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신화(檀君神話)에 나오는, 하늘을 다스리는 천제(天帝). 환웅(桓雄)의 아버지이며, 단군의 할아버지이다. 인간 세상을 탐내던 아들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보내어 다스리게 하였다고 한다.
우리 민족의 건국시조 신화라고 일컬어지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인용된 ≪고기 古記≫ 및 후대에 이 두 사서의 영향을 받아 고조선의 역사를 기술한 ≪동국여지승람≫과 ≪응제시주 應制詩注≫ 및 기타 사서에 보인다.
이들에 의하면, 환인은 환웅(桓雄)의 아버지이며, 단군(檀君)의 할아버지로 하늘나라의 신(釋帝·天神·上帝)이다. 환인의 의미와 성격은 한자(漢字)의 차용과 불교문화의 융성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글자 자체의 의미로, 환인은 제석환인(帝釋桓因)의 약자로서 석가제바인제(釋迦提婆因提)·석가인다라(釋迦因陀羅)·석가라인다라(釋迦羅因陀羅)·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석제(釋帝)·제석(帝釋) 등으로 불린다.
한편, 환인은 베다신화(Veda神話)에서 제일 유력한 신으로서 인드라신(Indra神)을 말한다. 인드라신은 불교가 성립된 뒤, 범천(梵天)과 함께 불법의 수호신으로 그 기능이 변모되었으며, 동방(東方)을 지키는 신, 즉 수미산(須彌山, Sumeru) 정상에 거주하며 도리천(忉利天, Trayastrimsa)을 주재하는 임금이다.
따라서 환인인드라는 천신이며 상제로서 광명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환인은 불교용어로서 제석을 뜻한다.
또한 환인은 음(音) 자체가 가진 일정한 의미가 있다. 한민족문화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지고(至高)의 개념 또는 천제·상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한님’과 음이 비슷하다.
즉, ‘桓’은 ‘한’의 전음(轉音)이고, ‘因’은 ‘임(님)’이다. 한은 고대음에 있어 신의 이름, 사람의 칭호, 족의 칭호, 위호(位號), 나라이름, 땅이름, 산이름 등에 사용되어 지고· 최고·진리·완전·광명(태양)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임(님)은 가장 구원(久遠)의 존재, 지고의 존재, 숭배의 대상을 나타내는 우리말이다. 그러므로 환인의 말뜻은 한님 또는 하늘님이다. 특히, ‘환하다[光明]’에 의미를 많이 둘 경우, 환인-한님-햇님은 자연현상에서는 태양이며, 동시에 왕이며 또 신을 뜻한다.
결국, 환인은 단군신화가 처음 완성될 당시에는 자체의 음과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언어를 매개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원모습[原形]이 변화[變形]되면서 불교식으로 선택, 윤색된 용어이다. 그러나 빛을 숭배하는 절대적인 이념 또는 그 대상인 실존재(實存在)로서 태양신이 되어 하늘숭배사상의 대상이다.
천신, 하늘님, 하늘나라의 임금인 환인은 단군신화에서 하늘세계에서 이루어내는 모든 중요하고 시원적인 행위를 담당하였다.
일반적으로 문화영웅신화에서는 아버지[父]와 아들[子]이 대립적이고 반역적(叛逆的)인 관계로 나타나는데 비해, 단군신화에서 환인과 환웅의 관계는 상호협조, 즉 조화로운 관계로 나타난다.
첫번째 작업으로, 환인은 아들 환웅이 하늘 아래의 인간세상에 뜻을 두고 있음을 알고, 그 의지를 승낙해줌으로써 환웅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해 주었다.
두번째 작업으로, 환인은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환웅의 의지가 구현될 장소를 선택하는데 직접 참여했으며, 나아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지도이념을 환웅에게 부여하였다.
세번째 작업으로, 환인은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인간세계를 다스리기 위해 하강하는 환웅에게 정통성을 부여하였다. 이처럼 환인은 단군신화의 전반부에서 승낙과 협조를 통해 환웅의 행위를 도왔으며, 능동적으로 행위에 참여하였다.
이와 같은 환인의 성격과 기능은 단군신화와 그로 대표되는 한민족문화가 태양을 숭배하는 광명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집단의 구체적 의지와 적극적인 실천에 의해 성립된 역사적 사실을 상징한다.
환인(桓因)은 신화 상의 신격(神格) 인물로 환웅의 아버지로 전해진다. ‘단인(檀因)’이라고도 한다. 한민족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 등장하며 환웅이 인간세상으로 내려가 세상을 다스릴 것을 허락하고 천부인 3개를 주었다고 한다
《삼국유사》, 《제왕운기》, 《조선왕조실록》 등에 환인에 대한 짧은 기록이 전해지며, 일반적으로 《삼국유사》의 기록이 널리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환인은 하늘의 신(帝釋天)이라고 한다. 서자(庶子)인 환웅이 땅을 내려다보면서 인간세상에 뜻을 두는 것을 알게 된 환인은 땅의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 보았고, 그곳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다(弘益人間)’고 여겼다. 이에 환웅에게 천부인 3개를 내려주며 땅으로 내려가도록 허락하였다.
한편 《제왕운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는 환인이 상제환인(上帝桓因)이라 한다. 환웅이 삼위태백으로 내려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겠다고 말하자 환인은 이를 허락하고 천부인 3개를 내려주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환인, 환웅, 단군의 신주를 모신 삼성당(三聖堂) 또는 삼성사가 황해도 문화현 구월산에 있었다.
환인의 의미
《삼국유사》의 제석(帝釋)이라는 표현은 불교에서 말하는 제석환인(帝釋桓因, 인드라)에서 차용된 것으로 보이며 이를 원래의 신화에 불교적 색채가 가미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원래의 신화에서도 환인(桓因)이라는 명칭은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아 이를 천신(天神, 하늘님/한님)이나 태양신(환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불교 용어로서의 환인(桓因)은 불교 우주론에서 6욕천 중 제2천인 도리천(33천)의 왕인 제석천(帝釋天)의 다른 이름이다. 제석천의 산스크리트어 원명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산스크리트어: Śakra Devānām-indra, 팔리어: Sakka devānam indo)인데 '데바들의 왕, 샤크라(Śakra, lord of the devas)'를 뜻한다. 음역하여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라고도 하며, 이것을 줄여서 석제환인(釋提桓因) 또는 석가제바(釋迦提婆)라고도 한다.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에서 석가는 샤크라(Śakra)의 음역어인데, 샤크라는 힌두교의 신 인드라(Indra)의 여러 다른 이름들 가운데 하나이다. 제환은 데바남(Devānām)의 음역어인데 '데바들의(of devas, of gods, of demigods)'를 뜻하며, 제바(提婆)라고도 음역하며 보통 의역하여 천(天)이라고 한다. 인다라는 인드라(indra)의 음역어인데 우두머리(chief) 또는 왕(king)을 뜻한다. 따라서 석가제환인다라는 "데바들의 왕, 샤크라" 또는 "신[天]들의 제왕, 샤크라"를 뜻한다. 환인(桓因)은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에서 '환인'을 추출하여 약어로 삼은 것으로, 따라서 환인이라는 명칭은 당연히 원래의 명칭이 뜻하는 바인 데바들의 왕 또는 신들의 제왕을 의미한다.
한편 제석(帝釋)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천제(天帝) 샤크라(Sovereign Śakra)' 즉 '신[天]들의 제왕[帝], 샤크라[釋](king of the gods, Śakra)'이며, 산스크리트어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 Devānām-indra, 釋迦提桓因陀羅)의 의역어라 할 수 있다. 즉, 환인은 산스크리트어 원명의 음역어의 줄임말이고, 이에 비해 제석 또는 제석천은 의역어이다. 또한 제석천은 간단히 천주(天主)라고도 하는데,
이것도 역시 '데바[天]들의 왕[主]'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인드라(Indra)를 의역한 것이다.
환웅(桓雄)
천왕(天王), 신웅(神雄), 단웅천왕(檀雄天王)
우리나라 단군 신화에 나오는 인물.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檀君)의 아버지라고 하는 신화상의 인물. 환인(桓因)의 아들이며 단군(檀君)의 아버지로, 천부인(天符印) 세 개와 부하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건설하고, 웅녀(熊女)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
참고어 단군 (檀君) , 환인 (桓因)
〈삼국유사〉에는 환웅천왕·신웅 등으로, 〈제왕운기〉에는 단웅천왕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고기 古記〉에 따르면 환웅은 하느님 환인의 아들로서 늘 인간세상에 뜻을 두고 있었는데, 이를 알아차린 아버지가 천부인 3개를 주며 인간세상에 내려가서 다스리게 했다.
무리 3,000명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밑에 내려온 환웅은 그곳을 신시라 이르고,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 등 인간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며 교화했다. 그때 곰과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이 되기를 원해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는데 이를 잘 참아낸 곰만 여인으로 변할 수 있었다. 환웅이신단수 아래서 늘 아이를 갖기를 비는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가 단군왕검이었다고 한다.
이는 초인간적인 신화로서, 남만주와 한반도에서 청동기문화가 시작되고 집단의 이동과 정복이 진행되면서 국가가 성립하던 상황이 신화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환웅과 곰이 결합하는 구성을 천신과 지모신을 숭배하는 집단간의 결합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내용]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환웅(桓雄)·천왕(天王)·신웅(神雄) 등으로, 『제왕운기(帝王韻紀)』에는 웅(雄)·단웅천왕(檀雄天王)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고기(古記)』에 의하면, 하느님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여러 아들 중의 하나라는 뜻)로서 자주 천하(天下)를 차지할 뜻을 가지고 사람이 사는 세상을 탐내 구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그 뜻을 알아차린 아버지로부터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고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이곳에 신시(神市)를 열었다. 그리고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과 수명·질병·형벌·선악 등을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리며 교화하였다.
이 때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호랑이와 곰 한 마리에게 쑥 한줌과 마늘 20개를 주었다. 그 결과, 곰이 변한 여자(熊女)와 잠시 사람으로 변해 혼인하여 단군(檀君)을 낳았다고 한다.
한편, 이와는 달리『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환웅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의 몸으로 변하게 한 다음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게 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단군신화(檀君神話)를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특히 단군신화 중 불교적 표현이라고 생각되는 환인(桓因)이나, 도교적 표현이라고 생각되는 풍백·우사·운사 등의 사용이 후대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단군신화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제왕운기』에서도 환인을 상제(上帝)와 함께 석제(釋帝)라고 표현하고 있어 불교의 산스크리트어인 ‘Sakrodevanam Indrah’라는 말을 한자로 음역한 ‘석제환인(釋帝桓因)’에서 나온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단군신화가 불교나 도교가 수용된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신화 생성 후 구전(口傳)되어 오던 것이 문자화되면서 후대적 표현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환인이라는 단어는 하늘님·천신(天神)이라는 뜻을 문자화하던 시기에
불교 혹은 도교의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
내용에 있어서 환웅의 하강은 기존질서에서 일정한 자기위치의 확보가 어려운 존재가 낡은 질서를 탈피하여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이주자의 모습으로 해석된다. 또한 상대적으로 하늘의 능동적인 위치에 의해 삼위태백(三危太伯)이라는 하나의 공간이 선택받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즉, 하늘로부터 하강한 수직적 이주자로서 인간세상을 구하겠다는 행위의 방향과 목적을 설정하여 자기확인 작업을 완료하고, 다시 환인으로부터 자기행위의 정통성을 부여받아 신시를 건설하고, 곰과 호랑이에게 통과의례를 부과하여 기존질서·토착문화집단으로 하여금 환웅 자신의 질서에 적응하게 한 뒤에, 단군을 탄생시켜 질적 변화를 꾀하였다.
환웅의 구체적인 성격은 일차적으로 ‘桓’자의 어의와 의미가 하늘 또는 빛(光明)으로 태양신(太陽神) 내지 천신 또는 천왕을 뜻한다. 그리고 ‘雄’은 글자 자체가 수컷을 나타내며, 웅녀와 혼인한 것으로 보아서도 남신(男神)임을 뜻한다.
이처럼 환웅은 하늘〔天〕·빛·남성·부신(父神)의 성격을 가진 존재인데 비해, 곰은 땅〔地〕·암흑·여성·모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환웅은 유목문화집단(遊牧文化集團)을 상징하고, 곰은 농경문화집단(農耕文化集團)을 상징한다.
따라서 환웅의 하강설화(下降說話)는 환웅으로 대표되는 하늘숭배사상의 문화집단과 곰으로 상징되는 지모신신앙(地母神信仰)의 문화집단이 결합하는 것을 나타낸다.
결국, 환웅은 단군신화 속에서 실질적인 주체자로서 자기의지와 실천력을 바탕으로 새 질서를 창조하였다. 이는 환웅으로 상징되는 문화집단의 정착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함과 동시에 정착과정에서 발생한 문화의 성격을 나타낸 것이다.
이태백의 시에 "淸風明月不用一錢買" "청풍명월은 일전이라도 돈을 들여 사는 것이 아니다"라 하였고 소동파의'적벽부'에서는 이르기를 "저 강상(江上)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이여, 귀로 듣노니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노니 빛이 되도다 . 갖자해도 금할 이 없고 쓰자 해도 다할 날이 없으니 이것은 조물의 무진장이다" 라고 하였으니 소동파의 뜻은 대개 이태백의 시구에서 나온 것이다. 무릇 바람과 달은 돈을 들여 사지 않을 뿐더러 그것을 아무리 가져도 누가 금할 이가 없는 것이니, 이는 이태백과 소동파의 말이 진실이다. 그러나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몇 사람 되지 않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도 일 년 동안에 또한 몇 날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없이 한가하게 있으면서 돈을 들여 사는 것도 아니요 게다가 그것을 가진다 하여 누가 갖지 못하게 금할 이도 없는 이 청풍명월을 보고서도 즐길 줄을 모른다면 이는 자기 스스로 장애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사람은 이미 이름 지어진 세상에 새로 이름 하나를 받아 세상에 태어 난다. 그리고 그이름이 세상에 아름답게 남겨지기를 꿈꾸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미 이름 지어진 세상이 답답하여 속세와 불화하여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름을 남기기보다 이름을 지우며 사는 것이 더 아름다운 인생이라 느끼며 산다. 이런 사람들은 이름이 있는 세상에서 이름이 없는 여백을 살고자 한다. 그들은 즐거운 은둔을 꿈꾸며 산다.
허균의 <한정록(閑情錄)>은 세상에 자유를 그리는 운둔자의 독서장이다.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나 조선시대를 살지 않은 시대의 불화자(不和者) 허균이 꿈꾼 삶의 그림이자 계획서이며 실천서이다. 은둔(隱遁),고일(高逸),한적(閑適),퇴휴(退休)에서는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자족하며 살아가는 은둔자의 유유자적한 모습이 그려진다. 유흥(遊興),아치(雅致),숭검(崇儉),임탄(任誕),광회(曠悔),유사(幽事), 명훈(名訓),정업(靜業),현상(玄賞),청공(淸供),섭생(攝生)에서는 산림에서 줄겁게 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옮기고 있다. 그는 깨끗한 글씨로 고서의 은둔자 이야기 들을 베껴 두곤 했는데 이것이 후일 <한정록(閑情錄)> 이 되었다.
"아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찌 벼슬을 더럽다 하여 버리고 산람에서 오래 살기를 바라겠는가. 그러므로 다만 그 도가 세속과 맞지 않고 그 운명이 때와 어긋난다 하여 고상함을 빌미로 세상을 피한 자의 그 뜻은 역시 비장한 것이다. 다음 날 언젠가 그 숲 아래에서 속세와 인연을 끊고 세상을 버린 선비를 만나게 될 때에 이 책을 꺼내 가지고 서로 즐겨 읽는다면 내 타고난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
<숨어사는 즐거움>은<한정록>을 읽기 쉽게 한글로 풀고 오늘날의 정서와 지나치게 동떠러진 이야기나 자질구레한 고사 등을 추려 내어 우리도 허균과 벗하여 독서할 수 있도록 옮긴이가 엮은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보다 '우리가 어떻게 있는가?'가 진정으로 중요한 질문임을 발견하게 된다. 은둔도 삶의 태도이다. 속세의 규범들은 하늘이 내린 천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사물들에 인위적인 구분을 만들어 가둔다. 그것에서 벗어나 사물들을 자유롭게 하고 각각이 자유롭되 서로 함께 있어도 해치지 않는 이름 없는 세계를 여는 태도가 바로 은둔이다. 그래서 숨어사는 자가 된다 함은 무진장한 만물의 다채로움으로 활짝 열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송나라 사마광이 말하였다. 정신과 육체가 피로할 적에는 낚싯대를 던져 고기를 낚거나, 옷자락을 잡고 약을 캐거나,개천물을 돌려 꽃밭에 물을 대거나, 도끼를 들어 대나무를 쪼개거나,뜨거운 물로 손을 씻거나, 높은 곳에 올라 사방을 관망하거나, 이리저리 한가로이 거닐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기거나 하면 좋다. 그때 밝은달이 제때에 떠오르고 맑은 바람이 저절로 불어오면 움직이고 멈추는 데 구애가 없어서 나의 이목폐장(耳目肺腸)이 모두 나의 자유가 되므로 마냥 고상하고 활발하기만 하여,이 하늘과 땅 사이에 또 다시 그 어떤 낙이 이를 대신할 수 있을지도 잊게 된다.
이름에 사물을 묶어놓지 않는 자유자적한 삶은 자연을 벗삼아 자연을 사람같이 대하고 인간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사람을 자연을 대하는 것처럼 대한다. 빛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향이 되는 것이 막힘이 없다. 자유로운 눈으로 사물을 만나면 만물은 본성대로 자기를 바꿔 가며 춤추기 시작한다. 각기 흥에 겨워 들썩여도 다른이의 흥겨움을 방해하지않고 서로의 흥취에 들고 남이 장애가 없다.
임탄편에 나오는 일화를 보면, 왕휘지는 산음(山陰)에 살았다. 밤에 큰 눈이 내렸는데 잠이 깨자 방문을 열어 놓고 술을 따르라 명한 뒤, 사방을 보니 온통 흰빛이었다. 일어나서 거닐며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외다가 갑자기 벗인 대규 생각이 났다. 이때 대규는 섬계에 있었다. 그는 작은 배를 타고 밤새 가서 대규 집 문에 이르렀다가 들어가지 않고 돌아섰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그는 답한다. "내가 흥이 일어 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가니, 어찌 꼭 대규를 보아야 하는가?." 만물은 만남도 헤어짐도 없이 저절로 함께 있는 벗으로 사귀니 은둔자의 삶은 외로울 틈이 없다.
예찬의 집에 청비각이 있었는데 깊고 아늑하여 속세의 티끌이 없었다. 그 안에 수천 권의 서책이 있었는데 모두 그가 손수 교정한 것이었고, 경사제자(經史諸子)로부터 불가와 도가의 글까지 모든 서책을 날마다 읊조리곤 하였다. 집 안에는 예스러운 골동품과 희귀한 거문고가 좌우에 널려 있고, 집 주위에는 송계난죽(松桂蘭竹)이 빙 둘러 있었다. 집 밖에는 높은 나무와 긴 대나무들이 깊고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비가 그치고 바람이 자면 그는 지팡이와 신발을 끌고 그 주위를 마음 내키는 대로 산보하면서 때로 시구를 읊조리며 즐겼다. 그래서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그가 세속을 벗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은둔이라고 하면 세상을 원망하여 속세를 등지고 혼자서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은둔을 위해서 반드시 깊은 산중이나 동굴 같은 은신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속세 밖에서 속세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거리를 두는 것, 삶을 명랑하게 만드는 여백 으로서의 세계를 마음에 품는 것이 바로 "세속에 육침(陸沈)하며 이 세상을 피하노라, 금마문(金馬門) 안 궁궐 속에서도 세상 피하고 몸 보존할 수 있는데, 어찌 꼭 깊은 산속 쑥대 집 밑이어야 하리" 라고 노래한 동박삭의 지혜일 것이다.
조선은 불교를 숭배하는 것 자체가 탄핵의 대상인 유교 사회였다. 그러나 허균은 유가를 멀리하고 불가와 도가를 가까이 하였다. 이름 높은 고승 사명당과 형제지간처럼 막역한 사이였으며, 불가를 가까이 한다는 죄목으로 삼척부사로 부임한 지 십삼 일 만에 파직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허균은 파직 소식을 접하고서도 "그대들은 그대들의 법이나 써야 할 것이고 나는 내 인생을 나대로 살리라"라고 담담히 밝힌다. 허균은 실제로 서산대사로부터 출가 권유를 받기도 하지만 불가의 법에 몸을 담는 것 또한 택하지 않는다. 그는 유가의 법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불가의 법 아래 있기를 원한 게 아니라, 법에서 벗어나 본성대로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는 세상을 버리는 은둔자가 아니라 세상을 사랑한 은둔자였다. 세번의 귀양과 여섯 번의 파직을 당하는 속에서도, 허균은 세상을 더욱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지조 높은 숨어사는 자로서 자기를 세상에 맞추기보다는 세상을 보다 자유롭게 만들고자 했다. 이 같은 허균의 면모는 <홍길동전>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힘은 민중에 있다." "천하에 두려워할 바는 백성뿐이다. " (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 - '호민론(豪民論)' 호민론<豪民論>,유재론<遺才論> 등의 저술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책들을 통해 그는 인재등용에 있어 신분 제한의 철폐,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행동으로 나서는 백성인 호민을 두려워할 줄 아는 왕도정치 같은 혁명적인 정치를 주장하였다. 비록 역사는 이 운둔자로부터 달아났으나 그 스스로 그린 세상은 허균을 버리지 않았다. 빼어난 작품들을 저술하는 속에서, 그는 속박 없는 삶에 즐거이 머물 줄 아는 창조적 은둔자였다. 그에게서 탄생한 자유로운 평등 사회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숨 쉴 수 있게 하는 깊은 산중이 되었다. "보지 못했던 책을 읽을 때 에는 마치 좋은 친구를 얻은 것 같고 이미 읽은 책을 볼 때에는 마치 옛 친구를 만난 것 같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은둔을 즐기는 법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의 공통된 병통은 나이가 들수록 꾀만 깊어지는 데 있다. 무릇 부싯돌은 금방 꺼져 버리고 황하의 물은 수백 년 만에 한 번씩 맑아지는 법이다. 그러므로 세속에서 살려 하거나 세속을 떠나려 하거나 간에 모름지기 조화의 기미를 알고 멈춤으로써 조화와 맞서 권한을 다투려 하지 말고 조화의 권한은 조화에게 돌려주고, 자손을 위해서는 복을 심어 자손의 복은 자손에게 물려준 뒤에 물외(物外)의 한가로움에 몸을 맡기고 눈앞의 맑은 일에 유의할 것이다.
1975년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한 법정 스님은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제자들에게조차 거쳐를 알리지 않고 강원도 산골 오두막, 문명의 도구가 없는 곳에서 줄곧 혼자 생활을 해 왔다. "내가 산중에 혼자 지내면서도 기죽지 않고 나날이 새로울 수 있는 것은 무었인가 나 자신을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 하는 스님은 여러 차례 '곁에서 나 자신을 받쳐 주는 친구' 중의 하나로 이 책을 꼽았다. 산문집 <오두막 편지>의 '허균의 시비 앞에서' 란 글에서 법정 스님은 허균의 유적지를 돌아다본 경험을 들려주며 몇 번이고 읽었던 책을 또다시 꺼내 들었다. "요즘 나는 등잔불 아래서 허균의 <한정록>을 다시 펼쳐 들고, 옛사람들이 자연과 가까이하며 조촐하게 살던 안빈락도(安貧樂道)의 삶을 음미하고 있다. 몇 해 전에 이 책을 처음 읽고 나서부터 허균을 좋아하게 되었다. 우선 사나이다운 그의 기상과 독서량에 압도되었고 임진왜란을 전후한 파란만장한 생애가 불우했던 지난 왕조사를 되돌아보게 했다. 어느 시대이고 귀재들은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내가 세상과 어긋나 죽거나 살거나 얻거나 잃거나 간에 내 마음에는 조금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내가 오늘날 미움을 받아 여러 번 명예를 더럽혔다고 탄핵을 받았지만 내게는 한 점의 동요도 없습니다. 어찌 이런 일로 내 정신을 상하게 하겠습니까.'
한 친구에게 보낸 허균의 편지 구절이다.
그는 광해군 10년 역모를 꾸몄다 하여 처형된다. 그의 나이 50세 때이다. 허균은 두 차례나 북경에 사신으로 따라가 가재를 털어 4천권이나 되는 많은 책을 구해 온다. 그의 탐구 정신과 방대한 독서량의 원천이 여기에 있다.
요즘 청치인들의 행태을 보면서
안분지족<安分知足> 안빈락도<安貧樂道>의 삶을 살 수 없을까
다시한번 되새기게 된다.
<숨어사는 즐거움>의 토대가 되는 <한정록>은 원래 총 17권 4책으로 이루어진다. 은둔자의 정신적 물질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교양서로 중국의 은둔자들에 대한 자료와 농사법에 관한 정보도 수록하고 있다. 이 책은 1961년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영인한 성소부부고의 부록으로 실렸으며, 1980년 아세아문화사에서 간행한 <허균전서>에도 수록되었다. 1981년 민족문화추진위원호에서 국역하였다. 1610년(광해군2년) "은둔""한적""퇴휴""청사"의 4문으로 편집하였다가, 1618년 내용을 증보하여 16문으로 구성하고 부록을 덧붙였다. 역자 김원우는 이를 바탕으로 현대의 감각에 맞게 새롭게 추려 옮겼으며, 솔에서 <숨어사는 즐거움-은둔과 풍류 이야기> 라 이름 붙여 1996년 7월 발행하였다. 허균은 당대 뛰어난 문장가였음에도 역모의 죄로 죽임을 당하여 그 글이 많이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숨어사는 즐거움>은 더욱 고마운 책이다. 솔은 1997년 5월 민족문화추진위원회가 번역한 <한정록1.2>를 펴냈다.
2-3. 간병증(肝病證) 사기[邪]가 간에 있을 때 양쪽 옆구리가 아픈 것은 보통 한사[寒]에 상하여 나쁜 피가 속에 생기기 때문이다. 간병에 걸린 사람은 양쪽 옆구리가 아프면서 아랫배까지 당기고 화를 잘 낸다.
2-4. 간병허실(肝病虛實) 간기가 허하면 무서워하고, 간기가 실하면 화를 낸다. 간이 실하면 양쪽 옆구리 아래가 아프고, 아랫배가 당기며 화를 잘 낸다.
간이 허하면 눈앞이 침침하여 잘 보이지 않고, 귀가 먹으며 누가 잡으러 오는 것처럼 무서워한다.
3. 심장(心臟) 한의학에서는 ‘심장’을 생명의 근원처, 또는 정신이 깃든 곳, 지혜가 나오는 곳으로 간주한다.
『동의보감』 ‘심장’ 문(門)에서는 ‘간’ 조와 마찬가지로 우선 심의 해부학적 기초와 오행의 상응 관계에서
심장과 같이 분류되는 사물 등 이론적 기초를 말한다.
내경편(內境篇) 권4
1. 소변(小便) ‘소변’ 문(門)에서는 오줌이 만들어지는 이치와 오줌이 잘 나오지 않는 병,
오줌이 저절로 흐르는 병, 오줌이 방울방울져서 나오는 임병(淋病) 등 오줌과 관련된 병을 망라한다.
1-1. 소변원위(小便原委) 음식물은 위(胃)에서 소화되어 대장으로 내려가면서 하초의 작용을 받는데,
이때 여과되어 하초에 있는 방광에 스며들어간 즙이 오줌이다. 방광은 진액을 저장하는 곳이며, 오줌은 기의 작용에 따라 나간다.
물은 기의 아들이고, 기는 물의 어머니이므로 기가 가면 물도 가고, 기가 막히면 물도 막힌다.
1-2. 변뇨색(辨尿色) 오줌이 흐린 것은 모두 열(熱)증에 속한다. 오줌이 누런 것은 아랫배에 열이 있기 때문이다. 간에 열이 있으면 오줌이 먼저 누렇게 된다. 오줌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경우 오줌색이 붉은 것은 열이 있기 때문이고, 허연 것은 기가 허하기 때문이다.
1-3. 소변불리(小便不利) 음(陰)이 허하면 오줌 누기가 힘들다. 오줌이 잘 나가지 않는 것은 화(火)가 피를 졸여서 하초에 피가 몹시 적어지고 기가 잘 내려가지 못하여
스며 내려가는 기능이 잘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줌이 잦으면서 잘 나가지 않는 데는 3가지 원인이 잇다. 첫째는 설사를 하여 진액이 적어져서 잘 나오지 않는 것인데,
이때는 설사를 멎게 해야 한다.
둘째는 하초에 열이 몰려서 진액이 잘 돌지 못하기 때문에 잘 나오지 않는 것인데,
이때는 반드시 조금씩 스며 나가게 해야 낫는다.
셋째는 비위의 기운이 잘 돌지 못하여 수분이 돌아가는 길이 통하지 못하고 고르지 못하여,
방광으로 잘 내려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때는 기를 고르게 하여 오줌을 잘 나가게 해야 한다.
1-4. 소변불통(小便不通) 포(胞)의 열이 방광으로 옮겨가면 융(癃)증이 생겨 피오줌이 나오게 된다. 방광이 고르지 못하면 융증이 생긴다. 폐(閉)와 융(癃)은 크게 보면 같은 병이지만 나누어서 보면 폐는 갑자기 생긴 병으로
오줌이 방울방울 떨어지다가 나오지 않는 것인데
민간에서 소변불통이라고 하는 것이고, 융은 오랜 병으로 오줌이 잘 나오지 않고 방울방울 떨어지면서
하루에 수십 번 혹은 백여 번씩 누는 것으로
임(淋)병이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다. 하초에 열이 몰리면 막혀서 오줌이 나오지 못한다.
이때는 오줌이 나오지 않으나 갈증은 없고, 때로 답답하여 안정하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1-5. 전포증(轉暴證) 전포(轉暴)의 증상은 배꼽 아래가 조여드는 것 같으면서 몹시 아프고, 오줌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대체로 오줌을 억지로 참거나 오줌을 누고 싶을 때 빨리 달리거나 배불리 먹은 다음
오줌을 참거나 말을 타고 달리거나 오줌을 참고 성생활을 하면
수기(水氣)가 거슬러 오르고 기가 방광을 압박해서 방광이 뒤틀리면서 잘 펴지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임신부가 전포증이 생기는 것은 본래 몸이 약한 사람, 몹시 우울해 하는 사람, 성질이 조급한 사람,
맛좋은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에게 많이 생긴다.
1-6. 관격증(關格證) 음기가 몹시 성하여 양기와 서로 조화되지 못하는 것을 격(格)이라고 한다.
양기가 몹시 성하여 음기와 서로 조화되지 못하는 것을 관(關)이라고 한다.
음양이 몹시 성하여 서로 조화되지 못하는 것을 관격(關格)이라고 한다.
관격이 되면 제 나이를 다 살지 못하고 죽는다. 관에 걸리면 오줌이 잘 나오지 않고, 격에 걸리면 토한다.
1-7. 소변불금(小便不禁) 유뇨(遺尿)란 오줌이 나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신과 방광이 다 허약하면 방광 속의 기운도 충실해지지 못해서 방광이 스스로 열러 오줌이 나오는데 색이 희다.
이것은 밤에 음기가 왕성해지면 더 심해진다. 하초에 축혈(蓄血)이 있거나 허로(虛勞)로 속이 상하면 오줌이 알지 못하게 저절로 나온다. 한초가 허한(虛寒)하여 수액(水液)을 따뜻하게 해주지 못하면 오줌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한다.
1-8. 제림증(諸淋證) 임(淋)병에 걸리면 오줌에 좁쌀 같은 것이 섞여 나오고 아랫배에서 배꼽까지 당기면서 몹시 아프다. 임병은 모두 신(腎)이 허하고 방광에 열이 있기 때문에 생긴다.
심과 신의 기운이 하초에 몰리면 방광 속이 당겨서 기름이나 피, 모래알 같은 것이 오줌길로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나오려다가 나오지 못하여 오줌이 찔끔찔끔 그치지 않고 나온다.
그리고 심하면 오줌길이 꼭 막혀서 혼절하기도 한다. 소장에 열이 있으면 오줌을 눌 때 아픈데, 아픈 것은 혈림(血淋)이고, 아프지 않은 것은 요혈(尿血)이다.
따라서 만물의 생로병사(生老病死) 등 우주의 순환과 변화는 64괘에 의해서 설명된다. 64괘는 2개의 괘(卦)가 모여 이루어졌다.
하나의 괘를 소성괘(小成卦)라 한다. 소성괘 2개로 겹친 것은 대성괘(大成卦)다. 팔괘가 만물을 상징하기는 해도 그것만으로는 보다 복잡한 변화의 세계를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두 괘가 겹쳐진 것이다. 예를 들자면, 건은 하늘을 상징하고 손은 바람을 상징한다. 하늘만 있거나 바람만 있어서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하늘에 바람이 불어야 변화가 일어난다. 또 바람이 하늘 위에 부느냐, 하늘 아래에 부느냐에 따라 그 변화 현상은 크게 다르다. 괘와 괘끼리 결합해야만 변화가 일어나고 결실이 나타난다. 때문에 팔괘를 두 개씩 겹쳐 64개의 대성괘를 만든 것이다.
이것이 역(易)의 뼈대인 64괘이며, 이에 대한 해설이 바로 『주역(周易)』 이다. 주역이란 모든 만물이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순환하면서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사계절이나 낮과 밤 등은 항상 변화하지만 거기에는 일정한 질서와 법칙이 있다. 이와 같이 음양의 모든 변화과정은 오직 목, 화, 토, 금, 수 오행의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여자는 양기가 턱까지 올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수염이 나지 않으며, 하체의 음의 기운 때문에 월경을 한다.
인체의 털은 양기를 보호 한다.
(눈썹:비장 , 코털:간장 , 겨드랑이털:심장)
인 체
상부
(양기가 올라가므로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몸이 딱딱하다)
하부
(음기가 내려가기 때문에 살과 피부가 물렁하다)
왼쪽 과 오른쪽
오른쪽
(심장의 구조를 보면 우심방으로 들어가
좌심방으로 나온다)
왼쪽
호 흡
들이 쉬는 숨
(안으로 갈무리 한다)
내 쉬는 숨
(밖으로 퍼져 나간다)
오방색(五方色)이란?
오방색은 음양오행의 오행을 색으로 나타낸 것으로 목(木)은 청(靑), 금(金)은 백(白), 화(火)는 적(赤), 수(水)는 흑(黑), 토(土)는 황(黃)으로 대응된다. 음양오행 사상에 따르면 흰색,황색,적색은 양(陽)이고 청색,흑색은 음(陰)이며, 각각의 색이 지닌 의미와 상징에 따라 오방신장, 오방처용무, 관복, 오방낭자, 오색실, 색동옷, 오곡, 단청, 화문석 등 우리의 의,식,주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오방색의 의미를 좀 더 살펴보면, 먼저 청색은 동쪽, 봄, 간장(肝腸), 신맛, 기쁨, 인(仁)을 상징하며, 백색은 서쪽, 가을, 폐장(肺臟)과 코, 매운맛, 분노, 의(義)를 상징한다. 적색은 남쪽, 여름, 심장(心臟), 쓴맛, 즐거움, 예(禮)를, 흑색은 북쪽, 겨울, 신장(腎臟), 짠맛, 슬픔, 지(智)를, 황색은 중앙, 비장(脾臟), 단맛, 욕심, 신(信) 등을 상징한다.
식생활과 음양오행식생활의 중요한 도구인 밥상, 그릇, 수저 등으로 이루어진 상차림에도 음양오행의 사상이 깃들여 있다. 차려진 음식이 놓이는 밥상은 대부분 둥근 형태로 양(陽)을 상징하며 상의 다리가 네개인 것은 사방(四方)과 땅인 음(陰)을 상징한다. 둥근 모양의 그릇은 양으로써, 그릇에 담긴 음식을 통해 하늘의 양기를 몸에 받아들이고자 했다. 또한 둥근 모양의 숟가락은 양이라고 할 수 있고 두개의 젓가락은 음으로써, 수저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음과 양의 조화를 의미한다. 또 오행적인 측면으로 볼 때에도 밥상은 나무(木)이며,
수저와 그릇은 금, 은, 놋쇠, 유기 등과 같은 쇠(金)와 흙(土)으로 만든 도자기이고,
간장, 국, 찌개, 동치미 등은 수기(水氣), 생선이나 육류등과 같이 불에 굽거나 찐 것으로 화기(火氣)가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