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주서-필명(畢命)


 

▣ 필명(畢命)

 

『康王이 以成周之衆으로 命畢公保釐하니 此其冊命也라 今文無, 古文有하니라』

『○ 唐孔氏曰 漢律曆志云 康王畢命豊刑曰 惟十有二年六月庚午?에 王命作冊書豊刑이라하니 此僞作者 傳聞舊語

하여 得其年月하고 不得以下之辭하여 妄言作豊刑耳라 亦不知豊刑之言이 何所道也로라』

 

『 강왕(康王)이 성주(成周)의 무리를 필공(畢公)에게 명하여 보리(保釐)『[보호하고 다스림]』하게 하니,

이것이 그 책명(冊命)『[책명(策命)]』이다. 금문(今文)에는 없고 고문(古文)에는 있다.』

『 ○ 당(唐)나라 공씨(孔氏)가 말하였다. “《한서(漢書)》〈율력지(律曆志)〉에 ‘강왕(康王)의 필명(畢命) 풍형

(豊刑)에 12년 6월 경오비(庚午?)『[초사흘]』에 왕이 명하여 책서(冊書)인 풍형(豊刑)을 짓게 했다.’ 하였는데,

이는 위작(僞作)한 자가 옛말을 전해 들어 그 연월(年月)만 알고 그 이하의 말은 알지 못하고서 망령되이 풍형

(豊刑)을 지었다고 말한 것이다. 또한 풍형(豊刑)이란 말이 무엇을 말한 것인지 알 수 없다.”』


 
 

▣ 제1장(第一章)

 

『 12년 6월 경오비(庚午?)에서 3일이 지난 임신일(壬申日)에 왕(王)이 아침에 종주(宗周)로부터 걸어 풍(豊)땅에 이르러서

성주(成周)의 무리를 필공(畢公)에게 명하여 동교(東郊)를 보리(保釐)하게 하였다.』

『 강왕(康王)이 즉위(卽位)한 12년이다.

필공(畢公)이 일찍이 문왕(文王)을 도왔으므로 강왕(康王)이 풍(豊)땅에 있는 문왕(文王)의 사당에 가서 명한 것이다.

성주(成周)는 하도(下都)『[낙읍(洛邑)]』이다.

보(保)는 편안함이요 이(釐)는 다스림이니, 보리(保釐)는 곧 하문(下文)에 선(善)과 악(惡)을 표창하고 구별함을 말하니,

일대(一代)의 다스리는 체통(體統)이고 한 편(篇)의 종요(宗要)이다.』

 


 

▣ 제2장(第二章)

 

『 왕(王)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아! 부사(父師)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 큰 덕(德)을 천하에 펴시어 능히 은(殷)나라의 명(命)을 받으셨다.』

『 필공(畢公)이 주공(周公)을 대신하여 태사(太師)가 되었다.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 큰 덕(德)을 천하에 펴시어 능히 은(殷)나라의 명을 받았으니, 얻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 제3장(第三章)

 

『 주공(周公)이 선왕(先王)을 도와 집『[국가]』을 편안히 안정시키시고,

은(殷)나라의 완악한 백성들을 삼가 낙읍(洛邑)으로 옮겨서 왕실(王室)에 가깝게 하시니,

그 가르침에 교화되어 이미 3기(紀)가 지나 대(代)가 변하고 풍속이 바뀌어 사방이 근심이 없으니, 나 한 사람이 편안하노라.』

『 12년을 기(紀)라 하고, 부자간(父子間)을 세(世)라 한다.

주공(周公)이 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을 도와서 국가를 안정시키고 완악한 백성들을 삼가 낙읍(洛邑)으로 옮겨서 왕실에 가깝게 하니,

그 가르침에 교화되어 이미 3기(紀)가 지났다.

그리하여 대(代)가 이미 변하고 풍속이 비로소 바뀌어서 이제 사방이 헤아릴『[걱정할]』 만한 일이 없으니

나 한 사람이 편안하다 하였으니, 교화하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 제4장(第四章)

 

『 도(道)는 오르내림이 있으며 정사는 풍속을 따라 변혁하니, 선(善)을 선(善)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권면됨이 없을 것이다.』

『 오름이 있고 내림이 있다는 것은 성함이 있고 쇠함이 있다는 말과 같다.

주공(周公)은 세도(世道)가 막 내려가는 때를 당하였고, 군진(君陳)과 필공(畢公)의 세대에 이르러서는 장차 대유(大猷)『[대도(大道)]』에 오르게 되었다.

정사를 하는 자는 풍속을 따라 변혁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주공(周公)은 은(殷)나라 백성들을 삼가 그 처음을 삼갔고, 군진(君陳)은 포용함이 있어 그 중간(中間)을 화(和)하게 하였으니, 모두 풍속을 따라 정사한 것이다.

당금(當今)의 정사는 선(善)과 악(惡)을 표창하고 구별해야 할 때이니, 만약 선을 선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권면되고 사모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

 


 

▣ 제5장(第五章)

 

『 공(公)『[필공(畢公)]』이 성대한 덕(德)으로 능히 작은 행실을 부지런히 힘써 4대(代)를 보필하고 밝혀서

얼굴빛을 바르게 하고 아랫사람들을 거느리자, 태사(太師)의 말을 공경하지 않음이 없어 아름다운 공적이 선왕(先王)의 세대보다 많으니,

나 소자(小子)는 의상(衣裳)을 드리우고 손을 마주잡고서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노라.”』

『 무(懋)는 성대한 뜻이니, “내 너의 덕을 성대히 여긴다.

『〔予懋乃德〕』”는 무(懋)이다. 소물(小物)은 세행(細行)『[작은 행실]』이란 말과 같다.

필공(畢公)이 이미 성대한 덕이 있고 또 작은 행실을 부지런히 힘써 4대(代)를 보도(輔導)해서 풍채가 응준(凝峻)하여 조저(朝著)에 의표(儀表)가 되어서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태사(太師)의 가르침에 공경히 복종하지 않음이 없어 아름다운 공적(功績)이 선왕(先王)의 때보다 많다.

지금 나 소자(小子)는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의상(衣裳)을 드리우고 손을 마주잡고서 그 이루어지기만을 우러를 뿐이다.

강왕(康王)이 장차 필공(畢公)에게 보리(保釐)를 맡기려 하였으므로 덕업(德業)의 성대함을 서술하여 그에게 아름다움을 돌린 것이다.』

 


 

▣ 제6장(第六章)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부사(父師)야. 지금 나는 공(公)에게 주공(周公)의 일을 공경히 명하노니, 갈지어다.』
『 지금 나는 공(公)에게 주공(周公)이 완민(頑民)을 교화하고 가르쳤던 일을 공경히 명하노니, 공(公)은 갈지어다.

이는 주공(周公)이 행한 바가 아니면 감히 공(公)을 굽혀서 가게 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 제7장(第七章)

 

『 선(善)과 악(惡)을 표창하고 구별하여 거주하는 마을을 정표(旌表)하며, 선(善)을 표창하고 악(惡)을 병들게 하여 풍성(風聲)『[명성]』을 세워주며,

가르치는 법을 따르지 않거든 정강(井疆)을 달리하여 두려워하고 사모하게 하며,

거듭 교기(郊圻)를 구획하며 봉강(封疆)의 지킴을 삼가고 튼튼히 하여 사해(四海)를 편안하게 하라.』

『 숙(淑)은 선(善)이요, 특(慝)은 악(惡)이요, 탄(¥>)은 병들게 함이다.

선을 표창하고 악을 구별함은 성주(成周)가 오늘날 풍속을 따라 변혁하는 정사이다.

선인(善人)이 거주하는 마을을 표이(表異)함은 후세에 문려(門閭)를 정표(旌表)하는 유(類)와 같은 것이다.

선(善)을 하는 자를 드러내고 불선(不善)을 하는 자를 병들게 하여,

선을 하는 자의 풍성(風聲)을 세워주어 당시에 드러나고 후세에 전해지게 하니 이른바 ‘선(善)을 표창한다.’는 것이며,

가르치는 법을 따르지 않는 자는 그 정리(井里)와 강계(疆界)를 다르게 하여 선(善)한 자와 뒤섞여 살지 못하게 한다.

《예기(禮記)》에 “변하지 않거든 교(郊)로 옮기고 변하지 않거든 수(遂)로 옮긴다.”는 것이 바로 이 법이다.

악(惡)을 하는 화(禍)를 두려워하고 선(善)을 하는 복(福)을 사모하게 하는 것이니 이른바 ‘악(惡)을 구별한다.’는 것이다.

기(圻)는 기(畿)와 같으니, 교기(郊圻)의 제도를 옛날에 진실로 구획하였으니 거듭한다고 말한 것은 거듭 밝히는 것이다.

봉역(封域)의 험함을 옛날에 진실로 지킴이 있었으니, 삼간다고 말한 것은 경계하고 엄하게 하는 것이다.

강역(疆域)과 장새(障塞)는 세월이 오래되면 무너지기 쉽고 세상이 태평하면 하찮게 여기기 쉬운 바,

때때로 보수하고 여러 번 살핌이 바로 왕기(王畿)를 존엄히 하는 것이니, 왕기(王畿)가 편안하면 사해(四海)가 편안할 것이다.』

 


 

▣ 제8장(第八章)

 

『 정사는 항상함이 있음을 귀하게 여기고, 말은 체(體)와 요(要)를 숭상한다.

괴이함을 좋아하지 않아야 하니, 상(商)나라 풍속이 미미(靡靡)『[사치하고 화려함]』하여 말 잘하는 것을 어질게 여겼는데

남은 풍속이 아직도 끊어지지 않았으니, 공(公)은 이것을 생각할지어다.』

『 잠(暫)과 대칭되는 것을 항(恒)이라 하고, 상(常)과 대칭되는 것을 이(異)라 한다.

지취(志趣)가 완전히 갖추어졌을 뿐인 것을 체(體)라 하고, 여러 체(體)가 모인 것을 요(要)라 한다.

정사(政事)는 순일(純一)하고 사령(辭令)은 간략하고 진실하여야 하니,

총명(聰明)을 일으키고『[사사롭게 쓰고]』 부말(浮末)에 달려서 괴이함을 좋아하는 일을 깊이 경계한 것이다.

무릇 다스리는 체통(體統)을 논한 것이 모두 그러하나 상(商)나라의 풍속에 있어서는 더욱 병에 대한 약이 된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장석지(張釋之)가 한(漢)나라 문제(文帝)에게 간하기를 ‘진(秦)나라는 도필(刀筆)의 아전에게 맡겨서 빨리하고 까다롭게 살핌을 다투어 서로 숭상하니,

그 병폐가 한갓 문구(文具)『[문식(文飾)]』만 있고 측은(惻隱)해 하는 실제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과실을 듣지 못하여 능이(陵夷)『[침체]』해서 이세(二世)에 이르러 천하(天下)가 토붕(土崩)하였습니다.

지금 색부(嗇夫)가 구변(口辯)이 있다 하여 크게 승진시키신다면 신(臣)은 천하가 바람을 따라 쏠려서 구변만을 다투고 실제는 없을까 두렵습니다.’ 하였으니,

무릇 장석지(張釋之)가 논한 것은 강왕(康王)이 필공(畢公)에게 고한 것이다.”』

 


 

▣ 제9장(第九章)

 

『 내가 들으니, ‘세록(世祿)의 집안들은 능히 예(禮)를 따르는 이가 적어, 방탕함으로 덕(德)있는 이를 능멸하며 실로 천도(天道)를 어지럽혀,

교화(敎化)를 무너뜨려 사치하고 화려함이 만세(萬世)에 한 가지로 흐른다.’ 하였다.』

『 옛사람이 논하기를 “세록(世祿)의 집안은 일락(逸樂)하고 환양(턣養)『[잘 길러줌]』하여 능히 예(禮)를 따르는 자가 적다.

이미 예(禮)를 따르지 않으면 마음이 제재하는 바가 없어서 교만함과 방탕함을 부려 덕(德)있는 이를 능멸하고 천도(天道)를 패란(悖亂)하여,

풍화(風化)를 무너뜨려 사치하고 화려함이 만세(萬世)에 동일하게 흐른다.” 하였다.

강왕(康王)이 장차 은(殷)나라 선비들이 세력을 믿고 사치하여 의(義)를 멸한 악(惡)을 말하려 하였으므로,

먼저 고인(古人)이 세족(世族)을 논한 것을 취하여 말씀한 것이다.』

 

 

 

▣ 제10장(第十章)

 

『 이 은(殷)나라의 여러 선비들은 은총을 빙자(憑藉)한 지가 오래여서 세력을 믿고 사치하여 의(義)를 멸하며

의복을 남에게 아름다움을 자랑하여 교음(驕淫)하고 긍과(矜쥏)해서 장차 악(惡)으로 말미암아 마치게 되었었는데,

지금은 비록 방심(放心)을 거두었으나 막기가 어렵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은(殷)나라 선비들이 광총(光寵)을 빙자해서 사욕(私慾)을 조장하여 냄은 유래(由來)가 있었다.

사욕(私慾)과 공의(公義)는 서로 사라지고 자란다.

그러므로 세력을 믿어 사치하면 반드시 의(義)를 멸함에 이르니, 의(義)가 멸하면 다시는 수오(羞惡)하는 마음이 없어

한갓 복식(服飾)의 아름다움을 남에게 과시하고 몸의 아름답지 못함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흘러가고 돌아오지 아니하여 교음(驕淫)하고 긍과(矜쥏)하여 온갖 사악함이 아울러 나타나서 장차 악(惡)으로 마치게 되었는데,

낙읍(洛邑)으로 옮김에 써 가르침에 교화되어 이미 그 방심(放心)을 거두었으나 사악함을 막기가 오히려 심히 어려운 것이다.』

 


 

▣ 제11장(第十一章)

 

『 물자(物資)가 풍부하거든 가르치는 것이 연수(年數)를 길게 하는 것이니, 덕(德)과 의(義) 이것이 바로 큰 가르침이다.

옛날을 따라 가르치지 않으면 무엇으로 가르치겠는가.”』

『 은(殷)나라 선비를 가르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자(資)는 자재(資財)이다.

자재(資財)가 풍부하고서 가르치면 마음이 외물(外物)에 옮겨가지 아니하여 성명(性命)의 바름을 온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르침은 겉으로 교조(敎條)를 세우는 것이 아니요 오직 덕(德)과 의(義)로써 할 뿐이니, 덕(德)은 마음의 이치이고 의(義)는 이치에 마땅한 것이다.

덕(德)과 의(義)는 사람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니, 덕(德)과 의(義)로써 가르치는 것이 바로 천하의 큰 가르침이다.

그러나 가르침은 자기의 사사로운 생각으로 말할 것이 아니요, 마땅히 옛날을 상고하여 말해야 한다.

선(善)은 증거가 없으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으니, 옛날을 따라 가르치지 않으면 무엇으로 가르치겠는가.』

 


 

▣ 제12장(第十二章)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부사(父師)야. 나라의 안위가 이 은(殷)나라 선비들에게 달려 있으니,

강(剛)하지도 않고 유(柔)하지도 않아야 그 덕(德)이 진실로 닦여질 것이다.』

『 이때에 사방이 근심할 만한 일이 없었고, 작은 은(殷)나라 백성들도 가르침에 교화된 지가 3기(紀)인 뒤였으니,

또한 어찌 우려할 것이 있겠는가마는 강왕(康王)이 권권(拳拳)히 나라의 안위(安危)가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하여 작은 이룸에 구차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으니,

문왕(文王)?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의 은택이 깊고 긺이 당연하다.

강(剛)하지 않음은 보호하는 것이요 유(柔)하지 않음은 다스리는 것이니, 강(剛)하지도 않고 유(柔)하지도 않으면 그 덕(德)이 진실로 닦여질 것이다.』

 


 

▣ 제13장(第十三章)

 

『 주공(周公)이 능히 그 처음을 삼가고 군진(君陳)이 능히 그 중간을 화(和)하게 하였으니,

공(公)이 능히 그 끝을 이루어서 세 후(后)가 마음을 합하여 함께 도(道)에 이르러,

도(道)가 흡족하고 정사가 다스려져서 은택이 생민(生民)들에게 윤택하여 좌임(左칍)한 사방의 오랑캐들이 모두 의뢰하지 않음이 없으니,

나 소자(小子)는 길이 많은 복을 응(應)할 것이다.』

『 정강(井疆)을 달리함은 다스림을 이룬 것이 아니니, 상(商)나라 백성들을 모두 선(善)하게 한 뒤에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여기에 이루었다고 말한 것은 미리 기약한 것이다.

세 후(后)가 다스린 것은 낙읍(洛邑)이었으나 뻗쳐 사이(四夷)에 미쳤으니, 왕기(王畿)는 사방(四方)의 근본이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도(道)는 다스림을 지극히 하는 도(道)이다.

시작하고 중간에 이어가고 끝마침이 비록 때에는 선후(先後)가 있으나 모두 행사(行事)에 나아가 용심(用心)을 살펴보아 이룸이 있는 것이

마치 한 때에 나온 듯하고 한 사람에게서 이루어진 듯하니, 마음을 합했다고 이른 것이 이와 같다.』

 

 

 

▣ 제14장(第十四章)

 

『 공(公)이 이 성주(成周)에 무궁한 기업(基業)을 세우면 또한 무궁한 명예가 있을 것이니, 자손(子孫)이 이루어놓은 법을 순히 하여 다스려질 것이다.』

『 건(建)은 세움이요, 훈(訓)은 순함이요, 식(式)은 법이다. 성주(成周)는 하도(下都)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필공(畢公)은 4대(代)의 원로(元老)이니, 어찌 후세에 이름을 세우는 데 구구한 자이겠는가마는 공덕(功德)이 융성함을 어찌 하찮게 여기겠는가.

이는 강왕(康王)이 바란 것이다. 서로 무궁한 사업으로 기약하였으니, 존경함이 지극하다.”』

 


 

▣ 제15장(第十五章)

 

『 아! 능하지 못하다고 말하지 말아 그 마음을 다하며, 백성이 적다고 말하지 말아 그 일을 삼가하여,

선왕(先王)이 이룬 공렬(功烈)을 공경하고 순히 하여 옛 정사에 아름답게 하라.”』

『 소씨(蘇氏)가 말하기를 “능하지 못하다는 것『〔弗克〕』은 그 어려움을 두려워하여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이요,

백성이 적다는 것『〔民寡〕』은 그 일을 쉽게 여겨 할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였다.

전정(前政)은 주공(周公)과 군진(君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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