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 상서 - 열명 상(說命上)

 

▣ 열명 상(說命上)


『說命은 記高宗命傅說之言이니 命之曰以下 是也라
猶蔡仲之命, 微子之命이니 後世命官制詞 其原이 蓋出於此라
上篇은 記得說命相之辭하고 中篇은 記說爲相進戒之辭하고
下篇은 記說論學之辭하니 總謂之命者는 高宗命說이 實三篇之綱領이라
故로 總稱之라 今文無, 古文有하니라』

 

『 열명(說命)은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명(命)한 말을 기록한 것이니, ‘명지왈(命之曰)’ 이하가 이것이다.
〈채중지명(蔡仲之命)〉•〈미자지명(微子之命)〉과 같으니, 후세에 관직(官職)을 명(命)하면서 말을 지은 것은 그 근원이 모두 여기에서 나왔다.
상편(上篇)은 부열(傅說)을 얻어 정승을 명한 말을 기록하였고, 중편(中篇)은 부열(傅說)이 정승이 되어 진계(進戒)한 말을 기록하였고,
하편(下篇)은 부열(傅說)이 학문을 논한 말을 기록하였으니, 이것을 모두 명(命)이라고 이른 것은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명(命)한 것이 실로 세 편의 강령(綱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두 열명(說命)이라고 칭한 것이다. 금문(今文)에는 없고 고문(古文)에는 있다.』


 

▣ 제1장(第一章)

 

『 왕(王)이 양암(亮陰)『[여막(廬幕)]』에서 택우(宅憂)『[집상(執喪)]』하기를 3년 동안 하여 이미 상(喪)을 벗고도 말씀하지 않으니,
군신(群臣)들이 모두 왕(王)에게 간(諫)하였다. “아! 아는 사람을 명철(明哲)이라 하니, 명철(明哲)이 실로 법(法)이 됩니다.
천자(天子)가 만방(萬邦)에 군주(君主)가 되시거든 백관(百官)이 법(法)을 받들어서 왕(王)의 말씀을 명령으로 삼나니,
왕(王)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면 신하(臣下)들이 명령을 받을 곳이 없습니다.”』

『 양(亮)은 또한 ‘양(諒)’으로도 쓰고, 암(陰)은 고문(古文)에는 ‘암(闇)’으로 되어 있다.
살펴보건대 〈상복(喪服)〉의 네 제도(制度)에 “고종량암삼년(高宗諒陰三年)”이라 하였는데,
정씨(鄭氏)의 주(註)에 “양(諒)은 고문(古文)에는 양(梁)으로 되어 여막(廬幕)이다.” 하였으며,
《의례(儀禮)》에 “전병주미(캼屛柱楣)한다.” 하였는데, 정씨(鄭氏)는 이르기를 “주미(柱楣)는 이른바 양암(梁闇)이 이것이다.” 하였으니,
택우량암(宅憂亮陰)은 양암(梁闇)에서 집상(執喪)한 것이다.
선유(先儒)『[공안국(孔安國)을 가리킴]』는 양암(亮陰)을 “신실하고 침묵하여 말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는데,
양암(諒陰)에서 3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는 것과 말이 중복되어 이해할 수 없다.
임금이 죽으면 백관(百官)들이 자신의 직책을 총괄하여 총재(¾4宰)에게 명령을 들으니,
양암(亮陰)에서 집상(執喪)하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떳떳한 예(禮)이다.
고종(高宗)이 아버지 소을(小乙)의 상(喪)을 당하였는데 이미 상(喪)을 벗고도 말하지 않으니,
군신(群臣)들이 예(禮)에 과하다고 생각하였으므로 모두 간(諫)한 것이다.
탄식하여 말하기를 “선지(先知)의 덕(德)이 있는 자를 명철(明哲)이라 이르니, 명철(明哲)이 실로 천하에 법(法)이 됩니다.
이제 천자(天子)가 만방(萬邦)에 군림(君臨)하시면 백관(百官)들이 모두 법령(法令)을 받들어서 왕(王)의 말씀으로 명령을 삼나니,
말씀하지 않으시면 신하(臣下)들이 명령을 받을 곳이 없습니다.” 하였다.』

 


▣ 제2장(第二章)

 

『 왕(王)이 글을 지어 고(誥)하였다.
“나로써 사방(四方)을 바로잡게 하시기에 나는 덕(德)이 선인(先人)과 같지 못할까 두려워 이 때문에 말하지 않고
공손하고 침묵하여 도(道)를 생각하였는데, 꿈에 상제(上帝)께서 나에게 어진 보필을 내려 주셨으니, 그가 나의 말을 대신할 것이다.”』

『 용(庸)은 써이니, 고종(高宗)이 글을 지어 군신(群臣)들에게 말하지 않는 뜻을 고유하였다.
왕이 “나로써 사방(四方)을 표정(表正)하게 하시니, 임무가 크고 책임이 무거워서 덕(德)이 전인(前人)과 같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감히 함부로 말을 내지 않고 공경하고 연묵(淵默)하여 치도(治道)를 생각하였는데 꿈에 상제(上帝)께서 나에게 어진 보필을 주셨으니,
그가 장차 나의 말을 대신할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고종(高宗)이 공경하고 침묵하여 도(道)를 생각하는 마음이 순일(純一)하고 잡되지 않아서 하늘과 간격이 없었다.
그러므로 몽매(夢寐)의 사이에 상제(上帝)께서 어진 보필을 준 것이니,

생각이 정성스럽고 정신(精神)이 이른 것이요, 우연히 얻은 것이 아니다.』

 

 

▣ 제3장(第三章)


『 이에 그 상(象)을 자세히 살펴 그 형상(形象)으로 천하(天下)에 널리 구하였는데,
부열(傅說)이 부암(傅巖)의 들에서 거주하였는 바, 그 모습이 똑같았다.』

『 심(審)은 자세히 살핌이니, 꿈속에 본 사람을 자세히 살펴 그 형상(形象)을 그려서 천하에 널리 구한 것이다.
방구(旁求)는 구하기를 한 방소에만 한 것이 아니다. 축(築)은 거주(居住)하는 것이니,
지금에도 거주하는 곳을 말할 때에 오히려 복축(卜築)이라고 한다.
부암(傅巖)은 우(虞)와 괵(¹~)의 사이에 있었다. 초(肖)는 같음이니, 꿈꾼 바의 모양과 서로 같은 것이다.』

 

 

▣ 제4장(第四章)


『 이에 세워 정승을 삼아서 왕(王)이 그 좌우(左右)에 두셨다.』

『 이에 세워 정승을 삼았다.
《사기(史記)》를 살펴보면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얻어 더불어 말해 보니 과연 성인(聖人)이었으므로
마침내 등용하여 정승을 삼았다.” 하였으니, 《서경(書經)》에 이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글을 생략한 것이다.
접하여 말해 보지 않고 대번에 정승을 임명함은 또한 이러할 이치가 없다.
좌우(左右)에 둔다는 것은 총재(¾4宰)로서 사보(師保)를 겸하게 한 것인 듯하다.
순경(荀卿)이 말하기를 “배움은 그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보다 편리함이 없다.” 하였으니,
좌우(左右)에 둔 것은 그 사람을 가까이하여 배운 것이다.
사신(史臣)이 장차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명(命)하는 말을 기록하려 하였으므로 먼저 일의 시초(始初)를 서술하기를 이와 같이 한 것이다.』

 

 

▣ 제5장(第五章)


『 왕(王)이 다음과 같이 명(命)하였다. “아침저녁으로 가르침을 바쳐 나의 덕(德)을 도우라.』

『 이 이하(以下)는 부열(傅說)에게 명한 말이다. 조석(朝夕)으로 가르침을 바치라는 것은 선언(善言)을 올리지 않을 때가 없는 것이다.
맹자(孟子)는 말씀하기를 “인재(人才)의 등용(登用)을 이루 다 꾸짖을 수 없고, 정사(政事)의 잘못을 이루 다 흠잡을 수 없다.
오직 대인(大人)이라야 군주(君主)의 마음의 나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 하였으니,
고종(高宗)이 이미 부열(傅說)을 정승으로 삼아 사부(師傅)의 직책에 처하게 하고,
또 아침저녁으로 가르침을 바쳐 자신의 덕(德)을 도우라고 명했으니, 근본(根本)을 알았다고 이를 만하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고종(高宗)은 도(道)를 봄이 밝았기 때문에 경각(頃刻)이라도 현인(賢人)의 말이 없어서는 안됨을 안 것이다.”』

 


▣ 제6장(第六章)


『 만약 금(金)이라면 너를 사용하여 숫돌을 삼으며, 만약 큰 내를 건넌다면 너를 사용하여 배와 노를 삼으며,
만약 해가 대한(大旱)『[큰 가뭄]』이 든다면 너를 사용하여 장마비를 삼을 것이다.』

『 3일 동안 비가 내림을 임(霖)이라 한다. 고종(高宗)이 물건에 가탁하여 부열(傅說)이 가르침을 바치기를 바람이 간절함을 비유하였으니,
세 말이 비록 한 뜻인 듯하나 한 절(節)이 한 절(節)보다 깊다.』

 


▣ 제7장(第七章)


『 네 마음을 열어 내 마음에 대도록 하라.』

『 계(啓)는 엶이요, 옥(沃)은 관개(灌漑)함이다.
네 마음을 열라는 것은 마음을 열어 숨김이 없는 것이요, 내 마음에 대라는 것은 내 마음에 대어서 염어(厭쵇)『[흡족]』하게 하는 것이다.』

 


▣ 제8장(第八章)


『 만약 약(藥)이 독하여 명현(瞑眩)하지 않으면 병(病)이 낫지 않으며, 만약 발이 땅을 살피지 않으면 발이 상할 것이다.』

『 《방언(方言)》에 “약(藥)을 마셔 독이 있는 것을 해대(海岱)의 사이에서는 명현(瞑眩)이라 한다.” 하였다. 추(퀁)는 나음이다.
명현(瞑眩)하지 않음은 신하(臣下)의 말이 입에 쓰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며, 땅을 살피지 않음은 나의 행실이 본 바가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 제9장(第九章)


『 네 관속(官屬)들과 더불어 마음을 함께하지 않음이 없어 네 군주(君主)를 바로잡아 선왕(先王)의 도(道)를 따라
우리 고후(高后)의 자취를 밟아서 조민(兆民)을 편안하게 하라.』

『 광(匡)은 바로잡음이요, 솔(率)은 따름이다.
선왕(先王)은 상(商)나라의 선철왕(先哲王)이다.
부열(傅說)이 이미 정승이 되어서 백관(百官)을 총괄(總括)하니, 경사(卿士) 이하가 모두 그 관속(官屬)이다.
고종(高宗)은 부열(傅說)이 요속(僚屬)들과 마음을 함께 하여 군주를 바로잡아 선왕(先王)의 도를 따라 성탕(成湯)의 자취를 밟아서
천하의 백성을 편안히 하기를 바란 것이다.』

 

 

▣ 제10장(第十章)


『 아! 나의 이 명령을 공경하여 유종(有終)을 생각하라.”』

『 나의 이 명령을 공경하여 유종(有終)을 생각하라는 것이니, 이 명(命)은 상문(上文)에 명령한 것이다.』

 


▣ 제11장(第十一章)


『 부열(傅說)이 왕(王)에게 대답하였다.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바르고, 임금은 간언(諫言)을 따르면 성(聖)스러워지니,
임금께서 성스러우시면 군주(君主)가 명령하지 않아도 신하(臣下)들이 받들거늘

누가 감히 왕(王)의 아름다운 명령에 공경히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 “나의 이 명령을 공경하라.”는 말에 대답한 것이다.
나무가 먹줄을 따름은 군주(君主)가 간언(諫言)을 따름을 비유한 것이니, 간언(諫言)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됨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고종(高宗)은 마땅히 자신에게 말을 받아들이기를 구할 것이요, 굳이 신하(臣下)에게 진언(進言)하기를 책할 것이 없다.
군주(君主)가 과연 간언(諫言)을 따르면 신하(臣下)들은 비록 군주(君主)가 명령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받드는데 하물며 명령하기를 이와 같이 하니,
누가 감히 아름다운 명령(命令)을 공경히 순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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