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제23장 기차치곡장(基次致曲章)

 

其次는 致曲 曲能有誠이니 誠則形하고 形則著하고 著則明하고
기차는 치곡 곡능유성이니 성즉형하고 형즉저하고 저즉명하고

 

明則動하고 動則變하고 變則化니 唯天下至誠이아 爲能化니라.
명즉동하고 동즉변하고 변즉화니 유천하지성이아 위능화니라.

 

그 다음은 곡진함으로 이룸이니, 곡진하면 능히 성실함이 있으니,
성실하면 형체가 나오고, 형체가 나오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변하고, 변하면 화하니,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어야 능히 화하느니라.

 

[본문 해설]

이 글은 주역 계사하전 제2장의
“역이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하니라
(易이 窮則變하고 變則通하고 通則久ㅣ라)”라는 이치에서 연유한 글임을 알 수 있다.
윗 글은 천도에 해당하는 ‘自誠明’ ‘天下至誠’이 첫째가 되는데, 지성으로 다할 수 없으면
그 다음에는 곡진함으로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열심히 노력하고 차근차근 다져나가는 곡진함이 있으면 능히 성실해져 밖으로 드러난다.
『대학』성의장에 “誠於中이면 形於外라(속마음에 성실하면 밖으로 드러나니라)”는 귀절과 같은 의미이다.
또한 지극한 정성이면 하늘을 감동시킨다(至誠感天)는 말처럼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어야 능히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주역 풍택중부(風澤中孚)괘의 어미학과 새끼 학의 믿음이 바로 이를 말한다.

 

其次는 通大賢以下凡誠有未至者而言也라 致는 推致也오
기차는 통대현이하범성유미지자이언야라 치는 추치야오

 

曲은 一偏也라 形者는 積中而發外오 著則又加顯矣오 
곡은 일편야라 형자는 적중이발외오 저즉우가현의오 

 

明則又有光輝發越之盛也라 動者는 誠能動物이오 變者는 物從
명즉우유광휘발월지성야라 동자는 성능동물이오 변자는 물종

 

變者는 物從而變이오 化則有不知其所以然者라 蓋人之性이 無不同이나
변자는 물종이변이오 화즉유부지기소이연자라 개인지성이 무부동이나

 

而氣則有異라 故로 惟聖人이아 能擧其性之全體而盡之하고
이기즉유이라 고로 유성인이아 능거기성지전체이진지하고

 

其次則必自其善端發見之偏而悉推致之하야 以各造其極也라
기차즉필자기선단발현지편이실추치지하야 이각조기극야라

 

曲無不致則德無不實하야 而形著動變之功이 自不能已이니
곡무불치즉덕무부실하야 이형저동변지공이 자불능이이니

 

積而至於能化하면 則其至誠之妙 亦不異於聖人矣리라.
적이지어능화하면 즉기지성지묘 역불이어성인의리라.

‘그 다음’이란 것은 대현 이하로(써 아래로) 통틀어 무릇 성실하고도 지극하지 못함이 있는 자를 말함이라.
‘치’는 미루어 이룸이오 ‘곡’은 한 편이라.
‘형’이라는 것은 중에 쌓아서 밖으로 나타남이오,
‘저’는 곧 또한 더욱 나타남이라, 밝으면 또한 광휘발월(빛남이 드러나 넘침)의 성함이 있음이라.
동하는 것은 성실함이 능히 물건을 움직임이오, 변한다는 것은 물건 따라 변하는 것이오,
화하면 그 소이연(연유)을 알지 못함이 있느니라.
대개 사람의 성품은 같지 않음이 없으나 기운이 곧 다름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오직 성인이라야 그 성품을 온전히 들어서 다하고,
그 다음은 곧 반드시 그 착한 단서가 발현되는 한쪽에서부터 모두 미루어 이루어 각각 그 극진함에 나아가느니라.
곡진함으로 이루지 않음이 없으면 덕이 실하지 않음이 없어 형체로 나타나 움직여 변하는
공이 스스로 능히 끝나지 못할 것이니, 쌓여서 능히 화하는 데까지 이르면
그 지극한 정성의 신묘함이 또한 성인과 다르지 않으리라.

 

右는 第二十三章이라

 

言人道也라

사람의 도를 말함이라.

중용 제22장 천하지성장(天下至誠章)

 

 

子思 承上章夫子天道人道之意而立言也라 自此以下十二章은 皆子思之言이니 以反覆推明此章之意니라.

자사 승상장부자천도인도지의이립언야라 자차이하십이장은 개자사지언이니 이반복추명차장지의니라.

 

자사가 윗글 부자(공자)의 천도,인도의 뜻을 이어서 말을 세움이라

(예전에는 세로로 글을 썼으므로 세운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이로부터 써 아래로(제22장부터) 열두 장은 모두 자사의 말씀으로 이장의 뜻을 반복하여 미루어 밝힌 것이라.

 


唯天下至誠이아 爲能盡其性이니 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이오

유천하지성이아 위능진기성이니 능진기성 즉능진인지성이오

 

能盡人之性 則能盡物之性이오 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이오 

능진인지성 즉능진물지성이오 능진물지성 즉가이찬천지지화육이오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니라.

가이찬천지지화육 즉가이여천지참의니라.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어야 능히 그 성품을 다할지니,

능히 그 성품을 다하면 능히 사람의 성품을 다할 것이오,

능히 사람의 성품을 다하면 능히 물건의 성질을 다할 것이오,

능히 물건의 성질을 다하면 가히 써 천지의 화육을 도울 것이오,

가히 써 천지의 화육을 도우면 가히 써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되느니라.

贊: 도울 찬 參: 석 삼, 참여할 참

 

[본문 해설]

오직 천하의 성이라야 자기의 타고난 성을 온전히 발현할 수 있다.

자기의 타고난 성을 온전히 발현할 수 있게 되어야 타인의 성을 온전히 발현케 할 수가 있다.

타인의 성을 온전히 발현케 할 수 있어야 모든 사물의 성을 온전히 발현케 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의 성을 온전히 발현케 할 수 있어야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다.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어야 비로서 천과 지와 더불어 온전한 일체가 되는 것이다.

 

지극한 정성을 가진 성인의 덕을 말하고 있다.

성인에 대해 『주역』 건괘 문언전 마지막 제6절에서

“나아가고 물러남과 존하고 망함을 알아서 그 바름을 잃지 않는 자,

그 오직 성인이실 뿐인저!(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 其唯聖人乎)

(지진퇴존망이부실기정자 기유성인호)”라 하였으며,

이보다 앞서 언급한 ‘大人’의 경지이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夫大人者는 與天地合其德하며 與日月合其明하며 與四時合其序하며

부대인자는 여천지합기덕하며 여일월합기명하며 여사시합기서하며

 

與鬼神合其吉凶하야 先天而天弗違하며 後天而奉天時하나니 

여귀신합기길흉하야 선천이천불위하며 후천이봉천시하나니 

 

天且弗違온 而況於人乎며 況於鬼神乎여

천차불위온 이황어인호며 황어귀신호여

 

무릇 대인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며, 일월과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하며,

사시와 더불어 그 차례를 합하며,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을 합하여,

하늘보다 먼저 해도 하늘이 어기지 아니하며, 하늘보다 뒤에 해도 하늘의 때를 받드나니,

하늘도 또한 어기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며 하물며 귀신이랴!

 
성인의 덕이 이러하기에 천하의 이치를 얻음에 자리가 하늘과 땅의 그 가운데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天下之理ㅣ 得而成位乎其中矣니라 - 『주역』 계사상전 제1장).

또한 ‘석 三’ ‘임금 王’, ‘사람 人’, 중천건괘의 모양 등은 모두가 『천부경』에서 말하는 ‘人中天地一’로서

지극한 정성을 가진 사람 곧 대인이나 성인이라면 가히 천지와 더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인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복희씨(伏犧氏)이다.

『주역』계사하전 제2장을 보면,

 "古者包犧氏之王天下也(고자포희씨지왕천하야)애 仰則觀象於天(앙즉관상어천)하고

俯則觀法於地(부즉관법어지)하며 觀鳥獸之文(관조수지문)과 與地之宜(여지지의)하며

近取諸身(근취제신)하고 遠取諸物(원취제물)하야

於是(어시)에 始作八卦(시작팔괴)하야 以通神明之德(이통신명지덕)하야

以類萬物之情(이류만물지정)하니

(옛적 포희씨가 천하에 왕이 되었을 때에 우러러서는 하늘의 형상을 보고

구부려서는 땅의 법을 보며 새와 짐승의 무늬와 땅의 마땅함을 보며

가까이로는 저 몸에서 취하고 멀리로는 저 물건에서 취하여

이에 비로소 팔괘를 지음으로써 신명의 덕을 통하여 만물의 실정을 같이하니)”에서

성인의 지극한 공덕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설괘전 제1장에서는

“昔者聖人之作易也(석자성인지작역야)애 幽贊於神明而生蓍(유찬어신명이생시)하고

參天兩地而倚數(삼천양지이의수)하고 觀變於陰陽而立卦(관변어음양이립괘)하고

發揮於剛柔而生爻(발휘어강유이생효)하니 和順於道德而理於義(화순어도덕이리어의)하며

窮理盡性(궁리진성)하야 以至於命(이지어명)하니라

(옛적 성인이 역을 지을 때 그윽히 보이지 않는 데서 신명을 도와 시초를 내고

하늘은 셋으로 땅은 둘로 해서 수를 의지하고 음양의 변함을 보아서 괘를 세우고,

강유를 발휘해서 효를 내니, 도덕에 화순하고 의리를 다스리며,

이치를 궁구하고 성품을 다함으로써 명에 이르느니라)” 하였다.

 
위 본문의 마지막 문장인 ‘與天地參矣’에서 ‘參’을 ‘석 삼’으로 읽고

‘천지와 더불어 셋을 이루니라’고 하거나,

‘참여할 참’으로 읽고 ‘천지와 더불어 참여하게 되니라’고 해석해도 두루 뜻이 통한다.

천지인 三才의 의미를 나타내는 글이다.

 


天下至誠은 謂聖人之德之實이니 天下에 莫能加也라 盡其性者는 德無不實이라

천하지성은 위성인지덕지실이니 천하에 막능가야라 진기성자는 덕무부실이라

故로 無人欲之私而天命之在我者를 察之由之하야 巨細精粗가 無毫髮之不盡也라

고로 무인욕지사이천명지재아자를 찰지유지하야 거세정조가 무호발지불진야라 

人物之性은 亦我之性이로되 但以所賦形氣 不同으로 而有異耳라

 인물지성은 역아지성이로되 단이소부형기 부동으로 이유이이라 

能盡之者는 謂知之無不明而處之無不當也라 贊은 猶助也라

 능진지사는 위지지무불명이처지무부당야라 찬은 유조야라 

與天地參은 謂與天地로 竝立而爲三也라 此는 自誠而明者之事也라.

 여천지삼은 위여천지로 벼립이위삼야라 차는 자성이명자지사야라.

 

천하지성은 성인의 덕의 실함이니 천하가 능히 더할 것이 없음을 이르느니라.

그 성품을 다하는 자는 덕이 실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사람 욕심의 사사로움이 없고 천명이 내게 있는 것을 살피고

말미암아서 크고 가늘고 정하고 거칠음이 터럭끝만큼이라도 다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사람이나 물건의 성품은 또한 나의 성품이로되

다만 (하늘이) 부여해준 형체와 기질이 같지 않음으로 다름이 있느니라.

능히 (성품을) 다하는 자는 아는 것이 밝지 않음이 없고 처함이 합당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찬은 ‘도울 조’와 같으니라.

천지와 더불어 셋이라는 것은 천지와 더불어 나란히 서서 셋이 됨을 이르니라.

이는 정성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자의 일이라.

 


右는 第二十二章이라

 


言天道也이라.

천도를 말함이라.

 

중용 제21장 자성명장(自誠明章)

 

 

自誠明을 謂之性이오 自明誠을 謂之敎니 誠則明矣오 明則誠矣니라.
자성명을 위지성이오 자명성을 위지교니 성즉명의오 명즉성의니라.

 

 誠에서부터 明으로 구현되어 나아가는 것을 性이라 일컫고

明에서부터 誠으로 구현되어 나아가는 것을 敎라고 일컫는다.

誠하면 곧 明해지고 明하면 곧 誠해진다.

 

정성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을 ‘性’이라 이르고,
밝음으로 말미암아 정성스러워지는 것을 敎라 이르니,
정성스러우면 밝아지고 밝으면 정성스러워지느니라.

 

 이장부터 소위 자사의 誠論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니까 21장은 子思誠論의 총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1장의 총론과 性과 敎라는 개념이 오버랩되고 있다.

주희도 이 장이 공자가 앞 장에서 誠者를 天道라 보았고

誠之者를 人道라 보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천도와 인도의 핵심을 같이 말한 총론장이라고 규정하고

제22장에서 32장까지 11개의 장은 모두 자사의 立論이며

그것은 바로 이 장의 내용을 반복하여 推明(추명=미루어 밝힘)한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다음 11개장은 천도나 인도 그 중 하나만을 번갈아 말한 것으로 본다.

 

[본문 해설]

『중용』은 이치가 깊은 글이니 생각을 많이 해야 뜻을 통할 수 있는 글이다.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훤히 밝아지는 것은 하늘로부터 그대로 받은 진실무망의 성품이고,
세상에 나와 배워 알면서 정성스럽게 하는 것은

하늘이 부여해준 본바탕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으로 이를 일러 교육이라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성과 밝음은 한 가지이기에 굳이 어떤 것이 더 먼저라고 구분할 문제는 아니다.
정성스러우면 밝아지고 밝으면 자연 정성스러워지기에
‘生而知之’거나 ‘學而知之’거나 ‘困而知之’거나를 막론하고

그 아는 데 이르러서 성공하는 것은 같다는 점이다.

 

自는 由也라 德無不實而明無不照者는 聖人之德이 所性而有者也니 天道也오
자는 유야라 덕무부실이명무부조자는 성인지덕이 소성이유자야니 천도야오

 

先明乎善而後에 能實其善者는 賢人之學이 由敎而入者也니 人道也라
선명호선이후에 능실기선자는 현인지학이 유교이입자야니 인도야라

 

誠則無不明矣오 明則可以至於誠矣니라.
성즉무불명의오 명즉가이지어성의니라. 

 

自는 말미암음이라.
덕은 실하지 않음이 없고 밝음은 비추지 않음이 없는 것은 성인의 덕이 성품으로 해서 둔 것이니 하늘의 도요,
먼저 선에 밝은 뒤에 능히 그 선을 실지로 행하는 하는 자는
현인의 배움이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는 것이니 사람의 도라.
성실하면 밝지 않음이 없고 밝아지면 가히 성실함에 이르느니라.

 


右는 第二十一章이라

 

중용 제20장 애공문정장(哀公問政章)

 1.
哀公이 問政한대

애공이 문정한대

 

애공이 정사를 묻자

 
[본문 해설]

노나라의 인군인 애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질문한 것이다.

 
애공은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왕(BC494~BC468)으로 성은 희(姬) 이름은 장(蔣, 將)이다.

당시 노나라에는 삼환씨(三桓氏)라 불리는 공족(公族)의 힘이 강했으며,

대외적으로 오(吳)와 제(齊)나라의 공격을 받아 노나라는 정국이 불안하였다.

위(衛)나라에서 귀국한 공자도 BC479년 불우한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그 뒤 애공은 월(越)나라의 힘을 빌려 삼환씨를 제거하려 했으나,

도리어 삼환씨의 공격을 받아 재위 27년만에 죽었다.

-[한국세계대백과사전 제18권, 동서문화]

 


哀公은 魯君이니 名은 蔣이라.

애공은 노군이니 명은 장이라.

 

애공은 노나라 임금이니 이름은 장이라.

 

蔣 : 수풀 장, 성 장

 

2.
子曰 文武之政이 布在方策하니 其人이 存則其政이 擧하고 其人이 亡則其政이 息이니라.

 

자왈 문무지정이 포재방책하니 기인이 존즉기정이 거하고 기인이 망즉기정이 식이니라.

 

공자 말씀하시길 문왕과 무왕의 정치가 펼쳐진 것이 방책(목판과 책)에 있으니

그 사람이 있으면 그 정치가 일어나고 그 사람이 없으면 그 정치가 마비되느니라.

 

策 : 대쪽 책(죽간(簡)을 말아놓은 두루마리 책을 말한다.)

 
[본문 해설]

애공의 물음에 공자는 정치를 잘한 문왕과 무왕의 정치에 방책에 모두 있으니

그것을 잘 알고 그대로 따르면 정치를 잘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정치를 잘못할 것이라고 답하는 내용이다.

 


方은 版也오 策은 簡也라 息은 有滅也라 有是君 有是臣 則有是政矣라.

 

 방은 판야오 책은 간야라 식은 유멸야라 유시군 유시신 즉유시정의라.

 

방은 판자요 책은 죽간이라.

식은 멸(없어짐)과 같음이라 이와 같은 군과 이와 같은 신이 있으면 곧 이 정사가 있으니라.

 

3.
人道는 敏政하고 地道는 敏樹하니 夫政也者는 蒲盧也니라.

인도는 민정하고 지도는 민수하니 부정야자는 포로야니라.

 

사람의 도는 정치에 민첩하고 땅의 도는 심는데 민첩하니 대저 정치라는 것은 부들과 갈대와 같으니라.

蒲: 부들 포 盧: 갈대 로

 
敏은 速也라 蒲盧는 沈括以爲蒲葦是也라 以人立政이 猶以地種樹니 其成이 速矣요

민은 속야라 포로는 침괄이위포위시야라 이인립정이 유이지종수니 기성이 속의요

而蒲葦는 又易生之物이니 其成이 尤速也라 言人存政擧 其易如此라.

이포위는 우이생지물이니 기성이 우속야라 언인존정거 기이여차라.

 

  

민은 빠름이오, 포로는 심괄

(1031~1095, 北宋 때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왕안석의 정치개혁 때 수리와 관개를 맡았다.

天地를 모시는 의식 절차를 南郊식으로 정리했다.

여기에서 심괄을 사람이름으로 보지 않고 ‘침괄’이라 읽고 ‘잠겨 모여’란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써 포위(부들과 갈대)라 하니 이것이라.

사람으로써 정치를 세우는 것이 땅에 나무를 심는 것과 같으니 그 이룸이 빠르며,

포위는 또한 쉽게 나오는 물건이니 그 이룸이 또한 빠름이라.

사람이 있어서 정사가 거행되는 것이 그 쉬움이 이와 같음을 말함이라.

括: 모일 괄 葦: 갈대 위

 

4. 
故로 爲政이 在人하니 取人以身이오 脩身以道이오 脩道以仁이니라.

고로 위정이 재인하니 취인이신이오 수신이도이오 수도이인이니라.

 

그러므로 정치를 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으니 사람을 취하는 것은 몸으로써 함이오

몸을 닦는 것은 도로써 함이오 도를 닦은 것은 인으로써 함이라.

 
此는 承上文人道敏政而言也라 爲政在人은 家語에 作爲政이 在於得人이니 語意尤備라

차는 승상문인도민정이언야라 위정재인은 가어에 작위정이 재어득인이니 어의우비라

 

人은 謂賢臣이오 身은 指君身이라 道者는 天下之達道요

인은 위현신이오 신은 지군신이라 도자는 천하지달도요

 

 仁者는 天地生物之心而人得以生者니 所謂元者는 善之長也라

인자는 천지생물지심이인득이생자니 소위원자는 선지장야라

 

言人君爲政이 在於得人이니 而取人之則은 又在修身이니 

 언지군위정이 재어득인이니 이취인지칙은 우재수신이니

 

能仁其身이면 則有君有臣而政無不擧矣라.

 능인기신이면 즉유군유신이정무불거의라.

 

이것은 윗글을 이어 사람의 도는 정치에 민감함을 말함이라.

정치가 사람에 있다는 것은 『공자가어』에 ‘정치를 하는 것이 사람을 얻는 것에 있다’고 지어져 있으니

『논어』에 말뜻이 더 잘 갖추어져 있음이라.

인은 어진 신하를 말함이오 신은 인군의 몸을 가리킴이라.

도는 천하를 통한도요, 인은 천지생물의 마음이요 사람이 얻어서 써 나옴이니 원은 선의 어른이라.

인군이 정사를 함이 사람을 얻음에 있고 사람을 취하는 법은 또 몸을 닦는데 있으니

능히 그 몸을 어질게 하면 곧 인군이 있고 신하가 있어 정사가 일어나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라.

‘元者는 善之長也’란 글귀는 주역에 있는 말로 중용 제16장 제2절의 앞주 해설을 참고하기 바란다.

 

5.
仁者는 人也니 親親이 爲大하고 義者는 宜也니 尊賢이 爲大하니 親親之殺와 尊賢之等이 禮所生也이니라.

인자는 인야니 친친이 위대하고 의자는 의야니 존현이 위대하니 친친지쇄와 존현지등이 예소생야이니라.

 

어질다는 것은 사람이니 어버이를 친함이 큼이 되고

의라는 것은 마땅함이니 어진 이를 높이는 것이 큼이 되니

어버이를 친하면서 줄이는 것과 어진 이를 높이는 차등이 예가 생하는 바이니라

殺 : 덜 쇄

 

[본문 해설]

애공이 정사에 관해 묻자,

처음에 공자는 정치는 사람에게 있고 사람을 얻는 것은 자신이 도로 몸을 닦아야 하고,

인으로 도를 닦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인이라는 것은 바로 사람이라고 했다.

仁은 글자 자체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人)끼리 서로(二) 사랑을 베푸는 뜻이 담겨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고 애완동물이나 다른 것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진정 사랑이 아니다.

그러면 인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며 무엇이 가장 중요하겠는가.

그것은 내가 나온 근원 즉 어버이라는 것이다.

仁은 봄이고 義는 가을에 해당하는 것으로 仁이 내적인 것이라면 義는 외적인 것이다.

仁을 體로 한다면 義는 用이 된다.

그러므로 내적인 가정에서 어버이를 친히 하는 것은 體가 되는 인을 실현하는 것이고,

외적으로 나아가 세상의 어진 사람을 높이는 것은 用인 의가 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내적인 체가 되는 인은 가장 근본이 되는 어버이를 친히 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바깥으로 점점 줄여나가야 하는데 즉 어버이는 나의 망극한 은인이시니

최고의 사랑을 베풀어야 하고 다음으로 형제간, 숙질간 등으로 줄여나가는 것이다.

喪을 당했을 때 3년복, 1년복, 9개월복, 5개월복, 3개월복 등이 이러한 이유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어진 이를 높이는 데에도 차등이 있어야 하는데

가령 벼슬하는 이에게는 등급이 있고,

현인에게도 대현, 성현, 군자 등의 차등이 있고,

연장자에게 절을 해야 하듯이 바로 여기에서 절도가 있는 예가 나오는 것이다.

 
人은 指人身而言이라 具此生理하야 自然便有惻달慈愛之意하니 深體味之면 可見이라

인은 지인신이언이라 구차생리하야 자연변유측달자애지의하니 심체미지면 가견이라

 

宜者는 分別事理하야 各有所宜也라 禮則節文斯二者而已라.

의자는 분별사리하야 각유소의야라 예즉절문사이자이이라.

 

인은 사람의 몸을 가리키는 말이라.

이 생리(생하는 이치)를 갖추고 있어 자연히 문득 슬퍼하고(惻?)

자애로운 뜻이 있으니 깊이 체득하여 맛들이면 가히 볼 수 있느니라.

宜는 사리를 분별하여 각각 마땅한 바를 두는 것이라.

예는 이 두 가지(仁과 義)를 절도 있게 조절하여 무늬 나게 할 뿐이라.

 

便: 문득 변 惻: 슬플 측 달: 슬플 달

 
[앞주 해설]

사람은 아무리 악한 이일지라도 슬퍼하고 자애로운 마음이 있어

어린 아이가 기어가다 물에 빠지려고 하면 달려가 구해준다.

이렇듯 누구에게나 타고난 이치를 갖추고 있어 깊이 몸에 체득하여 맛들이면 가히 仁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다.

生理와 관련해서 맹자는 四端으로써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惻隱之心은 仁之端也오 羞惡之心은 義之端也오 辭讓之心은 禮之端也오 是非之心은 知之端也니라

측은지심은 인지단야오 수오지심은 의지단야오 사양지심은 예지단야오 시비지심은 지지단야니라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니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는 自賊者也오

인지유시사단야 유기유사체야니 유사자단이자위불능자는 자적자야오

 

 謂其君不能者는 賊其君者也니라

위기군불능자는 적기군자야니라

 

凡有四端於我者를 知皆擴而充之矣면 若火之始然하며 泉之 始達이니

 범유사단어아자를 지개확이충지의면 약화지시연하며 천지시달이니

 

苟能充之면 足以保四海오 苟不充之면 不足以事父母니라.

구능충지면 족이보사해오 구불충지면 부족이사부모니라.

- 『맹자』 公孫丑章句上에서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요 수오지심은 의의 단서요 사양지심은 예의 단서요,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이니라.

사람이 이 사단을 가지고 있음은 그 사체를 있음과 같으니

이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스스로를 해치는 자요.

그 군주가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 군주를 해치는 자이니라.

무릇 사단이 나에게 있는 것을 다 넓혀서 채울 줄 알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며 샘물이 처음 나오는 것과 같을 것이니

진실로 능히 이것을 채운다면 족히 사해를 보호할 수 있고,

진실로 채우지 못한다면 부모도 족히 섬기지 못하느니라.)

 

6.
在下位하야 不獲乎上이면 民不可得而治矣리라.

제하위하여 불획호상이면 민불가득이치의리라.

 

아래 자리에 있어서 위에서 얻지 못하면 백성을 가히 얻어 다스리지 못하리니라.

 

[본문 해설]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인 자기 상관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그런 사람이 어찌 자기 부하를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鄭氏曰 此句在下하니 誤重在此라.

정씨왈 차구재하하나 오중재차라.

 

정씨(鄭玄)이 말하기를, “이 글귀는 아래에 있는데, 잘못으로 거듭하여 여기에 있느니라.”

 

7.
故로 君子 不可以不脩身이니 思脩身인댄 不可以不事親이오

고로 군자 불가이불수신이니 사수신인댄 불가이불사친이오

 

思事親인댄 不可以不知人이오 思知人인댄 不可以不知天이니라.

사사친인댄 불가이부지인이오 사지인인댄 불가이부지천이니라.

 

그러므로 군자가 가히 써 몸을 닦지 않음이 없으니 몸을 닦음을 생각할진댄

가히 써 어버이 섬김을 아니치 못하고 어버이 섬김을 생각할진댄

가히 써 사람을 알지 아니치 못하고 사람 앎을 생각할진댄 가히 써 하늘을 알지 아니치 못하느니라.

 
[본문 해설]

군자가 인을 행하려면 수신을 해야 한다.

이렇게 몸을 닦을 것을 생각하면 먼저 백행의 근본인 효도를 생각지 않을 수 없으니

먼저 어버이를 섬겨야 할 것이고, 어버이를 섬기려고 생각하면 어떻게 섬겨야 할지 먼저 사람을 알아야 하고,

사람을 알려면 먼저 하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치를 하려면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그 철학이 바로 하늘, 곧 자연의 이치에서 나왔음을 깊이 새기게 해주는 말이다.

 
이러한 사상은 이미 고대부터 형성된 동양정치철학이다.

동양정치철학의 근간이 되었던 홍범구주가 바로 정치를 하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으로

자연의 이치인 오행을 첫째로 들고 있으며 인군이 되는 왕은 바로 가운데(中) 자리에서

不偏不倚하고 無偏無陂하며 無黨無偏의 자세로 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爲政在人하고 取人以身이라 故로 不可以不修身이오 修身以道하고 修道以仁이라

위정재인하고 취인이신이라 고로 불가이불수신이오 수신이도하고 수도이인이라

 

故로 思修身인댄 不可以不事親이오 欲盡親親之仁인댄 必由尊賢之義라 故로 又當知人이오

고로 사수신인댄 불가이불사친이오 욕진친친지인인댄 필유존현지의라 고로 우당지인이오

 

親親之殺와 尊賢之等이 皆天理也라 故로 又當知天이라.

친친지쇄와 존현지등이 개천리야라 고로 우당지천이라.

 

정치를 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고 사람을 취하는 것이 몸으로써 함이라.

그러므로 가히 써 몸을 닦지 않음이 없고 몸을 닦는 것은 도로써 하고 도를 닦는 것은 인으로써 함이라.

그러므로 몸을 닦음을 생각할진댄 가히 써 어버이를 친하지 아니함이 없고,

어버이 친하는 그 사랑을 다하고자 할진대 반드시 어진 이를 높이는 의리로써 말미암음이라.

그러므로 또 마땅히 사람을 알아야 하고

어버이를 친하면서부터 덜어지는 것과 어진 이를 높이는 데서부터 차등을 두는 것은

모두가 하늘의 이치이라. 그러므로 또 마땅히 하늘을 알아야 하느니라.

殺 : 덜 쇄

 

 8.
天下之達道 五에 所以行之者는 三이니 曰君臣也父子也 夫婦也昆弟也 朋友之交也五者는 天下之達道也오

천하지달도 오에 소이행지자는 삼이니 왈군신야부자야 부부야곤제야 붕우지교야오자는 천하지달도야오

 

知仁勇三者는 天下之達德也니 所以行之者는 一也니라.

지인용삼자는 천하지달덕야니 소이행지야는 일야니라.

 

 

천하의 통한(공통된) 도가 다섯에 써 행하는 바는 삼이니

가로되 군신과 부자와 부부와 형제와 벗의 사귐, 다섯 가지는 천하의 통한 도이고,

지 인 용 셋은 천하의 통한 덕이니 써 행하는 바는 하나이니라.

 

[본문 해설]

達道는 체가 되고 達德은 용이니 윗글은 5체3용(五體三用)을 말하고 있다.

道는 가는 길이고, 德은 길을 가면서 베푸는 것이기에 達道는 체가 되고 達德은 용이 된다.

그렇지만 달도를 행하나 달덕을 행하나 행하는 것은 한 가지일 뿐이다.

공자의 “吾道는 一以貫之니라”와 통하는 내용이다.

 


達道者는 天下古今所共由之路니 卽書所謂五典이오

 달도자는 천하고금소공유지로니 즉서소위오전이오

 

孟子所謂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이 是也라

맹자소위부자지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이 시야라 

 

知는 所以知此也오 仁은 所以體此也오 勇은 所以强此也니라

지는 소이지차야오 인은 소이체차야오 용은 소이강차야니라

 

謂之達德者는 天下古今所同得之理也라 一은 則誠而已矣라 

위지달덕자는 천하고금소동득지리야라 일은 즉성이이의라 

 

達道는 雖人所共由나 然이나 無是三德이면 則無以行之오

달도는 수인소공유나 연이나 무시삼덕이면 즉무이행지오

 

達德은 雖人所同得이나 然이나 一有不誠이면 則人欲이 間之하야 而德非其德矣니라

달덕은 수인소동득이나 연이나 일유불성이면 즉인욕이 간지하야 이덕비기덕의니라

 

程子曰所謂誠者는 止是誠實此三者니 三者之外에 更別無誠이니라.

정자왈소위성자는 지시성실차삼자니 삼자지외에 갱별무성이니라.

 

달도라는 것은 천하 고금에 한 가지 말미암은 바의 길이니

즉 『서경』에 이른바 五典이오,

『맹자』에 이른바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이 이것이라.

지는 써 이것(달도)을 아는 바이오 인은 써한 바 이것을 체득하는 것이고

용은 써한 바 이것을 강제로 이끌어가는 것이니라.

달덕이라 하는 것은 천하 고금에 한 가지 얻은 바의 이치이라.

일은 즉 정성일 뿐이라.

달도는 비록 사람이 한 가지 말미암은 바이나 그러나 이 삼덕이 없으면

즉 써 행하지 못함이오 달덕은 비록 사람이 한가지로 얻어진 바이나

그러나 하나라도 성실함이 없으면 즉 사람 욕심이 그 사이에 끼어들어 덕이 그 덕이 아니니라.

정자 말씀하시길 “이른바 정성이라는 것은 다만 이 세 가지를 성실히 하는 것이니

세 가지 외에는 다시 별도로 성실이 없느니라.”

 

[앞주 해설]

공통된 도라는 것은 천하에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모두 행해야 할 길이다.

五體인 달도를 『서경』우서 순전(虞書 舜典)에서는 五典(다섯 가지 전법)이라 했으며,

『맹자』에서는 오륜(五倫)으로 설명(?文公章句上편)하고 있다.

이 五體를 아는 것이 知이고, 五體를 체득하여 그대로 베풀고 행하는 것이 仁이며,

알고 행하는 것을 힘써 나가는 것이 勇이다.

『주역』중천건괘 대상전에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가 이로써 스스로 굳세어 쉬지 않느니라

(象曰 天行이 健하니 君子 以하야 自彊不息하나니라)”고 했듯이 강하게 이끌고 나가는 것을 말한다.

 
달덕이라는 것은 천하에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그 길을 가면서 한 가지로 얻은 이치이다.

‘德은 得也라’ 하였듯이 덕은 얻는 것인데 그것은 오직 정성으로만 얻어지는 것이다.

『중용』을 ‘정성 誠’ 한 글자로 압축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실한 정성이 아니면 달덕이나 달도는 모두가 한갓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정자의 인용구절도 知仁勇 세 가지에 성실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글이다.

 

9.
或生而知之하며 或學而知之하며 或困而知之하나니 及其知之하야난 一也니라

혹생이지지하며 혹학이지지하며 혹곤이지지하나니 급기지지하야난 일야니라

 

或安而行之하며 或利而行之하며 或勉强而行之하나니 及其成功하야난 一也니라.

혹안이행지하며 혹이이행지하며 혹면강이행지하나니 급기성공하야난 일야니라.

 

 

혹 날 때부터 알며 혹 배워서 알며 혹 곤해서(고달프게 노력해서) 아느니 그 앎에 이르러서는 한 가지이니라.

혹 편안하면서 행해지며 혹 이롭게 하여 행하며 혹 힘써서 행하나니 그 성공에 이르러서는 한 가지이니라.

 
[본문 해설]

앎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공자나 노자 같은 성인처럼 날 때부터 저절로 그 이치를 아는 사람이 있는 반면(生而知之),

현인은 성인처럼 저절로 알지는 못하나 열심히 공부하여 알고(學而知之),

또 현인처럼 재주가 훌륭하지 못하나 투철한 사람은 열심히 애쓰고 갖은 고초를 감내하며

이치를 알아가는(困而知之) 방법이 있는데 결국에 가서 아는 것은 모두가 한 가지로 같을 뿐이다.

 
『주역』계사상전 제12장에 “神而明之는 存乎其人하고 ?而成之하며 不言而信은 存乎德行하니라

(신비스러워 밝히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고, 묵묵해서 이루며 말을 아니 해도 믿음은 덕행에 있느니라)”고 하였다.

알면 그대로 실행해야 하는데 나면서부터 저절로 안 사람은 곧 묵묵히 이루며

말을 하지 않아도 덕행을 행하듯이 편안하게 행하고,

열심히 배워서 안 사람은 이롭게 하는 가운데 행하고,

어려움을 감내하며 안 사람은 힘써서 행하니

곧, 安而行之(用)는 生而知之(體)와 같고 利而行之(用)는 學而知之(體)와 같으며,

勉强而行之(用)는 困而知之(體)와 같다.

 
윗글 역시 體用의 이치로 설명하였는데, 지적인 것은 체가 되고,

공을 이루는 것은 용으로 하였으나 모두가 한 가지임을 밝혔다.

 
知之者之所知와 行之者之所行은 謂達道也라 以其分而言하면

지지자지소지와 행지자지소행은 위달도야라 이기분이언하면

 

則所以知者는 知也오 所以行者는 仁也오 所以至於知之成功而一者는 勇也니라

즉소이지자는 지야오 소이행자는 인야오 소이지어지지성공이일자는 용야니라

 

以其等而言하면 則生知安行者는 知也오 學知利行者는 仁也오 困知勉行者는 勇也라

이기등이언하면 즉생지안행자는 지야오 학지이행자는 인야오 공지면행자는 용야라

 

蓋人性이 雖無不善이나 而氣?이 有不同者라

개인성이 수무불선이나 이기품이 유부동자라

 

故로 聞道에 有蚤莫하며 行道에 有難易나 然이나 能自强不息이면 一也니라

고로 문도에 유조막하며 행도에 유난이나 연이나 능자강불식이면 一也니라

 

則其至는呂氏曰 所入之塗雖異나 而所至之域則同하니

기즉지는 여씨왈 소입지도수이나 이소지지역즉동하니

 

는 所以爲中庸이어니와 若乃企生知安行之資하야 爲不可幾及이라 하고

는 소이위중용이어니와 약내기생지안행지자하야 위불가기급이라 하고

 

輕困知勉行하야 謂不能有成이라 하면 此는 道之所以不明不行也니라. 

경곤지면행하야 위불능유성이라 하면 차는 도지소이불명불행야니라.

 

아는 자의 아는 바와 행하는 자의 행하는 바는 달도라 이르니라.

써 그것을 나누어서 말한다면 써한 바 아는 자는 아는 것이요 써한 바 행하는 자는 어진 것이요

써한 바 알아서 성공에 이르러서 하나라는 것은 용맹이니라.

써 그것을 등급으로 말하면 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히 행하는 것은 지(순임금의 大知)이고,

배워서 알고 이롭게 행하는 것은 어짊(안자의 克己復禮, 克己爲仁)이오,

곤해서 알고 힘써서 행하는 것은 용맹(자로의 용맹)이라.

대개 사람의 사람의 성품이 비록 선하지 않음이 없으되 기품이 같지 않음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도를 들음에 빠름과 늦음이 있으며, 도를 행함에 어렵고 쉬움이 있느니라.

그러나 능히 스스로 강하여 쉬지 않는다면 즉 그 이르는 것은 하나이니라.

여씨가 말하기를 들어가는 바의 길이 비록 다르나 이르는 바의 경계는 같으니

이것이 써 중용을 하는 바이어니와 만약에 (성인이 행하는) 生知와 安行의 바탕을 바래서

가히 거의 미치지 못한다 여기고, 困知와 勉行을 가벼이 여겨 이르되

능히 이룸이 있지 못하다고 이르면, 이는 도가 밝아지지 못하고 행해지지 못하는 바이니라.

 

蚤: 일찍 조 莫: 저물 모 企: 바랄 기

 

10.
子曰 好學은 近乎知하고 力行은 近乎仁하고 知치는 近乎勇이니라.

자왈 호학은 근호지하고 역행은 근호인하고 지치는 근호용이니라.

 

공자 말씀하시길 배움을 좋아함은 지에 가깝고 힘써 행함은 어짊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앎은 용맹에 가까우니라.

 

치 ; 恥 부끄러워할 치

 


子曰 二字는 衍文이라.

자왈 이자는 연문이라.

 

此는 言未及乎達德而求以入德之事라 通上文三知爲知요 三行爲仁이니 則此三近者는 勇之次也라

차는 언미급호달덕이구이입덕지사라 통상문삼지위지요 삼행위인이니 즉차삼근자는 용지차야라

 

呂氏曰 愚者는 自是 而不求요 自私者는 徇人欲而忘返이요

여시왈 우자는 자시 이불구요 자사자는 순인욕이망반이요

 

懦者는 甘爲人下而不辭라 故로 好學이 非知나 然이나 足以破愚요

나자는 감위인하이불사라 고로 호학이 비지나 연이나 족이파우요

 

力行이 非仁이나 然이나 足以忘私요 知치가 非勇이나 然이나 足以起懦니라.

역행이 비인이나 연이나 족이망사요 지치가 비용이나 연이나 족이기나니라.

 

‘子’와 ‘曰’ 두 자는 연문(혹처럼 붙음)이라.

이것(好學 ? 力行 ? 知恥)은 달덕에 아직 미치지는 못하고 써 덕에 들어가는 일을 구함을 말함이라.

윗글을 통해서 三知(生而知之 ? 學而知之 ? 困而知之)는 지요,

三行(安而行 ? 利而行 ? 勉强行)은 인이 되는 것이니 즉 이 세 가지 가까움은 勇의 다음이라.

 

徇: 좇을 순 返: 돌아올 반 懦: 게으를 나 ?: 恥(부끄러울 치)의 俗字

 
[앞주 해설]

연문이라 함은 굳이 있을 필요가 없는 말이다

(제20장은 애공의 물음에 공자가 계속 답변하는 내용으로 이미 앞에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씨 말하기를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옳다고는 하면서 구하지 못하고

스스로 삿된 자는 사람의 욕심을 따라서 (옳은 생각, 본성에) 돌아올 줄을 잊어버리고

게으른 자는 남의 아래가 됨을 좋아하고 사양하지 않음이라.

그러므로 배움을 좋아하는 것이 知는 아니나 족히 써 우매함을 깨는 것이요,

힘써 행하는 것이 仁은 아니나 족히 써 사사로움을 잊어버리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勇은 아니나 족히 써 게으름에서 일어남이니라.

 

11.
知斯三者則知所以脩身이오 知所以脩身則知所以治人이오 知所以治人則知所以治天下國家矣리라.

지사삼자즉지소이수신이오 지소이수신즉지소이치인이오 지소이치인즉지소이치천하국가의리라.

 

이 세 가지를 알면 수신을 알고, 수신을 알면 사람 다스림을 알고,

사람 다스림을 알면 천하국가 다스림을 앎이라.

 

[본문 해설]

대학의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를 이룰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몸 닦을 줄을 알면 明德을 알고 新民할 수 있어 나라와 천하를 다스릴 수 있음을 밝힌 글이다.

 


斯三者는 指三近而言이라 人者는 對己之稱이라 天下國家는

사삼자는 지삼근이언이라 인자는 대기지칭이라 천하국가는

 

則盡乎人矣라 言此하야 以結上文修身之意하고 起下文九經之端也라.

즉진호인의라 언차하야 이결상문수신지의하고 기하문구경지단야라.

 

이 세 가지는 삼근을 가르쳐서 말함이라.

남이라는 것은 자기와 상대해서 일컬음이라.

천하국가는 곧 사람에게 다함이라.

이것을 말하여 써 윗글의 수신의 뜻을 맺고, 아랫글의 九經의 실마리를 일으킴이라.

 

 12.
凡爲天下國家 有九經하니 曰修身也와 尊賢也와 親親也와

범위천하국가 유구경하니 왈수신야와 존현야와 친친야와

 

敬大臣也와 體群臣也와 子庶民也와 來百工也와 柔遠人也와 懷諸侯也니라.

경대신야와 체군신야와 자서민야와 내백공야와 유원인야와 회제후야니라.

 

  

무릇 천하국가를 함(다스림)이 구경이 있으니

가로대 몸을 닦음과 어짊을 높임과 어버이를 친함과 대신을 공경함과

여러 신하를 몸소 체득함과 여러 백성을 내 자식처럼 여김과 백공들을 오게 함과

먼 곳의 사람들을 회유함과 제후들을 포용함이라.

 

子 : 아들같이 여길 자, 사랑할 자

 
[본문 해설]

여기서 九經은 『書經』 「洪範九疇」에서 연원했다.

홍범구주는 치수법이자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가장 근본적인 통치철학이 되는 글이다.

 
經은 常也라 體는 謂設以身處其地而察其心也라

경은 상야라 체는 위설이신처기지이찰기심야라 

 

子는 如父母之愛其子也라 柔遠人은 所謂無忘賓旅者也라

자는 여부모지애기자야라 유원인은 소위무망빈려자야라

 

此는 列九經之目也니라 呂氏曰 天下國家之本이 在身이라

차는 열구경지목야니라 여씨왈 천하국가지본이 재신이라

 

故로 脩身이 爲九經之本이라 然이나 必親師取友然後에 脩身之道 進이라

고로 수신이 위구경지본이라 연이나 필친사취우연후에 수신지도 진이라

 

故로 尊賢이 次之하고 道之所進이 莫先其家라

고로 존현이 차지하고 도지소진이 막선기가라

 

故로 親親이 次之하고 由家以及朝廷이라 故로 敬大臣體群臣이 次之하고 由朝廷以及其國이라

고로 친친이 차지하고 유가이급조정이라 고로 경대신체군신이 차지하고 유조정이급기국이라

 

故로 子庶民來百工이 次之하고 由其國以及天下라

고로 자서민래백공이 차지하고 유기국이급천하라

 

故로 柔遠人懷諸侯가 次之하니 此는 九經之序也라

고로 유원인회제후가 차지하니 차는 구경지서야라

 

視群臣을 猶吾四體하고 視百姓을 猶吾子하니 此는 視臣視民之別也니라.

시군신을 유오사체하고 시백성을 유오자하니 차는 시신시민지별야니라.

 

  

경은 떳떳함이라. 체는 몸으로 베풀어 그 곳에 거처해 그 마음을 살피는 것을 이름이라.

자는 부모가 그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같음이라. 유원인은 (외국에서 오는) 손님과 나그네를 잊음이 없음이라.

이것은 구경의 조목을 벌려 놓음이라. 여씨가 말하기를 천하국가의 근본은 (인군) 몸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수신이 구경의 근본이 됨이라. 그러나 반드시 스승을 친하고 벗을 취한 후에 수신의 도가 나아감이라.

그러므로 尊賢이 그 다음이고, 도가 나아가는 바가 그 집보다 먼저 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親親이 그 다음하고, 가정으로 말미암아 써 조정에 미치느니라.

그러므로 敬大臣體群臣이 그 다음하고, 조정으로 말미암아 써 그 나라에 미침이라

그러므로 子庶民來百工이 그 다음하고, 그 나라로 말미암아 써 천하에 미침이라

그러므로 柔遠人懷諸侯가 그 다음이니 이것은 구경의 순서이라.

여러 신하 보기를 나의 팔다리와 같이 하고 백성 보기를 나의 자식처럼 하니,

이는 신하를 봄과 백성을 봄의 다름이라.

 

 13.
修身則道立하고 尊賢則不惑하고 親親則諸父昆弟 不怨하고

수신즉도립하고 존현즉불혹하고 친친즉제부곤제 불원하고

 

敬大臣則不眩하고 體群臣則士之報禮 重하고 子庶民則百姓이 勸하고

경대신즉불현하고 체군신즉사지보예 중하고 자서민즉백성이 권하고

 

來百工則財用이 足하고 柔遠人則四方이 歸之하고 懷諸侯則天下畏之니라.

내백공즉재용이 족하고 유원인즉사방이 귀지하고 회제후즉천하외지니라.

 

몸을 닦으면 도가 성립되고, 어짊을 높이면 미혹되지 아니하고,

친척을 친하면 제부(諸父 : 아버지의 형제들)와 형제들이 원망하지 아니하고,

대신을 공경하면 어지럽지(혼란하지) 아니하고,

여러 신하를 직접 체감(체험)하면 선비들이 보답하는 예가 후중하고,

백성을 자식처럼 여기면 백성이 서로 권면(勸勉)하고,

기술 있는 이들을 모두 오게 하면 재물 씀(나라 경제)이 풍족해지고,

먼 데의 사람들을 유화하면(잘해주면) 사방(각처)에서 돌아오고,

제후들을 모두 품으면 천하가 두려워하니라.

 
[본문 해설]

옛날에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먼저 자기 몸을 닦는 것,

곧 수신을 가장 근본으로 하여야 함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여기서는 수신의 효력에 대해 열거하고 있는데,

가까운 내 주변부터 점차 나아가 먼 곳의 사람은 물론

신분이 하찮은 이들까지 모두 잘 대해 주어야 하는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면 집안이 화목해지고 신하들 사이에 질서가 잡히고 백성들이 서로 힘써 일함은 물론

기술가진 이들이 나라를 위해 더욱 그 기술을 개발하여 경제가 풍족해지고

덕분에 그 나라를 보기 위해 세계 각국의 많은 관광객들까지 몰려옴을 얘기하였다.

임금은 不惑하고 不眩함이 없이 나라를 다스리되 백성을 풍족하게 하려면 경제를 일으켜야 한다.

 
주역에서 이러한 교역의 이치를 계사하전 제2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日中爲市(일중위시)하야 致天下之民(치천하지민)하며

聚天下之貨(취천하지화)하야 交易而退(교역이퇴)하야

各得其所(각득기소)케 하니 蓋取諸??(개취제서합)하니라

 

(한낮에 저자를 만들어 천하의 백성을 이르게 하며

천하의 재물을 모아서 교역하고 물러나 각각 그 바를 얻게 하니 대개 저 서합괘에서 취하니라)”

 

참고로 관광(觀光)이라 함은 본래 ‘觀國之光’으로 ‘나라의 빛을 본다’는 뜻이다.

여기서 빛은 정치를 말하는 것으로 나라의 정치가 잘되어 빛이 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그 잘사는 나라를 보기 위해 많은 나라 사람들이 구경을 간다는 데서 ‘觀光’의 뜻으로 사용된다.

주역 20번째괘인 風地觀괘 六四효에 나오는 말이다.

 
此는 言九經之效也라 道立은 謂道成於己而可爲民表니 所謂皇建其有極이 是也라

차는 언구경지효야라 도립은 위도성어기이가위민표니 소위황건기유극이 시야라

 

不惑은 謂不疑於理라 不眩은 謂不迷於事라 敬大臣이면 則信任專而小臣이 不得以間之라

불혹은 위불의어리라 불현은 위불이어사라 경대신이면 즉신임전이소신이 부득이간지라

 

로 臨事而不眩야오 來百工이면 則通功易事하야 農末이 相資라

고로 임사이불현야오 내백공이면 즉통공이사하야 농말이 상자라

 

故로 財用이 足하고 柔遠人이면 則天下之旅 皆悅而願出於其途라

고로 재용이 족하고 유원인이면 즉천하지려 개열이원출어기도라

 

故로 四方이 歸하고 懷諸侯면 則德之所施者 博而威之所制者 廣矣라

고로 사방이 귀하고 회제후면 즉덕지소시자 박이위지소제자 광의라

 

故로 曰天下 畏之라 하니라.

고로 왈천하 외지라 하니라.

 

이것은 구경의 효력을 말함이라.

도립은 도가 자기 몸에서 이루어져 백성의 표본이 되니

이른바 (『서경』 「홍범구주」에서 말하는) 황건기유극(황이 그 유극을 세움)이 이것이라.

불혹은 이치에 의심치 않음을 말함이라. 불현은 일에 아득하지 않음을 이름이라.

대신을 공경하면 신임이 전일(專一)해서 낮은 신하(小臣)들이 얻어 써 이간질을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일에 임해서 현혹됨이 없음이오, 모든 기술자들을 오게 하면 공(기술)을 통하고

일을 바꿔 하여(교역) 농업과 말업(상공업 등 기타 업종)이 서로 바탕함이라.

그러므로 재물 씀이 족하고, 먼 곳의 사람을 부드럽게 해서 오게 하면

모두가 기뻐서 천하의 나그네가 그(천자의 나라) 길에 나다니기(관광)를 원함이라.

그러므로 사방에서 돌아오고, 제후를 포용하면 덕을 베푸는 바가 넓어져 위엄을 짓는 바가 넓어지느니라.

그러므로 ‘천하가 두려워함이라’고 한 것이라.

 

14. 
齊明盛服하야 非禮不動은 所以修身也이오 去讒遠色하며 賤貨而貴德은 所以勸賢也이오

제명성복하야 비례부동은 소이수신야이오 거참원색하며 천화이귀덕은 소이권현야이오

 

尊其位하며 重其祿하며 同其好惡는 所以勸親親也이오 官盛任使난 所以勸大臣也이오

존기위하며 중기록하며 동기호오는 소이권친친야이오 관성임사난 소이관대신야이오

 

 

忠信重祿은 所以勸士也이오 時使薄斂은 所以勸百姓也이오

충신중록은 소이권사야이오 시사박렴은 소이권백성야이오

 

日省月試하야 旣름稱事난 所以勸百工也이오 送往迎來하며  嘉善而矜不能은 所以柔遠人也이오

일서월시하야 희름칭사난 소이권백공야이오 송왕영래하며 가선이긍불능은 소이유원인야이오 

 

繼絶世하며 擧廢國하며 治亂持危하며 朝聘以時하며 厚往而薄來난 所以懷諸侯也이니라.

계절세하며 거폐국하며 치란지위하며 조빙이시하며 후주이박래난 소이회제후야이니라.

 

재계(齋戒)하고 밝게(깨끗이) 하고 옷을 성대하게 해서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음은 몸을 닦는 바이오,

참소하는 이를 버리고 여색을 멀리하며 재물을 천하게 여기고 덕 있는 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어진 이를 권면하는 바이오, 그 벼슬자리를 높여주며 그 봉록을 후하게 주며

그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한가지로 하는 것은 친척 친하는 것을 권면하는 바이오,

벼슬을 성대하게 하고 부림을 맡기는 것은 대신을 권면하는 바이오,

충성으로 대하고 녹을 후하게 주는 것은 선비를 권면하는 바이오,

때로 부리고 세금을 박하게 하는 것은 백성을 권면하는 바이오,

날로 살피고 달로 시험을 하여 봉록(희름, 旣稟)을 일에 맞추는 것은 백공을 권면하는 바이오,

가는 이를 전송하고 오는 이를 맞이하며 선한 이를 아름다이 여기고

능치 못한 이를 가긍히 여기는 것은 먼 사람을 부드럽게 하는 바이오,

끊어진 세대를 이어주며 폐지된 나라를 일으켜 주며 난을 다스리고 위태로운 곳을 붙들어 주고

조회(朝會)와 빙례(聘禮)를 때로 써 하며 가는 이를 후하게 해주고 오는 이를 박하게 하는 것은

제후를 포용하는 바이니라.

 

讒: 참소할 참 薄: 엷을 박 斂: 거둘 렴 旣: 곳집 희(?) ?: 곳집 름(?)

稱: 맞을 칭 嘉: 아름다울 가 矜: 불쌍히 여길 긍 聘: 찾아갈 빙

 
[본문 해설]

앞 절에서는 몸을 닦는 효력을 말했고,

여기서는 몸을 닦는 방법을 말하고 있는데 그 기본이 예를 갖추는 것으로 들고 있다.

『주역』 뇌천대장(雷天大壯)괘에 ‘예가 아니면 밟지 않는다

’(象曰 雷在天上이 大壯이니 君子ㅣ 以하야 非禮不履하나니라)’고 하였다.

『논어』에서도 공자는 안연(顔淵)이 인을 실천하는 방법을 묻자

 “非禮勿視하며 非禮勿聽하며 非禮勿言하며 非禮勿動이니라”고 답하였다.

 앞서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克己復禮爲仁)이며

하루라도 극기복례를 한다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一日克己復禮면 天下歸仁焉하나니)”라 하였듯이

수신의 제1단계는 먼저 자기 몸을 깨끗이 하는 齊明盛服을 들고 있다.

 
옷을 깨끗이 입는 것을 재계라 하고, 두루마기 등 예를 갖춰 옷을 입는 것을 성복이라 한다.

따라서 齊明盛服은 옷을 성대하고도 화려하게 입는 것이 아니라

갖출 것을 갖춰 깨끗하고 단정히 입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진 이를 권면(勸勉)한다는 것은 아첨하고 참소하는 이를 제거하고 여색을 멀리하며

축재에 눈돌리지 말고 덕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어진 이들이 임금을 보필하기 위해 모여든다는 의미이다.

또한 친척을 친하게 권면한다는 것은 친척이라도 능력있는 이가 있으면

높은 벼슬도 주고 녹도 후하게 주어 집안에서 원망이 없도록 好惡를 똑같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신을 권면하는 것은 벼슬을 성대히 하고 부림을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官盛’이라 함은 오늘날 각 부처의 장관 밑에 차관, 국장, 과장 등을 두어

서로 맡은 바 업무를 분담토록 하고 장관은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결재권을 갖도록 하듯이

대신이 나라의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 부서를 두어 일을 나누도록 한 것이며

 ‘任使’란 아래 벼슬자리의 사람들에게 각자 해야 할 일들을 맡겨 부린다는 뜻이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 대신 혼자서 모든 일을 떠맡게 된다면 아무 일도 되지 않기에

대신을 권면하기 위해 ‘관성임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선비를 권면함은 충성되고 미덥게 하며 녹을 후하게 주는 것인데,

이것은 필요할 때만 부리다 버리는 ‘토사구팽(?死狗烹’)이 아니라

일을 의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성들을 권면하는 것은 아무 때나 데려다 부역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농번기는 피하고 농한기에 시켜야 하며 세금은 조금만 거둬들여 백성들을 살맛나게 하는 것이다.

백공을 권면하는 것은 물건을 제대로 만드는지 늘 살피고 매달 시험을 하여

더욱 잘 만들게 하고 일한 만큼 그 일의 성과에 맞춰 봉록(봉급)을 잘 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기술자가 더욱 기술 발휘에 노력하여 나라가 부강해질 것이다.

외국 사람들이 내 나라를 방문하고 돌아갈 때는 전송을 잘해주고,

오는 이는 환영하며, 잘한 일이 있으면 선양해주고 능치 못한 이는 가긍히(불쌍히) 여겨

많은 이들이 내 나라를 방문하고 싶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제후가 다스리는 나라의 대가 끊기면 이어지도록 도와주고

기울어지거나 폐지된 나라는 다시 일으켜주며, 난이 일어나면 다스려주고,

위태로운 곳은 잘 붙들어주며(예 :『천자문』의 桓公匡合하여 濟弱扶傾이라)

일정한 때에 맞춰 제후들의 조회를 소집하고, 가끔씩은 일정 때마다 공물을 올리도록 하는 빙례를 하고,

갈 때는 후히 선물 등을 주어 잘 보내고 올 때는 처음부터 지나치게 후의를 베풀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 잘 대해주는 것이 제후를 품는 것이다.

 
此는 言九經之事也라 官盛任使는 謂官屬衆盛하야 足任使令也니 蓋大臣이 不當親細事라

차는 언구경지사야라 관성임사는 위관속중성하야 족임사영야니 개대신이 부당친세사라

 

故로 所以優之者 如此라

고로 소이우지자 여차라

 

忠信重祿은 謂待之誠而養之厚니 蓋以身體之하야 而知其所賴乎上者 如此也라

충신중록은 위대지성이양지후니 개이신체지하야 이지기소뢰호상자 여차야라

 

旣는 讀曰희니 의稟은 稍食也라 稱事는 如周禮고人職에 曰考其弓弩하야 以上下其食이 是也라

희는 독왈희니 의름은 초식야라 칭사는 여주례고인직에 왈고기궁노하야 이상하기식이 시야라

 

往則爲之授節以送之하고 來則풍其委積以迎之라 朝는 謂諸侯見於天子오

왕즉위지수절이송지하고 내즉풍기위적이영지라 조는 위제후견어천자오

 

聘은 謂諸侯使大夫로 來獻이라 王制에 比年에 一少聘이오 三年에 一大聘이오

빙은 위제후사대부로 내헌이라 왕제에 비년에 이소빙이오 삼년에 일대빙이오

 

五年에 一朝라 厚往薄來는 謂燕賜厚而納貢薄이라.

오년에 일조라 후왕박래는 위연사후이납공박이라.

 

  

이것은 구경의 일을 말함이라.

‘관성임사’는 관직에 속한 것을 여럿으로 성하게 해서 족히 사령(부려서 시키는 것)을 맡김이니,

대개 대신이 마땅히 세세한 일을 친히 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를 우대하는 바가 이와 같음이라.

‘충신중록’은 이르되 대접하는 것을 성실히 하고(忠信) 기르는 것을 후하게 함(重祿)이니,

대개 몸으로써 체감하여 그 위에 의뢰하는(힘입는) 바가 이와 같음을 아는 것이라.

 ‘旣(이미 기)’는 ‘희’로 읽음이니, 희름은 초식(稍食, 祿俸)이라.

 ‘칭사’는『주례』「고인직」에 가로되 ‘그 궁노를 상고하여 써 그 食(봉록)을 올리고 내리는 것’이 이것이라.

가는 이는 부절(符節, 신임장)을 주어서 써 보내고, 오는 이는 위자(생활필수품)를 풍부히 해서 써 맞이함이라.

朝는 제후가 천자께 알현하는 것을 이름이오, 聘은 제후가 대부로 하여금 천자국에 와서 공물을 받치는 것을 이름이라. 「왕제」에 보면 해마다(比年) 한번 작은 빙례를 올리고, 3년에 한번 큰 빙례를 올리고, 5년에 한번 조회함이라.

후왕박래는 (송별)잔치 베푸는 것은 후하게 하고 공물을 들이는 것은 박하게 함을 말함이라.

 

희: 녹봉 희 稍: 나아갈 초, 점점 초 弩: 쇠뇌 노 委: 쌓을 위

積 : 쌓을 적, 저축할 자

 

 15.
凡爲天下國家 有九經하니 凡以行之者는 一也이니라.

범위천하국가 유구경하니 범이행지자는 일야이니라.

 

무릇 천하국가를 함에(다스림에) 아홉 가지 법이 있으니 무릇 써 행하는 것은 한 가지이니라.

 


一者는 誠也니 一有不誠이면 則是九經이 皆爲虛文矣라 此는 九經之實也라.

일자는 성야니 일유불성이면 즉시구경이 개위허문의라 차는 구경지실야라.

 

한 가지는 정성이니 하나라도 성실하지 않으면 이 구경이라는 것은 다 헛된 글이 되느니라.

이는 구경의 실제이니라.

 

 16.
凡事 豫則立하고 不豫則廢하나니 言前定則不겁하고

범사 예즉립하고 불에즉폐하나니 언전정즉불겁하고

 

事前 定則不困하고 行前定則不구하고 道前定則不窮이니라.

사전정즉불곤하고 행전정즉불구하고 도전정즉불궁이니라.

 

무릇(모든) 일이 미리하면 성립되고 미리하지 아니하면 무너지나니,

말을 앞에(미리) 예정하면 미끄러지지 아니하고,

일을 앞에 예정하면 곤하지 아니하고, 행하는데 앞에 예정하면 병들지 아니하고,

길을 가는데 앞을 예정하면 궁하지 않느니라.

겁: 미끄러질 겁, 넘어질 겁 . 구: 오랜 병 구

 
凡事는 指達道達德九經之屬이라 豫는 素定也라 겁은 지也라 구는 病也라

범사는 지달도달덕구경지속이라 예는 소정야라 겁은 지야라 구는 병야라

 

此는 承上文하야 言凡事 皆欲先立乎誠이니 如下文所推 是也라.

차는 승상문하야 언범사 개욕선립호성이니 여하문소추 시야라.

 

 

무릇 일은 달도와 달덕과 구경에 속한 것을 가르침이라.

예는 본디 정함이라. 겁은 미끄러짐이라. 구는 병듦이라.

이것은 윗글을 이어서 말하기를 모든 일이 다 먼저 성실함에 세우고자 하는 것이니

아랫글에 미룬 바와 같은 것이 이것이라.

지 : 미끄러질 지, 넘어질 지

 

 17.
在下位하야 不獲乎上이면 民不可得而治矣리라

재하위하야 불획호상이면 민불가득이치의리라

 

獲乎上이 有道하니 不信乎朋友면 不獲乎上矣리라

획호상이 유도하니 불신호붕우면 불획호상의리라

 

信乎朋友 有道하니 不順乎親이면 不信乎朋友矣리라

신호붕우 유도하니 불순호친이면 불신호붕우의리라

 

順乎親이 有道하니 反諸身不誠이면 不順乎親矣리라

순호친이 유도하니 반제신불성이면 불순호친의리라 

 

誠身이 有道하니 不明乎善이면 不誠乎身矣리라.

성신이 유도하니 불명호선이면 불성호신의리라.

 

아래 지위에 있으면서 윗사람에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가히 얻어 다스리지 못하리라.

윗사람에게 얻음이 도가 있으니 벗에게 믿음이 없으면 윗사람에게 얻지 못하리라.

벗에게 믿음을 얻음에 도가 있으니 어버이에게 순하지 못하면 벗에게 믿음을 받지 못하리라.

어버이에게 순함이 도가 있으니 저 몸을 돌이켜 성실하지 못하면 어버이에게 순하지 못하리라.

몸을 성실히 함에 도가 있으니 선에 밝지 못하면 몸에(자신에게) 성실하지 못하리라.

 
此는 又以在下位者로 抽言素定之意라 反諸身不誠은 謂反求諸身하야 而所存所發이 未能眞實而無妄也라

차는 우이재하위자로 추언소정지의라 반제신불성은 위반구제신하야 이소존소폐이 미능진실이무망야라 

 

 

不明乎善은 謂不能察於人心天命之本然하야 而眞知至善之所在也라.

불명호선은 위불능찰어인심천명지본연하야 이진지지선지소재야라.

 

이것은 또 아래 지위에 있는 자로써 본디 정해야 하는 뜻을 미루어 말함이라.

저 몸에 돌아가 성실하지 못하다는 것은 저 몸에 반성하여

구해 존하는 바와 발하는 바가 능히 진실해서 망령됨이 없지 못함을 이르니라.

선에 밝지 못하다는 것은 능히 인심과 천명의 본연을 살펴

참으로 지극히 선한 것이 있는 바를 알지 못함을 이르니라.

 

 18.
誠者는 天之道也오 誠之者는 人之道也니 誠者는 不勉而中하며

성자는 천지도야오 성지자는 인지도야니 성자는 불면이중하며

 

不思而得하야 從容中道하나니 聖人也오 誠之者는 擇善而固執之者也니라.

불사이득하야 종용중도하나니 성인야오 성지자는 택선이고집지자야니라.

 

誠이란 것은 하늘의 도요, 誠을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니,

성실이란 것은 힘쓰지 않아도 맞으며 생각하지 않아도 얻어져 종용히 도에 맞으니 성인이요,

성실하게 하는 것은 선을 가려서 그것을 고집하는 것이니라.

 

[본문 해설]

정성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하늘의 도인 體가 되는 것이고,

정성스럽게 행하는 것은 사람의 도로 用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정성이라는 것은 굳이 노력해 힘쓰지 않아도 그 일에 맞으며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다.

『주역』19번째 지택림(地澤臨)괘 九二爻 象傳에 “象曰 咸臨吉无不利는 未順命也ㅣ라

(상전에 이르길 ‘함림길무불리’는 명에 순하려 함이 아님이라)” 하여

命을 순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命이 순해진다 하였고,

25번째 망령됨이 없다는 천뢰무망

(天雷无妄)괘 六二爻에서는 “六二는 不耕하야 穫하며 不?하야 ?ㅣ니 則利有攸往하니라

(육이는 밭 갈지 아니해서 거두며 묵히지 않았던 탈밭이 옥토가 되니 곧 나아가는 바를 둠이 이로우니라

/ 穫 : 거둘 확, ? : 일년 묵은 탈밭 치, ? : 삼년 묵은 탈밭 여)” 하였다.

또한 繫辭上傳 제10장에는 “唯神也 故로 不疾而速하며 不行而至하나니

(오직 신인 까닭에 빨리 아니해도 빠르며 행하지 아니해도 이르나니)”라 하였다.

바로 이것이 不勉而中하고 不思而得이고, 소리없이 도에 맞으니

生而知之하고 安而行之하는 성인인 것이며, 하늘의 도이다.

그리하여 乾卦 文言傳 마지막 6절에서는 “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ㅣ 其唯聖人乎?뎌

(나아가고 물러남과 존하고 망함을 알아서 그 바름을 잃지 않는 자, 그 오직 성인이실 뿐인저!)라고 하였다.

그리고, 선을 선택할 줄 알고 그것을 고집해 나갈 줄 아는 것은 어진 사람의 일이며 군자의 일이다.

그것이 성실해지는 것, 정성을 행하는 것이다.

정성을 행하려 하니 택선할 줄 알아야 하고, 고집해서 잘 붙잡고 나가야 한다.

위에서는 성인만을 언급했지만 이것은 學而知之하고 利而行之하는 현인에 해당하는 것이고 바로 사람의 도이다.

 
此는 承上文誠身而言이라 誠者는 眞實無妄之謂니 天理之本然也오

차는 승상문성신이언이라 성자는 진실무망지위니 천리지본연야오

 

誠之者는 未能眞實無妄而欲其眞實無妄之謂니 人事之當然也라

성지자는 미능진실무망이욕기진실무망지위니 인사지당연야라

 

聖人之德은 渾然天理하야 眞實無妄하야 不待思勉而從容中道하니 則亦天之道也오

성인지덕은 혼연철리하야 진실무망하야 부대사면이종용중도하니 즉역천지도야오

 

未至於聖이면 則不能無人欲之私하야 而其爲德이 不能皆實이라

미지어성이면 즉불능무이욕지사하야 이기위덕이 불능개실이라

 

故로 未能不思而得하야 則必擇善然後에 可以明善이오

고로 미능불사이득하야 즉필택선연후에 가이명선이오

 

未能不勉而中하야 則必固執而後에 可以誠身이니 此則所謂人之道也라

미능불면이중하야 즉필고집이후에 가이성신이니 차즉소위인지도야라

 

思而得은 生知也오 不勉而中은 安行也오 擇善은 學知以下之事오

불사이득은 생지야오 불명이중은 안행야오 태건은 학지이하지사오

 

固執은 利行以下之事也니라.

고집은 이행이하지사야니라.

 

이것은 윗글의 성신을 이어서 말함이라.

정성이라는 것은 진실해서 망령됨이 없음을 말함이니 천리의 본연이오,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능히 진실무망하지 못하여 그 진실무망하고자 함을 이름이니 인사의 당연함이라.

성인의 덕은 천리에 혼연해서 진실무망하여 사면(힘써야 할 것을 생각함)을 기다리지 않고 종용히 도에 맞으니

곧 또한 하늘의 도요, 성인에 이르지 못하면 능히 인욕의 사사로움이 없지 못하여

그 덕됨이 능히 다 진실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능히 생각하지 않아도 얻을 수 없으면 반드시 선을 택한 후에야 가히 선을 밝게 할 수 있음이오,

능히 힘쓰지 않아도 맞지 못하면 반드시 고집한 후에 가히 써 몸을 성실히 하니

이것은 곧 사람의 도라고 하는 바이라.

생각지 않고도 얻음은 태어나면서 아는 것이오, 힘쓰지 않아도 맞으면 편안히 행하는 것이오.

택선은 배워서 아는 것 이하의 일이요 고집은 이롭게 여겨 행하는 것 이하의 일이니라.

 

 19.
博學之하며 審問之하며 愼思之하며 明辨之하며 篤行之니라.

박학지하며 심분지하며 시사지하며 명변지하며 독행지니라.

 

널리 배우며 살펴서 물으며 삼가서 생각하며 밝게 분별하며 돈독히 행하느니라.

審 : 살필 심

 

[본문 해설]

이 글은 학문하는 중용지도를 설명하고 있다.

학문은 널리 배워야 하며, 묻는 것은 쓸데없이 되나 안되나 묻는 것이 아니라 요점만 살펴서 물어야 하며,

생각은 삼가서 해야 하며, 분별은 밝게 해야 하며, 행실은 후중하고 돈독히 해야 한다.

『주역』 건괘 문언전 제6절에서 “君子 學以聚之(군자 학이취지)하고

問以辨之(문이변지)하며 寬以居之(관이거지)하고 仁以行之(인이행지)하나니

易曰 見龍在田利見大人(역왈 현룡재전이견대인)이라 하니 君德也(군덕야)라

(군자가 배워서 모으고 물어서 분별하며 너그러움으로써 거처하고 어짊으로써 행하나니 역에 이르길

‘현룡재전이견대인’이라 하니 인군의 덕이라)”라 하였다.

여기에서 ‘學問’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學聚問辨은 내적인 체가 되고 寬居仁行는 외적인 용에 해당한다.

 
此는 誠之之目也라 學問思辨은 所以擇善而爲知니 學而知也오

차는 성지지목야라 학문사변은 소이택선이위지니 학이지야오

 

篤行은 所以固執而爲仁이니 利而行也라 程子曰 五者에 廢其一이라도 非學也니라.

독행은 소이고집이위인이니 이이행야라 정자왈 오자에 폐기일이라도 비학야니라.

 

이것은 정성을 들이는 조목이니라. 학문사변은 써한 바 선을 가려서 知로 삼음이니, 배워서 아는 것이오.

독행은 써한 바 고집해서 仁으로 삼음이니 이롭게 여겨 행함이라.

정자 말씀하시길 “이 다섯 가지에 하나라도 폐하면 배움이 아니니라.”

 

 

 20.
有弗學이언정 學之댄 不能을 弗措也하며 有弗問이언정 問之댄 弗知를 弗措也하며

유불학이언정 학지댄 불능을 부조야하며 유불문이언정 문지댄 부지를 부조야하며

 

有弗思언정 思之인댄 弗得을 弗措也하며 有不辨이언정 辨之인댄 弗明을 弗措也하며

유불사언정 사지인댄 부득을 부조야하며 유불변이언정 변지인댄 불명을 부조야하며

 

有弗行이언정 行之댄 弗篤을 弗措也하야 人一能之어든 己百之하며 人十能之어든 己千之니라.

유불행이언정 행지댄 부독을 부조야하야 인일능지언든 기백지하며 인십능지어든 기천지니라.

 

 

배우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배울진댄 능치 않음을 두지 말며,

묻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물을진댄 알지 못함을 두지 말며,

생각지 않을지언정 생각을 할진댄 얻지 못함을 두지 말며,

분별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분별할진댄 밝지 못함을 두지 말며,

행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행할진댄 돈독하지 않음을 두지 말아서,

다른 사람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에 능하며,

다른 사람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에 능할지니라.

 

[본문 해설]

윗 글은 천하의 공통된 덕(達德)인 ‘知仁勇’ 가운데서 ‘勇’을 말하고 있다.

즉 남이 한번에 능하면 나는 백 번이라도 해서 능하고,

남이 열 번에 능하면 나는 천 번이라도 해서 능하게 한다는 ‘困而知之’와 ‘勉强行之’를 말하고 있다.

 
君子之學은 不爲則已어니와 爲則必要其誠이라 故로 常百倍其功하나니 此는 困而知勉而行者也니 勇之事也라.

군자지학은 불위즉이어니와 위즉필요기성이라 고로 상백배기공하나니 차는 곤이지면이행자야니 용지사야라.

 

군자의 학문은 하지 않으면 그만이어니와, 하면 반드시 그 이룸을 요하느니라.

그러므로 항상 그 공을 백배로 하나니 이는 곤해서 알고 힘써서 행함이니 용감해서 하는 일이라.

 

 21.
果能此道矣면 雖愚나 必明하며 雖柔나 必强이니라.

과능차도의면 수우나 필명하며 수유나 필강이니라.

 

과연 이 도를 능히 하면 비록 어리석으나 반드시 밝으며 비록 유약하나 반드시 강해지느니라.

 
明者는 擇善之功이오 强者는 固執之效라 呂氏 曰君子所以學者는 爲能變化氣質而已니 德勝氣質則愚者 可進於明이오

명자는 택선지공이로 강자는 고집지효라 여씨 왈군자소이학자는 위능변화기질이이니 덕승기질즉우자 가진어명이오

 

 

柔者 可進於强이어니와 不能勝之則雖有志於學이라도 亦愚不能明하며 柔不能立而已矣라

유자 가진어강이어니와 불능승지즉수유지어학이라도 역우불능명하며 유불능립이이의라

 

蓋均善而無惡者는 性也니 人所同也오 昏明强弱之稟이 不齊者는 才也니 人所異也라

개균선이무악자는 성야니  인소동야오 혼명강약지품이 불제자는 재야니 인소이이라

 

誠之者는 所以反其同而變其異也라 夫以不美之質로 求變而美라도 非百倍其功이면

성지자는 소이반기동이변기이야라 부이불미지질로 구변이미라도 비백배기공이면

 

不足以致之어늘 今以鹵?滅裂之學으로 或作或輟하야 以變其不美之質이라가

부족이치지어늘 금이로모멸렬지학으로 혹작혹철하야 이변기불미지질이라가

 

及不能變하야는 則曰天質 不美하야 非學所能變이라 하니 是는 果於自棄니 其爲不仁이 甚矣라.

급불능변하야는 즉왈천질 불미하야 비학소능변이라 하니 시는 과어자기니 기위불인이 심의라.

 

明은 선을 가리는 공이오, 强은 고집의 효력이라.

 여씨 말하기를 군자가 써 배우려는 바는 능히 기질을 변화할 뿐이니

덕이 기질을 이기면 어리석은 자가 가히 밝은데 나아가고 유약한 자가 가히 강한데 나아가거니와,

능히 이기지 못하면 비록 뜻을 배움에 둔다 하더라도

또한 어리석은 이가 능히 밝지 못하며 유약한 이가 능히 서지 못할 뿐이니라.

대개 선을 고르게 하고 악함이 없는 자는 (하늘이 그대로 준) 성품이니 사람마다 같은 바요,

어둡고 밝고 강하고 유약한 품성이 가지런하지 못한 것은 재질이니 사람마다 다른 바라.

성실히 하는 것은 그 같은 것을 돌이키고 그 다름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대저 아름답지 못한 재질로서 변함을 구해서 아름답게 하더라도

그 공을 백배로 하지 않는다면 족히 써 이루지 못하거늘

이제 노모멸렬(아무렇게나 대충하는 것)한 배움으로써 혹 짓기도 하고 혹 그만두기도 하여

그 불미한 재질을 변하려고 하다가 능히 변치 못함에 미쳐서는

곧 ‘타고난 하늘의 기질이 불미하여 배워서 능히 변할 바가 아니라’ 하니,

이는 스스로 포기함에 과감하니 그 어질지 못하게 됨이 심하니라.

 

鹵: 황폐할 로 ?: 거칠 모(망), 莽(망)과 같이 쓰임 輟: 그칠 철

 
[앞주 해설]

『대학』에서도 “지극한 선에 그쳐야 한다(止於至善)”고 했다.

이러한 선을 가리는 공은 밝음이며, 그 가린 선을 굳게 잡고 가는 효력은 강함이다.

따라서 明은 體가 되고, 强은 用이 되므로 ‘擇善之功’은 體가 되고 ‘固執之效’는 用이 된다.

‘明者 擇善之功’은 내적으로 알기 위한 모든 방법으로 體가 되고,

‘强者 固執之效’는 굳게 지켜 외적으로 나아가 성공하기 위한 효력이니 用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는 성품이 선한데

기질이 달라 악한 사람도 있고 유약한 사람도 있다.

군자가 학문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 서로가 다른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덕이 그 기질을 이기면 어리석은 자는 밝아지고 유약한 사람은 강해질 수가 있다.

그런데 학문에 뜻을 두고도 사적인 기질을 확고히 이기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는 밝아지지 못하고 유약한 자가 강해질 수가 없다는 것이 여씨의 설명이다.

 
右는 第二十章이라

 


此는 引孔子之言하야 以繼大舜文武周公之緖하야 明其所傳之一致하니 擧而措之라도 亦猶是爾라

차는 인공자지언하야 이계대순문무주공지서하야 명기소전 지일치하니 거이조지라도 역유시이라

 

蓋包費隱兼小大하야 以終十二章之意라

개포비은겸소대하야 이종십이장지의라

 

章內에 語誠이 始詳하니 而所謂誠者는 實此篇之樞紐라

장내에 어성이 시상하니 이소위성자는 실차편지추뉴라 

 

又按孔子家語에 亦載此章而其文이 尤詳하야 成功一也之下에 有公曰子之言이 美矣至矣로대 

  우안공자가어에 역재차장이기문이 우상하야 성공일야지하에 유공왈자지언이 미의지의로대   

 

寡人이 實固不足以成之也라 故로 其下에 復以子曰로 起答辭어늘

 

과인이 실고부족이성지야라 고로 기하에 부이자왈로 기답사어늘

 

今無此問辭而猶有子曰二字하니 蓋子思 刪其繁文하야 附以

금무차문사이유유자왈이자하니 개자사 산기번문하야 사부

 

以附于篇而所刪이 有不盡者니 今當爲衍文也라

사부우편이소산이 유불진자니 금당위연문야라

 

博學之以下는 家語에 無之하니 意彼有闕文이어나 抑此或子思所補也歟인저

박학지이하는 가어에 무지하니 의피유궐문이어나 억차혹자사소보야여인저

 

이는 공자의 말씀을 이끌어서 대순과 문왕 무왕 주공의 실마리를 이어서

그 전한 바가 일치하니 들어다가 두더라도 또한 이와 같을 뿐임을 밝힌 것이라.

대개 비은을 포함하고 작고 큰 것을 겸해서 써 12장의 뜻을 마친 것이라.

이 문장 안에 정성을 말함이 비로소 자세하니,

이른바 정성이라는 것은 실지로 이 책의 추뉴(돌쩌귀와 단추, 지도리와 매듭)이니라.

또한 『공자가어』를 상고하건데 또한 이 문장이 실려 있는데

그 글이 더욱 자세하여 성공은 하나라고 한 아래에

“애공이 말하길 ‘선생의 말씀이 아름답고 지극하되 과인이 실은 족히 써 이루지 못함이라.”라는 내용이 있음이라.

그러므로 그 아래에 다시 ’子曰‘로써 답한 말씀을 일으킨 것인데

지금은 물은 말이 없는데도 오히려 ‘자왈’이란 두 글자가 있으니,

대개 자사가 그 번거로운 글을 깎아서 써 편에 붙이면서

깎은 바가 다하지 못함이 있으니 이제 마땅히 연문이 됨이라.

‘博學之’ 이하는 『가어』에 없으니 아마도 저 (『예기』의 가어편에) 빠진 글이거나

아니 이 혹 자사가 보충하신 듯함이라.

 

措: 둘 조 爾: 뿐 이 樞: 지도리 추 紐: 맬 뉴 按: 살필 안 闕 : 빠질 궐 抑: 아니 억, 누를 억 歟: 누를 여

중용 제19장 주공달효장(周公達孝章)

 

1.
子曰 武王 周公은 其達孝矣乎신뎌
자왈 무왕 주공은 기달효의호신뎌

 

공자 말씀하시기를 “무왕과 주왕은 통한 효이신저!”

 

達은 通也라 承上章而言武王周公之孝는 乃天下之人이 通謂之孝니 猶孟子之言達尊也라

 

달은 통함이라.
윗글을 이어서 말하되 무왕과 주공의 효는 이에 천하의 사람이
공통적으로(이구동성으로) 효라고 하니 맹자의‘달존’이라는 말과 같으니라.

 

[앞주 해설]
무왕과 주공 두 형제분은 지극한 효자로서 세상사람 모두가 칭찬하는 바로
『맹자』「公孫丑章句下」에 나오는 다음의 ‘三達尊’과 같은 뜻이다.
曰豈謂是與ㅣ리오 曾子ㅣ曰 晉楚之富는 不可及也ㅣ나 彼以其富ㅣ어든
我以吾仁이오 彼以其爵이어든 我以吾義니 吾何慊乎哉리오 하시니
夫豈不義를 而曾子ㅣ 言之시리오 是或一道也ㅣ니라
天下에 有達尊이 三이니 爵一 齒一 德一이니 朝廷엔 莫如爵이오
鄕黨엔 莫如齒오 輔世長民에 莫如德이니 惡得有其一하야 以慢其二哉리오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어찌 이것을 말한 것이리오?
증자께서 말씀하시길
‘진나라와 초나라의 부함은 가히 따를 수 없으나 저들이 그 부로써 하면 나는 내 인으로써 하며
저들이 그 관작으로써 하면 나는 내 의로써 하니 내 어찌 부족할 것이 있겠는가’ 하셨으니,
이 어찌 불의를 증자께서 말씀하셨으리오. 이것도 혹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니라.
천하에 달존이 세 가지가 있으니, 관작이 하나요, 연륜이 하나요, 덕이 하나이니, 조정엔 관작만한 것이 없고,
향당에는 연륜만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자라게 하는 데는 덕만한 것이 없으니,
어찌 그 한 가지를 갖고 그 둘을 가진 것을 업신여기리오?”

 

 

2.
夫孝者는 善繼人之志하며 善述人之事者也니라
부효자는 선계인지지하며 선술인지사자야니라

 

무릇 효도라는 것은 사람(부모)의 뜻을 잘 이으며 사람의 일을 잘 전술하느니라

 

[본문 해설]
효도라는 것은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고 잘 따르는 것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뒤에는 살아생전에 하셨던 일들을 엮어 문집을 만들거나 기록하여 후세에 영구히 잘 전하는 것을 말한다.

 

上章은 言武王이 纘大王王季文王之緖하야 以有天下하고 而周公이 成文武之德하야 以追崇其先祖하니
此는 繼志述事之大者也ㅣ라 下文에 又以其所制祭祀之禮로 通于上下者言之니라

윗장(제18장)은 무왕이 태왕과 왕계, 문왕의 실마리(왕통이 이어지는 단서)를 이으시어 써 천하를 두시고,
주공이 문왕과 무왕의 덕을 이루어 선조를 높히셨으니 이는 뜻을 계승하고 일을 기술한 큰 것이니라.
아랫글에 또 그 마름한 바 제사의 예로써 위 아래를 통해서 말함이니라.

 

 

3.
春秋에 修其祖廟하며 陳其宗器하며 陳基宗器하며 設其裳衣하며 薦其時食이니라
춘추에 수기조묘하며 전기종기하며 진기종기하며 설기상의하며 천기시식이니라

 

봄 가을로 조상의 묘를 소제하고 수리하며 조상으로부터 전래된 제기와 악기와 보물을 진열하며
조상이 입던 아랫 치마와 윗도리를 진설하여 조상의 혼이 돌아와 깃들게 하며,
조상이 살아계실 때와 똑 같이 철에 맞는 신선한 음식을 드시도록 진지상을 올린다.

 

[본문 해설]
봄 가을로 사당을 수리하며 선대로부터 소장해온 귀중한 기물을 진열하고,
선대에 입었던 의상을 설치하고 그때그때 제철에 나오는 음식을 조상께 올리며 제사지내는 것을 말한다.

宗器 : 종손이 제사를 지내기에 제사지내는 그릇을 종기라 한다.

 

祖廟는 天子는 七이오 諸侯는 五오 大夫는 三이오 適士는 二오 官師는 一이라
宗器는 先世所藏之重器니 若周之赤刀大訓天球河圖之屬也라

裳衣는 先祖之遺衣服이니 祭則設之하야 以授尸也라
時食은 四時之食이 各有其物이니 如春行羔豚膳膏香之類가 是也라

할아버지 사당은 천자는 7이고 제후는 5이고 대부는 3이고 적사는 2이고, 관사는 1이라.
종묘에서 지내는 제기는 선대에서 간직해놓았던 소중한 그릇이니,

주나라의 적도와 대훈과 천구와 하도 등속이니라.
상의는 선조가 남기신 의복이니 제사할 때에는 이를 펼쳐 놓아 써 시동에게 줌이라.
때때로 먹는 음식은 사시의 음식이 각각 그 음식물이 있으니
봄에는 양소와 돼지를 쇠기름과 향으로 요리하는 것과 같은 유가 이것이니라.

 

 

[앞주 해설]
천자가 사당 일곱을 지었다는 것은 7묘제로 이를 달리 표현하면

소목제(昭穆制)로 3소3목(三昭三穆)을 두었다는 뜻이다.
곧 가운데에 제1세(先祖, 혹은 不?之典)를 모시고 왼쪽 줄을 소(昭), 오른쪽 줄을 목(穆)이라 한다.
이에 따라 천자는 소에 2세 4세 6세의 신위를 두고, 목에 3세 5세 7세의 신위를 모신다.
제후는 2소2목의 오묘, 대부는 1소1목의 삼묘를 두고, 적사의 사당은 태조는 모시지 않고 2위만 모시고,
관사는 사당 하나만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종기를 보면 음식을 담는 그릇만이 아니라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중요한 물건들까지를 포함한다.
적도는 은나라를 망친 주를 벤 붉은 칼을 말하며, 대훈은 문왕 무왕이 백성을 가르친 바를 기록한 책이며,
천구는 주나라에서 보배로 여기는 구슬이고,
하도는 복희씨 때 황하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그려진 그림으로 팔괘의 시원이자 『주역』의 원천이 되는 그림이다.
상의는 선조 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의복으로 제사지낼 때 시동에게 입힌다.
지금은 지방을 써놓고 제사를 지내지만, 전에는 신주를 모셨고, 신주가 있기 전에는 시동을 모셨다.
일곱 살 먹은 순수한 어린 아이에게 조상의 의복을 입혀 그 앞에 제물을 놓고 제사를 지내면 신이 내려온다고 하였다.
제사의 음식은 때에 맞는 음식들로 여기에서 예를 든 것은
봄철 제사 때 드리는 음식의 한 종류로 『周禮』에 전해지는 내용이다.

 

 

4.
宗廟之禮는 所以序昭穆也오 序爵은 所以辨貴賤也오 序事는 所以辨賢也오
종묘지례는 소이서소목야오 서작은 소이변귀천야오 서사는 소이변현야오

 

旅酬에 下爲上은 所以逮賤也오 燕毛는 所以序齒也니라
려수에 하위상은 소이체천야오 연모는 소이서치야니라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예는 써 소목을 차례로 하는 바이오,
벼슬을 차례로 하는 것은 써 귀천을 분별하는 바이오,
일을 차례로 하는 것은 써 어진 이를 분별하는 바이오,
여럿이 술을 마시는데 아래 사람이 윗 사람을 위해주는 것은 천한 사람에게까지 미치는 바이오
잔치하는데 터럭을 따지는 것은 연치(나이)를 차례로 하는 바이니라.

 

[본문 해설]
종묘의 예, 벼슬의 순서, 일의 순서, 주도(酒道) 등등의 예는 모두 중용지도로 만들었음을 설명하는 구절이다.
소목의 순서는 앞 구절의 ‘앞주 해설’과 같다. 종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좌소우목의 순서에 따라 했으며,
서작 즉 벼슬의 높낮이는 귀천을 분별하기 위한 것이고, 서사 즉 일의 순서는 어진 이를 분별하기 위한 것이고,
어질다는 것은 각자 맡은 일을 잘하는 것을 말한다.
제사를 지내고 여럿이 음복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데 이때 아랫 사람이 윗사람에게 먼저 술을 올리는 것은 즉,
직책은 비록 나보다 낮으나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먼저 술을 올리는 것은 천한 사람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말한다.
잔치를 베풀고 머리털을 본다는 것은 나이를 분별해 나이 순에 따라 하기 위한 것이다.

 

宗廟之次는 左爲昭오 右爲穆而子孫이 亦以爲序하야 有事於太廟則子姓兄弟群昭群穆이 咸在而不失其倫焉이라
爵은 公侯卿大夫也오 事는 宗祝有事之職事也라 旅는 衆也오 酬는 導飮也니 旅酬之禮에 賓弟子兄弟之子
各擧?於其長而衆相酬하니 蓋宗廟之中에 以有事爲榮이라 故로 逮及賤者하야 使亦得以申其敬也라
燕毛는 祭畢而燕이면 則以毛髮之色으로 別長幼하야 爲坐次也라 齒는 年數也라

 

종묘에서 제사지내는 차례는 좌측에는 소이요 우측은 목이 되고,
자손들 또한 순서가 있어 일이 태묘에 있게 되면(제사를 지내게 되면)
아들 조카 형제들이 여러 소와 여러 목이 다 있어 그 질서를 잃지 않느니라.
작은 공과 후와 경대부이오, 사는 종묘제사의 축관과 유사(집사)의 직책의 일이라.
여는 무리이오, 수는 마심을 인도함(권함)이니, 여럿이 술을 마시는 예에 빈제자(손님으로 온 아우나 자식)와
형제의 자식들이 각각 술잔을 그 어른에게 먼저 들어 올리고 여럿이 서로 수작을 하니,
대개 종묘 제사를 지내는 중에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써 영화를 삼느니라.
그러므로 천한 자에게까지 미처 하여금 또한 써 그 공경을 거듭함이라.
연모는 제를 다 지내고 잔치를 베풀게 되면 모발의 색으로써 어른과 어린이를 분별해서
앉는 차례를 정하는 것이라. 치는 나이 수이라.

 

 

5.
踐其位하야 行其禮하며 奏其樂하며 敬其所尊하며
愛其所親하며 事死如事生하며 事亡如事存이 孝之至也니라
천기위하야 행기례하며 주기악하며 경기소존하며
애기소친하며 사사여사생하며 사망여사존이 효지지야니라

 

그 (선왕의) 자리(지위)를 밟아서 그 예를 행하며 그 음악을 연주하며
그 높이신 바를 존경하며 그 친하셨던 바를 사랑하며,
죽은 이 섬기기를 살아있는 이 섬기듯이 하고, 없는 이 섬기기를 있는 이 섬기듯이 하는 것이 효의 지극함이니라.

 

踐은 猶履也오 其는 指先王也라 所尊所親은 先王之祖考 子孫 臣庶也라
始死를 謂之死오 旣葬則曰反而亡焉이니 皆指先王也라 此는 結上文兩絶이니 皆繼志述事之意也라

 

천은 밟음과 같음이라. 기는 선왕을 가리킴이라.

높인 바 친한 바는 선왕의 조상 자손 신하와 백성을 말한 것이라.
비로소 죽는 것을 ‘사’라 이르고 이미 장사를 지내면 돌아가서 없어지는 것이니 다 선왕을 가리킴이라.
이것은 윗글의 두 마디를 맺은 것이니 모두 뜻을 잇고 일을 따르는 뜻이다.

 

郊社之禮는 所以事上帝也오 宗廟之禮는 所以祀乎其先也니 明乎郊社之禮와 ?嘗之義면 治國은 其如示諸掌乎인뎌

 

교제(郊祭)와 사제(社祭)는 상제를 섬기는 바이오 종묘의 예는 그 선조를 제사지내는 것이니
교제와 사제의 예와 체제(?祭)와 상제(嘗祭)의 뜻에 밝으면 나라 다스림은 그 손바닥을 보는 것과 같을진저.

郊 : 들 교 ? : 큰 제사 체(천자가 정월에 南郊에서 하늘에 지내는 제사) 嘗 : 가을제사 상

 

[본문 해설]
제사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천자문에도 “嫡後嗣續하고 祭祀蒸嘗이라(적자로 뒤를 잇고 증제와 상제를 지냄이라” 하였듯이
봄의 제사는 사제(祠祭), 여름의 제사는 약제(?祭), 가을의 제사는 상제(嘗祭), 겨울의 제사는 증제(蒸祭)라 한다.
또한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교제(郊祭), 토지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사제(社祭)라 하여
상제를 섬기고, 종묘의 제사는 왕가의 선조를 제사지내는 것이다.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낼 때 동지(冬至)에는 남교(南郊)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하지(夏至)에는 북교(北郊)에서 땅에 제사를 지낸다.
체제(?祭)는 천자가 시조(始祖)를 하늘에 배향하여 지내는 제를 말하고,
천자가 하늘과 땅에 제사지내는 것을 봉선(封禪)이라 한다.
천자문에도 봉선의식에 대해 “嶽宗恒垈요 禪主云亭하니라”고 나와 있다.
이렇게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고 철마다 제사를 지내는 뜻에 밝으면,
결국 천지신명과 사시변화에 중용을 지키는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손바닥을 보듯이 쉬울 것이다.
즉 나무의 뿌리인 근본이 튼튼하면 나무 가지가 잘 벋고 꽃과 이파리가 무성하여 열매가 잘 맺듯이,
만물의 근본에 해당하는 천지신명과 사시변화를 잘 살펴 예를 갖춘다면 당연히 나라도 잘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이다.

 

郊는 祭天이오 社는 祭地니 不言后土者는 省文也라

?는 天子宗廟之大祭니 追祭太祖之所自出於太廟하고 而太祖로 配之也라
嘗은 秋祭也니 四時皆祭로대 擧其一耳라

禮必有義하니 對擧之는 互文也라 示는 與視로 同하니 視諸掌은 言易見也라
此는 與論語文意로 大同小異하니 記有詳略이라

 

교는 하늘에 제사하는 것이오, 사는 땅에 제사하는 것이니 후토라고 말한 것은 글을 덜음이라.
체는 천자가 종묘에 지내는 큰 제사이니 태조가 나온 바 태묘에 추제하고 태조를 배향함이라.
상은 가을 제사이니 사시에 모두 제사하는데 그 하나를 들었을 뿐이라.
예에는 반드시 뜻이 있으니 상대하여 든 것은 호문이다.
시는 시와 같으니 손바닥을 본다는 것은 쉽게 봄을 말한다.
이는 논어의 글 뜻과 대동소이하니, 기록함에 상세함과 간략함이 있을 따름이라.

 

 

右는 第十九章이라 
 

중용 제18장 문왕무우장(文王無憂章)

 

 

1.
子曰 無憂者는 其惟文王乎신뎌 以王季爲父하시고 以武王爲子하시니 父作之어시늘 子述之하시니라
자왈 무우자는 기유문왕호신뎌 이왕계위부하시고 이무왕위자하시니 부작지어시는 자술지하시니라

 

공자 가라사대
“근심이 없는 이는 그 오직 문왕이신저!”
왕계로서 아버지가 되시고 무왕으로서 자식을 삼으시니 아버지가 일으키시어늘 자식이 지으시니라

 

[본문 해설]
공자가 대덕을 실현한 이로 문왕을 들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참으로 근심이 없는 이는 문왕이다.
왜냐하면 왕계(季歷)라는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으며 무왕(發)이라는 훌륭한 자식을 두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왕계는 주나라를 일으켰고 아들인 무왕이 잘 다져 후세에 전하였으니

그 가운데한 문왕(西伯昌)은 근심이 없다는 말이다.

 

且는 言文王之事라 書에 言王季 其勤王家라 하니 盖其所作이 亦積功累仁之事也라
이는 문왕의 일을 말함이다.
『서경』에 말하기를 “왕계가 그 왕가를 근면하게 했다” 하니

대개 그 일으킨 바가 또 계속 공을 쌓고 인을 누적한 일이라.

 

[앞주 해설]
문왕의 아버지 왕계가 그 왕가를 일으킨 것은 어느 하루 아침에 이룬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공을 쌓고 어진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경』주서 무성편(周書 武成篇)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王若曰 嗚呼群后아 惟先王이 建邦啓土하여시늘 公劉克篤前烈이어시늘 至于大王하여
肇基王迹하여시늘 王季其勤王家어시늘 我文考文王이 克成厥勳하사 誕膺天命하샤 以撫方夏신대 大邦은 畏其力하고
小邦은 懷其德이 惟九年이러니 大統을 未集이어시늘 予小子其承厥志호라
(왕이 말씀하시길 “아, 여러 제후여 선왕(后稷)이 나라를 세워 토지를 열어 놓으셨는데,
공유가 앞 사람의 공렬을 돈독히 하고 태왕에 이르러 처음으로 왕자의 자취를 터 닦았으며,
왕계가 왕가에 근로하셨거늘 우리 문고(文考)이신 문왕께서 능히 공을 이룩하시어

크게 천명에 응하여 사방의 중하를 어루만지시니,
큰 나라는 그 힘을 두려워하고 작은 나라는 그 덕을 그리워한 지가 9년이었는데,
대통을 이루지 못하고 별세하셨으므로 나 소자가 그 뜻을 이었노라.")

 

 

2.
武王이 纘大王 王季 文王之緖하샤 壹戎衣而有天下하샤대 身不失天下之顯名하샤
무왕이 찬태왕 왕계 문왕지서하샤 일융의하유천하하샤대 신불실천하지현명하샤

 

尊爲天子시고 富有四海之內하샤 宗廟饗之하시며 子孫保之하시니라
존위천자시고 부유사해지내하샤 종묘향지하시며 자손보지하시니라

 

무왕이 태왕과 왕계와 문왕의 단서를 이으시어 한번 군복을 입고 천하를 두시되
몸이 천하에 나타난 이름을 잃지 아니하셔 높이는 천자가 되시고
부는 사해안에 두시고 종묘에 흠향하시며 자손을 보존하시니라.

大王 : 여기서는 태왕(太王)으로 읽는다.

纘 : 이을 찬 戎 : 군사 융

 

[본문 해설]
태왕은 무왕의 증조할아버지로 고공단보(古公亶父)를 말하고,

왕계는 할아버지인 계력(季歷)이며, 문왕은 아버지이다.
무왕이 조상들의 기업(基業)을 이어 주나라를 세움을 말하고 있다.
아버지 문왕이 은나라 말기 서백창으로 변방을 다스릴 때 주(紂)임금의 폭정으로 나라가 도탄에 빠졌다.
문왕의 인품이 널리 알려지고 많은 이들이 문왕을 따르자 폭군 주는 서백창을 유리옥에 가두기까지 하였다.
나중에 풀려나 강태공을 만나 시기를 엿보다가 돌아가시고 무왕이 그 대업을 완성하게 된다.
즉 무왕은 조상들이 닦아놓은 터에 힘입어 전쟁을 일으켜 폭군 주를 치고 周나라를 세웠지만
한 개인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위한 것이었고,
왕위에 올라서는 결코 그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으셨기에

사후에 종묘에 모셔지고 자손을 잘 보존하였다는 내용이다.

 

此는 言武王之事라 纘은 繼也라 大王은 王季之父也라

書에 云大王이 肇基王迹이라 하고
詩에 云至于大王하야 實始?商이라 하니라 緖는 業也라

戎衣는 甲?之屬이라 壹戎衣는 武成文에 言壹著戎衣以伐紂也라


이는 무왕의 일을 말함이라. 찬은 이음이라. 태왕은 왕계의 아버지니라.
『서경』에 이르기를 “태왕이 비로소 왕업의 자취의 터를 닦아놓았다” 하고
『시경』에 이르길 “태왕에 이르러 실제 처음으로 상나라를 쳤다”고 하니라. 서는 왕업이라.
융의는 갑옷과 투구의 등속이라.

‘일융의’는 『서경』 「무성」의 글에 “한번 융의를 입고 주왕을 정벌함”을 말함이라.

肇 : 비로소

 

[앞주 해설]
『서경』의 인용문은 앞서 인용한 「무성」편의 내용이고,

『시경』의 인용문은 「魯頌 ?宮(노송 비궁)」편의 다음 내용이다.
后稷之孫이 實維大王이시니 / 후직의 손자가 실로 태왕이시니
居岐之陽하사 實始?商이어시늘 / 기산의 남쪽에 거하여 진실로 비로소 상나라를 치거늘
至于文武하사 纘大王之緖하사....../ 문왕 무왕에 이르러 태왕의 전통을 이으사.....

한편 『서경』「주서 무성」편에는 무왕이 紂를 쳐서 상나라를 멸하는 상황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壹戎衣에 天下大定이어늘 乃反商政하여 政由舊하시고

釋箕子囚하시며 封比干墓하시며......而萬姓이 悅服하니라
(한번 군복을 입으매 천하가 크게 안정되었거늘 이에 상나라의 정사를 되돌려서 정사는 옛날을 따르고,
기자를 가둔 것을 풀어주고 비간의 묘를 봉분하고......만백성들이 기뻐하여 복종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3.
武王이 末受命이어시늘 周公이 成文武之德하샤 追王大王王季하시고 上祀先公以天子之禮하시니
무왕이 말수명이시어늘 주공이 성문무지덕하샤 추왕대왕왕계하시고 상사선공이천자지례하시니

 

斯禮也 達乎諸侯 大夫 及士 庶人하니 父爲大夫오 子爲士어든 葬以大夫오 祭以士하며 父爲士오
사례야 달효제후 대부 급사 서인하니 부위대부오 자위사어든 장이대부오 제이사하며 부위사오
 
子爲大夫어든 葬以士오 祭以大夫하며 期之喪은 達乎大夫하고 三年之喪은 達乎天子하니 父母之喪은 無貴賤一也니라
자위대부어든 장이사오 제이대부하며 기지상은 달호대부하고 삼년지상은 달호천자하니 부모지상은 무귀천일야니라

 

무왕이 말년에 명을 받으시거늘 주공이 문왕 무왕의 덕을 이루시어 태왕과 왕계를 왕으로 추존하시고
위로 선공을 천자의 예로써 제사하시니 이 예가 제후와 대부 및 선비와 서인에게 통하니,
아비가 대부가 되고 자식이 선비가 되거든 장사는 대부로써 하고 제사는 선비로써 하며,
아비가 선비가 되고 자식이 대부가 되면 장사는 선비로써 하고 제사는 대부로써 하고,
일년(期)상은 대부까지 통하고 삼년상은 천자에까지 통하니 부모상은 귀천이 없이 한가지니라.

 

[본문 해설]
무왕이 늙어서 운명하신 뒤 아들인 어린 성왕이 왕위에 오르자 삼촌인 주공이 섭정을 하였다.
주공은 이때 음악과 모든 예를 만들었다. 이후 제사의 예는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주공이 아버지 문왕과 형인 무왕의 덕을 기리고
할아버지인 왕계와 증조할아버지인 태왕(고공단보)을 왕으로 추존하시고
위 조상들의 제사는 무왕이 천자이기에 천자의 예로써 제사를 지냈다.
이러한 예를 바탕으로 제후와 대부, 선비, 서인들의 장사지내는 예법과 제사지내는 예법이 확립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부모의 상은 천자나 대부, 서인 등 계급과 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삼년상을 지냈다.
왜냐하면 모두가 부모의 은덕을 타고난 것은 천지의 떳떳한 일이오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此는 言周公之事라 末은 猶老也라 追王은 蓋推文武之意하야 以及乎王迹之所起也라
先公은 組紺以上至后稷也라 上祀先公以天子之禮하고 又推大王王季之意하야 以及於無窮也라
制爲禮法하야 以及天下하야 使藏用死者之爵하며 祭用生者之祿이라
喪服은 自期以下는 諸侯는 絶하고 大夫는 降하며 而父母之喪은 上下同之하니 推己以及人也라

이는 주공의 일을 말함이라. 末은 늙음과 같으니라.
왕으로 추존한다는 것은 대개 문왕과 무왕의 뜻을 미루어서 써 왕의 자취의 일어난 바에까지 미침이라.
선대의 공은 조감으로써 위로 후직에까지 이름이라.
위로는 선공을 제사지내는데 천자의 예로써 하시고 또 태왕과 왕계의 뜻을 미루어서 써 무궁한데까지 미침이라.
예법을 만들어서 써 천하에 미쳐 장사지내는데는 죽은 자의 벼슬을 써서하고

제사는 산 자의 녹(등급, 벼슬자리)을 써서 하느니라.
상복은 기년복으로부터 써 제후는 끊고,
대부는 내려가며 그러나 부모의 상은 위와 아래가 똑같으니 자기 몸을 미루어서 써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침이라.

 

[참고]
옛날에는 상복의 재질과 봉제 방법에 따라 다섯 가지 服을 입었고

입는 기간에 따라서는 아홉 가지 복으로 나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삼년상은 부모상으로 신분귀천을 막론하고

자식이 나서 어렸을 때 부모 품 안에서 3년 동안 있었으니
최소한 그 기간은 돌아가신 부모를 받든다는 뜻으로 복중에는 가장 오래 입는 상복이다.
조선시대 때 예송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기년(朞年)의 달 수 계산을 살펴보면,
햇수로 3년을 달로 치면 만 24개월인데 반으로 줄여 12개월로 하니 1년이 된다.
즉 춘하추동 4계절인 것이다.

한 계절이 3개월이기 때문에 초수 원근에 따라 한 계절(3개월)씩 줄여 복을 입는다.
대공은 기년복(1년 즉 12개월)에서 석 달을 줄인 9개월이고,
시복(?服)은 3개월이니 유복지친(有服之親 : 복을 입는 가까운 친척)이라고 했을 때

최소한 한 계절인 석 달은 입어주어야 한다.

간략하게 복제(服制)를 살펴보자.

 

① 참최복(斬衰服) :

아버지상이나 손자가 아버지를 대신한 할아버지 승중상(承重喪)에 입는다.
가슴을 베는 듯한 슬픔이란 뜻으로(三年喪如斬),

거친 삼베를 잘라 깃을 여미지도 않고 만드는데
앞가슴에 최(衰)를 달고 뒷등에 부판(負板)을 달아서 입으며,

대나무로 만든 상장(喪杖)을 짚고 3년 동안 근신하는 것이다.
남편상이나 시아버지상도 마찬가지다.

② 재최복(齋衰服, 齊衰服) :

어머니상, 할머니 승중상, 시어머니상에 입는다.
참최복과 달리 고운 베로 깃을 여미며 앞가슴에 최를 달고

뒷등에 부판을 단 후 오동나무로 네모나게 만든 상장을 짚고 3년간 근신한다.

③ 장기(杖朞) :

아버지 생존시 어머니상이나 아내상을 당했을 때 재최복을 입고 상장을 짚고 1년간 근신한다.

④ 부장기(不杖朞) :

백숙부(伯叔父) ? 형제(兄弟) ? 차자(次子) ? 장손(長孫)의

상을 당했을 때 재최복을 입고 상장없이 일년간 근신한다.
큰며느리 ? 조카 ? 친정부모 ? 조부모도 같다.

⑤ 대공복(大功服) :

종형제(從兄弟) ? 지차며느리 ? 시조부모 ? 친정백숙부 ? 질부(姪婦) ? 고모(姑母) ?
출가한 자매(姉妹)의 상에는 곱게 다듬어 만든 상복을 입고 상장없이 9개월간 근신한다.

⑥ 소공복(小功服) :

종조부모(從祖父母) ? 대고모(大姑母) ? 종손(從孫) ? 당고모(堂姑母) ? 당숙모(堂叔母)의

상일 때는 상장없이 5개월간 근신한다.
상복은 대공과 같다.

⑦ 시마복(?麻服) :

증조부모(曾祖父母) ? 재종조부모(再從祖父母) ? 장인(丈人) ? 장모(丈母)의 상에 3개월간 입는다.
종수(從嫂) ? 종손부(從孫婦) ? 재종숙모(再從叔母) ? 재종손(再從孫) ? 외손(外孫)
? 시종조부모(媤從祖父母) ? 시사촌(媤四寸) ? 시당숙모(媤堂叔母)도 이에 속한다.

상복은 소공과 같다.

 


右는 第十八章이라 
 

중용 제17장 순기대효장(舜基大孝章)

 

 

1.
子曰 舜은 其大孝也與신뎌 德爲聖人이시고 尊爲天子시고 富有四海之內하샤 宗廟饗之하시며 子孫保之하시니라.
자왈 순은 기대효지여신뎌 덕위성인이시고 존위천자시고 부유사해지내하사 종묘향지하시며 자손보지하시니라.

 

공자께서 말씀 하시었다.
순임금은 진실로 대효이시로다!덕으로는 성인이 되시고 존귀함으로는 천자기 되시어,
널리 사해의 천하를 다스리시었다.돌아가신 후에는 종묘의 제사를 흠향하시니,
자손들은 대대로 그 제사를 보전하여 끊이지 않았다.

饗 : 흠향할 향

 

[본문 해설]
요임금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순에 관해 공자가 말한 내용으로 ‘費’의 큰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순임금의 아버지는 소경이었고 어머니는 서모인데 매우 간악하였으며
서제도 간악하여 몇 차례에 걸쳐 순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순은 끝까지 효를 다하여 모두 순해지게 했다.
순임금은 백행지본(百行之本)의 효를 다했고, 덕으로는 성인이고 높이로는 천자의 위에 올랐으니
온 나라를 모두 소유하였으며 돌아가셔서는 종묘의 제사를 흠향하시고

영혼은 수호신이 되어 대대손손 자손을 보존하셨다.


 

2.
故로 大德은 必得其位하며 必得其祿하며 必得其名하며 必得其壽니라
고로 대덕은 필득기위하며 필득기록하며 필득기명하며 필득기수니라

 

그러므로 순(舜)과 같은 대덕(大德)은 반드시 그 합당한 위(位)을 얻으며
반드시 그 합당한 녹을 얻으며,반드시 그 합당한 이름을 얻으며,
반드시 그 합당한 수(壽)를 얻는다.


 

3.
故로 天之生物이 必因其材而篤焉하나니 故로 栽者를 培之하고 傾者를 覆之니라
고로 천지생물이 필인기재이독언하나니 고로 제자를 배자하고 경자를 복지니라

 

그러므로 하늘이 물건을 내는데 반드시 그 재목을 인하여 돈독히 하나니
그러므로 심는 자를 북돋아주고 기울어진 자를 엎느니라.

 

[본문 해설]
하느님이 만물을 내는데 반드시 그 재목이 쓸만한 지를 보고, 싹수가 있고 희망적인 것은 북돋워주고,
기울어지거나 말라비틀어진 것, 망할 짓하는 것은 쓸모가 없으니 엎어버리는데 이것이 곧 하늘의 섭리이다.
 
재는 바탕(재질)이오, 독은 후함이오, 재는 심음이라.
기운이 이르러 불어나는 것을 북돋는다라 하고, 기운이 돌아 떠서 흩어지면 엎어지는 것이라.

 

 

4.
詩曰 嘉樂君子의 憲憲令德이 宜民宜人이라 受祿于天이어늘 保佑命之하시고 自天申之라 하니라
시왈 가락군자의 헌헌령덕이 의민의인이라 수록우천이어늘 보우명지하시고 자천신지라 하니라

 

『시경』에 이르기를 아름답고 즐거운 군자의 현명한 어진 덕이 백성에게도 마땅하고 사람에게도 마땅하니라.
녹을 하늘에서 받거늘 보우하여(돕고 도와서) 명을 내리시고 하늘로부터 거듭한다 하니라.

嘉 : 아름다울 가 憲 : 현명할 헌, 법 헌 令 : 착할 령, 어질 령

 

[본문 해설]
『시경』대아 가락편에 있는 시로 성인군자인 문왕 덕치를 기리는 내용이다.
人民이라 할 때 人은 벼슬하는 이들을 가리키고 民은 농사짓고 사는 백성들을 말한다.

 

 

5.
故로 大德者는 必受命이니라
고로 대덕자는 필수명이니라

 

그러므로 큰 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명을 받느니라

 

受命者는 受天命爲天子也라
수명자는 수천명위천자지라

 

명을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명을 받아 천자가 됨이라.

 

 

右는 第十七章이라

 

此는 由庸行之常으로 推之하야 以極其至하니 見道之用이 廣也니

而其所以然者는 則爲體微矣라 後二章도 亦此意니라
이것은 용행지상(떳떳한 행실을 떳떳이 함)으로 말미암아 미루어 써 그 이름을 지극하게 함이니,
도의 씀이 넓음을 나타낸 것이니, 그 까닭(所以然)은 곧 체가 됨이 미미함이라.

뒤의 두 장도 또한 이러한 뜻이니라. 
 

중용 제16장 귀신장(鬼神章)

 

 

1.

子曰 鬼神之爲德이 其盛矣乎신뎌
(자왈 귀신지의덕이 기성의호신뎌)

 

공자 말씀하시길 “귀신의 덕 됨이 그 성대한져!”

 

程子曰 鬼神은 天地之功用이오 而造化之迹也라

(정자왈 귀신은 천지지공용이오 이조화지적야라)

 

張子曰 鬼神者는 二氣之良能也라 愚는 謂以二氣로 言則鬼者는 陰之靈也오

(장자왈 귀신자는 이기지량능야라 우는 위이이기로 언즉귀자는 음지령야오)
 
神者는 陽之靈也며 以一氣로 言則至而伸者爲神이오 反而歸者爲鬼니 其實은 一物而已니라 爲德은 猶言性情功效니라. 
(신자는 양지령야며 이일기로 언즉지이신자위신이오 반이귀자위귀니 기실은 일물이이니라 위덕은 유언성정공효니라.)

 

정자 말씀하시길 “귀신은 천지의 공용(성공적인 쓰임)이오 조화의 자취니라.
” 장자(장횡거)는 “귀신은 음양 두 기운의 잘 능함(곧 변화)이라” 하였다.
어리석은 나(주자)는 음양 두 기운로써 말하면 귀는 음의 영이오 신은 양의 영이며,
한 기운(태극)로써 말하면 이르러 펴면 신이오 돌이켜 돌아가는 것은 귀이니 그 실제는 하나의 물건일 뿐이니라.
덕 됨은 성정 공효를 말함과 같으니라.

 

[참조]

귀신에 대한 주역의 설명은 중용 제11장 해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

視之而弗見하며 聽之而弗聞이로대 體物而不可遺니라.
(시지이불견하며 청지이불문이로대 체물이불가유니라.)

 

보려 해도 보이지 아니하며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아니하되 물건에 체해서 가히 버리지 못하느니라.


鬼神은 無形與聲이라 然이나 物之終始 莫非陰陽合散之所爲니

 (귀신은 무형여성이라 연이나 물지종시 막비음양합산지소위니)

 

是其爲物之體요 而物之所不能遺也라 其言體物은 猶易所謂幹事니라.
(시기위물지체요 이물지소불능유야라 기언체물은 유이소위간사니라.) 

 

귀신은 형체와 다못 소리가 없음이라.
그러나 물건의 종과 시가 음양의 합하고 흩어짐의 소위가 아님이 없으니

이는 그 물건의 체가 됨이요 물건이 능히 버릴 수 없는 바이이라.
그 체물이라는 것은 일을 주장함을 말함이라.

 

與: 다못(또) 여  幹: 주장할 간

 

[해설]

물건의 체가 된다는 것(체물)은 음양 귀신의 조화로 일을 주장한다(幹事)는 뜻으로

이는 『주역』의 중천건괘 문언전에서 나온 말이다.

文言曰 元者는 善之長也오 문언에 이르길 元은 착한 것의 어른이요

(문언왈 효자는 원지장야오)
亨者는 嘉之會也오 亨은 아름다움의 모임이요

(형자는 가지회야오)
利者는 義之和也오 利는 의리의 和함이요

(이자는 의지화야오)
貞者는 事之幹也니 貞은 일을 주장함이니 일의 줄기니

(정자는 사지간야니)
君子 體仁이 足以長人이며 군자가 仁을 체득함이 족히 사람의 어른이며

(사람을 기르며)(군자 체인이 족이장인이며)
嘉會 足以合禮며 모임을 아름답게 함이 족히 禮에 합하며

(가회 족이함체며)
利物이 足以和義며 물건을 이롭게 함이 족히 의리에 화합하며

(이물이 족이화의며)
貞固 足以幹事니 바르고 굳셈이 족히 일을 주장하니

(정고 족이간사니)
君子 行此四德者라 군자가 이 네 가지 덕을 행하는지라

(군자 행차사덕자라)
故로 曰乾元亨利貞이라 그러므로 이르길 ‘乾元亨利貞’이라.

(고로 왈건원형이정이라)

 

 

3.
使天下之人으로 齊明盛服하야 以承祭祀하고 洋洋乎如在其上하며 如在其左右니라.
(사천하지인으로 제명성복하야 이승제사하고 양양호여재기상하며 여재기좌우니라.)
 

(귀신은) 천하의 사람으로 하여금 (목욕)재계하고 (마음을)밝게 하고 옷을 성대하게 입고
써 제사를 받들고 양양히 그 위에 있는 듯하며 그 좌우에 있는 듯 하느니라.


齊之爲言은 齊也니 所以齊不齊而致其齊也라 明은 猶潔也라

(제지위언은 제야니 소이제불제이치기제야라 명은 유결야라)


洋洋은 流動充滿之意라 能使人으로 畏敬奉承而發見昭著 如此하니

(양양은 유동충만지의라 능사인으로 외경봉승이발현소저 여차하니

 

及其體物而不可遺之驗也라 孔子 曰其氣 發揚于上하야

(급기체물이불가유지험야라 공자 왈기기 발양우상하야)


爲昭明焄蒿悽愴하니 此는 百物之精也오 神之著也라 하시니 正謂此爾니라.

(위소명훈호처창하니 차는 백물지정야오 신지저야라 하시니 정위차이니라.) 


제계 한다는 말은 몸을 제계 하는 것이니 깨끗지 못함을 깨끗이 하여 그 제계함을 이룸이라.
명은 청결함과 같음이라. 양양은 흐르고 움직여 충만한 뜻이라.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귀신을) 두려워하고 공경하여 받들어 이어서 발현하고 훤히 밝게 나타남이 이와 같으니
이에 그 물건에 체해서(주장해서) 가히 버리지 못하는 증험이니라.
공자 말씀하시기를

“그 기운이 위에 발양하여 밝게 밝아 쑥을 태워 처창(숙연해져 매우 감상적이니 되는 마음)하게 되니
이는 백가지 물건의 정이오 신의 나타남이라” 하시니 바로 이(流動充滿, 體物, 發揚)를 이름이라.

見: 나타날 현.  焄: 연기에 그을릴 훈.  蒿: 쑥 호. 悽: 슬퍼할 처. 愴: 슬퍼할 창. 爾: 어조사 이

 


[참고]

조율시이(棗栗枾梨)에 대하여

옛 어른들은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대추, 밤, 감은 꼭 놓되 상에 가장 먼저 대추를 올리라고 한다.
그중 대추는 단단한 씨가 하나 들어 있어 있는데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으므로
열매인 자손으로서 제사지내는 주체를 상징하기에 제상에 가장 먼저 올려놓는다.
밤은 싹이 나면 썩지 않는데서 불후(不朽) 혹은 불멸(不滅)을 상징하며 뿌리인 조상을 나타내고,
감나무는 씨를 심은 후 접을 붙여야 감이 되므로 교역(交易)을 상징하고,
바로 제사를 통한 조상과 후손과의 교감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제상에 과일을 올릴 때 대추, 밤, 감의 순으로 놓는 것은
제사를 지내는 주체인 내(대추)가 조상님(밤)을 정성으로 받들며 조상귀신과의 대화를 나눈다(감)는 뜻이다.
여기에 배를 굳이 붙이는 이유는 색의 음양 짝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젯상을 아무리 진수성찬으로 순서에 맞게 차린다한들 그 속에 정성이 빠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공이 주역 澤風大過괘(택풍대과) 초육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藉用白茅니 无咎하니(자용백모 무구)라

(자리를 까는데 흰 띠를 쓰니 허물이 없느니라)"하셨다.
이에 공자는 "苟錯諸地(구착제지)라도 而可矣(이가의)어늘 藉之用茅(자지용모)하니 何咎之有(하구지유)리오
愼之至也(신지지야)라 夫茅之爲物(부모지위물)이 薄而用(박이용)은 可重也(가중야)니
愼斯術也(신사술야)하야 以往(이왕)이면 其无所失矣(기무소실의)리라
(진실로 저 땅에 두더라도 괜찮거늘 까는데 띠를 쓰니 무슨 허물이 있으리오 삼감의 지극함이라.
무릇 띠의 물건됨이 박하나 쓰는 것은 중히 여기는 것이니

이 방법을 삼가여 써가면 그 잃는 바가 없으리라)"고 덧붙이셨다.

 

 

4.

詩曰 神之格思를 不可度思온 신可射思아
(시왈 신지격사를 불가탁사온 신가역사아)

 

『시경』에 이르기를 신이 이르는 것을 가히 헤아리지 못하는데 하물며 가히 싫어하랴

思: 어조사 사 度: 헤아릴 탁 ?: 하물며 신 射: 싫어할 역, 쏠 사, 쏠 석

 

[해설]

사람은 눈 뜨고도 깊은 것을 보지 못하고, 귀로 사물의 소리는 들을지 몰라도 이치는 듣지 못한다.
제사를 지내는데 신이 오는 것을 가히 헤아리지도 못하면서 신이 있느니 없느니,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헛일이네, 귀신이 먹고 가겠느냐 하면서 신을 싫어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이다.
깊이 헤아려보라는 의미에서 '思'란 글자를 어조사로 하여 세 번 썼음을 알 수 있다.
위에 인용된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視爾友君子(시이우군자)한대

네 군자를 벗함을 보건대
輯柔爾顔(집유이안)하여

네 얼굴을 화하게 하고 유순히 하여
不遐有愆(불하유건)가한다

어떤 잘못이 있지 않은가 하는구나
相在爾室(상재이실)한대

네 거실에 있음을 보건대
尙不愧于屋漏(상불괴우옥루)상니

거의 옥루에 부끄럽지 않게 할지니
無曰不顯(무왈불현)이라

밝지 않은지라
莫予云?(막여운구)하라

나를 보는 이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神之格思(신지격사)를

신의 이르름을
不可度思(불가탁사)온

헤아릴 수가 없거늘
?可射思(신가역사)아

하물며 신을 싫어할 수 있겠는가

 

輯 : 화목할. 집 遐 : 무엇 하, 멀 하. 愆 : 허물 건 ? : 우연히 만날 구


詩는 大雅抑之篇이라 格은 來也오 ?은 況也라 射은 厭也니 言厭怠而不敬也라 思는 語辭라. 
시는 대아억지편이라 격은 래야오 신은 황야라 역은 염야니 언염태이불경야라 사는 어사라.
 

(위) 시는 대아 억편에 있느니라. 격은 옴이라 신은 ‘하물며’라는 뜻이라.
역은 싫어함이니 (신을) 싫어하고 (섬기는데) 게을리 하면서 공경하지 아니함을 말함이라. 사는 어조사라.

抑: 누를 억

 

 

5.

夫微之顯이니 誠之不可엄이 如此夫신뎌

(부미지현이니 성지불가엄이 여차부신뎌)

 

대저 미미한 것이 나타나니 정성을 가히 가리지 못함이 이와 같은져!

 

: 가릴 엄   夫: 진저(어조사) 부

 

誠者는 眞實無妄之謂라 陰陽合散이 無非實者라 故로 其發見之不可?이 如此니라.
성자는 진실무망지위라 음양함산이 무비실자라 고로 기발현지불가엄이 여차니라.

 

정성이라는 것은 진실무망을 말함이라. 음양 합산이 실제가 아님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그 발현되는 것을 가히 가리지 못하니 이와 같음이라.


 

右는 第十六章이라


不見不聞은 隱也오 體物如在는 則亦費矣라 此前三章은 以其費之小者而言이오

불견불문은 은야오 체물여재는 즉역비의라 차전삼장은 이기비지소자이언이오

 

此後三章은 以其費之大者而言이오 此一章은 兼費隱包大小而言이라.
차후삼장은 이기비지대자이언이오 차일장은 겸지은포대소이언이라.
 
 
불견불문은 (비은장으로 말하면 숨어있다는) 은이오 체물여재는 곧 또한 소비함이라.
이 앞의 석 장은 비의 작은 것으로써 말함이오 이 뒤의 석 장은 비의 큰 것으로써 말함이오

이 한 장은 비은을 겸하고 크고 작은 것을 싸서 말함이라.


[해설]

“君子之道는 費而隱이니라”는

제12장의 내용과 관련해 앞의 세 장인 제13장, 제14장, 제15장은 ‘費’의 작은 것으로 말한 것이고,
뒤의 세 장, 곧 제17장, 제18장, 제19장은 ‘費’의 큰 것으로 말한 것이며,
이 제16장은 ‘費’와 ‘隱’을 겸하고 또한 큰 것과 작은 것을 포함하여 말한 것이다.

 

 

중용 제15장 행원자이장(行遠自邇章)

 

1

君子之道는 벽如行遠必自邇하며 벽如登高必自卑니라.
군자지도는 벽여행원필자이하며 벽여등고필자비니라.

 

군자의 도는 비유컨대 먼 길을 가는데 반드시 가까운 데로부터 하는 것과 같으며,
비유컨대 높은 곳을 오르는데 반드시 낮은 데서부터 하는 것과 같으니라.

 

2
詩曰 妻子好合이 如鼓瑟琴하며 兄弟旣翕하야 和樂且耽이라 宜爾室家하며 樂爾妻帑라  
시왈 처자화합이 여고솔금하며 형제기흡하야 화락차탐이라 의이실가하며 락이처노라 
 
시경에 가로대 “처자가 좋아서 합하는 것이 비파와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으며,
형제가 이미 합해서 화락하고 또 즐기느니라.
너의 집안을 마땅하게 하며 너의 아내와 자식을 즐겁게 한다.” 하거늘

 

詩는 小雅常체之篇이라 鼓瑟琴은 和也라 翕은 亦合也라 耽은 亦樂也라 帑는 子孫也이라.
시는 소아상체지편이라 고슬금은 화야라 흡은 역합야라 탐은 역락야라 노는 자손야이라.

 

시는 소아 상체편이다. 비파와 거문고를 탄다는 것은 화함이라. 흡은 또한 합함이라.
탐은 또한 즐거움이라. 노는 자손이라.

 

3

子曰 父母난 其順矣乎신뎌
자왈 부모난 기순의호신뎌

 

공자 말씀하시길 “부모께서는 그 순하실(편안하실) 것이다.

 

夫子 誦此詩而贊之曰人能和於妻子하고 宜於兄弟 如此면
부자 송차시이찬지왈인능화어처자하고 의어형제 여차면

 

則父母는 其安樂之矣시리라 子思 引詩及此語하야 以明行遠自邇登高自卑之意하시니라.
즉부모는 기안락지의시리라 자사 인시급차어하야 이명행원자이등고자비지의하시니라.
 
공자께서 이 시를 외우고 찬양하며 말씀하시길
“사람이 능히 처자에 화합하고 형제간에 마땅함이 이와 같다면 곧 부모는 그 안락하시리라.”
자사가 시와 이 말씀을 인용하여 써 먼 길을 가는데 가까운 데로부터 하고
높은 곳을 오르는 데는 낮은 곳으로부터 한다는 뜻을 밝힘이라.

 


右는 第十五章이라 
 

중용 제14장 불원불우장(不怨不尤章)

 

 

 

1.
君子는 素其位而行이오 不願乎其外니라
군자는 소기위이행이오 불원호기외니라

 

군자는 현재 그 위치에서 행하고 그 바깥을 원하지 않느니라

素 : 본디 소, 현재 소

 

 

2.
素富貴하얀 行乎富貴하며 素貧賤하얀 行乎貧賤하며 素夷狄하얀 行乎夷狄하며

소부귀하얀 행호부귀하며 소빈천하얀 행호빈천하며 소이적하얀 행호이적하며

素患難하얀 行乎患難이니 君子는 無入而不自得焉이니라

소환난하얀 행호환난이니 군자는 무입이불자득언이니라

 

부귀에 있어서는 부귀대로 행하며 빈천에 있어서는 빈천대로 행하며
오랑캐에 있어서는 오랑캐대로 행하고 환란에 있어서는 환란대로 행하니
군자는 들어가는 데마다 스스로 얻지 못함이 없느니라.

 

 

3.
在上位하야 不陵下하며 在下位하야 不援上이오

제상위하야 불릉하하며 제하위하야 불원상이오

正己而不求於人이면 則無怨이니 上不怨天하며 下不尤人이니라

정기이불구어인이면 즉무원이니 상불원천하며 하불우인이니라

 

윗자리에 있어서 아랫사람을 능멸하지 않으며,
아랫자리에 있어서 윗사람을 잡아당기지 않으며

자기 몸을 바로 하여 남에게 구하지 않으면 즉 원망이 없음이니,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아래로는 사람을 탓하지 아니 하나니라

陵 : 능멸(陵蔑, 凌蔑)할 릉   援 : 당길 원   怨 :원망할 원   尤 : 허물 우

 

 

4.
故로 君子는 居易以俟命하고 小人은 行險以徼幸이니라

고로 군자는 거이이사명하고 소인은 행험이요행이니라

 

그러므로 군자는 쉬운 데(평지)에 거하면서 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험한 곳을 다니면서 요행을 구하느니라.

易 : 쉬울 이  : 구할 요  幸 : 요행 행

 

 

5.
子曰 射 有似乎君子하니 失諸正鵠이오 反求諸其身이니라
자왈 사 유사호군자하니 실저정곡이오 반구저기신이니라

 

공자 이르길 활을 쏘니 군자와 같음이 있으니 정곡을 잃고 돌이켜 그 몸에서 구하느니라.

射 : 쏠 사 鵠 : 과녁 곡, 황새 곡

 

 

右는 第十四章이니라

 

 

자기책임의 논리는 상불원천 하불우인(上不怨天 下不尤人)이라는

중용에서 너무도 잘 인용되고 화자되는 명제로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실존적 논리가 모든 종교적 심성의 근원을 포섭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매우 심오한 자사의 발언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것은 실상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대한 원망이라는 것은 자신의 불우한 처세상황이라든가

선업에도 불구하고 악연이 끊어지지 않을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이러한 덕복불일치(德福不一致)에 대하여

칸트는 신의 존재를 요청하고

싯달타는 윤회를 요청한다.

그러나 자사는 인간실존의 대한 일체의 외재적 해결방안을 요청하지 않는다.

인간은 당대로 끝난다.

그것은 가혹한 유기체의 운명이다.

인간은 불멸하지도 불멸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하나님도 불멸하는 존재이어서는 아니된다.

하나님도 인간과함께 생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는 요청의 대상이 근원적으로 될 수 없다.

인간의 운명에 대한 주재적 불멸존재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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