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 주서(周書)


 

▣ 주서(周書)


『周는 文王國號니 後에 武王이 因以爲有天下之號하시니 書凡三十二篇이라』


『 주(周)는 문왕(文王)의 국명(國名)이니, 뒤에 무왕(武王)이 인하여 천하(天下)를 소유(所有)한 칭호로 삼았다.

주서(周書)는 모두 32편(篇)이다.』

 

 

▣ 태서 상(泰誓上)


『泰는 大『(太)』同이니 國語에 作大하니라

武王伐殷하신대 史錄其誓師之言하니 以其大會孟津일새 編書者因以泰誓名之하니라

上篇은 未渡河作이요 後二篇은 旣渡河作이라 今文無, 古文有하니라』

『○ 按伏生二十八篇에 本無泰誓러니 武帝時에 僞泰誓出하여 與伏生今文書로 合爲二十九篇이라

孔壁書雖出이나 而未傳於世라 故로 漢儒所引은 皆用僞泰誓니

如曰 『白魚入于王舟, 有火復于王屋주:백어입우왕주』流爲烏니 太史公記周本紀에도 亦載其語라

然僞泰誓는 雖知剽竊經傳所引이로되 而古書亦不能盡見이라

故로 後漢馬融이 得疑其僞하여 謂泰誓는 按其文컨대 若淺露하고 吾又見書傳이 多矣나

所引泰誓而不在泰誓者甚多라하더니 至晉孔壁古文書行하여 而僞泰誓始廢하니라』

『○ 吳氏曰 湯武皆以兵受命이나 然湯之辭는 裕하고 武王之辭는 迫하며

湯之數桀也는 恭하고 武之數紂也는 傲하니 學者不能無憾이라 疑其書之晩出하여 或非盡當時之本文也니라』


『 태(泰)는 대(大)『[태(太)]』와 같으니, 《국어(國語)》에는 대(大)로 되어 있다.

무왕(武王)이 은(殷)을 정벌하니, 사관(史官)이 군사들에게 맹세한 말씀을 기록하였는데,

맹진(孟津)에서 크게 모였으므로 책을 엮는 자가 인하여 태서(泰誓)라고 이름하였다.

상편(上篇)은 하수(河水)를 건너기 전에 지은 것이고, 뒤의 두 편(篇)은 이미 하수(河水)를 건넌 뒤에 지은 것이다.

금문(今文)에는 없고 고문(古文)에는 있다.』

『 ○ 살펴보건대, 복생(伏生)의 28편(篇)에는 본래 〈태서(泰誓)〉가 없었는데,

무제(武帝) 때에 위태서(僞泰誓)『[위작태서(僞作泰誓)]』가 나와서

복생(伏生)의 금문서경(今文書經)과 합하여 29편(篇)이 되었다.

공벽(孔壁)의 책이 비록 나왔으나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으므로

한유(漢儒)들이 인용한 것은 모두 위태서(僞泰誓)였으니,

예를 들면 ‘흰 물고기가 왕(王)의 배에 들어왔다’는 것과

‘불이 왕(王)이 머물고 있는 집의 지붕으로 돌아왔다가 흘러가 까마귀가 되었다.’는 것이니,

태사공(太史公)이 〈주본기(周本紀)〉를 기록할 때에도 또한 이 말을 기재하였다.

그러나 위태서(僞泰誓)가 비록 경전(經傳)에 인용한 것을 표절한 것임을 알았으나 옛 책을 또한 다 볼 수 없으므로

후한(後漢)의 마융(馬融)은 위작(僞作)임을 의심하여 이르기를 “〈태서(泰誓)〉는 그 글을 살펴보면

너무 천근(淺近)하고 드러난 듯하며, 내가 또 《서전(書傳)》을 본 것이 많으나 〈태서(泰誓)〉라고 인용하였는데

〈태서(泰誓)〉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 매우 많다.” 하였다.

그러다가 진(晉)나라 때 공벽(孔壁)의 고문서경(古文書經)이 행해짐에 이르러 위태서(僞泰誓)가 비로소 폐지되었다.』

『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탕왕(湯王)•무왕(武王)이 모두 무력(武力)으로 천명(天命)을 받았으나

탕왕(湯王)의 말은 너그럽고 무왕(武王)의 말은 박절하며, 탕왕(湯王)이 걸왕(桀王)의 죄를 열거한 것은 공손하고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의 죄를 열거한 것은 오만하니, 배우는 자가 유감이 없지 못하다.

생각하건대 이 글이 늦게 나와서 혹 다 당시의 본문(本文)은 아닌 듯하다.”』


 

▣ 제1장(第一章)


『 13년 봄에 맹진(孟津)에서 크게 모였다.』
『 13년은 무왕(武王)이 즉위(卽位)한 13년이다.

봄은 맹춘(孟春)인 건인월(建寅月)이다. 맹진(孟津)은 〈우공(禹貢)〉에 보인다.』

『 ○ 살펴보건대, 한(漢)나라 공씨(孔氏)가 말하기를

“우(虞)•예(芮)가 질정(質正)하여 화평한 것이 문왕(文王)이 천명(天命)을 받아 개원(改元)한 해였으니,

무릇 9년만에 문왕(文王)이 붕(崩)하였고, 무왕(武王)이 즉위한 지 2년만에 관병(觀兵)하였고,

3년만에 주왕(紂王)을 정벌하였으니, 합하여 13년이다.” 하였다.

이것은 모두 위태서(僞泰誓)의 글에 혹하여 “9년에 대통(大統)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과

“상(商)나라에 정사(政事)를 관찰했다.”는 말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옛날에 인군이 즉위하면 원년(元年)을 칭하여 재위(在位)의 오래고 짧음을 계산하였으니, 이는 떳떳한 일이다.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으로부터 처음으로 14년을 고쳐 후원년(後元年)이라 하였고,

한(漢)나라 문제(文帝) 또한 17년을 고쳐 후원년(後元年)이라 하였으니,

이후로 춘추(春秋)『[사책(史冊)]』를 말할 적에 인하여 개원(改元)을 중요한 일로 여기게 되었다.』

『 구양씨(歐陽氏)『[구양수(歐陽脩)]』가 말하기를 “과연 이것이 중요한 일인가?

서백(西伯)이 즉위(卽位)하여 이미 원년(元年)을 고쳤으니, 중간에 개원(改元)을 해서는 안 되는데

또 개원(改元)을 하였고, 무왕(武王)이 즉위함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개원(改元)해야 하는데

도리어 개원(改元)하지 않고는 위로 선군(先君)의 원년(元年)을 무릅써서 거상(居喪)한 기간까지 아울러

11년이라 칭하였고, 상(商)나라를 멸하여 천하(天下)를 얻음에 이르러는 그 일이 송사(訟事)를 다스린 것보다

중대(重大)함이 월등한데도 또 개원(改元)하지 않았으니,

이로 말미암아 말한다면 문왕(文王)이 천명(天命)을 받아 개원(改元)했다는 것과

무왕(武王)이 문왕(文王)의 원년(元年)을 무릅썼다는 것은 다 망령된 것이다.” 하였으니,

구양씨(歐陽氏)의 변론(辨論)이 지극히 분명하고 드러난다.

다만 11년이라고 말한 것은 또한 서서(書序)의 11년의 잘못에 현혹된 것이니, 서편(序篇)에 자세히 보인다.』

『 또 살펴보건대, 한(漢)나라 공씨(孔氏)는 “봄은 건자월(建子月)이다.” 하였으니,

이는 삼대(三代)가 정삭(正朔)을 고칠 적에 반드시 월수(月數)를 고쳤을 것이요,

월수(月數)를 고쳤으면 반드시 그 정월(正月)을 사시(四時)의 머리로 삼았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서(序)에 ‘1월(月) 무오(戊午)’라 하였으니, 이미 1월을 건자월(建子月)이라고 여겼으며,

경문(經文)에 또 봄이라고 달았으므로 마침내 건자월(建子月)을 봄이라고 여긴 것이다.

정삭(正朔)만 고치고 월수(月數)를 고치지 않은 것은 〈태갑(太甲)〉에서 변론하기를 자세히 하였으며,

사시(四時)를 개역(改易)함은 더더욱 의리가 없으니, 겨울을 봄이라고 할 수 없고 추운 것을 따뜻하다고 할 수 없음은

진실로 변론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자명(自明)한 것이다.』

『 혹자는 말하기를 “정씨(鄭氏)가 시(詩)를 해석함에

‘유모지춘(維暮之春)’은 또한 주(周)나라의 계춘(季春)을 말한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하(夏)나라에 있어서는 맹춘(孟春)이 된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한유(漢儒)들이 잘못 이어온 오류일 뿐이다.

또 〈신공(臣工)〉시(詩)에 “늦은 봄이 되었으니, 또한 무엇을 챙겨야 하나. 새로 개간한 밭을 어찌할까.

아! 훌륭한 보리 장차 밝게 주심을 받겠다.” 하였으니,

이는 모춘(暮春)이 되면 마땅히 새로 개간한 밭을 다스려야 할 것이니,

지금 어찌할까? 그러나 모맥(牟麥)이 장차 성숙하면 상제(上帝)가 밝게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모맥(牟麥)이 장차 성숙하였다면 건진월(建辰月)이니, 하정(夏正)의 계춘(季春)임이 분명하다.

정씨(鄭氏)는 시(詩)에서도 그 뜻을 얻지 못했으니, 고찰함이 진실로 자세하지 못하다.

그렇지 않다면 상(商)나라는 계동(季冬)을 봄이라 하고 주(周)나라는 중동(仲冬)을 봄이라 하여,

사시(四時)가 뒤집어지고 거슬려 모두 그 바름을 얻지 못할 것이니,

어찌 삼대(三代)의 성인(聖人)들이 하늘을 받드는 정사(政事)이겠는가.』


 

▣ 제2장(第二章)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우리 우방(友邦)의 총군(¾4君)과 나의 어사(御事)와 서사(庶士)들아. 분명히 맹세하는 말을 들어라.』

『 왕왈(王曰)은 사신(史臣)이 추후(追後)에 칭한 것이다.

우방(友邦)은 친하게 여김이요, 총군(總君)은 높임이다. 월(越)은 및이다.

어사(御事)는 일을 다스리는 자이고, 서사(庶士)는 여러 군사(軍士)들이니,

상(商)나라를 정벌하는 뜻을 고(告)하고 또 듣기를 자세히 하고자 한 것이다.』


 

▣ 제3장(第三章)


『 천지(天地)는 만물(萬物)의 부모(父母)이고, 사람은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니,

진실로 총명(聰明)한 자가 원후(元后)가 되고 원후(元后)가 백성의 부모가 된다.』

『 단(亶)은 성실하여 망령됨이 없음을 이르니, 총명(聰明)이 천성(天性)에서 나옴을 말한 것이다. 위대하다.

건원(乾元)이여! 만물(萬物)이 자뢰(資賴)하여 시작하고, 지극하다.

곤원(坤元)이여! 만물(萬物)이 의뢰(依賴)하여 태어나니, 천지(天地)는 만물(萬物)의 부모(父母)인 것이다.

만물(萬物)이 생겨날 적에 오직 사람만이 그 빼어남을 얻어 영특해서 사단(四端)을 구비하고 만선(萬善)을 갖추어

지각(知覺)이 유독 물건과 다르며 성인(聖人)은 또 가장 빼어남을 얻어 가장 영특하다.

천성(天性)이 총명(聰明)하여 면강(勉强)함을 기다리지 아니하여

그 앎이 먼저 알고 그 깨달음이 먼저 깨달아 서물(庶物) 중에 으뜸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천하(天下)에 대군(大君)이 되는 것이니,

천하(天下)의 피폐(疲弊)하고 잔질(殘疾)한 자가 그 삶을 얻고 환(鰥)•과(寡)•고(孤)•독(獨)이 그 길러줌을 얻어서

온 만민(萬民)의 무리가 한 사람이라도 살 곳을 얻지 못함이 없다.

그렇다면 원후(元后)는 또 백성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낼 적에 사람에게 후하게 하고,

천지(天地)가 사람을 낼 적에 성인(聖人)에게 후하게 하였으니,

성인(聖人)에게 후하게 한 까닭은 또한 백성들에게 군장(君長)이 되어서

천지(天地)가 이 백성을 부모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미루게 하고자 할 뿐이다.

하늘이 백성을 위함이 이와 같으니,

원후(元后)의 책임을 맡은 자가 백성의 부모가 된 의의(意義)를 알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왕(商王) 주(紂)가 백성들에게 군주(君主)가 된 도리를 잃었으므로 무왕(武王)이 이것을 말씀하였으니,

이는 비록 한때 군사들에게 맹세한 말씀이나 실로 만세(萬世)의 인군(人君)이 마땅히 체념(體念)해야 할 것이다.』


 

▣ 제4장(第四章)


『 지금 상왕(商王) 수(受)가 상천(上天)을 공경하지 않고 하민(下民)들에게 재앙을 내리고 있다.』

『 수(受)는 주왕(紂王)의 이름이다.

주왕(紂王)이 하늘에 불경(不敬)하고 백성들을 학대하여 백성의 부모가 된 것을 알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하늘에 불경(不敬)하고 백성을 학대한 실제는 곧 하문(下文)에 말한 것이다.』

 

 
▣ 제5장(第五章)


『 술에 빠지고 여색(女色)에 혼란해서 감히 포학함을 행하여, 사람을 죄주되 친족(親族)에까지 미치고

사람을 벼슬시키되 대대로 하며, 궁실(宮室)과 대사(臺事)와 피지(陂池)와 사치한 의복으로

너희 만성(萬姓)들을 잔해(殘害)하며, 충량(忠良)을 불태워 죽이고, 아이밴 부인의 배를 갈라 보니,

황천(皇天)이 진노(震怒)하여 우리 문고(文考)에게 명(命)하시어 엄숙히 하늘의 위엄을 받들어 행하게 하셨는데,

대훈(大勳)을 이루지 못하셨다.』

『 침면(沈쭚)은 술에 빠짐이요, 모색(冒色)은 여색(女色)에 혼란함이다. 족(族)은 친족(親族)이니,

한 사람이 죄(罪)가 있으면 형벌(刑罰)이 친족(親族)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세(世)는 자제(子弟)이니 벼슬을 시키고 부림에 현재(賢才)를 가리지 않고

오직 부형(父兄)으로 인하여 자제(子弟)들을 총임(寵任)하는 것이다.

흙이 높은 것을 대(臺)라 하고, 나무가 있는 것을 사(ª7)라 한다.

못을 막은 것을 피(陂)라 하고, 물이 고여 있는 것을 지(池)라 한다. 치(侈)는 사치함이다.

분자(焚炙)은 포락(µ&烙)의 형벌 따위이며, 고척(줛剔)은 배를 가르는 것이다.

황보밀(皇甫謐)이 이르기를 “주왕(紂王)이 비간(比干)의 아내를 해부하여 그 태(胎)를 보았다.” 하였으니,

무엇을 근거했는지 알 수 없다. 주왕(紂王)의 학해(虐害)하고 무도(無道)함이 이와 같았으므로

황천(皇天)이 진노(震怒)하여 우리 문왕(文王)을 명(命)하시어 공경히 하늘의 위엄을 받들어

사악한 자를 제거하게 하셨는데, 대공(大功)을 이루기 전에 문왕(文王)이 붕(崩)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대훈(大勳)은 문왕(文王)의 때에는 일찍이 뜻이 있지 않았고,

주왕(紂王)의 죄악이 관통하여 가득 차서 무왕(武王)이 정벌한 것이다.

그러나 문왕(文王)을 서술하는 말에는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말 밖에서 얻어야 할 것이다.』

 


▣ 제6장(第六章)


『 이러므로 나 소자(小子) 발(發)이 너희 우방(友邦)의 총군(¾4君)들을 데리고 상(商)나라의 정사(政事)를 살펴보니,

수(受)『[주왕(紂王)]』가 개전(改悛)할 마음이 없어서 걸터앉아 거하여 상제(上帝)와 신기(神祗)를 섬기지 않고,

선조(先祖)의 종묘(宗廟)를 버려 제사(祭祀)하지 아니하여 희생(犧牲)과 자성(칞盛)을 흉악한 도적에게 이미 모두 빼앗겼는데도

말하기를 ‘내 백성을 소유하고 천명(天命)을 소유했다’ 하여, 업신여김을 징계하지 않는구나.』

『 사(肆)는 고(故)『[이러므로]』이다.

관정(觀政)은 이윤(伊尹)이 말한 “만부(萬夫)의 우두머리에 정사(政事)를 관찰한다.”는 것과 같다.

8백 제후(諸侯)가 상(商)나라를 배반하고 주(周)나라로 돌아왔다면 상(商)나라의 정사(政事)를 알 만하다.

선유(先儒)가 관정(觀政)을 관병(觀兵)이라 하였으니, 잘못이다. 전(悛)은 고침이다. 이(夷)는 걸터앉음이다.

무왕(武王)이 말씀하기를 “이러므로 나 소자가 너희 제후(諸侯)들의 향배(向背)로써 정사(政事)의 득실(得失)을

상(商)나라에 관찰하였더니, 이제 제후(諸侯)들의 배반함이 이미 이와 같은데도 주왕(紂王)이 뉘우쳐 깨닫고

개과(改過)하려는 마음이 없고, 걸터앉아 거하여 상제(上帝)와 백신(百神)과 종묘(宗廟)의 제사(祭祀)를 폐하여,

희생(犧牲)과 자성(칞盛)으로서 제사(祭祀)에 갖추어야 하는 것들을 흉악한 도적들에게 모두 빼앗기니,

이는 곧 기자(箕子)가 말한 ‘신기(神祗)의 희(犧)•전(?)•생(牲)을 훔쳐갔다.’는 것이다.

수(受)가 신(神)을 불경(不敬)함이 이와 같은데도 ‘내가 백성과 사직(社稷)을 소유하고

내가 천명(天命)을 소유했다.’고 말하여, 그 업신여기고 오만한 뜻을 징계(懲戒)함이 없다.”고 한 것이다.』

 


▣ 제7장(第七章)


『 하늘이 하민(下民)들을 도우시어 군주(君主)를 만들고 스승을 만드심은 능히 상제(上帝)를 도와 사방(四方)을 사랑하고

편안하게 하신 것이니, 죄(罪)가 있는 자를 토벌하고 죄(罪)가 없는 자를 용서함에 내 어찌 감히 그 마음을 잘못함이 있겠는가.』

『 우(佑)는 도움이요, 총(寵)은 사랑함이다.

하늘이 하민(下民)들을 도우시어 군주(君主)를 만들어 장(長)이 되게 하고 스승을 만들어 가르치게 하셨으니,

군주(君主)와 스승은 능히 상제(上帝)를 좌우(左右)『[보필]』하여 천하(天下)를 사랑하고 편안하게 하여야 할 것이니,

죄가 있는 자를 마땅히 토벌하고 죄가 없는 자를 마땅히 사면함에 내 어찌 감히 그 마음을 잘못 씀이 있겠는가.

이는 한결같이 하늘을 따를 뿐임을 말씀한 것이다.』

 

 

▣ 제8장(第八章)


『 힘이 같을 경우에는 덕(德)을 헤아리고, 덕(德)이 같을 경우에는 의(義)를 헤아리니,

수(受)는 신하(臣下) 억만(億萬)이 있으나 마음이 억만(億萬)으로 다르거니와 나는 신하(臣下) 3천 명이 있는데 한 마음이다.』

『 탁(度)은 헤아림이다. 덕(德)은 얻음이니, 도(道)를 행하여 몸에 얻음이 있는 것이다.

의(義)는 마땅함이니, 일을 함에 때의 마땅함에 통달하는 것이다.

힘이 같을 경우에는 덕(德)을 헤아리고 덕(德)이 같을 경우에는 의(義)를 헤아리라는 것은

짐작컨대 옛날 병지(兵志)『[병서(兵書)]』의 말인데

무왕(武王)이 군대를 동원하여 상(商)나라를 정벌함에 반드시 이길 수 있음을 밝힌 것인 듯하다.』

『 임씨(林氏)가 말하였다. “《좌씨전(左氏傳)》 양공(襄公) 31년에 노(魯)나라 목숙(穆叔)이 말하기를

‘나이가 똑같을 경우에는 어진이를 가리고, 의(義)가 똑같을 경우에는 점괘(占卦)로 가린다.’ 하였고,

소공(昭公) 26년에 왕자(王子) 조(朝)가 말하기를 ‘나이가 똑같을 경우에는 덕(德)으로 선발하고,

덕(德)이 똑같을 경우에는 점괘(占卦)로 선발한다.’ 하였으니, 이 또한 옛사람의 말을 든 것이니, 문세(文勢)가 바로 이와 같다.”』

『 백만(百萬)을 억(億)이라 한다. 주왕(紂王)이 비록 억만(億萬) 명의 신하(臣下)가 있으나 마음이 억만으로 다르니,

무리가 배반하고 친척이 떠나서 돕는 이가 적음이 지극함에 힘도 같지 않으니, 하물며 덕(德)과 의(義)에 있어서랴.』

 

 

▣ 제9장(第九章)


『 상(商)나라의 죄가 관통(貫通)하여 가득하기에 하늘이 명(命)하여 주벌(誅伐)하게 하시니,

내가 하늘의 뜻을 순종하지 않으면 그 죄(罪)가 주왕(紂王)과 같을 것이다.』

『 관(貫)은 관통함이요 영(盈)은 가득함이니, “주왕(紂王)이 악(惡)을 쌓은 것이 이와 같다.

그리하여 하늘이 명(命)하여 주벌(誅伐)하게 하시니, 이제 주왕(紂王)을 주벌(誅伐)하지 않으면 이는 악(惡)을 조장(助長)함이니,

그 죄(罪)가 어찌 주왕(紂王)과 같지 않겠는가.” 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형률(刑律)에 고의로 죄인(罪人)을 놓아준 자도 그 죄인(罪人)과 똑같이 처벌하는 것과 같다.』

 


▣ 제10장(第十章)
 

『 나 소자(小子)는 밤낮으로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문고(文考)에게 명령을 받아 상제(上帝)에게 유제사(類祭祀)를 지내고

총토(¾4土)에 의제사(宜祭祀)를 지내고서 너희 무리를 데리고 하늘의 벌을 이루려 하노라.』

『 지(底)는 이룸이다. 총토(¾4土)는 대사(大社)이니, 사(社)에 제사(祭祀)함을 의(宜)라 한다.

상문(上文)에는 주왕(紂王)을 놓아주고 주벌(誅伐)하지 않으면 죄(罪)가 주왕(紂王)과 같음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나 소자(小子)가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밤낮으로 공경하고 두려워해서 감히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여

문왕(文王)의 사당(祠堂)에서 명(命)을 받아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고유(告由)하고서 너희 무리들을 데리고

하늘의 벌을 상(商)나라에 이루려 한다.”고 말한 것이다.

〈왕제(王制)〉에 “천자(天子)가 장차 출동(出動)할 때는 상제(上帝)에게 유제사(類祭祀)를 지내고

사(社)에 의제사(宜祭祀)를 지내고 아버지 사당에 나간다.” 하였으니,

문고(文考)에게 명(命)을 받음은 곧 아버지 사당에 나간 것이다.

〈왕제(王制)〉는 신(神)의 존비(尊卑)로 차례를 삼았는데 여기서는 먼저 문고(文考)에게 명령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주왕(紂王)을 정벌하는 일을 하늘이 본래 문왕(文王)에게 명(命)했으니,

무왕(武王)은 단지 문왕(文王)의 명(命)을 받아서 그 성공을 마쳤을 뿐이기 때문이다.』

 


▣ 제11장(第十一章)


『 하늘이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백성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하늘이 반드시 따르시니,

너희들은 부디 나 한 사람을 보필하여 사해(四海)를 길이 맑게 하라. 이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 하늘이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백성들이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따르니,

이제 백성들이 주왕(紂王)을 멸망하고자 함이 이와 같다면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다.

너희들은 부디 나 한 사람을 보필하여 사악하고 더러움을 제거해서 사해(四海)를 길이 맑게 하라.

이는 바로 하늘과 인간이 합하여 응하는 때이니, 이 때를 잃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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