늘이 은(殷)나라의 혼란함을 견고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주(周)나라의 다스림을 도와서 천자의 지위를 자연 사양할 수 없는 바가 있었던 것이니,
우리가 감히 천자의 지위를 구하는 마음을 두었겠는가.』
▣ 제4장(第四章)
『 상제께서 은(殷)나라에게 명(命)을 주지 않으심은 우리 하민(下民)들의 병위(秉爲)『[잡아서 함]』가 하늘의 위엄이 분명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 병(秉)은 잡음이다. 천명(天命)이 주지 않는 것은 곧 민심(民心)의 병위(秉爲)이고 민심(民心)의 병위(秉爲)는 곧 하늘의 위엄이 분명하고 두려운 것임을 말하였으니,
하늘과 사람이 서로 인하는 이치를 반복하여, 하늘은 과연 민심(民心)에 벗어나지 않고 민심(民心)은 과연 하늘에 벗어나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시경(詩經)》에는 병이(秉彛)를 말하였고, 여기서는 병위(秉爲)를 말한 것은 이(彛)는 이치로 말한 것이고 위(爲)는 씀으로 말한 것이다.』
▣ 제5장(第五章)
『 내가 들으니 상제(上帝)께서 편안함으로 인도하셨는데도 하(夏)나라가 편안함으로 나아가지 않자,
상제(上帝)가 강격(降格)『[강림하여 이름]』하여 이 하(夏)나라에 의향을 보이셨는데 능히 상제(上帝)를 따르지 않고 크게 음일(淫칊)하고 변명하는 말을 하였다.
이에 하늘이 생각하고 들은 체하지 않으시고는 그 큰 명을 폐하여 벌을 내리셨다.』
『 인(引)은 인도함이요, 일(逸)은 편안함이다. 강격(降格)은 〈여형(呂刑)〉의 강격(降格)과 같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상제(上帝)가 편안함으로 인도하였다는 것은 형체나 소리로 접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심(人心)이 편안함을 얻으면 힘쓰고 힘써 그치지 않으니, 이것이 곧 상제가 인도한 것이다.
이 이치가 평탄하니, 또한 어찌 하걸(夏桀)에게 간격『[차별]』을 두었겠는가.
다만 하걸(夏桀)이 양심(良心)을 잃어 스스로 그 편안함에 나아가지 않았을 뿐이다.
상제(上帝)가 실로 인도하였으나 걸왕(桀王)이 실로 피하였는데, 상제(上帝)가 오히려 대번에 끊지 않으시고는
마침내 재이(災異)를 내려 의향을 걸왕(桀王)에게 보이셨으나 걸왕(桀王)은 오히려 경계하고 두려워할 줄을 알지 못하여
상제(上帝)의 명을 공경히 따르지 않고 크게 음일(淫逸)을 부리니, 비록 속이는 말이 있었으나 하늘은 생각하고 들은 체하지 않았다.
이는 중훼(仲텪)가 말한 “상제가 좋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 이것이다. 그 큰 명을 폐하여 벌을 내려서 하(夏)나라의 국운이 끝난 것이다.”』
▣ 제6장(第六章)
『 이에 네 선조이신 성탕(成湯)을 명하여 하(夏)나라를 개혁하시어 준걸스러운 백성으로 사방을 다스리게 하셨다.』
『 전(甸)은 다스림이다. 이윤(伊尹)은 “탕왕(湯王)이 널리 준언(俊彦)을 구했다.”고 말하였고,
맹자(孟子)는 “탕왕(湯王)이 현자(賢者)를 세우되 일정한 방소(方所)가 없었다.”고 하였으니,
준걸스런 백성들을 밝히고 드날려 멀고 가까운 곳에 분포해서 구획한 곳을 다스림은 성탕(成湯)이 정사를 세운 큰 법이다.
주공(周公)이 반복하여 하(夏)나라와 상(商)나라를 가지고 말씀한 것은 하(夏)나라의 망함은 곧 은(殷)나라의 망함이요,
탕왕(湯王)의 흥함은 바로 무왕(武王)의 흥함이니, 상(商)나라의 백성들이 이것을 보면 또한 스스로 반성할 것이다.』
▣ 제7장(第七章)
『 성탕(成湯)으로부터 제을(帝乙)에 이르기까지 덕(德)을 밝히고 제사를 공경하지 않음이 없었다.』
『 덕(德)을 밝힘은 몸을 닦는 것이요, 제사를 공경함은 신(神)을 공경하는 것이다.』
▣ 제8장(第八章)
『 또한 하늘이 크게 은(殷)나라를 세워 보호하고 다스리게 하였는데
은(殷)나라의 선왕(先王)들 또한 감히 상제(上帝)의 법을 잃지 않아서 하늘에 짝하여 백성들에게 은택을 내리지 않음이 없었다.』
『 또한 하늘이 크게 은(殷)나라를 세워 보호하고 다스리게 하였는데,
은(殷)나라의 선왕(先王)들 또한 모두 이 마음을 잡아 보존하여 감히 상제의 법을 잃지 않아서 하늘에 짝하여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히지 않음이 없었다.』
▣ 제9장(第九章)
『 지금 후사왕(後嗣王)에 있어서는 크게 천도(天道)에 밝지 못하였으니, 하물며 선왕(先王)들이 국가(國家)에 근로함을 들어 생각함이 있다고 하겠는가.
크게 음탕하여 방일(放칊)해서 하늘의 드러난 도와 백성을 공경해야 함을 돌아보지 않았다.』
『 후사왕(後嗣王)은 주왕(紂王)이다.
주왕(紂王)은 크게 천도(天道)에 밝지 못하였으니, 하물며 상(商)나라 선왕(先王)들이 방가(邦家)에 근로함을 들어 생각한다 하겠는가.
크게 음일(淫칊)을 부려 다시는 하늘의 드러난 도와 백성을 공경하고 두려워해야 함을 돌아보고 생각함이 없었다.』
▣ 제10장(第十章)
『 이에 상제(上帝)께서 보호하지 않으시어 이와 같은 큰 망함을 내리신 것이다.』
『 큰 망함이란 나라가 망하고 몸이 죽는 것이다.』
▣ 제11장(第十一章)
『 하늘이 은(殷)나라에 명(命)을 주지 않으심은 그 덕(德)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상(商)나라의 선왕(先王)들은 덕(德)을 밝혔으므로 하늘이 크게 세워주었는데, 상(商)나라의 후왕(後王)은 덕(德)을 밝히지 아니하여 하늘이 주지 않은 것이다.』
▣ 제12장(第十二章)
『 무릇 사방의 작고 큰 나라가 망함은 벌에 〈정당한〉 말『[죄목]』이 있지 않음이 없다.”』
『 무릇 사방의 크고 작은 나라가 망함은 그 벌을 이룸이 모두 말할 만한 것이 있어서이다.
하물며 상(商)나라의 죄가 관영(貫盈)하여 주(周)나라가 말을 받들어 정벌함에 있어서랴.』
▣ 제13장(第十三章)
『 왕(王)이 대략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너희 은(殷)나라의 다사(多士)들아. 지금 우리 주왕(周王)은 크게 상제(上帝)의 일을 잘 받들고 계시다.』
『 영(靈)은 잘함이니, 크게 하늘의 하는 바를 잘 받드는 것이다. 〈무성(武成)〉에 “공경히 상제를 받들어 난(亂)을 일으키려는 모략을 저지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 제14장(第十四章)
『 〈상제(上帝)께서〉 명을 내리시기를 ‘은(殷)나라를 끊어 바로잡으라.’ 하시기에 바로잡는 일을 상제께 고(告)하신 것이다.』
『 상제(上帝)께서 명을 내리시기를 “은(殷)나라를 끊어 바로잡으라.” 하시니, 감정(戡定)하고 전제(剪除)하여 바로잡는 일을 상제에게 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무성(武成)〉에 “황천(皇天)과 후토(后土)에 고하여 장차 상(商)나라에 크게 바로잡음이 있다.”는 것이 이것이다.』
▣ 제15장(第十五章)
『 우리 일이 두 갈래로 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너희 왕가(王家)가 우리에게 온 것이다.』
『 “상제(上帝)께서 너에게 임해 계시니 네 마음을 둘로 갖지 말라.”는 것은 우리 일이 두 갈래로 가지 않음을 말한 것이며,
“상제가 이미 명하시니 주(周)나라에 복종했다.”는 것은 너희 왕가(王家)가 우리에게 옴을 말한 것이다.
은(殷)나라를 끊어 바로잡는 일은 사심(私心)이 있어서가 아니요, 한결같이 상제를 따라 두 갈래로 감이 없는 것이니,
너희 은(殷)나라 왕가(王家)가 자연히 우리에게 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주(周)나라가 상제에게 두 마음을 품지 않으니,
은(殷)나라가 능히 주(周)나라에 두 마음을 품을 수 있겠는가.
이는 확연하여 동요할 수 없는 뜻을 보여주어 완민(頑民)들의 반측(反側)하는 정(情)을 은근히 사라지게 한 것이다.
그러나 성현들이 일을 두 갈래로 가게 하지 않음은 일용(日用)과 음식(飮食)이 다 그렇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
어찌 다만 은(殷)나라를 끊어 바로잡는 일일 뿐이겠는가.』
▣ 제16장(第十六章)
『 내 말하기를 ‘너희들이 크게 법도가 없으니, 내 너희들을 동요하려는 것이 아니라 변이 너희 읍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하였다.』
『 삼감(三監)이 난을 창도하였기에 내 말하기를 “너희들이 크게 법이 아닌 짓을 하였으니,
내가 너희들을 동요하려는 것이 아니라 변이 너희 읍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하였다.
이는 〈이훈(伊訓)〉에 이른바 “처음 공격을 명조(鳴條)로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이 이것이다.』
▣ 제17장(第十七章)
『 내가 또한 생각하니, 하늘이 은(殷)나라에 나아가 큰 재앙을 내리시니, 그러므로 바르지 못하였다.”』
『 내가 또한 생각하니, 하늘이 은(殷)나라에 나아가 여러 차례 큰 재앙을 내려 주왕(紂王)이 이미 죽고 무경(武庚)이 또 죽었다.
그러므로 사특하여 바르지 못하니, 마땅히 옮겨야 함을 말한 것이다.』
▣ 제18장(第十八章)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너희 다사(多士)들에게 고하노라.
내 이에 너희들을 옮겨 서쪽에 거하게 한 것이니 나 한 사람이 덕(德)을 받듦이 강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는 하늘의 명령이시니 어기지 말라.
짐은 감히 뒤에 딴 명령을 내리지 않을 것이니, 후일에 나를 원망하지 말라.』
『 시(時)는 이것이니, 상문(上文)에 은(殷)나라의 큰 재앙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 때문에 너희들을 옮겨 서쪽에 거하게 한 것이요, 나 한 사람이 이와 같이 천사(遷徙)하고 진동하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이는 하늘의 명령이 이와 같기 때문이니, 너희들은 어기지 말라.
나는 감히 뒤에 딴 명령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하였으니,
이는 딴 벌이 있더라도 너희들은 나를 원망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 제19장(第十九章)
『 너희들은 은(殷)나라 선인(先人)들의 서책과 전적(典籍)이 있음을 아니, 옛날에 은(殷)나라도 하(夏)나라의 명을 개혁하였다.』
『 옛날 들었던 것을 가지고 계도하여 깨우친 것이다.
은(殷)나라의 선세(先世)에 서책과 전적이 있어 은(殷)나라가 하(夏)나라의 명(命)을 개혁했던 일을 기재하였으니, 바로 이와 같다.
네가 어찌 홀로 지금에 의심하겠는가.”』
▣ 제20장(第二十章)
『 이제 너희들은 말하기를 ‘하(夏)나라의 신하들이 계적(啓迪)하고 간발(簡拔)하여 왕(王)의 조정에 있었으며,
일하는 자들이 백료(百僚)에 있었다.’고 하는데, 나 한 사람은 덕(德)이 있는 자를 들어 쓸 뿐이다.
이에 내 감히 너희들을 천읍(天邑)인 상(商)나라에서 구하여 〈이 낙읍(洛邑)에〉 오게 한 것은
내가 적( )나라의 고사(故事)를 따라 너희들을 긍휼(矜恤)히 여긴 것이니, 이는 나의 죄가 아니요, 이는 하늘의 명령이시다.”』
『 주공(周公)이 이미 상(商)나라가 하(夏)나라를 혁명한 일을 들어 완민(頑民)들을 깨우치시니,
완민들이 다시 상(商)나라가 하(夏)나라를 혁명한 일을 가지고 주(周)나라를 책하여 이르기를
“상(商)나라가 하(夏)나라의 명을 혁명한 초기에는 모든 하(夏)나라의 선비들이 계적(啓迪)하고 간발(簡拔)하여 상왕(商王)의 조정에 있었으며,
일하는 자들이 백료의 사이에 나열되어 있었는데, 지금 주(周)나라는 상(商)나라의 선비에 대하여 간발한 바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하였다.
이에 주공(周公)이 그 말을 들고서 대의(大義)로 꺾어 말씀하기를 “너희 완민들이 비록 이러한 말이 있으나 나 한 사람이 들어 쓰는 것은 오직 덕(德)대로 할 뿐이다.
그러므로 내 감히 너희들을 천읍(天邑)인 상(商)나라에서 구하여 낙읍(洛邑)으로 옮긴 것은 〈너희들이〉 덕(德)을 따르고 행실을 고치기를 바라서이다.
내 상(商)나라의 고사(故事)를 따라 너희들을 긍휼히 여길 뿐이니, 너희들을 등용하지 않은 것은 나의 죄가 아니요, 이는 하늘의 명(命)이 이와 같은 것이다.” 하였다.
덕(德)이 있는 자를 표창함은 하늘의 명인데, 이제 완민들이 덕(德)이 없으면서 등용되기를 구하고자 하니, 되겠는가.』
▣ 제21장(第二十一章)
『 왕(王)이 말씀하였다.
“다사(多士)들아. 옛날 짐(朕)이 엄(奄)으로부터 올 적에 나는 너희들의 형벌을 크게 강등하여 너희 사국(四國)의 백성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그리하여 내 단지 밝게 천벌을 이루어 너희들을 먼 곳으로 옮겨서 우리 종주(宗周)의 다손(多遜)『[공손함이 많은 자]』을 가까이 섬겨 신하 노릇하게 한 것이다.”』
『 강(降)은 지금 법에 강등(降等)이란 말과 같다.
말하기를 “옛날 내가 상(商)나라의 엄(奄)으로부터 올 때에 너희 사국(四國)의 백성들은 죄가 모두 마땅히 죽어야 하나
나는 너희들의 형벌을 크게 강등하여 목숨을 살려주었다.
그리하여 차마 주륙(誅戮)하지 못하고 단지 하늘의 벌을 밝게 이루어 너희들을 옮겨 멀리 낙읍(洛邑)에 거하게 해서
우리 종주(宗周)에 공손함이 많은 아름다움이 있는 자를 친근히 하여 신하 노릇하게 하였으니, 그 벌이 매우 가볍고 그 은혜가 진실로 이미 매우 후하다.
그런데도 이제 오히려 원망하는 바가 있는가.” 한 것이다. 이 장(章)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商)나라의 백성들을 옮긴 지가 진실로 이미 오래이다.』
▣ 제22장(第二十二章)
『 왕(王)이 말씀하였다. “너희 은(殷)나라의 다사(多士)들에게 고하노라.
이제 내 차마 너희들을 죽일 수 없기에 내 이 명을 거듭하노라.
이제 짐(朕)이 큰 도읍을 이 낙읍(洛邑)에 만든 것은 내가 사방의 제후들을 손님으로 머물게 할 곳이 없으며,
또한 너희 다사(多士)들이 일하여 분주히 우리 다손(多遜)에게 신하노릇하기 때문이다.』
『 엄(奄)으로부터 와서 한 명령을 처음 명령이라고 한다면 이 명령은 거듭 명령함이 된다.
내가 차마 너희들을 죽일 수 없으므로 거듭 이 명을 밝히는 것이다.
또 내가 낙읍(洛邑)을 경영한 까닭은 사방의 제후들을 손님으로 예우할 곳이 없으며,
또한 너희들이 일하여 분주히 우리 다손(多遜)에게 신하 노릇하는데 거처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 장(章)을 자세히 살펴보면 백성을 옮긴 것이 낙읍(洛邑)을 경영하기 이전에 있었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엄(奄)으로부터 온 것을 옛날이라고 칭한 것은 원일(遠日)의 말이요,
큰 도읍을 만든 것을 지금이라고 칭한 것은 근일(近日)의 말이며,
너희들을 먼 곳으로 옮겨서 우리 종주(宗周)의 다손(多遜)을 가까이 섬겨 신하 노릇하게 한다는 것은 기약하는 말이요,
일하여 분주히 우리 다손(多遜)에게 신하노릇하기 때문이란 것은 과연 능하다는 말이니,
이로써 또 백성을 옮긴 것이 앞에 있었고 낙읍(洛邑)을 만든 것이 뒤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제23장(第二十三章)
『 너희들은 거의 너희들의 토지를 소유하며, 너희들은 거의 일함과 거처함을 편안히 할 것이다.』
『 간(幹)은 일이요, 지(止)는 거처이다. 너희들은 거의 너희들의 전업(田業)을 소유하며 거의 너희들이 일하는 바를 편안히 여기고 거처하는 바를 편안히 여길 것이다.
이 장(章)에 말한 것을 살펴보면 모두 옛날 그대로 토전(土田)과 거지(居止)를 소유한다는 말이니, 진실로 상(商)나라 백성들이 옮겨온 지가 오래다.
공씨(孔氏)는 그 말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상유이토(尙有爾土)를〉 “살던 고향(故鄕)으로 돌아가게 해준다.”고 해석하였으니, 글뜻에는 그럴 듯하나 사실은 아니다.』
▣ 제24장(第二十四章)
『 너희들이 능히 공경하면 하늘이 너희들에게 복을 주어 긍휼히 여기시겠지만
너희들이 능히 공경하지 않으면 너희들의 땅을 소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내가 또한 하늘의 벌을 너희들 몸에 내릴 것이다.』
『 공경하면 말하고 동함이 이치를 따르지 않음이 없으니 하늘이 복을 내리는 바에 길상(吉祥)이 모일 것이요,
공경하지 않으면 말하고 동함이 위패(違悖)되지 않음이 없으니 하늘이 화를 내리는 바에 형륙(刑戮)이 가해질 것이다.
어찌 다만 귀양가고 옮겨가서 너희들의 토지를 소유하지 못할 뿐이겠는가. 몸 또한 보전하지 못함이 있을 것이다.』
▣ 제25장(第二十五章)
『 이제 너희들이 이 너희들의 읍에 거주하며 너희들의 거처에 계속 편안히 거처하여 너희들이 이 낙읍(洛邑)에 일함을 두고 연수(年數)를 둘 것이니,
너희 자손들의 일어남이 너희들의 옮김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 읍(邑)은 사정(四井)을 읍이라 하는 읍(邑)이다.
계(繼)는 이어서 편안히 거주함을 이른다. 영위(營爲)를 두고 수고(壽考)를 둠을 다 이 낙읍(洛邑)에서 할 것이니,
너희 자손들의 일어남이 너희들의 옮김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망국(亡國)의 말예(末裔)로서 집안을 일으키는 시조(始祖)가 되니,
완민들이 비록 어리석으나 선택할 바를 알 것이다.』
▣ 제26장(第二十六章)
『 왕(王)이 말씀하였다. 또 말씀하였다. “이에 내가 혹 말함은 너의 거처할 곳을 생각해서이다.”』
『 왕왈(王曰)의 아래에 마땅히 결문(缺文)이 있을 것이니, 〈다방(多方)〉의 끝에 ‘왕왈(王曰)’과 ‘우왈(又曰)’로 미루어보면 알 수 있다.
이 내가 혹 말하는 바가 있는 것은 모두 너희들의 거지(居止)를 염려하기 때문이라 하였으니, 이는 상문(上文)에 ‘너희들의 거처’라는 뜻을 거듭 맺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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