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 부록

 

▣ 부록

『○ 서경 ; 부록 ; 서경집전에 대하여+1』

『○ 서경 ; 부록 ; 서전도+2』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41』

『○ 서경 ; 부록 ; 상서백편이동표+88』

 

*서경 ; 부록 ; 서경집전에 대하여

 

▣ 서경집전(書經集傳)에 대하여

 

『 본서(本書)는 《서경(書經)》 58편(篇)과 이에 대한 채침(蔡沈)의 《집전(集傳)》에 현토(懸吐)하고 역주(譯註)한 것이다.』

『 《서경(書經)》은 일명 상서(尙書)라고도 한다. 상(尙)은 상(上)과 통하는바 상서란 상고시대(上古時代)의 글이란 뜻이며,

또 이제(二帝)•삼왕(三王)의 훌륭한 말씀과 선정(善政)의 내용이 담겨 있어 높일 만한 글이란 뜻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서경(書經)》은 중국 고전 중 가장 오래된 경전(經典)이라 할 것이다.

오랫동안 《시경(詩經)》과 함께 병칭되었으며, 여기에 《역경(易經)》을 포함하여 삼경(三經)이라 불리어 왔음은 주지(周知)의 사실이다.

채침은 《집전(集傳)》의 서(序)에서 “이제(二帝)•삼왕(三王)이 천하를 다스린 대경대법(大經大法)이 모두 이 책에 기재되어 있다.” 하였다.』

『 《서경(書經)》은 우(虞)•하(夏)•은(殷)『[상(商)]』•주(周)의 네 왕조(王朝)에 걸쳐

전(典)•모(謨)•훈(訓)•고(誥)•서(誓)•명(命)의 여섯 가지 문체(文體)로 이루어졎다.

이것을 사서(四書)•육체(六體)라 하며, 여기에 정(征)•공(貢)•가(歌)•범(範)을 더하여 십례(十例)라 하기도 한다.

시대를 살펴보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알려져 있는 요(堯)•순(舜) 시대로부터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진(秦) 등의 열국(列國)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다.

물론 그 내용은 당시의 사관(史官)이 기록한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은 일찍이 “공자(孔子)가 시(詩)•서(書)를 산정(刪定)했다.” 하였다.

즉 지금에 전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서(書)가 있었는데 공자가 불필요한 편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사마천의 주장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공자는 평소 시(詩)•서(書)와 집례(執禮)를 자주 말씀하였고

《서경(書經)》의 내용이 《논어(論語)》 등에 자주 보이며 특히 《논어(論語)》의 〈요왈편(堯曰篇)〉은 거의 대부분이

《서경(書經)》을 축약해 놓았다는 사실에서 《서경(書經)》이 공문(孔門)의 중요한 교과서였음은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공자의 학통을 이어받은 맹자(孟子) 역시 《서경(書經)》을 가장 많이 인용하였다.』

『 《서경(書經)》은 이처럼 역대 제왕들의 정치사상이 가장 잘 나타난 글로 알려져 있는 반면 금고문(今古文)의 진위(眞僞) 여부가 큰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금문(今文)은 한(漢)나라 때 일반적으로 쓰이던 예서체(隸書體)로 쓴 것을 이르며,

고문(古文)은 진(秦)나라 이전의 옛 자체(字體)인 과두문자(쥛쪠文字)로 기록된 것을 이른다.

 

진시황(秦始皇)은 우민정책(愚民政策)의 일환으로 일반인들은 경전(經傳)을 장서(藏書)하지 못하게 하고 분서(焚書)를 단행하였다.

물론 황실(皇室)의 서고(書庫)에야 각종 전적(典籍)이 보관되어 있었겠지만

도성(都城)인 함양(咸陽)의 궁전(宮殿)이 항우(項羽)에 의해 불타는 바람에 함께 잿더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후 한문제(漢文帝) 때에 민간에 남아 있는 경전을 수집하면서 진(秦)의 박사(博士)로 있던 제남(濟南)의 복생(伏生)이 29편을 구전(口傳)하여

금문(今文)으로 기록하니, 이것이 구양생(歐陽生)과 하후승(夏侯勝) 등이 전한 ‘금문상서(今文尙書)’이다.

금문 29편은 요전(堯典)『[순전(舜典) 포함]』•고요모(皐陶謨)『[익직(益稷) 포함]』•우공(禹貢)•감서(甘誓)•탕서(湯誓)•반경(盤庚)•고종융일(高宗훏日)

•서백감려(西伯戡黎)•미자(微子)•태서(大『[泰]』誓)•목서(牧誓)•홍범(洪範)•금등(金¦$)•대고(大誥)•강고(康誥)•주고(酒誥)•재재(梓材)•소고(召誥)

•낙고(?『[洛]』誥)•다사(多士)•무일(無逸)•군석(君奭)•다방(多方)•입정(立政)•고명(顧命)『[강왕지고(康王之誥) 포함]』

•여형(呂刑)•문후지명(文侯之命)•비서(費誓)•진서(秦誓)가 그것이다.

이중에 대서(大誓)는 위작(僞作)으로 밝혀져 결국 28편인 셈이다.『[물론 여기에도 이설(異說)이 분분하다.]』』

『 그후 무제(武帝) 때에 노공왕(魯恭王)이 공자의 구가(舊家)를 헐다가 벽중(壁中)에서 과두문자로 기록된 상서를 얻으니,

이것이 소위 ‘고문상서(古文尙書)’로 공안국(孔安國)이 전하였다.

그러나 이 고문상서는 당시 사용하지 않는 자체(字體)여서 그만 없어지고 말았으며, 현재 전하는 것은

동진(東晉) 초기 매색(梅픂)과 요방흥(姚方興)이 다시 얻었다는 본(本)이다.

『[《집전(集傳)》의 각편 소서(小序)에 ‘금문고문개유(今文古文皆有)’와 ‘금문무(今文無), 고문유(古文有)’가 바로 이것을 나타낸 것이다.]』』

『 이 고문상서는 당(唐)나라 때 공영달(孔穎達)이 대본(臺本)으로 삼아 《정의(正義)》를 지으면서 세상에 널리 유행되었다.

그러나 금문(今文)에는 없고 고문(古文)에만 있는 대우모(大禹謨)•오자지가(五子之歌)•윤정(胤征)•중훼지고(仲텪之誥)•탕고(湯誥)•이훈(伊訓)

•태갑상(太甲上)•태갑중(太甲中)•태갑하(太甲下)•함유일덕(咸有一德)•열명상(說命上)•열명중(說命中)•열명하(說命下)

•태서상(泰誓上)•태서중(泰誓中)•태서하(泰誓下)•무성(武成)•여오(旅獒)•미자지명(微子之命)•채중지명(蔡仲之命)•주관(周官)•군진(君陳)

•필명(畢命)•군아(君牙)•경명(¢(命)의 25편은 위작(僞作)이라는 설이 있었으며,

송대(宋代)의 주자와 오역(吳â) 등도 금문과 고문의 문체가 너무 다름을 지적하여 위작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그러다가 청대(淸代)의 고증학(考證學)이 발달하면서 염약거(閻若¸<)의 《상서고문소증(尙書古文疏證)》,

혜동(惠棟)의 《고문상서고(古文尙書考)》 등이 나오면서 위작임이 사실화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중국에서는 고문 부분은 아예 《서경(書經)》에서 제외하는 실정이다.』

『 하지만 고문상서의 가치는 위작 여부와 관계없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대(古代)의 정치사상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문상서에는 좋은 명언과 정치 이론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문체만을 가지고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도 문제가 없지 않다.

고대(古代)의 글은 원래가 붓으로 기록하기보다는 구전한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맹자(孟子)》에 인용된 글도 금문과 차이가 없지 않으며 금문의 〈요전(堯典)〉과 〈고요모(皐陶謨)〉 등도 입으로 외워 전해져 오다가

주대(周代) 이후 비로소 현재와 같은 문장으로 정리되었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고문상서를 위작으로 단정한 염약거(閻若¸<)나 혜동(惠棟) 등도 매색(梅픂)이 위작할 때에 《논어(論語)》나 《맹자(孟子)》•《좌전(左傳)》•《국어(國語)》 등

각종 자료들을 참고하여 지은 것으로 보았다.

그 말은 역설적으로 고문상서가 비록 원래의 글은 아니라 하더라도 전혀 터무니없는 두찬(杜撰)이 아님을 증명한 것이라 하겠다.

또한 수(隋)•당(唐) 이후 수많은 학자와 정치가들이 이 고문상서를 무수히 인용하였고

모든 정치이론이 이 고문상서의 내용을 근간으로 하였음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

『 고문상서가 위작이라 하여 보지 않을 경우 후세의 각종 문헌에 인용된 내용과 여기에 근간을 두고 있는 정치사상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소위 위고문상서(僞古文尙書)가 나온 시기가 이미 천 7백년 전이란 사실이다.

 

지금 우리는 2백여 년의 짧은 역사에 불과한 미국의 링컨이나 워싱턴, 루즈벨트 등의 정치사상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신봉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소한 천 7백년 전에 매색(梅픂)이 이와 같은 문학과 사상을 간직한 인물이라면 그의 위작을 문제삼기 전에

그의 뛰어난 정치철학과 학문을 높이 평가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서경(書經)》은 상고시대의 글인 만큼 난해하기로도 유명하다.

당(唐)의 한유(韓愈)는 ‘주고은반(周誥殷盤) 힐굴오아(詰屈춏牙)’라 하여 상서(商書)의 〈반경(盤庚)〉과 주서(周書)의 〈대고(大誥)〉

•〈강고(康誥)〉 등이 난삽함을 말하였거니와 특히 주서(周書)는 대부분이 일반 문체와 크게 달라 해독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해석도 이설이 많으며 구독(句讀) 자체가 불분명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본 《집전(集傳)》의 저자인 채침(蔡沈)은 주자의 문인으로 당시 대학자인

왕안석(王安石)•소식(蘇軾)•임지기(林之奇)•여조겸(呂祖謙) 등의 주서(註書)를 두루 참고하였으며, 일부는 주자가 직접 수정을 가하였다.

그후 《집전(集傳)》이 영락대전(永樂大全)에 들어가면서 널리 유행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영락대전본(永樂大全本)을 수용하여 언해(諺解) 등 모든 해석이 이 《집전(集傳)》을 대본으로 하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이후 동국(東國) 유현(儒賢)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도 상당수가 있는바,

본서에 참고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삼경석의(三經釋義)》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경서변의(經書辨疑)》,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질서(疾書)》가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 다시 강조하거니와 《서경(書經)》은 동양 제국(諸國)의 정치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중요한 경전(經典)이다.

우리 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 조선조(朝鮮朝)의 모든 정치사상은 이 《서경(書經)》에서 나왔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나 선현(先賢)들의 상소문(上疏文)을 정확히 읽으려면 먼저

이 《서경(書經)》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 중국(中國)은 청대(淸代) 이후 고증학(考證學)이 발달하여 문헌학적으로 괄목할 발전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증주의(實證主義)에 치우친 나머지 위작의 논란(論難)으로 고전을 경시(輕視)하고 불신(不信)하는 풍조가 유행하여

수천년(數千年) 간직해온 문화와 사상을 부정하고 팽개친 결과 부정부패와 아편중독으로 거대한 청조(淸朝)가 힘없이 무너지고

일본 등 신흥 강대국들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였으며, 급기야는 유물론(唯物論)을 받아들여

사회주의체제국가(社會主義體制國家)를 수립, 소위 문화혁명(文化革命)으로 귀중한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지금에도 중국(中國)은 뿌리 없는 사상과 이념이 판을 치고 있다.』

 

『 우리의 현실 역시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것은 무조건 진부하고 봉건적인 것으로 매도하는 사고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구(西歐)의 민주주의(民主主義)가 가장 발전된 정치체제(政治體制)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서구의 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지 어언 반세기(半世紀)가 지났건만 정치 상황은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는 이념이나 제도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요 위정자(爲政者)들의 기본 자세가 결여된 때문이라고 스스로 진단한다.

뿌리가 없는 꽃은 제대로 필 수가 없는 것이다. 정치에도 뿌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문화를 뿌리로 삼고 서구의 제도를 정착화시킬 때에 비로소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위정자들이 서구의 사상에만 몰입할 것이 아니라, 우리 정치사(政治史)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본서를 다시 연구하고

좋은 점을 폭넓게 수용하여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정치선진화를 이룩하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서경 ; 부록 ; 서전도

 

▣ 서전도(書傳圖)

 

『○ 서경 ; 부록 ; 서전도 ; 당우하상주보계도+1』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역상수시도+2』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사중중성도+3』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일영일단도+4』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윤월정시성세도+5』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칠정지도+6』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오신지도+7』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선기옥형도+8』

『○ 서경 ; 부록 ; 서전도 ; 명백삭망도+9』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일월동하구도도+10』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오성팔음도+11』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육률육려도+12』

『○ 서경 ; 부록 ; 서전도 ; 하도낙서도+13』

『○ 서경 ; 부록 ; 서전도 ; 구주본낙서수도+14』

『○ 서경 ; 부록 ; 서전도 ; 구주상승득수도+15』

『○ 서경 ; 부록 ; 서전도 ; 홍범구주도+16』

『○ 서경 ; 부록 ; 서전도 ; 황극거차오도+17』

『○ 서경 ; 부록 ; 서전도 ; 구주허오용십도+18』

『○ 서경 ; 부록 ; 서전도 ; 구주합팔주수도+19』

『○ 서경 ; 부록 ; 서전도 ; 대연홍범본수도+20』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율도량형도+21』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제후옥백도+22』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십이장복도+23』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예기제도+24』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악기제도상+25』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악기제도하+26』

『○ 서경 ; 부록 ; 서전도 ; 복식기용제도+27』

『○ 서경 ; 부록 ; 서전도 ; 병기제도+28』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준견회거천도+29』

『○ 서경 ; 부록 ; 서전도 ; 거제지도+30』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우필오복도+31』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요제오복도+32』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수산준천지도+33』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임토작공도+34』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상칠묘도+35』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상천도도+36』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주영낙읍도+37』

『○ 서경 ; 부록 ; 서전도 ; 소고토중도+38』

*서경 ; 부록 ; 서전도 ; 당우하상주보계도

 

▣ 당우하상주보계도(唐虞夏商周譜系圖)

『◎ 당우하상주보계도(唐虞夏商周譜系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역상수시도

▣ 역상수시도(曆象授時圖)

『◎ 역상수시도(曆象授時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사중중성도

▣ 사중중성도(四仲中星圖)

『◎ 사중중성도(四仲中星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일영일단도

▣ 일영일단도(日永日短圖)

『◎ 일영일단도(日永日短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윤월정시성세도

▣ 윤월정시성세도(閏月定時成歲圖)

『◎ 윤월정시성세도(閏月定時成歲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칠정지도

▣ 칠정지도(七政之圖)

『◎ 칠정지도(七政之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오신지도

▣ 오신지도(五辰之圖)

『◎ 오신지도(五辰之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선기옥형도

▣ 선기옥형도(璿璣玉衡圖)

『◎ 선기옥형도(璿璣玉衡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명백삭망도

▣ 명백삭망도(明魄朔望圖)

『◎ 명백삭망도(明魄朔望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일월동하구도도

▣ 일월동하구도도(日月冬夏九道圖)

『◎ 일월동하구도도(日月冬夏九道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오성팔음도

▣ 오성팔음도(五聲八音圖)

『◎ 오성팔음도(五聲八音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육률육려도

▣ 육률육려도(六律六呂圖)

『◎ 육률육려도(六律六呂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하도낙서도

▣ 하도낙서도(河圖洛書圖)

『◎ 하도낙서도(河圖洛書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구주본낙서수도

▣ 구주본낙서수도(九疇本洛書數圖)

『◎ 구주본낙서수도(九疇本洛書數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구주상승득수도

▣ 구주상승득수도(九疇相乘得數圖)

『◎ 구주상승득수도(九疇相乘得數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홍범구주도

▣ 홍범구주도(洪範九疇圖)

『◎ 홍범구주도(洪範九疇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황극거차오도

▣ 황극거차오도(皇極居次五圖)

『◎ 황극거차오도(皇極居次五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구주허오용십도

▣ 구주허오용십도(九疇虛五用十圖)

『◎ 구주허오용십도(九疇虛五用十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구주합팔주수도

▣ 구주합팔주수도(九疇合八疇數圖)

『◎ 구주합팔주수도(九疇合八疇數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대연홍범본수도

▣ 대연홍범본수도(大衍洪範本數圖)

『◎ 대연홍범본수도(大衍洪範本數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율도량형도

▣ 율도량형도(律度量衡圖)

『◎ 율도량형도(律度量衡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제후옥백도

▣ 제후옥백도(諸侯玉帛圖)

『◎ 제후옥백도(諸侯玉帛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십이장복도

▣ 십이장복도(十二章服圖)

『◎ 십이장복도(十二章服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예기제도

▣ 예기제도(禮器諸圖)

『◎ 예기제도(禮器諸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악기제도상

▣ 악기제도상(樂器諸圖上)

『◎ 악기제도상(樂器諸圖上)』

*서경 ; 부록 ; 서전도 ; 악기제도하

▣ 악기제도하(樂器諸圖下)

『◎ 악기제도하(樂器諸圖下)』

*서경 ; 부록 ; 서전도 ; 복식기용제도

▣ 복식기용제도(服飾器用諸圖)

『◎ 복식기용제도(服飾器用諸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병기제도

▣ 병기제도(兵器諸圖)

『◎ 병기제도(兵器諸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준견회거천도

▣ 준견회거천도(濬죻澮距川圖)

『◎ 준견회거천도(濬죻澮距川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거제지도

▣ 거제지도(車制之圖)

『◎ 거제지도(車制之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우필오복도

▣ 우필오복도(禹弼五服圖)

『◎ 우필오복도(禹弼五服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요제오복도

▣ 요제오복도(堯制五服圖)

『◎ 요제오복도(堯制五服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수산준천지도

▣ 수산준천지도(隨山濬川之圖)

『◎ 수산준천지도(隨山濬川之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임토작공도

▣ 임토작공도(任土作貢圖)

『◎ 임토작공도(任土作貢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상칠묘도

▣ 상칠묘도(商七廟圖)

『◎ 상칠묘도(商七廟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상천도도

▣ 상천도도(商遷都圖)

『◎ 상천도도(商遷都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주영낙읍도

▣ 주영낙읍도(周營洛邑圖)

『◎ 주영낙읍도(周營洛邑圖)』

*서경 ; 부록 ; 서전도 ; 소고토중도

▣ 소고토중도(召誥土中圖)

『◎ 소고토중도(召誥土中圖)』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서경소서(書經小序)

 

『 《서경(書經)》에는 옛부터 서문(序文)이 전해 오는바, 공벽(孔壁)에서 여러 고서(古書)와 함께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 서문(序文)은 각 편이 쓰여지게 된 연유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공영달(孔穎達)은 《시경(詩經)》의 소서(小序)

처럼 각 편의 앞 머리에 서문(序文)을 나누어 놓았다 하여 이 역시 소서(小序)라고 칭하였다.

그런데 이 서문(序文)에 의하면 《서경(書經)》은 백 편의 글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서(漢書)》〈예문지

(藝文志)〉 등에는 공자(孔子)가 편찬한 《서경(書經)》에는 백 편의 글이 있었는데, 나머지는 없어지고 지금의 오십팔(五十八)편만이 남았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공자(孔子)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탕정(湯征)〉과 〈태갑(太甲)〉

의 서문(序文)을 보면 모두 맹자(孟子)의 설을 따르고 있으므로, 전국시대(戰國時代) 중기 이후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채침(蔡沈) 역시 공자(孔子)가 지은 것이 아님을 여러 번 밝힌바 있다. 이제 오십팔(五十八) 편의 서문(序文)을 아래

에 소개하며, 《서경(書經)》 백 편의 이동표(異同表)를 함께 뒤에 붙여 참고하게 하는 바이다.』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요전+1』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순전+2』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대우모+3』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우공+4』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감서+5』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오자지가+6』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윤정+7』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탕서+8』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중훼지고+9』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탕고+10』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이훈+11』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태갑+12』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함유일덕+13』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반경+14』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열명+15』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고종융일+16』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서백감려+17』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미자+18』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태서+19』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목서+20』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무성+21』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홍범+22』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여오+23』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금등+24』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대고+25』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미자지명+26』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강고+27』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소고+28』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낙고+29』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다사+30』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무일+31』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군석+32』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채중지명+33』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다방+34』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입정+35』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주관+36』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군진+37』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고명+38』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강왕지고+39』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필명+40』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군아+41』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경명+42』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여형+43』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문후지명+44』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비서+45』

『○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진서+46』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요전

 

【요전(堯典)】

『昔在帝堯 聰明文思하사 光宅天下러시니 將遜于位하여 讓于虞舜하여 作堯典하니라』

『 옛날 제요(帝堯)가 총명(聰明)하고 문사(文思)하여 빛나게 천하를 안정시켰는데 장차 지위를 물려주어 우순(虞舜)

에게 양위(讓位)하려 하면서 〈요전(堯典)〉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순전

 

【순전(舜典)】

『虞舜側微러시니 堯聞之聰明하고 將使嗣位하여 歷試諸難할새 作舜典하니라』

『 우순(虞舜)이 미천하였는데 제요(帝堯)는 그가 총명하다는 말을 듣고 장차 지위를 잇게 하려 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차례로 시험하였다. 그리하여 〈순전(舜典)〉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대우모

 

【대우모(大禹謨)】

『皐陶矢厥謨하고 禹成厥功이어늘 帝舜申之하사 作大禹, 皐陶謨, 益稷하니라』

『 고요(皐陶)가 좋은 말씀을 아뢰고 우(禹)임금이 공을 이루자 제순(帝舜)이 이를 거듭하여 〈대우모(大禹謨)〉와

〈고요모(皐陶謨)〉와 〈익직(益稷)〉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우공

 

【우공(禹貢)】

『禹別九州하여 隨山濬川하고 任土作貢하니라』

『 우(禹)임금은 구주(九州)를 구별하여 산을 따라 냇물을 깊이 파고 토질에 맞추어 공물(貢物)을 내게 하였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감서

 

【감서(甘誓)】

『啓與有扈로 戰于甘之野할새 作甘誓하니라』

『 계(啓)가 유호(有扈)와 감(甘)땅의 들에서 싸울 적에 〈감서(甘誓)〉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오자지가

 

【오자지가(五子之歌)】

『太康失邦이어늘 昆弟五人이 須于洛汭하더니 作五子之歌하니라』

『 태강(太康)이 나라를 잃자, 형제 다섯 사람이 낙수(洛水)가에서 기다리면서 〈오자지가(五子之歌)〉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윤정

 

【윤정(胤征)】

『羲和쭚淫하여 廢時亂日이어늘 胤往征之할새 作胤征하니라』

『 희화(羲和)가 술에 빠져 때를 폐하고 날짜를 어지럽히자, 윤후(胤侯)가 가서 정벌하면서 〈윤정(胤征)〉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탕서

 

【탕서(湯誓)】

『伊尹이 相湯伐桀할새 升自?『(이)』하여 遂與桀戰于鳴條之野할새 作湯誓하니라』

『 이윤(伊尹)이 탕왕(湯王)을 도와 걸왕(桀王)을 정벌할 적에 탕왕(湯王)은 이(?)땅의 길로부터 올라와 마침내 걸왕

(桀王)과 명조(鳴條)의 들에서 싸웠다. 이때 〈탕서(湯誓)〉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중훼지고

 

【중훼지고(仲텪之誥)】

『湯歸自夏하사 至于大坰하시니 仲텪作誥하니라』

『 탕왕(湯王)이 하(夏)나라로부터 돌아와 대경(大坰)에 이르니, 중훼(仲텪)가 고(誥)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탕고

 

【탕고(湯誥)】

『湯旣黜夏命하고 復歸于¨]하사 作湯誥하니라』

『 탕왕(湯王)이 이미 하(夏)나라의 명(命)을 내치고 다시 박(¨])땅으로 돌아와 〈탕고(湯誥)〉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이훈

 

【이훈(伊訓)】

『成湯旣沒하시니 太甲元年에 伊尹이 作伊訓, 肆命, ±3后하니라』

『 성탕(成湯)이 별세하자, 태갑(太甲) 원년(元年)에 이윤(伊尹)이 〈이훈(伊訓)〉과 〈사명(肆命)〉과

〈조후(±3后)〉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태갑

 

【태갑(太甲)】

『太甲旣立하여 不明이어늘 伊尹이 放諸桐이러니 三年에 復歸于¨]하여 思庸이어늘 伊尹이 作太甲三篇하니라』

『 태갑(太甲)이 즉위하여 밝지 못하자, 이윤(伊尹)이 동(桐)땅에 추방하였는데, 삼(三)년만에 다시 박읍(¨]邑)으로

돌아와 도(道)를 생각하므로 이윤(伊尹)이 〈태갑(太甲)〉 삼편(三篇)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함유일덕

 

【함유일덕(咸有一德)】

『伊尹이 作咸有一德하니라』

『 이윤(伊尹)이 〈함유일덕(咸有一德)〉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반경

 

【반경(盤庚)】

『盤庚五遷하고 將治¨]殷하니 民咨胥怨이어늘 作盤庚三篇하니라』

『 반경(盤庚)이 다섯번 천도(遷都)하고 장차 박은(¨]殷)에 환도(還都)하려 하자, 백성들이 서로 원망하므로

〈반경(盤庚)〉 삼편(三篇)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열명

 

【열명(說命)】

『高宗이 夢得說하고 使百工營求諸野하여 得諸傅巖하고 作說命三篇하니라』

『 고종(高宗)이 꿈에 부열(傅說)을 얻고는 백공(百工)들로 하여금 들에서 경영하여 찾게 하였는데 부암(傅巖)에서

얻었다. 그리하여 〈열명(說命)〉 삼편(三篇)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고종융일

 

【고종융일(高宗훏日)】

『高宗이 祭成湯할새 有飛雉 升鼎耳而º/어늘 祖己訓諸王하여 作高宗훏日, 高宗之訓하니라』

『 고종(高宗)이 성탕(成湯)에게 제사할 적에 꿩이 날아와 솥귀로부터 올라와 울므로 조기(祖己)가 왕(王)을 훈계하여 〈고종융일(高宗훏日)〉과 〈고종지훈(高宗之訓)〉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서백감려

 

【서백감려(西伯戡黎)】

『殷始咎周러니 周人乘黎어늘 祖伊恐하여 奔告于受하여 作西伯戡黎하니라』

『 은(殷)나라가 처음 주(周)나라를 미워하였는데 주(周)나라 사람이 여(黎)나라를 이기자, 조이(祖伊)가 두려워하여

달려가 수(受)에게 고하였다. 그리하여 〈서백감려(西伯戡黎)〉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미자

 

【미자(微子)】

『殷旣錯天命이어늘 微子作誥父師少師하니라』

『 은(殷)나라가 천명(天命)을 어지럽히자, 미자(微子)가 고(誥)를 지어 부사(父師)와 소사(少師)에게 말하였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태서

 

【태서(泰誓)】

『惟十有一年에 武王伐殷이러시니 一月戊午에 師渡孟津하여 作泰誓三篇하니라』

『 십일(十一)년에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정벌하였는데, 일(一)월 무오일(戊午日)에 군사가 맹진(孟津)을 건너

가자 〈태서(泰誓)〉 삼편(三篇)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목서

 

【목서(牧誓)】

『武王이 戎車三百兩과 虎賁三百人으로 與受戰于牧野할새 作牧誓하니라』

『 무왕(武王)이 융거(戎車) 삼백(三百) 량과 호분(虎賁) 삼백(三百) 명으로 수(受)와 목야(牧野)에서 싸우면서

〈목서(牧誓)〉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무성

 

【무성(武成)】

『武王이 伐殷할새 往伐歸獸하고 識其政事하여 作武成하니라』

『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정벌할 적에 가서 정벌하고 마소를 돌려보낸 다음 좋은 정사(政事)를 기록하여

〈무성(武成)〉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홍범

 

【홍범(洪範)】

『武王勝殷하시고 殺受立武庚하고 以箕子歸하여 作洪範하니라』

『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이긴 뒤에 수(受)를 죽이고 무경(武庚)을 세우고 기자(箕子)를 데리고 돌아와

〈홍범(洪範)〉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여오

 

【여오(旅獒)】

『西旅獻獒어늘 太保作旅獒하니라』

『 서려(西旅)에서 큰 개를 바치자, 태보(太保)가 〈여오(旅獒)〉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금등

 

【금등(金¦$)】

『武王有疾이어시늘 周公이 作金¦$하니라』

『 무왕(武王)이 병환이 있으므로 주공(周公)이 〈금등(金¦$)〉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대고

 

【대고(大誥)】

『武王崩한대 三監及淮夷叛이어늘 周公이 相成王하여 將黜殷할새 作大誥하니라』

『 무왕(武王)이 승하하자, 삼감(三監)이 회이(淮夷)와 더불어 반란하였으므로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도와

장차 은(殷)나라를 내치려 하면서 〈대고(大誥)〉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미자지명

 

【미자지명(微子之命)】

『成王이 旣黜殷命하여 殺武庚하고 命微子啓하여 代殷後할새 作微子之命하니라』

『 성왕(成王)이 이미 은(殷)나라 명(命)을 내쳐 무경(武庚)을 죽이고는 미자계(微子啓)를 명하여 은(殷)나라 뒤를

대신하게 하면서 〈미자지명(微子之命)〉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강고

 

【강고(康誥)】

『成王이 旣伐管叔蔡叔하고 以殷餘民으로 封康叔할새 作康誥, 酒誥, 梓材하니라』

『 성왕(成王)이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정벌하고 은(殷)나라의 남은 백성들을 강숙(康叔)에게 봉하면서

〈강고(康誥)〉와 〈주고(酒誥)〉•〈재재(梓材)〉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소고

 

【소고(召誥)】

『成王在豊이러니 欲宅洛邑하여 使召公先相宅하여 作召誥하니라』

『 성왕(成王)이 풍(豊)에 있으면서 낙읍(洛邑)에 거하고자 하여 주공(周公)으로 하여금 먼저 집터를 보게 하였다.

그리하여 〈소고(召誥)〉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낙고

 

【낙고(洛誥)】

『召公旣相宅이어늘 周公往하여 經營成周하고 使來告卜하여 作洛誥하니라』

『 소공(召公)이 이미 집터를 보자, 주공(周公)이 가서 성주(成周)를 경영하고 사람을 보내와 점괘를 아뢰어

〈낙고(洛誥)〉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다사

 

【다사(多士)】

『成周旣成에 遷殷頑民할새 周公以王命誥하여 作多士하니라』

『 성주(成周)가 이미 이루어지자, 은(殷)나라의 완민(頑民)을 옮길 적에 주공(周公)이 왕명으로써 고하여

〈다사(多士)〉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무일

 

【무일(無逸)】

『周公이 作無逸하니라』

『 주공(周公)이 〈무일(無逸)〉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군석

 

【군석(君奭)】

『召公爲保러니 周公爲師하여 相成王爲左右한대 召公不說이어늘 周公이 作君奭하니라』

『 소공(召公)이 태보(太保)가 되었는데 주공(周公)이 태사(太師)가 되어 성왕(成王)을 도와 좌우(左右)가 되자,

소공(召公)이 기뻐하지 않으므로 주공(周公)이 〈군석(君奭)〉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채중지명

 

【채중지명(蔡仲之命)】

『蔡叔이 旣沒이어늘 王命蔡仲하여 踐諸侯位하여 作蔡仲之命하니라』

『 채숙(蔡叔)이 죽자, 왕(王)이 채중(蔡仲)을 명하여 제후(諸侯)의 지위에 오르게 하면서 〈채중지명(蔡仲之命)〉

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다방

 

【다방(多方)】

『成王이 歸自奄하여 在宗周하여 誥庶邦하여 作多方하니라』

『 성왕(成王)이 엄(奄)나라로부터 돌아와 종주(宗周)에 있으면서 여러 나라를 가르쳐 〈다방(多方)〉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입정

 

【입정(立政)】

『周公이 作立政하니라』

『 주공(周公)이 〈입정(立政)〉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주관

 

【주관(周官)】

『成王이 旣黜殷命하고 滅淮夷하고 還歸在豊하여 作周官하니라』

『 성왕(成王)이 은(殷)나라 명(命)을 내치고 회이(淮夷)를 멸한 다음 풍(豊)땅으로 돌아와 〈주관(周官)〉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군진

 

【군진(君陳)】

『周公이 旣沒에 命君陳하여 分正東郊成周하여 作君陳하니라』

『 주공(周公)이 별세하자, 군진(君陳)을 명하여 동교(東郊)인 성주(成周)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면서

〈군진(君陳)〉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고명

 

【고명(顧命)】

『成王將崩에 命召公畢公하여 率諸侯하여 相康王할새 作顧命하니라』

『 성왕(成王)이 장차 승하하려 할 적에 소공(召公)과 필공(畢公)을 명하여 제후들을 거느리고 강왕(康王)을 돕게

하였다. 그리하여 〈고명(顧命)〉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강왕지고

 

【강왕지고(康王之誥)】

『康王이 旣尸天子하고 遂誥諸侯하여 作康王之誥하니라』

『 강왕(康王)이 이미 천자(天子)의 지위에 오르고 제후들을 가르쳐 〈강왕지고(康王之誥)〉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필명

 

【필명(畢命)】

『康王이 命作冊畢하여 分居里하고 成周郊하여 作畢命하니라』

『 강왕(康王)이 책(冊)을 지어 필공(畢公)을 명해서 거주하는 마을을 분별하고 성주(成周)의 교(郊)를 이루게 하여

〈필명(畢命)〉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군아

 

【군아(君牙)】

『穆王이 命君牙하여 爲周大司徒할새 作君牙하니라』

『 목왕(穆王)이 군아(君牙)를 명하여 주(周)나라의 대사도(大司徒)를 삼으면서 〈군아(君牙)〉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경명

 

【경명(¢(命)】

『穆王이 命伯¢(하여 爲周太僕正할새 作¢(命하니라』

『 목왕(穆王)이 백경(伯¢()을 명하여 주(周)나라의 태복정(太僕正)을 삼으면서 〈경명(¢(命)〉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여형

 

【여형(呂刑)】

『呂命하고 穆王訓夏贖刑하여 作呂刑하니라』

『 여후(呂后)를 명하여 사구(司寇)를 삼고 목왕(穆王)이 하(夏)나라의 속형(贖刑)을 가르쳐 〈여형(呂刑)〉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문후지명

 

【문후지명(文侯之命)】

『平王이 錫晉文侯秬鬯圭瓚하고 作文侯之命하니라』

『 평왕(平王)이 진문후(晉文侯)에게 검은 기장으로 빚은 울창주(鬱鬯酒)와 규찬(圭瓚)을 하사하고

〈문후지명(文侯之命)〉을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비서

 

【비서(費誓)】

『魯侯伯禽이 宅曲阜한대 徐夷쯂興하여 東郊不開어늘 作費誓하니라』

『 노후(魯侯)인 백금(伯禽)이 곡부(曲阜)에 거하자 서이(徐夷)가 함께 일어나 동쪽 교외가 열리지 않으므로

〈비서(費誓)〉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서경소서 ; 진서

 

【진서(秦誓)】

『秦穆公이 伐鄭이러니 晉襄公이 帥師敗諸¶?어늘 還歸하여 作秦誓하니라』

『 진목공(秦穆公)이 정(鄭)나라를 정벌하자, 진양공(晉襄公)이 군대를 거느려 효산(¶?山)에서 패퇴시켰다.

목공(穆公)이 돌아와 〈진서(秦誓)〉를 지었다.』

 

*서경 ; 부록 ; 상서백편이동표

 

▣ 상서백편이동표(尙書百篇異同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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