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주서-군석(君奭)


 

▣ 군석(君奭)


『召公이 告老而去어늘 周公留之하시니 史氏錄其告語爲篇하니 亦誥體也라 以周公首呼君奭일새 因以君奭名篇하니 篇中에 語多未詳이라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按此篇之作을 史記엔 謂召公이 疑周公當國『踐祚주:천조』라하고 唐孔氏는 謂召公以周公嘗攝王政이러니 今復在臣位라하고

葛氏는 謂召公未免常人之情하여 以爵位先後介意라 故로 周公이 作是篇以諭之라하니 陋哉라 斯言이여 要皆爲序文所誤라

獨蘇氏謂召公之意 欲周公告老而歸라하니 爲近之라 然詳本篇旨意하면 쨷召公이 自以盛滿難居라하여 欲避權位하고 退老厥邑한대

周公이 反復告諭以留之爾니 熟復而詳味之면 其義를 固可見也니라』

 

『 소공(召公)이 늙음을 고하고 떠나가자 주공(周公)이 만류하니, 사관(史官)이 고한 말씀을 기록하여 편(篇)을 만들었으니, 또한 고체(誥體)이다.

주공(周公)이 맨 첫머리에 군석(君奭)을 불렀으므로 인하여 군석(君奭)으로 편명(篇名)을 삼았으니, 편 가운데에 미상(未詳)한 말이 많다.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 ○ 살펴보건대 이 편을 짓게 된 이유를 《사기(史記)》에는 “소공(召公)이 주공(周公)이 나라를 담당하여 천조(踐祚)『[즉위]』할까 의심해서이다.” 하였고,

당(唐)나라 공씨(孔氏)는 “소공(召公)이 주공(周公)이 일찍이 왕정(王政)을 섭행했었는데, 이제 다시 신하의 지위에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였으며,

갈씨(葛氏)는 “소공(召公)이 상인(常人)의 정(情)을 면치 못하여 작위(爵位)의 선후를 가지고 개의하였다.

그러므로 주공(周公)이 이 편을 지어 깨우친 것이다.” 하였으니, 누추하다. 이 말이여. 요컨대 모두 서문(序文)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홀로 소씨(蘇氏)는 이르기를 “소공(召公)의 뜻은 주공(周公)이 고로(告老)하고 돌아가기를 바란 것이다.” 하였으니,

이 말이 근리(近理)하나 본편(本篇)의 뜻을 살펴보면 이는 바로 소공(召公)이 스스로 성만(盛滿)하여 거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권위(權位)를 피하고 물러가 그 고을에서 늙고자 하니, 주공(周公)이 반복하여 고유하여 만류한 것이다.

익숙히 반복하고 자세히 완미해보면 그 뜻을 진실로 볼 수 있다.』

 

 

 

▣ 제1장(第一章)


『 주공(周公)이 대략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군석(君奭)아!』

『 군(君)은 높이는 칭호이다. 석(奭)은 소공(召公)의 이름이니, 옛사람들은 질박함을 숭상하여 서로 말할 때에 이름을 많이 불렀다.』


 

▣ 제2장(第二章)


『 하늘에게 가엾게 여김을 받지 못하여, 하늘이 은(殷)나라에 상망(喪亡)을 내려

은(殷)나라가 이미 천명(天命)을 실추하였으므로 우리 주(周)나라가 이미 천명(天命)을 받았다.

내 감히 알 수 없노니, 그 기업(基業)이 길이 아름다움에 진실할 것인가?

과연 하늘이 우리의 정성을 도와줄 것인가? 나 또한 감히 알 수 없노니, 그 종말에 불상(不祥)으로 나올 것인가?』

『 불상(不祥)은 아름다움의 반대이다. 하늘이 이미 상망(喪亡)을 은(殷)나라에 내려 은(殷)나라가 이미 천명(天命)을 잃었으므로 우리 주(周)나라가 이미 받았다.

내 감히 알 수 없노니, 그 기업이 길이 아름다움에 진실할 것인가? 하늘이 과연 우리의 정성을 도와줄 것인가?

나 또한 감히 알 수 없노니, 그 종말에 과연 불상(不祥)으로 나올 것인가?』

『 ○ 살펴보건대, 이 편은 주공(周公)이 소공(召公)을 만류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니,

여기에 “천명(天命)의 길흉을 비록 내 감히 알 수 없다.”고 말하였으나

간측(懇惻)하고 위구(危懼)한 뜻은 천명(天命)의 길흉의 결정이 실로 소공(召公)이 머무느냐 머물지 않느냐에 주장됨을 말씀한 것이다.』

 


 

▣ 제3장(第三章)


『 아! 군(君)『[소공(召公)]』이 이미 말씀하기를 ‘이는 우리들에게 달려 있다’ 하였으니,

나 또한 감히 상제(上帝)의 명을 편안히 여겨 하늘의 위엄이 우리 백성들에게 원망하고 위배하는 때가 없음을 길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나니,

이는 사람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우리 후사(後嗣)의 자손에 있어 크게 상하(上下)를 공경하지 못하여 전인(前人)의 빛나는 업적을 끊고 실추하면 집에 있으면서 모른다고 하겠는가.』

『 우(尤)는 원망함이요, 위(違)는 위배함이다. 주공(周公)이 탄식하고 말씀하기를 소공(召公)이 이미 일찍이 “이는 우리들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라고 말씀하니,

주공(周公)이 이르기를 “나 또한 감히 구차히 천명(天命)을 편안히 여겨 하늘의 위엄이 우리 백성들에게 원망하고

위배하는 때가 없음을 길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천명(天命)과 민심(民心)은 거취가 일정하지 아니하여 실로 사람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이제 소공(召公)이 마침내 전일(前日)의 말을 잊고 번연(飜然)히 떠나기를 구하니,

만일 우리 후사의 자손에 있어 크게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공경하지 못해서 교만하고 사치하여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빛나는 업적을 끊고 실추한다면 집에 있으면서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제4장(第四章)


『 천명(天命)은 보전하기가 쉽지 않아 하늘을 믿기 어려우니,

천명(天命)을 실추함은 전인(前人)이 공손히 하고 밝힌 덕(德)을 경력(經歷)하여 계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천명불이(天命不易)는 《시경(詩經)》에 “명(命)은 보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과 같다.

천명(天命)은 보존하기가 쉽지 않아 하늘을 믿기 어려우니,

천명(天命)을 실추하는 것은 전인(前人)이 공손히 하고 밝힌 덕(德)을 경력(經歷)하여 계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능히 공손하지 못하므로 전인의 공손한 덕(德)을 잇지 못하고,

전인의 빛나는 업적을 끊고 실추하므로 전인의 밝은 덕(德)을 잇지 못하는 것이다.”』

 

 

 

▣ 제5장(第五章)


『 지금 나 소자(小子) 단(旦)에 있어서 능히 바로잡음을 두지 못하였다. 인도함은 오직 전인(前人)의 광대함으로 우리 충자(沖子)에게 베풀려 할 뿐이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소자(小子)는 스스로 겸손히 하는 말이며, 능히 바로잡음을 두지 못했다는 것도 또한 스스로 겸손히 하는 말이다.

‘지금 나 소자(小子) 단(旦)에 있어 능히 바로잡은 바가 있지 못하고,

무릇 개도(開導)함은 오직 전인의 광대한 덕(德)을 더욱 빛나게 하여 충자(沖子)에게 맡겨주려 할 뿐이다.’ 하였으니,

앞에서 후사(後嗣) 자손(子孫)들이 전인의 빛나는 업적을 끊고 실추한다고 말했으므로 말한 것이다.”』

 

 


▣ 제6장(第六章)


『 또 말씀하였다. “하늘은 믿을 수 없으나 우리의 도리는 오직 영왕(寧王)『[무왕(武王)]』의 덕(德)을 연장하여

하늘이 문왕(文王)께서 받으신 명을 놓지 않게 하는 것이다.”』

『 우왈(又曰)은 상문(上文)에는 “천명(天命)은 보전하기가 쉽지 않아 하늘을 믿기 어렵다.”고 말하고,

여기에서는 또 “하늘은 믿을 수 없다.”고 거듭 말하였으므로 우왈(又曰)이라고 말한 것이다.

하늘은 진실로 믿을 수 없으나 우리에게 있는 도리는 오직 무왕(武王)의 덕(德)을 연장하여 하늘로 하여금 문왕(文王)께서 받으신 명을 놓지 않게 하는 것이다.』

 

 


▣ 제7장(第七章)


『 공(公)이 말씀하였다. “군석(君奭)아! 내 들으니,

옛날 성탕(成湯)이 이미 천명(天命)을 받으셨는데 이 때에는 이윤(伊尹) 같은 이가 있어 황천(皇天)에 이르렀으며,

태갑(太甲) 때에는 보형(保衡) 같은 이가 있었으며, 태무(太戊) 때에는 이척(伊陟)과 신호(臣扈) 같은 이가 있어 상제(上帝)에 이르렀으며,

무함(巫咸)이 왕가를 다스렸으며, 조을(祖乙) 때에는 무현(巫賢) 같은 이가 있었으며, 무정(武丁) 때에는 감반(甘盤) 같은 이가 있었다.』

『 시칙유약(時則有若)은 그 당시에 이와 같은 사람이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보형(保衡)은 곧 이윤(伊尹)이니, 〈열명(說命)〉에 보인다. 태무(太戊)는 태갑(太甲)의 손자이고, 이척(伊陟)은 이윤(伊尹)의 아들이다.

신호(臣扈)는 성탕(成湯) 때의 신호(臣扈)와 동명이인(同名異人)인 자이다. 무(巫)는 씨(氏)이고, 함(咸)은 이름이다.

조을(祖乙)은 태무(太戊)의 손자이고, 무현(巫賢)은 무함(巫咸)의 아들이다. 무정(武丁)은 고종(高宗)이다. 감반(甘盤)은 〈열명(說命)〉에 보인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

이 장(章)은 상(商)나라의 여섯 신하의 공렬(功烈)을 차례로 서술하였으니, 소공(召公)에게 전인(前人)의 아름다움에 짝할 것을 권면한 것이다.

이윤(伊尹)이 성탕(成湯)을 보좌한 것은 성인(聖人)으로서 성군(聖君)을 보좌하여 그 치화(治化)가 하늘과 간격이 없고,

이척(伊陟)과 신호(臣扈)가 태무(太戊)를 보좌한 것은 현자(賢者)로서 현군(賢君)을 보좌하여 그 치화(治化)가 능히 천심(天心)에 충족하였다.

두루 덮어줌으로 말하면 천(天)이라 이르고, 주재(主宰)함으로 말하면 제(帝)라 이르니,

《서경(書經)》에 혹 천(天)이라 칭하고 혹 제(帝)라 칭한 것은 각기 가리킨 바에 따른 것이요 경중(輕重)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장(章)에 이르러서 상대하여 말한 것은 성(聖)•현(賢)의 구분으로 깊고 얕음이 나타난다.

무함(巫咸)에 있어서 단지 왕가(王家)를 다스린다고만 말한 것은 무함(巫咸)이 다스린 것은

공(功)이 왕실에만 있어서 정미한 쌓임이 오히려 두 신하에게 부끄러움이 있어서이다.

망서(亡書)『[일서(佚書)]』에 〈함예(咸乂)〉 네 편이 있으니, 아마도 왕가를 다스린 실상인가 보다.

무현(巫賢)과 감반(甘盤)에 있어서 가리켜 말함이 없는 것은 짐작컨대 반드시 또 무함(巫咸) 다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은(殷)나라에는 어질고 성(聖)스러운 군주가 7명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단지 5명을 말하고,

하문(下文)에 “은(殷)나라가 예(禮)로 올려 하늘에 짝했다.”고 말하였으니, 아마도 하늘에 짝하여 제사하는 자는 단지 이 다섯 왕 뿐이고,

그 신하들을 함께 사당에 배식(配食)『[배향]』하였는가 보다. 무정(武丁) 때에 있어 부열(傅說)을 말하지 않았으니,

아마도 부열(傅說)은 하늘에 짝하는 왕에게 배식하지 않은 것인가? 그 자세한 것을 들을 수 없다.”』


 

▣ 제8장(第八章)

 

『 이것을 따라 진열한 공이 있어 은(殷)나라를 보존하여 다스렸다.

그러므로 은(殷)나라가 예(禮)로 올라가 하늘에 짝하여 연소(年所)『[연도(年度)]』를 많이 지나게 되었다.』

『 척(陟)은 올라감이다. 여섯 신하가 이 도(道)를 따라 진열한 공이 있어 은(殷)나라를 보존하여 다스렸다.

이 때문에 은(殷)나라 선왕(先王)들이 마침내 덕(德)으로써 하늘에 짝하여 향국(享國)이 장구했던 것이다.』

 

 

▣ 제9장(第九章)


『 하늘이 도와 명하심이 순수하였다.

상(商)나라가 충실하여 백성과 왕인(王人)들이 덕(德)을 잡고 근심을 밝히지 않은 이가 없었으며,

소신(小臣)과 번병(藩屛)의 후전(侯甸)들이 하물며 모두 분주함에 있어서랴. 이 덕(德)을 칭송하여 써 그 군주를 다스리게 하였다.

그러므로 한 사람『[군주]』이 사방에 일함이 있으면 마치 거북점과 시초점 같이 여겨서 이것을 믿지 않은 이가 없었다.”』

『 우(佑)는 도움이다. 실(實)은 허실(虛實)의 실이다.

나라에 훌륭한 인물이 있으면 나라가 충실해지니, 맹자(孟子)가 “인현(仁賢)을 믿지 않으면 나라가 공허하다.”고 말씀한 것이 이것이다.

칭(稱)은 듦이니, 또한 잡는다는 뜻이다. 사(事)는 정벌(征伐)과 회동(會同)의 따위이다.

상장(上章)에 여섯 신하가 군주를 보좌하여 하늘에 이르고 훌륭한 정치를 이룩한 것을 이어서 마침내 말하기를

“하늘이 상(商)나라를 도와 명함이 순일(純一)하고 잡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상(商)나라에 훌륭한 사람이 있어 나라가 충실해져서 안으로는 백관(百官)과 저성(著姓) 및 왕신(王臣)의 미천한 자들이

덕(德)을 잡고 근심을 밝게 이루지 않음이 없었으며, 밖으로는 소신(小臣)과 번병의 후전(侯甸)들이 하물며 모두 분주히 복역함에 있어서랴.

이 때문에 덕(德)을 들어 써 그 군주를 다스리게 하였으므로 군주가 사방에 일함이 있으면

거북점과 시초점처럼 여겨서 천하(天下)가 공경하고 믿지 않음이 없었던 것이다.』

 

 

▣ 제10장(第十章)


『 공(公)이 말씀하였다. “군석(君奭)아! 하늘은 공평하여 하늘에 통하는 자를 수(壽)하게 한다.

그리하여 은(殷)나라를 보존하여 다스리게 하였는데, 은(殷)나라가 하늘을 이었다가 멸망하는 위엄에 걸렸으니,

이제 네가 이것을 길이 생각하면 고명(固命)『[하늘의 견고한 명]』을 소유하여 그 다스림이 우리 새로 만든 나라에 밝게 드러날 것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평탄하여 사(私)가 없음을 평(平)이라 한다.

격(格)은 삼극(三極)『[천(天)•지(地)•인(人)]』을 통하여 간격이 없는 것이다.

하늘은 사사로이 수(壽)하게 함이 없어 오직 지극히 공평하여 하늘을 통하는 자이면 수(壽)하게 하니, 이윤(伊尹) 이하 여섯 신하가 능히 평격(平格)의 실제를 다하였다. 그러므로 능히 은(殷)나라를 보존하여 다스려서 역년(歷年)이 장구하였다.

그런데 은(殷)나라 주왕(紂王)에 이르러는 또한 천자의 지위를 이어 갑자기 멸망하는 위엄에 걸렸으니, 하늘은 일찍이 사사로이 수(壽)하게 하지 않는다.

고명(固命)은 실추하지 않는 천명(天命)이다.

이제 소공(召公)이 힘써 주(周)나라를 영구히 할 생각을 한다면 하늘의 고명(固命)을 소유하여 다스림의 효험이 또한 혁혁하게

우리 새로 만든 나라에 밝게 드러나서 몸과 나라가 모두 나타날 것이다.』

 

 

 

▣ 제11장(第十一章)


『 공(公)이 말씀하였다. “군석(君奭)아! 옛날 상제께서 바로잡아 무왕(武王)의 덕(德)을 거듭 권면하여 대명(大命)을 그 몸에 모으게 하셨다.』

『 신(申)은 거듭함이요, 권(勸)은 권면함이다.

옛날 상제가 은(殷)나라에 할정(割正)『[바로잡음]』을 내려 무왕(武王)의 덕(德)을 거듭 권면하여 대명(大命)을 그 몸에 모아 천하(天下)를 소유하게 하였다.』

 

 

 

▣ 제12장(第十二章)


『 문왕(文王)이 거의 능히 우리가 소유한 유하(有夏)『[중국(中國)]』를 닦고 화하게 하신 것은

또한 괵숙(¹~叔)과 굉요(쥺夭)와 산의생(散宜生)과 태전(泰顚)과 남궁괄(南宮括)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 괵숙(¹~叔)은 문왕(文王)의 아우이다. 굉(쥺)•산(散)•태(泰)•남궁(南宮)은 모두 씨(氏)이고, 요(夭)•의생(宜生)•전(顚)•괄(括)은 모두 이름이다.

문왕(文王)이 거의 능히 우리가 소유한 제하(諸夏)를 수치(修治)하고 섭화(燮和)하였던 것은 또한 괵숙(¹~叔) 등 다섯 신하가 보좌함이 있었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강고(康誥)〉에 “한두 나라가 다스려졌다.” 하였고, 〈무일(無逸)〉에 “써 모두 만민을 화하게 하였다.”는 것이 곧 문왕(文王)의 수화(修和)의 실제이다.』

 

 


▣ 제13장(第十三章)


『 또 말씀하였다. “이 다섯 신하가 능히 이곳에 왕래하여 떳떳한 가르침을 인도함이 없었더라면 문왕(文王)께서도 덕(德)이 국인(國人)에게 내려짐이 없었을 것이다.』

『 멸(蔑)은 없음이다. 하씨(夏氏)가 말하였다.

“주공(周公)이 앞에 이미 문왕(文王)의 일어남이 이 다섯 신하에 근본하였다고 말하였으므로 다시 앞의 뜻을 뒤집어 말씀하기를

‘만약 이 다섯 신하들이 문왕(文王)을 위하여 이 곳에 왕래하며 분주하여 떳떳한 가르침을 계도하지 못하였더라면

문왕(文王) 또한 덕(德)이 국인(國人)에게 내려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 주공(周公)이 반복하여 그 뜻을 밝혔으므로 ‘우왈(又曰)’로 단서를 바꿔 발한 것이다.”』

 

 
 

▣ 제14장(第十四章)

 

『 또한 하늘이 순수하게 도와준 것은 덕(德)을 잡은 이들이 실천하여 하늘의 위엄을 알아 이에 문왕(文王)을 밝혀 그 덕(德)을 계도하여

위에 나타나고 아래에 덮여지게 하여 상제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은(殷)나라의 천명을 받으신 것이다.』

『 문왕(文王)에게 이 다섯 신하들이 있었으므로 또한 하늘이 은(殷)나라를 순수하게 도와주어 명한 것과 같아서

백성과 왕인(王人)들이 덕(德)을 잡지 않음이 없었던 것이다.

위에서 이미 뒤집어 말하기를 “문왕(文王)이 만약 이 다섯 신하들이 떳떳한 가르침을 계도함이 없었더라면

또한 덕(德)이 아래로 국인에게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또 바로 말하기를 “하늘이 문왕(文王)을 순수하게 도와준 것은

이와 같이 덕(德)을 잡은 신하들이 실천하여 이르러서 진실로 하늘의 위엄을 알았다.

이 때문에 문왕(文王)을 밝혀 그 덕(德)을 계도해서 위에 나타나고 아래에 덮여지게 하여 상제에게 알려졌다.

이 때문에 마침내 은(殷)나라의 천명(天命)을 받게 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 제15장(第十五章)


『 무왕(武王)은 이 네 사람이 거의 인도하여 천록(天祿)을 소유하였는데, 뒤에 무왕(武王)과 더불어 크게 하늘의 위엄을 받들어 그 적을 모두 죽였으니,

이 네 사람이 무왕(武王)의 덕(德)을 밝혀 천하(天下)에 덮어져서 크게 모두 덕(德)을 일컫게 하였다.』

『 괵숙(¹~叔)이 먼저 죽었으므로 네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유(劉)는 죽임이다. 단(單)은 모두이다.

무왕(武王)은 이 네 사람이 거의 계도하여 천록(天祿)을 소유하였는데 그 후에 무왕(武王)과 더불어 적을 모두 죽였으니,

이 네 사람이 능히 무왕(武王)을 밝혀 마침내 덕(德)이 천하(天下)에 덮여져서 천하(天下)가 크게 모두 무왕(武王)의 덕(德)을 일컫게 되었다.

이는 성교(聲敎)를 사해에 도달하게 함을 말한 것이다. 문왕(文王)은 서토(西土)에 미쳤을 뿐이니, 크게 모두 덕(德)을 일컬은 것은 오직 무왕(武王)만이 그러하다.

문왕(文王)에는 명(命)을 말하고 무왕(武王)에는 녹(祿)을 말한 것은 문왕(文王)은 단지 천명(天命)을 받았을 뿐이며,

무왕(武王)에 이르러 비로소 부유함이 천하(天下)를 소유하였기 때문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사부(師傅)인 상보(尙父)『[강태공(姜太公)]』가 문왕(文王)•무왕(武王)을 섬긴 것은

공렬(功烈)이 그보다 더 성할 수가 없는데 이 다섯 신하의 열에 참여되지 않았으니,

한 때의 의론이 혹은 상세하기도 하고 혹은 소략하기도 하여 뜻에 따라 말해서 소공(召公)을 만류함을 위주로 한 것이요, 인물평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제16장(第十六章)


『 이제 나 소자(小子) 단(旦)에 있어서는 마치 큰 냇물을 헤엄쳐감과 같으니,

내가 감에 너 석(奭)과 함께 건너리라. 소자(小子)『[성왕(成王)]』는 아직 재위하지 않은 것과 같으니, 크게 우리의 책임이 없겠는가.

거두어서 미치지 못함을 돕지 아니하여 구조(耉造)『[노성(老成)]』한 사람의 덕(德)이 내리지 않으면

우리는 우는 봉황새소리도 듣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능히 감동시킴이 있다고 하겠는가.”』

『 소자(小子) 단(旦)은 스스로 겸손히 하는 칭호이다. 물에 떠가는 것을 유(游)라 한다.

주공(周公)이 말씀하기를 “문왕(文王)•무왕(武王)의 기업을 이어 능히 이루지 못할까 두려워해서 마치 큰 냇물을 헤엄쳐감에 나루터와 물가를 알지 못함과 같으니,

내 어찌 홀로 건너겠는가. 내가 감에 너 소공(召公)과 더불어 함께 건너야 할 것이다.

소자(小子)는 성왕(成王)이니, 성왕(成王)이 어려 비록 이미 즉위하였으나 즉위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탄(誕)은 큼이다. 대무아책(大無我責)의 위에 의심컨대 빠진 글이 있는 듯하다. 수망욱불급(收罔勖不及)은 미상이다.

구조덕불강(耉造德不降)은 소공(召公)이 떠나가면 노성(老成)한 사람들의 덕(德)이 백성에게 내려지지 아니하여,

교외에 있는 봉황새의 우는 소리를 장차 다시 얻어듣지 못할 것이니, 하물며 감히 이보다 나아가 하늘에 감격(感格)함이 있다고 말하겠는가.”한 것이다.

이때에 주(周)나라가 막 융성하여 우는 봉황새가 교외에 있었으니,

《시경(詩經)》〈권아(卷阿)〉에 “고강(高岡)에서 울었다.”는 것이 바로 그 실상을 읊은 것이다.

그러므로 주공(周公)이 이렇게 말씀한 것이다.』

 

 

▣ 제17장(第十七章)


『 공(公)이 말씀하였다. “아! 군(君)아. 크게 이것을 살펴볼지어다.

우리가 천명(天命)을 받은 것은 끝이 없는 아름다움이나 또한 큰 어려움이니,

군(君)에게 마음을 너그럽게 할 것을 꾀함을 고(告)하노니, 나는 후인들이 혼미해짐을 바라지 않노라.』

『 사(肆)는 큼이요, 유(猷)는 꾀함이다. 자(玆)는 상문(上文)에 말한 것을 가리키니,

주공(周公)이 탄식하여 소공(召公)이 상문(上文)에 말한 것을 크게 살펴보게 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 문왕(文王)•무왕(武王)이 천명(天命)을 받은 것은 진실로 끝이 없는 아름다움이나 또한 그 쌓고 쌓아 얽어 만든 것을 자취해보면 또한 어려움이 크니,

서로 더불어 힘을 다하여 보수(保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君)에게 관유(寬裕)히 하는 도(道)를 꾀할 것을 고(告)하노니, 마음을 좁게 먹어 떠나가기를 구하지 말라.

나는 후인들이 미혹되어서 도를 잃기를 바라지 않는다.』

『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대신(大臣)의 지위는 온갖 책망이 모이니, 진감(震좱)하고 격당(擊撞)함은 진정시켜야 하고,

맵고 달고 건조하고 습함은 조제『[조화]』하여야 하고, 서로 엉켜있고 어지럽게 맺혀있는 것은 풀어야 하고, 어둡고 더러움은 받아들여야 하니,

스스로 넓고 큰 도량과 벼슬을 잃을까 걱정하여 건몰(乾沒)『[세력을 추구하여 부침(浮沈)함]』하는 자가 아니면

일찍이 번연(翩然)히 놓아버리고 떠나가려는 뜻이 없지 않다.

더구나 소공(召公)은 친히 큰 변고를 만나 파부결장(破斧缺?)할 때에 몸을 굽혀 조호(調護)하였으니,

마음이 수고롭고 힘이 파리한 것이 또 평상시의 대신(大臣)에 비할 바가 아니었는데,

다만 성왕(成王)이 아직 친정(親政)하지 아니하여 감히 몸을 빌어 떠나가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하루아침에 정병(政柄)『[정권]』이 돌아감이 있으니, 호연(浩然)히 떠나갈 뜻을 품는 것은 진실로 인정에 반드시 이르는 바이다.

그러나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왕업이 어려움을 생각하고 성왕(成王)이 수성(守成)함에

돕는 이가 없음을 생각한다면 소공(召公)은 의리상 떠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급급하게 떠나가기를 구하여 겨를이 없으니, 그 박절함이 너무 심하다.

어찌 마음을 관유(寬裕)하게 하는 도(道)를 꾀하여 공(功)의 마칠 바를 도모하지 않겠는가.

사체(四體)를 펴서 장구하고 원대한 규모를 하여, 군주의 덕(德)을 열어 밝힐 것이요, 버리고 떠나가서 후인들이 미혹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 제18장(第十八章)

 

『 공(公)이 말씀하였다. “전인(前人)『[무왕(武王)]』이 자기 마음을 펴시어 모두 너에게 명하여 너를 백성의 극(極)으로 삼으시고 말씀하기를

‘너는 밝게 힘써 왕을 도와서 서로 믿어 이 대명(大命)을 실어 문왕(文王)의 덕(德)을 생각해서 무강(無疆)한 근심을 크게 받들라’ 하셨다.”』
『 우(偶)는 짝함이다.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함께 무왕(武王)의 고명(顧命)을 받아 성왕(成王)을 보필하였다.

그러므로 주공(周公)이 말씀하기를 ‘전인(前人)이 심복(心腹)을 펴서 너 소공(召公)에게 명하여 삼공(三公)의 지위에 있게 해서 백성의 극(極)을 삼으시고

또 말씀하기를 「너는 마땅히 밝게 힘써 유자(孺子)를 도와서 밭가는 자에게 짝이 있는 것과 같이 하고,

서로 믿음에 있음이 수레에 마부가 있는 것과 같이 하여, 힘을 합하고 마음을 하나로 하여 천명(天命)을 실어서

문고(文考)의 옛 덕(德)을 생각하여 무강(無疆)한 근심을 크게 이으라.」 하였다.’ 하였으니, 무왕(武王)의 말씀이 이와 같은데도 떠나갈 수 있겠는가.”』

 

 

 

▣ 제19장(第十九章)

 

『 공(公)이 말씀하였다. “군(君)아! 너에게 짐(朕)의 정성을 고하노라.

태보(太保)인 석(奭)아! 너는 능히 나의 말을 공경하여 은(殷)나라가 망한 큰 어지러움을 살펴보아 크게 우리 하늘의 위엄을 생각하라.』
『 대부(大否)는 대란(大亂)이다. “너에게 나의 정성을 고한다.” 하고, 그 관직을 부르고 이름하여 말하기를

“너는 나의 말을 공경하여 은(殷)나라의 상망(喪亡)한 대란(大亂)을 살펴볼 것이니,

우리 하늘의 위엄이 크게 두려울 만함을 크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 제20장(第二十章)


『 내가 성실하지 못하고서 이와 같이 고하겠는가. 내 말하기를 ‘돕는 것은 우리 두 사람뿐이다’ 하노니, 너는 여기에 합함이 있을 것이다.

말하기를 ‘이 두 사람에게 있어 하늘의 아름다움이 불어나 이르거든 우리 두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니,

너는 능히 덕(德)을 공경하여 우리의 준걸스런 백성을 밝혀야 할 것이니, 크게 성할 때에 후인(後人)들에게 사양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 감(戡)은 이겨냄이니, 감(戡)과 감(堪)은 옛날에 통용되었다.

주공(周公)이 말씀하기를 “내가 남에게 성실하지 못하고서 이와 같이 고하겠는가.

내 이르기를 ‘왕업의 이룸이 나와 너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하노니, 너는 내 말을 듣고 합함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또한 말하기를 “이 우리 두 사람에게 있어 다만 하늘의 아름다움이 불어나 이르거든 우리 두 사람이 장차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니,

네가 만약 영만(盈滿)함을 두려워하거든 마땅히 스스로 덕(德)을 공경하여 더욱 공경하고 두려워해서 준민(俊民)을 밝게 드러내어

여러 지위에 포열해서 대신(大臣)의 직업을 다하여 불어나 이르는 하늘의 아름다움에 보답할 것이요, 한갓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떠나가고자 하지 말라.

타일『[후일]』 너에게 있어 크게 성할 때에 후인들에게 미루어 사양하고 초연히 여유롭게 은둔한다면 그 누가 다시 너를 금하겠는가.

지금이 어찌 네가 벼슬을 사양할 때이겠는가.” 하였다.』

 

 


▣ 제21장(第二十一章)


『 아! 군주를 도탑게 도울 자는 이 우리 두 사람이니,

내 써 능히 금일의 아름다움에 이르렀으나 내 모두 문왕(文王)의 공을 게을리하지 않음에 이루어서

덕(德)이 크게 입혀져 바다 귀퉁이의 해가 나오는 곳까지 따르지 않음이 없게 하여야 할 것이다.”』
『 주공(周公)이 다시 탄식하고 말씀하기를

“군주를 보필하기를 돈독히 하는 자는 이 우리 두 사람이니, 내 능히 금일의 아름답고 성함에 이르렀으나

내 소공(召公)과 더불어 함께 문왕(文王)의 공업을 게을리하지 아니하여 이루어서

크게 이 백성들에게 입혀져 바다 모퉁이의 해가 나오는 지역으로 하여금 신복(臣服)하지 않음이 없게 한 뒤에야 가(可)하다.” 한 것이다.

주(周)나라는 서쪽 지방에 도읍하여 동쪽과 거리가 멀므로 해가 나옴을 말한 것이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주공(周公)이 일찍이 자신의 공을 소유하지 않았는데 소공(召公)을 만류하려 하였기 때문에 말씀한 것이니,

이미 그러함을 서술하고 아직 이르지 않은 것을 권면하는 것은 또한 사람들이 기뻐하여 따르는 바이다.』

 

 

 

▣ 제22장(第二十二章)


『 공(公)이 말씀하였다. “군(君)아! 내 이치에 순하지 못하고서 이와 같이 고하기를 많이 하겠는가. 나는 써 하늘과 백성을 걱정하노라.”』
『 주공(周公)이 말씀하기를 “내 이치에 순하지 못하고서 이와 같이 순복(諄複)하여 고하기를 많이 하겠는가.

나는 천명(天命)의 끝마치지 못함과 이 백성의 의뢰함이 없음을 근심한다.” 한 것이다.

한자(韓子)가 “천명(天命)을 두려워하고 백성들의 곤궁함을 슬퍼한다.” 한 것도 이와 같은 뜻이다.

앞에서 “이와 같이 고한다.”고 말하였으므로 여기에 “이와 같이 고하기를 많이 한다.”고 한 것이니,

주공(周公)이 소공(召公)에게 고할 때에 그 언어의 즈음에 또한 슬퍼할 만하도다.』

 

 

 

▣ 제23장(第二十三章)

 

『 공(公)이 말씀하였다. “아! 군(君)아! 네가 백성의 덕(德)을 아니,

또한 그 처음을 잘하지 않음이 없으나 그 종(終)을 생각하여야 할 것이니, 나의 이 말을 공경하고 순히 하여 가서 공경히 다스리도록 하라.”』
『 상장(上章)에 천명(天命)과 민심(民心)을 말하였는데 민심(民心)은 또 천명(天命)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장(章)은 오로지 백성의 덕(德)을 말하여 끝마친 것이다.

주공(周公)이 탄식하고 이르기를 “소공(召公)이 천력(踐歷)하고 알고 익힘이 오래여서 오직 너만이 백성의 덕(德)을 아니,

백성의 덕(德)은 민심(民心)이 향하고 순함을 이른다.

또한 그 처음을 잘하지 않음이 없으니, 금일은 진실로 허물과 어김이 없으나 마땅히 그 종(終)을 생각하면 보전하기 어려운 백성들이 더욱 두려워할 만하다.

나의 이 말을 공경하고 순히 하여 가서 공경히 다스릴 것이요, 소홀히 하지 말라.” 한 것이다.

이는 소공(召公)이 이미 머묾에 주공(周公)이 경계하여 보내어서 직책에 나아가게 한 말씀이다.

그후에 소공(召公)은 이미 성왕(成王)을 돕고 또 강왕(康王)을 도와서 두 대에 이르기까지 정사를 놓지 않았으니, 이는 주공(周公)의 말씀에 완미함이 있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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