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주서-문후지명(文侯之命)


 

▣ 문후지명(文侯之命)


『幽王이 爲犬戎所殺한대 晉文侯與鄭武公으로 迎太子宜臼하여 立之하니 是爲平王이라
遷於東都하다 平王이 以文侯爲方伯하고 賜以??弓矢할새 作策書하여 命之어늘 史錄爲篇하니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유왕(幽王)이 견융(犬戎)에게 살해당하자
진(晉)나라 문후(文侯)가 정(鄭)나라 무공(武公)과 함께 태자(太子) 의구(宜臼)를 맞이하여 세우니,
이가 평왕(平王)인데 동도(東都)『[낙양]』로 천도하였다.
평왕(平王)은 문후(文侯)를 방백(方伯)으로 삼고 검은 기장술과 활과 화살을 내려줄 적에 책서(策書)를 만들어 명하였는데,
사관(史官)이 이것을 기록하여 편을 만들었으니,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 제1장(第一章)


『 왕(王)이 대략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부(父)인 의화(義和)야! 크게 드러나신 문왕(文王)?무왕(武王)께서
능히 명덕(明德)을 삼가 밝게 위에 오르시며 펴져 아래에 있으면서 알려지시자,
이 상제(上帝)가 그 명을 문왕(文王)에게 모으셨는데 또한 선정(先正)들이 능히 도와서
그 임금을 밝게 섬겨 크고 작은 꾀와 계책에 따르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선조(先祖)께서 지위에 편안히 계셨다.』
『 동성(同姓)이므로 부(父)라 칭하였다.
문후(文侯)는 이름이 구(仇)이고 의화(義和)는 그의 자(字)이니, 이름을 부르지 않음은 높인 것이다.
비현(丕顯)은 그 덕(德)의 이룬 바를 말한 것이요, 극근(克謹)은 그 덕의 닦은 바를 말한 것이요,
소승(昭升)과 부문(敷聞)은 그 덕의 이른 바를 말한 것이다.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덕이 이와 같았으므로 상제(上帝)가 그 명을 문왕(文王)에게 모았고,
또한 너의 조(祖)?부(父)가 능히 도와서 그 군주를 밝게 섬겨 작고 큰 꾀와 계책에 감히 위배함이 없었다.
그러므로 선왕(先王)이 지위에 편안히 계셨던 것이다.』

 


▣ 제2장(第二章)


『 아! 불쌍한 나 소자(小子)는 지위를 계승한 초기에 하늘의 큰 허물『[재앙]』을 만나 자택(資澤)이 하민(下民)들에게 끊겼다.
오랑캐가 우리 국가를 침해함이 컸는데 나의 어사(御事)들은 혹시라도
기수(耆壽)『[노성(老成)]』한 자와 준걸스러운 자가 신하의 자리에 있는 이가 없었으며,
나도 능하지 못하노라. 조(祖)?부(父)의 항렬에 있는 자들은 그 누가 짐(朕)의 몸을 구휼할 것인가?
아! 나 한 사람에게 공(功)이 있으면 길이 편안히 지위에 있을 것이다.』
『 탄식하고 스스로 통상(痛傷)『[애통하고 서글퍼 함]』한 것이다.
민(閔)은 불쌍함이다.
사조천비건(嗣造天丕愆)은 사위(嗣位)하던 초기에 하늘에게 큰 견책을 당하여 아버지가 죽고 나라가 패망한 것이다.
진(殄)은 끊어짐이요, 순(純)은 큼이다.
자용(資用)과 혜택이 하민에게 끊겨 이미 근본이 먼저 뽑혔기 때문에
융적(戎狄)이 침릉(侵陵)하여 우리 국가의 폐해가 됨이 심히 컸는데,
지금 나의 일을 다스리는 신하들은 노성(老成)한 자와 준걸스러운 자가 그 관직에 있는 자가 없었으며,
나 소자(小子)도 재주가 용렬하여 능하지 못하니, 어떻게 어려움을 구제하겠는가.
또 말하기를 “제후로서 나의 조(祖)?부(父)의 항렬에 있는 자들은 그 누가 나를 구휼하겠는가?” 하고,
또 탄식하여 말하기를 “능히 나 한 사람에게 공을 이루는 자가 있으면 길이 그 지위를 편안하게 할 것이다.” 하였다.
이는 나라에 사람이 없어서 상문(上文)에 선정(先正)들이 밝게 섬겨
선왕(先王)이 편안히 지위에 계셨던 것처럼 하는 이가 없음을 슬퍼한 것이다.』

 


▣ 제3장(第三章)


『 부(父)인 의화(義和)야! 너는 능히 너의 훌륭하신 선조를 밝혀,
네가 비로소 문왕(文王)?무왕(武王)을 본받아 네 임금을 모으고 이어서 전문인(前文人)을 따라 효도하라.
네가 닦아서 나를 어려움에 호위함이 많으니, 너와 같은 이는 내 아름답게 여기노라.”』
『 현조(顯祖)와 문인(文人)은 모두 당숙(唐叔)을 이르니, 곧 상문(上文)에 선정(先正)이 그 임금을 밝게 섬겼다는 것이다.
뒤에 혹시라도 노성(老成)한 자와 준걸스러운 자가 신하의 자리에 있는 이가 없다면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도(道)를 본받음이 끊긴 것이니, 이제 문왕(文王)?무왕(武王)을 본받음이 문후(文侯)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때문에 ‘비로소 문왕(文王)?무왕(武王)을 본받으라’고 한 것이다.
회(會)는 합하여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요, 소(紹)는 이어서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전문인(前文人)은 전녕인(前寧人)이란 말과 같다.
네가 닦고 완전히 해서 나를 어려움에 한위( 衛)『[호위]』함이 많으니, 너의 공(功)과 같은 것을 내 아름답게 여기는 바이다.』

 

 

▣ 제4장(第四章)


『 왕(王)이 말씀하였다.
“부(父)인 의화(義和)야. 돌아가 네 무리를 돌아보아 네 나라를 편안히 하라.
써 너에게 검은 울창주(鬱?酒) 한 동이와 붉은 활 하나와 붉은 화살 백 개와
검은 활 하나와 검은 화살 백 개와 말 네 필을 하사하노니,
부(父)는 가서 멀리 있는 자를 회유하고 가까이 있는 자를 길들이며,
소민(小民)들을 은혜롭고 편안히 하여 황녕(荒寧)하지 말아서
네 도비(都鄙)를 간열하고 구휼하여 너의 드러난 덕(德)을 이루도록 하라.”』
『 사(師)는 무리이다.
검은 기장을 거(?)라 하니, 울창초(鬱?草)『[울금초(鬱金草)]』로 빚는다.
유(?)는 중준(中樽)『[중간 크기의 술동이]』이다.
제후가 석명(錫命)『[명을 내려줌]』을 받으면
마땅히 시조(始祖)에게 고유하여야 하므로 울창주(鬱?酒)를 하사한 것이다.
동(쪐)은 붉음이요, 노(盧)는 검음이다.
제후가 큰 공이 있으면 궁시(弓矢)를 하사하니, 그런 뒤에야 정벌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마(馬)는 군용(軍用)에 이바지한다. 네 필을 승(乘)이라 한다.
후백(侯伯)의 하사는 일정함이 없어서 공의 크고 작음으로 한도를 삼는다.
간(簡)은 군사들을 간열(簡閱)함이요, 휼(恤)은 백성들을 은혜롭게 구휼하는 것이다.
도(都)는 나라의 도(都)와 비(鄙)『[촌]』이다.』
『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나는 〈문후편(文侯篇)〉을 읽고 동주(東周)가 다시 흥하지 못할 줄을 알았노라.
종주(宗周)가 경복(傾覆)함에 화패(禍敗)가 지극하니,
평왕(平王)은 마땅히 위(衛)나라 문공(文公)과 월왕(越王) 구천(句踐)과 같이 하여야 할 터인데,
이제 그 글이 마침내 선선(旋旋)『[편안]』하여 평강(平康)한 세상과 다름이 없다.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
‘여왕(쪵王)의 화(禍)에 제후들이 자신의 지위를 버리고 왕정(王政)을 간섭하였는데,
선왕(宣王)이 의지(意志)가 있은 뒤에 제후들이 관직『[직책]』을 바쳤다.’ 하였으니,
〈문후지명(文侯之命)〉을 읽고서 평왕(平王)이 의지(意志)가 없었음을 알았노라.”』
『 내가 살펴보건대, 《사기(史記)》에 유왕(幽王)이 신(申)나라에서 장가들어
태자(太子) 의구(宜臼)를 낳았는데, 뒤에 유왕(幽王)이 포사(褒 )를 총애하여
신후(申后)를 폐하고 태자(太子)를 버리자,
신후(申侯)가 노하여 증(繒)나라와 서이(西夷)인 견융(犬戎)과 함께 왕(王)을 공격하여 살해하였다.
제후들이 신후(申侯)에게 나아가 옛 태자(太子)인 의구(宜臼)를 세우니, 이가 평왕(平王)이었다.
평왕(平王)은 신후(申侯)가 자기를 세워준 것을 은덕이 있다고 여겨,
아버지를 시해한 자는 마땅히 주벌해야 함을 잊고,
장차 복수하여 역적을 토벌해야 할 군대로써 신(申)나라를 지키고 허(許)나라를 지키는 조처를 하였으니,
어버이를 잊고 의(義)를 저버려 하늘에 죄를 얻음이 너무 심하다.
어찌 위미(委靡)하고 퇴타(頹墮)하여 스스로 떨치지 못함이 어찌 괴이하겠는가.
그렇다면 이 명(命)은 공자(孔子)가 오히려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옛것을 말하였다 하여 둔 것인가?
아니면 또한 천하(天下) 후세(後世)에 경계를 보이기 위하여 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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