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 주서 - 홍범(洪範)
▣ 홍범(洪範)
『漢志曰 禹治洪水에 錫洛書어늘 法而陳之하시니 洪範이 是也라하고
史記에 武王克殷하시고 訪問箕子以天道하신대 箕子以洪範陳之라하니라
按篇內에 曰而, 曰汝者는 箕子告武王之辭니 意洪範은 發之於禹어늘 箕子推衍增益하여 以成篇歟인저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한지(漢志)》에 “우왕(禹王)이 홍수(洪水)를 다스림에 하늘이 낙서(洛書)를 내려주므로 이것을 본받아 진열하니,
홍범(洪範)이 이것이다.” 하였으며, 《사기(史記)》에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이기고 기자(箕子)에게 찾아가
천도(天道)를 묻자 기자(箕子)가 홍범(洪範)을 말했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편(篇) 안에 ‘이(而)’라 말하고 ‘여(汝)’라 말한 것은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에게 아뢴 말씀이니,
짐작컨대 〈홍범(洪範)〉은 우왕(禹王)에게서 나왔는데, 기자(箕子)가 미루어 부연(敷衍)하고 증익(增益)하여
이 편(篇)을 이루었나보다.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 제1장(第一章)
『 13사(祀)『[연(年)]』에 왕(王)이 기자(箕子)를 방문하였다.』
『 상(商)나라는 사(祀)라 하고 주(周)나라는 연(年)이라 하였는데,
여기에서 사(祀)라고 말한 것은 기자(箕子)의 말을 인한 것이다.
기자(箕子)가 일찍이 말씀하기를 “상(商)나라가 윤상(淪喪)하더라도 나는 신복(臣僕)이 되지 않겠다.” 하였으며,
《사기(史記)》에 또한 “기자(箕子)가 홍범(洪範)을 말한 뒤에 무왕(武王)이 조선(朝鮮)에 봉(封)해주고
신하(臣下)로 삼지 않았다.”고 기재(記載)되어 있으니, 기자(箕子)는 신하(臣下)가 될 수 없으니,
무왕(武王)이 또한 그 뜻을 이루어 신하(臣下)로 삼지 않은 것이다. 방(訪)은 찾아가 물은 것이다.
기(箕)는 국명(國名)이고, 자(子)는 작위(爵位)이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기자(箕子)가 주(周)나라에 신하(臣下)노릇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무왕(武王)을 위해 홍범(洪範)을 말하였는가.
하늘이 이 도(道)를 우왕(禹王)에게 주어서 전하여 자신에게 이르렀으니, 자신으로 부터 끊어지게 할 수 없으며,
무왕(武王) 같은 성인(聖人)에게 전하지 않으면 천하(天下)에 전할 만한 자가 없다.
그러므로 기자(箕子)의 도리는 도(道)를 전하는 것은 가(可)하나 벼슬하는 것은 불가(不可)한 것이다.”』
▣ 제2장(第二章)
『 왕(王)이 이에 말씀하였다. “아! 기자(箕子)여. 하늘이 속으로 하민(下民)을 안정시켜 거처하는 것을 도와
화합하게 하시니, 나는 그 병이(秉彛)와 인륜(人倫)이 펴지게 된 이유를 알지 못한다.”』
『 내언(乃言)은 어렵게 여기는 말이니, 그 물음을 신중히 한 것이다.
기자(箕子)를 옛 읍(邑)과 작호(爵號)로 칭한 것은 막 상(商)나라로부터 돌아와서 새로 작위(爵位)를 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즐(콋)은 정함이요, 협(協)은 합함이다.
이(彛)는 떳떳함이요, 윤(倫)은 윤리(倫理)이니, 이른바 병이(秉彛)와 인륜(人倫)이란 것이다.
무왕(武王)의 물음은 “하늘이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에 묵묵히 백성들을 안정시켜 그 거지(居止)를 보상(輔相)하여
보합(保合)함이 있는데, 나는 이륜(彛倫)이 펴지는 이유가 어떠한 것인 줄을 모른다.”고 한 것이다.』
▣ 제3장(第三章)
『 기자(箕子)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내가 들으니, 옛날 곤(툵)이 홍수(洪水)를 막아 오행(五行)을 어지럽게 진열하자 상제(上帝)가 진노(震怒)하여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내려주지 않으시니, 이륜(彛倫)이 무너지게 되었다.
곤(툵)이 귀양가 죽고 우왕(禹王)이 뒤이어 일어나자 하늘이 우왕(禹王)에게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내려 주시니,
이륜(彛倫)이 펴지게 되었다.』
『 내언(乃言)은 그 답을 신중히 한 것이다. 인(?)은 막음이요, 골(汨)은 어지럽힘이요, 진(陳)은 진열함이요,
비(퓒)는 줌이요, 홍(洪)은 큼이요, 범(範)은 법(法)이요, 주(疇)는 무리요, 두(쪝)는 무너짐이요, 석(錫)은 줌이다.
제(帝)는 주재(主宰)로 말한 것이요, 천(天)은 이치(理致)로 말한 것이다.
홍범구주(洪範九疇)는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대법(大法)으로 그 종류가 아홉 가지가 있으니,
곧 하문(下文)의 초일(初一)부터 차구(次九)까지이다.
기자(箕子)의 대답은 “홍범구주(洪範九疇)는 원래 하늘에서 나왔는데
곤(툵)이 물의 성질을 거슬려 오행(五行)을 어지럽게 진열하였다.
그러므로 상제(上帝)가 진노(震怒)하여 이것을 주지 않으니, 이는 이륜(彛倫)이 무너지게 된 소이(所以)이며,
우왕(禹王)이 물의 성질을 순히 하여 땅이 평(平)하고 하늘이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하늘이 낙수(洛水)에 글을 내놓자,
우왕(禹王)이 이것을 구별(區別)하여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드니, 이는 이륜(彛倫)이 펴지게 된 소이(所以)이다.”
라고 한 것이다. 이륜(彛倫)이 펴진다는 것은 곧 구주(九疇)가 펴지는 것이다.』
『 살펴보건대 공씨(孔氏)가 말하기를 “하늘이 우왕(禹王)에게 신귀(神龜)를 주어 무늬를 지고 나와 등에 나열
되었는데 수(數)가 9까지 있으므로 우왕(禹王)이 마침내 이것을 인하여 차례로 나열해서 구류(九類)를 이루었다.”
하였다. 《주역(周易)》에 “하수(河水)에서 도(圖)가 나오고 낙수(洛水)에서 서(書)가 나오므로 성인(聖人)이 이것을
본받았다.” 하였으니, 홍수(洪水)를 다스려 공(功)이 이루어짐에 낙수(洛水)의 거북이 상서(祥瑞)를 올린 것이니,
소소(簫韶)를 연주함에 봉황이 와서 춤을 추고, 《춘추(春秋)》를 지음에 기린이 이른 것과 같으니, 또한 그 이치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구(九)를 이고 일(一)을 밟으며, 좌(左)는 삼(三)이고 우(右)는 칠(七)이며, 이(二)와 사(四)는 어깨가
되고, 육(六)과 팔(八)은 발이 되는 것이 곧 낙서(洛書)의 수(數)라 한다.』
▣ 제4장(第四章)
『 첫번째는 오행(五行)이고, 다음 두번째는 공경하되 오사(五事)로써 함이요,
다음 세번째는 농사(農事)에 팔정(八政)을 씀이요, 다음 네번째는 합함을 오기(五紀)로써 함이요,
다음 다섯번째는 세움을 황극(皇極)로써 함이요, 다음 여섯번째는 다스림을 삼덕(三德)으로써 함이요,
다음 일곱번째는 밝힘을 계의(稽疑)로써 함이요, 다음 여덟번째는 상고함을 서징(庶徵)으로써 함이요,
다음 아홉번째는 향함을 오복(五福)으로써 하고 위엄을 보임을 육극(六極)으로써 하는 것이다.』
『 이는 구주(九疇)의 강령(綱領)이다.
하늘에 있으면 오행(五行)이고 사람에 있으면 오사(五事)이니, 오사(五事)를 가지고 오행(五行)을 참고하면 하늘과 인간이 합한다.
팔정(八政)은 사람이 하늘에 인하는 것이요, 오기(五紀)는 하늘이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황극(皇極)은 군주(君主)가 극(極)을 세우는 것이요, 삼덕(三德)은 다스림에 변(變)에 응하는 것이다.
계의(稽疑)는 사람으로 하늘에 들음이요, 서징(庶徵)은 하늘을 미루어 사람에게 징험함이요,
복(福)과 극(極)은 사람이 감동함에 하늘이 응하는 것이다.
오사(五事)를 경(敬)이라 한 것은 몸을 성실히 하기 때문이요, 팔정(八政)을 농(農)이라 한 것은 생활을 후하게 하기 때문이요,
오기(五紀)를 협(協)이라 한 것은 하늘에 합하기 때문이요, 황극(皇極)을 건(建)이라 한 것은 극(極)을 세우기 때문이요,
삼덕(三德)을 예(乂)라 한 것은 백성을 다스리기 때문이요, 계의(稽疑)를 명(明)이라 한 것은 의혹을 분변하기 때문이요,
서징(庶徵)을 염(念)이라 한 것은 살펴서 징험하기 때문이요, 오복(五福)을 향(嚮)이라 한 것은 권면하기 위한 것이요,
육극(六極)을 위(威)라 한 것은 징계(懲戒)하기 위한 것이다.』
『 오행(五行)에 용(用)을 말하지 않은 것은 가는 곳마다 용(用)이 아님이 없기 때문이며,
황극(皇極)에 수(數)를 말하지 않은 것은 수(數)로써 밝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행(五行)으로써 근본(根本)을 삼고, 공경(恭敬)함을 오사(五事)로써 하고 후(厚)하게 함을 팔정(八政)으로써 하고
합함을 오기(五紀)로써 함은 황극(皇極)이 세워지는 소이(所以)이며, 다스림을 삼덕(三德)으로써 하고 밝힘을 계의(稽疑)로써 하고
징험을 서징(庶徵)으로써 하고 권면과 징계를 오복(五福)과 육극(六極)으로써 함은 황극(皇極)이 행해지는 소이(所以)이다.
인군(人君)이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방법이 무엇이 이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 제5장(第五章)
『 첫번째 오행(五行)은 첫번째는 수(水)이고, 두번째는 화(火)이고, 세번째는 목(木)이고, 네번째는 금(金)이고, 다섯번째는 토(土)이다.
수(水)는 윤하(潤下)이고, 화(火)는 염상(炎上)이고, 목(木)은 곡직(曲直)이고, 금(金)은 종혁(從革)이고, 토(土)는 이에 가색(稼穡)을 한다.
윤하(潤下)는 짠 것이 되고, 염상(炎上)은 쓴 것이 되고, 곡직(曲直)은 신 것이 되고, 종혁(從革)은 매운 것이 되고, 가색(稼穡)은 단 것이 된다.』
『 이 이하는 구주(九疇)의 조목(條目)이다. 수(水)•화(火)•목(木)•김(金)•토(土)는 오행(五行)이 태어난 순서이니,
하늘이 일(一)로 수(水)를 내고, 땅이 이(二)로 화(火)를 내고, 하늘이 삼(三)으로 나무를 내고,
땅이 사(四)로 금(金)을 내고, 하늘이 오(五)로 토(土)를 낸다.
당(唐)나라 공씨(孔氏)는 말하기를 “만물(萬物)이 형체를 이룸에 작고 드러남으로 점점 나아갔으니,
오행(五行)의 선후(先後)도 또한 작고 드러남으로 차례를 삼았다.
오행(五行)의 체(體)에 수(水)가 가장 작으니 첫번째가 되고, 화(火)가 점점 드러나니 두번째가 되고,
목(木)은 형체가 실하니 세번째가 되고, 금(金)은 체(體)가 견고하니 네번째가 되고, 토(土)는 형질(形質)이 크니 다섯번째가 된다.” 하였다.』
『 윤하(潤下)•염상(炎上)•곡직(曲直)•종혁(從革)은 성질로 말한 것이고, 가색(稼穡)은 덕(德)으로 말한 것이다.
윤하(潤下)는 윤택(潤澤)하고 아래로 내려감이요, 염상(炎上)은 불타고 또 올라감이요, 곡직(曲直)은 굽고 또 곧음이요,
종혁(從革)은 그대로 따르고 또 변함이요, 가색(稼穡)은 심고 또 거두는 것이니,
가색(稼穡)에 유독 덕(德)으로 말한 것은 토(土)는 오행(五行)을 겸하여 바른 위치가 없고 이루어진 성질이 없으며,
그 낳는 덕(德)이 가색(稼穡)『[농사]』보다 더 큼이 없다. 그러므로 가색(稼穡)으로 말한 것이다.
가색(稼穡)은 성(性)이라 할 수 없으므로 ‘왈(曰)’이라 말하지 않고 ‘원(爰)’이라고 말한 것이다.
원(爰)은 이에이니, 이에 심고 거둘 뿐이요, 명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作)은 위(爲)『[만듦, 또는 됨]』이다.
함(鹹)•고(苦)•산(酸)•신(辛)•감(甘)은 오행(五行)의 맛이다.
오행(五行)은 성(聲)과 색(色)과 기미(氣味)가 있는데 유독 맛을 말한 것은 백성들이 사용함에 간절하기 때문이다.』
▣ 제6장(第六章)
『 두번째 오사(五事)는 첫번째는 모습이고, 두번째는 말이고, 세번째는 봄이고, 네번째는 들음이고, 다섯번째는 생각함이다.
모습은 공손하고, 말은 순종하고, 봄은 밝고, 들음은 귀밝고, 생각함은 지혜롭다.
공손함은 엄숙함을 만들고, 순종함은 다스림을 만들고, 밝음은 지혜를 만들고, 귀밝음은 헤아림을 만들고, 지혜로움은 성스러움을 만든다.』
『 모(貌)•언(言)•시(視)•청(聽)•사(思)는 오사(五事)의 순서이다.
모습은 윤택하니 수(水)이고, 말은 드러나니 화(火)이고, 봄은 흩어지니 목(木)이고, 들음은 거두니 금(金)이고, 생각함은 통하니 토(土)이다.
이는 또한 인사(人事)가 발현(發現)하는 선후(先後)의 순서이니, 사람이 처음 태어나면 형색(形色)이 갖추어지고,
이미 태어나면 음성(音聲)이 발하니, 이미 다스려 조리(條理)가 있은 뒤에 보고, 그런 뒤에 듣고, 그런 뒤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공(恭)•종(從)•명(明)•총(聰)•예(睿)는 오사(五事)의 덕(德)이니, 공(恭)은 공경함이요, 종(從)은 순종함이요,
명(明)은 보지 못함이 없는 것이요, 총(聰)은 듣지 못함이 없는 것이요, 예(睿)는 은미한 것에 통하는 것이다.
숙(肅)•예(乂)•철(哲)•모(謀)•성(聖)은 오덕(五德)의 용(用)이니, 숙(肅)은 엄정(嚴正)함이요, 예(乂)는 조리(條理)요,
철(哲)은 지혜(智慧)요, 모(謀)는 헤아림이요, 성(聖)은 통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 제7장(第七章)
『 세번째 팔정(八政)은 첫번째는 먹는 것『[식량(食糧)]』이요, 두번째는 재물이요, 세번째는 제사(祭祀)요,
네번째는 사공(司空)이요, 다섯번째는 사도(司徒)요, 여섯번째는 사구(司寇)요,
일곱번째는 빈(賓)『[외교관(外交官)]』이요, 여덟 번째는 군사이다.』
『 먹는 것은 백성들이 제일 급하게 여기는 것이고, 재물은 백성들이 자뢰하는 것이므로 먹는 것이 첫번째가 되고 재물이 그 다음이 된 것이다.
식량(食糧)과 재화(財貨)는 산 사람을 봉양하는 것이고, 제사(祭祀)는 근본에 보답하는 것이다.
사공(司空)은 토목(土木)을 관장하니 거주(居住)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고, 사도(司徒)는 교육(敎育)을 관장하니 성(性)을 이루는 것이고,
사구(司寇)는 금지(禁止)함을 관장하니 간사함을 다스리는 것이고,
빈(賓)은 제후(諸侯)와 먼 지방 사람에게 예우(禮遇)하는 것이니 왕래(往來)하고 교제(交際)하는 것이다.
사(師)는 잔학(殘虐)한 자를 제거하고 포악한 자를 금지하는 것이니, 병(兵)은 성인(聖人)이 마지못하여 쓰는 것이므로 맨 끝에 있는 것이다.』
▣ 제8장(第八章)
『 네번째 오기(五紀)는 첫번째는 세(歲)『[해]』이고, 두번째는 월(月)『[달]』이고,
세번째는 일(日)『[날]』이고, 네번째는 성신(星辰)이고, 다섯번째는 역수(曆數)이다.』
『 세(歲)는 사시(四時)를 차례함이요, 월(月)은 그믐과 초하루를 정함이요, 일(日)은 하늘의 운행(運行)하는 도수(度數)를 바로잡음이요,
성(星)은 경성(經星)과 위성(緯星)이요, 신(辰)은 해와 달이 만나는 열두 방위이다.
역수(曆數)는 점보(占步)『[하늘의 운행을 점침]』의 방법이니, 세(歲)•월(月)•일(日)•성신(星辰)을 기록하는 것이다.』
▣ 제9장(第九章)
『 다섯번째 황극(皇極)은 임금이 극(極)을 세움이니, 이 오복(五福)을 거두어서
여러 백성들에게 복(福)을 펴서 주면 이 여러 백성들이 너의 극(極)에 대하여 너에게 극(極)을 보존함을 줄 것이다.』
『 황(皇)은 임금이요, 건(建)은 세움이다.
극(極)은 북극(北極)의 극(極)과 같으니, 지극하다는 뜻이고 표준(標準)의 이름이니, 가운데 서있으면 사방(四方)에서 취하여 바로잡는 것이다.
인군(人君)은 마땅히 인륜(人倫)의 지극함을 다하여야 하니, 부자(父子)를 말하면 친함을 지극히 하여 천하(天下)의 부자(父子)된 자들이
여기에서 법(法)을 취하고, 부부(夫婦)를 말하면 분별(分別)을 지극히 하여 천하(天下)의 부부(夫婦)된 자들이 여기에서 법(法)을 취하고,
형제(兄弟)를 말하면 사랑을 지극히 하여 천하(天下)의 형제(兄弟)된 자들이 여기에서 법(法)을 취하여
일사일물(一事一物)을 접(接)함과 일언일동(一言一動)을 발(發)함에 이르기까지 의리의 당연함을 지극히 하지 않음이 없어서
일호(一毫)라도 과(過)하거나 불급(不及)한 차이가 없게 하면 극(極)이 세워지는 것이다.』
『 극(極)은 복(福)의 근본이며, 복(福)은 극(極)의 효험이니, 극(極)을 세우는 것은 복(福)이 모여지는 것이다.
인군(人君)이 위에서 복(福)을 모음은 자기 몸을 후(厚)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복(福)을 펴서 서민(庶民)들에게 주어 사람마다 보고 감동하여 화(化)하게 하니 이른바 펴서 준다는 것이요,
당시의 백성들 또한 모두 군주(君主)의 극(極)에 대하여 더불어 보수(保守)해서 감히 실추하지 않으니 이른바 보존함을 준다는 것이다.
황극(皇極)을 군주(君主)와 백성(百姓)이 서로 줌이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 제10장(第十章)
『 무릇 서민들이 음붕(淫朋)『[사당(邪黨)]』함이 없고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비(阿比)함이 없는 것은 임금이 극(極)이 되기 때문이다.』
『 음붕(淫朋)은 사당(邪黨)이다. 인(人)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비덕(比德)은 사사로이 서로 비부(比附)하는 것이다.
서민(庶民)과 지위(地位)에 있는 사람들이 음붕(淫朋)하고 아비(阿比)함이 없는 것은
오직 군주(君主)가 극(極)이 되어서 이들로 하여금 취하여 바로잡는 바가 있게 하기 때문이니,
군주(君主)가 극(極)을 세우지 않으면 안됨을 거듭 말한 것이다.』
▣ 제11장(第十一章)
『 무릇 서민(庶民)들이 꾀함이 있고 시위(施爲)함이 있고 지킴이 있는 것을 네가 생각하며,
극(極)에 합하지 않더라도 허물에 걸리지 않거든 임금은 받아 주어라.
얼굴빛을 편안히 하여 말하기를 ‘내가 좋아하는 바가 덕(德)이다.’라고 하거든
네가 그에게 복(福)을 주면 이 사람이 이에 임금의 극(極)에 맞게 할 것이다.』
『 이는 서민(庶民)을 말한 것이다. 유유(有猷)는 모려(謀慮)가 있는 자이고, 유위(有爲)는 시설(施設)함이 있는 자이고,
유수(有守)는 지조(志操)를 지킴이 있는 자이니, 이 세 가지는 군주(君主)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바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잊지 않는 것이니, ‘제념재(帝念哉)『〔임금은 생각하소서〕』’의 염(念)이다.
극(極)에 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善)에 합하지 않는 것이고, 허물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악(惡)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선(善)에 합하지는 못하나 악(惡)에는 빠지지 않음이 이른바 중인(中人)이라는 것이니,
나아가면 더불어 선(善)을 할 수 있고 버리면 악(惡)에 흐르니, 군주(君主)가 마땅히 받아주어야 할 바이다.
받아준다는 것은 거절하지 않는 것이니, ‘귀사수지(歸斯受之)『〔돌아오면 받아준다〕』’의 수(受)이다.
생각하고 받아줌을 그 재주에 따라 가볍게 하고 무겁게 하여 성취시키는 것이다.』
『 외모(外貌)에 나타남에 안화(安和)한 빛이 있고, 중심(中心)에서 발함에 덕(德)을 좋아하는 말이 있거든
네가 이 사람에게 복(福)을 내려주면 이 사람이 이에 임금의 극(極)에 맞게 할 것이다. 복(福)은 작록(爵祿)을 이른다.
혹자는 “복(福)을 준다는 것은 곧 상문(上文)에 복(福)을 거두어 백성에게 준다는 복이니, 밖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한다.
그러나 녹(祿) 또한 복(福)이다. 상문(上文)은 복(福)의 전체를 가리켜 말한 것이고,
이것은 복(福)의 일단을 위하여 말한 것이니, 만일 녹(祿)이 아닌 복(福)을 말한다면 하문(下文)에 “덕(德)을 좋아하지 않는 이에게
네가 비록 복(福)을 주더라도 이는 네가 허물을 씀이 된다.”는 말과 통하지 않는다.』
▣ 제12장(第十二章)
『 경독(경獨)을 학대하지 말고 고명(高明)을 두려워하지 말라.』
『 경독(경獨)은 서민(庶民) 중에 지극히 미천한 자이고, 고명(高明)은 지위가 있는 자 중에 높고 드러난 자이니,
각각 그 심한 자를 지적하여 말한 것이다. 서민(庶民) 중에 지극히 미천한 자라도 선(善)이 있으면 마땅히 권면해야 하고,
지위가 있는 자 중에 높고 드러난 자라도 불선(不善)이 있으면 마땅히 징계해야 한다. 이는 상장(上章)을 맺어 하장(下章)의 뜻을 일으킨 것이다.』
▣ 제13장(第十三章)
『 사람 중에 재능이 있고 시위(施爲)함이 있는 자를 그 행함에 나아가게 하면 나라가 번창할 것이다.
무릇 정인(正人)『[벼슬아치]』들은 부유하게 한 뒤에야 비로소 선하니, 네가 하여금 집에서 좋아함이 있게 하지 못하면 이 사람이 죄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덕(德)을 좋아하지 않는 이에게 네가 비록 복(福)을 주더라도 이는 네가 허물이 있는 사람을 씀이 될 것이다.』
『 이는 지위에 있는 자를 말한 것이다. 유능(有能)은 재주와 지혜가 있는 자이고, 수(羞)는 나아감이니,
그 행함에 나아가게 하면 관직(官職)을 맡겨 부리는 자가 모두 현재(賢才)여서 나라가 창성(昌盛)할 것이다.
정인(正人)은 관직(官職)에 있는 사람이니, 〈강고(康誥)〉에 이른바 ‘유궐정인(惟厥正人)’이라는 것과 같다.
부(富)는 녹(祿)을 줌이요, 곡(穀)은 선(善)이다. 관직(官職)에 있는 사람은 우러러볼 만한 녹(祿)이 있은 뒤에야 선(善)을 함을 책할 수 있으니,
늠록(쬎祿)이 이어지지 못하고 의식(衣食)이 풍족하지 못하여 네가 너의 집에서 화호(和好)하게 하지 못하면 이 사람이 장차 죄려(罪戾)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덕(德)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녹(祿)을 주면 이는 네가 허물과 악(惡)한 사람을 씀이 되는 것이다.
이는 녹(祿)은 현자(賢者)에게 주어야 하고 악덕(惡德)에게 미쳐서는 안됨을 말한 것이다.
반드시 부유하게 한 뒤에야 선(善)을 책하는 것은 성인(聖人)이 가르침을 베풂에 중인(中人) 이상은 모두 가능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 제14장(第十四章)
『 편벽(偏僻)됨이 없고 기욺이 없어 왕(王)의 의(義)를 따르며, 뜻에 사사로이 좋아함을 일으키지 말아 왕(王)의 도(道)를 따르며,
뜻에 사사로이 미워함을 일으키지 말아 왕(王)의 길을 따르라. 편벽됨이 없고 편당함이 없으면 왕(王)의 도(道)가 탕탕(蕩蕩)하며,
편당함이 없고 편벽됨이 없으면 왕(王)의 도(道)가 평평(平平)하며, 상도(常道)에 위배됨이 없고 기욺이 없으면 왕(王)의 도(道)가 정직(正直)할 것이니,
그 극(極)에 모여 그 극(極)에 돌아올 것이다.』
『 편(偏)은 중(中)하지 못한 것이요, 피(陂)는 평평(平平)하지 못한 것이다. 작호(作好)•작악(作惡)는 좋아하고 미워함을 뜻에 더하는 것이다.
당(黨)은 공정(公正)하지 못한 것이다. 반(反)은 상도(常道)에 위배됨이요, 측(側)은 바르지 못한 것이다.
편(偏)•피(陂)•호(好)•악(惡)는 기사(己私)『[자신의 사욕(私慾)]』가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요, 편(偏)•당(黨)•반(反)•측(側)은 기사(己私)가 일에 나타나는 것이다.
왕지의(王之義)•왕지도(王之道)•왕지로(王之路)는 황극(皇極)이 이로 말미암아 행해지는 것이다.
탕탕(蕩蕩)은 광원(廣遠)함이요, 평평(平平)은 평이(平易)함이요, 정직(正直)은 편사(偏邪)하지 않음이다. 황극(皇極)은 정대(正大)한 체(體)이다.
준의(遵義)•준도(遵道)•준로(遵路)는 그 극(極)에 모임이요, 탕탕(蕩蕩)•평평(平平)•정직(正直)은 그 극(極)에 돌아옴이다.
회(會)는 합하여 옴이요, 귀(歸)는 와서 이름이다.』
『 이 장(章)은 시(詩)의 체(體)이니, 사람들로 하여금 읊어서 그 성정(性情)을 얻게 한 것이다.
노래하고 읊어서 그 음(音)을 맞추고 반복하여 그 뜻을 지극히 하며, 사사로움을 경계하여 간사한 생각을 징계하고 극(極)을 가르쳐
선(善)한 성(性)을 감발(感發)시켜서 읊는 사이에 황연(恍然)히 깨닫고 유연(悠然)히 얻게 하여 기울고 협소(狹小)한 생각을 잊고
공평광대(公平廣大)한 이치를 통달하여 인욕(人慾)이 사라져 종식(終熄)되고 천리(天理)가 유행하여
극(極)에 모이고 극(極)에 돌아옴이 그렇게 됨을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 공용(功用)이 깊고 간절하니, 《주례(周禮)》의 〈대사(大師)〉에 육시(六詩)를 가르침과 똑같은 기축(機軸)인데, 더욱 중요하다.
후세에 이 뜻이 전해지지 못했으니, 황극(皇極)의 도(道)가 천하(天下)에 밝혀지지 못함이 당연하다.』
▣ 제15장(第十五章)
『 임금이 극(極)으로 부연(敷衍)한 말이 이것이 바로 떳떳한 이치이고 가르침이니, 이는 상제(上帝)가 가르쳐주신 것이다.』
『 왈(曰)은 말을 일으키는 말이다. 부언(敷言)은 상문(上文)을 부연(敷衍)한 말이다.
임금이 극(極)의 이치(理致)로써 반복하여 미루어 부연(敷衍)해서 말한 것은 천하(天下)의 떳떳한 이치이고 천하(天下)의 큰 가르침이니,
이는 군주(君主)의 가르침이 아니요 바로 하늘의 가르침인 것이다. 이치는 하늘에서 나왔으니, 말이 천리(天理)에 순수하면 하늘의 말인 것이다.
이는 부언(敷言)의 묘함이 이와 같음을 칭찬한 것이다.』
▣ 제16장(第十六章)
『 무릇 서민(庶民)들이 극(極)으로 부연한 말을 교훈(敎訓)으로 삼고 행하면 천자(天子)의 빛을 가까이하여 말하기를
‘천자(天子)가 우리들의 부모가 되시어 천하(天下)의 왕(王)이 된다.’고 할 것이다.』
『 광(光)은 도덕(道德)의 광화(光華)이다.
천자(天子)는 서민(庶民)에 있어 성(性)이 똑같을 뿐이니, 서민(庶民)이 황극(皇極)으로 부연(敷衍)한 말에 대하여 이것을 교훈으로 삼고
이것을 행하면 천자(天子)의 도덕(道德)의 광화(光華)를 가까이 할 수 있다.
왈(曰)은 백성들이 한 말이다. 부모라고 이른 것은 은혜로 기름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친애하는 뜻이요,
왕(王)이라고 이른 것은 군장(君長)노릇함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높이는 뜻이다.
천자가 우리를 은혜로 기르고 군장(君長)노릇함이 이와 같이 지극함을 말한 것이다.
민(民)을 말하고 인(人)『[재위지인(在位之人)]』을 말하지 않은 것은 작은 것을 들어 큰 것을 나타낸 것이다.』
▣ 제17장(第十七章)
『 여섯번째 삼덕(三德)은 첫번째는 정직함이요, 두번째는 강(剛)으로 다스림이요, 세번째는 유(柔)로 다스림이니,
평강(平康)은 정직(正直)이고, 강(彊)하여 순하지 않은 자는 강(剛)으로 다스리고, 화(和)하여 순한 자는 유(柔)로 다스리며,
침잠(沈潛)한 자는 강(剛)으로 다스리고, 고명(高明)한 자는 유(柔)로 다스린다.』
『 극(克)은 다스림이요, 우(友)는 순함이요, 섭(燮)은 화함이다.
정직(正直)과 강(剛)•유(柔)는 세 덕(德)이다.
정(正)은 사(邪)가 없는 것이고, 직(直)은 곡(曲)이 없는 것이다.
강극(剛克)과 유극(柔克)은 위엄을 보이고 복을 주며, 주고 빼앗으며, 억제하고 드날리며, 올리고 물리치는 쓰임이다.
강불우(彊弗友)는 강경(彊梗)하여 순하지 않은 자이며, 섭우(燮友)는 화유(和柔)하여 순한 자이다.
침잠(沈潛)은 침심(沈深)하고 잠퇴(潛退)하여 중(中)에 미치지 못하는 자이며,
고명(高明)은 고항(高亢)하고 명상(明爽)하여 중(中)을 넘는 자이니, 습속(習俗)이 편벽되고 기품(氣稟)이 과(過)한 자이다.
그러므로 평강정직(平康正直)은 교불(矯拂)『[바로잡음]』을 일삼을 것이 없으니, 함이 없이 다스림이 이것이다.
강불우강극(彊弗友剛克)은 강(剛)으로 강(剛)을 다스림이요, 섭우유극(燮友柔克)은 유(柔)로 유(柔)를 다스림이며,
침잠강극(沈潛剛克)은 강(剛)으로 유(柔)를 다스림이요, 고명유극(高明柔克)은 유(柔)로 강(剛)을 다스림이니,
정직(正直)의 쓰임은 하나인데 강(剛)•유(柔)의 쓰임은 넷이다.
성인(聖人)이 세상을 어루만지고 사물을 수응함에 때에 따라 마땅하게 하여 삼덕(三德)으로 다스려 써서
양(陽)으로 펴주고 음(陰)으로 거두어 양 끝을 잡아 백성에게 그 중(中)을 쓰시니,
이는 천하(天下)에 민속(民俗)을 황극(皇極)에 들임이 이와 같은 것이다.』
▣ 제18장(第十八章)
『 오직 군주(君主)만이 복(福)을 짓고 오직 군주(君主)만이 위엄(威嚴)을 짓고 오직 군주(君主)만이 옥식(玉食)을 할 수 있으니,
신하(臣下)는 복(福)을 짓고 위엄(威嚴)을 짓고 옥식(玉食)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 복(福)과 위엄(威嚴)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어거하는 것이고, 옥식(玉食)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받드는 것이다.
유벽(惟µ?)이라고 말한 것은 그 권한을 아래로 옮겨서는 안됨을 경계한 것이고,
무유(無有)라고 말한 것은 신하(臣下)가 윗사람을 참람(僭濫)히 해서는 안됨을 경계한 것이다.』
▣ 제19장(第十九章)
『 신하(臣下)가 복(福)을 짓고 위엄(威嚴)을 짓고 옥식(玉食)함이 있으면 네 집에 해롭고 네 나라에 흉(凶)하여
사람들이 바르지 못하고 기울고 편벽되며, 백성들이 참람하고 지나치게 될 것이다.』
『 파(頗)는 평(平)하지 못한 것이고, 벽(僻)은 공정하지 못한 것이다.
참(僭)은 넘음이요, 특(큥)은 지나침이다.
신하(臣下)가 임금의 권한을 참람히 하면 대부(大夫)가 반드시 네 집에 해롭고
제후(諸侯)가 반드시 네 나라에 흉하여 지위(地位)에 있는 자들이 진실로 바르지 못하고 기울고 편벽되어 그 분수를 편안히 하지 못하고,
소민(小民)들도 또한 참람(僭濫)하고 지나쳐서 그 떳떳함을 넘을 것이니, 이
는 신하가 윗사람을 참람히 하는 화(禍)가 이와 같음을 심하게 말한 것이다.』
▣ 제20장(第二十章)
『 일곱번째 계의(稽疑)는 복서(卜筮)할 사람을 가려 세우고서야 이에 명(命)하여 복서(卜筮)한다.』
『 계(稽)는 상고(詳考)함이니, 의심스러운 일이 있으면 복서(卜筮)하여 상고(詳考)하는 것이다.
거북점을 복(卜)이라 하고, 시초점(蓍草占)을 서(筮)라 한다.
시귀(蓍龜)는 지극히 공정(公正)하고 사(私)가 없으므로 하늘의 밝은 명(命)을 이을 수 있는 것이니,
복서(卜筮)하는 자 또한 지공무사(至公無私)한 뒤에야 시초(蓍草)와 거북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반드시 이러한 사람을 가려서 세운 뒤에야 복서(卜筮)하게 하는 것이다.』
▣ 제21장(第二十一章)
『 비오듯함과 개임과 몽매함과 끊어짐과 이김이며,』
『 이는 거북점의 조짐이다.
우(雨)는 비가 오는 듯한 것이니 그 조짐이 수(水)가 되고, 제(霽)는 개임이니 그 조짐이 화(火)가 되고,
몽(蒙)은 몽매(蒙昧)함이니 그 조짐이 목(木)이 되고, 역(驛)은 낙역(絡驛)하여 이어지지 않음이니
그 조짐이 금(金)이 되고, 극(克)은 번갈아 서로 이기는 뜻이 있으니 그 조짐이 토(土)가 된다.』
▣ 제22장(第二十二章)
『 정(貞)과 회(悔)이다.』
『 이는 점괘(占卦)이다. 내괘(內卦)를 정(貞)이라 하고, 외괘(外卦)를 회(悔)라 한다.
《좌전(左傳)》에 “고(蠱)의 정(貞)은 풍(風)이고 그 회(悔)는 산(山)이다.” 한 것이 이것이다.
또 만난 괘(卦)를 정(貞)이라 하고, 변하여 간 괘(卦)를 회(悔)라 하니,
《국어(國語)》에 “정(貞)은 둔(屯)이고 회(悔)는 예(豫)인 것이 모두 팔(八)이다.” 한 것이 이것이다.』
▣ 제23장(第二十三章)
『 무릇 일곱 가지는 거북점에는 다섯 가지를 쓰고 시초점에는 두 가지를 쓰니, 잘못됨을 추측하여 아는 것이다.』
『 무릇 일곱 가지란 우(雨)•제(霽)•몽(蒙)•역(驛)•극(克)•정(貞)•회(悔)이며, 거북점에 다섯 가지를 쓴다는 것은
우(雨)•제(霽)•몽(蒙)•역(驛)•극(克)이고, 시초점에 두 가지를 쓴다는 것은 정(貞)과 회(悔)이다.
연(衍)은 추측함이요, 특(큥)은 잘못됨이니, 인사(人事)의 잘못됨을 추측하는 것이다.』
▣ 제24장(第二十四章)
『 이 사람을 세워 복서(卜筮)를 하되 세 사람이 점(占)을 치면 두 사람의 말을 따른다.』
『 무릇 복서(卜筮)함에 반드시 세 사람을 세워 서로 참고하니, 구설(舊說)에 거북점에는 옥조(玉兆)•와조(瓦兆)•원조(原兆)가 있고,
시초점에는 연산(連山)•귀장(歸藏)•주역(周易)이 있다고 말한 것은 옳지 않다.
삼인(三人)이라고 이른 것은 세 가지 복서(卜筮)함이 아니다.』
▣ 제25장(第二十五章)
『 너는 큰 의심이 있거든 꾀함을 너의 마음에 미치고 경사(卿士)에 미치고 서인(庶人)에 미치고 복서(卜筮)에 미쳐라.』
▣ 제26장(第二十六章)
『 네가 따르고 거북점이 따르고 시초점이 따르고 경사(卿士)가 따르고 서민(庶民)이 따르면 이것을 대동(大同)이라 하니,
몸이 강강(康彊)하고 자손이 길(吉)함을 만날 것이다.』
▣ 제27장(第二十七章)
『 네가 따르고 거북점이 따르고 시초점이 따르며, 경사(卿士)가 거스르고 서민(庶民)이 거슬러도 길(吉)할 것이다.』
▣ 제28장(第二十八章)
『 경사(卿士)가 따르고 거북점이 따르고 시초점이 따르며, 네가 거스르고 서민(庶民)이 거슬러도 길(吉)할 것이다.』
▣ 제29장(第二十九章)
『 서민(庶民)이 따르고 거북점이 따르며, 시초점이 따르고 네가 거스르고 경사(卿士)가 거슬러도 길(吉)할 것이다.』
▣ 제30장(第三十章)
『 네가 따르고 거북점이 따르며, 시초점이 거스르고 경사(卿士)가 거스르고
서민(庶民)이 거스르면 안의 일을 하는 것은 길(吉)하고 밖의 일을 하는 것은 흉(凶)할 것이다.』
▣ 제31장(第三十一章)
『 거북점과 시초점이 모두 사람과 위배되면 정(靜)함에 사용함은 길(吉)하고, 동(動)함에 사용함은 흉(凶)할 것이다.』
『 계의(稽疑)는 거북점과 시초점을 중시하니, 사람과 거북점과 시초점이 다 따르면 이것을 대동(大同)이라 하니
진실로 길(吉)하며, 사람이 하나만 따르고 거북점과 시초점이 어기지 않는 것도 또한 길(吉)하다.
거북점은 따르고 시초점은 거스르면 안의 일을 하는 것은 가(可)하고 밖의 일을 하는 것은 불가(不可)하니,
안이란 제사(祭祀) 등의 일이고 밖이란 정벌(征伐) 등의 일을 이른다.
거북점과 시초점이 모두 위배되면 정(靜)함은 가(可)하고 동작함은 불가(不可)하니, 정(靜)은 떳떳함을 지키는 것이고, 작(作)은 동작함을 이른다.
그러나 거북점은 따르고 시초점이 거스르는 경우는 있어도 시초점은 따르고 거북점이 거스르는 경우는 없는 것은
거북점을 성인(聖人)이 더욱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기(禮記)》에 “큰 일에는 거북점을 치고, 작은 일에는 시초점을 친다.” 하였고,
《좌전(左傳)》에 “시초점은 짧고 거북점은 길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부자(夫子)가 《주역(周易)》을 찬양하여 시괘(蓍卦)의 덕(德)을 지극히 드러냄으로부터
시초점(蓍草占)이 중해지고 거북점의 책이 전해지지 않게 되었다.』
▣ 제32장(第三十二章)
『 여덟번째 서징(庶徵)은 비옴과 볕남과 더움과 추움과 바람과 때로 함이니,
다섯 가지가 와서 갖춰지되 각기 그 절서(節敍)에 맞으면 여러 풀들도 번성할 것이다.』
『 징(徵)은 징험이다. 무(¨8)는 풍무(豊茂)함이다. 징험하는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니므로 서징(庶徵)이라 하였고,
우(雨)•양(暘)•욱(?)•한(寒)•풍(風)이 각각 때에 따라 이르므로 때라고 말한 것이다.
비(備)는 부족함이 없는 것이요 서(敍)는 절후(節候)에 응하는 것이다.
다섯 가지가 갖춰져 절서(節敍)를 잃지 않으면 여러 풀들도 번성할 것이니 기타를 알 수 있다.
우(雨)는 수(水)에 속하고, 양(暘)은 화(火)에 속하고, 욱(?)은 목(木)에 속하고, 한(寒)은 금(金)에 속하고, 풍(風)은 토(土)에 속한다.』
『 오인걸(吳仁傑)이 말하였다. “《주역(周易)》에 감(坎)을 수(水)라 하니 북방(北方)의 괘(卦)이며,
또 ‘비로 윤택하게 한다.’ 하였으니, 우(雨)는 수(水)가 되는 것이다.
이(離)를 화(火)라 하니 남방(南方)의 괘(卦)이며, 또 ‘해로써 볕을 쪼인다.’ 하였으니 양(暘)은 화(火)가 되는 것이다.
〈소명(小明)〉시(詩) 수장(首章)에 ‘내가 정벌하러 서쪽으로 갈 때는 2월 초하루였다.’ 하였고,
3장(章)에 ‘옛날 내가 정벌하러 갈 때에는 일월(日月)이 막 따뜻했다.’ 하였으니,
2월을 따뜻하다고 했다면 욱(?)이 봄이 되고 목(木)이 됨이 분명하다.
《한지(漢志)》에 ‘호돌(狐突)의 금(金)은 차다’는 말을 인용하였는데,
안사고(顔師古)는 ‘금(金)의 운행(運行)이 서쪽에 있으므로 한(寒)이라 한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한(寒)이 가을이 되고 금(金)이 됨이 분명하다.
또 살펴보건대 계의(稽疑)에서 우(雨)를 수(水)에 속하고 제(霽)를 화(火)에 속하게 하였으니,
제(霽)는 볕이 나는 것이니, 서징(庶徵)에서 우(雨)가 수(水)가 되고 양(暘)이 화(火)가 됨은 유례(類例)가 또 매우 분명하다.”』
『 오행(五行)은 생수(生數)에 자연의 순서이고, 오사(五事)는 오행(五行)에 근본하였으며,
서징(庶徵)은 오사(五事)에 근본하였으니,
그 조리(條理)와 차제(次第)가 서로 관통(貫通)하여 질서정연해서 문란(紊亂)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 제33장(第三十三章)
『 한 가지가 지극히 구비되어도 흉(凶)하며, 한 가지가 지극히 없어도 흉(凶)하다.』
『 극비(極備)는 지나치게 많은 것이요, 극무(極無)는 지나치게 적은 것이다.
당(唐)나라 공씨(孔氏)는 말하기를
“비가 많으면 장마가 지고 비가 적으면 가물다.” 하였으니,
이는 지극히 구비되어도 또한 흉(凶)하고 지극히 없어도 흉(凶)한 것이다. 나머지는 이에 준한다.』
▣ 제34장(第三十四章)
『 아름다운 징조(徵兆)는 엄숙함에 제때에 비가 내리며, 조리(條理)가 있음에 제때에 날이 개이며,
지혜로움에 제때에 날이 따뜻하며, 헤아림에 제때에 날이 추우며, 성스러움에 제때에 바람이 부는 것이다.
나쁜 징조는 미친 짓을 함에 항상 비가 내리며, 참람한 짓을 함에 항상 볕이 나며, 게으름에 항상 날씨가 더우며,
급박함에 항상 날씨가 추우며, 몽매함에 항상 바람이 부는 것이다.』
『 광(狂)은 망령됨이요, 참(僭)은 어그러짐이요, 예(豫)는 게으름이요, 급(急)은 급박함이요, 몽(蒙)은 몽매함이다.
하늘에 있으면 오행(五行)이 되고, 사람에 있으면 오사(五事)가 되니,
오사(五事)가 갖추어지면 아름다운 징조가 각기 유(類)에 따라 응하고,
오사(五事)가 잘못되면 나쁜 징조가 각기 유(類)에 따라 응하니, 이는 자연(自然)의 이치이다.
그러나 반드시 아무 일이 잘되면 아무 아름다운 징조가 응하고,
아무 일이 잘못되면 아무 나쁜 징조가 응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고착(固着)하여 통하지 못해서 함께 조화의 묘를 더불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늘과 인간의 즈음은 쉽게 말할 수 없으니, 득실(得失)의 기미(機微)와 감응(感應)의 은미한 이치를 도(道)를 아는 자가 아니면 누가 알겠는가.』
▣ 제35장(第三十五章)
『 왕(王)이 살필 것은 해이고 경사(卿士)는 달이고 사윤(師尹)은 날이다.』
『 세(歲)•월(月)•일(日)은 존비(尊卑)로 징험을 삼은 것이다.
왕자(王者)의 득실(得失)은 해로써 징험하고 경사(卿士)의 득실(得失)은 달로써 징험하고 사윤(師尹)의 득실(得失)은 날로써 징험한다.
우(雨)•양(暘)•욱(?)•한(寒)•풍(風) 다섯 가지의 좋고 나쁨은 한 해의 이해(利害)에 관계됨이 있고
한 달의 이해에 관계됨이 있고 하루의 이해에 관계됨이 있으니, 각기 그 크고 작은 것으로 말한 것이다.』
▣ 제36장(第三十六章)
『 세(歲)•월(月)•일(日)에 때가 바뀜이 없으면 백곡(百穀)이 풍성하고 다스려짐이 밝아지고 준걸스런 백성들이 드러나고 집이 편안해질 것이다.』
『 세(歲)•월(月)•일(日) 세 가지에 우(雨)•양(暘)•욱(?)•한(寒)•풍(風)이 제때를 잃지 않으면 그 효험이 이와 같으니,
아름다운 징조가 응한 것이다.』
▣ 제37장(第三十七章)
『 일(日)•월(月)•세(歲)에 제때를 잃어 때가 바뀌어지면 백곡(百穀)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다스려짐이 어두워 밝지 못하고 준걸스런 백성들이 미천해지고 집이 편안하지 못할 것이다.』
『 일(日)•월(月)•세(歲) 세 가지에 우(雨)•양(暘)•욱(?)•한(寒)•풍(風)이 이미 제때를 잃으면 그 해로움이 이와 같으니,
이는 나쁜 징조의 소치(所致)이다.
아름다운 징조에 세(歲)•월(月)•일(日)이라고 말한 것은 큰 것에 총괄되기 때문이요,
나쁜 징조에 일(日)•월(月)•세(歲)라 말한 것은 그 작음을 드러낸 것이다.』
▣ 제38장(第三十八章)
『 서민(庶民)은 별이니, 별은 바람을 좋아하는 것이 있고 비를 좋아하는 것이 있다.
해와 달의 운행에는 겨울이 있고 여름이 있으니, 달이 별을 따름으로 비바람을 알 수 있다.』
『 백성이 땅에 붙어 있음은 별이 하늘에 붙어 있는 것과 같다.
바람을 좋아하는 것은 기성(箕星)이고, 비를 좋아하는 것은 필성(畢星)이다.
《한지(漢志)》에 “진성(軫星) 또한 비를 좋아한다.” 하였으니, 짐작하건대 별은 모두 좋아하는 것이 있는 듯하다.』
『 해는 중도(中道)가 있고, 달은 구행(九行)『[아홉 길]』이 있다.
중도(中道)는 황도(黃道)이니, 북(北)으로 동정(東井)에 이르면 북극(北極)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남(南)으로 견우(牽牛)에 이르면 북극(北極)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동(東)으로 각(角)에 이르고 서(西)로 누(婁)에 이르면 북극(北極)과의 거리가 중앙(中央)인 것이 이것이다.
구행(九行)은 흑도(黑道) 둘은 황도(黃道)의 북(北)으로 나오고, 적도(赤道) 둘은 황도(黃道)의 남(南)으로 나오고,
백도(白道) 둘은 황도(黃道)의 서(西)로 나오고, 청도(靑道) 둘은 황도(黃道)의 동(東)으로 나오니, 황도(黃道)까지 아울러 아홉 길이 된다.』
『 해가 지극히 남쪽으로 가서 견우(牽牛)에 이르면 동지(冬至)가 되고, 지극히 북쪽으로 가서 동정(東井)에 이르면 하지(夏至)가 되며,
남북(南北)이 중앙이어서 동쪽으로 각(角)에 이르고 서쪽으로 누(婁)에 이르면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이 된다.
달은 입춘(立春)과 춘분(春分)에는 청도(靑道)를 따르고, 입추(立秋)와 추분(秋分)에는 백도(白道)를 따르고,
입동(立冬)과 동지(冬至)에는 흑도(黑道)를 따르고, 입하(立夏)와 하지(夏至)에는 적도(赤道)를 따르니,
이른바 ‘해와 달의 운행이 겨울이 있고 여름이 있다.’는 것이다.
달이 동북쪽으로 가서 기성(箕星)에 들어가면 바람이 많고,
달이 서남쪽으로 가서 필성(畢星)에 들어가면 비가 많으니, 이른바 ‘달이 별을 따름으로 비바람을 안다.’는 것이다.』
『 백성을 살핌을 말하지 않은 것은 서민(庶民)의 좋고 나쁨은 윗사람의 잘잘못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만 달이 별을 따름으로 백성의 하고자 함을 따르는 것이 어떠한가를 나타냈을 뿐이다.
민생(民生)의 무리는 추운 자는 입고자 하고, 굶주린 자는 먹고자 하고, 환(鰥)•과(寡)•고(孤)•독(獨)은 자기 살 곳을 얻고자 하니,
이는 왕정(王政)에 제일 먼저 하여야 할 바이고, 백성을 가까이 하는 경사(卿士)와 사윤(師尹)의 책임이다.
그러나 별은 비록 바람을 좋아하고 비를 좋아하는 차이가 있으나 해와 달의 운행은 겨울과 여름의 떳떳함이 있으니,
달의 떳떳한 운행으로 별의 다른 좋아함을 따르고,
경사(卿士)와 사윤(師尹)의 떳떳한 직책으로 백성들의 다른 욕망을 따른다면 백성을 따르는 것은 백성을 따르기 위한 것이 아니다.』
『 해와 달을 말하고 세(歲)를 말하지 않은 것은 겨울이 있고 여름이 있는 것은 세공(歲功)을 이루기 때문이며,
달을 말하고 해를 말하지 않은 것은 별을 따름은 오직 달만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제39장(第三十九章)
『 아홉번째 오복(五福)은 첫번째는 수(壽)이고, 두번째는 부(富)이고, 세번째는 강녕(康寧)이고,
네번째는 유호덕(攸好德)『[덕(德)을 좋아함]』이고, 다섯번째는 고종명(考終命)이다.』
『 사람은 수(壽)가 있은 뒤에 여러 복(福)을 누릴 수 있으므로 수(壽)가 맨 먼저인 것이다.
부(富)는 늠록(쬎祿)이 있는 것이요, 강녕(康寧)은 환난(患難)이 없는 것이요, 유호덕(攸好德)은 도(道)를 즐김이요,
고종명(考終命)은 순히 바른 명(命)을 받는 것이니, 복(福)의 완급(緩急)으로 선후(先後)를 삼은 것이다.』
▣ 제40장(第四十章)
『六極은 一曰凶短折이요 二曰疾이요 三曰憂요 四曰貧이요 五曰惡이요 六曰弱이니라』
『 육극(六極)은 첫번째는 흉(凶)함과 단절(短折)이요, 두번째는 질병(疾病)이요,
세번째는 우환(憂患)이요, 네번째는 가난이요, 다섯번째는 악(惡)함이요, 여섯번째는 나약함이다.”』
『凶者는 不得其死也요 短折者는 橫夭也니 禍莫大於凶短折이라
故로 先言之라 疾者는 身不安也요 憂者는 心不寧也요 貧者는 用不足也요 惡者는 剛之過也요 弱者는 柔之過也니 以極之重輕으로 爲先後라
五福, 六極은 在君則係於極之建不建하고 在民人則由於訓之行不行하니 感應之理 微矣라』
『 흉(凶)은 제대로 죽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고 단절(短折)은 요절(夭折)이니, 화는 흉(凶)함과 단절(短折)보다 더 큰 것이 없으므로 먼저 말한 것이다.
질(疾)은 몸이 편안하지 못한 것이요, 우(憂)는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 것이요, 빈(貧)은 재용(財用)이 부족한 것이요, 악(惡)은 강(剛)함이 과한 것이요,
약(弱)은 유순(柔順)함이 과한 것이니, 극(極)의 경중(輕重)으로 선후(先後)를 삼은 것이다.
오복(五福)과 육극(六極)은 군주(君主)에 있어서는 황극(皇極)을 세우고 세우지 못함에 관계되고,
인민(人民)에 있어서는 교훈(敎訓)을 행하고 행하지 않음에 달려 있으니, 감응(感應)의 이치가 미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