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 상서 - 열명 하(說命下)
▣ 열명 하(說命下)
▣ 제1장(第一章)
『 왕(王)이 말씀하였다. “이리 오라. 부열(傅說)아! 나 소자(小子)는 옛날에 감반(甘盤)에게 배웠는데 이윽고 황야(荒野)로 물러갔으며,
하수(河水)가에 들어가 살며, 하수(河水)에서 박(¨])으로 가서 마침에 이르도록 학문이 드러나지 못하였노라.』
『 감반(甘盤)은 신하(臣下)의 이름이니, 〈군석(君奭)〉에 “무정(武丁) 때에 있어서는 감반(甘盤)과 같은 이가 있었다.” 하였다.
둔(遯)은 물러감이다. 고종(高宗)이 말씀하기를 “나 소자(小子)는 옛날에 감반(甘盤)에게 배웠는데 이윽고 황야(荒野)에 물러갔고,
뒤에 또 하수(河水)에 들어가 살며, 하수(河水)로부터 박(¨])으로 가서 옮겨다니고 일정하게 살지 않았다.” 하여
학문을 폐한 원인을 일일이 서술하고 그리하여 학문이 끝내 드러나 밝음이 없음을 한탄한 것이다.
〈무일(無逸)〉에 “고종(高宗)이 옛날에 밖에서 수고로워 소인(小人)들과 함께했다.” 하였으니, 이와 서로 응한다.
《국어(國語)》에도 또한 “무정(武丁)이 하수(河水)에 들어갔고 하수(河水)에서 박(¨])으로 갔다.” 하였으며,
당(唐)나라 공씨(孔氏)는 “고종(高宗)이 왕자(王子)였을 때에 그의 아버지인 소을(小乙)이 민간(民間)의 고통과 어려움을
알게 하려고 하였으므로 민간(民間)에 살게 했다.” 하였다.
소씨(蘇氏)『[소식(蘇軾)]』가 “감반(甘盤)이 황야(荒野)에 은둔했다.”고 말한 것은
나 소자(小子)란 어맥(語脈)으로 미루어 보면 옳지 않다.』
▣ 제2장(第二章)
『 너는 짐(朕)의 뜻을 가르쳐서 만약 술과 단술을 만들거든 네가 누룩과 엿기름이 되며,
만약 간을 맞춘 국을 만들거든 네가 소금과 매실이 되어야 한다.
너는 여러 가지로 나를 닦아서 나를 버리지 말라. 내가 능히 너의 가르침을 행할 것이다.”』
『 마음이 가는 것을 지(志)라 한다. 매(邁)는 행함이다.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술은 누룩과 엿기름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못하고, 국은 소금과 매실이 아니면 화(和)『[간을 맞춤]』하지 못하며,
임금이 비록 아름다운 자질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현인(賢人)이 보도(輔導)해줌을 얻어야 덕(德)을 이룰 수 있다.
술을 만드는 자는 누룩이 많으면 너무 쓰고 엿기름이 많으면 너무 다니, 누룩과 엿기름이 알맞은 뒤에야 술이 이루어지며,
국을 만드는 자는 소금이 지나치면 너무 짜고 매실이 지나치면 너무 시니, 소금과 매실이 알맞은 뒤에야 국이 이루어진다.
신하(臣下)는 군주(君主)에 대해 항상 유(柔)함으로써 강(剛)함을 구제하고,
가(可)함으로써 부(否)를 구제하여 좌우(左右)에서 돕고 바로잡아 그 덕(德)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는 여러 가지로 나를 닦아서 나를 버리지 말라. 내 능히 너의 말을 행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공씨(孔氏)가 말하였다. “교(交)는 하나가 아닌 뜻이다.”』
▣ 제3장(第三章)
『 부열(傅說)이 말하였다. “왕(王)이여! 사람을 문견(聞見)이 많은 자를 구함은 이 일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옛 가르침을 배워야 얻음이 있을 것이니, 일을 옛것을 본받지 않고서 능히 장구하게 하는 것은 제가 들은 바가 아닙니다.』
『 들음이 많은 자를 구하는 것은 남에게 자뢰함이요, 옛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자신에게 돌이키는 것이다.
옛 교훈이란 옛날 선성왕(先聖王)의 교훈으로 몸을 닦고 천하를 다스리는 방도를 기재한 것이니, 이전(二典)과 삼모(三謨)의 따위가 이것이다.
부열(傅說)이 왕(王)을 일컫고 고(告)하기를 “사람을 문견(聞見)이 많은 자를 구하는 것은 이 일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옛 가르침을 배워서 의리를 깊이 안 뒤에야 얻음이 있을 것이니,
옛 가르침을 본받지 않고 능히 장구하게 치안(治安)하는 것은 제가 들은 바가 아닙니다.”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이치가 없음을 심히 말한 것이다.』
『 ○ 임씨(林氏)가 말하였다. “부열(傅說)이 왕(王)을 일컫고 고(告)한 것은 우왕(禹王)이 순(舜)을 일컫고
‘황제(皇帝)여. 하늘의 아래에 빛난다.’고 말한 것과 문세(文勢)가 똑같다.”』
▣ 제4장(第四章)
『 배움은 뜻을 겸손하게 해야 하니, 힘써서 때로 민첩하게 하면 그 닦여짐이 올 것이니,
독실히 믿어 이것을 생각하면 도가 그 몸에 쌓일 것입니다.』
『 손(遜)은 겸손함이요, 무(務)는 힘을 온전히 쓰는 것이다. 시민(時敏)은 어느 때고 민첩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그 뜻을 겸손히 하여 마치 능하지 못한 바가 있는 듯이 하고, 학문에 민첩하여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는 듯이 하여,
겸허히 남에게 받아들이고 부지런히 자기를 힘쓰면 그 닦여지는 바가 마치 샘물이 처음 나오듯이 하여 원원(源源)히 올 것이다.
자(玆)는 이것이니, 독실히 믿어 이것을 깊이 생각하면 도(道)가 몸에 쌓여서 한두 가지로 계산할 수 없을 것이다.
닦여짐이 오고 옴이 쌓여서 학문이 자기 몸에 얻어짐이 이와 같은 것이다.』
▣ 제5장(第五章)
『 가르침은 배움의 반이니, 생각의 종(終)과 시(始)를 학문에 주장하면 그 덕(德)이 닦여짐을 자신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 효(斅)는 가르침이니, 사람을 가르침은 배움의 반을 차지함을 말한 것이다.
도(道)가 몸에 쌓임은 체(體)가 서는 것이요, 배운 것을 남에게 가르침은 용(用)이 행해지는 것이니,
체(體)•용(用)을 겸하고 내(內)•외(外)를 합한 뒤에 성학(聖學)을 온전히 할 수 있다.
처음에 스스로 배우는 것도 학(學)이요 종말에 남을 가르침도 또한 학(學)이니,
한 생각의 종(終)과 시(始)가 항상 학(學)에 있어 조금도 간단(間斷)함이 없으면 덕(德)의 닦여짐이 그런 줄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러함이 있을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가르침을 받음을 또한 효(斅)라 하니, 배움은 학문하는 도(道)에 있어서 반이니,
〈그 나머지〉 반은 모름지기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라고 한다.
이 말이 지극히 새롭고 공교로우나 다만 옛사람이 학문을 논함에 말이 모두 평정(平正)하고 적실(的實)하니,
이 장(章)의 구수(句數)가 하나둘이 아닌데 중간의 한 마디 말이 이처럼 공교롭고 험할 수는 없다.
이는 아마도 석교(釋敎)의 기권(機權)『[기지와 권모술수]』을 가지고 잘못 성현(聖賢)의 학문을 논한 듯하다.』
▣ 제6장(第六章)
『 선왕(先王)이 이루어 놓은 법(法)을 보시어 길이 잘못이 없게 하소서.』
『 헌(憲)은 법(法)이요, 건(愆)은 잘못이다.
덕(德)은 비록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나아가나 법(法)은 반드시 선왕(先王)을 보아야 하니,
선왕(先王)이 이루어 놓은 법(法)은 자손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임을 말한 것이다.
맹자(孟子)는 “선왕(先王)의 법(法)을 따르고서 잘못되는 자는 있지 않다.” 하였으니, 또한 이러한 뜻이다.』
▣ 제7장(第七章)
『 제가 공경히 받들어서 준예(俊乂)들을 널리 불러 여러 지위에 나열하게 하겠습니다.”』
『 식(式)은 써이다. 고종(高宗)의 덕(德)이 만일 잘못이 없음에 이르면 부열(傅說)이 공경히 그 뜻을 받들어서
준예(俊乂)들을 널리 구하여 여러 직책에 나열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현자(賢者)를 등용(登用)함이 비록 대신(大臣)의 책무(責務)이나 고종(高宗)의 덕(德)이 지극하지 않으면
비록 현자(賢者)를 등용하려고 하더라도 될 수 없는 것이다.』
▣ 제8장(第八章)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부열(傅說)아. 사해(四海)의 안이 모두 짐(朕)의 덕(德)을 우러러봄은 이는 너의 풍교(風敎) 때문이다.』
『 풍(風)은 가르침이다. 천하(天下)가 모두 나의 덕(德)을 우러러봄은 이는 모두 너의 가르침 때문이다.』
▣ 제9장(第九章)
『 팔다리가 있어야 사람이며, 어진 신하(臣下)가 있어야 군주(君主)가 성(聖)스러워진다.』
『 수족(手足)이 갖추어져야 사람을 이루고, 어진 신하(臣下)가 보필하여야 군주(君主)가 성(聖)스러워진다.
고종(高宗)이 처음에는 배와 노, 장마비로 비유하였고, 이어서 누룩과 엿기름, 소금과 매실로 비유하였으며,
이에 이르러서는 또 팔다리가 있어야 사람이 됨으로 비유하였으니, 나아간 바가 더욱 깊어짐에 기대한 바가 더욱 간절하다.』
▣ 제10장(第十章)
『 옛날 선정(先正)인 보형(保衡)『[이윤(伊尹)]』이 우리 선왕(先王)을 진작하여 이르기를
‘내 군주(君主)로 하여금 요순(堯舜) 같은 군주(君主)가 되게 하지 못하면 마음에 부끄러워하여 시장에서 종아리를 맞는 듯이 여겼으며,
한 지아비라도 제 살 곳을 얻지 못하면 이는 나의 잘못이다.’라고 하여, 나의 열조(烈祖)를 도와서 공(功)이 황천(皇天)에 이르렀으니,
너는 부디 나를 밝게 보좌(保佐)하여 아형(阿衡)으로 하여금 상(商)나라에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게 하지 말라.』
『 선정(先正)은 선세(先世) 장관(長官)의 신하(臣下)이다. 보(保)는 편안함이니, 보형(保衡)은 아형(阿衡)과 같다.
작(作)은 흥기(興起)함이다. 시장에서 종아리를 맞는다는 것은 부끄러움이 심한 것이다.
불획(不獲)은 그 살 곳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고종(高宗)이 이윤(伊尹)의 말을 들어 “스스로 책임짐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능히 우리 성탕(成湯)을 보좌하여 공(功)이 황천(皇天)에 이르렀으니,
너는 부디 밝게 나를 보필하여 이윤(伊尹)으로 하여금 우리 상(商)나라에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부열(傅說)은 성탕(成湯)으로 고종(高宗)을 기대했으므로 “선왕(先王)이 이루어 놓은 덕(德)에 합하라.” 하고,
“선왕(先王)의 이루어 놓은 법을 보라.” 하였으며, 고종(高宗)은 이윤(伊尹)으로 부열(傅說)을 기대했으므로
“아형(阿衡)으로 하여금 상(商)나라에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게 하지 말라.” 한 것이다.』
▣ 제11장(第十一章)
『 임금은 현자(賢者)가 아니면 다스리지 못하고, 현자(賢者)는 임금이 아니면 먹지 못하니,
너는 네 군주(君主)를 선왕(先王)에게 이어서 백성들을 길이 편안하게 하라.”
부열(傅說)이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감히 천자(天子)의 아름다운 명(命)을 대양(對揚)하겠습니다.” 하였다.』
『 군주(君主)는 현신(賢臣)이 아니면 함께 다스리지 못하고, 현자(賢者)는 군주(君主)가 아니면 함께 녹(祿)을 먹지 못하니,
군신(君臣)이 서로 만나기가 어려움이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극(克)은 반드시 능하기를 책망하는 말이요,
감(敢)은 자신하여 부족함이 없는 말이다. 대(對)는 자기로써 상대함이요, 양(揚)은 여러 사람에게 드날림이다.
휴명(休命)은 상문(上文)에 고종(高宗)이 명한 것이다. 이에 이르러 고종(高宗)은 성탕(成湯)으로 스스로 기약(期約)하고
부열(傅說)은 이윤(伊尹)으로 스스로 자임(自任)하여, 군신(君臣)이 서로 면려(勉勵)함이 이와 같았으니,
후일(後日)에 고종(高宗)은 상(商)나라의 훌륭한 왕(王)이 되고 부열(傅說)은 상(商)나라의 어진 보좌(保佐)가 되어서
과연 성탕(成湯)과 이윤(伊尹)에게 부끄러움이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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