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주서-경명(冏命)
▣ 경명(冏(命)
『穆王이 命伯¢(하여 爲太僕正하니 此其誥命也라 今文無, 古文有하니라』
『○ 呂氏曰 陪僕첄御之臣을 後世에 視爲賤品하여 而不之擇者는 曾不知人主朝夕與居하여 氣體移養이 常必由之하니
潛消默奪於冥冥之中하고 而明爭顯諫於昭昭之際는 抑末矣라 自周公作立政으로 而嘆綴衣虎賁知恤者鮮하니
則君德之所繫를 前此知之者 亦罕矣러니 周公이 表而出之하사 其選始重이라
穆王之用太僕正에 特作命書하여 至與大司徒略等하니 其知本哉인저』
『 목왕(穆王)이 백경(伯¢()을 명하여 태복정(太僕正)을 삼았으니, 이것이 그 고명(誥命)이다. 금문(今文)에는 없고 고문(古文)에는 있다.』
『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배복(陪僕)과 설어(첄御)의 신하를 후세에서는 천한 품류(品類)로 보아 선별하지 않으니,
이는 일찍이 인주(人主)가 조석으로 함께 거처하여 기체(氣體)를 기름이 항상 반드시 이에서 말미암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에 은근히 사라지고 묵묵히 빼앗기고는 밝고 밝은 즈음에 밝게 간하고 드러나게 간하는 것은 말(末)이다.
주공(周公)이 〈입정(立政)〉을 지음으로부터 추의(綴衣)『[추의]』와 호분(虎賁)이 근심할 줄 아는 자가 적음을 한탄하였으니,
군주의 덕(德)이 관계되는 것을 이보다 앞서 안 자가 또한 드물었는데, 주공(周公)이 표출(表出)하여 그 선임(選任)을 비로소 중하게 한 것이다.
목왕(穆王)은 태복정(太僕正)을 등용할 적에 특별히 명하는 글을 지어 대사도(大司徒)와 대략 비등하게 함에 이르렀으니, 그 근본을 알았다고 할 것이다.』
▣ 제1장(第一章)
『 왕(王)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백경(伯冏아! 나는 덕(德)에 능하지 못하면서 선인(先人)을 이어 큰 임금의 자리에 거하니,
두려워하고 위태롭게 여겨서 한밤중에 일어나 허물을 면할 것을 생각하노라.』
『 백경(伯冏은 신하의 이름이다. 목왕(穆王)이 말하기를 “내 덕(德)에 능하지 못하면서 전인(前人)을 이어 대군(大君)의 지위에 거하니,
공구(恐懼)하고 위려(危쪵)하여 한밤중에 일어나 허물을 면할 것을 생각한다.” 한 것이다.』
▣ 제2장(第二章)
『 옛날 문왕(文王)?무왕(武王)에 있어 총명하고 공경하며 성(聖)스러우셨는데 작고 큰 신하들이 모두 충량(忠良)을 생각하며,
시어(侍御)하는 복종(僕從)들이 올바른 사람이 아닌 이가 없었다.
그리하여 아침저녁에 군주를 받들어 순종하고 보필하였으므로,
출입(出入)하고 기거(起居)함에 공경하지 않음이 없으며 호령을 냄에 불선(不善)함이 없으니,
하민(下民)들이 공경하여 순종하며 만방(萬邦)이 모두 아름다웠다.』
『 시(侍)는 좌우에서 심부름하고 모시는 자이고, 어(御)는 수레를 모는 관원이다.
복종(僕從)은 태복(太僕)과 군복(群僕)으로 무릇 왕을 따르는 자이다.
승(承)은 받들어 순종함을 이르고, 필(弼)은 바로잡음을 이른다.
비록 문왕(文王)?무왕(武王)의 군주가 총명하고 공경하고 성스러웠으며 작고 큰 신하가 모두 충량(忠良)을 생각하였으니,
진실로 시어(侍御)와 복종(僕從)이 받들어 순종하고 보필할 필요가 없었으나,
좌우에서 분주한 자들이 모두 올바른 사람을 얻는다면 받들어 순종하고 바로잡음이 또한 어찌 작은 도움이겠는가.』
▣ 제3장(第三章)
『 나 한 사람이 어질지 못하여 실로 좌우(左右), 전후(前後)의 지위에 있는 선비들이 미치지 못함을 도우며
허물을 바로잡고 잘못을 바로잡아 나의 나쁜 마음을 바루어 선조(先祖)의 공렬(功烈)을 계승하게 함을 힘입고자 하노라.』
『 무량(無良)은 자질(資質)이 좋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광(匡)은 보조(輔助)함이다. 승(繩)은 곧게 폄이요, 규(糾)는 바로잡음이다.
비심(非心)은 비벽(非僻)한 마음이다. 선렬(先烈)은 문왕(文王)?무왕(武王)이다.』
▣ 제4장(第四章)
『 이제 나는 너를 명하여 대정(大正)을 삼노니,
군복(群僕)과 시어(侍御)하는 신하들을 바로잡아 네 임금의 덕(德)을 힘써서 여러 가지로 미치지 못하는 것을 닦아라.』
『 대정(大正)은 태복정(太僕正)이다. 《주례(周禮)》에 태복(太僕)은 하대부(下大夫)이다.
군복(群僕)은 제복(祭僕), 예복(隸僕), 융복(戎僕), 제복(齊僕)의 따위를 이른다.
목왕(穆王)은 백경(伯¢)이 군복(群僕)과 시어(侍御)하는 신하를 바로잡아 군주(君主)의 덕(德)을 힘써 나아가게 하여
여러 가지로 미치지 못하는 바를 닦게 하고자 한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주례(周禮)》에 ‘하대부(下大夫)는 정(正)이 될 수 없다.’ 하였고
한(漢)나라 공씨(孔氏)는 ‘태어(太御)는 중대부(中大夫)이다.’ 하였으니,
《주례(周禮)》에 태어(太御)가 가장 우두머리이고 아래에 또 군복(群僕)이 있는 바,
여기의 이른바 ‘군복(群僕)을 바로잡는다.’는 말과 합하며, 또 군주와 함께 수레를 타서 가장 친근함이 된다.” 한다.』
▣ 제5장(第五章)
『 네 막료(幕僚)들을 삼가 선발하되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며 편벽(便μ?)되고 측미(側媚)한 자를 쓰지 말고 길사(吉士)를 쓰도록 하라.』
『 교(巧)는 아름다움이요 영(令)은 좋음이니, 말을 아름답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여 겉만 꾸미고 실질(實質)이 없는 자이다.
편(便)은 남이 하고자 하는 바를 순종함이요 벽(μ?)은 남이 싫어하는 바를 피하는 것이며, 측(側)은 간사함이요 미(媚)는 아첨함이니, 소인(小人)이다.
길사(吉士)는 군자(君子)이다. 마땅히 너의 요좌(僚佐)들을 삼가 선택하되 소인(小人)에게 맡기지 말고 오직 군자(君子)를 쓰라고 말한 것이다.
또 살펴보건대 여기에 “네 막료(幕僚)들을 삼가 선발하라.” 하였으니, 성주(成周)의 때에 모든 관장(官長)이 된 자들은
모두 스스로 관속(官屬)을 들어 쓸 수 있었고, 비단 부(府)?사(史)?서(胥)?도(徒)를 불러 제수할 뿐만이 아니었다.』
▣ 제6장(第六章)
『 복신(僕臣)이 바르면 군주가 능히 바르고 복신(僕臣)이 아첨하면 군주가 스스로 성인(聖人)이로라 할 것이니,
군주가 덕(德)이 있는 것도 신하 때문이며 덕이 없는 것도 신하 때문이다.』
『 자성(自聖)은 스스로 성인(聖人)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복신(僕臣)의 어질고 어질지 않음이 군주의 덕(德)의 경중(輕重)에 관계됨이 이와 같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자고(自古)로 소인(小人)들이 군주(君主)의 덕(德)을 무너뜨려 어둡게 하고 사납게 하고 사치하게 하고 방종하게 함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스스로 성인(聖人)이라고 여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해됨이 얕을 듯한데도 목왕(穆王)이 오히려 이것으로 결단한 것은
소인(小人)이 군주(君主)를 고혹(蠱惑)시킬 적에 반드시 헛된 칭찬으로 마음을 동요시켜 오만하게 스스로 성인(聖人)이라고 여기게 만든다.
그러면 군주는 사람들이 자기만 못하다고 여겨 자신의 말을 어기지 않기를 바라니,
그런 뒤에 법도(法度)있는 집안과 보필(輔弼)하는 신하가 날로 멀어져서 뜻을 쾌하게 하고
정(情)을 부리는 일이 또한 혹시라도 그 사이에 저어(齟齬)함이 없게 되니, 스스로 성인(聖人)이라고 여기는 증세가 이미 나타남에 백 가지 병통이 따르게 된다.
어둡고 사납고 사치하고 방종함은 모두 그 지엽이니, 족히 논할 것이 없다.”』
▣ 제7장(第七章)
『 너는 간사한 사람을 친하여 이목(耳目)의 관원에 채워서 군상(君上)을 선왕(先王)의 법(法)이 아닌 것으로 인도하지 말라.』
『 너는 소인(小人)들을 비근(比近)하여 나의 이목(耳目)의 관(官)에 채워서 군상(君上)을 선왕(先王)의 법(法)이 아닌 것으로 인도하지 말라.
목왕(穆王)이 스스로 헤아려봄에 덕(德)을 잡음이 견고하지 못하여 자우(左右)가 이단(異端)을 올려 그 마음을 방탕하게 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 제8장(第八章)
『 사람을 선(善)하게 여기지 않고 재물을 선(善)하게 여기면 이에 그 관직을 폐할 것이니, 너는 네 군주를 크게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너를 죄줄 것이다.”』
『 재화(財貨)와 뇌물로 군복(群僕)을 선임(選任)함을 경계한 것이다.
사람의 선(善)함으로 하지 않고 오직 재화와 뇌물로 선(善)하게 여기면 이는 그 관직을 버리는 것이니, 네가 네 군주를 크게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또한 너를 죄줄 것이다.』
▣ 제9장(第九章)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공경하여 네 군주를 떳떳한 법으로 길이 도와라.”』
『 이헌(彛憲)은 떳떳한 법이다.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목왕(穆王)이 마지막 장(章)의 명령에 백경(伯¢()에게 바란 것이 깊고 또 길었는데,
이 마음이 이어지지 아니하여 조보(造父)를 마부로 삼아 천하를 주유(周遊)하여 장차 반드시 수레바퀴 자국과 말 발자국이 있어,
사치함으로 인도한 자가 과연 복어(僕御)의 사이에서 나왔으니, 백경(伯¢)이 이 때까지도 직책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목왕(穆王)이 미리 경계할 바를 알아 근심하는 생각이 깊고 길었는데도 오히려 몸소 스스로 범함을 면치 못하였으니,
인심(人心)을 잡고 버림의 무상(無常)함이 두려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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