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 주서 - 태서 하(泰誓下)

 

 

▣ 태서 하(泰誓下)

 

 

▣ 제1장(第一章)


『 그 다음날에 왕(王)이 육사(六師)를 크게 순행(巡行)하여 여러 군사(軍士)들에게 분명히 맹세하였다.』

『 궐명(厥明)은 무오일(戊午日)의 다음날이다. 옛날에 천자(天子)는 육군(六軍)이고, 대국(大國)은 삼군(三軍)이었다.

이때 무왕(武王)은 육군(六軍)을 구비하지 못하였으니, 〈목서(牧誓)〉에 삼경(三卿)을 서술함에서 이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여기서 육사(六師)라고 말한 것은 사신(史臣)의 말이다.』

 


▣ 제2장(第二章)


『 왕(王)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아! 우리 서토(西土)의 군자(君子)들아.

하늘은 드러난 도(道)가 있어 그 유(類)가 밝으니, 이제 상왕(商王) 수(受)가 오상(五常)을 설만히 하여 업신여기며

황폐(荒廢)하고 태만하여 공경하지 않아서 스스로 하늘을 끊으며 백성들에게 원망을 맺고 있다.』

『 하늘은 지극히 드러난 이치가 있어 그 의류(義類)가 지극히 밝으니, 지극히 드러난 이치는 곧 떳떳한 도리이다.

주왕(紂王)은 군신(君臣)•부자(父子)•형제(兄弟)•부부(夫婦)의 떳떳한 도(道)에 있어 설압(褻狎)하여 업신여기며

황기(荒棄)하고 태타(怠惰)하여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없어 위로는 하늘을 끊고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원망을 맺고 있으니,

원망을 맺고 있다는 것은 한 가지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하문(下文)은 스스로 끊고 원망을 맺은 실제이다.』

 

 

▣ 제3장(第三章)


『 아침에 물을 건너가는 자의 정강이를 찍고, 어진 사람의 배를 갈라 심장을 도려내며,

위엄을 세워 살륙(殺戮)함으로 천하(天下)에 해독을 끼치며, 간사(奸邪)한 사람을 높이고 믿으며 사보(師保)들을 추방하고 내치며,

전형(典刑)을 버리고 바른 선비들을 가두어 노예로 삼으며, 교(郊)•사(社)를 닦지 않고 종묘(宗廟)를 제향(祭享)하지 않으며,

기이한 재주와 도에 지나친 솜씨를 만들어 부인(婦人)을 기쁘게 하였다.

이에 상제(上帝)가 순하게 여기지 않으시어 단연코 이 망함을 내리시니,

너희들은 부지런히 힘써서 나 한 사람을 받들어 공손히 천벌(天罰)을 행하라.』

『 작(?)은 찍음이다.

공씨(孔氏)가 말하기를 “겨울철에 아침에 물을 건너가는 사람을 보고는 그 정강이가 추위를 견딘다고 하여 찍어서 보았다.” 하였다.

《사기(史記)》에 “비간(比干)이 굳이 간(諫)하니,

주왕(紂王)이 노하여 말하기를 ‘내 들으니, 성인(聖人)은 심장에 일곱 구멍이 있다.’ 하고는

마침내 비간(比干)의 배를 갈라 그 심장을 보았다.” 하였다. 부(?)는 병듦이다.

형벌과 위엄을 세워 살륙(殺戮)을 일삼아서 사해(四海)의 사람들에게 해독을 끼치고 병들게 하니,

그 화(禍)의 미침이 멂을 말한 것이다. 회(回)는 간사함이다. 정사(正士)는 기자(箕子)이다.

교(郊)는 하늘에 제사(祭祀)하는 것이요, 사(社)는 땅에 제사(祭祀)하는 것이다.

기기(奇技)는 기이한 기능을 이르고, 음교(淫巧)는 도에 지나친 솜씨를 이른다.

《열녀전(列女傳)》에 “주왕(紂王)이 구리기둥에 기름을 칠하고 아래에 숯불을 피워놓은 다음

죄가 있는 자로 하여금 걸어가게 하여 곧 숯불 속으로 떨어져 죽으면 달기(쩉己)가 이것을 보고 웃었다.” 하였다.

달기(쩉己)가 웃기를 바라서 포락(µ&烙)의 형벌까지 했다면

그 기이한 재주와 지나친 솜씨로써 기쁘게 한 것이 마땅히 이르지 않는 바가 없었을 것이다. 축(祝)은 결단함이다.

주왕(紂王)이 간사(奸邪)한 자를 높이고 믿고, 사보(師保)를 추방하고 내치며,

선왕(先王)의 법(法)을 버리고 중정(中正)한 선비를 가두어 노예로 삼으며, 제사(祭祀)를 받드는 예(禮)를 가벼이 폐하고,

더럽고 설만(褻慢)한 행실에 전념하여 하늘의 떳떳한 도(道)를 패란(悖亂)하였다.

그러므로 하늘이 순하게 여기지 않아 단연코 이 상망(喪亡)을 내린 것이니,

너희 여러 군사들은 힘써 게을리하지 말아 나 한 사람을 받들어서 공경히 천벌(天罰)을 행해야 할 것이다.』

 


▣ 제4장(第四章)


『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를 어루만져주면 임금이고, 나를 학대하면 원수이다.’ 하였으니,

독부(獨夫)인 수(受)가 크게 위엄을 세우니, 바로 너희들 대대로의 원수이다.

덕(德)을 세움에는 불어나게 함을 힘써야 하고, 악(惡)을 제거함에는 근본을 힘써야 한다.

이러므로 나 소자(小子)가 크게 너희 여러 군사(軍士)들을 데리고 너희들의 원수를 끊고 섬멸하려 하노니,

너희 여러 군사(軍士)들은 부디 과의(果毅)를 행하여 너희 군주(君主)를 성공(成功)시키도록 하라.

공(功)이 많으면 후한 상(賞)이 있고, 과의(果毅)를 행하지 않으면 드러난 죽임이 있을 것이다.』

『 홍(洪)은 큼이다. 독부(獨夫)는 천명(天命)이 이미 끊기고 인심(人心)이 이미 떠나서 단지 한 독부(獨夫)일 뿐임을 말한 것이다.

맹자(孟子)는 “잔적(殘賊)한 사람을 일부(一夫)라 한다.” 하였다.

무왕(武王)이 옛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이르기를 “나를 어루만져주면 나의 군주(君主)이고 나를 학대하면 나의 원수이니,

이제 독부(獨夫)인 수(受)가 크게 위엄과 사나움을 일으켜 너희 백성들을 잔해(殘害)하니,

이는 너희 백성들 대대로의 원수이다.” 한 것이다. 무(務)는 오로지 힘씀이다.

덕(德)을 세움에는 불어나고 자라나게 함을 힘써야 하고, 악(惡)을 제거함에는 근본을 끊음을 힘써야 하니,

이 두 구(句)는 짐작컨대 또한 옛말이니, 주왕(紂王)이 여러 악(惡)의 근본이 되므로 마땅히 제거할 바에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 소자(小子)가 크게 너희 여러 군사(軍士)들을 데리고

너희들 대대(代代)로의 원수를 진절(殄絶)하고 섬멸(殲滅)하는 것이다. 적(迪)은 밟음이요, 등(登)은 이룸이다.

적(敵)을 죽임을 과(果)라 하고, 과(果)『[결행함]』를 지극히 함을 의(毅)라 한다.

너희 여러 군사(軍士)들은 부디 과의(果毅)를 도행(蹈行)하여 너희 군주(君主)를 성공시키도록 하라.

만약 공(功)이 많으면 후한 상(賞)이 있을 것이니, 단지 한 작위(爵位)와 한 계급일 뿐만이 아니요,

과의(果毅)를 행하지 않으면 드러난 죽임이 있을 것이다.

드러난 죽임이라고 일렀으면 반드시 시신(屍身)을 시조(市朝)에 진열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보일 것이다.』

 

 

▣ 제5장(第五章)


『 아! 우리 문고(文考)께서 일월(日月)이 비추고 임하듯이 하여 사방(四方)에 빛나시며 서토(西土)에 드러나셨으니,

우리 주(周)나라는 크게 다방(多方)『[여러 지방]』을 받을 것이다.』
『 일월(日月)이 조림(照臨)함과 같음은 그 덕(德)이 빛남을 말한 것이요,

사방(四方)에 빛남은 덕(德)이 멀리까지 입혀짐을 말한 것이요,

서토(西土)에 드러남은 덕(德)이 특히 발상지에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

문왕(文王)의 땅은 백리(百里)에 그쳤으나 문왕(文王)의 덕(德)은 천하(天下)에 도달하였으니,

다방(多方)을 받는 것은 주(周)나라가 아니면 그 누가 받겠는가.

문왕(文王)의 덕(德)은 실로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돌아온 바였다.

그러므로 무왕(武王)이 군사들에게 맹세한 끝에 탄식하고 이것을 말씀한 것이다.』

 

 

▣ 제6장(第六章)


『 내가 수(受)를 이기더라도 내가 무용(武勇)이 있어서가 아니라 짐(朕)의 문고(文考)께서 죄(罪)가 없으시기 때문이며,

수(受)가 나를 이기더라도 짐(朕)의 문고(文考)께서 죄(罪)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 소자(小子)가 훌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무죄(無罪)는 허물이 없다는 말과 같고, 무량(無良)은 선(善)이 없다는 말과 같다.

상(商)나라와 주(周)나라가 대적(對敵)할 수 없음이 오래되었는데도 무왕(武王)이 오히려 승부(勝負)에 대한 우려가 있어

문왕(文王)에게 수치가 될까 두려워한 것은 성인(聖人)이 일에 임하여 두려워함이 이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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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 주서 - 태서 중(泰誓中)


▣ 태서 중(泰誓中)

 


▣ 제1장(第一章)


『 무오일(戊午日)에 왕(王)이 하북(河北)에 머물러 계시니, 여러 제후(諸侯)들이 군대를 거느리고 다 모였다.

이에 왕(王)은 군대를 순행(徇行)하며 다음과 같이 맹세하였다.』

『 차(次)는 머무름이요, 순(徇)은 순행함이다. 하삭(河朔)은 하북(河北)이다.

무오(戊午)는 〈무성(武成)〉으로 상고해 보면 1월 28일이다.』

 


▣ 제2장(第二章)


『 “아! 서토(西土)『[서쪽 지방]』의 무리들아. 모두 내 말을 들어라.』

『 주(周)나라는 풍(豊)•호(鎬)에 도읍하여 그 땅이 서쪽에 있으니, 무왕(武王)을 따라 황하(黃河)를 건너온 자가

모두 서방(西方)의 제후(諸侯)였다. 그러므로 서토유중(西土有衆)이라 한 것이다.』

 


▣ 제3장(第三章)


『 내 들으니, ‘길(吉)한 사람은 선행(善行)을 하되 날마다 부족하게 여기거늘

흉(凶)한 사람은 날마다 불선(不善)을 하되 또한 날마다 부족하게 여긴다.’ 하였다.

지금 상왕(商王) 수(受)가 법도(法度)가 없는 일을 힘써 행하여 노인들을 버리고 죄인(罪人)들을 가까이하며,

음탕하고 술주정하여 사나움을 부리니, 신하(臣下)들이 이에 화(化)하여 집집마다 붕당(朋黨)을 지어 원수가 되어서

권세를 빌어 위협하여 서로 멸하니, 죄 없는 자들이 하늘에 부르짖어 더러운 덕(德)이 위에 드러나 알려졌다.』

『 유일부족(惟日不足)은 종일토록 하고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는 것이다.

주왕(紂王)이 법도(法度)가 없는 일을 힘써 행함을 장차 말하려 하였으므로 옛사람의 말로 꺼낸 것이다.

무도(無度)는 법도(法度)가 없는 일이다. 파(播)는 추방함이다.

이(퍿)는 여(¼_)와 통하니, 머리가 검으면서 누런 것이니, 미자(微子)가 이른바 ‘노성한 사람들이 황야로 도망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노성(老成)한 신하는 마땅히 친근히 하여야 할 자인데 주왕(紂王)은 마침내 이들을 방기(放棄)하였으며,

죄악(罪惡)을 저지른 사람은 마땅히 배척하고 축출하여야 할 자인데 주왕(紂王)이 이들을 친근히 하였다.

후(酗)는 취하여 노함이다. 사(肆)는 부림이다. 신하들 또한 주왕(紂王)의 악(惡)에 화(化)하여 각각 붕당(朋黨)을 세워서

서로 원수가 되어 군상(君上)의 권세와 명령을 빌어 위협하여 서로 주멸(誅滅)해서 천하(天下)에 해독을 퍼뜨리니,

죄 없는 사람들이 하늘을 부르며 원통함을 하소연하여 비린내나고 더러운 덕(德)이 위에 드러나 알려졌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선행(善行)을 함이 지극하면 지극한 정치가 향기롭고,

악행(惡行)을 함이 지극하면 더러운 덕(德)이 드러나 알려진다.”』

 


▣ 제4장(第四章)


『 하늘이 백성을 사랑하시거든 군주(君主)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야 하니, 하(夏)나라 걸왕(桀王)이 능히 하늘에 순종하지 못하여

하국(下國)에 해독(害毒)을 퍼뜨리자, 하늘이 마침내 성탕(成湯)을 도와 명(命)하시어 하(夏)나라의 명(命)을 내치셨다.』

『 하늘이 이 백성들을 사랑하시니, 군주(君主)는 마땅히 하늘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옛날에 걸왕(桀王)이 하늘에 순종하지 못하여 하국(下國)에 해독을 퍼뜨렸으므로

하늘이 성탕(成湯)을 명(命)하여 하(夏)나라의 명(命)을 내친 것이다.』

 

 

▣ 제5장(第五章)


『 수(受)는 죄악이 걸왕(桀王)보다 더하니, 원량(元良)을 박해하여 지위를 잃게 하고 간(諫)하는 보필(輔弼)들을 적해(賊害)하며,

자기가 천명(天命)을 소유했다 하고 공경을 굳이 행할 것이 없다 하며, 제사(祭祀)를 지내는 것이 무익(無益)하다 하고

포악한 행동이 해로울 것이 없다고 하니, 그 볼 것이 멀리 있지 않아 저 하왕(夏王)에게 있다.

하늘이 나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리하여 짐(朕)의 꿈이 짐(朕)의 점괘와 합하여 아름다운 상서가 거듭되니,

상(商)나라를 정벌하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 부(浮)는 과(過)『[더함]』함이요, 박(剝)은 떨어짐이다. 상(喪)은 떠남이니, 옛날에 나라를 떠남을 상(喪)이라 하였다.

원량(元良)은 미자(微子)이고, 간보(諫輔)는 비간(比干)이다.

자기가 천명(天命)을 소유했다고 말한 것은

조이(祖伊)에게 답하기를 “나의 태어남『[삶]』은 명(命)이 하늘에 달려 있지 않은가.”라고 한 것과 같은 따위이니,

아래의 세 구(句)도 또한 주왕(紂王)이 일찍이 말한 것이다. 감(鑑)은 봄이니, 그 볼 것이 애당초 먼데 있지 않다.

하(夏)나라가 죄(罪)가 많으므로 하늘이 이미 성탕(成湯)에게 명(命)하여 그 명(命)을 내쳤으니,

이제 주왕(紂王)이 죄(罪)가 많으니 하늘이 나로써 백성을 다스리게 하실 것이다. 습(襲)은 거듭함이다.

나의 꿈이 나의 점괘와 합하여 거듭 아름다운 상서가 응함이 있으니, 상(商)나라를 정벌하면 반드시 이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하늘의 뜻에 반드시 이길 이치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 제6장(第六章)


『 수(受)는 억조(億兆)의 보통사람이 있으나 마음이 이반되고 덕(德)이 이반되지만,

나는 난(亂)을 다스리는 신하(臣下) 10인이 있는데 마음이 같고 덕(德)이 같으니,

〈수(受)가〉 비록 지극히 친한 친척들이 있으나 나의 인인(仁人)만 못하다.』

『 이(夷)는 평평함이니, 이인(夷人)은 지식이 서로 비슷하여 크게 뛰어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난(亂)을 다스림을 난(亂)이라 한다.

10인은 주공단(周公旦)•소공석(召公奭)•태공망(太公望)•필공(畢公)•영공(榮公)•태전(太顚)•굉요(쥺夭)

•산의생(散宜生)•남궁괄(南宮括)이요, 그 하나는 문모(文母)『[문왕(文王)의 비(妃)인 태사(太ª5)]』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부인(婦人)이 있으니, 9명뿐이다.” 하였는데,

유시독(劉侍讀)이 이르기를 “자식이 어머니를 신하로 삼는 의(義)가 없으니, 무왕(武王)의 비(妃)인 읍강(邑姜)이다.” 하였으니,

아홉 신하는 밖을 다스리고 읍강(邑姜)은 안을 다스린 것이다.

주왕(紂王)이 비록 보통사람들이 많이 있으나 주(周)나라에 다스리는 신하(臣下)가 적으면서 충성을 다함만 못함을 말한 것이다.

주(周)는 지극함이다. 주왕(紂王)이 비록 지친(至親)의 신하가 있으나 주(周)나라에 인인(仁人)이 어질어서 믿을 수 있음만 못하다.

이는 인사(人事)에 반드시 이길 이치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 제7장(第七章)


『 하늘의 봄이 우리 백성의 봄으로부터 하시며 하늘의 들음이 우리 백성의 들음으로부터 하시니,

백성들의 책함이 나 한 사람에게 있으니, 이제 짐(朕)은 반드시 정벌하러 가리라.』
『 과(過)는 《광운(廣韻)》에 “책함이다.” 하였다.

무왕(武王)이 말씀하기를 “하늘의 보고 들음은 모두 우리 백성으로부터 하니,

이제 백성들이 모두 나에게 책함이 있어 나에게 이르기를 ‘상(商)나라의 죄(罪)를 바로잡지 않는다.’고 하니,

민심(民心)을 가지고 천의(天意)를 살펴보면 내가 상(商)나라를 정벌(征伐)하러 결단코 반드시 갈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백성들이 주왕(紂王)의 학정(虐政)을 두려워하고 주(周)나라에 바라기를 깊이 하여

무왕(武王)이 즉시 자기들을 수화(水火)에서 구제해 주지 않음을 책하였으니,

이는 탕왕(湯王)이 동면(東面)하여 정벌함에 서이(西夷)가 원망하고 남면(南面)하여 정벌함에 북적(北狄)이 원망함과 같은 뜻이다.』

 

 

▣ 제8장(第八章)


『 우리의 무용(武勇)을 들어 저 국경(國境)을 침입해서 저 흉잔(凶殘)한 자를 취하여

우리의 정벌이 장대(張大)되면 성탕(成湯)에게 빛이 있을 것이다.』
『 양(揚)은 듦이요, 침(侵)은 들어감이다. 흉잔(凶殘)은 주왕(紂王)이니, 맹자(孟子)가 잔적(殘賊)이라고 말씀한 것과 같다.

무왕(武王)이 백성들을 위로하고 죄 있는 자를 정벌하니, 탕왕(湯王)의 마음에 징험하면 더욱 천하(天下)에 명백해진다.

세속의 입장에서 보면 무왕(武王)이 성탕(成湯)의 자손을 정벌하고 성탕(成湯)의 종묘사직을 전복(顚覆)하였으니

성탕(成湯)의 원수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성탕(成湯)이 걸왕(桀王)을 추방한 것과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정벌한 것은

다 천하(天下)를 공변되게 함을 마음으로 삼은 것이요, 자기에게 사사로움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왕(武王)의 일을 성탕(成湯)에게 질정(質正)하면 부끄러움이 없고,

성탕(成湯)의 마음을 무왕(武王)에게 징험하면 더욱 드러나니,

이는 상(商)나라를 정벌하는 일이 어찌 성탕(成湯)에게 빛이 있음이 되지 않겠는가.』

 

 

▣ 제9장(第九章)


『 힘쓸지어다. 장사(將士)들은 혹시라도 두려워하지 않지 말아서 차라리 대적할 바가 아니라는 마음을 가져라.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그 뿔을 무너뜨리듯이 하니, 아! 너희들은 덕(德)을 한결같이 하고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공을 세워 능히 세상을 영원토록 하라.”』

『 욱(勖)은 힘씀이다. 부자(夫子)는 장사(將士)『[장병(將兵)]』들이다. 힘쓸지어다.

장사(將士)들은 혹시라도 주왕(紂王)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여기지 말아서

차라리 마음을 갖기를 우리가 대적할 바가 아니라고 여기라고 한 것이다.

상(商)나라 백성들은 주왕(紂王)의 학정(虐政)을 두려워하여 늠름(凜凜)해서 마치 두각(頭角)을 무너뜨리듯이 하고 있다.

인심(人心)이 위태롭게 여기고 두려워함이 이와 같으니, 너희들은 마땅히 덕(德)을 한결같이 하고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공(功)을 세워서 능히 세상을 영원토록 하라고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周書)


 

▣ 주서(周書)


『周는 文王國號니 後에 武王이 因以爲有天下之號하시니 書凡三十二篇이라』


『 주(周)는 문왕(文王)의 국명(國名)이니, 뒤에 무왕(武王)이 인하여 천하(天下)를 소유(所有)한 칭호로 삼았다.

주서(周書)는 모두 32편(篇)이다.』

 

 

▣ 태서 상(泰誓上)


『泰는 大『(太)』同이니 國語에 作大하니라

武王伐殷하신대 史錄其誓師之言하니 以其大會孟津일새 編書者因以泰誓名之하니라

上篇은 未渡河作이요 後二篇은 旣渡河作이라 今文無, 古文有하니라』

『○ 按伏生二十八篇에 本無泰誓러니 武帝時에 僞泰誓出하여 與伏生今文書로 合爲二十九篇이라

孔壁書雖出이나 而未傳於世라 故로 漢儒所引은 皆用僞泰誓니

如曰 『白魚入于王舟, 有火復于王屋주:백어입우왕주』流爲烏니 太史公記周本紀에도 亦載其語라

然僞泰誓는 雖知剽竊經傳所引이로되 而古書亦不能盡見이라

故로 後漢馬融이 得疑其僞하여 謂泰誓는 按其文컨대 若淺露하고 吾又見書傳이 多矣나

所引泰誓而不在泰誓者甚多라하더니 至晉孔壁古文書行하여 而僞泰誓始廢하니라』

『○ 吳氏曰 湯武皆以兵受命이나 然湯之辭는 裕하고 武王之辭는 迫하며

湯之數桀也는 恭하고 武之數紂也는 傲하니 學者不能無憾이라 疑其書之晩出하여 或非盡當時之本文也니라』


『 태(泰)는 대(大)『[태(太)]』와 같으니, 《국어(國語)》에는 대(大)로 되어 있다.

무왕(武王)이 은(殷)을 정벌하니, 사관(史官)이 군사들에게 맹세한 말씀을 기록하였는데,

맹진(孟津)에서 크게 모였으므로 책을 엮는 자가 인하여 태서(泰誓)라고 이름하였다.

상편(上篇)은 하수(河水)를 건너기 전에 지은 것이고, 뒤의 두 편(篇)은 이미 하수(河水)를 건넌 뒤에 지은 것이다.

금문(今文)에는 없고 고문(古文)에는 있다.』

『 ○ 살펴보건대, 복생(伏生)의 28편(篇)에는 본래 〈태서(泰誓)〉가 없었는데,

무제(武帝) 때에 위태서(僞泰誓)『[위작태서(僞作泰誓)]』가 나와서

복생(伏生)의 금문서경(今文書經)과 합하여 29편(篇)이 되었다.

공벽(孔壁)의 책이 비록 나왔으나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으므로

한유(漢儒)들이 인용한 것은 모두 위태서(僞泰誓)였으니,

예를 들면 ‘흰 물고기가 왕(王)의 배에 들어왔다’는 것과

‘불이 왕(王)이 머물고 있는 집의 지붕으로 돌아왔다가 흘러가 까마귀가 되었다.’는 것이니,

태사공(太史公)이 〈주본기(周本紀)〉를 기록할 때에도 또한 이 말을 기재하였다.

그러나 위태서(僞泰誓)가 비록 경전(經傳)에 인용한 것을 표절한 것임을 알았으나 옛 책을 또한 다 볼 수 없으므로

후한(後漢)의 마융(馬融)은 위작(僞作)임을 의심하여 이르기를 “〈태서(泰誓)〉는 그 글을 살펴보면

너무 천근(淺近)하고 드러난 듯하며, 내가 또 《서전(書傳)》을 본 것이 많으나 〈태서(泰誓)〉라고 인용하였는데

〈태서(泰誓)〉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 매우 많다.” 하였다.

그러다가 진(晉)나라 때 공벽(孔壁)의 고문서경(古文書經)이 행해짐에 이르러 위태서(僞泰誓)가 비로소 폐지되었다.』

『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탕왕(湯王)•무왕(武王)이 모두 무력(武力)으로 천명(天命)을 받았으나

탕왕(湯王)의 말은 너그럽고 무왕(武王)의 말은 박절하며, 탕왕(湯王)이 걸왕(桀王)의 죄를 열거한 것은 공손하고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의 죄를 열거한 것은 오만하니, 배우는 자가 유감이 없지 못하다.

생각하건대 이 글이 늦게 나와서 혹 다 당시의 본문(本文)은 아닌 듯하다.”』


 

▣ 제1장(第一章)


『 13년 봄에 맹진(孟津)에서 크게 모였다.』
『 13년은 무왕(武王)이 즉위(卽位)한 13년이다.

봄은 맹춘(孟春)인 건인월(建寅月)이다. 맹진(孟津)은 〈우공(禹貢)〉에 보인다.』

『 ○ 살펴보건대, 한(漢)나라 공씨(孔氏)가 말하기를

“우(虞)•예(芮)가 질정(質正)하여 화평한 것이 문왕(文王)이 천명(天命)을 받아 개원(改元)한 해였으니,

무릇 9년만에 문왕(文王)이 붕(崩)하였고, 무왕(武王)이 즉위한 지 2년만에 관병(觀兵)하였고,

3년만에 주왕(紂王)을 정벌하였으니, 합하여 13년이다.” 하였다.

이것은 모두 위태서(僞泰誓)의 글에 혹하여 “9년에 대통(大統)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과

“상(商)나라에 정사(政事)를 관찰했다.”는 말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옛날에 인군이 즉위하면 원년(元年)을 칭하여 재위(在位)의 오래고 짧음을 계산하였으니, 이는 떳떳한 일이다.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으로부터 처음으로 14년을 고쳐 후원년(後元年)이라 하였고,

한(漢)나라 문제(文帝) 또한 17년을 고쳐 후원년(後元年)이라 하였으니,

이후로 춘추(春秋)『[사책(史冊)]』를 말할 적에 인하여 개원(改元)을 중요한 일로 여기게 되었다.』

『 구양씨(歐陽氏)『[구양수(歐陽脩)]』가 말하기를 “과연 이것이 중요한 일인가?

서백(西伯)이 즉위(卽位)하여 이미 원년(元年)을 고쳤으니, 중간에 개원(改元)을 해서는 안 되는데

또 개원(改元)을 하였고, 무왕(武王)이 즉위함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개원(改元)해야 하는데

도리어 개원(改元)하지 않고는 위로 선군(先君)의 원년(元年)을 무릅써서 거상(居喪)한 기간까지 아울러

11년이라 칭하였고, 상(商)나라를 멸하여 천하(天下)를 얻음에 이르러는 그 일이 송사(訟事)를 다스린 것보다

중대(重大)함이 월등한데도 또 개원(改元)하지 않았으니,

이로 말미암아 말한다면 문왕(文王)이 천명(天命)을 받아 개원(改元)했다는 것과

무왕(武王)이 문왕(文王)의 원년(元年)을 무릅썼다는 것은 다 망령된 것이다.” 하였으니,

구양씨(歐陽氏)의 변론(辨論)이 지극히 분명하고 드러난다.

다만 11년이라고 말한 것은 또한 서서(書序)의 11년의 잘못에 현혹된 것이니, 서편(序篇)에 자세히 보인다.』

『 또 살펴보건대, 한(漢)나라 공씨(孔氏)는 “봄은 건자월(建子月)이다.” 하였으니,

이는 삼대(三代)가 정삭(正朔)을 고칠 적에 반드시 월수(月數)를 고쳤을 것이요,

월수(月數)를 고쳤으면 반드시 그 정월(正月)을 사시(四時)의 머리로 삼았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서(序)에 ‘1월(月) 무오(戊午)’라 하였으니, 이미 1월을 건자월(建子月)이라고 여겼으며,

경문(經文)에 또 봄이라고 달았으므로 마침내 건자월(建子月)을 봄이라고 여긴 것이다.

정삭(正朔)만 고치고 월수(月數)를 고치지 않은 것은 〈태갑(太甲)〉에서 변론하기를 자세히 하였으며,

사시(四時)를 개역(改易)함은 더더욱 의리가 없으니, 겨울을 봄이라고 할 수 없고 추운 것을 따뜻하다고 할 수 없음은

진실로 변론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자명(自明)한 것이다.』

『 혹자는 말하기를 “정씨(鄭氏)가 시(詩)를 해석함에

‘유모지춘(維暮之春)’은 또한 주(周)나라의 계춘(季春)을 말한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하(夏)나라에 있어서는 맹춘(孟春)이 된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한유(漢儒)들이 잘못 이어온 오류일 뿐이다.

또 〈신공(臣工)〉시(詩)에 “늦은 봄이 되었으니, 또한 무엇을 챙겨야 하나. 새로 개간한 밭을 어찌할까.

아! 훌륭한 보리 장차 밝게 주심을 받겠다.” 하였으니,

이는 모춘(暮春)이 되면 마땅히 새로 개간한 밭을 다스려야 할 것이니,

지금 어찌할까? 그러나 모맥(牟麥)이 장차 성숙하면 상제(上帝)가 밝게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모맥(牟麥)이 장차 성숙하였다면 건진월(建辰月)이니, 하정(夏正)의 계춘(季春)임이 분명하다.

정씨(鄭氏)는 시(詩)에서도 그 뜻을 얻지 못했으니, 고찰함이 진실로 자세하지 못하다.

그렇지 않다면 상(商)나라는 계동(季冬)을 봄이라 하고 주(周)나라는 중동(仲冬)을 봄이라 하여,

사시(四時)가 뒤집어지고 거슬려 모두 그 바름을 얻지 못할 것이니,

어찌 삼대(三代)의 성인(聖人)들이 하늘을 받드는 정사(政事)이겠는가.』


 

▣ 제2장(第二章)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우리 우방(友邦)의 총군(¾4君)과 나의 어사(御事)와 서사(庶士)들아. 분명히 맹세하는 말을 들어라.』

『 왕왈(王曰)은 사신(史臣)이 추후(追後)에 칭한 것이다.

우방(友邦)은 친하게 여김이요, 총군(總君)은 높임이다. 월(越)은 및이다.

어사(御事)는 일을 다스리는 자이고, 서사(庶士)는 여러 군사(軍士)들이니,

상(商)나라를 정벌하는 뜻을 고(告)하고 또 듣기를 자세히 하고자 한 것이다.』


 

▣ 제3장(第三章)


『 천지(天地)는 만물(萬物)의 부모(父母)이고, 사람은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니,

진실로 총명(聰明)한 자가 원후(元后)가 되고 원후(元后)가 백성의 부모가 된다.』

『 단(亶)은 성실하여 망령됨이 없음을 이르니, 총명(聰明)이 천성(天性)에서 나옴을 말한 것이다. 위대하다.

건원(乾元)이여! 만물(萬物)이 자뢰(資賴)하여 시작하고, 지극하다.

곤원(坤元)이여! 만물(萬物)이 의뢰(依賴)하여 태어나니, 천지(天地)는 만물(萬物)의 부모(父母)인 것이다.

만물(萬物)이 생겨날 적에 오직 사람만이 그 빼어남을 얻어 영특해서 사단(四端)을 구비하고 만선(萬善)을 갖추어

지각(知覺)이 유독 물건과 다르며 성인(聖人)은 또 가장 빼어남을 얻어 가장 영특하다.

천성(天性)이 총명(聰明)하여 면강(勉强)함을 기다리지 아니하여

그 앎이 먼저 알고 그 깨달음이 먼저 깨달아 서물(庶物) 중에 으뜸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천하(天下)에 대군(大君)이 되는 것이니,

천하(天下)의 피폐(疲弊)하고 잔질(殘疾)한 자가 그 삶을 얻고 환(鰥)•과(寡)•고(孤)•독(獨)이 그 길러줌을 얻어서

온 만민(萬民)의 무리가 한 사람이라도 살 곳을 얻지 못함이 없다.

그렇다면 원후(元后)는 또 백성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낼 적에 사람에게 후하게 하고,

천지(天地)가 사람을 낼 적에 성인(聖人)에게 후하게 하였으니,

성인(聖人)에게 후하게 한 까닭은 또한 백성들에게 군장(君長)이 되어서

천지(天地)가 이 백성을 부모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미루게 하고자 할 뿐이다.

하늘이 백성을 위함이 이와 같으니,

원후(元后)의 책임을 맡은 자가 백성의 부모가 된 의의(意義)를 알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왕(商王) 주(紂)가 백성들에게 군주(君主)가 된 도리를 잃었으므로 무왕(武王)이 이것을 말씀하였으니,

이는 비록 한때 군사들에게 맹세한 말씀이나 실로 만세(萬世)의 인군(人君)이 마땅히 체념(體念)해야 할 것이다.』


 

▣ 제4장(第四章)


『 지금 상왕(商王) 수(受)가 상천(上天)을 공경하지 않고 하민(下民)들에게 재앙을 내리고 있다.』

『 수(受)는 주왕(紂王)의 이름이다.

주왕(紂王)이 하늘에 불경(不敬)하고 백성들을 학대하여 백성의 부모가 된 것을 알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하늘에 불경(不敬)하고 백성을 학대한 실제는 곧 하문(下文)에 말한 것이다.』

 

 
▣ 제5장(第五章)


『 술에 빠지고 여색(女色)에 혼란해서 감히 포학함을 행하여, 사람을 죄주되 친족(親族)에까지 미치고

사람을 벼슬시키되 대대로 하며, 궁실(宮室)과 대사(臺事)와 피지(陂池)와 사치한 의복으로

너희 만성(萬姓)들을 잔해(殘害)하며, 충량(忠良)을 불태워 죽이고, 아이밴 부인의 배를 갈라 보니,

황천(皇天)이 진노(震怒)하여 우리 문고(文考)에게 명(命)하시어 엄숙히 하늘의 위엄을 받들어 행하게 하셨는데,

대훈(大勳)을 이루지 못하셨다.』

『 침면(沈쭚)은 술에 빠짐이요, 모색(冒色)은 여색(女色)에 혼란함이다. 족(族)은 친족(親族)이니,

한 사람이 죄(罪)가 있으면 형벌(刑罰)이 친족(親族)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세(世)는 자제(子弟)이니 벼슬을 시키고 부림에 현재(賢才)를 가리지 않고

오직 부형(父兄)으로 인하여 자제(子弟)들을 총임(寵任)하는 것이다.

흙이 높은 것을 대(臺)라 하고, 나무가 있는 것을 사(ª7)라 한다.

못을 막은 것을 피(陂)라 하고, 물이 고여 있는 것을 지(池)라 한다. 치(侈)는 사치함이다.

분자(焚炙)은 포락(µ&烙)의 형벌 따위이며, 고척(줛剔)은 배를 가르는 것이다.

황보밀(皇甫謐)이 이르기를 “주왕(紂王)이 비간(比干)의 아내를 해부하여 그 태(胎)를 보았다.” 하였으니,

무엇을 근거했는지 알 수 없다. 주왕(紂王)의 학해(虐害)하고 무도(無道)함이 이와 같았으므로

황천(皇天)이 진노(震怒)하여 우리 문왕(文王)을 명(命)하시어 공경히 하늘의 위엄을 받들어

사악한 자를 제거하게 하셨는데, 대공(大功)을 이루기 전에 문왕(文王)이 붕(崩)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대훈(大勳)은 문왕(文王)의 때에는 일찍이 뜻이 있지 않았고,

주왕(紂王)의 죄악이 관통하여 가득 차서 무왕(武王)이 정벌한 것이다.

그러나 문왕(文王)을 서술하는 말에는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말 밖에서 얻어야 할 것이다.』

 


▣ 제6장(第六章)


『 이러므로 나 소자(小子) 발(發)이 너희 우방(友邦)의 총군(¾4君)들을 데리고 상(商)나라의 정사(政事)를 살펴보니,

수(受)『[주왕(紂王)]』가 개전(改悛)할 마음이 없어서 걸터앉아 거하여 상제(上帝)와 신기(神祗)를 섬기지 않고,

선조(先祖)의 종묘(宗廟)를 버려 제사(祭祀)하지 아니하여 희생(犧牲)과 자성(칞盛)을 흉악한 도적에게 이미 모두 빼앗겼는데도

말하기를 ‘내 백성을 소유하고 천명(天命)을 소유했다’ 하여, 업신여김을 징계하지 않는구나.』

『 사(肆)는 고(故)『[이러므로]』이다.

관정(觀政)은 이윤(伊尹)이 말한 “만부(萬夫)의 우두머리에 정사(政事)를 관찰한다.”는 것과 같다.

8백 제후(諸侯)가 상(商)나라를 배반하고 주(周)나라로 돌아왔다면 상(商)나라의 정사(政事)를 알 만하다.

선유(先儒)가 관정(觀政)을 관병(觀兵)이라 하였으니, 잘못이다. 전(悛)은 고침이다. 이(夷)는 걸터앉음이다.

무왕(武王)이 말씀하기를 “이러므로 나 소자가 너희 제후(諸侯)들의 향배(向背)로써 정사(政事)의 득실(得失)을

상(商)나라에 관찰하였더니, 이제 제후(諸侯)들의 배반함이 이미 이와 같은데도 주왕(紂王)이 뉘우쳐 깨닫고

개과(改過)하려는 마음이 없고, 걸터앉아 거하여 상제(上帝)와 백신(百神)과 종묘(宗廟)의 제사(祭祀)를 폐하여,

희생(犧牲)과 자성(칞盛)으로서 제사(祭祀)에 갖추어야 하는 것들을 흉악한 도적들에게 모두 빼앗기니,

이는 곧 기자(箕子)가 말한 ‘신기(神祗)의 희(犧)•전(?)•생(牲)을 훔쳐갔다.’는 것이다.

수(受)가 신(神)을 불경(不敬)함이 이와 같은데도 ‘내가 백성과 사직(社稷)을 소유하고

내가 천명(天命)을 소유했다.’고 말하여, 그 업신여기고 오만한 뜻을 징계(懲戒)함이 없다.”고 한 것이다.』

 


▣ 제7장(第七章)


『 하늘이 하민(下民)들을 도우시어 군주(君主)를 만들고 스승을 만드심은 능히 상제(上帝)를 도와 사방(四方)을 사랑하고

편안하게 하신 것이니, 죄(罪)가 있는 자를 토벌하고 죄(罪)가 없는 자를 용서함에 내 어찌 감히 그 마음을 잘못함이 있겠는가.』

『 우(佑)는 도움이요, 총(寵)은 사랑함이다.

하늘이 하민(下民)들을 도우시어 군주(君主)를 만들어 장(長)이 되게 하고 스승을 만들어 가르치게 하셨으니,

군주(君主)와 스승은 능히 상제(上帝)를 좌우(左右)『[보필]』하여 천하(天下)를 사랑하고 편안하게 하여야 할 것이니,

죄가 있는 자를 마땅히 토벌하고 죄가 없는 자를 마땅히 사면함에 내 어찌 감히 그 마음을 잘못 씀이 있겠는가.

이는 한결같이 하늘을 따를 뿐임을 말씀한 것이다.』

 

 

▣ 제8장(第八章)


『 힘이 같을 경우에는 덕(德)을 헤아리고, 덕(德)이 같을 경우에는 의(義)를 헤아리니,

수(受)는 신하(臣下) 억만(億萬)이 있으나 마음이 억만(億萬)으로 다르거니와 나는 신하(臣下) 3천 명이 있는데 한 마음이다.』

『 탁(度)은 헤아림이다. 덕(德)은 얻음이니, 도(道)를 행하여 몸에 얻음이 있는 것이다.

의(義)는 마땅함이니, 일을 함에 때의 마땅함에 통달하는 것이다.

힘이 같을 경우에는 덕(德)을 헤아리고 덕(德)이 같을 경우에는 의(義)를 헤아리라는 것은

짐작컨대 옛날 병지(兵志)『[병서(兵書)]』의 말인데

무왕(武王)이 군대를 동원하여 상(商)나라를 정벌함에 반드시 이길 수 있음을 밝힌 것인 듯하다.』

『 임씨(林氏)가 말하였다. “《좌씨전(左氏傳)》 양공(襄公) 31년에 노(魯)나라 목숙(穆叔)이 말하기를

‘나이가 똑같을 경우에는 어진이를 가리고, 의(義)가 똑같을 경우에는 점괘(占卦)로 가린다.’ 하였고,

소공(昭公) 26년에 왕자(王子) 조(朝)가 말하기를 ‘나이가 똑같을 경우에는 덕(德)으로 선발하고,

덕(德)이 똑같을 경우에는 점괘(占卦)로 선발한다.’ 하였으니, 이 또한 옛사람의 말을 든 것이니, 문세(文勢)가 바로 이와 같다.”』

『 백만(百萬)을 억(億)이라 한다. 주왕(紂王)이 비록 억만(億萬) 명의 신하(臣下)가 있으나 마음이 억만으로 다르니,

무리가 배반하고 친척이 떠나서 돕는 이가 적음이 지극함에 힘도 같지 않으니, 하물며 덕(德)과 의(義)에 있어서랴.』

 

 

▣ 제9장(第九章)


『 상(商)나라의 죄가 관통(貫通)하여 가득하기에 하늘이 명(命)하여 주벌(誅伐)하게 하시니,

내가 하늘의 뜻을 순종하지 않으면 그 죄(罪)가 주왕(紂王)과 같을 것이다.』

『 관(貫)은 관통함이요 영(盈)은 가득함이니, “주왕(紂王)이 악(惡)을 쌓은 것이 이와 같다.

그리하여 하늘이 명(命)하여 주벌(誅伐)하게 하시니, 이제 주왕(紂王)을 주벌(誅伐)하지 않으면 이는 악(惡)을 조장(助長)함이니,

그 죄(罪)가 어찌 주왕(紂王)과 같지 않겠는가.” 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형률(刑律)에 고의로 죄인(罪人)을 놓아준 자도 그 죄인(罪人)과 똑같이 처벌하는 것과 같다.』

 


▣ 제10장(第十章)
 

『 나 소자(小子)는 밤낮으로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문고(文考)에게 명령을 받아 상제(上帝)에게 유제사(類祭祀)를 지내고

총토(¾4土)에 의제사(宜祭祀)를 지내고서 너희 무리를 데리고 하늘의 벌을 이루려 하노라.』

『 지(底)는 이룸이다. 총토(¾4土)는 대사(大社)이니, 사(社)에 제사(祭祀)함을 의(宜)라 한다.

상문(上文)에는 주왕(紂王)을 놓아주고 주벌(誅伐)하지 않으면 죄(罪)가 주왕(紂王)과 같음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나 소자(小子)가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밤낮으로 공경하고 두려워해서 감히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여

문왕(文王)의 사당(祠堂)에서 명(命)을 받아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고유(告由)하고서 너희 무리들을 데리고

하늘의 벌을 상(商)나라에 이루려 한다.”고 말한 것이다.

〈왕제(王制)〉에 “천자(天子)가 장차 출동(出動)할 때는 상제(上帝)에게 유제사(類祭祀)를 지내고

사(社)에 의제사(宜祭祀)를 지내고 아버지 사당에 나간다.” 하였으니,

문고(文考)에게 명(命)을 받음은 곧 아버지 사당에 나간 것이다.

〈왕제(王制)〉는 신(神)의 존비(尊卑)로 차례를 삼았는데 여기서는 먼저 문고(文考)에게 명령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주왕(紂王)을 정벌하는 일을 하늘이 본래 문왕(文王)에게 명(命)했으니,

무왕(武王)은 단지 문왕(文王)의 명(命)을 받아서 그 성공을 마쳤을 뿐이기 때문이다.』

 


▣ 제11장(第十一章)


『 하늘이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백성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하늘이 반드시 따르시니,

너희들은 부디 나 한 사람을 보필하여 사해(四海)를 길이 맑게 하라. 이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 하늘이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백성들이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따르니,

이제 백성들이 주왕(紂王)을 멸망하고자 함이 이와 같다면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다.

너희들은 부디 나 한 사람을 보필하여 사악하고 더러움을 제거해서 사해(四海)를 길이 맑게 하라.

이는 바로 하늘과 인간이 합하여 응하는 때이니, 이 때를 잃어서는 안된다.』


 

 

 

서경 - 상서 - 미자(微子)


 
▣ 미자(微子)


 
『微는 國名이요 子는 爵也라 微子는 名啓니 帝乙長子요 紂之庶母兄也라
微子痛殷之將亡하여 謀於箕子比干이어늘 史錄其問答之語하니 亦誥體也라
以篇首에 有微子二字일새 因以名篇하니라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미(微)는 국명(國名)이고 자(子)는 작위(爵位)이다.
미자(微子)는 이름이 계(啓)이니, 제을(帝乙)의 장자(長子)이며 주(紂)의 서모형(庶母兄)이다.
미자(微子)가 은(殷)나라가 장차 망하려 함을 애통하게 여겨 기자(箕子)와 비간(比干)에게 상의하였는데,
사관(史官)이 그 문답(問答)한 말을 기록하였으니, 또한 고체(誥體)이다.
편(篇) 머리에 미자(微子)라는 두 글자가 있기에 인하여 편명(篇名)으로 삼은 것이다.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 제1장(第一章)

 

『 미자(微子)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부사(父師)여! 소사(少師)여! 은(殷)나라가 혹여 사방(四方)을 다스려 바로잡지 못할 듯하니,
우리 선조(先祖)께서 공(功)을 이룩하여 위에 진열해 계신데, 우리는 술에 빠져 주정하여 그 덕(德)을 아래에서 어지럽히고 무너뜨립니다.』

『 부사(父師)는 태사(太師)로 삼공(三公)이니 기자(箕子)이며, 소사(少師)는 고경(孤卿)이니 비간(比干)이다.
불혹(弗或)은 혹여 이와 같지 못할 듯한 것이다. 난(亂)은 다스림이니,
주왕(紂王)이 무도(無道)하여 천하(天下)를 다스리고 바로잡기를 바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지(底)는 이룸이요, 진(陳)은 나열함이다.
우리 선조(先祖)인 성탕(成湯)이 공(功)을 이룩하여 위『[옛날]』에 진열해 계신데 자손들이 술에 빠져 주정하여
그 덕(德)을 아래『[지금]』에서 무너뜨리고 어지럽힌 것이다. 술에 빠져 주정함을 우리라고 말하고 주왕(紂王)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허물을 자신에게 돌려서 오히려 차마 지척(指斥)하여 말하지 못한 것이다.』

 


▣ 제2장(第二章)


『 은(殷)나라는 작은 사람이나 큰 사람 가릴 것 없이 초절(草竊)『[풀 속에서 도둑질하는 좀도둑]』과 간궤(姦宄)를 좋아하는데
경사(卿士)들은 법도가 아닌 것을 서로 본받아 무릇 죄가 있는 자들이 떳떳이 죄를 받지 않으니,
소민(小民)들이 막 일어나 서로 대적하여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은(殷)나라가 빠져 망함이 큰물을 건넘에 나루터와 물가가 없는 것과 같으니, 은(殷)나라가 마침내 망함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은(殷)나라의 인민(人民)들은 작은 사람이나 큰 사람 가릴 것 없이 모두 초절(草竊)과 간궤(姦宄)를 좋아하는데,
위에서 경사(卿士)들 또한 모두 서로 법(法) 아닌 것을 본받아서 상하(上下)가 용인(容忍)하고 숨겨주어 무릇 법(法)을 범한 사람들이
그 죄(罪)를 받는 자가 없었다.
이에 소민(小民)들이 두려워하는 바가 없어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능멸하고 많은 자는 적은 자를 포학히 하여,
일어나 원수(怨讐)로 여기고 원망(怨望)해서 쟁투(爭鬪)하고 침탈(侵奪)하여 기강(紀綱)이 탕연(蕩然)하니,
윤상(淪喪)할 형상이 아득하여 언덕『[끝]』이 없었다. 이는 마치 큰물을 건너감에 나루터와 물가가 없는 것과 같으니
은(殷)나라의 상망(喪亡)이 마침내 금일(今日)에 이르렀단 말인가.
미자(微子)가 위로 선조(先祖)의 공렬(功烈)을 진술하고 아래로 상란(喪亂)을 기술하여,
애원(哀怨)하고 통절(痛切)하여 말은 다함이 있으나 뜻은 무궁(無窮)하다.
수천 년 뒤에도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감상(感傷)하고 비분(悲憤)하게 하니,
후세(後世)의 인주(人主)가 이것을 본다면 또한 깊이 거울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 제3장(第三章)


『 다시 말하였다. “부사(父師)여! 소사(少師)여! 우리가 미친 짓을 발출(發出)하기에 우리 국가의 노성한 사람들이 황야(荒野)로 도망하는데,
이제 당신들은 이것을 지시하여 나에게 넘어지고 떨어짐을 말해줌이 없으니, 어찌하여야 합니까?”』

『 왈(曰)은 미자(微子)가 단서를 바꾼 말이다. 하기(何其)는 어조사이다.
“주왕(紂王)이 전광(顚狂)을 발출(發出)하여 포학(暴虐)하고 무도(無道)하기에 우리 국가의 노성(老成)한 사람들이 모두 황야(荒野)로 도망하니,
위망(危亡)의 형세가 이와 같다. 그런데 이제 당신들은 이것을 지시하여 나에게 넘어지고 떨어지는 일을 알려줌이 없으니,
장차 어찌하여야 합니까?”라고 말한 것이다.
미자(微子)가 근심하고 위태롭게 여김이 심하기 때문에 특별히 단서를 바꾸어 난(亂)을 구제할 계책을 물은 것이다.
우리라고 말하고 주왕(紂王)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또한 상장(上章)의 ‘우리는 술에 빠져 주정한다’는 뜻이다.』

 


▣ 제4장(第四章)


『 부사(父師)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왕자(王子)여! 하늘이 독하게 재앙을 내려 은(殷)나라를 황폐하게 하시는데, 막 일어나서 술에 빠져 주정하는구나.』

『 이 이하는 기자(箕子)의 답이다. 왕자(王子)는 미자(微子)이다.
주왕(紂王)의 입장에서 말하면 주왕(紂王)이 무도(無道)하기 때문에 하늘이 재앙(災殃)을 내린 것이며,
천하(天下)의 입장에서 말하면 주왕(紂王)의 무도(無道)함은 또한 하늘의 운수(運數)이다.
기자(箕子)가 이것을 하늘에 돌린 것은 충후(忠厚)하고 군주(君主)를 공경하는 뜻을 나타낸 것이니,
〈소민(小旻)〉의 시(詩)에 ‘민천(旻天)『[군주(君主)]』의 포악함이 하토(下土)에 펴진다.’는 것과 뜻이 같다.
방흥(方興)은 막 일어나고 다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이는 미자(微子)의 ‘술에 빠져 주정한다’는 말에 답한 것인데 그보다 더 심한 뜻이 있으니, 아래도 이와 같다.』

 

 

▣ 제5장(第五章)


『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구장(耉長)으로서 옛부터 지위에 있던 사람들을 어기는구나.』

『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땅히 두려워하여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군자(君子)가 세 가지 두려워함이 있으니,
천명(天命)을 두려워하고 대인(大人)을 두려워하고 성인(聖人)의 말씀을 두려워한다.” 하였다. 불(퓆)은 어김이다.
구장(耉長)은 노성(老成)한 사람이다. 주왕(紂王)은 마땅히 두려워하여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노성(老成)한 사람으로서 옛부터 지위에 있던 자들을 주왕(紂王)이 모두 어겨 축출하였으니,
이는 곧 무왕(武王)의 이른바 ‘머리가 검으면서 노란 노인을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미자(微子)의 ‘미친 짓을 발출(發出)하기에 노성한 사람들이 도망한다.’는 말에 답한 것이니,
상문(上文)에 특별히 묻는 단서를 발하였으므로 이것을 먼저 답한 것이다.』

 


▣ 제6장(第六章)

 

『 지금 은(殷)나라 백성들이 신기(神祗)에게 올린 희전(犧?)의 짐승을 빼앗고 훔쳐가는데도 용인(容忍)해주어 가져다 먹어도 재앙이 없구나.』

『 색깔이 순수함을 희(犧)라 하고, 몸이 완전함을 전(?)이라 하고, 소와 양과 돼지를 생(牲)이라 한다.
희(犧)•전(?)•생(牲)은 천지(天地)에 제사(祭祀)하는 물건이니, 예(禮)에 가장 중한 것인데도 오히려 상(商)나라 백성들이 빼앗고 훔쳐갔으나
유사(有司)가 서로 용인하고 숨겨주어서 가져다 먹어도 재앙과 화가 없었으니, 어찌 다만 초절(草竊)과 간궤(姦宄)일 뿐이겠는가.
이는 미자(微子)의 ‘초절간궤(草竊姦宄)’의 말에 답한 것이다.』

 


▣ 제7장(第七章)


『 은(殷)나라 백성을 내려다보니, 다스리는 것이 원수처럼 거두고 있다.
적수(敵讐)를 부르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죄(罪)가 모여 하나가 되었으니, 굶주려 죽는 이가 많은데도 하소연할 곳이 없도다.』

『 수렴(讐斂)은 구적(仇敵)처럼 거두는 것이다.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것은 힘써 행하고 쉬지 않는 것이다.
조(詔)는 하소연함이다. 은(殷)나라 백성을 내려다보니 무릇 위에서 다스리는 것이 원수처럼 거두는 일 아님이 없다.
윗사람이 원수처럼 아랫사람에게 거두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대적하여 윗사람을 원수로 여기니,
아랫사람이 대적하여 원수로 여김은 실로 윗사람이 원수처럼 거두어 자초한 것이다.
그런데도 주왕(紂王)은 바야흐로 적수(敵讐)를 부르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군신(君臣)과 상하(上下)가 악(惡)을 함께 하여
서로 이루어서 합하여 하나가 되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굶주려 죽는 이가 많은데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것이다.
이는 미자(微子)의 ‘소민(小民)들이 서로 대적하여 원수가 된다.’는 말에 답한 것이다.』

 

 

▣ 제8장(第八章)


『 상(商)나라가 이제 재난이 있을 것이니, 나는 일어나 그 화패(禍敗)를 받겠다.
상(商)나라가 망하더라도 나는 남의 신하(臣下)와 종이 되지 않을 것이다.
왕자(王子)에게 떠나가는 것이 도리임을 고하노니, 내가 옛날에 말한 것이 그대를 해쳤구나.
왕자(王子)가 떠나가지 않으면 우리 〈종사(宗祀)〉는 전복(顚覆)되고 실추(失墜)될 것이다.』

『 상(商)나라가 이제 재난이 있을 것이니, 나는 떠나가서 그 화패(禍敗)를 당하겠다.
상(商)나라가 만약 망하더라도 나는 결단코 타인에게 신하(臣下)와 종이 될 이치가 없다.
조(詔)는 고함이니, 미자(微子)에게 떠나는 것이 도리(道理)임을 고(告)한 것이다.
상(商)나라의 제사(祭祀)는 받들 사람이 없어서는 안되니, 미자(微子)가 떠나면 상(商)나라의 종사(宗祀)를 보존할 수 있다.
각(刻)은 해침이다. 기자(箕子)가 옛날에 “미자(微子)가 나이가 많고 또 어질다.” 하여 제을(帝乙)에게 미자(微子)를 세울 것을 권하였는데,
제을(帝乙)이 이를 따르지 않고 끝내 주왕(紂王)을 세웠으니, 주왕(紂王)은 반드시 미자(微子)를 시기할 것이다.
이는 내가 지난날에 말한 것이 다만 그대를 해쳤을 뿐이니, 그대가 만약 떠나가지 않으면 화(禍)를 반드시 면치 못하여
우리 상(商)나라의 종사(宗祀)가 비로소 실추되어 의탁할 곳이 없게 될 것이다.
기자(箕子)가 스스로 말씀하기를 “자신은 의리가 결코 떠날 수 없고, 미자(微子)는 의리가 결코 떠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는 미자(微子)의 ‘윤상전제(淪喪顚Ç*)’의 말에 답한 것이다.』

 


▣ 제9장(第九章)


『 스스로 〈의리(義理)에〉 편안하여 사람마다 스스로 선왕(先王)에게 뜻을 바칠 것이니, 나는 떠나가 은둔함을 돌아보지 않겠다.”』

『 상문(上文)에는 이미 미자(微子)가 말한 바에 답하였고, 이에 이르러서는 피차간(彼此間)에 거취(去就)의 뜻을 고하였다.
정(靖)은 편안함이다. 각기 의리에 마땅히 다해야 할 바에 편안하여 스스로 그 뜻을 선왕(先王)에게 진달(陳達)하여 신명(神明)에게
부끄러움이 없게 할 뿐이니, 나로 말하면 다시는 떠나가 은둔함을 돌아보지 않겠다.
이 편(篇)을 살펴보면 미자(微子)가 기자(箕子)와 비간(比干)에게 상의하였는데 기자(箕子)는 답하기를 상문(上文)과 같이 하였으나
비간(比干)이 홀로 말한 바가 없는 것은 비간(比干)은 의리에 마땅히 죽어야 함을 편안히 여겨 다시 말함이 없었나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은(殷)나라에 세 인자(仁者)가 있었다.” 하였다.
세 사람의 행실이 비록 똑같지 않으나 다 천리(天理)의 바름에서 나와 각각 그 마음에 편안한 바를 얻었으므로
공자(孔子)께서 모두 인(仁)을 허여(許與)하신 것이니, 이른바 ‘스스로 편안히 한다’는 것이 곧 이것이다.』

『 ○ 또 《좌전(左傳)》을 살펴보면 초(楚)나라가 허(許)나라를 이기니,
허남(許男)이 얼굴을 포박하고 입에 구슬을 물고는 최질(衰²')『[상복]』을 입고 관(棺)을 수레에 싣고서 초자(楚子)를 업고서
초자(楚子)가 〈이것을 보고〉 봉백(逢伯)에게 물으니,
봉백(逢伯)이 말하기를 “옛날에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이겼을 적에 미자(微子) 계(啓)가 이와 같이 하였는데,
무왕(武王)이 친히 포박을 풀어주고 그 구슬을 받고는 흉한 것을 제거하였으며, 관(棺)을 불태우고 예우(禮遇)하여 명(命)했습니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미자(微子)가 주(周)나라로 간 것은 상(商)나라를 이긴 뒤에 있었던 것이니, 여기에서 ‘떠나간다’고 말한 것은
다만 그 지위를 버리고 밖으로 도피한 것일 뿐이다. 미자(微子)의 떠남을 논하는 자들은 마땅히 이것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서경 - 상서 - 서백감려(西伯戡黎)


▣ 서백감려(西伯戡黎)


『西伯은 文王也니 名昌이요 姓姬氏라 戡은 勝也라 黎는 國名이니 在上黨壺關之地하니라
按史記컨대 文王이 脫羑里之囚하여 獻洛西之地하니 紂賜弓矢鈇鉞하여 使得專征伐하고 爲西伯하니라
文王이 旣受命에 黎爲不道한대 於是에 擧兵하여 伐而勝之하시니 祖伊知周德日盛하여 旣已戡黎어늘 紂惡不悛하니 勢必及殷이라
故로 恐懼하여 奔告于王하여 庶幾王之改之也라 史錄其言하여 以爲此篇하니 誥體也라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或曰 西伯은 武王也라

『史記에 嘗載紂使膠鬲觀兵한대 膠鬲이 問之曰 西伯이 曷爲而來주:사기상재』오하니 則武王이 亦繼文王하여 爲西伯矣라』


『 서백(西伯)은 문왕(文王)이니, 이름은 창(昌)이고 성(姓)은 희씨(姬氏)이다. 감(戡)은 이김이다.
여(黎)는 나라 이름이니, 상당(上黨) 호관(壺關)의 땅에 있었다.
《사기(史記)》를 살펴보면 “문왕(文王)이 유리(羑里)의 갇힘에서 풀려나 낙서(洛西)의 땅을 바치니,
주(紂)가 궁시(弓矢)와 부월(鈇鉞)을 하사(下賜)하여 마음대로 정벌할 수 있게 하고 서백(西伯)을 삼았다.” 하였다.
문왕(文王)이 이미 왕명(王命)을 받음에 여(黎)가 불도(不道)한 짓을 하므로 이에 군사를 들어 정벌(征伐)하여 이기니,
조이(祖伊)는 주(周)나라의 덕(德)이 날로 성하여 이미 여(黎)나라를 이겼는데 주왕(紂王)이 악(惡)을 고치지 않으니,
형세가 반드시 은(殷)나라에 미칠 줄을 알았다. 그러므로 공구(恐懼)하여 왕(王)에게 달려가 아뢰어 왕(王)이 고치기를 바란 것이다.
사관(史官)이 그 말을 기록하여 이 편(篇)을 만들었으니, 고체(誥體)이다.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 ○ 혹자는 말하기를 “서백(西伯)은 무왕(武王)이다.
《사기(史記)》에 일찍이 ‘주왕(紂王)이 교격(膠鬲)으로 하여금 주(周)나라 군대를 관찰하게 하니,
교격(膠鬲)이 「서백(西伯)이 어찌하여 왔는가?」 하고 물었다.’라고 기재하였다.
그렇다면 무왕(武王) 또한 문왕(文王)을 이어서 서백(西伯)이 된 것이다.” 하였다.』

 

 

▣ 제1장(第一章)


『 서백(西伯)이 여(黎)나라를 이기자, 조이(祖伊)가 두려워하여 왕(王)에게 달려가 아뢰었다.』

『 하문(下文)에는 여(黎)나라를 이긴 일을 언급한 것이 없는데,
사관(史官)이 특별히 이것을 편(篇) 머리에 표제(標題)하여 조이(祖伊)가 왕(王)에게 아뢴 연유를 나타낸 것이다.
조(祖)는 성(姓)이고 이(伊)는 이름이니, 조기(祖己)의 후손이다.
분고(奔告)는 자기 읍(邑)으로부터 달려와서 주왕(紂王)에게 고한 것이다.』

 


▣ 제2장(第二章)


『 “천자(天子)여! 하늘이 이미 우리 은(殷)나라의 명(命)을 끊었습니다.
그리하여 훌륭한 사람과 큰 거북이 감히 길(吉)함을 알지 못하니, 선왕(先王)이 우리 후인(後人)을 돕지 않아서가 아니라,
왕(王)이 음탕하고 희롱하여 스스로 천명(天命)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 조이(祖伊)가 장차 하늘이 은(殷)나라의 명(命)을 끊으려 함을 말하려 하였으므로 특별히 천자(天子)를 불러서 감동하게 한 것이다.
흘(訖)은 끊음이다. 격인(格人)은 지인(至人)『[훌륭한 사람]』이란 말과 같으니,

격인(格人)과 원귀(元龜)는 다 길흉(吉凶)을 먼저 아는 것들이다.
‘하늘이 이미 우리 은(殷)나라의 명(命)을 끊어 격인(格人)과 원귀(元龜)가 모두 감히 그 길(吉)함을 아는 자가 없다.’하였으니,
흉화(凶禍)가 반드시 이를 것임을 심하게 말한 것이다. 하늘에 있는 선왕(先王)의 영혼이 우리 후인(後人)을 돕지 않아서가 아니요,
우리 후인(後人)들이 음탕하고 희롱하여 스스로 하늘의 명(命)을 끊었을 뿐이다.』

 

 

▣ 제3장(第三章)


『 그러므로 하늘이 우리를 버리시어 편안히 먹음을 두지 않게 하며 천성(天性)을 헤아리지 않게 하며 따라야 할 법을 따르지 않게 합니다.』

『 강(康)은 편안함이요, 우(虞)는 헤아림이요, 전(典)은 떳떳한 법이다.
주왕(紂王)이 스스로 하늘의 명(命)을 끊었으므로 하늘이 은(殷)나라를 버려,
편안히 먹음을 두지 않게 하여 기근(饑饉)이 거듭 이르고 천성(天性)을 헤아리지 않게 하여 백성이 떳떳한 마음을 잃고,
따라야 할 법을 따르지 않게 하여 떳떳한 법을 폐괴(廢壞)한 것이다.』

 

 

▣ 제4장(第四章)


『 지금 우리 백성들은 나라가 망(亡)하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어서 말하기를 ‘하늘은 어찌 위엄을 내리지 않으며,
대명(大命)을 받을 자는 어찌 오지 않는가. 이제 왕(王)은 우리에게 어쩌겠는가.’ 라고 합니다.”』

『 대명(大命)은 비상(非常)한 명(命)이다. 지(摯)는 이름이니, 《사기(史記)》에 “대명(大命)이 어찌 이르지 않는가.” 하였다.
백성들이 주왕(紂王)의 학정(虐政)에 시달려 은(殷)나라가 망하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어서 말하기를
“하늘은 어찌하여 은(殷)나라에 위엄을 내리지 않으며, 대명(大命)을 받을 자는 어찌하여 오지 않는가.
이제 왕(王)은 우리들에게 어쩔 수가 없다.” 하였으니, 주왕(紂王)이 다시 우리에게 군장(君長)이 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상장(上章)은 하늘이 은(殷)나라를 버림을 말하였고, 이 장(章)은 백성들이 은(殷)나라를 버림을 말하였으니,
조이(祖伊)의 말은 통절(痛切)하고 명저(明著)하다고 이를 만하다.』

 


▣ 제5장(第五章)


『 왕(王)이 말하기를 “아! 나의 태어남『[삶]』은 명(命)이 하늘에 달려 있지 않은가.” 하였다.』

『 주(紂)가 탄식하고 이르기를 “백성들이 비록 나를 망하게 하려고 하나 나의 태어남은 홀로 명(命)이 하늘에 있지 않는가.” 하였다.』

 

 

▣ 제6장(第六章)


『 조이(祖伊)가 돌아와 말하였다. “아! 너의 죄가 많아서 나열되어 상천(上天)에 있는데 하늘에게 명(命)을 책할 수 있겠는가.』

『 주왕(紂王)이 이미 허물을 고칠 뜻이 없으니,
조이(祖伊)가 물러나와 말하기를 “너의 죄가 많아서 하늘에 삼렬(參列)되어 있는데 하늘에게 명(命)을 책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하늘에 명(命)을 책함은 오직 하늘과 덕(德)이 같은 자만이 가능하다.”』

 


▣ 제7장(第七章)


『 은(殷)나라가 곧 멸망(滅亡)할 것이니, 네가 한 일을 지적하건대 죽임이 너의 나라에 없지 않을 것이다.”』

『 공(功)은 일이다. “은(殷)나라가 곧 상망(喪亡)할 것이니,

네가 행한 바의 일을 지적하건대 상(商)나라에 죽임을 면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조이(祖伊)의 간언(諫言)이 다 말하고 숨기지 않아서 한(漢)•당(唐)의 보통 군주(君主)는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왕(紂王)이 비록 고치지는 않았으나 끝내 노(怒)하지 않아서 조이(祖伊)가 온전하였으니,
후세(後世)의 인주(人主)는 주왕(紂王)만도 못한 자가 많은 것이다.”』

『 나는 이 편을 읽고서 주(周)나라의 덕(德)이 지극함을 알았다.
조이(祖伊)는 서백(西伯)이 여(黎)나라를 이긴 것이 은(殷)나라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였으므로 달려가 주왕(紂王)에게 고하였으니,
생각컨대 반드시 서백(西伯)이 여(黎)나라를 이긴 것이 은(殷)나라에 불리하다는 말을 언급했을 듯 한데도 들어가 군주(君主)에게 고하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할 적에 털끝만큼도 주(周)나라를 언급함이 없으니, 이에 주(周)나라가 애당초 천하를 탐하려는 마음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여(黎)나라를 이긴 것은 의리에 마땅히 정벌하여야 했기 때문이니,
가령 주(紂)가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하였더라면 주(周)나라는 장차 끝내 신하(臣下)의 절개를 지켰을 것이다.
조이(祖伊)는 은(殷)나라의 현신(賢臣)이었다. 주(周)나라의 흥함이 은(殷)나라에게 불리함을 알았고,
또 은(殷)나라의 멸망이 애당초 주(周)나라에 관여됨이 없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여(黎)나라를 이김으로 인하여 주왕(紂王)에게 고할 때에 천명(天命)과 인정(人情)의 두려울 만함을 반복하여 말하고,
조금도 주(周)나라를 언급함이 없었던 것이니, 문왕(文王)•무왕(武王)이 천하(天下)를 공정하게 한 마음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서경 - 상서 - 고종융일(高宗융日)

 

▣ 고종융일(高宗융日)


『高宗융祭에 有º/雉之異어늘 祖己訓王한대 史氏以爲篇하니 亦訓體也라
不言訓者는 以旣有高宗之訓이라 故로 只以篇首四字爲題하니라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고종(高宗)이 융제( 祭)하던 날에 꿩이 우는 이변(異變)이 있었으므로 조기(祖己)가 왕(王)을 훈계(訓戒)하였는데,
사관(史官)이 이것을 편(篇)으로 만들었으니, 또한 훈체(訓體)이다.
훈(訓)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이미 고종(高宗)의 훈(訓)이 있기 때문에 다만 편(篇) 머리의 네 글자로 제목(題目)을 삼은 것이다.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 제1장(第一章)

 

『 고종(高宗)이 융제(훏祭)하던 날에 꿩이 우는 이변(異變)이 있었다.』

『 융(훏)은 제사(祭祀)지낸 다음날에 다시 지내는 제사(祭祀)의 이름이니, 은(殷)나라는 융(훏)이라 하였고 주(周)나라는 역(繹)이라 하였다.
구(º/)는 울음이니, 융제(훏祭)하던 날에 꿩이 우는 이변이 있었다.
이는 아버지 사당(祠堂)에 제사한 것이니, 서(序)에 탕묘(湯廟)의 사당(祠堂)이라고 말한 것은 잘못이다.』

 


▣ 제2장(第二章)


『 조기(祖己)가 말하기를 “먼저 왕(王)을 바로잡고서 이 일을 바로잡겠다.” 하였다.』

『 격(格)은 바로잡음이니, 나쁜 마음을 바로잡는다는 격(格)과 같다.
하문(下文)을 자세히 살펴보면 ‘고종(高宗)이 제사(祭祀)를 가까운 사당(祠堂)에만 풍성하게 한다.’ 하였으니,
가까운 사당(祠堂)이란 아버지의 사당(祠堂)이니 가까운 사당(祠堂)에만 풍성하게 하는 것은 올바른 예(禮)를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꿩이 우는 이변(異變)이 있었으니, 조기(祖己)가 스스로 말하기를 “마땅히 먼저 왕(王)의 나쁜 마음을 바로잡은 뒤에
이 잘못된 일을 바로잡겠다.”고 한 것이다.
‘유천감민(惟天監民)’ 이하는 왕(王)을 바로잡는 말이고, ‘왕사경민(王司敬民)’ 이하는 일을 바로잡는 말이다.』

 

 

▣ 제3장(第三章)

 

『 조기(祖己)가 왕(王)에게 다음과 같이 훈계(訓戒)하였다.
“하늘이 하민(下民)들을 굽어보되 그 의(義)를 주장하니,
연수(年數)를 내려줌이 길기도 하고 길지 않기도 함은 하늘이 백성을 요절하게 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천명(天命)을 중간에 끊기 때문입니다.』

『 전(典)은 주장함이다. 의(義)는 도리의 당연함이니, 행함에 마땅하게 함을 이른다.
하늘이 하민(下民)들을 굽어보시어 화(禍)와 복(福)과 주고 빼앗음을 오직 의(義)의 여하(如何)를 주장할 뿐임을 말한 것이다.
연수(年數)를 내려줌이 길기도 하고 길지 않기도 하다는 것은 의로우면 길고 의롭지 않으면 길지 않은 것이니,
하늘이 백성을 요절(夭折)하게 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스스로 의(義)롭지 않아서 그 명(命)을 중간에 끊는 것이다.
짐작하건대 고종(高宗)이 제사(祭祀)함에 반드시 긴 연수(年數)를 기원하고 명(命)을 청(請)하는 일이 있었을 것이니,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오치(五퀨)에 제사(祭祀)한 것과 같은 종류일 것이다.
조기(祖己)가 말하기를 “연수(年數)를 길게 하는 방도(方道)는 기도(祈禱)하고 제사(祭祀)함에 있지 않고,
행하는 바가 의로우냐 의롭지 않으냐에 달려 있을 뿐이니,

기도(祈禱)하고 제사(祭祀)함은 연수(年數)를 길게 하는 방도가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백성을 말하고 군주(君主)를 말하지 않은 것은 감히 지척(指斥)할 수 없어서이다.』

 

 

▣ 제4장(第四章)


『 백성들이 덕(德)에 순종하지 않고 죄(罪)에 굴복하지 않기에 하늘이 이미 부명(孚命)으로 덕(德)을 바로잡으시는데
마침내 ‘〈요얼(妖孽)이〉 나에게 어쩌겠는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 불약덕(不若德)은 덕(德)에 순종하지 않음이요, 불청죄(不聽罪)는 죄(罪)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니,
허물을 고치지 않음을 이른다. 부명(孚命)은 요얼(妖孽)로 부신(符信)을 삼아 견책하여 고하는 것이다.
백성들이 덕(德)에 순종하지 않고 죄에 굴복하지 않기에 하늘이 이미 요얼(妖孽)로 부신을 삼아 견책하여 고하시니,
이는 두려워하고 수성(修省)하여 덕(德)을 바로잡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마침내 말하기를 “재앙(災殃)과 상서(祥瑞)가 나에게 어쩌겠는가.”라고 한다면 하늘이 반드시 베어서 끊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조기(祖己)는 고종(高宗)이 마땅히 꿩이 우는 이변으로 인하여 스스로 반성할 것이요,

때마침 그러하다 하여 스스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자주 제사하고 가까운 사당에만 풍성하게 하여 신(神)에게 복(福)을 구함은 덕(德)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요,
제사(祭祀)에 설만함을 부열(傅說)이 일찍이 진계(進戒)하였는데, 뜻에 혹 고치기를 인색하게 함은 죄(罪)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꿩이 우는 이변(異變)은 이는 하늘이 이미 부명(孚命)으로 덕(德)을 바로잡은 것이니, “요얼(妖孽)이 나를 어쩌겠느냐.”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 제5장(第五章)


『 아! 왕(王)은 백성을 공경함을 맡으셨으니,

하늘의 아들 아님이 없으니 제사(祭祀)를 주관함에 가까운 사당(祠堂)에만 풍성하게 하지 마소서.”』

『 사(司)는 주장함이요, 윤(胤)은 아들이다.
왕(王)의 직책은 백성을 공경함을 주장할 뿐이니, 신(神)에게 복(福)을 구함은 왕(王)이 할 일이 아니다.
더구나 조종(祖宗)은 하늘의 아들 아님이 없으니, 제사(祭祀)를 주관함에 어찌 유독 가까운 사당(祠堂)에만 풍성하게 할 수 있겠는가.』

 

서경 - 상서 - 열명 하(說命下)


▣ 열명 하(說命下)

 

 

▣ 제1장(第一章)


『 왕(王)이 말씀하였다. “이리 오라. 부열(傅說)아! 나 소자(小子)는 옛날에 감반(甘盤)에게 배웠는데 이윽고 황야(荒野)로 물러갔으며,
하수(河水)가에 들어가 살며, 하수(河水)에서 박(¨])으로 가서 마침에 이르도록 학문이 드러나지 못하였노라.』

『 감반(甘盤)은 신하(臣下)의 이름이니, 〈군석(君奭)〉에 “무정(武丁) 때에 있어서는 감반(甘盤)과 같은 이가 있었다.” 하였다.
둔(遯)은 물러감이다. 고종(高宗)이 말씀하기를 “나 소자(小子)는 옛날에 감반(甘盤)에게 배웠는데 이윽고 황야(荒野)에 물러갔고,
뒤에 또 하수(河水)에 들어가 살며, 하수(河水)로부터 박(¨])으로 가서 옮겨다니고 일정하게 살지 않았다.” 하여
학문을 폐한 원인을 일일이 서술하고 그리하여 학문이 끝내 드러나 밝음이 없음을 한탄한 것이다.
〈무일(無逸)〉에 “고종(高宗)이 옛날에 밖에서 수고로워 소인(小人)들과 함께했다.” 하였으니, 이와 서로 응한다.
《국어(國語)》에도 또한 “무정(武丁)이 하수(河水)에 들어갔고 하수(河水)에서 박(¨])으로 갔다.” 하였으며,
당(唐)나라 공씨(孔氏)는 “고종(高宗)이 왕자(王子)였을 때에 그의 아버지인 소을(小乙)이 민간(民間)의 고통과 어려움을

알게 하려고 하였으므로 민간(民間)에 살게 했다.” 하였다.

소씨(蘇氏)『[소식(蘇軾)]』가 “감반(甘盤)이 황야(荒野)에 은둔했다.”고 말한 것은
나 소자(小子)란 어맥(語脈)으로 미루어 보면 옳지 않다.』

 


▣ 제2장(第二章)


『 너는 짐(朕)의 뜻을 가르쳐서 만약 술과 단술을 만들거든 네가 누룩과 엿기름이 되며,
만약 간을 맞춘 국을 만들거든 네가 소금과 매실이 되어야 한다.
너는 여러 가지로 나를 닦아서 나를 버리지 말라. 내가 능히 너의 가르침을 행할 것이다.”』

『 마음이 가는 것을 지(志)라 한다. 매(邁)는 행함이다.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술은 누룩과 엿기름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못하고, 국은 소금과 매실이 아니면 화(和)『[간을 맞춤]』하지 못하며,
임금이 비록 아름다운 자질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현인(賢人)이 보도(輔導)해줌을 얻어야 덕(德)을 이룰 수 있다.
술을 만드는 자는 누룩이 많으면 너무 쓰고 엿기름이 많으면 너무 다니, 누룩과 엿기름이 알맞은 뒤에야 술이 이루어지며,
국을 만드는 자는 소금이 지나치면 너무 짜고 매실이 지나치면 너무 시니, 소금과 매실이 알맞은 뒤에야 국이 이루어진다.
신하(臣下)는 군주(君主)에 대해 항상 유(柔)함으로써 강(剛)함을 구제하고,
가(可)함으로써 부(否)를 구제하여 좌우(左右)에서 돕고 바로잡아 그 덕(德)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는 여러 가지로 나를 닦아서 나를 버리지 말라. 내 능히 너의 말을 행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공씨(孔氏)가 말하였다. “교(交)는 하나가 아닌 뜻이다.”』

 


▣ 제3장(第三章)


『 부열(傅說)이 말하였다. “왕(王)이여! 사람을 문견(聞見)이 많은 자를 구함은 이 일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옛 가르침을 배워야 얻음이 있을 것이니, 일을 옛것을 본받지 않고서 능히 장구하게 하는 것은 제가 들은 바가 아닙니다.』

『 들음이 많은 자를 구하는 것은 남에게 자뢰함이요, 옛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자신에게 돌이키는 것이다.
옛 교훈이란 옛날 선성왕(先聖王)의 교훈으로 몸을 닦고 천하를 다스리는 방도를 기재한 것이니, 이전(二典)과 삼모(三謨)의 따위가 이것이다.
부열(傅說)이 왕(王)을 일컫고 고(告)하기를 “사람을 문견(聞見)이 많은 자를 구하는 것은 이 일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옛 가르침을 배워서 의리를 깊이 안 뒤에야 얻음이 있을 것이니,
옛 가르침을 본받지 않고 능히 장구하게 치안(治安)하는 것은 제가 들은 바가 아닙니다.”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이치가 없음을 심히 말한 것이다.』

『 ○ 임씨(林氏)가 말하였다. “부열(傅說)이 왕(王)을 일컫고 고(告)한 것은 우왕(禹王)이 순(舜)을 일컫고
‘황제(皇帝)여. 하늘의 아래에 빛난다.’고 말한 것과 문세(文勢)가 똑같다.”』

 


▣ 제4장(第四章)


『 배움은 뜻을 겸손하게 해야 하니, 힘써서 때로 민첩하게 하면 그 닦여짐이 올 것이니,

독실히 믿어 이것을 생각하면 도가 그 몸에 쌓일 것입니다.』

『 손(遜)은 겸손함이요, 무(務)는 힘을 온전히 쓰는 것이다. 시민(時敏)은 어느 때고 민첩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그 뜻을 겸손히 하여 마치 능하지 못한 바가 있는 듯이 하고, 학문에 민첩하여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는 듯이 하여,
겸허히 남에게 받아들이고 부지런히 자기를 힘쓰면 그 닦여지는 바가 마치 샘물이 처음 나오듯이 하여 원원(源源)히 올 것이다.
자(玆)는 이것이니, 독실히 믿어 이것을 깊이 생각하면 도(道)가 몸에 쌓여서 한두 가지로 계산할 수 없을 것이다.
닦여짐이 오고 옴이 쌓여서 학문이 자기 몸에 얻어짐이 이와 같은 것이다.』

 


▣ 제5장(第五章)

 

『 가르침은 배움의 반이니, 생각의 종(終)과 시(始)를 학문에 주장하면 그 덕(德)이 닦여짐을 자신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 효(斅)는 가르침이니, 사람을 가르침은 배움의 반을 차지함을 말한 것이다.
도(道)가 몸에 쌓임은 체(體)가 서는 것이요, 배운 것을 남에게 가르침은 용(用)이 행해지는 것이니,
체(體)•용(用)을 겸하고 내(內)•외(外)를 합한 뒤에 성학(聖學)을 온전히 할 수 있다.
처음에 스스로 배우는 것도 학(學)이요 종말에 남을 가르침도 또한 학(學)이니,
한 생각의 종(終)과 시(始)가 항상 학(學)에 있어 조금도 간단(間斷)함이 없으면 덕(德)의 닦여짐이 그런 줄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러함이 있을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가르침을 받음을 또한 효(斅)라 하니, 배움은 학문하는 도(道)에 있어서 반이니,
〈그 나머지〉 반은 모름지기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라고 한다.
이 말이 지극히 새롭고 공교로우나 다만 옛사람이 학문을 논함에 말이 모두 평정(平正)하고 적실(的實)하니,
이 장(章)의 구수(句數)가 하나둘이 아닌데 중간의 한 마디 말이 이처럼 공교롭고 험할 수는 없다.
이는 아마도 석교(釋敎)의 기권(機權)『[기지와 권모술수]』을 가지고 잘못 성현(聖賢)의 학문을 논한 듯하다.』

 


▣ 제6장(第六章)

 

『 선왕(先王)이 이루어 놓은 법(法)을 보시어 길이 잘못이 없게 하소서.』

『 헌(憲)은 법(法)이요, 건(愆)은 잘못이다.
덕(德)은 비록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나아가나 법(法)은 반드시 선왕(先王)을 보아야 하니,
선왕(先王)이 이루어 놓은 법(法)은 자손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임을 말한 것이다.
맹자(孟子)는 “선왕(先王)의 법(法)을 따르고서 잘못되는 자는 있지 않다.” 하였으니, 또한 이러한 뜻이다.』

 


▣ 제7장(第七章)


『 제가 공경히 받들어서 준예(俊乂)들을 널리 불러 여러 지위에 나열하게 하겠습니다.”』

『 식(式)은 써이다. 고종(高宗)의 덕(德)이 만일 잘못이 없음에 이르면 부열(傅說)이 공경히 그 뜻을 받들어서
준예(俊乂)들을 널리 구하여 여러 직책에 나열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현자(賢者)를 등용(登用)함이 비록 대신(大臣)의 책무(責務)이나 고종(高宗)의 덕(德)이 지극하지 않으면
비록 현자(賢者)를 등용하려고 하더라도 될 수 없는 것이다.』

 


▣ 제8장(第八章)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부열(傅說)아. 사해(四海)의 안이 모두 짐(朕)의 덕(德)을 우러러봄은 이는 너의 풍교(風敎) 때문이다.』

『 풍(風)은 가르침이다. 천하(天下)가 모두 나의 덕(德)을 우러러봄은 이는 모두 너의 가르침 때문이다.』

 


▣ 제9장(第九章)


『 팔다리가 있어야 사람이며, 어진 신하(臣下)가 있어야 군주(君主)가 성(聖)스러워진다.』

『 수족(手足)이 갖추어져야 사람을 이루고, 어진 신하(臣下)가 보필하여야 군주(君主)가 성(聖)스러워진다.
고종(高宗)이 처음에는 배와 노, 장마비로 비유하였고, 이어서 누룩과 엿기름, 소금과 매실로 비유하였으며,
이에 이르러서는 또 팔다리가 있어야 사람이 됨으로 비유하였으니, 나아간 바가 더욱 깊어짐에 기대한 바가 더욱 간절하다.』

 

 

▣ 제10장(第十章)


『 옛날 선정(先正)인 보형(保衡)『[이윤(伊尹)]』이 우리 선왕(先王)을 진작하여 이르기를
‘내 군주(君主)로 하여금 요순(堯舜) 같은 군주(君主)가 되게 하지 못하면 마음에 부끄러워하여 시장에서 종아리를 맞는 듯이 여겼으며,
한 지아비라도 제 살 곳을 얻지 못하면 이는 나의 잘못이다.’라고 하여, 나의 열조(烈祖)를 도와서 공(功)이 황천(皇天)에 이르렀으니,
너는 부디 나를 밝게 보좌(保佐)하여 아형(阿衡)으로 하여금 상(商)나라에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게 하지 말라.』

『 선정(先正)은 선세(先世) 장관(長官)의 신하(臣下)이다. 보(保)는 편안함이니, 보형(保衡)은 아형(阿衡)과 같다.
작(作)은 흥기(興起)함이다. 시장에서 종아리를 맞는다는 것은 부끄러움이 심한 것이다.
불획(不獲)은 그 살 곳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고종(高宗)이 이윤(伊尹)의 말을 들어 “스스로 책임짐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능히 우리 성탕(成湯)을 보좌하여 공(功)이 황천(皇天)에 이르렀으니,
너는 부디 밝게 나를 보필하여 이윤(伊尹)으로 하여금 우리 상(商)나라에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부열(傅說)은 성탕(成湯)으로 고종(高宗)을 기대했으므로 “선왕(先王)이 이루어 놓은 덕(德)에 합하라.” 하고,
“선왕(先王)의 이루어 놓은 법을 보라.” 하였으며, 고종(高宗)은 이윤(伊尹)으로 부열(傅說)을 기대했으므로
“아형(阿衡)으로 하여금 상(商)나라에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게 하지 말라.” 한 것이다.』

 


▣ 제11장(第十一章)


『 임금은 현자(賢者)가 아니면 다스리지 못하고, 현자(賢者)는 임금이 아니면 먹지 못하니,
너는 네 군주(君主)를 선왕(先王)에게 이어서 백성들을 길이 편안하게 하라.”
부열(傅說)이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감히 천자(天子)의 아름다운 명(命)을 대양(對揚)하겠습니다.” 하였다.』

『 군주(君主)는 현신(賢臣)이 아니면 함께 다스리지 못하고, 현자(賢者)는 군주(君主)가 아니면 함께 녹(祿)을 먹지 못하니,
군신(君臣)이 서로 만나기가 어려움이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극(克)은 반드시 능하기를 책망하는 말이요,
감(敢)은 자신하여 부족함이 없는 말이다. 대(對)는 자기로써 상대함이요, 양(揚)은 여러 사람에게 드날림이다.
휴명(休命)은 상문(上文)에 고종(高宗)이 명한 것이다. 이에 이르러 고종(高宗)은 성탕(成湯)으로 스스로 기약(期約)하고
부열(傅說)은 이윤(伊尹)으로 스스로 자임(自任)하여, 군신(君臣)이 서로 면려(勉勵)함이 이와 같았으니,
후일(後日)에 고종(高宗)은 상(商)나라의 훌륭한 왕(王)이 되고 부열(傅說)은 상(商)나라의 어진 보좌(保佐)가 되어서
과연 성탕(成湯)과 이윤(伊尹)에게 부끄러움이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서경 - 상서 - 열명 중(說命中)


▣ 열명 중(說命 中)


 
▣ 제1장(第一章)

 

『 부열(傅說)이 고종(高宗)의 명령으로 백관(百官)을 총괄하였다.』

『 부열(傅說)이 명령(命令)을 받아 백관(百官)을 총괄하니, 총재(¾4宰)의 직책이다.』

 


▣ 제2장(第二章)


『 부열(傅說)이 마침내 왕(王)에게 진언(進言)하였다.
“아! 명왕(明王)들이 천도(天道)를 받들어 순히 하여 나라를 세우고 도읍(都邑)을 설치해서 후왕(后王)와 군공(君公)을 세우고
대부(大夫)와 사(師)•장(長)으로 받들게 함은 군주(君主)가 일예(逸豫)『[편안하고 즐거움]』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백성을 다스리고자 해서입니다.』

『 후왕(后王)은 천자(天子)요, 군공(君公)은 제후(諸侯)이다.
난(亂)을 다스림을 난(亂)이라 한다. 명왕(明王)이 천도(天道)를 받들어 순히 하여 나라를 세우고 도읍(都邑)을 설치해서
천자(天子)와 제후(諸侯)를 세우고 대부(大夫)와 사(師)•장(長)으로 받들게 하여 군신(君臣)과 상하(上下)의 예(禮)를 제정해서
높은 사람으로서 낮은 사람에게 임하고,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받들게 하였으니,
이는 군주(君主) 한 사람의 일예(逸豫)를 위한 계책일 뿐만 아니라 오직 백성을 다스리고자 해서이다.』

 


▣ 제3장(第三章)


『 하늘이 총명하시니, 성상(聖上)께서 이를 본받으시면 신하(臣下)들이 공경히 순종하며, 백성들도 따라서 다스려질 것입니다.』

『 하늘의 총명(聰明)이 듣지 않는 것이 없고 보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공평함일 뿐이니,
인군(人君)이 하늘의 총명(聰明)을 본받아 한결같이 공(公)에서 나오면 신하(臣下)들이 공경히 순종하고,

백성들 또한 따라서 잘 다스려질 것이다.』

 


▣ 제4장(第四章)


『 말은 부끄러움을 일으키고 갑주(甲胄)는 전쟁을 일으킵니다.
의상(衣裳)을 상자에 잘 보관해 두시며, 간과(干戈)를 몸에 살피시어 왕(王)께서 이를 경계하여,
이것을 믿어 능히 밝게 하시면 아름답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 언어(言語)는 몸을 문식(文飾)하는 것이나 함부로 내면 부끄러움을 일으킬 근심이 있고,
갑주(甲胄)는 몸을 호위하는 것이나 가볍게 동하면 전쟁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두 가지는 자신을 위하는 것이니, 마땅히 남에게 폐해를 끼침을 염려해야 한다.
의상(衣裳)은 덕(德)이 있는 이에게 명하는 것이니, 반드시 상자에 둠을 삼가는 것은 가볍게 주는 바가 있음을 경계한 것이며,
간과(干戈)는 죄가 있는 자를 토벌하는 것이니, 반드시 몸을 살핌에 엄격히 하는 것은 가볍게 동하는 바가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남에게 가하는 것이니, 마땅히 자신에게 씀을 살펴야 한다.
왕(王)이 이 네 가지를 경계하여, 이것을 믿어 능히 밝게 하면 정치(政治)가 아름답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 제5장(第五章)


『 나라가 다스려지고 혼란함은 여러 관원들에게 달려 있으니, 관직을 사사로이 가까운 자에게 미치지 않게 하여 능한 자로 하시며,
작위(爵位)가 악덕(惡德)에게 미치지 않게 하여 현자(賢者)로 하소서.』

『 여러 관원(官員)은 나라가 다스려지고 혼란해지는 근원이니,
여러 관원(官員)이 훌륭한 인물을 얻으면 다스려지고, 훌륭한 사람을 얻지 못하면 어지러워진다.
〈왕제(王制)〉에 “의론(議論)하여 결정한 뒤에 벼슬을 시키고, 벼슬을 맡긴 뒤에 작위(爵位)를 준다.” 하였으니,
육경(六卿)과 백집사(百執事)는 이른바 관(官)이요, 공(公)•경(卿)•대부(大夫)•사(士)는 이른바 작(爵)이다.
관직(官職)은 일을 맡기기 때문에 능(能)이라 하고, 작위(爵位)는 덕(德)이 있는 자에게 명(命)하기 때문에 현(賢)이라 하였다.
현자(賢者)와 능(能)한 자를 임용함은 나라가 다스려지는 이유이고,

사사로이 가까운 자와 악덕(惡德)인 자를 임용함은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이유이다.』

『살펴보건대 옛날에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은 제후국(諸侯國)에 대한 작위(爵位)이고
공(公)•경(卿)•대부(大夫)•사(士)는 조정(朝廷)에 대한 작위(爵位)인데, 여기에 서관(庶官)이라고 말했으니,
이 작(爵)은 공(公)•경(卿)•대부(大夫)•사(士)인 것이다.』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악덕(惡德)은 흉덕(凶德)과 같다.
인군(人君)은 마땅히 길한 선비를 써야 하니, 흉덕(凶德)의 사람은 비록 남보다 뛰어난 재주가 있더라도 작위(爵位)가 미쳐서는 안된다.”』

 


▣ 제6장(第六章)


『 생각을 선(善)하게 하여 동(動)하시되 동(動)함을 때에 맞게 하소서.』

『 선(善)은 이치에 합당함이요, 시(時)는 때로 조처함에 마땅한 것이다.
생각은 진실로 이치에 합당하게 하려고 하나 동(動)함을 제때에 하지 않으면 오히려 무익(無益)하니,
성인(聖人)이 이 세상을 수작(酬酌)함도 또한 때에 맞게 할 뿐이다.』

 

 

▣ 제7장(第七章)


『 선(善)을 두었노라고 생각하면 그 선(善)을 상실하고,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면 그 공(功)을 상실할 것입니다.』

『 스스로 선(善)을 두었다고 여기면 자신이 더 힘쓰지 않아 덕(德)이 이지러지고,
스스로 재능을 자랑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힘을 다하지 않아 공(功)이 훼손된다.』

 

 

▣ 제8장(第八章)


『 일에 종사(從事)함이 바로 대비(對備)가 있는 것이니, 대비(對備)가 있어야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 일에 종사하여야 대비가 있으니, 대비가 있으므로 근심이 없는 것이다.
장씨(張氏)가 말하였다. “수레와 말을 수리하고 기계(器械)『[장비]』를 마련하여 병사(兵事)에 종사하면
병(兵)『[국방(國防)]』에 대비가 있으므로 외모(外侮)『[외침(外侵)]』가 근심이 되지 않으며,
농기구를 살펴보고 농정(農政)을 닦아 농사에 종사하면 농(農)에 대비가 있으므로 홍수와 가뭄이 피해가 되지 않으니,
이른바 일에 종사하여 대비가 있어야 근심이 없다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

 


▣ 제9장(第九章)


『 총애함을 열어놓아 업신여김을 받아들이지 말며, 허물을 부끄러워하여 잘못을 저지르지 마소서.』

『 총행(寵幸)을 열어놓아 남의 업신여김을 받아들이지 말고, 과오(過誤)를 부끄러워하여 자신의 잘못을 이루지 말아야 한다.
과오(過誤)는 우연(偶然)에서 나오고, 작비(作非)는 유의(有意)에서 나오는 것이다.』

 


▣ 제10장(第十章)


『 그 살 곳을 편안히 여기게 하여야 정사(政事)가 순수해질 것입니다.』

『 거(居)는 그쳐서 편안히 여기는 뜻이니, 의리에 그칠 바를 편안히 여기는 것이다.
의리가 억지로 힘씀에서 나오면 오히려 둘『[따로]』이며, 의리가 자연(自然)에서 나오는 것을 편안히 여기면 하나이니,
하나이기 때문에 정사(政事)가 순수하여 잡되지 않은 것이다.』

 

 

▣ 제11장(第十一章)


『 제사(祭祀)에 설만함『[함부로 함]』을 이것을 일러 공경하지 않는다 하니,

예(禮)는 번거로우면 혼란하여 신(神)을 섬기기 어렵습니다.”』

『 제사(祭祀)는 설만하게 하려고 하지 않아야 하니 설만하면 불경(不敬)해지고,

예(禮)는 번거롭게 하려고 하지 않아야 하니 번거로우면 요란해지니,
 이 두 가지는 모두 귀신을 사귀는 도리가 아니다. 상(商)나라 풍속은 귀신(鬼神)을 숭상하니,
고종(高宗)이 혹 유속(流俗)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신(神)을 섬기는 예(禮)가 반드시 과함이 있었을 것이다.
조기(祖己)가 “제사(祭祀)를 가까운 사당에만 풍성하게 하지 말라.”고 경계하였으니, 부열(傅說)이 그 잘못을 인하여 바로잡은 것이다.』

 


▣ 제12장(第十二章)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름답다! 부열(傅說)아. 너의 말은 행할 수 있겠다.
네가 좋은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듣고서 행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 지(旨)는 아름다움이다. 고인(古人)은 음식(飮食)의 아름다운 것에 대해 반드시 맛이 있다고 말하였으니,
그 말에 맛이 있는 것이다. 복(服)은 행함이다. 고종(高宗)은 부열(傅說)이 말한 바를 찬미하여 “행할 수 있으니,
가령 네가 좋은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듣고서 행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라고 한 것이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부열(傅說)의 말은 비유하면 약석(藥石)과 같으니,
비록 흩어져서 한결같지 않으나 한 마디 말이 한 가지 약(藥)이 되어 모두 천하의 공적(公的)인 병통을 다스릴 수 있으니,
이른바 옛날에 훌륭한 말을 세운 자일 것이다.”』

 

 

▣ 제13장(第十三章)


『 부열(傅說)이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려우니,
왕(王)이 정성으로 믿어 어렵게 여기지 않으시면 진실로 선왕(先王)이 이룩하신 덕(德)에 합하실 것이니,
제가 말씀드리지 않는다면 허물이 있을 것입니다.”』

『 고종(高宗)이 막 부열(傅說)이 말한 것을 음미하자, 부열(傅說)이 이르기를 “귀에 얻어 들음은 어려운 것이 아니요 몸에 행함이 어려우니,
왕(王)이 진심으로 믿어 또한 어렵게 여기지 않으시면 진실로 성탕(成湯)이 이룩하신 덕(德)에 합할 것입니다.
이러한데도 제가 오히려 말씀드리지 않음이 있으면 그 죄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한 것이다.
상편(上篇)에 ‘군주(君主)가 성스러우면 신하(臣下)는 명령하지 않아도 받든다.’고 말한 것은
간언(諫言)을 따르는 도량을 넓혀서 장차 정치하는 요체(要體)를 고(告)하려고 한 것이며,
이 편에 ‘진실로 선왕(先王)이 이룩하신 덕(德)에 합하실 것이니, 제가 말씀드리지 않는다면 그 허물이 있다.’고 말한 것은
궁행(躬行)의 실제(實際)를 책(責)하여 장차 학문(學問)하는 말을 올리려고 한 것이니, 모두 활을 당기기만 하고 발사(發射)하지 않은 뜻이다.』

 

 

 

서경 - 상서 - 열명 상(說命上)

 

▣ 열명 상(說命上)


『說命은 記高宗命傅說之言이니 命之曰以下 是也라
猶蔡仲之命, 微子之命이니 後世命官制詞 其原이 蓋出於此라
上篇은 記得說命相之辭하고 中篇은 記說爲相進戒之辭하고
下篇은 記說論學之辭하니 總謂之命者는 高宗命說이 實三篇之綱領이라
故로 總稱之라 今文無, 古文有하니라』

 

『 열명(說命)은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명(命)한 말을 기록한 것이니, ‘명지왈(命之曰)’ 이하가 이것이다.
〈채중지명(蔡仲之命)〉•〈미자지명(微子之命)〉과 같으니, 후세에 관직(官職)을 명(命)하면서 말을 지은 것은 그 근원이 모두 여기에서 나왔다.
상편(上篇)은 부열(傅說)을 얻어 정승을 명한 말을 기록하였고, 중편(中篇)은 부열(傅說)이 정승이 되어 진계(進戒)한 말을 기록하였고,
하편(下篇)은 부열(傅說)이 학문을 논한 말을 기록하였으니, 이것을 모두 명(命)이라고 이른 것은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명(命)한 것이 실로 세 편의 강령(綱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두 열명(說命)이라고 칭한 것이다. 금문(今文)에는 없고 고문(古文)에는 있다.』


 

▣ 제1장(第一章)

 

『 왕(王)이 양암(亮陰)『[여막(廬幕)]』에서 택우(宅憂)『[집상(執喪)]』하기를 3년 동안 하여 이미 상(喪)을 벗고도 말씀하지 않으니,
군신(群臣)들이 모두 왕(王)에게 간(諫)하였다. “아! 아는 사람을 명철(明哲)이라 하니, 명철(明哲)이 실로 법(法)이 됩니다.
천자(天子)가 만방(萬邦)에 군주(君主)가 되시거든 백관(百官)이 법(法)을 받들어서 왕(王)의 말씀을 명령으로 삼나니,
왕(王)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면 신하(臣下)들이 명령을 받을 곳이 없습니다.”』

『 양(亮)은 또한 ‘양(諒)’으로도 쓰고, 암(陰)은 고문(古文)에는 ‘암(闇)’으로 되어 있다.
살펴보건대 〈상복(喪服)〉의 네 제도(制度)에 “고종량암삼년(高宗諒陰三年)”이라 하였는데,
정씨(鄭氏)의 주(註)에 “양(諒)은 고문(古文)에는 양(梁)으로 되어 여막(廬幕)이다.” 하였으며,
《의례(儀禮)》에 “전병주미(캼屛柱楣)한다.” 하였는데, 정씨(鄭氏)는 이르기를 “주미(柱楣)는 이른바 양암(梁闇)이 이것이다.” 하였으니,
택우량암(宅憂亮陰)은 양암(梁闇)에서 집상(執喪)한 것이다.
선유(先儒)『[공안국(孔安國)을 가리킴]』는 양암(亮陰)을 “신실하고 침묵하여 말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는데,
양암(諒陰)에서 3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는 것과 말이 중복되어 이해할 수 없다.
임금이 죽으면 백관(百官)들이 자신의 직책을 총괄하여 총재(¾4宰)에게 명령을 들으니,
양암(亮陰)에서 집상(執喪)하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떳떳한 예(禮)이다.
고종(高宗)이 아버지 소을(小乙)의 상(喪)을 당하였는데 이미 상(喪)을 벗고도 말하지 않으니,
군신(群臣)들이 예(禮)에 과하다고 생각하였으므로 모두 간(諫)한 것이다.
탄식하여 말하기를 “선지(先知)의 덕(德)이 있는 자를 명철(明哲)이라 이르니, 명철(明哲)이 실로 천하에 법(法)이 됩니다.
이제 천자(天子)가 만방(萬邦)에 군림(君臨)하시면 백관(百官)들이 모두 법령(法令)을 받들어서 왕(王)의 말씀으로 명령을 삼나니,
말씀하지 않으시면 신하(臣下)들이 명령을 받을 곳이 없습니다.” 하였다.』

 


▣ 제2장(第二章)

 

『 왕(王)이 글을 지어 고(誥)하였다.
“나로써 사방(四方)을 바로잡게 하시기에 나는 덕(德)이 선인(先人)과 같지 못할까 두려워 이 때문에 말하지 않고
공손하고 침묵하여 도(道)를 생각하였는데, 꿈에 상제(上帝)께서 나에게 어진 보필을 내려 주셨으니, 그가 나의 말을 대신할 것이다.”』

『 용(庸)은 써이니, 고종(高宗)이 글을 지어 군신(群臣)들에게 말하지 않는 뜻을 고유하였다.
왕이 “나로써 사방(四方)을 표정(表正)하게 하시니, 임무가 크고 책임이 무거워서 덕(德)이 전인(前人)과 같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감히 함부로 말을 내지 않고 공경하고 연묵(淵默)하여 치도(治道)를 생각하였는데 꿈에 상제(上帝)께서 나에게 어진 보필을 주셨으니,
그가 장차 나의 말을 대신할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고종(高宗)이 공경하고 침묵하여 도(道)를 생각하는 마음이 순일(純一)하고 잡되지 않아서 하늘과 간격이 없었다.
그러므로 몽매(夢寐)의 사이에 상제(上帝)께서 어진 보필을 준 것이니,

생각이 정성스럽고 정신(精神)이 이른 것이요, 우연히 얻은 것이 아니다.』

 

 

▣ 제3장(第三章)


『 이에 그 상(象)을 자세히 살펴 그 형상(形象)으로 천하(天下)에 널리 구하였는데,
부열(傅說)이 부암(傅巖)의 들에서 거주하였는 바, 그 모습이 똑같았다.』

『 심(審)은 자세히 살핌이니, 꿈속에 본 사람을 자세히 살펴 그 형상(形象)을 그려서 천하에 널리 구한 것이다.
방구(旁求)는 구하기를 한 방소에만 한 것이 아니다. 축(築)은 거주(居住)하는 것이니,
지금에도 거주하는 곳을 말할 때에 오히려 복축(卜築)이라고 한다.
부암(傅巖)은 우(虞)와 괵(¹~)의 사이에 있었다. 초(肖)는 같음이니, 꿈꾼 바의 모양과 서로 같은 것이다.』

 

 

▣ 제4장(第四章)


『 이에 세워 정승을 삼아서 왕(王)이 그 좌우(左右)에 두셨다.』

『 이에 세워 정승을 삼았다.
《사기(史記)》를 살펴보면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얻어 더불어 말해 보니 과연 성인(聖人)이었으므로
마침내 등용하여 정승을 삼았다.” 하였으니, 《서경(書經)》에 이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글을 생략한 것이다.
접하여 말해 보지 않고 대번에 정승을 임명함은 또한 이러할 이치가 없다.
좌우(左右)에 둔다는 것은 총재(¾4宰)로서 사보(師保)를 겸하게 한 것인 듯하다.
순경(荀卿)이 말하기를 “배움은 그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보다 편리함이 없다.” 하였으니,
좌우(左右)에 둔 것은 그 사람을 가까이하여 배운 것이다.
사신(史臣)이 장차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명(命)하는 말을 기록하려 하였으므로 먼저 일의 시초(始初)를 서술하기를 이와 같이 한 것이다.』

 

 

▣ 제5장(第五章)


『 왕(王)이 다음과 같이 명(命)하였다. “아침저녁으로 가르침을 바쳐 나의 덕(德)을 도우라.』

『 이 이하(以下)는 부열(傅說)에게 명한 말이다. 조석(朝夕)으로 가르침을 바치라는 것은 선언(善言)을 올리지 않을 때가 없는 것이다.
맹자(孟子)는 말씀하기를 “인재(人才)의 등용(登用)을 이루 다 꾸짖을 수 없고, 정사(政事)의 잘못을 이루 다 흠잡을 수 없다.
오직 대인(大人)이라야 군주(君主)의 마음의 나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 하였으니,
고종(高宗)이 이미 부열(傅說)을 정승으로 삼아 사부(師傅)의 직책에 처하게 하고,
또 아침저녁으로 가르침을 바쳐 자신의 덕(德)을 도우라고 명했으니, 근본(根本)을 알았다고 이를 만하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고종(高宗)은 도(道)를 봄이 밝았기 때문에 경각(頃刻)이라도 현인(賢人)의 말이 없어서는 안됨을 안 것이다.”』

 


▣ 제6장(第六章)


『 만약 금(金)이라면 너를 사용하여 숫돌을 삼으며, 만약 큰 내를 건넌다면 너를 사용하여 배와 노를 삼으며,
만약 해가 대한(大旱)『[큰 가뭄]』이 든다면 너를 사용하여 장마비를 삼을 것이다.』

『 3일 동안 비가 내림을 임(霖)이라 한다. 고종(高宗)이 물건에 가탁하여 부열(傅說)이 가르침을 바치기를 바람이 간절함을 비유하였으니,
세 말이 비록 한 뜻인 듯하나 한 절(節)이 한 절(節)보다 깊다.』

 


▣ 제7장(第七章)


『 네 마음을 열어 내 마음에 대도록 하라.』

『 계(啓)는 엶이요, 옥(沃)은 관개(灌漑)함이다.
네 마음을 열라는 것은 마음을 열어 숨김이 없는 것이요, 내 마음에 대라는 것은 내 마음에 대어서 염어(厭쵇)『[흡족]』하게 하는 것이다.』

 


▣ 제8장(第八章)


『 만약 약(藥)이 독하여 명현(瞑眩)하지 않으면 병(病)이 낫지 않으며, 만약 발이 땅을 살피지 않으면 발이 상할 것이다.』

『 《방언(方言)》에 “약(藥)을 마셔 독이 있는 것을 해대(海岱)의 사이에서는 명현(瞑眩)이라 한다.” 하였다. 추(퀁)는 나음이다.
명현(瞑眩)하지 않음은 신하(臣下)의 말이 입에 쓰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며, 땅을 살피지 않음은 나의 행실이 본 바가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 제9장(第九章)


『 네 관속(官屬)들과 더불어 마음을 함께하지 않음이 없어 네 군주(君主)를 바로잡아 선왕(先王)의 도(道)를 따라
우리 고후(高后)의 자취를 밟아서 조민(兆民)을 편안하게 하라.』

『 광(匡)은 바로잡음이요, 솔(率)은 따름이다.
선왕(先王)은 상(商)나라의 선철왕(先哲王)이다.
부열(傅說)이 이미 정승이 되어서 백관(百官)을 총괄(總括)하니, 경사(卿士) 이하가 모두 그 관속(官屬)이다.
고종(高宗)은 부열(傅說)이 요속(僚屬)들과 마음을 함께 하여 군주를 바로잡아 선왕(先王)의 도를 따라 성탕(成湯)의 자취를 밟아서
천하의 백성을 편안히 하기를 바란 것이다.』

 

 

▣ 제10장(第十章)


『 아! 나의 이 명령을 공경하여 유종(有終)을 생각하라.”』

『 나의 이 명령을 공경하여 유종(有終)을 생각하라는 것이니, 이 명(命)은 상문(上文)에 명령한 것이다.』

 


▣ 제11장(第十一章)


『 부열(傅說)이 왕(王)에게 대답하였다.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바르고, 임금은 간언(諫言)을 따르면 성(聖)스러워지니,
임금께서 성스러우시면 군주(君主)가 명령하지 않아도 신하(臣下)들이 받들거늘

누가 감히 왕(王)의 아름다운 명령에 공경히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 “나의 이 명령을 공경하라.”는 말에 대답한 것이다.
나무가 먹줄을 따름은 군주(君主)가 간언(諫言)을 따름을 비유한 것이니, 간언(諫言)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됨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고종(高宗)은 마땅히 자신에게 말을 받아들이기를 구할 것이요, 굳이 신하(臣下)에게 진언(進言)하기를 책할 것이 없다.
군주(君主)가 과연 간언(諫言)을 따르면 신하(臣下)들은 비록 군주(君主)가 명령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받드는데 하물며 명령하기를 이와 같이 하니,
누가 감히 아름다운 명령(命令)을 공경히 순종하지 않겠는가.』

 

 

 

서경 - 상서 - 반경 하(盤庚下)

 

▣ 반경 하(盤庚下)

 

 

▣ 제1장(第一章)


『 반경(盤庚)이 이미 천도(遷都)하여 거주할 곳을 정하고는 군신(君臣)과 상하(上下)의 지위를 바로잡아 여러 무리들을 편안하게 하였다.』

『 반경(盤庚)이 이미 새 도읍으로 천도(遷都)하여 거주할 곳을 정하고는 군신(君臣)과 상하(上下)의 지위를 바로잡아
신민(臣民)들의 천사(遷徙)하는 수고로움을 위로하여 여러 무리들의 정(情)을 편안하게 한 것이다. 이는 사관(史官)의 말이다.』

 


▣ 제2장(第二章)


『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희롱하고 태만하지 말아 힘써 큰 명(命)을 세우도록 하라.』

『 왈(曰)은 반경(盤庚)의 말이다. 대명(大命)은 비상(非常)한 명(命)이다.
국도(國都)를 옮기는 초기(初期)에는 신민(臣民)과 상하(上下)가 바로 근로(勤勞)하여 수고로움을 다해서 일에 달려가고 공(功)에 나아가서
국가(國家)의 무궁한 계책을 세워야 한다.
그러므로 반경(盤庚)이 “희롱하고 태만히 하지 말라.”는 말로 경계하고, 큰 명(命)을 세우라고 권면한 것이다.』

 


▣ 제3장(第三章)


『 이제 나는 심장과 배와 신장과 창자에 있는 말을 펴서 너희 백성들에게 나의 뜻을 다 고하노니, 너희들을 죄주지 않을 것이니,
너희들은 함께 노(怒)하여 협비(協比)『[합하여 따름]』해서 나 한 사람을 비방하지 말라.』

『 역(歷)은 다이다. 백성(百姓)은 기내(畿內)의 민서(民庶)이니, 백관(百官)과 족성(族姓)들도 또한 이 가운데에 들어 있다.』

 

 

▣ 제4장(第四章)


『 옛날 우리 선왕(先王)께서는 ‘장차 전인(前人)의 공(功)보다 많게 하리라’ 하시어
산(山)으로 가서 우리의 흉한 덕(德)을 낮추어 우리 나라에 아름다운 공적(功績)이 있게 하셨다.』

『 옛날 우리 선왕(先王)은 탕왕(湯王)이다. 산에 갔다는 것은 박읍(¨]邑)에 간 것이다.
설(契)이 처음 박읍(¨]邑)에 거하였는데 그후 여러 번 천도(遷都)하니, 성탕(成湯)은 전인(前人)의 공(功)보다 많게 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다시 박읍(¨]邑)에 가서 거한 것이다.
살펴보건대 〈입정(立政)〉에 삼박(三¨])을 정씨(鄭氏)는 “동쪽은 성고(成皐)이고 남쪽은 환원(턤轅)이고 서쪽은 강곡(降谷)이다.” 하였으니,
박읍(¨]邑)이 산(山)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산(山)에 갔다고 말한 것이다. 강(降)은 낮춤이다.
산(山)에 의지하면 땅이 높고 물이 낮아서 하수(河水)에 무너지는 폐해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흉덕(凶德)을 낮추었다고 말한 것이다. 가적(嘉績)은 아름다운 공(功)이다.』

 


▣ 제5장(第五章)


『 지금 우리 백성들이 탕석리거(蕩析離居)하여 정하여 머물 곳이 없는데

너희들은 짐(朕)에게 이르기를 ‘어찌하여 만민(萬民)을 진동하여 옮기는가’ 하는구나.』

『 이제 경(耿)땅이 하수(河水)에 침식되어 무너져서 침닉(沈溺)하고 빠지니,
백성들이 탕석리거(蕩析離居)하여 정하여 머물 곳이 없어서 장차 흉덕(凶德)에 빠져 구제할 수가 없는데도
너희들은 나에게 이르기를 “무슨 연고로 만민(萬民)을 진동하여 옮기는가.”라고 한다.』

 

 

▣ 제6장(第六章)


『 이러므로 상제(上帝)께서 장차 우리 고후(高后)의 덕(德)을 회복하여 다스림이 우리 국가에 미치게 하시니,
짐(朕)은 독실하고 공경하는 신하(臣下)들과 더불어 공손히 백성의 명(命)을 받들어 이 새 도읍(都邑)에 영원한 터전을 만들었노라.』

『 상천(上天)이 장차 우리 성탕(成湯)의 덕(德)을 회복하여 다스림이 우리 국가에 미치게 하시니,
나는 한두 명의 독경(篤敬)하는 신하(臣下)들과 더불어 공경히 백성의 명(命)을 받들어서 이 새 도읍에 장구(長久)히 거주하게 한 것이다.』

 

 

▣ 제7장(第七章)


『 그러므로 나 충인(沖人)은 너희들의 계책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선(善)한 것을 씀에 이르게 하고자 해서이며,
너희들도 각기 점(占)을 어기려는 것이 아니라 이 큰 사업을 크게 하고자 해서였다.』

『 충(沖)은 어림이요, 조(弔)은 이름이요, 유(由)는 씀이요, 영(靈)은 선(善)이다.
굉(宏)과 분(賁)은 모두 큼이다. 내가 너희들의 여러 계책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너희들의 여러 계책중에 선(善)한 것을 씀에 이르게 하려고 해서이니,
이는 당시 신민(臣民) 중에 이해(利害)의 실제를 살펴서 “마땅히 옮겨야 한다.”고 말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너희들 또한 감히 굳이 내 점(占)을 어기려는 것이 아니라 또한 이 큰 사업을 크게 하고자 해서였을 뿐이니,
너희들 또한 딴 뜻이 있어서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반경(盤庚)은 이미 천도(遷都)한 뒤에 피차의 정(情)을 펴서 의구(疑懼)하는 뜻을 풀고,
자신이 지난날 계책을 씀을 밝히고 저들의 기왕(旣往)의 오만함과 게으름을 생략하여,
위곡(委曲)하고 충후(忠厚)한 뜻이 언사(言辭)의 밖에 성하게 드러난 것이다.
대사(大事)가 결정되고 대업(大業)이 일어나서 성탕(成湯)의 은택(恩澤)이 이에 더욱 영구하게 되었으니, 반경(盤庚)이 그 어질구나.』

 


▣ 제8장(第八章)


『 아! 방백(方伯)과 사장(師長)과 백집사(百執事)의 사람들은 부디 모두 은통(隱痛)하는 마음을 간직할지어다.』

『 은(隱)은 은통(隱痛)함이다. 반경(盤庚)이 다시 탄식하고 말씀하기를
“너희 제후(諸侯)와 공경(公卿)과 백집사(百執事)의 사람들은 부디 모두 마음에 은통(隱痛)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 제9장(第九章)


『 내가 힘써 좋은 지역을 간택(簡擇)하여 너희들을 인도(引導)함은 나의 백성들을 생각하고 공경하기 때문이다.』

『 상(相)은 《이아(爾雅)》에 “인도(引導)함이다.” 하였다.
내가 힘써 간택하여 너희들을 인도(引導)함은 나의 민중(民衆)들을 생각하고 공경하기 때문이다.』

 

 

▣ 제10장(第十章)


『 짐(朕)은 재화(財貨)를 좋아하는 이에게 맡기지 않고, 공경함에 용감하여 생업(生業)에 종사해서 사람을 길러주고
사람들의 거처를 보존함을 도모하는 자를 서용(敍用)하고 공경하노라.』

『 견(肩)은 맡김이요, 감(敢)은 용감함이다. 국인(鞠人)•모인(謀人)은 미상(未詳)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국(鞠)은 기름이다.”라고 한다. 나는 재물(財物)을 좋아하는 사람을 임용하지 않고,
오직 백성을 공경함에 용감하여 생업(生業)에 종사함을 생각해서 사람을 길러주고 사람의 거처를 보존함을 도모하는 자를
내 차례하여 등용하고 공경하여 예우(禮遇)할 것이다.』

 

 

▣ 제11장(第十一章)


『 이제 내가 이미 나아가 짐(朕)의 뜻을 너희들에게 고(告)하였으니, 내 뜻과 같이하고 같이하지 않음을 공경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라.』

『 수(羞)는 나아감이다. 약(若)은 나의 뜻과 같이함이니 곧 공경함에 용감하여 생업에 종사함을 이르고,
부(否)는 나의 뜻이 아님이니 곧 재물 좋아하는 이에게 맡기지 않음을 이른다.
이 두 가지를 너희들은 마땅히 깊이 생각해서 내가 말한 바를 공경하지 않음이 없어야 할 것이다.』

 

 

▣ 제12장(第十二章)


『 화보(貨寶)를 모으려 하지 말고, 생업(生業)에 종사함을 자신의 공(功)으로 삼으라.』

『 무(無)는 무(毋)와 같고, 총(總)은 모음이다. 용(庸)은 백성의 공(功)이다.
이는 곧바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경계하고, 마땅히 해야 할 것을 권면한 것이다.』

 

 

▣ 제13장(第十三章)


『 백성들을 위하는 덕(德)을 공경히 펴서 영원히 한 마음에 맡기도록 하라.”』

『 식(式)은 공경함이다. 공경히 백성들을 위하는 덕(德)을 펴서 영원히 한 마음에 맡겨야 할 것이니, 오래되도록 쇠하지 않고자 한 것이다.
〈반경(盤庚)〉은 편의 마지막에 경계하고 권면(勸勉)한 뜻이 한 절(節)이 한 절(節)보다 엄하고, 마침내는 무궁함으로써 기약하였으니,
반경(盤庚)은 어질다고 할 것이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백성들이 기뻐하지 않는데도 오히려 함은 선왕(先王)은 일찍이 이런 일이 없었다.
조을(祖乙)이 경(耿)땅에서 무너지니, 반경(盤庚)이 천도(遷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가령 선왕(先王)이 이 경우에 처했다면 백성을 움직여도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들을 수고롭게 하여도 백성들이 원망하지 않았을 터인데, 반경(盤庚)은 덕(德)이 쇠하여 백성들에게 신임을 받음이 지극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분분함이 이와 같았다.
그러나 백성들이 원망하고 비방하며 명령을 거역하였으나 반경(盤庚)은 끝내 노여워하지 않고 허물을 이끌어 자책(自責)하여
사람들의 말을 더욱 열어주고 반복하여 고유(告諭)해서 입과 혀로써 부월(斧鉞)을 대신하여 충후(忠厚)함이 지극하니,
이는 은(殷)나라가 망하지 않고 다시 흥하게 된 이유이다.
후세(後世)의 군자(君子)『[정치가]』로서 백성을 해롭게 하여 자신의 지혜를 쓰는 자들이 모두 반경(盤庚)을 구실(口實)로 삼으니,
내 이것을 논변(論辯)하지 않을 수 없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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