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주서-입정(立政)
▣ 입정(立政)
『吳氏曰 此書는 戒成王以任用賢才之道니 而其旨意는 則又上戒成王專擇百官有司之長이니 如所謂常伯, 常任, 準人等云者라
蓋古者에 外之諸侯 一卿은 已命於君하고 內之卿大夫는 則亦自擇其屬하니 如周公以蔡仲爲卿士하고 伯¢(謹簡乃僚之類라
其長旣賢이면 則其所擧用이 無不賢者矣니라
葛氏曰 誥體也니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이 글은 성왕(成王)에게 현재(賢才)를 임용하는 도를 경계한 것이니,
그 뜻은 또 위로 성왕(成王)에게 백관(百官)과 유사(有司)의 장(長)을 오로지 선택할 것을 경계한 것이니,
이른바 상백(常伯)•상임(常任)•준인(準人) 등과 같은 것이다.
옛날에 밖의 제후(諸侯)는 한 경(卿)은 군주에게서 임명받고 안『[천자국(天子國)]』의 경대부(卿大夫)는 또한 스스로 그 관속(官屬)을 가려 뽑았으니,
주공(周公)이 채중(蔡仲)을 경사(卿士)로 삼고 백경(伯¢()이 관료를 삼가 간발한 것과 같은 따위이다.
그 장(長)이 이미 어질면 들어 쓰는 바가 현자가 아님이 없을 것이다.”』
『 갈씨(葛氏)는 “고체(誥體)이다.” 하였으니,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 제1장(第一章)
『 주공(周公)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배수계수(拜手稽首)『[손에 절하고 머리를 조아림]』하여 사천자(嗣天子)인 왕께 아뢰옵니다.”
〈여러 관원들이〉 함께 왕에게 경계하기를 “왕의 좌우에 있는 신하는 상백(常伯)과 상임(常任)과 준인(準人)과 철의(綴衣)와 호분(虎賁)입니다.” 하였다.
주공(周公)이 말씀하였다. “아! 이 관직이 아름다우나 근심할 줄을 아는 자가 적습니다.』
『 이 편(篇)은 주공(周公)이 지은 것인데 기록한 것은 주(周)나라 사관(史官)이므로 ‘약왈(若曰)’이라고 칭한 것이다.
주공(周公)이 군신(群臣)들을 거느리고 왕에게 경계를 올려 돕기를 “배수계수(拜手稽首)하여 사천자(嗣天子)인 왕께 고합니다.” 하니,
군신(群臣)들이 모두 경계를 올려 왕의 좌우에 있는 신하는 백성을 기르는 장(長)으로 상백(常伯)이 있고, 일을 맡은 공경(公卿)으로 상임(常任)이 있고,
법을 지키는 유사(有司)로 준인(準人)이 있으며, 삼사(三事)의 밖에 의복과 기물을 관장하는 자는 철의(綴衣)이고,
활 쏘고 말 모는 것을 관장하는 자는 호분(虎賁)이니, 모두 임용함에 마땅히 삼가야 할 자들이라고 한 것이다.
주공(周公)이 이에 탄식하고 말씀하기를 “이 관직이 아름다우나 근심할 줄을 아는 자가 적다.” 하였으니,
5등(等)의 관직이 아름다우나 그 인물을 얻음을 근심할 줄을 아는 자가 적다고 한 것이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철의(綴衣)와 호분(虎賁)은 근신(近臣)의 장(長)이다.”』
『 갈씨(葛氏)가 말하였다. “철의(綴衣)는 《주례(周禮)》의 사복(司服) 따위이고, 호분(虎賁)은 《주례(周禮)》의 호분씨(虎賁氏)이다.”』
▣ 제2장(第二章)
『옛사람들은 이 도(道)를 잘 행하였으니, 하(夏)나라가 왕실이 크게 강하자 준걸스러운 자들을 불러 상제(上帝)를 높이니,
구덕(九德)의 행실을 실천하여 알고 참으로 믿고서 마침내 감히 그 임금에게 고하고 가르치기를 ‘임금님께 배수계수(拜手稽首)합니다.
당신의 사(事)를 거하게 하고 당신의 목(牧)을 거하게 하고 당신의 준(準)을 거하게 하여야 임금이 될 수 있습니다.
얼굴만 보고 도모하여 덕(德)에 크게 순하다고 여겨서 마침내 사람을 거하게 하면 이 삼택(三宅)에 의민(義民)『[현자(賢者)]』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 옛사람이 이 도를 행한 자가 있으니, 유하(有夏)의 군주가 왕실이 크게 강할 때를 당하여 현자(賢者)를 구해서 하늘을 섬기는 실제로 삼았다.
적지(迪知)는 실천하여 알고 구차히 아는 것이 아니며, 침순(´0恂)은 진실로 믿고 가벼이 믿는 것이 아니다.
하(夏)나라의 신하들이 구덕(九德)의 행실을 실천하여 알고 참으로 믿고서 감히 그 군주에게 고하고 가르쳤음을 말한 것이다.
임금님께 배수계수(拜手稽首)하였다고 말한 것은 공경을 지극히 하여 군주가 된 명칭을 높인 것이며,
네 사(事)를 거하게 하고 네 목(牧)을 거하게 하고 네 준(準)을 거하게 하여야 임금님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고함을 지극히 하여 군주가 된 실제를 서술한 것이다.
자(玆)는 이것이니, 이와 같이 한 뒤에야 군주가 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니, 바로 고요(皐陶)와 우(禹)와 더불어 말한 구덕(九德)의 일이다.
모면(謀面)은 사람의 얼굴과 모양만 보고 도모하는 것이다.
구덕(九德)의 행실을 실천하여 알고 참으로 믿지 않고 한갓 얼굴과 모양만 보고 도모하여 덕에 크게 순하다고 여겨서
마침내 거하게 하여 임명하면 이와 같이 할 경우 삼택(三宅)의 사람이 어찌 다시 현자가 있겠는가.』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사(事)는 위에서 말한 상임(常任)이고, 목(牧)은 위에서 말한 상백(常伯)이고,
준(準)은 위에서 말한 준인(準人)이다. 한 편의 가운데에 논한 택(宅)과 준(俊)이 어긋나서 똑같지 않으나
그러나 대요(大要)는 이 세 가지에 벗어나지 않고 그 나머지는 모두 작은 신하로 백집사(百執事)이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옛날에 무릇 선한 말로 사람을 가르침을 다 교(敎)라 하였으니, 반드시 위에서 아래를 가르친 뒤에야 교(敎)라고 하지는 않았다.”』
▣ 제3장(第三章)
『 걸왕(桀王)의 악덕(惡德)은 옛날에 임용한 것을 따르지 않고 포악한 덕을 가진 자를 임용하였기 때문에 뒤가 없습니다.』
『 하걸(夏桀)의 악덕은 왕석(往昔)에 선왕(先王)이 삼택(三宅)을 임용한 것을 따르지 않고, 임명한 자가 바로 포악한 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걸왕(桀王)이 상망(喪亡)하여 뒤가 없는 것이다.』
▣ 제4장(第四章)
『 또한 및 성탕(成湯)이 올라가 천자가 되시어 상제(上帝)의 밝은 명을 크게 다스린 것은
등용한 삼유택(三有宅)이 능히 택(宅)『[지위]』에 나아가며 이른바 삼유준(三有俊)이 능히 준(俊)『[덕]』에 나아가서 엄숙히 생각하고
크게 본받아 삼택(三宅)과 삼준(三俊)을 능히 등용하였으므로 상(商)나라 도읍에서는 그 읍(邑)에 화합하였으며,
사방에서는 크게 본받아 덕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 역월(亦越)은 앞을 잇는 말이다. 경(耿)은 빛남이다.
탕왕(湯王)이 70리로부터 올라가 천자가 되어서 전례(典禮)와 명토(命討)가 천하에 밝게 드러났으니, 이른바 ‘올라가 상제의 빛나는 명을 크게 다스렸다’는 것이다.
삼택(三宅)은 상백(常伯)•상임(常任)•준인(準人)의 지위에 거한 자를 이르고, 삼준(三俊)은 상백(常伯)•상임(常任)•준인(準人)의 재주가 있는 자를 이른다.
극즉(克卽)은 탕왕(湯王)이 등용한 삼택(三宅)이 실제로 이 지위에 나아가 그 직책을 폐하지 않고,
삼준(三俊)이라고 칭한 자들이 실제로 이 덕에 나아가 그 이름에 과(過)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삼준(三俊)을 해설하는 자들은 “후일에 다음으로 삼택(三宅)에 보임될 자”라고 하였는데, 살펴보건대 택(宅)은 지위로 말하였고 준(俊)은 덕(德)으로 말하였으니,
짐작컨대 저양(儲養)하여 등용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혹 해설하는 자가 말한 바와 같을 듯하다.
유(惟)는 생각함이요, 식(式)은 본받음이다. 탕왕(湯王)이 삼택(三宅)과 삼준(三俊)에 대하여 엄숙히 생각하고 크게 본받았다.
그러므로 그 택(宅)•준(俊)의 등용을 다하여 지위에 거한 자는 그 직책을 바칠 수 있고,
준걸스러운 자는 그 재주를 드러낼 수 있어서 어질고 지혜로운 자가 분용(奮庸)하여 지치(至治)에 오른 것이다.
상(商)나라 도읍에 있어서는 그 도읍에 화합하였으니, 가까운 곳은 살핌이 상세하여 정(情)이 똑고르기가 쉽지 않은데
기전(畿甸)이 화합하였다면 순수함이 지극한 것이며, 사방에 있어서는 크게 본받아 덕을 나타내었으니,
먼 곳은 미치기가 어려워서 덕이 두루 미치기가 쉽지 않은데 법이 같음을 보면 큼이 지극한 것이다.
지극히 순수하고 지극히 크면 치도(治道)가 남음이 없는 것이다.
읍(邑)이라고 말하고 사방(四方)이라고 말한 것은 각각 원근(遠近)을 지극히 하여 말한 것이다.』
▣ 제5장(第五章)
『 아! 수(受)『[주왕(紂王)]』의 덕이 어두울 적에, 형벌을 숭상하는 포덕(暴德)의 사람들과 나라를 함께 다스리며,
여러 가지 추악한 것을 익힌 일덕(逸德)『[방일(放逸)한 덕]』의 사람들과 정사를 함께 하니,
상제(上帝)가 공경히 벌을 내리시어 마침내 우리로 하여금 하(夏)『[중화(中華)]』를 소유하여 상(商)나라가 받았던 명을 써서 문득 만성(萬姓)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 수형(羞刑)은 형륙(刑戮)을 진임(進任)『[숭상하여 씀]』하는 자이고, 서습(庶習)은 여러 추악함을 갖춘 자이다.
주왕(紂王)의 덕이 강폭(强暴)하였고, 또 더불어 나라를 함께 다스린 자가 오직 형벌을 숭상하는 포덕(暴德)의 제후(諸侯)였으며,
더불어 정사를 함께 한 자가 오직 여러 가지 추악함을 익힌 일덕(逸德)의 신하였다.
상제(上帝)가 공경히 그 벌을 내려서 마침내 우리 주(周)나라로 하여금 이 제하(諸夏)를 소유하여 상(商)나라가 받았던 천명을 써서
문득 만성(萬姓)을 다스리게 한 것이니, 전(甸)이라는 것은 그 땅을 정목(井牧)『[구획]』하고 그 백성을 십오(什伍)로 편성하는 것이다.』
▣ 제6장(第六章)
『 또한 및 문왕(文王)•무왕(武王)이 능히 삼유택(三有宅)의 마음을 알고 삼유준(三有俊)의 마음을 분명히 보시어,
공경히 상제를 섬기며 백성의 장(長)과 백(伯)을 세우셨습니다.』
『 삼택(三宅)과 삼준(三俊)을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 능히 알고 분명히 보았는데,
모두 심(心)이라고 말한 것은 이른바 ‘실천하여 알고 진실로 믿어서 얼굴만 보고 도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삼택(三宅)은 이미 지위를 주었기 때문에 능히 안다고 말하였고, 삼준(三俊)은 아직 일을 맡기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히 보았다고 말한 것이다.
이로써 공경히 상제를 섬기면 천직(天職)이 닦여져서 위로 받들 바가 있고, 이로써 백성의 장(長)과 백(伯)을 세우면 체통이 서서 아래로 맡길 바가 있으니,
인군이 하늘과 인간의 둘 사이에 위치하여 굽어보고 우러러봄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夏)나라가 상제를 높임과 상(商)나라가 크게 다스림과 주(周)나라가 공경히 섬김이 그 의(義)가 똑같다.
장(長)은 〈왕제(王制)〉에 이른바 “5국(國)을 속(屬)으로 삼으니, 속(屬)에 장(長)이 있다.”는 것과 같으며,
백(伯)은 〈왕제(王制)〉에 이른바 “2백 10국(國)을 주(州)로 삼으니 주(州)에 백(伯)이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 제7장(第七章)
『 정사를 세움에 임인(任人)과 준부(準夫)와 목(牧)으로 세 가지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 정사를 세우는 삼택(三宅)의 관원을 말한 것이다.
임인(任人)은 상임(常任)이고, 준부(準夫)는 준인(準人)이고, 목(牧)은 상백(常伯)이니, 직책을 말했기 때문에 일이라고 한 것이다.』
▣ 제8장(第八章)
『 호분(虎賁)과 추의(綴衣)와 취마(趣馬)와 소윤(小尹)과 좌우(左右)의 휴복(?僕)과 백사(百司)와 서부(庶府)와』
『 이는 시어(侍御)하는 관원이다.
취마(趣馬)는 말을 관장하는 관직이고, 소윤(小尹)은 소관(小官)의 장(長)이고, 휴복(?僕)은 물건을 휴대하고 복어(僕御)하는 사람이고,
백사(百司)는 사구(司裘)•사복(司服)과 같은 것이고, 서부(庶府)는 내부(內府)•대부(大府)와 같은 등속이다.』
▣ 제9장(第九章)
『 대도(大都)의 백(伯)과 소도(小都)의 백(伯)과 예인(藝人)과 표신(表臣)인 백사(百司)와 태사(太史)와 윤백(尹伯)이 모두 떳떳한 길한 선비였습니다.』
『 이는 도읍(都邑)의 관원이다. 여씨(呂氏)가 말하기를 “대도(大都)와 소백(小伯)은 대도(大都)의 백(伯)과 소도(小都)의 백(伯)을 이르니,
대도(大都)에는 도(都)를 말하고 백(伯)을 말하지 않고, 소백(小伯)에는 백(伯)을 말하고 도(都)를 말하지 않은 것은 서로 나타낸 것이다.” 하였다.
예인(藝人)은 복축(卜祝)과 무장(巫匠)이니, 기예(技藝)를 잡아 임금을 섬기는 자이다.
표신(表臣)과 백사(百司)는 표(表)는 밖이니, 표(表)는 이(裏)와 대칭되는 말이다.
상문(上文)의 백사(百司)는 내백사(內百司)이니, 내부(內府)•내사복(內司服)과 같은 등속으로 이른바 이신(裏臣)이라는 것이며,
여기의 백사(百司)는 외백사(外百司)이니, 외부(外府)•외사복(外司服)과 같은 등속으로 이른바 표신(表臣)이라는 것이다. 태사(太史)는 사관(史官)이다.
윤백(尹伯)은 유사(有司)의 장(長)이니, 포인(µ#人)•내옹(內饔)•선부(膳夫)와 같은 것은 여러 윤(尹)의 백(伯)이며,
종(鐘)을 맡은 종사(鐘師)와 경(磬)을 맡은 경사(磬師)와 악(樂)을 맡은 태사(太師)는 곧 여러 윤(尹)의 백(伯)이다.
무릇 이른바 관리라는 것은 내외의 백사(百司) 가운데 들어있지 않음이 없는데, 특별히 그 이름을 나타냄에 이른 것은 모두 뜻이 있다.
호분(虎賁)•추의(綴衣)•취마(趣馬)•소윤(小尹)•좌우(左右)의 휴복(?僕)은 임금을 호위하고 친근히 하기 때문에 나타낸 것이며,
서부(庶府)는 잡되고 천하여 사람들이 소홀히 하기 쉽기 때문에 나타낸 것이며,
예인(藝人)은 혹 지나친 공교로움과 기사(機詐)를 일으켜 임금의 마음을 방탕하게 할까 염려하여 나타낸 것이며,
태사(太史)는 휘(諱)와 악(惡)을 받들어 기록해서 천하 후세의 시비를 공정(公正)히 하기 때문에 나타낸 것이며,
윤백(尹伯)은 대소(大小)가 서로 유지하여 체통이 관계되기 때문에 나타낸 것이며,
대도(大都)의 백(伯)과 소도(小都)의 백(伯)으로 말하면 교(郊)와 기(畿)를 나누어 다스리니 백사(百司)의 수에 참여되지 않는다.
이미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여러 직책을 조목조목 진열하여 일일이 세고, 총결(總結)하기를 “모두 떳떳한 길사(吉士)이다.” 하였으니,
서(庶)는 여럿이니,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조정에 있는 자가 떳떳한 덕을 간직한 길사(吉士)가 아님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 제10장(第十章)
『사도(司徒)와 사마(司馬)와 사공(司空)과 아(亞)와 여(旅)와』
『 이는 제후의 관원이다. 사도(司徒)는 나라의 가르침을 주관하고, 사마(司馬)는 나라의 정사를 주관하고,
사공(司空)은 나라의 토목을 주관하며, 나머지는 〈목서(牧誓)〉에 보이니, 제후의 관원이 인재를 얻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제후의 관원에 유독 이를 든 것은 그 명칭과 지위가 천자국과 공통되기 때문인 듯하다.』
▣ 제11장(第十一章)
『 이(夷)와 미(微)와 노(盧)의 증(烝)과 삼박(三¨])이 판(阪)의 윤(尹)이었습니다.』
『 이는 왕(王)의 관원으로서 제후와 사방 오랑캐들을 감시하는 자이다.
미(微)와 노(盧)는 경전(經傳)에 보이고, 박(¨])은 《사기(史記)》에 보인다.
삼박(三¨])은 몽(蒙)은 북박(北¨])이고, 곡숙(穀熟)은 남박(南¨])이고, 언사(偃師)는 서박(西¨])이다.
증(烝)은 혹자는 무리라 하고, 혹자는 오랑캐의 이름이라고 한다. 반(阪)은 미상이다.
옛날에 위험한 지역에 봉강(封疆)『[국경]』을 지키는 사람을 혹 봉해주지 않고 왕의 관원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해서 오복(五服)의 사이에 참여하여 섞이게 하였으니,
이것을 윤(尹)이라 이른다. 〈지지(地志)〉에 왕관(王官)의 다스린 바를 기재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이는 다만 그 중한 것을 들었을 뿐이다.
제후의 삼경(三卿)으로부터 이하로는 오직 관명(官名)만 나열하고 다른 말이 없는 것은 위의 “모두 떳떳한 길사(吉士)”라는 글을 이어서 안으로써 밖을 나타낸 것이다.
위로 왕조(王朝)로부터 안으로 도읍과 밖으로 제후와 멀리 이적(夷狄)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재를 얻어서 관사(官使)를 삼지 않음이 없으니, 어쩌면 그리도 훌륭한가.』
▣ 제12장(第十二章)
『 문왕(文王)이 삼택(三宅)의 마음에 능하시어 이 상사(常事)와 사목인(司牧人)을 세우시되 능히 준걸스런 자와 덕이 있는 자로 하셨습니다.』
『 문왕(文王)이 삼택(三宅)의 마음을 능하셨다. 능(能)은 능한 것이니, 앎이 지극하고 믿음이 돈독함을 이른다.
그러므로 능히 이 상임(常任)과 상백(常伯)을 세우되 능히 준걸스럽고 덕이 있는 자를 등용한 것이다.
준인(準人)을 말하지 않은 것은 상장(上章)에 문왕(文王)이 인재를 등용한 것을 말하여 능히 삼유택(三有宅)의 마음을 알았다는 말을 거듭하였으므로 생략한 것이다.』
▣ 제13장(第十三章)
『 문왕(文王)은 서언(庶言)•서옥(庶獄)•서신(庶愼)을 겸하신 바가 없으셨고, 오직 유사(有司)인 목부(牧夫)에게만 명령을 따르는 자와 어기는 자를 훈계하셨습니다.』
『 서언(庶言)은 호령이고, 서옥(庶獄)은 옥송(獄訟)이고, 서신(庶愼)은 나라의 금계(禁戒)와 저비(儲備)『[대비]』
이다. 유사(有司)는 맡음이 있는 자이고, 목부(牧夫)는 목인(牧人)이다.
문왕(文王)이 감히 아래로 여러 직책을 침해하지 아니하여 오직 유사인 목부에게만 명령을 따르는 자와 명령을 어기는 자를 훈칙(訓勅)했을 뿐이다.
한(漢)나라 공씨(孔氏)는 말하기를 “인재를 구함에 수고롭고 현자를 임용함에 편안하다.” 하였다.』
▣ 제14장(第十四章)
『 서옥(庶獄)과 서신(庶愼)을 문왕(文王)은 감히 이에 대하여 알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 위에 ‘망유겸(罔攸兼)’이라고 말한 것은 오히려 알되 다만 그 일을 겸하지 않았을 뿐이요,
여기에 ‘망감지(罔敢知)’라고 한 것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그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것이니, 신임함이 더욱 전일(專一)한 것이다.
위에는 서언(庶言)을 말했으나 여기에는 언급하지 않은 것은 호령은 군주에게서 나와 알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알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고, 감히 이에 대하여 알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한갓 알지 않았다고 말하면 이는 노장(老莊)의 무위(無爲)이고,
오직 감히 알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 뒤에야 문왕(文王)이 경외(敬畏)하여 생각이 지위를 벗어나지 않은 뜻을 볼 수 있으니,
호리(毫釐)의 구분을 배우는 자가 마땅히 정밀히 살펴야 한다.”』
▣ 제15장(第十五章)
『 또한 무왕(武王)은 문왕(文王)의 편안히 한 공을 따르시어 감히 의덕(義德)이 있는 자들을 버리지 않으셨으며,
문왕(文王)의 계책을 따르시어 용덕(容德)이 있는 자들을 따라 함께 이 크고 큰 기업을 받으셨습니다.』
『 솔(率)은 따름이다. 공(功)은 천하를 편안히 하는 공이다.
의덕(義德)은 의(義)로운 덕(德)이 있는 사람이요, 용덕(容德)은 포용하는 덕이 있는 사람이다.
의덕(義德)은 난을 다스려 바름으로 돌아오는 재주가 있고, 용덕(容德)은 휴휴(休休)『[마음이 곱고 고움]』하여 선(善)을 좋아하는 도량이 있으니,
모두 성덕(成德)한 사람이다.
주공(周公)이 상문(上文)을 이어 말씀하기를 “무왕(武王)이 문왕(文王)의 공을 따르시어 감히 등용한 바의 의덕(義德)이 있는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고,
문왕(文王)의 계책을 따르시어 감히 용덕(容德)이 있는 선비를 어기지 않았다.” 하였으니,
짐작컨대 괵숙(¹~叔)•굉요(쥺夭)•산의생(散宜生)•태전(泰顚)•남궁괄(南宮括)과 같은 무리로서
왕업(王業)을 보성(輔成)한 자들을 문왕(文王)이 앞에서 등용하였고 무왕(武王)이 뒤에서 임명하였다.
그러므로 주공(周公)이 〈군석(君奭)〉에서 “다섯 신하가 능히 문왕(文王)의 덕을 밝혀 은(殷)나라의 명을 받았고,
무왕(武王)은 이 네 사람이 인도하여 녹을 두었다.”고 말하였으니,
바로 여기에서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인재 등용을 서술하고 함께 “이 크고 큰 기업을 받았다.”고 아울러 말한 것과 똑같다.』
▣ 제16장(第十六章)
『 아! 유자(孺子)께서 왕(王)이 되셨으니,
지금으로부터 이어서 우리 왕(王)께서는 정사를 세우실 적에 입사(立事)와 준인(準人)과 목부(牧夫)의 임용을
우리 왕(王)께서 그 순히 여기는 바를 분명히 아시어 크게 다스려서 우리 왕께서 받으신 백성을 돕게 하시며,
우리 서옥(庶獄)과 서신(庶愼)을 화(和)하게 하시고, 이에 소인(小人)으로 끼게 하지 마소서.』
『 아(我)는 왕(王)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약(若)은 순함이다.
주공(周公)이 이미 문왕(文王)•무왕(武王)의 기업의 큼을 서술하고, 탄식하여 말씀하기를 “이제 유자(孺子)가 왕(王)이 되었으니,
이를 이어 이후로는 왕께서는 정사를 세울 적에 입사(立事)•준인(準人)•목부(牧夫)의 임용함에 마땅히 순(順)히 여기는 바를 분명히 알라.” 하였으니,
순(順)은 그 마음에 편안히 여기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편안히 여기는 바를 살피면 사람이 어찌 숨기겠는가?” 하였으니, 순히 여기는 바를 살피는 것은 사람을 아는 요점이다.
이미 그 순히 여기는 바를 분명히 알아서 과연 바르고 딴 마음이 없은 뒤에야 마음을 미루어 크게 위임해서 사체(四體)를 펴 다스려서 받은 바의 백성을
상조(相助)하고 좌우(佐佑)하게 하며,
서옥(庶獄)과 서신(庶愼)의 일을 화조(和調)하고 균제(均齊)할 것이며,
또 소인(小人)을 끼게 하지 말아서 그 다스림을 끝마치도록 경계하였으니, 이는 사람을 임용하는 요점이다.
백성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백성은 바로 하늘에게서 받았고 조종(祖宗)에게서 받은 것이니, 성왕(成王)이 스스로 소유한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 제17장(第十七章)
『 한 대화와 한 말씀으로부터 우리 왕께서는 마침내 성덕(成德)한 아름다운 선비들을 생각하시어 우리가 받은 백성을 다스리게 하소서.』
『 말(末)은 마침이요, 유(惟)는 생각함이다.
한 대화와 한 말씀의 사이로부터 우리 왕께서는 마침내 성덕한 아름다운 선비들을 생각하시어 우리가 받은 백성을 다스려서 감히 잠시라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 제18장(第十八章)
『 아! 나 단(旦)은 이미 남에게서 받은 아름다운 말씀을 모두 유자(孺子)인 왕(王)께 아뢰었사오니, 지금부터 이후로 문자(文子),
문손(文孫)은 서옥(庶獄)과 서신(庶愼)을 그르치지 마시고, 오직 정(正)『[담당관]』을 다스리소서.』
『 앞에서 말한 우왕(禹王)•탕왕(湯王)•문왕(文王)•무왕(武王)이 사람을 임용한 일은 지극히 아름다운 말 아님이 없으니,
내가 남에게서 들은 것을 이미 유자(孺子)인 왕에게 모두 아뢰었다.
문자(文子)와 문손(文孫)은 성왕(成王)은 무왕(武王)의 문자(文子)이고, 문왕(文王)의 문손(文孫)이다.
성왕(成王) 때에 법도가 밝고 예악(禮樂)이 드러나서 이룸을 지키고 문(文)을 숭상하므로 문(文)이라 한 것이다.
오(誤)는 그르침이니, 겸하는 바가 있고 알려는 바가 있어서 유사(有司)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로써 그르치는 것이다.
정(正)은 〈강고(康誥)〉에 이른바 정인(正人)과 관정(官正)•주정(酒正)의 정(正)과 같으니, 직책을 담당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자기로써 서옥(庶獄)과 서신(庶愼)을 그르치지 말고 오직 직책을 담당한 사람을 이에 다스려야 하니,
하문(下文)에 서옥(庶獄)을 그르치지 말고 오직 유사(有司)인 목부(牧夫)에게 맡기라고 말씀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 제19장(第十九章)
『 자고(自古)『[옛날]』와 상(商)나라 사람과 또한 우리 주(周)나라 문왕(文王)께서 정사를 세울 적에 입사(立事)와 목부(牧夫)와 준인(準人)을 능히 거하게 하시며,
능히 말미암아 생각하시니, 이에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 자고(自古)와 상(商)나라 사람과 우리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정사를 세울 적에 삼택(三宅)을 임용하는 도(道)는 능히 거하게 했다는 것은
능히 현자를 얻어 직책에 거하게 한 것이고, 능히 말미암아 생각했다는 것은 능히 주역(紬繹)하여 써서 그 재주를 다하게 한 것이다.
이미 그 인재를 자리에 거하게 하여 직책을 편안히 수행하게 하고,
또 인재를 생각하여 그 씀을 다하였으니, 이 때문에 능히 이들로 하여금 다스리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제20장(第二十章)
『 나라에서는 정사를 세울 적에 섬인(첊人)『[약삭빠른 사람]』을 쓰지 말아야 하니,
이들은 덕(德)에 순하지 못하므로 광현(光顯)하여 세상에 있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정사를 세울 적에 섬인(첊人)을 쓰지 마시고 오직 길사(吉士)『[선인(善人)]』를 등용하시어 힘써 우리 국가를 돕게 하소서.』
『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림에 정사를 세우면서 섬리(첊利)한 소인(小人)을 등용한 자가 있지 않으니,
소인(小人)을 섬(첊)이라고 이른 것은 첨첨(沾沾)히 편첩(便捷)『[약삭빠름]』한 모양을 형용한 것이다.
섬리(첊利)한 소인(小人)은 덕에 순하지 못하니, 능히 광현(光顯)하여 세상에 있지 못할 것이다.
왕은 마땅히 지금부터 이후로는 정사를 세울 적에 섬리(첊利)한 소인(小人)을 등용하지 말고
오직 떳떳함이 있는 길사(吉士)를 등용하여 힘써 우리 국가를 돕게 하여야 할 것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양(陽)의 유(類)이므로 등용하면 그 나라를 밝고 창성함에 올려 놓고,
소인(小人)은 음(陰)의 유(類)이므로 등용하면 그 나라를 어둡고 어둠에 내려 놓으니,
음양(陰陽)의 오르내림이 또한 각기 그 유(類)를 따르는 것이다.”』
▣ 제21장(第二十一章)
『 지금 문자(文子), 문손(文孫)이신 유자(孺子)께서 왕이 되셨으니, 서옥(庶獄)을 그르치지 마시고 오직 유사(有司)인 목부(牧夫)에게 맡기소서.』
『 처음에는 “우리 서옥(庶獄)과 서신(庶愼)을 화(和)하게 하고 이에 소인(小人)으로 끼게 하지 말라.” 하였고,
뒤이어 “서옥(庶獄)과 서신(庶愼)을 그르치지 말고 오직 정(正)을 다스리라.” 하였고,
이에 이르러는 홀로 “서옥(庶獄)을 그르치지 말고 오직 유사(有司)인 목부(牧夫)에게 맡기라.” 하였으니,
형벌은 천하의 중요한 일이므로 그 중한 것을 들어 홀로 거론해서 성왕(成王)으로 하여금 더욱 형옥(刑獄)이 두려울 만함을 알아,
반드시 유사(有司)인 목부(牧夫)의 임무를 오로지 하게 하고 자기로써 그르치지 않게 한 것이다.』
▣ 제22장(第二十二章)
『 능히 너의 융복(戎服)『[전투복]』과 병기를 다스려서
우왕(禹王)의 옛 자취에 올라 사방으로 천하에 행해서 해표(海表)『[해외(海外)]』에 이르기까지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게 하시어,
문왕(文王)의 밝은 빛을 보시고 무왕(武王)의 큰 공렬(功烈)을 드날리소서.』
『 힐(詰)은 다스림이니, 너의 융복(戎服)과 병기를 다스리는 것이다. 척(陟)은 오름이다.
우적(禹迹)은 우복(禹服)의 옛 자취이다.
방(方)은 사방이고, 해표(海表)는 사예(四裔)이니, 덕과 위엄이 미치는 바에 복종하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근(覲)은 봄이다. 경광(耿光)은 덕(德)이고, 대렬(大烈)은 공업(功業)이니,
문왕(文王)에게는 덕을 말하고 무왕(武王)에게는 업을 말한 것은 각각 그 성대(盛大)한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병(兵)은 형벌 중에 큰 것이므로 이미 서옥(庶獄)을 말하고 병(兵)을 다스리라는 경계로써 이은 것이다.” 하였다.』
『 혹자는 말하기를 “주공(周公)의 가르침은 그 병폐를 상고해 보면 후세에 큰 것을 좋아하고 공을 기뻐하는 병통을 열어 놓지 않겠는가?
”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주공(周公)의 병(兵)을 다스리라는 가르침이 서옥(庶獄)을 그르치지 말라는 말 뒤에 이어졌으니,
안옥(¬;獄)『[감옥]』의 사이에도 오히려 한 형벌이라도 잘못될까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육사(六師)『[육군(六軍)]』의 수많은 무리의 목숨을 어찌 감히 신중히 하지 않고 함부로 동원하겠는가.
서옥(庶獄)을 그르치지 말라는 마음을 미루어서 융복(戎服)과 병기를 다스리라는 경계를 받든다면 반드시 그만 둘 수 있는데도
그만두지 아니하여 백성의 목숨을 가볍게 쓰는 자가 아닐 것이다.”』
▣ 제23장(第二十三章)
『 아! 지금으로부터 후왕(後王)께서는 정사를 세울 적에 능히 떳떳한 사람을 등용하소서.”』
『 주가(周家)의 후왕(後王)까지 아울러 경계한 것이다. 상인(常人)은 떳떳한 덕을 간직한 사람이다.
고요(皐陶)가 말하기를 “몸에 드러나서 시종 떳떳함이 있는 것이 길사(吉士)이다.” 하였으니, 상인(常人)과 길사(吉士)는 실제는 같으나 이름이 다른 것이다.』
▣ 제24장(第二十四章)
『 주공(周公)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태사(太史)야! 사구(司寇)인 소공(蘇公)이 그 행할 옥사(獄事)를 공경하여 우리 왕국(王國)을 장구히 하였으니,
이에 법받아 삼감을 두면 조열(條列)로써 알맞은 형벌을 쓸 것이다.”』
『 이는 주공(周公)이 인하여 형벌을 삼감을 말해서 소공(蘇公)이 옥사(獄事)를 공경한 일을 태사(太史)에게 고하여
아울러 기록해서 후세에 옥(獄)을 맡은 자의 법식으로 삼게 한 것이다.
소(蘇)는 나라 이름이니, 《좌전(左傳)》에 “소분생(蘇忿生)이 온읍(溫邑)으로 사구(司寇)가 되었다.” 하였다.
주공(周公)이 태사(太史)에게 고하기를 “소분생(蘇忿生)을 사구(司寇)로 삼아 행할 바의 옥사를 공경해서
기본(基本)을 배식(培植)하여 우리 왕국을 장구하게 하였으니,
여기에서 법(法)을 취하여 삼가게 하면 경중(輕重)의 조열(條列)을 가지고 알맞은 형벌을 써서 과차(過差)의 병통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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